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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이나 오강남 교수를 호되게 비판하는 이유는. “도마복음은 114장(114마디)으로 구성된 예수의 어록이다. 아주 얇지만 온전한 예수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리 어렵지 않은 예수의 가르침을 불필요하게도 유교나 불교, 도교의 틀로 해석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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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에 관한 김용옥씨의 이해는 기독교를 파괴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그의 도마복음 이해는 심하게 왜곡되어있습니다.
도마복음은 정경이 아니며 그에 대한 정당한 이유가 있다는 것과
김용옥의 도마서 1장 해석을 교정함으로써
예수의 그리스도 되심을 변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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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도마복음’에 흥분하는 것일까? – NEWS M

당시 ‘도마복음’ 논란의 중심에는 로 잘 알려진 오강남 교수의 (예담, 2009년)와 도올 … 박 목사는 “그(도올)는 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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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m.com

Date Published: 3/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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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글 – 도마복음의 진실 (+ 한글번역)

비록 이 글에서 영지주의자들에 대한 구체적 비판을 제시하지는 않겠지만, 도마복음 문제의 핵심에 있는 그들에 대해 간단한 소개를 하는 것은 불가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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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aram.org

Date Published: 6/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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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은 정말 위경인가?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도마복음과 예수의 진짜 가르침 ☜ 누르세요 … 이에 대해서는 도올이 책 군데군데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도마복음이 왜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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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onlgt2.tistory.com

Date Published: 9/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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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구원이 해탈과 득도?… “도올의 과도한 비약”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 ‘도마복음…’ 비판. △차정식 교수. c 크리스천투데이 DB. 도올 김용옥 씨가 최근 ‘도마복음한글역주'(통나무)를 완간하며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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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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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 (23) < 강동선 < 기획.특집 < 기사본문

도올은 하나님 부르시기 전에 제발 그놈의 큐와 도마책 판타지 집어 던져야 한다. 반복 언급했듯이 큐(Q)란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 속엔 없 고 마태와 누가에만 있는 공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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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heresy.com

Date Published: 7/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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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1)” – 당당뉴스

사실 도올이 제시한 큐신학이나 도마복음 이야기는 현대 신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 이런 제가 구분을 하는 것이 아니고 비판을 한다고 보시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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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angdangnews.com

Date Published: 2/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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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복음서 – 나무위키:대문

도마복음에서의 예수는 전체에 걸쳐 일관되게 형식보다는 마음을, 가식보다는 솔직함을 … 따라서 토마스 복음서에서는 가식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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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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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아닌 ‘깨달음’ 강조해 ‘도마복음’은 정경이 되지 못했다

도올은 도마복음을 신약성서 복음서의 원형으로, 예수를 “니체보다도 더 본질적인 무신론자”이며 구약의 하나님과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아버지의 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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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daily.co.kr

Date Published: 11/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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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도마 복음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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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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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 해설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 펴낸 치과의사 박세당

도마복음 해설서 ‘예수는 이렇게 말했다’를 펴낸 치과의사 박세당씨는 “편협한 기독교인들에게 예수의 참 모습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도마복음은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 나그함마디 야산 기슭에서 발견된 복음서. 기독교 4대 복음서(마태·누가·요한·마가복음)가 예수의 삶을 담고 있다면 도마복음은 114개의 단편적인 예수의 말씀으로 이뤄진 순수한 예수 어록이다. 서문에는 예수의 12사도 중 한명인 도마가 기록한 것으로 돼 있다. 이단의 문서로 취급됐다. 저작 시기는 4대 복음서보다 앞섰다는 견해, 1세기 후반설 등 논란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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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도마복음’에 흥분하는 것일까?

2010년을 전후로 한국에 쏟아져 나온 ‘도마복음’ 관련 서적들은 당시 교계에 열띤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도마복음’ 논란의 중심에는 <예수는 없다>로 잘 알려진 오강남 교수의 <또다른 예수>(예담, 2009년)와 도올 김용옥 교수의 <도마복음 한글역주1,2,3>(통나무, 2010년) 등이 있었다.

최근 이들은 SNS와 언론을 통해 도마복음에 대한 소개와 새로운 해석을 내놓으면서 2차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오강남 교수는 자신의 SNS와 모 기독언론을 통해 도마복음 114개의 어록에 대한 소개와 재해석을 연재하고 있으며, 도올 김용옥 교수는 자신의 유투브 채널인 ‘도올TV’를 통해 <도올 김용옥 기독교 성서 이야기: 도마복음 강해>를 현재 28강까지 소개하고 있다.

도마복음 파피루스

“도마복음은 새로운 복음이다”

특히 김 교수는 도마복음 강해를 시작하기 전 ‘도마복음을 말한다’는 제목으로 한신대 명예교수 김경재 목사, 오강남 교수 등과 함께 2010년 대담한 내용을 ‘도올TV’에 소개하면서 도마복음 논쟁을 시작했다.

한신대 명예교수인 김경재 목사는 이 대담을 통해 ‘도마복음’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열린 자세를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일반사람에게는 (도마복음이) 외계인의 담론으로 들릴 수 있다. 개신교는 종교개혁 이후에 경전의 종교가 되었다. 이렇게 4-5백년을 지내온 사람에게 도마복음은 외경 내지는 위경으로 평가절하 될 것이다. 경전종교에 세뇌가 되지 않은 사람에게는 열린 마음으로 풍요로운 정신적 문화의 향상을 위한 자료로 환영할 것 같다. 두 그룹으로 나눠질 것 같다.”고 평했다.

또한, 기독교의 사회적 위기를 지적하며 호불호를 떠나 초기 말씀 어록을 읽어 볼 것도 권유했다.

그는 “한국 기독교가 최근에 일반 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인기가 없는 종교가 된 것은, 기독교가 너무 딱딱한 교리적 종교로 변해버렸다는 것과 예수를 엄격한 도덕적 훈계자로 가르치든지, 삼위일체 존재 속에 넣어서 초자연적 신적 존재로 세뇌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 코드가 안 맞으니까 외면하고 떠난 것이다”라며 “일단 교리나 도덕체계에 포장되기 이전에 실제적으로 역사 속에서 살았던 솔직한 예수를 만나보고 싶다면 그의 초기의 말씀 어록을 집대성한 것을 찾았으므로 호불호를 떠나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투브 채널인 도올TV에서 소개한 ‘도마복음을 말한다’의 한장면(좌로부터 정강길 실장, 도올 김용옥 교수, 김경재 목사, 오강남 교수)

‘예수는 없다’의 오강남 교수는 ‘도마복음’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것을 주문했다.

오 교수는 “기독교에 이런 전통이 있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도마복음에서 발견되는 예수는 공관복음에서 다루는 예수와 너무나 다르더라. 공관복음에서는 ‘나를 따르라’, ‘나의 제자가 되라’, 요한복음에서는 ‘나를 믿으라’라고 말한다. 그러나 도마복음에서는 ‘깨달아라’,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을 찾으라’ 라고 말한다. 이건 기독교에서 듣지 못했던 새로운 복음, 새로운 예수님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도올 김용옥 교수는 도마복음이 4복음서에 선행하는 자료로 예수께서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도올은 “도마복음 자료는 현행 4복음서의 핵심자료와 거의 중복이 되고, 114개의 말씀자료라는 것이 워낙 치밀한 구성자료를 가지고 있다. 중간 몇 개는 후대에 성립할 수 있으나, (도마복음이) 4복음서 이전 자료로서 공관복음서 저자들이 이 자료를 참고해 가면서 어떻게 변형시켜갔는가를 (제 책을 통해) 상당히 치열하게 다뤘다”라며 “도마복음에 기초해서 역사적 예수의 상을 철저하게 새로 그려야 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예수는 아시아적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분이라는 점이다. ”고 주장했다.

“위경으로 순진한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지 말라”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 대해 교계 내부에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 주류이다.

한일장신대 차정식 교수는 김용옥 교수의 ‘도마복음’에 대해 일부 학자들의 의견을 대세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김씨는 도마복음이 영지주의 사상에 기초해 기존 복음서의 내용을 짜깁기한 후대의 외경문헌이 아니라 그것들 본래의 원형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로 로빈슨, 크로산 등 서구 학자들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라며 “도마복음이 예수의 본래적 원형을 담아내고 있다는 주장은 도올의 말대로 학계의 대세가 아니며 일부의 주장일 뿐이다. 그가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크로산을 비롯한 학자들은 북미 성서학계의 지극히 적은 일부 신약성서학자들 및 고대기독교문헌학자들이다”고 반박했다.

장신대 김철용 교수는 ‘도마복음’이 왜 정경과정에서 퇴출되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복음서가 네 권으로 형성된 것에는 ‘정경의 형성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도마복음’은 정경에서 제외됐다. 오늘날 ‘위경이라고 한다. ‘도마복음’은 왜 퇴출되었는가? 다양성만 이야기 하지 말고, 통일성도 말해야 한다. 무조건 다양하다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전체가 동의하고 공감할 수 있으며 역사적 예수와 초대교회 성장과정에 대한 정확한 묘사가 있을 때 다양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교계의 반발도 적지 않았다.

서울 큰나무교회 박명룡 목사는 모 기독교 매체에 실린 ‘기독교 안티에 답한다’라는 글을 통해 도올의 ‘동양적 범신론’을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목사는 “그(도올)는 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일까? 그 표면적 이유는 기독교가 너무 기득권층이 되었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올바르게 전파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그보다 심층적 이유는 그의 철학적 전제 때문이다”라며 “도올의 신관과 기독교의 신관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를 철저히 비판한다. 도올의 신관은 ‘동양적 범신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중국의 일원론 사상에 근거해 우주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신이고 인간을 포함한 유기체로서의 전 우주 자체가 신이라고 믿는 범신론적 신관을 가지고 있다. 도올은 이 동양적 범신론적 신관의 잣대로 기독교 신앙을 비판하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들소리신문의 발행인인 조효근 목사는 “기독교의 보편적 신학에서는 오강남 교수의 이원론에 기초한 영지주의(Gnostic)적 견해와 단성론(예수는 피조물이다) 신학은 비(非)기독교 신학으로 이미 단정한지가 1천6백 여년이 지났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오강남 교수는 자기의 비교종교학 실력으로 착하고 순진한 기독교 신자를 유혹하려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경고했다.

도마복음은 1945년 12월 무함마드 알리라는 이집트 농부가 다른 몇사람과 함게 나일강 상류 나그 함마디(Nag Hammadi)라는 곳에서 땅을 파다가 토기 항아리가 있는 것을 발견했는데, 그곳에서 52종의 문서와 함께 발견된 것으로 예수의 열두제자 중 한 사람인 디두모스 유다 도마가 썼다고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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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복음은 정말 위경인가?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

주) 이 글은 아래 글의 속편이니 아직 읽지 않으신 분은 먼저 읽고 오시길 바란다.

도마복음과 예수의 진짜 가르침 ☜ 누르세요

내가 김용옥의 TV강의를 좋아하는 이유는 우선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제일 중요한 부분이다.

아무리 많이 알아도 전달방법이 서툴러 청강자들이나 독자들로 하여금 졸게 만드는 교수들은 대승학자로서의 자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놀랄만큼 다방면의 뛰어난 지식과 능변으로 무장한 김용옥의 강의는 언제나 재미가 있다. 때때로 스스로의 강의에 도취되어 자화자찬하는 귀여운(?) 모습과 또 그것이 쑥스러워 씨익 웃는 모습은 소박한 인간미마저 느끼게 한다.

강의건 저술이건간에 남의 눈치를 보지 않으니 그 표현은 언제나 직설적이며 정곡을 찌른다. 물론 이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욕을 들어 먹기도 하지만 이는 그만큼 자신의 학문에 대해서 자신감이 넘친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늘의 독후감은 도올의 도마복음한글역주이다.

1권은 도마복음에 관련된 지역들을 직접 다니면서 보고 느낀 여행기겸 도마복음에 얽힌 주변 이야기, 예수 당시의 시대적 배경, 성경의 역사등을 실었는데 아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다. 거의 매 페이지마다 실려 있는 본문과 관련된 풍부한 사진들은 내용의 이해를 더욱 깊게 해준다.

2권과 3권은 도마복음의 직접적인 해설부분이다. 참고로 1,2권은 중앙일보 선데이판에 2년간에 걸쳐 연재되었던 부분을 책으로 그대로 옮긴 것이며, 3권은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다.

