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 예배 설교 | [기독교 장례 이야기]#1-1 \”장례 예배 준비하는 목사가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꿀팁\” 상위 147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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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례 이야기] #1-1
\”장례 예배 준비하는 목사가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꿀 팁\”
제2강 \”임종예배부터 하관예배(부활대망예배)까지 전 과정\”
제3강 \”환우의 임종예배\”
제4강 \”성도 소천의 소식을 연락을 받고 해야 할 일\”
제5강 \”장례식장에서 해야 할 일\”
제6강 \”위로 예배 준비시 주의 할 일\”
제7강 \”안치실 입관시 해야 할 일\”
제8강 \”입관 예배 준비시 주의 할 일\”
제9강 \”발인 예배 준비시 꼭 기억할 일\”
제10강 \”화장장에서 주의 할 일과 화장예배 인도\”
제11강 \”장지에서 주의 할 일\”
제12강 \”납골당에서 주의 할 일\”
제13강 \”수목장시 주의 할 일\”
제14강 \”산골시 주의할 일\”
제15강 \”전통적 하관을 할 때 주의할 일\”
제16강 \”바다장을 할 때 주의할 일\”
제17장 \”장례식 설교 작성법
제18강 \”장례식 기도\”
제19강 \”차별화된 장례 예식 준비하기\”
제20강 \”제3일차 발인날 주의할 일\”
제21강 \”화장장 선택과 예약하기\”
제22강 \”상조회사 고르는 법\”
제23강 \”장례식장 고르는 법\”
제24강 \”납골당 고르는 법\”
제25강 \”장례식 때 바가지 안 쓰는 법\”
제26강 \”장례식 가장 경제적으로 품위있게 하는 법\”
제27강 장례식 예식지
제28강 장례식 실제 설교문
제29강 장례식 기도문
#기독교장례식,#장례예배,#강태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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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 – 기독정보넷

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 제목: 위로와 소망 찬송: 539, 545 성구: 살후 2:16-1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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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8/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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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모음 – 다음블로그

장례예배 설교모음 · 1. 묵상 기도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신 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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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9/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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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 설교(내부에 많이있음) – 설교신문 0691.in/sermon66.com

언제부터인가 장례예배를 “천국 입성 축하. 장례 의식과 설교 1. 죽음의 神學的 意味 1) 자연적인 죽음 하나님은 시작과 끝이라 하셨으니 하나님께서 창조한 만물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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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0691.in

Date Published: 1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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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

장례예배설교 입관예배설교 발인예배설교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 유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는 장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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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tfreak.tistory.com

Date Published: 12/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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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 …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유족들을 위해서 위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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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l-bethel.tistory.com

Date Published: 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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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 mission

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니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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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ission.bz

Date Published: 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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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인예배 설교 – 사역자료실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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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odkids.tistory.com

Date Published: 4/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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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옥같은 장례식 설교모음 – 한국컴퓨터선교회

주옥같은 장례식 설교모음 · 1. 계 22:5에 천국에는 밤이 없다 했습니다. 밤이 없습니다. · 2. 질병과 고통이 없습니다. · 3. 죽음과 슬픔이 없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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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kr

Date Published: 1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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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 하늘나라 영원한 집 …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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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hb-bible.tistory.com

Date Published: 3/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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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장례 이야기]#1-1 \”장례 예배 준비하는 목사가 기억해야 할 다섯 가지 꿀팁\”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장례 예배 설교

  • Author: [교회를 위하여] 강태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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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0. 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rV22xoOvmw

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 > 교회개척정보 :: 장례, 추도, 결혼, 임직등 예식자료

