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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근목사 누가복음 25강 \”혈루증을 앓던 여인\”
본문 – 누가복음 8:4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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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기적(7) – 혈루병을 앓던 여인과 야이로의 딸
예수께서 이미 병이 나은 혈루증 앓던 여인에게 굳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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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증 여인의 믿음 (9 : 20 – 22)
여인들의 혈루병이란 자궁에서 나오는 출혈을 말하는데 이 여인의 경우는 아마 자궁암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이른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많은 의원을 찾아 다녔지 …
Source: www.bamjoongsori.org
Date Published: 4/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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눅8:43-48 (혈루증 여인의 믿음) – 성구명상 – 대구성서아카데미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중간에 어떤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인데 그 병은 거의 불치에 가까웠 …
Source: dabia.net
Date Published: 4/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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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별 설교 – mission – 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 5:21-34)
여러분,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축복을 받아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사랑의 말씀으로 구원을 선포하셨고, 실제로 불치의 병을 완전히 치유해 주셨습니다 …
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4/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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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혈루증 여인의 믿음 – 다음블로그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에는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혈루병 혈루증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으로 생리가 아닌 하혈 …
Source: m.blog.daum.net
Date Published: 1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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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증 앓았던 여인의 병명은? – 아름다운동행
그렇다면 혈루증이란 도대체 무슨 병을 말하는 것일까? 신약의 헬라어 원문과 레위기 15장의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해 ‘혈루증’을 좀 더 의학적으로 …
Source: www.iwithjesus.com
Date Published: 10/14/2021
View: 1834
#혈루증 앓던 여인 – 브런치
절박한 믿음으로 | 마가복음 5장 25절-34절 25-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 29-이에 그의 혈로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Source: brunch.co.kr
Date Published: 4/30/2022
View: 4498
열두 해를 혈루증 앓은 여인 – 목회자료 – 기멀전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병이 걸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5절로 27절에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
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2/11/2022
View: 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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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혈루 병 여인
- Author: CBS성서학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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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7. 1.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lDHSOyXghQ
예수님의 기적(7) – 혈루병을 앓던 여인과 야이로의 딸
그리고 마가복음 5장에 열두 해 혈루병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막5:25-34) 25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29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32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혈루증이라는 것은 정상적인 생리현상이 아닌 지속적인 자궁 출혈(dysfunctional uterine bleeding)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철분이 함유된 비타민도 없었을 것이고, 먹는 것도 부실한 시대에 12년 동안 하혈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여자는 거의 시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인은 많은 의원을 찾아다녔지만 그 병은 더 중하여졌습니다(26절). 돈도 다 써버렸습니다. 당시에는 그 혈루증에 좋다는 약으로 타조의 알을 갈아서 베옷에 넣고 다니면 된다거나 흰 암나귀의 똥 안에 들어있는 보리알을 지니고 다니면 낫는다거나 하는 민간 처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타조나 흰 암나귀는 구하기가 너무 어려운 것이어서 돈이 많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다 해보았지만 허사였고 병은 더 중하게 되었다고 기록한 것은 가장 최악의 상태라는 것을 마가가 강조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레위기 율법에 보면 혈루증을 앓는 여인들은 부정한 여인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레15:6-8) 6 유출병이 있는 자가 앉았던 자리에 앉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씻을 것이요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7 유출병이 있는 자의 몸에 접촉하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8 유출병이 있는 자가 정한 자에게 침을 뱉으면 정한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까지 부정하리라
이렇게 혈루증을 앓는 여자는 문둥 병자처럼 마을에서 함께 살 수도 없었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도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이 사력을 다해서 엉금엉금 기어서 예수님의 겉옷 가를 만졌습니다.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으로 가보겠습니다.
(마9:20)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 가를 만지니
겉옷 가가 어디냐 하면 겉옷 맨 아래의 옷 술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 성인 남자들이 입던 겉옷은 그 옷 맨 아래에 술을 달았습니다. 그 옷 술은 율법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옷 술을 보면서 율법을 다시 상기하고 묵상하기 위하여 옷 술을 달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아야 하는 한 부정한 여인이 그 율법을 잡은 것입니다. 그 여인은 그 율법에 의하면 정죄를 받아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에게 믿음이 있었습니다(막5:34). 어떤 믿음이었습니까? 자신은 부정하여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예수님의 거룩을 의지하여 살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그 여인은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가복음 5장 30절을 보시면 그 여인이 예수님의 옷 가를 만지자 예수님에게서 능력이 나갔다고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능력을 100 정도 충전하고 다니시면서 병을 고치실 때마다 능력이 조금씩 나가는 그런 능력을 갖고 계신 분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능력” 즉 “뒤나미스”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메시아로서의 권세”를 이야기합니다. 죽어야 할 부정한 자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로 새사람으로 살아나는 부활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이 열두 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그 여인은 그 영광의 주님의 권세를 그 자리에서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여인의 혈루증이 나았는데도 그 여인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 앞에서 벌벌 떱니다(막5:32-33). 왜 병이 나았는데 기쁘게 펄펄 뛰지 않고 두려워 떱니까?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그물 한가득 고기를 잡았을 때 기뻐서 펄펄 뛰지 못하고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이야기한 장면과 똑같지요? 아까 백부장이 “주여, 내가 감당치 못하겠나이다.”라고 말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죄인들은 그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되면 경외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인들에게 주어질 새 생명, 구원의 이야기를 혈루증 여인을 통해 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혈루증 여인을 만나실 때 어디로 급히 가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바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로 급히 가고 계시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여인과 이야기하는 도중에 그만 야이로의 딸이 죽고 말았습니다.
(막5:34-35)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35 아직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회당장의 집에서 사람들이 와서 회당장에게 이르되 당신의 딸이 죽었나이다 어찌하여 선생을 더 괴롭게 하나이까
예수께서 이미 병이 나은 혈루증 앓던 여인에게 굳이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조급해하는 야이로에게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36절에서 한 번 더 야이로에게 믿음을 강조하십니다.
(막5:36) 예수께서 그 하는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장에게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하시고
자, 이 이야기는 어떤 메시지를 주는 것일까요? 야이로가 어떻게 예수님을 알았습니까? 어떻게 그분이 죽어가는 자기 딸을 살리실 것을 믿고 그분을 모시고 가는 것입니까? 야이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문이 믿어졌습니다. 이처럼 믿음은 먼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역경을 통해서 살아있는 믿음으로 자라납니다. 야이로는 믿고 자기 집으로 가는 길에 믿음의 시련을 만나게 됩니다. 그 바쁜 와중에 혈루증 앓는 여인이 나타나서 예수님의 갈 길을 지체하게 만들었습니다. 바로 그 시간에 야이로의 딸이 죽습니다. 야이로는 허탈했을 것입니다. 이제 다 끝났구나. 나는 이제 절망이구나.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해라.” 하지만 “아니, 믿는 것도 어느 정도 실낱같은 것이라도 남아 있어야지 믿는 것이지 이제 딸이 숨이 끊어졌는데 뭘 믿으라는 겁니까?” 왜 이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요? 생각해 보세요. 12살 먹은 딸이 이제 곧 시집도 가야 하고 손자도 보여주고 할 그런 딸이 죽을 병이 들어서 마지막 희망을 가지고 찾아간 예수라는 사람이 오는 길에 지체하는 바람에 자기 딸이 죽었습니다. 야이로는 이제 완전한 절망 속으로 빠져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나사로의 누이들에게도 일부러 늦게 가시고는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하고 말씀하셨지요? 왜 주님께서는 그런 절망 속으로 몰아넣으시고 거기서 믿음을 요구하실까요? 우리의 믿음은 자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자라고 자라서 죽음을 이기는 믿음으로 자라야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뭉개서 없애버리신 그 사망을 이기는 믿음을 우리가 우리 안에 실력으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 죽음을, 사망을 이기는 믿음은 역경을 통해서 자라나는 것입니다.
