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배 의 뜻 | 경배의 의미 159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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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는 우상숭배가 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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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 YouVersion

경배 – 엄청난 존경심과 경외감, 그리고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 경의를 표현하는 것. 여러분은 어떤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삶이 잘 흘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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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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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배란 무엇인가? > : 네이버 블로그

경배란 더 우월한 존재에게 경의를 표하거나 존경을 표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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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2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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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배와 경배의 뜻 – 제자도

이것은 입 맞추는 것, 개가 주인의 손을 핥는 것, 아양 부리다, 굽실거리다,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엎드려 경의(敬意)를 표하다’라는 뜻으로 이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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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ejado.tistory.com

Date Published: 3/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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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과 경배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경배의 본래적인 의미는 무엇인가? 찬양과 예배 모두 하나님을 높이는 것이다. 그런데 경배는 너무나 높으신 하나님 앞에서 그대로 서있을 수 없어서 자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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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de.or.kr

Date Published: 2/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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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 의 뜻 | 경배의 의미 27488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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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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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성경지식(8) 경배와 예배 – 무명의 그리스도인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요17:17),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요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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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onamechristian.tistory.com

Date Published: 5/1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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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하나님을 경배하라 < 한국마당 < 칼럼 < 기사본문

‘예배’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아바드’는 ‘봉사’, ‘섬김’이란 뜻으로, 영어의 service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 ‘솨하’는 ‘엎드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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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knews.co.kr

Date Published: 2/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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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경배하다 와 워십 (worship)

신약성경에서는 ‘무릎을 꿇다’라는 뜻의 ‘프로스쿠네오’와 ‘높이다’라는 뜻의 ‘세보마이’ 와 ‘시중들다’ 혹은 ‘경배하다’는 뜻의 ‘래트류오’ 와 ‘경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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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esus4today.tistory.com

Date Published: 11/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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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배의 의미
경배의 의미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경배 의 뜻

  • Author: 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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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1. 2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NQjqH7m2KPc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2:9

경배 – 엄청난 존경심과 경외감, 그리고 헌신을 통해 하나님께 경의를 표현하는 것.

여러분은 어떤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까? 삶이 잘 흘러갈 때, 우리는 충분한 먹을 거리과 잘 수 있는 안전한 공간, 양호한 건강 상태, 그리고 우리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에 대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연구 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받은 축복들을 주의깊게 헤아려보는 것이 우리의 삶을 더 윤택하게 만든다고 합니다.1

어쩌면 벌써 여러분은 감사함을 실천하고 있으실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받은 좋은 것들이 어디서 왔는 지도 생각해보시나요? 사도 바울은 그의 친구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신다”(디모데전서 6:17) 고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이 진리에 반응하기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시편 29:2

생각해보세요. 하나님께서 우주를 만드셨습니다. 그분께서는 행성 중에서 하나를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대기가 있는 공간으로 지으셨고, 그 곳에 인간을 놓으신 다음 인간들이 필요할 만한 모든 것을 제공하셨습니다. 그 후에, 우리의 실수와 실패(정확히 말하자면 그들로 인해) 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는 우리를 아들, 딸로 받아들이시며 주님의 가족이 되도록 초대하셨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그분을 찬양해야 할 이유입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시편 8:1, 3-8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실천가능한 3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찬양을 드리세요.

야고보는 모든 일이 잘 풀릴 때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드릴만한 찬양을 하나도 모르시나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 실제 도움이 될 만한 팁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수천 여개의 곡들을 찾으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음악 취향이 무엇이든간에, 그 취향에 맞게 만들어진 찬양 곡들을 재능 있는 음악가들이 분명히 만들어 놓았습니다.

과제: 여러분이 사용하고 계신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예배”,”찬양”,”기독교 음악” 이라고 검색해보세요. 시간을 투자해서 검색해보시면 더욱 좋으실 것입니다.

기도로 감사함을 표현하세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주셨을 때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무언가를 간청하는 것도 좋지만, 진정한 관계란 주고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우리의 경배와 존경, 그리고 감사입니다.

과제: 다음주에 하루 한번 정도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 무언가 달라고 하지 않고 그분께서 여러분에게 행하신 것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해보세요.

여러분의 이야기를 공유해보세요.

히브리서 저자는 주님의 이름에 대한 우리의 충성을 선언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북돋아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왕국의 특별한 목적을 위해 여러분을 택하셨다는 사실이 가슴뛰지 않나요?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전하고 계십니까?

과제: 이번주에 친구들과 이야기하게 될 때 자연스러운 기회를 찾아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행하신 일들을 나누어보세요.

