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 의 믿음 | 백부장의 믿음 [콩콩할미의 성경이야기] 159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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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을 본받는 성도 (눅 7:1~10) – 기독정보넷

백부장의 믿음을 본받는 성도 (눅 7:1~10) – 설교자 : 김양인 목사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던 한 백부장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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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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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놀라신 백부장의 믿음 (2) – Faithlife Sermons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의 전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조금 다르지만 좀 더 자세하게 기록된 누가복음을 보며 백부장의 믿음에 대해서 같이 나누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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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ermons.faithlife.com

Date Published: 12/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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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10월 6일] 백부장의 믿음 – 국민일보

[가정예배 365-10월 6일] 백부장의 믿음 기사의 사진. 찬송 : ‘성도여 다 함께’ 29장(통 29)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7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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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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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전능자를 믿은 백부장의 믿음 – 기존글_백업

예수님께 모든것을 믿고 맡긴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칭찬을 크게 하신 로마 백부장의 믿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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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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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8일 백부장의 믿음 – 에덴교회

백부장은 종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였고, 유대인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필요와 유익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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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loveeden.net

Date Published: 6/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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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을 통해 본 진정한 믿음 – 유평교회

제 목: 백부장을 통해 본 진정한 믿음. 본 문: 누가복음 7장 1-10절. 설교자: 최 종 혁. 성경에는 66권의 책이 있고 그것은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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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church.or.kr

Date Published: 10/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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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콩콩할미의 성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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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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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을 본받는 성도 (눅 7:1~10) > 설교자료실

