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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
누가복음 3. … 침례 요한의 전파(마 3:1-12; 막 1:1-8; 요 1:19-28) …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침례를 전파하니.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8/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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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역개정] 누가복음 3장 – 한국컴퓨터선교회
(눅 3: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 …
Source: kcm.co.kr
Date Published: 7/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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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누가복음 3. 3. 1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6/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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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3 KLB – 요한의 전도 시작 – 로마의 – Bible Gateway
누가복음 3. Korean Living Bible · 3 로마의 티베리우스황제가 다스린 지 15년째가 되던 해에 본디오 빌라도는 유대 총독으로 있었다. · 안나스와 가야바는 대제사장으로 …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20/2021
View: 7219
누가복음 3:3 – 다국어 성경 Holy-Bible
누가복음 3장 · 가이난, 아박삿, 셈, 노아, 레멕, · 므두셀라, 에녹, 야렛, 마할랄렐, 가이난, · 에노스, 셋, 아담에게 이르는데,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Source: www.holybible.or.kr
Date Published: 1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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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3/16(월) “누가복음 3:1-20” / 작성
<찬송가> 273장 누가복음 3장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세례요한의 역할과 사역을 소개함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400년 이상 하나님의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9/23/2021
View: 5837
누가복음 3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 Daum 카페
누가복음 제 3장 =====3:1 디베료 가이사가. … 마태와 마가와 마찬가지로 누가는 사 4-:3이 분명히 세례요한의 사역을 언급하는 것으 로 생각했다.
Source: m.cafe.daum.net
Date Published: 11/3/2022
View: 5005
누가복음 3장 – 합당한 열매 – 동행 여정
오늘 누가복음 3장에는 세례요한의 외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Source: www.thegospelpastor.com
Date Published: 1/27/2022
View: 7253
쉬운성경 누가복음 03장 – HANGL NOCR
3:1 <세례자 요한의 선포> 디베료 황제가 다스린 지 십오 년째 되던 해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고,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이었습니다.
Source: nocr.net
Date Published: 11/24/2021
View: 4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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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누가 복음 3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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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2. 6.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47RA_w7ltM
누가복음 3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1)침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ㄱ)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1)침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 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1)침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 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생각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1)침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1)침례를 베푸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그 밖에 여러 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 왕 헤롯은 그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자기가 행한 모든 악한 일로 말미암아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그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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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디베료 가이사가 위에 있은지 열 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7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
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그러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 대답하여 가로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것이니라 하고
12 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하여 와서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 가로되 정한 세 외에는 늑징치 말라하고
14 군병들도 물어 가로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가로되 사람에게 강포하지 말며 무소하지 말고 받는 요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
15 백성들이 바라고 기다리므로 모든 사람들이 요한을 혹 그리스도신가 심중에 의논하니
16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
17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18 또 기타 여러가지로 권하여 백성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19 분봉왕 헤롯은 그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과 또 그의 행한 모든 악한 일을 인하여 요한에게 책망을 받고
20 이 위에 한 가지 악을 더하여 요한을 옥에 가두니라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쌔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25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26 그 이상은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27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28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29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30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31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33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34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35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36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37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2015/3/16(월) “누가복음 3:1-20” / 작성: 이정로
누가복음 3:1-20
273장
누가복음 3장은 당시의 시대상황과 세례요한의 역할과 사역을 소개함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400년 이상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던 때입니다. 그 캄캄한 영적 암흑을 뚫고 하나님의 말씀이 세례요한에게 임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세례요한이 한 일이 무엇입니까? “회개의 세례” 를 전하며 주의 길을 예비하는 것이 요한의 사명입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산들을 낮게 하고 굽은 것을 곧게 하고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는 것” (4절)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선민사상을 깨트리고 그들을 예수님 앞으로 가도록 준비시키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은 유대인으로 태어난 자체가 이미 하나님의 백성 된 표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복주시고 자신들을 돌아보는 일만 생각하지 자신들이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야 되는 대상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와서 무엇이라고 전합니까?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합니다. 그리고 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너희도 이방인과 똑같이 구원이 필요한 사람들이며 물로 씻어야 되는 더러운 존재며, 회개해야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7절을 보십시오.
“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무슨 말입니까? 지금 모습으로는 죄사함의 세례를 받을 수 없고 오히려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밖에는 전해 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라는 혈통, 종교적 행위 때문에 자신이 의롭고 하나님의 나라를 맞을 자격이 있다는 고집을 버리고 자신들이 회개의 대상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헛된 자부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죄인임을 인정하고 돌이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풀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요한이 이 말을 하는 의미가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자신이 지금 사람들을 회개케 하기 위해 물로 세례를 주고 있지만 자신이 주는 세례는 사실 그 뒤에 오시는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의 준비과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요한이 주는 세례는 유대인들에게 ‘너희도 구원이 필요하다’ 라는 메시지입니다. 물세례는 그것밖에 못합니다. 그러나 요한 뒤에 오실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실제적으로 구원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심판도 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는 요한처럼 물로 주는 세례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베푸는 세례이며 불로 주는 세례입니다. 그 앞에 회개하고 주를 영접하면 놀라운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지만 그분을 거부하고 배척하면 심판밖에는 없다는 것이 지금 요한이 예수님의 세례와 자신의 세례를 비교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세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고전12:13)
예수님이 주시는 성령의 세례를 받으면 우리가 주님과 한 몸이 됩니다. 주님과 연합되는 신비한 구원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구원의 의미가 참으로 풍성하지만 그 중에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창6:3절을 보면 범죄한 인생에게 성령이 떠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의 육신이 됨이라.”
하나님의 성령이 인생과 함께 할 수 없어서 떠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요? 그들이 육신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이란 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거스리는 인간의 내적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이 떠나면 인간은 자신이 주인이 되어 기껏해야 100년의 세월을 살다가 영원한 멸망으로 갑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직접 성령을 보내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버지가 약속하신 성령이며 그렇게 예수님이 그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시는 것을 성령으로 세례를 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예수님이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면 어떻게 된다고요?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이었던 죄인 된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으로 묶여집니다. 그래서 우리 혼자만 있을 때는 아무리 결심하고 노력하고 다짐해도 새로운 삶을 살 수 없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없었는데 성령의 세례를 받게 되면 새롭게 살 수 있습니다. 왜요?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고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님이 항상 악할 뿐인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거룩한 소원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과 연합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이며 복인지 모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성령의 세례만이 항상 악한 생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살던 우리를 주님과 묶어 하나 되게 해서 마음을 바꾸어 놓습니다.
예수님과 하나 되게 하는 이 세례를 받았습니까? 다시 말하면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그럼 그것처럼 큰 복이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가 하나입니다. 그 둘을 갈라놓을 방법이 없습니다. 환난이 주님과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위험이나 칼이나 적신이 우리를 어떻게 하지 못합니다.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와 하나 되신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그렇게 됩니다.
이것이 성경이 얘기하는 성령세례입니다. 성령세례를 어떤 외적인 특별한 체험과 기억할 만한 경험으로 정리하면 안 됩니다. 육신에 불과한 우리에게 성령이 오셔서 그리스도와 한 몸 되게 한 것, 주님과 연합되게 한 것으로 정리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 몸 되었기에 비록 아직 육신의 정욕이 남아 있고 이생의 자랑과 안목의 정욕이 남아 있지만 그 욕심대로 살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끊임없이 말씀으로 간섭하시고 역사하셔서 우리를 회개하게 하시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실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시고 그 감격을 회복하십시오. 그리고 그 감격으로 성령세례 받은 자로서의 우리의 삶을 마땅히 우리와 하나 된 주님의 뜻에 순종하여 거룩과 영광과 생명을 향하여 힘 있게 나아갑시다. 더 이상 자신이 주인 되어 수많은 좌절과 절망을 반복하는 삶을 고집하지 마시고 주님 앞에 항복해서 회개하고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과 하나 되는 성령세례를 받고 성령충만의 삶을 삽시다. 그러면 심판이 아닌 구원의 놀라운 삶이 열릴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주님의 고난과 부활을 기리는 사순절 넷째주간을 맞습니다.
어리석은 저희는 자신이 회개해야 할 죄인이라는 것조차 잊은 채 종교적 행위와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잊은 채 나 자신이 주인 되어 살아온 삶을 회개합니다. 입술로만 회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합당한 열매를 맺겠습니다. 아직 육체의 죄성이 남아있지만 끊임없이 말씀으로 간섭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주님과 하나 된 성령세례를 받은 자로서 자신의 자리에서 불의와 불법을 버리고 움직이는 십자가의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함께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1. 하나님의 말씀이 임한 요한이 수행해야할 사역은 무엇입니까?