장례식 설교 요약 모음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위로와 소망찬송: 539, 545성구: 살후 2:16-171. 이별이 주는 선물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삶 자체에 대해 별 의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아픈 마음을 들어 주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에 다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말도 해주지를 못했습니다. 세월이 약임을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인간의 헤어짐은 새로운 소망을 향한 출발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아픔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2.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데살로니가 교회는 ‘죽음’의 문제로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불확실한 성도가 있었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들도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먼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의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을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당신을 구하셨습니다.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정도로 존귀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당신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하늘로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는 상담자, 위로자, 변호자를 의미합니다. 당신을 위로하시고 상담하실 분,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께 당신의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당신의 생애 속에 아무런 낙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주님은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둘째로 당신을 굳게 세워 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될 때 당신을 붙잡아 주실 분,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당신이 실망될 때 당신을 든든히 지키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당신을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3. 영원한 위로와 소망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추거나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허전함이 느낍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000님에게 하늘로부터 말미암는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굳게 세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둔 가족들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000님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영원한 소망의 줄을 잡고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슬픔 가운데 머리 숙인 우리를 능히 굳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질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선한 싸움을 위해 질주할 뿐입니다.오늘 임종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십자가 그늘 아래서 위로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운명 전 예배 설교(돌아가실 분이 믿음이 없는 경우)제목: 인생의 종말찬송: 534, 539성구: 창 49:28-30인생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한 한정적인 존재입니다. 태어났다가 때가 이르면 죽고마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 지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을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곧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생이 아닌 죽음이 다가옴으로 인해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 사실입니다.1. 죽음의 의의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도 존재의 사라져버림도 아닌 분리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본체이신하나님과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범죄하면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겔18:4).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이 곧 영혼의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육체가 영혼과 분리될 때 육체만 남게 됩니다. 영혼이 떠난 몸은 부패되고 썩어버립니다. 야고보서 2: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대심판대 앞에서 주를 밎지 않던 불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끝도 없는 세월 동안 단절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 속에서 영육이 다같이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2. 사후 상태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로 그 상태를 성경은 보여줍니다. 첫째, 일반적인 상태인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멸하지 않는 생을 가지며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둘째, 신자의 상태를 보면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립니다(히 12:23, 고후 5:1,6). 셋째, 불신자의 상태인데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고통과 어두운 가운데서 대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서 능욕을 당하기 위해 부활하게 됩니다.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좋은 세계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세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최후를 장식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최종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이 땅에 영원토록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부름을 받는 날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000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000님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000님과 가족 여러분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 천국의 소망이 든든한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영원한 세계찬송: 291, 295성구: 고후 5:8-9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고 000(직분)님께서 0일 0시 0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000(직분)님께서 살아 생젼에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는지. 믿음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눈물과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00년간 병석에 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000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자녀들이 믿음 위에 서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이제는 000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유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1. 바울 사도의 소원사람들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몸을 떠나가서 주님을 만나 뵈옵는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000님께서도 바울과 같이 속히 육신을 떠나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소망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몸 안에 거하든지 또는 떠나든지 간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이 세상을 떠나, 몸을 떠나 주님을 만나는 것을 고대하였을까요?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이 세상에는 없는 참된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000님께서도 이제는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서, 슬픔 많은 이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아픔과 고통이 없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줄 믿습니다.2. 성도들의 소원누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선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어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000님은 예수를 믿어 이미 저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그분이 그렇게 소원하시던 것과 같이 주님과 더불어 이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 000님의 시신 앞에서 자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떠난다 하여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계시는 고 000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까? 이 소망이 여러분들의 변치 않는 영원한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고 000님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과 역경 중에서 고달픈 생활과 무거운 짐을 지고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쉬라 하시매 이 모든 무거운 것과 짐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 안식의 세계에, 행복의 세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세계, 천군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는 세계를 바라보시면서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누리는 유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믿지 않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경우)제목: 영원한 장막찬송: 187, 188성구: 고후 5:1-5우리는 나그네 인생들입니다. 누구든지 이 장막집에서 영원토록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그네는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인생들입니다. 자녀들이 휴가를 받아서 텐트를 들고 경치 좋은 바닷가에 며칠지냅니다. 그런데 거기서 영원토록 살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인생입니다.오늘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육신의 장막집은 언젠가는 무너질 날 있다는 말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흙에서부터 왔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1. 하나님께서 지으신 장막집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끝이라고 말하는데, 만약 우리 인생이 그렇다면 우리만큼 불쌍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생명이 끝나고 나서는 반드시 선악을 판별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의 말씀에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나그네 인생을 잘 살아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천국에 예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심판밖에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둘러 앉은 유족들에게 저는 목사로서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 여러분들의 남은 날이 얼마일런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제는 우리 차례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아도 믿음으로 준비하며, 우리도 우리의 장막집을 벗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신 영원한 집으로 들어갈 소망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오늘 본문 2-3절 말씀에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리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고 했습니다.2. 천국 소망이 있는 사람사람의 몸은 흙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의 생명이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날이 한 번 불어 흔적도 없어지는 바람 같고 공중에 쏘아서 금방 보이지 않게 되는 살과도 같습니다. 해가 오르면 말라서 사라지는 아침 이슬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므로 가야합니다. 죽음의 길을 아무도 거스를 수 없는 것은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같이 정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거스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제 남은 귀한 유족들의 영혼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 아버지 집에서 평안한 안식을 누리고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리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라건대 사랑하는 유족들과 친지들 그리고 모든 이웃들에게도 지금 바로 이 위로가 함께하사 과도한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지 않기를 바랍니다.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집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음이라는 형벌을 주신 대신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천국집을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서 마련해 놓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의 사람만이 이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자기의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명예로 집을 짓고 어떤 이는 돈으로 집을 짓습니다. 어떤 이는 힘으로 집을 짓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으로 지은 집은 육체가 죽는 그 순간에 함께 무너져 버리고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 6:7) 이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된 것입니다. 돈을 쌓아 놓고 이제 잘 살아보자고 하다가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명예를 얻어 놓고 그 다음날 죽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믿음으로 지은 집은 영원합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모든 유족들이 더욱 믿음에 굳게 서서 훗날 아버지 집에 다 들어갈 수 있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제목: 죽음조차 귀중합니다성구: 시 116:5-16사람이건 짐승이건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누구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생명이 있는 것이라면 고차원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부터, 말초신경만으로 살아가는 한낱 미물조차도 죽음을 두려워하며 거부하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은 두렵고 공포스러운 죽음이 아닌 귀하고 복된 죽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성도의 죽는 것을 하나님께서 귀중히 보신다고 가르쳐 줍니다. 왜 그렇습니까?1. 하나님이 우리를 후대하시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우리를 위해 좋은 것을 예비해 두시고 때를 따라 은혜를 내려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 은혜는 이 세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저 하나님 나라에서도 계속될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후대하십니다. 이 세상 살 동안도 그러셨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크게 우리를 후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도의 자격을 주셨기 때문입니다.성도란 누구입니까? 말 그대로 거룩한 무리입니다. 누가 거룩합니까? 아무리 노력하도 근본이 죄악된 우리 인간은 거룩해질 수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입은 사람들만이 거룩한 무리,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영원한 천국, 우리의 본향에 돌아가서 하나님과 함께 살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죽음은 귀한 것입니다.3. 우리의 결박을 푸셨기 때문입니다.인생을 산다는 것은 온갖 결박에 묶여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고의 결박, 질병의 결박, 사고의 결박, 물질의 결박 등 일일이 다 나열할 수 없는 많은 결박에 묶여 살아갑니다. 성도들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 결박을 푸시고 영원한 자유를 허락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더 이상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없습니다. 완전한 기쁨과 평화와 안식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가 죽는 것, 즉 예수 안에 죽는다는 것은 공포스럽고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복된 것입니다.사랑하는 성도가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육신의 이별은 슬픈 일임이 분명하지만, 이 죽음이 성도의 죽음이 되었다는 사실로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죽음조차 귀중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슬픔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며 천국을 소망 중에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입관예배 설교(일반적인 죽음일 경우)제목: 사모의 정찬송: 221, 222성구: 창 50:22-261.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타향살이는 사람에게 그리움과 외로움을 안겨다 줍니다. 고향 사람이 그립고 고향의 정취가 그립고 흙내음이 그립습니다. 북한에서 넘어온 수많은 실향민들이 아직까지 고향 산천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거나 통일에 접근하는 움직임들이 있을 때마다 설레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습니다. 공산치하의 숨 막히는 삶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그리운 고향 산천에 한 번이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으로 통일의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향에 대한 사모의 정입니다.2. 약속의 땅을 사모하는 요셉요셉은 어린 시절 형들의 시기 때문에 가까스로 죽음을 모면하고 외국에 노예로 팔려왔습니다. 그가 팔려온 곳은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보디발은 애굽에서는 직위와 명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파란만장한 타향살이 가운데, 애굽에서 출세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향에 대한 사모의 정이 항상 그의 마음 속에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해 팔레스타인에 기근이 생기게 되었고, 그 기근으로 먹고 살기 힘든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요셉은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꿈을 통해 먹을 것을 비축해 두었습니다. 이제 야곱이 살 수 있는 것은 애굽의 도움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수차례의 시도 끝에 애굽으로 내려가게 되었고, 애굽에 내려가서 그토록 그리워하던 요셉을 만나서 행복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인생에 행복한 시간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이 땅이 아무리 행복이 있다고 할지라도 피할 수 없는 것은 죽음입니다.그는 행복한 삶을 마감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드디어 요셉의 나이도 110세가 되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던 시간들이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 선 요셉이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자족들에게 잊어서는 안 될 비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를 권고하시고, 너희를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요셉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언약의 땅에 때한 비전이 있었고, 그 땅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후손들에게 그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돌아갈 곳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후손들에게 확답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타향 땅 애굽에 영원히 묻혀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유골을 약속의 땅으로 이장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습니다. 요셉은 죽었고, 그의 육신은 향재료를 발라 애굽에서 입관하였습니다.3.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고 있습니까?세월의 흐름에 따른 인간의 죽음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속에 간직되어 온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역시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들었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약속의 땅, 그 가나안에 대한 사모의 정은 죽음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요셉은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그리운 땅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죽음을 눈앞에 두었다면 여러분들의 가슴에 무엇이 가득 차 있겠습니까? 돌아가고 싶은 그 어떤 세계가 있습니까?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영혼의 안식처, 영원한 본향에 대한 사모의 정이 있습니까? 우리의 마지막 소망이 무엇입니까? 만약 우리가 이 세상 것으로 많이 채워두고 애착을 가지는 것들을 만들어 두면 본향에 대한 사모함이 적어질 수 있습니다. 죽는 것이 두려운 분이 계십니까? 왜 그렇습니까? 당신의 마음이 이 세상 것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거나 영원한 본향에 대한 사모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입관예배에 참석한 우리의 입에서 “너희는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는 고백이 나올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입관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지상에서 영원으로찬송: 294성구: 빌 3:20-211. 새로운 피조물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들이 천국의 시민이라고 불리는 것에 대해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리스도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시는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의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신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됨으로 말미암아 이미 영원한 하늘의 고향으로부터 오는 생명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이 소망은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에 속한 것입니다. 이 소망은 복스러운 소망이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부끄럽지 않은 소망입니다(딛 2:3). 만약 우리에게 이 영원한 산 소망이 없었다면 이 지산에서의 삶은 무의미하며 살맛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소망 때문에 슬픔 가운데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2. 믿음의 이유이런 믿음에 대한 두 번째 이유는 삶은 이런 육체적인 존재에 비해서는 너무나 크다는 것입니다. 매 7년마다 우리의 육체적인 몸은 완전한 쇄실을 경험한다고 합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 여러 번의 몸들을 경험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격은 지속합니다. 사상들과 기억들과 소망들과 목적들은 모두 이런 육체적인 변화를 겪으면서도 여전히 유지되어 왔습니다. 생명이 있는 동안 여러 번의 몸들을 소모한 후에 인격이 천상적인 몸으로 계속하여 갈 수 있다는 것을 믿는 것이 왜 어려운 것입니까? 사실, 생의 가장 참되고 가치 있는 것들은 몸 안에 갇혀 있을 수 없으며, 고학에 의해서 측정될 수도 없습니다. 어머니의 사랑과 고귀한 인격과 신실한 우정, 이와 같은 가치들이 우리의 몸 안에 묶여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인격의 가장 귀중한 소유인 것입니다.하늘의 고향에 대한 믿음을 갖는 세 번째 이유는 성자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이 지상의 식민지로 보내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가 어떻게 사셨으며, 사랑하셨으며, 죽으셨는가를 보았습니다. 그는 생을 떠나는 자로서가 아니고 더 큰 생으로 들어가는 자로서 죽음의 길로 걸어가셨습니다. 그는 죽음의 공포에 대해, 그리고 죽음의 사실에 대해 승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고향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셨고, 또한 그 하늘나라에서 지금도 살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때로는 연약하여 넘어지기도 하고 어려움에 처하기도 하지만, 그리고 우리의 육신의 생명은 다하는 날이 있지만, 우리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습니다.3.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라먼저 부르심을 받은 고 000(직분)님은 이런 소망 가운데 그의 몸은 비록 이 땅 위에서 병과 싸우는 삶을 살아가셨지만, 이제 이 땅 위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옮기우셨습니다. 이제 우리들에게도 남은 소망이 있다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놀라운 믿음으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믿는 자에게 주시는 큰 선물입니다. 모두가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입관예배 설교제목: 수고의 집을 벗고성구: 마 11:281. 인생을 산다는 것은 짐을 지고 가는 과정입니다.예수님은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큰 짐을 지고 어떤 사람은 작은 짐을 지지만 누구나 짐을 지는 수고로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이 땅에서 호의호식하던 사람도, 태생이 출중하고 천성이 훌륭해도 어쩔 수 없는 수고로움의 짐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각자 나름대로의 짐을 지고 그 무게를 버거워하며 한걸음 한걸음 힘든 발걸음을 옳기는 존재들입니다. 어느 누구도 짐을 지는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것입니다.2. 예수께서 이 무거운 짐진 사람들을 부르십니다.“다 내게로 오라”고 주님이 우리를 부르십니다. 즉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누구의 초대를 받느냐가 그 사람의 품격과 지위를 나타냅니다. 이웃집이나 친척들의 초대를 받으면 편한 옷차림에 과일이나 한 바구니 준비해 가면 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의 초대를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거기에 맞는 품격을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옷차림부터 달라집니다. 가장 좋은 옷을 입고나, 맘에 드는 옷이 없다면 당장 백화점으로 달려가 멋진 옷을 사 입게 될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 단장하고 초청받은 장소로 들어가세 될 것입니다.그런데 주님께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대통력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세상의 주인이십니다. 우주의 창조자이시며, 만물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초대한 자리에는 멋진 옷도 필요 없습니다. 미용실이나 이발소에서 머리를 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주님의 초대는 그저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믿음의 초대장을 준비하면 됩니다. 그 믿음으로 초대자리에 나아가는 것입니다.3. 주님께서 우리를 쉬게 하십니다.세상은 그 어느 곳도 쉴만한 것이 없습니다. 휴가가 되고 방학이 되어 산으로 들로 가보지만 세상은 여전히 수고로운 일들이 가득 찬 곳입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잠시 잊을 수는 있겠으나 벗어놓고 쉴만한 곳은 없습니다.요한복음 16:33을 보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은 환란이 있는 곳입니다. 세상이라는 곳은 어려움과 수고로움으로 우리에게 참 쉼을 주지 못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계신 곳에는 참 쉼과 안식이 있습니다. 그것에서 비로소 우리는 수고의 짐을 벗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13에서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고 000성도께서는 주님의 초대를 받아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기쁨과 평화로 가득 찬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운 세계, 더 이상은 수고의 짐을 지지 않아도 되는 자리에 초대되셨습니다. 비록 우리 눈에는 관에 누인 시신과 소의를 걸친 모습으로 보이지만 그 영혼은 믿음의 초대장을 가졌으므로 하나님 나라 잔치 자리에 앉아 있을 것을 확신합니다. 거기서 인생의 수고로운 짐을 벗고 참된 안식을 우리고 계실 것입니다.이 입관식이 끝나면 더 이상 고 000성도의 얼굴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 기쁨의 잔치 자리에 앉아 있는 고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이 입관예배의 시간은 육체의 이별이 아쉬운 슬픔의 시간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수고의 짐을 벗고 참된 안식을 누리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소망의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를 소망 가운데 바라보시는 유족과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발인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성도의 고백찬송: 231, 293성구: 딤후 4:7-81. 아름다운 고백이 땅을 떠나가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이 땅을 떠날 때 신분은 다양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물질을 많이 모았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많이 누렸을 것입니다. 대단한 지식을 소유하고 살았던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을 떠날 때 남길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고백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오늘 제가 봉독한 디모데후서 4:7-8절의 고백입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입니다. 악한 영과의 싸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싸움입니다. 비록 세상의 많은 것을 누리지는 못했을 수 있습니다.바울 사도가 이 고백을 할 때에 그는 어떠한 상황에 있었습니까? 그는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언제 죽을지 모릅니다. 죄수의 신분에 있는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평생을 분투하며 살아온 그 결과가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을 바라볼 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그는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내가 선하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이러한 고백을 하는 사람을 향하여 실패한 사람이라고 말하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진실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었습니다.2.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그리고 그는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자의 고백이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 000(직분)님의 발인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고인을 더 이상 이 땅에서 볼 수 없다고 하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감사한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고인이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을 동일하게 하나님 앞에서 바치고 이 땅을 떠나가시는 성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고백을 하나님 앞에 바친 자에게 주시는 의의 면류관이 고인에게 주어질 것을 생각하면서 유족 여러분들은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지금 고인은 이 자리에 우리와 함께 계시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고인이 이 자리에 계시다면 그는 여러분들을 향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믿음을 지켰다. 너희들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선한 싸움을 잘 싸우기를 바란다. 달려갈 길을 다 달리기 바란다. 나에게는 이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이것은 나만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너희를 위하여도 예비되어 있는 것이다.”무엇이 이토록 담대한 고백을 가능하도록 만듭니까?그것은 성도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모든 것의 종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그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임을 그들은 압니다. 그것이 바로 죽음에 처해서도 담대하게 하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3. 고인을 떠나보내고 슬퍼하지 않는 근거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이 땅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는 슬픔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울고만 있을 수 없는 근거가 됩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저 요단강 건너편에 찬란하게 뵈는 집이 있습니다. 그 집에서 우리는 사랑하던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일이 우리에게 저절로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고인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신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천국으로 가는 유일한 길인 것입니다.유족 여러분, 지금은 이곳에 시신만이 남아 있는 고인이지만 고인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무엇입니까? 고인을 사랑하는 열심히 좋은 수의와 좋은 관을 준비해 드릴 수 있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리려고 애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고인을 가장 사랑하는 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잘 믿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천국에서 고인을 다시 만날 확신 가운데 들어가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확고히 가지시면서 믿음의 길을 걸으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발인예배 설교(불신자의 가정일 경우)제목: 하나님의 심판과 영생찬송: 289, 291성구: 빌 1:20-211. 피할 수 없는 죽음오늘 우리는 고 000(직분)님의 발인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모였습니다. 죽음의 현실이 우리 앞에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죽음의 현실 앞에 서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인생의 모습입니다. 죽음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너무도 당연하게 다가오는 사건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도 여러분, 과연 죽음은 인간에게 있어서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어 넘어진다 해도 우리는 죽음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말아야 합니다.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죽어야 할 존재로 창조하신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가 문제입니다. 죄가 세상에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오게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앞에서 범죄함으로 인해 에덴을 상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죽을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로마서 6:23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우리가 죽는 것은 죄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죄가 없었다면 우리는 영생할 수 있는 존재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27에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죄로 말미암아 죽음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 되었습니다. 누구도 죽음을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없게 된 것입니다.2. 죽음 뒤에 기다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영생말씀은 우리에게 죽음 후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 시간 제가 봉독했던 빌립보서 1:21은 죽음의 문제를 담대하게 증거하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바울 사도입니다.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내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죽기를 무서워하여 종노릇하고 있는 이 세상에서 바울은 죽음 자체도 초월하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까? 바울 사도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것만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사가 있음을 바울 사도는 담대히 외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인 것입니다.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천국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됨을 바울 사도는 알고 있기에 담대히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다고 빌립보서 1:23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에 연연해하지 않습니다. 내일이면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 안락한 주택 안으로 들어갈 소망이 있는 광야의 백성이라면 이제 다 낡아서 허물어져가는 천막에 연연해하지는 않을 것입니다.3. 천국을 향하는 영적인 진군유족 여러분, 사랑하는 분의 죽음 앞에서 애통함이 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 앞에 죽음의 모습으로 있는 고인은 바울 사도의 믿음의 고백을 이해하고 살았던 분임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고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고인의 죽음은 의미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영적인 진군인 것입니다. 고인의 무언의 외침의 소리를 들으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유족 여러분, 우리도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이 땅에 아무리 대단한 무엇을 하면서 살았다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천국을 보장해 주지는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바로 그럴 때 저와 여러분들도 동일하게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입니다.** 발인예배제목: 하늘 가는 밝은 길성구: 엡 2:4-10사도 바울은 우리 모두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었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일생을 살아가기도 힘에 겹지만, 고단한 삶을 살고 난 후에도 영원한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는 몸들인 것입니다. 모두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도 살고 또 죽은 후에도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다는 귀한 사실을 본문에서 말씀하십니다.누가, 누구를 통해 그리고 어떻게 저 하늘로 가는 밝은 길을 가도록 해주셨는지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오늘 이곳을 떠나는 형제(자매)도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떠나셨는데 누가, 누구를 통해 어떻게 이 길을 가도록 해주셨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며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1. 죄인된 우리를 위해 준비해 주신 길입니다.