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의 손 | [2018다니엘기도회 17일차 말씀 – 안재우 소장] 하나님의 손 2018-11-17 25508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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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 프로필]안재우 소장
현) 안재우 복화술연구소 소장
현) 한국 복화술협회 협회장
현) 극단 ‘친구’ 대표
[성경본문]이사야 41:10
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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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삼상 7:5~14) – 기독정보넷

본문의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이스라엘을 도와 주셨습니다. 그 도움은 전쟁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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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4/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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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나님의 손(the hand of God)이란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의 표현이다. 주로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돌보심 혹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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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6/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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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예배 365-4월 16일] 하나님의 손 – 국민일보

블레셋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은 책망과 진노와 심판의 손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영이신 하나님을 의인화해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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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ews.kmib.co.kr

Date Published: 2/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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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사 63:12) – 구속사 시리즈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강하신 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손을 ‘강한 손과 편 팔’ (신 3:34, 5:15, 겔 20:3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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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brahampark.com

Date Published: 10/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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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라” – Manna 24

이처럼 언약의 백성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나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움을 구하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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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manna24.com

Date Published: 9/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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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요10장 28-29절) – mission

시인이 시를 쓸 때에도 손에 펜을 잡고, 농부가 땅을 팔 때에도 손에 농기구를 먼저 잡고, 군인이 전쟁을 할 때에도 먼저 손으로 총을 잡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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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8/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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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전 09:01~10) – gsamil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입은 은혜를 말씀으로 표현합니다. …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하는 그 믿음이 내 인생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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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samil.tistory.com

Date Published: 10/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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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손 – YES24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예언하는 예언서이고, 위대한 문학의 시원이며, 영혼을 감동하게 하는 시구이며, 아름다운 예술의 극치 … eBook 하나님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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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1/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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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다니엘기도회 17일차 말씀 - 안재우 소장] 하나님의 손 2018-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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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의 손

  • Author: 21일간 열방과 함께하는 다니엘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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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11. 1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5CTS_vjctY

