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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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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하나님의 날 ·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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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3/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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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베드로후서 3 · 1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 2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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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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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베드로후서 3장

베드로후서 3장 · 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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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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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KLB – 주님이 다시 오심 – 사랑하는 – Bible Gateway

베드로후서 3. Korean Living Bible … 3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나는 여러분에게 두 번째 편지를 씁니다. … 3 여러분은 먼저 이것을 아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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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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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02(목) \”베드로후서 3:1-18\”/ 작성: 이영란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18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주변의 이교도들로부터 적대와 멸시를 당하고 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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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2/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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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삶 / 베드로후서 3장 18절 / 오늘의 말씀

베드로후서 3장 18절 (베드로후서 3:18 /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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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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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앞날(베드로후서 3장 4절)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

베드로후서 3장 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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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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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우리말성경) / 다니엘성경 – genie – 지니

베드로후서 3장 (우리말성경) – 03:09. [우리말성경] 제3장 [재림의 약속] 1.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이것은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두 번째 쓰는 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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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enie.co.kr

Date Published: 4/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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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8-14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베드로후서 3장 8-14절 2014/10/24(금).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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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dh153.tistory.com

Date Published: 8/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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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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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베드로 후서 3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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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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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

하나님의 날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1)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2)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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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둘로 너희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의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찌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4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2016/06/02(목) \”베드로후서 3:1-18\”/ 작성: 이영란

본문 베드로후서 3장 1-18절

찬송가 179장 ‘주 예수의 강림이’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당시 주변의 이교도들로부터 적대와 멸시를 당하고 있을 때 소망을 주기 위해 쓰여진 편지입니다. 베드로가 쓴 두 번째 편지인 베드로후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강조하기 위해 쓰여졌습니다. 재림에 대한 약속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을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성도들을 미혹하자 베드로는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상기시키며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습니다.

3절입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말세는 마지막 날들이란 의미입니다. 주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시대를 가리킵니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도 말세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조롱하는 자들은 미래의 종말을 부인하는 거짓 교사들을 의미하는데 그들이 하는 조롱은 하나님을 경멸하고 모독하는 교만한 언사입니다. 그들은 4절에서 주님의 재림을 부정했지만 성경은 계속해서 주님의 다시 오심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고(마24:34), 주님께서 승천하실 때에는 천사들이 약속했습니다(행1:11). 또한 사도들도 주님의 재림에 대하여 확고하게 이야기했습니다(살전4:15, 벧전4:7).

그러나 미혹하는 거짓 교사들은 창조 이래로 세상의 모습과 자연 법칙은 변하지 않고 규칙적인 것처럼 또한 구약의 조상들도 수없이 잠들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던 것처럼 세상은 계속 반복될 뿐이라며 주님의 재림은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4절). 그러나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간곡하게 주님의 마음을 전합니다. 9절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다시 오시겠다고 약속하신 주님의 재림이 더딘 것은 거짓 교사들이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능력 없으심이 아니라 단지 오래 참으시는 긍휼 때문이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사랑 때문임을 강조합니다(15절). 하나님께서 진실로 원하시는 것은 온 인류의 회개입니다. 누구도 예외없이 모두가 회개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기다리심 때문임을 거짓 교사들은 알 턱이 없었던 것입니다.

조롱하는 자들, 거짓 교사들의 주장처럼 주님께서 오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오실 것이지만 그 때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도둑이 언제 침입할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주님께서도 도둑같이 오실 것이라고 말씀합니다(10절). 언제 주님께서 다시 오실지 알 수 없기에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그 날을 간절히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11-12a절입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입니다. 거룩한 행실은 악으로부터 분리되어 하나님께 헌신된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악과 친밀하면서 하나님께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경건하다는 것은 ‘신앙심이 깊은’, ‘하나님을 경외함’ 이라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된다고 하여 재림 자체를 부정하거나 핑계의 근거로 삼을 것이 아니라 주어진 삶의 자리에서 깊은 신앙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권합니다.

끝으로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권면합니다. ‘자라가라’는 말은 미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계속적으로 자라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주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하여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와 그에 대한 지식 안에서 계속 성장하여 굳세게 서서 거짓 교사, 조롱하는 자들의 미혹에 빠지지 말라고 권면합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성장해야 하듯이 그리스도인들도 성장해야 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지식 안에서 자라갈 때, 광야에서 사단의 유혹을 말씀으로 이기시며 매 순간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셨던 주님처럼 오늘도 성령님에 의지하여 걸을 때 어떤 유혹도 어떤 환난도 견디어 낼 수 있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교회를 향해,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조롱하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다시 오심을 믿는 우리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 하나님의 시간을 인지하고 살아갑니다. 그 삶 속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이 채워지게 하옵시고, 오래 참으시고 기다리시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오늘도 자라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노아 때는 물로 심판이 임했다면 이후의 심판은 무엇으로 이루어진다고 말씀합니까?(7절)

2. 미래에 임할 불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9절)

3.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회개가 무엇인지 살펴보십시오.

