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일 을 거룩히 지키라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 11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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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 내일도 오늘처럼 맑고 따뜻한 날씨가 이어지겠습니다. 일요일인 모레는 전국이 차차 흐려져 비가 내리겠습니다”
‘내일이 벌써 토요일이지’
“ 어, 형~ 숨겨진 비밀? 일곱 번 째 날이 토요일?”
“어..어..마태복음24장 20절? 형! 형!”
갑작스런 형의 전화.
‘성경의 비밀이라니…’
그 날 이후로 나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그 비밀을 보게 된 것은 내게 큰 축복이었다.
나는 그 비밀을 추적했다.
AD 321년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는 첫번 째 날을 ‘태양의 숭배일(Sunday)’로 명명했다.
“모든 시민들은 존엄한 태양의 날(Sunday)에 쉬어야 한다.”
첫 번째 날인 일요일을 공휴일 예배의 날로 제정했다.
하나님의 예배일 일곱 번째 날 안식일 폐지했다.
‘하나님의 안식일은 일곱 번 째날인데…’
‘첫 번째 날은 일요일이고 주말(週末)은 토요일…’
‘안식일 예배날은 토.요.일이다!!!’
-교부들의 신앙(저자: 제임스 C.기본스)- “주일(일요일)예배를 거룩하게 지키는 신자의 가장 중대한 의무이다. 그러나 주일예배는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성경의 예배일은 토요일이지 일요일은 아니다”
“주일(일요일)예배는 카톨릭 교회의 권위로 만든 것이다.”
‘감히 하나님의 법을 바꾸다니… 안식일(토요일)이 역사 속에 묻혔다!’
‘누구도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안식일의 축복을 깨닫고 예배를 드린 위대한 선지자들인 모세, 여호수아, 다윗, 엘리야도
안식일(토요일)에 예배를 드렸고 (출20장8절) 예수님과 베드로, 요한도 안식일(토요일)에 예배를 드렸다. (눅 4장 16절) 예수님 승천하신 이후의 사도바울도 안식일(토요일)에 예배를 드렸다.
(행 17장 2절)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이는 그 때에 큰 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24장20절
그렇다!!! 안식일(토요일)은 세상 끝날까지 지켜져야하는 하나님의 규례다. 지금도 안식일(토요일) 예배를 드려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드디어 나는 비밀을 찾았다.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이 약속된 7번째 날 ‘안식일’ (토요일)
예수님과 사도들이 드렸던 ‘안식일’(토요일)예배를 성경말씀 그대로 드리는 교회를 찾았다.
바로 하나님의 교회다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세계복음선교협회는 일곱 째날 안식일(토요일)을 지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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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11, 신 5:12-15)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안식일은 다른 부정한 것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날, 성별된 날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한 목적으로 다른 날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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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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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키라 – 참평안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하셨습니다(출 20:8). ‘기억하다’는 히브리어 ‘자카르’로 ‘송곳 같은 것으로 뚫다’ ‘깊이 감동하다, 마음 깊은 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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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ampyungan.com

Date Published: 4/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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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 제4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 개혁주의 학술원

즉 안식일 제도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창조주되신 것과 구원자 되시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와 또 앞으로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고 일곱째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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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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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복(福)주시되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날에 친히 안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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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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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 말씀침례교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계명이어서 설교하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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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v1611.net

Date Published: 6/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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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계명 4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 생각하는 ... - 크리스찬저널

십계명 묵상” 네 번째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 곧 주일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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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jlogos.org

Date Published: 7/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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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

안식일은 출애굽기와 구약 성경에서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과 실생활에서도 복잡한 문제다. 이 계명의 앞부분은 일주일에 하루는 노동하기를 쉬라고 명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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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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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Church of God 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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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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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출 20:8-11, 신 5:12-15)



하나님께서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을 가장 길게 말씀하셨습니다. 글자 수로는 전체 십계명의 3분의 1 이상 되는 분량으로, 장차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십계명 중에 안식일 계명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가늠하게 합니다. 제 4계명은 다른 계명을 잘 지킬 수 있게 하는 신앙생활의 기초 원리요 중심입니다.

1. 제 4계명의 해석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실 때 처음 제정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마치신 후 “일곱째 날” 안식하셨는데 이때에 이미 안식일이 제정된 것입니다(창 2:3).

1)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기억하여”는 히브리어 ‘자카르’의 명령형 ‘자코르’로 ‘반드시 기억하라, 언제나 유념해 두라, 깊이 뚫으라, 마음 깊은 곳에 되새기라’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은 항상 성도의 마음 한가운데 깊은 감동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거룩히 지키라”는 것은, 안식일은 다른 부정한 것과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리기에 합당한 날, 성별된 날이라는 뜻입니다. 특별한 목적으로 다른 날과 구별하여 따로 떼어놓으신, 가장 으뜸가는 날, 귀중한 날, 영광의 날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기억하는 자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2)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7일을 안식일로 지키기 위해서는,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해야 합니다. “힘써”는 히브리어로 ‘아바드’(섬기다, 경작하다, 봉사하다)의 미완료형이 쓰였는데, ‘아바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 열심히 일을 하되,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마음가짐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과 그 후손들에게 명하신 인간 본연의 사명입니다. 엿새 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신성한 노동과 사명 감당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한 자만이 안식일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여호와의 안식일’이라고 하신 것은, 안식일이 하나님께 속한 날, 하나님만을 위해 존재하는 날, 하나님만을 향하여 바라보아야 하는 날임을 뜻합니다.

4)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본인과 자녀와 종들은 물론 심지어 부리는 짐승들과 문 안에 머무는 이방 나그네까지도 안식일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안식일의 축복이 모든 피조 세계 전체에 미치게 될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롬 8:19-23).

5)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구약성경에 기록된 안식일의 별칭은 모두 히브리어로 ‘샤바트 샤바톤’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반드시 안식하라’라는 의미의 강조 어법으로 안식일이 ‘반드시, 그리고 온전히 쉬는 날’이라는 미입니다. 이처럼 안식일에는 철저히 안식해야 할 것과 안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필연적 이유가 있음을 선포합니다.

2. 제 4계명의 세부 율법

제 4계명에 대한 세부 율법이 기록된 곳은 출애굽기 21:1-11, 23:10-12, 신명기 15:1-16:17입니다.

1) 안식일 규례

첫째, 육신에 관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① 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레 23:32).

② 엿새 동안 힘써 모든 일을 행해야 합니다(출 20:9, 신 5:13).

③ 어떤 상황에도 나무를 하러 가서는 안 됩니다(민 15:32-36).

④ 모든 처소에서 불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출 35:3).

⑤ 무역하지 못합니다(느 13:15-21).

⑥ 사고 팔지 못합니다(느 10:31, 암 8:5-6).

⑦ 술틀을 밟는 것과 물건 운반을 금합니다(느 13:15, 렘 17:21-22).

⑧ 밭을 갈 때나 거둘 때에도 쉬어야 합니다(출 34:21).

⑨ 발을 금하여 오락을 행하지 말아야 합니다(사 58:13).