인터넷에 보면 일부 사람들이 도마복음의 직접적인 해설과 상관이 없는 1권을 건너뛰고 2,3권만 읽으면 된다고 추천하는데, 이는 도마복음의 이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절대로 비추하는 방법이다.

도마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의 성립과정과 그 역사, 예수 당시의 시대적 상황 그리고 도마복음이 왜 2000년간이나 컴컴한 항아리속에서 잠들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상세히 설명해 놓은 1권부터 읽어야 한다. 도올이 괜히 도마복음의 내용과 직접적인 상관이 없는 책을 1권으로 만들어 놓았겠는가?

1,2권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신문에 연재를 해서인지 엄청난 분량의 자료사진들과 함께 그 내용도 재미있고 쉽게 이해가 되는 반면에, 3권은 단행본만으로 출간이 되어 설명의 수준이 조금 올라 갔는지 앞의 두 권보다는 이해하기가 좀 어려웠다. 그리고 아무리 도올이지만 애매한 부분에서는 좀 두리뭉실 넘어가는 부분도 있는 듯한 느낌을 가끔 가졌다 (이는 개인의 무식한 생각일 뿐이다). 또, 도올은 책 속에서 누가 읽어도 명백한 개체적 “깨달음”의 상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빛”이라는 은유적 단어로만 표현 하고 있다. 이는 한국적인 종교적 상황과 함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난 도올이 실존적 내면의 고민을 겪고 있다고 고백한 개인적 심리상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나의 생각일 뿐이다. 특이한 것은, 기성 교단에서 왕따 당하다시피 하는 도올이 책 속에서 개인적인 종교관을 솔직하게 펼치고 있다는 점이다. 관심있는 분들은 일독해 보시길 바란다.

도마복음의 발견과 현재까지의 경과

1945년 12월, 이집트의 남부 엘 카스르 마을 부근의 한 절벽밑에 숨겨져 있던 항아리 안에서 일단의 고문서 다발이 마을 아이들에 의하여 발견되었다. 판독결과 그 가치를 계산할 수 없을만큼 소중한 초기 기독교의 경전사본들이었고 곧 <나그함마디 문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리고 이 <나그함마디 문서>에는 오늘날 신약성경의 말씀들을 송두리째 뒤엎어 버릴 수 있는 핵폭탄급 내용을 담고 있는 도마복음도 있었다.

그 후, 7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럽을 비롯한 몇몇 나라의 학자들에 의하여 도마복음에 대한 연구와 분석이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까지의 연구 결론은 도마복음이 예수의 진짜 말씀에 가장 근접한 경전이며 오늘날 신약성경의 공관복음들이 도마복음을 기초로 하여 집필 되어졌음이 거의 확실하다고 판단한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기존의 교단을 뿌리채 흔들 수 있는 도마복음을 위서로 단정하여 아직까지 연구조차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도올이 책 군데군데에서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도마복음이 왜 중요한가? 오늘날 우리가 보는 신약성경은 AD367년에 아타나시우스 주교에 의하여 정경으로 선택된 27권이다. 그리고 이는 예수의 말씀이 아닌 것들을 걸러 냈다는 교회의 설명과는 달리 처음부터 철저하게 교단적, 정치적 목적에 의하여 취사선택 되었으며, 선택받은 공관복음들은 예수에게 신성을 부여한 기자들에 의하여 처음부터 철저히 왜곡된 채로 저술되었다 는 것이다.

어쨌거나 이 27권의 정경들은 신약성경이라는 이름하에 오늘날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정경으로 선택받지 못한 그 외의 모든 경전들-영지주의의 내용들을 담고 있던-은 그 즉시 소지금지의 명령이 떨어지고 불태워졌다).

그러나 이러한 횡포에 항거한 초기 기독교의 일부 수사들에 의하여 도마복음을 비롯한 초기 경전들의 일부는 기적적으로 항아리 속에서 살아남아 왜곡이나 삭제, 변형없이 2000년 전의 예수말씀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그함마디 문서>들이 진본이라면 우리는 이 속에서 당연히 초기교회의 진정한 모습과 예수의 진짜 가르침을 알 수 있다.

불행하게도 도마복음은 정경으로 채택되면 오늘날 기성 교회는 그 존립을 위협받거나 교리를 대대적으로 수정해야 할 만큼 파격적인 내용들을 담고 있다.

도마복음의 내용 114절에 달하는 도마복음에 있는 예수의 말씀에는 현재 기독교가 주장하는 말세론이나 천당, 지옥의 이야기가 없다. 천국은 하늘에 있지 않고 각 개인의 깨달음에 있다고 단언한다. 따라서 기적, 예언의 성취, 부활이나 대속, 최후의 심판같은 표현도 없다. 예수 자신을 메시아나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표현도 없다. 신성을 부여받은 그리스도로서의 예수가 아니라 인간 현자로서의 예수가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각자의 깨우침을 독려하는 “깨달은 자”로서만 나타난다. 이는 말할 필요도 없이 붓다의 가르침과 노장사상을 연상시킨다. 참고) 누가복음에도 비슷한 구절이 남아 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안에 있느니라 (누가 17:20~21)”

도마복음의 존재는 진작 예측되었다!

신약성경의 복음서를 보다 보면 각 복음서의 내용들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예를 들면, 마가복음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의 내용과 겹친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반 이상이,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은 1/3 정도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마가복음이 예수 사후 40년정도가 지나 집필된 최초의 신약경전이라는 것이 정설인 만큼, 마태와 누가는 마가복음을 책상 앞에 펼쳐놓고 자기들의 복음서를 집필하였음이 틀림없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문제는 마가복음에 없는 내용인데도 공통되는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1838년 라이프치히 대학의 바이세라는 학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또 하나의 문서가 반드시 존재했으리라는 추측을 했고 그 이름을 Q자료라고 명명하였다. 연구를 더 진척시켜 본 결과, Q자료는 순수하게 예수의 말씀만으로 이루어진 “가라사대” 복음일 것이라는 것까지도 밝혀졌다. 1945년, “가라사대”로만 이루어진 도마복음이 발견되고 마가복음과 상관없는 중복된 내용들이 도마복음에서 확인되었다.

따라서 도올은 주장한다.

도마복음이 만약 위경이라면 4대 복음서 또한 위경들이 되어야 한다고.

(주: 여기에 대한 국내 기성교단의 입장은 다음과 같다. 즉, 4대복음서에 있는 진짜 예수님 말씀에 거짓을 교묘하게 덧붙여 놓은 것이 도마복음서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마복음의 내용과 상관없이 4대 복음서는 진짜 예수님 말씀이고 도마복음은 사악한 위경이라는 것이다. 글쎄…이미 도마복음서에 대해 세계적인 연구기구까지 만들어져 있고, 그 연구 결과도 도마복음을 인정하고 있는 추세에 한국교단만 독불장군식으로 거꾸로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이유야 뻔하게 짐작이 가지만…여기에 대한 것은 각자가 판단하시기 바란다.)

이후 생략하니 자세한 흥미진진한 내용은 도올의 책으로 읽어 보시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도마복음에서 예수가 설파하신 깨달음에 이르는 길을 도와 주는 보석같은 책들을 몇 권 소개한다. 원작이 외국책인 경우 번역이 다 훌륭한 것은 아니지만, 뜻을 이해하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책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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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위 동영상 강의는 본문의 이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유튜브에서 인용하였습니다.

도올의 기독교관을 비판함 (23)

도올의 교만은 끝이 없다. 그의 의 p.303에는 “앞으로 새로운 종교혁명이 일어난다면 신약성서의 재편집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제5 복음서로 도마복음서가 들어가고 요한계시록이 탈락되는 27서를 구상할 수도 있다. 인도불교가 선불교에로의 격의(格義, 교리를 비교하고 유추함, 필자 주) 과정을 거쳤다면 로마 중심의 서구기독교가 동방의 선(禪)기 독교회로 트랜스포메이션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은 하나의 역사적 필연이다. 이러한 생각이 나의 신념이요 사명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도올은 앞으로 종교혁명이 일어날 텐데 신약성경의 27서에서 요한계시록을 빼고 도마책을 성경에 끼워 넣자는 얘기다. 건방지고 교만한 멘탈이 내뿜는 怪聲 이다. 누구 맘대로 성경을 넣다 뺐다 한단 말인가! 이 사람이 뭐 좀 안답시고 뭘 잘 모르는 대중을 현혹시켜 보더니, 맛을 들인 모양이다. 요한계시록을 ‘미친 소리’라고 떠들어대더니 빼고 도마책을 넣겠다? 성경이 골목 엿장수 맘대로 되는 줄 아는가 보지?

성경은 두려우신 하나님의 말씀계시(神言啓示)다.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건드리면 심판받는다. 도올같이 망령된 말 하는 자가 있을 것이기에 성경 스스로가 선포하고 있다. 성경에서 한 글자라도 더 하거나 빼면 거룩한 성에 출입 금지 시키고 성경에 기록된 재앙을 내리 시겠다고 하셨다.(계22:18,19) 도올은 명심해서 두렵고 떨림으로 회개할 기회를 얻기 바란다.

도올의 도마책 세일은 지겹도록 진부하고 타당성 제로이고 혹세무민의 프로파간다(선동)일 뿐이다. 계시록을 빼고 도마책을 넣는다? 뭐 종교혁명 어쩌구? 기독교가 동방의 禪기독교회로 둔갑해야 한다? 욕심도 크다만 이야말로 클리쉐(cliche, 진부한 말)가 아닌가. 도올은 성경 보고 클리쉐라 했는데, 이야말로 도올이 자기 영혼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성 경 계시를 떠나거나 비난하고 다니면 영혼이 진부한 세상 지식이나 오염된 정보들로 인해 크리쉐가 난무하는 정신일 수 있다. 큐 자료와 도마책 가지고 예수교란 걸 만들자고 하더니 기독교가 동방의 禪과 합종연횡까지 하란 말인가? 도올은 이런 헛소리를 언제까지 떠들고 다닐 것인가?

도올의 영혼은 그놈의 Q자료와 도마책에 올인 돼 있다. 이것들을 가지고 예수교를 만드느니 뭐 禪교와 합하느니 난리 부린다. 앞에서 누누이 말했지만, 그의 야심은 이 두 개로 66 정경을 대체한 예수교란 걸 만들고 싶어 안달인 것이다. 사도들이 전한 케리그마(복음 선포, 설교)는 모두 부풀리거나 사실이 아닌 것들을 교회 유지용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 에 신뢰할 수 없으니까 지성적이고 스마트한 큐와 도마책으로 기독교를 대신한 예수교란 걸 해 보고 싶다는게 도올의 생각이다.

이는 도올의 정신이 뭔가에 홀린 착란(錯亂) 증상일 것이다. 뭐에 홀렸나? 큐와 도마란 걸 매개로 한 사악한 영에 접신 돼 그럴 것이다. 인간의 정신은 영적 세력들의 전쟁터이기도 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유일 구주되심을 훼방하고 안티 할 때는 제정신만으론 못한다. 도올로 하여금 그 많은 수고를 통해 중동을 현지답사하고 사계의 권위 학자들을 만나 토크 하는가 하면 여러 방송과 저술로 성경과 기독교를 비난하고 험담을 날리는 건 홀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런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주는 영이 있는 것이다.

성경 스가랴 3장에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여호와의 천사 앞에 섰는데 사탄이 그의 오른쪽에 서서 그를 대적하고 있는 것을 여호와께서 스가랴에게 보여주셨다. 이때 여호수아의 옷은 더러워 있었고 여호와는 천사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고 죄악을 제거하사 아름다운 옷을 입히고 머리에 정결한 관을 씌워 주시매 사탄이 물러가고 천사가 그를 지켰다.

이와 같이 사람의 영혼은 사탄의 공격에 노출된 상태다. 여호수아의 죄악이 사탄을 불러들였고 사탄은 여호수아의 죄악을 매개로 그를 대적한 것이다. 도올이 자신의 영혼에 접신된 어둠의 세력을 봐야 한다. 성경을 비난하고 구주 예수를 향한 참람한 주장과 행위들은 모두 사탄을 불러들이는 원천들이다. 여호수아처럼 영혼의 옷이 더러워지지 않았나 반성과 회개가 따라야 한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회개하고 죄악을 버려 아름다운 옷과 정결한 관을 얻은 것처럼 도올도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어떻게 신앙의 가정, 게다가 일생을 새벽기도 하신 어머님을 둔 자가 세상에 할 일이 따로 있지 성경 비난 구주 예수 폄훼, 교회를 향한 악담을 서슴지 않는단 말인가? 도올의 죄악은 단순한 교회 비난이나 평가 정도가 아니다. 기독교회의 신앙 핵심 도그마를 완전 파괴하고 성경 자체를 전면 부정케 하는 죄악 중에도 (철저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는 한) 용서받지 못할 큰 범죄를 쌓고 있다. 역사상 이단 중에도 이렇게 큰 이단은 아마 흔치 않았을 것이다.