하나님의 손 (삼상 7:5~14) > 설교자료실

하나님의 손 (삼상 7:5~14)여러분, 하나님이 어떻게 생기셨을까요? 유치한 질문 같지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모양이 어떨까? 하나님의 생김새는 어떨까? 사실 궁금해 할 수 있습니다. 아마 어린아이들이라면 하나님을 흰 수염을 길게 기른 할아버지 모습으로 상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인간처럼 육신을 갖고 계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십니다. 우리의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따라서 어떤 모양이나 생김새로 묘사할 수 없습니다.그런데 성경에 보면 하나님에 대해 언급할 때 종종 하나님을 인간의 모양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눈, 하나님의 귀, 하나님의 얼굴 등 하나님이 인체와 같은 모습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성경에도 보면 13절에 ‘여호와의 손’ 즉 ‘하나님의 손’이란 표현이 나옵니다.그러면 성경에 왜 이런 표현들이 등장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계시(啓示)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육안에 보이지도 않고, 인간이 하나님을 잘 알 수도 없기 때문에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서 하나님 자신을 나타내 주시는 ‘친절한 배려’입니다. 이런 표현을 가리켜 신학에서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이라 부릅니다. 일반적인 용어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인간에 빗대어 표현하는 ‘의인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성경은 이런 표현들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하나님의 속성), 그리고 어떤 일을 하시는지(하나님의 사역) 잘 설명해 줍니다. 이 시간에는 그 중에서 ‘하나님의 손’이라는 표현에 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다시 한번 발견하시고, 그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승리하는 인생 되시기를 축원합니다.[1] 이스라엘의 승리 : 하나님의 손이 도와주신 결과본문은 사무엘 당신의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은 사사입니다. ‘사사’(師士)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재판관인데, 이스라엘에 왕이 없던 시절 백성들을 다스리던 지도자를 가리킵니다. 사사 시대에는 이스라엘이 암흑기라고 불리는 것처럼 여러 면에서 암울한 시기였습니다. 영적으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고, 국가적으로는 블레셋 등 강대국으로부터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사무엘이 사사가 된 것입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기도회를 열었습니다.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아놓고 집회를 가졌습니다. 6절에 기록한 대로, 금식하면서 회개했습니다. 물을 부었다는 것은 마음을 쏟아놓고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블레셋 족속이 그 틈으로 노려 침략을 해왔습니다. 기도회를 하는 중이었으니 어떻게 싸우겠습니까? 군대를 소집할 시간도 없고, 무기도 없고, … 한 마디로 한심한 겁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그냥 앉아서 당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풍전등화 같은 위기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무엘과 백성들은 부르짖어 기도했고 하나님이 놀라운 기적으로 승리케 해 주셨습니다. 10절~11절. “사무엘이 번제를 드릴 때에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가까이 오매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나가서 블레셋 사람을 따라 벧갈 아래에 이르기까지 쳤더라”이렇게 승리한 이스라엘은 하나님 앞에 감사의 표시로 기념비를 세웁니다. 12절.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가로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에벤에셀=도움의 돌 – 하나님이 도우셔서 승리했다는 신앙 고백, 감사 표시)그 후에 또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13절 보면, 여호와의 손이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블레셋의 위협에서 보호해주셨고, 더 나아가 과거에 빼앗겼던 땅을 되찾고, 주변국들이 감히 침략을 못하고 평화가 정착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 이스라엘은 계속 태평성대를 이루게 됩니다.여러분, 우리는 여기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이스라엘의 승리는 보이지 않는 가운데 ‘하나님의 손’이 역사하시고 도와주신 결과라는 사실입니다.[2] 하나님의 손의 다양한 역사 : 구원, 보호, 인도, 위로, 치유, 징계본문의 사건을 보면 하나님의 손은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능력’을 의미함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이스라엘을 도와 주셨습니다. 그 도움은 전쟁의 위기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후의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성경을 연구해 보면 이 외에도 하나님의 손이 다양한 역사를 통해 우리 성도들을 도와주심을 알 수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 몇 가지를 정리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하나님의 손은 여러 가지 면에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이 되십니다.① 구원의 손길 :본문에서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손길로 블레셋의 위험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 이스라엘은 역시 하나님의 손길로 애굽의 압제에서 출애굽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신26: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bring out, ‘구원하여’란 표현이 적절함) 내시고 … ” 출애굽 후 광야로 나간 이스라엘 앞에 홍해가 가로막았지만, 그리고 뒤에서 애굽 군대가 추격했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손길로 구원받았습니다. 출15:6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더욱 중요한 것은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지옥의 형벌에서, 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의 환란과 시험에서 구원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구원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0:28~29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예수님의 손과 하나님 아버지의 손은 우리가 얻은 구원을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를 꼭 붙잡아주십니다.재미교포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6.25 때 고아로 거지노릇을 하며 길거리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군 트럭이 그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그를 가엽게 여긴 미군이 그의 손을 붙잡아 트럭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그 후 그는 미군부대에서 하우스 보이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미군 장교의 눈에 들어 양아들이 되어 미국으로 건너갑니다. 거기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고, 공부도 하게 됩니다. 후일 그는 대학 교수가 되었고, 상원의원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생애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간증합니다. “그날 미군 트럭으로 나를 끌어올린 손은 ‘구원의 손길’이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손길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이었습니다.”② 보호의 손길 :13절을 다시 보면, ” …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의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 “ 그랬습니다. 이스라엘을 보호한 하나님의 손길이 있었음을 언급합니다.하나님은 우리를 세상의 모든 위험에서부터 보호하십니다. 성경은 그 보호하심을 가리켜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붙드시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특별히 ‘오른 손’이라 함은 능력 있는 손길임을 강조하는 겁니다. 성경에서 ‘오른쪽’은 능력 혹은 권능을 상징합니다. 다윗은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가리켜 이렇게 표현합니다. 시37:24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여러분, 「닥터 지바고」라는 영화를 아시죠. 오래된 영화지만 지금도 눈에 선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화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로 지바고와 라라의 러브 스토리에 집중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마지막 장면을 아주 인상 깊게 기억합니다. 