바울은 누가 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마련해 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이 구원의 길, 하늘 가는 밝은 길은 4절에 있는 대로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위해 이 길을 준비해 주셨다고 했습니다.아담이나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금기인 선악과를 따먹고,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에 그 피를받은 후손들, 곧 우리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생각이나 판단함에 있어서 그 행위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이었는데 긍휼이 풍성하신 사랑의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대로 두지 않으시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인 우리들을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고 죽은 뒤에도 영원히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새 사람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바울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통해 이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어주었는지를 말해 줍니다. 5-6절에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RP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은혜로써 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전혀 소망 없는 길을 가고 있던 우리들에게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열어 주시려고 그 독생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분은 하늘의 귀한 보좌를 떠나서 이 땅과 역사 속에 오셨고 우리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던 죽음의 원인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셨으며 우리에게 새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그래서 구원받고 영원히 밝은 하나님 나라로 가게 된 것은 우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은혜)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길이 하늘 가는 밝은 길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는 이 길을 갔으니 우리 모두 이 사실을 믿고 큰 위로와 힘을 얻으시기 바랍니다.3.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길입니다.바울은 사랑의 하나님이 은혜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 하늘 가는 밝은 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8절)라고 하며 믿음으로 얻는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가고 싶은 저 하나님 나라는 믿음 없이는 못 가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 아들 예수를 우리 모두의 구세주로 믿을 때에만 하늘 가는 밝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입니다.주님께서 친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으로 갈 수 있는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우리 형제(자매)가 떠난 것입니다.막막한 길, 외로이 가신 것이 아니고 하늘 가는 밝은 길을 주님 손 붙잡고 믿음으로 가신 것을 생각하며 위로받고 남기신 유업과 유훈, 맡기고 가신 일, 마음으로 부탁하고 가신 모든 일들 잘 이루기로 다짐하며 전송하시기 바랍니다.** 하관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죽음으로 이룬 사랑찬송: 290, 545성구: 눅 23:50-521.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죽음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서 가장 이상한 하관예식이 있다면 그것은 어떤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와 같은 인간들이 죽어서 땅에 묻히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는 흙으로 빚어진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된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시신을 볼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찢긴 몸입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정성껏 예수님의 시신을 닦습니다. 예수님의 온 몸은 피로 물들어 있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리마대 요셉은 그 몸을 닦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옴 몸을 세마포로 싸기 시작합니다. 또 향품을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요셉은 세마포로 감싼 예수님의 시신을 아직 한사람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이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사 53:9).외관으로만 본다면 특별히 이상할 것이 없는 장례의 예식입니다. 하지만 부자의 묘실에 넣어지는 그 시신은 누구의 시신입니까? 예수님의 시신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시신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히브리서 1:1-3에서는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고 말씀합니다. 그 본제의 형상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신다고 말씀합니다.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신다고 말씀하며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보좌에 앉으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정말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까? 어떻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차디찬 굴에 세마포에 감겨서 들어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무엇 때문입니까? 누구를 위함입니까? 바로 여기에 있는 우리를 위함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은혜입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2. 믿는 자의 영광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오늘 우리는 고 000(직분)님의 하관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고인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땅에 묻히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던 사람의 시신이 땅에 묻히는 것은 참으로 소망이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으로 묘소를 꾸민다 하여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이 땅에 묻히는 고 000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땅에 묻히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이 땅에 울려퍼지는 날 고인은 일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영혼은 이미 낙원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울지만 마시고 천국에서 다시 만날 소망을 가지시고 위로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하관예배 설교(불신자의 가정인 경우)제목: 성도들이 가는 곳찬송: 292, 545성구: 계 21:10-231. 성도들이 가는 곳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은 우리가 사랑하는 고 000(직분)님의 하관예배를 드리는 시간입니다. 관이 잘 파놓은 묘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이제 이 예배가 끝나면 우리는 고인의 관이 묻힌 이곳을 흙으로 덮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묘지 앞에는 ‘성도 000’라는 이름이 적힌 묘비가 설 것입니다. 온화하고 사랑이 넘치는 000님의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슬픔이 몰려오는 시간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자리에서 슬픔의 이야기만을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늘 제가 봉독해 드린 말씀을 믿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그리고 유족 여러분 우리는 물건을 사기 위해 가끔 백화점에 갑니다. 대부분의 백화점에는 1층에 많은 잡화상품과 함께 보석을 파는 매장들이 있습니다. 그곳을 지나치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그 보석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우리 성도들은 가끔은 금은보석을 파는 가게에 가볼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세상 욕심을 키우기 위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보석의 아름다움에 도취되고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거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그 보석을 보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해야 하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18-20의 말씀을 봅시다.제가 왜 이 말씀을 읽는지 아시겠습니까? 제가 왜 가끔은 성도들이 보석상에 가볼 필요가 있다고 했는지 이해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이제 여러분이 사랑하는 고 000님이 가신 곳이 어떤 곳인지 짐작하실 수 있겠습니까?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2.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수 있는 자보석으로 꾸며진 집이 있습니다. 정금으로 된 성입니다. 모든 성곽은 벽옥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000님이 가신 나라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모든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이 가게 될 나라입니다. 고인을 더 이상 뵙지 못한다고 하는 안타까움의 눈물이 있는 이 자리는 눈물만이 있어야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물론 눈물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장례의 고통스론 부르짖음 같아서는 안 됩니다. 소망의 눈물, 기쁨이 담겨 있는 눈물을 흘려야 합니다.우리가 가는 그 나라에는 더 이상 성전이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주 하나님 전능하신 이와 그 어린양이 성전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성에 들어가 이 영광스러운 기쁨에 동참할 수 있습니까? 요한계시록 21:27을 보십시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랴” 누구입니까? 누가 새하늘과 새땅에 거할 수 있는 자들입니까?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들어가지 못합니다.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믿는 여러분의 이름이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음을 인하여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혹시 아직 믿지 않는 분이 계시다면 복음을 받아들이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고인이 믿고 구원 받은 백성으로 이 땅을 떠나셨음을 인하여 감사하시가 바랍니다. 또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들의 이름이 생명록에 기록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미 천국으로 가신 고인을 다시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하관예배 설교제목: 안식의 삶성구: 창 2:1-3안식에 대하여 하나님은 일찍이 창조 사건에서부터 말씀하셨습니다. 6일 동안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지으시던 일을 다함으로 하나님은 안식하셨습니다.1. 안식의 의미이 세상의 수고와 무거운 삶을 마감하고 고인은 지금 안식의 세계에 들어가셨습니다. 고인을 안장하는 이 자리에서 안식의 삶을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는데 그 마지막 날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 하나님은 그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안식, 하나님이 먼저 본을 보이신 안식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인간에게 중요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안식은 하나님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기에 하나님은 창조기사에서 안식을 중요하게 다루고 계십니다. 6일 동안 열심히 일하며 살아온 자들이 7일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도록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신성국가의 핵심인 십계명의 안식일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지키도록 말씀하셨습니다.안식일은 하나님이 주신 날이요, 하나님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날입니다. 이 날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써 지킴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예배하게 됩니다. 창조의 안식을 주신 하나님이 애굽이 노예생활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감사하며 거룩히 지키는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2. 안식의 복만일 안식일이 없다면 인간은 계속해서 노동과 수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국 일의 노예가 되거나 일의 중독자가 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안식이 없는 수고의 삶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므로 안식은 복입니다.또 안식일이 없다면 인간은 창조의 세계에 살면서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고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은 생명이 없는 죽음의 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된 피조물오서 생명을 부여 받은 존재입니다. 생명의 근원인 하나님을 떠난다면 그것은 곧 죽음이요, 저주요, 심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아시고 인간에게 안식을 주신 것입니다.여기 창조의 안식은 안식일의 기원이 되었고 안식일은 7년째의 안식년으로 발달됩니다. 또 안식년이 일곱 번 합해진 49년 다음 해는 50년째의 희년으로서 모든 종들이 자유를 얻게 됩니다. 그리고 모든 땅과 소유물이 원주인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이러한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은 영원한 안식을 말씀하고 계십니다.3. 안식의 세계인간은 이 땅의 수고로운 삶을 다 마치면 영원한 안식의 세계에 들어가게 됩니다. 영원한 안식은 저주가 아닙니다. 고통이 아닙니다. 영원한 안식은 하나님이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세계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의 삶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본래의 위치로 돌아가는 것이요, 가야할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이 고인을 떠나 보내는 자리이지만 너무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영원한 안식의 세계로 고인은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제는 수고도 없고 고통도 없습니다. 눈물도 없고 아픔도 없습니다. 어두운 밤도 없고 저주도 없는 곳입니다. 죽음도 다시는 없는 곳입니다. 오직 성도의 죽음은 칭찬과 영광과 상급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주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안식이 있고 천국이 있고 부활과 영광의 상급만이 있습니다.이제 우리 곁을 떠난 고인은 지금 주님의 품에 안겨 칭찬과 존귀 가운데 참 안식과 참 평안을 누리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이 시간, 이 자리에 주님의 위로와 평강이 영원한 안식을 소망하는 우리 모두에게 임하시기를 소원합니다.이 땅에서는 참 안식이 없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 안식을 가져다주지 못합니다. 참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에게 약속한 안식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요,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한 안식의 삶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는 지혜로운 믿음의 심령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화장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마지막 날 부활에는찬송: 228, 545성구: 요11:24-271. 부활을 보여주신 예수님오늘 화장예배 앞에 머리 숙인 우리는 다시 한 번 인생의 결과에 대해 예측해 보기를 바랍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한 가정의 슬픔과 영원한 세계를 향한 소망의 빛줄기가 비추어지고 있습니다. 죽음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가정과 특별한 친분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부모 없이 3남매가 힘겹게 살아가는 가정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사로는 병이 들었습니다. 슬픔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슬픔 가운데 두 자매가 생각해낸 것이 “예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사람들을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간을 지체하셨고, 그동안 나사로는 죽음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그 가정과 동네 사람들은 슬픔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늦은 시간에 마리아의 가정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그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습니다. 그의 시신은 썩어 들어갔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립니다.그러나 얼마나 야속한 눈물입니까? 조금만 빨리 오셔도 충분히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네 오라비가 다시 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왜 이렇게도 짜증스러울까요?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에는 다시 살 줄을 내가 아나이다”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날에 다시 부활하게 될 것을 믿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썩어진 육신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묻혀 있는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부르셨습니다. 놀랍게도 나사로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이미 죽은 시신입니다. 이미 부패된 몸입니다. 그러나 죽음이 그를 붙잡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늑장을 부리셨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통해 ‘부활의 실체’를 확증시켜 주기를 원했고, 자신의 부활을 미리 보여주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2.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얼마 있지 않으면 우리의 아픔과 슬픔과는 상관없이 고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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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모음남겨진 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운명 전 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위로와 소망찬송: 539, 545성구: 살후 2:16-171. 이별이 주는 선물사랑하는 애인과 이별을 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에게는 세상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일도 하기 싫고 사람들도 만나고 싶지가 않습니다. 삶 자체에 대해 별 의욕을 가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자매의 아픈 마음을 들어 주었습니다. 흐르는 눈물에 다 동참할 수는 없지만, 그녀의 아픈 마음에 참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많은 말도 해주지를 못했습니다. 세월이 약임을 다시 한 번 말해 주고 인간의 헤어짐은 새로운 소망을 향한 출발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또한 이러한 아픔이 십자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임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졌습니다.2. 인도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데살로니가 교회는 ‘죽음’의 문제로 흔들림이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그 슬픔을 감당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이 불확실한 성도가 있었고 예수님이 곧 재림하실 것이기 때문에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 예배에 참여한 우리들도 다양한 신앙의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몇 가지 권면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먼저 우리의 아픔과 슬픔의 위로가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상처난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을 기억하십니까? 당신을 건지시기 위해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자신의 아들을 통해 당신을 구하셨습니다.당신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정도로 존귀하신 분입니다. 당신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때 당신을 위로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근심에 빠진 자들에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시던 예수님을 기억하십니까? 하늘로 오르신 주님은 제자들을 위해 보혜사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보혜사는 상담자, 위로자, 변호자를 의미합니다. 당신을 위로하시고 상담하실 분,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분께 당신의 아픔과 슬픔을 내려놓기 바랍니다. 당신의 생애 속에 아무런 낙이 없고, 소망이 없다고 말할 때 주님은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소망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영원한 세계로 인도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몸에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뿐일세 우리 주 예수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둘째로 당신을 굳게 세워 주실 분이 누구입니까?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될 때 당신을 붙잡아 주실 분, 진리를 붙잡고 나아가는 당신이 실망될 때 당신을 든든히 지키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람들은 가변적이고 상대적입니다. 당신을 영원한 나라까지 인도하실 분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3. 영원한 위로와 소망나그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아픔과 슬픔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들을 감추거나 피하려고 온갖 노력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찾아가서 위로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우리의 마음은 허전함이 느낍니다. 저는 죽음을 앞둔 사랑하는 000님에게 하늘로부터 말미암는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이 넘쳐나기를 바라고, 굳게 세움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눈앞에 둔 가족들은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000님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하늘에 감추어져 있는 영원한 소망의 줄을 잡고 믿음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슬픔 가운데 머리 숙인 우리를 능히 굳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소망을 가질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주어진 믿음의 분량만큼 선한 싸움을 위해 질주할 뿐입니다.오늘 임종예배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다시 한 번 십자가 그늘 아래서 위로 받고,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운명 전 예배 설교(돌아가실 분이 믿음이 없는 경우)제목: 인생의 종말찬송: 534, 539성구: 창 49:28-30인생이란 무시무종(無始無終)한 영원한 존재가 아니라 유시유종(有始有終)한 한정적인 존재입니다. 태어났다가 때가 이르면 죽고마는 존재가 인생입니다. 우리 인생은 영원 지존자이신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요,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이 생명과 호흡 그리고 만물을 주심으로서 살아가는 존재가 곧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에게 생이 아닌 죽음이 다가옴으로 인해 인생이 종지부를 찍는 것이 사실입니다.1. 죽음의 의의죽음이란 무엇입니까? 죽음이란 존재의 소멸도 존재의 사라져버림도 아닌 분리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영혼의 죽음이란 생명의 본체이신하나님과 영혼이 분리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범죄하면 그 영혼이 죽으리라고 했습니다(겔18:4).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된 것이 곧 영혼의 죽음입니다. 둘째, 육체의 죽음이란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육체가 영혼과 분리될 때 육체만 남게 됩니다. 영혼이 떠난 몸은 부패되고 썩어버립니다. 야고보서 2:26절은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셋째, 영원한 죽음이 있는데 이것은 마지막 대심판대 앞에서 주를 �지 않던 불신자들이 지옥에 던져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분리되어 고통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끝도 없는 세월 동안 단절된 상태와 분리된 상태 속에서 영육이 다같이 괴로움을 받는 것입니다.2. 사후 상태죽고 난 다음은 어떻게 되는가? 세 가지로 그 상태를 성경은 보여줍니다. 첫째, 일반적인 상태인데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엔 흙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혼은 죽거나 자는 것이 아니라 멸하지 않는 생을 가지며 죽은 후에는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둘째, 신자의 상태를 보면 의인의 영혼은 완전히 거룩하게 되어 가장 높은 하늘에 올라가서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오며 그들의 영혼이 완전히 구속되기를 기다립니다(히 12:23, 고후 5:1,6). 셋째, 불신자의 상태인데 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던짐을 받습니다. 그들은 거기서 고통과 어두운 가운데서 대심판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리고 불의한 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권능으로서 능욕을 당하기 위해 부활하게 됩니다.3.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까?죽음을 준비해야 합니다. 죽음은 인생의 끝이 아닙니다. 무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죽음입니다. 좋은 세계로 갈 수도 있고 나쁜 세계로 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평소에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든지 지옥으로 가든지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것입니다. 어떻게 최후를 장식할 것인가? 이는 대단히 중요한 최종의 문제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각자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을 가지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이 땅에 영원토록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태어나는 날이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부름을 받는 날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000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나와 같은 죄인을 위하여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십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000님을 자녀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000님과 가족 여러분들이 날마다 믿음으로 살아 천국의 소망이 든든한 가족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임종예배 설교(믿음의 가정인 경우)제목: 영원한 세계찬송: 291, 295성구: 고후 5:8-9우리와 함께 신앙생활을 하시던 고 000(직분)님께서 0일 0시 00분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셨습니다. 저는 기억합니다. 000(직분)님께서 살아 생젼에 어떻게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셨는지. 믿음에 있어서 항상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위해 눈물과 봉사와 헌신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지난 00년간 병석에 계시면서도, 자신보다는 늘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000님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직도 믿음에 굳게 서지 못한 자녀들이 믿음 위에 서서 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이제는 000님의 뜻을 받들어 더욱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시는 유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1. 바울 사도의 소원사람들마다 소원이 있습니다. 바울 사도에게도 간절한 소원이 하나 있습니다. 오늘 본문 8-9절에서 나타나 있는 것처럼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소원은 몸을 떠나가서 주님을 만나 뵈옵는 그것이었습니다. 먼저 부르심을 입은 000님께서도 바울과 같이 속히 육신을 떠나 주님을 만나 뵈옵기를 소망하셨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주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몸 안에 거하든지 또는 떠나든지 간에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왜 이 세상을 떠나, 몸을 떠나 주님을 만나는 것을 고대하였을까요?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이 세상에는 없는 참된 안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계신 그곳에는 영원한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000님께서도 이제는 죄악된 세상에서 떠나서, 슬픔 많은 이 세상을 떠나서 더 이상 아픔과 고통이 없는 저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 줄 믿습니다.2. 성도들의 소원누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까? 선택함을 받아 예수님을 믿어 사죄의 은총을 받은 성도들이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 000님은 예수를 믿어 이미 저 영원한 하늘나라 시민권을 받은 천국 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전에 그분이 그렇게 소원하시던 것과 같이 주님과 더불어 이제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고 000님의 시신 앞에서 자녀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떠난다 하여도 하늘나라에 들어가 계시는 고 000님을 만날 소망이 있습니까? 이 소망이 여러분들의 변치 않는 영원한 소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고 000님은 그 동안 많은 어려움과 역경 중에서 고달픈 생활과 무거운 짐을 지고 많은 고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께서 쉬라 하시매 이 모든 무거운 것과 짐을 벗어 버리고 영원한 생명의 세계, 안식의 세계에, 행복의 세계에 들어가시게 되었습니다. 영원한 세계, 천군천사들이 찬송을 부르는 세계를 바라보시면서 마음에 위로와 평강을 누리는 유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어린이 장례설교제목; 울지 말라. (눅8:29-56절,539장)우리 인생들에게는 죽음이 있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죽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예수님은 어린이의 죽음 앞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고 하였습니다. 어느 누구가 슬픈 죽음 앞에서 “울지 말라”고 하겠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1.생명의 주관자 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생명은 내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주님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생명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요14;6절),2.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두려워 말고 믿기만 하라 그리하면 딸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이야 일어나라”하시니 아이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사로를 부활 시키셨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습니다.그리고 친히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기 대문에 우리 주님은 잔다고 하셨고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3.물질 세계와 영적 세계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물질세계, 즉 육에 속한 세계는 잠시 잠깐입니다. 70년, 90년, 100년, 천년, 만년이라도 영적세계에 비하면 하루만도 못한 것입니다.어린 생명이 예수를 믿어 주님의 품에 갔으면 행복의 동산 천국에 간 것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고 영원한 세계에서 부끄러움 없이 만날 준비 잘하셔야 합니다. “울지 말라”는 말씀은 “나만 믿어라”는 명령이 전제하고 있습니다.정말로 우리 주님만 믿으면 눈물과 괴로움을 기쁨과 영광으로 바꿔 주시는 분이십니다. 유가족 여러분 중에 아직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하신분이 계신다면 이제라도 늦지 않었으니 예수님을 영접하시므로 온 세계를 가슴에 안을 수 있습니다.에수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사역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나의 죄를 이기고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2)어른 장례 설교# 1 제목 : 인생과 죽음, (요5:24-29절, 544장),사람이 세상에 출생함은 죽음에로의 출발이며 사람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곧 죽어간다는 것과 그러면 우리 인간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요?첫째.죽음의 정의입니다.(1)죽음이란 분리입니다…. 죄 때문에 죽음이 왔는데 이는 곧 하나님과의 분리와 인간끼리의 분리 곧 영혼과 육체와의 분리인 것입니다.(2)죽음이란 만민의 공도입니다… 죽음이란 차별없이 만민에게 평등하게 오는 것이기에 공도인 것입니다.(3)죽음이란 절대적입니다… 태양의 일출과 일몰을 사람이 어찌 할 수 없듯이 죽음음 또한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입니다.(4)죽음은 완전한 비밀입니다….죽음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찾아 올지는 아무도 모르니 완전한 비밀입니다.둘째. 죽음의 종류입니다.성경에 보면 인간의 죽음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1)영광의 죽음이 있습니다….천국 영생에 들어가는 성도의 죽음이 영광의 죽음입니다. (2)형벌의 죽음이 있습니다…지옥에 들어가는 악인의 죽음이 형벌의 죽음입니다.셋째. 죽음의 준비를 잘하여야 합니다.우리는 이 고인 앞에서 생각할 것은 죽음 준비 잘하여 영광의 죽음을 맞이하여 천국 영생에 들어가야 하겠습니다.(1)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이 분은 죽음을 죽여 부활로써 생명의 주인이심을 증명하신 분이시기 대문입니다.(2)철저하게 회개를 해야합니다….죄 때문에 죽음이 왔으니 예수를 믿고 모든 죄를 회개 해야 합니다. 죄 문제만 해결되면 지상에서부터 천국 영생의 삶이 전개되기 때문입니다.(3)복음을 위해 투자하여야 합니다….시간, 물질, 재능, 내 생명까지도 복음을 위해 투자해야 합니다. 죽은 후에 천국에서 면류관의 상급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유가족 여러분! 경건한 신앙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제목: 성도의 영원한 집. (계7:13-17절, 찬송 545장)세상을 떠나신 고 ㅇㅇㅇ ㅇㅇ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잘 믿으셨으니 예수님이 준비하신 영원한 집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그곳은 위로가 넘치며 기쁨이 넘치는 무궁한 행복의 나라요 우리 성도들이 가서 살아야 할 영원한 집이요 본 고향입니다.첫째.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이 세상은 만족이 없는 곳입니다. 삭월세, 전세집 사는 사람이 맨션이니 아파트하다가 정말로 고급 주택을 마련하면 만족할 까요? 아닙니다. 더 큰집, 더 좋은 집, 이태리식 집, 고대풍 집, 미국식, 영국식 하면서 헐 떡이는 삶을 사는 것이 오늘의 실정입니다. 그러나 고 ㅇㅇㅇ ㅇㅇ님이 가신 천국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라고 하였습니다. 아무 부족함이 없이 넘치고 만족스럽게 채워주시는 곳 입니다.둘째. 목자되신 주님의 인도를 받는 곳입니다….양의 생명은 목자에게 달려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안에 있는 생명은 예수님에게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집에 인도된 성도는 예수님이 목자가 되어서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십니다. 생명수 샘이 있으니 기갈이 없고 목마름도 없고, 생명수가 넘치는 곳입니다.셋째. 눈물을 씻어 주시는 곳입니다…이 세상에서 신앙 대문에 겪은 모든 슬픔과 괴로움을 완전종결시켜 주시고 기쁨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은혜를 주시는 곳이 성도의 영원한 집입니다. 고 ㅇㅇㅇ ㅇㅇ님은 이 귀한 곳으로 가셨으니 슬퍼하지 말자. 머지 않는 장래에 우리들도 그곳으로 갈 것이니 지금부터 그 집에 갈 것을 준비하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귀한성도 ㅇㅇㅇ는 영원한 집에 가셨으니 우리 남아 있는 성도들은 그 나라를 바라보며, 그 곳의 주인 되신 우리 주님을 사모하면서 머지 않은 장래에 부끄러움 없이 그곳에서 만나는 유가족과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제목 : 인생의 삼대 질문, (창16:7-8절, 찬송 290장)인생의 삼대 질문이란? (1)어디에서 왔느냐? (2)무엇을 하느냐? (3)어디로 가느냐? 입니다. 이 삼대 질문의 대답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첫째. 인생은 어디서 왔습니까?인생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다윈의 진화론처럼 원숭이에게서 났습니까? 신화에서 말한 것 처럼 곰이나 소에게서 낫습니까? 아닙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는 것입니다. 인생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창2;7절),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지요 축복의 근원이신 것입니다.둘째. 인생은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중국 어느 마을에서 부친의 비문을 세우는데 쓸말이 없어서 “먹다 죽다”라고 써서 비를 세웠다는 이야가가 있습니다. 사람의 목적을 모르는 자들은 다 이런 인생인 것입니다.그러나 고전 10:31절에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고, 전12:13절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찌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문이니라”고 하였습니다.셋째. 인생은 어디로 가는 것입니까?인생은 나그네입니다. 세월이란 열차를 타고 죽음이란 종착역을 향하여 쏜살같이 달려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 죽은 후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습니다. 영원한 곳이 있습니다.하나님을 믿지 않고 죄악만 지으며 짐승처럼 산 사람들은 천국으로 못가는 것입니다. 천국으로 가는 것은 본 고향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곳은 에수님이 아름답게 구민 영원한 집이요 그곳으로 가는 것은 금의 환향하며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입니다.천국가는 길이 여럿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길인데 그 길은 예수 그리스도가 길인 것입니다. 요14: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장례설교 모음우천교회에서 가져온글 입니다주례자는 고인의 머리 쪽이나 발치 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주례.1. 예식사 – 지금부터 고 이송학 형제의 임종 예배를 드리겠습니다.2. 묵도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3. 찬송 – 544장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4. 기도 – 장로님, 인생의 생명을 주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 이 시간 저희들은 고 이송학님의 임종 예배로 모였습니다. 인생이 늘 강건하여 천천 수를 누릴 것 같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거부하며 교회를 핍박했던 많은 날들이 이 고인에게 있었지만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이가 누구 시며 또 우리의 영혼이 어디로 갈지 말년에 깨닫고 회개하며 세례를 받고 이제 주님의 나라로 가신 이 영혼을 살피소서.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육체가 죽었음을 슬퍼 애도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고 먼저 하늘 나라로 간 영혼을 생각하며 우리들도 열심히 이 땅에서 주님을 섬기며 다시 하늘 나라 천국에서 이 영혼을 뵈올 때에 부끄럼이 없기 위해 우리가 다시 한번 주님의 살아 계심을 확신하며 이 영혼이 하나님 통치에 들어갔음을 믿고 감사하는 예배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유족들은 육신의 남편, 육신의 아버지, 형제가 곁을 떠났기에 슬픔이 있을지라도 마음들을 위로하시고 더욱 믿음에 확고히 서실 수 있는 담대함과 믿음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특히 이제 기독교식으로 이 장례를 우리가 준비하고 치를 터인데 오히려 이번 기회로 지역이 변화 받게 하시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게 하시옵소서 .