도올은 하나님 부르시기 전에 제발 그놈의 큐와 도마책 판타지 집어 던져야 한다. 반복 언급했듯이 큐(Q)란 없는 것이다. 마가복음 속엔 없 고 마태와 누가에만 있는 공통 구절들을 모아서 이것이 단독으로 있었던 것처럼 고안해낸 가공물로서 학자들이 만든 가공 모조품인 것이다. 누가 그것을 본 적도 없고 세상에 드러난 일이 없는 것을 마치 있는 것인 마냥 선전할 뿐 아니라 심지어 큐 공동체가 있었다면서 복음서가 그것을 인용한 것처럼 떠들어대니 일종의 지적 사기행각인 것이다. 그걸 뭐 오리지날 성경인 것처럼 설치는 자들이야말로 뜬구름 잡으려 돌아다니는 격이며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 날 것이다. 없는 것을 만들어 사람들 속이고 성경의 권위를 훼손시키는 죄가 가벼울 것인가?

그래야 현존하는 기독교 신앙의 체계들을 부숴버릴 수 있기 때문일 것 인데 그놈의 50년대 설을 누가 인정하겠나? 혼자 떠드는 허설(虛說)일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학계는 1세기 말이나 2세기 초에 성립됐다는 게 연구가들의 다수가 지지하는 설이다. 하지만 훨씬 후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방면 연구가인 김기천 목사는 도마책이 인도종교와 혼합된 것이며 2세기에서 3세기에 작성된 것이고 아무리 초기로 올라간다고 해도 AD. 175년에서 180년 이상일 수 없으며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 영지주의가 한창 번창했을 때 기록된 밀교적 성격의 문서라고 했다. (당당뉴스, 2010.11.2.)

도올의 3 (통나무, 2010)에의 표지에는

“도마복음은 현행 4 복음서와는 별도의 외경적 문헌이 아니다. 그것은 4 복음서의 뿌리이며 4 복음서에 내장되어 있는 진실이며 기독론, 종말론 이전의 예수교의 실상을 밝혀주는 빛이며 새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이다.”라고 선전하면서 세계 각처의 전문가란 학자들의 도올에 대한 칭송으로 도배하고 있다. 이 선전문에서 보듯이 도올은 도마책을 4 복음서의 뿌리로 보고 있다. 그걸 고집하려고 도마 50년대 설을 줄기차게 물고 늘어진다.

도올이 아무리 세계적 권위란 사람들 동원하면서 악을 써도 도마책이 4 복음서의 뿌리일 수 없다. 50년대 설 주창자는 도올을 비롯한 극소수이며 그 설이란 연구의 객관성이 담보되지 못한 일종의 이데올로기 수준 이다. 도올은 객관성 결핍의 나 홀로 방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학자는 이데올로기를 휴대해선 신뢰 얻지 못한다. 어디까지나 연구의 객관성이 담보돼야 한다. 50년대 설이란 사실 도올의 기존 기독교에 대한 증오심이 그 배경일 것이다.

이놈의 기독교 신앙을 파괴해야겠는데 그러자니 복음서들이 큐와 도 마책이란 것에서 베껴온 거라 떠들어야 말이 되겠다 싶은 거다, 하지만 도올은 헛수고요 해롭기만 한 중노동을 사서하고 있다. 뭘 모르는 사람 들이야 외국의 학자들 이름도배하면서 떠들면 속겠지만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는 이런 행각이 어둠의 영과 함께 하는 작업이란 걸 쉽게 알아 버린다. 누굴 속이려 드는가? 방송에 나가 떠들고 책이랍시는 걸 마구 뿌 려대면 거기 넘어갈 줄 알지만, 아니다. 도올이 하나님 앞에 셀프 罪를 축적할 뿐이다.

하나님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비방하는 것에 대해,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선비가 어디 있느냐 이 세대에 변론자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신 것이 아니냐” (고전1:20) 하신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지혜를 미련한 것으로 취급하신다는 말씀이다. 사람의 영혼이 미련해지면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 하고 다닌다. 그때 그의 지혜는 이미 미련한 물건이 돼 버린 것이다. 시편 14편 1절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하셨다.

지혜가 어두워져 미련해지고 어리석어지면 무서운 것이 없어지고 하나 님의 신성한 계시와 구원 역사를 파괴하려는 사탄이 주는 교만과 영웅심 이 작동되게 마련이다.

도마책 50년대 설은 아무 근거도 없는 토크이며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의도로 불어대는 질 나쁜 선동일 뿐이다. 이것에서 4 복음이 영향받은 것처럼 떠들면서 사람들 현혹하고 교회 신앙 파괴시키는 행위는 마치 남 유다 왕 여호야김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면도칼로 잘라 화롯불에 던져 불태웠던 케이스와 유사한 범죄행위다. (렘36:20-26) 그 여호야김 왕은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체포되어 쇠사슬로 결박당하고 바벨론으로 잡혀가 바벨론 신당에 갇혔다. (역하36:5-8) 하나님의 말씀을 해하는 자의 미래가 평안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도올이 그 50년대 설을 주장하려면 이데올로기적 선동을 할 게 아니고 하다못해 고문서 연대 측정 기술상의 증거라도 내놔야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마구 억지 주입시키지 말고! 아람어 권 예수 전승 연구 분야서 20세기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독일의 신약학자 예레미야스 (Joachim Jeremias)의 지도를 받은 딘 오버맨(Dean Overman이 쓴 A case for Divinity of Jesus에 의하면 “도마복음은 문학적 장르로 볼 때 복음이 아니며 영지주의 신화를 담고 있고 우리에게 예수에 관하여 독자적이고 역사적이며 믿을만한 정보를 전혀 제공하지 않고 있다. 도마복음은 4 정경 복음의 혼합서인 시리아 혼합 복음서로부터 파생된 2세기 후반의 저작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복음(필자의 표현으론 도마책)을 옹호하는 학자들은 구체적 증거 하나 없이 2세기 것(도마책:필자 주))을 1 세기로 편입시키려고 순전히 비일관적이고 복합적 추측들에 의존하여 어 마어마하게 과장된 주장들을 내세운다”고 하였다. ( 곽인철 역, 종문화사, 2017, P.348) 딘 오버맨에 의하면 도마책은 결 국 2세기 후반에 기록된 영지주의 문서인 것인데 이 문서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구체적 증거도 없이 추측에 의존해 1세기 것으로 만들려고 과장된 주장을 한다는 거다. 도올이 바로 이런 과장된 주장의 첨병인 것이다. 이런 신뢰 할 가치 없는 문서를 숭상하고 이를 초기문서라면서 복음서가 이에 영향받거나 베껴온 것으로 치부하려는 도올이야말로 불쌍한 영혼이다. 세상에 할 일이 많고 많거늘 하나님의 말씀을 난도질하는데 온 정 력을 쏟아붓다니!

위 도올의 의 P.15에는 도올이 일방적으로 작성한 연대기 표가 나온다.

“AD 30년 예수의 죽음 AD 50년경 도마복음 성립 70년경 마가복음 성립 100년경 요한복음 성립 367년 아타나시우스 27서 정경 체제 발표 외경 소장 금지. 그즈음 파코미우스 수도원 도서관에 있던 도마복음을 수도승들이 항아리에 담아 밀봉, 게벨 알 타리프에 매장. 1945년 12월 엘 카스르의 무함마드 알리와 그의 친구들이 사바크를 캐다가 발견. 1947 년 9월 프랑스 성서 고고학자 장 도레쓰 문서발견 사실을 알게 돼 세상에 알림. 1966년, 미국 신학자 제임스 로빈슨 발견 현장 방문. 1975년 가을, 제임스 로빈슨이 이 지역 탐색. 1977년, 제임스 로빈슨 주편 하에 나 그함마디 라이브러리 전체 영역 출판. 1983년 겨울, 도올 김용옥, [세계문학] 30호에 나그함마디 문서 발표. 2017년 4월 21일, 도올 김용옥, 나 그함마디 게벨 알 타리프 탐방. 2010년 4월, 도올 김용옥, [도마복음한 글역주] 전3권 출간”

이렇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는다. 도올의 이런 탐구열 자체는 귀한 것이다. 한국 기독교계 누가 이런 열정을 가지고 탐구한단 말인가? 이집 트까지 달려가 현장 확인하면서…. 이런 열정이야 누가 나무라랴만 그의 심적 동기와 지향점, 탐구 결과물이 고약하기 때문에 문제 삼는 것이다. 그이 심적 동기라면 기존 기독교 신앙체계에 대한 앙심이 메인일 것이다. 이런 고대 문서를 발견, 공표해 교회 신앙을 일망타진시켜보겠단 심보 아닐까? 이런 추론을 하는 건 그가 Q 자료와 도마책 팔이를 하면서 주장하는 것들이 한결같이 66 정경의 무력화와 기존 교회 신앙체계의 파괴에 몰두하기 때문이다. 건전한 탐구욕이 아니다. 이 두 자료 가지고 기존 교회의 신앙을 뒤엎겠단 야심이 에너지로 발동된 것 아닐까? 하지만 도올의 수고는 헛것일 뿐만 아니라 본인과 세상에 해를 끼치는 공해 물질에 다름 아니다. 그것의 가치를 인정하고 활용할 세력은 성경과 교회를 비난하고 해체하려는 세력, 즉 사탄의 일꾼들일 것이고 건강한 영혼들에겐 질 나쁜 아이템 자체다.

도올은 그 문서를 신기하게 여겨 거기에 구원과 진리의 길이 있는 것처 럼 흥분했겠지만 착각일 뿐이다. 구권과 진리는 고사하고 사람을 헷갈 리게 하고 멍 때리게 만들어 하나님께 가고 구원 얻는 길을 차단하는데 쓰여질 것이다. 고대의 항아리서 뭐가 나오기만 하면 흥분하고 달려드는 군상들 많지만, 결과는 허무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 도마책이란 게 과연 도올의 말대로 50년대 것이고 주의 말씀이며 진리이고 성령이 감동하신 것이라면 왜 교회가 정경으로 만들지 않았겠는가?

그런 잡서는 인류 역사에 흔해 빠졌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우리 주변의 신천지나 통일교 등의 허다한 이단들도 모두 자기 문서를 가지고 있다. 우리 당대엔 이게 무가치할 뿐 아니라 해로운 것들이다. 하지만 이것 들도 항아리에 담아 묻어 놓으면 후대에 사람들이 파내고 신기해하면서, “당시 종교권력자들의 탄압을 피해 숨겨 놓은 비밀의 계시이며 절대 진리”라며 흥분할 것이다. 도마책도 그런 것이다. 인류 역사에 소종파 비밀집단은 언제나 있었다. 이들은 세상과 격리돼 교주의 말을 맹신하고 타락한 세상에는 없는 유일한 계시요 오묘한 비밀이라면서 받은 자만 안다는 등 혹세무민한다.

