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나이 | 빌 게이츠, Sk 최태원 회장과 손 잡는다…그가 한국에 온 이유 / Ytn 15080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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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행 : 정지웅 앵커, 유다원 앵커
■ 출연 : 권혁중 / 경제평론가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인용 시 [YTN 굿모닝 와이티엔] 명시해주시기 바랍니다.

◇앵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한국을 찾았습니다. 오늘 국회에서 연설도 하고요. 윤석열 대통령과 접견도 하는데 빌 게이츠 이사장이 SK 최태원 회장과 손을 잡았다, 이런 소식이 있어요. 무슨 말입니까?
◆권혁중 / 경제평론가(이하 권혁중)) 이게 소형 모듈 원자로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니까 SK와 SK이노베이션이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하고 있는 테라파워에다 우리 돈으로 3000억 정도의 투자를 단행을 했거든요. 그래서 이게 화제가 됐었죠. 화SMR이 뭐냐 이게 뜨거운 소재가 됐는데 소형 모듈 원자로라고 보통 얘기합니다. 과거에는 이게 S는 당연히 스몰일 거고요. M은 과거에는 미들로 불렸었거든요. 그래서 소형, 중형 원자로 이랬다가 요즘에는 모듈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공장에서 원자로를 만들어요. 그거를 이제는 현장에 와서 조립을 합니다. 부품을 만들어서 현장에서 모듈화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게 패러다임을 완전히 깬 거죠. 원전을 어떻게 이렇게. 그래서 이게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이슈가 되고 있고 이런 SMR 부분에 대해서 이제는 빌 게이츠 이사장과 SK의 최태원 회장이 협력을 했기 때문에 이게 글로벌 쪽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고요. 이게 과연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의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냐고 보고 있는데 그러면 테라파워라는 데를 아셔야 돼요. 이게 이사장이 하고 있는 테라파워라는 데가 여기가 2008년도에 빌 게이츠 이사장이 세운 기업입니다. 그러니까 소형 모듈 원자로를 주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고 무엇보다 미국 중앙의 지원을 받고 있는 회사기도 해요. 그만큼 사실 차세대 기술로서 각광을 받고 있는 회사인데 여기에 최태원 회장이 1년 동안 고민을 하다가 3000억 규모로 투자에 들어갔다는 것이겠죠. 그래서 이런 부분이 이제는 시장에서는 뜨겁게 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는 지금 우리나라 시장에서 관심 있는 게 과연 만나겠느냐, 두 분이. 그런데 과거에 빌 게이츠 이사장이 한국 왔을 때 이재용 부회장 만난 적이 있거든요. 그래서 아마 이번에도 최태원 회장과 만날 가능성이 굉장히 크고 아마 오늘 오후쯤 따로 만나지 않을까. 왜 그러냐면 시장에서는 왜 이걸 점치고 있냐 하면 방한한 시즌에 맞춰서 투자 계획을 같이 발표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딱 시기가 만나려고 하는, 발표하는 시기에 동시에 발표했기 때문에 아마 두 분이 만날 가능성이 굉장히 커진다. 그래서 아마 SMR에 대한 부분들이 또 세간에 가장 큰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앵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만난다는 소식은 없죠?
◆권혁중) 네, 그런 얘기는 없는데 시장에서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어떻게 방한을 했는데 딱 그 직전에 이렇게 투자 계획 그다음에 거의 한 3000억 규모는 적지 않은 금액이거든요. 이거를 동시에 발표했다는 것 봤을 때 분위기 조성, 만날 분위기를 조성을 했다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장에서는 거의 만날 것으로 보고 있고요. 그래서 이재용 부회장도 만나고, 당연히. 그다음에 최태원 회장도 만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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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 나무위키

국적. 미국 국기 미국 ; 출생. 1955년 10월 28일 (66세) ; 출생 ·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 학력.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졸업) (1969~1973) 하버드 대학교[3] (중퇴)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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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 윌리엄 헨리 게이츠3세. William Henry Gates III · 1955년 10월 28일(1955-10-28)(66세)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 미국 워싱턴주 메디나 · 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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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게이츠 나이 재산 부인 자녀 일루미나티 – 정보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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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SK 최태원 회장과 손 잡는다...그가 한국에 온 이유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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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빌 게이츠 나이

  • Author: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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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8. 15.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kO3fAj2wEuo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윌리엄 헨리 빌 게이츠 3세(영어: William Henry “Bill” Gates III, 1955년 10월 28일 ~ )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이자 기업인이다.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프로그램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그는 하버드 대학교를 자퇴하고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창립했다. 그는 당시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 해석프로그램과 알테어용 프로그래밍 언어인 알테어 베이직을 개발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근무하면서 게이츠는 2014년 5월까지 회장, 최고경영자, 사장, 최고 소프트웨어 설계자 등의 직책을 맡았다. 그는 1970년대와 1980년대 마이크로컴퓨터 혁명의 선구자이자 가장 잘 알려진 기업가 중 한 사람이다.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나 자란 게이츠는 1975년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서 어린 시절 친구였던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 설립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세계 최대의 개인용 컴퓨터 소프트웨어 회사가 되었다.[1] 게이츠는 2000년 1월 최고경영자(CEO) 자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회장 겸 CEO로 회사를 이끌었지만 회장으로 남아 소프트웨어 설계의 최고책임자가 됐다.[2] 2006년 6월 게이츠는 자신과 아내 멜린다 게이츠가 2000년에 설립한 개인 자선재단인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전일제로 근무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파트타임직으로 전환하기도 했다.[3] 그리고 2014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물러나, 새로 임명된 사티아 나델라 최고경영자(CEO)를 지원하기 위한 기술자문위원직을 새로 맡았다.[4]

1987년 이후 그는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 부호 명단에 포함되었다.[5] 1995년부터 2017년까지 그는 포브스지 선정에서 4년을 제외하고 모두 세계 최고 부자 타이틀을 차지했다.[6] 2017년 10월에는 아마존 창업자 겸 CEO 제프 베조스에게 추월당했다.[7] 2020년 8월 현재 게이츠는 추정 순자산이 1,137억 달러로, 제프 베조스와 일론 머스크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부유한 사람이 되었다.[8]

게이츠는 이후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전일제 근무를 그만둔 이후 여러 자선 활동을 추구해 왔다. 그는 세계 최대의 민간 자선단체로 알려진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을 통해 여러 자선단체와 과학 연구 프로그램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기부했다.[9] 2009년에 게이츠와 워렌 버핏은 더기빙플레지(The Giving Plege)를 설립했는데, 이 서약서를 통해 자신과 다른 억만장자들은 적어도 재산의 절반을 자선단체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10]

학력 [ 편집 ]

생애 [ 편집 ]

성장 과정 [ 편집 ]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는 1955년 10월 28일에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시니어와 어머니 매리 맥스웰 게이츠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영국계 미국인이자 독일계 미국인이며,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이민자였다.[11][12] 그의 가정은 상중류층으로, 아버지는 저명한 변호사였으며 어머니는 교사였다고 한다. 또한 외할아버지인 J. W. 맥스웰은 미국 국립은행의 부은행장이었다. 게이츠에게는 누나 크리스티앤(Kristianne)과 리비(Libby)가 있었다. 그는 그의 가문에서 윌리엄 게이츠라는 이름을 물려받은 네 번째 남자이지만 실제로는 윌리엄 게이츠 3세로 불리는데, 이는 그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에서 ‘3세’라는 접미어를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빌 게이츠가 어렸을 때, 그의 부모는 그가 법조계에서 일하게 되기를 바랬다.

그는 13세 때 상류층 사립 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입학했다. 8학년이 되었을 때, 학교 어머니회는 자선 바자회에서의 수익금을 텔레타이프라이터 단말기와 제네럴 일렉트릭 (GE) 컴퓨터의 사용시간을 구매하는 데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게이츠는 이 GE 시스템에서 베이직(BASIC)으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에 흥미를 갖게 되었으며, 이에 프로그래밍을 더 연습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프로그램으로 사람이 컴퓨터를 상대로 플레이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또한 다른 게임인 달 착륙 게임을 만들기도 하였다. 그는 입력된 코드를 언제나 완벽하게 수행하는 이 기계에 매료되었다. 게이츠가 훗날 회고한 바에 따르면, 당시의 기억에 대해 그는 ‘그때 그 기계는 나에게 정말 굉장한 것이었다’라고 말했다. 어머니회의 기부금이 바닥나자, 게이츠와 몇몇 학생들은 DEC의 미니컴퓨터의 사용 시간을 샀다. 이 시스템 중 일부는 PDP-10이라는 것으로 컴퓨터 센터 코퍼레이션(CCC)에서 생산된 것이었는데, 훗날 게이츠를 포함한 네 명의 레이크사이드 스쿨 학생(폴 앨런, 릭 와일랜드, 켄트 에번스)은 이 시스템의 운영 체제가 가진 버그를 이용해 공짜로 컴퓨터를 사용한 것이 발각되어 이 회사로부터 사용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심지어 컴퓨터를 1달 동안 사용을 금지하기도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하버드 대학교에 진학하여 응용수학을 전공했으나 재학 중 1975년 폴 앨런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하고 학업을 중단했다. 당시에 그는 사업이 안 풀리면 학교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빌 게이츠는 컴퓨터의 황제로 불리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 편집 ]

BASIC [ 편집 ]

