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람 의 교훈 | 발람이야기(자막+배경음악) 상위 31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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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 – 다음블로그

발람의 교훈은 목사님이 잘 해석하신대로 발람의 교훈이란 말 그대로 발람이 발락을 가르친 교훈을 말합니다. 발람은 발락왕에게 올바른 신앙을 지도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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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4/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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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 선지자 발람의 교훈

거짓 선지자 발람의 교훈. 노승수 목사. 민수기 22-25장의 발람은 참 독특하다. 겉으론 매우 거룩해 보인다. “이르시는 대로” 답하겠다고 한다(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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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ewisnoh.tistory.com

Date Published: 9/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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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이란?

발람은 모세가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모압 왕 발락에게 매수된 거짓 선지이다. 물질만 준다면 무슨 짓이라도 하겠다는 더러운 자다. 발락은 마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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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headstone924.net

Date Published: 4/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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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을 따른 버가모 교회 (요한계시록 2 : 12 – 17)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는 교회였다. 사단의 위가 있다는 말은 그 지방이 황제 숭배와 각가지 우상 숭배의 본 고장으로 이교도의 중심지였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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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amjoongsori.org

Date Published: 6/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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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교훈을경계합시다. (계 2:12-17) – 기멀전

1. 세상적인 것과 타협을 유도하는 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적당히 죄를 짓고 적당하게 예수 믿으라고 유혹하는 것이 발람의 교훈이요 니골라당의 교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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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5/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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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발람의 교훈

75. 발람의 교훈(민22-25장) 가나안의 세 문지기들을 패배시킨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을 건너 좋은 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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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chch.kr

Date Published: 8/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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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 – Faithlife Sermons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 · 1) 니골라-발람의 교훈. 버가모 교회는 책망받는 교회가 되어버렸습니다. · 2) 회개하며 돌아오는 자들에게 주시는 복. 주님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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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ermons.faithlife.com

Date Published: 1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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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을 물리치라 – 한마음교회

발람의 교훈이 무엇입니까? ‘발람의 교훈’은 신약성경에서 늘 경계의 표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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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dgmission.org

Date Published: 9/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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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발람의 교훈”의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해 주세요

발람의 교훈은 민수기 22장부터 시작된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배도케한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발람은 모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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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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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의 교훈 > 주일오전예배 | 엘림전원교회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작은 죄 큰 죄 가리지 말고 싸우며 혹여 지은 죄를 덮으려 하지 말고 철저히 사죄하고 보상하며 책임지는 자세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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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limtown.net

Date Published: 10/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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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람이야기(자막+배경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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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발람 의 교훈

  • Author: 오주희
  • Views: 조회수 3,34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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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4. 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_v3V45SKbhE

발람의 교훈

성경 전권에 걸쳐 언급되고 있는 발람의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자이다. 성경의 결론에 해당되는 계시록은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계속해서 주문하고 있는데, 그 이김의 실제가 바로 발람의 교훈(가르침)과 니골라 당의 교훈과 이세벨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고(계2) 이것을 정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영적인 죄가 무엇인지를 교계의 지도자들이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도저히 회개할 수가 없기에 이김은 고사하고, 그 무리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할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의 교회는 에덴동산에서부터 사단(뱀 또는 용이라 함)에게 유린 당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영원 전부터의 경륜에 속하는 부분이다. 즉 하나님의 설계요 예정인 것이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기묘자요, 전능하신 창조주께서 허락하시지 않았다면, 어찌 뱀이 아담을 넘어뜨릴 수 있겠는가? 선악과는 하나님의 지혜였다.

그래서 마13장에서 주님은 교회를 천국으로 비유하시면서, 그곳은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라는 곳이요, 채소만 있어야할 밭에서 슬며시 웃자라는 겨자나무가 있어서 공중의 새(악한 자=마13:19))들이 깃들이는 곳이며, 여자가 가루 서 말속에 누룩을 섞어서 전부 부풀린 곳이라 한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사단이 활보하고 있음을 미리 전제하고 신앙생활을 해야 마땅하다.

한마디로 영적세계인 주님의 교회는 사단의 역사가 허락 되어서 세속화가 계속 진행되는 와중에서 여하히 진리를 분별하여 순전한 신앙을 지켜나가며 이기는 자가 될 것인가가 중차대한 목표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밀을 깨닫는 복을 오직 제자들에게만 주셨다고 했다. 바른 신앙은 하나님께 열심만 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진리지식을 모르는 열심은 오히려 하나님을 힘써서 복종치 않는 것이라 했다(롬10:3).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중요한가? 그래서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17:3)이라했다. 영적인 세계는 첫 단추를 끼기에 따라서 생명의 열매냐? 또는 사망의 열매냐? 라는 반대의 결과를 초래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어떠한 출발이냐에 따라 곧 생사를 가름하는 관건이 된다.

오늘은 우선 발람의 교훈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브올의 아들 발람은 민22장부터 등장한다. 브올이란 ‘소멸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소멸의 자식이니 발람의 사역이 무엇인지 벌써부터 짐작이 간다. 그는 분명코 사람의 영혼을 망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된다. 그래서 발람은 ‘백성을 멸망시키는 자’라는 뜻이다. 표면적으로 그는 술사이며 복술가 이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술가는 세상의 점쟁이나 역술가를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한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세상 복을 빌어주는 목회자를 의미한다. 성도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인 것이다.

<민22:4~5>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그(발락)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발람을 부르게 하여 가로되 보라 한 민족이 애굽에서 나왔는데 그들이 지면에 덮여서 우리 맞은편에 거하였고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사주를 받고 이스라엘을 저주케 하는 주술을 베풀라고 고용되었다. 십볼의 아들 발락은 누구를 상징하는가? 십볼은 작은 새란 의미이니 사단을 의미하며, 그의 아들은 사단의 일군이니 그 이름인 발락의 ‘황폐케 하다’는 뜻과 잘 맞아 떨어진다. 즉 발람과 발락은 더러운 영에 종속된 왕과 제사장을 상징하며, 둘은 서로 아삼육이다.