2. 요한이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요구한 것은 무엇입니까?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로서의 삶은 세리와 군인에게 그 직업을 포기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불법을 버리고 정당한 삶을 사는 변화였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맺어야 할 회개에 합당한 열매는 무엇일까요?
4. 요한의 세례와 예수님의 세례는 어떻게 다릅니까?
5. 성령 세례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3장 주석
누가복음 제 3장
=====3:1
디베료 가이사가…열 다섯 해 – 이 구절에 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가 다소 다
르다. 그것은 디베료 가이사의 통치 연대 때문이다. 디베료는 전임 황제이자 양아버지
인 가이사 아구스도가 A.D. 14년 8월 19일에 죽자 그의 뒤를 이어 황제 자리에 즉위했
다. 당시 근동 지방에서는 왕위에 즉위한 때부터 연대를 계산하지않고 통치한 햇수에
의해서 연대를 계산했다. 율리우스력에 의하면 디베료는 A.D. 28년 8월 19일에서 12월
사이에 즉위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열 다섯 해’는 로마의 일반적인 연대계산법으로
계산할 때 A.D. 28년 8월에서 A.D. 29년 8월까지가 된다. 그러나 안디옥 태생인 누가
가 시리아의 연대 계산법(군주의 통치 연대를 셀루시드(Seleucid)시대부터 사용해온
방법에 따라 계산하는 법, 통치의 기원을 9, 10월로 잡음)을 따랐다면 ‘열 다섯 해’는
A.D. 27년 9월 21일부터 A.D. 28년 10월 8일까지가 된다. 그렇지만 저자 누가 자신이
속해 있는 문화적 배경이나 이책의 독자들을 고려하건대 로마의 계산법을 따랐을 것이
라고 생각된다.
본디오 빌리도 – 이 빌라도는 A.D. 26-36까지 유대의 제5대 총독으로 있었다. 이
‘총독'(* , 헤게모뉴온토스)은 고대의 로마 지방 장관
(procurator)을 가리킨다.
헤롯 – 이 헤롯은 보통 헤롯 안디바스(Herod Antipas)로 알려졌다. 그는 아켈라오
의 친형제이며 헤롯 대제의 아들이다. 헤롯 안디바스는 아켈라오의 유언에 의해 갈릴
리와 베레아 지방의 분봉왕으로 지내다가(B.C. 4-A.D. 39) 고울지방의 리용으로 추방
당하여 폐위된다(Hendriksen). 사복음서 상에 나타나는 헤롯은 대부분 안디바스를 가
리킨다.
빌립 – 빌립 역시 헤롯대제의 아들이다. 그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의 클레오파트라이
다(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가 아님). 그는 팔레스틴의 북서부 지방 이두래(Iturea)와
드라고닛(Traconitis ; 바위돌로 된 마당이라는 뜻)을 B.C. 4 – A.D. 33/34까지 통치
했다.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빌립은 훌륭한 인격자이고 선정(善政)을 베풀었던
왕이라고 한다. 그는 바네아스를 고쳐 가이사랴 빌립보라 명명하고 벱새다를 고쳐 벱
새다 쥴리아스로 명명했다.
=====3:2
안나스와 가야바 – 안나스는 A.D. 6년로마 황제 구레뇨에 의해 대제사장에 임명되
어 활동하다가 A.D. 15년 로마 황제 발레리우스그라투스(Valerius Gratus)에 의해 해
임되었다. 안나스가 해임되고 파비(Pabi)의 아들 이스마엘과 엘르아살(Eleazar)과 가
미데스(Gamithes)의 아들 시몬(Simon)이 A.D. 18-19년 사이와 A.D. 25-26년 사이에 그
뒤를 바로 계승했다. 그리고 그후 안나스의 조카 요셉이 그 뒤를 계승했는데 이 대제
사장이 바로 가야바(Caiaphas)이다(Jos. Antiq. 20, 198). 가야바는 A.D. 18-36년까지
대제사장직에 있었다. 이스라엘에서는 원래 대제사장직이 종신직(민 35:25) 이었으나
로마인들에 의해서 정치적 목적에 맞게 통제되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율법에 따라
대제사장직을 계속해서 종신직으로 여겼다. 따라서 유대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에서는
로마정부에 의해 해임되었지만 유대인에게는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추앙(推仰)되는 대
제사장과 로마정부에 의해 새로 임명된 대제사장이 함께 남아있게 되었고, 이로 인해
‘대제사장들’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Jeremias, Jerusalem, 157). 안나스는 봉
직 기간이 길었고 권력과 영향력이 산헤드린에 강력하게 미쳐, 그는 이스라엘 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가야바는 또한 안나스의 사위이기도 하였다. 이런 여러 이
유로 공식적으로는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안나스가 행사했다
(요 18:13-29).
빈 들 – 세례 요한은 황량하고 거친 빈 들에서 기거했다(1:80). ‘빈 들’은 유대의
황무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서쪽의 유대산지와 동쪽의 사해 그리고 요단 저지대 사이에
있는 기복이 심한 지형을 일컫는다. 이 지형은 석회질로 이루어져 땅의 굴곡이 심하고
자갈과 암석 조각이 많이 있다. 특히 이곳은 광야 특유의 잡목들이 많고 독사들도 많
이 있다. 이 ‘빈 들’ 북쪽으로 길게 뻗으면 요단강과 합류하게 된다(Hendriksen). ‘빈
들’이란 유대인들에게는 애굽을 탈출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방랑했던 장소로 연상되는
곳이다. 또한 이스라엘 사람들은 ‘빈 들'(광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종말과 연관된 것
을 연상하기도 한다(사 40:3;호 2:14).
‘말씀’을 나타내는 헬라어 ‘레마'(* )는 실제로 말하여진 말씀(the actual
words spoken)을 의미하는 바 세례 요한이 활동하기 시작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
함으로’ 써였다. 결국 이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사역을 시작하게도 하셨지만 사역을
끝마치게도 하실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모든 것의 끝이다(계
22:13).
=====3:3
요단 강 부근 – 하나님은 수세기 동안의 침묵을 깨시고 요한에게 임하여 당신의 말
씀을 대언케 하셨다. 그런데 요한이 주로 요단 강변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은 ‘빈 들’
의 특성상 땅이 메마르고 바위가 많으며 물이 귀하였으므로 세례를 베풀기에 적합한
물을 찾아 요단강으로 나왔기 때문이다(요 3:22). 한편 간과할 수없는 것은 요한은 한
곳에서만 머물러 전도하지않고 각 처를 두루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파했다는 것이다.
저자 누가 역시 다른 복음서 저자보다 요한이 순회 전도자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강하
게 시사한다.
회개(悔改)의 세례 – 세례요한이 베풀었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다. ‘회개’를 뜻하
는 헬라어 ‘메타노이아'(* )의 동사형 ‘메타노에오'(*
)는 ‘마음을 바꾸다’, ‘회개하다’라는 뜻이다. ‘회개’는 요한이 전하는 메시지의 핵
심으로서 모든 죄악을 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불세례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했다.
부언컨대, ‘회개의 세례’란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가 죄사함을 얻는다는 약속의 구체적
인 표시였다. 왜냐하면 그 세례는 바로 메시야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예표하기 때문
이다(3:1-20, 주제 강해 ‘세례 요한의 세례’ 참조). 그는 심판이 임박했음을 선포하
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할 것을 요구한다. 그
의 권고는 종말론적 계시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긴박성을 보여준다.
=====3: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 세례 요한의 출현과 그의 사역은 사 40:3 말씀의 예
언성취이다. 이 이사야서의 인용은 사복음서가 모두 공통적이다. 그러나 누가만이 사
40:3-5전체를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쿰란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광야에
서 격리된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한 이론적인 근거로서 사 40:3을 제시했다. 그들은 광
야에 격리되어 율법을 계속해서 연구함으로써 주의 길을 예비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마태와 마가와 마찬가지로 누가는 사 4-:3이 분명히 세례요한의 사역을 언급하는 것으
로 생각했다. 한편 ‘책’을 나타내는 헬라어 ‘비블로스'(* )는 구약의 개별
적인 낱권의 책들을 가리키는 것이며 ‘비볼리온'(* )은 ‘두루마리’를 나
타내는 것이다.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평탄케 하라 – 이 인용 구절은 바벧론의 포로 생활을
끝내고 기쁜 마음으로 고국 유대 땅으로 돌아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주실 구속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부분이다. 바벧론과 유대 땅사이에는 시리아 사막이
있다. 이 사막을 통과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귀환하게 된다. 따라서 여호와의 구속의
행차를 맞이하기 위해 그 곳에 길이 닦여져야 한다. 그러므로 이 일을 전담할 하나님
의 사자가 행차를 위한 준비를 외치게 된다. 따라서 ‘…예비하라…평탄케 하라’라는
이 말은 좀더 정확한 의미에서 위대한 자유와 평강의 시대를 도래케 할 그리스도의
앞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의 출현에 대한 예언인 것이다. 이러한 시각에서 보게 될
때 세례 요한은 당연히 외치는 자의 소리이다. 하나님은 요한을 통하여 말씀하시며 메
시야의 오심을 위해 모든 백성들을 준비시키고 그를 맞을 채비를 갖추도록 촉구하신
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
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했다’고 외쳤다(사 59:1, 2). 그렇다면 주의 오심을
예비하고 평탄하게 하기 위해 제거되어야 할 것은 바로 죄이다. 왕의 행차를 위해 왕
의 사자가 먼저 길을 예비하고 평탄(平坦)하게 하듯이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회개하게 하고 그를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야
했다.
