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 약력 | [주일설교]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기도” [출 3:4-14] – 강준민 목사 (05.29.22) 315 개의 새로운 답변이 업데이트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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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의 이력 – 다음블로그

회 목회자로 잘 알려진 강준민 목사는 현재 LA 동양선교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중에 있다. 저서로는 “독서와 영적성숙”, “자아 발견과 영적 성숙”, “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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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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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이 ×××들아, 이게 교회야?” – NEWS M

12월 14일 열린 동양선교교회(강준민 목사) ‘2009년 공동회의’ 현장에는 고성과 야유, 삿대질과 욕설이 난무했다. 3부 예배 직후 강준민 목사가 20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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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m.com

Date Published: 9/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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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의 아주 위험한 성공 – 뉴스앤조이

강준민 목사가 ‘영성목회의 대가’에서 ‘교회개혁의 선봉’으로 변신했다. 그가 말하는 ‘영성’과 그가 추진하는 ‘개혁’이 어떤 모습으로 결합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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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8/1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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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Rev. Choon-Min Joshua Kang 姜俊旻 – 한인역사박물관

현직 :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 / 전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 생년월일 : 1957년 2월26일 미국에 온 연도 : 1982년 전화 : (323)373-0110. Fax : (323)373-0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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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ahistorymuseum.org

Date Published: 4/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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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의 영성 개념은 너무 비성경적 – 바른믿음

강준민 목사는 그날의 강의에서 목회자들에게 마음관리, 시간관리, 분노관리, 변화와 갈등관리, 유혹관리, 언어관리, 정체성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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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good-faith.net

Date Published: 4/2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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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강준민 목사, 차로 6분 거리에 교회 개척? – 드림투게더

“강준민 목사가 교회를 ‘개척’했다. 동양선교교회를 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사퇴 직후부터 언왕설래했던 ‘개척설’이 사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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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dreamtogether.com

Date Published: 10/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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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칼럼] 나이가 들어가는 기쁨 – 기독일보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제게 있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기쁨입니다. 한 때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조금 서글펐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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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r.christianitydaily.com

Date Published: 9/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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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 두란노몰

이름, 강준민 ; 직함, 목사 ; 내용. 말씀 묵상의 목회자요 기도하는 사람인 저자는 흔들리는 상황에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확신을 붙들며 살고 있다. 지금처럼 혼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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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4/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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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선교교회 3년 분쟁 ‘시작부터 결말까지’ – sundayjournalusa

사임한 강준민 목사는 지난 8일 주일예배 시간에 신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통해 “모든 책임이 나에게 있다”면서 … Choon Min Joshua Kang)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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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sundayjournalusa.com

Date Published: 9/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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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 패소 –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미국 LA 동양선교교회 강준민 목사가 LA 지방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LA 지방법원(판사 에이미 호그)은 지난달 30일(현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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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kmib.co.kr

Date Published: 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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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설교]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기도” [출 3:4-14]  - 강준민 목사 (05.29.22)
[주일설교]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기도” [출 3:4-14] – 강준민 목사 (05.29.22)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강준민 목사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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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력 및 저서소개

서울 신학대학(B.A.)과 아주사 신학대학원(Azusa Pacific University, M.A./ M.Div.), 탈봇 신학교

(Talbot Theological Seminary, Th. M.)를 졸업하고, KOSTA(국제 복음주의 학생 연합회)와 미주 두

란노서원의 큐티세미나 강사를 지냈으며, 월드 미션 신학교에서 기독교의 영성과 목회 지도력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

1989년 인격목회와 영성목회를 지표로 한인교회인 미국LA 로고스교회를 개척하여 미국은 물론 한국

에도 은은한 영향력을 나타내는 교회로 성장시켰다. 현재 베스트 셀러 작가로 또한 성공적인 이민 교

회 목회자로 잘 알려진 강준민 목사는 현재 LA 동양선교교회 담임 목사로 시무중에 있다.

저서로는 “독서와 영적성숙”, “자아 발견과 영적 성숙”, “뿌리 깊은 영성”, “뿌리 깊은 영성으로 세워

지는 교회”가 있고 존 맥스웰의 “당신 안에 잠재된 리더십을 키우라”(이상 두란노)를 번역하였다.

말씀에서 비롯되는 영성목회

비전의 리더십, 꿈꾸는 목회자 강준민 목사는 역사를 변화시킨 영적 리더십과 뿌리깊은 영성을 탐구

하면서 그 근본에는 말씀이 있음을 찾아냈다. 말씀 묵상이야말로 삶을 변화시킬 수있는 은혜의 수단

이자 해결책이다. 또한 깊은 영성세계를 접하기 위해서는 영성훈련이 핵심요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강준민 목사의 목회 철학은 그의 저서가 말해주듯 영성목회에 있다. 그는 영성이라는 단어가 함축하

듯 영성목회는 외면적인 화려함보다는 내면의 변화에 초점을 두어 그리스도와의 깊은 교제를 통해

내면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는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뿌리에 있다. 겉으로 화려해 보이고, 성장하고

있는 것 같지만 내면은 공허하고, 뿌리는 병들어 있는데 우리가 내려야 할 뿌리는 예수님이시다.

또한 목회자가 속이 차기도 전에 무엇인가를 성도들에게 주려하지 말고 목회자의 내면세계가 충만한

가운데 성도들에게 나누어주어야 한다. 따라서 영성목회는 예방목회이다. 성도들이 저수지같이 은혜

의 샘이 마르지 않도록 영혼 관리를 하고 가르쳐야 한다. 말씀 묵상을 통해서 내면세계의 질서를 잡

고, 내적 충만하도록 도와주는 것, 말씀 안에서 스스로 해결책을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바로 예방목

회이자 영성목회인 것이다.

세상을 변화시키기 원한다면 먼저 자신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참다운 변화는 무엇에서 비롯

되는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력이 있고 운동력이 있으며, 창조력과 시험

을 이길 성령의 검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하고, 스스로

영적 성숙에 이르지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불변하는 말씀 가운데에 뿌리를 두지 못하고

말씀 가운데 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영성목회, 인격목회를 통해 진정한 부흥을 추구하는 그의 영성관이 생존지향적이고 외면지향적 삶

에 익숙해진 한국교회에 던져주는 메시지에 귀기울여야 할 때다.

“야, 이 ×××들아, 이게 교회야?”

욕설과 몸싸움으로 얼룩진 LA 동양선교교회 공동회의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12월 14일 열린 동양선교교회(강준민 목사) ‘2009년 공동회의’ 현장에는 고성과 야유, 삿대질과 욕설이 난무했다.

3부 예배 직후 강준민 목사가 2009년 공동회의 개회를 선언했다. 반대 측 교인 중 한 명이 발언을 요청했고, 강 목사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회의를 진행했다. 곧이어 제직 선출 투표 후 검표를 위해 청년부 회원들이 강단에 오르자 반대 측 교인들은 “뭐 하는 짓이야”고 소리를 지르며 강단에 올라갔다.

▲ 반대 측 교인이 강단에 올라가 강준민 목사에게 따지고 있다.

▲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교인들.

▲ 몸싸움이 벌어져 예배당은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 반대 측 교인들이 강 목사에게 항의하며 강단으로 올라오자, 강 목사 측 교인들이 강 목사를 둘러쌌다.

이 과정에서 교인들 중 일부는 반말과 욕설을 여과 없이 내뱉었다. “야, 이 ×××들아, 이게 교회야?”, “내려가”, “이거 안 놔? ××야”, “안 내려가면 어떡할래?” 반대 측 교인들이 단상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며 공동회의를 중단시키자, 교인들은 일제히 야유를 보내며 “내려와”를 연창했다. 나이 많은 교인들은 강대상 한복판에 드러누워 시위를 벌였다.

일부 교인들은 강 목사에게 다가가 “니가 목사냐”고 삿대질하며 소리를 쳤고, 강준민 목사는 곤혹스런 표정으로 강단에 서 있었다. 젊은 교인들이 강 목사를 둘러쌌고, 양측 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급기야 경찰과 구급차까지 출동했고, 2명은 쓰러져 들것에 실려 나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간지 사진기자가 폭행당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 강단에 올라가 교인들에게 소리치는 반대 측 교인.

▲ 몸싸움하는 과정에 쓰러져 누워 있는 한 교인.

▲ 반대 측 교인들에게 야유를 보내며, “내려와”를 연호하는 교인들.

몸싸움과 말다툼으로 난리 법석이 난 가운데, 찬양 반주가 흘러나왔고, 교인들은 강단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반주에 맞춰 박수치며 찬양했다.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는 찬양에 묻혔다. 카메라맨은 강단까지 직접 내려와 실시간으로 몸싸움을 생중계했다. 반대 측 교인들의 얼굴을 일일이 비추면서, 화면 하단에 자막으로 이름까지 넣어주고, 교인들은 이를 보며 야유를 보냈다. 강 목사를 향한 교인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강 목사가 강단 옆 출구로 잠깐 몸을 피했다.양측 간의 신랑이가 25분 동안 계속됐고, 급기야 경찰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다. 경찰은 반대 측 교인들을 향해 강단에서 내려와 회의장 밖으로 나갈 것을 요구했고, 교인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강 목사는 다시 공동회의를 속개했다. 권사 및 안수 집사 투표와 표결이 있었고, 개표하는 동안 동양선교교회가 준비하고 있는 재정 감사 시스템과 자체적으로 개발한 전산화 행정 시스템에 대한 소개가 있었다.

