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곡 과 가라지 |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 삯꾼과 선한목자를 분별하는 방법 L 에스더권선교사] 멕시코예수사랑교회 Iglesia Amor De Jesus 2022. 6. 26 주일2부 멕시칸예배 205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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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a : Manera de discernir trigo y cizaña, abejas y cabras, buen pastor y asalariado
➤ 에스더권 선교사 (멕시코 선교사, 예수사랑선교회 대표, 순복음 멕시코예수사랑교회 담임목사, 교육학박사)
➤ 에스더권 선교사 저서 : 하나님의 선물, 방언의 숨겨진 비밀, 부탁합니다 제발! 자살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세대여 일어나라, 하늘의 청지기, 하나님의 치유, 신유의 숨겨진 비밀, 당신에게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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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 천국백성(3) 곡식과 가라지 – 지구촌교회

오늘 이 비유를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라고도 부릅니다. 여기서 알곡은 좋은 땅에 좋은 씨가 떨어진 결과로 예수님께서는 이 알곡 신자들은 아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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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iguchon.or.kr

Date Published: 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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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마 13:24-30)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마태복음 13장 전체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의 말씀입니다. 본문의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도 그 중의 하나로서, 하나님 나라의 모형인 교회 안에 하나님의 자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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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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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 변화에서 분별로 < 영성 ... - 크리스찬저널

예수님의 모든 비유 말씀이 우리의 분별을 요구하지만, 마태복음 13장 24-30절과 36-40절에 소개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세상 사는 동안 왜 분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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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jlogos.org

Date Published: 3/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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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1 천국에 대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알곡은 말 그대로 곡식의 알곡인데 가라지는 말 그대로 모양은 곡식같으나 알맹이가 없는 가짜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조밭에 나는 강아지풀을 가리켜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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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시는 하나님 – 휴스턴 새 믿음 장로 교회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주제는 천국과 지옥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열매인 천국 백성들과 그렇지 못한 불신자들과의 관계로서 알곡이 가라지로부터 방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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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

가라지는 좋은 씨인 좋은 밀이나 보리와 대단히 유사해서 그것이 처음 나올 때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 두 가지가 잎이 날 뿐 아니라 점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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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 의미, 예언, 분별 방법 – 그리스도 안상홍님

따라서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예수님 때부터 세상 끝 날까지 신약시대에 있을 일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비유에서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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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 13:24-30, 36-43)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태 13:24-30, 36-43) … 교회 속의 가라지 신자는 알곡 신자처럼 주님을 찾고, 성경에 대하여 말하고, 찬송하고 예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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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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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6.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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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곡식과 가라지 > 예배와 말씀

말씀본문 (마태복음 13:24-30)

24.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런데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이르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이르되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예수님의 모든 비유 말씀이 우리의 분별을 요구하지만, 마태복음 13장 24-30절과 36-40절에 소개되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세상 사는 동안 왜 분별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직접적인 단초를 제공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밭)에는 가라지가 있다. 가라지를 심은 자는 원수이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로 비유한다.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다. 이들은 함께 자란다. 가라지들, 악한 자의 아들들을 미리 뽑아 불사를 수는 없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악한 자들을 죽이려다가 착한 자까지 죽일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은 딱 하나! 같이 사는 것이다. 가라지와 곡식이 함께 사는 것. 악한 자와 착한 자가 함께 사는 것. 세상 끝에서야 비로소 가라지는 거두어 불사르게 되고, 악한 자들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밭, 이런 세상에 있다. 선악이 공존하는 세상. 가라지가 곡식을 뒤덮어 햇빛을 받기 어려운 세상. 가라지의 뿌리가 땅의 자양분을 다 차지해 곡식의 뿌리가 제대로 숨쉬기 어려운 세상.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분별을 해야만 한다. 물리적인 동작을 취하기도 어려운 상황. 섣불리 맞서 싸울 수 없는 상황. 가라지들이 하는 대로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 참아야 하는 상황. 때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

가라지가 뭐길래? 가라지는 눈에 보이는 밭에만 있는가? 『알곡과 가라지』에서 토마스 그린 신부는 가라지를 세 가지로 분류한다. 세상적인 것과 자신의 정욕과 사탄의 유혹.

첫째, 세상적인 가라지는 곧 구조적인 악을 말한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의 작은 영웅인 안네 프랑크처럼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안달하는 독일군인들도 마음은 선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당시의 독일과 나찌는 악 그 자체였다. 구조적인 악. 바울의 말씀처럼, 우리는 여전히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엡 6:12)하고 있는 것이다. 당장 우리들이 보고 있는 가시적인 대상들은 모두, 그것이 회사이든 교회이든 나라이든, 구조적인 악으로 탈바꿈하기 쉽다.