⑩ 일정 거리 이상 움직이면 안 됩니다(행 1:12).

⑪ 안식일에 바칠 제물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대로 별도로 준비해야 합니다(민 28:9-10).

이렇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신 이유는 출애굽기 20:11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역을 마치신 후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쉬셨다는 것은 그 결과를 보고 흡족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는 상태를 말합니다(창 1:31). 따라서 일곱째 날인 안식일을 축복하셨다는 것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철두철미하게 빈손 들고 안식일을 지키는 자는 반드시 복을 받고 번창하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둘째, 안식일에 일이 허용된 경우가 있습니다.

▶ 안식일에 선지자(하나님의 사람)를 찾아가는 여행(왕하 4:8-37)

▶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전쟁하는 일(수 6:12-15, 왕상 20:1-30, 왕하 3:9-27, 11:5-12)

▶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와 관련되는 일(제사장과 레위인, 대상 23:24-32)

▶ 생후 8일 만에 할례 주는 일(요 7:22-23)

2) 안식년 규례

안식년은 안식일 개념이 확대된 것으로 7년을 주기로 맞이하는 제 7년째 되는 해입니다.

제 7년에는 땅을 쉬게 해야 하고(출 23:10-11, 레 25:1-7), 채무 변제를 유보해 주어야 하며(신 15:1-2), 히브리 종을 해방하여야 합니다(출 21:2-6, 신 15:12-18).

3) 희년 규례

희년은 안식년이 더 확대 강화된 것으로, 안식년이 7년마다 지켜졌다면 안식년이 일곱 번이 지나고 그 다음 50년째에 지켜졌습니다. 희년은 티쉬리월(7월) 10일에, 대속죄일의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시작됩니다(레 25:9-10).

희년에는 남의 집에 있던 동족이 각각 자기 기업과 가족에게 돌아가야 하고(레 25:10), 땅과 가옥이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하며, 땅을 쉬게 해야 합니다. 그리고 희년과 관련된 이자에 대한 규례가 있습니다.

희년의 규례를 볼 때, 희년의 정신은 모든 부채가 탕감을 받는 것입니다.

3. 예배에 대한 교훈

제 4계명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시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예배의 시간은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하나님의 백성이 지켜야 할 ‘대대의 표징’, 곧 영원한 표징입니다(출 31:13, 17). 구약 시대에 수많은 제사가 안식일에 드려졌듯이, 오늘날 주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드려져야 합니다. ‘주일’은 어떤 다른 요일로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이 바로 주일이기 때문입니다(마 28;1, 막 16:2, 눅 24:1, 요 20:1).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일을 공적 예배를 드리는 날로 지키기 시작하였습니다(행 20:7, 고전 16:2).

4. 제 4계명을 범한 자의 최후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범할 경우, ‘사형’이라는 극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셨습니다(출 31:14). 실제로 광야 생활 중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하다가 발각되자,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온 회중이 그를 돌로 쳐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민 15:32-36). 성전이 파괴되고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 유수의 징벌을 받은 것은, 안식일과 안식년 계명을 지키지 못한 죄에 대한 보응이었습니다(대하 36:21, 느 13:17-18, 레 26:34-35).

5. 제 4계명의 구속사적 교훈

아담이 안식하시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은 것은, 하나님의 안식으로부터 도망친 죄입니다(창 3:8). 아담과 여자의 타락으로 하나님의 안식은 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열심히 지켰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선한 안식일 규례를 오히려 인간을 억압하고 규제하는 악법으로 변형시켰으며, 완전히 형식주의로 전락한 상태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참뜻과 근본정신을 망각한 자들을 향해 근심하시고 진노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안식일에 손이 마른 자를 회당에서 고쳐주시면서(마 12:9-13, 막 3:1-5, 눅 6:6-10)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의 입법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의 모든 주권은 예수님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안식일에 모여서 드리는 모든 예배와 교제, 헌신과 봉사 등 무엇이든지 오직 예수님만을 중심해야 합니다. 또한 참안식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온다는 의미이며,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은 안식일 준수에 해당된다는 의미입니다.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심령 속에 모시고 예수님 안에 사는 자는, 언제나 안식일과 안식년, 희년의 축복 속에 사는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창조와 구속을 기념하기 위하여 안식일을 지켰다면, 이제 신약 시대 이후의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새로운 창조와 새로운 구속을 기념하기 위하여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 계명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신 예수님을 예표하였듯이 주일은 주님께서 재림하심으로 주어질 참안식의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음을 알려 줍니다(히 4:4-9). 주일을 지키며 진정한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주일뿐만 아니라 모든 날을 주의 날로 지킬 때, 마침내 남아있는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롬 14:5-6, 히 4:9-11, 요 5:17, 히 4:3).

114. 제4계명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114. 제4계명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들이나

네 남종이나 네 영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출 20:8~11)

네 번째 계명에서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신령과 진정으로(그리고 진실과 성실을 다하여) 예배해야 하는 거룩한 날을 제정해 주셨다. 하나님의 창조와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것(신5:15)을 기념하는 구약의 안식일 성수는 그 동안 모든 구약이 예언해 온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기하여(요20:19, 행20:7, 계1:10) 주일성수로 바뀌어졌다. 구약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으로 지켰고, 신약의 초기에는 안식일을 지키되 예수님께서 그 안식일의 참된 목적과 의미를 새롭게 일깨워 주셨다. 그 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새 창조와 구속을 체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는 토요일 안식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의 주인과 완성자이신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즉 주일을 기념하여 거룩하게 지키게 되었다.

그러나 안식일 성수의 본래적인 목적과 의미는 그대로 계속되어 주일 성수를 통하여 발전적으로 오나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안식일 제도의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창조주되신 것과 구원자 되시는 것을 기념하는 의미와 또 앞으로 완성될 구원을 바라보고 일곱째 날 하루를 거룩하게 지킨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이 제도는 더욱 발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 즉 일곱째 날 중의 하루인 주일을 그리스도의 창조와 구원의 사건을 기념하는 동시에 앞으로 올 완전한 구원, 그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지키게 된 것이다. 그러면 주일 성수의 구체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1)주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하여 완성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기쁨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이런 의미에서 “다시 사신 구세주 내 마음에 계시네”를 주일마다 부르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감사하고 기뻐하면서 기리는 거룩한 날이다. 그러므로 이 날은 금식하거나 슬퍼하며 지내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2)주일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로서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며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날이다. 교회는 항상 하나님 예배를 중심으로 모이는 거룩한 예배 공동체이다. 함께 예배하므로 교회가 시작되었고 이 예배는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따라서 주일은 개인에게 속한 날이 아니고 교회에 속한 날이며, 구원받은 백성들이 모여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 공동체에 속한 날이다. 또한 주일은 모일 때마다 사랑으로 교제하되 말씀과 기도로 신령한 교제를 나누는 날이다.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으로 자신과 형제 자매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도움을 받고 나눠주는 일에 힘쓰는 날이다. 사랑하는 자녀들이 어머니의 품에 안기는 것과 같은 날이다.