모든 장례 절차에 순서 순서마다 주님께서 인도하시고 영광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5. 성경 – 삼상20:3 –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뿐이니라.다윗의 말에는 무어라 형용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나니 이 말은 곧이어 언급될 말에 비상한 강조를 하기 위한 서언 적인 표현입니다. 생과 사에 대한 종래의 많은 말들은 애매 모호한 표현 형태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 오늘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의미심장한 진리인 죽음의 근접은 이러한 부류에 속하지 않습니다. 이 말은 가장 직접적이고 실제적인 언급을 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생명이 죽음의 경계선에 접근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 진리를 아름답고 역동적인 상상 물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 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나다 저녁에는 벤 바 되어 마르나이다. 연한 풀잎, 새싹, 활짝 핀 꽃 부는 바람 언제나 날아다니는 그림자는 인생이 짧고 불확실하다는 점과 죽음의 확실성에 대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가 많습니다. 우리 인간의 육체적인 기관들도 우리에게 동일한 진리를 말해 줍니다. 심장의 고동도 메시지들이며 혈액의 맥박도 죽음에 대해 알려주며 조용한 숨소리도 생명의 마지막을 예고해 줍니다. 현재 모든 곳에서 작용하고 있는 파괴적인 수단들도 동일한 메시지를 반복해 줍니다. 우리가 평안을 얻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은 너무도 쉽사리 우리를 멸망시키는 도구로 전락됩니다. 향기로운 공기는 파괴적인 태풍으로 돌변합니다. 시원한 빗방울과 은빛 실개천은 무서운 홍수를 일으키기도 하며 따뜻하고 안락하게 하는 불은 잔인한 화염으로 일변하기도 합니다. 말씀, 우리의 육체적인 기관 그리고 우리의 환경은 우리에게 나와 죽음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이다. 라는 말을 결코 잊지 못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그러하게 가까이 있으면서도 오직 한번밖에 접근할 수 없는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죽음이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죽음,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즉 영원한 죽음, 구제 불능의 악인의 상태입니다. 본문은 이들 세 가지 중 첫 번째 것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멸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연은 물질의 없어짐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떤 물질이 다른 물질로 변형된다는 것은 멸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과 이성은 영혼의 동질적인 존재로서 영혼과 의식의 불멸 성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과학은 이렇게 말합니다. 인간의 기관이 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생명이라 불리는 현상의 종식을 불러일으키며 그 결과 일어나는 상태를 죽음이라 부른다. 그것은 보다 평이하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음이란 육체가 삶을 종식시킬 때 그 육체로부터 영혼이 떠나는 상태입니다. 영혼은 육체를 세내어 잠시 거주합니다. 시체는 빈방을 말합니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말해 육체적인 감각의 세계와 결별하는 것입니다. 시간에 속한 물질들은 뒤에 남습니다. 이러한 분리로 인해 우리에게 전개될 상태는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살았던 생활에 좌우됩니다. 자기 도취적이고 관능적인 쾌락을 탐닉하고 죄의 생활은 죽음 이후 즐거움의 근원에서 끊어지게 하고 영혼을 형용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합니다. 그리스도의 덕목에서 모본으로 예시된 바 깨끗하고 상냥한 삶,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조명된 마음에서 우러나는 삶,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거룩한 삶, 그러한 삶은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 가장자리에서 안식을 누리게 하는 삶이며 영광 세계의 밝은 빛 아래 사는 삶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위한 삶이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날에 이르는 출입구에 불과한 것입니다.6. 찬송 – 545장 (하늘가는 밝은 길이)7. 축도 또는 주기도고인의 시체를 먼저 관에 안치하고 뚜껑을 덮고 못을 치되 상주가 원하면 예배 후에 못을 친다. 관 앞에 상주와 가족들과 교인들이 관을 향하여 앉고 주례자는 관머리 쪽이나 발치 쪽 편한 곳에 앉거나 서서 입관 식을 주례한다. 교회 직분이 없는 고령자에게는 어른, 선생님, 여사, 할아버지, 할머니등 적절한 명칭을 사용한다)1. 예식사 – 지금부터 고 000님의 입관 식을 거행하겠습니다.2. 묵도 –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니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나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5:1-3 아멘.3. 찬송 – 541장 혹은 188장4. 기도 –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인생이옵나이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다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지도 못한 죄인들이옵니다. 고인이 세상에 있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도 다하지 못하였사옵고 형제로서의 사랑도 그에게 다 베풀지 못하였음을 슬퍼하오며 하나님 앞에 참회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저희들을 긍휼이 여기시고 우리의 허물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절히 간구합니다. 이제 고 이송학님의 시신을 입관하여 장례를 준비하고자 하오니 성령께서 이 자리에 임재하셔서 모든 슬퍼하는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여 주시고 믿음과 소망을 더욱 굳세게 하여 주옵소서.자비로우신 하나님, 이 형제가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원한 후사로 세워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로 하여금 그의 귀한 진실된 생활을 본받게 하시옵소서. 이 시간 성령께서 저희들의 어두운 마음을 밝히사 하나님의 크신 경륜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5. 성경 – 히9:27 (죽음의 확실성)죽음이라는 것은 1.그 사실의 확실성과 보편성 2.그때의 불확실성 3.그 사실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깨닫지 못함. 우리는 죽음에 대해 알고 있으나 그것에 유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기 이 땅 위에 언제까지나 존재할 것처럼 생각하고 삽니다. 우리는 이 엄숙한 사실을 가슴 깊이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4.상실로서의 죽음. 엄숙하게 작별을 고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상의 모든 부는 그들 스스로 날개를 가지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지상의 목적들은 와해되며 지상의 우정들은 단절됩니다.5.여행으로서의 죽음. 그 때는 엄숙한 기대심을 갖고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를 묻게 됩니다. 장소는 심판대 앞입니다.그러면 심판은 어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1.누구에게? 빈부 귀천 모든 사람에게 2.무엇으로, 모든 행위 언어, 바라던 것, 동기3.누구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그분은 현재 우리에게 구세주로 변호 자로 일하고 계시는 분4. 어떤 규칙에 의해서 그의 말씀 속에 계시된 율법에 의해 5.어떤 결과로 나타나는가? 모든 인간의 영혼은 영원한 생병 아니면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 가운데 소망-1.소망의 근거. 우리 자신의 선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총 때문에2.소망의 증거. 우리의 죽음은 우리의 뜻에 따라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 되어진 결과이다. 이것은 때때로 육체적 고통의 종식을 의미하기도 한다.마지막으로 슬픔을 당한 자에 대한 위로-진정한 위로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 복음 외에는 없다.1.죽음은 그리스도의 백성들에게로 안내하는 생명의 길잡이.2.슬픔은 우리를 정화시킨다.6. 찬송 – 2937.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셔서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의 눈을 밝히 시사 영원히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가득한 주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심령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친히 맡아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8.축도1. 예식사 – 지금 우리는 이송학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들께서는 엄숙하게 예식이 진행되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2. 묵도 –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 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생명의 주인이시고 죽음의 정복자이시며 어려울 때에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 죽음의 현실 앞에서 슬퍼하고, 우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시고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이제 우리가 슬픔을 딛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려고 합니다.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에 맡기면서 영원한 희망을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3. 찬송 – 291장 날 빛보다 더 밝은 천국4. 교독 – 교독문 46번, 요14장중에서 교독5. 송영 – 찬송가 1장 또는 3장6. 기도 –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와 개인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한없이 연약한 인생을 긍휼이 여기 시옵소서. 지금 저희들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으로 가신 고 이송학님의 장례식을 거행하려고 이곳에 모였사오니 슬픈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머리 숙인 이 무리에게 위로를 내려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전능하신 하나님, 이 이송학님이 세상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저를 사랑하시고 택하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어 하늘의 영원한 기업을 누리게 하여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간구하옵기는 이 장례를 주께서 은혜로 주관 하사 슬픔을 당한 이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시며 이곳에 모인 우리들도 하나님의 엄숙한 교훈을 깨달아 죄를 뉘우치고 굳센 믿음을 가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7. 성경 – 시25:8-8. 조가 – 성가대9. 약력 – 미리 준비하여 읽게 한다.10. 말씀 – 하나님은 본성에 있어서 끝임 없이 사망을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봄이면 그는 일 백만 개의 무덤을 헐으시고 세상을 생명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진실로 그는 모든 곳에서 사망으로 생명에게 시중 들게 합니다. 사망은 생명을 발생케 하고 고양시키며 발전시킵니다. 그러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인간의 죽음 위에 승리를 쟁취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하며 영광스런 승리의 행진을 하는 길로 나아가게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최초의 승리를 주시해야 합니다. 사망의 세계에서 이제껏 가장 쓰라림을 맛본 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망은 그를 죽음으로 세상을 죽이고 인간도 죽였던 것입니다. 유대 산헤드린 공의 회는 로마 권력과 결탁하여 그 희생자를 무덤에 넣고 굳게 지키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망의 정복자는 일어났으며 사망의 영역에 침투하셨으며 그 감옥의 철장을 부수어 열어 놓았으며 착고를 낚아 채웠으며 죄인들로 새롭고 영광된 승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에게서 사망의 공포를 몰아내신 그분의 다음의 승리를 주시해야 하겠습니다. 사망의 본질, 찌르는 것, 독, 그리고 능력은 단순히 영과 육을 분리시키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에 관계된 인간의 생각과 감정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마음에서 죽음에 관계된 모든 무서운 생각과 염려를 정복하는 것은 죽음을 정복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위대하신 정복자 예수님은 지금도 이일들을 계속해서 행하시며 앞으로도 세상 종말 때까지 계속하실 것입니다. 진실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의 재료가 분리되는 순간에도 승리를 그러므로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우리는 보편적인 부활 때 승리의 면류관을 볼 줄 알아야겠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보편적인 부활이 일어날 때 불신의 소지는 다 사라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 사건을 엄청난 것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포는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입니다. 보라 내가 한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홀연히 변화되리니. 라는 믿음의 선언을 여러분 모두 확신하셔서 이 고인의 믿음의 고백이 마지막에 있던 것을 헛되지 않게 우리들도 평생 주님을 모시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승리하시는 생활이 되시길 바랍니다. 이 장례를 위해 오늘 수고하실 장안 지역의 여러분들과 또한 이 가정에 놀라우신 주님의 위로하심과 돌보심이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11. 기도 –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환난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12. 인사 및 광고 – 호상 또는 장례 위원장13. 찬송 – 545장14. 축도 – 이제는 살아 계셔서 우리의 구속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독생자 예수를 우리에게 보내 주셔서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하심과 성령 님의 감화 감동 교통하심의 역사가 오늘 상을 당하여 슬픈 중에 계신 고인의 가족들 위에와 이 장례에 참석한 우리 모두에게 위로와 평강, 생명을 주시옵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15. 출관장지에 도착하여 매장하는 경우에는 먼저 매장 지에 하관하고 셋째 횡대만을 열어 놓고 하관 식을 한다. 화장하는 경우에는 화장 준비를 다하고 화장 직전에 집례 한다.1. 찬송 – 543장2.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신 하나님,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인생들입니다. 범죄한 인간들이 의로우신 주님 앞에 설 수 없사옵고 썩을 몸으로 영원히 살 수 없사오나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구속하시고 부활과 영생을 보증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주님께서 천사 장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게 하사 주님의 영광 속에 영원히 거하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3. 성경 – 아모스 5:8-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로 아침이 되게 하시며 백주로 어두운 밤이 되게 하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자를 찾으라 그 이름이 여호와 시니라.4. 성가대 특송 -5. 설교-죽음의 사자가 평온한 가정에 일격을 가한 날 아침, 태양은 밝은 빛을 잃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밤새도록 말없이 조용히 내리던 눈물도 말라 버렸고 더 맑은 새 하늘을 약속이나 한 듯 주셨습니다. 떠나 보내고 하염없이 슬퍼하던 밤은 그늘 속에 가리웠으나 지금은 우리들의 인생 모두 마지막 무렵에 영광스런 영생의 햇빛을 받게 되는 확신과 소망을 지금 우리는 갖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신뢰하는 자에게 죽음은 하나의 그림자이며 괴기한 환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것은 우리를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소유라면 다른 아무것도 우리에게 괴물처럼 다가올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권세로써 원수들을 정복하셨으며 용기를 가지고 무덤도 정복하신 분이 예수님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우리에게 평안과 위로를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서 언급하고 있는 분은 그 이름은 여호와 시니라. 가장 위대한 문제는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은 외부의 어떤 도움이 없이 하나님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제법 고상한 철학과 사색과 분석을 한다지만 그것으로 무궁무진하신 하나님께 도달 할 수 없습니다. 그는 어떤 분이십니까? 그는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스스로 끊어 버리려고 하는 것처럼 미워하지만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보다 존재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사울과 같은 인간들은 그들의 구차스런 생을 포기하기 위해 친구들을 부릅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러한 못난 인간들은 소수입니다. 우리는 비록 창고에서 값진 보석들을 이끌어 내어 구렁텅이에 떨어뜨리느 일을 하고 있을 지라도 흘러가는 세월을 집요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인생의 쾌락은 전진하는 데서 나오며 고통은 눈물을 흘리는데서 나오며 이러한 모든 것은 다 죄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파괴자 아니라 창조주이시며, 무덤을 만드는 자가 아니라 생명을 주는 자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우리는 모든 축복이 풍부한 물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오는 근원을 발견케 될 것입니다. 그는 우리를 보존하시는 자이십니다. 생명을 창조한다는 말은 곧 먹고 입을 것을 공급해 준다는 말과도 통합니다. 우리를 보존하는 수단은 우리로 고마움과 사랑스러움과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가 우리로 고마움과 사랑스러움과 감탄을 불러일으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아낌없이 내려 주시는 모든 선하심에 대해 잠시 동안만이라도 생각 해보십시오. 그는 위대한 사랑의 동기에서 분점을 진행시키셔서 계절을 운행하심으로 봄에는 벚꽃이 피게 하시며 여름에는 온갖 식물들이 자라나게 하시며 가을에는 곡식이 누렇게 열매를 맺게 하시며 이모든 것들을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는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사별로 인해 배우게 되는 교훈은 십자가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죄, 허물, 과오로 인하여 자원하여 나무에 달리신 성자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이나 사색적 이론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샘영의 정률을 일으키는 축복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인생의 짧고 불혹 실성, 개개인의 책임, 우리의 곤궁함 등은 우리로 예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우리는 저 천국의 문을 통과하기 위해 노크할 때 그의 자비하심에 의지합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은 여러분들이 가는 길과 인생 행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나는 흑암의 캄캄한 곳으로 내려가고 있지 않은가 한번 자문자답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를 찾으라. 아모스가 하나님을 철저히 찾으라고 권면 하는 그 외에 어떤 다른 것이 없다고 믿습니다. 그는 성실히 찾는 자에게 만나 주실 것입니다. 주를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죄인에게 주님은 만나 주시리라고 확신하십시오. 그러나 이 성실한 권면의 말씀은 죄인에게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이는 믿음대로 살기를 다짐하는 우리의 가정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주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 고인의 시체를 땅에 묻지만 우리 모두 인생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시는 귀한 기회들이 되시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위로함 받으시는 유족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6. 선고 – 주례자가 흙을 한 줌 관 위에 던지며 말하기를- 고 이송학님의 영혼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이미 하나님께 돌아 갔은 즉 우리가 그 시체를 땅에 장사하며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티끌은 티끌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말세에 뭇 성도가 일제히 부활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을 얻을 것입니다. 주께서 다시 강림하시어 영광과 위엄으로 세상 사람을 심판하실 때 무릇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은 영화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7. 기도 – 영생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고 이송학님의 시체를 여기에 장사 지내오니 흙으로 지음 받은 육체는 흙으로 돌아가겠나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별세한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부활할 것을 믿사옵고 하나님께 감사하옵나이다. 이 땅에 남아 있는 우리들로 하여금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키게 하옵시고 죄악에서 건지 사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8. 찬송 – 544장9. 축도 – 이제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시어서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신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와 믿음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망극하신 사랑하심과 성령의 위로와 평강의 능력이 고인을 묻고 돌아가는 사랑하는 유족들과 우리 모두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길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1. 묵상 기도 –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 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아멘.2. 찬송 – 188장3. 기도 – 장로님4. 성경 말씀 – 사12:25. 말씀 – 우리는 지상에 있는 모든 것에게서 무상이라고 쓰여진 글씨를 발견합니다. 우리가 그토록 사모하던 것들, 아름답고 호화찬란하게 보던 모든 것들은 사막의 신기루 같아서 우리가 접근할 때 사라져 버리고 우리에게 절망만을 더해 줍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임장을 지참하고 있는 자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이런 모든 불확실성과 절망의 늪을 통과하여 영광스런 안식의 처소로 들어갈 것을 압니다. 그에게 주어진 두루마리, 즉 성경을 읽음으로 기쁨을 얻으며 한밤에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확신은 예수님이 지금 그의 소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나에게 속하였고 나는 그의 것이라. 고 말하는 것은 억측이 아닙니다. 그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아 부여받은 믿음 가운데 그렇게 되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언젠가 완연히 누리게 될 기쁨을 미리 맛본 것에 불과합니다. 욥, 다윗, 바울의 말들은 가정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영혼이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고 말할 수 있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폭풍우에 시달림을 받은 선원들은 항구가 얼마나 고마운가를 압니다. 우리는 거룩한 확신을 만끽하기 위해 하나님과 많은 교제를 나누어야 하겠습니다. 내가 위로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우리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그 영원하신 팔 아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러한 확신의 이유는 그의 이름은 여호와 이레이기 때문입니다. 이 뜻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 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여호와는 우리의 깃발이시다 입니다. 깃발이 신호를 알리기 위해 게양되는 것과 같이 영혼은 모든 세상사의 시련과 번거로운 경험들을 딛고 위로 승화되어 올라갑니다. 여호와 살롬, 즉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입니다. 바울은 그는 우리를 화평케 하신다고 말했습니다. 두려움이 엄습할 때 이것을 기억하시옵소서. 여호와 삼마, 즉 주께서 여기 계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어디에 계시든지 어떤 상태에 처해 있든지 그는 거기에 계십니다. 그는 또한 나의 구원이 되십니다. 여기에 다른 어떤 구원자가 없습니다. 그것을 구하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오늘, 지금이 우리에게 문제입니다. 비록 남편과 부친, 형제와 친지, 이웃을 잃은 우리의 슬픔이 있을지라도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힘이시고 구원이 되심을 의지하여 이번 기회를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남은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은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6. 찬송 – 91장7. 주기도문1. 묵상 기도 –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지 못하겠고 또 조금 있으면 너희가 나를 보리라 하신 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의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 시며 나의 구원이심입니다. 아멘.2. 찬송 – 205장3. 기도 – 장로님4. 성경 말씀 – 요16:165. 말씀 – 어둡고 우중충한 구름이 우리 위에 드리워져 있습니다. 우리의 가슴은 괴롭고 답답합니다. 우리의 생애 태양은 검푸른 제방 저쪽에 넘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단 한줄기의 광선도 볼 수 없습니다. 심령의 노래도 사라졌습니다. 거문고는 괴로움의 개울 버들가지 위에다 걸쳐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동정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어둠을 벗어나 빛 가운데로 인도해 줄 따뜻한 손길을 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는 인생의 거친 세파를 가로질러 오시면서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씀하시는 그분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슬픔의 사람이 슬픔의 사건이 있기 바로 직전에 슬퍼하는 무리들을 향해 하신 말씀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얼마 안 있어 십자가에 못 박히십니다. 그것은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라는 말씀을 생각케 합니다. 이렇게 묻는 경우 그 무리들은 엘리사의 경우처럼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 하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죽음은 언제나 우리의 문 앞에 상주하고 있습니다. 이 기분 나쁜 사자의 검은 날개는 우리의 밝은 전망을 영원히 어둡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죽음은 언제나 슬픔을 동반합니다. 이 두 가지는 불가 분리의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엄청난 시험을 위해 충분히 준비를 갖추셨지만 그의 제자들은 슬퍼하였습니다. 죽음과 무덤은 언제나 엄숙한 소리를 동반하는 말들입니다. 속삭임, 조용히 걷는 모습, 그리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이 두려운 사자가 올 때 동반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어떤 아름다움도 찾아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잠시 동안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밀의 알맹이가 삼일 동안 숨기어졌던 것입니다. 그후 그들은 그것이 더욱 풍성한 생명으로 발아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조금 있으면 이라는 것은 우리의 슬픔, 원한 통분은 분명히 우리의 삶 가운데 그늘입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1.이것들은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위 가운데는 결단코 불필요한 것이 없으십니다. 이러한 증거로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시키기 위해 그의 아들을 은사로 주셨습니다. 만일 세상이 다른 방법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었다면 그 방법으로 행하셨을 것입니다.2.그늘은 단지 잠시 동안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날에 임할 예루살렘 멸망과 환난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 날 수를 감하시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슬픔을 감내 해야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축복이 인간에게 배가되기 위해서는 슬픔을 통과하여야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우리는 잃음으로써 얻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영적인 부요와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빼앗아 가실 때가 있으시다 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것들을 옮겨가심으로 우리들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것은 성령의 위로와 긍휼과 생명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의 통치하심이라는 것입니다. 비록 남편과 부친, 형제와 친지, 이웃을 잃은 우리의 슬픔이 있을지라도 여호아 하나님 우리의 위로 자이시며 구원이 되심을 의지하여 이번 기회를 하나님께 영광이 되게 하시고 남은 우리에게는 큰 위로와 은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6. 기도 – 우리의 영혼을 구속하시며 성도들의 힘이 되시는 하나님, 주안에서 세상을 떠난 모든 이들이 모든 수고와 시련을 끝내고 주님의 품안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우리의 소망이 되시는 하나님, 우리가 주님의 높고 크신 경륜을 다 깨닫지 못하오나 저희들로 하여금 주님의 약속과 영생의 복음을 확실히 믿고 이 땅에서 한란과 역경을 이기며 하늘의 소망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주의 종이 이 세상에 살 때 선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본이 되었고 또 믿음으로도 주님 앞에 순복하여 주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도 그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의 유업을 받게 하여 주옵시고 이 장례 절차를 모두 주님께서 맡아 주관하시고 이 가정을 위로하시며 또한 수고하시는 모든 분들께 주님의 크신 은혜를 더하여 주시옵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7. 찬송 – 221장8. 주기도문1. 묵상 기도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2. 찬송 – 411장3. 기도 – 장로님4. 성경 말씀 – 요14:185. 말씀 – 여러분들은 이스라엘에서 한 위대한 인간이 죽었던 사실을 알지 못하십니까? 그때 많은 사람들은 슬픔에 잠겼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갈보리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그는 얼마나 온유하신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모든 시대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위로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그는 오늘 상을 당하여 슬퍼하는 이 가정에 어떤 방법으로 위로의 말씀을 하고 계십니까?1.그는 부드러운 동정심과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우리의 연약한 감정을 어루만져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는 친구로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습니다.2.그는 성령, 곧 보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3.그는 주안에서 죽는 자들에 관하여 확신을 주셨습니다. 주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죽는 것도 유익이라, 그 눈이 보지 못하겠고, 우리는 만족하리라.4.그는 우리의 받는 고난을 훈련으로 여기십니다. 우리의 받는 환란의 경한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 하여 선을 이루느니라5.그는 다시 만남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은 오늘 극심한 고난을 받고 있지만 그분은 여러분을 나그네와 같이 내버려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여러분을 쓸쓸하게 내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위로의 모든 근원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져 있습니다. 자녀 된 여러분들이여, 여러분의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들의 특별한 친구가 되십니다. 아버지로부터 풍부한 유산을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 극심한 고난 가운데 처해 있는 우리들은 이 고난을 무의미하게 생각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이 고난은 우리들의 유익을 위하여 역사 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분의 생애와 죽음은 오늘 지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어떠한 감동과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시가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형제에게 믿음을 주시고 역사 하신 것같이 우리도 도와주시고 위로와 평강을 덧입혀 주실 줄 믿습니다.6. 기도 – 영원부터 영원까지 살아 계셔서 인간의 생명을 주장하시는 하나님, 저희들의 심령의 눈을 밝히 시사 영원히 슬픔과 고통이 없고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가득한 주님의 세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저희들의 심령이 연약하여 넘어질 때 붙들어 일으켜 주시고, 슬프고 외로울 때 강하고 담대한 신앙을 주셔서 승리의 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되어지는 모든 일들을 친히 맡아 인도하여 주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7. 찬송 – 222장8. 주기도문장례설교 유형1) 임종예배찬송 : 290장, 289장, 474장본문 : 시90, 히9:27, 사57:1~2, 창3:19, 요14:1~6요약: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육체와 영혼을 지으셨다.創造主 被造物과의 關係/生命과 死亡/목숨과 生命①형벌이 아니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祝福이다.(계14:13) 주안에서 죽는자는 복되다.육신/땅을 기업, 영혼/하늘에 신령한 복으로 기업을 누린다.②생의 완성을 위한 한과정(관문)(하나님의 영원성과 인간의 유한성)/성도의 죽음은 더 완전하 고 영원한 존재로 변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삶의 한과정이고, 완성이다.하나님의 뜻, 섭리로 계획하신 생의 완성이다.③하늘나라로 영혼에 거처를 옮겨가는 것이다.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란? / 사람의 형상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아 모형으로 창조된 것임.인간의 실존적 존재가 육체가 아니라 영혼임을 다시금 각성케 한다. 육체란 질그릇 같아서 잘못 다루면 깨어지는 것과 같이 연약한 존재이다. 그리고 육체란 영원한 것이 아니요, 잠시잠간의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수한이다. 그러므로 육체를 신뢰하면 육체와 함께 멸망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육체가 있기에 은혜와 진리로 거듭나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육체가 있을 동안 영혼을 준비해야 한다. 내영혼이 하나님과 사귐을 갖고 하나님이 기억하시는 사람이 되자. 이를위해서 예수께서 피흘려 화목케 하신 것이다.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내가 아버지께로 간다고 하셨으니 성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불신자의 가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강조한다(히9:27)예) 불신자는 한 번 태어나고 두 번 심판 받으나믿는자는 두 번 태어나고 한 번 심판 받는다2) 입관예배찬송 : 203, 223, 291, 295, 544본문 : 고후5:1-10, 계14:12-13, 시84:10~11, 계19:8요약: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황량한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했다. 그들의 장막이 생존권을 보호하고 그들이 삶에 유익을 제공함같이, 육체를 장막으로 비유하고 있다. 인간이 흙에서 태어났기에 흙으로 돌아가 육신이 묻히는 것은 인생의 한 과정이다. 육신은 무거운 짐, 괴로운 짐을 벗어 버리고 흙으로 돌아갔지만 그의 영혼은 주인되신 하나님을 찾아 영원한 처소인 하늘나라에 가 평안과 안식에 이르른 것이다. 땅에 있는 장막집은 육체를 가리킨 말로 괴로운 집이요, 탄식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부활의 몸을 가리킨 말로 소망의 집이요, 기쁨의 집이다. 영원한 집은 하나님이 지으신 집이요, 하늘의 처소이다. 그러므로 영원한 집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갈 수 있는 집이다.3) 발인예배찬송 : 221, 224, 230, 231, 233, 290, 293, 534, 541, 542,본문 : 히11:13-16, 벧전1:13-25, 벧전2:11~12, 계21:1~4, 요17:9~13, 요19~30.요약 : 인생은 나그네의 길이다.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출생한 자라면 한 번은 세상을 떠나야 하는 나그네이다. 그래서 이세상에서 생활도 일정한 삶의 정착지가 없어 이고 저곳으로 거처를 옮겨 산다, 그리고 목숨이 다하면 자기가 출생한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는 육신이 흙에서 낳기 때문이다.(신토불이) 그런데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사랑하는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이 세상을 떠날 때 그 시신을 5일 이상 집안에 모실 수 없다. 다시 만날 수 없는 기약없이 그동안 정들었던 가정, 사랑하는 가족 곁을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움과 괴로움이 유족을 슬프게 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만남이란 완전하지 못하다.그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이시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보내셨으니 그리스도와의 만남을 통하여 영원한 관계를 갖게 되며 주님과의 만남을 가진 자는 주 안에서 믿음을 가진 모든 성도들과 다시는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만남을 갖게 된다.고인이 유품을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비록 정든 집을 떠나지만 그 영혼은 다시 죽음이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하늘나라의 본향을 향해 출발하는 복된 발걸음이다. 그러나 그러나 돌아갈 처소가 예비되어 있지 않아 갈곳 없는 영혼은 불행한 자이다.사랑하는 자들아 행인과 나그네와 같은 너희를 위하여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2:11)4) 하관예배찬송 : 188, 228, 226본문 : 고전15:35-49, 15:50-58, 요 11:25-27, 불신자/눅16:29-31요약 : 주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11:25-26)고 말씀하심으로 사람이 육체의 죽음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 있음을 말씀하셨다.그런데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실존과 그들의 영혼이 있음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부활이 있기에 영원한 삶이 있는 것이다.(자연의 섭리:계절,누에의 일생)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 그리스도안에 잠자는 자들 모두 주님 다시 오실 � 홀연히 변화되어 신령한 몸을 힘입을 것이다. 주님의 부활의 사건은 신학적으로 역사성, 사실성, 미래성을 의미한다.기독교의 구속사의 최고의 절정은 부활이다. 성도의 부활의 소망과 기대야말로 어떠한 환란과 역경에서도 능히 승리할 수 있는 믿음의 능력을 소유케 한다.썩을 것을 심고(육체) 썩지 아니할 것을 거둔다(부활)5) 위로예배찬송 : 399, 460, 455, 539, 493본문 : 딤후4:7~8, 고후1:3~7, 빌3:13-17, 요삼2-4, 고전10:14-22, 시23편, 시73:28, 시103:15-18,사41:10, 호6:1~3요약 :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이땅에서의 복을 주셨는데 자손의 번성함이다. 이는 자손을 통하여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함이다. 부모가 있으므로 자손이 있는 것처럼 영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이 영원전부터 계시다.지금까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함으로 가정에 어려움과 고통이 있었으나 이후로 생명을 약속하신 주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예수 안에서 신령한 복으로 살자. 신앙생활은 복과 생명을 명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요, 교회는 하나님이 계시는 집이요, 하나님 아버지 품과 같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우애에 힘써 빛의 자녀다운 생활을 하도록 한다.돌아가신 고인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회한이 있더라도 마음을 가다듬어 생업에 힘쓰도록 권한다. 제사를 하지 않도록… 고인을 공경하는 것이 아니다. 부모 공경은 살아계실때에 기회이다.고인의 믿음과 훌륭한 정신을 자손들의 마음속에 담아 생활한다면 고인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 요한복음 14장 1절-6절, 장례예배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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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족들과 장례식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위로와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해주는 장례예배설교, 발인예배설교입니다.

