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는 세상 의 빛 이라 | [악보\U0026찬양]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들으라 주님의 음성) 조만행 曲, 다윗과 요나단 찬양 최근 답변 87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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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4-16 KRV – Bible.com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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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8/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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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 – 경남도민신문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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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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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광성교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그릇을 덮어놓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이같이 너희 착한 행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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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ksch.net

Date Published: 8/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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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장 14절-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네이버 블로그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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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7/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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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16) > 설교자료실 – 기독정보넷

복음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해도 듣지 않는 자들에게는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꼴입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불신자들을 감동시킬 사랑과 깨끗한 윤리의 삶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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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job.co.kr

Date Published: 4/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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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승 칼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크리스천투데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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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today.co.kr

Date Published: 11/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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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크리스천라이프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단어공부. He: 감추다, 숨다 Neither: 이것도 저것도 아닌 · 말씀의 나눔 마틴로이드 존스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의 성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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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christianlife.nz

Date Published: 2/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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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 말씀침례교회 AV1611.net Peter Yoon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란 말씀은 여덟 가지 복된 자들에 해당하는 이들이 세상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비추어 주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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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v1611.net

Date Published: 1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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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u0026찬양]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들으라 주님의 음성)   조만행 曲, 다윗과 요나단 찬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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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백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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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0. 11.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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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태복음 5:14-16 KRV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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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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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교수·철학자-“너희는 세상의 빛이라…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 5:14~16)“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평상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는 들어가는 자들로 그 빛을 보게 하려 함이라.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 할 것이 없고 감추인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누가 8:16~17)‘빛’은 신약성서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자주 등장한다. 조사를 해보니 (‘빛나다’를 포함해) 마태복음에 10번, 마가복음에 1번, 누가복음에 9번, 요한복음엔 무려 24번이나 등장한다. 예수 본인도 이 말을 즐겨 입에 올린다. 위에 인용한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요한복음에는 이 빛이 예수 자신에 대한 상징으로 언급되어 있다.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 8:12) 그러나 인용한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을 지칭하고 있다. 문맥을 보면 이것은 결국 ‘착한 행실’과 연결된다. 빛은 ‘선’(善)의 상징인 것이다. 그게 이미 전제로 되어 있다. 그러니 그 자체가 빛이라 할 수 없는, 즉 선하지 못한 사람은 이 말과 아예 상관이 없다.누구든 자신이 과연 빛인지, 과연 선한지, 당당하게 예수의 곁에 다가갈 수 있을지, 주저되는 바가 없지는 않겠지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를 ‘그리 되라’는 격려로 생각하고 이 말을 음미해보기로 하자.그런데 유심히 들여다보면, 예수의 이 말이 ‘빛’ 자체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방점이 빛을 보이게 함, 보게 함에 찍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예수는 숨은 것을 드러나게 하고 감추어진 것을 알리고 나타나게 하라고 제자들을 독려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은둔 혹은 은자를 일종의 가치 내지 미덕으로 생각하는 동양적 전통에서는 이러한 보이게 함, 보게 함, 알림, 나타냄, 드러냄이 마음을 좀 편치 않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가 이런 말을 한 데는 까닭이 있다. 요즘 시대에 유행하듯이, (자칫 역겨울 수도 있는) ‘자기 PR’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세상에 나가 선한 행실을 하라는 말이다. 그것을 보이라는 말이다. 선한 행실은 그 자체가 빛이기 때문에 본질상 감추거나 숨겨서는 안 되는 것이다. 높은 곳에 두어 전체를 환히 밝혀야 하는, 볼 수 있도록 하는 책무가 있는 것이다.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이 당연하고 뻔한 말을 예수는 왜 한 것일까. ‘하나님의 아들’ 씩이나 되는 존재가 이 말을 굳이 한 데는 까닭이 있다. 그 선한 행실을 통해(즉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임으로써)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사람들이 그런 행실을 보고 ‘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선하구나’ 하는 것을 알아 하나님을 빛나게 하라는 말이다. 아주 간단한 논리다.그런데 어떻게 보면 이것도 아주 당연한 말이다. 이 말에는 또 다른 까닭이 있을 수도 있다. 확대해석이지만, 이 말의 배경에는 빛이 빛을 보지 못하는(=드러나지 못하는, 어둠이 빛을 가리는), 빛이 빛을 숨기는, 그런 사정이 있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현실은 그렇다. 은둔과 은자가 미덕으로 거론된다는 것 자체가 인간 세상에 빛이 가려지는 그런 강력한 경향이랄까 사정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세상의 절반은 어둠이 지배한다. 밤의 존재가 그것을 상징한다. 환한 대낮에도 모든 존재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따라다닌다. 그것을 밝히라고 예수는 독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격려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빛을 드러내는 것은 말할 것도 없지만, 다른 사람의 빛을 드러내는 것도 ‘등경(=등잔대) 위에’ 두는 일이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세상의 밤을 밝히고 대낮의 그림자를 걷어내야 한다.언론도 교육도 출판도 예수가 말한 그 ‘너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든지’ 그 너희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언론도 교육도 그리고 교회도 지금 과연 스스로 빛인지, 혹은 빛을 제대로 조명해주고 있는지 점검해보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의 이 말이 사람들의 귀를 울린 지 2천년도 더 지난 지금도 세상은 여전히 그다지 밝지 못하고 빛은 구석에 처박혀 있거나 그릇으로 덮여 있고, 쥐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어둠 속을 휘젓고 다니기 때문이다. 세상의 ‘너희들’이 사그러드는 등잔의 심지를 돋우고 그것을 높은 등잔대 위에 자리 잡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나는 우선 가장 먼저 ‘예수’라는 등불을 이 책이라고 하는 등경 위에 올려둔다. 예수는 빛이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에는 이만한 빛이 없다. 가릴 수 없는 빛이다. 그의 빛으로 부디 세상이 밝았으면 좋겠다. 밝은 범위가 한 뼘이라도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2011. 3. 2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11)

본문 : 마 5:14-16

제목 :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또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할 때 제일 먼저 갖게 되는 것은 마음의 부담감일 것입니다.