여러분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매일의 삶 속으로 스며들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몇 안되는 제안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할 수 있는 더 많은 방법을 원하신다면 아래 플랜들을 살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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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시편 100:1-5

노트

1 축복 헤아리기 Vs 걱정 헤아리기 : 일상에서 감사와 주관적 삶의 질에 관한 실험적 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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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배란 무엇인가? >

​ < 경배란 무엇인가? >

1. 들어가는 말

성경에서 “경배”란 말이 처음으로 언급된 것은 창세기 22:5에서다. 이 구절에 보면 진정한 경배는 항상 피의 제사와 연관되어 있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경배드리고, 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 22:5)고 말한다 그와 그 아들이 둘 다 돌아올 것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이 부활을 믿었음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경배가 최초로 언급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인 이삭과 관련이 있다. 어린 양으로 예표된 피의 속죄와 죽은 아들의 부활이 동반되었다. 죽었다가 다시 부활한 아들의 피흘린 희생제사와 관련없이 하나님께 드리는 어떠한 경배도 이교도의 망상이며, 부질없는 종교적인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경배”라는 말이 구약에서 최초로 사용되었을 때 그 말은 예표로서 죽었다가 살아난 한 아들과 연관이 된다. 마태복음 2:2을 보면 현자들이 새로 태어난 왕인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기 위해 왔다. 그러므로 신약에서 “경배”라는 말이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때 그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연관이 있다. 성경은 성경 자체의 용어를 정의해 놓고 있으며, 성경 자체의 기준을 정해놓고 있다. 우리는 마땅히 성경대로 생각해야만 한다. 구약에서 경배란 말이 처음 언급되었을 때 그것은 죽었다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그리스도의 모형인 이삭과 관련이 되며, 신약에서는 이스라엘 왕의 탄생과 관련이 된다.

예수께서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마 4:10)고 하셨다. 첫째 계명을 둘째 계명과 바꿔치기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시작이다. 모든 이교도들은 그들의 말에 어떤 근거가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사도행전 4:32을 그의 표어로 사용했다. 칼 마르크스의 생각은 단순하다. 즉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 사람을 경배하는 것이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을 하늘 나라에 합당하게 변화시키는 대신 공산주의자들이 다스리는 땅에 맞게 변화시키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땅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민중의 뜻을 따름으로써 인간의 비인간성을 끝내기 위해” 투쟁하자고 했다. 전에도 이런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이것은 카인이 아벨의 머리를 돌로 쳐서 죽인 이래로 모든 정치가들이 사용해 온 오래된 속임수다. 그들은 첫째 계명을 잊어버리고 둘째 계명을 강조한다. 이는 당신을 지옥에 보내고도 남는다.

2. 전개되는 말

1) 경배란 무엇인가?​

“은혜”와 “사랑”처럼 “경배”는 정확한 의미를 찾기가 쉽지 않다. 성경에서 “은혜”는 때로 현재 상황과 관련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과거의 기회와 관련이 되기도 한다. 은혜는 때로 현재의 필요에 대한 현재적인 적용일 때도 있다. 때로 “은혜”는 주는 능력과 관련이 되기도 한다.

경배란 더 우월한 존재에게 경의를 표하거나 존경을 표한다는 의미다. 인간은 그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해야 한다. 다윗은 시편 23편에서 하나님이 그의 목자이시며, 그는 부족함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많은 일을 하신다고 고백했다.

경배는 주시는 분으로서의 아버지와, 구세주로서의 아들과, 내주하시는 위로자로서의 성령님을 알고 있는 자가 그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것을 말한다. 경배란 필요나 심지어는 축복으로 마음이 꽉 채워진 상태가 아니다. 경배는 하나님 자신으로 마음이 꽉 찬 상태이다. 이것이 현대의 마귀적인 은사주의자와 성경을 믿는 자의 차이다. 은사주의자는 대개 하나님께서 필요한 것을 채워 주시는 것에 관심이 있다. 즉 치유, 돈 또는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 위한 사역의 번성 등이다. 이것은 경배가 아니다. 경배는 자신의 필요 혹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나 심지어는 축복으로 마음이 채워진 상태가 아니다. 경배란 하나님 자신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이다.

(1)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치지 않다. ​

이것이 율법의 첫 번째 계명이다. 주께서는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 20:3)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직접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모든 계명들 중의 첫째는 주 우리 하나님은 한 분 주시라. 그러므로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 계명이니라.』(막 12:29-30)고 하셨다. 둘째 계명이라 하지 않으셨다.

만약 당신이 공산주의자라면 둘째 계명을 택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육체 안에 거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라람들이므로 그들이 육체 안에서 볼 수 있는 육적인 사람들의 육적인 몸과 육신에 관한 계명을 택한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육체가 시작이며 끝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연숭배자들이다. 즉 그들은 다윈(Darwin)의 진화론을 숭배한다. 러시아나 중국에는 진화론자가 아닌 공산주의자는 하나도 없다. 그와 같은 신념의 열매는 살인이다. 믿지 못하겠으면 1920년과 1940년 사이의 러시아와 1940년과 1970년 사이의 중공, 1970년과 1980년 사이의 아프리카로 가 보라. 피에 젖은 살인과 살상을 보게 될 뿐이다.