성경 : 요한복음 14:1-6

설교 : 주께서 예비하신 거처가 있습니다

고(故) OOO 성도님의 가족을 대표하여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매우 힘들고 고통스러운 날이지만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합니다.

시편 46:1-3,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알라못에 맞춘 노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그리고 성경은 또한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로마서 8:35-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이 시간 다함께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우리는 오늘 故 OOO 성도님의 소중한 삶을 기억하고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OOO 성도님이 이 땅에서 살아왔던 삶을 되돌아 보고 그분의 믿음의 여정을 기억해 봅니다. OOO 성도님은 지금껏 살아오시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 삶을 본받아 우리도 믿음의 삶, 천국을 바라보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위로와 평강이 있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이 시간 한 자리에 모여서 故 OOO 성도님의 소중한 삶을 기억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육신의 이별로 인하여 슬픔의 감정들이 있습니다. 비록 OOO 성도님은 저 높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평안을 누리고 계시지만, 우리는 사랑하는 가족(부모님, 배우자, 자녀)을 잃었기에 여전히 슬픕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에서 보면, 모든 믿는 자들은 이 땅을 떠날 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앞에서 서게 됨으로 인하여 기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린도후서 5:6-8,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앞에 있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슬퍼하고 애도하는 날이지만, 그것보다 더 큰 기뻐하는 날이 될 수 있습니다. 후회하고 슬퍼하는 날이 아닌, 故 OOO 성도님께서 우리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새로운 날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시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고인과 함께 했던 지난 추억들을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에서 진정한 평안을 누리고 계실 고인을 생각하며 위로를 받으시길 바랍니다.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괴로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14: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죽음을 두려워 함으로 근심할 필요가 없으며, 죽음 때문에 슬퍼할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거처를 마련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을 이별하고 나서는 우리 주님께서 예비해 주신 거처에서 영생을 누리며 더 이상 눈물도 아픔과 고통도 없는 곳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3,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고 OOO 성도님의 발인예배에 함께 한 우리 모두는,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에 고인이 가 계심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도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에 장차 갈 것을 기억하며, 끝까지 고인과 같이 믿음을 지켜 살아가길 바랍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죽음은 곧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을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지금 우리는 故 OOO 성도님의 발인예배로 모였습니다. 이 시간 함께 한 모든 유족들과 일가 친척들, 친구들과 성도들 모두에게 하늘의 위로를 주옵소서. 고인은 우리 주님께서 예비하신 거처에서 영원한 기쁨을 누리고 계심을 기억하며 우리 모두가 위로 받게 하시고, 우리도 믿음을 끝까지 지켜가게 하옵소서.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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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 예배 설교말씀] 다윗을 위로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삼하 12: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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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면 죽는 것은 정한 이치입니다.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면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럴 때 유족들을 위해서 위로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게 됩니다. 인간의 말로는 위로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를 받게 됩니다. 다윗도 밧세바와 사이에서 난 아이가 죽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고통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해 주었습니다. 다시 소생하고 일어나서 의복을 갈아입었습니다.

다윗을 위로하시는 여호와 하나님

찬송 ․ 330장

말씀 삼하 12:19-23

19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21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우리가 괴로울 때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 인간의 위로를 받습니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무슨 말로 위로하든 어떤 방법으로 위로하던 그 위로는 만족하며 심령을 편하게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인간의 말로는 심령의 위로를 못 시키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위로를 받을 때 영혼이 힘을 얻고 소생하게 됩니다.

다윗왕의 아이가 죽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 식음을 전패하고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왕은 금식하며 기도하였는데 그 아이가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왕은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듣더니 금식을 아니하고 식 사를 합니다. 신하들이 물었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아이가 살아 있을 때는 금식하더니 아이가 죽으니까 음식을 드십니까? 왕은 아이가 살았을 때는 금식하며 기도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살려 주실지 누가 아느냐 그러나 죽은 후에는 이미 죽었는데 금식할 필요가 뭐 있느냐 다윗왕은 아이가 살았을 때는 하나님을 의지 하였으나 아이가 죽은 후에는 하나님을 믿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통하여 위로를 받으므로 마음이 편하다고 답례하였습니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는 모두가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사람이 생명을 좌우할 수가 없습니다. 다윗도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나갔던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1:3절에 보면 “하나님은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과부가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나 보았으나 아무도 해결은 고사하고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과부는 어느 재판장을 찾아갔습니다. 재판장을 번거롭게 쫓아다니는 과부의 믿음을 보 시고 “네 원한을 풀어 주리라” 이런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재판장의 최고의 위로와 축복입니다. 세상에는 아무도 과부를 위로할 사람이 없으나 오직 재판장이신 주님밖에 없습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유족들이 괴로운 마음과 애통하는 심령은 사람으로서는 위로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환난에서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참다운 위로를 받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유족의 마음을 어루만지시면 됩니다. 애통해하는 마음을 보시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붙잡아 주십니다. 바울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새 힘을 얻었으며 다윗 왕도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마음에 평안함을 얻었습니다.

이 시간 유족들의 마음을 돌보아 주시고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돌보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애통하는 마음을 무엇으로 위로하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위로밖에 없는 줄 압니다. 유족들이 한 동안 힘든 마음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시고 유족들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옵소서. 말씀의 위로를 통하여 새 힘과 새 소망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장례 예배 설교문] 발인 예배 설교-주님의 재림을 소망함(살전 4: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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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설교 자료 모음

죽음이 문밖에서 있을 때

(살전 4 : 13-18) 165.168.289

임종은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엄숙하고도 가장 중요한 순간이므로 조금도 낙심할 필요가 없이 조용히 그리고 확신 가운데 서서 그것을 맞이해야 한다.

1, 가장 위대한 순간.

어떤 사람은 죽음에 대한 공포중에서 도저히 헤어날 수 없어 낙심천만한 가운데 있고 또한 그 죽음을 모면하기 위하여 얼굴을 찡그리고 악을 쓰면서 고통스런 표정을 짓는 경우도 있다1 하지만. 믿는 우리는 복된 생애를 다 청산하고 천국에 간다는 확신으로 오히려 그것을 감사하면서 주님의 영접을 받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다.

2. 새 생활의 출발.

믿는 자의 임종은 임종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도약하는 위대한 삶의 새로운 전기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러므로 성도는 항상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임증 때 부를 찬송과 기도로 언제나 연습하고 준비해 두어야 한다.

3. 마귀 권세를 물리치 때 .

내세에 대한 소망이 불투명해질 때 마귀의 유혹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예수님을 굳게 붙잡고 그를 의지하는 자들은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여서도 오히려 초연해 지며, 마귀의 권세를물리치고, 숭리와기쁨과구속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므로 천국71 대한 확실한 소망으로

마귀의 권세를 물리쳐야 한다.

죽음은 약속된 하나님 나라 입성이므로 엄숙하고 확신있게 맞이해야 한다.

사망율 이기는 능력

(고전 15 : 55-57) 152,222.289

인간에게 죽음이란 달갑지 않는 불청객이다. 이것은 우리의 공동체 안에 찾아와 마음을 한껏 흔들어 놓곤 한다. 그러면 이 죽음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1, 죽음의 본질 .

모든 생명체는 죽음을 증오하는데. 그러면 이 죽음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은 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인류 최대의 원수이다. 하지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의 영광을 맛볼 수 있다. 때문에 믿는 자에게 이 죽음은 더 이상 원수일 수가 없다. 오히려 이것은 평안한 안식의 길로 인도하는 앞잡이가 될 뿐이다.

2 . 죽음을 이기는 힘 .

이것은, “우리 주 라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음을 맛보셨지만. 죽음이 그를 억류할 수 없자. 그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 되셨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죽음이 와도 당황하거나 떨지않고 담담히 그것을 기다리며 환영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로버트 눈톤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나는 가노라, 저 영광의 세계로, 죄여, 이제는 안녕, 죽음이여,

이제는 안녕”이라고 외쳤다. 실로 죽음을 정복한 자만이 이 땅에서 가치있는 삶을 살았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성도의 부활이므로 사망을 이기는 것이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

(시23:3-6) 444,453,476

하나님은 우리의 어떠한 정황 가운데서도 언제나 선한 목자가 되어 주신다. 그는 항상 우리를 푸른 목장. 잔잔한 시냇가로 인도하신다.

1, 사망의 음침한 곯짜기에서 보호하신다.

이 성도는 한 평생을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를 받으면서 살아왔다. 오늘까지 인도해 주신 그 하나님께서는 이제 사망의 음침한 골각기에서도 능히 인도해 주실 것이다. 여기 참석한 우리 모두도 잔잔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강한 능력의 팔은 어떠한 원수 마귀외 권세도 물리칠 수 있으시기 때문이다.

2, 여호와의 집으로 인도하신다.

우리의 영원한 인도자가 되신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혼을 소생시키실 뿐만 아니라 그를 하나님의 영원한 집으로 인도하신다. 그의 인도와 보호는 잠시 잠깐 동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런 나라에 오를 때까지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신다.

3, 영원히 거하게 하신다.

이 땅에 사는 나그네는 잠시 잠깐 거하다가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만 한다. 돈이 많아 좋은 집을 소유했다 해도 그 집은 나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다. 쉽게 말해 그것은 임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집은 영원히 거할 수 있는 집이다.

하나님은 성도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시고, 한 천국을 기업으로 주셨다.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임종-4)

(빌1:20-24) 231.471.474

바울은 네로의 죄수가 되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해 그 모든 고퉁도 다 이기며 승리하였다.

1, 죽음은 현세의 모든 악을 제거해 준다.

세상에 얽매인 자들은 많은 갈등과 시련을 당하기 마련이다. 왜 그런가? 그들은 세상의 유행 따라 이리저리 방황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 위에 있는 보화를 사랑하며 이것을 구하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에 주어진 삶을 값있게 살다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죽음도 오히려 유익한 것이 된다.

2, 죽음은 고통과 슬픔에서 해방시켜 준다.

이 땅 위에는 언제나 슬픔과 고통의 한숨 소리가 그칠날이 없다. 음산한 거문고의 소리가 우리를 괴롭히고 우리를 심란하게 한다. 그러나 죽음 저 너머 저쪽 나라에 가면 밤도 없고 어둠도 없고 죄도 없다.

3, 죽음은 그리스도의 존전으로 인도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 강도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약속하셨다. 그는 죽음의 관문을 통과하여 영광스런 낙원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그를 믿는 성도는 현세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다 당하였지만 장차 낙원을 선물로 받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오히려 찬송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자녀는 부름을 받아 갈곳이 천ㄱ국이므로 엄숙하고 조용하게 감사함으로 맞이해야 할 것이다.

두 종류의 집 (입관-1)

(고후 5 : 1-10) 272,541,545

신자는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장차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 받을 자이다. 그래서 이 땅 위의 집과 하나님 나라의 집 즉 두 집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1, 장막집 .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있는 우리의 집 곧 이 땅의 삶이 ‘장막집’에 불과하다고 말씀하신다. 이 장막집은 야외에 다 치는 천막집을 가리킨다. 이것은 언제든지 이동하기 쉽게 만든 간이 집이다. 이것은 언제든지 거두기 쉽게 지은 집이므로 내구성이 전혀 없다. 우리가 학위에 소유하고 있는 집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이것은 역시 장막집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가 이 땅을 떠날 때 이것은 모두 없어지고 아무 의미도 지니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2, 영원한 집 .

이 땅 위의 장막집과 반대되는 집은 곧 영원한 집이다. 그것은 하늘 나라에 있는 것인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우리에게로 와서 우리를 덧입게 하는 것이다. 고인은 한평생을 살면서 이 하늘 나라에 있는 집을 사모하고 열망했다. 그는 이제 그토록 사모하던 집을 가기 위해 이 장막집을 떠나려 하고 있다. 잠시 후면 그는 그곳을 가기 위해 조용히 관 속에 들어가게 된다.

이것을 지켜보는 우리는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진지하고도 엄숙하게 바라보며, 앞으로 그가 거주할 영원한 집이 있음을 확신하자. 성도는 약속된 천국의 집이 있으므로 사모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한다.

주 안에서 자는 자의 복 (입관-2)

(살전 4 : 13-18) 165,291,545

본문에 자는 자리는 표현이 세 번, 쓱은 자라는 표현이 한번 나오는데, 특히 주 안에서 잠자는 자의 누릴 복락에 대해 강조되고 있다.

1, 영원히 깨는 복

주 안에서 자는 자만이 영원히 깨는 복락에 참여할 수있다. 이 땅에서 아무리 부귀 영화에 심취해 있을지라도 주님을 모르면 영원히 어두움 가운데 헤메일 것이며 사망과 흑암이 지배하는 곳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살아서는 물론이고 죽어서도 영원허 깨는 복을 받게 될 것이다.

2, 부촬에 침메하는 복.

본문에서 예수 안에서 자는 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산다는 말씀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성도는 예수넘과 연합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실 때 모든 성도는 부활의 영광스런 몸을 입게 될 것이다.

3, 위로힘을 받게 되는 복.

오늘 본문의 말씀은. “소망 없는 다른 이아 같이 슬퍼하지 않게”하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죽음 이후의 영광과 안위를 보기 때문에 멸망당할 자와 같이 더 이상 슬퍼할 필요가 없다. 오늘 고인의 영광을 마응 속에 그려보며 우리 또한 위로를 받을 수 있음을 기억하자. 성도의 죽음은 영원히 사는 부딸의 복이므로 큰 위로와 소망을 갖게한다.

그리스도의 인의 죽음 (입관-3)

(롬 14 ; 7-9) 293.531,534

바울은 믿는 자들에게 권면의 말을 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위하여 살아야 할 유일한 대상은 오직 그리스도뿐이라고 선포하였다.

1. 이웃을 섬기는 삶.

그리스도인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웃을 위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이웃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서라면 거기에 따르는 회생이 어떠한 것이라도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감내해야만 한다. 성령에서는 사도들에게 역사하셔서 굻주린 백성들에게 기쁨의 소식을 전하게 하기위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여행을 하게 하셨다.

2, 그리스도를 섬기는 앎.

그리스도인외 목적은 그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사적인 생활에서 분만 아니라 공적인 생활에서도 밝히 표명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도 하고 하나닙의 영광을 가리기도 한다.

3. 죽을을 예비한 삶.

신자의 삶은 죽음을 잘 예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고인된 OOO 성도는 죽음을 잘 예비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살았을 때 이웃을 위해. 주님을 위해 사는 삶으로 초지일관하였다. 이제 그는 펀안히 예비된 천국의 복락에 참예하게 될 것이다.

성도의 죽음은 이웃과 주님을 섬기며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성도가 얻을 안식 (입관-4)

(시7 : 13-17) 222,225,476

성도가 이 땅 위의 삶을 살 때 믿음을 지키고 충성된 삶을 살므로쌔 받는 복락은 무엇인가? 그것은 여러 가지 이겠지만. 본문에서는 안식을 얻으리라고 하였다.

1,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신다.

하나님의 장막 속에 있는 성도는 펀안한 안식을 누릴 것이다. 이는 마치 뜨거운 사막을 여행하는 나그네가 시원한 오아시스를 만나 그 곳에서 휴식을 취하는 것과 같다. 성도는 현생에서 얼마나 많은 고난 가운대서 방황했던가! 하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안식의 장악을 두르심으로서 위로와 안식을 공급해 주신다. 여기에서 성도는 영원한 안7과 위로를 얻게 된다.

2, 그들의 목자장이 되신다.

주님은 자신을 믿는 성도들의 대 목자장이 되선서, 그들을 영원한 생명 강가로 인도하시고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공급하신다. 고윽ㅂㅂ하신다. 이 EKd 위에 있는 지도자는 한결같이 흠이 많고 불완전하지만 주님만은 의로우시고 완전하셔서 결단코 실패하지 않으신다. 그는 또한 사랑이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고통ㅇ의눈물을 씻어 주시고 위로와 안위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구분 안에 참 평화와 기쁨이 있다.

현생의 삶을 사는 성도는 언제나 찬바람이 휘몰아 치고 흔들리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 처해 있다. 피러나 이러한 삶 속떼서도 고인은 믿음을 지키고 천국의 빛나는 소망을 바라보면서 충성, 헌신된 삶을 살았다. 그러므로 고인이 누릴 천국의 영광과 안위는 지극히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

길이 살겠네 (발인-1)

고전 IS : 50-58 f 221,289.364

고인은 그동안 고통도 많았고 수고도 많았던 이 세상의 삶이었지만 주님께서 예비하신 그 복락의 나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 것이다.

1, 발인식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환송의이다.

김활난 박사는 죽으면서 내 죽는 장례식은 환송의 의식이 되게 해 달라고 유언했다. 그는 세상을 마지막으로 정리하면서. “길이 살겠네 나 길이 살겠네 저 생명 시냇가에 살겠네”라고 믿음의 찬송을 불렀다. 여기에 참석한 모든 분들도 주님이 오라 부르실 때 이 찬송을 힘있게 부를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발인식은 경건해야만 한다.

오늘 고인은 장지고 향하여 거기에 묻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의식은 거룩하고 경건해야 한다. 유족들은 혈육의 정으로는 섭섭한 마음 금할 수가 없겠지만 그 고인이 얻을 영윈한 생명의 면류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위로를 받고 오히려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천국이 파속됐기 때문이다

3 . 발인식은 소망을 주어야 한다 .

발인식에 참여한 모든 조객은 고인의 발인을 보면서 우리가 사는 이땅의 생은 유한하여서 누구나 한번은 죽는 것이지만 그러나 죽음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영원한 세계가 있는 것을 깨닫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육체의 죽음은 끝이 아니고 천국의 영원한 생의 시작이다.

우리가 장차 갈 그곳은 영원히 살 수 있는 곳이다.

축복과 기쁨이 언제나 넘치는 그곳이다.

죽음 저 너머의 삶 (발인-2)

(욥 14 : 13-17) f 168,791,545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다시 살 수 있겠는가 ?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답변을 얻을 수 있다.

1 . 철학적인 논증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껏들을 준비해 놓고 계신다. 하나님은 죽음 이후의 생명을 사모하는 자들에게도 만족을 주기 위해 그것을 예비해 놓으셨다. 인간은 거의 대부분이 내세에 대한 소망을 갖고 있다. 문명인이든 야만인이든 그것이 모든 인류들 가운데 실제적으

로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의 증거

인간 이성과 자연의 빗이 내세에 대한 실제성을 증거해주고 있지만,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그것을 확실허 볼수 없고 다만 회미하게 볼 뿐이다. 이것은 주로 인간의 전적타락에 의해. 고 실체는 볼 수 없고 또 보려고 해도 다른 것으로 비취는데 근거한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그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겠고”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요 11 : 25).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와 내세의 영광을 구하기 위해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대로 갚아주실 것이다.

인간이 죽는 것을 볼 때 죄인이나 예수를 믿는자는 영생을 얻는다. 다만 영생의 질이 다를 뿐이다. 죄인은 영원한 지옥불에서 영벌을 받으면서 영생하는 것이요

의인은 하나님과 함께 영광의 세계에서 기쁨의 영생을 얻는 것이다.

여기가 아니라 저기에 (발인-3)

(신 12:9-10) f 232.292,541

우리는 안식을 기대하기 쉬우며, 잠시 후에 썩어 없어질 것에서 만족을 기대하기가 립다. 하지만 요단강 저펀, 천상에 영원한 가나찬이 있다.

1, 여기에는 진정한 만족이 없다

여기에 있는 인생들은 모든 면에서 제한을 받고 있다. 진토에 앉은 거지도, 백만장자도, 평민도, 주권자도 만족을 얻지 못하고 피곤한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인간은 자신의 운명을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며 보다 더 나은 것을 얻고자 분주하게 허등대고 있다. 그렇기 때문 에 이 땅에는 참 만족이 없다.