MITS Altair 8800

게이츠는 알테어 8800을 시연한 ‘포퓰러 일렉트로닉스(Popular Electronics)’ 1975년 1월호를 읽고, 마이크로인스트레이팅시스템(MITS)에 연락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플랫폼용 BASIC 인터프리터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13] 현실에서 게이츠와 앨런은 알테어(Altair)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것에 대한 코드를 쓰지 않았다.그들은 단지 MITS의 관심을 알아보고 싶었을 뿐이다. 그들은 MITS의 에드 로버츠 사장을 만나 시범을 보이기로 했고, 몇 주 동안 그들은 미니컴퍼터로 작동하는 알테어 에뮬레이터를 개발한 뒤 BASIC 인터프리터를 개발했다. 시험 설명회는 뉴멕시코주 앨버커키에 있는 MITS 사무실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었고 MITS와 계약으로 이어졌다. MITS는 앨런을 고용했고[14] 게이츠는 1975년 11월 앨런과 함께 MITS에서 일하기 위해 하버드를 휴학했다. 앨런은 그들의 파트너십을 “마이크로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합성어인 “Micro-Soft”라고 이름 지었고, 그들의 첫 번째 사무실을 앨버커키에 위치했다. 게이츠와 앨런이 고용한 첫 번째 직원은 그들의 고등학교 협력자 Ric Weiland이다.[14] 그들은 1년 안에 하이폰을 떨어뜨리고 1976년 11월 26일 뉴멕시코주 장관에게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라는 상호를 공식적으로 등록했다.[14]

마이크로소프트의 Altair BASIC은 컴퓨터 취미 활동가들에게 인기가 있었지만, 게이츠는 시장 이전 복사본이 유출되어 널리 복사되고 배포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76년 2월, 그는 MITS 뉴스레터에 취미활동가에게 보내는 공개서신(Open Letter to Hobbyists)을 작성했는데, 이 서신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알테어 베이직의 사용자 중 90% 이상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돈을 지불하지 않았고 이는 전문 개발업자들의 고품질 소프트웨어를 생산, 유통, 유지하도록 하는 동기를 없애고 있다고 주장했다.[15] 이 편지는 많은 컴퓨터 취미 생활자들에게 반감을 샀지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정당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자신의 믿음을 고수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976년 말 MITS로부터 독립하였고, 다양한 시스템용 프로그래밍 언어 소프트웨어를 계속 개발하였다.[16] 회사는 1979년 1월 1일 앨버커키에서 워싱턴 벨뷰로 이전하였다.[17]

게이츠는 회사가 처음 5년 동안 생산한 모든 코드 라인을 개인적으로 검토하고 종종 다시 썼다고 말했다. 회사가 성장함에 따라 그는 관리자 역할로 전환했고, 그 후 임원으로 전환했다.[18]

IBM과 파트너쉽 [ 편집 ]

당시 컴퓨터 장비의 선도적 공급 업체였던 IBM은 1980년 7월 곧 출시될 개인용 컴퓨터인 IBM PC의 소프트웨어와 관련해 마이크로소프트에 접근했다.[19] IBM은 먼저 마이크로소프트가 BASIC 인터프리터를 쓸 것을 제안했다. IBM의 대표들도 운영체제가 필요하다고 언급했고 게이츠는 이를 널리 사용되는 CP/M 운영체제의 제조업체인 디지털 리서치(DRI)에 의뢰했다.[20] 그러나 IBM와 DRI의 논의는 지지부진했고, 라이선스 계약에는 이르지 못했다. IBM의 대표인 잭 샘스는 게이츠와의 후속 회의에서 라이센싱의 어려움에 대해 언급하고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 체제를 제공할 수 있는지 물었다. 몇 주 후, 게이츠와 앨런은 CP/M과 유사한 운영 체제인 86-DOS를 사용하여 시애틀 컴퓨터 제품(SCP)의 팀 패터슨이 PC와 유사한 하드웨어용으로 만들었다고 제안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SCP와 86-DOS의 독점 라이선스 에이전트로 계약을 체결하였고, 이후 정식 소유자가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패터슨을 고용하여 PC[59]용 운영체제를 적응시켰고[21], 이를 일회성 수수료 5만 달러에 IBM에 PC DOS로 납품했다.[22]

그 계약 자체는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수수료를 벌 수 있었으나 그것은 IBM이 그들의 운영체제를 채택함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가 소기업에서 세계 유수의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다. 게이츠는 다른 개인용 컴퓨터 제조업체들이 IBM의 PC 하드웨어를 복제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운영체제에 관한 저작권을 IBM에 양도하지 않았다.[22] 그들은 IBM과 호환되는 PC를 사실상의 표준인 DOS를 실행하면서 그렇게 했다. MS-DOS(IBM 이외의 고객에게 판매되는 DOS 버전)의 판매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업계의 주요 주체가 되었다.[23] 언론은 재빨리 마이크로소프트가 IBM PC에 매우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고 확인했다.PC 매거진은 게이츠가 “the man behind the machine?”(기계 뒤에 있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게이츠는 1981년 6월 25일, 워싱턴 주에 회사를 재법인화하며 이사회 의장과 회장으로서 회사를 총괄했으며, 폴 앨런은 부회장과 부의장으로 임명했다. 1983년 초 앨런은 호지킨 림프종 진단을 받고 회사를 떠났고, 마이크로소프트 주식에 대한 논쟁으로 수개월 전에 경색되었던 게이츠와 앨런의 공식적인 사업 파트너십은 사실상 종료했다.[24][25] 10년 후, 게이츠는 앨런과의 관계를 회복했고 두 사람은 함께 그들의 어린 시절 학교인 레이크사이드에 수백만 달러를 기부했다.[26] 게이츠는 2018년 10월 앨런이 사망할 때까지 친구로 남아 있었다.[27]

WINDOWS [ 편집 ]

마이크로소프트는 1985년 11월 20일 첫 번째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버전을 출시했다. 이듬해 8월 IBM과 OS/2라는 별도의 운영체제를 개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IBM은 새 시스템의 첫 번째 버전을 성공적으로 개발했지만 의견 차이가 커져 파트너십이 틀어졌다.[28]

경영 스타일 [ 편집 ]

빌 게이츠는 미래학자 이상의 시대적 감각으로 소비자들의 요구를 컴퓨터 산업에 접목시켜왔다. 개인용 컴퓨터(PC)가 컴퓨터 산업을 주도하고 소프트웨어가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본 빌 게이츠의 통찰력이 바로 성공 신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의 통찰력은 지속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얻은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 빌 게이츠는 1년에 두 차례 미국 서북부 호숫가에 있는 별장에 은둔하면서 ‘생각주간(Think Week)’을 갖는다. 1주일 동안 가족들 방문도 차단한 채 세계 각국 직원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토대로 성과물을 만들어 왔다. 빌 게이츠는 직원들 누구나 보고서를 제출할 수 있도록 제도화시켜 의사소통의 장벽을 없앴다. 소비자들과 경영진의 접점에 있는 직원들이 보고서를 통해 저변의 시장흐름을 생동감 있게 전달했음은 물론이다. 철저한 고객관리와 상호 의사소통을 중시하는 빌 게이츠 특유의 경영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29]

마이크로소프트 이후 [ 편집 ]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전일 업무를 그만둔 이후 자선 사업을 비롯한 프로젝트에 힘쓰고 있다. 게이츠는 2014년 3월 27일자 롤링스톤지에 실렸던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이 인터뷰에서 게이츠는 기후 변화, 그의 자선 활동, 다양한 기술 회사들과 관련자들, 그리고 미국의 상태에 대한 그의 견해를 밝혔다. 게이츠는 50년 후를 내다볼 때 가장 두려운 것에 대한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향후 50년, 혹은 100년 안에 매우 끔찍한 일이 일어날 수 있으나, 나는 전세계적 유행병, 핵이나 생화학 테러 행위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는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란다”라고 말했다.[30] 게이츠는 또 혁신을 ‘진보의 진정한 원동력’으로 규정하고 “미국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나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고 선언했다.”[31]

빌 게이츠는 슈퍼지능의 잠재적인 해악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처음엔 그 기계들은 우리를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이고 그다지 똑똑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잘 관리한다면 인공지능은 긍정적일 것이다. 그 후 몇 십 년이 지나면 인공지능은 걱정거리가 될 만큼 강력할 것이다. 나는 이것에 대해 일론 머스크와 몇몇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동의하고 왜 몇몇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32]

게이츠는 2015년 3월 바이두 최고경영자(CEO) 로빈 리와 함께 TED 컨퍼런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닉 보스트롬의 최근 저서인 ‘초지능’ “매우 추천한다”고 밝혔다.[33] 2019년 COVID-19로 인해 전세계가 펜데믹 상황에 빠지기 전에 이 회의에서 게이츠는 전세계가 유행병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경고했다.[34] 게이츠는 2018년 3월 시애틀의 자택에서 사우디의 개혁적인 왕세자 겸 사실상의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과 만나 사우디 비전 2030에 대한 투자 기회를 논의했다.[35] 2019년 6월 게이츠는 안드로이드에 모바일 운영체제 경쟁에서 진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실수였다고 인정했다.

“그때 안드로이드를 쳐내야 했는데 … 이런저런 이유로 그러지 못해 아쉽다. 반독점법 위반 소송 때문에 온통 정신이 팔려 모바일 시장에 집중하지 못했다. 윈도 모바일 OS를 더 잘 다듬었거나 안드로이드를 구글보다 먼저 인수했더라면 지금 모바일 시장은 (애플 iOS와 함께) 윈도 모바일이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36]

2020년 3월 13일 마이크로소프트는 게이츠가 버크셔 해서웨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이사직을 떠나 기후 변화, 세계 보건 및 개발, 교육 등과 같은 자선 활동에 헌신할 것이라고 발표했다.[37]

자선 활동 [ 편집 ]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 편집 ]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

“질병에 걸리는 사람들의 90%는 가난한 나라에 살고 있는데, 이 나라들이 보유한 보건 자원은 전 세계 보유량의 10%에 불과하다.”[38]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 게이츠 재단(Gates Foundation) 또는 B&MGF는 재정이 투명하게 운영되는 민간 재단 중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재단이다.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에 의해 2000년에 설립되었다. 이 재단은 ‘게이츠 가의 관심과 열정에 의해 운영된다’. 주 운영 목적은 국제적 보건의료 확대와 빈곤 퇴치, 그리고 미국 내에서는 교육 기회 확대와 정보 기술에 대한 접근성 확대이다. 빌게이츠가 자선 활동가로 변모시킨 사람으로 세 명이 언급되는데 빌 게이츠의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 그의 아내 멜린다, 석유왕 록펠러이다. 빌 게이츠는 자선 사업에 관심을 갖게 된 중요한 이정표(milestone)로 1993년에 읽었던 한 보고서를 꼽는다. 이 보고서의 그래프에는 로타바이러스로 한 해 어린이 50만명이 사망한다는 사실이 나타나 있었다. 게이츠는 “비행기 사고로 100명이 사망해도 모든 언론이 대서특필하는데, 50만명이 사망하는 질병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39] 본격적인 기부 활동에 나서기 전 빌 게이츠는 아버지 윌리엄 H. 게이츠의 도움을 구했다. 1994년에 자선단체 ‘윌리엄 H. 게이츠 재단’을 설립한 아버지가 기부 활동에 있어서는 선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39]

