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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 시141:1-10
1.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4. 내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어 죄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악을 행하지 말게 하시며 그들의 진수성찬을 먹지 말게 하소서
5.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
6. 그들의 재판관들이 바위 곁에 내려 던져졌도다 내 말이 달므로 무리가 들으리로다
7. 사람이 밭 갈아 흙을 부스러뜨림 같이 우리의 해골이 스올 입구에 흩어졌도다
8. 주 여호와여 내 눈이 주께 향하며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 영혼을 빈궁한 대로 버려 두지 마옵소서
9. 나를 지키사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놓은 올무와 악을 행하는 자들의 함정에서 벗어나게 하옵소서
10. 악인은 자기 그물에 걸리게 하시고 나만은 온전히 면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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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걷다’라는 의미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려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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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9/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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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상에서 천상의 삶을 살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에녹에 대한 특별한 기록은 없습니다. 다만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고 기록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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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6/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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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하는 기쁨 – 워싱턴예수사랑교회

창세기에 5장 22절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 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삶의 현장가운데 에녹은 하나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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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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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하십니까? – 두란노서원

하나님과 동행하지 못한 삶으로 인하여 이 땅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쓰러지고, 넘어지고, 절망하는 가운데 힘들어하고 있다. 이 책이 그러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 조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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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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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설교 – mission –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장 21-24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장 21-24절) < 가수 셀린 디온과 제니 린드 > 몇 년 전에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온(Celine Dion)이 갑자기 가수활동 중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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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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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히11:5-6) – 다음블로그

2019.1.6. 1.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히11;5-6 우리는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성경의 가장 핵심 진리 5가지를 살펴 보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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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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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블 메세지 – 주와 동행하는 삶의 의미 주님을 따라가는 …

자식에 대한 사랑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길로 나아갔던 아브라함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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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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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동행하는 삶(창세기 5:21-23) / 설교원고(2018-12-30) 송구 …

주와 동행하는 삶을 ‘코람 데오(Coram Deo)’ 라고 합니다. ‘코람 데오(Coram Deo)’는 ‘하나님 앞에서(Before God)’ 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주와 동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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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ykcn.org