2, 이 땅은 멸망되어가고 있다.

전능자께서는 목적에 따라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그 목적이 끝났을 때 보다 새로운 목적을 위하여 새 창조를 하실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지구는 불에 타 없어지고 하늘은 큰 소리를 내며 떠나갈 것이다. 이로 보아 우리의 영원한 안식은 분명히 여기가 될 수 없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

3, 하나님은 천국에 살도록 요구하신다

우리가 세상적인 즐거움에 도취되어 제멋대로 살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슬퍼하신다. 우리는 분명히 여기가 아니라 천국에 목적을 두고 살아야 한다. 그때 우리의 삶은 보다 고상해지고 거룩해지며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만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제 고인은 여기가 아니라 저기로 가기 위해 출발을 하려 하고 있다. 우리들도 고인과 같이 천국으로 떳떳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겠다

영원한 생명을 향한 열정 (발인-4)

(시91 : 16) f 220,221.543

불안한 현재와 불안한 미래에 사는 인생이지만. 이땅에서 영원한 생명을 사모하고 그것을 향한 열정을 가진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엄다.

1, 유한한 인생.

세상일은. 공적인 일이든사적인 일이든, 모두시간의 제약을 받고 있다. 오늘 본문은 인간과 인간의 행하는 일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있음을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썰명하고 있다. 이와같이 시간적인 존재인 인간이 그 한계를 극복해 보려고 발버등치며 애써 노력해 보지만 역시 인간은 나약하다.

2, 영원하신 하나님

하지만 히니님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조금도 받지 않으신다. 그는 인간의 상상을 뛰어 넘어 영원 전부터 살아계신 분이시다. 그는 알파와 오메가가 되신 분으로서 시간 세계에 오셔서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신다.

3,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불안한 인생을 사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은 그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심어 주셨다. 그런데 인간이 현생에 급급함으로 이것을 바라보지 못하여 더욱 불안한 삶을 살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계상황의 지배를 받고있는 인간이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영원하신 하늘 나라를 유업으로 물려받게 된다.

죄를 깨달은 인간이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영생을 사모하도록 은혜를 주셨다.

흙 속에 잠들 무렵 (하관-1)

(고전 10 : 1-4) 188,226,291

하나님은 인간의 시조 아담을 만드실 때 흙으로 빛어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일생동안을 흙과 더붙어 살아가다가 결국에는 다시 흙으로 되돌아 가는 것이다. –

1, 슬픔의 시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모든 인간은 때가 되면 흙으로 되돌아 갈 수 밖에 없는 운명적인 존재인 것이다. 때문에 믿음의 눈으로 이를 지켜보는 자들은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보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하겠다.

2, 부활을 기약함.

주를 믿는 신자으 죽음이 복된 이유는 부활의 새 아침을 기약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의’죽는다’는 표현은 ‘잠잔다’라는 표현으로 바꾸어야 온당하다. 불신자들은 육체의 죽음으로 영원한 죽음을 당하고야 말지만, 신자는 육신의 죽음으로 그의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오히려 새로운 삶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3, 영원한 생명세계로의 전이

신자의 죽음은 삶의 종지가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로 들어가는 첫 단계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의 생명을 청산할 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간세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 갑니다”라고 찬송부를 수 있다. 왜냐하면 천국은 이땅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죽음이 슬픈 일이지만 다시 부활하여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을 감사하자.

축복된 죽음 (하관-3)

(계14:13) f 233.289.474

고인은 세상의 온갖 모진 풍파와 환난을 당하면서도 맡은 바 소임을 감당하기 위해 충성된 삶을 실아왔다.

1, 모든 수고를 그쳤다

인간은 이 땅에 올 때 수고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그런데 죄를 짓고난 이후 인간의 수고에는 고통이 뒤따랐고 땀을 흘려야 했다. 그러나 성도가 죽은 후에 가는 천국은 언제나 기쁨과 찬송이 있는 곳이다. 성도는 그곳에서 모든 수고를 다 바치고 주님의 위로를 받을 때지나간 고통을 꿈에 본듯 다 잊어버리게 될 것이다.

2, 안식을 한다.

이 땅에 안식이란 있을 수 없다. 돈이 많아 세상을 즐기며 산다 해도 마음의 초조와 불안과 고통은 그칠 날이 얼다. 하지만 성도가 그곳에서 얻게될 안식은 가장 완전한 안식이며, 영원한 안식이다. 때문에 성도의 현실의 삶은 영원한 안식의 처소를 향해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에 지나지 않는다.

3, 축복된 삶을 산다.

성도의 죽음이 귀한 것은 이 죽음의 현장에 많은 화환이 둘러쌓여 있기 때문이 아니요 조객이 많이 모여 들었기 때문도 아니다. 그것은 성도가 믿음을 갖고 삶을 살았기 때문이며 주 안에서 죽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죽음이야말로 저주가 아닌 복된 죽음이며 피 이후 천국에서 새로운 축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성도의 죽음은 모든 수고를 다마치고 영원한 안식에 들어 감으로 축복인 것이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하관-4)

(약 4 : 13-17) 294,531,532

인간은 변화무쌍한 세상 삶을 살면서 여러 가지 시련과 고통으토 인해 기쁨을 누리지 못한다. 또 어떤 때는 인생이 무엇인가라고 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1, 안개와 같은 인생.

안개는 잠깐 있다가 아침 해가 돋을 때 사라지는 순간적인 것이다. 우리 인생이 바로 이와 같다. 천년만년 살고 지는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늙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가 우리 인간인 것이다. 안개와 같은 우리 인생일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때 보람있고 가치있는 삶을 살게 된다.

2, 인생의 목적

인생이 안개와 같다 할지라도 분명한 목적의식이 있을때 그 인생은 야름다운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목적의식을 정립할 수 있는가?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같은 거룩한 목적에 따라 자신의 의무를 수행할 때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는 것이다.

3, 인생의 의무

안개와 같은 인생이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룩해진 영혼은 이 땅에서 거룩한 의무를 부여받았다 그러므로 이웃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열심히 섬기며 봉사하는 일을 해야 한다. 오늘 우리는 고 OOO 성도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과하여 많은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성도가 되자.

안개와 같은 인생이지만 예수를 영접한 자는 영원한 삶을 약속받았으며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것이다

영생에 대한 열정 (하관-4)

(고후 5 : 4-7) 225,540,544

모든 인생들은 태어나서 각각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길을 미리 알 수가 없으며, 두려움이 깔린 산골짜기의 길을 추측할 수가 없다.

1, 하나의 길.

이 세상에서 인생이 걸어가는 길은 각자가 상이하지만 마침내는 모두가 하나의 길에 귀착된다. 빈부귀천 동서고금 장유노소 모두가 이 한 길로 내려가고 있는 것다. 이 길은 바로 오늘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바와 이 죽음이라는 길이다. 이 길은 어느 누구도 거부할 없고, 두려워하지 않을 순도 없다.

2, 영생의 길 .

인생이 거부 할수 없는 죽음이라 해도, 죽음 이후의 영생의 길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사모할 때, 죽음이 그의 원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영생의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이 길은 간절히 믿음으로 사모하는 자에게 주

어진다.

3,사모하는 자의 열정

미지의 인생길을 걸어가지만 나그네의 삶을 사는 자들이 지만 영생을 사모하고 그것을 위한 삶을 사는 자들은 그 생애가 아름답고 귀하다. 그는 이 땅에서 부귀영화에 초점을 두지 않고 영생에 초점을 두고 살기 때문에. 다소 손해가 있을지라도 이를 즐겁게 감내하여 찬양 부르며 전진해 나간다.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 예수를 믿으므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죽음의 근원

『삼상 20 : 1-3] f 289,290.292

모든 인생들은 나민은 이 땅 위에 천년 만년 살 것이라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 하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들 위에 임한다.

1, 죽음의 때 .

인간의 죽음의 때는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오늘 건강하게 집을 나갔던 자가 저녁에는 시체가 되어 병원영안실로 직행하는 예가 우리 주위에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옛날 다욋이 체험했던 한 예이기도 하다. 그는 위기일발의 순간순간을 살면서 항상 죽음을 직감하였다. 이것이 오늘 우리들 인생의 생애이다.

2. 죽음의 정의 .

인간은 죽음을 육체적인 생명의 종지로만 생각하지만 성경은 세 가지로 나누어 표현하고 있다. 즉 겉육체적인 죽음, 건영흔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는 죽음, 길 구원받지 못한 자의 생애. 이로 보건데 인간의 죽음은 그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멸절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에 로의 삶의 변이를 뜻한다.

3,. 죽음이 나에게 의미하는 것.

죽음은 빈부귀천 동서고금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생들에게 임하는 가장 공굉한 손넘이기도 하다. 이 엄연한 사실을 목전에 두고 있는 인간은 죽음을 잘 예비하여야 한다. 실아 생전에 주님을 나의 구세주로 믿고 그 분 뜻대로 행하므로 복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죽음의 때를 예측할 수 없으므로 예수를 믿고 영생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자.

바울의 인생관 (입관-1)

딤후 4 : 6-8 231,402,544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잠시 잠깐의 생애를 살다가 가야만 하는 존재이다. 언겐가는 모두다 이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바울의 생애를 통해 교훈을 얻고자 한다.

1, 과거의 생애 .

바울은 인생을 투쟁하는 전쟁터로 보았다. 그는 을바른 인생. 후회없는 생애를 살기 위해서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고 했다. 싸움이란 적이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우리는 싸움의 대상은 누구인가? 그것은 이생의 정욕. 육신의 정욕.세상의 자랑이다. 이것들은 우리의한펑생을 괴롭게 하다가 죽음과 동시에 사라진다.

2, 현재의 생애

바울은 지상 사역을 부7런씻 다 필하였다고,갈 준비를 온전히 갖추었노라고 확신했다. 이와같이 고백자 확신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나도 과연 숨을거둘 때 이와같은 아름다운 확신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바울은 부에 처할 줄로 알고 가난 속에서 자족할줄 알며 오직 부르심의 상을 위하여 푯대를 향해 살았던 바울이다.

3, 미래의 생애 .

바울은 죽음을 예상하고서,”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딘로’라고 표현하였다. 그는 미래에 받을 상급을 사모함으로 죽음에서도 오히려 위안과 용기를 받았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나라의 소망을 바라보며 즐거움으로 사명을 감당한 것이다.

바울은 진리를 위해 싸왔으며 복음을 위해 생애를 다바쳤다. 그리고 본받을 만한 삶을 살았다.

죽음을 위한 준비 (임종-2)

사 38 : 1-3 f 294,295,296

죽음은 모든 사람에게 차별두지 않고 공평하게 임한다. 그리고 이 죽음은 어김얼이 숨김없이 조금도 오차 없이 사람의 생명을 잇아간다. 이 죽음으로 인하여 사람은 그가 생전에 행했던 그대로 심판을 받는다.

1, 우리는 죽은 자의 영흔에 대하여 말할 수 없다

장례예식의 목적은 죽은 자의 상태를 진척시키기 위해 집행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도저히 불가능 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 영흔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란 살아 있을 때만 가능하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어느 곳에도 엄다. 우리는 친지들이나 이웃들이 살아있을 때 그들의 영흔을 위해 기도하고 권면해야 하지 그들이 이미 죽은 이후에 기도 한다는 것은 아무런 효능이 없다.

2, 유족들에 대한 권면의 말씀.

장례식의 중요한 목적은 남아있는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그 말씀 위에 굳게 서게하기 위함에 있다. 비록 장례식이 우리 영혼의 상태와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지 못하지만 우리가 존경하는 자의 죽은 시신을 짐숭과 같이 아무렇게나 매장할 수는 없다. 장메식 의 또 하나의 목적은 죽음에 대한 교훈을 심어주기 위합에 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는 엄연한 진리를 망각하기 립다. 시간과 감각에 속한 것들에 열중하는 동안 세상 재리에 빼앗겼던 마음을 영원한 것들로 되돌아 오게 함은 중요한 일이다.

인간들의 행진 (입관-1)

욥 30 : 23 225.467,532

욥은 극한적인 고통과 시련을 당하고 있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자녀들과 아내가 떠나갔다. 소유도 모두 떠나 갔고 종들도 떠나갔다. 절친한 친구들은 그를 위선자 사기꾼으로 몰아 붙였다.

1, 죽음은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가 죽어 무덤에 묻히는 것은 우연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확실한 사실이다. 이것은 인간 생명의 위대한 조성자께서 그렇게 되도록 정하셨기 때문이다. (히9 : 27) 그러므로 인간이 죽어 묻히는 무덤이야 말로 인간 본연의 처소요 빈부귀천을 가리지 않는 가장 공평한 장소인 것이다.

2, 죽음은 심각한 것을 깨닫게 힌다.

인간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보고서 자신의 올바른 인생관을 정립하는 기회로 삼는다. · 우리는 시간을 영원처림 생각하거나 영원을 시간처럼 생각하는 착각을 하고 있다가 죽음을 목격하고서 이를 시정하곤 한다. 이런 의미에서 죽음이야 말로 우리의 위대한 스숭이요 길잡이라고 할 수 있다.

3, 죽음은 영원한 생명을 붙잡도록 고무시킨다.

임박한 죽음을 의식하는 자는 영생을 사모하기 마련이다. 그런 자에게 매 순간 순간은 가치있고 보람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사람이 죽을때 영혼을 생각하게 하고 영생을 사모하게 하신다. 영생을 얻는 길은 오직 예수 안에서만 얻을 수 있고 영광을 누릴 수 있다.

죽음은 인생에게 필연적으로 찾아오므로 영생을 사모하여 예수님을 영접해야 할 것이다.

영원히 멸한 사망 (발인-1)

(사 25 : 8) 290.532,544

하나님은 인간의 죄악으로 인한 죽음위에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는 분이시다. 오늘 본문은 인간 최대의 원수인 사망을 이기시고 숭리하신 그분을 바라보게 한다.

1,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은 승리 .

산헤드린 공회는 로마와 결탁하여 그리스도를 죽이고 무덤 속에 넣은 후 군병들로 하여금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사망의 권세가 아무리 막강하다 해도 그리스도를 더 이상 그 착고에 매어 놓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이 사망을 이기겼을 뿐만 아니라. 그를 믿는 모든 인생들에게까지 사망에서 부활을 맛보게 하셨다.

2, 사람의 공포를 물리친 승리 .

사망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그의 영과 혼과 감정에까지 스며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들은 장차 부활의 영광에 참예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모든 공포의 도가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망을 향해 담대히,”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있느냐?”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다.

3, 면류관으로 말미암은 승리 .

믿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활할 때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 누림으로 그 숭리를 온전하게 확증시킬 수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의 숭리로 사탄을 멸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땅위에 살고 있지만 이미 승리한 자로서 하나님의 질서와 통치 아래서 믿음으로 길를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촬로 사망을 멸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었으딜로 사망을 두려워 말자.

인생에 대한 평가 (발인-2)

(시 90 : 9-10) 289.297.536

인생은 원래가 가치있는 존재이며 가치있는 사역을 하다가 전능자를 만나 뵈어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얻어야 할 자이다.

1, 인간 연수에 의한 평가

오늘 본문은 인생이 살았던 연수게 대해 언급하고 있다 지상에 태어났던 대부분의 인간들은 70, 80의 생애를 살다가 죽어야만 한다. 그 중 많은 사람들이 유년시절과 어린이 시절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죽는다.

하지만 연수의 길고 짧7이 큰 의미를 주지 못한다. 다만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어떻게 사느냐에 있다.

2, 행위에 의한 평가

인간의 생명은 연수에 의해 평가되기 보다 그 행위에 의해 평가된다고 봄이 더 합당하다. 현대 문명의 이기는 이전에 여러 해 걸리던 것을 짧은 시간에 깨끗이 해결 지어 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주어진 순간 순간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보다 중요하다. 성도는 하나님 나라의 상급을 목표로 그 영광을 기대하떠 살아야 한다.

3, 내세 준비에 의한 귀가.

현재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옮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다.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승리 (하관-1)

(고전 15 : 57-58) f 384,396,397

사망의 세력이 아무리 무섭다 해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궁극적으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은 사망을 이기는 부활의 능력을 믿기 때문이다.

1, 죽음에서의 승리 .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죽음에 대해 숭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죽음의 위협 앞에 수 없이 처해 있었지만 그 때마다 부촬의 신앙으로 인해 담대히 일어설 수가 있었다.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도 이와 동일한 확신을 가지고 죽음의 현장에서도 부활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어야 한다

2,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승리

현 세상에서는 부귀 영화의 척도에 따라 인간을 판단한다. 그러나 그러한 조건이 장차 우리가 얻을 부활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를 누릴 자들은 그러한 승리로 말미암아 감사한다고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하는 자들이다. 승리하신 아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곧 나의 생명이므로 영원한 승리를 얻은 것이다.

3, 승리 연율 자들의 자세 .

우리는 멸망 당할 자들과 같지 아니하기 때문에 세상의 변화무쌍한 풍조에 쉽사리 혼들리거나 놀라지 않는다. 우리는 소심하고 두려워 안절부절 못하는 자들과는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부활세계를 바라봄으로 힘과 용기를 공급받아야 하겠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확신하는 자들은 영생을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리스도인의 잠 (하관-2)

(시127 : 2) f 418,464.474

하나님은 모든 인류를 사랑하시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믿는 성도들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은 성도의 모든 샘애 가운데 구체적으로 역사를 하고 있다.

1, 하나님외 사랑하시는 자들.

하나님은 죄악의 쇠사슬에 묶여있던 자들을 당신의 피값으로 구속하시고 자녀로 삼으셨다. 자녀이면 그좌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충의 대상이될 수 있다. 그들은 장차 하늘의 신령한 유업에 참여자가 된다. 그들은 이것을 믿기 때문에 이 세상에 살면서도 이 세상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과 위에 있는 것들을 위하여 살고 있다.

2,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선물.

여호와께서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들에게 신령한 은사들은 물론 육적인 필요도 채워주신다. 그는 그들에게 잠. 안식 만족을 주신다. 그가 공급하시는 만족은 모든 선한 것에 충만히 역사하고. 또 창세 전에 택하시고 구속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셨다.

3, 사랑하는 자들에게 잠을 주심 .

현세의 생애를 잘 사는 방법은 내세의 생애를 잘 준비하는데 있다고 봄이 옳다. 그러므로 인생은 초기부터 진정한 기반을 잘 선택하여 합당한 재료로써 맹렬한 불에도 견딜만한 집을 지어야만 할 것이. 성도의 진정한 준비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나의 죄를위해 죽으셨음을 믿어야 할 것이다.

인생은 잠깐이므로 자랑할 것 없는 약한 존재로서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천국시민이 되어야 한다.

발인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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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문1

성경구절 : 시편 23:6

설교제목 : 주의 집에 거하다

오늘 이 장례식은 슬픔보다는 정말 기쁜 장례식이 되어야 합니다.

어쩌면 장례식에 기쁨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일 수도 있습니다.

000님은 병석에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복된 안식을 얻었습니다.

지금은 주께서 안식으로 데려 갔었습니다. 고인에게는 큰 기쁨의 시간일 것입니다.

천국은 이곳보다 몇 천 배나 더 복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대해서 말씀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나중에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고인은 지금 이 약속의 처소에 계실 것입니다.

천국이란 예수님께서 약속한 처소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천국은 우리가 처할 처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거할 곳을 예비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는데

우리보다 000님을 먼저 영접하셨습니다.

그러니 여기에서 수많은 날에 가졌던 고통, 그 마음의 아픔과 육체적 고통이 다

사라졌습니다.

천국은 또한 재회의 처소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우리 모두 천국에 가면 더 이상의 죽음도 이별도 없습니다.

거기서는 영광스러운 교제 속에서 영원히 함께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운 분들을 만나기 위해서 구원받을 준비가 되어야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꼭 도와 주셔야 합니다.

어머니를 꼭 만나고 싶거든 바른 신앙생활을 해야 될 것입니다.

천국에는 없는 것도 없습니다.

우리가 이 지상에서 필요하지 않게 여겼던 것은 천국에도 없습니다.

천국에는 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병으로 고통당하고, 또한 불구처럼 불편해서 그 모든 것도 거기서는

다시는 재발되지 않고 다시는 맛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많은 병으로 인해서 우리가 건강도 나쁘면서도 고통스러웠고,

또한 건강한 것 같으면서도 염려스러웠고, 걱정스러웠고 두려움이 우리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또한 천국에는 슬픔이 없다했습니다.

모든 것이 만족하다 했습니다.