백부장의 믿음을 본받는 성도 (눅 7:1~10)- 설교자 : 김양인 목사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칭찬을 들었던 한 백부장에 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백부장은 로마 군대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장교로서 백 명의 군사를 통솔했습니다. 더구나 이 백부장은 식민지인 유대 땅의 주둔군 장교였으므로 막강한 세도를 부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위세는 지금 미국보다 더 강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은 여느 군인과는 달리 고상한 인품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대체로 군인들은 직업의 특성상 거만하고 거친 성격을 갖기 쉽습니다. 그렇지만 이 백부장은 유대인들을 멸시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에게 호의를 갖고 회당을 지어주기까지 했습니다. 그 당시 가버나움에는 단 하나의 회당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그 회당을 지어준 사람이 바로 이 백부장이었다는 말이 됩니다. 회당을 지어줄 정도였다면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이 백부장에게 종이 하나 있었는데, 그만 죽을병에 걸려 고통하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그 종의 병이 중풍병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종은 노예를 말합니다. 노예는 인권이 없고 마치 소나 말과 같이 주인의 소유물에 불과했습니다. 중병에 걸려 살 가망이 없는 노예는 주인에게서 버림받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런데도 이 백부장은 자기 종을 똑같은 사람으로 대접했습니다.더구나 그는 그 종을 사랑한 나머지 죽을병에 걸린 그 종을 살리기 위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유대인 장로들에게 부탁해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하기까지 했습니다.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와서 백부장을 위해 간구하기를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합니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사실이지, 주둔군 장교가 식민지 백성들로부터 이처럼 칭송을 듣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도 이방인이 유대인들에게서 칭찬을 받다니 놀라운 일입니다.유대인의 장로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백부장의 선행을 말하고 그의 종을 고쳐주시기를 청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흔쾌히 그들의 청을 수락하셨습니다. 본문에 보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쌔”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백부장이 비록 이방인이지만 그의 청을 거절하지 않으시고 기꺼이 들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의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대합니다.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신 일이 많이 나옵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예수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병 고치신 것을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나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일은 안식일이라고 금할 것이 아니요 오히려 더욱 힘써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평일이든 안식일이든, 그리고 유대인이건 이방인이건 개의치 않으셨습니다.이 생명 존중의 사상은 기독교 교리의 중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은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어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장로들의 부탁을 들으시고 백부장의 종을 살리기 위해 함께 가신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집이 가까운 데까지 이르렀을 때였습니다. 백부장이 급히 벗들을 보내어 말을 전했습니다.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치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그러면서 그는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그 말을 들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셨습니다. 몸을 돌이켜 좇는 무리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셨습니다. 백부장의 벗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니 종은 병이 다 나아서 이미 강건해져 있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주님께서 백부장에게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고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다고 했습니다.첫 번 째로, 우리는 백부장의 겸손한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유대인의 장로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백부장 자신은 주님을 자기 집에 영접하기에 합당치 못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백부장이 일부러 겸손한 척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습니다.그 당시 경건한 유대인들은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며, 이방인들과 함께 앉아서 음식을 먹지도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선민인 유대인이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함께 음식을 먹게 되면 이방인의 부정에 감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이방인인 자기 집에 모심으로써 이 같은 종교적인 부정에 감염되도록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하셨지만, 백부장은 예수님을 부정한 자기 집으로 모시는 것이 가당치 않다고 생각하고 사양했던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백부장이 얼마나 겸손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주둔군의 장교로서 교만한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이와 동시에, 우리는 그가 예수님을 만나 뵙기를 사양한 것은 단순히 종교적인 성결 그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사실은 백부장이 예수님을 랍비 이상의 존재로 알고 있었음을 말해 줍니다. 그는 예수님의 신적 권위에 압도되었던 것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선 인간이 느끼는 한없는 경외심이 백부장의 영혼을 사로잡았던 것입니다.창세기 18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타락한 성읍인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시겠다는 뜻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소돔을 위해 이 같이 간구합니다.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찌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불가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균등히 하심도 불가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만일 소돔 성중에서 의인 오십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경을 용서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고하기를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오십 의인 중에 오인이 부족할 것이면 그 오인 부족함을 인하여 온 성을 멸하시리이까”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거기서 사십 오인을 찾으면 멸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식으로 의인의 수를 낮추되 의인이 십 인만 있어도 소돔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게서 벗이라 칭함을 받은 사람이었지만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했을 때, 그 자신이 티끌 같음을 고백했습니다.사도 바울은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바울은 하나님의 특별한 인정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들의 존재를 내세울만도 한데, 그들은 자신을 일컬어 티끌이라, 죄인 중에 괴수라고 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진실한 신앙인의 올바른 자기 인식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더욱 더 겸손해 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올바른 모습입니다. 주님께서는 백부장의 겸손한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자신을 낮추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말씀하기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 5:5-6)고 했습니다. 그런즉 백부장의 겸손을 본받으시기 바랍니다.신앙의 연조가 쌓여갈수록, 교회에서 귀한 직분을 맡을수록, 봉사를 많이 할수록 더욱 겸손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님들께서 그렇게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을 섬길 때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어 더욱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리게 되실 것입니다.두 번 째로, 우리는 백부장의 바른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백부장은 친구들을 주님께 보내어 말하기를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신적 권위를 고백한 것으로 예수님께 대한 백부장의 절대적인 믿음이 나타나 있습니다. 군인이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예수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죽을병에 걸린 자기 하인이 살아날 것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이 백부장이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주님께서 그의 종을 사로잡은 질병에게 ‘그를 떠나가라’고 명령하시면 그 질병이 떠나가고 건강하게 될 줄로 믿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백부장이 예수님을 신적인 존재로 믿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여러분, 이 백부장이 어떻게 이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성경에는 이에 대한 설명이 없지만, 그 당시의 상황을 살펴봄으로 그 근거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고려해야 할 점은 그가 가버나움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공생애 기간의 상당 부분을 보내신 곳입니다. 