Date Published: 3/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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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동행하는 자의 기도 유기성목사 : 갓피플TV [공식제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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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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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 > 설교자료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21-24)’하나님과 함께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주일에 경건하게 지내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세탁을 하는 월요일에도, 사무실에서 일하는 화요일에도, 친구를 만나는 수요일에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경건한 걸음을 유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렌스는 농부의 자손으로서, 수도원에서 일하는 무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수도원에서 접시를 닦고 허드렛일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그가 접시를 닦고 있을 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며 여기에도 계신다!’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생각이 점점 강하게 그를 붙잡아 마침내 하나님의 현존을 체험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그는 변화되고 정화되어 당시대의 위대하고 경건한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항상 하나님의 ‘옆’에 혹은 ‘앞’에 계신다는 생각으로 말하고 행동합니까?죽음을 경험하지 않은 두 사람이 성경에 기록되었습니다. 엘리야와 오늘 본문의 에녹입니다. 성경은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륻 데려가시므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으므로 죽음을 경험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살기도 쉽지 않지만 죽기도 쉽지 않습니다. 죽음의 고개를 넘는다는 것은 두렵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때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입니다. 가치 있고 차원 높은 성숙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습니다. 사악한 시대에 경건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에녹은 평범하고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도 많은 고통과 문제들이 있었고 갈등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고 하나님이 동행하시었기에 그 모든 것으로부터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에녹의 개인적인 우수성이라기 보다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성공과 승리의 비결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대항하면서, 하나님을 떠나서 성공하려고 하는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도전과 회개를 촉구하는 음성으로 들려집니다. 이 시대에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1. 순종의 삶본문 22절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동행하며’의 히브리어 ‘할라크’는 ‘산책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인격적 교제를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죄악이 관영한 가운데에서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그의 뜻을 좇아 산 자로는 또한 노아가 있었는데 그 역시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이 걷다’라는 의미입니다. 에녹이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닮으려 노력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지속적인 순종으로 경건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동행하는 삶이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하나님만 기쁘게 하는 삶이며 자신의 욕망이나 의지보다 하나님의 뜻을 받들며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전념하는 삶입니다. 에녹은 이러한 순종의 삶을 300년 동안 유지했던 것입니다. 3일, 3달, 3년, 30년이 아니라 300년 동안, 하나님 앞에 가는 순간까지 지속적인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순종이 사건, 일, 조건, 기분, 감정, 상황에 따라서 좌우되는 것과는 달리 300년 동안 한결같이 순종의 삶을 살았던 에녹의 삶은 우리에게 큰 감동과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미국의 정치가요 웅변가였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이 남긴 글입니다.”나는 수박 씨의 힘을 관찰해 본 적이 있습니다. 수박 씨에는 흙을 밀어젖히고 나오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보다 20만 배나 더 무거운 것을 뚫고 나옵니다. 수박 씨가 어떻게 이런 힘을 내는지 알 수 없습니다.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색을 껍질 바깥으로 우러나오게 하고, 그 안쪽에 하얀 껍질, 그 안쪽에 다시 검은 씨가 촘촘히 박힌 붉은 속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습니다. 그 하나하나의 씨는 또다시 차례차례 자기 무게의 20만 배를 뚫고 나올 것입니다. 이 수박 씨의 신비를 설명할 수 있다면, 나도 신의 신비를 설명해 주겠습니다.”이 글을 읽으면서 생명 씨앗인 말씀의 가능성을 더욱 확고히 깨달았습니다. 말씀은 씨앗입니다. 수박 씨와는 비교할 수 없는 능력이 말씀의 씨앗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마귀의 유혹을 이깁니다. 이 말씀을 받으면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을 많이 부어 주셔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말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을 받기 원한다면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열려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하늘에서 소낙비가 내린다 할지라도 그릇이 닫혀 있으면 빗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열린 마음이란 순종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의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받는다는 것은 순종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을 받고 순종할 때 우리 삶은 변화됩니다.에녹의 300년 동안, 평생 순종의 삶을 우리도 배웁시다. 실천합시다. 하나님을 거역, 불순종, 기분과 감정에 치우치는 삶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못됩니다. 아브라함과 선지자들, 사도들과 전도자들이 목숨을 다바쳐 죽기까지 순종의 삶을 실천했던 것처럼 제사보다 나은 순종의 삶을 삽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은혜와 축복입니다. 아름다움과 향기입니다. 거역과 배반이 난무하는 세상이지만 에녹처럼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2. 믿음의 삶히브리서 11장 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히브리서 기자는 에녹에 관하여 평가하기를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바로 변함 없는 믿음의 삶입니다. 사실 300년이란 세월은 그 당시 수명에 비하면 그리 길지 않은 세월이지만 우리로서는 대단히 긴 시간입니다. 에녹이 특별히 좋은 조건에서 신앙 생활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자녀를 낳고 가정 생활을 영위해야 했던 평범한 생활인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그 긴 시간을 오직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친구 삼으시고 피곤한 인생의 황혼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집으로 옮기셨던 것입니다. 자신의 바쁜 일상을 합리화하여 믿음생활을 제대로 못하는 우리들에게 에녹의 신앙은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믿음이 없거나 부족하면 하나님을 떠나거나 관계가 깨집니다. 동행의 삶이 아닌 대립과 대항의 삶을 살게 됩니다. 거기에는 평화와 행복이 아닌 불화와 불행의 삶이 시작됩니다. 믿음은 금보다 더 귀합니다. 영원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최고의 축복입니다.알렉산더 맥클래런(Alexander Maclaren) 박사는 당대의 가장 명쾌한 성경 주석가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가 그렇게 훌륭한 신학자가 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은 특기할만한 사실입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박사님을 이렇게 성공시킨 주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맥클래런 박사는 자신에게 ‘성공’이라는 말을 갖다 붙인 데 대해 먼저 유감을 표기한 뒤, 아직까지 한번도 어겨 본 적이 없는 자신의 한 가지 습관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 습관이란 하루에 한 시간씩 ‘오로지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정해 놓은 그 한 시간은 아침 9시부터 10시까지였습니다. 맥클래런 박사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어느 목사는 그 시간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했습니다.”때때로 저는 박사님과 하나님이 만나는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답니다. 하지만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가지 않았어요. 그분은 낡을 대로 낡은 자신의 팔걸이 의자에 앉아 커다란 성경책을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있었지요. 그리고 그 한 시간 동안은 설교를 위해 성경을 읽는다거나, 공부하는 학생 입장으로 읽는 것을 용납지 않았어요. 오로지 멀리 출장간 아버지한테서 온 편지를 읽는 어린아이처럼, 보고픈 연인으로부터 온 편지를 익는 청년처럼 성경을 읽고 또 읽었답니다.”우리는 신앙의 위인들을 성경에서 만납니다. 어떤 교리나 설득보다도 확실한 증거가 되며 믿음이 흔들릴 때 최후까지 지켜주는 반석과 버팀목이 됩니다. 온전한 예배를 무엇인지 가르쳐 준 아벨, 일생 동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동행한 에녹, 세상의 이목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었던 노아, 부름받은 바로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옮겼던 아브라함,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한 사라, 그리고 이삭, 야곱, 요셉, 모세… 이렇게 신앙의 선진들을 되새기다 보면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합니다. 이 모든 이들의 삶을 진두 지휘하시는 연출자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이들 이름에 이어 여러분의 이름 ○○○가 꼭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후손들의 이름이 기록되기를 바랍니다. 믿음 없으면 불행이고 지옥입니다. 병들고 가난한 삶도 힘드는데 하물며 지옥의 삶이랴! 더욱 믿음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에녹처럼 믿음의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하시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 드립니다.3. 전파의 삶유다서 1장 14-15절 “아담의 칠 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과 재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재림시에 천사들과 함께 임하셔서 불경건한 자들의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거짓 교사들의 행위와 말은 주되신 그리스도를 거스리고 모욕하는 것이기에 반드시 정죄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에녹에 관한 유다서의 묘사는 사악한 당대 사람의 죄를 책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파했던 사람으로서의 묘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적극적으로는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며 죄에 대하여 꾸짖는 삶입니다. 에녹의 이러한 말씀 전파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라’는 목표를 내걸고 평생 말씀 전파의 삶을 살았던 바울의 삶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행의 삶이었습니다. 에녹과 같은 뜨거운 마음으로 하나님을 모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말씀을 전파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면 전도합니다’라는 빌 하이벨스 목사의 책처럼 가족과 이웃과 민족을 사랑하면 전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면 반드시 믿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말씀을 전파할 때 우리의 믿음이 강해지고 기도하게 되고 영혼을 사랑하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됩니다.한 사람이 유럽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하는 말이라고는, 런던의 호텔 방 창문이 열리지 않았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는 런던, 파리, 로마 등에 감동하지 못했습니다. 굳게 닫힌 창문 하나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단점과 싫은 점에 몰두해서 삶의 빛과 즐거움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굳게 닫힌 창문에 집착하다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악한 말을 하게 됩니다. 악한 말은 분열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서로 악한 말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에 은혜의 양념으로 맛을 내야 합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는 소망입니다. 우리말은 소망으로 간을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말에서 소망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자주 우리는 대화에서 은혜의 양념을 빠뜨려 다른 사람이 정죄받고 있다고 느끼게 합니다. 어쩌면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나는 말재주가 없어. 그건 말을 잘하는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물론 영적 은사는 다 다르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 자연스럽게 그런 말이 흘러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당신이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르게 하는 데 얼마나 우선순위를 두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매일의 우선순위로 두지 않으면, 은혜로운 말을 하는 데 진전이 없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도움을 얻고, 그 주제에 대한 유익한 글들을 읽기도 하면서 그것을 우선순위로 삼아야 합니다.여러분들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까? 부모와 가족, 친구와 이웃 사람들에게 이끌리어서 교회에 나오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를 ‘관계전도’라고 말합니다. 여러분들이 알고 계신 분들에게 예수 믿자고, 교회 다녀보자고 간절하게 권해 봅시다. 반드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패를 계획하지 맙시다. 전도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들으면 언젠가는 믿게 됩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였던 것처럼 이제 입을 열어 복음을 전파합시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고 말씀의 권세를 부어 주십니다. 이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은 없습니다. 생명을 구원하는 일에 모든 성도와 교회가 힘써야 하고 여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제자 만드는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사랑하는 여러분!오늘은 주일이면서 구정 명절입니다. 에녹처럼 순종과 믿음과 전파의 삶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계속해서 사시기를 축원 드립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