어디 도마책뿐인가? 허다한 외경과 野史적 문헌들이 얼마나 많은가? 유대인의 탈무드만 하더라도 얼마나 유명한가, 하지만 성경은 아니다. 왜 그런가? 정경은 하나님의 계시와 영감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세상적 지식이나 지혜, 정보 가치가 있다고 성경 되는 것이 아니다. 아타나시우스를 비롯한 정경화 과정에 쓰임 받은 성도들이 단지 인간적 판단을 따라 작업했다고 여기면 큰 오산이다. 성경의 저자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신 것을 믿지 못하는 자유주의 신학 부류나 도올식 안티 감정 가지고는 성경의 신비와 그 가치에 접근 못 한다. 도올식으로 무슨 항아리서 나오기만 하면 그것으로 교회 신앙 대체하려 하다간 마침내 탕자가 돼 쥐엄 열매로 연명하는 코스로 갈 것이다.(눅16) 하나님의 창조와 구원 역사를 기록한 계시는 정경인 66권으로 완성, 종결됐다. 이 정경은, “천지는 없 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24:35)

말씀하신 하신 그대로의 권위요,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성불가 침이다. 도올이 함부로 정경의 권위를 해치고 큐나 도마책 따위 가지고 어떻게 해 보려는 작태는 영적 무지의 소치요 사탄의 일을 대행하는 일이다. 위 연대표에서 보듯이 도올은 도마책 50년대 설을 상단에 못 박아 놓고 있다. 도올처럼 성경에 안티 감정 가진 소수자 말고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50년대 설이야말로 도올의 억지공사요 성경 계시 파괴 공작의 정수다. 도올은 이 점에서 도대체 학자적 객관화의 능력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앞당겨 잡아도 1세기 말에서 2세기 초, 그러니까 4 복음서가 모두 완 성된 한참 후 영지주의와 각종 혼합적 성향의 특수 비밀집단이 자기들 기호에 이용하려고 복음서의 구절들을 가져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오히려 복음서보다 앞선 오리지날인 것처럼 설치고 있으니 일종의 지적 사기 행각에 다름 아니다.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이방면의 전문 연구가 오버맨(Overman)은 2세기 후반설을 주장하고 있을 정도인데 도올의 튀는 발상은 나 홀로 50년대 주의다. 이런 억지 그만하기 바란다. 그놈의 50년대 설 퍼뜨려 복음서가 마치 도마책에서 나온 것처럼 위장하다간 도올의 학자적 성실성이 의심 대상 돼 브랜드 가치마저 깨지고 말 것이다. 위의 연대표 중 도마책 50년 대 부분은 폐기돼야 한다. 만일 고집하려면 과학적 증빙 자료를 들이대야 한다 뭘 모르는 사람들 속이려 들지 말고! 글이란 한번 써넣어 버리면 그게 역사가 돼 버린다. 앞으로 사람들이 도올의 이 惡文을 보고 도마책 이 성경보다 일찍 기록된 오리지날이며 성경은 여기서 나온 것이라 인식 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두고두고 어둠의 세력이 성경과 교회 신앙 파괴용으로 악용될 것이다.

교회의 녹을 먹고 사는 목회자와 특히 신학자들은 뭘 하고 있는 건가? 도올의 이런 惡說을 논박해야 할 것 아닌가? 논박은 고사하고 신학교의 석좌 교수를 시켜주지 않나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이라고 칭송까지 하는 얼빠진 인사들마저 있는 판국이니 한심하도다. 이들이야말로 거짓 선지자 부류 아니라 할 수 있을까! 이단의 수괴급 주장을 일삼고 교회 신앙 파괴에 올인하는 자를 신학교 석좌 교수시키고 심지어 루터와 칼빈이라고 떠들어 대도 아무 말 없는 그 교단이란 어떤 곳일까! 이쯤 되면 기독교회임을 포기하겠단 뜻 아닐까! 위 도올의 책 을 보도록 하자 앞부분에 탈고 소감이란 게 있다.(P.17) 그는 자신이 도마 책 해설 쓰는 일을 ‘광인의 난무(亂舞)’라 했다. 물론 무심코 나온 말이지 만 그의 영적 행각을 드러낸 말이 아닐까! ‘광인의 난무!’라 맞다. 정상적 그리스도인은 이런 글 질을 할 수 없다. 돈 줘도 안 한다. 광인이어야 가 능한 과업일 것이다. 광인은 뭔가에 미쳤다는 건데 사람이 무엇에 취하 고 미칠 땐 鬼神이나 惡靈이 침노할 수 있다. 그러면 狂亂氣가 나오고 초인적 활력도 생긴다. 도올이 자신의 심적 상태를 ‘광인의 난무’라고 한 건 맞는 측면이 있다. 성경 파괴, 신앙파괴를 도모하는 정신이 온전한 건강 상태인가 교회 신앙파괴의 칼춤 亂舞를 한 것이다.

그가 도마책을 접한 것은 수유리 한국신학대학에서라고 한다(P.18). 그리고는 1983년 중앙일보 후원으로 팔레스타인. 레바논. 시리아. 터키. 요르단을 다니며 관계 자료를 수집했다고 하면서 10대에 시작해 60대에 이르는(2010년 기준) 기나긴 여로를 도마책과 함께했다고 한다 (P.20, 21). 그러니까 2020년 기준 한다면 70여 년을 도마책과 함께했다는 얘긴데 그러니 건전 복음 신앙을 탈취당할 수밖에! 정경 66권 말씀 계시를 붙들고 있어야 할 영혼이 엄한 怪文을 붙들고 있었으니 사탄의 침노를 막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도올은 말하기를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사역이 절정에 이르면 벌 하시게 돼 있다”라고 하면서 한국교회가 여러 가지 죄악이 집결된 최악 의 모습이라고 나무란다.(P.22) 그런데 도올은 한국교회만 나무랄 게 아니고 이 말을 자신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도올의 성경과 기독교를 비난하고 엄한 怪文들로 대체하려 드는 작업이 도가 지나쳐 절정에 이르면 하나님의 간여나 징계가 올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남의 말 할 일이 아니다. 과유불급이다. 늦기 전 회개하고 이 怪文은 물론 이것들과 관련 된 자료들을 폐기하는 게 자신과 모두에게 좋을 것이다.

그는 자기 집 주변에 있는 교회 성도들이 교회서 나오다가 자기를 보면 피하고 수군거리고 인사를 건넬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며 “자신이 왜 이토록 회피와 기피의 대상이 되는 왕 마귀가 됐는가”라며 탄식한다.(P.22) 도올은 성도들의 이런 반응을 하늘나라 천사들이 도올을 보고 반응하는 것을 성도들이 대행한다고 보면 좋을 것이다. 성도들의 반응은 예사로운 게 아니다. 성경 히브리서 1장 14절에는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하셨다. 천사들이 천국에서 도올을 향해 걱정하는 것을 성도들이 반영했는지 누가 아는가? 그리고 자신을 “왕마귀”라고 했는데 순간 한 말일지언정 영 적 실상을 내보인 말일 수 있다. 하나님 말씀 파괴하고 괴문서로 대체하려는 거야말로 大魔鬼의 일이 아닌가!

도올은 “나를 열열한 기독교인에서 ‘동방의 초탈한 예지의 추구자’로 변모시킨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20대 초반에 접한 노자 이란 책이다. 노자의 충격은 실로 컸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강렬한 충격을 나는 도마로부터 받았다”라고 해서 도덕경과 도마책을 읽으며 기독교 신앙을 포기했다고 말한다.(p.23) 여기서 도올은 자신을 ‘동방의 초 탈한 예지의 추구자’라 했다. 여기서 도올의 ‘초탈’이란 기독교 신앙을 버 린 정신적 방종 상태를 말한다고 봐 무리 없을 것이다. 보통 초탈이란 걸 말하는 경우들을 보면 정신의 ‘방랑’이나 ‘방종’ ‘무절제’ 상태를 대변하는 경우가 흔하다.

도올은 하나님을 떠나 교회 신앙을 버리고 방랑하는 영혼 된 것을 ‘초 탈’이란 말로 미화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유한자요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다. 초탈, 초인, 해탈 이런 것들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 착각하 는 주체의 누추한 착각과 변명일 수 있다. 도올이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 신앙을 버리고 도덕경과 도마책을 접하는 과정서 초탈이라고 착각하게 만드는 어둠의 영을 만났기에 오늘의 안티 기독 맨 된 것 아닐까? 그는 계속 말하기를, “도마는 기독교를 심장부로부터 서서히 해체 시킨다… 도마는 기독교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바울의 부활과 재림의 케리그마를 포기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초자연적 모든 사태를 내면화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위 같은 페이지) 하였다.

자기 입으로 도마책이 기독교를 해체시킨다고 한다. 도올은 기독교를 해체해버리고 싶었는데 도마책이란 좋은 동지요 무기를 만났다는 투다, 그리고 바울이 말한 부활과 재림의 케리그마를 포기해야 한다고 외친다. 도마책에 이런 거 없으니까 성경에서도 없애버리자는 거다, 그리고 모든 부활이니 재림이니 하는 신화적 표현들은 모두 내면을 정화시키는 도구 정도로 쓰고 버리자는 얘기다. 도올의 발상이야말로 돈키호테에 다름 아니다. 누구 맘대로 성경의 도그마를 변경? 하늘의 천사도 못 한다. 도올 과 같은 막무가내 돈키호테 부류들이 있기 때문에 성경은 이를 경고 한다.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 어다”(갈1:7, 8. 도올이 누구이기에 바울의 케리그마를 포기하라고 하는가? 혹시 그럴 권세를 마귀로부터 받았나? 그래서 자기를 셀프 왕 마귀라고 하는가? 바울은 하나님의 영감 받은 계시의 수여자이다. 어디다 대고 함부로 감히 바울을 향해 망발하는가? 성경 건드리면 위 갈라디아서 말씀대로 천사라도 저주를 받는다.

그리고 내면화란 걸 부르짖는데, 허튼소리 그치기 바란다. 인간 내면은 가시떨기 돌밭, 길가와 같은 곳이다.(눅8:9-14) 평생 애써도 스스로 내면을 정화시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자 없다. 내면을 정화시켜 인간을 구원할 것처럼 하는 세상 종교들은 불가능한 것을 강요하는 교훈이며 가인의 제사와 같이 하나님께 열납 될 수 없는 체계들이다. 도올은 자기도 못 하는 걸 선전하고 있다. 행위로 완전해질 수 있다면 그리스도께서 化肉하시지 않으셨을 것이다.

도올은 이런 말하면서 “많은 자들이 나보고 미친놈이라고 깔깔대고 웃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훗날 그들은 외칠 것이다. ‘당신이야말로 선지자였소!’” 할 것이라 하였다.(위 같은 페이지) 이로 보아서 도올은 아마 자신의 이런 행위가 미친놈 비슷한 액션인 걸 순간 느끼는 모양이다. 그도 양심이 있고 어릴 때 들었던 신앙 스토리가 심중에 남아 있겠기에 “이거 미친 짓 아닐까” 순간이나마 스쳤던 걸까? 도올이 기대한 것과 달 리 훗날 “당신이야말로 선지자였소”하고 평가할 사람들이라면 좌파 군상들이나 무신론자, 정신적 방랑아들이나 그럴까 구원받은 성도들 입에 선 이단의 온상이요 착각의 왕이었다고 평가받기 십상일 것이다. 아니 벌써 그런 평가가 중론 아닐까?

그는 계속해서 이런저런 리버럴 계통의 신학자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 이며 자기과시를 하는 중, 특히 김경재 한신대 명예교수에게 각별한 감 사를 표하고 있다. “내가 한국기독교의 루터와 깔뱅 역할을 톡톡히 해내 리라고 믿으시면서 항상 정신적 후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김경재 교수님” 이라고 드높인다.(P.24)

전술한 대로 김경재 교수는 도올 칭송 1호 인사라 할 만큼 친 도올적이다. 소위 도올을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이라며 떠벌린 그의 멘트는 무책임을 넘어 배교 이데올로기의 후원자 격이다. 도올의 어떤 부분이 루터와 칼빈의 100분의 1이라도 닮았단 말인가! 성경 무시하고 Q와도 마책 가지고 예수교 만들자는 게 그렇게 좋은 소식인가 교회의 녹을 먹는 신학자란 사람들이 교회 신앙에 배신 때리고 불신 대중에 영합해 이런 헛소리를 해대니 도올이 기고만장해 날뛰는 거 아닌가 말이다.

신학자 중 똑 부러진 인간 하나만 있었어도 도올의 잡소리를 벌써 내리쳤을 것이다. 그놈의 외국 유학은 왜 했으며 고대어 공부는 뭐 하려 했는가? 박사학위는 뭐 하러 걸치고 있나? 이리가 양을 물고 있어도 구경 만하고 히죽대는가 하면 도리어 이리를 칭송하는 선생들이야말로 밥만 축내는 삯꾼들일 것이다. 김경재 교수는 도올의 어느 부분이 한국교회의 루터와 칼빈 역할 하는지 본지를 통해 필자와 토론하기를 제안한다.