주님께서는 가버나움에서 가장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 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을 검토해 본 결과, 이 분이야말로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믿음을 갖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성경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7)고 했습니다. 복음을 듣지 않고 저절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생기는 법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는데도 믿음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항상 예배 생활에 힘쓰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광야는 비가 거의 오지 않으므로 초목이 자라지 못합니다. 반면에 열대우림(熱帶雨林)에서는 비가 많이 내리므로 어딜 가나 울창한 삼림을 이룹니다. 우리의 믿음도 이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들을 때 우리 믿음은 몰라보게 성장하지만, 말씀 듣기를 게을리하면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시편 19편 10절에 보니,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금 곧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 꿀보다 더 달도다”고 고백했습니다. 다윗과 같이, 성도님들께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송이 꿀처럼 달게 여기시기 바랍니다.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일반 서적과는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일반 서적은 아무리 고상하고 수준이 높은 책이라도 다 인간의 생각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 속에는 인간의 사상과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책입니다. 성경의 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그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능력이 있으며, 죽은 영을 살리고 병든 자를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에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히 4:12)라고 했습니다.무엇보다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구약 성경 66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목적입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여러분께서 오늘 교회에 나오신 것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 줄 압니다. 성경에 입각해서 베드로처럼 예수님께 대하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하시고, 도마처럼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 바랍니다.이와 같은 믿음으로 백부장처럼 예수님께 성도님들의 사정을 아뢰십시오. “예수님, 말씀만 하사 저를 낫게 하소서. ” “주님, 말씀만 하사 저의 삶을 치료하소서.” “말씀으로 저의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리할 때 중병에 걸린 백부장의 종을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동일하신 말씀의 능력으로 성도님들의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셋째로, 우리는 백부장의 절대 순종하는 믿음을 본받아야 합니다.백부장은 사람을 보내어 주님께 고하기를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병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백부장의 말 속에는 주님의 명령에 절대순종 하겠다는 각오가 표명되어 있습니다. 그는 마치 상관의 명령에 복종하는 군인의 자세로서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기로 작정했습니다.작은 도시 국가에 불과했던 로마가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는 세계적인 대 제국이 된 것은 강력한 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용맹으로 치자면 로마군대를 따를 나라가 없었습니다. 전쟁터에 나간 로마 군인들 가운데는 등에 화살을 맞고 죽은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지휘관의 명령 앞에서는 아무리 화살이 억수처럼 쏟아지는 불리한 상황에서도 절대 복종했다는 것입니다.아마 예수님께서 백부장더러 ‘너의 종을 이리로 데려 오라’고 명하셨다면 백부장은 당장 그 종을 떠메고 주님 앞에 달려왔을 것입니다. 또는 ‘다시 그 종을 집으로 데려 가라’고 명하셨더라도 일언반구 불평 없이 그대로 순종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체험하는 믿음은 이처럼 주님의 말씀 앞에서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믿음을 말합니다.오늘날 기독교인들 가운데 활기찬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고 축 늘어진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 보다 내 고집, 내 주장이 앞서니까 순종 할 수 없는 것이요, 순종 하지 않으니까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님들께서는 주님께서 ‘가라’ 하면 가고, ‘오라’ 하면 오고, ‘이것을 하라’ 하면 하는 순종을 통하여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군인은 상관의 명령이 부당하게 보여도 복종합니다. 전쟁터에서는 때로 큰 사상자를 낼 것이 뻔해도 돌격하라는 명령을 내리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군인들은 사령관이 내리는 명령에 복종해야 합니다. 만일 부하들이 상관의 명령에 일일이 따지고 든다면, 싸우기도 전에 패하고 말 것입니다. 지휘관들도 인간인지라 때로는 잘못된 명령을 내려서 부하들을 희생시키기도 합니다.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절대로 착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나의 이성이나 경험으로 이해할 수 없을 때라도 주님의 명령이므로 순종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백부장처럼 주님의 칭찬 듣는 큰 믿음의 소유자가 될 수 있습니다.우리가 순종을 잘하려면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문둥병을 고침 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왔던 아람 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은 엘리사가 하인을 시켜서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고 하자, 노발대발하여 당장 자기 나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나아만은 생각하기를 적어도 아람 나라의 군대 장관이 왔으면 선지자가 달려 나와서 장엄하고 번잡한 예식을 베풀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안수하여 병을 고칠 줄 알았는데 단지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고만 하니 순종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부하들의 간곡한 설득에 못 이겨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잠궜더니 온 몸에 퍼졌던 문둥병이 말끔히 떠나가고 온전해 졌던 것입니다.여기서 엘리사가 나아만에게 요구한 것은 순종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을 듣고 노를 발한 것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우리의 이론이나 경험 따위를 다 포기해야 하는 것입니다. 백부장과 같이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때 위대한 기적을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일제 때 조만식이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오산 학교의 교장을 하였고, 또 평양 YMCA 총무, 조선일보 사장 등을 역임하신 분입니다. 또한 그 분은 평양 장대현 교회의 장로로서 교회를 충성되이 섬겼습니다. 그는 오산학교의 제자인 주기철 목사님이 마산 문창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것을 직접 찾아가서 모셔왔습니다.한번은 어느 주일날 조 장로님이 급한 일이 생겨서 예배 시간에 오 분 쯤 늦었습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주 목사님이 “장로님, 예배 시간에 늦었으니 그 자리에 서서 예배드리십시오”라고 했습니다. 그 때 조 장로님은 주 목사님의 지시에 순종해서 예배당 맨 뒤에서 신발을 들고 서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설교 후에 주 목사님이 “장로님, 기도하시지요.” 하였더니 그는 겸손히 순종하여 주의 종의 마음을 상하게 한 죄를 눈물로 회개하였고, 이로 인해 온 교인이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주 목사님이 오산 학교 시절에 조 장로님의 제자였지만, 조 장로님은 겸손한 자세로 순종하며 교회를 섬겼던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님들,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기 원하십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 절대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지난날 백부장의 순종하는 믿음을 기이히 보시고 그의 병든 종을 고쳐주셨던 주님께서 성도님들의 순종하는 믿음에도 역사하셔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우리는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의 인물들을 보면서 언제까지나 감탄만 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 나오는 백부장이 주님을 감동시킨 큰 믿음을 가졌다면 우리도 그와 같은 믿음을 가져야겠다는 결심을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야고보 선생은 말씀하기를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약 5:17-18)고 했습니다. 누구나 엘리야처럼 위대한 신앙인이 될 수 있으니 신앙생활에 전력투구하라는 격려의 말씀입니다.아무쪼록 성도님들께서도 이 백부장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시며, 겸손으로 띠 띠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구하는 것마다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는 주님의 응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0. 전능자를 믿은 백부장의 믿음