몇 해 전 어느 날 둘째 아이의 생일이었습니다. 여느 해 같았으면 케익 사서 축하의 노래 부르고, 함께 기도하고, 선물을 주는 것으로 생일축하를 간단하게 마무리 하였을텐데 당시 전도서의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마음이 있어서 제가 바쁜 중에 시간을 좀 내었습니다. 그리고 선물을 주는 대신 둘째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비록 짧은 몇 시간이었지만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둘째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오늘 행복했니?” “지금까지 그 어느 생일파티보다 행복하고 정말 기뻤어요. 아빠, 정말 감사해요.” 해맑은 웃음으로 대답하는 둘째의 모습에 흐뭇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겹쳤습니다. 그리고 함께 했던 시간이 얼마나 감사했던지요.

그러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시겠구나.”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주일예배도 기뻐하시고, 헌신도 기뻐하시고, 충성도 기뻐하시지만 우리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믿음장인 히브리서 11장에서 에녹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5절)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습니다. 에녹의 무엇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까요? 창세기에 5장 22절에서 이렇게 답합니다.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 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지극히 일상적인 평범한 삶의 현장가운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대단한 업적을 남긴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오늘하루의 삶을 하나님과 동행하였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를 원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했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한 주간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과 함께 생각하고, 하나님과 함께 계획하고, 하나님과 함께 일하고….. 우리 모두 하나님과 동행하는 에녹 같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두 손모아 소망해 봅니다.

사랑합니다. 다시 오실 우리 주님과 주님의 보혈로 영원한 가족된 여러분으로 인해 행복한 목사 드립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장 21-24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창 5장 21-24절)

< 가수 셀린 디온과 제니 린드 >

몇 년 전에 영화 타이타닉의 주제가를 부른 셀린 디온(Celine Dion)이 갑자기 가수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그때 기자 회견에서 그녀는 말했습니다. “후두암으로 투병 중인 남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저입니다. 이제 남편에게 진 사랑의 빚을 제가 갚을 차례입니다.” 그때 남편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돈과 인기를 포기한 그녀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이 잇습니다. 지금부터 약 2백 년 전에 ‘스웨덴의 나이팅게일’로 불리던 유명한 제니 린드(Jenny Lind)라는 가수가 있었습니다. 그녀가 부른 노래 중에서 우리가 잘 아는 ‘즐거운 나의 집(Home, Sweet Home)’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녀도 가수로서 정상에 있을 때 갑자기 가수활동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사람들은 인기의 달콤함을 아는 그녀가 곧 무대로 복귀할 줄 알았지만 무대를 떠난 뒤 완전히 소식이 끊겼습니다. 몇 년 후 한 친구가 린드를 찾아 물었습니다. “제니! 무대가 그립지 않아?” 그때 그녀는 성경을 가리키며 “돈과 인기 때문에 이 신비를 잠시 잊고 있었지만 이제는 잊지 못해. 무대 위의 기쁨은 잠깐일 뿐이야.”하고 말하며 무대로 복귀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돈과 인기는 잠깐 왔다가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것들과 신앙을 바꾸고, 하나님을 바꾸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어제 김사무엘 선교사님 천국 환송예배에서 홍정길 목사님이 설교 중에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일은 생명을 투자하고 돈을 버는 일입니다. 생명을 투자해서 우리는 생명을 벌어야 합니다.” 우리는 돈이 주는 기쁨으로 살지 말고, 생명을 얻은 기쁨, 생명을 주는 기쁨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떤 분은 믿는 사람에게 말합니다. “무슨 재미로 사나?” 그러면 믿는 우리들은 반문하고 싶습니다. “무슨 기쁨으로 사나?” 재미는 얼마 안 가서 약효가 끝나고, 약효가 끝나면 곧 공허함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서 주어지는 기쁨은 영원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위대한 인생은 돈과 인기와 권력이 많은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인생입니다.

< 3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던 에녹 >

오늘 본문에는 아담의 7대 손 에녹이 나옵니다. 에녹은 65세에 아들을 낳고 그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다가 죽지 않고 승천했습니다. 성경에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한 분은 오직 예수님과 엘리야, 그리고 에녹뿐입니다. 얼마나 복된 존재입니까? 에녹은 당시 65세에 낳은 아들의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습니다. ‘므두셀라’란 이름의 뜻은 “그가 죽으면 보낸다!”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므두셀라가 죽으면 홍수의 심판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홍수 심판은 므두셀라가 969세에 죽자마자 바로 그해에 일어났습니다.