나 자신이 부패되어 있고 나 자신이 남들에게 떳떳하게 내보일만한 것이 없는데 나를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라고 하면 마음이 오히려 괴로울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먼저 드는 것은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기독교를 바른 양심으로 선을 행하고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사는 것이라는 선입관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인들은, 즉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이라면 양심적이고 도덕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남들보다 더 법을 잘 지키고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생각들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말씀을 오해하는 경향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늘 그런 방향으로 해석을 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쉬운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그릇을 덮어놓지 않고 등경 위에 둔다.

이같이 너희 착한 행실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한다.

이 말씀을 너희는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착하게 살아야 한다.

그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칭찬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본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한다. 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엄청 부담을 주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의 핵심적인 뜻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는 당시의 제자들은 그렇게 할 만큼 도덕적이고 양심적으로 훌륭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이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 있는 무리들은 세상에 그런 모범생들이 아니었습니다.

당시에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또 종교적으로 모범생들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당시의 율법을 잘 지키고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자부심 가지고 사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거기에 없었습니다.

거기에는 세리와 창기로 구별이 되는 죄인들과 세상에서 별 볼일이 없이 사는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별 볼일이 없었던 사람들, 세상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이나 받고 살던 사람들, 뭐 하나 자랑할 것이라고는 없는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거기에 모여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다. 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들만이 세상의 소금이요 너희들만이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 것입니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는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너희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이 빛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이미 빛이 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들 즉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미 빛이 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노력을 하지 않아도 우리가 힘쓰지 않아도 우리가 가는 곳에 빛이 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 빛을 감추고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빛을 모든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확실하게 보여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을 확실하게 보여주어서 어두움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어둠 속에서 방황하지 않고 밝은 곳으로 오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빛이라고 하신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시고 빛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세상의 빛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실 때 예수님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이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여러 차례에 걸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요 9:5).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요 12:46).

우리가 빛이 되시는 예수님을 믿고 따름으로 예수님 안에 있는 성품들을 받아 누리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빛이라고 할 때 빛이 되시는 예수님의 빛을 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합니다.

예수님을 빛이라고 할 때 예수님 안에 있는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여러 가지로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늘로서 온 산 떡(요 6:51), 양의 문(요 10:7), 선한 목자(요 10:11), 포도나무(요 15:5), 부활이요 생명(요 11:25)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실 때 그 의미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고 하신 말씀에 들어 있는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그 길을 밝혀주시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진리를 밝히 보여주시는 빛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과 생명을 주시는 빛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밝히 보여주신 그 빛이 이제는 우리에게 임하여서 우리도 그 빛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께로 나아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보여주는 빛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인생이 누구인지 죄가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인지 어떻게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지 참된 진리를 보여주는 빛입니다.

우리는 우리 속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는 빛입니다.

2. 산 위에 있는 동네.

본문 14절 말씀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산 위에 세워진 동네가 많다고 합니다.

예루살렘도 시온 산에 세워졌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은 이 말의 뜻이 무엇인지를 쉽게 이해했을 것입니다.

산 위에 세우진 동네는 숨길수가 없습니다.

산 속 골짜기에 세워진 동네라고 하면 거기 가서 보지 않는 한 잘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산 위에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동네라고 하면 모든 사람들이 보고 바로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을 보시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장차 제자들을 통하여 세워질 교회를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잘 보이는 다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동네와 같이 모든 사람들이 보고 알게 될 빛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곳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쑥덕쑥덕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역사의 한 복판에서 이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하심과 역사하심에 따라서 만들어진 아주 중요한 단체입니다.

교회가 이 세상의 역사를 이끌어 가는 핵심적인 빛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빛이 없으면 이 세상이 암흑 속에 빠지듯이 교회가 없으면 이 세상이 깜깜한 암흑 속에서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될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받아서 세상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기관입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이 우주 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달하고 실천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천국의 열쇠를 받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갖게 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는 곳입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 진리가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 참된 인생의 의미가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 인생의 목적이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이 있고, 교회가 있는 곳에 죄 사함이 있고 구원이 있고, 영원한 생명이 있고,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의 진리, 하나님의 의,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생명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숨겨져 있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는 밝은 곳에 우뚝 솟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가 이런 빛의 역할을 잘 감당하지 못하니까 세상이 점점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외치지 못하니까 하나님나라를 바르게 보여주지 못하니까 다시 깜깜한 암흑의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없다 하나님의 심판 같은 것은 없다 다 우리끼리 잘 하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며 큰 소리를 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에 우리 이웃나라 일본에서 지진과 쓰나미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우상숭배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던 어떤 목사님 때문에 사람들에게 교회가 욕을 먹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도 보면 망루가 무너져서 죽은 사람들이 우리들 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을 하셨지만 이런 일들이 그냥 우연히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참고 계시니까 우리가 이 정도라도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다고 합니다.

계속해서 크고 작은 지진들이 발생할 것이고 화산 폭발의 징후들도 계속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진으로 피해를 보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이 되지만 지금 백두산에서 화산폭발이 일어날 징조가 보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저런 엄청난 위험요소들을 가지고 살고 있으면서도 사람들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고 큰 소리를 치면서 삽니다.

깜깜한 암흑 속에서 세상을 볼 줄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노인들 하고 어린아이들 하고 공통점이 있습니다.

도무지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일고 있는 것이 최고라는 생각 때문에 남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이고 최고라는 생각 때문에 아무리 타당성이 있고 바른 이야기를 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자기의 생각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 고집대로 살고 자기 뜻대로 살다가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신들 앞에 엄청난 위험들과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무지 속에서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교회는 빛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고 진리 되시는 예수님을 보여 주고 그들이 밝은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3. 등경 위의 등불.

본문 15절 말씀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꼭 그렇게 구별하신 것은 아니겠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산 위에 세운 동네를 빛이라고 할 때 교회로 생각해 볼 수 있고 집안에 켜진 등불을 생각할 때 성도 개인으로 생각해 봅니다.

우리 성도 개개인이 빛이라고 한다면 15절의 집 안에 켜진 등불과 같아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옛날 전기가 없는 세상에서는 등불로 집안을 밝혔습니다.

