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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2016년 윤여정. 출생, 1947년 6월 19일(1947-06-19)(75세) 미 군정 조선 경기도 개성부. 국적,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 직업, 배우. 활동 기간, 1966년 ~ 현재.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12/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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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 나무위키:대문
결국 한국 배우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20]됐다. 74세의 나이에 충무로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 줄곧 찬사가 이어졌다.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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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나이 조영남 위자료 가족 동생 윤여순 파친코 – 소소랑
윤여정 나이 조영남 위자료 가족 동생 윤여순 파친코 … 배우 윤여정은 경기도 개성시 現 북한 개성시 출생, 1947년 6월 19일생 74세이며 학력은 이화여자 …
Source: sosorang.com
Date Published: 10/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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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프로필, 나이, 키, 몸무게, 학력, 고향, 가족 관계 …
윤여정은 파평 윤씨 1947년 6월 19일에 출생하였으며, 2021년 기준 현재 만 나이는 74세,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에 해당합니다. 키-몸무게 …
Source: masitkooma.tistory.com
Date Published: 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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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프로필부터 나이 화제가 되는 이유 ‘뜻밖의 여정’
배우 윤여정 프로필, 수상, 나이 등을 향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tvN ‘뜻밖의 여정’ 첫 방송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
Source: www.gukjenews.com
Date Published: 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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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나이 조영남 이혼 사유 아들 가족 동생 학력 – 엔슈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이며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현재 북한 개성시) 출생입니다. 학력 사항은 이화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
Source: tatw3650.tistory.com
Date Published: 1/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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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나이 집안 과거 프로필 전남편 조영남 이혼 아들 근황>
배우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입니다. 윤여정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현재 북한 개성시)이며 가족으로는 여동생 윤여순과 아들 2 …
Source: mway2.tistory.com
Date Published: 6/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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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나이 학력 남편 프로필 – 노란우체통
윤여정 나이 학력 남편 프로필. 최근 미국 이민 1세대의 여러가지 애환을 그린 영화 “미나리” 로 전세계의 이목을 끌고 있는 요즘 윤여정이라는 배우 …
Source: dncoeyc.tistory.com
Date Published: 8/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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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프로필 나이 과거 가족 – 인명사전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는 75세 입니다. 고향은 당시 경기도 개성부 출생이고 학력사항 이화여자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
Source: dictionarypeople.tistory.com
Date Published: 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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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나이 데뷔 작품 결혼 이혼 자녀 프로필 – 전 남편 조영남
윤여정 나이 데뷔 작품 결혼 이혼 자녀 프로필 – 전 남편 조영남 윤여정 尹汝貞 | Yuh-Jung Youn 출생 1947년 6월 19일 (74세) 경기도 개성시 국적 …
Source: infoyas.com
Date Published: 6/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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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윤여정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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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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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윤여정(1947년 6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이다.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1967년 동양방송 《미스터 곰》에서 주요 역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강변 살자》, 《박마리아》 등에 출연했고, 문화방송으로 이적 후 《장희빈》 역을 맡아 스타덤에 올랐다. 1971년 영화 《화녀》로 스크린에 데뷔하여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다.
연예계 복귀 이후 주요 출연작으로는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내가 사는 이유》,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넝쿨째 굴러온 당신》, 《디어 마이 프렌즈》와 영화 《바람난 가족》, 《꽃피는 봄이 오면》, 《하하하》, 《하녀》, 《돈의 맛》,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등이 있다.
임상수, 홍상수, 이재용 감독과의 작업을 통해 수많은 상을 받았으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윤식당》, 《윤스테이》 등으로도 이름을 알리기도 했으며, 2021년 영화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미국 배우 조합상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 여우조연상[2], 제93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다.
활동 [ 편집 ]
1970~1990년대: 초기 경력 및 스타덤에 오르다 [ 편집 ]
윤여정은 한양대학교 국문학과에 재학하던 1966년 연극 배우로 처음 연기를 시작하였고, 동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험에 응시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도전한 결과였다고 한다.[3]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밝혔다.
“ 등록금을 위해 당시 김동건 선생님의 프로그램을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었다. 그때 나를 보고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하더라. 떨어지면 붙여준다고 보라고했다. ” — 스포츠경향 2016년 5월 27일자 기사[4] 중
활동 무대를 MBC로 옮겨 1971년 사극 《장희빈》에서 악녀 장희빈 역을 맡아 표독스럽게 연기해내며 주목을 받았다. 그해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로 스크린 데뷔하였고, 유니크한 이목구비의 윤여정의 등장은 영화판에서 신선한 센세이션이었다. 이 작품에서 그녀는 시골에서 상경한 하녀 명자 역을 맡아 식모살이하는 서울 중산층 가정의 유부남에게 겁탈당하고 강제 유산까지 한 후 광기를 부리게 되는 인물을 연기해 본격적인 스타덤에 올랐다.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대종상 신인여우상, 제4회 시체스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5]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의 《충녀》에도 출연하며 ‘김기영의 페르소나’로 불리기도 했다.
윤여정은 1972년 김수현 작가의 MBC 《새엄마》 최고 인기를 자랑하면서 연예계 흥행보증수표로 거듭났다.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전성기때인 1974년 27세 나이로 가수 조영남과 결혼하며 배우 생활을 쉬고 미국으로 건너가 이민 생활을 했다.이후 1987년 결혼 13년 만에 조영남과 이혼한 뒤 슬하의 두 아들을 양육하기 위해 연예계에 복귀했다.[6] 2021년 초 미국 일간지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혼 직후 윤여정은 공립학교에 보낸 두 아이를 키우려 최저 시급 2.75달러를 받으며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했다고 말했다.[3]
2009년 MBC 《무릎팍도사》에서 윤여정은 이혼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 돈 벌기 위해 단역도, 보조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 ” — 주간동아 2021년 2월 7일자 기사[7] 중
한때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던 윤여정은 MBC 《전원일기》에 단역으로 출연했지만 다시 시작한 연기 생활은 혹독했다. 극 중 밥 먹는 장면을 연기하던 그녀에게 일용엄니 역의 김수미는 “여기서는 그렇게 밥을 끼적끼적 먹어선 안 된다”고 조언했는데, 이 말이 연기 인생의 거름이 되었다고 한다. 윤여정은 이후 밤을 새워 토씨 하나 틀리지 않도록 연기 연습을 했다.[7] 이후 스타 방송작가 김수현이 각본을 쓴 1985년 영화 《에미》에서 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인신매매 단원을 한 명씩 처단하는 중년 여인 역을 연기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3]
1984년 미국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MBC 《베스트셀러극장-고깔》로 연예계 복귀를 하였다. 윤여정은 당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화려한 재복귀, 이런 떠들썩한 말은 싫다. 주부로만 묻혀 있어 모두들 잊었으려니 했는데 이렇게 기억해주시다니 감사할 뿐이다”라고 복귀 소감을 알렸다.[4]
1990년대 드라마 《배반의 장미》,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간이역》,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등 작품에서 주어진 역할은 주로 주인공의 엄마, 이모 또는 고모 등이였으나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했다. 하지만 복귀에도 대중들의 시선은 예전 같지 않았는데, 당시만해도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던 탓에 윤여정은 2009년 영화 《여배우들》에서 “이혼했을 당시 국민 정서를 해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히기도 했었다.[3]
윤여정은 또한 1997년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를 시작으로 노희경 작가의 작품에 《거짓말》(1998),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 《유행가가 되리》(2005), 《그들이 사는 세상》(2008), 《디어 마이 프렌즈》(2016)에 출연했다.
2000~2010년대: 계속 된 연기, 바람난 가족과 하녀 [ 편집 ]
2000년대에 넘어와서도 윤여정은 드라마《꼭지》, 《비단향꽃무》,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열아홉 순정》,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여러 편의 작품에서 할머니 역부터 요부 역까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은 열연을 펼치며 중견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방송국에서 붙박이로 일하던 그녀는 임상수 감독의 2003년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18년 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컴백했다. 윤여정은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남편 앞에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시어머니 홍병한 역을 연기,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화려한 복귀를 이뤄냈다. 당초 이 역할은 출연 제의를 받은 여러 배우들이 손사래를 쳤던 역할이었다고 한다.[3] 제작을 맡은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중년 여성 이미지가 역할에 맞아 출연 제안을 했는데, 쿨하게 ‘집 인테리어 해야 해서 돈이 필요하다’면서 역할을 맡아줬다”고 말했다.[3] 윤여정은 이 작품으로 대종상 여우조연상에 후보 지명되었으며,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이듬해 출연한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2년 연속 여우조연상에 후보 지명되는 쾌거를 이뤘다.
《바람난 가족》 성공 이후 텔레비전보다 영화 쪽 활동이 잦아졌으며, 그 중에서도 홍상수 감독과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 크고 작은 역할들로 출연하며, 해외 인지도가 높아졌다. 홍상수 감독의 《하하하》(2009), 《다른 나라에서》(2011), 《자유의 언덕》(2014),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사람들》(2004), 2007년 영화 《오래된 정원》(2007), 《하녀》(2010), 《돈의 맛》(2012), 《나의 절친 악당들》(2015), 《헤븐:행복의 나라로》(2021)에 출연했다.
한국 배우 최초의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 지명 소식에 임상수 감독은 “나보다 훨씬 젊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언급했다.
“ ‘미나리’ 촬영을 시작하기 전 대본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는데, 그런 조건이라면 다른 사람들은 거절할 만한 상황이었어요. 한국에서처럼 편안하게 대우받으면서 찍을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니까요. 그 나이에 자기 돈을 써가면서 함께 하셨고 이런 결과를 맞이하신 건, 그분이 몸보다 마음이 젊은 분이어서겠죠. ” — 연합뉴스 2021년 3월 16일자 기사[8] 중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2005년 출연한 KBS2 《창사특집극 – 유행가가 되리》는 상하이 국제TV페스티벌에서 TV드라마부문 매그놀리아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9]
2010년에는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인 동명 영화를 50년 만에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 원작에 없던 나이 든 하녀 역을 연기한 윤여정은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상, 청룡영화상, 대종상, 대한민국 영화대상, 아시안 필름 어워드 등 국내 시상식 외에도 다수의 해외영화제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며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10] 이 작품은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임상수 감독은 “윤여정은 조연이 아니라 전도연과 함께 주연으로 생각하고 만든 영화”라고 말했다.[8]
2012년 윤여정은 2월부터 9월 초까지 방영된 KBS2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 21세기 며느리 (김남주)과 팽팽한 고부갈등을 펼치는 밉지 않은 20세기 시어머니 엄청애 역으로 호평을 받았고, 이 작품은 대한민국 며느리들의 폭풍 공감을 이끌어내며 ‘시월드 신드롬’을 일으켰다. 동년 MBC 《더킹2Hearts》에선 선대왕 이명의 아내로 왕실 최초 평민출신 왕비 방영선 역을 맡아 상반된 열연을 펼쳤다. 또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돈의 맛》에서 윤여정은 성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재벌가 여인 백금옥 역을 연기해 2년만에 칸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하며 5월 26일 칸에 위치한 뤼미에르 극장에서 공식 스크리닝이 진행되어 영화에서 공연한 백윤식, 김강우, 김효진,임상수 감독과 레드카펫을 밟았다.[11]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윤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 윤여정은 나이 들면서 역할이 더 넓어지는 국내 유일의 배우. 할머니의 역할과 요부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다. ” — 한국일보 2021년 3월 17일자 기사[3] 중
2013년에는 송해성 감독의 영화 《고령화가족》에서 나이 값 못하는 삼 남매의 어머니 역할 연기했고, MBC 드라마 《여왕의 교실》에선 교육계 자문으로 참여했던 재판에서 인상적이었던 마선생(고현정)을 영입하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시도하는 교장선생님 용현자 역을 연기했다. 이듬해인 2014년에는 《꼭지》(2000)로 호흡을 맞춘 이경희 작가의 드라마 《참 좋은 시절》에서 평생을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던지고 헌신하는 어머니 장소심 역할을 연기했다.[12]
2016년 12월 7일, 2016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에서 윤여정.