▲ 강 목사를 향한 교인들의 항의가 계속되자, 강 목사가 강단 옆 출구로 잠깐 몸을 피했다.

▲ 양측 간의 신랑이가 25분 동안 계속됐고, 급기야 경찰이 나서서 사태를 수습했다.

▲ 경찰에 의해 들것에 실려나가는 반대 측 교인. 뒷편 대형 스크린에는 교인의 모습과 이름이 나와 있다.

이어 재정 담당 장로의 2008년 결산 보고와 2009년 지출 예산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 결산 보고 도중 변호사 비용에 얼마나 썼냐는 질문이 나왔고, 이에 담당 장로는 “(변호사 비용이) 100만 불 들었다는 소문도 있는데, 숫자적으로 100만 불에 10/1도 안 되게 썼다”고 답변했다.

순서마다 반대 측 교인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발언을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회를 보는 강 목사는 질문은 끝난 뒤 받겠다며 회의를 진행했다. 결국 반대 측 교인들은 발언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경찰에게 요청했고,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3분 동안 발언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적지에 혼자 있는 기분이다. (야유) 지금 참담한 심정이다. 이런 혼란이 벌어진 원인은 단 하나다. 3년 전에 주차장 구입 부정 매입 사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야유) 한쪽에서 덮으려고 하고, 다른 쪽에선 밝히려고 하면서 일이 이렇게 됐다. 우리의 헌금으로 나온 100만 불이라는 돈이 잘못 쓰인 것을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몰라도 돼.)”

▲ 몸싸움 과정에서 쓰러진 교인을 구급 요원이 살펴보고 있다.

3분이 되자 마이크가 꺼졌다. 이어 강 목사 측 교인이 발언권을 얻어 나왔다. 이 교인은 반대 측 교인들이 예배를 방해한다며 제명을 요청했다.

“담임목사의 퇴임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주일예배를 방해하고 있다. 교인들에게 심한 욕설과 고함을 질러댔으며, 지난주에는 이중 주차한 성도들의 차량을 빼라고 경찰에 신고해서, 경찰이 출동하는 바람에 예배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교회의 멤버라는 이유로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고 성도님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제명할 것을 건의한다. (환호, 박수)”

이어 권사 및 안수집사 투표 결과를 발표하고, 인사 임명 절차를 밟았다. 강 목사는 운영위원회와 사역위원회 명단과 장로·권사 등 제직자 명단을 발표하고, 교인들의 동의와 제청을 받아 인사 임명 절차를 통과시켰다. 강 목사는 “혹시 질문 있으면 질문하라”고 했고, 질문하는 사람이 없자 기도하고 공동회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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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준민 목사는 동양선교교회에 사임을 했다가 번복하고 재기했다. (동양선교교회 홈페이지 캡쳐)

미국 LA에 있는 동양선교교회 강준민 목사가 교회를 사임하기로 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오히려 개혁 드라이브를 걸기로 했다는 소식을 10월 중순 한국에 있을 때 들었다. 몇몇 인터넷 언론의 보도 내용을 보고는, “잘 나가는 목사 하나가 장로들 시집살이를 못 견디고 쫓겨나는구나” 싶었다. 동시에, “강준민 목사가 매우 유약해 보이는 사람인데, 교회개혁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염려도 했다.

마침 11월 초에 LA를 들러서 뉴욕에 갈 일정이 잡혀 있던 차라, 교회 상황도 궁금하고 인사도 할 겸 강준민 목사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두 번의 메일에 아무런 답을 받지 못한 채 LA에 도착했다. 거기서 교회에 전화를 걸었으나 비서실에서는 “아무도, 특히 기자는 일체 만나지 않고 있으니 이해해달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가뜩이나 심경이 복잡한데다가 공동회의(교인총회)가 며칠 안 남아 있으니 기자를 만날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뉴스앤조이>가 강준민 목사의 책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기 때문에 기자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했다.

LA의 교계에서 활동하는 웬만한 사람들에게는 동양선교교회 사건이 뜨거운 관심사였다. 그런데 한국에서 몇몇 인터넷 언론을 통해 접했던 내용과 현지에서 듣는 얘기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점을 하나하나 짚어보려고 한다.

왜곡된 여론, 강 목사에 절대 유리

국내 교계 언론이나 미주 일간지에 실린 내용에서 가장 자극적인 부분은, 당회에서 장로들에게 유리한 내용으로 만들어진 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등 담임목사의 리더십이 한계에 이르렀다는 것. 장로들이 추진하는 헌법 개정안은 ‘장로의 65세 임기를 70세로 연장한다’는 것과 ‘부목사의 신임투표를 당회에서 매년 실시한다’는 것이라고 언론들은 전했다.

이 내용만 보면 장로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연장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목사들의 숨통을 움켜쥐겠다는 고약한 심보를 느낄 수 있다. 이런 장로들과 함께 동역을 한다는 것은 아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모든 장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꼭 절반이 강 목사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절반 아니라 한두 명만 맘 먹고 목사를 흔들어도 강철 심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면 견디기 쉽지 않다.

강 목사는 10월 4일 당회 직후 당회 서기 장로에게 사의 표명을 하고, 8일 주일에 광고 시간을 통해 사의를 밝힌 이유를 교인들에게 설명했다. 당회 서기는 그날 교인들에게 공동회의 소집을 위한 서명을 받는다고 했고, 이날 청년들은 통일된 티셔츠를 입고 ‘담임목사 사의 표명 철회 및 교회개혁을 위한 임시 공동회의 개최’ 청원 서명을 받았다. 반전의 출발이었다.

문제가 불거진 지 꼭 한 달 뒤인 11월 5일 주일. 이날 열린 공동회의에서 ‘담임목사 사의 표명 철회’가 2194명 찬성, 227명 반대, 31명 기권으로 89.5%의 지지를 받았다. ‘교회 제도, 조직 개선 및 헌법 개정을 포함한 개혁을 담임목사에게 위임’은 2028명 찬성, 278명 반대, 35명 기권으로 86.6%의 지지를 얻었다. 강 목사는 “오늘부터 당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운영위원회 체제로 갈 것이다”고 선언했다. 반전의 완성이었다.

위의 내용으로만 보면, 낡아빠진 사고를 가진 기득권 세력들이 부임한 지 몇 년 안 된 담임목사를 사사건건 괴롭히다가 마침내 헌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뜯어고치려 했는데, 오히려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의 폭발적인 힘이 모아져 교회를 개혁할 기회가 만들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기득권을 가진 장로들 중심으로 형성된 당회를 없애고 훈련된 일반 신도들이 교회 운영에 참여할 수 있는 운영위원회 중심으로 간다는 내용은 일반 신도들에게 지지를 받기 좋은 내용이다.

‘헌법 개정안 통과’냐 ‘헌법개정위원회 구성 통과’냐

하지만 내용을 알아보니 몇 가지에서 사실과 다른 점이 발견됐다. 10월 4일 당회에서 통과된 것은 ‘헌법 개정안’이 아니라 ‘헌법개정위원회 구성’이었다. 강 목사를 반대하는 장로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장로들의 임기 연장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 의견일 뿐 정식 안건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론은 마치 독소 조항이 담긴 개정안이 통과된 것처럼 보도했고, 이것은 끝까지 시정되지 않았다. 다만 상황을 뒤집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동양선교교회 현행 헌법을 보면, 장로들은 3년씩 3차례 시무하고 중간에 1년씩 휴무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장로의 임기는 9년. 게다가 휴무를 한 다음 재시무 투표 때는 2/3 이상의 높은 찬성표를 받아야 한다. 이에 비해 담임목사의 임기는 없고, 정년만 65세로 되어 있다. 불균형한 상태임을 알 수 있다. 장로들은, 이러한 불균형을 완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지만 자신들의 정년을 늘리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사람 머릿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장로들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안 했는지는 모르나, 당회 결정과 무관한 것임에는 틀림없다.

또 부목사에 대한 문제도 주장이 다르다. 강 목사는 “목사들이 인사를 제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내보내려고 한다”고 새벽기도 설교 시간에 장로들을 비판했다. 장로들은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목사의 임기는 1년이며, 담임목사가 당회의 결의를 받아 청빙한다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담임목사가 해고하지 않는 한 대개 당회가 1년마다 재임 결의를 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장로들은 이것을 원칙대로 하자고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생각 역시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당회 결정 사항에 그런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왜냐하면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자는 것만 결정했을 뿐이지, 개정위원들이 선임된 것도 아니고 거기서 다룰 안건들이 정해진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사소한 문제로 일부 장로들과 강준민 목사 사이에 의견이 갈라졌고, 이로 인해 틈이 벌어졌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장로들이 헌법 개정 문제로 강 목사를 코너로 몰자, 강 목사가 ‘사의 표명’으로 교인들에게 충격을 준 다음 ‘사의 철회 및 교회 개혁을 위한 공동회의 개최’라는 반전 카드를 꺼내들어 상황을 일순간에 뒤집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강준민 목사는 그동안 ‘영성 목회의 대가’라는 이미지를 가져왔는데, 공동회의를 계기로 교회개혁의 선봉장이 되었다.

