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 [선넘녀 하이라이트] ★설민석쌤 완벽정리★ 독도는 우리땅 1탄! 역사적 증거 모음“?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you.charoenmotorcycles.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you.charoenmotorcycles.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MBCentertainment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232,171회 및 좋아요 2,058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주제에 대한 동영상 보기
여기에서 이 주제에 대한 비디오를 시청하십시오. 주의 깊게 살펴보고 읽고 있는 내용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세요!
d여기에서 [선넘녀 하이라이트] ★설민석쌤 완벽정리★ 독도는 우리땅 1탄! 역사적 증거 모음 –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주제에 대한 세부정보를 참조하세요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독도의 날 기념,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정리해드림(세줄요약 있음)
어떤 외국인이 “독도가 한쿡땅이 마촤욜?” 하고 물어온다면? 독도는 분명 우리땅인데, 생각나는 건 ‘울릉도 동남쪽 뱃길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하나 …
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12/2022
View: 9924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팩트체크 – 효성 블로그
울릉군에 속해 있는 우리 땅 독도는 지리적으로도 우리 땅인 근거가 명확한데요.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오키섬) 사이의 거리는 157.5km로 일본 …
Source: blog.hyosung.com
Date Published: 1/10/2022
View: 2539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방법 –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독도의 날에 돌아본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나라의 영토 독도, 하지만 독도를 향한 일본의 도발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6년 2월 …
Source: www.korea.kr
Date Published: 1/19/2022
View: 8372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 독도는? [지리적으로]. 예로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 …
Source: if-blog.tistory.com
Date Published: 8/27/2022
View: 8903
[두유노우] 10월 25일 ‘독도의 날’..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독도가 우리땅임을 밝히는 사료가 많음에도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계속돼 왔다. 이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도 수호 활동은 다방면으로 계속되고 있다.
Source: www.fnnews.com
Date Published: 3/19/2021
View: 3501
독도가 한국땅인 이유를 분명히 알자 – 대구신문
독도 특강을 나가면서 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3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해주곤 한다. 첫째, 울릉도에서 독도는 가시거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 …
Source: www.idaegu.co.kr
Date Published: 6/9/2022
View: 6082
자료실 :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7가지 – 안화초등학교
1.삼국사기 (1145년 편찬) :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우산국(을릉도)를 정복해 신라에 귀속시켰음” 기록 …
Source: www.anhwa.es.kr
Date Published: 5/10/2021
View: 2214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근거)
울릉군에 속해 있는 우리 땅 독도는 지리적으로도 우리 땅인 근거가 명확하다.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오키섬) 사이의 거리는 157.5km로 일본 …
Source: rk1993.tistory.com
Date Published: 4/20/2022
View: 4249
주제와 관련된 이미지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주제와 관련된 더 많은 사진을 참조하십시오 [선넘녀 하이라이트] ★설민석쌤 완벽정리★ 독도는 우리땅 1탄! 역사적 증거 모음. 댓글에서 더 많은 관련 이미지를 보거나 필요한 경우 더 많은 관련 기사를 볼 수 있습니다.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 Author: MBCentertainment
- Views: 조회수 232,171회
- Likes: 좋아요 2,058개
- Date Published: 2020. 8. 20.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a-KnfWBDbRY
독도의 날 기념,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정리해드림(세줄요약 있음)
독도에 대한 기록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삼국사기』(512)입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의 이찬(伊飡) 이사부(異斯夫)가 우산국을 정벌했다는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1454)에는 “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외에도 『신증동국여지승람』(1531),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각종 고문헌에서 우산국(독도)이 조선의 영토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편, 『은주시청합기』(1667년), 「대일본연해여지전도」(1821년), 「개정일본여지로정전도」(1779년 초판) 등 일본의 고문헌이나 고지도에는 독도에 대한 표기가 없거나,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 팩트체크
10월 25일은 독도의 날입니다. 고종황제가 1900년 10월 25일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는데요.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강력한 독도수호 의지를 세계 각국에 드러내기 위해 2010년,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아 독도의 날을 선포하였어요.