2016년 윤여정은 데뷔 50주년을 맞이하였다.[13][14] tvN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서 일평생을 일가친척들 뒷바라지하느라 결국은 싱글 처녀 꼰대가 된 화끈한 성격을 지닌 65세의 모태솔로 오충남 역을 연기, 매사에 이성적인 연애관과 타고난 입담을 선보였다.[15] 동년에 세 편의 영화 《계춘할망》, 《죽여주는 여자》, 《산나물 처녀》에 출연했다. 특히 《죽여주는 여자》에서 그녀는 주인공 소영 역을 맡아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과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춘사영화상, 들꽃영화상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에서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었고, 부일영화상과 몬트리올 판타지아 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심사위원대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올해의 여성영화인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1971년 《화녀》 이후 45년 만에 여우주연상을 수상이기에 더욱 의미를 더했다.[16][17] 《계춘할망》으로는 대종상 여우주연상에 후보 지명되었다.
2017년 윤여정은 대중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 표창을 받았다.[18]
윤여정은 또한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에 출연해 쿨한 입담과 탁월한 패션센스를 뽐내며 중견 여배우 중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2020년대: 미나리, 제2의 전성기 [ 편집 ]
2020년 윤여정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과거의 기억에 갇힌 노모 순자 역으로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19] 같은 해 출연한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에는 개런티를 받지 않고 출연하기도 했다.[20]
이듬해인 2021년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미국으로 이민 간 딸 모니카(한예리)의 요청을 받고 간 딸 부부가 새로 정착한 시골 마을 아칸소에서 어린 손주들을 위해 희망을 찾아가는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했다. ‘전형적 할머니’ 틀 깬 독창적 연기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아 미국 전역의 시상식에서 30여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21][22] 4월 5일 미국 배우 조합상(SAG)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23][24] 또한 윤여정은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BAFTA)과 미국 아카데미상 최우수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라 영국 아카데미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었다.[25] 윤여정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애플 TV+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마치고 2021년 3월 15일 밤 귀국했고, 다음날인 3월 16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소감을 전했다.[26]
2021년 4월 26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유니언역과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한국 배우로서 후보 지명과 수상 모두 최초이다.[27].
출연 작품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윤여정의 작품 목록 입니다.
수상 및 후보 목록 [ 편집 ]
이 부분의 본문은 이 부분의 본문은 윤여정의 수상 및 후보 목록 입니다.
참고 사항 [ 편집 ]
윤여정의 8살 아래 여동생 윤여순은 LG그룹의 첫 여성 임원이다.[28][29]
각주 [ 편집 ]
윤여정 나이 조영남 위자료 가족 동생 윤여순 파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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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나이 조영남 위자료 가족 동생 윤여순 파친코
배우 윤여정은 경기도 개성시 現 북한 개성시 출생, 1947년 6월 19일생 74세이며 학력은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 중퇴),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윤여정은 3자매 중 장녀로 동생은 뉴욕에서 교직생활을 했다고 하며 윤여정과 8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 윤여순 씨는 LG그룹 첫 여성 임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4년 퇴임 이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로 전업해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이어 전 남편 조영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2명은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큰아들은 조얼, 둘째 아들은 조늘) 큰아들은 컬럼비아 대학교, 작은 아들은 뉴욕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라고 합니다.
윤여정의 어머니는 굉장한 자산가 집의 종손 며느리셨다고 하나 6·25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내려왔다고 하며 아버지는 어머니가 서른셋일 때 폐결핵으로 돌아가시면서 세 딸을 홀로 키워내셨다고 하는데요.
어머니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일을 하며 세 딸을 홀로 키워내셨다고 합니다. 윤여정의 어머니는 향년 96세로 2020년 2월 작고하셨다고 합니다.
데뷔 58년 차인 원로배우 윤여정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대본 암기력과 집중력이 뛰어나기로 소문난 배우라고 하는데요. 어렸을 때에도 웅변이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당시 전국에서 경기여자고등학교 다음가는 명문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해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김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때 김동건이 윤여정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권하였고,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해 TBC 3기 탤런트가 되었으며 데뷔 초기에는 단연과 조연을 하다 1969년 MBC로 이적,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주연급 배우로 올라서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71년 영화계에 진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출연하며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1972년 김기영 감독 영화 ‘충녀’에 연이어 출연하며 배우로서 전성기를 보내게 됩니다.
그러던 중 70년대 음악다방이었던 ‘쎄시봉’에서 서울대학교 대표로 노래하던 조영남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고 하는데요. 당시에 대해 “한국에도 저렇게 노래 잘하는 사람이 있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연인으로 발전한 두 사람은 윤여정이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1974년 결혼식을 올리며 배우 생활을 접고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로 떠나게 됩니다.
영화 ‘충녀’ 결혼 당시 조영남 29세 윤여정 27세
하지만 두 사람은 13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1987년 1월 이혼을 발표했으며 결혼 생활 동안 전 남편이 돈을 벌어 오질 않아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모두 탕진해버려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플로리다에서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아가며 일을 했다고 합니다.
윤여정과 조영남의 이혼 사유는 조영남의 외도였다고 하는데요. 과거 방송된 ‘별별톡쇼’, 풍문으로 들었쇼‘ 등에서 밝히길 윤여정을 미국에 두고 먼저 귀국한 조영남은 밤무대 가수로 활동하며 18세 연하 여대생, 20대 초반의 여성 등 계속된 외도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국 이 사실을 알게 된 윤여정에게 조영남은 “너보다 더 좋은 여자가 생겼다”등의 폭언을 퍼부으며 “그래! 나 바람피웠다! 좀 봐줘라!”라며 “내가 아빠, 남편 노릇 다 할 테니 사랑방 하나만 내줘”라며 같이 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윤여정을 이혼을 선언, 이혼 후 조영남은 외도한 여자에게 찾아갔으며 두 사람은 재혼했다고 하며 이후 이혼했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이혼을 했으며 당시에 대해 “과거 한국에서 이혼은 주홍글씨 같은 것이었다”며 “나는 TV에 나오거나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는데요.
윤여정은 “과거 한국에서 이혼은 주홍글씨 같은 것이었다”며 “나는 TV에 나오거나 일자리를 얻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이혼 당시의 위자료는 과거 ‘황금어장-무릎팍도사’에 출연하여 밝히길 “위자료로 받은 것이 세상에 알려진 것과 많이 다르다. 그 당시 신동아 아파트 전세값이 5500만원이었는데, 500만원은 친정 엄마가 빌려줬다. 아직까지도 엄마는 500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고 솔직하게 털어놨습니다.
이후 두 아들의 양육을 책임지기 위해 단역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한 그녀는 “어떤 역할이라도 맡으려 했고 스타였던 때의 자존심은 무시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윤여정은 두 아들에 대해 “당시 아이들 교육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하기 바빴다. 엄마가 음식을 못 해준 게 가장 미안하다. 나머지는 떳떳하다. 다행히 두 아들은 건강히 잘 자라서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한다”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한편 윤여정의 두 아들은 7살 나이 차이라고 하며 큰 아들(조얼/1975년생)은 콜롬비아대학을 졸업하고 ABC뉴스팀에서 일하다가 현재는 패션브랜드 DKNY 창립자인 도나캐런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며 둘째 아들(조늘)은 뉴욕대를 나와 유니버셜 관련 회사에서 힙합레코드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귀국 후 1985년(김수현 시나리오, 박철수 감독) 영화 ‘어미’에 출연해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었으며 1987년 김수현 작가의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로 안방극장에 복귀하여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과 함께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이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1991)‘사랑이 뭐길래’, (1995)‘목욕탕집 남자들’에 출연하며 대중 연예인의 자리를 잡게 됩니다. 윤여정은 “김수현 작가는 내가 독립할 때까지 도와줬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2000년대 이후 ‘바람난 가족’, ‘꽃피는 봄이 오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황진이‘등에 출연, 2010년 리메이크판 ’하녀‘로 청룡영화상을 끝으로 2010년도 대한민국의 모든 여우조연상을 싹쓸이(10관왕)했다고 합니다.
이후로도 꾸준하게 영화에 출연, 2020년 미국 영화 ‘미나리’에 출연하며 한국 배우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가 되었으며 미국배우조합상(SAG)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이어 2021년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74세의 나이에 대한민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윤여정은 1000억이 투입된 애플TV+ 드라마 ‘파친코’에 ‘선자’역으로 출연한다고 하는데요. 드라마 ‘파친코는 재미교포 이민진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에 고향을 떠나야 했던 조선인 이민지 가족의 이야기를 4대에 걸쳐 다룬다고 합니다.
애플TV+ 드라마 ‘파친코’는 2022년 3월 25일 전세계에 동시 공개한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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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윤여정 프로필, 나이, 키, 몸무게, 학력, 고향, 가족 관계, 혈액형, 데뷔, 소속사
배우 윤여정 프로필
안녕하세요 오늘은 배우 윤여정 프로필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프로필-나이-고향
출생
윤여정은 파평 윤씨 1947년 6월 19일에 출생하였으며, 2021년 기준 현재 만 나이는 74세,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에 해당합니다.
키-몸무게
신체
윤여정의 키는 163cm, 몸무게 43kg에 해당하며, 혈액형은 O형에 해당합니다.
학력
학력
윤여정의 학력을 살펴보면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 중퇴) 까지 현재는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가족관계
가족 관계
윤여정의 가족 관계는 전남편 조영남(1974년 결혼, 1987년 이혼), 여동생 윤여순, 아들 2명 까지 현재는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데뷔-소속사
데뷔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처음 데뷔하였으며, 현재 소속사는 후크 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되어있습니다.
영화배우
상세
윤여정은 대한민국 영화사 최초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수상하였으며, 봉준호 감독과 같이 세계에서 대한민국의 영화를 대표하고 있는 여배우 중 한 명입니다.
배우 윤여정 프로필부터 나이 화제가 되는 이유 ‘뜻밖의 여정’
배우 윤여정 프로필부터 나이 화제가 되는 이유 ‘뜻밖의 여정'(사진=tvN)
배우 윤여정 프로필, 수상, 나이 등을 향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tvN ‘뜻밖의 여정’ 첫 방송이 이틀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나영석 PD가 프로그램에 관련된 다양한 이야기를 직접 전해 눈길을 끈다.
8일 첫 방송하는 ‘뜻밖의 여정(연출:나영석, 신효정)’은 한국인 최초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 조연상을 수상하고,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 시상자로 무대를 오른 윤여정 씨의 오스카 여정을 함께한 프로그램이다. ‘배우 윤여정’의 모습과 ‘꾸밈없는 인간 윤여정’의 모습은 물론, 그간 ‘윤식당’, ‘윤스테이’ 등에서 남다른 케미를 맞춰온 윤여정-이서진의 재회가 첫 방송을 더욱 기대하게 만들고 있다.
아래는 나영석 PD와의 일문일답.
Q. ‘뜻밖의 여정’을 기획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윤여정 선생님과 어느 날 저녁을 먹다가, 아카데미 시상식과 여러 홍보 일정 때문에 미국 LA로 출장 가신다는 얘기를 우연히 듣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같이 가서 선생님의 미국 생활이나, 국내에서와는 좀 다를 것 같은 미국 현지 여러 행사를 소화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담아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어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Q. ‘뜻밖의 여정’으로 제목을 선정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요. 그리고 ‘뜻밖의 여정’을 통해 어떤 모습들을 보여주고 싶은지도 궁금합니다.