=====3:5
모든 골짜기가…평탄하여질 것이요 – 은유적 표현으로, 누가는 세례 요한과 메시
야 예수를 잘 대비해 메시야의 탁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고대에 왕의 행차가 골짜기
나 높은 산, 굽고 험한 길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행로를 평탄하게 만들었던 것
은 흔한 일이었다. 마샬(Marshall)은 ‘평탄하여지다’는 말이 교만한 이들의 낮아짐을
암시하며 ‘굽은’이라는 말은 비뚤어진 인간들을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라고 이야기한
다. 한편 렌스키(Lenski)는 ‘굽은’과 ‘험한’이라는 말에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의미가
비유적으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즉 ‘굽은’은 히브리적 표현으로는 ‘속이는'(*
, 아크자브)을 뜻하고, 이것을 곧게 하는 표현의 히브리어는 ‘정의’와 ‘공정'(*
, 미쇼르)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리고 ‘험한 곳’은 모든 종류의 악이 모여 있는
곳( , 르카심)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풀핏(Pulpit) 주석에서는 낮추어야
할 산을 바리새인들의 교만으로 비유하고 있고 메워야 될 골짜기들을 사두개인들의 도
덕적.종교적 무관심(無關心)으로 비유한다. 결국 이 비유들을 종합해 보면 이 구절은
인간의 죄된 심성의 교만과 거짓과 불의와 불신 등을 회개하고 정의롭고 순결한 심성
으로 구속의 메시야를 맞이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3 } 6 모든 윽체가 하나님왜 구웡하심을 보찌#. 투가는 이 부분을 %인역(낵췌 사 쐬
} 5에서 인용하였뉼데 그 전반부에는 ‘여호와의영광이 나타나고’란 구절이 수록되
어 있다. 위에서 모든 윽체(즉 유대인들만이 아닌 세계 만민)가 하나님의 구왼을 본다
는 것은 메시야로인한 세게적 구왼의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뚱한다. 이는 하나넘히 아
들의 성육신(노7쏠02따사건 따 공생애로써 구체화되며, 하도시대 이후오늘날까지 온
세상의 모든 육체를 향해 그
=====3: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 누가는 이 부분을 70인역(LXX) 사 40:5
에서 인용하였는데 그 전반부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란 구절이 수록되어 있
다. 위에서 모든 육체(즉 유대인들만이 아닌 세계 만민)가 하나님의 구원을 본다는 것
은 메시야로 인한 세계적 구원의 토대가 마련되었음을 뜻한다. 이는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incarnation)사건 및 공생애로써 구체화되며, 사도시대 이후 오늘날까지 온 세
상의 모든 육체를 향해 그 복음의 소식이 계속 전파되고 있고, 궁극적으로 마지막날
큰 구원에서 그 절정을 맞이할 것이다(Lenski). 이는 이방인에 대한 관심을 현져히 드
러내보이는 본서의 신학적 특징과도 그 맥을 같이 한다.
=====3:7
무리 – ‘무리’를 가리키는 헬라어 ‘오클로스'(* )는 ‘백성’을 가리키는
‘라오스'(* )와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리펠드(Lifeld)는 ‘오클로
스’가 ‘라오스’와 달리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모인 것을 말한다고한다. 누가는 여기서
이 무리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정확히 밝히지 않는다. 그
러나 마 3:7과 요 1:19, 24은 그들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었다고 밝힌다.
독사의 자식들아…진노(震怒)를 피하라 – 세례 요한의 메시지는 구약성경에 나타
난 선지자의 경고성 선포처럼 매우 날카롭고 엄하다. 이 설교는 마 3:7-10과 동일하
다. 여기서 ‘독사’는 사단을 상징하는 동물로서 악인(시 58:3-5;사 59:5)과 메시야를
적대하는 자(시 91:13)에 대한 표현이다. 요한은 세례받으러 나오는 사두개인과 바리
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세례를 받으러 나
오기는 했지만 진실된 회개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형식적인율
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심 등으로 부패한 마음이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독사의 자
식들’이라는 표현은 8절의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후에 예수
역시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힐난(詰難)했다(마 12:34). 그리고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라는 요한의 질문에는 그들이 세례를 받
으러 그에게 나아오는것이 마땅하지만 세례를 받으려는 마음의 동기에는 문제점이 있
다는 것을 지적한다. 하나님의 진노라는 표현은 구약 성경에서 30회 이상 언급되었고
신약 성경에서도 수차례 언급이 되었다. 이것은 불의와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롭고
거룩하신 반응이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그 진노를 때마다 일마다 표현하시지는 않는
다.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분이시
다(벧후 3:9).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되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는 반드시 엄
한 심판을 행하신다. 또한 마샬(Marshall)은 지적하기를 이 질문은 수사적 질문으로서
종말에 있을 마지막 심판이 이러한 형태의 외적 종교예식(religiousrite)으로도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 상황임을 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한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세
례는 심판을 모면하기 위한 방도가 아니라 회개의 표현으로서 촉구되었던 것이다.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고 – 성경에서 ‘열매’는 사람들의 행동을 통하여 나타나는
선악간의 결과들을 표현하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시 1:3;렘 17:8;행 26:20). 나무는
그 나무에 맞는 열매를 맺는다. 따라서 진정한 회개는 그 구체적 결실을 드러내게 마
련이다. 물론이 열매는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으나 내적변화에 의해 외적으로 표현되
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인적(全人的) 변화가 일어나야만 한다. 회개란 죄에 대한 단
순한 외적 고백만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격적 변화, 곧 하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품성의 변화들이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한다.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돌들로도…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 종교적 특권이나
혈연적 계보나 의식(儀式)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유대인은 단순히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와 율법에 따라 할례를 받은 자들이라는 이유로 구원받을 수 있으리라
는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따라서 패역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이 요구하는 진정한
회개에서 자신들을 제외시키려고 했다. 세례 요한은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칼날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하나님은 첫인간 아담을 흙에서 취하셨다(창 2:7). 그렇기 때문에
빈 들이나 강 가의 돌들을 통하여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삼으실 수 있는 것이다. 진
정한 아브라함의 후손은 혈통에 따른 것이라기보다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을 가리
킨다(갈 3:7). 렌스키(Lenski)와 슈어만(Schurmann)은 이 ‘돌들’이 바로 이방인들을
나타낸다고 한다. 어쨌든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혜와 주권적 권능을 강조한 말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통해 확연히
드러난다. 따라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진실된 회개이다. 우리의 구원은 외적조건
에 있지 않고 진정한 회개를 통한 삶의 변화에 있기 때문에 항상 우리에게는 바로 삶
에의 결단이 요청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을 가지고 인내하시면서 모두가 아
브라함의 자손이 되기를 원하고 계신다(벧후 3: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3:9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 8,9절에서 요한의 설교는 두 가지의 이미지(image)
로 묘사된다. (1)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찍혀서 제거된다는 것
이다. 이후에 예수도 좋은 열매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에 대해서 언급한다
(6:43-45). 그리고 예수는 비유로써 열매를 맺지 않은 나무를 찍어버리는것에 대해서
말한다(13:6-9). 요한은 아마도 ‘나무’라는 이미지를 통해서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로
비유된 이스라엘을 연상케 했을 수도 있다(사 5:1-7). (2) 이미 도끼가 ‘뿌리에 놓였
다’는 것은 당장에 어떤 급격한 행동이 취해진다는 것을 상징한다. 다시 말해서 나무
전체가 찍혀서 곧장 불에 던져진다는 것이다(Liefeld). 이 구절에서는 상황의 긴박성
과 다급함이 강조되었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으며 일순간 아차 하는 사이에 나
무는 찍혀 넘어가게 되고 만다. 우리는 세례 요한이 구약의 선지자인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는 이사야와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의 앞날의 운명을 감지하고 있었을 것이
다. 세례 요한이 활동했던 시기는 A.D. 30-32년 사이이다. 결국 세례 요한의 경고의
메시지가 있은 지 약 40년 후 A.D. 70년 예루살렘은 멸망하게 된다. 이러한 운명을 깨
닫지 못한 유대인들은 세례 요한의 경고를 경히 여겼다. 그들은 회개하고 믿기에 적합
한 때를 놓치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오히려 그들은 회
개하여 좋은 열매를 맺기는커녕 악의 싹을 계속해서 키우고 있었다.