모든 진화론자들은 동물 문화, 동물 종교, 동물 문명,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동물을 위한 동물에 의한 동물의 정글을 믿고 있다. 이것이 프랑스 혁명과 모택동과 카스트로의 모토이다. 즉 “국민(사람)의, 국민(사람)에 의한, 국민(사람)을 위한” 그 어떤 짓도 정당화된다. 이것이 <킹제임스성경>이 말씀하는 라오디케아, 곧 “사람들의 권리”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권리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는 경배의 목적으로 성막과 성전을 세우셨다. 레위기의 대부분의 지시 사항들은 진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과 관계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 모세, 이삭, 야곱, 요셉, 이사야와 다른 사람들에게 경배의 방법을 가르치셨다. 경배는 영원토록 해야 하는 것이므로 그것에 관해서 확실히 알아야 한다. 요한계시록 4,5장을 보면 하늘의 거주자들이 하나님을 경배한다. 보좌 둘레의 장로들이 그들의 왕관을 밤낮으로 그의 발 밑에 던진다. 네 짐승과 장로들과 천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권세와 부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도다.』(계 5:12)라고 말한다. 이것이 경배이다.

(2)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경배를 이해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성령으로 나지 못하고 육으로 난 사람은 육신적이며 영의 일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인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여겨지기 때문이요, 또 알 수도 없나니 이는 그 일들이 영적으로만이 분별되기 때문이니라.』(고전 2:14)고 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원받지 못한 어느 누구도 경배에 관한 첫째 원칙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요 4:24). 거듭나지 않았다면 결코 영 안에 있지 않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롬 8:9). 악한 영에 사로잡힌 은사주의자는 “글쎄, ‘성령 안에’라는 말은 어느 정도의 황홀경에 빠진다는 의미인데”라고 말한다. 이는 구약적인 의미일 수는 있다. 또는 셋째 하늘로 올라간 요한의 경우일 수도 있다(계 1:9,10).

그러나 성령론에 근거해서 볼 때 “성령 안에” 있지 않고서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당신이 성령 안에 있지 않다면 구원받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전 6:17).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요 3:6). 『그러므로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 안에 있지 아니하고 성령 안에 있나니 이제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의 사람이 아니니라』(롬 8:8-9). “성령 안에”라는 말이 구약 선지자의 황홀경에 관한 언급이라거나 계시록에서 요한을 하늘로 휴거시킨 것이라고 누군가가 당신을 속이지 못하게 하라. 사람이 성령으로 나지 않으면 그는 성령 안에 있지 않으며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경배할 수 없다. 성경은 아주 분명하다.

누가복음 4:8에는 『너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라고 되어 있다. 시편 45:11은 『이는 그가 너의 주심이라. 너는 그를 경배할지니라.』고 말한다. 당신의 두뇌나, 교육, 당신이 다닌 학교와 기독교 학문, 더 높은 교육을 경배해서는 안 되며 우상을 경배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 앞에 다른 신들을 있게 하지 말지니라.』(출 20:3)고 하셨다.

(3) 많은 사람들은 나무와 돌로 된 죽은 우상을 경배한다. 다른 많은 사람들은 자아와 사업 또는 쾌락을 숭배한다. 미국에는 세 가지 가짜 신이 있다.

돈과 섹스와 교육이다. 이것들이 미국의 세 가지 거짓 신들이다. 이 세 가지 모두는 돈을 사랑하는 것과 연결된다. 성경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니』(딤전 6:10)라고 말하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는 천사를 경배해서는 안 된다(계 9:10). 우리는 자연을 숭배해서는 안 된다(욥 31:26-28). 우리는 사람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행 10:25,26). 당신은 지상에 사는 어떤 사람의 발 아래 엎드려 발에 키스하는 어리석은 짓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해야 한다. 예수께서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요 4:23)고 하셨다.

우리는 그가 행하신 일들로 인해서 그를 경배해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를 위해 그의 아들을 주신 일로 인해서 우리는 신격의 두 번째 인격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해야 한다(요 9:38). 우리는 그분이 행하신 일들 때문에 그분을 경배해야 한다. 그것이 잘못은 아니지만 우리는 성령을 경배하라고 지시받지는 않았다. 지상에서의 성령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그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요 16:14). 신약에 있는 어느 누구도 성령을 경배하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성령에 대해 최대의 찬사를 보내는 사람들이 성령에 관해 가장 모르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성령은 성도들을 성령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경배하도록 인도한다. 성령은 성경을 읽고 공부함으로써 하나님을 경배하고 감사하고 이해하라고 가르치신다.