도저히 절망적인 상황인데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니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은 그렇게 자라나는 것입니다. 세상 모두가 너희를 버려도 하나님은 안 버리신다는 믿음이 바로 그러한 역경 속에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주마고 약속하시고 그가 100세가 될 때까지 기다리십니까? 도저히 가망이 없는 상태까지 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왜 한나의 태를 그렇게 오랫동안 닫으셨다가 여시는지 아십니까? 한나의 믿음을 위해서입니다. 야이로에게도 절망 속에서 그러한 믿음이 요구됩니다. 야이로는 절망 속에서도 끝까지 주님을 모시고 자기 집으로 갑니다. 그 믿음이 딸을 살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 소녀에게 가셔서 “달리다 굼”(소녀야 일어나라)이라고 아람어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랬더니 소녀가 살아났습니다. 그렇게 역경을 통해 자라난 믿음이 사망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을 메시지로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야이로의 딸과 혈루증 앓던 여인의 이야기에서 한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는 빈부귀천이 없다는 것입니다. 누가 더 소중하고 누가 덜 소중하고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둘 다 믿음으로 치유가 된 것입니다. 그 믿음에는 유지인 회당장의 것이나 저 부정하고 가난한 혈루증 앓는 여인의 것이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이 두 이야기를 통해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출처: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 김 성수 목사
눅8:43-48 (혈루증 여인의 믿음)
1995.2.19.
혈루증 여인의 믿음
눅8:43-48
어느 날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에게 와서 자기 형편의 딱한 사정을 말했습니다. 12살 먹은 딸아이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집으로 가서 야이로의 딸을 살려주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야이로가 왔을 때는 그의 딸이 아직 죽지는 않았는데 중간에서 지체 하다 보니 아예 죽어 버렸고, 나중에 가서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이 중간에서 시간을 지체케 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어떤 여인에 관계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야이로의 딸을 고치러 가는 중간에 어떤 여인이 등장합니다. 그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던 여인인데 그 병은 거의 불치에 가까웠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가는 틈을 비집고 들어가 예수님의 뒤에서 그의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러자 그녀의 혈루증이 즉시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돌아보시면서 여러 사람들을 향해 “내 몸에 손을 댄 자가 누군가?”라고 물었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한 사람이 없다고 대답하자, 항상 성질 급하게 행동하던 베드로가 앞에 나와 보충적으로 설명하기를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렸기 때문에 떼밀려서 그렇게 된 것이지 누가 일부러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럴듯한 대답이었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의도적으로 손을 댄 사람이 있다면서 당신에게서 능력이 나간 걸로 보아 확실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순간 혈루증이 치료된 여인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한편으로 무서워하면서 사람들 틈에서 빠져 나와 예수님께 그간의 자초지정을 상세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이 여인의 믿음이 무엇이길래 자기를 구원할 수 있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 우리는 이 여인이 처한 상황을 좀더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이 여인은 혈루증으로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왔습니다. 오늘 본문은 막5:25-34과 마9:20-22에도 병행구로 나오고 있습니다만, 마가복음에 보면 이 여인이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을 앓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병을 치료하기 위하여 병원에 드나들다가 자기 전 재산을 없애 버렸다고 합니다. 혈루증은 레위기서 15:19-33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대로 부정한 병이었습니다. 25절 이하의 말씀을 잠간 읽어보도록 합시다. <여인의 피의 유출이 그 불결기 외에 있어서 여러 날이 간다든지 그 유출이 불결기를 지나든지 하면 그 부정을 유출하는 날 동안은 무릇 그 불결한 때와 같이 부정한즉 무릇 그 유출이 있는 날 동안에 그의 눕는 침상은 그에게 불결한 때의 침상과 같고 무릇 그의 앉는 자리도 부정함이 불결의 부정과 같으니 이런 것을 만지는 자는 무릇 부정한즉 옷을 빨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며 저녁가지 부정할 것이요.> 여인의 하혈이 이렇게 엄격하게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던 시대에 12년 동안이나 피가 멈추지 않았으니 그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심각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재산을 다 날렸다는 마가의 증언도 사실에 가까운 것이며, 아마 그녀의 남편도 그녀를 돌아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12년 동안이나 가까이 갈 수 없는 여자와 함께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을 찾아올 때 이 여인은 절망의 끝에 도달해 있을 때였습니다. 가정생활도 정상적으로 할 수 없었고 있는 재산도 다 없어진 상태에서 여인의 몸으로는 아무 해결책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이런 절망의 시간에 만들어졌습니다.
이 여인이 경험한 그런 절망의 시간들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나 피하고 싶어 합니다. 그런 생각이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절망적인 순간의 경험은 우리에게 참된 신앙을 선물로 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그 기회를 잘 사용하기만 하면 그렇습니다. 에이미 카미카엘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축복하시고자 할 때면 언제나 사탄의 강력한 종인 <절망의 악마>가 먼저 그 사람을 찾아와 그에게 온갖 종류의 비참하고 절망적인 생각들을 불어넣으려고 애쓴다. 정말은 언제나 아래로 부터 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이에 반해 위로는 언제나 위로부터 온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여러 시련과 아픔들, 혹은 절망의 사선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참된 신앙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앙을 얻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절망적인 사건 속에 빠져 들어야 하는 걸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내면적인 세계의 눈을 바르게 떠서 하나님의 진정한 구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모든 인간의 현실이 절망으로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모든 행위가 사실은 아무런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우리의 인생설계가 착착 진행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과연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요?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이런 현실을 깊이 통찰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습니다. 어떤 나그네가 길을 가다가 우물에 빠졌는데 다행히 중간에 뻗어 나온 나뭇가지에 매어 달릴 수 있었습니다. 우물 밑에는 독사들이 득실거리고 위에서는 호랑이가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나그네는 나뭇가지에 핀 꽃 속에서 꿀을 빨아 먹고 한숨을 돌리고 있는데 생쥐들이 나뭇가지를 갉아먹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그렇게 비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는가, 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만 일단 그것이 사실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우리 곁에는 항상 절망의 그림자가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살아가다 만나는 어려운 일은 물론이고 어느 누구 가릴 것 없이 죽음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아시안 게임 레슬링 금메달리스트 송성일 선수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가 무얼 생각합니까? 우리에게 참된 생명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없다면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삶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이란 게 별게 있나 다 그런 거지!”라고 말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 무관심하다면 이 설교를 들을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2. 혈루증으로 고통 가운데 빠져있던 이 여인은 오직 하나의 희망을 안고 예수님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아마 소문으로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예수님의 설교를 직접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녀는 야이로의 집으로 몰려가고 있는 예수님 일행을 발견하고 그 무리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누가 볼까 염려하면서 예수님의 뒤로 가서 옷깃을 손에 댔습니다. 그 즉시로 12년 동안 앓던 혈루증이 깨끗이 치료되었다고 누가는 증언합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겸손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자세입니다. 웬만했으면 12년 동안 병을 앓았기 때문에 체면이고 뭐고 가릴 것 없이 그냥 예수님 앞에 넙죽 절하면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을 쳤을 텐데 이 여자는 대단히 조심스럽게 예수님에게 왔습니다. 누가 나의 몸에 손을 댔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을 받고도 선듯 나서지 못했습니다. 