가장 밝을 것 같지만 가장 무지한 곳이 영적인 세계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무조건 맹종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단과 그의 일군들이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는 일이 큰일이 아니라 아주 쉬운 일이라고 성경은 경고하지만(고후11:14) 소위 믿는 자들이 이를 중요시 하지 않고 거짓 표적에 미혹되어 따르는 것은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살후2:9~10)

위에서 발람의 본향을 강변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그의 영적인 위치가 유브라테스 강어귀 정도임을 뜻하는 바로서, 이는 발람이 거듭나지 못했거나 혹은 거듭났을지라도 도의 초보에 머무른 자를 의미한다. 이와 같이 세상교회에서 목사, 신부의 대다수는 영적으로 아주 미천한 상태에 있지만, 단지 신학을 이수했다는 명목으로 하나님의 종으로 행세를 하고 있다.

얼마나 위험천만인가? 거듭나지도 못한 자가 얼마든지 사욕을 따라 신학을 할 수 있는데 이를 여로보암의 죄악이라고 한다(왕상12:31). 또는 거듭났어도 말씀 씨가 아직 없는 여자요, 어린아이인데 가르친다고 온 영계를 흐려놓고 있다. 이들 모두 실상은 본인도 모르게 마귀의 사주에 따라 살아가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이제 성경에서는 어떻게 발람의 사역이 포장 되었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민22장~24장 사이의 발람의 사역을 표면적으로 보면 전혀 하자가 없다. 처음에는 비록 발락의 사주를 받아서 삯에 눈이 어두워 고용 되었지만은 갑자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저주하지 못하고 오히려 3번이나 그 입에서 축복의 말이 나오지 아니하였는가?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결코 악한 짓을 아니 했거늘 왜 그를 탓하는가?

그런데 25장에서 갑자기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게 되면서 모압의 여인들과 음행을 자행하고, 심지어는 모압의 신에게 제사하는 곳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초청되어 바알브올에게 부속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므온 지파의 족장인 시므리가 미디안 여인 고스비를 데리고 자기 장막에 들어가 음행하는 사건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염병으로 이만 사천 명이 죽었다. 그렇다면 발람의 축복 뒤에 왜 이스라엘은 싯딤에 머물렀고 또 이방신에 부속되고 심지어는 족장까지도 음행을 하였는가? 하나님은 이것을 예의 주시하라고 이 사건을 허락하셨다. 싯딤은 역청 구덩이라는 말이니, 발람의 축복 뒤에 이스라엘은 도저히 빠져나오기 힘든 역청의 함정으로 비유된 큰 미혹에 직면한 것을 알 수 있다.

<민31:16> 보라 이들이(모압과 미디안)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여호와의 회중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계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성경본문에는 생략 되었지만, 이스라엘 백성을 도덕적으로 타락시키고 영적으로 다른 신을 섬기게 하면 하나님이 친히 벌하실 것이라는 꾀(계교)를 발람이 발락에게 귀띔해 줌으로서, 광야의 행군에 지친 이스라엘 백성들의 노정에 벌거벗은 여인들의 음란한 춤을 보여주고 고기 굽는 냄새를 진동케 함으로 행군의 후미를 따르던 자들을 미혹케 했던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그렇다. 바로 이 부분이다. 알고 보니 발람의 축복은 영적인 복을 빌어준 것이 아니라 세상의 복과 땅의 복을 소원하게 하는 복술이었던 것이다. 애굽(세상의 달콤함)을 떠나 가나안(신령세계)을 향해 믿음의 행군을 하는 성도들을 다른 교훈, 다른 믿음, 다른 영, 다른 예수로 미혹하는 죄악이 바로 세상을 붙잡게 만드는 행위이며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라 부추기는 꼴이다. 아니 실제는 세상을 소유하기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

<벧후2:12~15>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하고 저희 멸망 가운데서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연락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저희 간사한 가운데 연락하며 멸망을 당하며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쉬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저희가 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하나님은 이 세상과 세상 것을 사랑치 말고,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서 죽으라고 요구하시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언제나 세상의 성공과 부귀영화를 하나님께 구하라고 권하고 있다. 그것이 영적인 죽음으로 몰아가는 살인죄요, 음란 강요죄요 , 거짓 사기죄인 것을 전혀 모르고들 있다.

그들의 상투어는 ‘믿는 자가 세상에서 잘사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란다. 믿는 자가 이방인 보다 형통해야 하나님이 살아계신 증거를 보이는 것이니까, 제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게 세상 복 충만하게 부어 달라고 애걸복걸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큰 빚쟁이로 오해한 나머지 거머리처럼 새벽부터 심야까지 ‘다고 다고’ 한단다(잠30:15).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믿는 자, 네가 세상에서 망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세상으로 부요하면 하나님을 반드시 외면하고 망각하는 것이 혈육의 속성인 것을, 사람을 창조하신 주인이시기에 잘 아시기 때문이다.

종교의식과 세상 복으로 혈안이 되어있는 곳에 하나님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무실 이유가 없다. 대신 부패한 자들의 하나님( 바알 )인 세상신이 그들을 상관할 것이다. 참 하나님이 없는 곳은 성전이 아니다. 귀신의 처소요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옥이 되었다(계18:2) 거기를 큰 성 바벨론이라 한다. 그들의 모임에도 그들의 심령에도 더러운 영들의 집합소가 되었다.