기름에 심지를 만들고 불을 붙이면 전기 불처럼 밝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생활은 아쉬운 대로 하도록 조금은 밝습니다.

사람들이 등잔들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 말이란 곡식을 셀 때 담는 그릇을 말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말을 잘 압니다.

작은 량을 담아서 세는 되가 있고 열배쯤 되는 량을 담아서 세는 말이 있습니다.

불을 켠 사람이 실컷 불을 켜서 그 말로 덮어버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오히려 불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높은 대를 만들어서 그 위에다가 두는 것이 상식이라는 말씀입니다.

빛이 도덕적이거나 양심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면 가정에서도 우리 성도들이 내가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 줌으로 내 속에 계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 같은데 집에 돌아가면 세상 사람처럼 변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우리들 보고 하는 말이 자기들은 교회에는 잘 안 나가도 삶 속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산다고 자랑하면서 은근히 우리를 비웃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에 가면 정말 열렬한 신자 같은데 집에 오면 세상에 나가면 불신자들처럼 똑 같이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 동양인들은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습성이 있어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리는 좋아도 그렇게 좋다고 내색을 잘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슬퍼도 그렇게 슬프다고 잘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랑을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신앙의 표현도 잘 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신앙인인지 불신앙인지 잘 구별이 안 되게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그 신앙을 나타내어 보여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기도를 하고 찬송을 하고 감사를 하고 신앙을 표현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천국백성답게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내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임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인 것을 나타나 보여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이런 작은 불빛이 식구들에게 보일 때 그런 가정들이 하나 둘 모여서 큰 불빛이 되고 산 위에 세운 동네가 되는 것입니다.

4. 착한 행실

본문 16절 말씀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라고 했습니다.

교회가 또 성도들이 세상에서 가정에서 빛을 비추면서 살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 빛을 “착한 행실”이라고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착한 행실이 무엇일까요

착한 행실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일에 올바른 행동을 하는 것을 말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보다도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더 선하고 바르게 살면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살면 우리의 사랑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착한 행실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도덕적이고 양신적인 선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살게 하려고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에게 빛이라는 칭호를 주신 것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양심이나 도덕은 그들이 만든 기준에 의한 것이고 우리와 맞지 않는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착하게 산다고 해서 그들이 인정하지도 않을 뿐더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빛의 역할을 할 때 착한 행실이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보편적인 선함이 아니라 최고의 선한 것, 지극히 선한 것이어야 합니다.

빌립보서 1:9-10절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지식과 총명이 점점 더 풍성해져서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날을 기다리며 그 날까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의 열매를 맺는 것 그것이 지극히 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선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을 믿으며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지극히 선한 일입니다.

사람들에게 살아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천국을 바라보고 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우리가 지금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천국 백성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가 사는 모습을 보고 아 하나님이 계시구나, 천국이 있구나, 믿어야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착한 행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교회가 우리 성도가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빛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5장 14절-16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태복음 5. 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6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팔복으로 시작한 산상수훈은 13절에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 말씀하시고 난 후, 이제 14절에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Ὑμεῖς ἐστε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이 빛은 결코 숨길 수 없는 것이기에,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치게 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그들이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제 14절 이하의 말씀을 중심으로 두 번째 비유로 드신 빛에 대하여 살피기로 하자.