경배는 저장해 두었다가 일요일 아침 모임에서 끄집어내는 것이 아니다. 경배는 일주일에 칠일간 믿는 자의 혼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하나님을 온전히 경배하기 위해서는 성령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인도하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뢰할만한” 번역본 때문에 당신의 성경을 던져 버리고 잘못 인도되지 않도록 하라.

(4) 우리의 경배는 영적이어야 한다(요 4:24). 경배는 진실해야 한다. 즉 진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보시고 우리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참되고, 진실되며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말인지 아닌지를 아신다. 경배는 또한 알고서 드려져야 한다.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해 성경을 쓰셨고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성경이 가르치는 지식을 우리가 얻기를 바라신다. 현대의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엎드려 절하고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그것은 기도가 아니다) 기도를 암송함으로써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려고 한다. 많은 사제들이 지난 주 골프에서 얻은 점수를 계산하면서 미사를 드린다.

『악인의 희생제는 주께 가증한 것이나, 정직한 자의 기도는 그의 기쁨이니라』(잠 15:8). 교회 예배 시간에 앉아 있는 것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배시간에 앉아 있는 동안 마음은 식사를 준비하고, 고기를 잡고, 돈을 벌거나 아니면 그 어떤 딴 곳에 가 있다. 하나님의 모든 자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가 영적이며 진실하며 지적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법대로인지 어떤지 마음을 써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는 찬송, 기도, 설교, 헌금 등 예배의 각 부분에서 경배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나 개인적으로 드리는 경배나 마음으로 드려져야 한다. 아버지는 자신을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셨을 때 마음이 기뻐하신다. 주께서는 우리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경배를 원하시지만 우리의 잘못된 경배로 아주 자주 실망하신다.



2) 경배를 방해하는 것들

(1) 많은 것들이 경배를 방해한다. ​

경배는 그리스도인이 해야 할 가장 최고의 의무이므로 사탄이 이를 방해한다. 사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 당신이 “성령”과 “성령의 은사”에 대해 계속 말하도록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한다. 사탄은 당신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시간은 일요일 아침 예배 시간이며 나머지 시간은 자신을 즐기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한다.

경배를 방해하는 첫째 요소는 자아 의지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에서 그를 섬기기를 원하는 한 사람을 죽이셨다. 그는 웃사다. 그는 선한 동기로 언약궤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그것은 지식과 지성과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뜻에 따라 된 것이 아니다. 즉 그는 “경험을 나누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됨”으로써 하나님을 돕고자 했던 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 때문에 길에 엎드려 죽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대항한 행위였다. 숫소 마차에 태워 언약궤를 끌고가는 필리스티아인의 방법은 사탄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언약궤는 언약궤 고리에 막대를 끼워서 제사장 어깨에 메어서 운반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레위기 10장에서도 이와 같은 일이 생겼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바쳤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상관없이 자신의 방법대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래서 둘 다 나가 떨어져 죽었다.

(2) 경배하는 성도는 자기 자신을 주장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네가 선택해서 교회에 가라”고 말한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어떠한 선택도 없다. 선택은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들은 “난 내 맘에 들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을 사용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당신은 그것을 없애 버리는 편이 더 낫다. 당신이 좋아한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값으로 산 바 되었다(고전 6:19-20). 사람들은 “글쎄, 다음 주 일요일 날 교회에 가기로 결정할 수도 있고 가지 않기로 결정할 수도 있어”라고 말한다. 그건 당신이 결정할 일이 아니다. 이것이 바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킹제임스성경>의 권위를 미워하는 이유이다.

<킹제임스성경>은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라고 말한다. 성경에 따르면 거듭나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노예이며 낙찰되어서 팔렸다. 당신을 구속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피였다. 당신은 당신 자신의 소유가 아니다 당신은 값으로 산 바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결정하시도록 하는 대신 당신이 결정할 때마다 당신은 당신 주인에게 반역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그것을 이해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들은 주인이 없다. 그들 자신이 그들의 신이며 인생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는 것은 자신의 두뇌이다. 오래지 않아 벌레들이 그 신을 삼킬 것이다.

(3) 경배를 해하는 또 다른 요소는 “세상적인 것들”이다.

신자는 이 세상에 있지만(요 17:11) 분명하게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 17:14).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과 범위가 되어야 한다. 경배는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 촛점이 맞춰진 몸과 마음과 인격이다.