=====3:10
무리가 물어 가로되 – 세례 요한의 설교에 대한 무리들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무
리들 중에는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구원얻고가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회개
에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해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물었던 것
이다. 이 질문을 한 무리는 세례 요한에게 질문한 세 무리중 세리와 군인들을 시시한
나머지 사람들로 짐작된다.
=====3:11
옷 두 벌 있는 자는…그렇게 할 것이니라 – 세례 요한은 진정한 회개란 사랑과 정
의를 실천하는 구체적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좋은 열매’란 작
은 사랑의 실천으로부터 나타난다. 본문에서 ‘옷’을 나타내는 ‘키톤'(* )은
기다란 겉옷 ‘히마티온'(* )안에 입는 옷을 가리킨다. 팔레스틴 지방은
일교차가 심해 밤에 기온이 떨어질 때 추위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여벌옷을 가지
고 다니거나 껴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따라서 요한은 이러한 여벌 옷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삶의 결단과 실천으로써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어 줄 것을
요청한다. 또한 음식물에 대한 경우에도 동일한 원칙이 주어졌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주변 대다수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정황들을 보고서 그것을 전제로 한 이야기임이 분
명하다. 이웃 사랑에대한 계명은 이미 율법 시대 때부터 가장 중요한 규범 중 하나로
규정되어 왔었다(레 19:18). 그리고 ‘나눠줄 것이요’를 나타내는 ‘메타도토'(*
)는 ‘함께 나누다’라는 뜻이며 ‘복음을 나눈다’는 의미도 포함한다. 한편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인의 올바른 물질관에 대해 배우게 된다. 재물은 축적만을 목표
로 하는 것이서도 안 되고 자신의 가족만을 위해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필요한 만큼
정당하게 사용되고 남은 몫은 주위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사용될 때 그 재물은 귀한
가치를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마 25:31-46;딤전 6:18;약 2:14-16).
=====3:12
세리들 – 세리들은 유대인들의 미움의 대상이었으며 심지어 ‘죄인들’이라 지칭되었
다. 이들은 로마 정부로부더 관세나 통과세 등 각종 세금을 징수하는 권한을 위탁받고
같은 동족인 유대인의 주머니를 털어갔다(막 2:14 주석 참조).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
를 위해 로마에서 요구하는 금액보다 더 많은 액수를 징수하였고 그 일을 위해 직접
세금을 징수하는 하급 세리를 고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세금 관계등의 일로 그
들의 압제자인 로마 사람들과 접촉하였다. 이로인해 그들은 ‘부정한 사람들’로 간주되
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마 11:19) 요한도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주었다. 세례 요한은 세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해 정죄하는 입장에 서는 대신, 기
존 상황을 직시하여 인정할 부분은 인정하되 다만 가능한 한 최선의 개선책을 제시하
고 있다.
=====3:13
정한 세…말라 – 요한은 사회 제도 자체를 전복시키려 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
적인 폐단을 시정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사회적 폐단은 개인의 탐욕스런 마음에서 비
롯된 것이므로 세리들은 그들의 행위가 근본적으로 변화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따
라서 세리들이 그들의 직업을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요한의 요구는 그들이 지위를 남
용하거나 개인의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위해서 지나친 과세(課稅)를 하지 말고 공평하
고 정의롭게 하라는 것이었다. 이 말씀은 현대에 있어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공정하고
정직하게 법을 지키며 법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받아들여질 수 있다(레
19:35, 36;잠 11:1).
=====3:14
군병들도…족한 줄로 알라 – 본문에서 ‘군인’을 나타내는 헬라어 ‘스트라튜오메노
이'(* )는 아마도 로마 군인이 아니라 국내 정세를 담당하
는 유대의 군인들을 언급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이 군인들은 업무상 특정 범죄를
저지를 수 있는 소지가 많았다. 예컨대, 그들은 세리들의 징세 업무를 도와 수탈을 하
는 경우가 많았다. ‘강포'(强暴)를 나타내는 ‘디아세이오'(* )는 ‘맹렬
히 흔들다’, ‘협박하다’, ‘강탈하다’라는 뜻을 내포한다. 또 ‘무소'(誣訴)를 가리키는
‘쉬코판테오'(* )는 ‘억압하다’, ‘착취하다’라는 뜻이다. 즉 이들
은 강압적 수단으로 백성들에게 돈을 강탈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웠던 것이다. 이는
당시의 군인들이 얼마나 폭압적이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군인들은 월급이
매우 적어 생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따라서 그들의 부정은 갈수록 심화되었다고
한다. 한편 원어상 ‘우리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메이스'(* )는 강조 어구
로서 군인들의 심한 도덕적 갈급함을 암시해 주고있다. 따라서 이들에게도 역시 요구
되는 바는 정의롭고 공평한 회개의 열매이다. 이와같이 요한이 각 집단에게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어떠한 직업에 종사하든지 선을 위해 일을 해야지 악을 위해서는 안 된다
는 것이다. 실로 세 무리의 질문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진정한 사랑을 나타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으며 이 사랑은 각자가 처한 일상적인 생활에서부터 맺혀져야
할 회개의 열매들인 것이다.
=====3:15
요한을…의논하니 –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메시야가 곧 도래하리라는 기대가 팽배
했다. 더욱이 세례 요한의 메시지 가운데에 메시야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해서 선포되
자 그들의 메시야 대망은 최고조에 달했다. 그리고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고조되는 메
시야 대망의 분위기 속에서 세례 요한이 바로 그 메시야가 아닐까하고 생각하는 사람
들이 생겨났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의 말씀 선포에는 그만큼 능력과 확신이 있었으며
그의 세례는 지대한 영향력을 미쳤기 때문이다. 따라서 백성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일
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이 유다 지파 출신도 아니었으며 또 아무런 기적을 일으키지
도 않았기 때문이다(사 11:1;29:18, 19).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에는 엄청난 능
력이 있어 백성들을 반신 반의(半信半疑)하게 만들었다. 요 1:19-25에는 세례 요한에
대한 사람들의 견해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3:16
나는 물로…세례를 주거니와 – 요 1:20 에서는 세례 요한이 메시야가 아님을 스스
로 강하게 부인하는 내용이 나오는 반면, 여기서는 자신의 사역과 메시야의 사역을 비
교함으로써 메시야의 탁월성을 밝히 드러내 보인다. 고대 세계에서 물은 흔히 정결케
하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즉 물은 정화(淨化) 의식, 예를 들면 제의적으로 정결함을
인정하는 의식에 사용되었다. 이 의식에서는 가능한한 흐르는 물이 사용되었다. 한편
정화 의식 외에도 물은 때로는 특별한 형태의 의식의 집행 과정에서 신성한 용도로 쓰
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의적인 예식이 죄를 씻어 버리는 것을 상징하였다고 보
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세례 요한이 물로 세례를 베푼 것은 메시야께서 오셔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기 전까지의 예비적인 성격을 띤 것이었다(3:1-20, 주제 강
해 ‘세례 요한의 세례’ 참조).
신들메를 풀기도 – 근동과 그리이스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맨발로 다니거나 샌달
을 신고 다녔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가거나 혹은 예배나 애곡, 금식 등을 할 때는 보
통 샌달을 벗었다. 이때 노예들은 주인들의 샌달을 묶거나 풀어주며 또 필요하지 않을
때는 샌달을 집으로 가져갔다. 이렇듯 주인이나 주인의 방문객들의 신발을 풀고 묶어
주며 깨끗하게 관리하는 것은가장 낮은 노예의 의무였다. 요한처럼 이렇게 능력있고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이 발에 신기운 하찮은 신발끈조차 풀어드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다면 도대체 예수는 얼마나 위대한 분이란말인가?