▲ 강준민 목사는 설교에서 장로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동양선교교회 홈페이지 캡쳐)

공동회의에서 강준민 목사가 승리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승리가 얼마나 위험한 승리인지를 깨닫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

첫째로, 강 목사는 강단을 철저히 사유화했다. 설교를 통해 자신과 장로들을 선악 이분법 구도로 나눈 다음 상대방을 난타했다.

동양선교교회 홈페이지(http://www.omc.org)에서 강준민 목사의 새벽기도회 설교를 들어보자. 공동회의가 열리기 전부터 설교를 통해 장로들을 비판했다. 몇 개만 인용하면,

“이번에 주차장 문제 삼는 사람들은 헌금 한 푼 안 하고 십일조도 안 하는 분들이….”

“헌금을 많이 하면 많이 한다고 하고 안 하면 안 한다고 하고, 대단한 사람들이다.”

“죄인은 불쌍히 여기되, 죄의 사슬은 과감히 끊어야 한다, 이번에 단호하게 나가야 한다.”

“새벽기도 때는 당분간 교회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앞으로는 안 하겠지만 지금은 해야겠다.”

“어느 안수집사님이 그럽니다, 왜 장로만 되면 안하무인입니까?”

“당회를 잘 지키겠다고? 복음이나 잘 지키라고 하세요.”

“1년 내내 새벽기도 안 하던 분이 갑자기 장로가 되더니 교회를 어렵게 한다.”

“부목사들이 인사 안 하니까 내보내려고 한다. 그런 것이 인간적으로는 합리적으로 보이겠지만 성경은 그렇지 않다. 목사는 기름 부음 받았고, 장로는 투표로 되었다. 목사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람이고, 장로는 사람에 의해 선택된 것이다. 사람에게 선택된 자가 하나님의 부르심 받은 자를….”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인생의 기로에 놓여 있다. 선택 안 되면 떠난다.”

“이런 사람들에게 교회를 맡길 것인가, 개혁하는 사람들에게 맡길 것인가.”

“어렵고 힘들다. 새로 시작하는 것보다 뒤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 더 힘들다.”

“5년간 벙어리 냉가슴 앓듯 지냈다.”

“이번 기회에 죄의 뿌리를 뽑자.”

기자가 특정한 표현만 골라서 편파적으로 인용했다는 의심이 들면 공동회의 직전 일주일 정도의 설교 몇 개만이라도 직접 들어보고 판단하기 바란다. 열왕기하 말씀을 본문으로 삼고 있지만, 본문 내용과 교회 상황을 교묘하게 짜깁기해서 강단과 성경을 유린했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문제 많은 목사의 전형적인 행태를 강 목사가 너무나도 쉽게 보이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게다가 그는 ‘하나님에게 부름 받은 목사’와 ‘사람에게 뽑힌 장로’를 구분하는 신학을 가졌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교회개혁의 본질이 무엇일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강 목사가 당회를 없애고 운영위원회 체제로 간다고 했는데, 강 목사가 갖고 있는 신학적 태도를 볼 때 앞으로 운영위원들은 들러리 내지 거수기가 될 사람들로 채워질 가능성이 짙다. 아무리 날고 뛰어봤자 사람에게 뽑힌 존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강준민 목사의 설교에 매료되어 이 교회에 출석한 교인들이 급격히 늘었기 때문에 강 목사가 공동회의에서 2/3 지지를 받는 것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강 목사는 쐐기를 박으려고 작심한 모양이다. 공동회의가 열리는 날 예배 설교는 강단 사유화의 정점이었다.

그는 단에 서자마자 “고별 설교하는 마음이다. 2/3 안 나오면 오늘 예배 끝나고 떠난다. 내일 새벽부터 강단에 서지 않는다”는 말로 설교를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눈물을 글썽이는 교인들이 보인다. 효과 만점.

그는 ‘비전의 능력’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들어가는 말은 “비전은 힘이 세다”, 나가는 말은 “선택을 통해 우리의 영원한 미래가 결정된다”. 본문은 “비전을 선택하면 영원한 청춘으로 산다. 비전은 예수의 눈으로 보는 것이다. 예수는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보시고, 변화의 가능성을 보시고, 다양한 은사를 보시고, 배움을 열망하는 마음을 보시고, 셀그룹을 통한 재생산의 가능성을 보시고 제자들을 선택했다”는 것. 말은 다 맞는 말이다.

자신을 반대하고 괴롭히는 장로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거부하는 낡은 세력이고, 자신은 예수의 눈으로 비전을 보고 변화를 위한 개혁을 시도한다는 것이다. 예수도 개혁하기 위해서 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인들에게 어떤 사람에게 교회를 맡길 것인가 선택하라고 했다. 중간지대는 없다고 했다. 선택은 순간이지만 그 결과는 영원하다고 했다.

이날 유인물로 나눠준 목회 서신 ‘조용한 슬픔 속에 핀 꽃’이라는 아주 감성적인 글은 교인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표현법을 구사하고 있다.

“2006년 새해를 맞이하면서 제 안에는 조용한 슬픔이 깃들었습니다. 매달 당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슬픈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교회를 생각하며 슬퍼했고, 성도님들을 생각하며 슬퍼했습니다. 조용히 교회를 사임하려고 마음먹었던 날, 조용한 슬픔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저는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연약한 갈대와 같이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흔들리면서 울고, 연약해서 울었습니다. 떠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울었습니다. 산다는 것이 조용히 우는 것임을 알지도 못한 채 울었습니다.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고, 슬픔이 깃들었습니다. 밝게 미소를 지어 보았지만 마음은 왠지 조용한 슬픔 때문에 괴로웠습니다.

교회를 사임하겠다는 말을 당회 서기 장로님께 전한 후에 저는 깨달았습니다. 저만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성도님들이 함께 조용히 울고 있었음을 말입니다. 성도님들은 연약한 갈대 같아 보였습니다. 흔들리는 갈대 같아 보였습니다. 다만 울음소리가 없어 그 슬픔을 잘 몰랐던 것입니다. 교회에 사의 의사를 밝히던 토요일 새벽기도 시간에 저는 성도님들의 통곡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곳저곳에서 흐느끼는 애통의 소리가 제 영혼을 흔들었습니다. 조용히 울고 있는 연약한 갈대들의 소리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연약하다고 말할 수 없는 조용한 개혁의 외침이었습니다.

(중략)

성도님들이 원하는 개혁은 ‘조용한 슬픔 속에 핀 꽃’과 같습니다. 개혁이라는 꽃은 조용히 울면서 피는 꽃입니다. 눈물과 땀과 피가 묻어 있는 꽃입니다. 그래서 개혁은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개혁은 아름다운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고통 받고 있는 이민교회 성도님들을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이 명하신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는 일을 완수하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저와 함께 조용히 눈물 흘려주신 성도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조용한 슬픔을 담아 기도해 주신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마음 깊이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이 교회 교인이 아니라도 마음이 찡할 것이다. 이런 식의 목회서신이 설교와 함께 교회 홈페이지에 연재되었다. 청년들이 강준민 목사를 지지하는 영상물, 임동선 원로목사가 지지하는 영상물이 올려졌다. 설교를 통해, 목회 서신을 통해, 청년들과 원로목사의 지지 영상물을 통해, 왜곡된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공동회의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그런 사람은 매우 무능한 자일 가능성이 높다.

“임시회의이기 때문에 토론은 불가”(?)

이에 비해서 강 목사를 반대하는 장로들이 만든 유인물은 고단한 이민 생활에 찌들어 살다가 모처럼 교회에서 위로와 힘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짜증을 유발하기에 충분할 만큼 거칠고 무뎠다. 강 목사가 10억 원이 넘는 호화주택에 살고, 국내와 해외 집회를 갈 때마다 수백만 원씩 출장비를 가져가고, 집회에서 받는 강사료와 인세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돈을 탐하는 목사로 몰아세웠다.

그러나 그런 것은 평소 목사와 장로 사이가 좋을 때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적당히 넘어가다가 사이가 나빠질 때 상대방을 파렴치범으로 몰기 위해 써먹는 낡은 수법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게다가 조용한 영성 안에 깔려 있는 세련된 기복주의로 무장된 강 목사의 메시지가 교인들에게 먹히는 상황에서, 그런 얘기는 대중에게 먹혀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그런 점에서 게임은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고 볼 수 있다.