그에게는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도 있었고, 아들의 이름도 심판과 관련해서 지을 정도로 사람들에게 심판을 일깨우는 복음 전파에 힘썼고, 또한 그의 아들이 역사상 최대의 장수의 축복을 얻을 것을 볼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 잘 말해줍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과연 어떠한 것입니까? 이 시간에는 네 가지만 여러분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삶

이 세상에서 축복 중에 축복은 예수님 믿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진실하게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가장 복된 존재로 삼아주실 것입니다. 룻은 모압 여자였지만 “하나님을 믿으면 축복 받는다”는 진리를 깨닫고 남편이 죽자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 베들레헴 땅으로 가서 하나님을 섬겼기에 결국 그녀는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귀한 여인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처럼 지금 우리의 처지가 어떠해도 상관없습니다. 왕따라도, 거지라도, 무능력자라도, 마약 중독자라도, 창녀라도, 사기꾼이라도 예수님 붙드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고, 축복해주십니다. 팔은 안으로 굽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 안으로 들어온 사람에게 정을 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끝까지 지켜주시고, 환영해주십니다. 사람도 같은 피를 나누고, 출신이 같으면 얼마나 정이 가는지 모릅니다.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를 보면 반가워한다고 합니다. 동창을 만나면 그렇게 반갑고,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면 더 마음이 가고 더 도와주려고 합니다. 그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한 강도가 어느 집에 들어가 주인에게 칼을 들이댔습니다. “일어나! 손들어!” 주인이 손을 들지 않고 덜덜 떨고만 있었습니다. “손들어! 빨리 들어!” 주인이 말했습니다. “선생님, 관절염이 너무 심해서 팔을 들 수 없습니다.” “관절염요?” “예,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강도가 말했습니다. “아저씨, 고생 많겠네요. 저도 관절염으로 무척 고생했어요. 케토톱 한번 써보세요. 그리고 찜질방에 자주 가시고, 육류보다는 생선류를 많이 드세요. 특히 꽁치나 굴이 좋아요.”

같은 처지에 있으면 그처럼 정이 가는 법입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예수의 피로 하나가 된 우리들에게 얼마나 정을 쏟으시겠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악한 죄를 지어도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으면 하나님은 혼내시기는 해도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예수님 전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사명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하는 일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사는 삶

동행이 무엇입니까? 앞서가는 것도 아니고, 뒤쳐지는 것도 아니고, 역행하는 것은 더더욱 동행이 아닙니다. 동행이란 한 걸음 한 걸음 같이 가는 것입니다. 그러러면 방향도 같고 속도도 같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려면 항상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따르고,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며 내 뜻과 기분을 앞세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미국의 아폴로 15호의 조종사였던 어윈 박사는 미국 남침례교 교회의 집사였는데, 어느 날 주일에 비행 훈련을 하다가 훈련 중 척추를 다쳐 14개월 동안 병상에 누워있게 되었습니다. 병상에서 그는 기도하다가 부상의 원인에 대한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네가 인생을 지나치게 과속한 것이 문제였다.”

우리는 너무 과속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추월하고 나가면 반드시 실망할 것입니다. 답답해도 하나님이 있게 하신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기도 몇 개월 하고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고, 전도 몇 일 하고 열매가 없다고 포기하고, 어려움이 있다고 금방 헌신의 자리에서 물러서거나 믿음의 절개를 꺽지 말고 묵묵히 은혜의 자리를 지키고, 사명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은혜 체험을 하겠다고 산에 가지만 꼭 산에 가야 은혜 받는 특별한 길이 열리는 것이 아닙니다. 특별한 어떤 것은 없어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며 살고, 하나님의 시간표를 인정하며 산다면 브라더 로렌스처럼 부엌 아궁이에서도, 무디처럼 구둣방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너무 자극적인 것을 찾지 마십시오. 너무 신기한 것을 찾아다니지 마십시오. 꾸준한 것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평범한 것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삶이 더 아름다운 것입니다. 지난 주 목요일 새벽에 기도하는 데 이런 생각을 하나님께서 주셨습니다. “이한규 목사야! 너는 갑자기 등장하는 혜성이 되려고 하지 말고, 꾸준히 빛을 비춰주는 태양이 되려고 하라!”

사진으로 본 혜성의 꼬리를 보십시오. 얼마나 신비합니까? 그처럼 혜성이 신비감을 주긴 하지만 혜성에는 은혜가 없습니다. 그러나 매일 떠오르는 평범한 태양에는 무진장한 은혜가 있습니다. 혜성은 없어도 살지만 태양이 없으면 살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평범한 것에 은혜가 있고 행복의 조건이 다 있습니다. 한번 휩쓸고 지나가는 바람에는 행복이 없습니다. 지금 평범하게 사는 것을 감사하십시오. 그 안에 행복의 조건이 다 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려고 해보십시오. 바로 그때 행복이 찾아옵니다. 가끔 보면 인터넷을 통해 알게 된 분들 중에 선교사님들을 위해서 소리 없이 물질적인 헌신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감사 표현을 하면 하나같이 “제가 감사합니다. 드릴 수 있어서 오히려 기쁩니다”라고 반응을 합니다. 그 모습 속에서 행복함이 물씬 풍겨납니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평범한 일상 중에서도 많이 발굴해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행복의 보석입니다.

사람은 대개 가진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대개 사라진 후에야 빛이 납니다. 그러므로 지금 행복한 줄 모르면 행복이 무엇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행복이 떠나게 됩니다. 그러나 지금 행복한 줄 알면 하나님께서는 그 행복을 계속 우리 곁에 머물게 하시면서 수많은 축복도 부산물로 주실 것입니다.

3. 성경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일 성경 읽기’입니다. 매일 성경 읽기는 신앙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표식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발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삶이 울적하고, 깊은 상처로 고민할 때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얼마나 우리에게 힘이 됩니까? 어느새 소망이 생기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성경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미국의 체신부 장관을 지낸 워너메이커는 백화점 왕으로 십의 일조가 아닌 십의 구조를 바쳤다고 합니다. 그는 통찰력이 있어서 어디에 투자를 하던지 실패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신문 기자가 와서 그에게 물었습니다. “워너메이커씨, 당신은 투자할 때마다 늘 성공하는데, 당신의 생애에서 어떤 투자가 가장 성공적인 투자였습니까?”