(3) 주일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장차 영원한 그 나라에서 완성될 영원한 안식을 대망하는 종말론적인 소망 가운데서 지키는 날이다. 히브리서 4장에 우리가 이미 찬된 안식을 누리지만 미래의 영원한 안식을 바라보면서 그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였다. 땅 위에서 안식의 날을 지키면서 앞으로 이루어질 그 영원을 소망하는 가운데 위로를 받고 나누는 날이다.

(4) 주일은 구제와 봉사를 통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날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고 불쌍한 영혼들을 돌아보시므로 우리에게 친히 본을 보여 주셨다. 사도들도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주일날 모였을 때 사랑의 헌금을 하도록 하였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주일에 병자를 방문하여 위로하고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격려하며 사랑으로 봉사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5) 주일은 세상과 육신을 위한 일을 중단하고, 내 삶의 주인이 오직 하나님이심을 믿음으로 인정하는 날이다. 주일에 세상의 일을 중단하는 것은 내 삶이 나의 노력과 공로에 있지 않음을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서 인정하는 신앙 고백의 표시로서 모든 일을 중단한다. 주일은 일손을 멈추고 빈손 들고 나아와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는다면 내 모든 수고가 헛될 뿐입니다. 이 날 주 앞에서 모든 노력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돕는 그 은혜를 바라보나이다”라는 고백으로서 세상의 일을 멈추는 것이다. 주일에 계속 일하는 것은 노동의 부패요, 내 삶이 주의 능하신 손 안에 있음을 부정하는 불신앙적 행위이기에 엄히 금하였다.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내 속에 이미 이루신 그 놀라운 새 창조와 구속의 은총을 굳게 붙들고 앞으로 이루어질 그 영원한 구원과 안식을 대망하면 기쁨으로 주일을 성수해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 인터넷 만민중앙소식(2001. 11. 13) | <신앙상담 > 궁금해요, 자세히 알고 싶어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요? <문> 십계명이 기록된 출애굽기 20장 8-11절을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했는데 그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싶어요.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친구가 있는데 얼마나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지 주일 아침이면 교회에 가서 저녁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오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교회에 가면 주일 대예배 뿐 아니라 저녁예배도 드리고 기도모임, 친교모임도 가지며 봉사도 하는데 너무나 좋다고 했습니다. 처음에 는 일주일 중에서 가장 편안히 육체를 쉴 수 있는 휴일에 왜 하루 종일 교회에 가 있느냐고 말렸는데 지금은 함께 교회에 다니고 있 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닌 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이왕이면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고 그대로 살고 싶습니다.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왜 주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거룩하게 지키는 것인지 자세히 알려 주십시오. <답> 주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의무이자 특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왜 안식일을 지켜야 하고 그 의미와 방법은 무엇이며 또 그에 따른 약속은 무엇인지에 대한 답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밝히 깨우치시고 마음에 귀한 양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안식일의 의미 성경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엿새 동안에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복(福)주시되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이 날에 친히 안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 2:1-3).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실 때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출 20:8-10). 그러므로 안식일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안에서 편안하게 쉬는 날입니다. 이는 단지 육체적으로 편안히 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는 참된 안식 곧 영적인 안식을 의미합니다. 육체를 위해 먹고 마시며 깊은 수면이나 오락을 취하는 것은 순간적인 즐거움에 불과하므로 사람에게 참된 안식이 될 수 없습니다. 또 지식과 명예, 부귀영화 등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취했다 하더라도 염려, 근심, 걱정, 질병의 고통 속에서 마음에 기쁨과 평강이 없다면 이것 역시 참된 안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은 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와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으므로(롬 5:12) 길과 진리와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요 14:6)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자유함을 얻을 때에야 비로소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자 정하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킴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참된 안식을 누려야 하는 것입니다. 2. 구약의 안식일과 신약의 주일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오늘날로 보면 토요일이었습니다. 달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인 일곱째 날이지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고 지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여전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 와서는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이 죄로 인해 타락함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를 화목제물로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갈 3:13) 생명에 이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인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고 사흘 후인 일요일 새벽 미명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마 28:1) 부활의 첫열매가 되셨지요(고전15:20). 이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생명과 참된 안식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는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으며(마 12:8) 이 때부터 교회에서는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고전 16:2) 주님의 날이라는 의미로서 주일(主日)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에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기쁨과 행복과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를 구원하여 참생명과 안식을 주게 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토요일이었던 안식일이 일요일 즉 주일로 바뀌게 될 것을 이미 말씀해 놓고 계십니다. 레위기 23:10-12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우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했지요. 여기서 안식일 이튿날은 바로 그들이 안식일로 지키던 토요일의 다음날인 일요일을 말합니다. 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요. 이처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안식일 이튿날에 여호와께 드리라 했으니 이 예언대로 주님께서는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이 날이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써 아버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안식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3.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과 하나님의 축복 주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엿새동안은 힘써 일하고 주일에는 세상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주안에서 안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쉼은 물론 영혼의 안식을 누림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쉼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하나님께 서는 우리 영혼에 생명의 양식을 주시고 새로 시작되는 한 주간 동안 승리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배를 드린 후 믿음의 형제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고 교제할 때 우리의 믿음을 더욱 돈독케 해주십니다. 또한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된 도리를 다하는 성도들에게 사고와 질병, 시험환난이 없도록 막아주시며 한 주간 동안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혹 실수가 있더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나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세상일을 삼가면서(느 13:15-22) 하나님의 뜻대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영적 축복 뿐 아니라 범사에 축복을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4.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지 않으면 반면에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惡)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을 범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이러한 것을 알지 못할 때에는 예배를 드린 후 다시 가게문을 열거나 사업터, 일터의 일을 연장하여도 하나님께서 죄있다 하시지 않지만, 만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고 분명히 믿는다 하면서도 자기 유익을 좇아간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따라서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진리를 알지 못한 사람이라면 배우고 성장함에 따라 온전히 주일을 지켜가야 하고 또 믿음이 있는 자는 마땅히 가르침 받은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시며 사랑으로 병든 자를 고치셨던 것같이(마 10:10-12) 병든 자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의사나 국가와 사회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이나 부득이한 공무관계로 주일을 온전하게 지킬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주일예배를 드린 후에 근무한다 해도 주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므로 먼저 예배를 드리고 일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인터넷 만민중앙소식(2001. 11. 13) | 신앙상담 처음으로 | [ ▲ 위로 ] Copyright (c) 1999~2001 Manmin Joong-ang Church. All right reserved. E-mail : [email protected]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말씀

말씀: 출애굽기 20:8-11

요절: 출애굽기 20:8

오늘은 십계명 중에 네

번째 계명입니다. “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는

말씀은 오늘날 신약 성도들에게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계명이어서 설교하기 상당히 어려운 말씀이 되었습니다.

흔히 오늘날 성도들이 범하는 오류는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로, 구약의 할례는 신약의 침례(세례)로

바뀌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여전히 교회에서는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네 번째 계명을 당당히

설교하고, 성도들은 그것을 주일 성수로 알아서 이해하고

믿습니다. 그러나 안식일과 주의 첫 날은 전혀 다른 것이며,

주님이 바꾸신 적이 없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맺은 표적이며,

언약이었습니다(출31:13,17, 겔20:12,20).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출31:17).