둘째로, 설교를 사적으로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교묘하게 틀었다. 강 목사가 사임 의사를 스스로 밝혔다면 당회에서 번복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강 목사 인사 문제에 대해 당회에서 결정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담임목사 사임 철회’를 공동회의 안건으로 다룬 것은, 이를 계기로 교인들의 힘을 한데 모으려 한 의도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또 공동회의에 상정된 안건에 대해 일체 토론이나 의사 진행 발언을 거부했다. “임시공동회의는 상정된 안건만 다루기 때문에 토론은 하지 않고 표결만 한다”는 얘기를 반복했다. 변호사 자문도 받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임시당회 회집 내용과 관련된 헌법 82조 2항을 언급했다. 그러나 82조 2항 말미에는 ‘…단, 임시당회 안건은 사전에 공시된 것만 한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임시회의에서 상정된 안건만 다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임시회의기 때문에 토론을 불허한다는 것은 헌법적 근거가 없다.

장로들은 강 목사의 재정 비리 의혹을 차분히 설명하면 교인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는 완전 차단되었다. 이 때문에 일부 반대파 교인들이 토론을 요구하며 단 위에서 소동을 벌이기도 했지만 불가항력이었다.

민주적인 절차 통해 비민주적인 내용 결정

이밖에, 임시회의는 출석 인원으로만 성수가 된다 하더라도, 그날 몇 명이 출석했는지 그중 몇 명이 투표했는지 아예 보고하지 않은 것, 투표권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이 구분되지 않은 상황에서 진행된 것, 투개표 과정을 관리하는 사찰위원들은 이미 목사가 선정해놓은 사람들로 구성된 것 등, 진행에 있어서 드러난 문제들은 대세를 볼 때 한낱 사소한 시비 거리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

공동회의 때 처리된 첫 번째 안건이 절차상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라면, 두 번째 안건은 담임목사의 1인 지배 체제를 보장해주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교회 제도, 조직 개선 및 헌법 개정을 포함한 개혁을 담임목사에게 위임한다’는 것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서 가장 비민주적인 내용을 결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현행 헌법에 의하면, 헌법을 개정하려면 교인들의 요구나 당회의 결의가 있어야 하며, 목사가 위원장이 되는 헌법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거기서 개정안을 만들면 당회를 거쳐 공동회의에서 최종 결정한다. 현행 헌법을 근거로 공동회의를 열어서 현행 헌법 내용과 무관하게 새로운 법을 만드는 일을 한 사람에게 위임하는 결정을 동양선교교회가 한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볼 때 이렇게 되면 동양선교교회의 주인은 강준민 목사가 될 수밖에 없다. 그가 일반 신도들이 교회 운영에 참여하는 운영위원회 구조를 만들고, 헌법을 민주적으로 만들고, 셀사역을 통해 교회 성장을 도모하여서, 그의 원대한 비전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언정, 그 교회가 건강한 교회, 영성 깊은 교회, 예수님이 주인 되는 교회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인역사박물관 – 강준민 Rev. Choon-Min Joshua Kang 姜俊旻

현직 : 새생명비전교회 담임목사 / 전 동양선교교회 담임목사

생년월일 : 1957년 2월26일

미국에 온 연도 : 1982년

전화 : (323)373-0110

Fax : (323)373-0990

e-mail :

Website: www.nlvchurch.org

학력 : Mok-Po Commercial High School (1975) / Seoul Theological Univ. (1981)/ Haggard School of Theology, Azusa Pacific Univ.(MA, 1984), (M.Div.,1987) / US Army Chaplain School (Diploma, 1988)/ Talbot Theological Seminary, Biola Univ. (Th.M.,1993) / Fuller Theological Seminary (Doctor of Ministry in Progress, 1996 – Present)

경력 : 1981-82 Dong-Bu Evangelical Church (Assistant Minister) /1984 3.28 A Member

of Ordained Minister of Korean Evangelical Church/ 1982-87 Union Evangelical Church (Assistant Pastor) / 1987-89 First Evangelical Church (Assistant Pastor) / 1988-97 US Army Reserve Chaplain (Reserve Chaplain) / 1989-01 Logos Evangelical Church, Pasadena, CA (Founding, Senior Pastor) / 1997 Korean Presbyterian Seminary in America (Instructor) / 1995-2001 World Missio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ary, Taught Spiritual Formation and Leadership (Adjunct Professor) / 2001 World Mission University & Theological Semin(Vice-President) / 2001-2009 The Oriental Mission Church(Senior Pastor)

저서: Author of Various Book in Korean Language including:

Deep Rooted Spirituality (1997) / Here Comes the Dreamer (1999)/ Scripture Memorization

and Quiet Revolution (1999) / 21 Laws of Dreaming Visionaries (2000)/ A Wakening

Leadership within You (2004) / And more than 24 books are available in Korean Language

강준민 목사의 영성 개념은 너무 비성경적

강 목사가 가르치는 침묵수련은 불교 등의 묵언수행과 같아

2014년 11월 18일(화)에 ‘아주사 퍼시픽 신학대학원’(Azusa Pacific Seminary) 주최로 목회자, 신학생들을 위한 컨퍼런스가 열렸다. 강준민, 노진준, 김한요, 미국의 한인 교회에서 이름이 잘 알려진 이 세 명의 목사가 강사로 나섰다. 그 날의 강의들을 요약하는 기독교 인터넷 신문 ‘뉴스앰’(newsm.com)의 “고통은 먼저, 즐거움은 나중에”라는 2014년 11월 21일 기사를 보았다. 맨 처음에 강의한 강준민 목사의 강의 내용을 요약하는 기사를 읽어보니 그 내용이 좀 의아했다. 강준민 목사가 강의한 내용 중에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을 대략 정리해 보려고 한다.

강준민 목사

강준민 목사는 왜 ‘영성’에 집착할까?

“이민목회는 어렵지만 보람이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민목회 목회자의 영성 관리가 중요합니다. 오늘 이와 관련해서 몇 가지를 나누어서 설명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목회자의 영성 관리는 하나님과의 ‘관계 관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강준민)

강준민 목사는 강의의 서두에서 이민교회 목회자들은 ‘영성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영성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궁금했다. 대체 영성이란 무엇일까? 영성의 대가라고 알려져 있는 강준민 목사는 무엇을 영성이라고 하는 것일까? 그의 말 속에 영성에 대한 설명이 들어있었다.

“영성관리는 하나님과의 관계관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강준민)

그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영성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곧 영성관리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말을 읽으니 또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스도인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표현하는 더 적합한 말이 이미 성경에 수 없이 나타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경건’이라는 말이다. 성경의 저자들이 수 백 번 이야기하는 경건이라는 개념이 이럴 때 쓰여지면 안 되는 것인가? 경건이라는 지극히 성경적인 언어와 개념이 이미 있는데, 왜 꼭 별스럽게 영성이라고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준민 목사는 그날의 강의에서 목회자들에게 마음관리, 시간관리, 분노관리, 변화와 갈등관리, 유혹관리, 언어관리, 정체성 관리를 잘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 성경의 저자들이 많이 가르치고 언급한 경건이라는 개념으로는 목회자들에게서 그런 것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굳이 영성이라는 말을 내세우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성경에 많이 나오는 경건이라는 말을 제쳐두고 성경이 말하지 않는 것을 영성이라는 말을 새로 도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영성이 목회자의 인격과 품성이라면, 리더십은 뭔가 성취하는 것, 사명을 이루는 것,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둘의 균형을 이룰 필요가 있습니다”(강준민)

강준민 목사는 또 그날 강의에서 목회자의 인격과 품성이 곧 목회자의 영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것도 좀 이상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인격과 품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설명한다면, 그것도 경건이라는 말이 가장 적합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품성을 닮은 신자를 경건한 신자라고 성경이 누누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뭣 때문에 경건이라고 하지 않고 영성이라고 하는 것일까?

기독교인의 인격과 품성의 성장의 목표는 언제나 우리와 동일한 사람이 되시어서 친히 우리의 모델이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는 신자의 인격과 품성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애쓰는 삶이 경건한 삶이라고, 그런 성도를 경건한 사람이라고 성경은 수 없이 말씀한다. 예수님을 닮은 인격과 품성을 표현하기에 경건보다 더 좋은 개념이 또 있으면 누구든지 말해보라! 경건을 이야기하는 다음의 성경 말씀들을 보자!

“그때에 경건한 유대인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우거하더니.”(행 2:5)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 3:1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행 8:2)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행 10:2)

“고넬료가 집안 하인 둘과 종졸 가운데 경건한 사람 하나를 불러.”(행 10:7)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성품과 삶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특성을 경건이라고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러면 경건보다는 영성을 표방하는 강준민 목사 등의 기독교 영성 운동가들의 사상은 어디에서 왔을까? 경건이라 하지 않고 굳이 영성이라고 하려면, 영성이 경건보다 더 신실하고 적합한 성경적 개념이라는 사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나는 수긍할 수 있는 이론을 보지 못했다.

조금 다른 각도에서도 넒게 생각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과의 관계, 신자의 변화된 인격과 품성을 경건이라고 하지 않고 굳이 영성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절대적인 중대사는 아닐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말 속에 담겨있는 뜻이다. 경건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속에 비성경적인 개념을 품고 있다면 안 될 일이고, 영성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하나님께 합당한 신실한 신앙과 사상을 가지고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문제이다.