웨너메이커가 말했습니다. “열두 살 때 투자한 2불 50센트가 생애 최고의 투자였습니다.” “어디에 투자했는데요?” “그때 2불 50센트를 주고 성경을 샀는데, 그 성경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그만큼 성경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고, 가까이 하고, 성경 말씀을 하나님 말씀으로 여기고 읽는다면 우리에게는 무수한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가 주어질 것입니다.

매일 성경 읽으면서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성경 말씀이 내게 주는 감동대로 실천하며 살려고 해 보십시오. 그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박정희 대통령 때 박정희 대통령이 추풍령을 지나가다가 돌 채취로 깎인 민둥산을 보고 “보기에 별로 좋지 않구만!” 하니까 그 다음날 군수, 도지사 등이 모두 발벗고 나서서 초록색 페인트칠을 했다고 합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의 말 한 마디도 출세길이 달린 줄 알고 그렇게 중시하는데, 만약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그렇게 중시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출세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말씀에 순종해서 축복 받은 예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꽤 오래 전에 미아리에 어떤 집사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사업을 할 때마다 망했는데 어느 날 사업을 시작하면서 다짐했습니다. “이번에는 망할 것을 각오하고 한번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보자.” 그리고 600만원을 꾸어서 십일조 60만원을 떼어 바치고 54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십일조가 필요 없는데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후 조금씩 사업이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미 8군과 초대형 납품계약을 상의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그 날이 주일이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했지만 결국 교회로 갔습니다. 미련은 남아 있었지만 예배 중에 하나님께서 기쁨과 평안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니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상대방의 말했습니다. “당신 돌았소?” 그 집사님이 대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일이 중요하긴 하지만 예배는 빠질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말했습니다. “정말 당신 같은 사람 처음 봅니다. 그런데 나도 돌은 것 같지만 당신과 같은 사람과 계약하고 싶소.” 그래서 다음날 만나서 계약을 하게 되었고, 그후 물질적으로 큰 축복을 받아 교회를 위해 더욱 헌신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생각 하나, 마음씀씀이 하나, 몸짓 하나, 숨결 하나까지 다 기억하시고 만 배의 은혜로 채워주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삶

우리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다급한 일을 만나면 다른 방법을 찾고, 다른 사람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감정 따라, 기분 따라, 상황 따라 믿음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리고 일이 잘 될 때는 어느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기도를 게을리 하고, 자신이 높아지는 경우도 참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바로 거기에 성공의 길, 행복의 길, 축복의 길이 다 있습니다.

약 20년 전에 서울에 한 재력가가 살고 있었습니다. 부인은 미스코리아 출신이었고, 궁궐 같은 집에서 외제 승용차 몇 대를 굴리며 살았고, 구두가 200켤레, 옷이 300벌, 가정부도 몇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삶이 늘 공허했습니다. 그러다가 남편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여자들은 예쁘고 늘씬한 미스코리아와 살면서 바람 피우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남자들은 다 이해합니다. 연애할 때나 신혼 때는 아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울렁거리지만 몇 년 지나서도 마음이 울렁거리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문제입니다. 맨 날, 마음이 울렁거리면 그 남자는 집안 다 말아먹고, 사업 다 말아먹을 것입니다. 그것은 무책임한 남자라는 증거밖에는 안됩니다. 세월이 지나 울렁거리는 마음은 사라져도 책임감과 헌신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됩니다.

그런데 어떤 아내들은 계속 남편이 울렁거리는 사랑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런 분들이 꼭 하는 말이 있습니다. “당신! 변했어!”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변해야 합니다. 만약 제가 변하지 않고 마음이 울렁거리기만 한다면 어떻게 설교 준비를 제대로 하겠습니까? 사람에게 자연적인 변화나 좋은 변화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미스코리아라도 결혼해서 살면 남자는 아내에 대한 집착이 줄어듭니다. 성숙한 남편이라면 관심은 멀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얼굴에 대한 관심은 멀어집니다. 며칠 볼 때 예쁘지, 몇 달이 지나면 그 얼굴이 그 얼굴이 됩니다. 그래서 다른 얼굴에 관심이 가게 됩니다. 남자들은 대개 그렇습니다. 그런 성향을 생각할 때 남편이 예수님 믿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그처럼 남편이 바람을 피우니 이 부인은 자존심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대판 싸우고 자살하러 한강으로 갔습니다. 마침 그날 비가 왔습니다. 비를 맞으며 한강변을 걷고 있는데, 오순도순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수재민들의 임시 천막집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가족이 라면을 앞에 두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는지 모릅니다. 그때 그녀는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습니다. 삶에 용기가 생겼습니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감동적으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소망이 생기고 기대감이 생겼습니다. 곧 집으로 돌아와 그 다음 주일에 그녀는 교회를 찾았고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리고 1년 뒤에 남편도 자기 아내의 삶이 변한 것을 보고 같이 예수님을 믿고 행복한 가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 안에 예수님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부족해도 상관없습니다. 부족해도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입니다. 채워주시지 않아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고 행복을 노래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전폭적으로 믿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끝까지 주님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축복의 날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느냐?”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비바람에 젖지 않고 성숙해지는 신앙이 어디 있습니까? 가진 것이 없으면 어떻습니까? 없으면 더 높이 비상할 수 있고 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어떤 분의 글을 보았습니다. 얼마 전, 그분이 약에 쓰려고 청둥오리 농장을 찾았습니다. 사육장에는 청둥오리들이 가득했는데 사방으로 울타리만 쳤고 하늘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속으로 걱정했습니다. “저러다가 다 날아가 버리면 어떻게 하나?”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해 “저러면 날라 가지 않나요?” 하고 물으니까 주인의 대답했습니다. “하하하! 저렇게 살찐 녀석들이 어떻게 날아갑니까?”

