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 발제5: 열매로 드러나는 참된 신앙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에서 배우는 참된 신앙의 본질 (이상웅 교수) 2159 좋은 평가 이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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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서울 퓨리턴 컨퍼런스
발제5: 열매로 드러나는 참된 신앙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에서 배우는 참된 신앙의 본질 (이상웅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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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 재생 목록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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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 C.S. 루이스 컨퍼런스 – (재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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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서울 에드워즈 컨퍼런스 – (재생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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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서울 C.S. 루이스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GxgZI_qbc-5qFFl1j0WRje
2017 서울 에드워즈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EIVzIVokmVRvBfVKpc6XL8
2016 서울 C.S. 루이스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HmiU-6y_SPxxYo3FLB58bX
2016 서울 에드워즈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H8pDwyN_iiyate_Uga_SjY
2015 서울 퓨리턴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E-HqIi3DfK1HpyFvzPv4qa
2014 서울 퓨리턴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GiKkOaJhwVtgZv497RRIBB
2013년 조나단 에드워즈 컨퍼런스 – (재생목록)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FzGYOuJyQuGKj-PID7y3EIakcC307Ms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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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감정론 – YES24

또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들이 오늘 우리 시대의 솜털처럼 가벼운 신앙과 왜곡된 체험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약이며, 건강하고 성숙한 내일의 한국 교회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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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2/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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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는 12가지 참된 신앙의 표지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은 참된 신앙은 대체로 감정에 있다는 명제로부터 시작해 지성을 포괄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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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theosnlogos.com

Date Published: 10/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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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감정론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 1권) – 교보문고

<신앙감정론>은 조나단 에드워즈가 근본적인 질문에 대해 가장 집중적으로 탐구한 작품이다.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의하는 중대한 문제를 통찰력 있고 상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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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yobobook.co.kr

Date Published: 8/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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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 감정론』에 나타난 영적분별

본 논문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신앙 감정론』을 중심으로 영적분별의 원칙을 다루고자 하였다. 에드워즈는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영적 체험이 일어난 시대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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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ci.go.kr

Date Published: 3/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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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감정론 – 알라딘

신앙감정론 우리 세대를 위한 조나단 에드워즈 · 정가. 18,000원. 판매가. 16,200원 (10% 할인) + 마일리지 900원. 마일리지 적립 · 시계 · 양탄자배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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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aladin.co.kr

Date Published: 1/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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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정성욱역, 부흥과개혁사 …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정성욱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5), 720pp. – 이상웅 목사(총신대학교 Ph.D., 산격제일교회 담임목사) 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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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irs.kr

Date Published: 5/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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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요약 –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요약 제 1부 감정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1. 감정이란 무엇인가 에드워즈는 감정이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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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angmoolee.tistory.com

Date Published: 9/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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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 목회와신학

참된 신앙의 본질은 무엇인가? 이것이 에드워즈의 기본적인 문제 의식이었다.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성도들의 삶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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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oksin.duranno.com

Date Published: 1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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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0강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58). 1734-35. 1740-41. Jonathan Edwards. (1703-58). 1734-35. 1740-41. Great Awake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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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ontents.kocw.or.kr

Date Published: 9/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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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제5: 열매로 드러나는 참된 신앙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에서 배우는 참된 신앙의 본질 (이상웅 교수)
발제5: 열매로 드러나는 참된 신앙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에서 배우는 참된 신앙의 본질 (이상웅 교수)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 Author: a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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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6. 9. 9.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PTjC66yCHIw

하나, 조나단 에드워즈를 한국 교회에 전문적, 체계적, 종합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저의 꿈 가운데 하나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교회사가 배출한 인물 가운데 성경지식과 성령체험, 신학이론과 생활실천,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감정이 가장 탁월하게 균형잡힌 인물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글들이 오늘 우리 시대의 솜털처럼 가벼운 신앙과 왜곡된 체험을 치유해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치료약이며, 건강하고 성숙한 내일의 한국 교회를 위한 가장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우리 영혼의 먹거리요 영적 건강식품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한 여러 사람의 평가를 들어 보면 이러한 제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새뮤얼 데이비스는 에드워즈가 “배출한 가장 심오한 사상가이며 위대한 신학자”라고 생각하며, 페리 밀러는 “청교도주의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진수요, 조나단 에드워즈는 청교도주의의 정수”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로이드 존스는 “청교도들을 알프스 산에 비유하고, 루터와 칼빈을 히말라야 산에 비유한다면, 조나단 에드워즈는 에베레스트 산에 비유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극찬합니다. 참으로 신학자, 목회자, 부흥사, 설교자, 선교사, 철학자, 윤리학자, 심리학자, 사회학자, 역사학자 등의 천의 얼굴을 가진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 여러 분야에서 모두 뛰어난 업적과 통찰력을 남긴, 8,000미터 이상의 고봉을 14개나 가지고 있는 히말라야 산맥과 같은 인물입니다.

셋, “좋은 목회자, 좋은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다면 언젠가 20세기 최고의 복음주의 설교자인 로이드존스와 한 신학생이 나눈 대화를 소개해 주고 싶습니다. “앞으로 목회자가 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 “다음에는 무엇을 할까요?”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 “그러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으십시오.”

– 백금산 목사의 발간사 중에서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는 12가지 참된 신앙의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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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웅 교수, 2015 퓨리턴 컨퍼런스에서 ‘신앙감정론’의 핵심 소개

2015년 6월 10일 기사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은 참된 신앙은 대체로 감정에 있다는 명제로부터 시작해 지성을 포괄하며, 결국에는 삶의 실천을 통해 드러나는 전인적인 신앙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상웅 교수(총신대)는 지난 6월 8일 진행된 ‘2015년 서울 퓨리턴 컨퍼런스’에서 ‘열매로 드러나는 참된 신앙-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에서 배우는 참된 신앙의 본질’이란 제목으로 강의하면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이 말하는 전반적인 내용을 소개했다.

이 교수는 “한국 교회의 쇠락과 대사회적 영향력의 실추를 두고 여러 가지 원인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참된 신앙관의 존재 여부를 두고 고민해 볼 필요성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신앙을 지성의 어느 하나의 기능으로 환원시키지 않고 전인적인 신앙을 펼쳐 보여줄 수 있는 신앙관이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것이 의문”이라며 “이런 점에서 전인적 신앙관이라는 올바른 신앙관 정립을 위해 18세기 미국의 신학자이며 철학자였던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관을 참고하고 씨름해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은 1746년 간행된 이래로 ‘영감의 시대 이래로 체험적 신앙과 살아 있는 경건에 관해 쓰인 최상의 책들 중 하나’라고 평가받고 있는 책으로서 출간된지 270여 년 동안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왔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이라는 저서를 통해 참된 신앙의 모습인 ‘전인적 신앙관’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자신의 책에서 ‘참된 신앙의 본질이 거룩한 감정에 있다’는 명제를 제시한다.

이 교수는 “에드워즈는 ‘감정이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이 지닌 더 활기차고 감지할 수 있는 활동’이라며 단도직입적으로 감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내린다”며 “에드워즈에 따르면 인간의 영혼 기능은 지성과 감정으로 나눠질 수 있다. 지성은 사물을 분별하고 바라보며 판단할 수 있는 기능이고, 감정은 사물을 단순히 인식하고 지각하는 것을 넘어서 인식하고 지각하는 사물에게 어떤 식으로든 끌리게 되는 기능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에드워즈는 감정과 의지가 ‘분리된 기능’이 아니며 구분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며 “그에 의하면 영혼의 감정은 의지와 성향과 전혀 다르지 않고, 의지는 감정적으로 영향을 받는 것만큼만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성향은 중요한 개념이며, 그에게 성향은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에드워즈는 ‘신앙감정론’에서 참된 신앙의 표지가 될 수 없는 12가지 소극적 표지와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참된 신앙의 12가지 적극적 표지를 설명하고 있다. 특히 소극적인 표지들은 성령의 역사에 의해 나타날 수 있지만 마귀에 의해서도 나타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표지를 갖고서 그것이 성령의 역사다, 아니다를 안전하게 평가내릴 수 없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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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이상웅 교수가 정리한 ‘신앙감정론’의 주요 내용을 아래와 같이 정리했다.

# 참된 신앙의 표지로 간주할 수 없는 소극적 표지들

1. 신앙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

에드워즈가 첫 번째 소극적 표지로 제시한 것은 ‘신앙적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를 두고서 무조건적으로 정죄하거나 아니면 무조건적으로 다 긍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감정이 고양된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감정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안전하게 판단내릴 수 없음을 역살한다. ‘확실하고도 무오한 기준인 성경’에 따라 판단해 볼 때, 매우 높이 고양되긴 했지만 영적이지도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지도 못하는 신앙감정이 있음을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2. 감정이 몸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

에드워즈는 인간의 어떤 감정도 몸에 영향을 준다는 점을 궁극적으로 다룬다. 인간은 몸과 영혼의 연합체이기 때문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사람의 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보편적인데, 특히 감정이 크면 클수록, 활력있게 발휘되면 될수록 몸에 더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문제는 영적인 감정도 그렇지만 일반적인 감정도 그럴 수 있다는 점이다. 성령의 역사가 아닌 세속적인 일로 느끼는 감정도 몸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몸에 미쳐진 영향이 아니라 그런 영향을 느끼게 만든 감정의 본질을 잘 분별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3. 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

사람들은 말이 많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는 점을 에드워즈는 인정한다. 또한 다른 이들은 누군가 갑자기 신앙적인 일들에 대해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을 보면 ‘성령의 구원하시는 능력의 지배를 받고 있다’라고 성급하게 단정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성경에는 그러한 유창한 말을 갖고 참된 신앙의 여부를 평가하는 기준을 주신 적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그것은 단지 입과 혀에 달린 믿음이며, 나뭇잎들에 불과한 것이라고 한다.