여기에 교회는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또 그들에게 내

안식일 도 주어 나와 그들 사이에 표적이 되게 하였나니…](겔20:12a).

역시 마찬가지로 교회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 내 안식일 을

거룩하게 할지니라. 안식일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적이

되리니 …](겔20:20a).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표적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도들, 교회와는 아무런 해당

사항이 없습니다. 하지만 몇몇 교단들, 특히 몰몬교도들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제칠 안식교도들은 개신교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배교했다고 단정합니다.

이들은 구약과 신약을 나눌 줄 모르고, 이스라엘과 교회를

제대로 나눌 줄 모르는 무지(無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회 사이에는 안식일의 표적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피로 맺은 언약만

존재할 뿐입니다.

안식일은 이스라엘에게 주신 표적입니다. 유대인들은

표적을 요구하는데, 안식일이 바로 표적이란 것입니다.

주님은 공생애 사역동안 유대인들과 ‘안식일 논쟁’을

통해 그들에게 주님이 누구인지를 계시해 주시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아들이 곧 안식일의 {주} 이기

때문이라, 하시니라.](마12:8,막2:28, 눅6:5)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내 안식일’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10). 이 두 말씀을

비교해 볼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바로 구약에서

안식일을 제정해 주신 하나님이란 사실을 입증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안식일이 이스라엘에게 표적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표적으로 주셨습니다. ‘안식일의

주’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은 일맥상통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바리새인들과 가장 많이 부딪혔던

부분이 ‘안식일 준수’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바리새인들이 활동하던 시기보다 더 엄격하게 제 사계명을

잘 지킨 적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것 이상으로 지켰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그릇된 해석과 적용을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주님이 당시 유대의 주류 층에 위치한 율법사들, 서기관들,

바리새인들의 성경 해석이 잘못 되었음을 보여 준 대표적인

구절이 제 4 계명인 ‘안식일에 관한 계명’이었습니다.

주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이는 당시로서는

혁명적인 성경 해석이었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버지께서/

사람을 위하여 안식일을 만드신 것이요, 안식일을 위하여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니](막2:27). 주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느라 전혀 안식을 얻지 못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몸이 아파도 안식일이란 이유로 치료받지

못했습니다. 배가 고파도 안식일이란 이유로 밀 이삭도 먹지

못했습니다. 이런 까닭에 유대인들의 안식일은 안식일이

아니라 종교 경찰이 지키고 감시하는 ‘고행일’이었습니다.

주님은 율법의 형식보다 본질을 가르치셨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법을 정하시고 주신 이유임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네 번째 계명을 제정하신 주님의 뜻과 교훈을

정확히 배우고, 신약 성도들이 어떻게 그 말씀을 적용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네 번째 계명은 어떤 특별한

일을 하라, 어떤 일을 하지 말라는 계명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해 주신 한 날, 즉 주의 마지막 날에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계명입니다. “오늘은 편히 쉬어!” 이것이 주님의

지엄하신 명령입니다. 군대에 가면 열심히 훈련을 받다가

지휘관이 ‘쉬어’ 또는 ‘편히 쉬어!’를 명령합니다. 쉬는

것이 명령입니다. 인간은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하지만 또한

쉼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쉼을 명하신 분은 사람을

지으시고 일을 하라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율법 아래 있었지만 주님은 쉼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안식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란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주신 안식을

거부하고 스스로 안식과 평안을 찾으려 한다면 절대로

안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육체적 노동을 쉬는

안식일이 주어졌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혼에 쉼을 얻는

안식을 얻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혼이 안식을 찾으리니 ](마11:28-29). 주님은 안식일을

주시는 대신 혼의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

쉬라고 하는 날, 쉬라는 명령을 받아서 쉬는 것이 진정한

쉼이며, 안식이지 쉬라는 명이 없이 자기 마음대로 쉬거나,

놀아 버리는 것은 안식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일거리가

없어서 아니면 게을러서 노는 사람이 쉬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일을 해야 할 때는

부지런히 수고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9절을 보십시오. [엿새

동안은 네가 수고하고 네 모든 일을 할 것이나](9). 일을 하지

않고 쉬는 것은 쉬는 것이 아니며 노동없는 안식은 안식이

아닙니다. 주님은 엿새 동안은 수고하고 모든 일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쉬라고 한 바로 그날에 믿음으로

순종해서 쉴 때 우리는 편히 쉬는 안식이 바로 주님의

명령을 준행하는 일이 됩니다. 주님은 자신의 음성에

순종하고, 그 명령을 지켜 준행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는데,

아무 일을 하지 않고 단지 쉬기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복이 오늘 본문의 4번째 계명입니다.

일견 생각하면 십계명 중 가장 지키기 쉬운 계명이 아닌가란

생각이 듭니다. 돈드는 일도 아니고, 힘드는 일도 아니며,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일꾼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제 4

계명을 지키는데는 학문도, 지식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잘못 지킨 계명 가운데 하나가 바로

네 번째 계명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하라는 계명도 무겁지만

아무 것도 하지 말고 쉬라는 계명 역시 가볍지만은

않았습니다. 안식일에 대한 계명은 마음에 탐욕이 있으면

결코 지킬 수 없습니다. 더 벌고 싶은데 쉬라는 것은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쉬라는 말은 절제의 영이

없으면 힘듭니다. 그들은 바빌론 포로로 잡혀가기 전에 무려

490년을 안식년을 지키지 않았고, 안식일을 잘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대언자들을 통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것을 반복해서 명령하셨습니다.

8절을 보십시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8).

주님은 안식일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관습적으로

생각없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은 무엇인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안식일은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저녁 6시까지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날이며,

인간은 지음받은 첫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이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을 떠나 안식(安息)하셨음이더라.](창2:3).

주님은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구별하셨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한다는 것은 창조주를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전도서 12:1에

[이제 /너는/ 젊은 시절에 네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a)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정확하게 안식일을 지킨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창조주를 기억한다면 농경 신, 바람 신, 물신과 같은 가나안

민족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생각하거나 그리 마음이 기울 수

없을 것입니다. 창조주에 대한 창조 신앙이야말로 믿음의

출발이며, 기초입니다. 오늘날 성경에서 가장 많은 공격을

받는 부분은 단연 창세기입니다. 과학이나 철학의 이름으로

창조주의 존재를 부인하고, 창조 사역을 신화나 우화로

돌리려는 집요한 공격이 끊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세에

사람들이 회복해야 할 신앙, 대환란 때 이 세상에 천사들이

전하는 복음은 바로 창조주에 대한 창조 신앙입니다.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 이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들을 만드신 분께 경배하라 , 하더라.](계14:7).