<신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들에게 속한 자는 십대 뿐 아니라, 영원히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1. 니골라에 대하여

먼저 니골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기 위하여서는 계시록에 언급된 일곱교회가

갖는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여겨집니다

즉 이 일곱교회에 대한 시대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첫째 초대교회 시대에 존재하고 있던 교회들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견해입니다

둘째 모든 시대에 동일하게 주는 교훈이라는 견해입니다

셋째 이 교회들은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배경으로 특정한 시기를 묘사한다는 견해입니다

여기서 첫째나 두번째의 견해를 따른다고 한다면 니골라는 의미를

사도행전에 기록된 일곱 집사중 한명인 니골라와 관계된 일이라고 할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교회사에 그와 관계된 기록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요한 계시록이 현재일 만이 아닌 앞으로 되어질 일을(계 1:19) 알려주기 위함이라고 한다면 세 번째 견해에 대하여 주목하여 살펴보아야 할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볼 만한 근거로서 에베소 교회에서는 니골라의 행위가 나타났지만

이를 미워 한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버가모 교회에서 언급 되어질때에는

발달된 교리로서 나타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시대가 지남에 따라서 간간히 나타나던 행위들이 점차 교리로서 정립되어 졌음을 알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앞선 세 교회와 뒤에 언급된 네 교회가 역사속에서 이미 사라진 세 교회와

주님이 오실때까지 존재하는 네 교회로 구별되어짐을 각 교회들에게서 이기는 자들에게 주시는 상급을 언급한 부분에서 성령이 각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과 상급의 순서가 바뀌어짐을 통하여 구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전재하에서( 일곱 교회는 교회 역사 안에서 특정한 기간을 나타낸다) 니골라당의 의미를 살펴 본다면

학자들에 의하면 에베소 교회의 시대를 초대 교회로부터 AD 100년 전 후한 시기로 말합니다.

이 당시에 유명한 교부이자 순교자인 이그나티우스가 순교하러 가면서교회에 보낸 서신을 보면 그 내용중에 감독(목사)들은 특별한 존재로서 그들에게 전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버가모 교회의 시대는 AD4 – 5세기 때를 의미 하는데 이 때는 교회사적으로

교회와 국가 권력이 연합하여지면서 교회가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행사 하던 시기로서

사도권 계승이라는 이름하에 카톨릭의 교황제도가 정립되어지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버가모 교회를 향하여 하나님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같이 언급하고 계시는데

기독지혜사에서 나온 성서대백과 사전 에 보면

“니골라당”이라는 말은 두 헬라어 단어로부터 나왔는데 지배한다는 뜻의 ‘njkan’ 이라는 단어와 지배 한다는 뜻의 ’laos’ 단어이다

마찬가지로 발람도 두 히브리어 단어인 ‘bela’ (지배한다) 와 ‘ha,am’ (백성)에서 유래되었다

그러므로 니골라와 발람은 같은 이름의 헬라어와 히브리어로서 어느 편이나 백성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을 이단의 노예가 되게 하는 악한 교사를 의미하는 말이다“

2. 여기서 발람의 교훈에 대하여 살펴보면

첫째는 삯을 위하여 일하는 자를 나타냅니다 (유 11, 벧후 2:15,16 참조)

두 번째는 계략을 세워 백성을 잘못된 길로 인도한 일입니다 (민 25:1-9, 31:1-8,16,17 참조)

신약시대에 있어서 음란이란 교회의 세속화를 가리킨다 할수 있는데 야고보서 4:4에 보면 세상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

영적인 음란이라고 기록도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재물을 탐하여 일하는 자와 교회를 세상으로 이끌고 가는 자들을 발람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이제 정리하면 니골라(발람)의 이름이 언급 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것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면서(성직자) 사람들을 자신의 이익의 대상으로 삼아 세속화로 이끄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모든 성도는 동일한 제사장이며(벧전2:5-9 참조) 인도자 (큰 자)들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20:25-27, 벧전5:1-4 참조)

3.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의 일치점

요즘, 교계에는 자신도 목사이면서 목사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단에 속한 사이비성 교회에서 기성교회의 목회자들을 비난하는 경우는 다반사입니다. 그런 가운데 목사님이 지적하신 경우, 계시록에 나오는 니골라당을 교회의 목사들로 규정하고 피지배층인 교인과 지배층인 목사와의 양분관계로 구분하므로 목사를 마치 교회에서 제거해야 할 존재로 부각시키고 있다는 사실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제사장직과 사도직의 계승으로 세워져 오늘날 교회를 형성하고 있는 목사제도를 부인하려는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은

교회사적으로 많이 있어 왔던 일이라 그리 놀랄 일은 틈爛求�.

그들은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하거나 만인 형제주의를 표방하고 교회의 은사적인 직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무리들의

존재는 이미 그 역사성이 오랩니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신학이나 소위 기독교 교리가 대단히 잘못된 이단적인 요소가 있기 때문에 어느 시대나 기독교계에서는 이들에 대하여 한번도 인정해 준 일이 없고 이단아로 취급해 왔습니다.

계시록 2장 버가모 교회에 나오는 발람의 교훈, 니골라당의 교훈은 교회 안에 침투하여 바른 교리를 교란시키고 다른

복음을 만들어 내는 자들에 대한 경종이요 책망이지 결코 목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이 아닌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은 목사님이 잘 해석하신대로 발람의 교훈이란 말 그대로 발람이 발락을 가르친 교훈을 말합니다.

발람은 발락왕에게 올바른 신앙을 지도한 것이 아니라 음란과 우상의 제물로 이스라엘을 타락시키는 방법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음란과 우상의 제물을 먹는 죄악을 범하게 되었고 그들은 그에 합당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버가모 교회에 있는 선생들 중에는 교인들로 세속에 물들게 하여 교인들로 음란과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악을 행하면서도 그들의 그 행위가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사람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며 영적으로 얻은 구원은 육신의 죄로 소멸되지 않는다고 하는 니골라당의 교훈을 따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발람의 교훈이나 니골라당의 교훈은 교훈의 내용은 다르지만 교훈의 결과는 일치점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이 둘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들은 버가모 교회 안에서 다른 복음을 전하는 무리들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으로 하나의 파당을 조성했던 자들을 가리키는 말이지 결코 교회의 목사들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을 따랐던 교회

“버가모 교회, 발람의 교훈을 따랐던 교회”