올해 일본 정부는 초∙중등생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과 학습지도요령에 ‘2020년부터 일본 교사는 학생들에게 의무적으로 ‘다케시마는 일본 땅’이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명시했는데요. 일본의 이런 태도를 결코 좌시할 수만은 없겠죠?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고유의 영토입니다. 독도에 대한 영유권 분쟁은 존재하지 않으며, 독도는 외교 교섭이나 사법적 해결의 대상이 될 수 없어요. 일본의 영유권 야욕으로부터 독도를 수호하기 위해서는 독도가 우리 땅임을 당당히 이야기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근거가 필요하겠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꼭 알아둬야 할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정리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지리적 근거
독도는 경위도 상으로는 북위 37도 14분 18초와 동경 131도 52분 22초 지점에 있는 섬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에 소속되어 있고, 대한민국의 가장 동쪽에 있는 영토입니다.
사진: 구글 지도
울릉군에 속해 있는 우리 땅 독도는 지리적으로도 우리 땅인 근거가 명확한데요. 독도와 가장 가까운 일본 영토(오키섬) 사이의 거리는 157.5km로 일본에서는 독도를 볼 수 없지만, 울릉도와 독도 사이의 거리는 87.4km로 맑은 날이면 육안으로 독도를 확인할 수 있어 역사적으로 독도는 울릉도의 일부로 인식됐습니다.
조선 초기 관찬서인 『세종실록지리지』(1454년)에도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요. 기록만 있을 뿐 실측한 기록이 없어 지난 2008년 7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울릉도 주민을 중심으로 독도를 상시 관측하기도 했어요. 그 결과, 월평균 3~4회 이상 독도를 볼 수 있었는데 해무가 많이 끼는 여름보다 찬바람이 부는 가을이나 봄에 더 잘 보였다는 결과를 얻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더욱 가깝고 맨눈으로 충분히 확인 가능한 독도는 우리나라 땅임이 분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역사적 근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근거 또한 많습니다. 독도는 6세기 초엽(512년) 신라가 복속한 우산국의 영토라고 기록하고 있으므로, 독도에 대한 통치 역사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독도는 신라의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를 정복한 뒤 지금까지 줄곧 우리의 땅이었지요.
그런데 17세기 말부터 일본이 독도를 포함한 울릉도를 욕심내며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어요. 조선은 그런 일본과 3년 동안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고, 결국 일본은 1696년에 독도가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했었는데요.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어요. 1693년 어부 안용복이 울릉도에서 어업 행위를 하다, 조업권을 사이에 두고 일본인과 실랑이가 붙어 일본 본국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호키(伯耆)州 태수에게 조선인이 조선 영토에 갔는데 무엇이 문제냐며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이로 인해 에도 막부가 그를 조선으로 돌려보냈고, 1695년 12월 25일 돗토리번에 대한 조회를 통해 “울릉도(죽도)와 독도(송도) 모두 돗토리번에 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돗토리번 답변서), 1696년 1월 28일 일본인들의 울릉도 방면 도해를 금지하도록 지시하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기록은 많이 남아 있는데요. 『세종실록지리지』(1454년)는 울릉도(무릉)와 독도(우산)가 강원도 울진현에 속한 두 섬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독도에 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1531년),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다른 관찬 문헌에서도 일관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신찬조선국전도(1894년)
또한, 일본에서 만든 『신찬조선국전도(1894년)』에도 독도와 울릉도가 한반도와 같은 색인 노란색으로 그려져 있어요. 즉 일본이 ‘독도는 조선의 땅’이라고 인정하는 지도라고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프랑스에서 만든 『조선왕국전도』, 일본에서 만든 『삼국접양지도』 등 독도가 일본의 땅이 아닌, 우리의 땅임을 나타내는 옛 지도와 자료가 많이 있어 역사적으로도 독도가 우리 땅임을 분명히 할 수 있습니다.
‘독도는 우리 땅‘ 국제법적 근거
조선이 대한제국으로 바뀐 후에도 우리나라는 독도에 대한 주권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1900년 「칙령 제41호」를 통해 울도군의 관할 구역을 “울릉전도 및 죽도, 석도(독도)”로 명시한 것이죠. 이로 인해 국제적으로도 독도는 한국 영토로 공표가 되었어요.
칙령 제41호(1900년)
이후 일본이 러일 전쟁 중에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시마네현 고시 제40호를 통해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한다고 공표했는데요. 일본은 이를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국제법적 근거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당시 대한 제국 정부는 그에 맞서서 독도가 우리의 땅임을 다시 확실히 밝혔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형편이라 이 문제를 바로잡기란 어려운 일이었지요. 이는 명백한 주권 침탈 행위이며, 그로 인해 획득하였다고 주장한 영토는 국제법적으로 무효입니다.