예수님께 모든것을 믿고 맡긴 백부장의 믿음

마태복음 8장 5절부터 보면 예수님이 칭찬을 크게 하신 로마 백부장의 믿음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러분이 알듯이 당시에 유대나라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그래서 로마 사람들이 예수님이 살고 있던 유대나라에 와서 통치하고 있었다. 이 백부장도 로마 사람인데 유대나라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이 백부장이라는 소위 요즘 군대용어로 하면 중대장쯤 될 것이다. 이 백부장이라는 사람이 정말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고 예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그런 믿음이 생겨 난 것이다.

그런데 하루는 자기 하인이 병들어서 죽게 되었는데 예수님께서 틀림없이 그 하인을 고쳐주실 수 있다는 확신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똑같이 주님께서 주신 사랑의 믿음이 백부장 마음속에 들어 간 것이다. 백부장의 마음은 예수님이 표현 하신대로 옥토이다. 자갈도 없고 잡초도 없는 그야말로 깨끗한 아주 비옥한 그런 마음 밭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을 시켜 예수님께 와서 “주님, 제 하인이 병들었습니다. 고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요청을 한다. 그 때 예수께서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고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8장 7절에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그랬더니 8절, “백부장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내가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이 믿음의 근거가 무엇인가? 8절,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고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을 보면, 물론 그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밑에 있는 부하들에게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할 때 정확하게 그 일을 해내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도 그렇게 명령을 할 때 하인들이 듣듯이 주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됩니다, 한 것이다. 저는 예수님이 우리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아, 정말 특별한 믿음을 가진 분이다. 여기서 우리가 이 백부장의 믿음 가운데 말씀에 의지한 믿음을 볼 수 있다.

말씀에 의지한 백부장의 믿음

이 말씀을 주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믿고, 말씀에 의지해서 자신의 문제를 예수님께 맡기는 믿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은 하는데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냥 성경책에 기록되어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짜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 믿는다면 오, 정말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내가 중국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어느 교회를 갔다. 그 교회 신자들이 정말 훈련을 잘 받은 신자들이었다. 내가 성경 몇 장, 몇 절을 읽어 주십시오 라고 하면 먼저 일어서는 분이 읽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들고 한 분이 일어섰다. 그리고는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정말로 ‘따아성’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큰 ‘대’자를 말하는 것이다. 큰 소리이다. “하나님의 말씀 마태복음 5장 48절입니다!” 앉아서 읽지 않고 더구나 서서 소리를 지르며 읽는 것이다.