이스라엘이 안식일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듯이

우리는 주의 첫날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매주 주의 첫날에 모여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말씀을 듣는다면 그는 결코 신앙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가 지음

받은 피조물임을 기억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님께서

모든 것을 지으시고 지으신 모든 것을 우리에게 지키고

다스리도록 복 주시고, 사명을 주신 첫 날이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킴으로써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기억하고, 우리가 누구인지를

바로 알게 되며, 존재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허무하게 지음 받지 않았으며, 저절로 생겨나지도 않았으며,

원시 동물에서 진화한 존재가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지음

받았다는 사실을 압니다.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이는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음이요 , 또 모든 것이 주를 기쁘시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음이니이다, 하더라.](계4:11). 피조물은

지음 받은 목적을 알고, 그 목적대로 살 때 허무하지 않고,

참된 가치와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 역시

창조되었습니다. [나는 [주] 곧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 왕이니라.](사43:15).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 행하라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피조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이란 사실을

확인하는 믿음과 신앙 고백의 시간으로 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중요한 안식일을 왜 지키지 않는가?란

질문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중요한 안식일을 교회가 지키지

않는 것은 무슨 이유인가?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외로 안식일을 지키는 종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구약을 들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할말을 읽고 당황하게

됩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첫 창조보다 더

중요한 두 번째 창조, 즉 거듭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언제 창조되었습니까? 여섯 째 날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첫 사람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사람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여섯째 날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날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 옛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5:17).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효력이 없고 오직 새로운

피조물만 /효력이/ 있기 때문이라.](갈6:15). 우리는 새롭게

지음받은 피조물이기에 구약의 안식일이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의

첫날에 함께 모여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창조 신앙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라면 주일 예배는 우리를 구원하신 십자가와

부활의 권능을 새롭게 기억하고 능력을 덧입는 시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우리를 구별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됩니다. [너는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진실로 내

안식일을 지킬지니라. 그 까닭은 이것이 너희 대대로 나와

너희 사이에 있을 표적이기 때문이니 이것은 너희로 하여금

내가 너희를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려 함이니라. ](출31:13).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몸에 할례를 행함으로써

자신들이 주님의 백성이란 언약을 기억하게 하셨고,

안식일을 지키게 하심으로써 주님이 자신들을 거룩히

구별하는 [주]인 줄 알게 하셨습니다. 할례와 안식일은

유대인들을 지상의 모든 민족들과 확연하게 구분하는

요소였습니다. 특히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쉰다는

것은 다른 민족들에게 창조주와 창세기를 자연스럽게

선포하는 말씀 선포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안식일을 전혀 지키지 않고 산다면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신

구분점이 없어지고, 이교도들과 똑같아 지고 맙니다. [그녀의

제사장들은 내 율법을 범하고 내 거룩한 것들을 더럽히며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구분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것과

정결한 것의 차이를 전혀 보이지 아니하며 자기 눈을 가려

내 안식일을 보지 아니하였으므로 내가 그들 가운데서

더럽혀졌느니라. ](겔22:26). 차이를 없애는 것, 구분을 없애는

것은 차이와 구분을 두신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전 세계 어느 민족도 안식일을 지키는 민족이 없습니다.

남들이 안 하는 일을 혼자만 하게 되면 불편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이방 민족들과

저절로 구별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의 주된 목적은 그들이 ‘자신들을

거룩히 구별하는 주님’을 알게 하는데 있습니다. 매주 한

번 모든 일을 쉬고 주님을 기억하는 것은 신앙 생활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농사를 짓거나 양을 치는

사람들이 바쁜 계절에 하루 쉬는 것은 엄청난 자기 부인을

필요로 합니다. 오늘 꼭 해야 할 일이 있는 사람들에게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일을 중단하라고 하면 미칠 지경이 되고 맙니다.

안식일이라고 급한 일, 중요한 일이 없으라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려면 생활의 일정, 계획 등이 안식일을

최우선 순위로 고려하게 되고, 서로가 그 날을 피하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안식일이 날들의 중심이 되며, 생활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과 달리 그런 절기와

명절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통해 교회를 세상과

거룩히 구별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를

거룩히 구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진리로 그들을 거룩히

구별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17:17). [또

내가 그들을 위하여 내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오니 이것은

그들도 진리를 통해 거룩히 구별되게 하려 함이니이다.](요17:19).

교회는 진리로 낳음을 받았고, 진리로 거룩히 구별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히 구별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도 자기 자신의 피로 백성을 거룩히

구별하시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느니라.](히13:12).

교회는 성령을 통해 거룩히 구별됩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에 따라 택하심을 받고 /성/령의 거룩히

구별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뿌림에 이른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이

있을지어다.](벧전1:2). 그래서 우리는 안식일 대신 진리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성령을 통해 우리를 구별하신

주를 알고, 선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주님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영적인 열매를 맺음으로써 주님을 알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주님의 풍성한

복, 공급하심을 체험하라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7일간

일하는 것이나 6일간 일하고 하루 쉬는 것이나 소득의

차이를 두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이는 역설의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손길을 늘 체험하며 살아 있는 신앙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주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시기 전에

이미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을 지키도록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여섯째 날에는 그들이 두 배의 빵 곧

한 사람을 위하여 이 오멜씩 거두니라. 회중의 모든

치리자가 와서 모세에게 고하매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나니 곧 내일은 안식하는 날로서 [주]께

거룩한 안식일이라. 너희가 구울 것은 오늘 굽고 끓일 것도

끓이고 남은 것은 다 너희를 위하여 아침까지 간수하라,

하셨느니라.](출16:22-23). 주님은 여섯째 날에 두 배를

주심으로써 일곱 째 날에 아무 일을 하지 않아도 걱정할

것이 없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선한 손길과 은혜의

풍성한 공급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안식일에 쉬는 것이

바늘 방석에 앉은 것처럼 안절부절못하는 법입니다. 하루만

지나면 썩어 버리던 만나가 안식일에는 썩지 않았습니다.

안식일은 광야에서 이들이 매주 주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무려 40년이나 그들은 매주 이런

체험을 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만약

남들과 똑같이 일해서 똑같은 수확을 거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공급하심을 통해

우리는 물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을 관리하는

청지기이며,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다는 바른 경제관을

소유하게 됩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킴으로써 우리는 돈(물질)으로부터

자유하게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백성이 주일

예배를 드리느라 사업이 망했다든가 건강을 망쳤다든가

치명적인 손해를 보았다는 간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상황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때로

박해를 받기도 하고, 큰 손해를 입기도 합니다. 신앙의

박해를 받는 경우가 아닌 일반적인 성도들의 교회 생활에서

주일 예배로 인해 여러분이 받는 피해는 없습니다. 오히려

일을 하느라 예배를 빠뜨릴 때 입게 되는 손해가 훨씬

큽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하심을 신뢰하라는 말씀입니다 .