감정이 강하면 강할수록, 열정적으로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감정의 본질에 속한 것’이지만 성경의 예들을 살펴보면 도리어 그런 현상만 갖고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스러운 일이라고 에드워즈는 경고한다.

4. 사람들이 스스로가 그런 감정들을 만들지 않았다거나 그들의 고안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 자신의 힘에 의해서 흥분시킨 것이 아니라는 것

에드워즈가 제시하는 네 번째 소극적 표지는 감정들의 자가 생산 여부와 관련이 있다. 즉, 어떤 이들은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적이 없는 감정을 체험하게 되면 ‘어떤 외부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이 그들의 마음에 영향을 준 결과’라고 쉽게 판단한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감정의 주체가 되는 사람이 자가 생산한 감정이 아니고 외부에서 온 영향이나 역사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무조건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의 결과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설명한다. 성령 외에도 사람의 영혼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영적 존재들, 즉 마귀가 있기 때문이다.

5. 신앙 감정들이 성경 본문을 마음 속에 기억나게 한다는 것

성경 말씀이 갑자기 떠오르면서 감정이 생겼다는 것만으로는 역시 거룩하고 영적인 감정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다고 에드워즈는 말한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고 완전하다는 사실에 기초해서 주장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 체험은 옳고 또 옳지 않을 수 없다는 것 뿐이지, 체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속에 생각난다고 해서 그 때 일어나는 감정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6. 사람들이 체험하는 감정에서 사랑이 (현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자체

참된 사랑은 탁월하고, 천상적이며, 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다만 에드워즈는 참된 사랑이 아니라 사랑의 모조품에 대한 것을 언급한다. 어떤 것이 탁월하면 탁월할수록 그것의 모조품들은 더욱 많다는 것이다. 그는 일반적인 이치를 들어 사랑에 모조품이 많음을 지적한다.

성경에 보면 종교적인 열정을 일시적으로 보이고 나서 때가 되면 변질되거나 부패해버리는 여러 예들이 등장하기 때문에 사랑의 현상 혹은 모조품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당부한다.

7. 사람들이 여러 신앙 감정들을 동시에 체험했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거짓된 믿음은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되기 쉬우며, 참된 믿음 안에 있는 온전함과 조화가 없지만 매우 다양한 거짓 감정들을 합치면 은혜로운 감정과 닮은 것이 될 수도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사랑과 겸손에도 모조품이 있듯이 나머지 모든 감정들에 대한 모조품이 존재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참된 사랑에서 모든 참된 감정이 흘러나오듯이 사랑의 모조품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각양 거짓된 감정들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8. 양심의 각성과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어떤 일정한 순서를 따라 위로의 기쁨이 뒤따른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라는 점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에드워즈는 이러한 순서를 따라 경험하게 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와 기쁨’이 바라드는 근거가 안된다고 말한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라 마귀의 역사에 의해서도 사람은 공포에 빠지곤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에드워즈는 마귀는 하나님의 성령의 구원하시는 모든 사역과 은혜의 모조품을 만들 수 있는 것 같이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준비시키는 사역의 모조품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9.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하고, 예배의 외부적인 의무들에 열심히 헌신하게 한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성경을 살펴보면 성령의 역사로 참된 은혜를 경험하게 된 성도들이 그런 일들에 열심을 내게 만든다는 점을 풍부하게 증거하고 있다는 점을 열거하고, 이것이 ‘참된 은혜의 본질’이라고 긍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런 일들에 열심을 다하고 시간을 많이 투자한다는 것만으로는 확실하게 은혜가 임했다는 증거는 못된다는 점을 역설한다.

왜냐하면 이런 일들은 전혀 구원하시는 은혜 혹은 참된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서도 번번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10. 사람들이 가진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성경 속에 거짓된 신앙고백자들이나 불신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나 친절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지만 결국 참된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수많은 사례들을 든다. 따라서 오늘날 찬양집회에 열을 올리는 세대들은 주의해서 읽어야 할 표지다.

11. 어떤 감정이 생긴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체험이 신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건전한 상태에 있다고 크게 확신한다는 사실

에드워즈는 자신의 구원이나 영적 상태에 대해 ‘넘치게 확신한다는 사실’만으로 안전하고 충분한 표지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주장한다. 에드워즈는 특히 고자세로 과도하고 격렬하게 확신하는 바리새인 유형의 자기 확신자들을 주목한다. 이런 위선자들이 가질 수 있는 확신이 얼마나 강렬하고, 견고하며, 요지부동일 수 있는지 세세하게 살핀다. 그리고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가질 수 있는 확신과 다른 점들을 대비적으로 밝힌다.

12.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 여부

에드워즈가 마지막 소극적 표지로 제시한 것은 사람들이 밖으로 표현한 감정이 참된 성도들의 마음에 들고 호응을 얻을 만큼 크게 감화력이 있고 기쁨을 준다는 사실 등만으로는 그 신앙 감정의 본질이 어떠한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기본적으로 참된 성도들에게는 누가 참되게 믿는 자들이고, 누가 아닌지를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는 영이 주어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아무도 다른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것을 느낄 수도 없고 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우리들의 눈에는 위선자와 참된 성도가 너무나 유사해 보이기 때문에 판단의 실수를 범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따라서 화려하고 무성하게 핀 꽃이 아니라 열매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역설한다.

# 진정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이라고 뚜렷하게 구별해주는 적극적 표지들

1. 성령의 내주가 있는 사람

참된 성도됨의 첫 번째 표지는 성령의 내주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마음 속에서 ‘영적이고 초자연적이며 신적인 영향과 작용들이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고 살아가는 자들이다. 성령의 일반적인 감화나 영향력이 아니라 특별하고 은혜롭고 구원하는 역사를 체험하게 하시는 성령에 의해 거룩하게 된다.

2. 자기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

자신들이 얻게 될 가상적인 이득이나 받은 또는 받을 혜택이나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탁월성과 영광 때문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길 등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3. 도덕적인 탁월성 때문에 하나님과 신적인 일들을 사랑하는 사람

에드워즈는 성도들이 거룩한 감정을 드러낼 때 주로 신적인 일들 안에 거룩한 속성이 있기 때문에 신적인 일들을 사랑하고, 성도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 자체를 좋아하고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거룩함이나 도덕 완전성 때문에 신적인 일들을 사랑한다고 말한다. 물론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 뿐 아니라 본성적인 완전성도 기뻐한다고 부언한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하나님의 신적 속성을 두 가지로 분류하고, 도덕적 완전성을 강조하는 까닭은 비중생자나 사탄도 하나님의 도덕적 완전성(거룩)을 전혀 알지 못하면서도 본성적 완전성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그 본성이 성령에 의해서 거룩해졌기 때문에 하나님과 신적인 일들의 도덕적 탁월성(거룩)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4. 영적인 이해를 가진 사람

참된 성도는 빛과 열을 함께 갖고 있는 사람이다. 성도가 갖고 있는 영적인 지식은 마음의 새로운 감각 또는 신적인 것의 아름다움과 도덕적 탁월성을 이해하는 감각과 같다. 영적인 지식은 개념적인 지식과는 달리 그 안에 신적인 것의 아름다움과 도덕적 탁월성을 맛보는 새로운 감각이나 새로이 창조된 것을 담고 있다.

에드워즈는 참된 성도들에게는 성령께서 주시는 신적인 미각, 혹은 영혼의 거룩한 미각과 취향이 있다고 말한다. 이 신적인 미각에 의해 참된 성도는 진정으로 영적이고, 거룩한 아름다움이 있는 행동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며, 구별하게 되고, 은혜가 강하고 생명력 있게 임할 때, 어떤 행동들이 옳으며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지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

5. 신앙의 확신을 가진 사람

참된 성도는 신적인 일들에 대한 실재성과 확실성을 합리적이고도 영적으로 확신한다는 것이다. 이 표지는 네 번째 표지와 연관돼 있다. 복음에 있는 위대한 진리를 견고하고, 온전하고, 철저하고, 효과적으로 확신한다.

6. 복음적 겸손을 가진 사람

복음적 겸손을 가진 참된 성도는 그리스도인 자신이 전적인 무능함, 혐오할 만함, 그리고 추악함과 같은 심령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아는 감각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에드워즈는 이러한 복음적 겸손은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원리들을 심으시고 작용케 하시는 성령의 특별한 은혜에서 비롯된 것이며, 신적인 일들에 있는 탁월한 아름다움을 느낄 때 생긴다고 말한다.