나중에야 할 수 없이 두려워하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오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뻔뻔스러움을 믿음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모르고 사람 눈치 안보고 무조건 예수님의 이름으로 돌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불의한 재판장을 설득한 어떤 과부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비유를 앞세워 적극적인 사고방식을 기독교 신앙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적극적으로 생각한다는 거야 좋은 말입니다만 그게 심해서 자기를 앞세우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큰 도시의 지하철이나 역전에서 큰 소리로 예수 믿고 천당 가라고 외치는 걸 용기로 생각한다면 문제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데도 불구하고 교회에서 야밤중에 큰 소리로 기도한다거나, 남이 곤히 자고 있는 시간에 찬송가를 크게 틀어놓는다는 행위가 결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믿음은 그렇게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가 감추는 것입니다. 소리를 작게 해야 하며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는 것입니다. 누룩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순간에 주위를 변화시키는 힘이 바로 복음이며 신앙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이 모습을 보고 오늘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배워야 합니다. 믿음을 가진 자는 자기 자신의 부족하다는 사실을 점점 더 깨닫게 됩니다. 도저히 자기를 드러낼 자신이 없습니다. 점점 더 겸손해 집니다. 우리는 조금만 마음이 뜨거운 경험을 하게 되면 혼자서 세상을 다 구원해 낼 것처럼 행동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믿음이 모두 작아 보입니다. 교만과 용기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믿음은 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혈루증 치료가 마술이 아님을 복음서 기자들이 변호하고자 합니다. 모든 세대, 모든 종족에 이런 병의 치유는 항상 있어왔습니다. 지금도 무당들이 병을 고쳐 주겠다고 유혹합니다. <일련정종>은 노골적으로 어려운 병에 걸린 사람들만 찾아가서 치료해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마술이나 사이비 종교에서 말하는 치유는 단순히 치유에만 몰두합니다. 그가 얼마나 윤리적으로 사는가에 대해서는 질문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치유는 일종의 마술행위입니다. 복음서에서 증거되고 있는 많은 치유는 그런 것과 근본적으로 차원을 달리 합니다. 조금씩 경우는 다를지라도 환자와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본문의 혈루증 여인의 경우도 그러합니다. 그녀의 믿음은 예수님의 인격과 관계된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예수님과 이 여인 사이에 특별한 관계가 이루어졌습니다. 오직 그녀만이 예수님의 능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특별한 인격적 관계,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우리에게 이런 경험이 정말 필요합니다. 이런 것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교회 형식에 충실하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믿음이 될 수는 없습니다. 혈루증 여인이 그곳에 왔을 때 아무도 주의하지 않았으며, 그 여인도 어떤 누구에게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녀는 오직 예수님만을 생각하였고 기껏 가까이 간다는 것이 옷깃에 손을 대는 것이었습니다. 옷깃만 만졌든지 아니면 직접 손을 잡았던지, 혹은 예수님이 그녀에게 안수하였든지 그것은 이 자리에서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예수님을 향한 유일한 관심을 가졌고 그를 통해서 새로운 능력을 체험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 대개 주변적인 일에 너무 관심이 많을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는 게 아니라 누가 회장이 됐는가, 누가 무슨 말을 했는가, 누가 믿음이 있다거나 없다는 그런 식의 일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에 그런 일상적인 일에 대한 관심을 완전히 끄고 살아갈 수는 없겠지만 가능한대로 그런 면을 줄이고 예수님에 대해 집중하는 시간을 늘려가야 합니다. 많은 무리가 이동하고 있었지만 오직 예수님을 향해서만 마음을 쏟았던 혈루증 여인처럼 우리는 그분이 나와 무슨 상관인지 진지하게 질문하고 대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생활을 하면 당연히 예수님을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고 말할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합니다. 그런 의지를 가질 때만 우리에게 참된 믿음이 자라나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예수님은 혈루증 여인을 향해 “평안히 가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은 여인은 이제 평안의 선물을 받게 되었습니다. 구원이란 곧 평안입니다. 하나님의 평안입니다. 이 여인에게 구원은 혈루증이 치료된 데서 머문 것이 아니라 평안의 세계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그점을 우리는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대개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육체적 질병을 치료받거나 집안이 잘되는 것을 기대합니다. 그것이 잘못은 아닙니다만 더 중요한 구원의 세계는 영적이고 내면적인 평안입니다. 우리가 외적으로 안정되고 풍요롭게 살려는 것도 역시 내적인 평안을 위해서 그렇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결국 혈루증을 고침받고 나아가 평안의 선물도 받게 했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평안의 세계에 들어갑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세상 지식으로 살 수 없는 영적인 평안을 선물로 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믿음입니다.
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 5:21-34)
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 5:21-34)
오직 예수!
우리 주님은 세상의 고통 받는 사람들을 치유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이를 위해 예수님은 친히 모진 고통을 담당하셨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죽어가는 어린 아이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세상에 가득한 고통과 고난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
특히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의 처지는 딱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 병은 만성 출혈증으로서, 당시의 의술로서는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오랜 세월을 고생하며 고쳐보려고 애를 썼지만 백약이 무효했습니다. 이제는 정말로 아무런 소망도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포자기하며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이 때 이 여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분이 자기 동네를 지나가신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여인은 온 힘을 다해 예수님을 만나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이 때 성령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이 여인에게 ‘예수님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 는 생각을 넣어주셨습니다. 여인은 사력을 다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드디어 예수님의 옷 가를 만졌습니다.
그리하여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은 주님의 능력을 이끌어 내었고, 놀랍게도 이 여인은 오랜 불치병으로부터 놓여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시간은 혈루증 여인을 동정하며 여인의 병 고침 받음을 축하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여인의 혈루증과 같은 우리 영혼의 만성 질병이 없는지 살펴보자는 것입니다. 그 질병을 찾아내어 진단하고, 예수님께 고침을 받자는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 우리는 본문에서 한 연약한 사람 속에 자리잡은 믿음이 어떻게 기적을 체험하게 하고, 그 사람을 어떻게 영웅적인 신앙인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 예를 보게 됩니다.
말씀을 통하여 기적을 체험하는 시간, 믿음의 도전을 받는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1. 절망을 이기게 함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그에게 닥쳐온 절망적인 환경을 이길 수 있도록 힘을 주었습니다. 이 여인의 믿음은 ‘절망을 이기는 믿음’ 이었습니다.
26절,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여러분! 이 여인의 상태는 한마디로 절망 그 자체였습니다. 병에 시달려 온 세월이 열 두해였습니다.
12라는 숫자는 하늘의 수인 ‘3’과 땅의 수인 ‘4’를 곱한 수로서 완전을 상징합니다. 길고 긴 세월 동안 고난 가운데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이 여인은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습니다. 의학이 발달한 요즈음에도 종종 오진이나 의료사고들이 일어나는데, 당시에는 잘못된 진단이나 비과학적인 진료, 터무니 없이 비싼 치료비 등으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기보다는 오히려 고통을 주는 경우가 더욱 많았을 것은 자명합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혈루증에 대한 치료 방법으로, 마늘과 같은 식물에 포도주를 섞어 먹였다고 합니다.
또는 환자를 놀라게 하며 ‘너는 혈루에서 일어서라’ 라고 외치기도 했습니다. 이 여인도 많은 의원들에게서 이같은 치료를 받았을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이런 의사들의 치유조차 결과적으로 이 여인을 괴롭게 하는 이상의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여인의 병은 인간적으로는 완전히 치유 불능의 상태에 빠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 26절, 27절에는 여인의 형편을 묘사하는 단어들이 모두 분사형으로 나옵니다. ‘괴로움을 받았고’, ‘허비하였으되’, ‘효험이 없고‘, ’중하였던 차에‘ 등, 네 개의 분사는 혈루증을 앓는 여인이 자신의 병으로 인해 받았었던 고통을 현실감 있게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또 그 이후에 계속되는 ‘소문을 듣고’, ‘뒤로 와서’ 등의 분사는 예수님을 찾아온 경위를 설명해줍니다.