먼저 14절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라고 할 때, 우리 자신이 스스로 “빛”(φῶς)을 발하는 발광체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빛 되신 주님을 따라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그의 신분에 맞게 빛을 받아 발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미 앞서 언급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복된 자들로, 하나님의 의를 힘입어 사는 그의 백성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16절에서 이들을 가리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τὸν πατέρα ‘ὑμῶν’ τὸν ἐν τοῖς οὐρανοῖς)라고 하신 것이다. 따라서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나타내는 자들인데, 그의 실생활과 말로써 드러내는 자들이다. 이것이 바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빛은 결코 감춰질 수 없다. 아니 감춰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4절 후반 절에는 산 위에 있는 동네가 결코 감춰질 수가 없고, 또한 15절에서 보는 바와 같이 등불을 켜면 등경 위에 두어 빛을 발하게 하여 집안 모든 사람에게 어둠을 밝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앞에서 “너희는”(Ὑμεῖς)이라고 할 때, 이는 한 개인을 말하는 동시에 교회를 말함을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사 2:2; 갈 4:26; 히 12:22). 그래서 주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πόλις…ἐπάνω ὄρους κειμένη)는 숨겨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개인 또는 무리는 그의 삶이건 말이건 사실 드러날 수밖에 없기에, “빛을 발하는 사명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래서 16절은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οὕτως λαμψάτω τὸ φῶς ὑμῶν ἔμπροσθεν τῶν ἀνθρώπων)라고 하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빛을 비추라고 하신 것인가? 그 목적이 어디에 있는가? 우리가 빛이기에 우리를 내세우고 자랑하기 위한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그 답을 16절에서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한다. 그들이(ἴδωσιν)이 너희들의 행실을 보고 “너희 아버지께”(τὸν πατέρα ‘ὑμῶν’) 그들이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삶이나 말이, 항상 세상 사람들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이 되어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의 삶과 말이 복음 전하는 방편이 되어야 함도 또한 기억해야 한다. 우리의 거짓된 행실이 하나님의 영광을 막게 되고, 그렇게 되면 복음을 전하는 일은 막히고 말 것이며, 나아가 우리로 인해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가리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슬프게도 지금,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생기지 않는가? 우리는 지금 산위에 있는 동네로서, 빛의 사명을 잘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혹, 우리의 잘못을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세상 사람들이 모르도록…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기 때문이다.(이하 계속/ 구모영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16) > 설교자료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16)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맨 먼저 빛을 창조했습니다. 빛을 창조하기 전에는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빛이 있으라”고 명령하자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땅이 빛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들이 달라졌습니다. 혼돈이, 공허가, 흑암이 이 땅을 지배할 수 없었습니다. 이 빛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빛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거기에 필요한 하늘의 별과 새, 물고기,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을 창조하여 천지창조를 완성했습니다. 빛은 모든 만물의 시작이요,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빛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빛이 되어야할 우리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함께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1. 빛은 어두움을 밝힙니다.밤이 아무리 어두워도 아침에 태양이 뜨면 어두움은 소리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어두침침한 지하실에 촛불 하나만 있어도 어두움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습니다. 타락한 세상은 어두움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어두움은 빛이 아니고는 어느 것으로도 이길 수가 없습니다. 요 1장에 요한은 주님이 곧 참 빛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어두움의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므로 말미암아 어두움의 세상을 지배했던 사탄은 그의 정체가 폭로되어 주님으로부터 결정타를 맞은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사탄의 종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형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1:12-13)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 어두움의 사탄의 수하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는 것입니다.주님은 14절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진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향해 그리스도의 빛을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태양의 빛을 받아 별들이 반짝이는 것과 같이, 주님이 태양과 같은 존재라면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구원의 빛을 이웃에게 비추는 별과 같은 존재입니다.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구원 받지 못한 이웃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인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이 복음은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전해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구원과 그 구원함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 문을 닫기 때문에 쉽게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감동시킬 착한 행실을 그리스도인들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초창기에는 복음화 율이 극히 적었습니다. 그래도 다른 지역들보다 신자들이 많은 곳에는 부정부패를 좋아하는 관리들이 부임하기를 꺼렸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정직한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 같지만, 속으로는 정직하고 깨끗한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이혼이 성행하고 성윤리가 타락한 미국에도 대통령이나 주요 요직을 맡을 사람들에게는 정직하고 깨끗함을 요구합니다. 우리나라도 지금 대선후보들의 검증이 한창 진행 중에 있어 나중에 대선에 큰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불신자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첫 번째 시선은 복음보다 사랑과 윤리입니다. 교회가 사랑과 윤리가 특출하지 않다면 불신자들은 복음에 대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립니다. 복음이 아무리 귀하고 소중해도 듣지 않는 자들에게는 돼지에게 진주를 주는 꼴입니다. ‘세상의 빛’이라는 것은 불신자들을 감동시킬 사랑과 깨끗한 윤리의 삶을 말합니다. 도덕적인 윤리나 사랑 없는 문제로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삶이 아닙니다. 빛이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빛으로 부정부패와 타락된 세상을 밝게 해야 합니다. 마치 소금이 자신을 녹여 음식을 맛을 내고, 부패를 방지하는 것처럼, 빛은 자신을 태워서 세상을 밝게 하는 것입니다.정직과 공의, 사랑과 희생은 세상을 밝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세상을 지배했던 사탄은 정직과 공의, 사랑과 희생보다 부정과 부패, 미움과 시기, 폭력으로 세상을 어둡게 하려고 합니다. 아직 우리사회는 어두움이 우리의 행복을 좀먹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의 사랑으로 세상을 밝게 하는 빛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신실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2. 빛은 생명입니다.빛은 어두움을 밝게 하기도 하지만, 얼음을 녹게 하는 따뜻함도 있습니다. 사실 빛이 없으면 사람이나 모든 생물은 살아갈 수 없습니다. 캄캄한 밤에도 태양은 여전히 쉬지 않고 우리를 비추고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말하는 빛은 성도들의 행위를 말하지만 넓은 의미로 이 빛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올 때 그것이 귀하고 값진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구원의 문제입니다. 구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다른 것들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다른 어떤 것보다 우리에게 구원이 소중함을 말씀 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의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그 어디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를 지셨고, 피흘려 죽으셨습니다.생물학자가 쥐를 시험하였다고 합니다. 어떤 쥐에게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생활하게 하고, 또 어떤 쥐는 사방이 막힌 공간에 약간의 구멍을 내어 빛이 들어오게 하여 생활하게 했는데 놀랍게도 빛이 있는 쥐가 빛이 없는 쥐보다 휠씬 오래 살았다고 합니다. 빛은 생명을 주는 희망입니다. 빛은 모든 생물을 살리게 합니다. 자연적인 빛도 소중한데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영적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귀하고 값진 구원의 빛이십니다. 주님이 가는 곳마다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고, 절망과 죽음에서 희망과 생명이 움텄습니다. 갈릴리 건너 거라사 지방으로 갔을 대 군대 귀신들린 자를 자유하게 했습니다. 38년된 중풍병자를 고쳤습니다. 야이로의 딸과, 나인 성 과부의 아들과 베다니의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셨습니다. 이것 외에도 수많은 병자를 치유하였습니다. 사탄으로 말미암아 절망 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 것입니다.우리에게 생명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참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또한 우리에게 예수의 빛을 전할 수 있도록 통로가 되게 했습니다. 세상의 빛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참 빛에서 시작됩니다. 빛은 반사작용을 합니다. 밤하늘에 떠 있는 수많은 별들이 태양의 빛을 받아 반짝이듯이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이웃에게 비추는 존재입니다. 우리가 비추는 빛으로 말미암아 수많은 우리의 불신이웃이 생명을 얻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사마리아 수가 성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한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안드레는 자신의 형 베드로에게, 빌립은 친구 나다나엘에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에드워드 킴볼이라는 사람은 볼품없는 구두 수선공 무디에게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그 무디는 미국의 백만의 영혼을 주님께로 인도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주님의 의도는 너희에게는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너희의 이웃에게 나누어 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과 실천하는 사랑과 정의의 삶에는 세상을 살리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잘못된 행동으로 말미암아 때로는 많은 사람들을 복음의 길에서 실족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생명을 나누는 풍성한 삶이 우리로부터 이어지기를 원합니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빛은 어두움을 밝게 하는데 그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위해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요 명령이기도 합니다. 어두움끼리 아무리 많이 모여도 밝게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어두움이라 할지라도 빛이 있으면 어두움은 소리 없이 사라집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제대로 빛 된 삶을 살게 되면 세상은 변화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구원을 은총을 누릴 것입니다. 행 2장에 오순절 성령을 받은 120명의 성도들이 거리로 나아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종교지도자들이 이들을 핍박하자 이들은 전지역으로 흩어져 빛된 삶을 살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무리가 기독교로 개종을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이방인까지 복음에 항복했습니다. 예수의 빛을 덧입고 살아가면 우리와 우리 가족과 이웃이 구원의 은총을 누리며, 평안의 삶을 누릴 것입니다.세상에 감동을 주는 아름다운 삶을 실천할 때 하나님은 구원의 은총뿐만 아니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평안의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빛되신 삶을 살아가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강정태목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Matthew 5:14-16 (New International Version)You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city on a hill cannot be hidden. Neither do people light a lamp and put it under a bowl. Instead they put it on its stand, and it gives light to everyone in the house.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 의역: NIV 영역 성경을 우리말로 이해하기 쉽게 풀어본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워진 도시는 숨겨질 수 없다. 사람들은 등잔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 두지 않고 대신에 등잔대 위에 두어 그 빛을 온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비추는 것이다. 이와 동일하게 너희도 너희 빛을 사람들앞에 비추게 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선한 행실을 보고 그리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태복음 5장 14절 )

