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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고린도후서 5장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 … (고후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
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4/2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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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이 되는 길.. (고린도후서 5장 17절 ~ 21절) > 은혜로운 말씀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기 때문에 새 것이 될 …
Source: fgyega.com
Date Published: 6/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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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움(고린도후서 5:17) – 전주대신문
새로움(고린도후서 5:17). [883호 13면, 발행일 : 2018년 10월 17일(수)] 이 곳에 오면서 형형색색 단풍이 물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색은 더욱…
Source: news.jj.ac.kr
Date Published: 1/11/2022
View: 4840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 복음뉴스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합니까? (고린도후서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 …
Source: www.bogeumnews.com
Date Published: 6/26/2021
View: 2375
고린도후서 5:17,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소고
하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구원받은 존재,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었습니다.
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2/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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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피조물(고후5:17)
고후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a new creation)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 믿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
Source: www.imr.co.kr
Date Published: 8/18/2022
View: 6028
고린도후서 5장 17절 – 알찬 정보 블로그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Source: kmgkjs1.tistory.com
Date Published: 7/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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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의 (고후 5:17-21) – 생명샘교회
고린도후서 5:17-21.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Source: livingspring.net
Date Published: 4/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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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고후 5 17
- Author: 말씀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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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9. 6.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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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사람이 되는 길.. (고린도후서 5장 17절 ~ 21절) > 은혜로운 말씀
서 론
새 사람이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짐승들에게는 변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중에서 유일하게 변하는 피조물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새 사람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 론
1.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 사람이 됩니다.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변화가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바깥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3절은 “밖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쫓으라”, 변화는 그리스도 안에 있고 구원 또한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된 새 사람이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합니다. 만약 그리스도 밖에 살게 된다면 변함이 없는 짐승들과 같습니다. 쾌락과 정욕을 쫓아 살게 되며 죄를 짓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새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은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은 생명의 빛이십니다. 빛 되신 예수님 안에 들어오면 나를 새롭게 비치게 되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삶 보다 더 빛이 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2. 과거의 삶을 정리해야 새 사람이 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기 때문에 새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 것을 지나지 못한다면, 새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과거의 정리해야 할 부분과 변화 되어야 할 부분이 정리 되지 않는다면 새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4장 22절은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우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과감하게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버리는 결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나의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옛 사람을 벗어 더 이상 죄의 종이 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자유함을 얻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화목하며 살아야 새 사람이 됩니다.
미련한 사람의 대표적인 현상은 싸움입니다. 싸우려고 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잠언 18장 6절은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싸움 자체가 목적이 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으로 화목을 이루셨듯이, 우리가 감당해야 하는 일은 화목을 이루는 것입니다. 화목을 이루는 길은 십자가 희생과 같은 희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습니다(고후 5:19).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우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고후 5:20).
결 론
새 사람이 되는 길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새 사람이 됩니다. 둘째, 과거의 삶을 정리해야 새 사람이 됩니다. 셋째, 화목하며 살아야 새 사람이 됩니다. 이 세 가지를 기억함으로, 그리스도 안에 새 사람이 되는 축복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새로움(고린도후서 5:17)
[883호 13면, 발행일 : 2018년 10월 17일(수)]이 곳에 오면서 형형색색 단풍이 물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그 색은 더욱 진해지겠지요. 정말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바라보니 항상 새롭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단풍 뿐 만이 아니고 말입니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새로움을 향한 몸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말씀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우리의 정체성을 말하는데요,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구주로 시인하면 새로운 피조물 즉,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주가 되심을 믿어 확신하십니까? 우리는 주님안에 거하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롭다는 것은, 우리가 갖추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의 정체성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예전의 됨됨이, 예전이 인품들 말입니다. 어제와 다른 오늘을, 오늘과 다른 내일을 보여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지 않겠냐는 우리 개인을 향한,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향한, 그리고 우리 전주대학교를 향한 부르심이 바로 오늘 말씀에서 주어진 메시지라고 생각을 합니다. 이 산지를 내게 달라 부르짖었던 갈렙의 간구와 같이, 이에 도전하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할 것은, ‘이 전에 좋았으니 이전 것을 지켜 동일하게 나아갑시다’ 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자체를 새로움으로 나아가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시는 세 가지 도구가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들의 성품입니다. 자꾸만 옛날의 것들을 주장하고 지지 않으려 하는 그런 모습들, 인품들, 성품들, 고집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품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바로 창의성, 도전, 윤리적 삶의 내용들, 용서하는 것, 사랑하는 것. 그리고 성실함. 이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지녀야 할 성실함으로 이전에 우리가 품어왔던 모든 생각들, 인품들의 빈 자리를 채워 나가기 원합니다. 특히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모습으로 나아가기 원합니다. 우리 전주대학교가 하나님 앞에서 더 나은 모습을 갖추기 위하여 학생의 본분으로서 공부에 열중하고, 교직원의 본분으로서 하나님의 학교를 이루어가기 위해 업무에, 강의에 더욱 충실하며 나아가시기를 원합니다.