2007년 5월 11일 감신대에서 열린 신학대토론회가 있었는데, 김광식 교수 김경재 교수 이정배 교수 유동식 교수 도올 김용옥 등이 참석해 토론했고 2008년 5월 27일에는 같은 감신대에서 2차 토론회를 열었다는데, 여기엔 도올 이정배 김명수 채수일 등의 교수들이 참석했고 1차는 ‘한국교회와 성서’, 2차는 ‘큐복음서와 한국교회’였으며, 두 번의 토론회가 모두 3시간씩 진행됐고 천여 명의 관중이 좌석을 뜨지 않고 토론에 집중했다고 한다.(P.24) 도올이 이 두 번의 토론회를 자랑하고 있는 점으로 봐 두 번의 모임 모두 도올이 가지고 놀았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런 큐나 도마책을 주제로 한 모임은 없어야 했었고 만일 어쩔 수 없이 했었다면, 도올이를 혼 내키고 “정신 차려라. 이놈! 얻다 대고 정경을 훼파하고 이단 잡서나 가공의 문서를 가지고 교회 신앙을 해치려 드느냐 사탄의 흉계로다 살아계신 하나님 앞과 기독교계에 엎드려 회개하고 사 과해라!” 호통쳐야 맞다. 그런데 모인 구성원들로 봐 도올을 책망하기는 커녕,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하지 않았을까 싶다. 신학자란 사람들이 이따위 짓 하고 있으니까 이단 사설이 날뛰고 도올 같은 위험 인사가 휘 젓고 다니는 것 아닌가! 이런 토론회인지 하는 걸 통해 도올에게 날개를 달아주었으니 한국교회를 향해 온갖 험담과 욕지거리 마저 해대는 것이 다. 그놈의 토론회에 참석한 신학맨들이 큐와 도마책이 무엇이며 도올이 발설하는 惡談들이 뭘 노리는 물건인지 숙고나 해 보고 모임에 얼굴 내 밀었었나?

도올의 가벼운 입을 또 보자. 그는 안식일에 대해 “천지를 창조한 야훼가 너무 피곤했기에 쉰 것이다” 했다.(P.35) 도올이 천지창조 때가 본 것처럼 떠들어대는 이런 표현은 그의 경망됨을 입증한다. 하나님이 인간이거나 피조물인가 피곤하시게? 아마도 도올이 자기 인생이 피곤한 것을 이렇게 투영하는 모양이다. 도올의 영혼이 피곤한 거야 이해된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계시와 구원 역사를 훼방하고 안티하며 다니는 영혼에 어찌 평강이 있겠는가! 불안한 내면을 도마책 큐, 노자, 氣철 학 등으로 때우려 하겠지만 아니 된다. 이런 악행이 누적될수록 도올의 영혼은 깊게 탄식하는 자 되게 마련일 것이다.

성경 떠나 창조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떠들면 영적 손해 온다. 욥도 자신의 괴로움을 탄식하며 고난의 원인을 알려고 했으나 여호와께서 폭풍 가운데서 말씀하시되,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에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누가 그것의 도량 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책망하셨다.(욥38:4, 5) 도올이 뭘 안다고 하나님이 “너무 피곤해 쉬셨다”는 등 교만한 말을 해 대는가 창조시 하나님 주변서 구경이라도 했었나?

그는 또 “원래 예수의 오리지날한 사유의 한켠에 영지주의적 측면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면서(P.38) “도마복음의 소박한 원형적 사유가 요한복음의 신화적 로고스 기독론으로 드라마적 각색을 더 하여간 발전 경로를 우리는 쉽게 추론할 수 있다. … 도마의 예수는 자신을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떠벌리지 않는다”라 했다.(P.39) 이는 도올이 줄기차게 요한복음을 영지주의적 문서로 보고 요한복음이 도마책 안에 있는 영지주의적 요소에서 영향받은 것이라고 여기는 논리의 연속이다.

요한복음이 영지주의적이란 소리는 불트만(Bultmann)이나 도올 같 은 정경의 완전성을 불신하는 자들의 상투 수법이다. 요한복음이 위에서 지적했듯이 영지주의적이란 망발도 아무 설득력이 없는, 불신자에 가까운 신학도나 안티 기독맨들의 전형적 헛소리일 뿐 근거 제시가 안 되든 오류추론의 전형이다.

도마책이란 게 정체불명의 어떤 비밀집단에서 자기들의 기호에 맞는 것만 복음서에서 가져다 만든 것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하나님의 독생성 자 되심을 말할 리가 없다. 도올은 도마책 자체의 오리지날리티를 정직하게 탐색하고 늦기 전 일찍 이것을 팽개쳐야 한다. 이단 문서들을 가지고 장난치자면 도마책 말고도 우리 주변에만도 수두룩하지 않은가? 왜 하필 이단 책 도마서와 가공의 공상물에 불과한 Q 가지고 난리인가!

그는 또 “요한복음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로고스를 철저히 플라톤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도마복음은 헬레니즘 세계에 있어서 헬라클레이토스 의 건강한 사유와 홀리스틱한 측면을(holistic aspect) 保持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여(P.43) 요한복음이 고대 헬라의 로고스론을 Platon식으로 각색해 사용하는 데 비해 도마책은 그렇지 않고 헬라클레 이토스의 좋은 점을 간직했다는 말이다. 도올이나 자유주의 신학도들이 항시 즐기는 상투 수법은 이와 같이 어떤 계시 용어가 있으면 이게 어디서 따온 것이고 어떤 영향 하에 만들어졌다는 등 계속 떠들어서 성경을 믿지 못하게 만든다.

마귀의 제일 소원은 성경 못 믿게 하는 것이고 예수 우리의 唯一 구세 주 되심을 거부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게 마귀의 행동원칙이다. Logos란 용어가 고대 헬라에서 사용됐었으나 이 용어를 그리스도의 神性을 나 타내고 있다. “이 Logos는 곧 하나님이 시니라” (요1:1)하셨다. 그랬으면 이 로고스야말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계시 하기 위한 용어로 쓰여진 것일 뿐인데 무슨 헬라클레이토스에다가 플라 톤까지 읊어대면서 뭘 모르는 대중을 미혹하려 하나? 고대에 그런 용어가 사용되고 있던 걸 하나님께서 계시 용어로 사용하셨나보다 하면 될 것을 교묘한 논리로 현혹하고 있다.

그렇게 둘러대자면 성경의 모든 글과 문자, 용어들이 모두 세상에 있는 것들이고 오랫동안 사람들이 사용해 오던 언어들인데 이 모두를 근거를 추적하면서 이 말은 어디서 온 거고 무슨 영향 하에 쓰였다면서 언어 유희로 성경 깨겠다는 건가?

도올은 그럼 안 된다. 자기가 성경 못 믿겠으면 혼자 그러든 말든 이지 만 방송과 책을 남발하면서 성경 불신과 교회 신앙 깨기에 전념하는 그 열정은 어디서 온 것이며 이게 하나님과 사람 앞에 필요한 일인가 罪를 범하는 건 아닌가를 스스로에게 자문하고 회개하는 기회가 속히 오기 바란다.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1)”

홈 > 신학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1)” 김기천 | [email protected] 입력 : 2010년 11월 02일 (화) 14:37:16

최종편집 : 2010년 11월 02일 (화) 15:11:58 [조회수 : 24025] “교회가면 내가 죽여 놓을꺼야.” 차 안에서 아내에게 한 말이다. 독자는 이 말만 읽으면 교회 안에서 무슨 살인극이 벌어질 것 같은 살벌함을 상상할 것이다. 그러나 실은 운전하고 있는데 뒤에 놓인 가방 안에서 핸드폰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던 것이다. 그래서 교회 도착하면 핸드폰 알람을 죽여놓겠다는 말이었다.

당당뉴스로부터 글을 써달라는 부탁을 받은 후에 줄곧 고민을 했다. 도올 김용옥을 반박하는 나의 책에 관한 글을 말이다. 문제는 책 두 권 분량의 내용을 어떻게 매회 원고지 25장 분량에 축약시켜서 소개하느냐였다. 앞에 예를 든 것처럼 일부분만을 소개하면 어떤 똑똑한 독자의 기발한 상상으로 생각도 못했던 일들이 벌어질 것이 분명한 것이다. 그렇다고 책에 있는 모든 내용을 소개한다는 것도 일주일에 한번 개제되는 식으로는 언제 끝날지 기약도 없는 것이다. 벌써 6회를 거듭하면서 사실 내 글들이 주변만 돌고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나의 책에 부록으로 수록된 부분만이라도 전문을 그대로 실어보자는 것이다. 도올의 도마복음에 대한 나의 반박이다. 아래한글 문서정보로 계산해보니 원고지 300장 분량이다. 잘 나누면 10회 정도면 끝날 것 같다.

도올의 큐복음을 반박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사실 도올이 제시한 큐신학이나 도마복음 이야기는 현대 신학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을 반복한 것 이외에 새로운 것이 아니다. 도올 자신의 것이 아니란 말이다. 이 점에서 내가 도올의 큐복음이나 도마복음을 반박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도올이 사용한 신학을 반박한다는 말이 된다. 신학적 논쟁을 제기한 셈이다.

김기천 목사 다시 말하지만 나의 근본적인 관심은 한 사람의 신학을 반박하는 데에 있지 않다. 기독교의 근본이 무엇이냐를 찾는 데에 있다. 다른 말로, 현대 기독교와 초대 기독교가 동일한 기독교인가? 아니면 현대 기독교는 기독교란 탈을 쓴 신흥종교인가를 묻는 과격한 질문일 수도 있다.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에 있는 부록 전문을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이란 제목으로 아래와 같이 10회에 걸쳐 나누어본다.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1)”

VIII. 부록: 인도종교와 혼합된 『도마복음』

서언: 참으로 답답해서 이 부록을 추가했다. 도올 김용옥의 『도마복음이야기』가 나온 지 벌써 2년이 지났고 올해는 『도마복음주석』이 나왔다고 한다. 신학교도 많이 생겼으니 그만큼 학자들도 많을 텐데 아무도 나서서 제대로 응답하는 사람이 없다. 학자가 안하니 목사라도 나서야한다는 마음으로 이 부록을 추가했다.

1. 항아리에서 쏟아진 영지주의 문헌들

1.1. 『도마복음』이 들어있던 항아리

1945년 겨울에 이집트 나일 강 상류지역에 위치한 낙하마디(Nag Hammadi)마을 근처 벼랑에서 “모하 메드알리”(Mohammed Ali Samman)라는 한 농부가 봉인된 항아리 하나를 발견했다.

항아리를 열어보니 가죽으로 묶어놓은 13권의 책들이 있었다. 이 책들 안에는 모두 52개의 글들이 들어있었다. 이들 가운데 12개의 글들은 서로 중복되기 때문에 사실 6개의 글인 셈이다. 결국 모두 합치면 46개의 서로 다른 글들이 있는 것이다. 이들 가운데 41개는 이제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새로운 글들이었다. 그중에 10개는 심하게 부서져 버렸기 때문에 31개만 새로운 자료로 건진 셈이다. 이중에 한 개가 『도마복음』이다.

이 발견된 자료들 곧 문헌들은 고대의 종교와 철학에 대한 정보들 특히 셋 종파[이 종파(Sethians)는 기독교 이전에 생겨난 영지주의의 한 종파로서 아담과 하와의 세 번째 아들인 셋(Seth)을 숭배하는 종파이다. 이 종파의 영향이 지중해 전역으로 퍼져서 주후 2세기경에 알렉산드리아의 바실리데스(Basilides)에 의해 세워진 영지주의와 , 같은 주후 2세기경 이집트, 소아시아, 시리아, 북아프리카 등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던 발렌티누스(Valentinus)의 영지주의에 영향을 끼쳤다.]와 같은 영지주의, 신플라톤주의(Neoplatonic), 신비 지혜사상(Hermetic) 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

모든 문헌들은 희랍어나 이집트 콥틱어로 되어 있다. 이 본문들이 기록된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대부분 주후 2-3세기 것들로 추정한다. 본문들을 가죽 책으로 묶은 시기는 훨씬 늦다. 표지 가죽을 두텁게 만들려고 폐기된 파피루스(papyrus)를 가죽 속에 집어넣었는데 그 파피루스에 근처 지역 정보들이 적혀있었다. 그 정보들을 근거로 이 가죽 책들은 이집트 낙하마디 근처에서 약 4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대부분 문헌들은 『도마복음』과 같이 기독교와 연관된 영지주의 책들이지만, 그 중에는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을 부분적으로 변경시켜서 번역한 것[낙하마디 사본 번호와 (제목): NHC VI,5 (Excerpt from Plato’s Republic).]도 있고 또한 신비적 지혜의 글인 『헤르메띠까』(Hermetica) 3편도[낙하마디 사본 번호와 (제목): NHC VI,6 (The Discourse on the Eighth and Ninth); NHC VI,7 (The Prayer of Thanksgiving); NHC VI,8 (Excerpt from the Perfect Discourse).] 들어있다.