버가모 교회는 오늘날 “사단과 타협하는 교회”로 나타낼 수가 있다. 이 지역은 사단이 거하고 있으며 사단의 보좌가 있는 음란하고 타락한 곳인데, 버가모 교회 안에는 충성된 자도 있었지만, 세상을 적극적으로 따르는 많은 ‘교인’들이 있었던 것이다. 성적으로 타락한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에는 간교한 마귀가 왕성하게 활동하기 마련이다. 그 영향으로 교회 안에는 발람의 교훈(동성연애, 타락한 성문화, 음란한 제사)와 같은 것이 만연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에 교회는 사단의 공략의 대상이 되었고 십자가의 복음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현대교회 안에는 샤머니즘적인 기복적 신앙과 인본주의적 가치(물질우상주의, 성공주의)와 자기중심적인 타락한 예배가 범람하고 있다. 그러기에 주님은 이를 엄중히 경고하면서 거짓과 이단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것을 회개하고, 그러한 자들을 바로잡고 영광스런 자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을 받으라고 충고하신다.

【본문말씀 : 요한계시록2장】

◈ 먼저 본문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요한계시록 2:13)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14-17)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 이제 말씀을 의뢰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1. 사단의 권좌가 있는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굳게 잡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순교한 충성된 증인 안디바처럼 교회가 세상의 한복판에서 오직 복음과 기도를 굳게 잡고 믿음으로 나아가 충성된 증인의 자리에 굳게 설수 있도록 기도하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린도전서 15:58)

2. 교회 안에 지도자들이 세상의 재물과 탐욕에 눈이 멀어 바르지 못한 교리를 가르치며 물질주의와 세속주의로 넘어지게 하는 악한 영들을 대적하자. 또한 바른 진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 자아를 숭배하며 행음하는 무리들이 하나님의 책망 앞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의 진노하심에서 구원받도록 기도하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요한일서 2:15-16)

3. 교회 안에서 경건의 모든 모양을 흉내 내지만, 실제의 삶에서는 경건의 능력을 찾아볼 수 없는 가증스러운 모습을 회개하자. 또한 진리의 말씀보다 자신의 감정과 정서에 이끌려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죄악된 태도를 회개하자. 그리고 복음과 세상의 문화를 혼합하여 복음의 참된 가치를 퇴색시키며 그 영광을 가리려하는 악한 사단의 세력을 대적하며 기도하자.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진리의 말씀으로 거짓을 분별하여 오직 진리만을 따르는 교회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하자.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그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디도서 1:15-16)

4. 이 땅의 교회들이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 앞에 민감하게 귀를 기울여 진리의 말씀을 붙드는 믿음으로 이기도록 기도하자. 이기는 교회에게 주시는 감추어진 만나와 흰 돌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승리하는 교회로 설 것을 선포하며 기도하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브리서 12:2)

거짓 선지자 발람의 교훈

거짓 선지자 발람의 교훈

노승수 목사

민수기 22-25장의 발람은 참 독특하다. 겉으론 매우 거룩해 보인다. “이르시는 대로” 답하겠다고 한다(22:8). 그러나 발락이 사람을 더 보내 왔을 때,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 본다(22:19). 이미 답변을 듣고도 더할 것을 찾는다.

아마 이때 이미 발람은 본심이 정해졌던 듯하다. “함께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명령이라기보다 발람의 의중에 대한 허용에 가깝다. 어디서 그 사실을 알 수 있냐면 여호와의 사자가 “네 길이 사악하므로”라고 말하는 데서 확인 할 수 있다(22:32). 게다가 발람은 눈이 어두워 당나귀도 보는 사자를 보지 못한다. 나귀가 보다는 동사가 3번이나 반복된다(23, 25, 27). 나귀가 말하는 것조차 낯설지 않으며(28) 전에 없던 나귀의 습관도 알아채지 못한다(30). 나귀는 3번 돌이켜 피하였으나 채찍질하며(25) 지팡이로 때리며(27) 죽이려는 의도를 가졌다(29). 그것도 전에 없던 한 번의 거스름 때문에 그의 성정이 교만과 분노로 어두웠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신약은 이러한 발람의 범죄를 돈에 대한 욕심과 관련한 거짓 예언으로 규정한다. 그 특징은 분명하게 계시된 뜻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뜻을 확인하는 데서 드러난다. 이런 그의 특징을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한다.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벧후2:15-16) 여호와의 사자가 막아서는 것을 당나귀는 보나 발람은 보지 못하며 채찍질에 지팡이로 때리며 살의를 드러내는데 이 모든 것이 불의의 삯에 대한 욕망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동생인 유다는 발람의 이런 행동에는 교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발람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매우 신령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원래 신령함 속에 교만이 깃드는 법이다. 가난하고 배운 거 없는 자가 교만해지기보다 배운 것 많은 자가 교만해지기 쉽고 체험이 적은 자보다 체험이 많은 자가 교만해지기 쉽다.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점술을 행하던(24:1), 바알의 제사장이다(22:41). 유다는 3가지 유형을 지적한다.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유1:11) 첫째 가인과 같은 살인자의 길, 둘째, 발람과 같은 삯군의 길, 셋째, 고라 같은 패역의 길이다. 이 셋은 원래 하나에서 나온다. 당나귀를 향한 살의는 가인의 길을 보여주며 돈에 눈이 멀어 여호와의 사자를 막으심을 보지 못하며, 돈과 명예에 대한 욕심 때문에 고라 당처럼 아론과 그 제사장 직분에 도전하여 패망의 길로 접어든다.