단어공부

Hide: 감추다, 숨다 Neither: 이것도 저것도 아닌

Instead: 대신에 Shine: 빛나다, 반짝이다, 비추다

말씀의 나눔

마틴로이드 존스목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신의 성품을 받고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라” 말했다. 성경에서 “빛 -The Light” 이라 함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일컫는 말이다.

또한 그의 보내심을 받아 이 땅 가운데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말이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The LORD is my light and my salvation — whom shall I fear? (시편 27:1)”라며 고백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보냄을 받을 고난의 종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언급 하며 하나님께서 그를 “이방 – the Gentiles – 의 빛이 되게 하리니 – (이사야 42:6)” 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평생 메시아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건네 받아 그의 품에 안고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눈으로 이스라엘 가운데 이루어진 구원을 보았다 말하며 예수를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위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for glory to your people Israel (누가복음 2:32)”라고 말하며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했던 약속의 말씀이 드디어 오랜 역사의 기다림 가운데 성취되었음을 선포했다.

오늘 본문을 이루고 있는 마태복음 5장은 산상설교의 시작이다. 당시 예수의 설교를 듣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질병을 가지고 오거나 또는 귀신이 들려서 온 이방의 지역이라 불리던 갈릴리 지역과 데가볼리,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다 근처에서 왔던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열 두 제자들 대부분이 당시에 별로 존경을 받지 못하던 갈릴리지방의 어부 출신들이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신의 성품을 일컫는 “그 빛이 바로 너희다 –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라고 선포하고 있는 예수의 말씀을 듣고 흥분했을 것이며, 이 충격적인 선포의 말씀으로 인해 크게 감동했을 것이다.

“빛” 이란 본래 하나님과 또한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이야기할 때 쓰이던 말이었다. 따라서 이 호칭은 우리와 같이 연약하고 죄악에 물들어 있는 인간들에게는 결코 사용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 말씀을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시며 그들 또한 당신이 가지고 계시는 그 신의 성품 가운데 참여한 자라 말씀하시기를 주저하시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도 큰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이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In the same way, let your light shine before men, that they may see your good deeds and praise your Father in heaven”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착한행실이란 무엇일까? 영역성경은 이것을 “your good deeds”라 표현하고 있으며 원어 성경은 이것을 “attractive” 즉 “사람들에게 눈길을 끄는 것이나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 또는 아름답게 보이는 것” 이라 말할 뿐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답변은 회피하고 있다.

오히려 이와 같이 성경이 착한 행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규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인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이 “착한 행실”은 우리와 같은 죄악 된 인간들이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 라며 함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는 성경 어디에서도 착한 행실에 관한 명확한 해답을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착한 행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세상사람들이 지금 예수의 산상설교를 듣고 있는 이들의 행위를 보고 매력적으로 느끼고, 아름답게 느끼며, 그것이 정말 선하다 라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빛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다. 따라서 빛은 세상에 없어서는 안될 가장 중요한 ‘생명의 자원 -resources of life’이다. 이와 같이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생명의 근원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처럼 예수는 인간의 타락이 후 오랜 시간 동안 죄악으로 인해 전혀 소망이 없는 어두움에 덮여있던 이 세상을 빛으로 환하게 밝혀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오로지 그리스도인들 뿐이라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 –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말해주고 있으며 더불어 이 땅 가운데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기능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말씀으로 예수께서 당신의 첫 설교 가운데 이 말씀을 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착한 행실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고자 행동하는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들의 착한 행실은‘praise your Father in heaven’곧 세상으로 하여금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제 2016년의 해가 역사가운데 영원한 뒤안길로 사라져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 빛된 삶을 살아감으로 올 한해도 아름다운 갈무리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본문의 단어로 배워보는 영어 한마디

Don’t hide your light under a bushel.

당신의 재능을 숨기지 마시오.

The girl was neither fish nor fowl.

그녀의 정체를 알 수 없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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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 마5:14-16

요절: 마5:14-16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과 마찬가지로 그 일차적 대상은 여덟 가지 복에 해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이 가난한 자들은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애통하는 자들 역시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온유한 자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들, 긍휼(矜恤)을 베푸는 자들, 마음이 순수한 자들, 화평케 하는 자들, 의로 인하여 핍박받는 자들이야 말로 복된 자들이며,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이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리신 정의입니다. 복된 자들이 아니라면 그 누가 세상의 소금이며, 세상의 빛이 되겠습니까? 주님으로 인해서 사람들의 욕이나 핍박이나 대적하여 거짓되이 온갖 악한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들이 자칭 소금, 자칭 빛으로 주장하는 세대이긴 하지만 우리는 성경의 본문이 말한 이들을 문맥에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해야 합니다. 특히 주의 말씀을 증거함으로 핍박받았던 대언자들, 지금도 주와 함께 고난받는 이들은 모두 세상의 소금이요, 빛입니다. 침례인 요한은 “타오르며 빛나는 등불”(요5:35)이었습니다. 현재 이 시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주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전파해야 하는 영적 제사장들이요, 사역자들이란 점에서 모두 ‘타오르는 등불’이요, 세상의 빛입니다.