닥터 지바고의 형(장군)은 지바고의 친딸을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러다가 한 소녀를 만납니다. 분명히 딸이 맞는 것 같아서 지바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너는 왜 아버지와 헤어지게 됐느냐?” 소녀는 당황해 하면서 얼버무립니다. 왜냐하면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는 전쟁 중이었어요. 거리는 온통 불바다였고, 저를 보호해 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자 장군은 다그치며 다시 묻습니다. “아냐, 아버지와 헤어진 진짜 이유가 뭐지?” 그러자 하는 수 없이 소녀는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냅니다. “사, 사실은 … 아버지가 제 손을 놓아버렸어요.” 그러자 장군은 단호한 어조로 말합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 사람은 네 아버지가 아니란다. 아버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의 손을 놓지 않는 법이지. 너의 친아버지는 바로 닥터 지바고야!”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절대 자식의 손을 놓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물며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어찌 우리를 놓아버리겠습니까? 하나님은 분명히 어떤 경우에라도 그 손길로 우리를 꼭 붙잡아 주실 줄로 믿습니다.③ 인도의 손길 :우리 인생은 초행길입니다.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안내자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 안내자는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 역시 초행길이기 때문입니다. 조금 앞서 가는 사람의 안내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만, 그 역시 미래를 알 수 없기에 보장이 없습니다. 오직 창조주 하나님, 전지전능자 하나님이 우리의 과거도 현재도 미래도 아시기에 진정한 안내자가 되어 주십니다.에스라7:9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길을 떠났고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오월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 에스라가 포로 생활을 하던 중 조국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됩니다. 백성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데, 길을 알 수 없습니다. 요즘처럼 길이 분명하고 좋은 것도 아니고, 지도나 네비게이션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니고 아주 막막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이 동행함으로 안전하게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됩니다.3중 장애인(시각, 청각, 언어)으로 세계적인 크리스천 교육가였던 헬렌 켈러가 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이끌린 맹인이 눈 뜬 사람보다 낫다.” 정말 그렇죠. 눈을 멀쩡하게 뜨고 있어도 인간은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엉뚱한 길로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길에 이끌리면 바른 길, 축복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④ 위로의 손길 :우리가 험한 세상을 살다보면 위로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위로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가족조차 우리에게 이로가 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그 부드러운 손길로 참다운 위로를 해 주십니다.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갈멜산 위에서 우상 선지자 850명을 격파합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듣고 이를 갈며 엘리야를 잡아 죽이겠다고 호언하는 이세벨의 소리를 듣고 혼비백산 도망갑니다. 큰 선지자라도 인간적으로 이렇게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인정사정없이 비난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책망하지 않고 위로해 주십니다.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다가도 때로는 지칠 수 있고, 낙심할 수 있음을 이해해 주십니다. 엘리야가 한참 가다가 로뎀나무 아래서 낙심한 채 잠이 듭니다. 그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십니까? 왕상19:5 “로뎀나무 아래 누워 자더니 천사가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하는지라” 천사가 나타나 부드러운 손길로 어루만져 위로합니다. 여기서 천사는 구약 시대에 종종 나타났던 그리스도입니다. 비슷한 예가 다니엘 3장(다니엘 세 친구가 풀무 불에서 살아나온 사건)과 다니엘 6장(다니엘이 사자 굴에서 살아나온 사건)에 나옵니다.하나님은 그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어루만져주십니다. 우리의 상처를 싸매어 주시고, 뺨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장차 하늘나라에 들어가면 모든 눈물을 완전하게 닦아 주실 겁니다. 계7:17 “ …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⑤ 치유의 손길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영적으로 육적으로 많은 상처를 입고, 각종 질병으로 시달리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치유가 필요합니다. 물론 의학이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상처와 질병을 치료하시는 분은 ‘여호와 라파’ 하나님이십니다.그분이 우리에게 치유의 은혜를 베풀지 않으면 의사도 약도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의사나 약으로 고칠 수 없는 것조차 하나님이 치유의 손길로 도와주시면 나음을 받을 수 있습니다.마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 8:2~3 “한 문둥병자가 나아와 절하고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가라사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즉시 그의 문둥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님의 손이 얼마나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갖고 있는지 보여줍니다.옛날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납니다. 밤새 열이 펄펄 끌어서 괴로워할 때 어머니가 손으로 이마를 짚어줍니다. 그러면 열이 내렸습니다. 그리고 배가 아파서 고통스러워할 때 어머니가 손으로 배를 쓸어주시면 아픈 게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어머니 손은 ‘약손’입니다.여러분! 하나님의 손은 ‘더 큰 약손’입니다. 예수님의 손은 ‘더 큰 약손’입니다. 그 손의 능력을 의지함으로 모든 질병과 상처에서 치유 받으시기 바랍니다.하나님은 이처럼 다양하게 그 손으로 역사하셔서 우리 성도들을 도우십니다. 그래서 험한 인생길에 동행해 주시고 능력으로 역사해 주심으로 승리케 해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세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손이야말로 가장 큰 힘입니다. 가장 확실한 승리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의 손이 함께 하면 우리 인생은 반드시 형통할 수 있습니다.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손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까? 본문에 보면 사무엘과 백성들이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의 손이 그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고 그 도우심을 받기 바랍니다.그리고 우리만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는 게 아니라, 우리 주변에 하나님의 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손을 잡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전도’가 딴 게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손을 잡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희대의 여배우 마를린 먼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마지막 약물을 과다복용하고 자실을 기도합니다. 그가 운명한 후 경찰이 현장에 달려갔습니다. 현장 검증한 결과 그의 마지막 운명 모습이 전해졌습니다. 그는 마지막 순이 끊어지는 순간 고통스러워하며 손을 뻗쳐 전화기를 향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도움을 호소하는 모습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진작 그가 하나님의 손을 붙잡았더라면 … ? 정말 아쉽습니다. 오늘 우리 주변에도 그와 비슷한 사람들이 허다합니다. 겉보기에 멀쩡하고, 아니 화려해 보이는 사람들 중에도 남모르는 사연으로 고통스러워하며 허무감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손이 하나님의 손을 붙잡을 수 있도록 도와줄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우리 자신도, 가족도, 이웃도 모두 하나님의 손을 꼭 잡고 승리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홍문수 목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하나님의 손(the hand of God)이란 신인동형동성설(神人同形同性說)의 표현이다. 주로 구약성서에서 나타나는 표현으로 하나님의 능력이나 하나님의 돌보심 혹은 하나님의 섭리와 같은 것들을 의인화한 것이다.