영성 주창자들의 공통점은 침묵, 명상

그런데 문제는 영성을 표방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서 그런 안심할 수 있는 내용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명상, 영혼의 고요, 침묵 등을 진리탐구와 구원의 수단으로 삼고 수행정진하는 세상 종교들의 사상과 철학의 흔적이 경건보다는 영성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매우 진하게 발견되고 있다. 이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지 그저 어떤 용어를 좋아하냐? 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영성을 강조하는 유명한 목사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면밀하게 관찰하면 더욱 더 이런 심각한 현상이 두드러진다. 신문에 소개된 강준민 목사의 강의의 내용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나타났다.

“말을 아무리 아껴도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정기적으로 침묵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침묵으로 말씀이 무르익어야 그 말씀으로 사람들의 영혼을 살찌울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정 시간 동안 침묵의 시간을 위해, 기도원 같은 곳에 가서 대침묵, 소침묵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합니다.”(강준민)

말을 아껴야 목회가 잘 된다고 하는 강준민 목사의 강의는 매우 성경적인 것 같다. 성경의 도처에서 악독한 말, 성급한 말, 저급한 말, 교만한 말, 쓸모없는 말을 단속하고, 혀를 길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내용이 자주 발견된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약 3:8)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그러나 이 점을 생각해 보자. 말과 언어를 길들이기 위해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정기적으로, 빈번하게 침묵하면서 수행하라고 가르쳤는가? 말씀(설교)이 목회자 속에서 무르익기 위해 침묵하며 영성수련하라고 강준민 목사의 이야기는 과연 어떤 사도와 어떤 선지자의 말 속에서 비슷한 점을 찾을 수 있을까? 성경계시를 존재의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에는 이런 개념이나 아이디어가 없다. 과연 언제부터 기독교가 신자들의 영혼이 말씀과 함께 무르익도록 침묵하는 수련을 권장했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다.

이런 말들은 인간 속에 이미 구원과 진리가 자연적으로 내재되어 있다고 보는 세상 종교들의 관점이다. 영지주의-뉴에이지 백그라운드를 공통으로 하는 모든 세상 종교들은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고, 인간의 내면에서 미세하게 울려퍼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명상하고, 참선하고, 행동과 말을 멈춘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세상 종교들의 진리탐구의 방식은 고요하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고, 앉아서, 자기들의 경전과 주문과 기도문을 암송하는 방식으로 자기들의 영혼을 어루만지고 가꾸는 것이다. 불교인들의 묵언수행을 비롯한 힌두교, 뉴에이지 추종자들, 도교, 티벳 불교 … 모든 종교인들이 그렇게 수련하는 것은 자기 속에 진리와 구원의 불꽃이 내재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죄인이고 영원히 저주받은 존재라고 가르치는 성경은 전혀 말없이 고용하게 수행하라고 가르치지 않는다. 강준민 목사는 왜 침묵하는 훈련으로 목회자의 영혼 속에서 말씀이 무르익어야 어려운 이민 교회 목양이 잘된다고 하는 것일까? 다음의 영상을 보며 강준민 목사가 그 날 참석한 목사들에게 권장하는 침묵하는 연습과 실제 사찰에서 단기간 시행하는 불교인들의 묵언수행의 내용과 효과를 비교해 보자! 놀랍게도 강 목사가 강의에서 강조한 마음관리, 분노관리, 유혹관리 … 등의 목회자의 영성관리를 위한 침묵연습과 불교인들의 묵언수행이 비슷한 효과를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강준민 목사에게 성령충만 개념은 어디있나?

기독교인의 영적인 성장과 변화는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힘으로 말미암는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하신 말씀이 영적성장의 수단이고 목표이다. 타락한 죄인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어주신 성령의 조명과 도우심이 있으므로 가능해진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비결은 침묵을 통해 고요함과 정적 속으로 영혼을 몰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읽고 배우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를 소원하고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기독교인의 영적성장은 바람도 없는 조용한 그늘에서 소리없이 커가는 버섯 종류와 같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사모하는 마음을 따라서 일하시는 성령의 역동성 속에서 영적성장이 일어난다.

그런데 왜 강준민 목사는 영적성장이 불교인들이 추구하는 고요함과 영혼의 정적을 통해 일어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일까? 기독교인의 능력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죄인들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 은혜를 받음으로 진행된다. 그때 성품과 품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목회자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좋은 목사가 되기 위해 필요한 언어관리 능력도 그렇게 생겨나는 것인데, 왜 강준민 목사는 침묵을 통해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고 가르치는 것인가?

성령충만이 신앙과 삶의 변화와 성장을 위해 가장 중요하다고 성경은 가르친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인격적 통치가 활성화되어, 신자가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성령충만으로 언어관리, 시간관리, 물질관리, 유혹관리, 분노관리 …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자질을 얻을 수 있다. 성령충만하기 위해서는 말씀을 바르게 읽고, 깨닫고, 말씀을 실천하는 삶을 살기위해 간절하게 기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과 삶의 특징은 말씀과 성령 안에서의 역동성이다. 바울과 베드로와 사도행전의 모든 제자들의 신앙과 삶을 보라! 그들은 기도와 말씀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동성이 넘치는 삶을 살았다.

그런데 왜 강준민 목사는 침묵을 통해 누리는 영혼의 고요와 정적으로부터 생명의 능력이 나온다고 가르치는 것일까? 강준민 목사는 이민 교회의 상황에서 좋은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사도들처럼 기도와 말씀을 따라 역사하는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 타락한 죄인에게 주신 복된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만드는 성령의 역사를 추구하기 위해 마땅히 우리 신자들이 힘써 진행해야 할 것들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은 없고, 뜬금없이 ‘고요한 영혼’, ‘대 침묵’, ‘소 침묵’, ‘침묵으로 말씀이 무르익고’ …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것이 ‘다른 복음’(고후 11:4)아니라면 무엇이 다른 복음일까?

유진 피터슨을 좋아하는 강준민

강준민 목사의 영성 개념은 인간을 죄인으로 선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피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대부분의 영성운동가들은 인간에게 처음부터 신실함과 선함과 신성이 내재되었다고 보는 이교도들의 종교수련으로부터 영향받았다. 기독교는 초월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임하는 구원의 은혜에 의존하므로 “주여! 내게 은혜를 주옵소서!”라고 하나님을 향해 간구한다. 그러나 세상 종교들은 이미 인간 속에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믿으니 눈을 자기의 내면으로 집중하라고 한다. 자기의 내면을 더 보기위해서는 마음과 생각이 조용해야 한다. 그래서 일반 불교, 티벳 불교, 힌두교, 뉴에이지, 영지주의, 도교… 모든 종교들은 고요한 영혼을 추구하는 것이다.

“목회자의 영혼이 고요하지 않고 어떻게 신자들을 고요한 물가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유진 피터슨)

▲ 유진 피터슨

강준민 목사는 강의 중에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의 말도 소개했다. 유진 피터슨도 이방 종교와 기독교 사이에 존재하는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차이를 무시하는 뉴에이지 사상가라고 평가되는 사람이다. 그가 번역한 성경 에는 뉴에이지 사상이 반영된 흔적이 많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비판한다.

뉴에이지 성향을 가진 유진 피터슨이 ‘목회자의 영혼이 고요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내면으로 향하는 명상영성의 고요한 영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명상을 통해 영혼이 고요해지면, 그 다음에는 인간의 내면에서 나타나는 고요한 음성을 듣게된다. 기독교 명상 영성운동가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할 것이고, 그것을 통해 영혼이 평안하고 건강해진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주 그럴싸한 가르침이나, 사실은 매우 비성경적이고 심각한 이단사상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음성은 인간의 내부로부터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초월하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자기의 뜻을 드러내셨다. 기독교에서는 기록된 성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다. 신자들 속에 거하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음성을 만들어 주시는 분이 아니고, 초월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된 말씀을 깨달아서 삶과 신앙에 적용하게 만드시는 분이다. 결코 내주하시는 성령으로부터 직접 계시의 음성이 나오지 않으므로, 고요한 영혼이 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뉴에이지 영성가들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모두 추방되어야 한다.

그런데 강준민 목사는 유진 피터슨의 말을 그대로 인용하여 목회자의 영성관리에 대해 설명했다. 정말 명상을 통해 영혼이 고요해져야 정말 목회가 잘되는 것일까? 목회를 가장 잘했던 사도행전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유진 피터슨과 강준민 목사가 말하는 것처럼 침묵을 통해 영혼을 고요하게 만들어서 큰 믿음의 능력을 발휘했었는가? 사도행전을 보면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도들과 제자들의 영혼은 고요한 영혼이 아니었다. 생사가 오고가는 살벌한 상황 속에서 사도들과 제자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면서 분주하게 뛰었고, 성령은 그들보다 더 열심히 그들을 보호하시면 일하셨다. 그래서 그들은 고요한 영혼이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진 ‘담대한 영혼’이 되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행 4:31)

“그날 밤에 주께서 바울 곁에 서서 이르시되 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행 23:11)

“담대히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면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행 28:31)

성도의 영혼은 고요해지지 말고 기도와 말씀으로 담대해야 한다. 유진 피터슨과 같은 사람은 아주 그럴싸하게 기독교 속에다 이방종교 사상을 배합하는 위험한 사람이다. 성도들은 영혼의 고요함을 추구하지 말고,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되고 성령과 함께 일하는 담대한 영혼 되기를 사모해야 한다.