26, 27절에서 단 한개의 일반 동사도 사용되지 않고 분사만 여섯 개가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한 여인이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지난 12년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를 하나의 파노라마처럼 긴 호흡으로 우리에게 펼쳐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지고 있던 돈도 모두 써버렸습니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면서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쳤습니다. 죽음 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가련한 인생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절망 상태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이 병은 당시 율법에 의하면 부정한 병으로 간주되어 사람들로부터 격리될 수밖에 없는 병이었습니다(레 15:19-33).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 상태였는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여인은 불치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은 물론, 모든 재산마저 잃고 심지어 사회로부터도 버림받는, 그야말로 마지막 한계상황에 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여인이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더라면 성경의 인물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에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는 자리에 주저앉아 체념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일어나 무리 가운데로 나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양 속담에 “결코 절망하지 말라. 절망은 치명적인 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망은 믿지 않는 데서 오는 병입니다. 성도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절망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러분에게 닥쳐온 어려움은 어느 정도입니까? 혈루증 여인이 겪었던 절망적인 상황과 비교해 본다면 어떻습니까?
하지만 염려하지 마십시오. 이 여인과 같은 믿음이 있다면 그 어려움이 여러분을 어떻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주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이 주님을 믿음의 손으로 붙잡기만 하면 우리도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서현의 가족들은 절망을 이기는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적극적인 행동을 하게 함
혈루증 여인은 믿음을 통하여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설 수 있었습니다.
27절,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 여인이 취한 행동은 확실한 믿음 없이는 할 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적극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여인은 12년동안이나 하혈을 했습니다. 아마도 주위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싫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적극적인 믿음을 가졌습니다. 냄새난다고 찡그리는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옹위하고 있는 사람들의 틈을 비집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옷 가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병이 곧 나았습니다.
“그의 옷에 손을 대니”에서 ‘옷’은 원문 상 ‘옷의 가장자리’ 또는 ‘옷 가’(눅 8:44)를 말합니다.
“손을 댔다”(헵사토)는 말은 부정과거형이므로 옷을 계속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니고 단 한 번만 스치듯이 옷 가에 손을 댄 것입니다.
이로 볼 때 여인의 병이 떠난 것은 예수님의 옷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여인의 믿음과 그녀를 긍휼히 여기신 예수님의 자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육체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3중고에 시달리고 있으면서도 절망하지 않고 적극적인 행동으로 나섰습니다. 이것은 여인 속에 주님을 향한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 믿음을 크게 보셨습니다.
28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여기 ‘이는’ 에 해당하는 접속사 ‘가르’는 ‘왜냐하면 …하기 때문이다’라고 번역됩니다.
사실 여인이 예수께 다가가 그의 옷을 만지려고 하는 행동은 당시로서는 율법이 엄히 금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칫 목숨을 잃을 수 있는 행위였습니다. 그러므로 28절은 여인의 확고한 믿음을 묘사하는 문장입니다.
불치의 병으로 사회와 종교 공동체로부터 따돌림 받고, 심지어 가족으로부터도 불결하고 부정한 여인으로 냉대를 받았을 여인!
이 여인이 이처럼 위험한 행동까지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스치듯이 옷 가에 손이 닿기만 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 등은 여인의 믿음이 얼마나 순전하고 결사적이었나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함일러라”(엘레겐) 라고 번역한 단어는 반복적 행위를 나타내는 동사입니다. 여인은 마음 속으로 ‘내가 그의 옷 가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라고 계속해서 되뇌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적극적인 행동을 가능케 했습니다.
여러분! 자신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 예수님을 만지고자 하던 사람들은 이 여인 외에도 당시에 많이 있었습니다. 막 3:10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피해 배에 올라서 말씀을 전하실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자 구주로 믿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단지 예수님에게 탁월한 능력이 있어 그를 만지면 혹시 자기들의 병이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본문의 여인은 달랐습니다. 그에게는 굳은 신뢰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손 만을 댄 것이 아니고 자신의 간절한 마음과 신실한 믿음을 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실을 인정하셨습니다(34절). 할렐루야!
선교사 허드선 테일러(Hudson Taylor)가 처음 중국에 갈 때였습니다. 범선을 타고 항해하는 중에 식인 섬 해안 가까이 왔을 때 바람이 불지 않아 배가 멈추었습니다. 뱃길을 바꿀 틈도 없이 배는 해안선 쪽으로 서서히 떠밀려 가고 있었습니다. 야만인들은 열렬히 축제를 고대하며 함성을 지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장이 테일러 선교사에게 와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드려달라고 간절히 원했습니다.
“좋소. 바람을 잡을 수 있도록 돛을 펴시오.”
선장은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돛을 펴는 것은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이라고 거절했습니다. 선교사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돛을 준비하지 않으면 나는 기도하지 않겠소.”
결국 두려움에 떨던 선장이 졌습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날씨에 돛을 올리고 기다렸습니다.
선교사는 특별 기도실에서 기도를 드렸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 때 선장이 기도실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습니다.
“아직도 바람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까?”
“그렇소”
“이제 그만해도 되겠습니다. 배가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허드선 테일러 선교사 같은 적극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혈루증 여인이 가졌던 적극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함 때문에 주님께 나아가기를 망설이다가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절망스런 형편이 닥쳐왔습니까? 더욱 적극적인 믿음으로 예수님께로 나아가십시오.
기도를 하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집회에 참석하시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전도를 하더라도, 봉사를 하더라도 더욱 적극적으로 하십시오.
여러분이 적극적인 믿음을 가질 때 기적이 일어나고, 주님의 능력을 목도하게 될 것입니다.
3. 믿음 위에 임하는 주님의 축복
이제 이 믿음의 여인에게 베푸신 주님의 축복을 생각해 봅시다. 본서의 저자 마가는 다른 복음서에 비해 문학적이고 신앙적인 내용으로 여인의 치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9절,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혈루 근원’에서 ‘근원’에 해당하는 ‘페게’는 샘, 또는 우물이란 뜻입니다. 여인의 혈루증이 무엇 때문에 발생했는지 알 수 없지만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 원인이 제거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여인은 이 사실을 즉각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이 여인이 자신의 옷 가에 손을 댄 사실을 즉시 아셨습니다. 수많은 접촉 가운데 여인의 행위만을 따로 구별하여 아신 예수님입니다. 여인의 믿음의 행위는 예수님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고, 예수님은 여인의 고질병을 단숨에 치유하여 주셨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예수님은 짐짓 엄한 어조로 장본인을 추적하셨습니다. 주님이 누구의 행동인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사자를 곤혹하게 하시려고 하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특별한 이유와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첫째, 당시 거기에 모인 사람들에게 이 여인을 통해 예수님과 치유 사이의 매개는 오직 믿음 뿐임을 분명히 알게 하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을 많은 사람 가운데 나오게 하시고 그의 믿음을 강조하심으로써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나가는 것을 공개적으로 시정하신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여인의 믿음의 간증을 듣게 하여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자발적인 간증을 원하신 것입니다.
여인의 모습을 보십시오.
33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여러분, 주님은 우리의 공개적인 신앙고백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다 아시는데 구태어 입으로 고백할 것까지야 없지 않은가?’ 라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음 속의 생각과 공개적인 고백 사이에는 큰 거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여인의 고백을 받으신 주님의 흡족한 마음이 다음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3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앞선 구절(25, 33절)에서 ‘여자’(귀네)라고 소개되어 있는 이 여인을 향하여 예수께서 직접 사용하신 호칭은 ‘딸’(뒤가테르)이었습니다. 다음 절에 나오는 회당장의 딸을 가리키는 단어와 동일한 단어를 사용하신 것을 보면, 예수께서 이 여인을 얼마나 정감 있고 사랑스런 마음으로 부르셨는지가 여실히 드러납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예수님에 의해 딸로 불리워진 이 여인은, 외경에 의하면, 후일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가실 때에 주님의 얼굴에 흘린 땀을 닦을 수건을 드렸고, 예수님 얼굴의 땀을 닦은 그 수건에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 혈루증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축복을 받아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은 그에게 사랑의 말씀으로 구원을 선포하셨고, 실제로 불치의 병을 완전히 치유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여인에게서 모든 고통의 그림자를 거두어 주셨고, 심령의 평안과 만족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주님의 축복을 받아내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 여인의 믿음을 분석해 보았습니다.