– 그렇게 갑자기 저녁 자리를 하다가 기획한 프로그램이라서 ‘뜻밖의 여정’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배우 윤여정의 진짜 모습, 배우를 업으로 삼고 아카데미 수상이라는 위대한 성취를 이루었지만 또 한편으론 ‘그냥 일일뿐이야!’라고 시크하게 외치는 배우 윤여정 뒤에 가려진 진짜 ‘뜻밖의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뜻밖의 여정’이라고 제목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Q. 미국에서의 10박 11일 여정을 함께 했는데, 제작진이 느낀 현장 속 윤여정 배우님의 모습은 어떠셨는지
– 한마디로 할리우드 안에서도 ‘윤여정’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라는 많은 말들을 따르기보다는, 본인이 수십 년간 체득한 대로 일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영어가 잘 안된다며 매일 고민하시지만 그만큼 성실하게 인터뷰를 준비하십니다. ‘파친코’와 같은 우리의 역사를 담은 내용은 잘못 알려지면 안 된다면서 미리 빽빽하게 영어로 답변지를 써가며 다음날 인터뷰를 위해 노력하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의 대본도 본인만의 언어로 위트 있게 다시 고쳐 보내는 모습도 봤습니다. 휘둘리지 않고 나 자신으로 당당하게 사는 점, 본인의 양심에 비추어 거리낌 없이 사는 점 등에 오히려 미국 관계자들도 더 환호하는 것 같았습니다.
배우 윤여정 프로필부터 나이 화제가 되는 이유 ‘뜻밖의 여정'(사진=tvN)
Q. 매니저로 이서진 씨를 섭외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 아무래도 선생님과 여러 예능을 통해 친분을 쌓아 오기도 했고 무엇보다 할리우드의 일하는 방식을 엿보는 일들이 많았기에 영어도 그렇고 미국 생활에 익숙한 이서진 씨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 작품을 준비하며 휴식기 중이라 해서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선생님 일하러 나가시면 거기 모셔다드리고, 일하시는 동안 우리는 LA를 놀러 다니자고 꼬시기도 했습니다.
Q. 윤여정 씨와 이서진 씨의 동행 케미는 어땠나요.
– LA의 풍경과 할리우드에서 멋지게 일하는 선생님의 모습에, 늘 탈주를 꿈꾸는 매니저 이서진의 모습은 덤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과 함께할 때는 ‘뜻밖의 여정’이지만, 선생님이 일하고 계시거나 시간이 남을 때는 늘 탈주를 꿈꾸고 어딘가를 놀러 가거나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습니다. 과거 ‘이서진의 뉴욕뉴욕’을 잇는 본인만의 프로그램 ‘이서진의 라라랜드’를 만들어가는 모습도 많은 기대를 부탁드립니다.
한편, tvN ‘뜻밖의 여정’은 오는 8일 밤 10시 50분 첫 방송된다.
이하 배우 윤여정 프로필
출생
1947. 6. 19. 경기도
소속사
후크엔터테인먼트
가족
동생 윤여순
학력
한양대학교 국문학 중퇴
데뷔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
수상
2021년 금관문화훈장
나이
76세(만 74세)
윤여정 나이 조영남 이혼 사유 아들 가족 동생 학력
윤여정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이며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현재 북한 개성시) 출생입니다. 학력 사항은 이화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이며 가족은 여동생 윤여순과 아들 2명이 있습니다. 현재 소속사는 후크 엔터테인먼트 소속입니다.
과거 가족 어머니 동생
과거 윤여정의 어머니는 굉장한 자산가 집의 종손 며느리였으나 6·25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내려왔다고 하며 윤여정의 아버지는 어머니가 서른셋일 때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윤여정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양호교사로 일을 하며 세 딸을 홀로 키워내셨고, 향년 96세로 2020년 2월 작고하셨다고 합니다.
윤여정의 막내 여동생 윤여순은 LG그룹의 고위 임원으로 첫 여성 임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2014년 퇴임 이후 코칭경영원 파트너 코치로 전업해 활동 중이라고 합니다. 1955년생으로 윤여정의 8살 아래 동생이라고 하며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 출신이고 LG인화원 전무이자 LG 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하였습니다.
윤여정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대본 암기력이 뛰어나고 집중력이 좋은 배우로 알려져있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웅변이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하며 이후 명문학교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하였습니다.
이후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알바로 당시 김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였는데 김동건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권유 받았고, 윤여정은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해 TBC 3기 탤런트로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배우 생활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다고 하네요.
데뷔 활동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를 하였습니다. 데뷔 초기에는 단역, 조연을 했지만 공채합격 3년만에 1969년 MBC로 이적하게 되면서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크게 히트해 곧바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당시 윤여정의 악녀 연기가 너무나도 뛰어나 사람들이 욕을 해대는 바람에 거리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1971년 영화계 진출 직후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주연으로 출연하게 되면서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 역을 맡아 최고의 성취를 거두며 스타덤에 올랐는데요. 윤여정은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였으며 당시 신문에 천재 여배우로 이름을 올릴 정도로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1972년에는 드라마 ‘새엄마’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다시 한번 대히트를 기록하였고, 1970년대 초반은 윤여정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윤여정은 그렇게 인기 절정이었을 때 전남편인 조영남과 결혼을 하게 되면서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로 떠났고, 주부로서 생활하며 배우 생활을 잠시 쉬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결혼 13년 만에 이혼을 하게 되면서 싱글맘으로 다시 돌아와 배우로 복귀하였습니다.
이후 윤여정은 1990년대 드라마 배반의 장미,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간이역,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내가 사는 이유, 꼭지,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열아홉 순정,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수 많은 작품에서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열연을 펼치며 중견 배우로 자리를 굳혔습니다.
2003년에는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고, 이듬해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2년 연속 여우조연상에 후보로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에 참여해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러 상들을 수상한 윤여정은 특히 2017년 대중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 표창을 받기도 했으며 이후 tvN 예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에 출연하여 쿨한 입담과 탁월한 패션센스를 뽐내며 중견 여배우 중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쳤습니다.
2021년에는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해 전형적인 할머니의 모습을 깬 독창적 연기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아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영국 아카데미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기도 했으며 2021년 4월 26일에는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이는 한국 배우로서 후보 지명과 수상 모두 최초라고 하며 윤여정은 미국 전역의 시상식에서 30여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습니다.
최근에는 애플TV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파친코’에 캐스팅 되어 화제를 모았는데요. 드라마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7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한국 이민자 가족의 생애를 그린 드라마로 윤여정은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민을 간 주인공 선자 역을 맡았으며 과연 이번에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결혼 전남편 조영남 자녀
윤여정은 지난 1974년 전남편 조영남과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조영남은 1945년생으로 윤여정과 조영남 두 사람의 나이차는 2살 차이가 납니다. 조영남은 1970년 노래 ‘딜라일라’로 데뷔하였으며 원래 어릴 적부터 가수의 재능외에도 작곡가, 기타리스트, 화가, 작가 등의 재능을 가진 예술가의 피가 흐르고 있는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습니다. 윤여정은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는데 조영남을 보고 바로 그 점에 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인기가 절정일 때 조영남과 결혼 후 배우 생활을 접고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이후 플로리다에서 1975년에 큰 아들 출산 이후 1982년에 둘째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지만 13년의 결혼 생활을 끝으로 1987년 1월 이혼을 발표하게 되면서 싱글맘을 귀국하게 되었는데요.
시간이 흘러 밝혀진 두 사람의 이혼 사유는 조영남의 외도였으며 결혼생활 중 조영남은 젊은 여자를 찾아 외도를 하는가 하면 윤여정에게 못 생겨서 데리고 잘 수 없다며 더 좋은 여자가 생겼다는 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고 합니다. 결국 이런 스트레스로 윤여정은 술과 담배를 시작하게 되었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하네요.
이혼 당시 윤여정은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조영남은 결벽증이 너무 심해서 못 살겠다 싶었다며 자신이 이혼을 당했고, 전 재산을 모두 주고 빈털털이가 되었다며 거짓말을 하고 다녔다고 하는데요.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으며 윤여정은 당장에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고, 게다가 아들 두명을 모두 윤여정이 키워야 하는 상황에서 위자료라고 받았던 것은 당시 신동아 아파트 전세값 5,500만원 뿐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38세였던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퍼블릭스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으며 두 아들을 부양할 생각을 하였고,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한 인터뷰를 통해 밝혀진 바로는 두 사람의 결혼 생활동안 조영남은 바람끼가 다분했고 돈을 한 푼도 벌지 않았으며 결국에는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싸그리 다 탕진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윤여정은 결혼생활 동안 굉장히 헌신적이었고, 두부 구하기가 어려웠던 70-80년대는 미국에서 두부를 좋아하는 조영남을 위해서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윤여정은 지금까지 어느 자리에서건 전 남편 조영남에 대해 비난은 물론 변명조차 한 적이 없어서 대인배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요. 이에 대해 윤여정은 그냥 조영남이 너무 싫어서 언급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조영남은 한 방송을 통해 “윤여정이 입을 열면 나는 사회적으로 매장됐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이혼 후 윤여정은 두 아들로 인해 생활형 연기자로 뛰어들었지만 당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녀들의 배우 생활이 녹록치가 않았는데요. 그럼에도 두 아들의 양육을 책임지기 위해 단역부터 다시 연기를 시작한 윤여정은 당시 어떤 역할이라도 맡기 위해 스타였던 때의 자존심은 무시했다고 합니다.
윤여정은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연기력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해 나갔는데 하지만 경제 사정이 차츰 나아지는 것도 잠시 둘째 아들이 틱 장애를 겪으며 또 다른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둘째 아들은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장애에 걸렸고, 그 원인이 애정결핍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윤여정은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며 정말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다행이도 윤여정은 아들 두 명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냈고, 두 아들 모두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1975년생 큰 아들 조얼은 콜롬비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ABC 방송국의 뉴스팀에서 근무하다가 패션 브랜드 DKNY 창립자인 도나 캐런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작은 아들 조늘은 틱장애를 극복하고 뉴욕 대학교를 졸업한 인재로 음반사 유니버설 산하의 힙합 레코드쪽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조영남은 현재 아들들로부터 제대로 된 아버지 대우도 받지 못하고 양딸을 입양하여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윤여정 <나이 집안 과거 프로필 전남편 조영남 이혼 아들 근황>
‘유퀴즈 온 더 블럭’ 배우 윤여정
배우 윤여정이 3월 23일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합니다.
앞서 윤여정은 최근 한국어, 일본어, 영어 3개 언어로 제작된 글로벌 프로젝트 애플TV 플러스 새 오리지널 시리즈 파친코에 캐스팅 됐는데요, 이후 진행된 파친코 화상 인터뷰에서 캐스팅 과정을 낱낱이 밝혀 눈길을 끌었습니다.
파친코는 일제강점기를 거친 70년의 세월을 관통하며 한국 이민자 가족의 생애를 그린 드라마로, 윤여정은 일제강점기 고국을 떠나 일본으로 이민 간 주인공 선자 역을 맡았습니다.
윤여정 : “어머니한테서 그 시절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에 (소설을) 읽고 싶지 않았다. 대본이 들어와 읽고 나서는 굉장히 감명받았고, 조사를 얼마나 끔찍하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이틀 만에 다 읽었다.”
윤여정 : ‘그동안은 대본이 들어오면 당연히 캐스팅된 거라고 생각했다. 역할을 잘 할 수 있겠다 싶어 이야기 했더니 나더러 오디션을 보라고 하더라. 애플TV 플러스의 시스템이 그렇다더라.”
윤여정 : “그래서 처음에 오디션은 좀 그렇다고 말했다. 윤여정이 오디션 보고 떨어졌다는 소식이 한국에 전해지면 50년 연기 인생이 무엇이 될까 걱정했었다.”