빌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데이비드 카메론

멜린다도 결혼 전까지 기부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빌 게이츠를 설득해 자선가로 변신시킨 인물로 언급된다. 빌 게이츠는 지난 2010년부터 다른 백만장자들에게 재산의 절반 이상을 기부하도록 권유하기 시작했는데, 이 활동에 멜린다의 영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절반의 힘(The Power of Half)’이라는 책을 읽고 감명을 받은 멜린다가 게이츠에게 ‘기부 권유 운동’을 시작하도록 권했다는 것이다.[39] 윌리엄 게이츠는 돈에 대한 아들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윌리엄 게이츠는 부유한 변호사였지만, 돈을 그냥 물려주면 자식을 망친다는 생각으로 빌 게이츠에게 창업 자금을 주지 않았다.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 역시 세 자녀에게 각각 1000만달러(약 108억원)씩만 물려주고 재산의 나머지 95%는 기부하겠다고 공언한 상태다. 게이츠 부부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과 함께 기부 권유 운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전기차 업체 테슬라 CEO 엘론 머스크, 록펠러 가문의 수장인 데이비드 록펠러, 페이스 북 CEO 마크 저커버그 등 120여명이 참가 의사를 밝혔다.[39]

‘석유왕’ 록펠러, ‘철강왕’ 카네기, ‘자동차왕’ 포드 등 미국의 자본주의를 개척한 초기의 부호들도 빌 게이츠의 변신에 영향을 미쳤다. 게이츠는 2013년 열린 한 행사에서 자신의 자선 활동과 관련, “1세대 대(大) 자선가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중에서도 게이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으로 꼽히는 인물이 존 D. 록펠러이다.[39]

록펠러와 게이츠는 비슷한 점이 많다. 정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을 설립한 록펠러는 저가 공세로 경쟁사를 차례차례 무너뜨리며 석유업계를 독점했다. 그래도 생전에 교회에 십일조는 꼬박꼬박 냈고, 이후 아들 세대에 막대한 기부를 하면서 무자비한 자본가라는 오명(汚名)을 씻었다. 게이츠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도 초창기에는 ‘윈도’ 운영체제 안에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기본 탑재해 시장을 독점한다는 논란에 시달렸다. 게이츠는 과거 인터뷰에서 “돈을 버는 것과 번 돈을 남에게 그냥 줘버리는 일을 동시에 한다는 것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자선가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기부나 자선 활동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는 이야기다.[39]

교육과 의료 사업에 집중적으로 기부했다는 점도 비슷하다. 록펠러는 록펠러 재단을 세워 황열병 치료 등을 지원했고 시카고 대학교, 록펠러 대학교를 설립했다. 게이츠 앤 멜린다 재단의 활동도 교육과 보건의료 분야에 집중돼 있다. 저개발 국가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효과가 가장 큰 분야이기 때문이다. 이 재단은 “특정 개인에게 직접적인 지원을 제공하지는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39]

창조적 자본주의 [ 편집 ]

“지구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소외된 삶을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나 표현수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계속 가난했고 예방할 수도 있는 병들에 시달렸으며 생명을 지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정부와 비영리 단체들이 그들을 돕는 역할들을 감당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만의 힘으로 그 일을 하게 되면 너무나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발명품들을 만들 기술은 기업체들이 갖고 있다. 이런 기술의 효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보다 창조적인 자본주의가 필요하다.”[40]

2008년 1월 스위스의 다보스포럼에서 빌 게이츠는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개념을 역설했다. 기업의 사회환원 활동을 ‘의무’로 한층 끌어올린 개념이다. 기업 활동을 위해 돈을 버는 동시에 자선 활동도 ‘의무적’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창조적 자본주의’라고 지칭한 것이다.[41]

자선 스포츠 행사 [ 편집 ]

2017년 4월 29일, 게이츠는 시애틀의 매진된 키 아레나에서 열린 비경쟁 테니스 경기인 아프리카 4차전에서 스위스의 테니스 전설 로저 페더러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이 행사는 아프리카에서 로저 페더러 재단의 자선 활동을 지지하는 것이었다.[42] 페더러와 게이츠는 이번 10년 동안 미국 선수 1위 존 이스너와 펄 잼의 리드 기타리스트 마이크 매크레디와 맞붙었다. 그 두 사람은 6대 4로 시합에서 이겼다. 그들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해 200만 달러를 모금했다.[43]

로저 페더러는 2018년 3월 6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Still flying high from last night! Thanks to everyone who made the #MatchForAfrica a great success!”이라는 문구와 함께 빌 게이츠, 잭 소크와 찍은 사진을 게재했다. 페더러는 이날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빌 게이츠와 복식조를 구성해 잭 소크와 NBC 투데이쇼 진행자 사바나 거스리조와 자선 경기를 펼쳤다.[44] 게이츠와 페더러는 함께 6-3으로 두 번째 경기 승리를 기록했고 경기는 25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45]

백신개발 [ 편집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전 세계로 확산 양상을 보이던 지난 2020년 5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자신의 아내와 함께 설립한 재단을 통해 코로나 19 백신 개발을 위한 연구 자금으로 써 달라는 요청과 함께 한국의 바이오기업에 36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 7월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낸다. 이미 4월 문 대통령과 코로나 19 대응을 위해 전화통화를 나눴던 빌 게이츠 회장은 한국의 코로나 방역과 리더십에 다시 한번 신뢰를 나타냈다. 특히 그는 코로나 백신 개발을 위해 한국정부와 기업 등과 협력을 약속하면서, 국내 바이오 기업인 에스케이(SK) 바이오사이언스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코로나 백신 민간 분야에서 한국이 가장 앞서 있다”면서 “SK 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면 내년 6월께 연간 2억개의 백신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를 통해 세계 각국의 수많은 어려운 사람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46]

벤처 기업 투자 (부분 목록) [ 편집 ]

게이츠는 다양한 분야의 지분을 보유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 포트폴리오[47]를 보유하고 있으며 마이크로소프트를 넘어 다음과 같은 여러 벤처 사업에 투자했다.

비욘드미트(Beyond meat) 식물성 고기 제조 대체육 기업[48]

빌게이츠가 투자한 콩고기로 만든 비욘드미트 버거

슈뢰딩거(Schrödinger, Inc) 생명과학, 소재과학 소프트웨어 업체로 제약·바이오텍·소재 연구에 쓰이는 화학 시뮬레이션 소프트웨어 제작 기업[49]

웨이스트 매니지먼트(Waste Management) 폐기물 처리 업체[49]

캐나다 국립 철도(Canadian National Railway) 1995년에 민영화된 캐니다 국립 철도[49]

브룸(Vroom) 미국 온라인 중고차 판매 스타트업[50]

트위터(Twitter)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기업[51]

월마트(Walmart) 미국의 다국적 유통기업[52]

개인사생활 [ 편집 ]

아내 멜린다와 결혼 [ 편집 ]

빌 게이츠와 그의 아내 멜린다 게이츠

빌 게이츠와 아내 멜린다의 관계는 지난 198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비즈니스인사이더에 따르면 두사람이 만난 것은 멜린다가 MS의 제품매니저로 입사한 직후다. 그녀가 입사한 지 몇개월 후 빌은 그녀에게 첫 데이트를 신청했다. 당시 빌 게이츠가 멜린다에게 전화를 걸어와 “저기…만일 당신이 내게 전화번호를 준다면 우린 오늘 밤부터 2주일 안에 데이트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 멜린다는 진지하지 않다고 여겼고, 되물었다. 멜린다는 “나는 그에게 ‘오늘 밤으로부터 2주일 후라고요? 나는 2주일 후에 내가 뭘하고 있을지 몰라요. 그리고 ‘당신은 충분히 마음에서 우러나 보이지 않는군요’라고 말했다”라고 털어놓았다. 빌 게이츠는 한 시간 뒤에 전화를 걸어서는 ‘이러면 당신에게 충분히 마음에서 우러난 것처럼 보이나요?’라고 물었지요“라고 당시 상황을 밝혔다.그리고 그녀는 이 날 데이트에 응했다. 빌과 멜린다는 7년 간의 데이트 끝에 1994년 1월 1일 하와이의 라나이섬에서 비밀결혼식을 올리면서 결혼에 골인했다.[53]

자녀교육 [ 편집 ]

빌 게이츠는 “내 아이들에게 당연히 컴퓨터를 사 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컴퓨터 황제’로 통하는 빌 게이츠도 컴퓨터보다 책이 어린 시절 꿈과 상상력, 창의력을 키우는 데 더 중요한 무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 게이츠는 자녀들의 컴퓨터 사용 시간을 하루 45분, 주말 1시간으로 제한한다고 고백한 바 있다.[54]

빌 게이츠가 제니퍼, 로리, 포비 자신의 3자녀에게 많은 돈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빌 게이츠는 영국 일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를 통해 “많은 부는 그들(자녀)에게 좋지 못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게이츠는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규모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길 꺼렸으나 신문은 게이츠가 `자녀들에게 1000만달러씩 물려줄 것`이라는 그간의 보도를 부정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는 “이 정도의 돈은(1000만달러) 내 전체 재산의 아주 극소수”라며 “이는 그들이 스스로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자신의 부로 자녀들이 인생이 영향받지 않기를 원해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 자녀들은 현재 집안일을 하고 용돈을 받는 평범한 아이들”이라며 “교육, 건강과 관련한 자녀들의 비용은 내가 지불하겠지만, 그들은 향후 직장에 가서 일을 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55]