구약성서 [ 편집 ]

하나님의 손은 구원, 도움, 보호, 그리고 섭리의 손으로 사용되었다.

1. 구원의 손 [ 편집 ]

이사야 63:12 그 영광의 팔을 모세의 오른손과 함께 하시며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로 갈라지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이 하나님의 손으로 표현되었다.

2. 도움의 손 [ 편집 ]

역대하 30:12 하나님의 손이 또한 유다 사람들을 감동시키사 그들에게 왕과 방백들이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한 명령을 한 마음으로 준행하게 하셨더라. 도움을 주는 손으로 표현되었다.

3. 보호의 손 [ 편집 ]

삼상 7:13 이에 블레셋 사람들이 굴복하여 다시는 이스라엘 지역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으며 여호와의 손이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블레셋 사람을 막으시매.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4.섭리의 손 [ 편집 ]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을 인도하는 의미로서 하나님의 섭리를 표현할 때도 사용되었다.

70인 성경 [ 편집 ]

70인역본은 히브리어 성경(구약) 신인동형론적 표현을 배제하고 있다. 여호수아 4:24의 “여호와의 손”을 “여호와의 능력”으로 번역하였다.[1]

신약성경 [ 편집 ]

하나님의 손 (사 63:12)

새로 시작하는 올 한 해, 주님의 권능의 오른손으로 성도 여러분들을 잡아주시는 한 해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손이 아닌 주님의 손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짧지 않지만, 사람의 손은 짧아서 능력이 없습니다(신 28:32, 사 59:1, 렘 50:34). 또한 사람의 손은 악하고 법이 없는, 곧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손입니다(렘 15:21). 사람의 손을 잡는 것으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잠 11:21, 17:18).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강하신 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손을 ‘강한 손과 편 팔’ (신 3:34, 5:15, 겔 20:33), ‘두 손과 펴신 팔’(대하 6:32, 렘 21:5)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표현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시고 역사하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편 기자는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30년 간의 노예 생활을 마치고 출애굽하여 홍해를 지날 때, 성경에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홍해가 갈라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출 14:21). 하지만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팔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지팡이를 드는 오른손에 그 영광의 팔을 함께하여 주심으로 홍해가 갈라지게 하셨습니다.

이사야 63:12 “ 그 영광의 팔을 모세의 오른손과 함께 하시며 그 이름을 영영케 하려 하사 그들 앞에서 물로 갈라지게 하시고”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손은 절대 보호의 손입니다. 다윗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손에 빠지기를 기도하였습니다(삼하 24:14, 시 31:15). 또한 이사야 선지자 역시 하나님의 손 그늘에 자신을 숨겨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사 49: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우리를 덮어 보호하십니다(출 33:22).

올 한해, 우리는 하나님의 손을 놓치지 말고 반드시 붙잡고 한 해를 은혜 가운데 보내야겠습니다. 주를 향해 손을 펴고 권능과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잡아 달라고 항상 기도하시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평강제일교회 원로목사 박윤식 목사의 설교 중에서

“하나님의 손을 의지하라”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 (사31:3)

But the Egyptians are men and not God; their horses are flesh and not spirit. When the LORD stretches out his hand, he who helps will stumble, he who is helped will fall; both will perish together.

이사야 선지자는 계속해서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결국 화가 있을 것임을 강조합니다. 얼마나 애굽을 의지하려고 하면 상당한 분량의 말씀을 통해서 애굽이 헛된 것을 증거합니다. 특히 전문맥에서 하나님께서 결국은 앗수르를 낙담케 하시고, 그들을 치실 것임을 말씀하심으로 왜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지 강력히 말씀하십니다. 앗수르를 치실 이는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언약의 백성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떠나 눈에 보이는 애굽을 의지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 그들이 애굽을 의지하는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애굽에 있는 많은 병거와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한 것입니다.(1) 그들이 볼 때에는 애굽의 마병과 병거의 힘을 빌리면 얼마든지 앗수르를 대적하고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곧 현재로 말하면 강대국 앗수르를 이기는 길은 또 다른 강대국인 애굽의 전략무기들인 병거와 마병을 이스라엘에 배치하여 싸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그들이 애굽의 병거와 마병은 의지했지만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했다”(1)고 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애굽의 말을 더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라고 하십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 말씀입니다. “애굽은 사람이요 신이 아니며 그들의 말들은 육체요 영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펴시면 돕는 자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도 엎드려져서 다 함께 멸망하리라”(3)

아무리 애굽이 힘이 있고 능력이 있다고 해도 애굽은 신이 아니라 사람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힘의 상징이요 자랑인 수많은 병거와 마병도 육체에 불과하지 영이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손을 펴시면 ‘돕는 자’ 곧 애굽도 넘어지며, ‘도움을 받는 자’ 곧 유다도 엎드러져 다 함께 멸망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백성을 보호하실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으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미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애굽의 말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신17)

하나님께서는 “새가 날개 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나 만군의 여호와가 예루살렘을 보호할 것이라 그것을 호위하며 건지며 뛰어 넘어 구원하리라”(5)고 하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날개 아래 가장 안전하게 자기 백성을 품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의지할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능하신 오른 손에 오늘의 삶을 의탁하길 원합니다. 그 손에 심령도 가정도 사업도 현재도 장래도 다 내어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절대안전지역’임을 충만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예수 두 손.

말씀으로사는교회 www.lwcmd.net

하나님의 손 (요10장 28-29절)

하나님의 손 (요10장 28-29절)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없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것은 그 존재를 믿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금도 내 말소리를 여러분이 듣고 있지만, 말소리를 볼 수가 있습니까? 그렇지만 분명히 말소리가 존재하니까 여러분 귀에 들리는 것입니다. 여기 TV를 연결해 놓으면 화면이 나오고 소리가 들리겠지요? 그러나 TV의 전파를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의 손”이란 말이 참 많이 나오는데 왜 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손을 많이 말씀하셨을까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인간이 눈으로 보는 것처럼 보시는 분이시고, 인간의 귀로 들으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말을 들으시는 분이며, 우리의 발로 행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행하시는 분이고, 우리가 입으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도 똑같이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의 형상대로 지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인간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손은 행동을 의미하고, 무엇을 만들어 내는 일을 합니다. 시인이 시를 쓸 때에도 손에 펜을 잡고, 농부가 땅을 팔 때에도 손에 농기구를 먼저 잡고, 군인이 전쟁을 할 때에도 먼저 손으로 총을 잡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행동하시는 모든 행위를 하나님의 손으로 행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손이 없다할지라도 인간의 손으로 하는 그 이상의 행동을 나타내실 수 있고 인간의 역사 속에 투사하시기 때문에 성경에 “하나님의 손”이란 말이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의 눈, 영혼의 눈으로 시시각각 하나님의 손을 보고 그 손길을 체험하고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1.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아야 합니다.