그는 곧잘 회개하는 것처럼 보인다(22:34). 그러나 그는 바알 선지자다(22:41). 그는 이스라엘을 음행에 빠지게 한다(민 25장). 민수기 31:16에 의하면 이것이 명백하게 발람의 꾀였다는 점을 지적한다. 여호와를 부르며 여호와께 들으며 심지어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여 점술을 행할 필요가 없었으나(24:1-2) 그가 부르는 신은 바알이며 음란히 섬긴다. 이 교묘함이란 오늘 교회가 배도하여 음녀가 든 배도의 포도주 잔에 취한 것과 흡사하다. 그의 이런 거짓 선지자로서의 모습을 요한 사도는 계시록을 통해서 정죄한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계2:14) 사도 요한의 지적처럼, 바알 신앙과 그 신자는 여호와 신앙과 그 신자에게서 멀리 있지 않으며 교회 안에 존재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종종 바알 숭배자에게도 일반 은총의 빛을 특별하게 비추신다는 것이다.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에도 재차 삼차 묻는 것은 욕망으로 경도되었음을 보여주며 들끓는 욕망은 분노의 매질을 부르며 눈을 어둡게 하며 짐승이 보는 것을 보지 못하게 한다.

22장에 여호와의 사자가가 3번을 막아섬(23, 25, 27, 결정적으로 28절)으로 거짓 선지자의 교만과 물욕과 패역에서 비롯된 저주의 시도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심으로 3번의 축복으로 바뀐다(24:10). 22-15장의 발람의 기사는 발람의 축복은 발람의 악의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사자의 축복에서 기원하는 축복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교회 안의 거짓 선지자들도 이렇게 활용하신다. 그리고 그들을 보호하시며 여호와의 사자와 왕벌을 보내시어 그들의 저주를 막으시고 축복으로 변하게 하신다. 그러나 동시에 깨어 있지 않으면 이들의 미혹을 받아 음행에 빠지고 물욕을 신으로 섬김으로 하나님의 백성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참 언약의 백성은 보호를 받을 것이며 배도의 백성은 미혹을 받을 것이다. 그 미혹이 우리 욕망을 드러낼 것이다. 발람의 경우처럼 말이다.

발람의교훈을경계합시다. (계 2:12-17)

본문 / 계2:12-17

제목 / 발람의 교훈을 경계하라

버가모 교회는 사단의 본부가 있는 곳에 있는 교회였습니다. 2:13절의 말씀에 보면 “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라고 했습니다.

버가모는 황제를 숭배가 강하게 시행되는 곳이었고 로마 식민지에서 최초로 황제를 숭배하는 신전을 최초로 세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단의 위”가 있는 곳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단의 위란 사단의 자리 즉 보좌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버가모라는 곳은 사단의 자리가 있는 사단의 본부였습니다. 사단의 집무실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한 곳에서 성도들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정치적 핍박으로 인한 환난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습니다. 황제의 신전 앞에서 안디바 성도가 순교를 당할 때도 그들은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다 믿음을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계 2:14)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 2:15)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쳐 순교의 피를 흘리는 성도들이 있는 곳에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이란 무엇입니까?

발람의 교훈을 알기 위해서는 민수기 22-23장을 읽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 맞은 편 모압 평지에 진을 쳤을 때 모압왕 발락은 심히 두려웠습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당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는 신적인 힘으로 이스라엘을 물리칠것을 생각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람 선지자에게 사자를 보냈습니다. 많은 예물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저주해 달라고 청하였습니다. 발람선지자는 자신이 이스라엘을 저주해 달라는 발락왕의 요구를 들어줄 것인지 어떨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보기는 했으나 하나님은 발람 선지자의 행위를 악하게 보셨습니다.

“물어보나 마나 뻔한 것을 물어볼 때는 자신의 욕심 때문입니다”

아무려면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저주하게 하시겠습니까?

발락왕의 요청은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해야 할 사안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죄를 지을 까요 말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라고 묻는 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습니까?

1. 세상적인 것과 타협을 유도하는 것이 발람의 교훈입니다.

적당히 죄를 짓고 적당하게 예수 믿으라고 유혹하는 것이 발람의 교훈이요 니골라당의 교훈입니다. 그러나 온전한 신앙은 절대로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불의와 세상의 우상숭배에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은 순교를 당하면서 예수의 이름을 굳게 믿는 믿음을 지켰지만 다는 아니었습니다.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 상당 수 있었습니다.

사단이 치밀한 계획으로 교회를 공략하였기때문입니다.

한편으로는 정치권력을 가지고 갖은 핍박을 다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헛된 칭찬과 물질의 유혹을 통해서 성도들의 마음을 빼앗았습니다.

사단은 지금도 적당히 세상의 흐름에 자신을 맡기고 살면 호인이라고 칭찬 받고 물질이 갖다주는 온갖 풍요로움과 자유로움을 누릴 텐데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에 구속되어 불편하고 속박받는 삶을 사느냐고 속삭이고 있습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불신 세상 세력과 타협하고 협상해서는 안 됩니다.

어느 날, 새들과 육지 동물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박쥐는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육지 동물이 이기는듯하면 쥐처럼 걸어 다니며 그 쪽에 붙고, 새들이 유리한듯하면 새처럼 날아다니며 날짐승 편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게 잘 되어 가는 듯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박쥐의 속임수를 안 새와 육지 동물들이 박쥐를 쫓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박쥐는 캄캄한 동굴로 들어가 밤에만 날아다니는 신세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앙인들 중에도 박쥐처럼 형편에 따라 교회에 붙었 다가 세상에 붙었다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세계에서 중간지대란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세상에 속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중간지대가 없을수록 우리 신앙은 순결해집니다.

주님은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라고 계3:16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무사 안일하게 하는 형태를 ‘미지근한 것’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우리의 신앙 색깔은 분명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으로부터는 버림받고, 세상으로부터는 멸시와 천대를 받는 박쥐 신세가 될 것입니다.

2. 발람 선지자가 세상과 타협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는 헛된 칭찬 때문입니다. .

발락왕의 유혹은 칭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민 22:6절에 보면 발락왕이 사자를 발람 선지자에게 보내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보다 강하니 청컨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내가 혹 쳐서 이기어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발락의 칭찬은 “그대가 복을 비는 자는 복을 받고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줄을 내가 앎이니라” 였습니다. 선지자의 신통력을 인정하는 말입니다.