실제로 오디션을 봐야 한다는 이야기에 윤여정은 대본을 현관 앞에 내다버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윤여정 : “제가 영어가 능숙하지 않다보니 말을 좀 세게하는 경향이 있다. 또 성격상 결정도 빠른 편이다. 오디션 소리에 받았던 스크립트 8개를 현관 앞에 내다 버렸다. 그런데 인아(이인아 PD)가 다시 주워와서 하게됐다.”
껼국 윤여정은 제작자 앞에서 연기를 선보였고, 오디션을 통해 선자 역에 캐스팅됐습니다.
미국 콘텐츠 제작 관행은 한국과 큰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캐스팅 방식 또한 그러한데, 아무리 오랜 경력을 지닌 배우라도 작품에 얼마나 적합한 지 알아보는 오디션 과정은 일종의 관행으로 윤여정은 이 과정의 의미를 이해하고 수용해 결국 작품에 합류할 수 있게 됐습니다.
윤여정(배우) 프로필 나이 고향 가족 학력 소속사
배우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 76세입니다. 윤여정 고향은 경기도 개성시(현재 북한 개성시)이며 가족으로는 여동생 윤여순과 아들 2명이 있습니다. 윤여정 학력은 이화여자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여정의 현재 소속사는 후크 엔터테인먼트 소속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윤여정의 여동생은 LG그룹의 고위 임원인 윤여순으로, 윤여정의 8살 아래 동생입니다. 1955년생으로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 출신이고 LG인화원 전무이자, LG 아트센터 대표를 역임하고 있습니다.
윤여정(배우) 과거 배우가 된 계기
윤여정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대본 암기력이 뛰어나며 집중력이 좋은 것으로 소문난 배우로, 어렸을 때부터 웅변이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한 윤여정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알바로 당시 김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그때 김동건이 윤여정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권하였고,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해 TBC 3기 탤런트가 됩니다. 그리고 배우 생활을 위해 대학을 중퇴합니다.
윤여정은 그렇게 배우가 된 것에 대해 “우리 엄마한테는 내가 스타였다. 그래서 남의 눈에 띄는 일을 하면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했는데, 당시 탤런트는 떠오르는 신종 직업으로, 서울대 출신의 이순재, 이작훈이 탤런트로 활동하는 것을 보고 창피한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합니다.
윤여정(배우) 데뷔 작품 활동
이후 윤여정은 TBC 시절에는 단역 조연을 했지만 공채합격 3년만에 1969년 MBC로 이적, 이후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크게 히트해 곧바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서게 됩니다.
당시 윤여정의 악녀 연기가 아주 뛰어나 사람들이 “저기 장희빈 나쁜 X 간다!!”고 욕을 해대는 통에 거리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정도였다고 하네요.
또한 윤여정은 1971년 영화계 진출 직후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주연으로 출연, 최고의 성취를 거두게 됩니다.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로 출연해서 스타덤에 올랐는데, 당시 신문에서도 천재 여배우 나왔다고 대서특필할 정도였습니다.
윤여정은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또 1972년 연이어 충녀에 출연하면서 젊은 전성기를 화려하게 불태웠고 역시 절륜한 연기를 선보이며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윤여정은 그렇게 인기 절정이었을 때 전남편인 조영남과 결혼해 배우 생활을 잠시 쉬게 됩니다. 윤여정은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에서 주부로서 13년을 살다가 결국 이혼하고 싱글맘으로 다시 돌아와 배우로 복귀하게 됩니다.
이후 윤여정은 1990년대 드라마 배반의 장미, 사랑과 야망, 사랑이 뭐길래, 목욕탕집 남자들, 간이역, 내가 사는 이유,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내가 사는 이유, 거짓말, 꼭지, 비단향꽃무, 네 멋대로 해라, 굳세어라 금순아, 열아홉 순정, 그들이 사는 세상 등 여러 편의 작품에서 할머니 역부터 요부 역까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은 열연을 펼치며 중견 배우로 자리를 굳힙니다.
그리고 이후 영화 바람난 가족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과 부산영화평론가협회상 여우조연상을 수상, 이듬해 출연한 꽃피는 봄이 오면으로 대한민국 영화대상에 2년 연속 여우조연상에 후보 지명되는 쾌거를 이루게 됩니다.
이후 윤여정은 드라마와 영화를 넘나들며 수많은 작품에 참여, 수많은 시상식에서 여러 상들을 수상, 특히 2017년에는 대중문화예술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에서 은관문화훈장 표창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때부터 윤여정은 tvN 에능 꽃보다 누나, 윤식당 등에 출연해 쿨한 입담과 탁월한 패션센스를 뽐내며 중견 여배우 중에서 독보적인 활약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윤여정(배우) ‘미나리’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그러다가 2021년 윤여정은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에서 할머니 순자 역을 연기해 전형적 할머니를 깬 독창적 연기로 비평가들의 큰 호평을 받아 미국 전역의 시상식에서 30여개의 트로피를 거머쥐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 배우 조합상에서 영화부문 최우수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영국 아카데미와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오른 최초의 한국 배우가 되기도 했으며, 이후 2021년 4월 26일 제 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뤄냈습니다. 한국 배우로서 후보 지명과 수상 모두 최초라고 합니다.
윤여정은 이후 각종 매스컴을 통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바쁜 일정을 이어갔는데요, 최근 애플TV 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인 파친코에 캐스팅됐다고 합니다. 과연 이번에는 어떤 연기를 보여줄지 기대가 되네요.
윤여정(배우) 결혼 전남편 조영남 나이차
윤여정은 전남편 조영남과 1974년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윤여정과 조영남 두 사람의 나이차는 윤여정은 1947년생인 76세이고, 조영남은 1945년생인 78세로 2살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윤여정(배우) 조영남 결혼스토리
윤여정은 전남편 조영남을 인기 절정일 때 만나 사랑에 빠집니다.
조영남은 1970년 노래 딜라일라로 데뷔, 원래 어릴 적부터 가수의 재능외에도 작곡가, 기타리스트, 화가, 작가 등의 재능을 가진, 한 마디로 예술가의 피가 전신에 흐르고 있었던 자유분방한 사람이었습니다. 윤여정은 바로 그 점에 반하게 됩니다.
윤여정 :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첫 눈에 반하긴 힘든 상이라 같이 어울려 다니다보니 자연스레 연인이 됐다.”
윤여정은 그렇게 1972년 인기절정일 때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이민을 가게 됩니다. 이후 플로리다에서 아들 둘(큰 아들 1975년생, 둘째 아들 1982년생)을 낳고 주부로서 13년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윤여정은 조영남과 이혼을 하고 싱글맘을 귀국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한 방송(무릎팎도사)에서 이혼 후 싱글맘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에 대해 밝히기도 했습니다.
윤여정(배우) 조영남과 이혼 사유(이유)
결혼생활 중 조영남은 젊은 여자를 찾아 외도를 하는가 하면 윤여정에게 “네가 못 생겨서 데리고 잘 수 없다” “너보다 더 좋은 여자가 생겼다.”는 등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도 서슴치 않았다고 하는데요, 이에 결국 이런 스트레스로 윤여정은 술과 담배를 시작했고 그녀의 예쁜 얼굴은 망가지고 맙니다.
그리고 1983년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윤여정은 결국 조영남과 이혼을 하게 됩니다. 이혼 사유는 조영남의 외도였지만 윤여정은 여기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조영남이 거짓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조영남 : “결벽증이 너무 심해서 못 살겠다 싶었다. 한 마디로 내가 이혼당한거다. 내 전 재산을 모두 줬다. 난 빈털털이다.”
하지만 이는 모두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윤여정은 당장에 생계가 곤란할 정도로 어려운 처지였으니까요. 게다가 아들 두명을 모두 윤여정이 키워야 하는 그런 상황에서 위자료라고 받았던 것은 신동아 아파트 전세값 5,500만원 뿐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따르면 당시 38세였던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퍼블릭스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아 두 아들을 부양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이후 또 다른 한 인터뷰(미국 NBC)에 따르면 결혼 생활동안 조영남은 바람끼가 다분했고 돈을 한 푼도 안 벌었으며, 결국엔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싸그리 다 탕진했다고 합니다.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윤여정은 결혼생활 동안 굉장히 헌신적이었다고 합니다. 두부 구하기가 어려웠던 70-80년대는 미국에서 두부를 좋아하는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을 정도라고 하네요.
윤여정 조영남 두 사람에 대한 이런 이야기들로 인해 가수 조영남에 대한 인식이 안좋은 분들이 많은데요, 하지만 그럼에도 지금까지 윤여정이 어느 자리에서건 조영남을 험담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윤여정이 대인배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요, 하지만 윤여정은 그냥 조영남이 너무 싫어 언급도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합니다. 실제로 조영남도 무릎팎도사에서 “윤여정이 입을 열었다면 나는 사회적으로 매장됐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습니다.
윤여정(배우) 이혼 이후 연기자로 뛰어들지만
아무튼 이혼 이후 윤여정은 결국 두 아들로 인해 생활형 연기자로 뛰어들었지만 상황은 녹록치가 않았습니다.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녀들의 배우 생활이 쉽지 않았던 것인데요, 반면에 이혼남인 조영남의 이미지는 좋았습니다.
본인이 언론 플레이를 한 것도 있고, 남자에게는 관대한 한국 사회의 특징이 작용한 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윤여정은 전 남편에 대한 비난은 물론이고 자신에 대한 변명도 하지 않았고, 그저 묵묵하게 자신의 연기력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해 나갑니다.
하지만 경제 사정이 차츰 나아지는 것도 잠시, 또 다른 시련이 윤여정을 찾아옵니다. 바로 둘째 아들의 틱 장애였습니다. 둘째 아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이 장애에 걸린 것이고, 그 원인은 애정결핍 때문이었습니다.
윤여정(배우) 둘째 아들 문제로
윤여정 : “초등학생이었던 둘째 아들에게 틱장애가 왔는데, 알고 보니 애정 결핍 때문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정말 많이 울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윤여정은 아들 두 명을 모두 훌륭하게 키워냅니다. 큰 아들은 콜롬비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ABC 방송국의 뉴스팀에서 근무하다가 패션 브랜드 DKNY 창립자인 도나 캐런의 회사로 옮겼고, 작은 아들은 틱장애를 극복하고 뉴욕 대학교를 나와서 음반사 유니버설 산하의 힙합 레코드쪽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여정의 두 아들은 둘 다 일반인이어서 이름과 사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윤여정이 이렇게 힘들게 자식들을 키우는 와중에도 조영남은 별로 도움을 주지 않았고, 나중에야 아들이 직접 아버지를 찾아가서 대학 등록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조영남은 현재 아들들로부터 제대로 된 아버지 대우도 받지 못하고 양딸인 은지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윤여정(배우)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이후 조영남의 반응
한편, 조영남은 윤여정이 지난해 영화 미나리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인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배우로 인정받으며 큰 화제가 된 이후, 한 방송(아침마당 화요초대석)에 출연해 다음과 같이 말하기도 했습니다.
조영남 : “소감은 없다. 아카데미상 주는 것도 아니고 소감은 필요 없다. 나이답게 늙고 있다. 내가 바람을 피워 이혼한 것이다. 그때 일이 이해가 안 된다. 왜 애들을 두고 바람을 피웠는지 이해가 안 된다. 머리가 나쁜 거다. 미안한 마음이 있다.”
이어 조영남은 윤여정과 이혼 후 두 번째 결혼에 대해서는 “그때는 잠깐이었다. 동거 비슷하게 했다. 자연스럽게 헤어졌다. 그 친구는 애를 원했고, 나는 싫다고 했다.”고 했습니다.
또 윤여정이 나오는 영화나 TV 프로그램을 찾아보냐는 질문에 “본다. 영화 미나리도 나온 첫날 봤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조영남은 인생에서 가장 잘못한 일을 묻자 “애들 두고 집 나온 것”이라며 답하기도 했습니다.