가만히 보니까 정말 집오리처럼 살이 토실토실했습니다. 다시 물었습니다. “그럼 저 청둥오리들은 하늘을 나는 것들과 종자가 다른가요?” “아닙니다. 태어나자마자 영양식을 듬뿍 주면 저렇게 살이 찌고, 결국 날개가 퇴화되어 날지 못해요.” 그 얘기를 듣고 그는 절제의 중요성과 “무엇이든지 조금 모자란 것도 괜찮은 삶이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조금 가지지 못하면 어떻습니까? 다 가지면 오히려 비상할 수 없고,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을 수 없고, 예수님 믿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 삶인지 전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의 형편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러면 누구나 이 땅에서 비상할 수 있고, 때가 되면 천국에 가서 하나님 품에 있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뜻을 항상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며, 항상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는 삶을 통해 축복 받고 승리하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 목사 설교 중에서

오용주목사 블로그입니다.

2019.1.6. 1.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히11;5-6

우리는 지난해를 마무리하면서 성경의 가장 핵심 진리 5가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인인다.

2. 죄의 삯은 사망이다.

3. 죄인된 우리를 하나님은 사랑하셔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4. 십자가와 부활

5. 믿음과 영접으로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제 6번째 핵심진리가 뭐겠습니까?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성도의 삶입니다.

그 삶은 한 마디로 예배의 삶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따라서 2019년 우리의 신앙의 목표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 정했습니다. 그리고 새해를 시작하면서 먼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우리는 2019년 신년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신년감사예배를 드린다고 생각하세요? 또 한 살을 더 먹어서입니까? 사실 신년이라 하지만 따지고 보면 나이 한 살 더 먹는 것이고, 결국 죽음이라는 종착역에 한 발짝 더 다가섰는데 그게 감사하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일 년 동안 무사히 한해를 살기를 원해서 입니까? 아니면 이 한해 내가 계획하고 원하는 것들이 다 이루어지는 마음에서 미리감사를 드리는 차원에서 감사예배입니까?

사실 우리가 오늘 신년감사예배를 드리는 참된 의미는 이 한 해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2019년 한번밖에 없는 인생의 여정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기 위한 출발선상에 있기에 그것이 감사한 것 아닙니까?

사실 나 홀로 걷는 시간이라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점점 죽음으로 향해가는 시간이고, 아무런 목적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삶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한해가 하나님과 함께 걷는 걸음이기에 그 시간이 귀한 것 아니겠습니까?

제가 작년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고 이어서 열린 장애인 올림픽, 패럴림픽이라고 하죠, 그것을 보면서 그 종목가운데 알파인스키 종목이란 것이 있는데, 시작 장애인들이 타는 겁니다. 사실 정상인도 타기 힘든 경기인데 시작장애인이 어떻게 타나 했는데 가이드 러너와 함께 타는 것입니다. 시각장애 선수보다 먼저 출발해 무선 헤드셋으로 코스 상황을 알려주는 도우미가 있기에 무사히 완주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이드 러너는 누구입니까? 누구와 함께 동행 하여야 이 한해를 잘 완주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우리의 가이드 러너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특히 히11장에 나와 있는 믿음의 선진들은 한 결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성경에 나오는 실패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이 세상과 동행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세상의 사람들은 딱 두 종류인 것 같습니다. 한 종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과 또 다른 한 종류 세상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한해를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누구와 동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난 한해 누구와 동행하고 또 새로운 한해는 누구와 동행하길 원하십니까? 나의 동행자가 누구인가 잘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 동안 동행하였다고 우리에게 전하여 줍니다. 본문에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신앙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결혼생활을 하는데 결혼생활이 뭐냐? 사랑하는 사람과 동행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뭐냐?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양이 목자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마찬 가지로 성도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 이것이 동행이며, 곧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늘 하나님과 동행이 경험되어야 합니다. 어쩌다 힘들 때 한번 동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동행,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함께함이 일상이 되어야 합니다. 24시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셔야 합니다.

창5: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5: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보세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하니까 대단한 일을 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성경은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라고 말씀합니다. 자녀를 낳았데요. 그러면 낳기만 했겠습니까? 길러야죠? 기르려면 일을 해야죠. 그러니까 에녹은 일상의 삶을 살면서 하나님과 동행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일상의 삶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읽을 때만 아니라 일상이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을 산 것입니다.

여러분 특별히 하나님과 동행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대한하게 하나님과 동행하려 하지 마십시오. 애들 키워놓고 나중에 한번 멋지게 동행하려 하지 마십시오. 오늘 하루 하루 내 일상의 삶 가운데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친밀한 교제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2. 그러면 우리가 왜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는가?

신앙생활은 하나님 동행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예를 들어 결혼을 하는데 왜 결혼합니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동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관계를 위해서입니다. 내가 저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니까 저 사람의 필요를 내가 채워주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결혼의 목적이 이 사람을 이용해서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한다면 그 결혼의 시작부터 잘 못된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이 저 사람을 통해 오로지 내 필요만을 채우기 위해 결혼한다면 그 결혼은 행복한 결혼생활이 될 수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도 마찬 가지입니다. 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동행 한다면 시작부터 잘 못된 것입니다. 그래 하나님과 동행해야 내 목적을 이룰 수 있어, 그래야 내가 성공할 수 있어 만약 이것이 동행의 목적이라면 시작부터 방향성이 잘못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얼마든지 배신할 사람입니다.