스티브 잡스와의 관계 [ 편집 ]

“그와 나는 어떤 의미에서 함께 자랐다. 우리는 동갑내기이며 순진하게도 낙관적이었고 커다란 회사를 세웠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제품과 새로운 것에 대한 모든 환상을 모두 이뤄냈다. 그리고 대부분을 라이벌 관계에서 만들어 냈다. 하지만 우리는 항상 서로에게 상대방이 아플 때에도 어떤 존경심을 가지고 소통해 왔다”[56]

“잡스는 천재였고 나는 그를 많이 질투했다”면서 “잡스는 사람들에게 뭔가 엄청난 동기를 부여하는 대단한 마법사였다면 나는 소소한 마법사였다”[57]

1955년생 동갑내기인 게이츠와 잡스는 젊은 시절 70년대 후반부터 30년 넘게 애증관계를 이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잡스는 캘리포니아 노동자 집안에서 자랐으며 모든 제품에 대해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고 믿으며 닫힌 생태계를 창조했으며, 디자인을 통해 제품에 프리미엄을 불어넣었다. 반면, 워싱턴주 상류층에서 자란 게이츠는 개방형 생태계를 믿었고 디자인은 중시하지 않았다. 출생부터 스타일까지 전혀 달랐던 두 사람은 결국 서로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게이츠는 잡스에 대해 “기본적으로 괴짜”라며 “인간으로서는 괴상하게 흠집난 친구”라고 평가했고, 잡스는 게이츠를 “마약을 한 번 해보거나 어렸을 때 히피촌에 갔더라면 좀 더 생각이 넓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IT 산업에 있어서도 게이츠는 “잡스는 정말 IT에 대해 모른다”면서 “대신 그는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채는 놀라운 본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잡스는 “빌은 기본적으로 상상력이 없고 아무것도 발명한 적이 없다”면서 “그래서 그가 그가 이제는 IT보다 자선사업을 더 편안하게 여길 것”이라고 폄훼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서로의 태도에 대해 애플 매킨토시 개발팀의 일원이었던 앤디 허츠펠드는 스티브 잡스의 전기에서 “두 사람은 서로 상대방이 자신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했다”면서도 “하지만 스티브는 취향과 스타일 때문에 일반적으로 빌을 자신보다 약간 떨어지는 사람처럼 대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이어 “빌은 프로그래밍을 못한다는 점 때문에 스티브를 무시했다”고 회상했다.[56]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하지만 2011년 잡스의 타계 이후 게이츠는 그를 그리워하는 말을 여러차례 했다. 같은 해 10월5일 게이츠는 잡스의 사망 소식을 접하고 “그와 함께 일했던 것은 미치도록 훌륭하게 명예스러운 일(insanely great honor)이었다”면서 잡스의 표현인 ‘미치도록 훌륭한’이란 표현을 빌어 그를 추모했다. 당시 그는 “스티브와 나는 약 30년 전에 만나, 동료이자 경쟁자 그리고 친구로 삶의 절반 이상을 함께 보냈다”면서 “그가 많이 그리울 것이며 잡스가 세상에 미친 강력한 영향력은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애도했다.[56]

지난해 월스트리트저널(WSJ) 인터뷰에서도 게이츠는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높게 평가하면서 “나는 연설을 잘하기 위해 힘들여 노력해야 했지만 잡스는 항상 자연스러웠다”면서 “내가 잡스처럼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능력이 있었다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의 가난 퇴치·질병 예방 연구 등 국제 사업에 더 많은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56]

그는 이어 “잡스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끌어들이는 마력을 가진 ‘천재’였고, 나도 그를 따라하고 싶었다”면서 “잡스가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사람들이 그의 주문을 따르는 것을 봐왔다”면서 “나는 그를 너무나 질투했다”고 덧붙였다.[56]

워런 버핏과의 관계 [ 편집 ]

“난 내 친구들을 대부분 언제 처음 만났는지 정확히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워런 버핏만은 예외다. 그의 만남이 나와 아내 멀린다의 삶을 완전히 바꿨기 때문이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5년 전 오늘이다. 1991년 7월5일.”[58]

버크셔헤서웨이 주주총회에서 워런 버핏, 빌게이츠과 캐시 아일랜드

게이츠는 어머니의 권유로 1991년 7월 5일 버핏을 처음 만났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후 25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게이츠는 버핏이 사실상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약속으로 세상에 끼친 영향은 ‘계산할 수 없다’고 언급하며 존경을 드러내기도 했다.[59] 둘은 아버지뻘 되는 나이 차이를 극복하고 돈독한 우정을 쌓고 있는데 빌 게이츠의 사무실 전화 단축번호에 집과 워런 버핏의 번호만 저장돼 있을 정도다. 대학 강연이나 기부 활동도 같이한다. 워런 버핏의 기부금 대부분도 빌 게이츠 부부가 설립한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으로 들어간다.[60] ‘배움과 웃음의 25년’이란 글을 통해 “버핏은 나와 멀린다가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도록 도와주며 내 삶을 바꿔줬다”며 “그는 내가 오마하에 들를 때 지금도 직접 운전해 나를 공항에 데리러 나온다”고 전했다. “어머니의 권유로 버핏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에 대한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는 게이츠는 “컴퓨터만 아는 괴짜와 이메일 한 번 쓰지 않는 투자자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버핏은 젊은 사업가에게 정중히 MS의 사업 전략에 대해 예리하게 질문했고, 두 사람은 서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를 정도로 대화에 빠져들었다. 게이츠는 버핏 특유의 ‘초딩 입맛’에 대해서도 실감 나게 묘사했다. 그는 “버핏이 우리 집에 묵었을 때 아침식사로 오레오 쿠키를 먹었다”며 “워런의 입맛은 마치 여섯 살짜리 꼬마 같다”고 전했다. 또 “햄버거나 아이스크림, 코카콜라를 달고 사는 버핏과 식사하러 나가는 게 즐겁다”며 “솔직히 젊은이들에게 그의 식단은 최악이겠지만, 왠지 그에겐 잘 통하는 식단인 것 같다”고 적었다.[61]

독서 [ 편집 ]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소문난 독서광이다. 그는 일 년에 50여권의 책을 읽으며 자신의 블로그에 독후감을 남긴다. 미국 CNBC는 21일(현지시간) 이 억만장자 독서광이 책을 읽은 후 그 내용을 기억하는 빌게이츠 독서 비법을 소개했다. 빌 게이츠가 밝히는 독서 기억법의 핵심은 ‘맥락’이다. 그는 ‘쿼츠’와의 인터뷰에서 “책을 읽다보면 이 내용과 저 내용이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에 두 가지 사이에서 유사점을 발견하게 된다”면서 “만일 커다란 틀을 갖고 있다면 모든 것을 그 틀 안에 놓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즉 어떤 주제에 관해 기본적인 이해의 틀을 가지고 있다면, 그 다음에 새로운 정보들이 들어오면 그 위에 적절히 배치해 놓는 것이다. 게이츠는 “그러므로 계속 쌓이는 지식을 풍요롭게 유지 관리하는 것이 훨씬 덜 이용이해진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엄두가 안날 수 있지만 일단 그런 방식에 익숙해지면 그 다음부터는 자연스럽게 지식의 조각들이 제 자리를 잡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과학과 관련된 독서를 하는 경우, 게이츠는 과학자의 역사에 관한 독서와 과학자의 업적에 관한 독서는 상호 관련되는 부분이 있어서 하나의 큰 틀이나 맥락 속에 놓고 보면 세부적인 내용을 더 잘 기억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한다.“말하자면 연대순이나 지도, 혹은 과학의 지류 등을 틀로 삼을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게이츠에게 있어서 독서는 취미나 소일거리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는 2017년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독서는 성공에 “절대적으로” 필수적인 요소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는 “인간은 배움을 멈추지 않는 한 노쇠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독서가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왔다고 설명했다. “책 한권 한권이 내게 새로운 것을 일깨워주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나는 내게 늘 책을 읽도록 격려해주신 부모님을 만난 것이 행운이었다. 독서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끊임없이 공급해줬다. 그 호기심이 내가 사업을 하도록 이끌었고 지금 몸담고 있는 재단 운영에도 도움이 된다.” 게이츠는 책을 읽을 때 꼼꼼하게 읽어 내려가는 편이다. 일단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내용이 마음에 들건 안 들건 끝까지 돌파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읽다가 중간에 멈추는 걸 싫어한다”면서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을수록 책을 읽으면서 여백에 메모를 적느라 (좋아하는 책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고 밝혔다.[62]

예술품 수집 [ 편집 ]

예술품 수집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게이츠는 지난 1994년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필사본인 72쪽짜리 레스터사본(Leicester Codex)을 3,100만달러에 사들였다. 그는 또 미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화가인 윈슬로 호머의 작품도 3,000만달러를 주고 구입한 바 있다.[63]

유튜브 [ 편집 ]

빌 게이츠가 유튜브로부터 구독자 100만명 이상 유튜버에게 수여되는 골드 버튼을 받았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 ‘빌 게이츠’서 골드버튼 언박싱 영상을 게재했다. 그리고는 구독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는 메시지가 나온 뒤 짤막한 영상이 마무리됐다.[64] 그는 워런 버핏(Warren Buffett)과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등 다양한 영상을 올렸다.[65]

기타 [ 편집 ]

자신이 죽을 경우 전 재산의 대부분을 사회에 기증하고 세 명의 자녀들에게는 1인당 1천만 달러씩만 상속한다고 밝혔다. 이는 빌 게이츠 전 재산의 0.018%에 불과한다.[66]

영국의 YouGov에서 전세계 23개국에서 조사한 ‘2015년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에서 9.2점을 받아 남성 인물 중 가장 존경받는 사람으로 선정되었다. 버락 오바마(6.4), 시진핑(5.3)이 뒤를 이었다.[67]

2013년 4월 21일 내방 기간 동안 삼성전자 서초동 본사를 방문하였다. 뒤쪽 취재진에게 웃는 얼굴을 보이며 현관문을 직접 열고 건물로 들어갔다.