도전하고, 변화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 그것이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거기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의 도구는 재능 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택하여 쓰시는데, 그 사람들을 쓰시도록 각 분야에 맞는 재능을 주신 것 같습니다. 이 재능이라는 것은 어떠한 분야를 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에 진정한 재미를 느낀다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세상을 꿈 꾸었고, 어린 마음에 나 자신이 좋아하는 이런저런 일을 가지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를 소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 자리에 서게 된 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제가 자각하고 깨달아서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목회를 하기 시작했는데, 그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세상을 계속 꿈꾸는 것이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관심있는 것으로 이루는, 즉 내가 만들어 낸 아름다운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이루신 아름다운 세상이었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 그것을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셨고, 저는 그에 재미를 느끼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들 또한 주님 안에서 각자의 재능을 마음껏 표현하며, 그를 통해 주님께서 원하시는 아름다운 세상을 이루며 나아가시기 원합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바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그렇습니다. 바로 행동하는 것이지요.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에 따라 운명론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사람들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아가는 목적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로써 그에 갇히지 않습니다. 우리들에게는 목적이 있고, 목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 행동이 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성경에서 말하듯이 말이죠. 새로운 피조물은 사색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언어에서 끝나는 것도 아니고 바로 사색과 언어를 행동으로 표현하여, 거기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새로움을 추구하는, 이미 새롭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으로써 성실한 성품을 품고, 하나님께서 주신 각자의 재능을 붙잡고 행동함으로써 나아가는 교직원분들, 학생들, 모든 전주대학교 구성원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인용가능 (단, 인용시 출처 표기 바람) *
고린도후서 5장 17절 말씀 묵상 [김연희 목사]
새로운 한 해를 기대합니까?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회개’는 헬라어로 ‘메타노에오’입니다. 이 말은 “나중에”를 의미하는 ‘메타’와 “지각하다, 분별하다, 혹은 의식하다”를 의미하는 ‘노에오’로 구성된 말입니다. 따라서 ‘메타노에오’는 나중에 잘못을 알아 고치는 행동 양식 만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닌, 이미 깊이 깨달아 알아버린 마음의 상태에 기인하는 것에 따른 생각이나 태도 혹은 방향, 목적을 바꾸는 것을 뜻합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며는 예전 보다는 더 나은 삶과 미래의 희망을 위하여 새롭게 하고자 하는 많은 계획들과 구상들을 세웁니다. 주변 분위기를 바꾸어 보는 것도, 의상을 바꾸는 것도, 이사를 하는 것도, 계획을 새롭게 세우는 것도….. 특히 올해는 이 땅 모든 사람들이 함께 꾸는 소원이 있습니다. 온 세상을 떨게하는 코로나가 종식되고 평범한 일상을 찾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기를 원합니다. 극심한 경제적 고통에서 벗어나 안정과 평안을 바라는 새로운 미래를 기대해 봅니다. 하지만 성경은 말씀합니다. 새로운 세상을 바라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듭나야 한다고…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외치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회개하라~”고…그래야 만이 하늘로 부터 내리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덧입어 이 땅의 공포와 걱정과 두려움과 불안에서 벗어나고, 환난 많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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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주변 환경이나 이웃이 아닙니다. 내 생각, 내 태도, 내 삶의 목적이 바꾸어져야 합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우리의 생각과 태도와 삶의 가치관과 목적이 바뀌어지길 원합니다. 힘으로 능으로 안되기에 겸손히 주께 나아와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구합니다. 구하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새롭게 하시며,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우리의 모든 쓸것을 채우실 것을 믿음으로 소망하며, 우리 모두가 은혜의 주님을 경험하는 올 한 해가 되기를 함께 기도합니다.