헨리 나우웬을 좋아하는 강준민

“사역자는 사람들을 만날 때 과거는 죽이고 새로 만나는 사람처럼 만나야 하며, 특히 분노를 조심해야 한다.”(헨리 나우웬)

강준민 목사는 헨리 나우웬(Henri Nouwen)의 말도 인용하면서 목회자가 영성관리를 위해서는 분노를 관리해야 한다고 하였다. 과거의 나쁜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을 대해야 하고, 특히 분노를 조절해야 한다는 헨리 나우웬이 한 말은 좋은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헨리 나우웬 또한 기독교 속으로 다른 종교의 명상사상을 배합한 뉴에이지 사상가라고 평가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는 것이다.

▲ 헨리 나우웬(1932-1996)

도교, 티벳 불교 등의 명상하는 동양종교에 심취되었던 로마 천주교의 신부 토마스 머튼에 의해 현대의 천주교 안에 명상하는 영성이 형성되었다. 기독교 안에서 토마스 머튼의 영향을 받아 비슷한 뉴에이지 명상 영성을 전파하는 사람들이 생겨나서 오늘 날 기독교 안에 명상, 영혼의 고요 … 등을 말하는 유행이 생겨났다. 많은 전문가들이 토마스 머튼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 안에 뉴에이지 영성을 전파한 대표적인 인물들로 유진 피터슨, 헨리 나우웬, 리챠드 포스터를 지적한다. 강준민 목사는 왜 이런 사람들의 사상과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일까? 서로 사상이 비슷하고, 영적으로 같은 색이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 나우웬은 자신이 타고난 동성애자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헨리 나우웬이 타고난 동성애자이면서도 동성애 욕구를 실천하지 않고 종교적인 열정과 노력으로 일평생 싸웠다는 사실을 높이 칭찬한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지극히 비성경적인 논리이다. 하나님은 동성애를 무척이나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분이다. 성경이 경고하는 많은 죄악들 가운데 더욱 더 심각한 것이 동성애이다. 만일 헨리 나우웬이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기는 신실하고 경건한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동성애 욕구와 성향을 능히 고쳐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자신의 동성애 욕구와 성향이 제거되었다고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를 치료하시지 않았다는 것이고, 그도 동성애가 심각한 죄성이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연 그가 동성애 욕구를 한 번도 실천하지 않았는지 자세한 내막을 알 수는 없으나, 헨리 나우웬이 타고난 동성애자로서 동성애 죄악을 범하지 않았다고 하여 진정한 영성의 대가라고 지금까지 존경받고 있는 현상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또한 헨리 나우웬은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는다는 거짓된 사상을 전파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실제로 신자들과 비신자들을 함께 모아서 성찬식을 거행하기도 했다. 자신의 책 에서 천국에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자리가 있는 등의 만인구원론 사상을 기술하였다. 기독교 내에서 명상하는 뉴에이지 영성을 전파하는 사람들에게서 이와 같은 다원주의 성향이 농후하게 드러난다. 왜 그럴까? 명상영성은 비기독교적인 사상이고, 다른 영이 역사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성령의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라는 배타적인 경건으로 무장된다. 그것이 성령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성경적인 명상영성가들은 여지없이 ‘다른복음’(고후 11:4)의 길로 나아가는 특징을 보인다. 그것이 거짓 영의 성품이기 때문이다.

스캇 펙을 좋아하는 강준민

“훈련이란 고통을 먼저 선택하고 즐거움을 나중에 누리는 것이다”(스캇 팩)

강준민 목사는 강의의 말미에서 심리학자 스캇 팩(M. Scott Peck)의 말도 인용하였다. 스캇 팩의 말이 그릇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역시나 스캇 팩이라는 사람도 많은 비성경적인 철학과 사상으로 무장된 사람이므로 기독교 목사가 좋아할 사람이 되지 못한다. 아주 오래전에 스캇 팩이 쓴 책 두 권 <아직도 가야 할길>, <끝나기 않는 여행>을 읽었다. 어떤 책인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결국 기독교, 힌두교 등의 종교들을 같은 영적인 종교로 간주하고 있는 그의 견해가 기술된 내용을 보고서, 신학교의 교수님이 그 책을 추천했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의아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더 흥미로운 사실을 보았다. 2006년에 출간된 스캇 팩의 <스캇 펙 박사의 평화만들기>(김민예숙 역, 열음사)라는 책에 관한 내용이 불교의 인터넷 신문 <법보신문>에 실려있었다. 그런데 이 책에 대해 그 불교신문이 다음과 같이 격찬하고 있었다.

“의사로서는 드물게 인간 심리와 기독교 신앙의 통합을 지향한 스캇 펙은 집단 이해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형성을 이론화하는 등 평화로운 공동체 형성의 기초를 다지는데 노력했다. 그래서 이 책에서도 위협과 분쟁의 시대에 진정한 공동체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부산 미타선원을 출가와 재가가 어우러진 명실공히 사부대중 신앙공동체로 이끌고 있는 하림 스님도 이 책에서 사찰운영의 새로운 지혜를 얻었다.”

과연 스캇 펙이 올바른 기독교 신앙으로 무장된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사도들이 전한 사상과 믿음으로 무장된 신실한 성도가 쓴 책이라면, 이렇게 불교신문에 소개되고 더 나아가 고명하신 불교의 스님이 “사찰 운영의 지혜를 얻었다!”라며 무릎을 치며 좋아하기까지 할까? 고요한 영혼을 만드는 명상의 영성을 전파하는 강준민 목사는 어째서 이런 책을 쓰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인용하는 것일까?

불교 스님이 스캇 펙의 사상에 반했다는 것은 그의 사상이 다분히 불교적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스캇 펙의 이런 면들이 주목되지 않았으나, 이제는 많이 드러났다. 어떤 연구자는 “스캇 펙의 복음을 그리스 신화와 불교가 가미된 정신의학과 기독교의 혼합물이다.”라고 평가하였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고 범신론과 뉴에이지의 가르침을 좇아 인간이 곧 신이라고 가르쳤다고 비판하였다. 강준민 목사는 왜 이런 사람의 가르침을 좋아하는 것인가? 비슷한 사상과 유사한 영성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 스캇 펙의 책을 즐거이 읽고 있는 부산 미타선원 주지 하림 스님, http://m.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1624에서 캡쳐 정이철 목사 / 앤아버 반석장로교회 담임, 바른믿음 대표, 성경교사

정이철 목사는 2004년부터 현재까지 미국 미시간 주 ‘앤아버 반석장로교회’의 담임목사이고 거짓 신학의 ‘견고한 진’(고후10:4)을 무너뜨리기 위해 시작된 신학신문 의 대표이다.

총신대학(B.A 졸업), 총신대학 신학대학원(M.Div Eqiuv.졸업), 아세아연합신학대학 대학원(Th.M 졸업), Liberty Theological Seminary(S.T.M 졸업), Fuller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Puritan Reformed Theological Seminary(Th.M 수학), Liberty Theological Seminary(D.Min 수학)에서 연구했다. 현재 남아공신학대학원(South African Theological Seminary, Ph.D)에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신사도 운동에 빠진 교회」, 「제3의 물결에 빠진 교회」, 「가짜 성령세례에 빠진 교회」, 「피터 와그너의 신사도운동 Story」, 「한 눈에 들어오는 청교도 개혁운동」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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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체크] 강준민 목사, 차로 6분 거리에 교회 개척?

과장된 기사도 사실로 굳어지면 왜곡이다

ⓒ김동문

한 교회를 사임한 목회자가, 사임한 교회에서 ‘(자동)차로 6분 거리에 있는 곳에 교회를 개척했다’? 이런 표현을 마주하는 독자는, 사임하고 교회를 개척했다는 한 목회자에 대해 어떤 생각을 떠올리고, 어떤 평가를 하게 될까?

저널리즘 글쓰기의 덕목으로 꼽는 것이 있다. 공정성, 사실성, 중립성, 균형성, 그리고 객관성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덕목은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객관성을 유지하는 척 겉모양만 꾸민 균형을 잃은 기사들도 많다. 물로 지금은 아예 드러내놓고 객관성을 잃은 것을 물론이고 사실 확인도 안 하고 가짜뉴스를 버젓이 실어 나르는 매체도 많은 가짜뉴스 홍수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정론을 앞세우고, 바른 언론, 개혁적인 언론을 떠올리고 추구하는 매체나 언론인, 글쓴이 가운데서도 객관성에 둔감한 글을 본다는 점이다. 글쓴이(또는 보도하는 이)가 자신의 숨은 의제(전제 또는 입장, 아젠다agenda)를 미리 설정해 놓고 객관적인 양 글을 꾸미는 경우이다. 자신의 말을 면담자의 입으로 드러내거나, 자신의 숨은 의도에 맞는 이른바 전문가의 입을 인용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것은 거짓된 객관화이다.