업적 [ 편집 ]

상훈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참고 서적 [ 편집 ]

빌게이츠 나이 재산 부인 자녀 일루미나티

■ 목차

1. 빌게이츠 소개 (나이 재산 부인 자녀)

그럼 지금부터 빌게이츠의 나이 재산 가족사항 등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는 시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따라오세요~ ^^ 빌게이츠는 1955년 10월 28일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2021년) 만으로 65세입니다. 마이크로소프트 CEO ,회장과 명회회장 그리고 이사회 의장을 맡은 경력이 있으며 현재는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고문입니다. 빌게이츠의 재산은 1,316억 달러 (한화 약 159조 3,100억 원) 입니다. (※2021년 8월 기준) 종교는 카톨릭입니다. 키는 178cm 입니다. 가족은 누나 크리스티앤 게이츠 여동생 리비 게이츠 배우자 멜린다 게이츠(2021년 이혼) 장녀 제니퍼 캐서린 장남 로리 존 게이츠 차녀 피비 아델 게이츠 입니다. 학력은 아래와 같습니다.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졸업) (1969~1973) 하버드 대학교 (응용수학과[3] / 중퇴) (1973~1974) 하버드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2007) 빌게이츠 SNS는 아래와 같습니다. 빌게이츠 트위터 https://twitter.com/billgates 빌게이츠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BillGates 빌게이츠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user/thegatesnotes 빌게이츠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thisisbillgates/ 빌게이츠는 미국의 기업인이자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로그래머, 자선가, 유튜버이며 세계부호의 대명사입니다.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의 무려 74.96%를 점유하고 있는 Windows의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주입니다. 하버드 대학교를 중퇴하고 MS-DOS와 Windows로 성공 신화를 써내려 갔습니다. 80~90년대에는 IT 업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를 정도로 인지도가 높은 인물입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인 Windows와 Office를 소유한 덕분에1995년부터 2009년까지 10년 넘는 세월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2. 빌게이츠 이혼

2021년 멜린다와의 이혼 덕분에 드러난 은퇴의 진짜 이유가 사내 불륜 때문이라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빌 게이츠도 이를 인정했습니다. 게이츠 재단의 전 관계자를 정보원으로하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후속보도에 따르면 아동 성범죄 혐의로 수감, 옥중에서 자살한 부호 제프리 엡스타인과 빌 게이츠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친분을 이어왔는데, 이 당시에는 이미 제프리 엡스타인이 성범죄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어서 멜린다가 빌 게이츠에게 지속적으로 이를 지적했음에도 그가 교류를 지속해 왔고, 결국 엡스타인이 감옥에 들어간 순간부터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추가로 2000년대 초 빌이 20년전 다른 여자랑 불륜 관계였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이전부터 결혼 생활이 삐걱거리지 않았나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3. 빌게이츠 어록 (명언)

아래 내용은 빌게이츠가 실제로 했던 말입니다. 저는 “아빠, 나는 언젠간 학교에 돌아갈 것이고 졸업장을 받을 거라고 항상 말했었잖아요.”라는 이 말을 하기 위해 30년 이상을 기다려왔습니다. 잠시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일주일에 몇 시간 혹은 한 달에 몇 달러를 어딘가 기부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고 또한 당신이 그 시간이나 돈이 어딘가에서 생명을 구하고 삶의 질을 극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곳에 사용되기 원한다면 그곳은 어디일까요? 아직 저는 낙관론자입니다. 불평등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복잡성을 무너뜨리는 새로운 방법들은 이제 나온 것들이며 그 방법들은 우리가 우리의 관심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앞으로의 미래는 과거와는 다를 것입니다. – 2007년 6월 7일, 자신이 중퇴했던 하버드 대학에서 명예졸업장을 받은 자리에서의 졸업축사 내용 중에 몇 마디. 소프트웨어 개발비용은 비쌉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돈을 주지 않는다면, 뛰어난 소프트웨어는 결코 개발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 결정하시죠. 소프트웨어를 쓰실 겁니까, 아닙니까(돈을 주시렵니까)? -1980년에 데니스 배터리키츠와의 인터뷰에서. 저희는 경쟁자들처럼 비행기를 사서 노는 게 아니라, 거의 모든 일을 회사에 처박혀서 진행했습니다. – 1981년, IBM PC 발표회 당시 기자들에게 게리 킬달을 은근히 까면서. 킬달이 IBM과의 계약을 놓치자 그 기회가 게이츠 일행에게 굴러들어온 상황이었다. 새로운 기준을 만들기 위해선 약간 다른 것 이상의 무언가, 즉 새로우면서도 사람들의 상상을 정말로 사로잡는 것이 필요합니다. 매킨토시야말로 제가 이제껏 본 컴퓨터들 중 유일하게 그 기준을 만든 제품입니다. – 1984년, 매킨토시 시연회에서 참고로 당시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가 아니라 애플 리사를 밀었다가 대차게 말아먹었다. 그 후 스티브 잡스는 매킨토시로, 빌 게이츠는 자사의 윈도우로 지지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2015년 예언자가 되었다! 누군가가 차고에서 전혀 새로운 뭔가를 개발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군요. 1998년, 한 기자의 질문, 당신이 제일 두려워 하는 장애물이 뭔가요? 에 대한 대답. 그의 통찰은 정확했다. 그 해에 나온 것이 다름아닌 구글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구글이 상장되어 화려한 전성기를 시작한 2004년, 페이스북이 탄생했다. 30년 뒤에 사람들이 컴퓨터로 이루어낼 놀라운 일이 기대됩니다. 빌게이츠가 남긴 명언 빌게이츠는 “인생이란 결코 공평하지 않다. 이 사실에 익숙해져라”라는 명언을 남겼습니다. 이는 공평하지 않다고 불평하기 전, 익숙함 속에 나만의 방법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빌게이츠는 “우리가 모든 아이들을 최고의 방법으로 교육시키고, 모든 도심 지역을 청소하기 전에는 할일이 결코 부족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명언으로 사회 발전에 대한 화두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4. 빌게이츠 기부 (백신, 기후변화)

앞에서도 소개했지만 빌 게이츠는 전 세계 PC 운영체제 시장을 독점하는 윈도우(Windows)의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주입니다. 컴퓨터를 통해 인류의 삶을 바꾸는 데 기여하더니, 자신의 부를 나누고 베푸는 자선가로도 활발히 활동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개발을 지원하는 데 톡톡히 한 몫을 하고 있습니다. 결혼 전 사업 밖에 모르던 전형적 비즈니스맨이던 그가 기부천사로 거듭난 데는 아내이던 멀린다 게이츠의 영향이 크다고 합니다. 처녀 시절부터 자선활동을 자주 해온 멀린다 게이츠와 결혼한 후 자신들의 이름을 딴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이곳은 기부하는 금액부터 보통 군상들과 차원을 달리할 뿐만 아니라, 기부금 운용이 투명해서 신뢰할 만한 기부 재단으로 꼽힙니다. 그는 이 재단을 통해 백신 개발뿐 아니라 아프리카 에이즈 확산을 막는 활동, 오염된 물을 간단한 방식으로 깨끗한 식수를 만드는 사업 등 과학기술을 통한 질병 퇴치에 막대한 투자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내이던 멀린다 게이츠와 이혼을 공식 발표하는 등 개인사에서 잡음을 내기도 햇지만, 전 아내와 세운 자선재단 활동은 함께 지속할 예정입니다. 빌 게이츠는 백신 덕분에 코로나19 사태가 올해 말쯤 종식될 전망이라며 앞으로 기후변화 해결에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현재 유행하는 코로나19의 종식은 기후변화를 막는 일에 비하면 매우, 매우 쉽다”며 기후변화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기후 온난화로 야생동물에서 인간에게 전염될 수 있는 미지의 치명적 바이러스가 수십 만 개가 넘는다고 세계적 바이러스 전문가들은 예상합니다. 컴퓨터를 통한 인류의 삶과 의식의 흐름을 바꾸더니 이제는 기후위기 극복의 선봉에 섰습니다. 인간 삶의 질을 한 차원 높이기 위한 그의 다음 행보가 기대됩니다.

5. 빌게이츠 일루미나티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는 세력들이 있다는 글과 영상은 과거부터 꾸준히 올라오고 있습니다. 자칭 엘리트라고 지칭하는 그들은 많은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움직이는데 주로 비인간적인 계획들이 많고 이들을 일명 일루미나티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빌게이츠도 일루미타니에 속해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빌게이츠가 일루미나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증거는 아래와 같습니다. 빌게이츠의 실제 강연에서 한 인터뷰 내용입니다. “혁신적인 신종 백신을 만들어내고 의료시스템, 효과적인 의료 체계를 만들면 인구를 현재의 10-15% 줄일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현실은 13억 명씩 인구가 증가하는 상태죠 ~ 우리는 현재 10-15% 인구를 줄일 수도 있습니다” -빌게이츠 인터뷰 향후 10년간 백신을 위해 100억 달러 이상 투자한다는 게 무슨 말씀인지요? “향후 십년 간 우리는 놀라운 진전을 이룰 거라 보는데요 새로운 백신들을 개발하고 필요한 모든 아이들에게 맞추는 거죠 우리는 매년 사망하는 9백만 아동들의 숫자를 반으로 줄일 수 있는데 이미 성공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얻는 유익은 질병의 감소, 인구증가율 감소인데 이런 조정을 통해 사회는 좀 더 스스로를 돌볼 수 있을 겁니다”​​ -빌게이츠 인터뷰 인터뷰 내용에서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으며 인구를 줄일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빌게이츠는 코로나사태 일어나기 전 이미 코로나바이러스 진원지인 우한연구소에 천문학적인 거액을 기부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빌게이츠는 코로나 사태가 공식적으로 터지기 몇 달 전 동종 바이러스에 대한 펜데믹 대비 훈련을 지원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빌게이츠가 일루미나티라는 말이 힘을 얻고 있습니다. 빌게이츠가 일루미나티인지는 아닌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어떻게 보면 일루미나티 같기도 하고 아닌것 같기도 합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

빌게이츠 나이 결혼 27년만에 황혼 이혼 재산 분할 어떻게 될까?