발락은 발람 선지자에 가장 듣기 좋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얼마나 신나겠습니까?

그런데 이런 칭찬 몇 마디에 눈이 멀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지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칭찬은 때로 의기소침한 마음에 새 힘을 주고 상처 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약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칭찬 듣기만을 좋아하면 결코 영혼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따끔한 충고와 매서운 비판의 소리가 당장 귀에는 거슬리고 아플지라도 영혼의 약이 될 때가 있습니다.

칭찬을 할 때는 정확한 근거를 제사하며 칭찬해야 합니다. 아첨형의 칭찬은 하는 것도 삼가야 하지만 그런 칭찬을 하는 사람을 경계해야합니다.

둘째는 물질의 욕심 때문입니다.

발락은 모압왕 발락이 보낸 물질에 눈이 멀었습니다. 민 22:7절에 보면 발락 왕은 장로들과 귀족들을 보내면서 “복술의 예물” 을 준비했다고 했습니다.

“모압 장로들과 미디안 장로들이 손에 복술의 예물을 가지고 떠나 발람에게 이르러 발락의 말로 그에게 고하매….”

복술의 예물이란 복술가의 복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즉 발락은 이스라엘을 저주해 주는 댓가로 거액의 뒷돈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선지자를 돈으로 매수하려는 발락의 계획이 먹혀들어간 것입니다.

신명기 23:4-5절에서는 발락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게하려고 발람선지자에게 “뇌물” 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신 23:4) 그들은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떡과 물로 너희를 길에서 영접하지 아니하고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사람 브올의 아들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너희를 저주케 하려 하였으나

(신 23: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사랑하시므로 발람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그 저주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셨나니

느 13:2절에서도 뇌물을 주었다고 했습니다.

“이는 저희가 양식과 물로 이스라엘 자손을 영접지 아니하고 도리어 발람에게 뇌물을 주어 저주하게 하였음이라 그러나 우리 하나님이 그 저주를 돌이켜 복이 되게 하셨다 하였는지라”

그러니까 발람 선지자는 뇌물에 눈이 멀었습니다.

3.발람의 꾀를 경계합시다.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지는 못했지만 뇌물을 먹었으니 무엇인가 발락왕에게 보답을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저주하지 않더라도 이스라엘이 스스로 멸망을 당할 수 있는 방법 즉 묘책을 일러주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이 죄를 짓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장정들이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게 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게 될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발람의 꾀였습니다.

그래서 발락은 모압의 아름다운 여인들을 동원해서 이스라엘의 장정들을 유혹했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의 유혹을 받은 이스라엘 남자들을 모두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게 하였습니다.

발람이 돌아간 후 발락 왕은 그가 일러준 방법대로 시행하였습니다. 민 24:25-25:5절까지의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민24:25) 발람이 일어나 자기 곳으로 돌아갔고 발락도 자기 길로 갔더라

(민 25:1)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민 25:2)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민 25:3)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결국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올무를 놓은 것입니다.

발람의 꾀에 넘어간 이스라엘은 큰 낭패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세상과 타협을 유도하는 발람의 교훈을 멀리하십시오.

더 이상 세상도 좋고 하나님도 좋다는 식의 발람의 교훈을 따라서는 안됩니다.

영어 단어에는 절대성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Yes’이며, 또 하나는 ‘No’입니다.

절대성이라는 것은 서로가 타협이나 절충이 불가능한 것을 말합니다. ‘Yes’는 ‘Yes’이고, ‘No’는 ‘No’입니다. 광부가 탄광에 들어갈 때 흰옷을 입고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탄광에서 나올 때 그 휜 옷이 흰 채로 있을 수는 없습니다.

흙을 가지고 놀면서 손이 더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흙에 뒹굴고 나서 자신은 깨긋하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행위에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1:27)

옳은 것은 옳은 것이고, 그른 것은 그른 것입니다.

이 둘이 섞일 수는 없습니다. 양자간의 타협점은 없습니다. 원리 원칙의 절충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타협하고 절충할 때 불신자들이 마음 편하게 느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사명은 사람들의 마음 편하게 할 일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갖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고후 6:7절에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분명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색깔을 가지고 믿음을 지켜서 본문 계 2:17절에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하신대로 감추었던 만나를 받고 구원과 생명의 힌돌의 은혜를 받으시기를 축복합니다.

75. 발람의 교훈

출처

원문

75. 발람의 교훈(민22-25장)

가나안의 세 문지기들을 패배시킨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을 건너 좋은 땅으로 들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대적은 이스라엘에 대해 싸우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모압 왕 발락은 군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는

이스라엘을 패배시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는 종교적인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파멸시키고자

선지자 발람을 매수하였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이 이스라엘을 저주하기 위하여 고용한

유브라데 강가의 브돌 사람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넘어지게 했던

이방 선지자였습니다(민22:4-6).

발람은 선지자였지만 좋은 의미의 선지자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돈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도록 고용된 선지자로서

처음에 이것은 하나의 행위였지만 결국 거기에는

하나의 교훈, 즉 발람의 교훈이 산출되었습니다(계2:14).

만일 누가 직업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라면 감히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세속적으로 발람의 역할을 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돈은 발락의 수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발락을 즐겁게 하기 위해 무언가를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모압 여자들을 이용하여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적인 간음과

재앙을 가져오게 했으며 우상숭배를 초래했습니다(민25:1-3, 31:16).

주님을 섬기는 자들이 돈의 영향력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결국 불의의 삯을 사랑하므로 바른길을 버리고

어그러진 길을 간(벧후2:15, 유11절) 발람을 닮게 될 것입니다.

발람은 발락의 악한 의도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손상시키는

것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함께 갈 것인지,

가지 않을 것인지를 하나님께 구할 것이라며 발락이 보낸

장로들과 귀족들을 그의 집에 유숙하도록 했습니다.