독도가 일본의 시마네현에 강제편입 되기 전 1902년 대한제국 내부대신이 울도 군수 배계주에게 내린 공식문서인 ‘울도군 절목’에는 울릉도에 출입하는 모든 화물에 세금을 받으라는 운영세칙이 담겨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일본인들은 독도에서 잡은 강치(물개의 일종)를 울릉도에 가져와 수출했다는 사실이 일본 외무성의 기록에 남아있는데요. 일본인들이 독도에서 잡은 강치에 대한 수출세를 울도 군수에게 납부했다는 것은 대한제국의 행정력이 독도에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는 자료입니다.
또 하나 일본이 주장하는 것은 1951년 체결된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에서 독도는 일본 영토가 됐다는 것인데요.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결정하기 전, 연합국 합의에서 독도는 한국 영토로 정확하게 기재돼 있었습니다. 조약상 독도 지명이 한국 영토에서 빠진 건 사실이지만 그것은 울릉도가 기재됐기 때문에 울릉도에 속한 섬으로서 기재가 생략됐던 것이죠. 그리고 연합국 중 영국, 호주, 뉴질랜드가 독도는 한국 영토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는데요. 미국이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시키려고 했던 부분이 없지 않아 있긴 했지만, 일방적인 견해를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 전체 견해인 것처럼 일본이 주장하는 것은 악질적인 왜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의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근거와 더불어 우리나라는 실질적으로 독도에 주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찰이 주재하여 독도를 경비하고, 우리 군이 독도 영해와 영공을 수호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종 법령이 독도에 적용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등대 등 여러 가지 시설물을 설치, 운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민이 독도에 거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가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에게 독도는 당연히 우리 땅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만 앞세우기보다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도 인정받을 만한 증거를 찾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우리 땅임을 밝히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독도의 날을 맞아 다시 한번 독도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바랍니다.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방법
너무나도 당연한 우리나라의 영토 독도, 하지만 독도를 향한 일본의 도발은 끊이질 않고 있다. 2016년 2월 22일, 올해도 일본은 자칭 ‘다케시마의 날’ 행사를 진행했다. 일본은 너무도 당연한 대한민국 영토를 분쟁지역으로 바꾸려는 시도를 펼치고 있고, 터무니없는 몇 가지 주장을 가지고 세계 여론을 왜곡된 방향으로 형성하려 하고 있다.
독도.(출처=사이버 독도)
독립기념관(관장 윤주경)은 10월 25일 ‘독도의 날’을 하루 앞둔 24일 우리나라의 독도영토주권을 명기한 1912년판 일본 중학생들을 위한 교과용 지리부도 ‘최근 일본지도’와 아사히그래프 45권 1호 등 한반도와 부속 도서, 일본을 표기한 지도 2점을 확보해 일반에 처음 내놓았다. 독도가 우리 땅임이 당연하다고 여기기만 해선 안된다. 이제 우리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확히 알아야 한다. ‘독도의 날’을 맞아
독도가 우리 땅인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 근거와 일본의 왜곡된 주장, 그에 대한 반박에 대해 소개하려 한다.
역사적 증거
‘신증동국여지승람’(출처=외교부)
‘동국문헌비고’의 독도 언급부분.(출처=외교부)
512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울릉도)을 점령했을 때부터 독도는 한국 영토로 인식돼왔다. 우리나라의 많은 정부 문헌을 보면 독도에 관한 많은 기록을 찾을 수 있다.『세종실록』 「지리지」(1454년) 『신증동국여지승람』 (1531년) 『동국문헌비고』 (1770년) 『만기요람』 (1808년) 『증보문헌비고』(1908년) 등 모두 독도를 언급하고 있으며, 이는 옛날부터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통치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지리적 증거
독도에서 가장 가까운 우리나라의 울릉도까지의 거리는 약 87.4km인 반면에 일본 오키섬과의 거리는 157.5km나 된다. 또한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일 정도이다. 실효적 지배도 대한민국이 하고 있으니 지리적으로는 말할 여지도 없이 우리 땅이다.
국제법적 증거
1 SCAPIN1 677호를 보면 독도가 한국영토에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출처=외교부)
1900년, ‘독도는 울릉군에 속한 땅이므로 울릉군은 울릉도와 석도(독도)를 다스린다’는 내용을 담은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발표로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또한, 1946년 1월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일본의 정의』를 통해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했고, 6월 발표된 연합국최고사령관 각서 제1033호도 일본의 선박 및 일본 국민의 독도 또는 독도 주변 12해리 이내 접근을 금지했다.