빌게이츠 트위터로 공동성명 27년간 결혼생활 종료

빌앤드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지속

빌 게이츠 자산 세계 4위 재산분할 어떻게 될까?

빌 게이츠(Bill Gates) 멀린다 게이츠(Melinda Gates)가 이혼을 발표했습니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공동 창립자이자 전 CEO 빌 게이츠는 현지시간으로 3일 EST 오후 4시30분 트위터를 통해 자신과 아내 멀린다 게이츠가 결혼 27년 만에 헤어질 것이라는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빌게이츠 트위터

빌게이츠 가족 사진

트위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관계를 지속하려는 많은 노력과 장고 끝에 우리는 결혼생활을 끝내자는 결정을 내렸다. 지난 27년 동안 믿기 힘들 정도로 좋은 3명의 자녀를 키웠고 전세계 모든 이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이끌어갈 수 있도록 돕는 재단도 세웠다. 우리는 이러한 임무에 대한 믿음을 계속해서 공유하고 재단에서 계속 함께 일하겠지만, 우리 인생의 다음 단계에서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이제 우리는 새로운 삶을 향해하기 시작할 것이고 우리 가족만의 사생활과 자유를 보장해주기를 요청한다.

빌게이츠 나이

빌게이츠는 1955년 10월 28일 생으로 65세이며 우리나라 나이로는 67세 입니다.

멀린다 게이츠는 1964년 8월 15일 생으로 56세 이며 우리나라 나이로는 58세 입니다.

멜린다 게이츠가 2018 아버지의 날에 공개한 자녀들과 가족 사진

빌게이츠와 멜린다게이츠 두 사람에게는 Jennifer (25세), Rory (21세), Phoebe (18세)의 세명의 자녀가 있습니다. 제니퍼 게이츠는 공개 인스타그램 계정을 가진 유일한 자녀이며 월요일 오후 자신의 부모 이혼에 대한 글을 올렸습니다. 그녀는 뉴스가 도전적 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원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빌게이츠 부부의 만남

빌 게이츠는 1975년 폴 알렌과 공동으로 MS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해 2000년까지 최고경영자(CEO)를 지내다가 회장으로 물러났는데요.이후 빌게이츠는 부인 멀린다와 2000년 세운 비영리조직 빌앤멀린다 재단을 시작했으며 전 세계의 이니셔티브를 위해 자선 단체에 약 500억 달러(한화 56조)를 기부 하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와 멜린다 게이츠는 1994년 하와이에서 새해 첫날 결혼했는데요. 첫 만남은 1987년 MS에서 마케팅매니저로 일하던 멀린다와 뉴욕의 무역 박람회에서 처음 만난 후 데이트를 시작 했다고하는데요. 멀린다 게이츠(Melinda Gates)는 1990년대 초 정보 제품 총괄 관리자로 임명되기 전 회사의 마케팅 부서에서 잠시 근무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가족과의 시간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1996년에 회사를 떠났습니다.

빌 게이츠는 2019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빌스 브레인을 통해 멀린다는 정말 동등한 파트너 이자 낙천적이고 과학에 관심이 있다는 점에서 나와 많이 닮았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 재산분할

빌게이츠는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순자산 1458억 달러(한화 약 164조7000억원)으로 세계에서 4번째로 부유한 부자 이기도 합니다. 현재까지는 어떤 방식으로 재산이 분할될지는 불분명한 상황이지만 빌 게이츠는 멜린다 게이츠와 결혼 생활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많은 부를 축적했으며 이 재산분할은 역사상 가장 큰 이혼 재산분할이 될것 같습니다.

제프 베조스와 맥켄지 스콧이 2019년 이혼을 발표했을 때, 재산분할로 380억 달러(한화 약 42조)를 벌어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여성이 되었으며, 이는 당시 부부가 보고 한 1370억 달러(한화 약 153조) 순자산의 약 1/4에 해당했었기에 멜린다 게이츠는 500억 이상을 분할받을수 있을것으로 추정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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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나이 이혼 프로필 사유 재산 분할

빌 게이츠 나이 이혼 프로필 사유 재산 분할

가장 유명한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로그래머인 빌게이츠! 정말 대단한 사람인데요. 최근에는 자선가로 유튜버로 영상도 올리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윈도우 개발사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인 빌 게이츠가 최근 멀린다와 이혼을 발표하게 되었는데요.

빌게이츠 프로필 이혼 사유 재산분활에 대해서 포스팅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빌게이츠 프로필

이혼사유

재산분활

빌게이츠 프로필

국적

미국

출생

1955년 10월 28일 (67세)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학력

레이크사이드 고등학교 (졸업) (1969~1973)

하버드 대학교 (응용수학[3] / 중퇴) (1973~1974)

하버드 대학교 (명예 법학박사) (2007)

직업

기업인, 소프트웨어 개발자, 프로그래머, 자선가, 유튜버

현직

마이크로소프트 기술 고문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공동회장

테라파워 회장

경력

마이크로소프트 회장

마이크로소프트 ceo

마이크로소프트 이사회 의장

재산

1,267억 달러 (한화 약 143조 1,800억 원)

종교

가톨릭

신체

178CM

부모

아버지 윌리엄 헨리 게이츠 주니어(1925~2020)

어머니 메리 맥스웰 게이츠(1929~1994)

배우자

멜린다 게이츠 (1994 결혼 2021 이혼)

자녀

장녀 제니퍼 캐서린 게이츠(1996년 4월 26일생)

장남 로리 존 게이츠(1999년 5월 23일생)

차녀 피비 아델 게이츠(2002년 9월 14일생)

이혼사유

빌게이츠 부부는 모범 부부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부부인데 왜 이혼을 발표하게 되었을까요?

이혼사유는 부인 멀리다의 저서에 일화가 있는데요. 빌게이츠 부부가 공동 운영하는 세계 최대 자선 재단에서 매년 초 연례 서한을 발표하는데 누가 작성할지를 두고 부부싸움을 했다는 내용입니다.

결국 다툼 끝에 빌은 재단의 연례 서한은 자신이 쓰는 대신 멀린다는 별도의 주제로 글을 따로 작성해 올리기로 합의 했다고 하는데요.

이 부분이 이혼 사유라고 할 순 없을것 같습니다. 또한 자세한 언급 및 구체적인 이유는 알리지 않았습니다. 여러 부부들을 보면 간단한 말다툼을 안하는 부부는 거이 없을 정도로 애를 키우면서 어떠한 결정을 할때도 조금의 다툼은 있게 되는데요. 사유가 정말 궁금하군요. 미국 스타일이 이혼을 해도 서로 친구가 되고 친구끼리도 사귀게 되고 아메리카 스타일이 있는데. 앞으로 빌게이츠와 멀린다 게이츠 부부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 궁금하게 되는 군요.

로이터통신에서는 빌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멀린다의 기나긴 여정이 두사람의 이혼 발표로 새로운 장에 들어섰다고 평가를 했습니다.

각자 트위터에 공동성명에서 우리 관계에 대해서 많은 생각과 노력 끝에 우리는 결혼을 끝내기로 결정했다라고 발표했는데요. 관련된 내용은 아래를 참고해주세요!!

재산분활

빌 게이츠의 재산은 전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1천 305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46조2천억원 규모입니다. 이번 이혼 결정에 따라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 분할이 될것 같은데요. CNBC에서 구체적인 재산 분할 방식이나 규모 등은 아직 분명하지 않다고 전했습니다.

빌게이츠 나이와 재산 클라스 (+세계 최고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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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부자 빌게이츠

세계 최고의 부자라고 하면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빌게이츠를 떠올리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빌게이츠는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설립자입니다. 빌게이츠의 풀네임은 ‘윌리엄 헨리 빌 게이츠 3세’ 입니다. 빌게이츠는 모든 이들이 선망하는 하버드 대학을 자퇴 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빌게이츠 나이

빌게이츠 나이는 얼마일까요? 빌게이츠의 나이는 65세입니다. 1955년생 10월 28일생입니다. 배우자는 멀린다 게이츠이구요, 현재는 이혼을 진행중이라고 합니다.

빌게이츠 이혼 관련하여 여러가지 뉴스들이 나오지만 아직 정확한 밝혀진 바는 없습니다. 자녀는 로리 존 게이츠, 제니퍼 캐서린 게이츠, 피비 아델 게이츠로 3명을 두고 있습니다.

빌게이츠 재산

빌게이츠는 오랫동안 세계 부자 1위에 랭크되어 왔습니다. 현재까지도 그의 명성답게 많은 재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포브스 기준, 2021년 현재 빌게이츠는 세계 부자 4위에 랭크되어 있습니다. 2021년 현재 빌 게이츠의 자산은 무료 146조원에 달한다고 하네요. 정말 대단한 금액입니다.

현재 빌 게이츠 부부가 가지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사 지분은 약 260억 달러 이구요, 빌게이츠가 설립한 캐스케이드 지분은 약 299억 달러 입니다.

빌게이츠 딸

최근 빌게이츠의 큰딸인 제니퍼 게이츠가 자신의 SNS에 빌게이츠와 찍은 사진을 올려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제니퍼 게이츠는 Nothing better than quality time with family members 라는 문구를 올렸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만큼 가치있는 일은 없다.” 라는 뜻의 문구입니다. 빌게이츠와 딸의 다정한 모습이 매우 보기 좋습니다.

빌게이츠와 워런버핏의 관계

빌게이츠와 워런버핏의 친분은 유명한데요, 빌게이츠와 워런버핏은 어떻게 만나게 된 걸까요? 그들은 1991년 7월 별장에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빌게이츠는 워런버핏과 마이크로소프트가 하고 있는 사업의 본질에 대해서 대화하며 그에게 큰 감명을 받았다고 전해집니다. 빌게이츠와 워런버핏의 나이차는 24살인데요, 나이 차를 넘어서 이후 그들은 매우 좋은 친구가 됩니다.