어찌 보면 발람은 아주 영적인 것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발람은 분명히 잘못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발락의 악한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비록 그 일이 잘못된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주님께 그것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여쭈어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주님의 뜻을 구하는 것 같지만

발람이 자신을 속였듯이 우리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발람은 사실상 자기기만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때는 나귀가 입을 열어 말을 한다 할지라도

당연히 돌아서야 할 길인데도 불구하고 돌아서지 못하고

결국 여호와를 바알과 함께 섬기는 혼합의 제물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민22:41-23:1-2).

발람은 발락을 즐겁게 하고 더 많은 돈을 받기 위해

그의 마음속에 이스라엘을 저주하고자 하는 갈망과 의도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감찰하시고 다스리시는 하나님은

발람에게 말할 것을 가르쳐 주셨으며

열방들 앞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을 축복하시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발람은 미디안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이

미디안 다섯 왕을 죽일 때 함께 죽임 당했습니다(민31:8).

질문: “발람의 교훈”의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해 주세요/발람의 교훈,발람, 베도,선지자,뇌물,타협,니골라당,

질문: “발람의 교훈”의 내용이 무엇인지 해석해 주세요

답변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계 2:14)

발람의 교훈은 민수기 22장부터 시작된다.

발람은 이스라엘을 배도케한 선지자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들 중 한 사람이었던 발람은 모압 왕 발락의 뇌물에 마음이 끌려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지 않으셨다. 그러나 발람은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압 왕에게 가르쳐 주었는데, 그것은 아름다운 모압 여자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남자들을 꾀어 우상숭배에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도성들을 돌보지 않으실 것이고 모압 왕은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발람의 계교는 적중하였고, 이스라엘 남자들은 모압 여인들을 아내로 맞아들였으며 음란한 우상숭배에 빠졌으며 그 결과 염병으로 24000명이 죽었다. (민수기 25장 1~9절). 발람의 교훈은 세상과의 타협이었다. 계시록 2장 13절에 나오는 니골라당의 행위와 교훈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올무를 놓아서 그들로 하여금 믿음에서 떠나 멸망케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계 2:14-15)

니골라당은 헬라어로 “정복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발람이라는 이름의 뜻도 “백성을 정복한다”는 뜻이다. 니골라당은 육신의 충동을 절제하지 않고 쾌락에 자신들을 내던진 그리스도인들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니골라당은 계명을 준수하는 것을 멸시하고 간음을 일삼고 우상의 제물을 먹던 쾌락주의에 빠진 영지주의의 일파였다. 니골라당의 핵심은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별을 없애고 세상과 교회의 차이를 알 수 없게 만들며 세상과 타협을 하던 사람들이었다.

발람의 교훈 > 주일오전예배

본문

요한계시록 2:12-16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탄의 권좌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탄이 사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갖은 고생 끝에 호르산을 넘어 세렛 골짜기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하나님께서 평화롭게 주신 ‘브엘’의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거기서부터는 모압평야가 시작되었습니다.

여지껏 거칠고 험한 산과 골짜기와의 싸움이었다면 평야에 당도하니 그 곳에 거주하던 이방 족속들과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거기서 아모리 족속을 물리치고 그 다음 바산왕 옥과 그의 백성들을 쳤습니다.

이런 두 번의 승리를 통해 모압 평야에 거주하던 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두려워하기 시작했습니다.

모압 평야의 최대 종족은 당연히 모압 족속들이었으며 당시 모압의 왕은 십볼의 아들 발락이었습니다.

발락은 어떻게든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막아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사신들을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유명한 예언자 발람에게 보냈습니다.

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에돔 족속과 모압 족속은 공격하지 말라고 하셨기에 굳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들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이며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압왕 발락은 이스라엘과의 평화로운 공존 대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는 선택을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세상과 싸우려고 하지 않지만 세상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세상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바라는 것은 우리의 환상일 뿐입니다.

우리는 세상과 싸우지는 안되 그들과 동화되어 섞이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하는 분명한 영적 윤리적 도덕적 육체적 선을 지킴으로 세상과 스스로를 구별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살지만 결코 세상 사람들과 같아서는 안됩니다.

더 희생하고 선하며 인자하며 이타적이어야 합니다.

700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길을 온 발락의 사신들은 발람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22:9-18

“하나님이 발람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되 너와 함께 있는 이 사람들이 누구냐

발람이 하나님께 아뢰되 모압 왕 십볼의 아들 발락이 내게 보낸 자들이니이다 이르기를

보라 애굽에서 나온 민족이 지면에 덮였으니 이제 와서 나를 위하여 그들을 저주하라 내가 혹 그들을 쳐서 몰아낼 수 있으리라 하나이다

하나님이 발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그들과 함께 가지도 말고 그 백성을 저주하지도 말라 그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니라

발람이 아침에 일어나서 발락의 귀족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의 땅으로 돌아가라 여호와께서 내가 너희와 함께 가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모압 귀족들이 일어나 발락에게로 가서 전하되 발람이 우리와 함께 오기를 거절하더이다

발락이 다시 그들보다 더 높은 고관들을 더 많이 보내매

그들이 발람에게로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십볼의 아들 발락의 말씀에 청하건대 아무것에도 거리끼지 말고 내게로 오라

내가 그대를 높여 크게 존귀하게 하고 그대가 내게 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시행하리니 청하건대 와서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저주하라 하시더이다

발람이 발락의 신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발락이 그 집에 가득한 은금을 내게 줄지라도 내가 능히 여호와 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겨 덜하거나 더하지 못하겠노라”

여기까지 보면 발람은 비록 이방신을 숭배하는 영매였지만 나름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을 보면 발람의 정신은 이미 세상의 유혹으로부터 패배하였음을 보게됩니다.