또한 비판적인 영이 진정한 경배를 방해한다. 교회에서 집에 돌아와 점심을 들면서 설교자를 비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한 것이 아니다. 진정한 경배는 설교자나 교회, 성가대, 그 이상이며 하나님 자신을 경배하는 것이다. 참된 경배의 영을 죽이는 것은 다름아닌 비판적인 영이다. “이 번역이 더 나은데.” “이건 불행한 번역이군.” 등과 같은 발언을 하는 자들이 바로 비판적인 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들의 교육을 경배한다. 비판 거리를 찾지 말라. 오히려 칭찬 거리를 찾아라.

어떤 사람들은 단지 너무 게을러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할 때 육체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정신적으로 잠이 들어 주를 만나고 그를 찬양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마저 내버리고 만다. 영적인 게으름은 도둑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적 나태는 영적 각성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당신은 깨어나야 한다.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에게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고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엡 5:14)고 말했다.

또한 인내의 부족이 경배를 방해한다. 주께서는 『주를 앙망하는 자(they that wait upon the LORD)는 자기의 힘을 새롭게 하리니…』(사 40:31)라고 말씀하셨다. 스피드 시대의 우리 세대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행적을 묵상하면서 그의 존재 안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스피드 시대의 우리 세대는 앉아서 하나님을 기다리는 법을 잊어버렸고 사무엘이 사울에게 『너는 잠시 가만히 서 있으라. 내가 네게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하리라.』(삼상 9:27)고 한 충고를 따르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30분 짜리 라디오 방송을 여지껏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 과를 공부하고 있는 어떤 사람들은 내가 진리를 말하는지 어떤지를 알아보기 위해 종이와 펜을 가지고 30분도 앉아 있지 못한다.

(4) 형식에 치우침은 진정한 경배에 끔찍한 방해가 된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유로운 마음을 의식이나 성사로 바꿔치기하는 일은 사탄적이며 신성모독적이며 악한 영에 사로잡힌 것이다. 틀에 박힌 예배 형식(예를 들면 동일한 방식으로 손을 모으고 기도해야 한다든가, 동일한 방식으로 찬송을 부른다든가 동일한 어조로 설교한다든가 하는 따위)은 그야말로 진정한 경배의 영을 질식시켜 버리는 범인들이다. 죽은 전통적 관행은 가장 끔찍한 죽음이다. 죽은 정통주의는 이단의 가르침보다 더 쓸모 없다. 근본주의를 믿는다고 공언하며 일요일 아침 가장 좋은 옷을 입고 모여서 참석인원과 헌금을 늘리기 위해 정해진 형식에 맞춰 로봇처럼 행동하는 거듭나고 구원받은 사람들보다 더 냄새나는 시체는 없다. 그와 같은 종교의식에는 경배는 한 틈도 끼여 있지 않다.

자신의 인격에 대한 자만, 인종에 대한 자부심, 믿음이 좋다고 생각하는 교만, 자신의 지위에 대한 교만 혹은 자신만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교만은 진정한 경배를 저지시킨다. 그리스도인이 교만해져서 <킹제임스성경>을 바르게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마다 성령께서는 그들을 축복하시는 것을 멈춘다. 그렇게 되면 그들의 예배는 형식화되고 이에 대해 성경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딤후 3:5)라고 말씀한다. 교육받은 죄인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서 자신들의 사역과 업적을 우상이나 신으로 만드는 곳으로 전락해 버린 미국에서는 진정한 경배란 찾아보기 어렵다.

(5) 우리는 어떤 장소가 아니라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경배해야 한다.(요 4:24)

그의 임재 속에 들어가서 우리의 최고의 임무인 경배에 임할 때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하나님께 합당한 찬양과 존경과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확실히 하나님께 합당하다. 그렇게 하면 당신은 축복을 받는다. 즉 하나님께서 기쁨과 평강으로 당신의 마음을 채우실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의 거룩한 이름을 영화롭게 해드릴 경배가 끊임없이 흘러넘치기를 기원한다. 만왕의 왕이시요, 신들 중의 신, 만주의 주이시고, 알파와 오메가이시며, 처음과 끝이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시며, 길이요, 생명이요, 진리며, 문이며, 생명의 양식이요, 생수이며, 샤론의 꽃이요, 골짜기의 백합화이며, 온전히 사랑스러운 분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시며, 구세주이시고,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기름부은 자이시며, 나의 구원자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시고, 나의 사랑하는 친구이신 그분만이 홀로 찬양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그의 이름이 영원히, 영원히 찬양 받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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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성경지식(8) 경배와 예배

그러나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요4:23).

경배라는 것은 창세기에 처음으로 언급이 된다.

성경에는 첫 언급의 법칙이 존재하는데.

처음 쓰인 그 단어가 다음에 사용될 때에도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처음으로 언급된 단어를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에게 쓰였는지 분위기와 상황과 문맥을 잘 파악해야 한다. 이를 생각하면서 보도록 하자.