둘째, 세상적인 가라지가 가시적이라 판단이 쉬울 수 있다면, 가장 속기 쉬운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정욕이다. 이것은 자신만 아는 ‘은밀한’ 가라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개인적인 욕심과 악은 성경의 주요 주제가 되고도 남는 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4-5).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타오르는 상승 욕구, 성취 욕구, 인정 욕구, 소유 욕구…. 어떻게 이런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우선 우리의 변덕스런 인간성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의 정신과의사 스캇 펙은 인간의 악을 연구한 책 『거짓의 사람들』에서 “악은 복종할 줄 모르는 자기의지”라고 정의하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악을 행하지 않는다. 자신을 스스로 깨끗하다고 여기지 못하는 사람, 자신의 동기에 자주 마음이 걸리는 사람, 자신의 본성이 드러날까봐 마음 졸이는 사람, 이런 사람들은 악을 좀처럼 저지르지 않는다. 이 세상의 악은 영적인 특권층에 의해 저질러진다. 이 시대의 바리새인들, 그들은 자기 성찰의 불쾌감을 눈곱만큼도 견뎌 낼 마음이 없으면서 그걸 핑계 삼아 자기는 죄 없는 깨끗한 존재라고 스스로 치부한다”고 말했다. 예리한 지적이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근원인 마음의 가난이 없어질 때가 바로 우리 안의 악의 기운이 움틀 때라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스캇 펙은 악과 대항하지 말고, “우리 자신이 인생을 자발적으로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과정에서 악이 그냥 질식해 죽도록 내버려두라”고 조언한다.

셋째, 우리가 상대하기 가장 힘든 사탄이라는 가라지가 있다. 사탄은 하나님의 흉내를 내고 혼자 일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알아두어야 한다. 그는 늘 부하들을 찾고 조력자들을 찾아 이용한다. 그게 세상일 수도 있고, 우리의 정욕일 수도 있고, 우리의 영적 범위를 넘는 것들일 수도 있다. 사탄은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범국가적으로도 타락을 유도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대상 21:1,7).

가장 지혜로운 대처는 베드로전서 5장 8-9절의 말씀과 같이 근신하고 깨어서 사탄이 아예 틈타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그럼에도 사탄이 유혹하면, 마태복음 5장 39-40절의 말씀처럼 가능한 한 사탄을 피할 것이며, 감당할 수 없거나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에베소서 6장 12-13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야고보서 4장 7절의 말씀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마귀를 대적하는 것이다.

싫든 좋든 세상 사는 동안 우리는 여러 종류의 가라지들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 우리에게 믿음의 확신이 부족하다면 성가신 가라지들을 당장 모두 뽑아 불사르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가라지들을 그냥 내버려두라신다. 가라지들과 함께 살라고 하신다. 그렇더라도 잊지 말 것은, 가라지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고 해서 우리 스스로 가라지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을 겪을 때, 팔짱 끼고 앉아 킥킥대는 새디스트가 아니시다. 그는 죄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가나안으로 구원해 내신 전지전능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자신의 독생자까지 세상에 보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자비의 하나님이 아니신가?

아직 하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을 뿐이다. 고난은 단지 과정일 뿐임을 잊어선 안 된다. 고난은 지나갈 것이다. 하나님의 때가 이르면, 더 이상 분별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질 것이다. 그때까지 오직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것이다.

주님은 이런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그때까지 삼중, 사중의 어두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좌절하는 것 역시 죄가 아니던가?),시험 당함을 기쁘게 여기고(롬 5:3; 약1:2), 온전한 인내를 이루는 것(왜? 인내가 인격을 인격이 결국 희망을 낳을 것이므로!), 이것이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와 우리에게 물려준 분별의 흑역사의 고리를 끊는 가장 지혜롭고 현실적인 분별의 행동지침이 될 것이다.

“의인은 고난이 많으므로”(시 34:19), 끝까지 참고 부족함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약 1:4). 우리들의 인내가 다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환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우리들의 분별의 여정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18-5-1 천국에 대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마13:24-30, 36-43

인생의 최후 목적지는 천국이라고 하지만 천국에 갔다온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우리들이 천국에 대하여 알 수 있는 방법은 천국에서 오신 예수님 말씀을 듣는 것 밖에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보지 못한 천국을 우리들에게 이해시키고자 비유를 들어서 말씀하셔야지 우리들이 천국을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는 천국을 일곱 가지 비유로 말씀하셨는데 씨뿌리는 비유, 알곡과 가라지 비유(24-30), 겨자씨 비유, 누룩 비유, 밭에 감추인 보화, 진주를 구하는 장사, 그물에 걸린 물고기 비유 등이 나오는데 이 모두는 그 주제가 천국 곧 하나님 나라이다. 따라서 주님이 말씀하신 이 비유 속에는 반드시 천국에 관한 어떤 중요한 진실이 있다는 갓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전할 말씀은 위에서 말한 여러 가지 천국 비유중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로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비유’에 이어서 두 번째 말씀하신 천국 비유입니다. 알곡과 가라지라는 비유는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의 밭에 뿌린 사람과 같다(24). 그런데 밤중에 그의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25). 처음에는 몰랐으나 싹이 나고 이삭이 날 즈음에 이르러 곡식과 함께 가라지도 자라고 있음을 보고(26) 종들이 주인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27) 우리가 가서 가라지들을 뽑기를 원하시냐고 물었더니 주인은 그렇게 한 것이 원수의 소행이라고 밝히는 한편(28), 가라지를 뽑기를 구하는 종들에게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 것이 염려되니(29)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두라고 하였다. 또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추수 때가 되면 추수꾼들을 시켜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단으로 묶어서 불사를 것이고 곡식은 모아 주인의 곳간에 넣게 할 것이라고 하였다(30). 나중에 바닷가에 모인 사람들은 가버리고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들에게 가라지의 비유를 밝히 말씀하여 달라고(36) 하니 예수님은 이 비유의 뜻이 무엇인지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37).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농부가 논과 밭에 씨앗을 뿌리고 정성을 들여서 가꾸는 이유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는 하나님이요, 알곡은 믿음의 신자요, 쭉정이는 불신자이거나 형식적인 신자들을 비유하신 말씀이신데 하나님께서는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천국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태우시리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 신앙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기 앞서 알곡과 가라지에 대해 이야기를 먼저 할까 합니다.