발표 당시, 연합국의 결정을 수정하려면 다른 지령이나 공포가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였으나 이후 다른 지령이나 협정이 없었으므로 국제법적으로도 대한민국이 독도 영유권을 갖고 있다. 게다가, 눈에 보이고 주민이 일정하게 생활 및 경제활동을 한 공간은 국제법적으로 부속도서로 인정하고 있는데 독도는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있기도 하다.
자, 이제 일본이 독도가 자신들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세 가지 이유를 살펴보자.
1. 일본은 자신들이 1600년대부터 독도를 먼저 발견하고 이용해 왔었다?
세종실록 ‘지리지’의 독도 언급부분.(출처=외교부)
우리나라는 512년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과『세종실록』「지리지」(1454년)만 봐도 이보다 먼저 독도를 우리 영토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일본에서도 독도를 한국 땅이라고 인정하는 자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4가지만 살펴보자.
‘은주시청합기’는 시마네현 동부 지방 관료였던 사이토 도요노부가 저술한 책이다.(출처=외교부)
독도에 관해 기술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일본 문헌의 하나인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1667년) 를 보면 일본의 서북쪽 경계는 오키섬이며, 독도는 일본의 영토에서 제외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일본의 고지도중 하나인 ‘개정일본여지로 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출처=외교부)
일본 정부가 자국의 독도 영유권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개정일본여지로 정전도(改正日本輿地路程全圖)」(1779년 초판)를 봐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1693년, 울릉도를 둘러싸고 조선과의 외교분쟁이 발생하자, 1695년 12월 24일 일본 에도 막부는 돗토리 번(鳥取藩)에 문서를 보내 울릉도가 돗토리 번에 속하는지와 돗토리 번에 속하는 다른 섬은 없는지 문의했다. 이에 대해 돗토리 번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님을 밝혔다.
1 태정관 지령(왼쪽)과 울릉도 약도에 그려진 독도.(출처=외교부)
메이지 시기, 일본 내무성은 토지 기록부 편찬사업에 울릉도와 독도를 포함시켜야 하는지에 관해 당시 일본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太政官)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1877년 3월 태정관은 에도 막부와 조선 정부 간 교섭 결과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소속이 아님이 확인되었다고 판단하고, ‘다케시마(울릉도) 외 일도(一島: 독도)의 건에 대해 본방(本邦, 일본)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무성에 내리는데, 이를 「태정관 지령」이라 한다.
2. 독도는 주인이 없는 땅이며, 따라서 1905년 독도를 일본에 편입시킨 日 내각회 결정이 정당하다?
대한민국 칙령 41호에 언급된 독도.(출처=외교부)
이미 1900년에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발표로 조선의 독도 영유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또한 512년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했을 때부터 독도는 우리 땅으로 인식되어왔고, 위에 언급했던 다양한 고문서들이 이를 증명한다.
간혹 이사부 장군이 우산국을 정벌할 때 우산국에 독도를 편입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육안으로도 보이는데 우산국에서 독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리 없고, 이사부의 우산국 점령 후 우산국은 매년 신라에 토산물 조공을 바쳤다.
‘우산도에서 몇 가지 약초와 함께 수우피 등을 바쳤다’ 라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독도가 우산도(울릉도)의 생활권이었다는 증거가 된다. 수우피는 당시 바다사자, 물개 가죽을 뜻하며 바다사자와 물개의 주 거주지는 독도이기 때문이다.
3.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독도가 직접적으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에 독도가 일본이 권리를 포기하는 영토에 포함되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을 공식적으로 종료시킨 1951년 9월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에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라는 조항이 있다. 이는 한국의 3000여 개의 도서 가운데 대표적인 큰 섬들을 예시적으로 적은 것이다. 게다가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 종전 후 연합국 사령관의 각서를 봤을 때도 일본에서 분리되는 한국의 영토에는 당연히 독도가 포함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독도는 명백한 대한민국의 영토이다.(출처=외교부)
이처럼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은 너무도 당연하기에 그 근거를 일일이 말하기엔 입이 아플 정도이다. 반면에 일본의 주장은 이토록 부실하고 터무니없으니 이런 근거를 가지고 혹여 주위에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헛소리를 하는 이가 있다면 조목조목 반박해주자.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이니까 말이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홍정의 [email protected]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국내외 문헌자료로 보다!