창세기 22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명령에 따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일어나서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으로 간다(창22:3).

아브라함이 그의 청년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에서 머물라. 나와 아이는 저기로 가서 경배드리고, 다시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나무를 들어서 그의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그는 자기 손에 불과 칼을 들고, 두 사람이 가더라(창22:5-6).

이때 이삭은 불과 칼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에 쓸 어린양은 어디에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번제에 쓸 어린양으로 마련하신다 는 말을 한다. 그러고 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묶고 실제로 죽이려고 하였다(창22:7-1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셨고 대신에 숫양 한 마리를 주어 이삭 대신 번제를 드리도록 하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시험받을 때 이삭을 제물로 드렸으니 그 약속들을 받은 자가 그의 독생자를 드린 것이라. 그에 관하여 말씀하시기를 네 씨라 불릴 자는 이삭에게서 난 자라고 하셨으니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음이라 이로써 그는 모형으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받은 것이니라(히11:17-19).

아브라함이 실제로 이삭을 죽이려고 했던 이유는 그 아들을 하나님께서 부활시킬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우는 이유 중 하나이다.

여기서의 이삭은 그리스도의 예표이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어린양이었고, 십자가를 지었으며, 아버지의 말에 순종하였고, 이삭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쓰이는 독생자의 칭호로 불리웠다.

아브라함은 마치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부활할 것을 알고 아들을 주셨듯이 아브라함도 실제로 이삭이 다시 부활할 것을 굳게 믿고 아들을 죽이려고 했었던 것이다.

이것이 경배가 처음으로 쓰여진 상황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첫 언급된 경배가 죽음 그리고 부활과 관련되어 쓰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시대에 있어서 경배의 정의는 이렇게 볼 수 있다.

1)마음이 하나님께 대한 경외함으로 가득찬 성도가

2)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인하여

3)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 진실한 마음으로 존경과 경의를 표하며

4)하나님을 합당하게 높여드리고 동시에 하나님께 받은 모든 것들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

마치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마저도 아끼지 않고 이삭도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에 대하여 순종하였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심지어는 죽음까지도 바치겠다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 이것이 경배인 것이다.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12:1-2).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바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경배는 어떻게 드리는가?

첫째, 영과 진리로 경배드린다.

참된 경배자들이 아버지께 영과 진리로 경배드릴 때가 오나니 바로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경배드리는 그런 자들을 찾으심이니라. 하나님은 한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드리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경배드려야만 하리라고 하시니라(요4:23-24).

여기서 영으로 드린다는 것은 오직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있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에 살리는 영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으로 다시 거듭나야만 하기 때문이다(요3:6, 고전15:45).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도 그의 아들의 죽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더욱더 화해하게 된 우리는 그의 생명으로 인하여 구원받게 되리라(롬5:10)

다시 말해서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영적인 관계를 맺게된 상태에서만이 경배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진리의 영이신 그분이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로 인도하시리라. 그분은 자신에 관혀 말씀하지 아니하시며 무엇이나 들은 것을 말씀하실 것이요 또 너희에게 다가올 일들을 알려주시리라(요16:13).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들이니라(롬8:13).

우리가 예수의 피로 인하여 담대하게 지성소에 들어가나니 그가 우리를 위해 바치신 새롭고 살아있는 길로 휘장, 곧 그의 육체를 통하여 들어가느니라. 또한 하나님이 집을 다스리는 대제사장이 계시니 우리가 믿음의 온전한 확신 가운데서 진실한 마음으로 다가가자. 이는 우리의 마음은 피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깨끗해졌고, 우리의 몸은 순수한 물로 씻겨졌기 때문이라(히10:19-22).

진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요17:17), 예수 그리스도를 뜻한다(요14:6).

그러므로 영과 진리로 경배드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지해서 성경의 말씀에 근거하여 한 성령을 통하여 경배드리는 것이다.

경배의 대상은 당연히 한 분 하나님뿐이며 다른 신에게는 결코 경배해서는 안 된다(요4:22-24, 요9:38, 계5:12-14).

베드로는 나도 사람이라고 말하며 경배를 거절했다(행10:25-26).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라고 말씀하셨는데(마4:10), 이는 자신이 그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마8:2, 마20:20, 막5:6).

다음으로 예배의 의미를 보도록 하자.

예배는 경배와는 다르게 다음과 같은 특징들이 보인다.

1.

형식과 질서

모든 일을 품위 있게 하고 또 질서 있게 하라(고전14:40).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3:5).

예배는 어느정도의 형식이 갖추어진다. 그렇다고 해서 카톨릭, 불교 등과 같이 어떤 경건해 “보이는” 의식들이 많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경배가 되지는 않는다.

2.

복장

어느 복장을 입으라는 말은 성경에 없지만 예배를 드릴 때 현재 가지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 깨끗한 것을 입고 가야 한다.