그리고 겸손한 참된 성도는 참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심령이 가난하며 상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다. 가장 큰 은혜의 체험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자신 안에 있는 부패함을 더욱 예리하게 의식하기 때문에 더욱 더 겸손해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7. 본성의 변화를 입은 사람

참된 성도는 창조주의 능력에 의해서 영혼의 본성 자체의 변화를 겪은 사람이다. 이것은 회심시에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게 되는 변화다. 참된 성도에게는 죄를 저지를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더 이상 죄들이 인격의 주된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특히 본성의 변화는 오직 신적인 역사에 의해서 가능한 것인데, 영적 깨달음과 감정을 통해 그렇게 하신다. 그리고 영혼의 본성 자체가 바뀌는 과정은 이 지상에서의 삶이 다할 때가지, 또는 영광에 이를 때까지 계속된다고 한다. 따라서 에드워즈는 성도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은혜의 역사를 성경에서는 본성의 계속적인 회심과 쇄신으로 묘사한다고 말한다. 즉, 본성의 변화는 단회적 성격과 점진적 성격을 모두 갖고 있는 것이다.

8.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사람

참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양 같고, 비둘기 같은 심령을 닮아가는 사람, 즉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 온유, 평온함, 용서, 자비의 심령을 자연스럽게 닮아가는 사람이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은 ‘탁월하게 기독교적인 정신’이며, ‘기독교인의 심령에 있는 참되고 뚜렷한 성향’으로 여겨질 수 있다.

에드워즈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기질과 성향들을 가지지 않고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으며, 가장 영광스러운 신앙고백과 특이한 은사들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했다. 참된 성도라면 누구나 자신의 기질과 성향 속에 그리스도를 닮은 정신들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9. 부드러운 마음

성령께서 구원의 은혜로 임하실 때 사람의 돌과 같은 마음을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신다. 참으로 거룩한 성도는 죄나 또는 무엇이든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침범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온 주의 깊음과 신중함과 엄격함을 갖게 된다.

10.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를 이룬 삶

참된 성도는 신앙에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가 있다. 이 땅 위에서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누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성화의 보편성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조화와 균형을 누리게 되며, 그리스도의 형상 전체가 각인돼 있다.

11. 영적인 욕구와 갈망이 더욱 크게 느끼는 사람

거짓된 체험을 하는 위선자들에게는 쉽게 만족하고 더 이상 갈망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반면에 참된 성도는 더 큰 은혜와 사랑을 갈망하면서 산다는 것이 특징이다. 참된 성도는 더 큰 깨달음과 감정들을 체험하면 할수록, 더 성장하기 위해 은혜와 영적인 양식을 더욱 간절히 갈구하는 거지가 되어 적절한 수단들과 방편들을 사용해서 더욱 더 간절하게 은혜와 영적 양식을 추구하게 된다.

12. 실천적인 그리스도인

참된 성도는 열매 맺는 삶을 산다. 성령의 내주하심 때문에 삶과 행위를 통해 열매는 맺는다는 것이다. 에드워즈는 거룩한 실천의 세 가지 특징으로 1) 사람들은 금지의 명령 뿐 아니라 믿음의 적극적인 명령에도 보편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과 2) 자신들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서 힘쓰는 것만큼이나 신앙생활과 하나님에 대한 섬김을 아주 진지하고 부지런하게 행하는 것이어야 하며 3)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전적인 순종의 길과 부지런하고 진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지속해 나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에드워즈는 참된 성도가 실천적으로 열매 맺는 사람을 살 수 있는 이유는 성도 가운데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활동성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기독교적인 실천이라는 열매는 참된 성도들에게서 언제나 나타나는 것이요, 위선자들은 흉내 낼 수 없는 것이라고 에드워즈는 생각했다. 특히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인의 실천’은 은혜의 모든 표지 중의 으뜸이고, 표지 중의 표지이며, 증거 중의 증거이고, 모든 다른 증거들을 인치고, 그것들보다 탁월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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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감정론 (조나단 에드워즈 전집 제1권) – 교보문고

미국 개신교 신앙의 개척자인 조나단 에드워드의 “Religious Affections”은성서에 터잡아서 신앙의 처소를 마음(감정)에 두고서마음과 신앙간의 관계와 진정한 신앙감정의 시금석이 무엇인가를 탐구하고 있다.미국 개신교 신앙과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 읽어야할 필독서인 고전이다.아래는 책의 요지이다.1부. 신앙과 감정시련은 정련된 신앙(참된 신앙)을 낳은데, 이러한 참된 신앙은 신앙감정 즉 “사랑”과 “기쁨”가운데서 확인될 수 있다. 즉 신앙의 처소는 거룩한 감정(Affection, 마음, 정서, 성향, 정신) 이다.2부. 신앙감정이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 판단근거가 될 수 없는 표지들감정의 강도, 몸의 격렬한 반응, 신앙과 신학에 대한 관심, 감정의 자가생산 여부, 성경이 갑자기 떠오름, 사랑의 피상적 표현, 감정의 정도, 감정의 체험순서, 종교적 행위와 의무의 피상적 실천, 찬송을 열심히 부름, 자신의 구원 확신,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3부. 신앙감정이 은혜로운 것임을 뚜렷이 구별해주는 표지들서론; 참과 거짓감정을 확실히 구별하는 표지를 제시하려는 것 아니고, 표지들에 너무 기대서도 안된다.(1) 성령의 내주; 성령과 관련됨, “영적인 지각”이 창조되는데 이는 본성의 새원리이다. 상상,외적인 표상과 관념들은 표지가 될 수 없으며 성령의 함께하심이 증거(성령의 증거,성령의 인,성령의 보증)가 된다(2)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의 본성의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것이 기초(3)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인식; 거룩함에 대한 사랑이 하나님 사랑의 출발점(4) 하나님을 아는 지식; 영적 아름다움을 아는 지식 – 영적 성향과 신적인 미각(5)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 복음의 진리성을 확신하는 특별한 믿음(6) 참된 겸손; 겸손은 하나님께 합당히 여김을 받는 첫째되는 의무. 어린아이와 같이 낮춤(7) 성품의 변화; 지속적인 변화와 쇄신의 과정(8)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감(9) 하나님을 두려워 함; 은혜로운 감정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이는 하나님을 두려워 함에 이른다. 거룩한 두려움이 신앙의 표지이다.(10) 신앙의 균형(11) 하나님을 향한 갈망; 영적인 미각은 하나님을 더 추구한다(12)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거룩한 감정이 행위를 동반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의 내주하심, 신적본질에 근거함, 신적본질의 도덕적 탁월성과 아름다움, 거룩한 영적인 성향에 있다.은혜는 행동으로 이끌게 하며, 은혜의 열매는 거룩한 실천이다.실천이 따르는 거룩한 삶은 최상의 표지로서 행위의 실천을 강조하고 있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 감정론』에 나타난 영적분별

다원화된 현대사회에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올바른 결정을 내리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본 논문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신앙 감정론』을 중심으로 영적분별의 원칙을 다루고자 하였다. 에드워즈는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영적 체험이 일어난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 체험들이 성령으로부터 오는 진정한 영적인 체험인지 그렇지 않은지 분별하는 기준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에드워즈가 성령의 역사라고 단정할 수 없다고 본 12가지 불확실한 표지들과 성령의 역사임이 분명한 12가지 확실한 표지들을 살펴봄으로써 ‘신앙 감정론’이 그의 1734년 설교 『신적이고 영적인 빛』의 기본 개념들을 더욱 발전시켰다는 점을 논증하였다. 마지막으로 『신앙 감정론』의 구조와 정서의 개념을 살펴보면서 에드워즈가 정서란 단지 감정이 아니라 행위의 원천임을 역설하고 있으며, 분별의 대상으로서 정서의 중요성을 인지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는 점을 밝혔다. 그는 감정과 의지를 묶어서 정서라는 개념으로 체계화 하였으며, 영적 경험의 중요성과 더불어 이를 잘 분별하여 기독교적 실천으로까지 확장 또는 승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가 제시한 정서의 개념과 분별의 표지가 현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기준점을 준다고 할 수 있다.

Making a right decision is an important thing for Christian living in the diversified modern world. This paper discusses the principles of spiritual discernment in Jonathan Edwards’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Edwards was concerned about whether a certain spiritual experiences came from the Holy Spirit or not, that is, he was interested in the issues on spiritual discernment during the Great Awakening. Therefore, he suggested the twelve uncertain signs that did not belong to the Holy Spirit. Also he proposed the twelve certain signs that were evidently belong to the Holy Spirit. The concept developed from his preaching, “A Divine and Supernatural Light” in 1734 was also presented in Religious Affections. Finally, exploring the structure and concept of affection in the A Treatise concerning Religious Affections, he asserted that affection was not a feeling but a source of action. In addition, he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affection as the object of discernment. He also systemized the concept of affection by merging a feeling and the will, and urged to extend spiritual experiences into Christian’s practice. The concept of affection and the signs of spiritual discernment in Jonathan Edwards contributed to giving standards for Christians living in the modern world.

서평: 조나단 에드워즈의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감정론』, 정성욱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5), 720pp.