내가 그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것이 옛날 중국의 황제가 보좌에 앉아서 앞에 사람에게 뭐라 뭐라 해라, 그러면 그 사람이 그 황제 옆에 서서 큰소리로 “이는 황제의 말씀입니다!” 옛날엔 스피커가 없었다. 목청 큰 사람이 앞에 나와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말씀 앞에 전부 엎드리는 것이다. 복종이다. 말씀을 전적으로 믿고 복종하는 것이다.

이 땅의 황제가 아니고 “하늘의 황제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아멘! 하고 말씀에 순종을 해야 되는데 우리는 그냥 보통 소리로 듣는다.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은 놀라운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었던 믿음이다. 자기 하인을 고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까 예수님을 하나님처럼 믿은 것이다.

감히 예수님이 들어오셔서 그렇게 하신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고 너무나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냥 “말씀만 하시옵소서!”한 것이다. 황제가 말씀하면 100% 복종하는 것이다. 복종 안하면 죽는다. 절대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늘의 황제의 말씀은 절대적인데 우리는 그 절대적인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다.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 당시 로마의 군인이었던 이 백부장이 자기가 섬기던 황제가 있었지 않겠는가! 예수님 당시의 황제는 티베리우스 황제였다고 한다. 그 티베리우스 황제가 뭐라고, 뭐라고 했다면 다 예, 하고 굴복하는데 티베리우스 보다 훨씬 큰 하늘의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셔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되는 것이다.

백부장의 믿음은 말씀에 의지한 믿음인데 누구의 말씀인가? 예수님의 말씀에 의지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생각했던, 하늘의 황제로 생각했던 그 믿음이었다. 이 믿음이, 그분이 말씀하시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 없다. 누구의 말씀인데 이루어지지 않겠는가 하는 믿음이다. 천사들이, 마귀가 모두 다 굴복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 믿음을 이 사람이 나타냈던 것이다. 이 사람이 군인이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축복이었다. 군대에서 상관이 명령하면 그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해야 되는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로마 황제가 말했다면 그것은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반드시 해야 되는 것이다.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믿음, 이 백부장이 나타낸 믿음이 오늘 우리에게 없다. 왜 그런가? 예수님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의 존재를 믿지 않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9정 2절에, 평생 죄만 지은 중풍 병자를 보시고 “소자야 안심하라 네 병이 아니라 네 죄가 다 용서되었다”했을 때 사람들이 속으로 수군거렸다. 저 사람 제정신인가? 어떻게 사람이 되어 하나님처럼 죄를 용서하는가?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것인가?

그런데 예수님이 마태복음 9장 6절에 “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누구라는 것인가? 죄를 용서하는 것은 하나님만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자기를 뭐라고 하는 것인가?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거 해 보이신 것이다.

그 때에 6절 중간에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여기서 예수님이 증명해 내신 것이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하나님과 똑같은 분이시라는 사실이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믿음이 필요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 ‘전능하신’이라는 말, ‘전능하신 하나님’ 이 말은 참으로 두려운 말이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나 함부로 쓴다. 여기 ‘전능하다’하는 말은 히브리말로 ‘솨다이’라고 하며 전능하신 하나님, ‘엘 솨다이’라고 한다. 이 ‘솨다이’라는 말의 어원은 여러 학자들이 어원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엄마의 젖가슴’이다. 소위 어머니 하나님,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이다.

어머니 같으신 하나님! 여자는 연약하다, 그러나 어머니는 전능한 것이다. 자식을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다. 죽음도 불사하는 것이다. 이 전능하신 하나님, 엘 솨다이의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죄에 빠졌든지, 어떤 질병에 걸렸든지 상관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그 분이 누구인가? 이 땅에 인간의 육체를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마태복음 9장 2절에 “내가 네 죄를 사하였다. 걱정 하지마라”하고 말씀하신 그 말씀은 하나님으로서의 말씀이다. 그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증명해 보이겠다. 그 죄 때문에 생긴 그 질병을, 중풍병을 내가 고친다. 무슨 이야기인가? 죄의 뿌리가 뽑히면 죄의 나무에 열린 열매는 함께 없어지는 것이다. 내가 네 죄를 용서하노라! 하고 말씀하실 때, 그 죄의 나무에 매달린 모든 질병, 고통, 아픔, 슬픔, 눈물, 절망이 다 없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을 예수님이 내가 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죄를 없애는 권세가 있는 줄을 알게 하노라고 믿음을 주신 것이다. 그 믿음에 이 중풍 병자는 새사람이 된 것이다.