빌게이츠와 성공 명언

빌게이츠는 많은 명언을 한 것으로 유명한데요, 그 중 성공에 관련된 명언들을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 성공은 형편없는 선생님이다. 똑똑한 사람들을 실패할 수 없다는 착각에 빠트린다.

▶ 성공의 핵심 요소는 인내심이다.

▶ 성공은 절대 운명의 장난이 아니다.

▶ 작고 하찮은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 성공은 자아실현의 욕구가 성취될 때이다.

오늘은 빌게이츠의 나이, 재산, 워런버핏과의 관계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빌게이츠는 인류의 발전과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앞으로 더욱더 왕성한 활동을 하시길 바랍니다.

* 저작자의 허가 없이 블로그의 사진과 글의 무단 도용, 복제, 배포를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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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빌 게이츠 27년만에 이혼 발표 – 재산, 나이 차, 첫 만남, 자녀 및 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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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 중 하나인 빌 게이츠가 오늘 이혼을 발표했습니다. 결혼 27년 만의 일인데요 둘은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발표했습니다.

“우리의 관계에 대한 깊은 고민과 많은 노력 끝에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정했습니다. 지난 27년간 우리는 세 명의 멋진 아이들을 양육했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재단을 설립했습니다. 우리는 그 사명에 대한 믿음을 공유하고 재단 일을 함께 하겠지만, 우리 삶의 다음 단계에 부부로서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는 믿지 않습니다.”라고 해석될 수 있겠습니다. 보통 유명인의 이혼 발표에는 ‘헤어져도 최고의 친구이자 지지자로 남을 것이며 서로를 응원할 것이다’라는 문구가 들어가는데, 이 부부의 성명서에는 살짝, 아주 살짝 가시가 있는 말처럼 느껴지는 건 제 느낌적인 느낌일 뿐이겠죠?

최근 포브스가 발표한 전 세계 실시간 부자 리스트의 5위에 이름을 올린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로 오늘자로 145조 원 ($130 billion)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빌 게이츠는 1955년 생으로 만 65세, 멜린다 게이츠는 1964년생으로 만 56세로 9살의 나이 차이가 납니다. 이들은 빌 게이츠가 하버드 중퇴 후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고 CEO로 한창 성장시키던 1987년 회사에서 만났습니다. 멜린다 게이츠는 듀크 대학교 학부와 MBA를 졸업하고 빠르게 성장하던 마이크로소프트에 프로덕트 매니저로 입사한 후였죠. 뉴욕에서 열린 출장 중 식사 자리에서 옆에 앉은 게 첫 인연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은 1994년에 빌 게이츠가 38, 멜린다 게이츠가 29이던 해에 하와이에서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이후로 세 명의 자녀를 두었죠.

빌 게이츠 가족사진

딸이 둘, 아들이 하나이며, 맏이인 제니퍼 게이츠는 뉴욕에서 의대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그녀의 약혼남은 스탠퍼드 대학 동기인 Nayel Nassar로 이집트 이민자의 후예로, 세계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한 프로 승마 기수입니다 – 이집트가 60년만에 올림픽에 승마팀을 출전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빌 게이츠 큰딸과 예비사위

Bill and Melinda Gates 재단은 설립된 2000년부터 이제까지 60조 원을 기부했습니다. 아프리카 같은 개발 도상국에서 에이즈, 결핵과 말라리아를 퇴치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세웠습니다. 기부에 대한 인식이 우리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열려 있는 미국에서도 비영리재단들이 큰 일을 할 때는 이 재단의 문을 두드릴 정도로, 이 재단의 재정적 지원이 해낸 업적은 엄청납니다. 빌 게이츠는 워런 버핏을 설득하여 미국의 큰 부자들이 보유한 재산의 대부분을 자녀에게 상속하기보다 사회에 환원하는 the Giving Pledge (기부 서약)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워낙 훌륭한 일을 많이 했다 보니, 우리나라로 치면 까방권(?)을 획득한 것 같은 사람이 바로 빌 게이츠인데요, 돈도 많고 가정생활도 원만할 것 같았던 이 사람도 이혼을 한다니 완벽한 삶이란 없나 봅니다.

이미 변호사들을 통해 재산 분배와 협의 사항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어쨌든 이 부부가 가진 재산과 영향력이 엄청난 만큼 앞으로 초유의 관심사를 몰고 올 것으로 보입니다. 일각에 알려져 있기로는 부인인 멜린다 게이츠의 재산도 80조 원에 가까운 것으로 보입니다. 이혼 후에도 사회의 음지에 빛을 비추기 위해 이들이 해 온 노력은 어떤 식으로든 계속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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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게이츠 키, 체중, 나이, 신체 통계

태어난 이름

윌리엄 헨리 게이츠 III

닉네임

트레이

썬 로그인

천갈궁

태어난 장소

시애틀, 워싱턴 주, 미국

거주

Medina, 워싱턴 주, 미국

국적

교육

빌은에서 공부 레이크 사이드 스쿨. 그는 뛰어난 학생이었으며 1973 년에 National Merit Scholar로 졸업했습니다.

그는 SAT에 출석 한 후 하버드 칼리지그는 법전 전공을 선택하고대학원 수준의 수학 및 컴퓨터 과학 과정. 1974 년 여름, 그는 부모와상의 한 후 하버드에서 물러 났으며 Paul Allen과 함께 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직업

Business Magnate, 투자자, 저자, 자선가, 인도 주의자, Microsoft Corporation 공동 설립자

가족

아버지 – William H. Gates Sr. (퇴직 변호사, 자선가, 저자)

William H. Gates Sr. (퇴직 변호사, 자선가, 저자) 어머니 – Mary Maxwell Gates (사업가) (1994 년 6 월 10 일 사망)

Mary Maxwell Gates (사업가) (1994 년 6 월 10 일 사망) 형제 자매 – 크리스티 (Kristianne) (이전 자매), Libby (여동생)

크리스티 (Kristianne) (이전 자매), Libby (여동생) 기타 – 윌리엄 헨리 게이츠 1 세 (부모 할아버지),릴리안 엘리자베스 라이스 (부모 할머니), 제임스 윌라드 맥스웰 (모자 할아버지) (전국 은행 회장), 아델 톰슨 (부모 할머니)

매니저

Michael Larson이 Bill Gates를 관리합니다.

짓다

평균

신장

9.5 인치 또는 176.5cm

무게

74 kg 또는 163 lbs

여자 친구 / 배우자

빌 게이츠는 –

멜린다 프랑스어 (1987- 현재) – Melinda는 마이크로 소프트. 그들은 처음 뉴욕에서 영업 회의에서 만났습니다. 이 부부는 골프장으로 하와이 라나이에서 1994 년 1 월 1 일에 매듭을 묶기 전에 7 년 동안 오랜 데이트를했습니다. 부부는 3 명의 어린이 Jennifer Katharine (b. 1996), Rory John (b. 1999) 및 Phoebe Adele (b. 2002)이 있습니다.

인종 / 민족

화이트

Bill은 영어, 독일어, 스코틀랜드 및 스코틀랜드-아일랜드어 조상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머리 색깔

소금과 후추

눈 색깔

녹색의 힌트와 함께 파란색

성적 지향

직진

고유 한 특징

그의 안경

브랜드 보증

Bill Gates는 Microsoft의 광고에 출연했습니다.

종교

기독교

가장 잘 알려진 제품

소프트웨어 거인의 공동 창립자 인 마이크로 소프트 회사 그는 공동 창립자 Paul Allen과 함께 1975 년에 시작했습니다.

에 포함되는 포브스 1987 년 이후 세계에서 가장 부유 한 사람들의 목록

그의 자선 활동과 관대함. 그는 자선 단체를 공동 창립했습니다. 빌 & 멜린다 게이츠 재단 2000 년

첫 번째 영화

Bill은 아직 연극 영화 데뷔를하지 않았습니다.

첫 번째 TV 쇼

Bill은 토크쇼에서 첫 TV 쇼 출연 오늘 1989 년

개인 트레이너

Bill의 다이어트 및 운동 루틴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빌 게이츠 좋아하는 것

취미 – 독서

독서 책 – J.D. Salinger의 호밀의 포수

J.D. Salinger의 호밀의 포수 마이크로 소프트 프로젝트 – Windows, 사무실

– Windows, 사무실 패스트 푸드 아울렛 – 버거 마스터 인앤 아웃

– 버거 마스터 인앤 아웃 퍼짐 – 버터, 땅콩 버터, 치즈 퍼짐

버터, 땅콩 버터, 치즈 퍼짐 야구 팀 – 시호크스

시호크스 요리사 – 나단 마이어 볼드

나단 마이어 볼드 요리 – 태국 식, 인도식

태국 식, 인도식 간식 – 치즈 버거

출처 – GeekWire, Reddit, 게이츠 노트

빌 게이츠 사실

초창기 그는 일 중독자였으며 휴식을 취하거나 휴가를가는 개념을 믿지 않았습니다. 10 대 때 그는 일반 전기 컴퓨터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발명했습니다. 레이크 사이드 스쿨. 기계와 대결 할 수있는 틱택 토 버전입니다. 1997 년에 개인 제트기를 구입할 때까지 이코노미 클래스를 여행했습니다. 그는 SAT에서 1600 점 만점에 거의 완벽한 1590 점을 얻었습니다. Bill은 또한 다소 거친 소년 행진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이츠는 멕시코에서 체포되어 면허없이 운전을해서 적신호를 냈다. 그의 가장 큰 두려움은 아이가 다치거나 아프게하는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그의 아버지가 변호사 였기 때문에 법과 수학에서 경력을 쌓는 것을 생각했습니다. 또한 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Bill은 비디오 게임에 정통하지 않습니다. 그는 다리 게임을 즐긴다. 그는 딸이 말을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빌에는 오레오와 닐라라는 두 마리의 개가 있습니다. 과거에 빌의 가장 큰 후회는 외국어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는 20 대 초반에 1 년 동안 채식을 채택했습니다. 그는 식사를 좋아한다 맥도날드 빅맥을 좋아합니다. 그는 열렬한 독자이며 1 년에 최소 50 권의 책을 읽습니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개인 자선 단체입니다. 그는 31 세의 나이에 가장 어린 자작 억만 장자가되었습니다. 그의 웹 사이트 @ www.gatesnotes.com을 방문하십시오. Twitter, Instagram 및 Facebook에서 Bill을 팔로우하십시오.