– 이상웅 목사(총신대학교 Ph.D., 산격제일교회 담임목사)

나는 개인적으로 성경책 이외에는 이 책 만큼 많이 읽어 본 책이 없다. 나는 2005년 벽두에 발간된『신앙감정론』(A Treatise concerning the Religious Affections) 초판본을 구입한 이래 지난 4년 동안 여덟 번을 정독했다. 7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고 백 수십쪽에 달하는 요약문을 손수 타이핑 했을 뿐 아니라, 두 어 차례 강독회를 인도했고, 몸담고 있는 신학교에서 매년 가을 학기 마다 강의를 진행해 오기도 했다. 금번에 “조나단 에드워즈의 성령론”을 주제로 총신대학교에서 학위논문을 쓰면서도 이 책을 수도 없이 참조해야만 했다. 18세기 미식민지 시대에 살았던 에드워즈라는 사람의 중요성이 어떠하기에, 그리고 본서가 가지는 가치가 도대체 어떠하기에 그토록 간절한 심정으로 읽고, 소개하고, 자랑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렇게 읽고도 아직도 더 읽고 싶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고 하는 고백을 하게 만드는 매력이 무엇일까? 본서를 애독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다음의 에피소드들을 읽어보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로이드 존스의 동사목사를 지낸 바 있는 이안 머리가 쓴 조나단 에드워즈 전기에 보면 19세기 미국에 있는 한 시골교회의 상황을 소개해 주는 대목이 있다. 새로운 목사가 그 교회에 부임했는데, 시골의 평신도 한 사람이 신학의 대가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가 그 이유를 알아 보았더니, 그 사람은 단지 에드워즈가 쓴 본서를 6번 읽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에드워즈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간결 명료한 입문서를 쓴 스티븐 니콜스는 에드워즈의 신앙 감정론은 그리스도인들이 성경다음으로 씨름해 볼 만한 중요한 독보적인 책자라고 하는 말을 했다 그리고 현재 활동중인 에드워즈 매니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존 파이퍼 목사는 “이 책은 에드워즈의 다른 어떤 책 보다도 더욱 나의 개인적 역사와 개인적 성장의 결합에 도움을 주었습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처럼 중요성이 강조되는 책자인 만큼 한 번 읽고 말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읽다 보니 여덟 번 까지 읽게 된 것이다.

21세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왜 18세기 사람 에드워즈의 저작들을 읽는가? 사람들 마다 이유가 틀릴 것이다. 본인은 1990년에 읽기 시작한 로이드 존스를 통해서 에드워즈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 로이드존스는 The Puritans에 실린 한 강연에서 목회자들이 이런 저런 집회에 참석하러 돌아다니지 말고 제발 집에 들어앉아서 힉맨 편집의 에드워즈 전집을 거듭 거듭 읽으라고 권면했다. 로이드 존스가 최고의 강해설교자라고 믿고 있었던 나로서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추천을 받은 셈이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의 추천에 따라서 이런 저런 번역서들이나 영어글들을 구입하기는 했지만, 집중적으로 읽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1세기에 들어서서 참된 부흥에 대한 관심이 절실해 지면서 부흥, 성령의 사역과 관련된 에드워즈의 글들을 읽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겠지만 최근 우리 한국교계는 온갖 비성경적인 성령운동이나 부흥운동이 난무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교도 영성을 운운하는 모목사가 교회 지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말 저분이 청교도 영성을 제대로 아는가? 정말 에드워즈를 읽은 사람인가 우려의 눈으로 나는 쳐다보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런 목회 현장과 한국 교회 현실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올바른 가치 기준을 확립하기 위해서 다시 붙잡아야 할 것이 바로 성경과 그리고 에드워즈의 저작들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그릇된 부흥운동에 대한 교정제(corrective)로서 에드워즈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성욱 교수가 번역한 『신앙 감정론』은 참된 부흥이 무엇인가, 특히 참된 신앙의 감정적/정서적 체험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이 무엇인가를 명석하고도 풍부하게 천착하고 밝혀낸 명작이다. 에드워즈는 신학적으로 칼빈주의 정통주의 신학자요 미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지성인이면서도, 1730년대, 40년대 뉴잉글랜드를 휩쓸었던 대각성 운동의 지도자로서 성령의 역사의 중심에 있어서 성령을 체험했던 영성가이기도 했다. 따라서 그야말로 무엇이 참된 성령의 역사이며, 어떤 것이 아닌가? 무엇이 참 신앙의 본질인가? 무엇이 참과 거짓된 신앙 체험을 가릴 수 있는 기준인가에 대해서 표준적인 책을 쓸 역량과 은사를 하나님께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에드워즈의 개인적 기록들이나 결심문을 보면 그는 신앙의 각성 초기 부터 참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에 관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기조를 가지고 『신앙의 감정론』,『사랑과 그 열매』,『성령의 사역 분별 방법』,『놀라운 회심 이야기』, 『균형잡힌 부흥론』등을 통해서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논구를 하였다.

에드워즈의『신앙감정론』은 크게 봐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제1부에서 에드워즈가 입증하고자 하는 것은 “참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감정 안에 있다(True religion, in great part, consists in holy affections)”는 교리적 명제로 압축된다(147). 우리 나라말로 정서 혹은 애정이라고도 번역되는 affection을 정성욱 교수는 감정이라고 옮겼다. 에드워즈는 affection의 정의를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이 지닌 더 활기차고 감지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하였다(148).

에드워즈는 제2부에서 신앙 감정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는 표지들, 즉 성령의 역사로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 소극적인 표지 12가지를 들고 있다. 특히 오늘날 한국 교회에는 이런 소극적인 표지들을 가지고서 자신이 성령을 체험했다고 강하게 주장하는 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주의해서 읽어볼 만한 것이다. 1. 신앙 감정이 매우 크게 발휘되거나 아주 높이 고양되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2. 감정이 몸에 큰 영향을 미치는가 하는 것은 그 감정에 참된 믿음의 본질이 있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게 해 주는 표지가 아니다. 3. 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 4. 신앙 감정이 있는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풍부하게 말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 5. 신앙 감정들이 성경 본문을 마음 속에 기억나게 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거룩하고 영적인 것인지 또는 아닌지를 판단할 근거가 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6. 사람들이 체험하는 감정에서 사랑이 (현상적으로) 나타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감정인지 아니면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7. 사람들이 여러 신앙 감정들을 동시에 체험했다는 사실은 그 감정들이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데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8. 양심의 각성과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은 후에 어떤 일정한 순서를 따라 위로의 기쁨이 뒤따른다는 사실로는 그 감정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판단할 수 없다. 9.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신앙적인 일에 시간을 많이 사용하게 하고, 예배의 외부적인 의무들에 열심히 헌신하게 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 감정에 참된 신앙의 본질이 있는지 또는 그렇지 않은지를 알 수 있는 확실한 표지는 아니다. 10. 사람들이 가진 신앙 감정이 그들로 하여금 입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게 한다는 사실로는 그 감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11. 어떤 감정이 생긴 사람들 스스로 자신들의 체험이 신령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건전한 상태에 있다고 크게 확신한다는 사실은 그 감정이 바른 것인지 또는 잘못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표지가 될 수 없다. 12. 사람들이 밖으로 표현한 감정이 참된 성도들의 마음에 들고 호응을 얻을 만큼 크게 감화력이 있고 기쁨은 준다는 사실만으로는 그 신앙 감정의 본질이 어떠한지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없다.

제3부 진정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을 뚜렷이 구별해 주는 표지들. 에드워즈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나는 참된 감정을 알아볼 수 있는 표지로서 다음의 12가지를 들고 있다. <신앙 감정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서 분량상으로 중요하지만, 내용상으로 중요한 부분이다. 1. 참으로 영적이고 은혜로운 감정은 영적인, 초자연적인, 신적인 영향과 작용들이 그들 마음에 역사할 때 생겨나게 된다. 2. 은혜로운 감정이 생기는 가장 객관적인 근거가 신적인 일들이 가장 탁월하며 그 자체로 사랑스럽다는 데 있어야지, 그 일들이 자기 이익과 관련되었다는 데 있어서는 안된다. 3. 참으로 거룩한 감정들은 주로 신적인 일들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탁월성을 사랑하는 데서 비롯된다. 달리 표현하면, 신적인 일들에서 드러나는 도덕적 탁월성이 아름답고 향기롭기 때문에, 신적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거룩한 감정들의 시작이며 원천이다. 4. 은혜로운 감정은 지성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일들을 바르게 이해할 때 생긴다. 5. 은혜로운 감정은 신적인 일들에 대한 실재성과 확실성을 합리적이고도 영적으로 확신할 수 있게 해 준다. 6. 은혜로운 감정은 복음적인 겸손을 동반한다. 7. 은혜스러운 감정을 다른 감정들과 구별하게 해 주는 또 하나의 표지는 은혜로운 감정은 본성의 변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8. 참으로 은혜로운 감정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양 같고, 비둘기 같은 심령과 기질을 가지도록 돕고, 그것을 동반한다는 점에서 거짓되고 기만적인 감정들과 다르다. 다시 말하면, 참으로 은혜로운 감정들은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사랑, 온유, 평온함, 용서, 자비의 심령을 자연스럽게 닮아가게 하고 또 그렇게 되도록 도와준다. 9. 은혜로운 감정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기독교적인 온유한 마음을 동반하고 산출한다. 10. 참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들이 거짓된 감정들과 다른 점 또 한 가지는 그것들이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11. 은혜로운 감정들과 다른 감정들 사이에 차이점을 크고 뚜렷하게 구분해 주는 또 하나의 다른 표지는 은혜로운 감정들이 더 높이 고양되면 고양될 수록, 영적인 만족을 위한 영혼의 영적인 욕구와 갈망이 더욱 커진다는 것이다. 반면에 거짓된 감정들은 그 자체로도 만족해 한다. 12.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들은 그리스도인의 행위로 드러나고 열매를 맺는다. 거룩한 감정들은 그 감정들을 경험하는 주체인 성도에게 영향력과 효력을 미치게 되며, 그 결과로 기독교의 원리와 전체적으로 일치하고, 그 원리에 따라 규정되는 행위는 성도가 일생 동안 실천하고 마땅히 행해야 한다.