1. 가라지와 알곡은 무엇인가?

알곡은 말 그대로 곡식의 알곡인데 가라지는 말 그대로 모양은 곡식같으나 알맹이가 없는 가짜를 말하는데 예를 들면 조밭에 나는 강아지풀을 가리켜서 가라지라고도 한다. 강아지풀과 조는 모양이 너무나도 흡사하고 비슷해서 다 자라야만 비로소 그 모습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가라지를 벼농사로 비유해 본다면 피와 같은 잡초이다. 벼와 피도 처음에는 모르지만 다 자라야만 피를 뽑아 낼 수 있다.

여기서 가라지라는 것은 어렸을 때 모습은 너무 비슷하나 다 자라고 나면 곡식에 비해 크고 억세기도 하지만 생명력이 강해 뽑아도 뽑아도 다시금 살아나는 근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곡식은 거름 주고, 김을 매고, 물 주고 돌보지 않으면 죽거나 병들거나 수확량이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가라지는 사람의 손이 안가도 잘 자라는 것이며 곡식은 주인의 손이 보살펴야만 자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1) 알곡보다 더 멋지게 보이는 가라지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농촌에 가서 봉사 할 때 가라지를 뽑으라고 하면 많은 청년들이 곡식을 뽑아버리곤 한다. 그 이유는 가라지가 곡식보다 더 좋게 보이기 때문이다. 가라지는 곡식보다 키도 더 크고 아주 강해 보인다.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이 구별해내기 어려운 것일 수 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보다 세상사람들의 삶이 더 훌륭해 보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알곡과 가라지 비유 속에 담긴 의미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 농부들의 골치거리 가운데 하나는 가라지를 분간해 내는 것이다. 가라지와 보리의 차이는 우리나라의 피와 벼 정도가 아니다. 너무도 흡사하고 똑같이 생겼다. 그리고 가라지는 보리의 뿌리를 부둥켜 안고 있기 때문에 뽑아 버리기가 쉽지 않다. 가라지를 뽑다가 보리까지 뽑을 수 있기 때문에 그냥 나두니 추수 때까지 골치덩어리인데 이것이 밥에 한 알만 들어가도 독성이 있고 쓰기 때문에 먹을 수가 없다. 이 가라지를 골라내는 일이 우리나라에서 콩나물을 기를 때 썩은 콩을 골라 내는 것과 같다. 로마법에 보면 남의 밭에 가라지를 뿌리면 몇 년의 징역을 산다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면 실제로 원수들이 몰래 보리밭에 가라지를 뿌려놓는 일이 있었나 보다.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주님의 교회안에도 가라지가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가라지와 알곡의 비유를 통해, 참 진리의 백성과 거짓 교리로 진리를 위장한 사단의 정체를 깨닫게 해 주셨다. 마태복음 7장22절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내게 이르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내쫓지 아니하였나이까? 주의 이름으로 많은 놀라운 일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노니 내가 너희를 결코 알지 못하였노라, 불법을 행한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교회내에서도 불법을 행하는 위선자들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2)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

알곡과 가라지의 차이는 뭐일까? 처음에는 몰라도 추수 때 뿌리가 남는 것은 알곡이고 뿌리채 뽑히는 것은 가라지이다. 뽑히기 까지는 알곡보다 가라지가 더 튼튼하다는 것이다. 알아야 될 것은 알곡 때문에 가라지가 있는 것이지 가라지 때문에 알곡이 있는 것은 아니다. 알곡은 농부의 한 평생 꿈이요, 가라지는 농부의 한 평생 근심거리이다.

사실 알곡은 유익된 것이지만 가라지는 백해무익한 것이다. 그럼에도 알곡이 있는 곳에는 가라지도 있게 마련이다.

일반적으로 곡식은 가라지의 그늘에 눌려 약해질 수 밖에 없다. 농부가 원하는 것은 알곡이지 가라지가 아니다. 비록 연약하고 세상적인 권세나 명예가 없고 보잘 것 없어도 하늘 곳간으로 들림 받을 존재는 알곡으로 비유된 진리의 백성이지 결코 불법을 행하는 악인들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는 가라지와 같이 외형적인 모습은 크고 명성도 있으므로 수많은 사람들이 나가는 거짓 교회도 있지만 그 결과는 예수님께서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니 결국은 파멸이라는 것이다.

2. 가라지의 비유를 설명하시다.

예수님은 천국을 말씀하시며서 비유로 말씀하신 경우가 많이 있다. 비유란 어떤 감추어진 실체를 알기 쉽게 다른 것으로 바꾸어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의 비유를 들을 때는 본래의 감추어진 진리를 복음서 전체의 주제 아래서 찾아야 한다. 오늘은 밭에 나는 알곡과 가라지에 대한 비유이다. 어렸을 때는 가라지나 곡식이 너무 비슷하여 구별이 안 되는데 자라면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를 보게 된다.

26 잎이 나고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36 예수님께서 무리를 멀리 보내고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에게 밭의 가라지의 비유를 밝히 말씀하여 주옵소서 하매

3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사람의 아들이요 38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왕국의 자손들이로되 가라지는 그 사악한 자의 자손들이니라.