슬픔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기쁨만이 있습니다. 기쁨이 있다는 것은 반드시 소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쁨은 소망을 가져옵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이러한 모든 분야가 충족되기 때문에 부족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들에게는 슬픔이 있고 아쉬움이 있지만, 고인에게는 오히려

경사스러운 날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곳에는 죄악이 없다고 했습니다.

오늘과 같이 우리는 이별의 슬픔, 안타까움의 슬픔도 거기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또 천국에는 사망도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여기에서 믿으면 영원히 죽지 아니하나니…

여러분들이 이 세상에서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예수 영접하셨지만 천국에서는

실제로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도 지금은 거울을 보는 것 같아 . . .

그런데 정말 사람과 사람이 대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천국에 대하여 여러분들과 함께 줄거리만 내렸습니다.

천국은 우리들을 남겨두고 떠난 000님의 현재의 집입니다.

000님이 우리에게 말할 수 있다면 여러분도 예수님께 속하여 천국의 처소를

소유하라고 외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마음속에 예수님의 사랑과 우리 영혼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소망으로 이제 사랑하는 000님께 작별을 고하며

언젠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빛이 영원히 빛나고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 앞에 설 것입니다.

◇ 예문 2

성경구절 : 이사야 40 : 6-8절

설교제목 :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

먼저 성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유가족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평강과 소망을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오늘 고 000 님의 발인예배에서 인생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그래서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풀과 같이 시드는 인생” 이란 제목으로 잠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만물과 모든 삼라만상을 볼 때 그 어느 것 하나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지으시는 것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좋았더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신 사람을 창조하심으로 모든 창조가 끝났습니다.

그 모든 창조하신 것을 보시고는 아주 만족하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러나 사람에게 자유의지를 주시다 보니,

보지 말아야할 것을 보았고, 먹지 말아야 할 것을 먹었음으로,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로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뒤에 숨게 되었고, 책임을 전가하는 죄를 짓게 되고, 점점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가 되고 말았고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갔던 것입니다.

롬6:23에 말씀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람을 사망으로 가게 내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사망으로 가던 인생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는 자마다 구원에 이르게 하셨고(요 3:16),

죽음에서 삶으로, 영원한 생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마음에 악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고,

믿지 않고 죄를 짐짓 지어 가는 사람은 풀과 같이 시들고 결국 사망인 영원한

지옥으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사람이 왜 지옥에 가야합니까? 말씀을 믿지 않았고,

불순종하므로 죄를 짓게 되고, 죄는 곧 불법이라(요일 3:4)불법을 행하는 자는

벌을 받게 되는데 그 벌이 지옥의 중한 벌, 영원히 받는 형벌이지요.

그와 반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겨 순종하고 그의 뜻대로 행하며 지키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새 하늘과 새 땅의 주인공들이 되는 것입니다.

즉 천국에서 영원히 영생 복락을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이 무엇입니까?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안개”라고 야고보서 4:14 에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풀이 아무리 푸르러도 여름 한 철이요. 폭풍 설한이 몰아치면 제각기 낙엽 되어

우수수 다 떨어져 버리고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 기자는 사람을 안개에다 비유하고, 풀에다 비유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살다가 가는 것이 인생일진대 사람이 무엇으로

그 업을 남겨야 합니까? 명예, 권세, 지위 그 무엇으로 이 세상에 남기고 갑니까?

옛 성인들은 말씀하시기를 “在人名이요 虎在 皮”라 했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 말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죽은 뒤에 이름을 남겨서 무엇 할 것이며,

아무리 유명한 지위, 권세가 있었다 해도, 나 죽은 뒤에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고 000 님과 같이 아름다운 죽음을 맞이할 뿐만 아니라,

저 영원한 천국에 내 이름이 기록되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20에서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하신대로

우리의 이름, 지위, 명예가 하늘에 있어야 합니다.

하늘에 있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알아주시고

하나님이 인정해 주셔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초종 목표는 천국입니다.

빌3:14에서 사도 바울은 “표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하신 대로

우리의 푯대는 천국이요, 새 예루살렘입니다.

비록 풀과 가고 꽃과 같아 언제 떨어질지 모르고 사는 삶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든든히 가지고 주님이 부르실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해서

충성하시고 사명감당하시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 예문 3

성경구절 : 요 11: 25-27, 35

설교제목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발인예배의 뜻은 한 인생이 흙으로 지음을 받아서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예배의식을 말합니다.

고 000성도님만 이런 예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여러분 각자가

발인예배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창3장에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이 범죄 하기 전에 미리 경고한 말씀이 있습니다.

너희가 죄를 짓지 않으면 영원히 살 것인데 죄를 범하면 죄 값으로 너희가 죽음을

당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따먹어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때 죄의 결과로 인간들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선언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

최초에는 죽음이 없던 이 인류에게 죄의 결과로 죽음이 와서 사람들은 살다가

수명대로 죽기도 하고, 병들어서 죽게 되고, 혹은 질병으로

사람들이 죽게 되었습니다.

이 죽음 앞에서는 아무리 악한 사람도 눈물 흘리고,

좋은 사람도 눈물 흘리고 슬퍼합니다.

이 죽음이 얼마나 악한 사건이지 모든 사람은 자기 가족, 친척, 친구들의

죽음 앞에서 큰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합니다.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와 사망에서 구원키

위해서 이 땅에 내려 오셨습니다.

인류가 해결하지 못하는 죄악의 문제를, 사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아버지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다 이겁니다.

내가 죄 값으로 죽어야 되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나의 모든 죄악을 위해서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으면 됩니다.

바로 그분을 믿으면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함 받고, 그 예수님이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면 됩니다.

이런 사실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죄악을 용서하시고 죄와 사망에서

구원의 귀한 복을 베풀어주었습니다.

베다니 지역에 나사로가 살고 있었습니다. 이분이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이분이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 집에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이 나사로에게는 여동생이 둘 있었습니다. 얼마나 슬프겠습니까.

오빠가 돌아가셨으니 말입니다. 이 여동생들에게 이 말씀을 주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는냐?” 여동생들은 “예” 저는 믿습니다.

앞으로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시 살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죽은 나사로를 말씀 한마디로 명하시므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한가지 그림입니다.

고인도 예수님이 오실 때 무덤을 박차고 나와서 부활의 몸으로 우리 모두를 만나

볼 수 있는 축복을 베풀어주신다는 놀라운 복음의 소식입니다.

나는 오늘 감사를 드립니다.

고 000성도는 오랜 세월동안에 예수님을 믿지 아니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연세 많은 지경에 예수님을 자기 구세주로 영접하고 그분의 십자가의 피를 믿어서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이 딸은 죽었습니다 만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서 고 000성도는 이미 썩어서 흙이 된 육이

다시 부활되어 영과 육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

또 그날까지 고인의 그 영혼은 죽음과 동시에 천국에 올라가서 사망이 없고

슬픔이 없고 고통이 없고 질병이 없는 영원한 그 천국에서

현재 예수 그리스도의 품안에서 지금 영원한 생명을 누리고 있습니다.

이런 믿음의 장례식에서는 아이고! 아이고! 통곡도 나오겠지만

그 보다 더 영혼이 구원 받은 기쁨에서 찬송이 나오고 기도가 나오고

감사가 나오게 됩니다.

우리 기독교 장례예식은 영결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영원한 이별이 아니지요 앞으로 여러분께서 예수님 믿고 이 땅을 떠나게 되면

그 즉시 영혼은 천국으로 가서 여러분이 보고 싶다는 그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어머님은 비록 흙으로 돌아갈지라도 그 영혼은 천국에 계십니다.

앞으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실 그 날에는 썩은 육이 다시 부활되어

영과 육으로 바라보면서 주님을 만나볼 수 있는 기쁨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여러분들께서 확신하시고 마음에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는 예수님을 믿어야만 지옥가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사랑하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는 복을 받게 됩니다.

이번에 놀랍고도 슬픈 사건을 맞이해서 3남2녀 모든 자손들도 어머님이 누리시던

복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여러분께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즉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습니다.

언제 내가 이 땅을 떠날지라도 여러분께서는 죽는 것이 아니고 그 즉시 하나님이

계신 천국에 올라 가셔서 나의 영이 어머님을 만날 수 있는 귀한 은혜를

갖게 된다는 것,

이것이 분명히 이 시간에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면서 금번 우리 어머님의 죽음이 결코,

결코 헛된지 않도록 이 고귀한 한 영혼의 죽음이 온 우리 집안의 식구들이

구원받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울러 이 시간에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위해서 예수님이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우리의 어떤 죄악이라도 그분은 다 용서해 주십니다.

어머님 살아생전에 나의 정성을 다해 효도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발인예배를 맞이하면서 우리 예수님 앞에 회개하시기를 바랍니다.

살아생전에 자식 된 도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용서해 주십시오.

회개하는 열매로 앞으로 저 역시 어머님이 섬기시던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앞으로 3남2녀의 모든 식구들은 한가지로 사랑하고 이해하면서 형제우애를 나누는

아름다운 가족이 되겠습니다 라고 말입니다.

이제 마음의 결단을 가지면서 예수님 주시는 부활의 소망으로 잘 극복하면서

오늘 사건을 통해서 천국 백성이 될 수 있는 영생을 소유할 수 있는 놀라운 축복이

온 유족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예문 4

성경구절 : 욥 30:23

설교제목 : 하나님이 지정한 곳

설교자 : 송병철 목사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주님, 하나님이 사랑하는 참된 생명을 이 땅에 보내주신

고 000집사님 아름다운 생명의 날을 이 땅에 살게 하시고 오늘 마지막 발인예배를

하나님 앞에 드립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거룩함이 오늘 하루 종일 저들과 함께

하옵소서.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큰 위로와 은혜가 되어지는 축복의 날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옵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땅위에 생명 가진 모든 존재는 영원히 살려고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무는 나무대로 동물은 동물대로 피조 된 모든 생명체는 영원히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 마음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즉 영원의 가능성을 가지고 잉태된 존재라, 영혼이 있기에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 땅위에 사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죄로 인해서 죽음이 왔고 죄의 결과인 죽음을 이길 장사는

한사람도 없습니다.

우리가 태어날 그 순간부터 무덤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는 어떤 시인의 노래처럼

어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운명 지어지는 것은

어느 시점에 우리는 무덤을 향해 나아가는 그 과정이 인생의 길이라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아무리 몸 관리를 잘 한 그러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경은 인간은 죽을 존재라 그렇게 결정을 했다고 했는데,

사람은 누구나 진시황처럼 불멸을 원하고 있지만 사실은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선생은 마지막 수업시간이 있고, 정치가에겐 마지막 과업이 있고,

설교자에겐 마지막 설교라고 하는 것이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또 마지막 남은 유언이라고 하는 것도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 모든 생명체가 지정된 곳으로 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끌어가시리라고 해서

우리의 죽음이 무엇이냐 모든 생명체는 나중에 지정된 집이 있는데 그 집으로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덤으로 가는 것은 우연히 가는 것이 아니라 다 정해진 것입니다.

누구나 인생들은 한번 태어나면 결국은 무덤으로 가게 되어지는 것은 정한

과정인데 이것은 결국은 어쩌다가 불행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야하는 그런 정해진 일입니다.

이 지정된 집이 우리들이 가야할 그런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속에는 부인을

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많이 있을 찌라도 이건 엄연한 선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우리는 많은 경우에 무시하면서 없는 것 같이 세상을 살 때가

참 많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는 것 같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땅을 취하여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바쁜 생활을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준 말씀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우리의 생애가 죽음이 어떤 것인가를 말씀할 때

고 000 집사님은 자녀들에게는 훌륭한 어머니였습니다.

희생을 아는 어머니였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서는 충성스러운 신실한 종이었습니다.

아까운 그런 한 생명을 하나님께서는 무슨 계획이 계신지 젊은 나이에 불러 가셨습니다.

그러고는 먼저 지정된 곳으로 가셨습니다.

우리 고 000 집사님 이 가신 곳은 외로운 곳이 아닙니다

죽음은 흔히들 참 외롭지 않겠느냐고 하는 생각을 우선하게 되는데

우리 믿는 성도가 가는 예비 되어진 그곳은 외로운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정된 그 집은 이로운 곳이 아닙니다. 쓸쓸함도 없고 거기에는 고통도 없는 곳입니다.

그곳은 이야기 할 수 있고 그 곳은 아름다운 향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자들은 그 천국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라 그렇게 주장하시는 하나님 앞에

이제 고 000 집사님은 외롭지 않는 곳으로 가심을 사랑하는 가족들이 먼저 믿으시고,

오늘 발인예배를 통해서 마음이 아프지만 나의 사랑하는 어머니 나의 사랑하는 성도는

외롭지 않는 곳, 아름다운 모든 인생이 가야할 지정된 곳을 가심을 믿으시고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바쁜 세월 중에서도 또한 도전을 받는 것은 고인처럼 이웃과 형제를 위해서 헌신하며

살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또 우리는 인생이 가야할 그 길을 알고 땅위에 있는

이 유한 된 삶을 어떻게 사는 것이 아름다운 삶인가를 생각할 수 있는

뜻 깊은 시간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 죽음 이후에는 상급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죽음 이 후예 상급이 없다면 고 000집사님이 얼마나 불쌍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자녀를 위해서 기도하시며 먼저 간 남편이 주님 품에 돌아오기를 눈물로 기도하시며,

헌신하고 주님 나라를 위해서 힘쓰시던 그분이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떠났을 때 상급이 없이 그대로 끝난다면 얼마나 허무할까?

저는 전혀 믿고 싶지 않습니다. 인생이 죽은 이 후에는 상급이 있음을 믿습니다.

오늘 사랑하는 이 자녀들과 가족들도 믿을 줄 압니다.

어머니의 삶이 헛되지 않은 줄을 확신하기 때문에 이 죽음이 끝이 아니고

그리고는 상급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 000 집사님의 경우를 보면 주를 위해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바쁜 중에도 예배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힘썼고 또 자녀들을 위해서 항상 새벽

일찍 일어나셔서 열심히 일하셨습니다. 하늘의 상급을 많이 쌓았을 줄 압니다.

자녀들도 신앙생활 아름답게 하고 있음을 봅니다.

마치 스데반이 순교할 때 그 마지막 죽음을 예수님께서 받아 주시듯이

고 000집사님은 주님 앞에서 상을 받는 그 기쁨을 지금은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이별로 마음 아파하지만 그건 누구나 가야할 정한 길이기에

그것은 다음으로 미루고 그 영혼이 안식을 얻고 상급을 받는 그 날의 사실을

믿을 때에 오히려 한편으로는 눈물이 있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감사하는 마음을 조심스럽게 가져보는 것입니다.

오늘 고인은 상을 받는 기쁨을 누리고 있음을 저는 믿고 여러분들도 믿을 줄 압니다.

우리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영원한 것이 아닙디다.

참 짧습디다. 너무너무 짧은 것이기에 성경은 말했습니다.

너는 이때에 세상에 취해서 살 것이 아니라 자다가도 깰 때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어느 누구나 마라톤이라고 했지만, 마라톤 같이 살면은

우리 인생은 한눈 팔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쩜 우리 인생을 영적으로 보면 100m달리기와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눈 팔 수 없는, 숨도 몰아쉬어야 할 시간도 없는..

우리가 인생을 이 세상에 성실하게 살고자 할 때에 그것이 인생의 가치인줄 압니다.

고인은 그렇게 살다가 갔습니다.

100m달리는 사람처럼 그렇게 열심히 사시다가 가신 분입니다.

많은 사람은 마라톤 하듯이 가다가 한눈도 팔고 산도 바라보면서 쉬어가면서

여유를 가지며 자기 페이스를 조절하지만 100m 선수는 페이스가 없습니다.

숨을 모두어 쉬어야만 합니다. 그렇듯 열심히 사셨습니다.

고인은 이제 모든 곡식을 맺고 특히 과일을 수확하는 좋은 계절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불러 가셨습니다. 고인은 이 좋은 가을! 곡식이 영글었습니다.

주님께서 이 좋은 시기에 부르심에 감사하면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그리고 성도 여러분 이 고인은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가셨노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정말 열심히 사셨음을 기억하시고 남아 있는 우리도 이제 영광스러운 그러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 마지막으로 한편의 시를 읽겠습니다.

개울물은 바다 가까워 질 무렵에 가장 고요하고

꽃들은 황혼이 질 무렵이 되어질 때 가장 아름답도다.

새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때에 가장 아름답게 지져귀고

성도의 삶은 결산하는 때가 가장 고귀하다네

사랑하는 000 집사님! 사랑하는 어머니여 이제 정든 집을 떠나갑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내 가족 내 친지들이여! 이제 나는 갑니다.

새벽부터 땀 흘려 수고하고 늦은 밤까지 수고하던 내 정든 육신의 집을 떠납니다.

내 친구들이여! 함께 주님을 섬기던 성도들이여! 그대들은 평안히 있을지라도

나는 하나님이 지정한 곳으로 가오니 그대들은 평안히 잘 있으시오!

◇ 예문 5

성경구절 : 시 119 : 97-105

설교제목 : 말씀을 묵상하는 자의 삶

고 000 집사님의 신앙특징을 제가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주의 말씀을 늘 묵상하는

생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암송을 하고 묵상하면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는 신앙생활을 해

오셨다고 제가 확신하고 있습니다.

제가 주일마다 하는 설교 본문을 그 주간에 주어지면 그 주간에 말씀이 길던 짧던

꼭 암송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암송하는 것이 늘 익숙하기 때문에 그 암송이 어렵지 않고 늘 기쁘고 즐겁다고

하셨습니다.

또한 설교 본문 뿐만 아니라 그 외 여러 가지 좋은 성경말씀의 구절들을 일터에서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암송하고 또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 속에서도

늘 암송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여러번 들었습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낸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서 고인의 다른 여러 가지 신앙생활을 이야기하지 아니하여도 고

인의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신자들은 성경말씀을 읽으면 잠이 온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암송을 힘들게 하는데 고인은 말씀 안에서 늘 기뻐하며 사셨다는 자체가

고인의 신앙의 단계, 신앙의 성숙도가 어느 정도였다는 것을 표현해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종일 묵상하는 자가 받는 복은 말할 수 없이 많지만, 오늘 말씀에서

세 가지만 살펴보고 우리가 고인의 신앙을 본받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첫째 : 하나님 말씀을 종일 묵상할 때에 꿀맛보다 더 단 기쁨과 즐거움을 누리게

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주의 말씀이 어찌 그리 단지요 꿀보다 더 하니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백은 신앙의 깊은 경지에 들어간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이고 맛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배가 고플 때 먹던 밥이 얼마나 맛이 있었습니까?

말씀도 신앙의 성숙도에 따라서 맛이 틀립니다.

고 000집사님도 말씀이 세상에 어떤 것보다 더 맛있었기 때문에 말씀과 더불어

암송하면서 기쁨을 누렸다고 믿습니다.

고인은 세상 사람들이 누리지 못했던 즐거움 속에서 그의 생애를 보내신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 말씀을 묵상할 때에 명철하게 되고 모든 거짓과 악한 행위를 하지 않게 되고 . . .

그의 생활이 나날이 거룩하게 되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에게 이와 같이 살라고 말씀하시고 그와 같이 살 때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행하는 자입니다.

내가 공부를 많이 했다고 우리의 인간의 생각대로 행동하는 그것이 현명하고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고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가운데 명철한 단계에 이르렀고 지혜로운

삶을 살아오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 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나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 적으로 생각할 때에 우리의 스승들은 우리보다

지혜롭고 아는 것도 많습니다.

노인들 경우에는 인생을 오랫동안 살아오셔서 경험도 많고 지혜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적으로 얻은 세상지시 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면서 묵상했을 때에 노인들 보다 스승보다

내가 더 지혜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고인은 인생을 지혜롭게 살아온 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따라서 살아가다 보니까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고

악의 길에도 서지 아니하고 모든 거짓행위를 미워하는 삶을 살아오셨습니다.

제가 000 집사님을 볼 때에도 말씀 안에서 어린아이와 같이 늘 즐거워하셨고

늘 말씀에 따른 거룩한 삶을 살고자 노력하셨습니다.

셋째 : 말씀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며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도록 합니다.

딤후 3 말씀에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자에게는 그러한 즐거움과 그리고 악의 길에서 떠나

순결한 삶만 제공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 속에는 구원에 이르는 진리가 있어 구원을 가져오게 되고,

구원의 주체가 되는 하나님을 늘 생각하면서 저 하늘나라를 그리워하면서

하늘나라를 향하여 나아가게 합니다.

고인은 늘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살아온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인은 이러한 신앙으로 인해서 말씀을 통해서 늘 사모하며 바라던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 나라에 들어가서

지금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은 믿음의 선진들의 품에 안겨서 평안한

안식에 들어가 계십니다.