고린도후서 5:17,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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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죄 속에서 살아가던 우리는 영원한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로 인해 구원받은 존재,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멸망의 모습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하였다고 바울은 말하지만, 그 뜻에 대해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이 듭니다. 과연 바울이 고린도후서 5:17의 ‘새로운 피조물’을 언급한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자연도 신비하지만 새로운 피조물의 신비함에 비할 수는 없다
목차
1. ‘새로운 피조물’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여기에서 말하는 ‘피조물’이란,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드신 인간을 나타내는 좁은 의미의 피조물을 말합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거닐었고 하나님을 대신하여 동물들을 보살폈던 피조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에덴 동산에서 추방되었으며 부끄러움과 죽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이 땅의 모든 것을 돌보는 특별한 피조물로서 인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 고후 5:17의 앞뒤 문맥
고린도후서 5장의 1절부터 10절까지에서 바울은 ‘이 땅에 있는 장막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해 언급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의 간격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통하여 좁혀졌음을 설명합니다.
죄 속에서 하나님 나라와는 완전히 별개의 존재로 살아가던 과거의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18절부터 21절까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화해’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로운 피조물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되셨고, 새로운 피조물은 새 하늘과 새 땅, 새 예루살렘에서 거주할 자격이 주어졌다는 사실까지 연결해 볼 수 있습니다.
(2)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은 과거와는 별개의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새롭다는 말 자체가 이전의 것이 아님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형상(쩰렘, צלם)으로 혹은 그림자로서 하나님을 닮은 존재가 인간이었다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완전히 다른 존재(아나카이노시스, ἀνακαίνωσις)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존재는 새로운 곳에 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 뜻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가까워진 천국(새 하늘 새 땅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서 거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로서의 피조물이 구원 받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2. 새로운 피조물과 예수 그리스도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흙으로 인간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첫 번째 아담을 창조하셨지만, 두 번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육적인 것이 아닌 ‘성령’과 ‘능력’ 가운데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시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런 의미나 가치가 없게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엔 크리스토, ἐν Χριστῷ)에 있을 때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녹아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강물이 바닷물로 흘러 들어가면, 바닷물의 속성인 짠맛을 가지게 되고 강물의 모습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처럼 새로운 피조물도 예수 안에 있을 때, 더 이상 인간의 속성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속성으로 녹아들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를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삶으로 변화하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입니다.
(2) 또한 ‘성령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안으로 녹아 들어갔기에, 새로운 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은 단순히 육체 속의 생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근본적으로 변화된 새로운 생명을 말합니다. 이 생명은, 죄나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놓임을 받아 성령 하나님께 사로잡힌 생명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 안’이라는 말은 곧 ‘성령 안’이라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로마서 9:1-2, 개역개정 성경)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 εν χριστω ) 참말을 하며, ‘성령 안’에서 양심이 증언한다고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은 곧 ‘성령 안'(엔 프뉴마티, εν πνευματι )이며, 연결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곧 성령과의 연합이며, 그리스도의 사역은 곧 성령께서 증인이 되시는 사역임을 바울은 위의 구절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임재하셔서 이끄시는 복된 삶, 새로운 피조물의 삶
3. 새로운 피조물의 삶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이 된 성도는 곧 성령과의 연합의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녹아 들어가서 성령과 연합하게 된 성도의 삶은 어떤 삶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1) 날마다 죽는 삶
사도 바울은 고전 15:31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31, 개역개정 성경)
‘날마다 죽는다’는 그의 말은 세상과 자기 자랑에서 날마다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과거의 나의 모습은 모두 배설물처럼 여기고 죽는 삶이 있어야 합니다.