나는 본서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는 참된 부흥의 특징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많이 읽혀지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로이드 존스의 권면처럼 정말 부흥을 원한다면, 때가 늦기 전에 이런 책자들을 붙잡고 한 번 씨름해 보기를 권하고 싶다. 혼자서 힘이 든다면 동료들과 더불어서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라도 꼭 한 번 씨름해 보라고 권하고 싶다. 여러 앞선 독자들의 평이 그러하였고, 본인의 독서체험상 그러하였지만, 이러한 시도는 후회하지 않을 독서체험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한 번 맛을 들이면 다시금 찾을 수 밖에 없는 영적 진수성찬을 만끽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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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즈의 신앙감정론 요약

제 1부 감정의 본질과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1. 감정이란 무엇인가

에드워즈는 감정이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을 가진 더 활기차고 감지할 수 있는 활동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기능은 2가지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하나는 영혼이 바라보는 사물을 인정하고 기쁘고 애착을 가지게 되는 방향으로 움직인다면 다른 하나는 정반대로 싫어하고 거절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감정과 격정을 종종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세히 파고들면 차이가 있다. 일반적인 의미로 ‘감정’이라는 말은 ‘격정’이라는 말보다 더 포괄적이다. 감정은 의지와 성향이 모두 왕성하고 생생하게 활동하는 것에 사용한다. 그러나 격정은 본능에 미치는 효과가 더 갑작스럽고 격렬하며 충동적인 상태가 되어 통제가 불가능한 경우에 사용한다. 전자의 경우는 사랑, 갈망, 기쁨, 감사, 희망이 있고 후자에는 미움, 두려움, 분노, 슬픔이 있다.

2. 감정은 참된 신앙을 구성하는 중요 요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으로 진지하고 열정적인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과 우리의 마음이 생동감 있는 신앙 안에 거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마음이 열정적이고 생동감 있는 신앙 안에 거하는 것은 마음에 행한 할례의 참된 열매이며, 생명의 약속이 있는 참된 거듭남의 열매인 것이다. 그런데 모든 감정을 제거해 보라 세상적인 일에서 세상적 감정이 인간의 추구와 행동의 근원인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 문제에서도 종교적 감정이 행동의 근본인 것이다. 감정 없이 교리 지식과 분별할 수 있는 지식만 가진 사람은 진지한 신앙생활이 힘들다.

성경은 믿음을 사랑이라는 감정 즉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백성들과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성경은 하나님과 거룩함에 대한 사모함과 주림과 목마름으로 표현되는 거룩한 갈망을 참된 믿음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언급한다. 성경은 거룩한 기쁨 역시 참된 믿음에서 큰 부분이라고 말씀한다. 그리고 기쁨은 믿음 생활의 중요한 부분으로서 자주 권면되고 진지하게 요구된다. 종교적인 슬픔, 애통함 그리고 상한 마음 역시 참된 믿음의 큰 요소로 자주 언급한다. 이것은 참된 성도를 구별해주는 특질이며 그 특성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라고 자주 언급한다. 참된 믿음이 역사하는 곳에서 자주 언급되는 다른 감정은 특히 하나님께 대한 고마움과 찬양으로 표현되는 감사다. 그리고 성경은 불쌍히 여김이나 자비를 참된 믿음의 크고도 본질적인 요소로 자주 말씀한다. 열정도 참된 성도들에게 있는 믿음의 아주 본질적인 요소로 소개한다. 열정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속을 위해 자신을 주실 때에 마음에 품고 계셨던 위대한 것이라고 묘사한다.

성경은 모든 감정의 원천이며 그 가운데 가장 고귀한 사랑 안에 참된 믿음이 들어있다는 것을 가르친다. 사랑은 여러 감정 가운데 하나만이 아니라, 모든 감정 가운데 으뜸이며 동시에 모든 감정의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탁월한 성도들의 믿음과 경건은 거룩한 감정 안에 있었다. 다윗의 경우 시편에서 늘 주님께 감사하고 찬양하였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다. 그리고 사도 요한은 그의 서신에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정감이 넘치며, 가장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뿜어내고 있다.

하늘에 속한 믿음과 경건은 대부분 감정 안에 있다. 천국에는 의심할 바 없이 참된 믿음과 경건이 있다. 천국을 묘사한 성경에 따르면 믿음과 경건 역시 거룩하고 강렬한 사랑과 기쁨 그리고 이 사랑과 기쁨이 열정적인 분위기가 되도록 표현한 찬양 속에 있다. 성경에서 천국을 묘사하는 것을 보면 천국의 성도들에게 있는 사랑과 기쁨은 넘치도록 크고 활기차서 가장 강하고 가장 생생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말할 수 없이 달콤하게 심령을 움직이고 성도들을 강력하게 자극하고 활력을 주며 사로잡아서 그들을 강렬한 불꽃과 같이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사랑과 기쁨 가운데 있는 천국의 경건과 믿음은 대부분 감정 안에 있다. 의심이 필요 없는 참된 경건은 거의 감정 속에 존재한다.

참된 믿음 또는 거룩한 심령이 대부분 감정 안에 있다는 사실은 성경이 죄를 마음의 완악함과 밀접하게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분명해진다. 성경은 여러 부분에서 이러한 것을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의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그들을 향해 근심하시고 노하셨다(마가복음3:5). 이스라엘 족속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는 바로 그들의 마음에 완악하기 때문이다(에스겔3:7). 남유다의 마지막 왕인 시드기야는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아니한 것 역시 그 마음에 완고하면서 악하기 때문이다(역대하36:13). 사람을 죄의 권세에서 구원하며 그 부패함을 제거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회심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새 마음을 주시는 것으로 묘사한다(에스겔11:19;36:26). 여기서 굳은 마음이라는 말은 감정이 없는 마음을 말한다. 돌과 같은 마음이라고 부르며, 감정이 있어서 쉽게 감동되는 마음과 상반된다. 이와 반대인 부드러운 마음은 신앙감정이 있어서 쉽게 감동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시야왕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열왕기하 22:19에 “네가 듣고 마음이 연하여 여호와 곧 내 앞에서 겸비하여 옷을 찢고 통곡하였으므로 나도 네 말을 들었노라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기술되어 있다. 우리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와 같이 되어야 한다. 부드러운 마음은 어린 아이들이 다른 일들로 쉽게 감동받는 것처럼 영적이고 신적인 일들로 쉽게 감정이 영향을 받고 감동되는 마음을 뜻한다.

성경에서 굳은 마음이란 경건한 감정이 없는 마음을 뜻하며, 성경은 자주 마음의 죄와 부패함을 마음의 강팍함과 연결시킨다. 그 반대로 은혜로운 마음과 거룩함은 경건한 감정을 소유하는 것과 그런 감정에 쉽게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3. 신앙에 있어서 감정의 중요성 적용

이제는 몇 가지의 추론적 결론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 번째는 우리는 모든 신앙감정을 믿을 수 없거나 실체가 없는 것으로 간주해 버리는 사람들의 오류가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다. 당시에 이 땅에 영적 대각성기에 위대한 신앙감정을 가졌던 것처럼 보였던 많은 사람들이 마음의 올바른 성향을 보여주지 못하였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뜨거운 열정을 가졌을 때에 많은 오류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체험한 높이 고양된 감정들이 너무나 빨리 사라져 버린 것 같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너무 쉽게 당연하게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사단의 교묘한 술수를 보게 된다. 사단은 신앙감정이 크게 유행하는 것을 보았고,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감정들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과 그 감정들이 참된 것인지 가짜인지를 구별하고 잘 판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경험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오류는 결국 사람이 감정이 없는 형태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됨으로써 사람들이 모든 신앙감정들을 경멸하고 얕잡아 보게 하는 것은 그들의 심령 속에서 모든 참된 믿음을 제거하는 것이며, 그들의 영혼을 철저하게 파멸시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 속에 있는 고상한 감정들을 경멸하는 사람들은 확실히 자기 안에 고상한 감정들이 있을 수가 없다. 신앙감정이 풍부하지 못한 사람은 확실히 믿음이 약하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신앙감정이 없다는 이유로 경멸하면서도 스스로는 그런 감정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두 번째는 만일 참된 신앙이 대부분 감정에 있다면 감정들을 자극하고 움직이게 하는 경향성을 지닌 수단들을 힘써 구해야 한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연약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서 열정을 불러 일으킬 수는 있지만, 그들의 영혼에 참된 유익을 주지 못하는 수단들도 있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런 방법들이 감정들을 감정을 자극할 수는 있더라도 은혜로 말미암는 감정이나 은혜를 향하는 감정을 자극하지는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에 속한 일들을 바로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 그 방법들을 본성에 적합하고 참된 방식으로 사용한다면, 그 방법들이 은혜로 말미암는 감정을 더 많이 일으키게 되며 그럴수록 그 방편들은 더 나은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만일 참된 믿음의 대부분이 감정 아에 있다는 것이 옳다면, 우리가 믿음에 속한 위대한 일들 때문에 감정이 더 이상 자극받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당혹스러워해야 할 것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적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감정을 주신 목적은 그들에게 영혼의 모든 다른 기능들과 원리들을 주신 목적과 같다. 그 목적은 감정들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큰 목적 즉 사람의 본분에 봉사하게 하시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에 대한 바른 믿음과 신앙을 갖는 일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세상적인 이해관계가 걸린 일 때문에 외면적인 쾌락을 위해, 명예와 명성을 위해, 인간관계를 위해 그들의 소망은 강렬해지고 욕망은 타오르며 그들의 사랑은 불이 붙고 열정은 강렬해진다. 그러나 과연 영원한 세계인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감각하고 심령이 굳어져 있으며, 강퍅해져 있는지! 그들의 열정은 식어있고 그들의 갈망은 미지근하며, 그들의 감사는 얼마나 부족한지! 만일 우리가 우리의 감정을 어떻게든 사용해야 한다면 그리고 쓸모없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면, 감정은 감정의 작용이 가장 합당하게 쏟아야 할 대상을 향해 발휘대고 행사되어야 한다. 복되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우리의 칭찬과 감탄과 사랑의 대상이 될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성육신 하시고, 무한한 사랑이 있으시며, 온유하시고 자비하시고 또 죄인을 위해 죽으신 구속주의 얼굴에서 가장 빛나고 가장 감정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제시되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을 주를 위해서 열정적이고 강렬하게 사랑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 2부 신앙감정이 진정으로 은혜로운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근거가 될 수 없는 표지들