이제 고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더불어 함께 만나는 은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다시 만나서 두 번 다시 이별이나 헤어짐이 없는 곳,

고통이나 슬픔이 없는 그 좋은 천국생활을 함께 누리게 될 것입니다.

유족들 가운데 신앙생활 열심히 하지 않는 분들 있으면 고인의 신앙을 본받아서

성경을 암송하는 깊은 차원의 신앙의 자리에까지 들어가서 그 안에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신앙의 단계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물을 먹으면 몇 시간 후가 되면 또 갈증이 납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음식을 많이 먹어도 몇 시간 후면 또 배가 고픕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의 황금보화를 많이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으로

우리 인생을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고 또 황금보화가 우리에게 구원을

안겨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의 세계에 깊이 들어갔을 때에 세상이 주지 못하는 만족함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고인은 일제시대와 6.25시대를 살아 오셨고, 좋지 않은 여건으로 인해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세상의 높은 지위와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였지만은

그러나 고인은 주의 말씀에 만족함을 누리고 세상 것을 탐내지 아니하고

늘 마음가운데 즐거움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고인의 유족들은 아버지의 그 신앙! 나의 사랑하는 남편의 그 신앙을

본받아서 말씀과 더불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 예문 6

성경구절 : 딤후4:7-8

설교제목 : 나그네의 여정을 마치고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을 나그네로 비유하곤 합니다.

나그네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습니다. 언젠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 여행의

피로를 풀 수 있는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그러기에 나그네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안식할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삶도 이 세상은 나그네 삶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영혼의 여행이 마치는 날 돌아갈 하나님의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곳이 구원받은 백성들이 있을 천국입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았지만 그의 인생 여정을 묻는 질문에

“내 나그네의 인생길이 130년이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나이다”하고 告白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나그네길이기에 험악한 세월이요 외로움과 슬픔의 세월입니다.

세상의 안락함이 나그네 인생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인생의 안식처가 되지 않습니다.

많은 지식이나 명예가 결코 그 인생을 편안하게 해주지는 못합니다.

건강하여 조금 더 사는 자나 조금 덜 사는 자나 역시 인생은 험한 나그네인생길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이 부르실 때 가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하던 일을 멈추고 가야만 합니다

정든 육신과 성도들과 영원히 떨어져서 이별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을 영접한 고 000 님에게는 이제 돌아갈 본향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고향을 사모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예수 믿는 성도의 죽음은 외로움도 두려움도 없습니다.

오히려 희망과 즐거움과 희락이 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나온 참 본향으로 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슬픔과 고통이 없는 아버지의 품에 안기려 가는 것이니 그러합니다.

정든 가정을 떠난 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이제 나그네의 괴로운 세월을 뒤로하고

영원한 안식을 얻으셨으니 위로와 소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시편23편은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어 고 000 님의 세상을 살 동안

인도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인도하신 주님께서 천국천사들과 더불어 000님의 영혼을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인도했음을 믿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居할 곳이 많도다.”

그러므로 먼저 가신 000님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나라에

입성하는 귀하고 복된 길을 가신 것입니다.

이제 이 길을 자녀들과 손자 손녀들이 믿음으로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000님은 참으로 믿음으로 살아보려고 많은 수고를 하셨습니다.

열심히 예배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매주 씩씩한 걸음으로 주님 전을 찾아 앞자리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본을 따라 어머니를 모셨던 000집사님,

역시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손자 손녀들도 교사로 믿음의 대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온 가족이 예수 잘 믿는 것이 000님의 유언이요 바램이라고 봅니다.

사도 바울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바라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 000님께서는 선한 믿음의 싸움을 잘 싸우셨습니다.

험한 인생의 나그네 삶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셨습니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잘 감당하며 모든 이의 본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리라 믿습니다.

이제 우리는 육신의 헤어짐으로 슬퍼하는 유족들을 바라봅니다.

무슨 말로나 방법으로도 위로 할 수 없는 연약한 우리들임을 깨닫게도 됩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진정으로 위로하시고 격려해 주시는 분은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유족들에게 넘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믿음과 소망 가운데서 먼저 가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를

기쁨으로 다시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오직 믿음의 길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을 목자로 모신 가정이 되셔서 천국에서 다시 살 소망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문 7

성경구절 : 요 14:1-6 시 90:10

설교제목 나를 찾아줄 부모가 있는가?

고 000 성도님 발인예배를 하나님께 드리겠습니다.

불과 몇 일전 고 000성도님은 우리들과 똑같이 식사도 하시고, 말씀도 하시던

이 귀한분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지금 이곳에 말없이 누워 계십니다.

천하만물이 일생이 끝나면 다 제 본향으로 돌아갑니다.

물은 바다로 가고 꽃은 시들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죽음이라는 똑같은 현상을 놓고서도

어느 사람은 사망이라 하여 애통하고, 절통하고 방성대곡을 합니다.

세상 것을 다 잃은 것이 억울하고 원통한 것이 아닙니다.

천국에 못간 것이 애통하고 원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죽음을 가르켜 소천 이라 합니다.

즉 하늘에서 불렀다. 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부르신 것입니다.

왜? 이 세상에서의 사명이 끝났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별의 아쉬움이나 아픔은 있어도 잠시 먼저 가신 분과

헤어져 사는 것입니다

이별의 아픔이 큰 만큼 후일에 만남의 기쁨도 클 것입니다.

먼저 가신 어머니는 천국에서 사시고 남편 되시는 분과 자녀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을 믿고 사시다가 영혼이 구원받아서 다음에 천국에서 어머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곳에 있는 우리 모두는 천국에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생전에 좋아하시던

찬송을 불러드리며 보내드려야 합니다.

육신은 지금 이 자리 우리 보는 앞에 누워 계십니다.

영혼은 벌써 천국에 도착해서 온유하신 주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소천 이일 전에 천국에서 “흰 옷 입은 이가 왔다”고 반겨주는 환상을 보았답니다.

우리 성도님은 비록 짧은 믿음의 시간이었지만 특별한 믿음의 은사가 있었습니다.

영안도 밝으셨고 심령이 깨끗하셨습니다. 또한 마음이 온유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환상을 보신 것입니다.

천국가신 것을 믿으셔도 됩니다. 확신하셔도 됩니다.

만약에 주님이 고인에게 딸아 네 소원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어머니는 어떤 대답을 하실까요?

자식들 출세해서 떵떵거리고 살게 해 주세요. 부자되게 해 주세요.

이런 소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남편 건강하고 예수님 잘 믿게 해주시고, 자식들 예수님 잘 믿고 천국에서

만나 같이 살게 해 주세요 이런 소원이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올 때는 두 주먹 불끈쥐고 크게 부르짖으며 태어납니다.

세상부귀영화 명예권세 한번 잡아 보겠다고 . .. .

그러나 이 세상 떠날 때는 두 손펴고 아무것도 못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공수래 공수거”라는 말도 있습니다.

집도 돈도 명예권세도 못가지고 갑니다.

저 세상에 가져갈 수도 없고 필요치도 아니한 것들입니다.

갈 때의 울음은 크고 씩씩한 울음이 아닙니다. 인생 살아보니 별것 아니더라

서글픈 눈물이요 이별의 눈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초상집에 가서 지혜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 집에 가는 것 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여러분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까?

내 인생 지나온 삶이 이렇게 빨랐는데

남은 세월은 얼마나 빠를까라고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얼마 안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이 과연 제일 값어치 있는 삶일까?

인생이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며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일까?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정말 바른 삶인가? 고민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죽음을 앞에 놓고도 못 깨달으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못 깨달으면 다른데서 깨닫기가 힘듭니다.

인생이 70이요 강건하면 80년 살다가 가는데 그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날아가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해가지면 캄캄한 어두움이 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어린이가 밖에서 놀다가 밤이 와도 부모가 있는 사람은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기는 어두움이 없습니다.

거기는 빛 되시는 예수님과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집에는 나를 보호해줄 부모님이 계시고 들어가서 편히 쉴 방도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도 넉넉히 준비되어 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다 부모가 와서 찾아가는데 고아는 부모가 없습니다.

해가 넘어가도 부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찾아줄 사람도 들어갈 집도,

갈 곳도 없습니다. 캄캄한 방은 춥고, 어두운데서 그냥 보내야 합니다.

그 방은 추위와 무서움 배고픔과 외로움 고통뿐입니다.

이 땅에서의 짧은 어두운 밤도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지옥에 영벌의 그 방은 어떻하겠습니까?

이런 낭패를 안 보려면 이 땅에서 예수님 믿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믿으면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세주가 되십니다.

요한 복음14: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니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여기에 계신 저와 여러분 누구에게나 어두운 밤이 한 발 한 발 다가오고 있습니다.

밤이 왔을 때 여러분을 찾아줄 부모가 계십니까?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하나님의 자네에게는 결코 무서운 밤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 예문 8

성경구절 : 약4:13-17

설교제목 : 너의 생명이 무엇이뇨?

설교자 : 강정일 목사1. .人生이란 무엇인가?

인생이 타락한 이후 내일 일을 알지 못한 체 여관 같은 이 땅에 잠시 다녀가는

나그네 입니다.

사람이 땅에 나그네로 올 때는 순서 있게 왔지만 갈 때는 순서가 없습니다.

이 시간장례 하는 이 엄숙한 자리에 서신 여러분!

땅위에 잠시 머물다가는 나그네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몸이 튼튼해도 풀처럼 시드는 날이 언제 올런지 모르고

우리의 영광이 아무리 찬란해도 “꽃처럼 떨어지는 날이”올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이 아무리 치밀하고 지혜로와도

“안개처럼 사라지는”날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인간의 생명은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 라고 합니다.

짙게 깔린 안개가 태양이 떠오르면 사라지는 것과 같이

인간의 생명이 덧없고 짧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 중에는 자기만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이기적인 욕망에 사로잡힌 체 미래를 향하여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1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나님 없이 돈벌이 계획을 세우고 물질을 최우선의 가치로 여기는

인생들의 자랑, 다 허탄한 것이며 또 악한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꿈에도 교만하거나 욕심에 눈이 어둡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눅12:15)

2. 이 예식에 참석하신 여러분

고인께서는 1911년에 출생하여 향년87세로 운명하셨습니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므로 (히9:27)

죽음은 아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며 죽음이후의 삶이 또한 있는 것입니다.(부활)

이 자리에서 분명히 아는 사실은 고인의 죽음이후의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만이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앞에서 장례예배를 드리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고인의 가족과 친척들의 끊임없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고인의 아내는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은 교회의 집사로서 천국의 소망 중에 살다가

2년 만에 먼저 하나님의 부름을 받기 전에 늘 마음깊이 남편 위해 기도했으며,

딸들과 사위들도 기도했으며 믿는 친척들도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믿습니다.

2) 본인께서 생전에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린 적이 있었고

교회에 스스로 찾아 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그분이 넘어져서 병원에 입원한 다음날에 저의 인도로 예배드릴 때

우리의 가슴에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유가 어떠하든지 기독교 장례식을 진행하게 됨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은혜인 줄을 믿습니다.

이 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 !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이 부르시면 내일이라도 가게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준비 할 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우리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 함을 가르치사 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90:10-12)

지혜로운 마음을 얻어 자신의 남은 여생을 알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갑시다.!

섞어질 욕심 때문에 눈이 어두워 마귀 편에 서지를 말고,

속히 하나님 편에 서서 인생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잘 감당합시다.!

유족들을 위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고인의 유족 친척여러분은 서로 대화로 말미암아 피차 용서하고

형제 우애하셔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다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앞서간 믿음의 선친들을 만나 칭찬과 상급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 예문 9

성경구절 : 욥기 14: 9

설교제목 : 최후의 희망 .

설교자 : 유상규 목사

우리의 인간의 삶이란 지극히 미미하고 참으로 풀의 꽃과 같다고 했습니다.

굉장히 아름답게 피는 꽃도, 언제까지나 그렇게 청청할 것만 같이 보이던 풀도

얼마간의 시간이 자나가면 시들어서 흉물이 되어지고 아무도 거들떱지 않는 것으로

되어져 버리고 맙니다.

우리의 인생의 삶도 꽃과 같고 이슬과 같은데 우리 인생의 삶은 결국은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유한된 인생인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우리가 이러한 인생의 삶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땅에 살면서

무슨 말씀을 하시고 어떻게 살아갈 것을 말씀하시는지를 우리는 항상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전쟁에 나간 군인들은 자기의 지휘관이 지휘하는대로 움직여 주어야

나라가 든든하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를 잘 들어서 그 말씀대로 살아가야

참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고, 복된 삶을 살수가 있으며,

우리를 보내신 주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언젠가는 부르실 텐데 먼저 가신 000권찰님을 생각 하면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인 동시에 부활의 종교입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부활의 종교는 없습니다.

우리 기독교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우리는 죽어도 새로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다시 살아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이 귀한 사실을 믿는 종교가 기독교라 이겁니다.

타 종교들은 사람이 무언가 신을 찾아가려고 노력합니다.

무언가 우상을 만들어 놓고 산에나 바다에 가서 뭐 이상한 돌만 보아도 거기에

섬기고 절을 하고 빌고 그러한 삶을 살아가지만 우리 기독교는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온 종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인간의 모습을 하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러한 종교, 신이 인간에게

강림하신 종교, 그래서 이 말을 신학적으로”도성인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종교가 바로 기독교 입니다.

기독교는 부활을 믿는 종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살겠고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보장되어져 있는 종교이며 누구든지 믿으면

그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주님께서 우에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000 권찰님은 믿음으로 살았고 믿음의 날을 바라보고 살았기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저희보다 먼저 가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진데 이같이 예수 안에 사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화 함께 데리러 오시리라” 살전 4:14절에 말씀했습니다.

언젠가는 믿음의 사람 우리들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가는데 영원한 그 곳에

우리가 다 갈수 있을 줄 믿습니다.

그 동안에 오랜 시간동안에 살면서 인간의 미운 정 고운 정 이 들기도 하고 함께

희노애락을 같이 했던 유가족들이 이제 고인의 시신을 출상을 하게되면

다시는 볼 수 없는 안타까움도 있기는 하겠습니다만은

그러나 그 나라에서 또 만날 그 날을 우리는 기약하게 됩니다

우리는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더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가야 될 줄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우리가 더욱더 마음과 뜻을 같이 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고 믿음의 길을 잘 걷고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신

그 뜻을 따라서 신앙생활을 잘 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복된 가정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셨던 우리 000 권사님을 다시는 눈물이 없는 그곳으로 데려가신

줄 믿습니다.

이제 우리가 발인예배를 드리면서 인간의 정을 생각하니 섭섭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참으로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을 우리가 생각하게 됩니다.

몸이 불편하여 부축을 받으면서도 교회에 출석 잘하였던 그 모습을 생각하게 되어집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 말씀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던

그 모습도 기억하게 되어집니다.

이제 다시는 이 땅에서 그 모습을 바라볼 수 없지만 눈물과 고통과 쓰라림이 없는

영원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제는 건강하게 편한히 쉼을 얻고 있을 줄 믿습니다.

우리 유가족들과 사랑하는 성도들이 그 모습을 다시 생각하면서 믿음의 길을

잘 걸어서 그 나라에서 반가운 얼굴로 다시 만나볼 그 날을 기약하면서

오늘 우리의 인간의 슬픔과 석별의 정을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여 귀한 유가족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옵시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확실한 믿음과 소망을 갖게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간은 언젠가는 다 풀의 꽃과 같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결국은

사후에 그 세계가 있음을 확실히 믿고 믿음의 온전한 길을 잘 걸어갈 수 있는

저희들의 삶이 되게하여 주옵소서.

이 후에 있을 모든 절차를 하나님께서 친히 주장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예문 10

성경구절 : 벧전 3:17-19

설교제목: 새로운 삶의 시작 ….

설교자 : 최성광 목사

하루는 참새와 하루살이가 숲 속에서 놀다가 해가 석양에 기울어질 무렵에

참새가 하루살이에게 이렇게 제안을 했습니다.

해가 벌써 기울어졌으니 내일 다시 만나서 놀자.

그렇게 말할 때에 이 말을 들은 하루살이는 참새에게 내일이 무엇이냐?

내게는 내일이 없다.

그렇게 대답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우리 인생에게는 내일이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루 하루가 하루살이 같은 삶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에 생명 있음을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내가 생명 있을 때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오늘 귀한 말씀을 통해서”성도의 죽음은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나 영혼으로는

살리심을 받는 거룩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고체가 변해서 액체가 되듯이 액체가 변해서 기체가 되듯이

죽음은 육체의 삶에서 영원한 삶으로 변화 받는 순간입니다.

“저희가 다시 주리지 아니하고 목마르지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라”고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계의 삶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땅에서의 고난을 청산하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으로 들어가는 관문이

바로 죽음이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은 죽음 앞에서 특히 거룩한 성도의 죽음 앞에서는

슬퍼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죽음은 나그네의 길을 청산하고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출발하는

순간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후 5:1절에 “만일 땅에 있는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타향살이의 생활이 아무리 넉넉해도 정신적으로 만족함이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아버지 집은 영원한 반석이 있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만족함이 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완전하고 풍성한 생명을 영원토록

누릴 수 있는 새로운 세계로서의 삶의 시작인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고000성도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말고 그의 새롭게 시작되는

축복된 삶을 위해서 우리는 마음껏 기뻐하고 축복하는

이 순간이 되어야 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위의 나그네 삶을 점이라고 했습니다.

손바닥만한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뜬구름 잡는 삶이라고 했습니다.

인생은 하나님께서 흙으로 인간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시므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소명으로 살다가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그러한 흙의 인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언젠가는 돌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것인가를 압니다.

그러나 주님 앞에서는 날 고통도 없고 한숨도 없고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영원한 낙원의 세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딸을 육에서부터 영으로 살리셔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처로

받아들임을 우리가 바라면서 우리의 삶의 모든 생활 가운데서 종말론적인

삶을 예비하면서 살아가야 함이 마땅한 줄로 압니다.

특별히 어려움을 당한 사랑하는 유족 여러분 하나님께서 영으로 살리셔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사랑하는 딸을 맞이하여서 주님과 더불어 사는 것으로

위로를 받으시고

이 땅에 남은 모든 형제자매들과 특별히 살아 계시는 아버지를 주님이 오시는

그 날까지, 부르시는 그 날까지 지성껏 몸과 마음을 다해 효를 다하므로

사랑하는 이 가정이 모든 후손들이 복되고 번성해서 믿음의 계보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이어지는 은혜 입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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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예배 설교말씀] 발인예배 설교 및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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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장례예배 설교 말씀 중에서 발인예배 및 기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 오면 한 번은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원한 집이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 우리가 육체로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됩니다. 부활의 날을 소망하면서 다시 만날 날을 소망하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발인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집이 있다는 것을 소망해야 하겠습니다.

하늘나라 영원한 집(고후 5:1-4)

고후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고후 5:2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 하노라

고후 5:3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고후 5:4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땅에 있는 장막집과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땅의 집이나 영원한 집은 영혼이 거주하는 집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영혼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육체의 장막에 있게 되고 사람의 영혼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하늘나라의 영원한 집에 가서 살게 됩니다. 오늘 고인이 된 분은 그동안 세상에서 육체의 장막집에 거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이제는 그 장막집이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으신 영원한 집으로 이사를 가신 것입니다. 육체의 장막은 그리 좋은 집이 못 되는 곳입니다. 영원한 하늘나라의 집은 육체의 장막과는 비교할 수가 없는 좋은 곳입니다.

그곳은 찬송과 영광과 기쁨과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즐거움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세상은 눈물과 한숨과 죽음의 골짜기요 억울하고 고달픈 생활이지만 이제 고인이 가신 곳에는 이 모든 무거운 짐을 벗고 행복을 안겨주는 곳입니다. 이제부터는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민이 되어서 새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고인의 죽음을 슬퍼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오히려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자의 특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의 소망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보배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도 모든 것을 이길 수가 있으되 죽음도 이깁니다. 믿음으로 영원한 하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니 곧 나를 믿어라 하신 예수님! 예수님만을 믿는 믿음으로 갈 수 있는 영원한 집을 예비하여 주셨으니… 이제 고 ○ ○ ○ 집사님께서는 이 땅에서의 년수가 다 되어 아버지 계신 영원한 집으로 가셨습니다. 애통하는 유가족과 일가친척 친지들과 여기에 둘러선 교우들에게 위로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부활의 그날 우리 모두 즐겁게 만날 수 있게 하옵시고 이 땅에 남은 우리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한층 더 간절하게 사모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앞으로 남은 장례 절차를 성령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셔서 흑암의 세력 일체 틈타지 못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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