39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수확하는 때는 세상 끝이요. 거두는 자들은 천사들이니 40 그런즉 가라지를 모아 불에 태우는 것 같이 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제자들은 예수님께 가라지의 비유에 대해 설명해 주시기를 간청했을 때 예수님은 그 비유 속에 담긴 뜻을 위의 말씀처럼 하나하나 해석해 주셨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첫째, 이 비유의 핵심은 ‘천국은 마치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24)는 말씀 속에 담겨 있다. 그리고 좋은 씨를 뿌리는 분은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37절).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어 천국 백성이 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땅에 살아가는 천국 백성이므로 세상에서 거룩하고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다. 다시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두시는 구원의 열매들(알곡)이다.

둘째, 가라지는 사악한 자의 자손들들이며(38)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 곧 사단과 악한 영들이다(39). 즉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천국 백성들이 말씀을 믿음으로 결실할 때 악한 영 곧 마귀의 지배를 받는 불신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을 방해하거나 실족하게 하는 불법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셋째, 추수 때는 세상 끝이며 추수군은 천사들이다. 세상 끝 곧 추수 때에는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이 땅에 보내어서 불법을 행하며 천국 백성을 넘어지게 하던 가라지들을 모아 풀무불같은 지옥불에 던져 넣어 거기서 이를 갈며 슬피 울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42). 이것은 주님의 재림 때까지 가라지(불신자)로 있다가 지옥불로 떨어질 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최후 심판을 맞이한다.

넷째, 알곡과 가라지는 추수 때까지 밭에 그대로 두어야 한다는 것은 알곡과 가라지가 세상이라는 밭에 뿌려지고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가라지는 알곡에 비해서 생명력이 질겨서 때로는 자신의 뿌리로 곡식의 뿌리까지 휘감고 있기 때문에 자칫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라지를 추수할 때 까지 그대로 두라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농부들은 아무런 쓸모 없는 가라지가 다음해에는 자라나지 못하도록 가라지를 불태워 버리곤 한다. 주님께서는 추수 때에 곧 주님의 재림 때 천국 백성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확실하게 영생의 축복과 영벌의 심판으로 구분하실 것이다. 주님의 재림 때 천사들이 가라지인 악한 자들을 거두어 풀무불에 던질 때까지 신자와 불신자는 이 세상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함께 살아간다. 지금은 가라지를 뽑을 때가 아니듯이 아직 심판의 때가 아니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서 영생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가라지들로서 지옥불에 던져져서 영원히 고통당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주제는 하나님 나라의 천국 백성과 불신자들과의 관계로서 알곡이 가라지로부터 방해를 받듯이 이 땅에서는 천국백성이 불신 세력으로부터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된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제 알곡과 가라지에 관한 비유를 심층 비교해 보기로 하자.

3 가라지와 알곡의 비교

(1) 알곡과 가라지는 한 곳에 있습니다.

땀 흘려 씨 뿌린 씨앗들이 무르익어 황금물결로 넘치는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니 저절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신문에 보니, 쌀이 너무 많이 남아서 쌓아 둘 곳이 없다고 하는 보도를 읽었습니다. 아무튼 지구촌 일각에서는 아직도 양식이 부족하여 먹을 것이 없어 굶는 나라들에 비하면 우리는 정말 감사해야 할 일들입니다. 추수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주님의 말씀인 알곡과 가라지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가 생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세상에는 왜 악이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왜 <거짓>이 더 위세를 떨치고 알곡들을 괴롭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를 비교하면서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2) 이 세상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공존한다.

하나님은 본래 이 세상을 선하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탄이 가라지를 뿌렸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주님의 비유를 보면, 곡식을 뿌린 밭에 원수가 밤에 와서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세상 어디를 가나 알곡과 가라지는 있게 마련이란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나라, 어떤 조직, 어떤 직장, 어떤 교회에도 알곡과 가라지는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알곡을 진(眞)이라면, 가라지는 위(僞)인 것입니다. 즉 <참됨>과 <거짓>은 항상 상존 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하겠습니다.

가끔 세상을 비관하고, 직장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더 더욱 교회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를 보노라면 지나치게 한쪽만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세상에는 어느 곳에든지 명암이 있게 마련이란 말입니다.

거짓과 진실이 공존하고, 선과 악이 함께 하는게 우리가 사는 세상이란 말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신앙생활도 잘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개인의 마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 한쪽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또 다른 한쪽에서는 육신의 법을 따라 살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도 이러한 갈등을 느꼈기에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구원해 내랴”고 탄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것을 모르면, 신앙생활에서 낙심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과거에는 가짜 상표에서 세계적이란 말을 듣는 나라 중에 하나였습니다. 유명 메이커의 상품보다 짝퉁들이 더 진짜처럼 보이게 한다고 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짝퉁을 사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것은 교회 안에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누가 가라지며 누가 알곡인지 사람은 모릅니다. 빛과 어두움이 함께 있듯이 알곡과 가라지는 교회내에서도 함께 공존한다는 사실입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른 곳에 따로 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교회 안에서 함께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기록한대로 우리 마음 속에도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함께 거하여 이 두 마음이 언제나 싸우며 투쟁합니다(롬7: 23내 지체들안에서 다른 법이 내 생각의 법과 싸워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게로 나를 사로잡아 가는 것을 내가 보는도다). 이 두 마음 중 성령의 소욕이 이길 때 우리는 요셉과 다윗같은 인물이 될 수 있지만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아간같이 사특하고 가룟유다같이 은혜를 원수로 갚는 배반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과 악이 모두 공존하는 세상에 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선하게도 되고 악하게도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알곡은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생명이 없다.