4. 회개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는 말씀이 내 삶 속에서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작성: 이영란)

성도의 삶 / 베드로후서 3장 18절 / 오늘의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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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후서 3장 18절 (베드로후서 3:18 / 벧후 3: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참된 신앙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매일매일 삶 속에서 주님을 깊이 알아가고 그분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느끼고 맛보고 경험하는 것이며 그분의 임재와 은총 속에 푹 잠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으로만 행복해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신앙의 의식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신자는 많지만,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지고 그분을 그리워하고 사모하며 사랑에 빠져 사는 신자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영생입니다.(요 17:3)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느끼고, 주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때, 우리는 내 마음을 주께 드리고 또 더 드리고 싶고 주님을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왜 주님을 깊이 사랑하지 못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깊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지 못하기에 신뢰할 수 없고, 신뢰하지 못하기에 나의 모든 삶을 맡길 수 없고, 내 삶을 맡기지 못하기에 주님을 경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경험하면 할수록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알고 경험한 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주님의 임재 속에서 주님을 알고 맛보고 느끼고 주님을 사랑하는 깊은 교제가 있을 때,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그 어느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요, 기쁨이며, 즐거움이요,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너무 소중하고 존귀하시기에 주님을 더 깊이 알고 싶고, 그분께 더 많이 소유되고 싶고, 그분을 더 얻기 위해,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같이 버린다고 말합니다.

빌 3:7~8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우리가 어떤 사람을 알면 알수록 그 사람을 신뢰하고 사랑하듯이,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내 생명을 다해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알면 알수록 주님을 갈망하고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주님은 너무 존귀하고 존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가장 높고 깊고 아름다우시고 놀라우신 주님!!!

성도의 삶은 매일매일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일이며, 그 주님을 알면 알수록 우리의 삶은 더 풍성해지고 하늘의 기쁨으로 가득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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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앞날(베드로후서 3장 4절)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세상의 앞날(베드로후서 3장 4절)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정리하였습니다.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수요예배

우리는 지난 몇 주 동안 베드로후서 2장 말씀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베드로후서 3장 1에서 7절까지 말씀을 함께 나누겠는데요. 베드로후서 3장은요, 베드로가 이 서신을 기록한 이유와 우리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 1에서 7절까지 기록되어 있고, 또 흩어진 나그네들에게 주님의 강림을 소망하는 내용이 8에서 14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권면의 말씀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가도록 하는 권면의 말씀이 15에서 18절까지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저와 함께 1에서 7절까지 말씀 함께 같이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베드로가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한 이유

첫 번째는 베드로가 두 번째 서신을 기록한 이유가 1에서 2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1절에 보니까,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베드로후서 3장 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베드로후서 3장 2절: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이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두 번째 편지, 곧 베드로후서를 쓰는 이유는 이단의, 또 거짓된 선생들의 가르침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요, 육체적으로 타락한, 정욕대로 살도록 가르치는 이단이 있었고, 또 한 이단은 예수님의 강림을 부인하는 이단도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에서 비추어서 볼 때, 당시 이 서신을 받고 있던 소아시아 여러 흩어져 있던 성도들 가운데 진실한 마음을 상실하고, 사도들이 명한 것을 잊고 있던 자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또한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에서 살펴봤듯이 당시 교회에는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선생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자들도 또한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이런 그들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바르게 생각하게 하려는 것이며, 그들이 멸망의 길로 가지 않고, 생명의 길로 가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의 대다수가 자신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얼마가지 않아서 곧 멸망할 것이라고 또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은 온갖 고난과 핍박을 다 견디면서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 그들은 귀한 믿음을 지켰습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자신의 믿음이 흔들릴 때마다 곧 주님이 오실 것이라며 서로 믿음을 격려했습니다. 그 때 그들의 인사가 바로 ‘마라나타’였는데, 이것의 뜻은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따르던 첫 세대의 사람들이 다 죽고, 기다리던 주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당장 주님이 오실 줄 알고 조급한 마음으로, 급한 마음으로 그들은 기다렸는데,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주님이 오시지 않으니까, 그들의 정신이 조금씩 해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성도들의 마음속에 혹시 주님은 안 오시는 것 아닐까, 이런 의심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습니다. 이 때 기다렸다는 듯이 거짓 선생들이 나타나서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하면서 온 세상은 처음 창조되었던 그대로 앞으로도 있을 것이라고 떠들며 믿는 자들의 예수님의 다시 오심의 소망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제가 오늘 예배드리러 오기 전에 집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저희 자녀들이 가지고 싶은 선물이 있었는데, 어떤 분이 선물을 사주셨어요. 택배 아저씨가 오기로 했어요. 분명히 택배 아저씨가 한 시간 뒤에 온다고 했는데, 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계속해서 서두는 거예요. ‘아빠, 왜 안 와요? 아빠, 왜 초인종이 울리지 않아요? 아빠, 한 시간 지났는데 왜 오지 않아요?’ 하면서 계속해서 저를 닦달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거 너무 빨리 왔나, 집에? ‘ 그러면서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마찬가지로 여러분, 그 당시의 성도들 마음도요, 다시 오신다고 했는데, 기다리라고 했는데, 왜 오시지 않았을까, 아마 그 당시의 성도들의 마음이 택배를 기다리는 우리 자녀들의 마음, 또 여러분들의 마음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베드로는요, 그들의 거짓 교훈을 경계하고,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주님의 강림을 기다리도록 하기 위해 지금 이 서신을 기록한 것입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미래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가르쳐 줘야만 했습니다. 즉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니까 더 이상 예수님을 기다리지 말고, 열심히 그냥 살아가라 이렇게 하든지, 아니면 주님이 오신다고 분명히 약속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약속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계속 긴장하면서 잘못된, 거짓된 교훈에 흔들리지 말고 끝까지 참고 인내하라 이런 가르침을 줘야만 했다는 것이죠.