이 여인이 가진 믿음은 1)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일어서는 믿음, 2)만인의 따가운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주님께 나아와 옷 가에 손을 내미는 적극적인 믿음, 3)그리하여 주님의 관심을 받고 마침내 주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는 축복된 믿음이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여인의 혈루증과 같은 영혼의 만성 질병이 없습니까?
아무리 고치려 해도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무지 고쳐지지 않는 숨은 고질병은 없습니까?
이 여인처럼 적극적인 믿음으로 주님께 나아와 고침 받아야 하겠습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는 데에는 신앙생활의 연조를 따질 것 없습니다.
오늘 처음 나오신 분이라도 속히 기적을 가져오는 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 읽기와 듣기, 공부하기와 묵상하기를 힘쓰는 가운데 우리 속에 믿음이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주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어려움을 내려놓으십시오.
우리 모두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예수님께로 가지고 나아와 해결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출처/박순오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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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루증 여인의 믿음 (막5:25~34절)열두해 혈루증 여인에 대한 사건은, 예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고치기 위해서 그 집에 가시는 도중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여이로와 함께 가실 때,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에는 12년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앓던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혈루병혈루증은 여성들에게만 나타나는 병으로 생리가 아닌 하혈하는 병입니다. 혈루증은 피가 멈추지 않고 흐르는 병입니다. 혈루병은 당시에는 고칠 수 없는 불치의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혈루병에 걸렸다 하면 절망에 이르는 병입니다.레위기서 15:15-30절에 보면 혈루증은 부정한 병으로 여겼습니다. 이 병은 의식적으로 불결을 가져온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환자와 접촉된 사람이나 물건까지도 다 부정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여인의 부정한 하혈은 죄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증, 소위 출혈병을 앓게 되면 사회로부터 철저하게 소외를 당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 바깥으로 쫓겨나 성 바깥에서 살아야 헸습니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만 했습니다. 더욱 불행한 것은 이 병을 앓는 여인은 대개 남편에게도 이혼을 당했습니다. 가족들과도 헤어져야 했습니다. 사람들과 함께 예배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혈루병자는 공중 모임, 심지어 성전에 가는 것 까지도 금지되었던 것입니다.(레15장)혈루병자들에게는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도 고통이지만 종교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격리를 당해야 하는 아픔 또한 컸습니다. 여인은 병 자체의 고통과 격리로 인한 외로움, 그리고 율법에 의해 정죄를 받았다는 생각으로 인한 심적 고통 등으로 몹시 힘든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신앙공동체로부터의 부정한 여인, 혹은 불결한 여인, 천벌을 받은 여인이라는 꼬리표는 이 여인에게 심한 절망감과 수치심을 주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병은 절망과 소외일 것입니다.열두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26절에 보면, 혈루증 여인이 그 동안 받았던 고통스러운 삶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혈루병은 당시의 치료법에 입각해서 말하면, 고칠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눅 8:43) 혈루병은 절망에 이르는 병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혈루병은 천형으로 여겨졌고, 심지어는 부정한 병으로 규정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음에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 돈을 들여서 병원에 갔지만 환자로 가지 못하고 죄인으로 가서 진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니 괴로움만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여인은 치료하느라 있던 재산마저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애초부터 치료가 되지 않는 병인데도 12년 동안을 이곳저곳 다녔으니, 가진 돈은 다 허비하였고, 남은 것은 피폐해진 몸과 지친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동안 심적, 육적 괴로움만 당하고 가진 모든 재산은 다 허비하고, 병만 더 심해 진 것입니다.혈루증 여인의 믿음①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었습니다.(27절)열두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이 여인은 절망 중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에 대해서도 소문으로 나마 듣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들었던 소문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수치스런 병으로 고생하던 병자들을 고쳐주신 소문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진, 예수님께서 나환자에게 손을 대시고 깨끗함을 선포하신 사건은, 같은 부정한 병을 앓고 있는 그녀에게는 소망의 메시지였습니다.이 여인에게 들려진 예수님에 대한 소문, 이것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이 사람에게 믿음을 주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주이심을 믿었습니다.롬10:17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느니라”여러분들이 믿음을 갖기 원하신다면 예배 시간마다 빠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매일 성경을 읽으심으로 매일 생명의 양식으로 삼아야 합니다. 믿음의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여인은 세상 것들에 두었던 모든 소망이 끊어져서 절망 상태에 있을 때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예수님에 대한 소문은 여인에게 새로운 희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온 인류의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자신의 질병도 낫게 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롬10:13-15절에는 구원의 공식을 말씀하고 있습니다.“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전도자를 보내십니다. 전도자들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사람들은 복음을 듣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믿습니다. 예수님을 주와 구주로 고백합니다.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받습니다. 이것이 로마서에서 말씀하는 구원의 공식입니다.인간 편에서 볼 때 구원은 전도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했습니다.(막1:38절)“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해 왔노라”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일-전도-를 위임하셨습니다.(막16:15절)“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예수님은 우리에게 전도자의 직분을 주셨습니다.(고후5:18절)“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시는 직책을 주셨으니”그리고 성도들이 전도자의 직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 까지 함께 하시고 성령의 능력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행1:8절)“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능력을 주시는 가장 큰 목적은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습니다.전도란, 죄인인 인간들에게, 그래서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고 믿게 하여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을 내는 것입니다.②여인은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졌습니다.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는 순간 “내가 그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28절)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능히 죄인을 구원하실 구주로 믿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을 믿었습니다.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불결한 육신의 상태나 자기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께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병이 낫을 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믿음입니다.③여인의 믿음은 장애물을 극복한 믿음입니다.여인이 그의 믿음대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 위해서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데는 장애물이 있었습니다.첫째, 예수님을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인이 예수님을 에워싸며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을 뚫고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둘째, 율법의 장애물입니다. 여인은 율법에 의해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 찍힌 병자요, 하늘의 천벌을 받은 죄인으로 여겨졌습니다. 더욱이 유출병자는 부정하여 사람과의 접촉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그녀가 만지는 모든 것은 부정이 타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만져서는 안 됩니다. 여인에게 장애물은 율법의 장애물이었습니다.셋째, 자신의 장애물입니다. 여인은 12년 동안이나 피를 흘림으로 몸이 극심한 빈혈로 망가졌고, 뼈만 남은 몸을 이끌고 무리를 헤치고 예수님께 가까이 간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그러나 여인은 이러한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사력을 다해서, 그리고 마지막 희망과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부정한 병으로 사람들과 격리되어야 한다는 정결법을 어겼다는 죄책감과 혹시 자기를 아는 사람들을 만날지 모른다는 불안함과 육체의 약함이라는 한계를 넘어 예수님께로 가까이 갔습니다. 장벽이 심하게 느껴져도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기만 해도 낫다는 생각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믿었습니다.(28절)④여인의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이었습니다.여인은 소문 그대로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생각뿐인 믿음이 아니었고, 입술만의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여인의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약 2:17) 믿음을 좇아 행하는 산 믿음이었습니다.