22:19 “그런즉 이제 너희도 이 밤에 여기서 유숙하라 여호와께서 내게 무슨 말씀을 더하실는지 알아보리라”

발람은 이미 하나님의 뜻을 확인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높여 크고 존귀하게 해준다는 발락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한 번 더 물어본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한 번 더 물어본다고 하나님께서 그 뜻을 바꾸실리 없습니다.

세상의 유혹에 넘어간 발람은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이 후 발람은 모압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충성된 나귀가 세 번이나 가던 길을 멈추고 결국에는 나귀의 입을 통해 하나님의 경고를 듣게 됩니다.

그리고 발락의 요청에 따라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제사를 행하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의 입을 주장하심으로 저주가 아닌 축복을합니다.

이런 일이 23-24장에 걸쳐 세 번 반복됩니다.

22-24장은 대부분의 구약성경이 그러하듯 전지적 작가시점이 아닌 객관적 관찰자의 시점으로 담담히 일어난 사실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지극히 절제되어 있습니다.

본문은 발람이 얼마나 악한지 읽는 이로 하여금 굳이 설득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일련의 행동들은 담담하게 기록함으로써 발람이 어떤 사람이고 얼마나 정신상태가 썩었는지를 오히려 더욱 강하게 강조합니다.

고집쎈 나귀도 하나님의 뜻을 인정하고 모압으로 가는 길에서 세 번이나 버텼습니다.

세 번이나 저주하기 위해 벌렸던 제사가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정도면 발람은 깨달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발람은 포기하지 않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망시키려고 다른 작전을 시도하였습니다.

25: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따라 이스라엘 자손을 브올의 사건에서 여호와 앞에 범죄하게 하여 여호와의 회중 가운데에 염병이 일어나게 하였느니라”

자신이 숭배하던 바알신을 이스라엘에게 퍼뜨렸습니다.

25:1-3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자기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가담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바알브올의 제사의식은 지극히 더럽고 음란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특히 모범이 되어야 할 이스라엘의 지도자 층들이 바알의 여사제들인 모압 여인들과 죄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께서는 버가모 교회의 성도들에게 발람의 교훈을 따리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더불어 니골라 당의 교훈을 경계하셨습니다.

니골라는 사도행전 6장에서 선출된 일곱 집사들 중 하나였습니다.

처음에는 신실하고 충성된 자였지만 후에 변절하여 큰 해악을 끼쳤습니다.

그는 육신의 죄가 구원과 상관없으니 마음껏 죄지어도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구원 받기때문에 굳이 세상의 쾌락과 유혹과 굳이 싸울 것없이 즐기고 싶은대로 즐기라는 주장이었습니다.

오늘날 2021년의 한국 교회는 과연 발람과 니골라의 교훈으로부터 안전한가 돌아봐야 합니다.

발람은 하나님과 대화도 하였으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세상에 속한 자였습니다.

오늘날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목적이 우선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세 번 열 번 백 번을 깨닫게 해주셔도 끝까지 자신의 목적을 하나님의 뜻보다 더 우선합니다.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지만 이것은 발람의 기도일 뿐입니다.

자신의 목적이 모두 다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어 선교를 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선교를 크게 하는 것은 구실일 뿐이고 실상 돈을 많이 버는 것이 목적인 경우입니다.

돈 많이 벌어 선교를 크게 하려는 목적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소박하게 살면서 작지만 의미있는 선교, 예를 들면 옆의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고 하신다면 이에 순종해야합니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위한 기도는 발람의 기도입니다.

바람직한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다른 사람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왜 하나님께서 실패하게 하셨는지 그 뜻을 구하는 것이 올바른 기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보이는 또 다른 특징은 니골라의 교훈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방언하고 예언하고 신령하게 보이지만 그와 동시에 놀라우리만치 윤리 도덕적으로 납득이 가질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방언하고 예언한다고 죄가 묵인되고 허용될리 없습니다.

세상의 유혹에 사로잡혀 하나님을 거역하는 발람이 자신의 아끼던 나귀를 죽이려고 하던 장면이 본문에 나옵니다.

영적인 것처럼 기도하고 말하는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폭력적으로 돌변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의 중심이 세상의 쾌락과 영광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영적인 자녀라면 하나님의 인격대로 말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계속 죄짓고 살거면 차라리 영적인 것처럼 보이질 말아야 합니다.

물론 죄 하나 없이 완벽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최소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반성하고 타인에게 끼친 피해를 보상하는 노력과 사죄의 태도를 갖춰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니 죄의 책임이 없다고 적반하장으로 우기면 바로 니골라당인 것입니다.

결론)

우리가 발람의 교훈과 니골라당의 교훈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본문에서 찾아보겠습니다..

25:6-13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회막 문에서 울 때에 이스라엘 자손 한 사람이 모세와 온 회중의 눈앞에 미디안의 한 여인을 데리고 그의 형제에게로 온지라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보고 회중 가운데에서 일어나 손에 창을 들고

그 이스라엘 남자를 따라 그의 막사에 들어가 이스라엘 남자와 그 여인의 배를 꿰뚫어서 두 사람을 죽이니 염병이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그쳤더라

그 염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 명이었더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내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내 노를 돌이켜서 내 질투심으로 그들을 소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그러므로 말하라 내가 그에게 내 평화의 언약을 주리니

그와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제사장 직분의 언약이라 그가 그의 하나님을 위하여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속죄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압 여인들과 더러운 바알숭배를 한 이스라엘에게 전염병을 내리시고 이로인해 이만 사천명이 죽었습니다.

아론의 손자 비느하스가 의로운 분노의 응징으로 전염병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만연된 발람과 니골라당의 교훈을 직시하고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영광과 쾌락을 과감히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작은 죄 큰 죄 가리지 말고 싸우며 혹여 지은 죄를 덮으려 하지 말고 철저히 사죄하고 보상하며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세상은 친한 척, 환영하는 척하지만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노력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발람의 저주가 오히려 축복으로 바뀌었듯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임을 기억하십시오.

축복의 대상답게 세상과 구별하여 거룩하고 선하고 깨끗하게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하나님께 드립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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