초대교회 교인들은 주님이 오실 것을 기다리던 때로부터 지금 현재까지 무려 2,00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안 오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도 있고, 심지어는 오시지 않는 게 더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는요, 어디 갈 때마다 휴게소를 들릅니다. 특별히 먼 거리를 갈 때는 꼭 가는 휴게소가 있습니다. 즉 고향집에 갈 때는 꼭 들르는 휴게소가 있는데요. 제가 휴게소에 들르는 이유는 멀기도 하지만 저희 아이들이 휴게소를 너무 좋아한다는 거예요. 왜 그러냐 하면요. 그곳에는 그들이 좋아하는 핫 바가 있구요. 또 음료수가 있고, 또 감자가 있고, 그리고 자신이 원하면, 동전만 넣으면, 언제든지 사탕과 이것 저것 간식거리를 주는 그런 것들이 있기 때문에 이 친구들은 꼭 휴게소를 들르자고 합니다. 그래서 휴게소에 들러서 음료수도 사주고, 오줌도 쉬우고, 또 이런 식으로 하면서 휴게소에 잠깐 쉬었다가 갑니다. 그런데 이번 연휴 때는 저희 막둥이가 인제 말 한참 하기 시작하는데, 이 녀석들이 먹을 것 다 먹고, 뽑을 것 다 뽑은 다음에 가지 않는 거예요. 왜 안 가냐, 빨리 가자, 얼른 가야 돼, 그랬더니 바닥에 누워서 뒹굴면서 절대 움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휴게소가 좋다고 해도, 그곳에 파는 음식이 아무리 맛이 있다고 해도, 우리는 계속 그 곳에 머물 수 있을까요? 그 곳에 살 수 있을까요?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는요 그곳을 빨리 떠나야 된다는 것이죠. 왜요? 우리에게는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여행을 하거나 집에 갈 때는 분명한 목적지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 쉬고 다시 길을 떠나야 된다는 것입니다.

옛날 중동 사람들은요, 더운 날씨에 먼 곳을 여행할 때, 물이 있는 곳을 만나면 텐트를 치고, 며칠 동안 쉬다가 갔습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다 되어서 텐트를 걷어서 목적한 곳을 향해 꼭 반드시 길을 떠났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주장하는 게 바로 이겁니다. 오아시스에 죽치고 앉아서 그 곳에서 계속 살자라는 것이죠. 아까 제가 말씀했던 것처럼 저희 아이도 역시 그 곳이 너무 좋기 때문에 그냥 눌러 앉아 있자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요, 마치 휴게소와 같습니다. 영원한 처소가 아니라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반드시 가야 할 본향, 집이 있다라는 거예요. 돌아가야 할 처소가 있다라는 거예요. 찾아가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이 세상에 눌러만 앉아 있다면, 우리는 목적을 잃은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말씀을 따라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나는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이게 믿음이 아니라, 성경에서 약속하고 있는 것을 믿는 게 바로 믿음이라는 것이죠. 물론 이런 믿음은 우리의 이성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의 성령이 임하여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주어야 된다는 것이죠.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모든 하나님의 약속들이 다 믿어진다는 거예요. 창세기 1장과 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만으로만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다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요, 창조의 능력이 있어서 천지의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것이죠.

여러분, 하나님의 이런 창조의 능력은 구약에만 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약에도 등장합니다. 바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이 오병이어의 사건은요, 4복음서 전부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목격하고, 경험하였던 예수님의 표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통해서 자신의 신성을 드러내셨고, 자신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아무리 유명한 과학자가 뭐라고 말해도, 온 인류가 다 믿지 못한다고 하여도, 주님의 영이 임한 자에게는 천하가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고, 틀림없이 그대로 성취된다라는 것을 우리는 앞으로도 믿어야 되고, 또한 그것을 믿고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이죠. 비록 지금은 주님이 다시 오심이 언제인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구약에 선지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약 시대에 메시아가 오셨고, 예수님께서 강림하시면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오신다는 것을 우리는요 굳게 믿어야 된다라는 것입니다.