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이거나 이론적인 그런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믿음이었습니다. 사실상, 여인이 믿음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데는 가로막는 여러 장애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 자신의 수치감과 부정적인 생각 등도 극복하기 어려운 장벽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장벽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그녀에게는 더 이상 장벽일 수가 없었습니다. 여인은 모든 장애물을 뛰어넘어 예수님로 나갔고,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것입니다. 믿음을 좇아 행동한 여인은 완전히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 순간, 12 년간의 한 많은 인생이 완전히 뒤바뀌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믿음의 결과①여인의 믿음은 그를 구원했습니다.여인이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는 순간 혈루 근원이 곧 말라 버렸습니다.(29절) 스스로도 병이 나은 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간 줄 아시고 무리를 향해 말씀하셨습니다.”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제자들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따르는데 옷에 손을 댄 사람이 한 두 명입니까 하고 되물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행동을 숨길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인은 두려워하여 떨며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여인은 부정한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율법을 어긴 것 때문에 군중들을 무서워며 떨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지금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말씀드렸습니다.(33절)믿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구원을 받습니다. 치료를 경험합니다. 인생이 새로워집니다.②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이라고 불러주셨습니다.”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지어다“믿음은 이 여인과 예수님을 연결시켰고, 그리고 하나님과의 빼앗길 수 없는 흔들릴 수 없는 관계 속에 들어갔고, 그녀는 하나님의 딸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시작했습니다.또한 예수님께서 여인을 ‘딸“이라고 부르신 것은, 예수께서 여인을 사랑스런 마음으로 부르신 호칭입니다. 여인이 비록 부정에 병에 걸린 사람은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법을 어기고 예수님께 나왔지만, 예수님은 다른 것은 전혀 언급하지 않고, 예수님은 여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③예수님께서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예수님은 여인의 믿음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여인에게 그 작은 믿음을 대단히 크게 칭찬하시고 그녀를 축복하셨습니다.④평안을 주었습니다.여인은 “평안히 가라”는 말씀을 통해서, 육체의 병이 낫는 것 이상으로 큰 평안과 격려를 얻었습니다. 그동안 자신의 질병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수치심과 서러움이 단숨에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평안히 가라”는 문자적인 뜻은 ‘평안을 향해 가라’입니다. 이제 그녀 앞에는 수치와 고통과 괴로움과 불안 대신에 평안이 전개되는 것입니다. 너는 평안의 땅을 향해 가라. 네 인생은 새로워졌느니라. 약속 의 땅으로 새로운 삶을 향해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라는 축복의 메시지입니다.“평안”은 히브리 인사말이며, 고전어에서는 적대적인 무리 사이의 휴전 혹은 적의의 해소라는 뜻이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평안”은 전쟁과 다툼에 반대되는 것, 그리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회복된 올바른 관계, 마음의 평안 또는 고요 등을 의미합니다.평안이 내적인 의미의 것이든 외적인 의미의 것이든 간에 근본적으로 먼저 죄를 용서받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율법이 죄 때문에 양심을 비난하고 두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참된 평안을 얻으려면, 먼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통해 죄 사함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안이란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입니다. 은혜의 결과로서의 주어지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평안인 것입니다.⑤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의 병은 ‘천벌’, ‘괴로움’, ‘재앙’ 등의 뜻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하신 선언은 여인이 완전히 구원받은 것에 대한 보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육신의 병을 고침 받으러 온 여인에게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우리에게 여인이 지나온 12년 세월처럼, 완전히 망가져 포기한 인생의 문제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붙잡아야 하겠다는 미미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삶을 송두리체 바꾸어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여인처럼 예수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겨자씨’만큼 만이라도 있다면 그 믿음이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예수님이 축복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우리를 구원하고, 믿음이 평화를 줍니다.
혈루증 앓았던 여인의 병명은?
이종훈
닥터홀 기념 성모안과 원장이자 새로남교회 월간지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저자는 대학시절부터 성경 속 의학적 이야기에 대해 관심을 기울였다. 저서로는 <의대를 꿈꾸는 대한민국의 천재들>과 <성경 속 의학 이야기> 등이 있다.
#혈루증 앓던 여인
마가복음 5장 25절-34절
25-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26-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27-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28-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 일러라
29-이에 그의 혈로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30-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31-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니이까 하되
32-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33-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34-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
12년 간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을 생각해 본다. 혈루증은 의학적 용어로 부정 자궁출혈이라 한단다.
월경을 하는 것처럼 매일 그것도 12년간 피를 흘렸다면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까.
당시 유대인들은 월경하는 여자를 부정하게 보았으므로 이 여인의 육체적 고통 외에 정신적 소외감은 무척 컸을 것이다. 요즘처럼 냄새를 잘 흡수하는 좋은 생리대가 있는 것도 아니었을 테고.. 그래서 유명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녔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재산도 다 날렸을 테고. 남편도 자식도 없이 홀로 육체적 고통에 절망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희망적인 소식이 들렸다. 예수라는 사람이 병을 고친다는. 그래서 그녀는 예수가 오신다는 곳을 부랴부랴 달려갔겠지. 그런데 사람들 무리가 예수를 에워싸 도저히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대중들 사이로 억지로 힘을 내어 비집고 들어간다. 사람들은 염치없이 파고드는 여자에게 눈치도 주었을 터이다. 그런데 예수란 사람의 얼굴을 커녕 뒷모습만 보인다. 여인은 순간 생각한다. 능력을 행하시는 분이라면 옷자락만 만져도 치유되지 않을까 하고 그래서 그녀는 예수의 뒤로 필사적으로 이리저리 밀리며 다가갔고 아슬아슬하게 예수의 옷에 손을 스쳤을 것이다.(27-29절)
그때 여자는 몸에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묵직했던 몸이 가벼워지며 항상 불쾌했던 자궁 어딘가에 치료의 불꽃이 일어나 병의 뿌리를 살랐음을.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밀리는 상황속에서도 능력이 나간 줄을 아시고 물으셨다.(30절)
그런데 제자들은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몸에 사람들 손이 닿는 것은 당연하지 않으냐고 대응한다.(31절)
그렇다면 그 시간 안에 예수의 몸에 손을 대거나 몸으로 부대낀 사람들은 많았을 것이다.
그런데 치유받은 자는 단 한 명. 혈루증 앓던 여인이었다. 그뿐인가. 예수께서는 누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대었는지를 이미 알고 계셨다.(32절)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 또한 예수께서 무리 중에 자신을 찾는 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여자는 자기에게 이루어진 기적을 알았고 동시에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줄을 깨달았던 것이다.
34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라고.
여자에게 치유가 일어난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믿음이었다. 그 수많은 무리들 중에 오로지 믿음으로 예수께 나아간 사람은 이 여인 한 명이었던 것이다.
예수님 가까이 있으면서도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수많은 무리들이 될 것인지 믿음으로 나아가는 절박한 믿음의 소유자가 될 것인지….
열두 해를 혈루증 앓은 여인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 보시니 여자가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마가복음 5장 25~34절)
혈루증은 나병처럼 불결한 병으로 사람들이 함께 살 수 없는 병이었습니다. 육체적인 고통도 말할 수 없는데, 가족들과도 격리되어 살아야 하니 정말 무서운 병입니다. 마귀의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공격을 밝히 이 부인의 병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은 여인은 많은 의사를 만났지만 도리어 병이 중해지고, 가진 재산마저 치료비로 모두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병은 병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 병에 걸리면 가정 전체가 흔들립니다. 병에 걸리면 치료비 때문에 가계 경제가 위태롭게 되고, 그러다보면 가족 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결국 이혼이나 가정 파탄으로 이어지는 것이 현재 많은 사건입니다.
최근에는 노년에 병이 들어 의료비를 인하여 파산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것을 우리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65세부터 사망 시까지 예상되는 의료비가 8,100만 원이 듭니다. 한국 사람의 사망 원인 제 1위가 암인데, 암은 1인당 치료비용이 간암의 경우는 6,600만 원이고, 폐암의 경우에는 4,600만 원입니다. 그런데 암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일을 그만 두게 되는데, 소득은 줄고 의료비 지출이 많아져서 결국 파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 중 누가 큰 병에 걸리면, 환자의 인생뿐 아니라 가정 전체가 흔들리게 되는 것입니다.