■ 독도는?
[지리적으로]예로부터 울릉도 주민들은 자연스럽게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도서로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서는 “울릉도와 독도,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울릉도에서 독도를 바라볼 수 있는 주요 관측 지점(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울릉도 사동 새각단에서 바라본 독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독도에서 바라본 울릉도(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역사적으로]독도가 대한민국의 고유영토라는 사실은 『삼국사기』, 『팔도총도』등 다수의 옛 문헌과 지도에서 확인되고 있습니다. 『만기요람』에는 “독도가 울릉도와 함께 우산국의 영토였다”고 기록 되어 있고, 과거 일본 정부도 독도가 우리 한국의 영토라는 것을 인정하는 문건이 여러차례 발견되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1877년 3월 당시 일본의 최고 행정기관인 태정관에서 “울릉도 외 1도(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기록된 문건이 발견되었을 만큼 독도와 관련된 주권에서 일본은 전혀 관계가 없음을 일본 정부 스스로가 인정하였습니다.
[국제법상으로]1900년 10월 대한제국은 칙령 41호를 통해 울도군수가 독도를 관할할 것을 공포하여 우리 영토 주권을 더욱 확고히 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일본이 폭력과 탐욕으로 탈취한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되어야 한다는 카이로 선언에 따라 독도는 당연히 대한민국 영토로 회복되었습니다. 또한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각서 제 677호에 따라 독도는 통치 및 행정상 일본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이러한 연합국의 입장을 재확인하였습니다.
따라서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영토입니다.
■ 독도의 명칭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독도’라는 명칭이 처음 등장하는 문서는 1904년 일본 군함 니타카 호의 항해 일지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곳에서 “한인은 리앙코루도암을 ‘독도’라고 쓰며, 일본 어부 등은 생략하여 ‘랑코도’라고 호칭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서 중에는 1906년 심흥택 울릉군수의 보고서에 “본군 소속 독도가……”
라는 내용으로 처음 등장합니다. 그 이전에는 우산도, 가지도, 자산도, 석도 등의 이름으로 문서와 지도상에 나타나 있습니다.
울릉도 주민들은 한때 이 섬을 ‘독섬’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돌섬’을 의미하는 사투리입니다. ‘독도’라는 명칭은 바로 ‘독섬’의 음을 취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입니다.
[독도의 옛 이름]명칭 유래 우산도 ‘우산’은 울릉도에 있었던 고대 소국 우산국에서 비롯된 명칭으로, 독도의 이름으로 가장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가지도 ‘가지도’는 물개가 많이 살고 있는 섬이라는 뜻이다. ‘가지’란 물개의 일종인 강치의 우리말 ‘가재’를 한자로 음역하여 부른 것으로, 독도에 강치가 많이 서식한 데서 유래했다. 독도의 서도 북서쪽으로 ‘가제바위’라 불리는 바위도 있다. 석도 ‘석도’라는 명칭은 1900년 ‘대한제국 칙령 제41호’에 등장한다. 이는 돌섬을 의미하는 ‘독섬’의 뜻을 취하여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외국의 독도 명칭]오늘날 일본이 독도를 지칭하는 ‘다케시마’라는 명칭은 1905년 일본의 독도 영토 편입 조치에서 처음 등장하게 됩니다. 당초 일본인들은 독도를 ‘마쓰시마’라고 불렀고,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불렀습니다.
19세기 중반 이후에는 독도를 ‘랑코도’ 또는 ‘리양코루토 암”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렀습니다. 이 명칭은 ‘리앙쿠르암’에서 온 말로, ‘리앙쿠르’는 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 리앙쿠르 호의 이름입니다. 서양인들은 독도를 ‘리앙쿠르 암’이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한때 영국인은 ‘호넷 암’, 러시아인은 독도의 동도를 ‘메넬라이’, 서도를 ‘올리부차’라고 불렀습니다. 모두 독도를 발견한 선박에서 비롯된 이름입니다.