예를 들어서 한 나라의 대통령을 만나러 간다고 생각해보라. 당신은 그를 만나려고 할 때 어떤 옷을 입겠는가. 당신이 가진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입지 않겠는가.

하물며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데 어떤 차림으로 또 어떤 마음가짐으로 나갈 것인가?

3.

예배 장소와 시간

그 주의 첫날 제자들이 빵을 떼고자 함께 모였을 때 바울이 그들에게 설교하되 다음 날 떠날 준비를 하고 한밤중까지 설교를 계속 하더라(행20:7).

장소와 시간은 주의 첫날에 아침이든 저녁이든 언제 어디서나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모인 곳이라면 드릴 수 있다.

4.

찬송

시와 찬송과 영적인 노래들로 너희에게 말하고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곡조를 만들고 항상 모든 일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곧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며 하나님을 두려워 함으로 서로 복종하라(엡5:19-21).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을 통해서 찬양의 제물을 하나님께 계속해서 드리자. 이것이 그의 이름에 감사하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히13:15).

예배 순서에 주를 합당히 높여드리는 찬송을 부른다.

5.

기도

꾸준히 기도하고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4:2).

나는 남자들이 성냄과 주저함이 없이 어디서나 거룩한 손들을 들고 기도하기를 바라노라(딤전2:8).

우리는 성경말씀이 선포되기 전에도, 헌금을 드리기 전에도, 예배가 끝난 후에도 또는 이 밖에도 모든 것에 있어서 감사함으로 기도를 해야 한다.

6.

헌금

매주 첫날에 너희 각자가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신 대로 따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는 모금하는 일이 없게 하라(고전16;2).

큰 환난의 시련 가운데서도 그들의 기쁨이 넘치고 그들의 심한 궁핍에도 풍부한 연보를 넘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거하노니 그들은 자기들의 능력에 따라 하였고 또 능력 이상으로 자원하여 하였으며 우리가 은혜를 받을 것과 성도들을 섬기는 일에 동참할 것을 많은 애원으로 우리에게 간청하였느니라. 그들이 이것을 행하였으니 우리가 바라던 대로 만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우리에게 이 은혜를 준 것이라(고후8:2-5).

헌금을 드리는 것은 성경적이고 당연히 돌려드려야 하는 일종의 감사 표현이다.

(헌금과 십일조 https://nonamechristian.tistory.com/28?category=881400)

아무도 내 앞에 빈손으로 나오지 말지니라(출23:15, 출34:20, 신16:16).

매주 첫날 준비된 헌금을 드리는 것이다(고전16:2, 고후9:5) 이때 중요한 것은 인색함이나 억지로 드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고후9:6-7).

7.

설교말씀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들의 말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사실 그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음이니 이 말씀이 믿는 너희 가운데서도 효과적으로 역사하느니라(살전2:13).

설교 중 나오는 말씀이 성경의 말씀에 근거하여 올바로 나누어 바르게 선포될 경우 우리는 그 말씀이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럴 때에야 말씀이 효과적으로 역사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목사라고 불리우는 자일지라도 그 말씀이 성경과 다르다면 그것은 마귀의 교리에 불과하다(롬16:18).

8.

교제

동이 틀 때까지 오랫동안 대화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니라(행7:11)

너희 믿음의 교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인식함으로 인하여 효과가 있게 하려 함이라(몬1:6).

예배가 끝난 후 성도들과의 교제는 예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때는 선포된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헌신에 대한 교제가 있어야 한다.

—-

글을 마치며

이상으로 경배와 예배에 대해서 알아보았는데, 예배는 형식이 갖추어진 경배라고 본다면 이해가 쉽게 될 것이다.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여건이 마땅치 않다면 어쩔 수 없지만 올바른 교회를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가지 않는다는 것을 너희 몸을 거룩한 산제물로 드리라는(롬12:1) 말씀에 맞지 않는다. 지역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는 것부터가 몸을 드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예배날에만 주님께 몸을 드리는 것은 안 된다.

매일매일, 매순간 24시간을 주님께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고난받으며 죽어주셨고 당신은 그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을 받았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의 전인 것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 너희는 값을 치르고 산 것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인 너희 몸과 너희 영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

하나님께서는 그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몸과 혼과 영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바쳐야만 한다.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맨 위에 언급했듯이 경배라는 것이 죽음과 부활에 쓰였듯이 우리 또한 십자가에서 죽었으며 또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부활했다는 것이다.

그가 죽으심은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사심은 하나님께 사심이라.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정녕 죄에게는 죽은 자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는 산 자로 여기라(롬6:10-11).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 안에서 군림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정욕 가운데 죄에게 순종하지 말고 또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다만 너희 자신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아난 자들처럼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나에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나니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갈6:14).