1. 첫 번째 소극적 표지: 감정의 강도

신앙감정이 단지 크게 높아 졌다는 사실은 그 감정들이 반드시 영적이고 은혜로 말미암았을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는 증거가 될 수 없다. 영적인 일들을 판단할 때 확실하고도 오류가 없는 성경은, 매우 높아졌지만 영적이지도 않고 구원에 이르게 하지도 못하는 신앙감정이 있음을 분명히 가르친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인들의 감정이 크게 고조되었지만 그것들이 결국에는 헛것이었으며, 아무런 열매도 맺지 못했다는 사실을 명백히 말씀한다(갈라디아서 4:15). 11절에서 바울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고 말씀한다.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도 그러하다. 홍해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놀라운 일을 행하실 때 그들이 크게 감화되어 찬송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을 잊어버렸다. 그들은 또한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자신의 놀랍게 나타나심을 보고 크게 감동했고, 거룩한 언약을 세울 때 관심을 보이며 ‘여호와의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라고 응답한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잊어버리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예수님의 시대는 어떠한가? 그가 나귀타시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했을 때에는 찬송하며 소리쳤다. 그런데 예수께서 잡히시고 조롱과 가시 면류관의 모습으로 나타나실 때는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소리쳤다.

결국은 신앙감정이 높다고 하더라도 참된 신앙과 완전히 무관할 수 있다는 것은 모든 정통 신학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2. 두 번째 소극적 표지: 몸의 격렬한 반응

모든 감정은 어떤 것이든 어떤 점에서든 또는 어느 정도로든 몸에 영향을 준다. 몸은 심리적 작용에 영향을 받게 되어 있으며, 몸의 체엑 특히 본능은 마음의 변화와 심리적 작용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몸에 미치는 영향들은 그 영향을 초래한 감정들이 영적 감정인지 일반적 감정인지를 판단해 주는 표지가 되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신앙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세상적인 일들에서도 몸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을 종종 보기 때문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하늘에 속한 감정으로 높아졌음을 나타내시려고 영적인 감정과 전혀 맞지 않는 것들과 사단의 교묘한 흔적들 그리고 웅덩이의 더러운 냄새를 끝없이 풍기는 것들을 아름다운 수사적 표현으로 사용하신다고 생각지 않는다.

3. 세 번째 소극적 표지: 신앙과 신학에 대한 관심

사람들이 신앙적인 일들을 매우 유창하고 풍부하게 말하는 것은 좋은 이유 때문일 수도 있고 나쁜 이유 때문일 수도 있다. 한 편으로는 그들의 마음이 거룩한 감정들로 가득 찼기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 편으로는 그들의 마음이 거룩하지 못한 감정들로 가득 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여전히 마음에 쌓은 것을 입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특히 거짓된 감정들은 그 강도가 같다면 참된 감정들보다 더 심하게 겉으로 드러나는 경향이 있다. 왜냐하면 거짓 믿음의 본질이 바로 겉으로 드러내고 과시하기 때문이다. 바리새인이 이 현상들의 증거다.

4. 네 번째 소극적 표지: 감정의 자가 생산 여부

사람이 지정된 은혜의 방편들을 부지런히 향상시키려고 노력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의 구원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고자 기대한다는 것은 타당치 못한 교만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은혜의 수단들을 사용하시지 않으신 채 사람들의 마음에 구원하는 역사를 일으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역시 지나치게 열광주의적인 것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마음 속에 자신들이 만들어 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악한 영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성령이 하신 일이지만 성령의 구원하시는 역사가 아닌 일반적인 역사에서 비롯된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선한 영이나 악한 영이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더라도, 신체가 약하거나 결함이 있는 사람들 또는 뇌가 약하거나 여러 가지 생각과 인상에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은 이상한 생각과 상상을 할 수 있다. 이런 생각과 상상은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사람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기 떄문에 그 원인을 설명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세상적으로 쉽게 영향을 받고 같은 이유로 해서 영적인 인상에서도 쉽게 영향을 받는 것을 보게 된다. 잠자는 사람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5. 다섯 번째 소극적 표지: 성경이 갑자기 떠오름

성경 말씀이 마음속에 떠올려짐으로써 감정이 일어난다는 것 자체는 그 감정이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판단 내릴 수 있는 표지가 아니다. 사단에게는 소리나 글자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떠오르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단에게는 그런 일을 하기에 충분한 전능에 가까운 능력이 있다. 그래서 사단은 사람의 마음속에 성경 말씀을 표현하는 소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리는 사단의 도구인 타락한 이단의 교사들이 성경 말씀을 악용할 수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베드로후서3:16). 우리는 그들이 성경의 모든 부분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고 성스러운 본문이라고 하는 것은 없으며, 그들은 성경 본문을 악용하도록 허용되고 결과적으로는 수많은 영혼을 영원한 멸망에 이르게 한다. 그리고 그들은 그 무기들을 사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다. 마귀가 사람들을 기만하고 멸망시키려고 성경을 악용할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의 어리석음과 부패함 역시 그런 일을 할 수 있게 된다.

6. 여섯 번째 소극적 표시: 사랑의 피상적 표현

사람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것도 매우 강하고 진하게 사랑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사랑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로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많은 유대인들이 분명하게 이 경우에 속한다. 사도 바울은 그가 살던 시대에 그리스도를 가짜로 사랑한 사람들이 많았음을 암시하는 듯,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변함없이’라는 말은 원문에 ‘부패함 없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의 사랑 역시 가짜로 모방될 수 있다. 성경이 분명히 가르치고 있는 것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가 없어도 이런 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7.일곱 번째 소극적 표지: 감정의 정도

거짓된 믿음은 왜곡되고 비정상적인 것이 되기 쉬우며, 참된 믿음 안에 있는 온전함과 조화가 없지만, 매우 다양한 거짓 감정들을 합하면 은혜로운 감정과 닮은 것이 될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은혜로운 모든 감정에는 가짜가 있다는 것이다. 방금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형제들에 대한 사랑도 거짓이 있다.

회심하기 전 상태에서 사람들이 신앙감정과 유사한 모든 감정 가운데 하나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은 많은 유사한 감정을 동시에 함께 체험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자주 그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은 실제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거짓된 감정이 높이 올라갈 때 다른 많은 거짓된 감정들도 함께 체험하는 것 같다.

8. 여덟 번째 소극적 표지: 감정의 체험 순서

구원받은 사람들은 2가지의 매우 다른 상태에 있게 된다. 처음에는 정죄의 상태요 다음에는 칭의와 축복의 상태이다. 사람을 구원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들의 지성과 이성에 맞게 다루신다. 그래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도록 이 두 상태를 체험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일치하며 또한 합당한 듯하다. 먼저 그들은 정죄의 상태 속에 있는 자신들을 감각적으로 체험하여 자신들이 심각한 재난과 두려운 비참함 속에 있다는 것을 체험해야 한다. 이어서 그들은 구원과 행복의 상태를 체험해야 한다. 즉 그들은 먼저 그들이 처해 있는 절대적으로 극심한 빈곤의 상태를 체험하고, 이어서 그리스도의 충분성과 그리스도를 통해 다가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체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위대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려고 나타나시기 전에 그들이 좌절하는 상태가 되어서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에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는 것을 성경은 우리에게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한 편으로 위로와 기쁨이 큰 공포감과 각성을 경험한 후에 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성도들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꼭 회심하는 것이 순서가 확실히 수학 공식처럼 정해지지 않았다. 그것을 지나치게 중요시 한다면 바리새인들의 가식적인 회심이라 할 수 밖에 없다. 참된 회심자들에게서 자주 드러나는 것처럼, 사람들이 죄의 자각과 위로를 어떤 방법과 순서대로 하나씩 경험한다는 것이 사람들이 은혜를 입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들은 우리들의 삶에서 보게 된다.