2.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자세

그렇다면 두 번째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자세가 무엇일까요? 3절과 4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베드로후서 3장 3절: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베드로후서 3장 4절: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여기에서 말세에는 어떤 자들이 나오는 것일까요? 3절에 보니까, 말세에는 조롱하는 자들이 나온다고 합니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요, 성경 말씀을 조롱하면서 자기 멋대로 떠들어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들은 성경대로 믿는 사람에 대해서 이 세상에 것들을 최대한 즐기고 누려라, 무엇 때문에 그렇게 온다고 하면서도 아직까지 오지 않는 주님을 기다리면서 그렇게 바보처럼 즐기지 않고, 누리지 않고 사느냐며 조롱하고 업신여긴다는 것이죠. 오늘 주님의 다시 오심과 심판 같은 이런 말씀을 세상의 믿지 않는 자들이 어찌 볼까요? 광신도들의 미친 소리쯤으로 여기지는 않을까요?

한 때 우리나라에 휴거를 믿는 자들이 어떤 특정한 시간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난리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다미선교회죠. 1992년 10월 28일 24시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믿고 기다렸습니다. 여러분은 그 날 어디에 계셨습니까? 저는 이 날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저는요, 태권도장에 있었어요. 태권도장에서 계속해서 그런 이야기만 하는 거예요. 후거가 온다, 당시에 저도 교회 다니고 있었어요. 교회 다니고 있었는데, 진짜 그럴 거라는 생각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그 당시 분위기가 그랬어요. 생방송 뉴스로도 나오기도 하고 막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땠습니까? 이 날 그들은요, 흰옷을 입고 예배를 드렸지만, 세상은 멀쩡했고, 휴거는 불발이 되었죠. 결국 그 선교회 교주는요, 감옥에 들어가게 됐어요. 이 말을 철썩 같이 믿은 성도들은 허탈하게 귀가를 했습니다. 그 때 그 선교회에서는 몸이 가벼워야 하늘에 잘 올라갈 수 있다라고 해서 굶다가 죽은 사건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까? 여러분.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는 주님이 다시 오신다면, 무엇을 하면서 어떻게 지내야 될까요? 우리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린다고 하면서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무의미하게 시간을 허비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이단적인 사람들 중에 너무나 열광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사모한 나머지 거의 광신적으로 이 세상을 완전히 부정하고, 집단으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주님은요, 반드시 오세요. 언젠가는 하나님이 인류 역사를 끝내실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요한 것은 그 시기와 그 때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그 시기를 아는 사람이 있다면요, 이단입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의 재림이 있기 때문에 긴장하면서 주님의 뜻을 살피며, 살아가야 된다는 것이죠. 만약 주님의 재림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은혜가 있고, 믿음이 있다면,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이 불살라 없어질 것을 또한 우리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성도란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천국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말하는 자들 마저 세상에 종말이 없는 것처럼 살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죠. 왜 그럴까요? 자기의 정욕 때문에, 그렇게 살기 때문에 그렇다라는 것이죠. 자기의 정욕이란 무엇입니까? 결국 땅에 속하는 것으로 눈에 보이는 것들만 바라보며 사는 것입니다. 그것들을 좋아하고 사모하면서 사는 자들에게는 세상이 불 타 없어진다는 말씀이 걸림돌이 되고, 믿지 않게 된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종말이 없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죠. 그러나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니, 직접적으로 종말이 없다고 말은 못하고, 실제 사는 모습은 종말이 없는 사람처럼 살아간다라는 것이죠. 이런 자들의 특징이 무엇일까요? 서로 종말에 관하여, 곧 심판에 관하여 언급하기를 기피하는 것입니다. 혹 언급하는 자들이 있으면, 조롱한다는 것이죠. 4절 다시 보니까,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에 있느냐 이렇다라는 것이죠.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의 종말이 어디에 있는가 하는 자들의 이론입니다. 세상은요 영원하다라는 것이죠. 없어지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이 땅은 사라지지 않는다라는 거예요. 물론 성경에서 땅이 영원하다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전도사 1장 4절에 보니까,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절을 가지고 ‘여호와의 증인’들이 이 땅이 영원하다라고 주장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것은요, 말씀을 오해한 것이죠. 이 말씀은 허무한 인생에 비하여 땅이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는 거예요.