1. 병의 배후 세력인 마귀(이와 같은 병에는 뒤에서 영적인 억압을 하는 마귀가 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사람들로 하여금 병들게 하는 배후에는 원수 마귀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좋은 일의 뒤에는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병이 걸리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싸워야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25절로 27절에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느 곳에 가시든지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아니하셨습니다. 기쁨과 평안을 짓밟는 것이 마귀이기 때문에, 마귀가 나가야 기쁨도, 평안도 회복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희망과 꿈을 빼앗는 것은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등대를 꺼지게 하는 것도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할 수 없다, 못 한다, 안 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넣는 것도 원수 마귀가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8절에 “그러니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 하였더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 혈루증과 싸운 여인
혈루증에 걸려 12년 동안 고통받았던 여인의 이야기는 참으로 처참합니다. 온갖 좋다는 약과 치료를 다 받아도 아무 효과가 없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마가복음 5장 25절로 26절에 보면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아 온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치료를 하였으나, 효과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고통만 다가옵니다.
이 여인은 열두 해를 이 혈루병과 싸우다가 지치고 피곤해져서 삶의 희망이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살 수 없다고 생각하고 인생을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어둠의 세계가 꿈과 희망을 짓밟아 버렸습니다. 절대 절망이 억압함으로 살아갈 길을 놓쳐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 여인은 하늘을 쳐다봐도 갈 길이 없고, 땅을 봐도 피할 길이 없었습니다. 병으로 인하여서 정신적인 고통이 말로 다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혈루증에 걸린 여인은 육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혈루증은 부정한 병입니다. 때문에 사람들과 접촉이 금지되었습니다. 혈루증에 걸린 사람은 보통 남편으로부터 이혼을 당하고, 공중 모임에 가지도 못하고, 성전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시체에 손을 대면 부정하게 되는 것처럼, 누군가가 자기 몸에 손을 대면 부정하게 된다니 얼마나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3. 예수님에 대한 소문 (누가 이 여인을 살려낼 것인가?)
누가 이 여인을 살려낼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정식으로 알려진 것보다도 소문이 많습니다. 거짓말도 많고, 참말도 많습니다.
이 여인이 살던 시대에는 통신이 발달되지 않았기 때문에 소문이 삶의 방향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에게 기쁨의 소문에 들려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했는데, 하나님 말씀을 공식적으로 들을 수 없는 이 여인은 시장터에나 군중들 모인 곳에 숨어서 다니다가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셔서 죽어가는 사람에게 손만 대면 낫는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좌절되고, 절망이 가슴을 짓누르고, 희망이 없는 이 여인에게 이 소문은 햇빛과 같이 비추기 시작한 것입니다. 절망에서 소망을 넣어주고, 죽음에서 생명을 넣어주고, 생기를 넣어주는 중요한 소식이었습니다.
이 여인은 이 소문을 듣고 마음에 기쁨이 넘쳐오고, 살 희망이 다가왔습니다. 마태복음 4장 23절로 24절에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의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신 동안 죄를 사하여 주는 것뿐 아니라, 병 고치는 것도 적극적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의 3분의 2는 병을 고치는 데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죄를 미워할 뿐 아니라 병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므로 가는 곳마다 병자를 위해서 기도를 해주고 고쳐주셨으니까 예수님이 가시는 곳만다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사람들을 다 고쳐주었습니다. 혈루병 앓은 여인도 좌절하고 절망하고 올 데 갈 데 없는데,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마음에 소망이 생깁니다. 희망의 빛이 비추었습니다.
이 여인이 병을 치료받게 된 것은 첫째로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마가복음 6장 56절에 “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네 믿은 대로 될 지어다!’라고 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의 몸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고 소문이 나서 그렇게 믿고서 예수님 옷자락에 손을 대는 사람은 다 나음을 입었다고 말한 것입니다.
어둡고 캄캄한 절망 속에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던 이 여자는 예수님의 옷 가에 손만 대면 낫는다는 소문을 듣게 되자, ‘예수님께 가면 나도 살 수 있겠구나!’하는 꿈을 품게 된 것입니다. 사람이 희망을 가지는 꿈을 꿀 수 있으면 내일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브라이언 트레이시(Brian Tracy)는 세계적인 강연가로서, 한번 강연에 최고 8억원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강연할 때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이 바로 “목표를 가져라”는 것입니다. 그는 “만약 여러분이 자신을 위한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면, 다른 누군가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일을 하게 됩니다(If you don’t set goals for yourself, you are doomed to work to achieve the goals of someone else.).”라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끌려가는 삶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꿈과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된다고 그는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반드시 목적이 있어야 되고, 목적을 따라서 내가 꿈을 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령이 오시면 성령이 우리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목표를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 목표를 따라서 꿈을 꾸면 하나님의 능력이 그 꿈을 이루도록 우리를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오셔서 우리에게 꿈을 주고, 목표를 주는 것을 우리는 등한히 여기면 안 되는 것입니다.
결론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긴 사건이 제일 중요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희망과 꿈을 버리고 믿음을 포기하며, 부정적인 말을 하면 마귀의 노예가 되고, 도적질당하고,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기쁨과 희망을 품고, 꿈을 바라고, 믿음을 선포하면 마귀의 일을 멸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가 기쁘고 즐거워하는 마음가지고, 소망 찬 꿈을 꾸고, 꿈을 가슴속에 품고, 믿음으로 기도하고 나가면 한 길로 왔다가도 일곱 길로 도망치는 것입니다. 마귀는 믿음의 사람을 감당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장애물을 극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칼라일(Thomas Carlyle)은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않은 사람은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다닌다. 이런 사람은 가장 편한 길에서도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른다. 그러나 사람의 방향을 결정한 사람은 가장 험한 길도 뚫고 나간다. 그리고 자기의 목적을 달성한다.”고 말했었습니다.
혈루병에 걸린 여인은 “반드시 낫겠다”는 분명한 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장애물을 다 이기고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댈 수가 있었습니다. 이 여인은 가족들하고도 만나지 못하고, 이웃도 못 만나고, 공중에 나가서 혈루병을 앓은 여인이 사람들에게 섞였다고 알면 사형에 처했던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확신이 없었다면 사형에 처하는 그러한 위험한 행동을 안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자나 깨나 예수 그리스도의 옷자락에 손을 대어서 낫는 자신의 모습을 꿈꾸며 믿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예수님이 하루 자기가 있는 곳을 지나갈 때, 그는 결심하고 군중 속에 헤치고 뛰어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자마자 나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목적과 꿈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기적을 가져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소망과 내일을 가져다주는 것이 꿈인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소망이 있고, 내일이 있는 것입니다. 꿈이 있어야 마귀에 대적하는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로 9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우리 앞뒤에 따라오면서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일을 끊임없이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귀와 싸움을 등한시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 7절에는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했습니다. 마귀를 대적하지 않고 뒤로 물러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절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는 생각이 얼마나 훌륭한 것인지 모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생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옷자락에 손을 대어 병이 낫는다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행하면, 성령께서 같이 동행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항상 긍정적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못 한다, 안 된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은 패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꿈을 가지고, 기쁨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나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생각이 긍정적이고, 항상 꿈을 가슴에 품고, 꿈을 바라보고서 기뻐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꿈이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 이루어진 모습을 가슴에 품고, 그것을 상상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과 긍정적인 꿈을 안고 기도하면 믿음이 생겨나고, 그 믿음을 통해서 사망의 세력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기적의 손길이 움직여서 임하는 것입니다.