진정한 회심은 그 일이 일어나는 순서에 있어서가 아니라, 그 일의 영적이고 신적인 본질에서 나타나는 것이 진정한 회심이다.

9. 아홉 번째 소극적 표지: 종교적 행위와 의무의 피상적 실천

우리는 예배를 기쁘고 즐겁게 드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의무적으로 하다못해 어쩛 수 없이 드린다는 생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경우가 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바리새인들이 그러했다. 이것은 하나님보시기에 정말 혐오스러운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외식하는 자를 경계하라고 하시지 않았는가!

경험상, 우리는 거짓된 신앙의 사람들도 신앙적인 일들을 외적으로 많은 열심을 내며 행할 수 있음을 분명히 안다. 그들은 그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되고, 다른 삶은 생각하지를 않는다. 결국엔 은둔자가 되어 생활하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다.

10. 열 번째 소극적 표지: 찬송을 열심히 부름

가장 확실한 한 예를 들자면 출애굽시대 홍해의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라. 그들은 분명히 그런 기적을 경험하고는 주님을 향해 찬송을 불렀다. 그러나 이후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능력의 일들을 잊어버렸다.

소망과 위로 가운데 무가치한 자신에게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푸신 자비하심 때문에 감화되어 이 값없는 은혜를 크게 높이며 찬양한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은혜로운 감정이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 수 있는 표지는 아니다. 사울왕은 자신을 죽이지 않고 살려준 다윗에게 위대한 감정과 존경심으로 찬양하며 높였다. 이방의 느부갓네살 왕과 다리오 왕도 그러했다.

11. 열한 번째 소극적 표시: 자신의 구원 확신

확신이라는 것은 어떤 비상한 경우에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들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라는 권면을 받고, 또한 그들이 어떻게 그리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된다(베드로후서1:5-8). 그리스도가 신자 안에 계신지 아닌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신자에게 어울리지 않으며, 비난을 받을 이유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한다.

위선자에게도 이런 확신은 있는데 그것이 확고해지면 참된 성도들은 종종 의심하는 일에서도 자기가 품은 소망에 대해 의심하지 않게 된다. 첫째로, 그는 마음이 신중해야 하고 기초가 확실해야 한다는 점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모르며 자신이 속고 있다는 두려움이 없다. 둘째로, 위선자는 참된 성도에게 있는 자기 자신의 소경 됨에 대한 지식과 자기 마음의 거짓됨에 대한 지식이 없고 자신의 지식이 천박하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거짓된 깨달음과 감정으로 기만당하는 사람들은 더 쉽게 자신들에게 있는 빛과 지식을 더 크게 자만하게 된다.

셋째로, 마귀는 참된 성도들에게 있는 소망은 공격하지만 위선자들의 소망은 공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그 소망이 있는 사람들에게 큰 위로를 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심령 속에 은혜를 더욱 내리시고, 깊이 품도록 하시고, 삶 속에서 더 엄격하고 부지런하게 만드는 자극제가 되기 때문이다. 넷째로 거짓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성도들이 자신의 부패함을 보는 것 같은 시각이 없다. 반성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위선자들에게 두 부류가 있는데 하나는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신앙이고 다른 하나는 거짓된 깨달음과 고상함에 기만당하는 부류다. 전자는 알마니안주의자들이고 후자는 자기 자신을 폄하하며 대가 없는 은혜를 많이 말한다.

12.열두 번째 소극적 표시 타인에 의한 구원의 확신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은 개연적인 신앙의 모습을 발견 할 때, 그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형제로서 진심으로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성도의 의무이다. 그러나 외형적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사랑을 얻을 수준으로 아름답고 밝아 보일 때는 제일 수준이 높은 사람들 조차도 속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확실하게 신앙을 고백하던 성도라고 인정받던 사람들이 신앙에 떨어져 모든 것을 잃어 버린 일이 교회에서 흔하게 일어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주신 원리와 말씀들에 만족하고 자신들의 원리를 버리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그리고 남이 인정한다고 우쭐하거나 자팩할 거 없다.

제 3부 진정으로 은혜로운 거룩한 감정을 뚜렷이

구별해 주는 표지들

1. 첫 번째 적극적 표지: 성령의 내주

우리는 참된 성도들 또는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룩해진 사람들을 신약 성경에서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영적인 사람인 것은 그들이 가진 고유의 자질이라고 말하며, 이것 때문에 그들은 성화되지 못한 사람들과 구별된다.

하나님의 영은 당신의 영구적으로 거하실 처소인 참된 성도들 안에 거주하신다. 그래서 성도를 자신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로 사는 사람이라고 말한다(갈라디아서2:20). 성도가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살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의 영이 성도 안에 있는 생명의 원리로서 성도와 연합한다.

성도들과 그들에게 있는 미덕들을 영적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는 성도들의 영혼 속에 생명의 원리로 거주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자신의 고유한 본성으로 역사하시고 자신을 전달함으로써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거룩함이라 하는 말은 하나님의 영의 본성인데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영을 성령 또는 거룩한 영이라고 부른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본성의 아름다움과 달콤함이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복음의 축복에 초청받았다고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기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그런 사람들을 초청하셨다고 선포한다는 것과 그것을 선포하시는 하나님이 참되고 거짓말을 하실 수 없다는 것이다.

2. 두 번째 적극적 표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들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본질은 참된 성도에게 있는 영적인 감정에서 제일 중요하고 근본적인 객관적 기초가 된다고 주장한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의 탁월성과 영광 때문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사역 그리고 하나님의 길 등을 사랑해야지, 자신들의 얻게 될 가상적인 이득이나, 받은 또는 받을 혜택이나 자신의 이익에 관련되었기에 사랑해서는 안 된다.

성도들 속에 참되고 거룩한 사랑은 다른 방식으로 생겨난다. 그들은 하나님이 자신들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먼저 알고 나서, 하나님의 사랑스러우심을 보게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랑스러움과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영광을 먼저 경험하고, 그들의 마음이 먼저 이런 생각으로 사로잡히게 된다. 나중에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사랑과 큰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성도의 감정은 하나님과 함께 시작된다.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달콤한 영광을 즐거워하는 성도는 자신을 바라보거나 뒤돌아 볼 시간이 없다, 그리고 교만하거나 태만하는 행동을 결코 하지 않는다.

3. 세 번째 적극적 표지: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한 인식

도덕적으로 탁월하다는 것은 우리들이 흔히 아는 일반적인 형태의 도덕의 의미는 아니다. 거룩함이다. 즉 옳고 그름에 대한 규범이나 척도와 무관하고 거룩하거나 그렇지 못한 자질들과 관계없는 본성 자체로서 본성을 완성하거나 본성에 어울리는 선을 뜻한다. 하나님의 도덕적인 완전성이란 의미는 도덕적 행위자로서 하나님께서 발휘하시는 속성이나 하나님의 마음과 의지가 선하고, 의롭고, 한없이 마땅하고 사랑스러우심을 뜻한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능력, 전지하시고, 영원하시고, 편재하시며, 장엄하고 두려운 위엄을 뜻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성도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다.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이 아름답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모든 속성들을 기뻐하게 된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도덕적 속성은 하나님의 본성적인 속성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무한한 거룩성은 무한한 지혜와 능력과 위대하심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4. 네 번째 적극적 표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거룩함의 아름다움은 하나님의 본체의 아름다움이며, 하나님의 신성 가운데 신성이시며(베스트 오브 베스트)(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선의 무한한 근본이다. 그것이 없이는 하나님 자신은 무한한 악이 될 것이다(만일 그게 가능하다면). 또 그것이 없다면 우리가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모르는 사람은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

믿음에 대한 참된 체험적 지식은 영적 아름다움을 아는 데에서 생긴다. 믿음에 대한 체험적 지식은 그 자체로 새로운 지식의 세계다.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이 주시는 여러 은혜 중에서 어떤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피조물에게 베푸시는 능력이 가장 중요하고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하나님의 가장 위대하신 사역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성도들이 거룩한 자들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고 성도가 누구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적인 세계 전체를 알지 못한다.

영적으로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의 눈이 열려서 성경의 참된 의미 속에 담겨 있고 또 성경이 기록된 이래로 항상 그 안에 담겨있던 영광스러운 일들의 놀라운 영적 탁월성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완전성과 그리스도의 탁월성과 충분성이 사랑스럽고 밝게 드러난 것을 바라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이 탁월하며 합당함을 아는 것이며, 성경의 계명들과 약속들이 보여주는 영적인 축복을 바라보는 것이다.

5. 다섯 번째 적극적 표지: 진리에 대한 깊은 확신

합리적인 확신은 참된 증거에 기초한 확신이다. 또는 확신할 만한 좋은 이유나 정당한 근거를 기초한 확신이다. 복음에 있는 하나님의 탁월성과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느낌으로 간접적으로든 직접적으로든 그런 확신이 생길 때, 비로소 복음에 속한 위대한 일들의 신성과 진실성을 영적으로 확신하게 된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게 되면 복음에 있는 내용이 거룩하다는 확신이 직접 마음에 생긴다. 왜냐하면 이 영광 그 자체가 복음의 신성함을 직접적이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증거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이 영광을 분명하게 보거나 이 초 자연적 감각이 상당할 정도로 생길 때 더욱 그러하다. 복음에 드러난 하나님의 영광을 분명하게 봄으로써, 복음의 신성을 직접적으로 확신하고, 그 확신에 기초하여 판단하는 사람은 이성적으로도 확신하게 된다.