현재 이 세상은 어둠입니다. 세상은 흑암의 깊은 가운데 있습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받은 대언자들을 통해 빛을 주셨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불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 성경은 참 빛이신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으며, 성경을 읽고 듣는 이들에게 이 빛으로 집중하도록 합니다. 모든 대언자들의 말씀 사역은 빛으로 오신 주님에 대해 선포하고 그분에 대해서 증거 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란 말씀은 여덟 가지 복된 자들에 해당하는 이들이 세상에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비추어 주는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약 성도들에게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십니다. 약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으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빛이 어둠 속에 비치되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더라.](요1:4-5). 그 때나 지금이나 빛 비추임은 동일합니다. 마찬가지로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동일합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인류 역사에 빛을 비춘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된 사건입니다. 그 빛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세상을 밝게 비추고 있습니다. 다만 어둠이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주님은 “나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 속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하시매](요8:12). 이 말씀은 주님을 따랐던 모든 이들이 증인이 되었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따르면 생명의 빛을 얻는다는 것이 단지 종교적 교리나 이론이나 사상이 아니라 실제임을 많은 증인들의 삶과 증언을 통해 증거되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마음 속의 어둠이 사라진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믿을 때 그 누구든지 마음 속을 가득 채우던 어둠이 사라지고 빛으로 가득 차는 체험과 성령의 내적 증거가 있습니다. 믿음의 결과, 믿음의 열매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빛이신 주님을 믿을 때 그는 빛이 됩니다. 이는 달리 설명이나 어떤 다른 외적 표적이나 증거를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어 본 사람들은 다 빛을 받은 체험이 있습니다. 성령의 확신, 내적 증거와 권능으로 주어진 믿음이 아니라면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말씀 외의 많은 다른 외적 표적이나 증거나 어떤 신비적 체험이나 자연스럽지 못한 일의 조합이나 진척 등을 필요로 하고, 감정적 흥분이나 몸에 어떤 변화가 감지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말씀 외에 믿음의 보조 수단이 필요한 이들은 모두 거짓 믿음입니다. 영과 진리라는 믿음의 확신이 없는 이들은 예배를 드려도 예배의 보조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행위든 의식이든 다른 무엇이든 간에 그런 것들을 원하고 갈망합니다.

사람이 학력과 경력을 쌓고, 세상에서 어떤 높은 성취나 업적을 남겨야 빛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빛이신 주님을 믿고, 내 마음 속에 빛이 임하면 그는 활활 타오르는 등불이 되고, 빚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은 빛이 너희와 함께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이 너희 위에 임하지 않게 하라.](요12:35a). 주님은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빛으로 계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지금은 성령을 통해 믿는 성도들 안에 거하심으로 빛을 비추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믿은 이들로 하여금 말씀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계시하십니다. 성령께서는 성도들의 입술에 힘을 주시고, 증거에 확신을 주시며, 마음에 감동과 조명을 주심으로 빛이신 주님을 믿도록 도우십니다. 주님께서 빛으로 오신 것은 믿는 자들이 어둠에 다니지 않게 하려 함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이것은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12:46a). 믿지 않는 자들은 빛을 거부했기 때문에 여전히 어둠에 있습니다. 주님을 거부할 때 마음은 더욱 깊은 어둠에 빠지게 됩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세운 도시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14). 세상의 빛이란 “세상을 비추는 빛”이란 뜻입니다. 자신이 빛이 아니면 비출 수 없습니다. 자신 안에 빛이 없으면 비출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 안에 주 예수 그리스도가 거하고 있기 때문에 “빛의 자녀요, 주 안에서 빛”입니다. 무슨 대단한 능력이나 지혜나 권세가 있어서 빛으로 인정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전에 어둠이었는데 이제는(now) 주 안에서 빛입니다.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엡5:8). 이전과 지금의 사이에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빛이신 주님을 만나 그분을 믿는 순간 그가 누구든지, 어떤 삶을 살았든지 간에 빛입니다. 이것은 점진적인 과정이 아니라 한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너희는 다 빛의 자녀요, 낮의 자녀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살전5:5).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빛입니다. 빛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빛들의 아버지이십니다(약1:17). 이 빛은 얼마나 강력한지 산 위에 세운 도시가 숨겨지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누구나 자신이나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교회를 향해 비판하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합니다. 말은 틀린 것이 없어 보이는데 실제로 자신 안의 어둠조차 해결하지 못한 분들이 유독 기독교의 사회봉사, 정치 참여, 교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 거품을 물고 빛과 소금을 외칩니다. 자신이 빛 가운데 있는지 어둠 가운데 있는지도 모르는 이들이 성경의 본질이나 주님의 가르침을 왜곡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빛 가운데 있는지 어둠 가운데 있는지 시험하는 매우 간단한 기준을 제시해 줍니다. [빛 가운데 있다 말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도 어둠 가운데 있는 자라.](요일2:9). 많은 성도들이 자기 아내, 자기 부모, 자기 형제에 대한 미움도 처리하지 못하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외치는 것은 우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같은 교회에 다니는 형제와도 화해하지 못하면서 ‘타 종교와의 화해, 타 교파와의 연합’을 외칩니다. 어둠 가운데 있기 때문에 자기가 하는 말이나 하는 행동이 성경적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합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 가운데서 걸으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요일2:11). 형제를 사랑하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은 뒤로 미루고 얼굴을 마주하지 않으려고 만남을 기피하고, 얼굴을 피하면서 교회나 목사에 대해서는 높은 도덕적 영적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고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어둠 가운데 있는가? 빛 가운데 있는가? 는 빛을 받아 본 사람들이 저절로 아는 일입니다. 누구에게 판단을 구할 것도 없습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내적으로 실증, 실재, 실체입니다. 이론적 지식이 아닙니다. 확신과 열매로서 드러나는 것이지 단지 입술로서 드러나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주님께서 제자들과 무리들을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당시 제자들이나 무리들은 학문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 권력을 잡고 있는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재력이 많거나 어떤 단체를 조직하고 운영하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종교적 힘을 가진 제사장들이나 바리새인들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특정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거나 여론을 주도할 만한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산으로 온 사람들은 평범한 민초들이었습니다. 이들을 향해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무슨 빛을 비추었거나 남긴 적이 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빛은 어떤 학문적, 정치적, 사회적 성취를 통한 업적을 남겨서 비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비추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들에게 앞으로 장차 빛이 되는 방법을 말씀해 주신 것이 아니고, 이러 저러한 일을 하면 언젠가 빛이 될 수도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라] 고 선포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는 빛에게 명령하사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추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주셨기 때문이니라.](고후4:6). 하나님은 말씀을 듣고, 주님 앞으로 나아온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빛이신 주님 앞으로 나아와 믿을 때 그는 빛이 되는 것입니다. [너희에게 아직 빛이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요12:36a). 빛이 되는 방법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빛을 믿으라. 그리하면 빛의 자녀들이 되리라.” 이것은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진리입니다. 내 안에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이 임한 경험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그 빛을 증거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빛을 드러낼 수 있습니다. [생명을 얻었다. 빛을 얻었다. 구원을 얻었다.] 등은 교리적 지식이 아니라 영적 경험이요, 실제요, 현재 내 안에 일어난 확실한 증거입니다.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빛을 얻고 마음속의 어둠이 모두 걷히는 체험이 없는 것은 그들이 주님을 믿는 믿음이 성령의 계시로써 말씀이 임한 것이 아니라 신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위로부터 임한 말씀을 통해서 믿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이 듣고 배우고 체계화한 교리를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믿음은 실제이요, 증거입니다. 믿음은 확신과 체험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믿는 대로 말하고, 믿는 대로 행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설령 잘못된 믿음이라 할지라도 그러합니다. 주님은 빛이시오, 빛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빛의 실체가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가 증거하러 왔으니 이것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여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를 통해 믿게 하려 함이라.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라. 이것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 (요1:7~9). *이것=이분=예수 그리스도. 빛은 이론이나 사상이나 철학이나 어떤 가르침이 아니라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춥니다. 해가 의인과 악인에게 공평하게 비취듯이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추십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보여도 주님은 분명히 모든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고 계십니다. 유대인들에게만 비추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의 빛, 구원의 빛, 생명의 빛은 세상 어디에나 비추어집니다. 이는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분께서 또 이르시되, 네가 나의 종이 되어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켜 세우며 이스라엘의 보존된 자들을 회복시키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라. 내가 또한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주리니 이것은 너로 하여금 땅 끝까지 이르러 나의 구원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느니라.](사49:6). *행13:47 참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빛이란 사실을 알고 또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그는 빛의 자녀가 되고, 빛이 됩니다. 본래 어둠이었던 죄인들이 빛이 되는 유일한 방법은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속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참 빛으로 오셔서 빛을 비추시고 계시기 때문에 누구든지 나아와 믿기만 하면 빛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의 빛이 되라” 가 아니라 “세상의 빛이니라.” 고 하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 빛을 비추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단지 비추기만 하면 됩니다.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빛을 통해 빛이신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들은 빛을 싫어합니다. 빛을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미워합니다.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고 또 빛으로 나아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함이요,] (요3:19~20).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합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은 빛을 미워하는데 이는 자기 행위를 책망 받을까 염려하기 때문입니다.