물로 하나님과 동행해야 안전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보호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동행해야 하나님이 원하기는 목적지에 도달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참된 동행은 나를 위한 인생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한 그 분을 위한 길을 함께 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믿음의 사람들의 공통점은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 동행의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었습니까? 아니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한 평생 배를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애굽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버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자기들의 밥줄은 배와 그물과 심지어 가족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들의 동행은 마지막에는 예수님을 죽는 자리까지 가게 했습니다. 바울은 주님과 동행하기 위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들 모두는 동행함으로 그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노아를 통하여 그 시대의 구원의 방주를 준비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브라함을 통하여는 하나님을 섬기는 한 민족이 시작된 것입니다. 모세를 통하여는 애굽에서 고통당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출애굽 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이시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어떤 뜻이 이루어졌습니까? 또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온 통 내 뜻이 언제 이루어집니까? 언제 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한해 내가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소망해 봅시다.

3.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대단히 중요한 말입니다. 요10: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보세요. 우리가 지금 드리고 있는 예배, 왜 예배를 드리시나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이 신상생활인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신앙이 타락하면 우리가 자기 음성, 세상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을 따라갑니다.

여러분 하루를 살면서 누구의 음성에 반응하며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염려하며 걱정하는 소리가 누구의 소리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해야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겠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시기 않으면 나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가다리겠습니다.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런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저는 이 한해 여러분들의 삶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여러분의 삶의 일상이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기다리는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민감함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성령님의 음성이 뚜렷해집니다. 그렇기 위해 하나님에 대한 집중력을 높여야 합니다. 그러려면 우리의 삶이 좀 심플리시티( simplicity ), 단순해져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너무 몰두하면 하나님에 대하여는 둔해집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아무리 말씀하셔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 민감한 상태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가 깊어져 가면서 자연히 하나님의 음성이 클리어하게 아주 선명하게 인도해 가신 것을 경함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어떤 결정을 내리기를 원하시는지…..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을 기다리는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생활을 단순화 하고 하나님께 집중력을 높일 때 하나님과의 교제가 깊어지고 우리의 영혼은 맑고 하나님의 음성은 선명하게 들려지게 됩니다.

4.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인도를 신뢰해야 합니다.

제가 부산에서 처음 용인으로 와서 가장 먼저 구입한 것이 네비게이션이었습니다. 네비게인션을 믿고 가는 것이 가장 안전했습니다. 여러분 서울 지리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그럼에도 저는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왜? 네비게이션을 믿기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서울 지리도 어려운데 내 남은 인생의 길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어떤 돌발 상황

이 닥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게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동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과 동행에서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동행이 본인에게는 기쁨이 되고 힘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와 동행을 하던 그와의 동행이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면 동행의 진정한 의미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과의 동행을 말한다면 하나님이 내게 동행해주신다는 사실이 여러분에게 기쁨과 힘과 위로가 되는가를 먼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마음에 기쁨과 만족이 없고 원망 불평이 있다면 그 원인은 하나님이 인도하는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같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방향이 아닙니다.

민21장에는 광야 불 뱀 사건이 나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다 불뱀에 물려 죽는 사건입니다. 여러분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까?

민21:4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과 자기들이 원하는 길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원망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우리 모습과 흡사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있어서 우리도 모르게 짖는 죄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경향성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반드시 이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려는, 내 뜻을 이루는 방향으로 가려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과 동행을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해결할 수 있습니까?

사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55: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이 말씀을 붙잡는 겁니다.

5. 어떻게 끝까지 동행할 수 있었는가?

우리 하나님과 동행을 하지만 끝까지 동행은 쉽지 않습니다.

딤후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그런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였을 뿐 아니라, 끝까지 동행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동행하였습니다. 그 근거가 바로 믿음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란 그래 나 믿어 믿어 믿어 가 아니라 그 이상입니다.

히11장 전체에 나타난 믿음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을 때 그것을 행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다.

히11:7 믿음으로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였다.

히11:8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믿음에는 명사형 믿음과 동사형 믿음이 있습니다. 명사형 믿음은 말만 믿는 것 행함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나 동사형 믿음은 믿는 대로 느끼고 믿고 행하는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의 특징은 환경을 보지 않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예) 거인 골리앗 앞에 선 다윗의 믿음

삼상17: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17: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17: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예) 가데스바네아 앞에서 여호수아 갈렙의 믿음

민14: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14: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에녹의 믿음은 어떤 믿음인가? 1)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2) 그리고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하나님이시다. 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을 찾는 자에게 상이 무엇일까요? 만나 주시는 것이 상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에게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신실한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아주 단순한 믿음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나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올 한해도 이 믿음을 놓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이러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환경이, 의심이 이러한 믿음을 흐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에 반응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샤를르 푸코”라는 군인이 예수를 믿은 후 카롤릭 신부가 됩니다. 그리고 사하라 사막에 들어가 원주민이 쏜 총에 순교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가 쏜 ‘사하라의 불꽃’ 이라는 책에서 그는 이렇게 반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있다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말씀을 맺습니다.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잘 살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동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 멋대로 살아도 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도록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왜 동행해야 합니까? 그래야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이 한해 내 계획이 이루어지는 것이 이 한해를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이 삶을 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이레찬양 64장 지금서 있는 이곳에서

불낙지교회 / 불신자(不信者), 낙심한 자(落心者), 지체하는 자(遲滯者)를 주님 앞으로

파트리스교회 주일 설교 / 2018-12-30 송구영신

주와 동행하는 삶(창세기 5:21∼23)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지혜로운 사람은 두 가지를 아는 사람입니다.

알아야 할 두 가지는 나의 남은 날 수와 남은 날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아는 것입니다.

시편 90: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2018년을 마감하는 송년주일의 설교 제목은 ‘주와 동행하는 삶(Live with the Lord)’ 이라고 정했습니다. 주와 동행하는 삶이란 설교 제목을 정하게 된 이유는

나의 남은 날은 얼마나 될까? 남은 날 동안 무엇을 해야 할까? 생각하면서 얻은 결론은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라는 것이었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기독교 윤리학자 리차드 니버(Helmut Richard Niebuhr, 1894∼1962)는 인간의 이상형은 예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으로부터 두 가지를 본받아야 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앙이며, 또 하나는 인간을 향한 절대 사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절대 신앙과 인간을 향한 절대 사랑을 실천해야 하는 세상은 온갖 부조리와 갈등의 구조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현실입니다. 이와 같은 현실에서 사도 바울은 주와 동행하기 위해서 이렇게 고민했습니다.