2.이런 신적인 영광에 대한 시각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에 기독교가 진리라는 확신을 더 간접적인 방식이 있음을 말한다. 1) 신적인 영광에 대한 관점은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에 대립하는 마음의 선입견을 제거하고, 증거 되는 말씀에 설득되어 마음이 녹아지게 함으로써 그런 확신을 심어준다. 2) 신적인 영광에 대한 관점은 이성의 장애물을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성을 돕는다. 따라서 사람의 마음은 그 대상들을 더 분명하게 보게 되고, 그 대상들의 상호 관계를 더 분명하게 볼 수 있게 된다.

6. 여섯 번째 적극적 표지: 참된 겸손

복음적인 겸손의 본질은 자신이 엄청나게 죄로 가득 차 있지만 은혜의 다스림 아래에 있는 피조물임을 아는 겸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며 전적으로 경멸스럽고 추악한 존재라고 여기며 자신을 철저하게 낮추는 겸손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이 주변에 더러 있다. 일반적으로 대단한 겸손을 가장해서 나타나지만, 영적인 교만을(아마도 보편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발견하고 구별하게 해 주는 두 가지가 있다.

첫째로, 이런 영적 질병에 걸린 사람은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자신의 신앙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스럽게 그는 자신이 탁월한 성도이며, 성도 가운데 아주 원숙한 사람이고, 자신이 특별히 선하고 위대한 체험을 가진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들게 된다.

둘째로, 사람이 자신의 겸손함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거짓된 체험은 보통 가짜 겸손을 동반한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 바로 거짓된 겸손의 본질이다. 거짓된 신앙감정은 일반적으로 그 감정을 체험한 사람이 자신에 대해 자만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평가한다.

7. 일곱 번째 적극적 표지: 성품의 변화

회심은 본성적 기질을 완전히 뿌리뽑지는 않는다. 회심하기 이전에 어떤 사람이 자신의 내적에 있는 본성 때문에 죄에 계속 빠질 수 있다. 하지만 회심은 심지어 이런 죄들에 대해서도 큰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비록 은혜는 악한 본성적 기질을 완전히 뿌리를 뽑지를 못하지만, 은혜의 강한 능력과 효과로 악한 본성적 기질을 고칠 수 있다. 처음 회심 때 체험하는 영적 깨달음과 감정과 마찬가지로, 회심한 후에 사람들이 체험하게 되는 모든 깨달음과 감정들은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8. 여덟 번째 적극적 표지: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감

진정으로 은혜를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어린 양 같은, 비둘기 같은 정신의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성경이 많이 증거하고 있다. 이것이 본질적이고, 탁월하게 복음의 구원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본질이며, 참된 기독교의 본질적인 정신임을 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의심하지 않고 확실하게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의 감정에는 그런 정신이 속에 있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 정신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의 두려움과 소망, 슬픔과 기쁨, 확신과 열정에 대한 본질적 성향인 것이다.

9 아홉 번째 표지: 하나님을 두려워함

하나님을 두려워함은 죄를 지어서 도망치는 아담이나 하와나 가인 같이 그렇게 피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마음의 부드러움은 우리 주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어린 아이에 비유하심에서 아름답게 예시 되어 있다. 어린 아이는 살만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그의 마음도 부드럽다. 어린 아이의 마음은 쉽게 움직이며, 쉽게 영향을 받으며, 쉽게 굴복한다. 영적인 일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도 그렇다. 이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분의 말씀을 경건하고 받드는 것이다. 무서워하는 것은 죄를 지어 무서워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무서워하며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10. 열 번째 적극적 표지: 신앙의 균형

성도들이 지닌 진정한 거룩한 감정에는 그들이 전인적으로 성화를 이루어 가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조화와 균형이 있다. 그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형상의 전체가 각인되어 있다. 즉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은혜가 성도들 안에 있다. 은혜의 걸맞는 은혜가 있다는 말이다.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운 형상이 있으며, 이 형상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에 걸맞다. 그 형상은 참된 형상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아름다운 균형과 조화가 있다. 특징에 걸맞는 특징이 있고, 지체에 걸맞는 지체가 있다.

하나님의 작품에는 조화와 아름다움이 있다. 하나님꼐서 만드신 자연적인 몸은 많은 지체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모든 지체들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1. 열한 번째 적극적 표지: 하나님을 향한 갈망

참된 성도가 은혜로운 사랑으로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사랑하기를 갈망하게 되며 자신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에 더 괴로워한다. 그가 죄를 미워하면 미워할수록 그는 죄를 더 미워하고 싶어지며, 그에게 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여전히 너무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 때문에 슬퍼한다. 그가 죄를 더 애통해할수록, 죄를 더욱더 미워하고 싶어지며, 그의 심령이 더 상할수록 심령이 더욱더 상하기를 갈망한다. 그가 하나님과 거룩함을 더 목말라하고 더 갈망할수록, 그는 더 갈망하고 하나님을 매일 찾게 된다.그럴수록 은혜의 불꽃이 타 올라서 온 몸의 은혜가 흘러 넘치게 한다.

12. 열두 번째 적극적 표지: 행위로 나타나는 신앙

이 말은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세상에서 성도의 행위나 실천은 기독교의 원리에 전체적으로 일치해야 하고, 그 원리에 따라 규정되어야 한다. 둘째, 성도는 그런 거룩한 행위를 모든 것들보다 더 중요한 일로 삼아야 한다. 셋째, 성도는 이 땅에서 그의 삶이 끝날 때까지 이 일을 지속해야 한다.

거룩함에는 3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전적으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은 필수적인 사항이다. 중요한 사실은 어떤 사람이 참으로 전적으로 순종적이라는 평가르 받기 위해서는 그의 순종은 금지의 명령에만 집중해서는 안 된다.

두 번째는 사람들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헌신하고 있는 일과 같이 그리고 자신들의 생계를 꾸려 가기 위한 사업과 같이, 신앙생활과 하나님에 대한 섬김을 아주 진지하고 부지런하게 행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세 번째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은 그가 만나게 되는 온갖 시련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마지막까지 전적인 순종의 길과 부지런하고 진지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지속해 나간다. 참된 성도들은 신앙생활과 하나님의 대한 섬김에 진저리가 날 정도까지는 결코 타락할 수 없다. 즉 더 이상 전적으로 순종할 수 없을 정도로는 결코 변절되지 않는다.

은혜로운 감정은 그리스도인의 행에서 드러나고 열매를 맺는다. 은혜로운 감정들이 그리스도인의 행함으로 행사되고 효력을 발휘하는 이유는 은혜로운 감정들의 가장 주된 객관적 근거가 신적인 일들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초월적으로 탁월하고 사랑스러운 본질에 있는 것이다.

은혜로운 감정들이 거룩하게 행동하게 하는 이유는 모든 거룩한 감정의 토대인 신적인 일들에서 보이는 탁월성 즉 신령한 일들이 갖고 있는 도덕적 탁월성 또는 아름다운 거룩함에 있는 듯하다.

은혜로운 감정들이 실천적인 경향성과 결과를 갖는 것은, 감정들이 신적인 일들이 실재하고 확실하다는 것을 온전히 확신하기 때문이다. 본성이 변하지 않고서는 사람의 행위는 온전히 변하지 않는다.

거룩한 감정들이 이와 같이 실천적으로 행하고 열매를 맺는 또 다른 이유는 거룩한 감정들이 겸손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겸손한 마음은 순복적이고 복종적이며, 순종적인 마음이다.

은혜로운 감정들이 엄격하고 전반적이며 지속적인 순종을 동반하게 하는 이유는 온유함 때문이기도 하다. 온유한 심령은 참된 성도들의 감정에서 드러나며 도덕적인 악의 존재와 악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성도들로 하여금 마음 속에 빠르고 생생하게 고통을 느끼게 한다.

은혜로운 감정들에서 흘러나오는 그리스도인의 행위가 전반적이고 지속적이며 끈기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감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런 감정에서 흘러 나오는 행위는 아름다운 조화와 균형을 이루고 있다.

거룩한 감정들이 거룩한 행위를 향한 진지함과 행동과 헌신과 인내를 통해 표현되고 드러내는 이유는 신앙생활에서 더 큰 성취를 얻고자 하는 영적 욕구와 갈망 때문이다. 이러한 마음은 참된 감정을 동반하며 퇴보하지 않고 점점 증가한다.

우리의 삶은 비타민C 같다고 할 수 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은혜를 갈망하며 그 분의 은혜를 사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점점 신앙이 퇴화하고 죄를 짓는 옛날의 본성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늘 주님을 사모하고 은혜를 나누게 되면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에드워즈는 말한다 “단 15분만이라도 하나님의 달콤한 은혜를 맛보는 것이 내겐 유익하다.”

우리도 역시 이런 주님이 주신 달콤함을 느끼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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