알곡이나 쭉정이는 외관상으로 보면 똑같이 보여도 알곡에는 생명이 있고 쭉정이는 생명이 없다. 아무리 많은 씨앗을 논밭에 뿌려도 생명이 없는 쭉정이는 그대로 썩어버리고 싹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생명이 있는 알곡은 싹을 낼 수가 있다. 알곡은 살아 있고 쭉정이는 죽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인간의 생명은 태어나면서부터 죄로 인하여 죽은 생명으로 태어났습니다. 살아서 숨은 쉬고 있으나 실상은 허물과 죄로 죽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생명을 가지고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생명이 없는 쭉정이는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을 가진 자가 천국에 들어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알곡 믿음을 가진 자는 성령으로 거듭난 새 생명을 소유한 자입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님의 생명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가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예수가 없는 자는 생명이 없습니다. 쭉정이가 되지 않고 알곡이 되기를 원한다면 이 시간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알곡은 고개를 숙이고 쭉정이는 고개를 듭니다.

벼가 익어가는 논에 가보면 알곡일수록 고개를 숙이지만 쭉정이는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알곡 신자일수록 겸손해지고 알곡이 아닐수록 교만하다는 것을 교훈하여 줍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것을 아는 자가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한 자는 은혜를 받은 자요, 은혜를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감격하는 자입니다. 그래서 바울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라고 고백할 수 있게 됩니다.

주님은 쭉정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알곡을 원하십니다. 쭉정이 신자는 되지 못하고도 된 줄로 착각하고, 알지 못하면서도 아는 척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알곡 신자는 하나님 앞에 언제나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 때문에 가슴아파하고,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보면서 자기 탓으로 여기며, 다른 사람의 허물과 죄를 하나님 앞에 중보 기도하는 자들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겸손히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은 논리나 말이 아니고 겸손을 통하여 나타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바르게 받지 못하면 교만해 집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찾으시는 성도는 겸손한 알곡 신자입니다.

(5). 바람에 날리지 않으면 알곡이요, 날아가면 쭉정이입니다.

곡식이 익으면 추수를 합니다. 알곡도 거두고 쭉정이도 거두어 들입니다. 농부는 창고에 보관하게 전에 키질을 합니다. 알곡은 앞으로 모이지만 쭉정이는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키질하기 전제는 알곡이나 쭉정이나 차이가 나지 않으나 바람에 날려보면 쭉정이는 멀리 날아가 버리지만 알곡은 남게 됩니다.

신자들도 이와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아서는 누가 알곡 신자인지 누가 쭉정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시험의 바람이 불어오고 환난의 바람이 불어오면 알곡 신자는 끝까지 믿음을 지키지만 쭉정이는 환란의 바람에 멀리 날아가 버립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도 하나님께서는 시험과 환란을 통하여 알곡을 골라내는 작업을 하실 것입니다. 그날에 하나님은 알곡은 알곡대로 골라내어 천국 창고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쭉정이대로 골라내어 타는 불타는 지옥에 던지실 것입니다.

천국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믿음으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곳에는 알곡 된 성도들만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나 쭉정이가 가는 곳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타는 지옥임을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가 함께 있을 때는 잘 모르나 추수의 때가 오면 반드시 하나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실 것입니다. 그때에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을 진실하게 믿어야 합니다. 오늘 이 순간에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부르신다고 할지라도 천국 창고에 들어갈 수 있는 알곡같은 믿음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6) 가라지 최후

마태복음 13장 41절~4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 지옥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43)

예수님은 마지막 지옥불에 던져질 가라지의 정체를 밝혀주실 때에 먼저 마귀가 뿌려 놓은 가라지를 불사르기 위하여 단으로 묶어서 불에 태울 것이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가라지의 마지막 결과를 말씀하신 것인데 가라지는 곧 풀무불에 던짐을 받을 불법자들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불법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믿노라고 거짓 행하는 사람들 또는 그들 단체인 거짓 교회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4. 알곡과 가라지 둘 다 모두 주인의 보호를 받습니다.

밭에 곡식과 함께 가라지도 자라고 있음을 발견한 종들은 주인에게 가서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주인은 대답하기를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고 하였습니다.

주인은 곡식과 가라지의 뿌리가 서로 뒤엉켜 있어서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상하거나 뽑히게 될 것을 염려한 것입니다. 주인은 많은 가라지를 없애는 것보다 한 포기의 곡식을 다치지 않게 하는 데 더 관심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교회에서 가라지 신자를 솎아내려다가 혹시라도 알곡 신자가 상처를 입게 되지는 않을까 염려하십니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우리는 자칫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다가 실수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심사숙고할지라도 누가 알곡 신자인지, 누가 가라지 신자인지를 분별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입니다. 특히, 믿음이 연약한 신자의 영적 미숙함이나 인간적인 약점을 보고 그를 가라지 신자라고 판단을 내린다면 그 때문에 그 어린 신자와 주님의 몸된 교회는 큰 상처를 입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에서 가라지 신자가 악행을 하더라도 무관심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거짓된 신자로 명백하게 드러날 경우, 교회는 그 사람에 대하여 경계하고(딤후 2:25,26), 때로는 교회의 출석을 금할 필요도 있습니다(고전 5:13). 단지 어떠한 경우라도 가라지 신자들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은 주님의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인의 관심은 오로지 알곡에게만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은총은 가라지에게도 똑같이 내려집니다. 마치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똑같이 햇빛과 비의 은총이 주어지는 것처럼 그의 은총은 알곡과 가라지 모두에게 동등하게 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라지에 대한 주인의 관심이나 사랑 때문은 결코 아닙니다. 그것은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도 다치게 할까봐 추수때까지 기다리는 알곡에 대한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총이 선인과 악인 모두에게 공평하게 베풀어진다고 불평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사랑하시거나 보호하기 때문이 아니라 도리어 그것을 통해 의인을 보호하고 돕기 위함이며 가라지의 때가 추수할 때까지인 것처럼 그들의 때는 최후의 심판 때까지이기 때문입니다.