전쟁이 나면 안식일을 지킬 수 없습니다. 남의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면 안식일을 지킬 수 없습니다. 가족이나 내가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나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킬 수가

없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려면 주님께서

전쟁을 막아 주셔야 하며, 포로로 사로 잡혀가지 않아야

하고, 병이 들거나 사고가 나지 않아야 합니다. 이는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절대적인 보호와 인도하심이 나에게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뜻을 행하고자

한다면 주님은 그것을 행할 힘을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을

지켜 순종하고자 하는 자에게 주님은 복을 주십니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의 절대적인

보호하심, 선하신 손길, 풍성한 긍휼이 우리를 두르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제까지라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겠다고 결단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의

선한 결심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한 몸에 쉼을 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통해 이스라엘 자손은 물론이려니와 소와 나귀, 남종과

여종에 이르기까지 모두 쉼을 명하셨습니다. 10절을

보십시오. [일곱째 날은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그 날에는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거하는 나그네나 아무 일도

하지 말라.](10). 하루 쉬는 것은 우리의 몸과 기분을

상쾌하게 하기 위해 만드신 주님의 배려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친히 창조하신 창조주로써 우리 몸의 상태, 영혼의

상관 관계를 가장 잘 아시는 분이십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신 나의 몸의 상태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는 비결입니다. [너는 엿새 동안에 네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라. 그리하면 네 소와 나귀가

안식할 것이며 네 여종의 아들과 나그네가 원기를

회복하리라. ](출23:12). 몸은 쉽게 지칩니다. 과로(過勞)하면

쉽게 병이 들고, 빨리 죽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킴으로써 몸은 원기를 회복하게(refresh) 됩니다.

현대인들은 재충전이란 말을 즐겨 사용합니다. 몸이나

마음이 지치고 고갈될 때 재충천이 필요하다며 여행을

떠나거나 활동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6일동안 일하고 하루 쉼으로써 원기를 회복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원기를 회복하는 대신 주의

첫날 주님께 예배를 통해 원기를 회복합니다. 이는 우리가

유대인이 아니며, 율법 아래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쉼의 원리는 같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상쾌함을

얻는 길입니다. [그분께서 이 백성에게 이르시되, 이것이

안식이니 너희가 피곤한 자로 하여금 이 안식으로 안식하게

하라. 이것이 상쾌함이라 , 하셨으나 그들이 듣고자 하지

아니하므로](사28:12). 지치고 낙심될 때 주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더 큰 힘은 없습니다. 집회 시간에 놀러 가는 것은

몸의 피곤함을 풀 수 있을지 모르지만 영이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는 것은 몸의 피곤함을 이기는

영의 상쾌함을 줍니다. 회개하는 일은 마음에 상쾌함을

줍니다. [그런즉 너희는 회개하고 회심하라. 그리하면

새롭게 하는 때가 {주}의 눈앞으로부터 이를 때에 너희

죄들이 말소(抹消)될 것이요,](행3:19). 주님은 회개하는

심령에게 상쾌함을 주십니다. 죄를 안고 있는 것은 더운

여름 날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처럼 무거운 짐입니다.

다윗은 말하기를, [내가 잠잠할 때에 하루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나이다. 이는 밤낮으로 주의 손이 나를

무겁게 누르므로 내 진액이 여름 가뭄에 마른 것같이

되었음이니이다. 셀라.](시32:3-4)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회개할 때 우리는 새롭게 됩니다.

성도들의 교제는 영을 시원하게 합니다. 악한 사귐은 선한

행실을 부패시키지만, 성도의 영적 교제는 우리에게 새 힘을

줍니다. 바울 사도는 서로간에 새 힘을 얻기를 구했습니다.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새 힘을 얻게 하시기를 구하라. ](롬15:32). 바울은

스데바나를 비롯한 몇몇 형제들로 인해 자신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영이 시원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나와

너희의 영을 시원하게 하였음이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러한

사람들을 인정하라.](고전16:18). 우리는 서로 간에 영을

시원하게 하고, 새 힘을 얻게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형제는 만나기만 해도 마음이 기쁘고,

위로가 됩니다. 그러나 어떤 형제는 만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형제와 형제들은 서로 위로를 주고 받고,

기쁨을 주고 받음으로 영이 활력을 받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너희의 위로를 통하여 위로를 받았고 참으로 디도의

기쁨으로 인하여 우리가 넘치도록 더욱 기뻐하였으니 이는 그의 영이 너희 모두로 인하여 활력을 얻었음이라. ](고후7:13).

바울도 자주 낙담하고 지쳤지만 그 때마다 형제들로 인해 새

힘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상쾌하게, 형제들을

시원하게 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구해야 합니다.

오네시보로는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을 자주 유쾌하게

했습니다.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기

원하노니 이는 그가 자주 나를 유쾌하게 하고 나의 쇠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여](딤후1:16). 우리는 신약 성경에

나오는 형제들이 얼마나 다른 형제들에게 힘을 주었는지 잘

볼 수 있습니다. 빌레몬도 이 점에서는 조금도 뒤쳐지지

않았습니다. [형제여, 성도들의 마음이 너로 인하여

상쾌하게 되었으므로 우리도 네 사랑 안에서 큰 기쁨과

안위를 얻었노라.](몬1:7), [참으로 형제여, 나로 하여금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주

안에서 상쾌하게 하라. ](몬1:20). 주일의 집회로 모이는 것은

이런 원기 회복의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주님이 주신

시간, 날들이 다 주님의 것이란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의 시간이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의 날들은 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이란

사실을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이 세상에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십니다. 온 땅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주님의 소유를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을 때 주님은 그들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강도라고 불렀습니다. 매일 매일의 날들(시간) 역시 주님의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을

인정해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소유가 다 주님의

것이란 사실을 인정할 때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고, 우리의

시간이 다 주님의 것이란 사실을 인정할 때 우리는 시간에

얽매여 다급하게 되거나 허둥대지 않습니다. 시간이 없다,

급하다는 이유로 편법을 쓰고, 인내하지 못하고, 죄를 짓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안식일을 기억하려 거룩히

지킴으로써 이런 시간 개념을 모두 주님의 때에, 정하신

때에 이루어 주시도록 오래 참고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마다 ‘날들’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범죄 함으로써 주님이 주신 날들을 단축시킬 수도

있고, 날들을 늘리기도 합니다. 성경은 지상에서 우리의

날들이 길어지는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이 땅에서 날들이

길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걷는

것입니다. [[주] 너희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길로 걸을지니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또 잘되고

너희가 소유할 땅에서 너희 날들이 길리라.](신5:33).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 시간을 되찾으라. 이는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니라.](엡5:16), [바깥 사람들에게는 지혜롭게 걷고

시간을 되찾으라. ](골4:5). 주님은 시간을 구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거듭난 순간 이미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여분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전 인생의 모든 날들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이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주님께서

이루실 천년 왕국을 소망하라는 말씀입니다. 안식일은

우리를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주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안식일이라고 합니다. [안식일은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있을 영원한 표적이니 이는 [주]가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되었음이니라, 하라.](출31:17). 주님께서 6일 동안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창조하시느라 지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피곤함을 모르십니다. 주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며 상쾌하게 된 것은 창조하신 결과에 대한 만족함을

드러낸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담은 범죄 함으로써 하나님의

안식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후로 주님은 범죄한

인간들을 완전히 구속하시는 그날까지 결코 안식을 얻을 수

없게 되셨습니다. 주님은 범죄하는 사람들로 인해 뜻을

후회하시기도 하시고, 지치시기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7:6절을

보십시오. [[주]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버리고 뒤로

물러갔으므로 내가 너를 치려고 내 손을 내밀어 너를

멸하리니 내가 돌이키는 일에도 지쳤느니라 .](렘17:616).