콥틱어로 되어있는『국가론』본문은 인간의 영혼에 관한 소크라테스(Socrates)의 비유 한 부분을 약간 변경시켜 번역한 것이다. 『헤르메띠까』는 로마 제국이 몰락할 즈음인 주후 3세기 이후에 만들어진 하나의 작품 유형으로 “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뚜스”(Hermes Trismegistus)[“헤르메스 트리스메지스뚜스”는 ‘세 번째로 위대한 헤르메스’란 의미를 갖고 있는 예언자의 이름으로, 그리스 신 헤르메스(Hermes)와 이집트 신 토트(Thoth)가 결합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토트는 고대 이집트의 상형문자(Hieroglyph)를 만들어낸 언어, 지식, 과학의 신이었다. 르네상스시기에 이탈리아 학자인 피치누스(Marsilius Ficinus)가 희랍어로 된 『헤르메띠까』본문들과 그 이전에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들을 수집해서 『꼬르푸스 헤르메티꿈』(Corpus Hermeticum)을 편집 발간했다.]의 비밀 지혜가 들어있는 글이라고 한다.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문헌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영지주의 문헌이나 『헤르메띠까』 문헌이나 모두 종교 혼합주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로, 플라톤의 『국가론』도 인간 영혼에 대한 지식을 말하고 있고, 많은 영지주의 본문들과 『헤르메띠까』 본문들 모두 신비한 지혜, 영적인 지식, 깨달음 등을 강조하고 있다. 셋째로, 이 모든 문서들이 이집트 나일 강 상류에 위치한 낙하마디에서 발견되었다는 사실이다.

1.2. 침묵하는 항아리

여러 가지 의문이 생긴다. 첫째로, “누가 왜 기독교 영지주의 글들, 이집트 신비적 지혜에 관한 글들, 플라톤의 영혼에 관한 글 등을 수집, 복사, 보관했었는가?” 둘째로, “왜 동굴 속에 오랫동안 보존될 수 있도록 항아리에 잘 밀봉해서 감추어두었는가?” 셋째로, “『도마복음』처럼 기독교와 관련된 영지주의 글들은 왜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과 많은 차이를 보이는가?” 물론 항아리에서 발견된 문헌들은 이 물음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이런 퍼즐 같은 문제에 대해 “낙하마디 사본들을 위한 국제 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for the Nag Hammadi Codices)의 서기로 일했던 로빈슨(James M. Robinson) 교수는 다음과 같이 풀었다. 이 가죽으로 된 낙하마디 사본들이 만들어진 시기와 장소가 파코미우스(Pachomius. 292-348) 수도원 운동이 시작된 장소나 시기와 일치한다고 보았다. 그렇게 연결시키고 나서, 같은 시기인 367년에 알렉산드리아 교회 감독인 아타나시우스(Athanasius)가 구약 22권[우리가 가지고 있는 구약 33권을 히브리 알파벳 숫자에 맞추어 22권으로 나누어 놓았다. 숫자만 다르지 사실은 똑같은 책이다.]과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발표했던 사건과 연결시켰다. 이런 사실로 짜 맞춘 가설이 “본래 파코미우스 수도원 도서관에 낙하마디 문헌들이 있었는데, 아타나시우스가 경전 외의 문헌들을 도서관에서 없애라고 했기 때문에, 그 문헌들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들이 항아리에 봉해가지고 안전하게 감추어 두었다”[The Nag Hammadi Scriptures, ed. by Marvin Meyer, (New York: Harper Collins Pub., 2007), xi.]는 것이다.

사실 로빈슨이 언급한 아타나시우스가 367년에 39번째로 썼다는 「축일 서신」(Festal Letter)에는 수도원 도서관에 있는 경전 외에 책들을 없애라고 요청하는 글이 아무데도 없다. 또한 파코미우스 수도원 운동이 공동체 운동이라고 할지라도, 사막에서 가장 기본적인 것만 공유하는 수도원 안에 기독교와는 상관없는 플라톤의 『국가론』(Republic)이나 이집트 신비적 지혜의 글인 『헤르메띠까』(Hermetica)까지 비치할 정도의 도서관이 있었다는 근거도 없다. 사막 수도자들은 모든 정상적인 생활을 포기하고 사막으로 들어가 열악한 환경 가운데서 그리스도에게 목숨을 걸고 금욕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수도자들 가운데 혼합종교 문헌인 낙하마디 문헌들을 귀하게 여겨서 잘 감추어 놓을 사람이 있다는 생각도 억측에 가깝다. 결단력이 강한 그런 수도사들의 손에 들어갔다면 아예 보관은커녕 불을 질러 없애버렸다고 보는 것이 쉬울 것이다. 차라리 수도사들보다는 평범한 어떤 사람들이 보관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로빈슨의 해석은 설명해보려는 하나의 가설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이 절대적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학문을 쉽게 하려면 주어진 가설을 등에 업어야 한다. 앞에 로빈슨이 추측에 근거해서 제시한 가설을 페이젤스(Elaine Pagels)가 받아서 발전시켜 『영지주의 복음서들』(The Gnostic Gospels)이란 책을 썼다. 이 책은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페이젤스는 이 책에서 기독교 초기에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의 힘겨루기가 있었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신약 경전 27권을 고집하는 아타나시우스를 중심으로 한 정통파 기독교가 조직력이 약했던 영지주의 기독교인들을 억압했다고 상상한 것이다. 페이젤스는 영지주의 복음서들이 낙하마디에서 발견된 이야기, 기독교 순교 이야기, 정통파 기독교와 영지주의자들 간에 갈등 순으로 설득력 있게 전개시켰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30년이 지났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정확하게 실증해주는 자료들은 없고 추측과 가설 위에 세워나갔기 때문이다.

문제는 페이젤스가 전개시켰던 이론을 가지고 요즘 마치 새로운 것을 발견한 것처럼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당시 정통 기독교가 교회의 권력으로 참 기독교인이었던 영지주의자들을 박해했다는 논리를 주장하면서, 이들이 사용했던 『도마복음』이 신약 정경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그런 소리하는 사람 말이다. 지금부터는 왜 『도마복음』과 같은 영지주의 문헌들이 초기 기독교에서 추방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발췌: 큐복음 상권 “잃어버린 신화를 찾아서” 274-281페이지)

목차(상기 내용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서 목차를 추가한다)

VIII. 부록: 인도종교와 혼합된 『도마복음』

1. 항아리에서 쏟아진 영지주의 문헌들

1.1. 『도마복음』이 들어있던 항아리

1.2. 침묵하는 항아리

2. 그리스 로마 세계에 포함된 인도

2.1. 낙하마디 문헌들의 뿌리를 찾아서

2.2. 기원전 6세기 이후 인도와 문화 교류

2.3. 그리스 로마 문헌에 기록된 힌두 종교

2.4. 인도 북부 개혁 불교

2.5. 해외로 전파되는 인도 불교

3. 인도종교 이해

3.1. 힌두 경전 『리그베다』

3.2. 힌두 경전 『우파니샤드』

3.3. 기원전 6세기 힌두 개혁종교: 자이나교, 불교

3.3.1. 자이나교

3.3.2. 불교

3.4. 정통 내에 개혁바람: 힌두 육파철학

3.4.1. 상키야(Samkhya) 학파

3.4.2. 요가(Yoga) 학파

3.4.3. 베단타(Vedanta) 학파

3.4.4. 미맘사(Mimamsa) 학파

3.4.5. 바이세쉬카(Vaisesika) 학파

3.4.6. 니야야(Nyaya) 학파

4. 인도종교와 기독교의 혼합

4.1. 영지주의의 본산 이집트

4.2. 영지주의 문헌 안에 힌두사상: 브라만교, 불교, 자이나교

4.2.1. 영지와 깨달음

4.2.2.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신관

4.2.3. 영지주의와 힌두종교의 세계관

4.2.3. 영지주의 기도와 힌두종교 만트라

4.2.4. 영지주의와 인도종교의 일치

5. 절대로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5.1. 첫째 이유: 복음과 독약이 혼합된 『도마복음』

5.2. 둘째 이유: 초대교회 교부들도 인용 안한 『도마복음』

5.3. 셋째 이유: 현존하는 2만5천여 개의 성서사본들의 증거

6.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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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112.153.209.41) 2010-11-04 00:39:51 ..ㅠ…OTL…. 목차를 보면 이미 도마복음 => 영지주의 => 인도혼합종교 => 순수정통과 다른종교…라는 전개방식입니다. 페이즐스의 주장이 역사적 전거의 부족으로 인해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위의 전통적인 주장 역시 충분한 역사적 전거를 찾을 수 있을까요? 만약 로빈슨의 주장과 반대로 헬무트 코에스터나 스티븐 페터슨의 주장처럼 도마복음서가 우리가 갖고 있는 복음서보다 더 빨랐다면….그리고 그 원천이 파코미우스 공동체가 아니라 에뎃사 교회였다면…위의 주장이 과연 성립될까 궁금합니다. 도마복음의 연대는 자꾸 위로 올라가고 있고 에뎃사 성립설이 힘을 받고 있는 시점이 아닌가요? 리플달기 ▼ 7 0 내일의석 (220.70.82.161) 2016-10-13 10:24:23 음.. “지금부터는 왜 『도마복음』과 같은 영지주의 문헌들이 초기 기독교에서 추방되었는지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한다. ”

.. 제대로된 경전이기에 추방된거겠죠.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 리플달기 ▼ 1 2 이명무 (219.255.114.10) 2015-07-28 21:06:14 도마복음은 예수님이 알려주신 천국복음입니다.

천국복음이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아 진짜 하나님이 게신 최고급 저택(천국)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주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도마복음 50 구절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진짜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의 육체 속에 존재하는 영의 친 아버지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인간은 진짜 하나님의 아들 신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아들 신인 우리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마복음 50구절에서는 우리 인간인 아들 신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육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살아계신 진짜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육체를 선택해주셨다고 말씀을 전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육체 속에 존재하는 영이 진짜 하나님의 아들 신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이 증명하라고 한다면 운동이요 휴식이라고 답하라고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운동이라는 뜻은 우리 인간이 영으로 존재하는 아들 신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것이며 육체 속에서 지적활동이라는 운동을 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달나라까지 갈 수 있는 만물의 영장이 되었다는 뜻으로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휴식이라는 뜻은 우리 인간이 선택받은 육체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육체 속에서 아들 신으로 잠시 휴식하고 있다가 육체가 죽으면 원래의 고향인 아버지 신이 계신 하늘나라로 간다는 뜻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진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해주는 진짜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니라 여러분의 육체 속에 존재하는 영의 친 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목사님이 예수님이 전해주신 말씀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전해주신 진짜 하나님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좀더 자세히 풀이한 내용을 참고 하시려면 검색창에서 명당도자기를 검색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곳에는 요한복음 5장 25절의 말씀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부모님과 조상님들의 영혼도 진짜 하나님이 계신 최고급 저택에 편안히 모셔드리는 방법을 알려주신 말씀도 소개해 드렸습니다. 리플달기 ▼ 5 4 다석 (125.31.168.194) 2012-11-10 23:45:17 예수님을 머리로 생각으로 만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나님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영”이 무었이고 “신령”으로 예배하는 것은 어떤 예배를 말함이고 “진정”으로는 어떠한 상태에서 하는 예배를 말함인지 구해볼려고 시도라도 하신 목사님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안에 계신다는데 우리 안 어디에 계신지를 찾아보신, 찾은 목사님은 제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 하나님이 어디에 계신지 알아서 그 문을 열고 만나야 하는데 왜 목사님들이 자꾸만 딴소리로 우리를 자신들 처럼 수렁에 빠지게 하고, 쉬운 우스개 말로 헛된 길로 보내려 하십니까.

너무 어려워 만나기를 포기한 것이라면 우리에게 바른 길이라도 알려주기 바랍니다.

목마른 자들에게 옛날 서기관들이 예수님 만나지 못하게 방해한 성경내용을 아시나요?

TV 자주 나오신 목사님들 예수님을 앞 세우고 자기 자랑… 간통한 목사, 돈때문에 싸우는 목사, 신앙을 자식에게 세습한 목사,

이사람들 예수님에 가까운지 적그리스도에 가까운지 반으로 나눈다면 어느쪽일까요? 하나님은 사랑 그자체이고 형제를 사랑하지않는 자는 적그리스도라 하는데 요즘 큰 교회는?

도마복음은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잡이 아닌가요?

성령님을 만나는 방법조차 가르쳐주지 못하는 목사님들…

김기천 목사님께서 이상한 자료들을 열거 하셨는데 그 자료 안에 예수님 만날 방법있나요? 목사님 신앙의 행로에 그딴 책 달달 외운다고 한푼 가치 있나요?