유인경 : “(조영남이 윤여정이 나온 작품을 다 본다며)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 시사회도 가더라. (윤여정이) 나오는 예능도 다 볼 거다. 이미 전전 부인인데 그렇게 자랑을 한다. 진짜 똑똑한 사람이다. 재주가 많다며 재킷이나 셔츠도 다 만들어줬다고 했다”
유인경 : “이장희와 윤여정이 초등학교 동창이라고 한다. 조영남이 워낙 미련을 못 끊고 있으니 이장희가 꽃을 보내 보라고 했다더라. 조영남이 꽃을 보냈는데, 두 번째인가 세 번째 간 날 윤여정이 한 버 더 갖고 오면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다더라. 남자들이 너무 모른다. 남편이나 전남편이 보낸 꽃다발 안 좋아한다.”
이에 MC들은 조영남에게 “(윤여정이) 고생했지만 지금 행복한 삶을 꾸려나가는 게 행복하시지 않냐”며 “윤여정을 응원하냐”고 물었더니 이에 조영남은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여 눈길을 끌었습니다.
이상 배우 윤여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 추천 글 -> 조영남 <프로필 나이 과거 윤여정, 두번째 아내 이혼 자녀 딸 재산 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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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프로필 나이 과거 가족
윤여정 프로필 나이 과거 조영남 아들
윤여정은 오늘 열리는 ‘제 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 후보로 올라와 있는 상태입니다.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에서 ‘순자’역으로 출연해 좋은 연기를 보이며 이미 전세계 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한 상태에요. 오늘은 배우 윤여정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하는데 윤여정 프로필 나이 과거 전남편 조영남 이혼이유 자녀 아들 고향 학력 영어 미나리 수상 패션 키 등 다양한 정보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윤여정 프로필 정보
윤여정은 1947년 6월 19일생으로 올해 나이는 75세 입니다. 고향은 당시 경기도 개성부 출생이고 학력사항 이화여자고등학교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학사 중퇴라고 하네요. 가족으로는 여동생 윤여순과 자녀 아들 2명이 있으며 종교는 무교라고 합니다.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으며 소속사는 ‘후크엔터테인먼트’ 입니다.
▶윤여정 과거
윤여정은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으며 이후 1970년 MBC로 둥지를 옮겼습니다. 1971년 영화 ‘화녀’가 히트하며 얼굴을 알렸고 MBC 일일연속사극 ‘장희빈’에서 ‘장희빈’역을 맡아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고 하네요. 1972년에는 드라마 ‘새엄마’에서 여주인공을 맡아 대히트를 기록하며 1970년대 초반은 윤여정의 시대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의 인기였으며 어린 나이임에도 뛰어난 연기력으로 천재 여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였습니다. 이후로도 영화와 드라마를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으며 올해 데뷔 56년차 원로 배우이자 현재도 주,조연, 상업영화, 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죠.
윤여정 여우조연상 영상 보러가기
▶윤여정 가족 조영남 결혼
윤여정의 가족을 살펴보면 여동생은 윤여순으로 LG그룹 첫 여성 고위 임원 이자 전 LG아트센터 대표 입니다. 1955년생으로 윤여정의 8살 아래 동생이며 아이오와주립대학교 대학원 교육공학 박사 출신이자 LG 인화원 전무까지 역임하였다고 하네요. 윤여정은 배우로 최고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던 중 한 남자를 만나며 사랑에 빠지게 되었죠. 그 사람이 바로 가수 조영남인데 예술가의 피가 흐르는 자유분방한 조영남의 모습을 반하게 되었다고 하네요. 원래부터 윤여정은 재주가 없어 노래를 잘하는 사람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다양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조영남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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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정 전남편 조영남 이혼이유
인기 절정이던 1972년 윤여정은 조영남과 결혼하고 가정 생활에 충실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죠. 주위에서는 말렸지만 윤여정은 조영남을 따르게 되었고 미국에서 1975년, 1982년 두 아들을 출산하였어요. 하지만 조여정은 평온한 가정을 버리고 젊은 여자와 외도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윤여정에게 “네가 못 생겨서 데리고 잘 수 없다”는 말도 서슴치 않고 했다고 하네요. 결국 윤여정은 스트레스로 인해 술과 담배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1983년 한국으로 귀국한 뒤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윤여정은 이혼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지만 조영남은 오히려 거짓말을 했고 양육도 윤여정에게 넘긴 채 위자료 또한 별로 주지 않았다고 하는군요.
윤여정은 이혼 이후 생활형 연기자로 복귀했지만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에서 이혼녀로써 배우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전남편에 대한 비난도 하지 않은체 오직 자신의 연기력만으로 모든 난관을 돌파하게 되었습니다. 윤여정은 두 아들들을 모두 훌륭하게 키웠고 미국에서 좋은 회사를 다니고 있다고 하는군요. 윤여정은 최근 영화와 드라마 뿐만 아니라 예능에도 출연하며 좋은 모습과 뛰어난 영어실력까지 보여주며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게 될지, 꼭 수상하게 되기를 응원해 보겠습니다!
윤여정 나이 데뷔 작품 결혼 이혼 자녀 프로필 – 전 남편 조영남
윤여정 나이 데뷔 작품 결혼 이혼 자녀 프로필 – 전 남편 조영남
윤여정 프로필
윤여정
尹汝貞 | Yuh-Jung Youn
출생
1947년 6월 19일 (74세)
경기도 개성시
국적
대한민국
본관
파평 윤씨
거주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평창동
학력
이화여자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 / 중퇴)
여동생 윤여순
장남 조얼(1975년생), 차남 조늘(1982년생)
종교
무종교
데뷔
1966년 TBC 3기 공채 탤런트
훈장
금관문화훈장(2021), 은관문화훈장(2017)
대한민국의 영화배우이자 탤런트.
윤여정 연기
“나는 살기 위해서, 살아가기 위해서 목숨 걸고 한 거였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엔 변함이 없어. 배우는 목숨 걸고 안 하면 안 돼. 훌륭한 남편 두고 천천히 놀면서, 그래 이 역할은 내가 해 주지, 그러면 안 된다고. 배우가 편하면 보는 사람은 기분 나쁜 연기가 된다고, 한 신 한 신 떨림이 없는 연기는 죽어 있는 거라고.”
윤여정의 40년 어록
74세의 원로배우로 데뷔 56년차이다. 2022년 현재까지도 주연/조연, 상업영화/독립영화를 가리지 않고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는 여배우들 중에서도 특출하게 필모의 다양성이 돋보이는 편으로, 파격적일 만큼 독특한 캐릭터를 여럿 맡아 완벽하게 소화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체로 까다롭고 엄격하고 보수적인 시어머니 포지션의 배역이나 잔소리 잘하고 무척이나 고집 센 아주머니, 할머니 정도의 이미지가 널리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영화에서는 돈의 맛에서 같은 카리스마 있는 역할부터 가루지기에서 같은 미묘한 색기가 있는 역할까지 다양한 연기를 보여준다. 손자 손녀를 끔찍이 아끼는 다정한 할머니 역할부터 돈을 받고 노인들에게 성을 파는 박카스 할머니까지 대단히 넓은 스펙트럼을 가졌다.
전면에 나서지 않는 배역이어도 극의 흐름을 만들어 나가는, 기술적으로 상당히 뛰어난 완급조절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는 초기부터 자신만의 리얼리즘적인 방향성을 구상하고 연구한 결과물이다. 신인시절 과한 동작과 분장 등으로 극대화되고 실제와 유리된 연기를 선보이는 기성 배우들의 연기에 강한 반감이 들었다고 한다.
이런 그녀의 연기력은 해외서도 인정받아 아시아 배우 최초로 미국 영화배우조합상 여우조연상과 영국 아카데미상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대한민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상(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연기자로서 독보적인 입지와 넓은 스펙트럼, 독창적 정체성을 확립하여 세계적인 명배우, 대배우의 반열에 올랐다.
윤여정 인터뷰
윤여정 생애 작품 활동
젊은 시절
윤여정은 배우들 사이에서도 대본 암기력이 뛰어나며, 집중력이 좋은 것으로 소문난 배우인데, 어렸을 때에도 웅변이나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상을 휩쓸었다고 한다. 이화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국문과에 진학한 윤여정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한 알바로 당시 김동건이 진행하던 프로그램에서 도와주는 도우미 역할을 했다. 그때 김동건이 윤여정에게 TBC 탤런트 공채 시험을 보라고 권하였고, 1966년 TBC 탤런트 공채에 응시하여 합격해 TBC 3기 탤런트가 되었다. 그리고 배우 생활을 위해 대학을 중퇴하였다. 배우가 된 것에 대해 윤여정은 “우리 엄마한테는 내가 스타였다. 그래서 남의 눈에 띄는 일을 하면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싶었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당시 탤런트는 떠오르는 신종 직업이었는데, 서울대 출신의 이순재, 이낙훈이 탤런트로 활동 하는 것을 보고 창피한 직업은 아니라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고 한다.
윤여정은 신인 때부터 종횡무진의 활약을 펼친 배우였다. TBC시절에는 단역 조연을 했지만 공채합격 3년만에 1969년 MBC로 이적하고 1971년 MBC 드라마 장희빈에서 장희빈 역을 맡으며 크게 히트해 곧바로 주연급 배우로 올라선 것. 윤여정의 악녀 연기가 아주 뛰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이 “저기 장희빈 나쁜 X 간다!!”고 욕을 해대는 통에 거리를 제대로 돌아다니지 못했을 정도라고.
1971년 영화계 진출 직후 거장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화녀’에 주연으로 출연하며 최고의 성취를 거두게 된다. 주인집 남자를 유혹하는 가정부로 출연해서 스타덤에 올랐는데, 당시 신문에서도 천재 여배우 나왔다고 대서특필할 정도. 윤여정은 이 작품을 통해 대종상 신인상과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동시에 수상하며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또 1972년 연이어 ‘충녀’에 출연하면서 젊은 전성기를 화려하게 불태웠고 역시 절륜한 연기를 선보여 여배우 이화시와 함께 이른바 ‘김기영 감독의 페르소나’로 불리게 된다.