1. 다시 읽는 기사

동양선교교회에서 새생명비전교회 ⓒ구글 지도 갈무리

“강준민 목사가 교회를 ‘개척’했다. 동양선교교회를 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사퇴 직후부터 언왕설래했던 ‘개척설’이 사실이 됐다. 동양선교교회에서 차로 6분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안 교회에 터를 잡고, 교회 이름을 ‘새생명비전교회’로 정했다.“ – ㅇ뉴스ㅇㅇㅇ2009.11.16

아주 오래 전 이 기사를 접했다. 그리고 수 년 전에 다시 한 번 읽었다. 친절하고 자세한 기사였다. 그런데 눈에 띠는 표현이 있다. 그것은 ‘차로 6분 거리’라는 친절한 설명이다. 위의 구글지도에서 보듯이 ‘6분 거리’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적절하지 않다. 구글지도에서 예상하는 소요 시간은 일요일 오전 한산한 시간대를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글쓴이의 이 친절한 설명은, 객관성을 잃게 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LA 다운타운의 현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글쓴이가 의도하였던 아니든 일정의 상상을 하게 한다. 바로 옆에 교회를 개척했다는 상상 또는 확신을 갖게 한다. 또한 한 번 올려진 기사는 누군가에게 다시 읽혀지며,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받는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글쓴이의 의도와 무관한 것이다.

2. 정근하 교수의 논문 다시 읽기

국민일보(2017.10.11) 기사 갈무리

지난해 10월 중순, 우연찮게 아래와 같은 기사를 접했다.

한국 학계에서 한인 이민 사회와 교회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논문이 발표됐다. 교회 분열을 통해 LA지역 한인사회가 확장된다는 주장이다. 논문 제목은 ‘LA 한인타운의 확장, 한인교회들의 분열을 중심으로’다. 조선대학교 정근하 교수(종교사회학)가 지난 9월 발표했고 이 논문은 최근 유명 학술지(한국실천신학회)에까지 실렸다. – 장열, 미주중앙일보(2017.10.12)

기사에서 언급한 해당 논문의 LA 한인교계 상황에 대한 적절치 못한 평가와 주장도 불편했지만, 논문에서 교수가 인용한 한 기사에 담긴 내용에 대한 아쉬운 느낌도 작지 않았다. 정근하 교수가 쓴 논문은, KCI 등재지의 하나인, <신학과 실천>(Theology and Praxis) Vol. 56 (2017) 에 실려있다. 이 논문 703쪽에 아래와 같은 내용이 담겨 있다.

정 교수의 논문은 한인교회의 분열과 한인타운의 확장 혹은 한인사회의 확장과의 연관성을 밝히겠다는 글이다. 정교수는 (한인교회의) “이 분열을 통해 LA 한인타운과 한인사회가 팽창하고 있었다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민교회의 특수성을 감안하여 볼 때 한인교회가 분열을 멈추지 않는 이상 LA 한인타운과 한인사회는 계속해서 팽창할 것이라 판단된다“(717쪽) 라고 결론을 맺고 있다.

정 교수의 논문에서 본론에 해당하는 부분이 이다. 이 3장에서, 그의 논제에서 중요한 사례로 꼽은 것이 동양선교교회이다. 나성한인교회(1쪽 분량) 등이 언급되었지만, 동양선교교회(3쪽 분량)에 대한 소개가 그 분량에 있어서 두드러진다.

“1. 동양선교교회의 분열”에서 정 교수는 이렇게 글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교회의 분열과 한인타운의 확장 혹은 한인사회의 확장과는 어떻게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

이러한 그의 논지를 입증하는 자료로 동양선교교회 30년사와 두 꼭지의 뉴스앤조이 기사를 인용한다. 해당 기사를 별도의 해석이 없이 그대로 옮겼다. 출처를 각주에 달았을 뿐이다. 정 교수가 자신이 인용한 자료에 대한 사실 확인, 이견 등에 검토 작업 없이 일방적으로 단순 인용한 것은 연구자로서의 불성실한 것으로 지적받아야 한다.

박광철 목사에 이어 강준민 목사가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2001년이다.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1900여 명에서 3900여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강목사 역시 부임한 지 4년 만에 분쟁에 휩싸였다. 강목사를 비롯한 당회원 일부가 당회 결의를 얻기 전에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려고 계약서에 서명했던 일로 당회 내부에서 논란이 일면서 문제가 촉발됐다23) – 정교수 논문 703쪽

뉴스앤조이(2008.10.01)

“박광철 목사에 이어 강준민 목사가 4대 담임목사로 부임한 것은 2001년이다. 교회는 빠르게 성장했다. 1900여 명에서 3900여 명으로 늘었다. 하지만 강 목사 역시 부임한 지 4년 만에 분쟁에 휩싸였다. 강 목사를 비롯한 당회원 일부가 당회 결의를 얻기 전에 주차장 부지를 매입하려고 계약서에 서명했던 일로 당회 내부에서 논란이 일면서 문제가 촉발됐다.” – 뉴스앤조이(2008.10.01)

이 기사는 미주 뉴스앤조이(2008.09.25)에도 똑같이 실려있다. 정교수의 논문에 인용된 또 다른 기사는 아래와 같다. 뉴스앤조이 기사이다.

강준민목사가 교회를 ‘개척’했다. 동양선교교회를 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사퇴 직후부터 언왕설래했던 ‘개척설’이 사실이 됐다. 동양선교교회에서 차로 6분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안 교회에 터를 잡고, 교회 이름을 ‘새생명비전교회’로 정했다. 11월 15일 열린 첫 주일예배 때는 800석 규모의 예배당이 예배 시작 전부터 교인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족히1,200명은 넘을 듯했다. 한 중직자는 2,000명으로 추산했다24) – 정교수 논문 703쪽

뉴스앤조이(2009.11.16) 기사 갈무리

이 기사의 출처는, 박지호(2009.11.16), “강준민 목사, 사퇴 일주일 만에 ‘교회 개척”교인들 방황해서 ‘…’영혼 구원에 집중하겠다,’” 뉴스앤조이(17년7월15일 검색) 였다. 미주 뉴스앤조이(2009.11.16)에도 실려있다.

“강준민 목사가 교회를 ‘개척’했다. 동양선교교회를 사퇴한 지 일주일 만이다. 사퇴 직후부터 언왕설래했던 ‘개척설’이 사실이 됐다. 동양선교교회에서 차로 6분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안 교회에 터를 잡고, 교회 이름을 ‘새생명비전교회’로 정했다. 11월 15일 열린 첫 주일예배 때는 800석 규모의 예배당이 예배 시작 전부터 교인들로 가득 차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족히 1,200명은 넘을 듯했다. 한 중직자는 2,000명으로 추산했다. ” – 뉴스앤조이(2009.11.17)

‘동양선교교회에서 차로 6분 거리’라는 표현은, 아예 논문 본문에 이렇게 단정적으로 재활용되고 있다.

“3차 분열은 2001년 제4대 당회장으로 강준민 목사가 2009년 11월 6일 동양선교교회를 사임하고, 자동차로 6분 거리인 한인타운의 피코(Pico Blvd, LA, CA 90019)지역에 ‘새생명비전교회’를 개척하였다.” – 정교수 논문 704쪽

위의 경우는 아예 출처 표시도 인용 표시도 하지 않았다. 정 교수의 논문에서 박지호 기자의 뉴스앤조이 기사는 동양선교교회 분열과 관련하여 중요한 논거로 활용된다. 정 교수의 인용 자료에 대한 검토 부족은 물론, 무덤덤하게 해당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은 부적절하다. .

3. ‘동양선교교회에서 차로 6분 거리?

정 교수의 논문에서 인용된 기사는 아주 오래 전에 접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2017년 가을, 위 논문 덕분에 다시 기사를 마주했다. 그리고 최근 우연찮은 기회에 이 기사를 다시 읽었다. 여전히 ‘차로 6분 거리’라는 표현이 불편했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나는 이런 표현이 사실을 왜곡할 여지가 적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구글 지도에서 보듯이 ‘6분 거리’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면에서 적절하지 않다.

ⓒ김동문

아래 구글 지도 이미지에 표시된 예상 소요 시간은 교통이 한산한 일요일 오전 시간대를 반영한 것이다. 논문에 인용된 해당 기사에서 ‘차로 6분 거리’라는 이 친절한 설명은, 교회 개척을 둘러싼 사실 이해에 있어서 객관성을 잃게 하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해 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사실인 것으로 받아들인 개연성도 적지 않다. LA 다운타운의 현실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글쓴이(기자)가 의도하였던 아니었든 어떤 상상을 하게 한다. 또한 강준민 목사가 사임한 교회 옆에 교회를 개척했다는 상상 또는 확신이 그 중 하나이다.

위에서 언급한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차로 6분 거리’라는 표현은, ‘ 기사 작성 당시 구글맵에서 표기한 자동차 이동 예상 시간과 직접 차로 이동해보고 작성한 것’이라 한다. 그런데 이런 점이 아쉽다. 그것은 거의 3킬로 넘는 그 거리를 오가면서 소요 시간만 봐야 했던 것인가 의아하기 때문이다.