성경구절

9월 18일 백부장의 믿음

백부장의 믿음

누가복음 7;1-10 2016. 9. 18 (주일 낮 예배)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마을에 들어가셨을 때 일어난 일입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지요? 2절에 보니까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백부장은 김부장이나 정부장처럼 성이 백씨인 부장님이 아니라 로마 군사 백 명을 거느린 로마 군대의 장교입니다. 이 백부장이 유대인의 장로들을 통해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좀 고쳐달라고 청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고쳐주러 가십니다. 그런데 백부장이 다시 자기 벗들을 보내서 “주여! 여기까지 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그러는 거예요. “내 종들도 내가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데,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까짓 병이 떠나가지 않겠습니까?” 이 말이지요. 와!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이 감탄을 하셨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했다.”고 칭찬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백부장의 집에 돌아와 보니까 당연히 종은 다 나았지요.

병이 나은 것도 좋지만 예수님께 인정받은 그 믿음 이 더 귀하지 않습니까? “백부장과 그 종은 좋겠다.”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서 저와 여러분도 예수님께 인정받는 믿음의 소유자 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 백부장의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을까요?

1. (사랑)을 겸비한 믿음

2절 함께 봉독합니다.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아멘. 백부장의 부모나 자녀가 아니고 백부장의 종 이 병에 걸린 겁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당시에 종은 사람 취급을 못 받았습니다. 사고파는 재산의 개념이었습니다. 하지만 백부장은 그를 가족과 같이 사랑했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유대인의 장로에게 부탁을 합니다. “같은 유대인이니 장로님이 예수님께 가서 내 종을 좀 고쳐달라고 해주세요.” 대로마 장교가 자존심 상하게 식민지 사람들에게 그런 거 사정할 일이 아니지요. 그런데 한 사람에게 말한 것도 아니고 몇 사람에게 부탁을 합니다. 가족도 아니고 자기 상전도 아니고 (종)을 위해서 그런 수고를 하는 걸 보면 그가 얼마나 사랑이 많은 사람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유대인 장로들이 또 다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권력이 있는 백부장이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간 게 아니에요. 4절에 보니까 장로들이 예수님께 가서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나이다.” 하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그 종의 병을 고쳐주는 게 합당하다는 거죠. 왜요? 5절 함께 봉독합니다. “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 아멘. 와! 이건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당시 로마 장교들이 집에서 수만리 떨어진 식민지 국가에 가서 근무하는 걸 좋아했겠습니까? 아니면 가족들이 있는 로마에서 근무하는 걸 좋아했겠습니까? 당연히 로마에서 근무하는 게 좋지요. 그런데 로마에 있지 않고 그 멀리까지 올 때에는 뭔가 이득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점령군 장교의 권세를 이용해서 식민지 백성들을 수탈하고 자기 주머니를 채우는 거죠. 그걸 통해서 진급도 하고. 보통은 그런 낙이라도 있으니까 수만리 이국땅에 와서 근무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오히려 식민지인 ( 유대 ) 백성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하여 회당까지 지어주었다는 겁니다 . 정말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될 만큼 사랑이 가득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사랑 이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 그래서 두 말씀도 안 하시고 바로 그 집으로 가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 왜냐하면 하나님은 ( 사랑 ) 이시기 때문입니다 .

9절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죠. 이 말씀 속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아,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너희 중에서 이만한 사랑을 보지 못하였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 너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자기 욕심과 자기 이익을 위해서 믿는구나 . 너희 중에서 이 백부장과 같은 사랑의 믿음 을 찾아볼 수가 없구나 .” 이렇게 한탄하고 계시는 건 아닐는지요.