(2) 영성의 삶
날마다 죽음으로서 얻는 결과가 무엇일까요? 나의 과거 모습들이 죽음으로써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 안에 녹아 들어가게 되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더 이상 나의 욕심이나 교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전적으로 따라갈 수 있는 영성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의 삶입니다.
4. 나가면서
사도 바울은, 고후 5:17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과거의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하늘의 집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은혜로 인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을 때, 영원한 하늘의 집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셨습니다. 그 화해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우리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리는 과거의 욕망과 죄의 본성에서 날마다 죽으며 매일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녹아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성령 안에서 이끄시는 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아가는 성화의 삶입니다.
5. 더 읽으면 유용한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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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5장 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변화를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새로운 피조물로 빚어, 이전 것이 지나가고 새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옛 방식은 과감히 버리고, 내가 인생에 행하는 모든 일을 네가 포용하기를, 그리고 오직 내 안에서만 안전함으르 누리기를 원한다.
삶 주변에 경계를 쳐두고 그 안에서 안정감을 찾으면서 일상을 우상으로 만들기는 쉽단다. 하루는 24시간이지만, 매일매일의 24시간은 일련의 독특한 환경으로 이루어지지. 어제의 틀에 오늘을 끼워 맞추려고 애쓰지 마라. 대신 눈을 열어 달라고 기도함으로 귀한 하루인 오늘, 내가 너를 위해 준비한 모든 일들을 발견하렴.
하나님의 의 (고후 5:17-21) — 생명샘교회
* 하나님의 의
* 고린도후서 5:17-21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 이유, 화목
성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땅에 속했던 자에서 하늘에 속한 자가 되었고, 일시적 육체를 가진 자에서 영원하고 영광스러운 육체를 가질 자가 되었으며, 육에 속한 사람에서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해 죽어 주셨고,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그리스도께서 베풀어주신 새로운 창조의 은혜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로 된 것은 사람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공로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빚으시고 새 것이 되게 하시는 모든 새 창조가 하나님으로부터 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창조를 위해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으며,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성도가 화목하게 하셨고, 또한 성도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었으며 또한 원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죄로 인한 담이 있었고, 그 담은 사람이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을 철저히 차단하여 버렸습니다. 인간에게는 그 담을 헐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셔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가 원수되게 하는 죄를 씻기 위해 속죄제로 드려졌습니다. 예수님의 속죄 사역은 죄로 인해 생긴 담을 허무는 효력이 있기에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제물로 바쳐 드리신 제사는 속죄제이면서 동시에 화목제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바로 화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화목케 하는 수직적 화평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 사람과 사회, 사회와 사회를 화목케 하는 수평적 화평까지 이루시기 위해 이땅에 오셨습니다.