요한복음에 배에서 생수같은 성령이 나온다 하였는데 그게 무었을 의미하는지 성령이 배에서 나온다는 구절인지 알고 싶어요 목사님은 체험해 보셨나요?아니면 성경구절이 단순한 비유인가요?

도마복음을 논하시려면 그딴 자료들 붙잡고 100년을 찾아봐야 목사님 믿음의 수행은 100년전 그대로가 될 것이고 차라리 용감하게 부딪쳐 보고나서 평하는 것이 옳다 여겨집니다.

중들은 최소한 부딪쳐 보기라도 합니다.왈가왈부 따지기 이전에,

아는 것이 할수있는게 아니요 할 수 있는게 아는 것이니 예수님 만난 사람은 내 것 모두 팔아 행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거하게 됩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자, 내 형제가 굶주리는데 사랑하지 않는자 적그리스도라는 성경구절은 애써 잊으려 노력하시는것은 아닌지요 도마복음이 뭔지 잘 모르시면서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왠 역사적 자료 나부랭이로 부정하시는지요

목사란 갈 길모르는 우리를 예수님에게 인도해주는 길잡이입니다.

길잡이가 앞을 못보는 장님이면서 보이는 척 갈길 모르는 우리를 수렁으로 인도한다면 그죄가 어떠한지는 지금의 대형교회 목사들의 말로가 그 답입니다. 리플달기 ▼ 7 3 다석 (125.31.168.194) 2012-11-10 22:42:02 하나님 만나신분 손들어봐요 하나님 만나신분 손들어봐요

다들 18년 전에 한번 언듯 뵈었다 하고 누구는 30년 전에 꿈에 한번 나오더라하고 어떤이는 성경을 읽는 중에 기도중에 만났다.합니다.

평생을 예수님을 따르는 크리스챤이 평생 한번 보면 그걸로 된것인가요?.

전지전능 하시고 어디에도 항상 계신 하나님을 예수님 오신 이래 2천년 동안 수십억의 크리스챤이 운이 좋아야 평생 한번 하나님을 볼까 말까 하다면 분명 지금까지의 정통 기독교에는 문제가 있음이 틀림없다.

테레사 수녀님이 예수님을 어떻게 만났는지 다석 유영모선생이 어떻게 해서 예수님 만났는지 아는 기도교인들은 김기천목사님 처럼은 나서지 않을것이다.

하나님을 입으로 만나려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만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알기에 만나기를 포기한 후 담합하여 쉬운 말로 만나기를 종용한다. 리플달기 ▼ 5 3 글쎄… (168.188.32.41) 2011-07-21 11:44:25 그냥 난 이랬으면 좋겠어~ 라는 글이 아니니…비평하시려면 어떤 자료를 가지고 하셔야 하는것 아닌가요? 당연히 알아야 하는거 아닌가? 그것도 몰라? 이런식으로 나오는건 논증도 뭐도 아무것도 아닌 그저 비난 아닌가요? 리플달기 ▼ 3 1 곰돌이 (121.134.156.31) 2011-02-26 00:14:58 예수믿고 변화된 자들의 댓글이 아니다….. 리플달기 ▼ 5 1 박창진 (183.103.29.11) 2010-11-09 19:52:46 합리적이라는 말 뜻을 알고나 쓰는지 모르겠네요.

위 글이 도마복음이 정경이 아니라는 필자의 주장이고요.

그것을 개신교 기득권 인사들이 툭하면 주장하고 그것이 못마땅하면 도마복음이 정경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밝혀야지요.

요한계시록을 가져와서는 되도 않는 소리하지 말고요.

마지막에 기록되었다고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고 그렇기에 도마복음이 더 가치가 있다고요?

시편이 성경에 중심에 기록되어 있다고 성경의 중심이라고 말하는 분이 있기는 하더만…

말라기는 구약의 끄트머리에 기록되어 있으니 구약의 여러 외경들에 비해 가치가 덜한 것이 되겠네요.

합리성은 어디에 두고 사시는가요? 달나라에요? 리플달기 ▼ 2 0 인봉 (24.71.145.211) 2010-11-10 01:39:25 더 말해봐야 님과는 어떤 이야기도 소통되기 어려워요? 모르고 사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요? 모르니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겠어요? 마음을 한번 더 내보려고 두번이나 시도했는데, 도중에 날라가버립니다. 그것도 복으로 알고 그만 하렵니다. 어쩌면 그렇게 모르쇠로 당당하게 밀어부칠 수 있어요? 그것도 재주입니다. 누구한테 받은 것인지 스스로 개발한 것인지는 몰라도 님도 재미난 재주가 있으세요. 거기에 말려들어봐야 구덩이로 빠지는 길이잔아요? 그러니그만 합시다. 리플달기 ▼ 3 2 박창진 (183.103.29.11) 2010-11-10 09:33:28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네요.

모른다는 것은 님의 일방적 단정일 뿐이고요.

요한계시록에 대한 이해는 님이 저를 따라올 수 있겠습니까?

그 이해를 논하자는 것이 아니라 글쓰기의 태도를 논하고 있답니다.

어떤 글이든지 그 글에 대한 합리적인 반박.

님과 같은 이들이 나타내는 전형적인 반응 틀이 있지요.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글을 적고 그 내용에 대해 비판하면 미꾸라지 빠져나가듯이 슬그머니 뒤로 빠지면서 자신이 옳다는 글을 적는 것.

나는 님과 이들을 보면 “왜 저렇게 사는지”라는 의문이 들어요. 리플달기 ▼ 1 3 인봉 (24.71.145.211) 2010-11-09 15:15:22 바쁘실 손님 두 분이 관심을 가져 주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중요하지요. 다들 자기의 관점으로 참여를 해주셨습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다들 자기 입장이 가장 중요하니 제가 왜 그랬는지 저만큼 아시겠어요? 해서 설명을 드리지요.

윗글의 제목이 뭐냐면, “신약정경이 될 수 없는 도마복음 (1)”이었어요? 개신교 기득권 인사들이 툭하면 도마복음은 복음도 아니요, 정경에 낄 자격도 없다고 하는데, 여기 김목사도 그러고 있는 중 아니라고요?

그것도 주변부만 뱅뱅 돌더니 이번엔 방향을 돌려서 뭐 본격적으로 뭔가를 내놓을 것처럼 시작한 것이 그랬어요? 제가 김목사님이라도 자기 책을 안봐도 알 수 있게 요약할 줄 알아야지, 책 사보라는 이야기잖아요? 그것 뿐만 아니고,

제가 왜 뜬금없이 계시록은 들고나왔는지 아직도 잘 모르시겠지요? 그런 정도라면 기독교 전문가라고 하기도 좀 거시기하지 않나요?

개신교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잘 모르겠다면 몰라도 이미 우여곡절 끝에 신약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는 묵시록보다 도마복음이 어느모로 보거나 더 가치가 없을까요? 이런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한번이라도 가져봤다면 그게 왜 말이 되는지 아니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런 것에 뭐는 합리적이고, 아니고가 무엇을 기준으로 정해질까요? 구구단 이단만 합리적이고 미분적분은 비합리적이지요? 목사들이 이렇게 비합리적인 똥덩어리들이니 개신교가 어떻게 제대로 굴러가냐고요?

이런 것을 모르쇠로 하고는 끼리끼리 패거리 습관적인 암송 문구만 주저리주저리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것이 하나님 믿는 일이냐고요? 하나님이 주신 자기의지, 자유의지는 교파 교리의 일로 작당할 때만 써먹냐고요?

박창진 목사님,

님이 내게 쓴 그런 투의 주장은 나도 님께 그대로 쓸 수 있는 이야깁니다. 그런 줄 알고나 글을 쓰십니까? 합리적이라는 말은 님 혼자만 쓰는 그런 말도 아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말이에요? 님에게는 안했지만, 목사들 무식하고 자기 자랑하는 버릇 하나는 하나님도 못고쳐준다고요? 이 얼마나 합리적인 주장인가요? 그것을 누가 고쳐요?

여기 김목사님께 드린 이야기가 박목사님께는 해당 안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똑같이 해당이 되는 이야기라고요. 끼어들어 참여도 할려면 앞뒤 분간이라도 할 만큼 알고 끼어드세요? 님의 글엔 요새는 들어가 보지도 못해요? 무슨 뜻인지 아시죠? 그래도 만나서 반가웠어요. 리플달기 ▼ 2 6 계인 (125.146.242.97) 2010-11-10 16:52:43 김목사님께서 요약을 하시려고 하다가 부록의 전문을 싣는 이유는 갇낳이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아신다면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겠지요. 계시록에 깊은 조예가 있으신 것 처럼 말씀하셨는데 귀국하시면 언제 한번 만나서 계시록에 관하여 깊게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아니면 이 난을 통해서 한번 말씀해보시지요. 왜 그렇게 생각하시는지를… 리플달기 ▼ 1 10 박창진 (183.103.29.11) 2010-11-09 10:17:46 인봉님의 성향, 호불호에 대해 가타부타하기는 그렇다고 생각하고요.

님과 다른 성향이나 호불호면 잘못인 것은 아니지요.

저는 님의 글보다 위의 글과 아래 댓글이 훨씬 유익하거든요.

그러면 제가 님이 말하는 다른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는 것이 되는가?

아니랍니다.

도마복음과 요한계시록의 비교?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이지요?

요한계시록과 관련한 본인의 경험, 그것이 위 글과 무슨 상관이라는 것인지요?

취향이야 본인 마음이지만 글을 적을 때는 좀 합리적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네요. 리플달기 ▼ 8 11 계인 (222.114.226.218) 2010-11-09 08:34:27 인봉님. 감히 몇자 드리자면 진보냐 보수냐가 문제가 아니라 진리냐 비진리냐가 문제이고 진실이냐 아니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김목사님의 글은 객관적인 시각을 가지고 보자는 것이라고 봅니다. 우리가 그 시대에 살아보지 못했기에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흔적을 찾아가면서 그 흔적이 어느 방향에서 왔느냐는 것이라고 봅니다.

도마복음을 계시록과 연관성을 가지고 보자고요? 복음이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복음서인양 착각하지 말자는 것이 글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리플달기 ▼ 7 9 인봉 (24.71.145.211) 2010-11-08 17:52:41 여기 당당이나 뉴스엔조이는 비교적 진보적인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곳으로 알고 있어요.

어디에나 진보와 보수는 서로 공존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 중 하나만 있으면 썩어요? 고인 물이 썩는 이치와 같아요. 그런데 보수와 진보는 사실 참 많은 차이로 서로를 격려하고 견제하고 상호 발전을 꾀하지요. 그런 방향성이 부족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나 예수를 더욱 영광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로만 놓고 보면, 그 후졌다는 정치보다 기독교, 개신교가 얼마나 잘하고 있다고 보세요?

소위 정통이라고 자칭하는 그들이 하는 일들을 보면 기가 막혀요? 그러면서 그들이 자랑하는 것이 어디서부터 나오고 있는지 잘 살펴보세요? 그게 하나님에게서 나와요? 그러면 예수를 따르는 집단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슬프게도 저는 돈에서 나온다고 봤거든요? 그들에게서 돈을 빼앗아보세요? 그래도 큰 소리를 칠까요? 지금 세계 전도의 최첨단에 서있다고 하는데, 그 바탕이 돈 아닌가요? 돈 말고 다른 것도 있다고 말들은 하지요? 그런 것까지도 돈에서 나온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현실에 무엇인가 소금 역할을 좀 해보자고 시작한 일이 당당과 뉴스엔조이의 일이라고 본다고요? 그 주류의 시각도 결국엔 보수로 그 주제는 뭔가 신선하게 보이기 위해 잡고 내용을 보면 결국은 책을 좀 팔아볼까? 하는 것이 얄팍해요. 이런 제가 구분을 하는 것이 아니고 비판을 한다고 보시겠지요?

그게 정말로 비판인지, 분별인지 그것을 보는 것까지 편갈라 따진다면 믿는 것조차도 슬픈 일이 될 것입니다. 뭐 친한 사람 역성들을려고 예수 믿어요?

보수들은 이미 그래요? 진보라면 좀 달라야겠지요. 그렇지 못하면 결국은 도루묵이라고요. 성경에 써져있는 내용들이 결국은 이런 것을 깨달으라고 말을 하고 있던데, 성경을 보는 눈이 목사와 신도들이 달라서 편가르기에 붙잡혀있는 것이라면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가겠냐고요?