우리의 믿음이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한 믿음이 아니라, 특별히 나보다 어렵고, 나보다 연약한 사람을 사랑 하는 믿음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믿는 것이다. 이웃에게 사랑을 베푸는 사람을 내가 돕고 내가 고쳐줄 것이다.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에게 놀라운 일을 행할 것이다.”

여러분, 사랑은 희생입니다. 백부장은 종을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죽였고, 유대인을 위해서 자신의 재산을 희생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나의 필요와 유익을 위해서만 믿었던 아이 같은 믿음에서 벗어나, 백부장 같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수준 높은 믿음의 용사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겸손)한 믿음

또 한 가지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6절 함께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함께 가실 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아멘. 백부장이 예수님을 뭐라고 부르지요? “ 주여 !” 라고 부릅니다. 8절에도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래요.

지금 로마군대 백부장이 일개 식민지 국가의 30대 초반의 청년에게 “주님!”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이건 마치 일제강점기 헌병대장이 동네 청년에게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충격적인 사건입니다.

게다가 로마시대에는 로마 황제 외에 다른 사람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반역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로마 군인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를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이미 예수님을 로마황제보다도 더 존귀하고 지고하신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로 믿은 것임 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가 겸손 했기에 예수님이 메시아인 것을 보는 안목이 열린 거죠 . 교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보고도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하면서 멸시했습니다.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그랬지요. ‘가문으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내가 너보다 훌륭하지’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 있는 메시아를 보고도 알지 못하고 오히려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백부장은 정치적으로 바리새인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으면서도 겸손 했기에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

믿음은 ( 겸손 ) 한 것입니다 . 왜냐하면 내가 잘 나서 잘 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잘된 것을 알기에 잘 되면 잘 될수록 “이건 정말 제가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하셨습니다.” 하고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반대로 ( 교만 ) 은 불신앙입니다 . 주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했다.”고 하니까 교만한 겁니다. 그 마음에는 벌써 주님을 신뢰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자기만 있습니다. 그래서 잘 되면 우쭐하다가 넘어지고, 안 되면 낙심하다가 무너집니다. 잠언 18:12에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함께 봉독.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 아멘.

주님은 겸손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 주님의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시기 때문입니다 . 그래서 예수 믿으면 믿을수록 겸손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예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점점 교만해진다 그러면 뭔가 잘 못된 겁니다.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사실은 자신을 믿고 살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주님이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겸손하게 주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주님이 친히 행하십니다.

3. (온전)한 믿음

7절, 8절 말씀 함께 봉독할까요?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아멘.

“나는 주님을 감당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자인데, 이 구차한 곳까지 오실 필요 없이 그냥 거기서 말씀만 하시면 여기 있는 내 종이 나을 줄 믿습니다.” 그 말이죠. “내 종들도 내가 가라하면 가고 오라하면 오는데, 온 세상의 주인이신 주님이 말씀하시면 그까짓 병이 당연히 떠나가지 않겠습니까?” 이 말입니다. 와! 이 믿음의 말 을 듣고 예수님이 감탄을 하신 겁니다.

백부장은 말로만 “주여! 주여” 한 것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만 하시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진짜 믿었습니다 . 정말 겸손하고 온전한 믿음인지 아닌지는 순종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겸손할 때, 온전히 믿을 때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습니다.

문둥병이 걸려서 엘리사를 찾아갔던 아람의 군대장관 아시지요? 예. 나아만 장군 입니다. 엘리사가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어라.” 그랬더니 기분이 나빴어요. “우리나라에는 요단강만한 강이 없어서 여기서 씻으라는 거냐? 환부에 손을 얹고 안수라도 해줘야 도리가 아니냐?” 화를 냅니다.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국의 군대장관인데…”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생각하니 엘리사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교만하면 믿을 수가 없고 , 믿지 못하면 순종할 수가 없고 , 순종하지 않으면 역사가 일어날 수 없습니다 .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주님 말씀에 순종하기 보다는 자기 방식대로 주님이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마치 나아만 장군이 “안수라도 해 줘야지 무슨 요단강에 씻으라는 거냐?”고 불평하듯이 말입니다.