김기영 감독과는 재미난 일화들이 많은데, 김기영 감독 영화가 대개 그렇듯 윤여정은 <화녀>에서 쥐를 맨손으로 잡는 연기를 하는 등 고생을 많이 한다. 그래서 이 감독과는 다시는 작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공교롭게도 다음 시리즈인 ‘충녀’에도 또 나오게 되었다. 원래 김기영 감독은 전형적인 미인 여배우보단 좀 특이하고 퇴폐적인 느낌의 여배우를 선호했던지라, 윤여정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가 미국으로 떠나고 난 후에도 그녀에게 ‘내 작품에 출연해달라는 건 아니고, 미스 윤이 살던 집 값이 내렸으니 한국에 한 번 와봐요.’라는 식으로 편지를 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또한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을 ‘내 말을 이해한 유일한 배우’라고 칭했을 정도이니, 그녀를 얼마나 아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심지어 당시 윤여정은 드라마 출연을 하면 영화보다 돈을 많이 받을 때였고, 드라마 ‘장희빈’ 덕분에 인기도 있어서 영화를 할 생각이 별로 없었지만, 김기영 감독이 출연료도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이던 신성일이 받는 만큼 두둑히 챙겨 주고, 여러모로 많이 배려해주었던 덕분에 함께 3편이나 하게 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자신과 끈질기게 대화하며 영화 속 자신의 캐릭터 형성을 위해 연구하는 등 그의 열의가 당시에는 부담스러웠지만, 지금은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한다. 자신에게 늘 존댓말을 사용했던 점이 매우 인상깊었던 점 중 하나라고. 김기영 감독을 다룬 다큐인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에 의하면, 윤여정은 김기영 감독과 일한 이후로는 다른 감독들의 작품에는 만족을 못 했다고 한다. 실제 출연료 많이 준다고 해서 다른 영화를 해보니 자연히 김기영 감독과 비교를 하게 되었고 그 후 영화를 좀 가려서 찍게 되더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또한 김기영 감독은 당시 윤여정이 TV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던 기존의 생기발랄한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연기를 이끌어 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하루는 윤여정이 김기영 감독과의 영화 촬영이 너무나도 고된 나머지 김 감독에게 ‘자신을 왜 캐스팅했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김 감독이 낄낄 웃으며 “청승맞아 보여서”라고 답했다고 한다. 윤여정은 그 당시엔 어이가 없었는데, 나중에 슬픈 역을 맡고 보니 “내가 정말 청승맞아 보이더라”고 고백하기도. 또한 김기영 감독은 윤여정에게 “알렉 기네스 같은 배우가 되라”고 덕담을 하기도 했는데, 윤여정은 당시엔 그 말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훗날 영화 ‘인도로 가는 길’에서 알렉 기네스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하는 걸 보고 김기영 감독의 조언을 지키는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이후 윤여정은 2021년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소감에서도 김기영을 천재적인 감독이자 자신의 첫 감독이었다며 그가 살아있었다면 이 수상을 무척 기뻐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인터뷰에 따르면 20대 시절만 해도 연기 생활에는 큰 애착이 없었다고 한다. 될 수 있으면 빨리 이 판을 떠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기에 당시 여배우면 다들 한 번씩은 찍던 수영복 화보 같은 것도 찍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데뷔할 때부터 배우로 대성할 싹수가 보였던 셈인데, 중간에 결혼으로 인해 배우 생활을 잠시 쉬기 전까지 배우로서의 커리어에 큰 슬럼프 한 번 없었을 정도로 꾸준한 배우이기도 하다. 다만, 결혼 생활에 있어서는 한 번의 이혼을 겪기도 했는데 조영남과 결혼 후 미국 플로리다의 트리니티 신학대학교로 유학길에 오른 조영남을 따라 플로리다에서 주부로서 13년을 살다가 결국 이혼하고 싱글맘으로 대한민국에 돌아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후 조영남도 출연해 입장을 밝혔다. 당시 38세였던 윤여정은 플로리다의 Publix 식료품점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최저 임금 2.75달러를 받아 두 아들을 부양할 생각을 했다면서 언어 장벽과 한국에서의 낙인의 무게 때문에 계산원으로 일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결혼생활 동안 조영남은 바람끼가 다분했고, 돈을 한 푼도 안 벌었으며, 결국엔 윤여정이 모아둔 돈을 싸그리 다 탕진해버렸다. 그래서 윤여정은 배우 생활을 재개한 이후 두 아들과 자신을 지키려고 온갖 작품에 뛰어든다. 본인의 표현에 의하면 “쌀독에 쌀이 있던 때보다 떨어졌던 때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래도 결혼생활 동안 윤여정은 굉장히 헌신적이었다. 70, 80년대는 미국에서 두부 구하기가 어려웠던 시절이었는데, 두부를 좋아하는 조영남을 위해 직접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었을 정도.
이 시절의 일화를 알고 있는 중장년층이 나름 한 시대를 풍미한 가수인 조영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이유가 바로 이것인데, 심지어는 인간 쓰레기로 취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럼에도 지금까지도 어느 자리에서건 조영남을 험담하지 않아서 어마어마한 대인배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냥 조영남을 너무 싫어해서 언급도 하고 싶어하지 않을 뿐이다. 실제로 조영남도 무릎팍도사에서 “윤여정이 입을 열었다면 나는 사회적으로 매장됐을 것.”이라고 인정한 바 있으며, 현재까지 공개되어 조영남 본인이 시인한 일화만 해도 이미 충분히 인간 쓰레기로 단단히 찍힐 마당이다.
당시 윤여정과 이혼하면서 “네가 너무 못생겨서 같이 살 수가 없다.”는 식의 막말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조영남 자신의 얼굴 꼴을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많은 사람들이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윤여정은 젊을 때부터 외모를 검증받은 배우였고, 무릎팍도사에서 이장희도 발랄하고 당찬 성격과 미모 덕에 모든 세시봉 멤버가 윤여정을 좋아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윤여정이 일일이 다 까발렸었다면 조영남의 이미지는 회생불능이 되었을 것이다.
귀국 이후 김수현이 시나리오를 쓴 작품이자, 그녀의 주연작인 박철수 감독의 작품 <어미>(1985년작)에서 인신매매로 끌려간 딸을 구출했지만 정신적 충격으로 자살한 딸을 대신해 자신의 딸을 그렇게 만든 인신매매범들을 하나씩 처단하는 엄마로 나와 살기어린 연기로 관객들에게 큰 충격을 준 작품이다. 특히 인신매매범 한 명을 차에 태우고 가는 도중 ‘니 여동생도 그 동네에 창녀로 팔아먹었니?’ 하며 얼굴에 염산을 끼얹고 담배를 피우며 운전하는 장면은 정말 인상적이다. 오랜만의 복귀작으로 당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며 유니크한 그녀만의 연기적 세계관을 설립시키는 데에 상당한 기반이 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후일 이렇게 강렬한 감성을 지향하는 숱한 영화계 거장들이 극찬을 보내기도 하였다.
이후 1987년에 김수현 작가의 MBC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안방극장에 복귀하여 기록적인 시청률을 기록, 큰 인기를 얻었다. 1991년 사랑이 뭐길래와 1995년 목욕탕집 남자들로 또다시 김수현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대중 연예인의 입지를 다시 굳히게 되었다.
윤여정 언론
21세기 충무로의 대모
그녀가 본격적으로 복귀하여 스크린의 거물로 자리잡게 된 것은 2000년대 이후의 일이었는데, 임상수 감독이 연출한 바람난 가족이 그 신호탄이었다. 시한부 남편을 두고 자신의 성욕을 감추지 않는 문소리의 어머니 홍병한 역할로 출연. 당시 캐릭터성의 강렬함 탓에 시나리오를 보는 배우들마다 진절머리를 쳤다고 하는데 윤여정의 경우 ‘집 인테리어를 바꿀 때가 되어 하겠다’고 했다고. 조연으로 극의 장력을 뒤흔드는 그녀의 포지션이 가장 잘 살아난 작품 중 하나로 비평적으로도 크게 성공했다.
이 때의 인연으로 윤여정은 이후 임상수 감독의 전 필모그래피에 참여하게 되어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영화의 문을 열고 닫는 키로서 ‘철없는 엄마’ 역을 맡아 등장하고 오래된 정원에서는 남주인공 현우의 어머니로 함께하게 된다.
최민식 주연의 꽃피는 봄이 오면에도 어머니 역할로 출연, 인자하고 안정된 연기력을 선보인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는 여주인공의 고모인 모니카 수녀 역으로 출연해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예상을 뛰어넘는 200만 관객을 모으며 좋은 흥행력을 달성하며 노련한 중견배우로서의 미학을 잘 펼쳤다.
2007년의 황진이, 2008년의 가루지기에서도 ‘할멈’이라는 공통된 이름의 역할을 연이어 맡으며 작품을 준수하게 뒷받침했다.
배역의 인물을 출연자들에서 그대로 따와 높은 작품성을 선보인 이재용 감독의 여배우들에서 60대 여배우로 출연해 그야말로 극의 단단한 구심점이자 축이 되어 유려한 멋과 맛을 선보인다. 2000년대 가장 인상적인 시네마 관련 국산 영화라는 좋은 평을 들었으며 역대급 앙상블을 선봉에서 지휘하는 연륜을 우아하게 보여준다.
2010년에는 홍상수 감독과 처음으로 협업하며 하하하에 김상경의 어머니로 출연했다. 등장인물 간의 균형을 맞추는 포인트 있는 역할로, 작가의 색채가 진솔하게 담긴 연기를 보여주었다. 이 작품으로 칸 영화제에 진출했으며 홍상수 필모그래피의 전환기를 함께한 배우가 되었다.
황금 물고기에서는 이태곤의 계략에 말려들어 정신병원에 감금당하기도 하는 등 고생하는 역할도 했는데 이 때 연기가 대단히 사실적이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그리고 곧이어 내 마음이 들리니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 역을 맡아 브라운관을 장악하여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훔쳤다.
전도연이 주연한 임상수 감독의 2010년 리메이크판 하녀(2010)에도 출연했다. 보모 겸 하녀로 새로 들어오게 되는 전도연의 상사 역할로 나와 극을 사로잡았다. 이 영화로 윤여정은 청룡영화상을 끝으로 2010년도 대한민국의 모든 여우조연상을 싹쓸이했으며 이는 무려 10관왕에 달한다고 한다. 대한민국 영화제 기록상 전무후무한 수상기록이다. 이로서 임 감독 영화에 빠져서는 안 될 펀치라인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이 시기가 21세기 배우 윤여정의 정체성이 온전히 옹립된 시기로 많이 평가받는다. 참고로 상술한 하하하와 함께 칸 영화제에 진출했다.(!) 또 한 번 유례없는 부흥기를 가진 2010년의 윤여정을 상징하는 대목.
2011년 <푸른소금>에서는 청부살인 집단의 대모로 등장하여 실수한 부하에게 공포스러운 러시안 룰렛을 시키고 헤드샷을 날려버리는 후덜덜한 포스를 보여주며 또 다른 부류의 새로운 캐릭터를 창조해 표현했다.
2012년 넝쿨째 굴러온 당신에서는 30년 전 잃어버린 아들을 찾게 되는 어머니 ‘엄청애’ 역을 맡았는데, 긴 세월 기른 정이 없다보니 반가움에도 서먹한 아들과 바른 말 잘하는 며느리와의 불편한 고부관계를 보여주며 전형적인 시어머니 연기를 펼친다. 귀남이를 잃어버린 범인이 동서란 걸 알았을 때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연기는 가히 압권. 51회 참조. 같은 해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대비 마마로 출연하여, 외유내강의 한국적 어머니상을 흠 잡을 곳 없이 연기하였다.
또한 홍상수 감독과 다시 호흡을 맞춰 다른 나라에서에서 팬션에 머물며 보증을 선 언니를 찾아온 정유미의 어머니 역할로 나와 극의 시작을 열었으며, 이자벨 위페르, 도올 김용옥과 동시에 연기합을 맞추는 전무후무한 역할을 진솔하게 소화하였다. 이 역시 평가가 좋아 두 작품을 배출했던 2010년에 이어 2년만에 칸 영화제로 향했다.
또한 다른나라에서 촬영 도중 함께 찍은 홍상수 감독의 단편 리스트에도 출연했다. 장편 작품의 스핀오프 꼴인데 완성도는 마찬가지로 매우 높다.
같은 해 임상수 감독과도 다시 한 번 작업을 같이 하여 재벌가의 탐욕을 다루는 극 돈의 맛에 주연으로 출연한다. 작품성은 상당히 호불호가 있었지만 연기만큼은 왜 윤여정인지 절절히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라는 호평의 일색이다. 돈과 색에 미친 추악한 노파라는 악인을 힘을 뺀 강렬한 색으로 한붓 한붓 채워나가 상술한 직전의 드라마와 판이하게 상반된 역할을 완벽하게 채워낸 것. 이 작품 역시 칸 영화제에 진출하며 2년 간격으로 칸에 두 작품을 출품한(!)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영광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2013년에는 tvN의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 출연하여 난생 처음 예능에 도전. 스키니진을 소화하는 패션감각에 스마트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한편으로 끝없이 문제를 일으키며 트러블 메이커로의 모습도 보여주며 평소의 완벽한 이미지와는 다른 다각도의 모습을 보여주어 화제가 되었다.