그런데 성경은 그 영원해 보이는 땅마저도 불살라 없어진다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한 부분만 가지고 자기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는 일에 빠져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죠. 세상의 정욕대로 살고 싶은 사람들은 주님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을요 믿지 않습니다. 세상이 멸망할 것도 믿지 않습니다. 그런 말씀을 믿고 사는 자들을 조롱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돈을 많이 벌고, 편안하게 즐기고 살다가 죽는 것은요, 실패한 인생입니다. 그런 사람은 엉뚱한 짓만 실컷 하다가 인생을 다 낭비한다라는 것이죠.

예수님은 우리에게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도적은요, 안 온다고 생각할 때, 반드시 옵니다. 여러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시간과 장소로 찾아온다라는 것이죠. 저는요, 저번 연휴 때, 고향 집에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길에 저희 가정이 저희 부모님이 어디 가셔가지고 집단속을 하고, 문단속을 다 한 다음에 나왔어요. 그리고 대구에 거의 도착했을 때 쯤, 갑자기 어머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거예요. 도둑이 들어와서 집안을 온통 다 뒤지고. 저금통을 가지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죠. 저희 어머니는 처음에 ‘왜 이렇게 집 정리도 하지 않고 갔느냐, 뭐가 그리 급해서?’ 생각을 했는데, 아무리 둘러 봐도 이것은 애들이 한 게 아니라 이거는 누가 와가지고 다 뒤진 거라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분명히 문단속을 철저히 하고 왔는데, 제 아내도 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순간 제 아내가 부엌에 있는 작은 창문이 있었는데, ‘설마 이곳으로 도둑이 들어오겠어?’ 하고 문을 잠그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어떻습니까? 설마가 사람을 잡았어요. 도둑이 들어왔어요. 무심히 넘어간 작은 창문을 통해 도둑이 들어왔구요. 그 창문을 통해 저금통을 가지고 달아났어요. 여러분, 우리는 전혀 생각하지 못한 곳에 이런 일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강림은요, 안 온다고 생각할 때, 반드시 온다라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깨어있어야 되고, 세상에 빠져버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언제라도 주님이 오실 수 있다고 긴장하고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3. 말씀의 능력

세 번째로 말씀의 능력이 5에서 7절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하면 실패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신앙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다라는 것이죠. 5절에 보니까,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이세서 나와 물로 성립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5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 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은 하늘과 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의도적으로 잊어버리라고 말합니다. 창세기에 보면요,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에 운행하시고 땅이 조성되는 것이 물에서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물과 뭍을 분류하여 바다와 땅으로 구별하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으로 천지가 창조된 것을 잊어버려라고 하는 사람들이 바로 주님의 강림이 없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온 세상을요,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세상을 지탱하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가면, 어떤 경우에도 실패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죠. 6절에 보니까,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베드로후서 3장 6절: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노아의 홍수를 말하는데요,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이 물로 심판을 받은 것은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요, 노아를 외면한 거예요. 그들은 노아를 조롱하였습니다. 세상을 물로 심판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은요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홍수가 나서 저희들을 다 멸할 때까지 깨닫지 못하고, 사고, 팔고, 먹고, 마시고, 자기들 마음대로 다 했다는 것이죠. 그러한 일들이 오직 그들의 삶의 목표라는 것이죠.그 때 물의 넘침으로 모든 사람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말씀이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요, 그래서 항상 이 말씀을요 믿어야 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요, 믿을려고 하는데, 믿겨지지 않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내 정욕대로 살고 싶을 때가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러분, 내 정욕대로 살고 싶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게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하신 거 지키신다는 것이죠. 천지가 말씀대로 창조되고, 말씀대로 또한 심판을 받는다는 거예요. 이것은 만물이 다 주에게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가게 하는 원리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믿는 자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된다는 것을 믿고 사는 자들이라는 것이죠.

그런데 이러한 모든 성경의 말씀을 잊어버리기 위하여 주의 강림도 없다, 세상의 심판도 없다, 이 세상은 처음 지어질 때부터 원래 그대로 있다, 자기들끼리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들의 마음에 정욕에 따라 살고 싶어서 애써 피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세상에 끝이 없다고 하고, 주님의 강림이 없다고 한들, 주의 약속이 취소되거나 파기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우리는 노아의 홍수 심판 때, 노아 가족 외에는 다 멸망당했다는 사람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어진다는 것이죠. 노아의 홍수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을 붙들고 땅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에게 물이 땅 속에 들어가 버리게 만들어서 그들이 붙잡고 의지하던 땅을 심판하신 것이죠.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기 때문에 홍수에서도 살았고, 에녹 같은 또한 사람은요 하늘로 올려지는 축복도 받았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요, 이 세상의 미래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미래, 앞날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결국은 심판 받고 불살라진다라는 것이죠. 이세상은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다 불타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 불탈 세상만 믿고 세상에 열심히 투자한 사람들은요,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거예요.