이사야 48장 12-13절에 “야곱아 나의 부른 이스라엘아 나를 들으라 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과연 내 손이 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 오른손이 하늘에 폈나니 내가 부르면 일제히 서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어느 예수 믿는 대학 교수가 제자에게 전도를 하면, 그 제자는 꼬치꼬치 따지면서 천지만물이 우연히 거저 생겼다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어느 날 그 교수가 자기 집 지하실에 해와 달과 별들의 형상을 만들고 지구가 공전하고 자전하는 모형을 만들어 놓고 그 불신 학생을 불러다가 그 우주의 모형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보여 주며, “야! 참 이상하지. 내가 하룻밤 자고 나서 내려와 봤더니 이런 소우주가 생겨났어. 참 신기하지?” 그랬더니, 그 학생이 “교수님, 저를 놀리십니까? 이게 어떻게 그냥 저절로 생겨납니까? 교수님이 다 만들어놓고 괜히 저를 놀리시려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라고 하더랍니다. 그 때 교수님이 “너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느냐? 그렇다면 이 작은 우주의 모형도 저절로 생겨났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서 이 보다 더 위대하고 더 섬세한 해와 달과 별들 우주 만물이 저절로 생겨났다고 하느냐?”고 했더니, 항복하고 말더랍니다. 이사야 45장 12절에 “내가 땅을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을 창조하였으며 내가 친수로 하늘을 펴고 그 만상을 명하였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 신자는 하나님의 창조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2.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손

하나님은 창조하실 뿐 아니라 그것을 보존하시는 분이십니다. 창조하신 다음에 떠나 계신 분이 아니라,가까이서 해와 달과 별들 그리고 생물이나 무생물을 붙드시고 보존하시는 분입니다. 예를 들면 시계가 태엽을 감아 주거나 배터리를 갈아주니까 돌아가지, 가만 놔두면 멈추어 버리고 맙니다. 이와 같이 지구가 회전하는 것이나 천체의 운행이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운행하시고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각 사람의 생명을 주관하시고 심장의 박동을 붙들어 주시니까 살고있는 것이지, 하나님의 손길을 떼시면 호흡이 멈추고, 생명이 죽고 마는 것입니다.

시편 104편 28-29절에 “주께서 주신즉 저희가 취하며 주께서 손을 펴신즉 저희가 좋은 것으로 만족하다가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했으며, 시편 145편 15-16절에 “중생의 눈이 주를 앙망하오니 주는 때를 따라 저희에게 식물을 주시며 손을 펴사 모든 생물의 소원을 만족케 하시나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주 만물과 인간과 천사들까지 보존하시는 분이시며 지금도 일하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출애굽기 31장 18절에 보면 돌판에 하나님이 친히 쓰신 증거판들을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시기로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끊임없이 일하시며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볼 수 있기 바랍니다.

3.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면 자식이 잘못할 때 회초리를 들어 때리는 것처럼 하나님도 그의 자녀들이 잘못할 때 물질로나, 질병으로나, 전쟁을 통해 때리시고 징계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지난 9.11 미국의 테러 사건 때, 처음에는 왜 이런 불행이 왔나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것이 악마같은 빈 라덴을 통해서 미국을 징계하시고 때리신 하나님의 손길이었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 최강의 군사력만 믿고 또 물질 만능만 믿던 미국사람들이 눈물 흘리며 교회로 교회로 모여들어 겸손히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중고등 학생들의 총기난사로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것을 보며 각 학교에서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고, 옛날처럼 학교마다 채플에서 예배를 드려야하며 성경을 가르쳐야 한다고 외치는 소리가 높아가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미국을 사랑하셔서 그 손으로 빈 라덴이라는 몽둥이로 후려치신 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거듭난 기독교인들은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꼭 보아야 합니다. 우리 60억이 넘는 모든 사람의 머리터럭 하나까지 셀 수 있는 하나님이시므로 적은 것 하나라도 우연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4. 하나님의 보호하시는 손

하나님의 손은 징계하고 채찍질하는 때만 쓰시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시는데도 사용하십니다. 시편 10편 12-14절에 보면 “여호와여 일어나옵소서 하나님이여 손을 드옵소서 가난한 자를 잊지 마옵소서 어찌하여 악인이 하나님을 멸시하여 그 마음에 이르기를 주는 감찰치 아니하리라 하나이까 주께서는 보셨나이다 잔해와 원한을 감찰하시고 주의 손으로 갚으려 하시오니 외로운 자가 주를 의지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의 글을 읽어보면, 북한에서 목회 하시다가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몹시 낙심이 되어서 손 하나 까딱하기가 싫어서 “이제는 목사 사표를 내고 목회를 그만둬야겠다”하고 엎드려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자기가 험악한 길을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이더랍니다. 너무너무 피곤하여 오른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큰손이 나타나서 일으켜 세우더랍니다. 또 험악한 길을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왼쪽으로 쓰러지려고 하니까 다시 큰손이 나타나더니 일으켜 주더랍니다. 또 죽을힘을 다해 걸어가다가 이번에는 앞으로 쓰러지려고 하니까 두 손이 나타나더니 일으켜 주더랍니다. 그렇게 계속해서 험악한 길을 걸어가다가 눈을 번쩍 떠서 보니까 잠잔 것도 아니고 생시도 아닌데 역력한 환상을 보았는데 그 때에 “내 힘으로 목회 하는 것이 아니구나. 하나님께서 붙들어 주시는구나”라고 깨달으시고 그 험악한 목회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몇 년 전 돌아가셨습니다.