2.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은 성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세상과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화해의 손길을 받아들인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화목케 된 성도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맡으셨던 직분을 이제는 성도들에게 넘기신 것이지요. 성도들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맡은 자로서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야 합니다. 형제 자매가 서로 화목하지 못한 채, 화목케 하는 직분을 맡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또한 성도는 아직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러한 일은 성도 스스로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할 때라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지면, 그것은 반드시 일그러진 이웃과의 관계로 드러납니다.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3.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받은 성도
하나님께서는 화목을 위해 그리스도 안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과 완전히 연합하셨으며, 예수님을 통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된 세상과 화목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인간이 죄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여전히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문제에 개입하신 이유입니다. 세상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죄문제를 해결해주셔야 합니다. 죄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는 죄없는 인간이 죄인들의 죄를 감당해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죄인들의 죄를 전가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를 인간에게 돌리는 대신 의로우신 예수님께 돌리셨습니다. 그것이 기록된 것이 바로 말씀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담당할 그리스도를 보내주겠다는 내용을 기록했으며, 신약은 그리스도가 오셔서 그 화목을 이루셨다는 내용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화목케 하는 직분을 맡았을 뿐 아니라, 그 직분을 감당할 수 있게 하는 말씀을 맡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에게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하신 것이지요. 우리는 말씀 안에서 하나님과 화목하고, 서로 화목하며, 무엇보다 아직 화목 안에 들어오지 않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을 맡았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4. 하나님 나라의 전권대사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맡은 자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전권 대사입니다. 바울은 그와 그 동역자들이 그리스도를 대신한 하나님의 사신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을 통해 성도들을 권면하시며,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성도들에게 간청하는 사람들입니다. 권면과 간청의 제목은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그것은 모든 성도들이 맡은 일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권면하고,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간청하기를 원하십니다. 물론 권면과 간청의 제목은 하나님과의 화목입니다.
성도는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존재임에도 하나님가 화목하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린도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화목을 이룬 자답게 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파를 지어 싸웠으며, 자기영광을 구하느라 시기와 질투에 빠져 서로 물고 뜯었습니다. 심지어 거짓 사도들에게 미혹되어 자신들의 구원과 양육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도 바울마저 반목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가 틀어진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졌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과 화목한 상태일지라도 세상의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제대로 하나님과 화목할수록 핍박이 강해질수도 있지요.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과 화목이 깊을수록 마귀의 일군들은 더욱 거센 공격을 날리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과의 반목을 지적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마땅히 사랑하고 품고 용납해야 할 성도들끼리 자기 유익과 자기 영광을 구하느라 화목이 무너진 것을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해야 화목케 하는 직분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와 화목하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화목했다는 것은 거짓말이고 위선일 뿐입니다.
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5. 성도는 하나님의 의
하나님께선 죄를 알지도 못하신 분, 즉 그리스도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상대적 의를 가진 사람이 상대적으로 불의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수 있다 믿었습니다. 그러나 상대적 의로는 결코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구원은 오직 절대적 의로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죄를 대속할 구원자의 자격은 절대의, 절대선을 가진 이라야 합니다. 절대의를 가지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으신 절대선의 예수님을 죄로 삼으셨습니다. 죄로 삼으셨다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예수님께서 죄있는 인간의 모습으로 성육신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을 대표하여 인간 대신 죽으셔야 하기에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죄인의 모습으로 오신다는 사실 그 자체가 죄로 삼아진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죄를 전가받고,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전가받는 대신, 예수님의 의를 그 믿는 자들에게 전가하셨습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성도는 자신의 죄를 예수님께 전가하고, 예수님의 의를 전가받은 사람들입니다. 분명히 죄인이었는데, 죄를 옮겨 버리고, 의를 전가받았으므로 의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우리에게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감당케 하신 이유는 우리를 의롭다 칭해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칭의라 부릅니다. 의롭지 못한 죄인인데, 예수님의 의를 통해 그저 의롭다 불러 주시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믿는 순간 성도는 예수님의 의를 전가받게 됩니다. 예수님의 의는 곧 하나님의 의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모두 하나님의 의가 됩니다.
성도는 육신을 입고 있는 한 여전히 넘어지고 실패합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성도는 하나님의 의입니다.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달리면 됩니다. 하나님의 의는 자기의에 의해서 더해지지도 않고, 자기불의에 의해서 감해지지도 않습니다. 그것이 성도가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고개를 들 수 있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의답게 살아야 합니다.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답게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전권대사답게 살아야 하며, 화목케 하는 직분을 맡은 자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다운 삶입니다. 모양만 하나님의 의가 되면 안됩니다. 삶 자체가 하나님의 의가 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두 가지 의미 모두에서 하나님의 의로 서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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