[자료출처: 동북아 역사재단]
[두유노우] 10월 25일 ‘독도의 날’..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
“독도는 우리땅”의 역사적 증거 밝혀와
일본 억지 영유권 주장.. 대한민국 독도 수호 활동 계속
‘삼국사기’∙‘칙령 제41호’ 등.. “독도는 우리땅”의 증거
일본 억지 영유권 주장.. 대한민국 독도 수호 활동 계속
[파이낸셜뉴스] 10월 25일 독도의 날이다. 독도가 우리 땅임을 알리고 수호 의지를 밝히기 위해 제정한 날이다.독도가 우리땅임을 밝히는 사료가 많음에도 일본의 영유권 주장은 계속돼 왔다.이에 맞서 대한민국의 독도 수호 활동은 다방면으로 계속되고 있다.독도가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의 섬이었다는 근거를 고문서∙고지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였다.” (‘삼국사기’ 中)“우산(독도)과 무릉(울릉도)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 中)이에 더해 우리나라 고지도 ‘팔도총도’에서 독도와 울릉도가 한반도 오른쪽에 그려져 있다.뿐만 아니라 1877년 일본 최고 국가기관 태정관은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 영토가 아니라는 내용의 공식 문서를 한국에 전달한 바 있다.이후 1900년 10월 25일 고종은 칙령 제41호를 통해 독도를 울릉도의 부속 섬으로 명시하고 독도가 우리 땅임을 확실히 밝혔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총사령부의 각서에서도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범위에서 제외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반박할 수 없는 역사 기록이 남아있음에도 일본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일본 검정교과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왜곡된 내용을 포함하고, 국가 홈페이지에 억지 영유권 주장을 게시한 것이 그 예다.이에 맞서 1953년 독도를 지키기 위해 결의한 민간 독도 수비 조직 ‘독도의용수비대’가 출범했다.이후 1956년 울릉경찰서 소속 독도 경비대가 독도의용수비대의 역할을 이어받아 현재까지 밤낮없이 독도를 지키고 있다. 이들의 역할은 첨단 장비를 이용해 해안경계를 하며 영해를 침범하는 외부세력을 저지하는 것이다.또한 우리 영토임을 확실히 굳히기 위해 1965년 故최종덕씨가 독도에 첫 주민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외교부에 따르면 현재 (지난 6월 기준) 독도 경비대원 33명, 등대관리원 3명, 독도관리사무소 직원 2명 등 약 40명이 독도에 거주하고 있다.특히 올해는 대한제국 칙령 제41호 반포 120주년을 맞아 독도의 날의 의미가 더욱 돋보인다. 이를 기념해 독도의 날을 널리 알리기 위한 각종 캠페인과 행사가 진행 중이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독도가 한국땅인 이유를 분명히 알자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두고 언제까지나 감정적으로 대응할 것이 아니라,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독도 특강을 나가면서 늘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이유를 3가지로 요약해서 설명해주곤 한다.
첫째, 울릉도에서 독도는 가시거리에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종실록’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역사적 기록에서도, ‘동해에 두 섬이 있는데, 이 두 섬은 서로 멀지 않아 바람불고 맑은 날이면 서로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울릉도에서 독도까지의 거리는 불과 87km인데 일본의 가장 가까운 섬 오키에서는 160km로 배를 타고 100km나 와야지 독도를 볼 수 있는 거리이다. 이론적으로는 울릉도의 80m이상의 지점에서 독도가 관측된다고 한다. 대개 비온 다음날이나 옛기록처럼 바람 부는 청명한 날에 독도가 관측되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울릉도 주민들이 눈앞에 보이는 섬 독도를 그들의 생활공간으로 삼았음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둘째, 역사적으로 언제부터 독도를 인지했느냐는 사실이다. 우리의 역사기록에서 독도가 우산도라는 명칭으로 처음 등장하는 것은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이다. 그 이전부터 이미 독도를 인지하고 있었을지라도 역사기록에서 이것이 최초이다. 그런데 일본의 고문서에서는 사이토 호센이 편찬한 ‘은주시청합기(隱州視聽合記)’(1667)에서 송도(松島, 마츠시마)라는 이름으로 처음 등장한다. 즉 독도에 대한 역사적 인지가 우리나라의 기록이 적어도 213년 앞선다는 사실이다. 