그저 내 방식대로 해주기만을 바라면서 내 생각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 것이 믿음인 줄 아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믿음이 아닙니다. 결과뿐만 아니라 ( 방법 ) 까지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게 진짜 믿음입니다 . 주님이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게 온전한 믿음입니다.

“근데요 목사님, 순종하기 너무 어려워요.” 이런 마음이 드는 분도 계실 거예요. 그런데 생각을 좀 바꿔보시기 바랍니다. 믿음과 순종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제가 허리가 아파서 어제 병원에 갔어요. 의사 말은 물론이고 나이가 어린 간호사나 물리치료사 말도 제가 얼마나 잘 듣는지 몰라요. 누우라면 눕고 엎드리라면 엎드리고. 혹시라도 잘못 들을까봐 집중을 해서 듣고 하라는 대로 착착 해요. 의사가 약 처방해 주면 그 약 봉지 안에 뭐가 들었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믿고 먹잖아요. 하루에 세 번 먹으라면 세 번 먹고, 식후에 먹으라면 식후에 먹고, 식전에 먹으라면 식전에 먹고, 정말 순종 잘합니다. 어떻게 내 머리로 다 이해가 안 되고, 내 생각하고 다른데도 그렇게 말을 잘 듣지요? 그래야 내 병이 나을 줄로 믿으니까 .

그런데 예수님 믿는 건 이상하게 내 고집대로 하려고 해요. “예수님 어떻게 할까요?” 묻기라도 하면 좋은데 묻지도 않아요. 예수님이 말씀하셔도 “예수님, 그게 아니고, 이렇게 해 주세요.” 오히려 예수님이 내 말대로 해주기만 바래요. 여러분, 의사가 환자 말대로 해야 병이 낫습니까? 환자가 의사 말 들어야 병이 낫습니까? 당연히 환자가 의사 말을 들어야 병이 낫지요.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 말 들어야 우리 인생이 잘 되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 말씀 들어야 우리 인생이 잘 되겠습니까? 당연히 우리가 예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 그런데 우리가 기도하는 거 보면, 우리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겠다는 게 아니라 예수님 보고 우리의 말을 들으라고 하는 게 훨씬 많아요. 그건 올바른 믿음이 아닙니다. 환자가 의사보고 내 말 들으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환자는 의사에게 증세만 이야기하고 의사가 처방해 주는 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래야 빨리 나아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주님께 내 상황을 말씀드리고 “주님, 어떻게 할까요? 주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순종 하는 게 중요합니다 . 그렇게 할 때 주님이 행하시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9절 봉독합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아멘.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십니다. 백부장은 이방인인데도 겸손한 믿음이 있었는데 오히려 유대인들은 좀 안다고 교만했거든요. 사실 예수님은 백부장의 믿음을 칭찬하시면서 유대인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신 겁니다 . 그래서 마태복음 8장에 보면 똑같은 백부장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8:12 함께 봉독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아멘. 유대인들에게 멸시받던 이방인들은 오히려 아브라함과 함께 천국 보좌에 앉아있는데 정작 본 자손이라고 자부하던 유대인들이 쫓겨나게 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됩니까? 좀 안다고 ( 교만 ) 하여서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 이 유대인들 같이 되지 않기를 원합니다.

믿음의 연륜이나 어떤 직분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백부장과 같이 오직 겸손하게 주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함으로서 주님께 칭찬받고 기적 같은 일들을 경험하는 믿음의 주인공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543장. 어려운 일 당할 때

백부장을 통해 본 진정한 믿음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눅7:9)”

여기 예수님을 놀라게 했던 믿음을 가진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고향 사람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아 ‘놀라게’ 했다면 여기 등장하는 사람은 그의 믿음으로 예수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믿음은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 사람을 예수께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해 주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그들이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이르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그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새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수고하시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주께 나아가기도 감당하지 못할 줄을 알았나이다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 나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내 아래에도 병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를 놀랍게 여겨 돌이키사 따르는 무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더라 보내었던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보매 종이 이미 나아 있었더라(눅7:1-10)”

키워드에 대한 정보 백부장 의 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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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부장의 #믿음 #[콩콩할미의 #성경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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