제가 알고 있는 한 부부가 있습니다. 집은 많이 그렇게 부유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직장이 안정적이었어요. 힘들게 살지는 않았어요. 자녀 셋도 아주 건강하게, 훌륭하게 잘, 남부럽지 않게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도요,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나중에 이 부부가 자녀들을 다 결혼 보내고 나서 두 분만 남아서 큰 집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래도 명절에 자녀들과 손자들이 오면 집이 커야겠다 생각을 하고 섬기는 교회 근처에 2층으로 된 아주 멋진 집을, 나무로 된 집을 근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집을 짓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람이 많이 불던 어느 날, 보일러실에서 불씨가 번졌다고 합니다. 화목보일러를 땠다고 해요. 다행히 집안에는 사람이 없었대요. 하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게 불었기 때문에 불길은 계속해서 번져나갔습니다. 119에 신고를 했어요. 그런데 길이 막혀 소방차가 오지 못했어요. 도착했어요. 소방차가. 호스에서 물을, 불을 끄려고 호스를 틀었더니 물이 나오지 않는 거예요. 어이가 없죠. 순식간에 2층집이 전부 다 불타버렸습니다. 집안에 사람이 없어서 인명 피해는 없었어요. 하지만, 귀금속이 있어서 나중에 불씨가 전부 사라지고, 재만 남은 집터에서 금붙이 몇 개만 겨우 찾았다고 합니다. 처음에 이 부부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평생 열심히 정직하게 살았고, 없는 돈 모아서 2층 집을 지었는데, 재산이 이거 하나밖에 없는데, 어떻데 순식간에 이렇게 불타고 재만 남을 수 있을까? 이런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불이 나고 며칠 뒤에 이 분은 학교에서 일했기 때문에 학교에 관사가 있어서 그 관사에서 당분간 지냈습니다. 그런데 이 부부의 소식을 듣고 주변에서, 또 소방서에서 위로금과 위문품이 전달되었고, 자녀들이 돈을 모아서 다시 불난 집터에 집을 지을 계획을 세웠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이 분이 이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 자랑이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었을까? 하나님이었을까? 나의 직분이었을까?’ 이 분은 장로님이셨거든요. 그 분의 자랑은요, 2층으로 만든 집이었어요. 그리고 잘 키운 세 자녀였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회개했고, 나중에 작은 집으로 다시 지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2층 집을 짓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녀들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하나님보다, 말씀보다 우선하지 말라는 것이죠. 하나님보다 우선하는 것은요, 전부 우상이라는 것이죠. 장사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투자했는데, 망하거나 불타버리면, 아무것도 건지지 못한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이 세상만 생각하고 열심히 세상에만 투자한 사람들은요, 마지막 순간에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자기 자신도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될 거라는 것입니다.

결국 영원히 남는 것은요, 불을 통과한 믿음이라는 것이죠. 고난을 통과해서 정금과 같이 된 믿음은요, 어떠한 불길에도 남게 된다라는 거예요. 7절에 보니까,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장 7절: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7절에서 그 동일한 말씀이란 노아의 홍수 때, 세상을 멸망시킨 그 말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주님은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 동일하신 분이 말씀하신 것도 다 동일한 말씀이라는 것이죠.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도 동일한 말씀이고, 노아의 홍수 심판을 이루신 말씀도 동일한 말씀이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계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고,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다시 살아난 것도 동일한 말씀이고,

부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신 것도 동일한 말씀이고, 예수님이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고 이 세상을 불로 심판할 것도 동일한 말씀이 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그 약속하신 바를 하나님께서 어떻게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디에 기초를 두어야 될까요? 영원토록 동일한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어야 된다라는 것이죠. 우리의 지식이나 우리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세워져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에 기초하지 않은 신앙은 다 헛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이 아직 보존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7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정욕 따라, 세상의 욕심을 따라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재림하시면, 다시 오시면,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세상은 추수 마당이 된다는 것이죠. 곧 알곡은 모아서 창고에 들이고, 가라지는 꺼지지 않는 불에 집어넣으신다는 것이죠.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우리가 보고 있고, 바라고 있고, 소망하는 세상의 것들은요, 불씨 하나와 바람만 있다면, 전부 불에 타버리고, 소멸하게 됩니다.

최후의 순간에 남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불같은 고난을 통과한 믿음의 사람들의 삶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비록 세상을 벗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은요, 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게신 그곳은요, 눈물이 없는 곳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곳에 소망을 두고 이 땅을 살아가야 된다라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이 발걸음을, 이 믿음의 발걸음을 여러분, 멈추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시련이 올지라도 두려워 마시고 천지가 무너질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한 사실이라 믿으며 우리 주님과 늘 항상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우리의 지식이나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는 신앙을 가지기 원합니다.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우리의 삶 가운데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가 온전히 말씀에 기초하여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기도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도록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자료출처: 대구동부교회 김동욱 목사님의 설교말씀, 2019년 3월 6일, 수요일,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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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552장)

아침 해가 돋을 때 만물 신선하여라

나도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새로 오는 광음을 보람있게 보내고

주의 일을 행할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한 번 가면 안 오는 빠른 광음 지날 때

귀한 시간 바쳐서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밤낮 주를 위하여 몸과 맘을 드리고

주의 사랑 나타내 햇빛 되게 하소서

주여 나를 도우사 세월 허송 않고서

어둔 세상 지낼 때 햇빛 되게 하소서 아멘.