성령과 불로 – 성령 세례와 불 세례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원문을 보면
헬라어 전치사 ‘엔'(* , ‘…안에’ 혹은 ‘…로써’)이 ‘성령’과 ‘불’을 동시에 받
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학자들은 세례 요한의 이 예언이 바로 욜 2:28의 성취인 오순
절 성령 강림 사건(행 1:5)을 뜻함이 틀림없다고 이야기한다. 성령이나 불과 같은 사
역이 심판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화(purification) 작업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 성경의 여러 구절들을 살펴보면(사 40:3;겔 36:25-27;욜 2:28,
29) 성령은 정결케 하고 새롭게 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으며 또한 불은 심판과 새롭게
함(refinement)이나 정죄를 상징하는 말로 사용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본문에서도 성
령과 불은 이러한 복합적 의미로 쓰인 듯하다. 또한 그렇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성경에
서 성령은 분명히 메시야와 관련되어 언급되었다(사 11:1, 2). 메시야께서 오시면 그
는 성령의 사역을 통하여 역사하실 것이었다. ‘불세례’에 대해서는 행 1:4, 5의 주제
강해에서 상세히 다루기로 하자.
=====3:17
손에 키를 들고…불에 태우시리라 – 성령과 불의 연관성을 설명하기 위해 요한은
농사 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를 든다. 농부들은 키를 가지고 곡식의 열매를 키질한
다. 그러면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이 구별되어진다. 무거운 것(알곡)은 키에 남게 되
어 타작 마당에 쌓이게 되고 가벼운 것(쭉정이)은 모아져 불살라지게 된다. 그리스도
께서 모든 신자와 불신자를 이렇게 구분하실 것이다. 즉 그가 재림하실 때 타작 마당
을 정(淨)하게 하듯이 심판의 마당을 정하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한편 ‘꺼지지 않는 불’이라는 말은 영원한 심판과 멸망을 가리킨
다(욥 20:26;사 34:9, 10;66:24;마 5:22;13:42, 50;막 9:43-48). 그리고 이러한 추수
와 타작이 심판과 관련되어 묘사된 예는 성경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나는 바이다(시
1:4;잠 26장;사 41:15;렘 15:7;계 14:14-20). 요한의 이 경고는 매우 엄중한 것이었
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야의 심판이란 자신들과는 무관하며 오로지 이방인들에게만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은 유대인들의 왜곡된 특권 의식을 지적하
고는 회개를 통하여 타작 마당의 심판에 대비하도록 경고한다. 이와같은 요한의 예언
은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재림하셔서 세상을 불로 심판하시는 날에 성취될 것이다.
그래서 그때 예수께서 악인과 선인을 구별하시고 악인을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있
는 지옥으로 던지실 것이다(벧후 3:7).
=====3:18
좋은 소식을 전하였으나 – 요한의 메시지는 신랄한 경고와 책망이었음과 아울러
‘좋은 소식’이었다. 타작 마당의 심판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명확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엥겔리제토'(*
)는 사복음서에서 줄곧 ‘복음을 전파하다’는 내용으로 사용된다. 이
처럼 세례 요한은 메시야를 통한 절대적 구원의 길을 제시하고 자신의 사역을 마감하
게 된다.
=====3:19
분봉왕 헤롯은…책망을 받고 – 여기 헤롯은 1절에서 등장한 헤롯 안디바스(Herod
Antipas)이다. 요한은 백성에게는 ‘권하여’ 말씀을 전하였지만 헤롯에게는 ‘책망’을
했다. 요한의 책망은 헤롯의 무분별한 삶을 청산하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촉구하
는 것이었다. 헤롯은 A.D. 26년경 그의 첫번째 부인인 아라비아 왕 아레타스(Aretas)
의 딸을 버리고 그의 조카이자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이것은 유대
적 전통으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패륜(悖倫)이었다(레 18:16;20:21). 또한 헤롯
의 난잡한 생활과 악행은 유대 백성들에게 적지 않은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요한의
헤롯에 대한 공공연한 책망은 많은 백성들의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백성들의
불만과 요한의 직선적인 공격은 헤롯의 권력 구조에 위기감을 조성하게 되었다. 따라
서 헤롯은 자신에 대한 반감 분위기의 진원지(震源地)라고 생각한 세례 요한을 체포하
게 된다. 이로써 헤롯의 악행은 절정에 이르게 된다.
=====3:20
한 가지 악을 더하여…옥에 가두니라 – ‘더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스티데
미'(* )는 ‘더하다’, ‘첨가하다’등의 뜻 외에도 ‘같은 종류의 또
다른 행동을 하다’, ‘계속해서 하다’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죄악을 뉘
우칠 줄 모르고 더욱 큰 죄악으로 빠져들어갔던 해롯의 타락된 심성을 잘 표현해주는
말이다. 세례 요한의 활동이 백성들 가운데서 계속되는 한 자신의 행동에 여러가지
제약이 따를 것이고 나아가 자신의 권위마저 땅에 떨어질 것을 염려한 해롯은 악한 권
력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세례 요한은 해롯의 탄압으로 옥에 갇히게 되고 결
국에는 해로디아의 농간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게됨으로써 헤롯 정권의 윤리적, 도덕적
상황은 참담할 지경에 이른다. 누가는 본서에서 요한을 체포한 죄를 해롯이 저지른 악
행 중에서 가장 악한 죄였다고 기록하였다. 그것은 해롯이 그리스도의 선구자인 요한
에게 손을 대어 그의 복음 전파를 침묵시켰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불의한 자들은 그
들의 잘못을 말하는 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발버둥친다. 한편 요한의 죽음에 관해서는
9:7-9과 막 6:17-29이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3:21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 예수는 12살때 예루살렘에 와서 랍비들과 변론한 후 고
향 나사렛으로 돌아가 성장 기간을 보너셨으며(2:52) 그후 착실히 성장하여 마침내 공
생에의 시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물러가고 예수께서 나타나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예수가 세례를 받으신 것은 깊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예수는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지만 죄인은 아니다(히 4:15). 따라서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은 회개
할 것이 있는 죄인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예수는 자신이 구원할 사람들과 스스로를 동
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마 3:15에서 예수는 자신이 세례를 받으므로 ‘모든 의(義)
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고 하며 세례를 받는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한편 마샬
(marshall)은 ‘백성들이 다 세례를 받을 새’ 예수께서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요한의
활동이 절정에 달한 것을 나타낸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세례가 요한의 사역의
정점에 위치하였다는 뜻이다.
기도하실…열리며 – 누가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나서 기도를 했다고 언급한
다. 이는 누가복음에 나타나는 예수의 첫번째 기도 모습이다(6:12;9:18, 29;22:41).
예수는 일생 동안 기도의 삶을 사셨다. 그의 혼신을 다하는 기도는 하늘을 열리게 한
다. 마가의 경우는 누가보다 하늘이 열렸다는 사건을 훨씬 더 생생하게 기술한다(막
1:10). 하늘이 열렸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이제 곧 계시나 말씀을 주시려고 한다는
상황적 암시를 나타내며, 하나님께서 오랜 침묵의 기간을 깨시고 다시금 그의 능력과
권위를 행사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울러 이는 예수께서 본래 하늘에 계시
던 분이며(요 3:13) 하나님과 하나이심을 암시한다.
=====3:22
성령이…비둘기 같이 – 구약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하시기 위하여 여
러가지 모습으로 현현(顯現)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출 24:10, 11;33:11;신
5:4). 그러나 이곳에서는 성령이 비둘기 같이 강림했다고 전한다. 누가는 성령이 임할
때 오직 예수만이 그것을 의식했고 그곳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의식하지 못하였다는
식의 별다른 보도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아마도 그곳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은
성령 강림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비둘기 같은 형체가 내려오는 것만을 보았을 것이
다. 한편 ‘비둘기’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는 학자간에 다양한 견해가 있으나 온유하
고 평화스런 속성을 나타낸다고 봄이 무난할 것이다. 한편 성경에 기록된 성령의 모습
과 그 의미를 도표화해보면 다음과 같다. 성령의 의 미모습 신자의 삶에서 죄를 소
멸시키며 성결케불하는 능력(사 6:1-7;행 2:3)영적인 삶을 충만하게 넘치도록 채우시
는 힘(요 7:37-39)신자를 당신의 것으로 소유하셔서 완전하게 영원한 교호(交互)를 약
속하심(엡 1:13) 기름 사역을 위해 부여되는 능력(행 10:38) 한편 이러한 성령 임
재는 구약의 예언대로 하나님이 그의 종에게 성령을 부어 주시리라하신 약속(사
42:1)과 성령이 그 새로이 생겨난 가지에 임할 것이란 예언을 성취시키는 것이기도 하
다(사 11:2). 또한 예수가 하늘나라의 일을 위하여 위임을 받고 그 일을 시작하기 이
전의 준비 절차로 왕, 제사장, 선지자로서 기름부음을 받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너는…기뻐하노라 – 하늘로부터의 음성은 예수가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을 직접적으
로 공표하신 말씀이다. ‘사랑하는’을 나타내는 헬라어 ‘아가페토스'(*
)는 ‘사랑하는’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나 ‘아듸’이나 ‘딸’을 붙여 사용할 때는 ‘외
아들’, ‘외동딸’이라는 뜻이 된다. 따라서 여기서 ‘아가페토스’는 예수가 유일한 아
들, 즉 독생자임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편 이 구절은 변화산에서 들려진 음성과 마찬
가지로 그리스도에 관한 구약의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다(사 42:1). 유대인들은 하나님
의 아들이라는 개념 천사들(욥 1:6;2:1)과 이스라엘 국가와 이스라엘의 왕들(출 4:22;
삼하 7:14;호 11:1)에 적용시켰었다. 그러나 점차로 그 말은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
로 사용되었다. 예수가 성령에 의해서 잉태될 것이라는 천사의 수태고지(受胎告知)에
서도(1:32) 예수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고 언급되어 있다.또한 ‘사랑하
는…기뻐하노라’라는 말은 하나님과 예수의 유일무이하고도 특별한 인격적 관계를 나
타낸다. 요컨대, 예수께서 받으신 것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공동 사역이라 할 수 있
었다. 즉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심으로 인간의 구원을 향한 공생애를 시작하고, 성령
도 성자가 그 일을 감당하도록 협동하여 힘을 공급해 주시며, 성부도 그 일을 시작한
아들에게 하늘을 열고 땅을 향해 기쁨과 승인의 음성을 발하였던 것이다.