한 목사님만 능력의 손으로 붙드실까요? 아닙니다. 여러분 모두를 능력의 손으로 그때그때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핏덩이같은 어린 아기가 엄마의 손이 아니면 살수가 없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돌보시고, 보호하시는 손길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온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를 원망하며 아우성쳤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이 사정을 아뢸 때 하나님께서는 “염려하지 마라 내가 너희 코에서 냄새가 나도록 고기를 먹여주겠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한 달 동안 싫증이 나도록 먹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때 모세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장정만 60만이 넘는데 하늘에 창을 내신들 가능하겠으며 소 떼와 양떼를 몰아 오신들 그것이 가능하겠습니까?”고 반문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고 말씀하신 후 “내 말이 네게 응하는 것을 보게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는데 어마어마한 메추라기 떼를 몰고 와서는 이스라엘 진중에 떨어져 내려앉았습니다. 메추라기들은 몇 일씩 날아가다가 힘들면 내려앉아 몇 일씩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잠을 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진중에 겹겹이 내려앉아서 실컷 고기를 먹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능치 못하심이 없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에스라 7장에 보면 학사 에스라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데 정월 초하루에 바벨론에서 출발하여 5월 초하루에 도착했는데 7장 9절에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어 5월 초하루에 예루살렘에 이르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능력의 손으로 보호하시는 것을 믿고 기도하며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0장 27-29절에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능력의 손으로 붙잡고 계시므로 악한 마귀가 절대로 빼앗아 갈 수가 없고 해칠 수가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의 손, 하나님의 손은 마귀보다 강하고 세상의 그 무엇보다 힘이 있으므로 그에게 의지하면 염려할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심령도 여러분의 생활도 가정도 다 우리 아버지의 손에 맡기십시오.험악한 인생길에 연약한 자신을 믿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을 믿고 그 능력의 손에 의탁하시기 바랍니다.

5. 못 박힌 손을 보십시오.

우리가 꼭 보아야 할 하나님의 손은 십자가에서 못 박힌 손입니다. 이 못 박힌 예수님의 손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다 소망이 없고 우리는 모두 죄의 심판을 받고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도마에게 나타나 못 박힌 손과 발을 보여주신 다음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장 27-29절)”라고 고백했습니다. 부활하신 후 8일이 지난 다음 제자들이 집안에 있었는데, 도마도 거기 있었습니다. 그 때 문이 닫혔는데도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그 때 도마는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그 때에 예수께서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 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지주의자(Gnosticism)들은 하나님의 영이 예수라는 사람 속에 들어왔다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빠져 나와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는데 이것은 이단 사상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조물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려주신 것은 일시적인 것도 아니고 연극도 아닙니다. 영원히 변함이 없는 사상 최대의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지금도 못 자국이 있고 장차 재림하실 때에도 못 박힌 손이며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못 박힌 손입니다. 그 사랑의 흔적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그 못 박힌 손은 영원히 잊지 말아야 합니다.

창조의 손 그것을 보존하시는 손을 보아야 하고, 징계하시는 손, 보호하시는 손을 매일매일 느껴야 하고, 못 박히신 주님의 손을 믿음과 감격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전 09:01~10)

인도의 거리에 주인 없는 늙은 소가 어슬렁거리는 광경을 방송매체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소가 길을 건너면 차도 서서 기다리고, 사람도 비켜서서 길을 양보하는 것은 힌두교의 암소 숭배자들이 암소를 자신의 어머니와 같은 존재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늙어서 우유도 짤 수 없는 암소를 아무 소용없다고 죽이는 행위는 어머니가 늙었다고 살해하는 행위와 동일하게 여기는데 이는 신성한 암소는 힌두교의 윤회설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힌두교도들은 모든 존재가 열방을 향한 다양한 단계에 있는 영혼이라고 보며, 악마로부터 소에 이르려면 86번의 윤회를 거친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만 더 윤회하면 인간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따라서 사람이 암소를 죽이게 되면 그 사람의 영혼은 가장 낮은 단계로 미끄러져 다시 진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힌두교 신학자에 따르면 암소에는 3억 3천만의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기 때문에 당연히 신으로 섬길 수밖에 없습니다.

소에 의해 힌두교도들의 인생이 좌우된다고 여겨지니 참 불쌍합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이런 미신적인 것들을 거부하며 또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은 윤회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믿는 겁니다. 이 진리를 받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1.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01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한번 힘 있게 따라합시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예, 세상의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손 안에서 결정이 납니다. 오늘 말씀을 기록한 솔로몬은 왕위에 올라서 나름대로 부와 명예와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최고의 즐거움을 누려 보았던 인물입니다.