이후 같은 해 박해일, 공효진 등과 함께 고령화 가족에 출연하여 바람난 가족 이후 10년만에 실험적 가족영화에 출연해 색다른 위로를 안겼다. 명품 연기로 연기적 화음을 고고히 쌓아나가 작품을 환기시켜주었다는 좋은 평가가 나왔다.
2014년에는 홍상수 감독과 세 번째로 합을 맞춰 자유의 언덕에 조연으로 출연, 센티멘탈하면서도 리얼리즘한 연기를 펼쳐냈다.
2015년 박근형과 함께 장수상회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어느덧 수 십 번째 어머니 역할을 거쳐온 그녀가 또 한번 어머니상을 연구해 펼쳤는데 온화하고 산뜻한 정서가 잘 드러났다는 평이다.
그리고 홍상수 감독과 네 번째로 작품을 함께해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에 출연, 한옥집에 살며 늘 딸을 걱정하는 김민희의 어머니 역할로 출연했다. 조연으로 역할에 꼭 맞는 완급조절이 잘 느껴진다.
또 워쇼스키 자매가 감독한 미드 Sense8에 카메오로 출연했다. 그런데 시즌 1, 2 비중을 보면 그냥 카메오 수준이 아니라 출연하는 한국인 배우 중에서는 대사량으로 따지면 최소 2등은 될 정도로 출연 빈도나 대사가 많다.
임상수 감독의 최근작인 나의 절친 악당들에도 잠시 출연하는데, 마땅한 역할이 없자 ‘지나가는 단역으로라도 얼굴을 비출 수 있게 해달라’는 요청으로 출연한 것이다. 임 감독과 상당한 케미스트리가 형성되어 애정깊은 관계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2016년에도 멈추지 않고 연기활동을 이어가 블루칩 김고은과 함께 계춘할망을 주연했다. 12년만에 손녀를 찾아 제주도의 집에서 함께 생활을 보내며 변화한 일상을 향유하는 노인 계춘을 뛰어나게 소화해내며 감동을 전했다.
또한 tvN 금토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동세대 배우들과 함께 출연하면서 좋은 평가와 화제성을 얻었다.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서사와 배우들의 앙상블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는 호평.
연이어 윤여정은 그녀의 연기 인생에서 <하녀>를 뛰어넘을 만한 작품으로 상당한 평가를 받는 죽여주는 여자에서 공원에서 박카스에 성매매를 하는 할머니 소영 역으로 출연했다. 단 한 번도 연기를 하면서 그 역할을 끝내놓고 빠져나오지 못한 적이 없다고 줄곧 얘기해왔지만 이 작품에서만큼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 촬영 중에도 촬영이 끝난 후에도 와인을 마시지 않으면 밥 한 숟갈도 넘기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인 고통이 심했던 작품이라고… 그도 그럴 것이 영화 제목만 보면 B급 에로 영화일 것 같으나 실상은 노인을 포함한 약자의 현실을 지독하게 현실적으로, 그것도 담담하게 그린 작품이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자칫 천박할 수 있는 윤소영이란 캐릭터를 특유의 무심한 듯 따뜻한 연기로 그녀가 아니면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대체불가의 캐릭터를 연기했고 그 연기를 통해 몬트리올 판타지아 영화제,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 올해의 여성영화인상, 부일영화상 등 유수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과 심사위원대상을 휩쓸었으며 한국에서 또한 그 영화를 보고 ‘윤여정이 아니면 그 누구도 해내지 못했을 연기’라는 평을 받을 정도로 명연기를 펼쳤다. 작가 노희경은 이 영화를 ‘어떤 인문학 강의보다도 깊고 통찰력있는 영화’라 표현했고 영화감독 강형철은 ‘윤 선생님의 아주 작은 표정과 몸짓 하나하나가 영원토록 기억될 영화’라고 표현했다.
2017년 나영석 PD가 tvN에서 만든 윤식당에 캐스팅되어 식당의 사장을 맡아 요리를 담당했다. 윤식당은 최고 시청률 14%를 기록하며 대박을 쳤다. 2018년에는 스페인 테네리페에서 촬영한 윤식당 2에 출연하고 있다. 방영 2화만에 최고 시청률 14.8%를 기록, tvN 예능 최고 시청률 기록을 갈아치우며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앞으로 남은 방영 횟수를 생각하면 훨씬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할 듯하다.
미국 드라마 하이랜드에 주연으로 캐스팅되었다.
2018년에는 이병헌, 박정민 주연의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어머니 역할로 출연해 극을 크게 이끌어갔다. 애환이 가득 담긴 슬픈 연기를 보여준다.
2020년 전도연, 정우성 주연의 오락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오랜만에 유니크한 포인트 역할이자 치매걸린 노인인 ‘순자’ 역을 맡으며 영화의 집중도를 살려냈다.
그 직후 노페이로 화제의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의 한글을 배우는 할머니로 출연하여 평단의 호평과 흥행적 성공을 거두는 데에 성공했다. 고령임에도 도리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젊고 감각적인 영화인들과 호흡을 맞춰온 윤여정의 예술성이 만개한 수작으로 회자되며 범접할 수 없는 연기로 유쾌한 안식을 선물했다. 2020년 상반기 최고 수작으로 손꼽히고 윤여정의 역대 필모와 대비해봐도 새로운 시도로 읽히기에 큰 의미가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되었고 영화는 각종 시상식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윤여정 화보
충무로를 넘어 세계로
2020년 1980년대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이주한 한인가족을 그린 미국 영화 미나리에 출연했다. 환경의 변화로 딸의 집에서 손주를 돌보며 함께 생활하게 된 할머니 순자 역을 자유롭고 뛰어나게 소화하여 인생 캐릭터를 획득했다는 압도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정이삭 감독의 실제 할머니를 모티브로 하지만 이를 구현하는 것에 있어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할머니상을 비틀어 새로운 감각의 어머니를 구현해냈으며 여태껏 겹겹이 쌓아온 윤여정의 독특한 정체성과 영화의 구성 요소가 절묘하게 맞물려 매우 사랑스러운 인물로 그려졌다. 전면 주연은 아니더라도 영화의 키를 맡던 기존의 포지션 역시 한층 더 높아져 마지막 부근의 해묵은 갈등사항의 해법을 제시하고 끝내 홀로 살아남는 미나리를 심는 절절하고 원더풀한 모습과 연출에 각자의 할머니가 떠오르는 벅찬 경험을 했다는 관객이 많다. 독립 영화임에도 2주 이상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크게 성공했고 이 작품으로 윤여정은 전 세계적인 유명세와 명성을 얻게 되었다.
미나리는 제36회 선댄스 영화제에서 대상 격인 심사위원대상과 최우수상 격인 관객상을 둘 다 수상하는 기염을 토했으며, 이후 각종 매체들은 윤여정을 <보랏 속편>의 마리아 바칼로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즈,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먼,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과 함께 강력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로 지목하였다. 그리고 그 기대감을 충족이라도 하듯 수많은 미국의 비평가 시상식 및 독립 영화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거나 후보로 올랐다. 윤여정은 이후 미국배우조합상(SAG)과 영국 아카데미상(BAFTA)에서는 여우조연상 후보 노미네이트에 성공하였다. 한국 배우로는 최초의 결과이다. 미국 언론에서도 올해 최고의 연기나 주목해야 할 배우 리스트에 오르는 등 상당한 기대를 받고 있다. 결국 한국 배우 최초로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 여우조연상으로 노미네이트됐다. 74세의 나이에 충무로 역사를 새로 써내려가 줄곧 찬사가 이어졌다.
그리고 대망의 4월 4일 미국배우조합상(SAG)에서 강력한 경쟁자들을 꺾고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한국 배우로서는 최초이며, 특히나 이 시상식의 결과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굉장히 영향을 많이 끼치기 때문에 사실상 오스카 수상이 유력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미나리가 해외를 휩쓰는 동안 2021년 1월부터 한국에서는 나영석과의 또 다른 예능인 윤스테이가 방영을 시작했다. 첫 화부터 8.9%라는 준수한 시청률을 기록하며 대박을 냈고, 연일 화제를 낳으며 예능에서도 존경받는 배우이자 어른으로서의 품격을 보여주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이민진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애플TV+에서 제작하는 미국 드라마 파친코에 캐스팅되어 2021년 상반기 촬영을 마무리지었다.
2021년 4월 12일,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국적의 영화인 최초로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연기상을 수상한 배우가 되었다. 수상소감도 센스가 넘쳐서 화제가 되었다. 먼저 4월 9일에 사망한 엘리자베스 여왕의 남편 필립 마운트배튼에 대해 애도를 표했고, ‘모든 상이 특별하지만 이 상은 ‘콧대 높은 걸로 알려진 영국인들이 주신 상이라 더욱 특별한 것 같다’라는 소감으로 사회자를 빵 터지게 만들었다. 이 상을 수상하며 칸 영화제의 전도연, 베를린 영화제의 김민희와 나란히 세계적인 영화제나 시상식에서 그 연기력을 인정받은 배우가 되었다.
2021년 4월 25일,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오스카 레이스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미나리에서 딸 역할을 맡은 배우 한예리와 LA 유니언 스테이션에 직접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수상소감 도중 그녀만의 센스 있는 표현들을 자주 사용해 현장에 참석한 관계자들에게도 많은 호응을 받았다.
한국 영화인 최초로 아카데미 배우상(여우조연상) 수상
아시아계 배우로는 두 번째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수상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영어가 아닌 자국어 연기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윤여정 오스카
한편 미국배우조합상(SAG)을 비롯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BAFTA)과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OSCAR)의 여우조연상 수상으로, 자연스럽게 내년 해당 시상식의 남우 혹은 여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다른 시상식은 몰라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시상자로 나설 것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이후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마련한 온라인 기자 간담회에서 최근 아시아 영화의 약진과 할리우드의 다양성 확대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사람의 정체성에 의한 차별을 반대할 것을 주장했다.
심지어 무지개도 7가지 색깔이 있다. 여러 색깔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남성과 여성으로 구분하고 백인과 흑인, 황인종으로 나누거나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로 구분하고 싶지 않다. 우리는 따뜻하고 같은 마음을 가진 평등한 사람이다. 저는 서로를 이해하는 것이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끌어안아야 한다.
2021년 10월 28일, 문화예술 공로자에게 주는 최고 훈장인 금관문화훈장을 수여받았다. 해외 촬영 일정 때문에 수상은 여동생 윤여순이 대리수상했고, 미리 준비된 수상소감 영상을 통해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미국 시간 2022년 3월 27일에 열리는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 부문의 시상을 맡았다. 수상자인 트로이 코처가 청각장애인이어서 소리내어 이름을 부르기 전 수어로 먼저 그의 이름을 부르는 인상적인 장면을 남겼다.
윤여정 여담 일화 인간관계
“…서진이가 메뉴를 추가하자고 했어요. 젊은 사람들이 센스가 있으니 들어야죠. 우리는 낡았고 매너리즘에 빠졌고 편견을 가지고 있잖아요. 살아온 경험 때문에 많이 오염됐어요. 이 나이에 편견이 없다면 거짓말입니다. 그런데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니들이 뭘 알아?’라고 하면 안 되죠. 난 남북통일도 중요하지만, 세대간 소통이 더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윤식당 당시의 인터뷰 중에서 발췌.