음악, 그리고 설레임

베드로후서 3장 (우리말성경) – 03:09 [우리말성경] 제3장 [재림의 약속] 1.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이것은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두 번째 쓰는 편지입니다. 나는 이 두 편지로 여러분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함으로 2. 거룩한 예언자들이 미리 예언한 말씀들과 주 되신 구주께서 여러분의 사도들을 통해 주신 계명을 기억하게 하려고 합니다. 3. 무엇보다도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 때 조롱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자기 정욕을 따라 행하고 조롱하며 4. 말하기를 “그가 재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잠든 이래로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똑같이 이렇게 그대로 있다”라고 할 것입니다. 5. 그들은 하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해 옛적부터 있었고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써 형성된 것과 6. 그때 물이 넘침으로 세상이 멸망한 것을 일부러 잊으려 합니다. 7. 그러나 현재의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에 의해 간수돼 경건하지 않은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될 것입니다. 8.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이 한 가지를 잊지 마십시오. 주께는 하루가 1000년 같고 1000년이 하루 같습니다. 9. 약속하신 주께서는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더딘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해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십니다.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때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가고 그 구성 물질들은 불에 타 해체되며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날 것입니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해체될 것이니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돼야 하겠습니까? 여러분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며 간절히 사모하십시오. 그날에 하늘이 불에 타 해체되고 그 구성 물질들이 불에 녹아 버릴 것입니다. 13. 그러나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지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봅니다.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이 일들을 고대하고 있으니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주 앞에서 평강 가운데 드러나기를 힘쓰십시오. 15. 또한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십시오. 사랑하는 우리 형제 바울도 그가 받은 지혜를 따라 이와 같이 여러분에게 썼습니다. 16. 그는 그의 모든 편지에서 이것들에 관해 언급했는데 그 가운데는 더러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있습니다. 무식하고 굳세지 못한 사람들이 다른 성경들처럼 이것들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고 있습니다.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들이여, 여러분은 이미 이 사실을 알았으니 불의한 사람들의 속임수에 이끌려 여러분의 견고함을 잃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18. 도리어 우리 주시며 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 안에서 성장해 가십시오. 영광이 이제와 영원토록 그분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베드로후서 3장 8-14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베드로후서 3장 8-14절 2014/10/24(금)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3: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3: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나이 사십이 넘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즈음 잠자리에서 일어난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이 거울의 비친 제 모습을 잠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짧은 시간이지만 유심히 살펴봅니다.

그리고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이 낯설게 여겨질 때, 제 스스로 제 자신에게 묻습니다.

‘너 누구냐?’

특히 전 날 부끄러울 정도로 형편없는 생각과 행동을 한 후에는 제 자신을 더욱 유심히 바라봅니다.

그런데요.

날이 가면 날이 갈수록 제가 제 자신을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때는 꽤 괜찮은 생각을 하고, 가끔은 신통한 짓을 하기도 하는 것 같은 데, 또 어떤 때는 제가 생각해도 부끄럽고, 어이없을 정도로 형편없는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나이를 헛먹는구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하는 체념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되고 싶은 나’와 ‘현실의 나’사이에서 방황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좋습니다.

그런 면에서 목사는 제 천직입니다.

열심히 한다고는 할 수 없지만 배우고 가르치는 일이 좋아서 그런지 날마다 공부하려고 애를 씁니다. 고3은 아니지만 고3처럼 공부합니다.

인터넷 강의 듣듯이 큰 목사님의 설교를 모니터 하구요.

성경세미나에 참석해서 열심히 공부도 합니다.

성경공부, 마음공부, 남의 나랏말 공부, 책 읽기 등 열심히 하려고 애를 씁니다.

이 중에서 제가 으뜸으로 삼는 것은 성경공부입니다.

제가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탐구하는 데에는 나름대로 원칙 하나가 있습니다.

노자 도덕경 48장에 나오는 말인데, 爲學日益 爲道日損(위학일익 위도일손)이라는 원칙입니다. 그 뜻은 이렇습니다.

‘배움을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더해가야 하고, 진리를 얻기 위해서는 날마다 덜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성경을 읽고 탐구할 때는 이 원칙을 적용하려고 더 애를 씁니다.

성경공부를 통해서 날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쌓는 것과 동시에 제 자신 안에 있는 육체의 소욕을 덜어내고, 집착을 덜어내고, 미움을 덜어내고, 거짓을 덜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마음이 청결한 사람이 되는 것.

이것이 제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탐구하는 목적입니다.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3장 10-11절입니다.