=====3:23
예수께서…삼십 세쯤 되시니라 – 예수의 나이가 기록되고 있는 유일한 구절이다.
누가가 공생애 시작 당시 예수의 나이를 ’30세 쯤’ 으로 밝힌 것은, 30세라 하는 나이
가 제사장들이 그들의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하는 시기(민 4:3)인 점을 염두에 둔 것인
듯하다. 다시 말해 마침내 예수는 인류와 하나님 사이를 중재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의
사역을 수행하실 시점에 이르신 것이다(히 5:10). 즉, 예수는 스스로는 전적으로 무죄
(無罪)하신 분으로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제물로 삼아 죄악의
장벽을 제거하심으로써 하나님께로 나아갈 새롭고 산 길을 여실(히 10:20) 시점에 이
른 것이다. 한편 그리고 요셉은 30세에 총리가 되었고(창 41:46) 다윗도 30세에 왕위
에 올랐다(삼하 5:4). 또한 산헤드린의 회원 자격도 30세가 되어야만 주어졌다. 따라
서 누가는 이러한 여러 배경을 감안하여 예수의 나이를 밝혔을 것이다. 예수는 한 인
간으로서의 일반적인 연륜을 감안해볼 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또 신앙적으로도
사역을 하기에 충분한 시기에 이르러셨던 것이다. 예수는 그의 생애를 통하여 항상 자
신의 ‘때’를 잘 알았다(요 7:6).
헬리 – 학자들에 따라 요셉의 의붓 아버지이거나 마리아의 아버지일 것이라고 추측
한다.
=====3:24
맛닷 – 이는 ‘선물’이라는 뜻을 담고있다. 이 이름은 29절에서 또 나타나고 ‘맛다
다'(31절)와 ‘맛다디아'(25, 26절)라는 이름과 비슷하다.
레위 – 이 이름의 어원은 불확실 하나 히브리어 ‘레위'( )의 뜻을 따라 일반
적으로 ‘점착(粘着)하다’, ‘연합하다’등의 뜻을 담고 있다. 이 이름은 29절에서 다시
등장한다.
멜기 – 이 이름은 아마도 ‘말기야'( ,말키야, ‘나의 왕은 야웨이시다’)의
축소형인 것 같다(G.Kuhn). 이 이름은 28절에서 다시 나타난다.
안나 – 이 이름의 뜻은 ‘조롱하다’이다. 이 이름은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3:25
맛다디 –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이며 26절에서 다시 언급된다.
아모스 – 이 이름의 인물은 성경 상에서 이사야의 아버지로(왕하 19:2) 혹은 선지
자(암 1:1)로서 나타난다. 이 이름은 ‘짐지는 자’ 또는 ‘강함’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훔 – 예수의 조상으로서 그리고 선지자로서 성경에서 언급된다. ‘위로하고 돕는
자’라는 뜻이다.
에슬리 – 이 이름은 다른 곳에서는 나타나지 않으며 ‘나를 가까이 함’이라는 뜻이
다.
낙개 – 대상 3:7에 나오는 ‘노가'( )와 비슷하다. ‘빛나다’라는 의미이다.
=====3:26
마앗( ) – ‘끊는 것’을 뜻한다. 대하 29:12;31:13에서 나오는 마핫과 비교
된다.
서머인 – 히브리어로 ‘시므이'(출 6:17등)가 된다. ‘몰약성’이라는 뜻이다.
요섹 – 바벧론 포로 이후의 인물인 듯한데 이곳 외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요다 – 바벧론 포로기 때의 인물이다.
=====3:27
요아난 – 히브리어 ‘요하난'( )의 헬라어 음역이다. 요하난이란 이름은
(1) 유다 왕 요시야의 장남(대상 3:15) (2) 다윗의 여덟번 째 용사(대상 12:8-12) (3)
느헤미야 당시 도비야의 아들(느 6:14)등에게도 붙여진 바 있다.
레사 – ‘황태자’라는 뜻의 아람어로서 원래 스룹바벧의 칭호로 소개된 말이라고 주
장되기도 한다. 스룹바벧이 유대의 지도자로 바벧론에서 포로들을 인솔해 유대 땅으
로 귀환하자 백성들은 그를 유대 왕의 계승자로서 여겼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황
태자’라는 칭호가 주어졌는지도 모른다. ‘스룹바벧’과 ‘스알디엘’은 마태복음 1장의
족보에도 나타난다(마 1:12). 스룹바벧이 스알디엘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성경의 여러
곳에서 뒷받침된다(스 3:2;학 1:1). 그러나 대상 3:19에는 스룹바벧이 브다야의 아들
로 기록되어 있다. 이 문제는 앞서 설명되었듯이 수혼(嫂婚) 관계에서 해결될 수 있
다. 대상 3:17, 18를 보면 스알디엘과 브다야는 여고냐의 아들로서 서로가 형제지간이
었다. 따라서 스알디엘은 스룹바벧의 법적 아버지이며 브다야는 그의 원래 아버지가
되는 것이다. 스알디엘의 아버지가 여고냐라고 대상 3:17에 기록되어 있는데 반해 본
문은 그의 아버지를 네리라 기록하고 있다. 이것 역시 수혼 제도로써 설명되어질 수
있다. 즉 여고냐가 아들이 없이 죽자(렘 22:30) 네리의 친아들이 여고냐의 법적 아들
이 되었다는 것이다(Machen, Plummer).
=====3:28
멜기 – 스룹바벧의 증조부로서 ‘왕’이란 뜻이다.
앗디 – 스룹바벧의 5대조이며 그 이름은 ‘붙들다’라는 뜻이다.
고삼 – ‘나누다’라는 의미이다.
엘마담 – 창 10:26의 ‘알모닷’이라는 이름과 비교된다. 바벧론 포로 이전의 사람이
며 그 이름은 ‘광대’라는 의미이다.
에르 – 이 이름의 인물은 구약성경에 두 명 등장한다. 한 명은 가나안 여인에게서
난 유다의 장자이며(민 26:19) 다른 하나는 겔라의 자손이다(대상 4:21).
=====3:29
예수(‘ , Jesus) – 구약의 ‘여호수아'(수 1:1)와 같은 이름이다. 유대 사
회에서는 보편적인 이름으로 ‘여호와의 구원’ 혹은 ‘구세주’라는 뜻이다(마 1:21).
엘리에서 – 이 이름은 ‘엘리에셀’을 달리 번역한 것이다. 이는 창 15:2;출 18:4에
나타난 이름과 같은 이름으로 ‘하나님은 구원자이시다’라는 뜻이다.
요림 – ‘여호와의 칭찬’을 뜻한다.
=====3:30
유다 – 역시 이스라엘에서는 보편적인 이름이다. 본문의 인물은 바벧론 포로 이전
의 사람이다.
요남 – 다윗 이래 약 200년 후의 인물로 추정된다.
엘리아김 – 왕하 18:18에 나타난 것과 같은 이름이다. 이 사람은 바벧론 포로 이후
의 사람으로 추정된다.
=====3:31
멜레아 – 이 이름은 다른 곳에 나타나지 않는다. 이 이름의 주인공은 다윗의 고손
(高孫)이며 이름의 뜻은 ‘충만’이다.
멘나 – 이 이름 역시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다. 이는 다윗의 증손이며, 이름의 뜻
은 ‘큰 고통’이다.
나단 – 다윗의 셋째 아들로 예루샬렘에서 출생했다(삼하 5:14;대상 3:5;14:4). 이
이름은 ‘양심’ 또는 ‘주는 자’라는 뜻이다.