DFID의 주요 이미지 – 영국 국제 개발부 / 플리커 / CC BY-2.0

빌게이츠, 그가 사는 방식! (빌게이츠 나이, 재산, 자녀들, 부인, 이혼)

빌게이츠

2017년까지 대부분의 조사에서 세계 갑부 순위 1위를 차지했던 빌 게이츠, 본명은 윌리엄 헨리 게이츠 3세로 그는 1955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에서 태어났습니다. 영어권 국가에서는 윌리엄이라는 이름을 별명으로 부를 때, 독일식 발음으로 간편하게 ‘빌’로 부르는 편이죠. 빌 게이츠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로 오래전 거대한 슈퍼 고전 컴퓨터를 사용하던 시대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개인용 PC가 대중에게 보급되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아무래도 90년대 IT에 관심이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컴퓨터 천재를 떠올릴 때 누구든지 빌 게이츠를 생각하는 시대였죠. 빌 게이츠의 성장기는 1960년대에서 70년대 시절에 청소년기를 맞이했는데, 그는 어렸을 때부터 동네 도서관에서 독서를 즐겼다고 합니다. 추후, 자신의 삶을 돌아볼 때도 어렸을 적에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읽은 것이 삶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회고하기도 했죠. 잘 나가는 변호사 아버지와 금융기업과 비영리 단체의 이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빌 게이츠는 유복한 성장환경으로 인해 불우한 과거를 지닌 스티브 잡스와 비교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빌게이츠 학생

타고난 환경이 좋았던 빌 게이츠이기도 했지만, 그는 공립도서관에서 열린 독서경진대회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하며, 4장 정도의 숙제 분량을 작성하는데도 20장 이상은 거뜬하게 적어낼 정도로 공부 자체에 열정을 보이기도 했죠. 초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시애틀의 명문학교인 레이크사이드 스쿨에 진학하게 되는데, 재력이 부유했던 학교 ‘어머니회’는 GE 사의 컴퓨터와 연결되는 ASR-33 텔레타이프 터미널을 학교에 설치하게 됩니다.

1960년대 후반에 공유 터미널을 이용해서 컴퓨터를 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운명의 컴퓨터를 만났던 빌 게이츠는 이때부터 컴퓨터에 푹 빠지게 되죠. 생전 처음 보는 기계 앞에서 다수의 학생들이 처음에는 흥미를 보였지만,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도 모르니 금세 흥미를 잃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빌 게이츠와 상급학생이었던 폴 앨런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심취하게 되죠. 프로그래밍을 통해서 천재 학생들은 학교의 반 편성 프로그램을 부탁받아 만들기도 했는데, 청춘을 나타내는 시절이었던 만큼 빌 게이츠는 자기 반의 대부분을 여학생으로 배치되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답니다.

빌 게이츠는 평소 학급생활은 무난한 모범생으로 지내다가도 이 시절에 큰 사고를 치기도 했는데,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이 두각을 드러내던 폴 앨런과 학교 단말기에 연결되어 있는 중앙컴퓨터를 해킹해서 학교가 지고 있던 빚을 모두 삭제해버리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했죠. 1960년대 기준에서는 아직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가 대중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존재였기 때문에 지금 기준에서는 초대형 범죄라 할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어찌어찌 수습하며 넘어간 정도의 사건이 되었다고 합니다.

빌게이츠 청년시절

그런데, 미국이었다 하더라도 1960년대의 컴퓨터라는 개념 자체는 대중들에게 거의 인식되지 않았던 시대였다 할 수 있었죠. 컴퓨터에 푹 빠져들었던 빌의 장래희망과는 달리, 그의 아버지는 자신처럼 변호사가 되길 원해서 빌 게이츠는 하버드대학교 법학과에 입학하게 됩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 컴퓨터는 떠나질 않았고 결국 컴퓨터과학과의 전신인 응용수학으로 전과를 하게 되죠. 응용수학과를 공부하게 된 빌 게이츠는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재능을 펼치게 되는데, IQ 160의 그는 수학적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게 됩니다. 이 시기에 알고리즘 논문을 하나 써서 이산수학 학술지에 실어 넣게 되는데, 팬케이크 소팅이라는 정렬 문제에 대한 알고리즘을 제시함으로써 이 알고리즘을 대체하는 방법은 30년 뒤에나 나오게 되었죠.

현재 시대에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쉽게 접하는 세대들은 빌 게이츠의 결과론적인 모습만 보고 돈 많은 사업가로 규정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학시절의 논문을 기반으로 한 그의 연구업적은 컴퓨터에 OS개념을 제시한 MS-DOS 조차 거의 혼자서 만들어냈다고 보는 편입니다.

딸과 약혼자

학술지에 논문을 내고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고 판단한 빌 게이츠는 청소년 시절, 절친이었던 폴 앨런과 자본금 1500 달러로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하게 됩니다. 그리고 1981년 IBM사로부터 의뢰를 받아 IBM PC용 16비트 운영체제인 MS DOS 1.0을 개발해 출시하게 되죠. 그리고 1980년대 중반부터 가정용 PC 보급이 활성화되면서 MS-DOS도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80년대 후반부터 컴퓨터 학원들도 우후죽순 생기게 되면서 토요일 오후만 되면, MS-DOS에서 플레이할 수 있었던 ‘페르시아 왕자’ 게임으로 도배되는 시절이기도 했죠. 당시 전 세계 PC 이용자 중에서는 80%가 MS-DOS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어서는 획기적인 OS ‘윈도 95’가 보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혼한 전부인

DOS 시절이 ‘페르시아 왕자’와 KOEI에서 나온 ‘삼국지 2’가 어린 친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윈도의 시대는 블리자드의 ‘워크래프트’와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의 전성시대였죠. 1996년부터는 마이크로소프트 개발의 인터넷 익스플로러가 윈도에 기본 내장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웹 브라우저가 되기도 했습니다. 빌 게이츠는 타고난 수학자, 프로그래머의 재능뿐 아니라, 사업가로서도 명성을 떨쳤는데, 그의 사업가로서의 가장 눈에 띄는 업적은 소프트웨어에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만든 것인데요, 지금이야 스마트폰 앱 다운로드 중에 부분 유료 서비스라든가, 유료 게임 등이 일상화되었지만, 빌 게이츠가 자신의 소프트웨어에 수익 가치를 매기기 전까지는 소프트웨어는 상업적 가치가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미국에서도, 프로그래밍으로 만든 손에 잡히지 않는 무형물은 그저 하드웨어와 결합된 서비스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였던 시대였죠. 즉, 눈에 보이는 기계에 프로그램을 이식하는 사람은 그저 하드웨어를 만드는 부품에 불과했던 겁니다.

그런 와중에 빌 게이츠는 소프트웨어에 대한 재산권을 주장하게 되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을 확립한 덕에, 이후 전 세계의 수많은 프로그래머들과 프로그램 관련 기업들이 수익을 창출할 수 있게 도움을 주게 되었죠. 2008년 빌 게이츠는 33년간 몸담아오던 마이크로소프트를 떠난다는 은퇴 선언을 하게 됩니다.

빌게이츠 가족

은퇴 당시에 임직원들과의 대화에서 빌 게이츠는 실수와 도전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하게 됩니다. “저는 사람들이 MS를 깎아내리는 걸 좋아합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실수를 했고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배웠고 우리의 많은 업적은 바로 그 결과입니다.” 이처럼, 그는 실수를 받아들이며 내일을 위한 도전을 멈추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는데요. 현직에 있을 때만 해도 전 세계 갑부 1위라는 배경 때문에 ‘세계를 뒤에서 조종하는 사람이다’, ‘어둠의 군주다’ 하는 부정적 이미지를 많이 지니고 있었던 그는 은퇴 이후의 행보는 사뭇 달라지게 됩니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미친 것 같은 실리콘의 악마다.’라고 불리던 그는 은퇴 후, 마치 ‘기부를 위해 돈을 벌어왔나’ 하는 정도의 행보를 보입니다. 대표적으로 인류는 지구온난화뿐 아니라 언젠가 닥쳐올지 모르는 전염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치료제 개발 지원을 위해 1,500억 원 정도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전염병 대비에 대한 메시지는 최근 재조명을 받고 있기도 하죠. 한 번은 골프를 치러 나가서, 한 대학생이 캐디를 하고 있는데 그의 사생활에 대해 꼬치꼬치 묻는가 싶더니만 정작 팁은 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캐디의

학자금 융자를 모두 갚아준 일이 있었죠. 이러한 단편적인 예제뿐 아니라, 빌 게이츠가 현재까지 기부한 돈은 우리 돈으로 100조가 넘는다고 하네요. 정말 스케일이 어마어마합니다. 빌 게이츠 같은 사람이 계속 나오면 좋겠습니다. 빌 게이츠의 인생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빌게이츠 젊은 시절

빌게이츠 프로필

본명 : 윌리엄 헨리 게이츠3세, William Henry Gates III

나이 : 1955년 10월 28일(66세)

고향 :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거주지 : 미국 워싱턴주 메디나

성별 : 남성

국적 : 미국

직업 : 마이크로소프트 기술고문, 버크셔 해서웨이 활동가

종교 : 천주교

배우자 멀린다 : 게이츠 (이혼)

2020.08.20 – [기업이야기] – 엘론 머스크, 화성으로 가고 싶은 이유는? [2]

2021.07.06 – [기업이야기] – 최태원, sk주식회사 회장, 그가 가장 사랑하는 단어! (최태원 나이, 부인, 노소영, 자녀, 노태우, 동거녀, 김희영)

키워드에 대한 정보 빌 게이츠 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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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빌 게이츠, SK 최태원 회장과 손 잡는다…그가 한국에 온 이유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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