하나님은 지금까지 수 백번은 넘게 뜻을 돌이켰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친히 택하셔서 복을 주시고, 모든 것을 주신

이스라엘의 반역과 배교,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해 주님은

이제 지쳤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주님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지치시지 않는 분이시지만 두 가지 일에는

지쳤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속해서 범죄하고 반역하는

이스라엘을 돌이키는 일에 지치셨고, 이스라엘의 위선에

지치셨습니다. [내 혼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명절들을

미워하나니 그것들이 내게는 괴로움이니라. 그것들을

감당하기에 내가 지쳤느니라. ](사1:14). 주님 역시 간절히

안식을 원하십니다. 주님은 지금도 일하시고 계십니다. […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요5:17).

주님은 안식일을 통해 장차 다가올 완전한 안식의 모형을

제시하고, 그것을 다시 찾으시고자 하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 천년 왕국의 건설은 주님이 다시

안식을 찾으시는 예언적 파노라마입니다. 안식일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건설하신 영원한 왕국이란 예언적

소망을 갖게 해 줍니다. 안식일은 예언적 의미가 있습니다.

진정한 안식, 참 안식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4:9-1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한

안식이 남아 있나니 이는 그분의 안식에 이미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들을/ 그치신 것같이 이미 자기

일들을 그쳤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쓸지니 이것은 아무도 믿지 아니하던 그

동일한 본을 따라 넘어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히4:9-11).

우리에게는 안식이 남아 있습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말씀은 영적 타락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타락하고

범죄한 유다에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영적 타락의 회복을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게

함으로써 바로 잡고자 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7:21-22절입니다.

[[주]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스스로 주의하여

안식일에 짐을 나르거나 예루살렘의 문들로 들여오지 말고

안식일에 너희 집에서 짐을 내어 옮기지도 말며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명령한 대로 너희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21-22). 유다는 먼저 안식일

준수를 다시 엄격하게 준수함으로써 신앙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했습니다. 주님은

우상 숭배의 죄와 더불어 안식일을 범한 죄를 지적하신 것은

이들이 안식일 준수를 통해 영적 회복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안식일은 인간들을 위해 제정하신

것이지만 “[주] 네 하나님의 안식일”이라고 불립니다(출20:10).

예레미야 17:23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

아니하고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였으며 자기 목을 곧게

하여 듣지도 아니하고 교훈을 받지도 아니하였느니라.](23).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일주일에

하루 일을 안하면 손해가 얼마인데? 라는 생각이 그들에게

깔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물질을 동시에 숭배할 수

없습니다(눅16:13). 주님은 이들이 안식일만 제대로 준수하면

심판을 철회하고, 재앙이 아닌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만일 너희가 부지런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안식일에 이 도시의 문들을 통해

짐을 들여오지 아니하고 오직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여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면 다윗의 왕좌에 앉은 왕들과

통치자들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도시의 문들로 들어오되

그들과 그들의 통치자들과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거주민들이 그리할 것이요, 이 도시는 영원히 있을 것이며

또 사람들이 유다의 도시들과 예루살렘 주위의 장소들과

베냐민 땅과 평야와 산지와 남쪽으로부터 와서 번제(燔祭)

헌물과 희생물과 음식 헌물과 향을 [주]의 집으로 가져오고

또 찬양의 희생물을 가져오리라.](렘17:24-26). 재앙과 심판이

정해진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복되는 방법이 바로 안식일

준수라는 지극히 평범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데서

비롯됩니다.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재앙을

복으로 바꾸는 방법으로 제시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한 가지 작은 일에서부터 신실하게 주님의 말씀을

철저히 지키고 바로 잡아간다면 나머지 모든 영적 질서들이

바로 잡히게 되며, 영적 부흥이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재앙을 선포하셨지만 그들이 만약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도시는 멸망대신 영원히 거하며,

다윗 왕조는 단절되지 않을 것이며, 성전을 중심으로 한

신앙이 완전히 회복될 것입니다.

신약 성도들은 왜 안식일이 아닌 주의 첫날을 지키는가?는

이미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우리가 지키는 주의 첫날은

율법으로 정해진 안식일보다 훨씬 자유로우면서도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1. 제자들이 보여 준 본 때문입니다(행20:7). 제자들은 주의

첫날에 모였고, 빵을 떼었고, 설교했습니다.

2. 성도들의 본 때문입니다(고전16:2).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의 첫날에 모여 집회를 가졌고, 헌금을 했습니다.

3. 성령께서 주의 첫날에 능력을 주셨습니다(행2:1-4).

예수님께서 주의 첫날에 부활하셨습니다(요20:1).

4. 안식일은 다시 지켜질 것입니다(골2:17). 사도 바울은

안식일을 다가 올 것들의 그림자라고 말했는데, 이는 천년

왕국이 진정한 안식일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계20:1-7).

영원한 안식이 있습니다(사66:23).

티스토리툴바

십계명 4 :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십계명 묵상” 네 번째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말씀을 묵상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 곧 주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안식일 계명에서 우리는 3가지 안식일 정신을 묵상해야 합니다.

쉬어라

첫째, “쉬어라”는 단순한 명령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쉼으로 초대하십니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9). 하나님이 쉼으로 초대하시는 이유는 하나님도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6일 동안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입니다(출 20:11). 하나님이 쉬셨으니 우리도 쉬라는 것입니다. 일상의 노동에서 벗어나 안식일의 기본 정신인 쉼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잘 쉬지 못합니다. 바쁜 삶 속에서 쉬기는커녕 항상 뭐라도 해야할 것 같고, 쉬면 뒤처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쉬지 못합니다. 하루 쉬려고 하다가도 ‘내가 오늘 쉬지 않고 일하면 얼마를 버는데’ 생각하면 쉬지 못합니다. 공부하는 사람들은 ‘내가 오늘 쉬면 다른 사람들이 연구에서 얼마나 앞서 나가는데’ 생각하면 쉬지 못합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쉬는 것은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우리는 쉬는 것을 게으른 것이라 생각하고, 심지어 쉬는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느낍니다.