동양선교교회에서 새생명비전교회 까지는 얼마나? (구글 지도 갈무리)

기사에서 빠진 중요한 현지 정보가 있다. 그것은 LA의 한인타운으로 불리는 코리아타운과 그 주변의 한인교회 현황이다. 동양선교교회를 중심으로 주변 3, 4킬로 반경에는 300여 곳이나 되는 한인교회가 존재한다. 동양선교교회에서 새생명비전교회로 가는 사이에도 200여 곳이나 되는 한인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그 남쪽 가장자리가 새생명비전교회 위치이다.

LA 한인교회 분포 현황. “LA 한인타운의 확장, 한인교회들의 분열을 중심으로”, 706쪽. ⓒ정근하

뉴스앤조이 기사는 “동양선교교회에서 차로 6분 거리에 있는 에티오피안 교회”를 언급하는 것 그 이상으로 동양선교교회에서 새새명비전교회 까지 이동하면서, 그 사이에 한인교회가 모두 몇 개나 되는지 짚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도 새생명비전교회가 자리한 피코 지역과 한인 밀집 지역인 코리아타운 사이에 여러 차원의 문화적 장벽이 있다는 것도 언급해야 했지 않았는가? 기사에 사용한 ‘차로 6분 거리’라는 표현은 강준민 목사의 교회 개척에 대한 공정성, 사실성, 중립성, 균형성, 그리고 객관성을 드러내는 데 필수적인 표현이었을까? 이런 식의 자기편의적 위험한 글 ​​​​​표현은 불필요하고 부적절한 것이다. 가치와 사실을 왜곡하는 단어 사용은 경계해야할 것이다. 보수 성향 매체의 말장난, 글장난만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정근하 교수가 그의 논문에서 분석하고, 주장하고자 했던 것이 “강준민 목사의 지근 거리 개척의 문제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논지를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다. 정 교수가 인용한 박지호 기자의 기사 속 표현인 “차로 6분 거리”라는 문구가 주는 뉘앙스에 주목한다. “차로 6분 거리”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독자는 그 표현이 주는 여러 하부 의미들을 상상하게 된다. “차로 6분 거리”라는 표현의 뉘앙스 뿐만 아니라, 그 표현 자체가 담고 있는 정보의 문제점과 함께, 동양선교교회와 새생명비전교회 사이의 한인교회 분포 현황 자체가 전혀 다른 정보들을 담고 있다.

정 교수의 논거 자료로 활용된 것에 있어서 박지호 기자가 작용한 것은 물론 없다. 박 기자가 강준민 목사의 개척을 비하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도 단정짓지 않는다. 그러나 박 기자의 입장이나 기사 문맥은 사실상 중요하지 않다. 박 기자의 의도가 어떠했든지 간에, 그의 표현 자체가 주는 뉘앙스는 그 기사를 읽는 독자들에게 부정적 상상으로 기사의 행간을 채우도록 빌미를 준 것으로 볼 여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4. ‘6분 거리’ 표현은 꼭 담겨있어야 하나?

ⓒ김동문

기사 글이 특정 사건에 대하여 일종의 ‘판단’을 담을 수는 있다. 그런 기사가 이제는 워낙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표현의 뉘앙스로 독자의 상상력을 통해 부정적 시각을 갖게 하는 것, 심지어 그 표현이 담고 있는 정보가 부정확하기까지 하다면 그것은 분명 저널리즘의 도리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결론적으로 뉴스앤조이(미주 뉴스앤조이 중복 게재) 해당 기사 속 표현 이 공정하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 볼 여지가 많다.

다소 엉뚱한 기회에 다시 접하게 된 기사의 친절한 표현을 보며, 글쓰기의 신중함을 다시 떠올린다. 가짜뉴스가 넘쳐나는 시대, 정보 소비자인 독자들은 과연 사실은 무엇인지 고민하여야 한다. 그리고 기사 안에서 글쓴이의 말(그의 추론, 감정, 느낌, 의견)과 객관적인 사실을 구분하여야 한다. 미리 틀을 짜 놓고 그 속에 들어갈 내용을 채우거나, 어떤 전제를 갖고 그 전제에 부합하는 것만을 골라서 챙기려는 정보의 소비는, 크고 작은 거짓과 그릇된 확신을 퍼뜨릴 수 있다.

동양선교교회와 관련한 이미 잊힌 지난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는 것으로 인해, 불편한 이가 없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번 올린 기사는 누군가에게 다시 읽히며, 글쓴이의 의도와는 별개로 또 다른 상상력을 자극받는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다소 엉뚱한 기회에 다시 접하게 된 한 기사의 친절한 표현을 보며, 글쓰기의 신중함을 다시 떠올린다. 그래서 생각한다. 뉴스앤조이(미주 뉴스앤조이 포함)는 오래 전의 이 기사에서 6분 거리라는 표현을 수정하면 안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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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칼럼] 나이가 들어가는 기쁨

제게 있어 나이가 들어가는 것은 기쁨입니다. 한 때는 나이가 든다는 것이 조금 서글펐던 적이 있습니다. 특별히 50세 중반을 지날 때는 위기감마저 들었습니다. 세월을 붙잡을 수 있다면 붙잡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나이가 들어가는 것을 마음 깊이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살고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것은 환영하고 사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나이가 들어가느냐에 있습니다.

50세 중반을 넘어서면서 저는 아름답게 나이 드는 책들을 많이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아름답게 나이 드는 어른이 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멋있고, 더욱 덕스럽고, 더욱 원숙해지는 것을 봅니다. 성경은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잠 16:31)고 말씀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서 더욱 고집스럽고, 더욱 속이 좁아지고, 더욱 탐욕스러워지는 것을 봅니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부패되는 음식이 있고 발효가 되는 음식이 있는 것처럼, 나이가 드는 어른들에게서 두 가지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부패되는 음식이 아니라 발효되는 음식처럼 유익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는 제게 젊은 날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분들을 만납니다. 저의 대답은 청춘이 아름답지만 옛날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고 대답하곤 합니다. 인생이란 힘든 것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힘든 것입니다. 그 힘든 인생길을 다시 돌아가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한 번의 인생으로 족합니다. 물론 인생은 힘들지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있으며,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인생은 힘들지만 사랑하면서 살 때 환희에 찬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우리는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을 향해 전진해야 합니다. 자연의 사계절처럼 우리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계절을 사랑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제가 마음에 품은 소원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감사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감사는 영성의 최고봉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제사는 감사의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늘 감사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것이 원망과 불평입니다. 배은망덕(背恩忘德)입니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귀한 은혜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었습니다. 천국을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만으로도 일평생 감사해야 합니다. 감사는 인생을 밝게 만듭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주신 복을 세어보는 삶의 예술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늘 따라다닙니다.

둘째, 평생 학습하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저는 배움이 주는 기쁨을 맛보아 알고 있습니다. 지적인 즐거움이 얼마나 복된 것임을 맛보아 알고 있습니다. 배움은 거룩한 쾌락입니다. 배움이 중요한 까닭은 배움을 통해 늘 꿈꾸는 어른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미래 지향적인 사람입니다. 그런 까닭에 배우는 사람은 꿈 너머 꿈을 꾸는 사람입니다. 늘 꿈을 꾸며 배우는 사람은 영원한 청춘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셋째, 경건하고 거룩한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경건과 거룩은 한 형제입니다. 하나님은 경건하고 거룩한 부모를 통해 자녀들을 축복하십니다. 거룩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가 거룩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크신 은혜를 부어 주셔야 합니다. 거룩은 인간적인 노력이나 율법적인 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합니다. 물론 거룩을 갈망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으로 성화에 이른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넷째, 사람을 키우고 사람을 남기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를 키우고 제자를 남기셨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따라 남은 생애를 더욱 사람을 키우고 남기는 일에 집중하고 싶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세월을 아껴야겠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남은 생애라도 후회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이 들어가는 부족한 종을 축복해 주시고 격려해 주시는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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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민 목사 패소

[미션라이프] 미국 LA 동양선교교회 강준민 목사가 LA 지방법원으로부터 패소 판결을 받았다. LA 지방법원(판사 에이미 호그)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일부 교인들이 강 목사를 상대로 제기한 ‘당회 해산 무효소송’에서 “당회는 교회의 최고 치리기관으로서 모든 사항에 절대적인 권위가 있다”며 “2006년 12월 공동회의 결의사항, 헌법 개정은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또 “피고(강준민 목사)에 의해 제거된 원고(장로)들은 본 교회 헌법에 의해 당회원으로 회복된다”고 밝히고 “피고가 새 헌법과 내규에 의해 교회를 치리하거나 통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판시했다.

강 목사측이 항소할지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강 목사는 법원 판결 다음날인 1일 동양선교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에서 “우리 교회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많이 노력하고 있고 자꾸 발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교회 내) 이슈가 생기면 잘 설명할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판결을 비롯한 일부 교인들의 비난에 대해 적극 대처할 것임을 우회적으로 밝힌 것이다.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김성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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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주일설교] “하나님과 홀로 대면하는 기도” [출 3:4-14] – 강준민 목사 (05.2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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