5.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된다.

그러나 때가 되면 의인과 악인을 반드시 구별됩니다. 예수님의 좌우에 갈라선 양과 염소 같이, 죄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에서 롯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홍수로부터 노아와 그 가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구별하셨던 것과 같이 의인과 악인은 반드시 구별됩니다. 오늘 말씀처럼 그때에는 주인이 알곡은 모아 천국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 꺼지지 않는 지옥 불에 던지는 것과 같이 의인에게는 상급으로 악인에게는 영벌로 구별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의인을 구별하시되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노아를 위해 방주라는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시고 롯을 위해 천사의 방문이라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하신 것처럼 주님은 의인을 위한 특별한 방법을 예비하신다는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의인과 악인의 궁극적인 차이입니다. 주님은 악인의 고통과 고난에 대해서는 무관심하시지만 의인의 고통은 결코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며, 어떠한 여건하에서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천명이 네 곁에서 만명이 네 오른쪽에서 쓰런질 터이나 그것이(역병, 멸망 두려움) 네게 가까이 오지 못하리로다'(시91:7)

오늘 천국비유말씀의 핵심은 알곡은 곳간에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운다는 것입니다.

오늘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추수 때에 주인이 추수꾼들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고 명합니다. 그러면 추수꾼들은 그 동안 곡식의 영양분을 빼앗아 잘 자라난 가라지를 한 곳에 모아 뜨거운 불 속에 던져 버릴 것입니다. 이 세상의 마지막에도 주님은 천사들을 보내셔서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나누실 것입니다. 그 때에는 세상에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자들과 교회는 다녔으나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젖어 살던 거짓 신자들과 마귀의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던 자들이 영원한 지옥 형벌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반면에 마치 곡식 이삭이 여러 달에 걸쳐 혹독한 더위와 가뭄과 병충해를 견뎌낸 후 추수 날에 거두어지고 탈곡되어 창고에 들여지듯이 이 땅에서 여러 가지 시련과 역경을 믿음으로 견뎌낸 알곡 성도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또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의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같이 모든 알곡 신자들이 구원의 하나님을 친히 뵙고 영광과 찬송을 돌릴 뿐 아니라 주님을 위해 바친 모든 수고와 흘린 땀에 대하여 영광스런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그 날의 기쁨에 대해 주님을 위해 고난받은 성도들은 앞으로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천국의 영광을 누리게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8).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들일이 있어도 그 날의 영광을 바라보며 충실한 알곡 신자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지막 추수는 바로 우리 주 예수님께서 이땅에 재림하시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의 재림과 더불어 모든 죽었던 자들이 썩지 않을 몸을 입고 다시 살아나 부활의 몸으로 변할 것이고 살아 남은 자들도 변하여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담에 의해 저주 받은 이 땅과 하늘은 온데 간데 없이 없어지고 다시는 멸망하지 않고 쇠하지 않는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성이 하늘로 부터 내려오면 모든 성도들이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것을 보여 주신 것이 성경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2천년전에 예수님은 이 세상에 복음씨앗을 뿌리셨으며 이천년동안 알곡이 성장하는 동안 가라지도 세력을 확장하며 지금까지 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없이는 우리 스스로 알곡이 될 수도 없으며 우리들을 알곡 되게 하신 그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가라지 불신자들이 핍박과 시험을 통해 우리들을 넘어지게 하고 공격해 온다 할지라도 주님 오실 때까지 잘 참고 견뎌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제자들이 말한 소위 ‘밭의 가라지 비유’의 깊은 의미이기도 합니다.

4세기경 복음이 로마카톨릭에 정착되면서 마귀는 2000년 동안 카톨릭이라는 마귀의 전략적인 교회를 만들어 복음을 부패시키기 하였다.

325년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유월절에 지키던 부활절을 폐지시켰고

오늘날 지키는 이스터축제를 부활절로 대체하였고

354년에는 크리스마스를 제도화 시켰고

5세기 경에는 십계명까지도 변경시켜 기독교 성경과 카톨릭 성경의 십계명이 판이하게 다르게 되었고

12세기 경에는 예배시간에 사도신경을 암송하도록 하였으며

이와같은 불법행위가 오랫동안 지속되다 보니 이제는 교회의 전통으로 고정되어 있어 이런한 불법전통을 지키지 않는 교회들이 이단처럼 보이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불법은 마귀의 무기이므로 불법을 추종하는 것은 곧 마귀의 자녀임을 스스로 시인하는 행위입니다.