우리는 이같은 구절을 염두에 두고 매순간 하나님께 경배드려야 할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있으나 그럼에도 나는 살아 있노라. 그러나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 내가 이제 육신 안에서 사는 삶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해 자신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라(갈2:20).

너희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것이 너희가 드릴 합당한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상과 일치하지 말고 너희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써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롬12:1-2).

[황인찬 목사] 하나님을 경배하라

▲ 황 인 찬 목사

‘예배’를 의미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 ‘아바드’는 ‘봉사’, ‘섬김’이란 뜻으로, 영어의 service와 유사한 개념이다. 또 ‘솨하’는 ‘엎드리다, 굴복하다’는 뜻으로, ‘숭배’, ‘순종’, ‘섬김’의 뜻을 지닌다. 그리고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프로스'(~에게)와 ‘퀴네오'(입맞추다)의 합성어로, 원래는 종이 주인에게 문안할 때 존경의 표시로 머리를 조아리며 발에 입 맞추는 것을 가리켰다. 또 ‘라트레이아’는 ‘(종으로서) 섬기다'(마4:10)는 뜻을, ‘레이투르기아’는 예전으로서의 의식(ritual)을 뜻하는 단어이다(행13:2).

예배를 나타내는 영어 ‘worship’은 원래 앵글로색슨어인 ‘weothscipe’에서 유래한 것으로 ‘weprth'(worth, ‘가치’)와 ‘scipe'(ship, ‘신분’)의 합성어인데, ‘존경과 존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뜻이며, 그런 맥락에서 하나님께 최상의 가치를 인정하며 그에 합당한 존경과 영광을 돌리는 것이 예배임을 알게 한다.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존경과 경외심이 수반된 엄숙한 행위이다(요4:20).

예배의 대상은 거룩하시고, 영존하시며, 오직 한 분이시고, 인격적이시며, 영이신 하나님만이 유일한 대상이시다(출20:3; 신4:35, 39; 사44:6-23; 고전8:4).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소부재 하시므로 신자들은 언제 어디서든지 예배할 수 있으나 특별히 성별된 장소에서 주님이 부활하신 주의 날에 함께 모여 공동으로 드리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는 귀찮은 의무라기보다 구원 받은 성도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럽고 감격스러운 특권이다. 계시록 19장은 예배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잘 보여 준다. 아울러 예배의 제 요소들에 대한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신다.

우리는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분명하고, 확고하게 붙잡아야 한다.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계19:1).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2).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6). 따라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영원히 통치하시는 높으시고, 크신 하나님 앞에 경배함이 옳다.

그리고 예배 자가 누구인지도 알아야 한다. 예배자에 대해 계시록 19장 1절은 ‘하늘에 있는 허다한 무리’, 5절은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말씀한다. 이들은 예수 믿고 의롭다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백성들을 말함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오직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드릴 수 있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 예배할 것인지도 알아야 한다. 계시록 19장의 예배 자들은 한결같이 ‘할렐루야’로 예배한다. 그리고 큰 소리로 예배드린다(1,6). 뿐만 아니라 엎드려 경배하고, 크게 기뻐하면서 예배한다(4,7). 오늘날 하나님께 예배하는 우리의 태도 역시 이러해야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우리가 예배자로서 주의 할 것은 주관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예배하면 안된다. 자칫 내 기분에 따라 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방관하기도 하며 또는 예배를 마음의 소원을 이루는 기회로 착각하기도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은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지 우리의 주관적인 이해관계 때문이 결코 아니다.

우리 예배가 병든 예배가 되어서는 안된다. 교회가 살려면 반드시 예배가 살아야 한다. 건강한 예배를 통해 교회에 은혜의 강이 넘쳐 흘려야 한다.

예배는 교회의 심장과도 같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가 힘 있게 일어나야 교회의 각 부분에 새로운 피가 흘러 생명력을 얻는다. 에스겔의 환상처럼 성도들 개개인의 가정과 삶에까지 그 생명력이 흘러넘쳐 회복 될 것이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는 우리의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이다(잠23:26, 신6:4).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몇 가지가 있다.

준비된 예배를 드려야 한다(시130:5-6). 맹목적으로 습관성 예배를 드려선 안된다. 찬양에 힘써야 한다(골3:16, 엡5:19). 예배를 방해하는 것들은 과감하게 척결해야 한다.

우리가 마음을 담아 하나님께 예배드리면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보좌와 영광을 볼 수 있다. 우리 영혼의 귀에 은은하게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자비로우신 품에 안겨 하나님이 주시는 신비로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세상의 수고와 슬픔으로 상처 입은 우리 마음을 싸매어 주시고, 하루하루 힘 있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경배 자가 되자.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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