15절입니다. [또 사람들이 등잔불을 켜서 통 밑에 두지 아니하고 등잔대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느니라.](15). 우리는 집 안에 불을 켤 때 높은 곳에 둠으로써 온 방에 다 비추이게 합니다. 천정이나 스탠드를 세우거나 테이블 위에 등을 두는 것은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추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모두 등불입니다. [너희 허리에 띠를 띠고 너희 등불을 타오르게 하며](눅12:35). 주의 빛을 받아서 환하게 비추어 줄 수 있는 그런 존재입니다. 우리 안에 자체적으로 빛을 생산할 수 있는 발전기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빛을 낼만한 기름이 나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를 빛이 되게 하셨고, 끊임없이 성령의 기름을 공급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름이 없으면 심지가 타 버리고, 그 다음에는 꺼져 버리고 맙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 자신을 태우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 공급되는 성령의 능력, 주의 영의 공급하심으로 일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태우는 사람은 기름을 태우지 않고, 심지를 태우는 등불과 같이 단 며칠도 버티지 못하고 소멸해 버릴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빛을 비추는가? 믿음의 선한 행위를 보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주]의 영광이 일어나 네 위에 임하였음이라.](사60:1). 우리는 모두 침례인 요한처럼 타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잠들어 있고, 파수꾼들이 잠들어 있고, 성도들이 모두 잠들어 있다면 이 세상은 누가 깨웁니까? 주님은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우리는 이미 빛이 되었고, 네 빛이 이르렀다고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일어나 비추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너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빛을 주시리라, 하시느니라.](엡5:14). 영적 부흥이란 우리 안에 주신 영광의 빛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향해 강력하게 빛을 비추시고, 우리가 그 빛을 보고 다시 반사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모두 거울과 같습니다. 빛을 받아 빛을 비추어 줍니다. 이는 마치 달이 태양 빛을 받아서 비추는 것과 같습니다.

전에는 어둠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모두 빛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창조의 첫날에 하신 일이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주님은 빛을 창조하셨고, 빛을 주시며, 빛으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은 자신이 친히 빛이 되시고, 우리 마음에 빛을 비추시며, 빛을 주셨습니다(고후4:6). 빛이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듯이 말씀의 빛과 성령의 조명이 없는 영적 생활을 상상할 수 없습니다. 빛으로 오신 주님은 우리 안에 빛을 주시고, 세상을 밝게 비추라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는 불기둥으로 빛을 주시고(출13:21), 성전에는 등잔대의 등잔 일곱 개를 만들어 빛을 발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은 성전에서 등잔불에 불을 붙여 빛을 발하게 하셨습니다. [너는 그 /등잔대/의 등잔 일곱 개를 만들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등잔들에 불을 붙여 그 맞은편으로 빛을 발하게 할지니라.](출25:37). 저와 여러분이 이 순례의 길을 가는 동안 주님은 빛을 주시고, 성령의 전으로 삼으신 우리 몸 안에 역시 등잔불에 불을 붙여 주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어둠 속에 거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빛을 환하게 비추어 주십니다. [주께서 내 등잔불을 밝히시리니 [주] 내 하나님께서 내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성도들을 빛들로 삼으신 주님은 궁창의 별들처럼, 찬란한 보석처럼 빛나게 하십니다(빌2:15).