마태복음 7: 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여기서도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하셨고, 불법을 행하는 자 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고

아무리 선지자 노릇을 하고, 마귀들을 쫓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이적과 기사와 권능을 행한다고 할지라도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죄와 불법이 성행하고 그로 인한 고통이 있듯이, 지상의 교회에도 가라지 신자로 인한 고통이 생겨납니다. 주님은 이러한 형편을 잘 아시기에 우리에게 이 비유를 들려주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라지 신자로 인해 고통이 다가 올지라도 낙심치 말고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끝까지 알곡 신자답게 주의 일에 더욱 힘써서 주님 앞에 설 그 날을 바라보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지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알곡과 가라지

성령강림절 후 넷째 주일[20110710]

알곡과 가라지(마 13:24-30, 34-43)

성경에서 천국의 이미지를 가장 잘 표현한 곳은 어디일까요? 아마도 시편 23편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목자의 품 안에서 아무런 부족함이 없는 곳, 천국은 바로 그런 모습일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은 지상에서의 일시적인 기쁨을 초월하며, 천국의 영광은 세상에서 누리는 그 어떤 영광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네 가지 밭의 비유를 하시고, 겨자씨 같은 천국, 누룩과 같은 천국의 비유를 하신 뒤 시편의 말씀을 인용하며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리라.”(35절)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이란 창조 이래로 존재하고 있던 천국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비유는 창조 이래로 존재하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시는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지만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마 1:21)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 무지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롬 5:8) 죄를 깨닫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회개하게 하고,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의로 나타나신 것입니다.(롬 4:21)

예수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천국이 어떤 곳이라는 것을 온전히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딤전 2:4)을 인간의 언어로 나타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복음입니다.(눅 4:43)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34절)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지상에는 없는 천국의 오묘한 것들을 인간의 말로 표현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통해 천국을 말씀하시고자 할 때 천국의 실상을 다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을 위해 비유를 드시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앞선 13장의 네 종류의 밭의 비유도 농사짓는 사실의 세세한 부분까지 맞추어 설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 나쁜 세 종류의 땅이 있는데, 돌밭은 어떻게 해서 돌밭이 되었고, 길가는 어떻게 해서 딱딱해졌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네 종류 밭의 비유의 핵심은 씨가 좋은 땅에 뿌려져서 많은 결실을 맺었다는 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친히 이 비유를 설명하시는데,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며, 깨달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십니다.(마 13:23) 물론 예수님은 네 가지 밭의 비유를 설명하시며 길가, 돌밭, 가시떨기 밭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이 있음을 염두에 두고 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특별히 제자들에게 이 비유를 설명하시며 제자의 길이 이와 같음을 말씀하시고(요 15:8), 천국은 이런 사람들의 몫임을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본문은 마태복음 13장 24절부터 예수님이 천국 비유를 하시면서, 밭에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지만 추수 때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된다는 비유의 말씀을 제자들에게 다시 설명해 주는 내용입니다.

24절 이하의 비유를 보면 원래 밭에는 좋은 씨가 뿌려졌는데, 사람들이 잘 때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고 했습니다. 이 비유가 마태복음 13장의 네 종류의 밭의 비유와 비교해보면 조금 혼동이 됩니다. 밭의 비유에서는 밭을 인간의 마음으로 보았는데 여기서는 밭을 세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 가라지는 악한 자 곧 마귀의 자식들이라고 설명하십니다.(38절)

그런데 여기서 악이 어디서 기원했는지를 따질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사실 악의 기원 문제는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고 있지도 않습니다. 타락한 천사가 사탄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사 14:12), 무언가 하나님의 영과 대비되는 어두움의 세력은 창세기 1장 2절에서부터 암시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또한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데 밭에 뿌려진 모든 씨가 천국의 아들들이 되고 이것이 자라면서 가라지로 변한다고 볼 수 있겠는데, 23절에서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는 비유에 맞추면 좀 해석이 어색해 집니다.

그러나 어거스틴의 경우는 주님의 밭을 교회로 보면서 교회에서는 밀이었던 것이 때로는 가라지가 되고, 가라지였던 것이 때로는 밀이 된다고 하면서, 내일 무엇이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해석을 하기도 합니다.

여하튼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설명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을 찾으면 두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는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세상 끝에 심판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때 악인과 의인의 구분은 명확해 진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 세상에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고 있다는 의미를 생각해 봅니다. 이 세상이라는 밭에는 천국의 아들들과 마귀의 자식들이 다 같이 자라고 있다는 것입니다. 가라지는 좋은 씨인 좋은 밀이나 보리와 대단히 유사해서 그것이 처음 나올 때는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가 이 두 가지가 잎이 날 뿐 아니라 점점 성숙하여 나중에 열매를 맺으려 할 그 때에는 가라지는 가라지대로, 알곡은 알곡대로 분명하게 구분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세상에 천국의 아들들과 마귀의 자식들이 같이 있다는 말은 세상 끝나기 전까지 천국을 이루는 일에 마귀의 방해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넘어지게 하는 자들”이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41절) 넘어지게 하는 것은 믿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것이고, 불법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방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의인과 악인이 공존하기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마귀의 역사를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주시고 계십니다. 에베소서 2장 2절에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라는 말씀 가운데 ‘역사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여기서 ‘역사한다’(에네르게오)라는 동사는 ‘에너지를 공급해서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마귀는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방해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제자 된 우리의 삶은 현재의 고난이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고(롬 8:18),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나가야 하겠습니다.(빌 2:12)

또한 “곡식 가운데 가라지가 덧뿌려졌다”(25절)는 말과 알곡과 가라지가 처음 보기에는 비슷한 상황인 것은 같은 세상에서 즉 생활 근거를 같이 하고, 같은 자리에 뿌리박고 자라는 모습을 말합니다. 알곡이 나는 데서 알곡만 나지 않고, 가라지가 알곡이 취해야 할 영양분을 동시에 취해 자라고 있는 현실을 나타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일은 수동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취해야 할 자세를 요구하며(마 11:12), 영적으로 늘 깨어있어야 하고(벧전 5:8), 한 사람의 일생은 전쟁과 다름없는 현실임을 보여줍니다.(엡 6:12)