만인이 볼 때 최고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솔로몬 왕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인생 여정을 내려놓을 수밖에 없었는데 겨우 60세 정도를 살다가 갔습니다. 솔로몬이 노년에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면서 인간의 지혜와 능력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초라한 것인지를 깨닫고는 모든 일은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구나. 라고 고백을 합니다.

조금 전 모든 일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라고 따라 했잖습니까?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고백하는 그 믿음이 내 인생을 좌우합니다. 일반적인 세상의 법칙은 적절한 환경과 능력만 있으면 성공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행하는 일들을 보면 누구든지 성공을 목표로 뛰나 그 바람대로 성공하기 보단 실패를 하는 일들이 더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의 하는 일들이 제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 하는 것 같아도 역시 불완전하고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11절은 별 수 없는 인간임을 증명합니다.

11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보니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용사들이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들이라고 음식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명철자들이라고 재물을 얻는 것도 아니며, 지식인들이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솔로몬은 11절에서 네 부류의 사람들 즉 남보다 빨리 달리는 사람들, 남보다 용맹스런 사람들, 남보다 비상한 재주가 있는 사람들, 남보다 똑똑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목적을 확실히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능력이 있고 좋은 자질을 갖추어도 얼마든지 넘어지고 실패할 수 있으며, 누구나가 저 사람 만큼은 으뜸이 될 것이라 여겨도 오히려 꼴찌가 되어 무기력해 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 예를 출애굽기 01장에서 한번 볼까요? 애굽에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왕조의 바로 왕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에 절체절명의 위기를 만납니다. 이스라엘의 점점 흥왕해 가는 모습을 본 바로 왕이 더 이상 방치하면 나중 전쟁이 일어날 때 뒤에서 공격자로 돌변할 것이라 여겨 민족 학대 정책을 펼치기 때문입니다.

먼저 이스라엘 민족을 종으로 삼고 그 위에 사나운 감독을 세워 노역으로 괴롭게 하고, 다음으로 십브라와 부아 이 두 산파들을 명하여 강제로 아들을 제거하는 일을 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이스라엘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오히려 산파 십브라와 부아를 보호하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이스라엘 민족은 더욱 왕성해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민족의 흥망성쇠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출 01: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 하나님의 손은 승리를 보장합니다.

사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은 가끔 자수성가(自手成家)라는 말을 들어 보실 것입니다. 자수성가 뜻이 무엇일까요? 연세가 드신 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물려받은 재산이나 배경이 없이 스스로의 힘으로 사업이나 살림을 이룬 경우를 말합니다. 그러나 자수성가는 지극히 개인적인 일에 속합니다.

그래서 요즘 자수성가에 대한 새롭게 만든 신조어가 하나 있는데 신수성가(神手成家)입니다. 내가 노력하여 성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이 가문을 일으켜 세우는 것을 비유하는 말입니다.

자수성가는 자연의 원리에 따라 어리석은 부자도 열심히 노력하고 또 소위 말하는 운이 좋으면 받는 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수성가는 누구나가 받는 그런 복이 아닌 영적원리를 따라 믿음으로 받게 되는 복입니다.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 모두에게 믿음 줄 하나만 잘 붙들고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신수성가를 이룰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음으로 이루는 신수성가의 길 보다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방법을 찾는데 골몰합니다. 요즘 주택들을 보십시오. 잠금장치를 이중 삼중으로 만들고,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도록 비디오 폰은 필수로 설치합니다.

건물들도 엘리베이터를 비롯해서 층층마다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놓고는 범죄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하나 그렇게 한다고 어디 안전이 보장됩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모든 분야에서 많은 두려움을 겪으며 또 많이 놀라기도 합니다. 어떤 상황을 만날 때 제일 두렵고 놀라움을 느낍니까?

여러 가지 두려운 요소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상대방이 너무 커 보이면, 상대적으로 내 능력이 너무 보잘것없어 보이면서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에 사로잡혀 두려워 마십시오.

악인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그 손이 나를 붙들어 주시는 한 나는 언제나 안전합니다. 사람의 생사화복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살아가는 불안한 모습을 한 번 볼까요?

이사를 하려해도, 집안에 무슨 경사스러운 일을 치르려 해도, 먼 길을 떠날 때도, 집안에 무엇인가를 고치려 할 때도, 심지어 간장을 담을 때도 손 없는 날을 찾아서 했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손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요? 손님의 준말로서 나쁜 액운을 몰고 다니는 불청객입니다. 불청객이란 달갑지 않은 손님이잖습니까? 즉 귀신을 빗대서 하는 말이에요. 옛 선조들은 이 못된 귀신이 날수에 따라서 활동하는 방향이 다르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예를 들자면 숫자가 1,2로 끝나는 날은 동쪽 방향에서 활동을 하고 3,4로 끝나는 날은 서쪽 방향에서 활동을 하고 5,6으로 끝나는 날은 남쪽방향에서 활동을 하고 7,8로 끝나는 날은 북쪽에서 못 된 짓을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귀신이 활동하지 않는 방향을 찾아서 길을 떠났고 이사도 했으나 그보다 더 확실한 안전의 날이 있습니다. 귀신이 아무 방향에서도 활동하지 않는 9와 0으로 끝나는 9일, 10일, 19일, 20일, 29일, 30일입니다. 그래서 9와 0, 이 날을 손 없는 날이라고 부릅니다.