게다가 ‘은주시청합기’ 에서는 일본의 서북한계를 이 오키섬(隱岐島)까지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오키섬보다 서북에 있는 독도는 일본의 영역에서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일본 메이지정부의 공식문서에서 울릉도와 독도가 일본의 영역이 아니다. 다시 말해 조선의 영토임을 천명한 사실이다. 근대국가로 발돋움을 한 일본 메이지정부의 내무성은 지적편찬을 하면서 시마네현의 서북쪽 해상에 위치한 울릉도와 독도를 시마네현 영역에 포함시킬 것인지 어떤지를 검토하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시마네현에 문의하여 각종 사료와 관계서류 등을 조사하였다. 당시는 제국주의의 대륙진출을 위해 울릉도를 탈취하고자 ‘죽도개척원’, ‘송도개척원’등이 분분하게 등장하던 시기였다. 시마네현과 정부의 자료들을 내무성, 외무성 등이 검토하였고 최종적으로 당시 메이지정부의 최고 결정기관이었던 태정관이 ‘죽도외일도(竹島外一島)’ 즉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의 판도(영역)가 아니므로 주의하라’는 ‘태정관지령’을 내려서 영역문제에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대통령의 독도방문으로 오히려 일본의 ‘독도 분쟁지역화’ 의도에 부채질을 해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독도 영유권 문제에 대한 한국정부의 장기적 로드맵과 전략 및 전술 그리고 목표는 명확히 정립하고 행동으로 나타내고 있는지 솔직히 걱정과 의구심이 앞선다. 대다수의 국민들처럼 감정적 대응이나 정략적 수단으로 독도에 대응하는 것은 국익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 우리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근거를 명확히 설명할 줄 알아야 하고, 정부는 일본의 치밀한 도발에 대해 철저한 로드맵과 대응전략을 가져야 한다. 또한 연구자는 독도에 대한 일본의 왜곡논리와 허구성을 사료를 통해 치밀하게 밝히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독도에 관한 많은 일본측 자료들을 새로 발굴하고 이를 꼼꼼히 분석하여 일본의 논리를 무력화해야 한다.
자료실 : 독도가 우리땅인 이유7가지
1.삼국사기 (1145년 편찬) : “지증왕 13년(512년)에 이사부가 우산국(을릉도)를 정복해 신라에 귀속시켰음” 기록
독도는 신라시대에 울릉도와 더불어 우산국을 형성하였습니다. 우산국은 신라 지증왕 13년 (512년) 신라에귀속하여 왔는데, 그 이후 계속 고려와 조선을 거쳐 현재까지도 우리나라의 관리 하에 있는 섬으로 예부터 우리나라의 섬이였습니다.
(우산국이란? 우산국은 삼국시대에 울릉도와 부속섬을 다스리던 나라를 의미합니다.)
2. 고려사 (1414년 편찬) : “고려 의종 때 김유립이 을릉도를 현지 답사함” 이것은 실제 이쪽부근이 우리땅임을 입증시킴
3. 세종실록지리시 (1432년 편찬) : “우산(독도)과 무릉(을릉도)의 두섬은 울진현의 동쪽 바다 가운데 있고 두섬은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날씨가 청명하면 바라볼수 있도” 라고 표기
4. 신증동국여지승람 (1531) : 독도 기술
5. 성종실록, 숙종실록, 동국문헌 :독도 기술
6.안용복 사건을 계기로 도쿠가와 막부에서 을릉도와 독도가 조선땅임을 인정하고 일본어부들에게 월경을 금지 시킴(1699년 외교문서)
숙종 때 안용복이라는 사람이 몇 명의 군졸들과 함께 독도에서 불법 어업을 하고 있는 일본인들을 몰아내고 쓰시마섬의 성주에게 독도와 울릉도는 우리땅이라는 서명을 받아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7. 삼국통람도설 (1785 일본 하야시 시헤이 편찬) : 독도는 조선땅이라것을 표시
키워드에 대한 정보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다음은 Bing에서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주제에 대한 검색 결과입니다. 필요한 경우 더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기사는 인터넷의 다양한 출처에서 편집되었습니다. 이 기사가 유용했기를 바랍니다.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선넘녀 하이라이트] ★설민석쌤 완벽정리★ 독도는 우리땅 1탄! 역사적 증거 모음
- 선을 넘는 녀석들
- 일요예능
- 설민석
- 전현무
- 유병재
- 김종민
- 정유미
- 독도
- 울릉도
- 1주년특집
YouTube에서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주제의 다른 동영상 보기
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넘녀 하이라이트] ★설민석쌤 완벽정리★ 독도는 우리땅 1탄! 역사적 증거 모음 | 독도 가 우리 땅 인 이유 요약,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