일단 믿음이 생기면 늘 이 여인처럼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기 혼자 걸어가면서도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낫는다. 나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 대면 나으니,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댈 것이다.”라고 끊임없이 고백한 것입니다. 입술로 신앙을 적극적으로 고백하면 그것이 굉장한 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요한삼서 1장 2절)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속에 꿈으로 받아들이고 믿음으로 항상 시인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늘 자신을 축복하시기 바랍니다. 병든 사람은 “그자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 53장 5절)는 말씀을 끊임없이 시인하고 고백하면 그 말이 태산을 넘고, 바다를 가르며, 기적을 행해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 인생이 새로워져서 새 사람이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말씀을 통해서, 설교를 통해서, 소문을 통해서 생각이 긍정적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그냥 보통 말한 것도 여러분 생각의 영향력을 미쳐서 여러분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긍정적인 말을 하는 친구를 사귀고, 그런 분위기 속에 들어가서 마음이 기쁘고 감사한 생각이 되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고 난 다음에, 꿈은 항상 이루어지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꿈을 응답의 주머니로 생각하시기 때문에, 여러분이 꿈을 가지고서 입을 크게 벌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하나님이 꿈을 이루기 위해서 그에 해당하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꿈이 있으면 믿음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꿈이 없으면 믿음도 안 생겨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얻기 위해 기도하고 애썼지만 응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꿈이 없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늘을 쳐다보게 하고, 별들을 헤아리게 하십니다. 마음에 꿈을 품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꿈의 사람이 되자 비로소 응답이 임한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무엇을 바라시는 것입니까? 여러분이 바라는 것을 꿈으로 꿈꿀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꿀 수 없으면 종이를 끄집어내어서 적어야 돼요. 기록하면서 생각해봐야 되는 것입니다. 이루어진 모습을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마음판에 새기고, 벽에다 붙여놓고, 들어오며 나오며 그것을 읽고 꿈을 꾸면,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성령은 긍정의 영이십니다. 꿈으로 마음이 준비되고, 늘 긍정적인 생각과 고백을 하는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성령은 긍정적인 생각의 주머니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같이 역사하여 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꿈을 꾸는 영인 것입니다. 성령은 여러분 속에 들어와서 꿈을 심어주고, 꿈은 여러분 인생을 이끌어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자, 제자들과 따르던 사람들은 다 도망을 치고 흩어집니다. 베드로는 도로 물고기 잡으러 가고, 아무도 남는 자가 없었습니다. 두려워 떨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 날에 성령이 임하시고 제자들의 마음에 임하시면서 그들에게 꿈을 주십니다. 성령이 임하였다는 것은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는 꿈을 꾸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시고 난 다음, 제자들의 마음속에 꿈이 생겼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로, 사마리아로, 땅 끝까지 이르러 말씀을 증거하는 꿈을 받은 사람은 그 꿈 대로 복음을 전파하여 오늘날 복음이 온 천지에 충만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꿈이 들어오면 여러분이 나아갈 길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성령은 와서 단순히 방언이나 하고, 진동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이 여러분 마음속에 ‘무엇을 할까? 어디로 갈까?’ 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꿈을 놓치지 아니하면 망하지 않습니다. 꿈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꿈이 있는 백성은 망하지 않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지금 상당히 정치적으로, 군사적으로, 지정학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지만,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한국에 교회가 있고, 성령이 임하여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여러분 속에 성령께서 인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사이 우리나라가 어떻게 될 것이냐, 그 질문을 종종 해 옵니다. 며칠 전에도 우리 한국에 훌륭한 정치인이었던 한 분이, “목사님, 어떻게 할까를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우리 한국이 살아나가겠습니까?” 그래서 내가 “꿈을 꿉니까?”, “꿈을 안 꿉니다.” “그러니 문제가 있지요.”
비록 현실에 참으로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 꿈을 꾸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입을 넓게 열고 기다리면,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되겠다는 꿈이 임하여 옵니다. 꿈이 오면 그 꿈을 따라서 나가야 되는 것입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폭풍우가 불어와도 그 바람을 이용해서 풍차를 돌릴 꿈을 이루는 것입니다. 기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국이 내일을 향한 아름다운 꿈을 꾸고 있는 이상 한국은 끄떡없습니다.
내가 그 정치인에게 “희망을 가지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한국에는 나같이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꿈을 꾸고 있으니깐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니깐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꿈이 있어야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꿈도 없는 사람이 믿는다고 해가지고 무엇을 믿는 것입니까? 아무것도 못 믿는 것입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있어야 이 산더러 명하여 바다에 던져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인생이 허무하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 성령께서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하게 얻는 길을 열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마음에 생겨서 일단 마음에 평안이 오면 그 믿음을 계속해서 반복 말을 해야 됩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입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는 나음을 입었다.” 믿음의 사역을 입술로 고백을 하고 시인을 하면, 그것이 굉장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혈루병 앓은 여인은 그대로 놔뒀으면 좌절하고 절망하고 희망을 잃어버리고 죽었을 것인데, 떠돌아다니는 소문만 들어도 그 소문을 깊이 생각해서 꿈을 꾸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그 옷자락에 손만 대어도 낫는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래서 그 꿈속에 살 때, 그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꿈 꾼대로 군중 속에 헤치고 들어가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니깐 깜짝할 사이에 나아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런 기적이 여러분에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하나님을 만나 뵈어야 기적이 일어나지, 만나보지 못 한다면 헛수고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큰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예수님 앞에 나가서 예수님을 만나서 기적이 일어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여러분 기적이 일어나야 되는 것입니다.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기를, “지금까지 너희는 내게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내가 가고 난 다음 이제부터 내게 구하라. 그러면 이루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이든지 주님 앞에 구하고, 믿고, 감사하고, 따라가면 기적이 일어나고,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원수마귀는 어둠에서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해도, 원수마귀에 따라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꿈을 갖지 않고, 그냥 빈 손들고 왔다갔다합니다. 어떠한 기적도 기대하지도 않으면 마귀가 성공했지요. 그러나 우리는 마귀를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치게 만들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기쁨과 감사가 충만해지면, 기쁨과 감사는 마귀하고 대적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가지고 마음속에 꿈을 품고, 믿음을 가지고, 계속 입으로 시인하면, 기적이 따라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곱고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좀 더 적극적으로 기도를 하십시오. 육신의 아버지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를 원합니다. 하물며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크고 깊습니다.
여러분 기도할 때 한 번 제가 시키는 대로 해 보십시오. “아빠! 아버지! 나는 아버지께 기도하고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 아버지도 “오냐, 사랑하는 아들아, 사랑하는 딸아, 뭘 원하니?” 그렇게 가까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굉장히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기 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가서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할 때,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능력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께서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고 항상 같이 계시므로, 성령은 젊은이에게는 환상을, 늙은이에게는 꿈을 주십니다. 어제 어떠한 외국인이 제게 “한국은 상당히 위기에 처해있고, 한국이 이렇게 살아나갈지 모르겠다.”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당신은 한국을 모릅니다. 한국은 이보다 더 어려울 때도 살아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는 6만여 교회가 있습니다. 교회 속에 성령이 계십니다. 성령이 우리 속에 함께 계신 이상, 우리는 살 것을 생각하고, 기적이 일어날 것을 생각합니다. 새벽기도에, 철야기도에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기도우너에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예배마다 간절히 기도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기도들이 모여서 큰 힘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성령께서 우리 국가에 임하여 계시고, 우리 성도들 가슴속에 임하여 있으므로, 우리가 성령과 더불어서 생각을 같이 하고, 꿈을 같이 하고, 그리고 믿음을 같이 믿고, 입술로 창조적인 고백을 같이 하면, 어둠이 변하여 빛이 되고, 죽음은 변하여 생명이 되고, 실패는 변하여 성공으로 변화되게 되는 것입니다.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브리서 10장 38절)고 하신 말씀하신대로, 우리는 뒤로 물러가지 말고, 두려워하고 놀라지 말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앞서 나가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이 열두 해 혈루증 앓는 여인처럼 어렵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합니다. 마귀는 부정적인 생각, 패배주의적인 생각을 심어주시만, 악한 마귀가 주는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성령 안에서 늘 긍적적인 꿈과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와도 주 안에서 반드시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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