배우들 중에서도 명석하고 지성미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 동년배 배우들 사이에서 쏟아지는 증언이 이를 뒷받침한다. 원로배우 중에서도 최고참인 김영옥은 ‘나 같은 경우는 대본이 안 외워져서 손에서 놓지를 못 하는데, 여정이는 어느 순간 손에서 대본을 딱 놓고 안 볼 정도로 대단히 집중력과 암기력이 뛰어난 영민한 여배우이다’ 라고 얘기할 정도로 머리가 비상하고, 원로배우 이순재는 ‘여정이는 어려서부터 선배들이 말하는 걸 빠릿빠릿하게 잘 하고 흡수시키는 총명한 아이였다’라고 얘기한 바 있다. 동료이자 선배인 배우 박근형은 ‘<장희빈> 시절 함께 호흡을 맞출 때부터 총명하고 명석했다. 윤여정 같은 배우가 세네 명만 있어도 중년배우들의 판도가 바뀔 것’이라고 인터뷰한 내용이 있다.
KBS 연기대상 MC로 나선 윤여정이 우수연기상을 받은 직후 시상자로 나온 강부자는 ‘윤여정은 그 좋은 머리로 그 긴 대사를 NG 한 번 없이 촬영해준 덕에 우리 <넝쿨당> 촬영이 편안했다. 만약 윤여정이 NG를 냈으면 우리 모두 힘들었을 거다. 정말 고생했다’라는 말로 그녀를 칭찬하였고 농촌드라마 전원일기에서 둘째 며느리로 활약한 중년배우 박순천 또한 ‘윤여정 선배님은 머리가 비상한 배우이다. 대본을 보고 연기가 떠오르지 않을 땐 윤여정 선배님을 찾아간다.’라고 할 정도이다. 김수미는 예능에 나와서 윤여정과의 일화를 종종 말하고 다녔는데, 그때마다 지적이고 옷을 참 잘 입는 멋쟁이라고 칭찬해주었다. 이 정도면 동료 선후배들 사이에서도 그녀의 명석함을 꽤나 인정받는 듯하다. 또한 그녀는 엄청난 대사량으로 유명한 김수현 작가의 사랑이 뭐길래를 촬영할 때 몸이 정말 좋지 않은 상태에서 작중 그녀의 분량인 대본 1~132페이지까지 쭉 외우고 원테이크로 NG 없이 촬영 후 기절을 했다는 얘기로 방송국에서 아주 유명하다고 한다. 한 마디로, 배우계의 엄친딸인 셈이다.
능숙한 영어 회화는 윤여정을 지적인 배우로 보이게 하는 데 한몫한다. 해외에서 촬영한 예능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 윤식당, 윤스테이 등을 통해 수준급 영어 실력을 많이 보였다. 꽃보다 누나 촬영 당시 외국인과 자유자재로 소통하는 모습을 보이며 후배 여배우들로부터 리스펙을 받기도 하였다. 미국에서 영화 미나리 무대인사 때도 통역이 있었지만 본인 의사는 본인이 직접 영어로 진행했다. 한편 윤스테이 출연 후에는 나영석이 캐나다 사람인 최우식과 뉴욕 대학교 출신인 이서진은 냅두고 먹고 살려고 생활 영어나 잠깐 배웠던 자기한테 계속 외국인 손님 응대를 시키는 바람에 그게 보기 싫어서 윤스테이를 안 본다고 밝히기도.
옷을 잘 입기로도 유명하다. 동년배 배우들 중 패셔니스타 대접을 받는 건 윤여정이 유일. 일단 본인이 젊은 시절부터 옷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출연료를 몽땅 옷 사는 데 쓰는 등… 윤여정 정도 되는 나이가 되면 보통은 특유의 ‘할머니 룩’을 입고 다니기 마련인데, 그런 것 없이 유행을 자연스럽게 잘 소화하는 편. 또한 여배우들에 함께 출연해 친해진 패셔니스타 김민희에게 돈을 주고 옷 심부름을 시키기도 한다고 밝혔다. 소싯 적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정장 한 벌을 직접 지어준 적도 있다고 한다. 헤어스타일에도 엄청나게 신경쓰는 모양이다. 꽃보나 누나에서 고데기를 20년간 써왔다는 장면이 나온다. 20년간 사용한 고데기가 고장나자 이승기가 새로운 제품을 사다줬다.
윤여정의 모친은 1924년생이며, 2020년 10월 2일에 향년 96세로 별세하였다.
8살 밑의 여동생인 윤여순은 LG 아트센터의 대표로 재직 중이다. 게다가 LG 최초의 여성 상무였고, 역시 LG 최초의 여성 전무 자리에 올랐다. 본인 역시 문교부장관을 역임했던 국가 원로인 민관식으로부터 장학금을 받고 대표로 소감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당시 자료가 민관식 컬렉션에 전시되어 있다.
윤여정의 할머니는 윤여정이 매우 어렸을 시기인 6.25 전쟁 도중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기억에 남아있지 않지만 증조할머니는 좀더 오래 사셔서 기억이 난다고 한다. 전쟁 직후 물자가 부족하고 가난하던 시절에 증조할머니는 다른 가족이 이미 사용한 물로 목욕을 했는데, 윤여정은 어린 마음에 증조할머니를 더럽다고 생각하여 싫어했다고 한다. 이밖에도 증조할머니는 손자들을 더 먹이고 싶어서 본인 끼니는 거를 정도로 희생적이셨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서 자신이 증조할머니에게 얼마나 못되고 어리석게 굴었는지 깨달았으며 지금도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미나리>의 순자 연기를 할 때도 증조할머니를 생각하며 했다고.
영화 쎄시봉의 여주인공인 민자영 역의 모티브 역할이라는 이야기가 있으며, 한효주와 김희애가 역할을 맡았다.
인터뷰에서 자주 언급하는 내용이 있는데 본인이 메소드 연기를 하는 배우는 아니라고 한다. 다른 배우들은 어떠한 캐릭터를 연기할 때 자기 자신을 완전히 버린다는 말을 자주 하지만 윤여정은 언제나 “이 캐릭터가 나였다면?”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연기 스타일 또한 조금은 다른데, 예를 들어 슬프게 오열하는 연기를 보면 대체로 바닥에서 통곡하는 연기가 많은데 본인은 그런 연기보다 소리내지 못 하고 어깨를 들썩거리면서 울음을 삼키는 연기가 더 아프고 더 슬픈 거 같다며 언제나 과장되지 않은 다큐같은 연기를 지향한다고 한다.
애연가다. 그 윤식당에서조차 윤식당2 비하인드 스토리 방송에서 전자담배가 모자이크된 채로 나왔을 정도. TV 오디오에서 잘 잡히는 특유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흡연을 시작했다고 한다. 금연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박근형과 드라마 장희빈부터 모래성, 꼭지, 비단향꽃무, 그대 목소리, 유행가가 되리, 장수상회 등을 비롯하여 대다수의 작품에 같이 출연하였다. 그중 대부분이 연인 혹은 부부관계로 나온다.
1박 2일 때부터 나영석의 팬이었다고 한다. 나영석 예능에 계속 출연하는 이유도 나영석이 좋아서라고…
동남방언을 쓰는 배역을 맡을 때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모양이다. 그것만이 내 세상(영화)에서 사투리를 배우는데 집중하다 연기를 망쳤다고 하며, 그래서 파친코(드라마)에선 제작사에서 사투리 코치를 붙여줬으나 “내버려 두라”고 하면서 사투리를 배우지 않았고, 선자가 오랜 이국 생활로 이상한 말투가 됐으리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고 한다. 본인이 늙은 배우이기에 사투리 코치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했는데, 과거 “내 마음대로 하는 환경에서 일하면 괴물이 될 수 있어. 그게 매너리즘이지. 그런 환경에서 일하면 내가 발전할 수 없을 거야.”라고 한 적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부분. 그 정도로 동남방언 사용하는 배역을 맡을 때 부담감을 크게 느낀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미나리 관련 해외 매체 화상 인터뷰 중 “한국의 메릴 스트립이라 불리던데?”의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그분과 비교된다는 데엔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만 저는 한국 사람이고 한국 배우다. 제 이름은 윤여정이다. 저는 그저 저 자신이고 싶다.”, “배우들끼리의 비교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칭찬에는 감사드리지만, 제 입장에선 답하기 어렵다” 라고 답하며 자칫 난감해질 수 있는 질문에도 현명하고 센스있는 답변을 하여 취재진들의 찬사를 받았다.
2021년, 2016년 12월 2일 당시 가졌던 ‘배우 윤여정 데뷔 50주년 기념 파티’ 영상을 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된 것을 기념하여 소속사에서 공개했다.
패러독스 인터랙티브 마이너 갤러리, 대체역사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역알못의 상징으로 통한다. 꽃보다 누나에서 아야 소피아에 방문했을 때, 윤여정은 아야 소피아를 보면서 ‘이 사람들은 잘 화합을 한 거다, 이슬람이랑 천주교랑’이라는 말을 했는데, 정교회와 천주교를 구별하지 못한 것도 그렇고 오스만 제국의 역사 또한 화합이라고 부르기에는 어폐가 심했기 때문. 물론 윤여정은 역사 전공자도 아니니 제대로 모를 수도 있고 1차적인 잘못은 제대로 조사도 안 하고 엉터리 대본을 써준 꽃보다 누나 제작진에게 있지만, 결국 이 발언은 디시콘으로도 만들어졌다.
MBTI는 ISTP로 추정된다.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자 다른 나라 미디어들도 윤여정을 조망하는 기사를 앞다투어 내보냈는데 특히 일본, 대만, 동남아 각국 등 아시아권에서의 관심이 뜨겁다. 이 중 한 대만 매체는 윤여정의 데뷔를 임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했다며 오보를 내기도 했다. 임상수, 홍상수 등과 영화를 자주 하긴 했지만 알다시피 윤여정의 데뷔는 그보다 까마득한 옛날의 김기영 감독의 “화녀”이다. 기사 본문에 임상수 감독이 여러 번 언급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기사 쓰는 과정에서 기자가 실수한 것으로 추정.
윤스테이 방영 이후 인터넷에서 윤여정 특유의 말씨가 밈이 되고 있다. 일명 ‘윤며든다’,’휴먼여정체’ 윤스테이를 촬영한 나영석 사단의 채널 십오야에서도 써먹었다.
씨네21에서 주최한 봉준호 감독과의 줌 인터뷰에서 봉준호가 연기에 관한 질문을 하자, 자신을 작품에 캐스팅해주면 봉 감독이 궁금해하는 걸 보여주겠다고 강력하게 어필했다. 하지만 정작 봉준호가 어필에 대한 대답을 끝까지 안 해서 평소 그의 성격을 아는 씨네필들이 “윤여정이 저렇게 얘기해도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역시 봉준호는 봉준호”라며 혀를 내두르기도. 한편 “저는 가족 영화를 만들어도 결국 피바다로 가게 되더라”는 봉준호의 말에 “봉 감독이랑 임상수 감독이 사회학과를 나와서 그래”라고 대답해 보는 사람들을 빵 터트리기도 했다.
임상수 감독 영화들 중 처녀들의 저녁식사, 눈물을 제외한 모든 영화에 주연, 조연, 단역을 가리지 않고 출연하였다. 특히 하녀에서 선배 하녀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쳐 그 해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제, 부일영화상, 춘사영화상같은 국내 영화상에서 여우조연상을 휩쓸었고 아시안 필름 어워드에서도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였다.
특이하게도 그의 필모그래프를 차지하는 수많은 배역 중에서 <순자> 라는 이름이 꽤나 많이 등장한다. (순자(드라마), 파친코(드라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미나리(영화)) 특히 2020년과 21년 연달아 영화에서 순자, 그리고 치매걸린 할머니의 역할로 등장했으며, 외국 작품에서도 순자 배역을 받는 등 국내외를 따지지 않을 수준이다.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가 매우 특징적으로, 한번은 114에 전화했더니 상담원이 “윤여정 씨 아니세요?”라고 했다고.
2021년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이 있는 100인에 들어갔다.
예능 <뜻밖의 여정>에서 본인이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무엇이 되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는데, 패션 디자이너가 되었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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