다윗 –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유다 지파이며 이새의 막내 아들이다. 이스라엘의 세
임금이며 지혜와 용맹과 많은 시편의 저작들로 유명하다(삼상 16장-왕상 2장). 이름의
뜻은 ‘사랑함’이다.
=====3:32
이새 – 다윗에서 아브라함에 이르는 족보는 마 1:2-6에 나오는 족보와 거의 같다.
이새는 베들레헴 에브랏 출신으로 다윗왕의 아버지이다(삼상 17:12). 사 11:1은 ‘이새
의 줄기’에서 메시야가 출현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오벱 – 보아스와 룻의 아들이다(룻 4:17, 21, 22;마 1:5). 룻은 이방 여인으로서
(룻 1:4) 다윗과 예수를 잇는 가계(家系)의 한 역할을 담당했다.
보아스 – 룻의 남편이며 살몬의 아들이다. 그는 또한 베들레헴의 큰 부호였다. 보
아스는 룻이 모압땅에서 시모 나오미와 함께 돌아왔을 때 그녀를 다방면에서 돕고 그
녀의 효성에 탄복하며 그녀와 결혼하게 되기까지 이른다(룻기)
살몬 – ‘그늘’이란 뜻. 가나안 땅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던 라합의 남편이다(마 1:5
비교).
나손 – ‘점쟁이’란 뜻. 보아스의 조부이다(룻 4:20). 마 1:4과 비교.
=====3:33
아미나답 – 유대 헤스론 계통인 ‘람’의 아들이다(룻 4:19;대상 2:10). 그리고 아론
의 아내 엘리세바의 부친이기도 하다(출 6:23). 이 이름의 뜻은 ‘나의 친척은 고귀하
시다’이다.
아니 – ‘높은 땅’이란 뜻. 룻 4:19과 대상 2:9에 히브리 이름 ‘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헤스론 – ‘닫힌’이란 뜻. 유다의 손자로 창 46:12;민 26:21;룻 4:18;대상 2:5;마 1
:3 등에서 언급된다.
베레스 – ‘파괴’란 뜻. 유다와 유다의 며느리 다말 사이에 태어난 쌍동이의 형이다
(창 38:24-30;46:12). 베레스에게서 두 종족이 생겼다(민 26:20, 21;대상 2:4, 5).
유다 – ‘찬송’이란 뜻. 야곱의 넷째 아들로 레아의 소생이다(창 29:35;마 1:2). 그
는 밧단아람에서 출생했으며 그의 며느리 다말을 통하여 쌍동이 베레스와 세라 두 아
들을 얻었다.
=====3:34
야곱 – ‘발 뒤꿈치를 잡다’란 뜻.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동이의 동생이다
(창 25: 21-26). 그는 형 에서에게서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권을 사고 그의 아버지
이삭을 속여 장자에 대한 축복을 가로챘다. 야곱은 하단의 외삼촌댁 라반의 집으로
피하여 레아와 라헬과 결혼하고, 그 두 부인과 부인들의 하녀 빌하와 실바를 통하여
12아들을 얻었으며 이 아들들을 통해 이스라엘 12 지파가 형성되었다(창 29장). 야곱
은 애굽 근교 고센 땅에서 살다가 147세의 나이로 일생을 마쳤다.
이삭 – ‘웃음’이란 뜻.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낳은 아들이
다. 그는 브엘세바에서 태어났으며 그때 그의 아버지가 100세, 어머니는 90세였다(창
17:17;21:2, 3, 5). 이삭은 어렸을 때 아브라함에 의하여 하나님께대한 믿음의 증거로
제물로 바쳐지기도 했다(창 22:1-18). 그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아들 브
두엘의 소생 리브가와 결혼하며 쌍동이 아들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그는 노후에 기럇
아르바 마므레에서 살다가 180세에 죽었다(창 35:27, 28).
아브라함 – ‘열국의 아버지’란 뜻. 데라가 70세에 낳은 아들이며 나홀과 하란의 형
이다.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으며 이복 누이 사라와 결혼하였다. 그는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살던 땅과 집을 버리고 가족을 이끌고 하나님이 지시
하는 땅으로 떠났다. 또한 그는 하나님과의 약속의 표시로 할례를 행하고 하나님이 약
속하신 아들 이삭을 100세에 얻었다. 그의 신실한 삶은 성경에서 믿음의 표상(表象)이
되고 있다. 아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막벧라 굴에 장사되었다(창 25:1-9).
데라 – ‘표백’이란 뜻. 아브라함과 나홀과 하란의 아버지이다. 그는 다른 신들을
섬기며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사를 했다고 하며(수 24:2), 갈대아 우르에서 살다가 하
단으로 이사가서 205세에 죽었다(창 11:24-32).
나홀 – 아브라함의 조부이다.
=====3:35
스룩 – 아브라함의 증조부이며(창 11:20-23;대상 1:26) 이 이름은 ‘활’이라는 뜻이
다.
르우 – ‘친구’란 뜻. 셈의 6대손이다(창 11:19).
벧렉 – 셈의 자손 에벧의 아들이다(창 10:25-29;11:16). ‘나뉘다’는 뜻의 이름은
그가 태어날 즈음 세상 사람들이 나뉘어졌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정
확히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는지는 모르겠으나 종교적 정화 운동 혹은 바벧탑 사건이
일어났다고 짐작하는 견해가 있다.
헤버 – ‘과거’라는 뜻. ‘헤벧’ 또는 ‘에벧’을 달리 번역한 것이다. 그는 노아의 6
대손이다.
살라 – ‘보내다’는 뜻. 노아의 고손이며 창 10:24;11:13;대상 1:18, 24에는 ‘셀라’
로 기록되어 있다.
=====3:36
가이난 – ‘철공’이란 뜻. 셈의 손자이나 창 10장에는 언급되지 않는다.
아박삿 –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을 가리킨다(창 10:22, 24;대상 1:17, 18), 그
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출생했으며 35세에 셀라를 낳았고 그후 403년을 더 살다가 438
세에 사망했다(창 11:10-13).
셈 – 노아가 500세에 낳은 아들로 3형제 중 맏이다. 그는 하나님의 대홍수 심판을
피해 아내와같이 방주에 들어가 구원을 받았다(창 7:7;벧전 3:20). 또한 그는 술 취한
아버지의 실수를 조심성있게 덮어주어 축복을 받기도 했다(창 9:20-27). 또한 그는 셈
족의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이름’ 또는 ‘명성’이라는 뜻이다.
노아 – 아담의 10대 손이다. 이 이름이 붙여진 연유에 대해 창 5:29은 “이름을 노
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고 설명한다. 그는 의인이어서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6:9). 그리고 하나
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이 물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을 백성들에게 전파하며 그 심판
을 피할 방주를 건축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오직 그의 가
족과 동물 암수 한 쌍씩만이 구원받았다. 노아가 대홍수를 만났을 때가 600세였으며,
그는 홍수 후 350년을 더 살다가 950세에 죽었다(창 9:28).
레멕 – 구약성경에 ‘라멕’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는 182세에 아들 노아를 낳았다.
그는 노아를 낳은 후 595년을 더 살며 자녀를 낳고 777세에 사망했다(창 5:25, 28-31;
대상 1:3).
=====3:37
므두셀라 – 셋의 후손 에녹의 아들이다(창 5:21-27). 그는 969세까지 산 것으로 기
록되 성경상에서 그리고 인류 역사상 최장수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이름은 ‘대확장’
또는 ‘창을 던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에녹 – 아담의 7대 손이며 야렛이 162세에 낳은 아들이다. 그는 65세에 인류 역사
상 최장수자(最長壽者) 므두셀라를 낳으며 그후 하나님과 동행하며 365세를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다. 성경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했으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갔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고 전한다(창 5:18-24;히 11:5;유 1:14). 그의 이름은 ‘교수’ 또는 ‘시
작하는 자’라는 뜻이다.
야렛 – 에녹의 부친으로 마할랄렐이 65세에 낳은 아들이다(창 5:15-20;대상 1:2).
그는 므두셀라 다음가는 자로(962세) 알려져 있다.
마할랄렐 – 아담의 5대손이며 셋 계통의 한 조상이다. 그의 이름은 ‘하나님의 찬
양’이라는 뜻이다.
=====3:38
에노스 – 아담의 손자이다. 셋은 109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는 90세에 게난을
낳았으며 905세를 향수했다. 가인의 시대가 폭행으로 표현된 반면 에노스의 시대는 경
건으로 표현되었다.