갈라디아서 1:10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사람을 기쁘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을 기쁘게 해야 할까요?

이 말씀을 다른 성경으로 읽어보면 이렇게 번역합니다.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할까?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할까?

신앙생활의 자세를 두 가지로 소개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코람 데오(Coram Deo)’는 ‘하나님 앞에서(Before God)’ 라는 뜻이며, 또 다른 하나는 ‘코람 호미니부스(Coram Hominibus)’는 ‘사람 앞에서(Before Men)’ 라는 뜻입니다.

코람 데오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을 주와 동행하는 삶이라고 하겠습니다.

주와 동행하는 삶을 ‘코람 데오(Coram Deo)’ 라고 합니다.

‘코람 데오(Coram Deo)’는 ‘하나님 앞에서(Before God)’ 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주와 동행하는 삶은 나는 항상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믿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이 세상에 오셨던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의 죽음이라는 사건을 생각하며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이런 기도가 ‘코람 데오(Coram Deo)’의 신앙이라고 하겠습니다.

어느 목회자가 여러 지역을 순회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사택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타버렸고 심지어 두 아들마저 불에 타 죽고 말았습니다. 그 때가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난 후 개신교회가 활발하게 번성하던 시기였습니다. 주위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결코 듣기 좋은 이야기는 아닙니다. 도대체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낙심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목회자는 아무도 없는 숲속으로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그때 그 목회자의 마음에 참 평강이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놀라운 찬송을 불렀습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온 몸과 영혼을 다 주께 드리니

이 세상 고락간 주 인도하시고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2019년 신앙생활에 은혜가 넘쳐나는 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코람 데오(Coram Deo)’ 즉 ‘하나님 앞에서(Before God)’ 라는 신앙생활을 위한 명제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면에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을 ‘코람 호미니부스(Coram Hominibus)’ 라고 합니다. ‘코람 호미니부스(Coram Hominibus)’는 ‘사람 앞에서(Before Men)’ 라는 뜻의 라틴어입니다.

가룟 유다는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예수를 팔아넘길 음모가 드러났습니다. 이때 가룟 유다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길을 포기하고 ‘코람 호미니부스(Coram Hominibus)’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예수를 팔아넘긴 후 스스로 목매어 죽는 죽음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과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것의 결과는 이미 가룟 유다의 선택에 의해서 분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코람 데오(Coram Deo)’ 즉 ‘주와 동행하는 삶’을 위하여 함께 경주하는 2019년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주와 동행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에녹은 육십 오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삼백 육십 오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 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를 에녹이란 이름과 므두셀라 라는 이름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녹(Enoch)이란 이름은 ‘바친다’는 뜻입니다.

에녹은 하나님에게 바쳐진 인생 이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에게 바쳐진 인생으로 2019년을 맞이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에게 바쳐진 삶이 곧 에녹이었습니다. 하나님에게 온전하게 바쳐졌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누구나 경험하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왜 에녹은 하나님에게 바쳐질 수 있었을까요?

에녹 당시의 평균 수명은 대략 63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365년을 살았습니다. 평균 수명보다 훨씬 적게 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평균 수명보다 적게 살았다고 하면 무슨 몹쓸 질병에 걸렸거나 아니면 사고를 당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에녹은 몹쓸 질병에 걸린 것도 아니었고 사고를 당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서 영원한 동행을 하고 있습니다.

므두셀라(Methuselah)라는 이름은 ‘창을 던지는 사람’ 이란 뜻입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얼마를 살았다고 합니까? 969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에녹은 365년을 살았는데 므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았던 아들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에녹은 깨닫는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영원한 것은 없다!

에녹이 살았던 시대에 창을 던지는 사람이란 성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성을 지키는 사람이 969년 동안 그 성을 지켰다면 잘 지킨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969년 보다 더 많은 2천년 동안 성을 지킨 사람과 비교할 때는 잘한 것이 아닙니다. 에녹은 므두셀라가 969년 동안 육체라는 성을 지키지만 결국은 죽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죽는다는 것은 성을 빼앗기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 세상에는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원한 것이 없다는 것을 에녹을 깨달았습니다.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둘째는 심판이 다가올 것이다!

므두셀라는 이름은 므두(무투, death)와 셀라(살라크, send)가 합성한 이름으로 므두셀라가 죽으면 심판을 보낸다는 뜻입니다. 이때 심판은 노아의 홍수를 말합니다.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은 후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무리 오래 살아도 영원한 것은 없으며 그 다음에는 심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었습니다.

주와 동행하는 삶은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삶이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던 중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버렸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5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에녹은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이었습니다.

에녹처럼 살아서 주님 앞으로 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에녹과 같이 될 수 없다면 건강하고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주와 동행하다가 어느 날 잠을 자는 것처럼 고요하게 주님 앞으로 가는 것을 기도합니다.

에녹과 같은 삶을 원하신다면 주와 동행하는 삶을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거룩한 동행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2019년 파트리스교회 모든 가족들이 거룩한 동행자로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거룩한 동행자가 될 수 있는 말씀을 소개합니다.

디모데전서 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It is consecrated by the word of God and prayer.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입니다.

그러면 기도는 무엇일까요?

기도는 성경대로 살아가는 힘을 공급받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나라입니다. 왜 기도합니까? 하나님 나라가 실현되기 위한 힘을 공급받기 위한 것입니다. 현실에서 부딪친 문제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우려는 힘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

돌에 맞아 죽는 고통스런 현장에서 스데반은 ‘주여,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 돌이 방향을 바꿔 돌을 던진 사람의 이마에 맞아 마치 골리앗이 쓰러지듯 넘어지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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