좀 아프게 지적을 했을 망정, 그나마 그래도 희망이 있어보여서 거든 것이지, 그런 희망이 없었다면 들어와 보았겠냐고요.

아프다고 성질을 속으로 내어도 헛 공부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겠어요? 하물며 쓴소리는 못 알아먹고, 좀 배운 티내는 것에나 맞장구치면서 유식한 척 해봐야 무슨 변화가 오겠냐고요?

예수가 그랬어요?

예수가 무슨 누가 주장한 학설로 변화를 추구했냐고요? 예수 믿으려면 예수처럼 살도록 해야 하지 않겠어요? 지금 목사들 중에 예수처럼 살려고 하는 목사가 그래요, 동기들 중에 있기나 합니까? 고민만 한다고 예수되는 것은 아니지요?

교회가 무슨 신학대학 나온 사람들 먹여살리라고 존재한다고 믿으세요? 하바드까지 다녀오느라고 투자가 많았으니, 그 투자 원금 빼고 이익까지 낼려면 바쁘시겠어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이런 말을 이보다 어떻게 더 부드럽게 합니까?

이래도 못알아들으시면 구제불능이라고 본답니다. 그런 속에 무슨 하나님의 씨가 있을라고요? 그래도 어디엔가 하나는 있겠지 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찾을 겁니다. 그럼 욕들 보세요.* 리플달기 ▼ 8 15 인봉 (24.71.145.211) 2010-11-06 05:27:56 누군가 오셔서 김목사를 위한다고 엄지손가락으로 재주를 부리고 가셨습니다. 그게 김목사를 위한다고 생각하지요? 혹시 하나님도 그렇게 믿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 기독교가 그런 수준이라고요. 그러니 하나님이 퍽이나 자랑스러워 할 것 같지요?

이렇게 믿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는 하나님이 따로 있다니까요? 그런 사람들끼리 서로 주고받는 것이 무슨 하나님 믿고 예수 믿는 줄 안다고요? 그것 말고는 더 이상 할 말도 없다고요. 그렇게 한 발자욱만 나가면 죽는 줄 알고는 끼리끼리 어영구영하는 일이 믿는 일인가요?

이런 숙달되지 않은 용어나 시각, 이게 뭐 얼마나 크게 다른 말이라고 이런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밴댕이 속알딱지같은 믿음 키워봐야 거기서 거기라고요.

그러니 성경에 써있다고 땅밟기나 다니고, 선교는 무슨 선교요? 그렇게 해서 선교가 됩니까? 달아나는 자기 식구들이나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자체 분열이나 막아야지, 무슨 지경을 넓혀요!

이단이라는 말을 좋아하더만, 누가 이단인지 모를 지경이라고요? 그게 떼죽이 많으면 하나님 편인가요? 그러니 여의도 무슨 S교회 못따라가서 환장들 하지요. 그런 속에 하나님이 어떻게 숨을 쉬고 살아있어요. 죽은 하나님을 따르는 장송행열 같답니다.

이런 말이 심한 것으로 들려요? 그렇다는 사람은 온실에서 길러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정신들 똑바로 차리고 자기부터 돌아봐야 할 때라고요.

그 길에 목사들이 빨게 벗고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요.

예수를 정말로 믿는다면, 예수가 무슨 말씀을 남기셨는가 그런 정도라도 좀 깊은 묵상을 하고 그나마라도 전체적으로 기억하면서 되새겨야 하지 않겠어요? 풍신들 그만 떨자고요* 리플달기 ▼ 6 18 인봉 (24.71.145.211) 2010-11-05 14:18:35 공부 많이 하신 목사님이니, 신학자연 할 수는 없어도 티는 낼 수 있겠지요?

그래도 글 써놓고 얼마나 높고 권위가 있어서? 덧글이 대답할 만큼 가치가 없어서 대꾸도 안했는데, 이번엔 님이 공부한 만큼 되는 엇비슷한 덧글을 본 것 같습니까?

그랬다고 해도 그것 역시 뭐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런 북장고호응하는 수준이 별로 좋아보이지 않아서 한마디만 더 하지요.

그런 서양의 학자들의 주장만 따라다니지 말고, 하바드까지 가서 공부하고 왔으면 그런 서양 학자들이 오히려 따라올 만한 수준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지는 않으세요?

그런 방향을 하나 제가 한번 제시해 드릴까요?

지금 주고받은 정도 가지고는 제 눈엔 별로 흥미도 없네요? 그런 것보다 성경, 즉 정경에 포함될 만한 가치로 도마복음과 요한계시록을 한번 비교해서 논해보는 것은 어때요?

그럴려면 도마복음이야 지금의 상태에서 더 죽어라 파보면 뭔가 좀 잡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놈에 계시록이겠지요.

아직까지 공부 많이 하신 목사님들 중에 계시록을 공개적으로 따따부따 하시는 분을 보지를 못한 터에, 누군가 좀 아는 것 같이 티를 내길래, 좀 아시는 것 있으면 나누어주실 수 없느냐고, 공개하기 어려우면 개인 이메일로 나누어주실 것을 부탁했던 적도 있었어요? 제가 순진했을 때 이야깁니다.

하나님을 만나서 노는 일에 이만한 솔직한 마음으로, 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귀신 씨나락 까먹듯, 뭐 제대로 드러낼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무슨 연막만 피우는 옹알이 수준의 아지도 못하는 성령타령만 해서 하나님이 기쁘시고 영광되시겠어요?

수준도 높고 공부 많이 하시면 이런 근본적인 접근으로 믿음을 키워가고, 뜻을 드러내면 목에 풀칠하기에 지장이 있을까 봐서 혹시 본능적으로 회피는 아니 하시겠지요?

뭐 대답을 원하는 것은 아니니, 부담은 갖지 마시고 먹고 사는 일 해결하려고 목사되신 것 아니면 한번 고려해보지 않으시겠어요?

김목사님의 용맹정진과 건필을 기도합니다. 리플달기 ▼ 7 17 김기천 (173.10.244.206) 2010-11-04 15:17:22 오랜만에 좋은 댓글을 감사합니다. 먼저 역사적 전거에 대한 언급을 하셨는데 사실 기독교 초기 역사적 자료라는 것들이 너무 빈약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학자들은 추리에 의존하고 있지요. 에뎃사 성립설은 어느 학자의 주장을 받아들이시는지요. 아래 글은 제가 알고 있는 Perrin의 주장입니다. 이 에뎃사 성립설은 2세기 말엽 또는 3세기에 도마복음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주후 52년경에 도마가 동부 시리아의 수도였던 에뎃사(Edessa)와서 선교를 하면서 시리아 정교회가 세워졌다고 하지요. 그래서 학자들 가운데 도마복음을 시리아 전승과 연결시키려는 노력들이 있는 것을 압니다. 특히 Nicholas Perrin은 그의 책 Thomas, The Other Gospel에서 Stephen J. Patterson, Elaine Pagels, April DeConick 등의 학자들이 재구성한 이론들을 반박하면서 도마복음의 시리아 기원설을 주장했지요. 이미 전해 내려왔던 에뎃사의 도마 전설에 입각해서 Perrin은 도마복음이 본래 시리아어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지요. 현재 발견된 최초의 도마복음의 본문 증거자료들은 희랍어로 되어 있는데도 말입니다.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Perrin은 도마복음과 Tatian의 Diatessaron을 연관시키지요. 사실 초기 시리아 교회에서는 Diatessaron을 표준복음서로 사용했었습니다. Perrin은 도마복음의 본문을 시리아어로 역번역해보면 Diatessaron과 어순이 정확하게 일치한다고 주장하지요. 문제는 시리아어로된 현존하는 Diatessaron이 없다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Perrin은 도마복음은 시리아어를 말하는 편집자에 의해서 에뎃사에서 단번에 만들어졌다고 주장합니다. Perrin은 자신이 재구성한 도마복음 본문 순서가 공관복음서보다는 Diatessaron과 일치한다고 합니다. 즉 도마복음 편집자는 Diatessaron을 모델로 삼았다는 말이지요. 이로 인해 도마복음의 구성시기는 Diatessaron이 기록된 후로 잡히기 때문에 Perrin은 도마복음이 만들어진 때를 2세기 말엽 또는 3세기라고 봅니다. 그러면서 도마복음은 시리아 기독교 금욕주의 사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리플달기 ▼ 15 12

‘믿음’ 아닌 ‘깨달음’ 강조해 ‘도마복음’은 정경이 되지 못했다

[email protected]) 기독일보 김규진 기자

트윗하기 [기독일보 김규진 기자] ‘도마복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는지. 성경 외경들이 많이 존재하지만, 한국교회 이만큼 논란을 일으킨 서적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18일 오전 CCMM 빌딩에서는 ‘제4회 목동포럼 기념세미나’가 열린 가운데, “도마복음”을 주제로 목창균 박사(서울신대 전 총장)가 강연을 전해 관심을 모았다. 도마복음은 이미 오래 전 故 김용옥 교수를 통해 한국교회에 소개된 바 있다. 이후 동명이인 도올 김용옥이 공중파 방송에 나오고 중앙 일간지 등에 이를 연재, 그리고 저술을 통해 일반 대중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도올은 도마복음을 신약성서 복음서의 원형으로, 예수를 “니체보다도 더 본질적인 무신론자”이며 구약의 하나님과 결별을 선언하고 새로운 아버지의 나라를 선포했던 자로, 그리고 구원을 예수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예수의 말씀에 대한 해석과 깨달음을 통해 이뤄지는 것으로 해설했다. 때문에 목 박사는 “도올의 강의나 저술은 전통적 신앙을 가진 기독교인들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고 했다. 목창균 박사는 “1600년이나 땅 속에 묻혀있던 도마복음의 발견은 초기 기독교 연구는 물론, 영지주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를 제공했다”고 말했지만, “신약성서 복음서와 전혀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기 때문에 과연 이것이 예수의 진정한 말씀인가라는 새로운 문제를 일으켰다”고 했다. 목 박사에 따르면, 도마복음은 예수를 그리스도와 메시아로, 즉 인류의 구원자로 이해하지 않고 비밀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나 인간을 깨달음에로 인도하는 안내자로 묘사하고 있다. 또 구원도 인간의 본성 변화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보지 않고, 인간의 신적 본성을 깨닫는 것으로 보며,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노력에 의해 성취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특히 예수 십자가 죽음에 대해 어떤 중요성도 부여하지 않고,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 목 박사는 “도마복음이 정경에서 제외되고 이단적인 문서로 밀려나게 된 근본적 이유는 교회가 전통적으로 알고 있는 믿음과 전혀 다르고, 사도적인 교회와 신학적인 연속성도 없고, 그 기원과 출처도 의심스러운 내용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며 “특히 예수가 구원과 생명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요, 구원은 그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 이뤄진다는 기독교 핵심 교리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한편, 인간 자신의 참 본성을 깨닫는 것, 즉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이 문제”라고 했다. 믿음이 아니라 깨달음을 강조하는 것, 그것이 도마복음이 정경에 포함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영지주의와의 관계 문제라고 목 박사는 이어 말했다. 도마복음이 영지주의에 대해 직접 언급하거나 발전된 형태의 영지주의를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 해도, 적어도 초보적 형태의 영지주의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도마복음서 저자가 영지주의 사상을 기독교화 하려 했는지, 또는 기독교 복음을 영지주의화 하려 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기독교를 영지주의적인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때문에 영지주의적인 기독교 문헌과 더불어 도마복음도 고대 교회로부터 이단적 문서로 낙인찍혀 압수, 소실되는 운명에 처했다는 것이다. 목 박사는 “고대 교회가 출처가 의심스러운 기독교 문헌들을 신학적 논의에서 제외하려는 과정에서 이뤄진 것이 4세기 완성된 정경화 작업”이라 말하고, “이 정경에 절대적 권위를 두는데서 정통이 형성된 반면, 신학의 기반을 외경에 두는데서 이단이 생기게 된 것이라는 것을 현대 기독교인들은 유념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편 조광성 목사(목동포럼 회장, 송현교회)의 사회로 열린 행사에서는 송철웅 목사(목동포럼 고문, 새소망교회 원로)가 기도하고, 김용현 장로(목동포럼 부이사장, 남광실업 회장)가 인사말을 전했다. 김 장로는 “앞으로 목동포럼이 좀 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 더 우리가 한걸음 나아가 전도의 사명을 갖고 이 땅에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를 완성할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행사는 윤종관 목사(예성 증경총회장, 개동교회) 축도로 마무리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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