두 번째로 예수님의 메시지는 세상 끝 날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영적인 전투가 있고, 두 부류가 공존하지만 마치 추수 때에의 다 자란 알곡과 가라지 처럼 심판 날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식들은 온전히 구별됩니다. 또한 그 날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아버지와 영광을 함께 누리게 되지만 마귀의 종들은 지옥으로 던져지는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본문은 악의 유혹과 방해로 인해 예수님의 제자 된 우리가 좌절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해야 할 것을 요구합니다.(고전 16:13) 우리의 영혼은 알곡으로 자라나듯이 날마다 새로워져야 하고(고후 4:16), 날마다 말씀에 거하여 자라나야 합니다.(골 3:16) 그리하면 종국 우리 인생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갈 5:22-23)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는 씨의 모습 그대로가 아니라 열매 있는 형체로 돌아가게 되어 있습니다.(고전 15:38)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마음을 지키고 믿음을 지킨 제자 됨의 증거라고 사도 요한은 증거합니다.(요 15:8) 우주의 피조물들이 이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딸들이 나오기만을 기대하고 있습니다.(롬 8:19) 우리는 천국의 자녀들로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나가는 알곡들이 되길 바랍니다.(빌 2:13)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 의미, 예언, 분별 방법

예수님께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여러 가지 비유로 가르침을 주셨다. 그 가운데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는 영적 농사로 비유된 그리스도의 복음 사업에 대한 예언이 담겨 있다. 세상의 수많은 교회 중에서 참 진리 교회를 분별하는 방법 역시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이 알려주신 ‘알곡과 가라지 비유’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24~30

주인이 먼저 좋은 씨를 뿌렸다. 이후에 주인의 농사를 훼방하기 위해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렸다. 가라지는 곡식과 겉모습이 매우 비슷해, 곡식 가운데서 가라지만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번식력이 강하기 때문에 가라지를 뽑지 않고 곡식과 함께 자라게 두면 그 밭은 오래 가지 않아 가라지로 뒤덮이고 만다.

알곡과 가라지 비유의 의미와 예언 성취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 대한 해석도 알려주셨다.

“… 가라사대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마 13:36~42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 곧 예수님을 가리키며 추수 때는 세상 끝이라고 하셨다. 따라서 알곡과 가라지 비유는 예수님 때부터 세상 끝 날까지 신약시대에 있을 일에 대한 예언이다. 그리고 비유에서 가라지를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는다고 하신 것을, 해석에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는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가라지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라고 하셨다. 주인이 좋은 씨를 뿌린 밭에 원수가 가라지를 덧뿌려 방해한 것은, 마귀가 그리스도의 복음 사업을 훼방하고자 세상에 불법을 퍼뜨릴 것을 뜻한다. 이 비유처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사단에 의해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악이 등장해 세를 넓히기 시작했다. 교회에 예수님이 가르치고 본보이신 새 언약 진리가 아닌 불법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생겨났고, 일요일 예배 등 이방 종교에서 기원한 거짓 교리가 자리 잡았다. A.D.325년에는 새 언약 진리의 핵심인 유월절이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그로부터 1600여 년이 지난 오늘날, 세상에는 각기 다른 교리를 주장하는 많은 교회가 있지만 모두 일요일 예배, 크리스마스 등 성경에 없는 교리를 지키고 있다. 새 언약 진리를 온전히 지키는 교회는 찾아볼 수 없다. 가라지를 뽑지 않고 놔두면 온통 가라지 밭이 되듯 불법을 행하는 교회가 수없이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가라지가 아무리 번성해도 농부가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결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1~23

아무리 예수님을 ‘주여, 주여’라고 부르며 겉모습이 하나님의 백성과 비슷해도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알곡과 비슷한 모습을 지닌 가라지가 곳간에 들어가지 못하고 풀무불에 던져지는 것과 같다.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하는 방법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가라지가 아닌 알곡이 되어야 한다. 성경은 이를 위해, 가라지가 뿌려지기 이전의 신앙으로 돌아가라고 교훈한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엡 2:20

사도들과 선지자들이 닦아놓은 터 위에서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예수님과, 예수님께 직접 가르침 받은 사도들이 행한 초대교회의 신앙과 진리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예수님께서 가르치고 본보이신 진리는 대표적으로 안식일(눅 4:16, 행 17:2), 유월절(마 26:17~28), 수건 규례(고전 11:1~6), 오순절(행 2:1~4)과 초막절(요 7:2, 37~39) 등이 있다.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 모두 이러한 새 언약의 규례를 지켜 행했다. 가라지가 뿌려지기 이전의 이런 순수한 진리를 지키는 교회가 비유 속의 알곡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 당신의 승천 이후 세상에 불법이 만연하고 새 언약 진리가 사라지게 될 것을 예언하셨다. 그로 인해 재림하셨을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도 하셨다(눅 18:8). 성경은 참된 믿음을 찾아볼 수 없는 세상에 인류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가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을 예언했다(히 9:28). 사라진 새 언약 진리를 되찾아 주셔서 구원의 길을 열어주실 분은 오직 재림 그리스도뿐이다. 성경의 예언에 따라 다시 오신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영접하고 그 가르침을 따라 새 언약의 규례를 지킬 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알곡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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