성도 여러분은 미신이나 사람의 생각으로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성도의 생사화복은 악인에게는 두려운 심판을 하나 의인에게는 보호의 벽을 쳐 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다고 성도들은 어려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역경을 만나고, 질병에도 걸리고, 실직을 할 수도 있으나 결국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하나님의 손길이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시 46:0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03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3.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03 …. 인생의 마음에는 악이 가득하여 그들의 평생에 미친 마음을 품고 있다가 후에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가는 것이라.

사람은 내일 일을 제대로 모르면서 부귀영화와 더불어 오래 사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사느냐 죽느냐 하는 문제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으며, 결국은 마지막엔 모든 사람이 가는 죽은 자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요즘은 흔히들 백세 시대라고 하죠? 또 백세의 삶을 이루기 위하여 웰빙 음식을 추구하고, 그런 음식점을 찾아서 전국을 누비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는 하나님께서 날마다 생명을 연장시켜주셔야지, 그렇지 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바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름 앞에서 누가 거부하거나 연기 할 수 있습니까?

01절은 세상 사람들의 행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했고, 03절은 결국 인생은 만인이 가는 죽음의 길로 간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죽음을 맞으면서 함께 종말을 맞는 4가지가 있습니다. ①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 끝나고, ②세상에서 누리던 향락이 끝나고, ③자신의 이름에 종말이 오고, ④감정의 종말이 옵니다. 목숨 바쳐 사랑했던 사람도 그 절실했던 감정과 훈훈한 우정도, 시기도 미움도 다 끝나는 거죠.

그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해야 할 일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그 분의 주권을 인정하는 스타일로 전환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장래에 대한 믿음의 준비도 없이 살다가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 앞에서 이 일을 어찌하여야 할 꼬? 하며 당황한다면 되겠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고 믿어지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생명을 연장시켜 주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기쁨으로 자신을 던지십시오.

잠 27:01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생명을 관리하는 일은 내가 합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죽음을 자기와 상관이 없는 일로 생각합니다.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데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찾아옴을 잘 아시죠?

고후 13:05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이 말씀은 교회에 잘 다니는지, 봉사 잘 하는지, 체크해 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는지, 기분이 좋을 때는 구원 받은 것 같고 기분이 언짢을 때는 구원 못 받은 것 같은 것이 아니라 구원의 분명한 확신이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말씀입니다. 나의 생명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고, 그 분 만이 나의 인생의 주인임을 깨닫는 지혜야 말로 나를 안전한 생명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생명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인생의 프로그램을 짤 때 하나님을 제하지 마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제하려 하면 하나님께서 먼저 내 인생을 제하십니다. 눅 12장에 하나님을 제외하고 살아가는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인생 설계도가 나오죠?

눅 12: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인생은 한 권의 책과 같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마구 넘겨 버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열심히 읽습니다. 한 번밖에 인생을 읽지 못함을 알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무조건 즐거워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두 번째 인생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돈이 많든 적든, 명성이 높든 낮든 누구나 공평하게 단 한 번의 인생만 살 수 있기 때문에 지나버린 시간은 물릴 수도 없고,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왜 나는 부자가 아닐까? 왜 나는 유명해 지지 못할까? 라고 고민하기보다 왜 나는 지금 즐겁지 않은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여러분 행복을 원하시죠? 행복은 행복한 생각에서 출발합니다.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에서부터 오고요. 행복한 생각을 심으면 행복한 인격이 나오고, 행복한 인격을 심으면 행복한 인생이 나옵니다.

행복은 선택이고, 행복은 습관입니다. 반대로 불행도 습관입니다. 불행을 원치 않으면 불행한 생각을 거부하면 됩니다. 불행한 생각을 선택해서 행복해 지는 법은 없습니다. 인생을 숙제하듯 살지 말고 축제하듯 삽시다. 인생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삼상 02:0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0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

하나님의 손

구약성경을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구약성경은 예수님을 예언하는 예언서이고, 위대한 문학의 시원이며, 영혼을 감동하게 하는 시구이며, 아름다운 예술의 극치이다. 모세오경을 통해서는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한 영의 양식을 맛볼 수 있고, 거룩한 예배와 하나님에 대한 경외감이 파도처럼 심장에 밀어온다. 시편, 전도서, 잠언에서는 놀란 아이를 품어주는 어머니의 품과 같은 하나님의 품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구약은 과거의 오래된 약속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약속돼 지금 우리에게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는 말씀이다. 그렇기에 구약성경은 최초로 영성이 형성되는 최초의 살아있는 체험이다.

구약성경을 본문으로 한 설교를 통하여 『세미한 음성』을 듣는 놀라운 체험을 하여 역동적인 신앙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은혜는 지속해서 영적 수준을 강화하는 강력한 힘을 받을 것이다. 구약성경은 매우 영성스럽고, 개인적이며, 신비로운 영성의 길을 열어준다. 우리들의 범사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살아계신 하나님이 어떻게 응답하는 지를 보여준다.

한 인간을 완전하게 뒤집어 놓을 수 있을 만큼 변화의 힘이 말씀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본 구약 설교를 통해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구약 말씀이 아니라 완벽하게 우리의 삶의 한 가운데로 이끌어 주는 감동을 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구약성경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하는 신비로운 음성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구약성경에서 삶의 한 가운데로 살아있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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