3: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3: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한가?”

저는 베드로의 이 질문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물음을 자꾸자꾸 물어야 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마음처럼 청결해지기 때문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처음 만나면 제일먼저 하는 일이 명함을 주고받는 일입니다.

‘나 이런 사람입니다’ 하는 거죠.

어떤 분은 명함에다가 이런저런 직함을 잔뜩 새겨 넣고는 뻐기듯 명함을 건네주기도 합니다. 저는 그런 명함을 받을 때 마다 이런 못된 생각을 먼저 합니다.

‘아, 굉장한 데. 대단한 분을 만났어.’가 아니라 ‘이 사람, 속이 허 한 사람이구나. 오죽 자기 존재에 자신이 없으면 이런 직함을 가지고 자신을 과시 할까? 참 불쌍하다’

이런 나쁜 버릇이 있습니다.

제가 사경회라든가 다른 교회에 초정을 받아서 말씀을 전할 기회가 있으면 꼭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누구시지요?’ 하고 자꾸 묻지요.

그러면 한결같이 자기 직함을 댑니다.

‘집사입니다. 권사입니다. 장로입니다.’ 자신의 직함을 됩니다.

물론 틀린 대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가 정작 묻고 싶은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가?’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아직 이 질문을 이해하고 답한 사람은 아직 한 사람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지금 베드로는 종말에 때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묻습니다.(베드로후서 3장 종말장: 주님의 재림이 거짓이라는 자들을 향한 반박문)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의 때에 당신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는가?”

그리고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종말의 때에 당신은 지금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입니다.

어떻습니까?

종말의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하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하는 것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삶의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시간 곧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구원의 시간에 맞추어 사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새 창조의 삶입니다.

베드로가 목회했던 초창기 초대 교회는 주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서 교회에 내고, 또 어떤 이들은 세속적인 직업을 버리고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거룩한 삶을 추구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오신다던 분이 안 오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합니다.

‘이거, 사기 아니야?’

그러면서 인내력이 부족한 몇몇 사람들은 재빨리 옛 생활로 복귀했습니다.

좀 진득한 사람들은 긴가민가하면서도 오실 주님을 기다렸지요.

설상가상으로 거짓 교사까지 등장해서 주님의 재림을 믿는 성도들을 유혹하기까지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 실현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교회 안에 언제부터인가 거짓 교사의 유혹을 받아 주님의 재림을 의심하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해명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교인들의 의심을 잘 알고 있었던 베드로는 재림에 관한 지연에 있어서 충분한 해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서 기록한 것이 베드로후서 3장입니다.

“정말 재림이 있는가, 없는가?”

“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뜸을 들이시는가?”

“다 너희를 위해서다.”

“우리를 위해서라구?”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가 다 회개해서 구원받을 때까지 그날을 연기하고 계신 거다.”

그러면서 베드로는 시편 90편 4절을 인용하면서 재림이 지연되는 이유에 대한 자기주장의 논증을 폅니다. 그것이 8-9절 말씀입니다.

3: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3: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더디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조급증을 버리고 조용히 기다려 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 속에 너희 인생, 너희 구원의 때를 진득하게 맡겨보라는 것입니다.

현실이 힘들고 불안하다고 조급해 하지 말고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때에 맞추어 살아보라는 권면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에 우리의 삶을 조율하는 것.

이것이 종말의 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첫 번째 자세입니다.

두 번째, 종말의 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자세는 하나님의 날, 구원의 날이 오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날/구원의 날이 오기를 思慕하는 마음이 우리 안에 있는 것입니다.

‘思慕’한다는 말, 여러분이 그 뜻을 잘 아실 것입니다.

‘思慕’, 누군가 깊이 생각하고, 그리워한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깊이 생각하고, 그리워하면 무슨 증상이 나타나지요?

실없는 사람이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때문입니다.

누구도 말릴 수 없는 이 사모함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에게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우리가 여기서 이런 질문 하나 던지고 넘어가야합니다.

내가 주님을 정말 사모한다면 주님을 만나는 그 날까지 우리는 이 땅에서 어떤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요?

순결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행실은 거룩하고 마음은 경건에 이르는 것입니다.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마음.

이것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의 격에 맞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날, 구원의 날이 오기까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한 마음’이라는 이 성품을 잃지 않고 살아내는 것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자기 부인 곧 육체의 소욕을 줄이면서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데 있어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내는 사람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님이 거하실 집입니다.

그런 집이 세상의 소욕, 육체의 소욕 그리고 자기 자랑과 교만으로 가득하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거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날마다 자기 부인 곧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에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힘들지만 최선을 다해 보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종말에 때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할까요?

어떠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할까요?

이 근본적인 물음을 늘 던지며 사시기를 부탁을 드립니다.

그리고 주님이 주신 마땅히 갈 길을 택하셨다면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십시오.

주님이 길벗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이 은총 안에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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