그런데 쉼은 꼭 필요합니다. 쉼은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들어 줍니다. 쉼은 바쁘게 달려가던 일상에서 멈추어 우리를 존재의 깊은 곳과 연결시켜 줍니다. 김기석 목사의 『아, 욥!』이라는 책에는 한 부부의 여행 이야기가 나옵니다. 네팔에 여행 갔던 부부가 산 위의 호수에서 뱃놀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호수에 히말라야의 눈덮힌 산이 영롱하게 비치고, 햇살이 쏟아지는 찬란한 날에 부부가 단둘이 배의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아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말합니다. “여보, 이젠 죄짓지 맙시다!” 호수 위에서 배를 타다가 갑자기 눈물을 흘리면서 죄짓지 말자니, 뜬금없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습니다.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아름다운 자연에 파묻혀 있으면, ‘내가 무엇을 그리 붙잡고 살아가나, 내가 무엇을 그리 아둥바둥하면서 살아가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일상의 일들에서 해방되어 나의 존재의 깊은 곳과 연결되는 순간입니다. 이것이 정확히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김용규 교수는 『데칼로그』에서 안식일이란 ‘존재물에서 해방되어 존재 자체에 머무르는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안식일에 일상의 존재물에서 벗어나, 나라는 존재 자체에 머무르라고 초대합니다. 6일 동안 무엇이 되려고 애쓰던 삶에서 멈춰서고, 무엇을 소유하려고 애쓰던 욕망에서 자유로워져서, 하나님 안에서 진짜 나라는 존재 자체에 깊이 머무르는 시간이 안식일입니다. 이것이 “쉬어라”는 안식일 정신에 담긴 의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쉬어라

둘째, 안식일의 정신은 하나님 안에서의 완전한 쉼입니다. 안식일에 나라는 존재에만 머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이라는 존재 안에 머무르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완전한 쉼을 얻습니다. 십계명이 소개되는 또 다른 책인 신명기에는 안식일의 근거로 출애굽의 구원 사건을 기억할 것을 강조합니다.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거기서 너를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명령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신 5:15).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는 근거로 이스라엘을 구원해 주신 사건을 떠올리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만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구원의 은혜를 경험하고, 하나님 안에 들어가서 풍성한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을 때, 우리는 진정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의 오랜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순간 참된 안식을 발견하고는 『고백록』 첫 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있기 전까지 우리 영혼은 편안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경험을 합니다. 무언가 삶은 안정되고 편안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 불안과 공허함이 있는 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쉼을 경험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을 공급받고 있는 사람은 삶의 풍랑과 파도가 몰아치는 순간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 속에 머뭅니다.

아브라함 요슈아 헤셸은 『안식일, The Sabbath』이라는 책에서 안식일을 ‘시간의 지성소’를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지성소는 성막에서도 가장 안쪽에 있는 곳으로 대제사장도 일년에 한 번밖에 들어가지 못하는 거룩한 곳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이 임재하시겠다고 약속한 곳이고, 하나님의 생명력과 연결되는 장소입니다. 아브라함 헤셸은 안식일은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가 되는 날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주일은 일상의 시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지성소로 변하는, 시간의 성화가 이루어지는 날이고, 하나님 안에 머무르며 하나님의 생명력을 공급받는 시간의 지성소를 경험하는 날입니다.

함께 쉬어라

셋째, 안식일의 정신은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쉬는 것입니다. 강영안 교수는 『십계명 강의』에서 안식일 계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쉬어라. 쉬되 예배드리면서 쉬고, 남과 더불어 쉬어라.’ 안식일 계명을 잘 요약한 문장입니다. 특별히 남과 더불어 쉬는 것이 안식일의 중요한 정신입니다. “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가축이나 네 문안에 머무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출 20:10). 이 말씀에선 쉴 수 없는 사람들이 소개됩니다. 남종이나 여종, 가축은 자기 스스로 쉴 수 있는 권리와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쉬게 해주어야 쉴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십계명의 제4계명은 쉼의 권리가 없는 사람들과 함께 쉬는 것이 안식일의 정신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 주변에도 안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음의 고통과 상처 때문에 안식할 수 없는 사람들, 삶의 무게와 어려움 때문에 쉼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식일의 정신은 함께 쉬는 것입니다. “교회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라고 말하는 아베 피에르 신부의 말을 기억해야 합니다. 함께 안식하기 위해서 기도하고, 함께하고, 도움을 주어야할 사람들이 주변에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안식일의 정신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20:8-11)

안식일은 출애굽기와 구약 성경에서만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과 실생활에서도 복잡한 문제다. 이 계명의 앞부분은 일주일에 하루는 노동하기를 쉬라고 명령한다. 출애굽기 중 안식일에 관한 내용은 16장(만나를 거두러 나감), 23장 10-12절(안식년 및 매주 안식의 목적), 31장 12-17절(안식일을 어길 때의 형벌), 34장 21절과 35장 1-3절에 나와 있다. 고대 세계에서 안식일은 이스라엘만의 독특한 것이었다. 한편으로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교할 수 없는 선물이었다.

다른 고대 국가 사람은 일주일에 하루씩 쉴 수 있는 특권을 누리지 못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안식일을 지키려면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을 온전히 신뢰하는 게 필요했다. 이는 곡식을 심고 거두고 물을 긷고 길쌈을 하고 각종 양식으로부터 식량을 얻어 내는 모든 작업을 6일 만에 끝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스라엘이 일주일에 하루씩 안식하는 동안 주변 나라는 계속 칼을 만들고 화살을 제작하고 병사를 훈련했다. 이스라엘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경제 및 군사 재난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을 신뢰해야만 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이 공급해 주실 것이라고 믿어야 하는 각종 문제와 씨름한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를 따라 일과 안식의 순환을 지키면서도, 과연 우리는 현대 경제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둘 혹은 셋 이상의 직업을 유지하고 집 청소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고 세차를 하고 공과금을 제때 내고 학교 공부를 하고 시장을 보는 데 7일이 다 필요한가? 아니면 매주 하루씩 쉬어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양해 주시리라고 신뢰할 수 있을까? 만일 우리가 예배하고 기도를 드리며 다른 사람과 어울려 성경공부를 하고 서로를 격려하는 데 시간을 쓴다면, 우리 생산성이 전반적으로 더 떨어질까 아니면 더 높아질까? 넷째 계명은 이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해결해 주실 것인지 설명하지 않는다. 단지 우리에게 일주일에 하루는 안식을 취할 것을 말할 뿐이다.

크리스천은 안식일을 “주일”(일요일,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날)로 바꿔 부르고 있으나, 안식일의 본질은 일주일 중 특정한 어떤 날을 다른 날보다 더 낫게 여기는 게 아니다(롬 14:5-6). 안식일이 정말로 강조하는 두 가지 사항은 일과 안식이다. 일과 안식이 둘 다 제4계명에 포함되어 있다. 일하는 6일도 안식하는 하루만큼이나 이 계명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많은 크리스천이 일하는 시간을 짜내어 안식에 할애해야 하는 처지에 놓여 있지만, 그와 반대로 한가로운 여가와 낭비를 위해 일을 최대한 축소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이것은 안식일을 무시하는 것보다 더 악하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부양하지, NIV]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과 안식의 적절한 조화다. 그것이 우리 자신과 가족, 동료 근로자와 고객 모두에게 다 좋기 때문이다. 그 조화에는 일요일 또는 토요일 24시간 동안 푹 쉬는 것이 포함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안식의 시간적 비율은 일시적인 필요(안식일에 소를 우물에서 건져 내는 일과 비슷한 현대의 일 – 눅 14:5)나 때에 따른 삶의 필요에 의해 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일 과로가 우리의 주된 위험이라면, 우리는 신령한 것(일요일에 진행되는 예배)과 세속적인 것(월요일부터 진행되는 노동)을 대립시키는 새로운 거짓 율법주의를 창안해 내지 않으면서도 제4계명을 지킬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 만일 일을 회피하는 것이 우리 위험이라면, 우리는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일하는 것의 기쁨과 의미를 배우고 찾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엡 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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