16절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너희의 선한 행위를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16). 선한 행위들은 먼저 밝히 드러납니다. 이 빛은 거부당할 수도 있습니다. 비난과 모욕과 채찍과 죽음으로 되돌아 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사람들이 선한 행위를 보고 우리를 칭찬하고 인정해 주고, 높여 주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인 줄로 압니다. 그래서 자신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지 못하면 ‘믿음의 삶’을 살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의 선한 행위를 하고 빛을 비추면 대부분은 대적합니다. 박해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목회자들이 이 부분을 설교 할 때 성경이 말하는 것과 정반대로 해석해서 가르칩니다. [참으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다 핍박을 받을 터이나](딤후3:12). 베드로나 스데반이나 바울이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추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를 보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까? 돌로 치고, 감옥에 넣고, 매질하고, 죽이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이나 다니엘이 선한 행위로 사람들 앞에 빛을 비추었을 때 사람들은 그들의 선한 행위를 보고 그들을 죽음에 넘겨주었습니다. 선한 행위의 빛이 비추어 질 때 그들은 빛을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양심에 가책을 받거나 이를 갑니다. 성도들의 그런 행위들은 하나님의 의와 거룩함이 그들을 비춘 결과입니다.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모욕과 박해를 받는 것은 세상이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거룩하심을 드러내는 동시에 자신들의 죄악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성경적 의미입니다.

[또한 이와 같이 어떤 사람들의 선한 행위들도 먼저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들도 숨길 수 없느니라.](딤전5:25). 우리는 선한 행위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모든 일에 네 자신을 선한 행위의 본으로 보이며 교리에서 부패하지 아니함과 신중함과 성실함을 보이고](딛2:7). 선한 행위의 본을 보임으로써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불신자들은 이 세상에서가 아니라 심판석 앞에서 성도들의 선한 행위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성도들이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심판 때에는 불신자들로부터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방인들 가운데서 너희 행실을 정직하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너희더러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너희의 선한 행위들을 보고 징벌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주님께서 우리를 빛으로 삼으신 것은 ‘주님에 대한 찬양을 보여 주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주님을 세상에 보여 주는 빛입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함 받은 세대(世代)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보여 주게 하려 하심이라.](벧전2:9). 주님께서 우리를 어둠에서 불러 내셔서 주의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이유와 목적을 분명히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빛을 주신 것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이것은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다.](요12:4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어둠 가운데 있고, 어둠의 일을 하고, 형제를 미워한다면 그는 등불이 꺼져 버린 사람과 같습니다. 우리는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행위를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자.](롬13:12). 빛 가운데서 걸어야 합니다. [이는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기 때문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걸으라.](엡5:8).

주님은 성도들에게 빛을 뿌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분께서/ 의로운 자를 위하여 빛을 뿌리시고 마음이 올바른 자를 위하여 즐거움을 뿌리셨나니](시97:11). 이로써 성도들은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오는 완전한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약1:17). 빛의 자녀요, 빛이라는 말씀을 받았지만 전혀 빛을 비추지 못하는 성도들, 교회들을 위해서 우리는 울며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은 자신의 얼굴로 우리에게 빛을 비추시고,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께서 자신의 얼굴로 네게 빛을 비추사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고](민6:25). 주님이 우리에게 빛을 주시고, 은혜 베푸시는 것은 주님의 선하신 뜻이며, 완전한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빛을 풍성하게 허락해 주시기를 구해야만 합니다.

성도들이 빛을 얻는 방법은?

첫째, 말씀들을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주의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주며 이 빛이 미련한 자에게 명철을 주나이다.](시119:130). 말씀들이 들어오면 빛을 얻습니다.

둘째, 주님과 깊은 친교가 있어야 합니다. 기도와 묵상을 통해 주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이는 생명의 근원이 주께 있으므로 우리가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볼 것임이니이다.](시36:9). 주의 빛 안에서 빛을 보아야 합니다. 마귀는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하며, 거짓된 빛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외의 다른 출처에서 받은 빛은 모두 거짓입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기를, [그들이 그분을 바라보고 빛을 받게 되었으며 그들의 얼굴이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였도다.](시34:5)고 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주님으로부터 오는 빛을 받아야 합니다.

셋째,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등잔불을 밝혀 주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내 등잔불을 밝히시리니 [주] 내 하나님께서 내 어둠을 밝히시리이다.](시18:28). 주님은 성령을 통해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고, 지각의 눈을 밝히시는 분이십니다. 주께서 빛을 보이실 때 우리는 희생물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주]시로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빛을 보이셨으니 밧줄로 희생물을 제단 뿔들에 맬지어다.](시118:27). 우리는 이미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희생물들에 대해서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몸(롬12:1-2), 기도의 희생물(시141:2,잠15:8), 감사의 희생물(시107:22, 시116:17), 찬양의 희생물(시54:6, 히13:15), 기쁨의 희생물(시27:6), 선을 행하고 나누어 주는 것(히13:16) 등이 바로 빛을 성도들이 제단 뿔들에 매어야 할 영적 희생물들입니다. 참된 경배는 바로 주님이 받으실 영적 희생물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빛을 보여 주신대로 우리는 경배를 드리고, 인도함을 받아 길을 갑니다. 주님께서 빛을 보여 주신 대로 우리는 빛을 받아서 삽니다. 성령의 빛은 전적으로 기록된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말씀의 빛입니다. [/그들이/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따를지니 만일 그들이 이 말씀에 따라 말하지 아니하면 그 까닭은 그들 안에 빛이 없기 때문이니라.](사8:20). 일어나 빛을 발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받은 빛의 말씀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요, 빛의 말씀으로 어두운 세상에 환히 비추어 주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을 읽고 마치겠습니다.

쉽고 단순한 진리,

말씀침례교회(http://av1611.net)

Pastor. Peter Y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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