셋 – 아담의 셋째 아들로 맏아들 가인이 죽인 둘째 아들 아벧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다(창 4:25).그는 아담이 130세 때 태어났다. 셋은 105세에 에노스를 낳았
고, 912세에 죽었다(창 5:3-8). 그의 이름은 ‘대신 주다’라는 뜻이다.
아담 –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류 최초의 인간이다. 그는 타락하
기 전까지 하나님이 그의 갈비뼈로 만드신 아내 하와와 낙원 에덴 동산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함으로 에덴 동산을 잃어버리고 노동의 수고로움과 해산의 고통을
맛보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가는 대가를 치르게 되었다. 그는 세 아들을 두었는데 장남
가인은 동생 아벧을 죽이는 최초의 살인자가 된다. 아담은 막내 ‘셋’을 130세에 낳고
그후 800년을 더 살다가 930세에 죽었다. 그의 이름은 ‘사람’ 또는 ‘붉다’라는 뜻이
다.
하나님 – 하나님을 아담의 아버지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직접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누가복음에서 제시된 족보에서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가
아담의 아들로서 인류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강조해 주는 점일 것이다. 따라서
누가는 불순종한 첫째 아담과 대조하여 비록 암시적인 주제이기는 하지만 예수를 하나
님께 순종했던 둘째 아담으로 묘사해 준다(고전 15:47). 이와같이 누가는 예수의 족보
를 하나님에게까지 연결시킴으로써 예수께서 진정한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고 있
다.
누가복음 3장
(눅 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오늘 누가복음 3장에는 세례요한의 외침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그가 먼저 나와서 길을 고르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4절)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5절)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6절)
길을 고르는 작업입니다. 파인 길은 메우고, 굽은 길은 곧게 하고, 험한 길은 평탄하게 하는 작업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그렇게 다지는 작업을 말합니다. 메시아의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했습니다.
오늘날도 만일 세례요한이 다시 나타난다면 같은 일을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준비하면서 같은 소리를 외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세례요한의 외침은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는 오늘날 모든 성도들이 들어야 하는 외침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너희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말하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할 수 있다.
속으로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착각하지 말라. 그런 식이면 이 돌들도 구원받을 수 있다.
좋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하고 영접하여 구원 받았다면 그에 합당한 열매가 나와야 한다.
무리들이 묻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세리들도 와서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군인들도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세례요한의 외침을 듣고 사람들의 마음이 찔린 것입니다. 감동을 받은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외침이 옳다고 여긴 것입니다.
그래서 와서 묻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그리고는 요단강에 들어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하겠다는 새로운 결단을 한 것입니다. 과거를 씻고 새출발을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습니다.
입으로 말만 한 것이 아니라, 물에 완전히 들어가 세례를 받음으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겠다고 다짐을 한 것입니다.
속으로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렇습니다.
열매가 나와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 구원받은 자의 합당한 열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합당한 열매, 하나님 나라에 사는 백성으로서의 합당한 열매, 그 합당한 열매가 우리에게서도 나와야 합니다.
성경은 너무 자주 열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 7:20)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롬 7:4)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 1:11)
우리도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물어야 합니다. 각자의 형편과 위치에서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나는 무엇을 하리이까?”
주님께서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을 것입니다.
그 말씀에 따라 우리도 새로운 결심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다짐을 해야 합니다.
입으로 말만 하지 말고, 속으로만 구원 받은 자라고 여기지 말고, 그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구원 받은 자의 열매, 하나님의 자녀다운 열매, 우리도 그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합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우리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오늘도 다짐하며 더욱 힘써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보며 주님 따라가는 것입니다.
주님 앞에서 오늘도 사는 것입니다.
동행하면 가능합니다. 합당한 열매를 맺는 길, 오직 동행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동행하는 이 길을 가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세례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한 것처럼, 우리는 주님 재림의 길을 예비해야 합니다.
길을 고르게 해야 합니다. 파인 곳은 메우고, 높이 솟은 곳은 깍고, 굽은 것은 곧게 하고, 험한 것은 평탄하게 하고…., 그렇게 우리 마음의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주님이 오실 길을 준비합시다.
우리 모두 마음의 손을 잡고 함께 준비합시다.
여러분과 함께 가는 이 길이…. 참 행복합니다.
쉬운성경 누가복음 03장
3:1 <세례자 요한의 선포> 디베료 황제가 다스린 지 십오 년째 되던 해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이었고,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왕이었습니다. 또한 헤롯의 동생 빌립은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왕이었고, 루사니아는 아빌레네의 분봉왕이었습니다.
3: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습니다.
3:3 그는 요단 강가의 모든 지역으로 다니면서 죄를 용서받게 하려고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였습니다.
3:4 이것은 예언자 이사야의 책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사람의 소리가 있다. ‘주님의 길을 예비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라.
3: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질 것이고 모든 산과 언덕이 낮아질 것이다. 굽은 길은 곧게 펴질 것이고 험한 길은 평탄해질 것이다.
3:6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볼 것이다.’”
3:7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온, 많은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너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라고 경고해 주었느냐?
3:8 그러므로 너희는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너희는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의 아버지이다’라고 말하지 마라. 내가 말한다. 하나님은 이 돌로도 아브라함의 자녀를 만드실 수 있다.
3:9 도끼가 이미 나무 뿌리에 놓여 있다. 그러므로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모든 나무는 잘려서 불 속에 던져질 것이다.”
3:10 사람들이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3:11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했습니다. “옷이 두 벌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양식이 있는 사람도 이와 같이 하여라.”
3:12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들도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13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세금을 거두도록 지시받은 액수 이상으로 거두지 마라.”
3:14 군인들도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강제로 돈을 뺏지 마라. 거짓으로 고발하지 마라. 그리고 임금으로 받는 돈을 만족하게 여겨라.”
3:15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었기에 혹시 요한이 그리스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마음속으로 하였습니다.
3:16 요한이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나보다 더 능력 있으신 분이 오실 것이다.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에도 부족하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3:17 타작 마당을 깨끗게 하고 알곡을 곳간에 저장하기 위해, 그분은 손에 키를 드셨다.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릴 것이다.”
3:18 요한은 이 외에도 많은 권면을 하면서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3:19 헤롯 분봉왕은 헤로디아의 일과 그 외에도 그가 저지른 여러 가지 악한 일 때문에 요한에게 책망을 받았습니다.
3:20 거기에다가 헤롯은 한 가지 악을 더 저질렀습니다. 그것은 요한을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3:21 <예수님이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심> 모든 사람들이 세례를 받았을 때,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고 계실 때 하늘이 열렸습니다.
3:22 그리고 성령이 비둘기의 모습으로 예수님께 내려왔습니다. 하늘로부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로 말미암아 기쁘다”라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3:23 <예수님의 족보> 예수님께서 일을 시작하신 때는 삼십 세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요셉의 아들로 여겼습니다. 요셉은 헬리의 아들입니다.
3:24 헬리는 맛닷의 아들이고, 맛닷은 레위의 아들입니다. 레위는 멜기의 아들이고, 멜기는 얀나의 아들입니다. 얀나는 요셉의 아들입니다.
3:25 요셉은 맛다디아의 아들이고, 맛다디아는 아모스의 아들입니다. 아모스는 나훔의 아들이고, 나훔은 에슬리의 아들입니다. 에슬리는 낙개의 아들입니다.
3:26 낙개는 마앗의 아들이고, 마앗은 맛다디아의 아들입니다. 맛다디아는 서머인의 아들이고, 서머인은 요섹의 아들입니다. 요섹은 요다의 아들입니다.
3:27 요다는 요아난의 아들이고, 요아난은 레사의 아들입니다. 레사는 스룹바벨의 아들이고,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아들입니다. 스알디엘은 네리의 아들입니다.
3:28 네리는 멜기의 아들이고, 멜기는 앗디의 아들입니다. 앗디는 고삼의 아들이고, 고삼은 엘마담의 아들입니다. 엘마담은 에르의 아들입니다.
3:29 에르는 예수의 아들이고, 예수는 엘리에서의 아들입니다. 엘리에서는 요림의 아들이고, 요림은 맛닷의 아들입니다. 맛닷은 레위의 아들입니다.
3:30 레위는 시므온의 아들이고, 시므온은 유다의 아들입니다. 유다는 요셉의 아들이고, 요셉은 요남의 아들입니다. 요남은 엘리아김의 아들입니다.
3:31 엘리아김은 멜레아의 아들이고, 멜레아는 멘나의 아들입니다. 멘나는 맛다다의 아들이고, 맛다다는 나단의 아들입니다. 나단은 다윗의 아들입니다.
3:32 다윗은 이새의 아들이고, 이새는 오벳의 아들입니다. 오벳은 보아스의 아들이고, 보아스는 살몬의 아들입니다. 살몬은 나손의 아들입니다.
3:33 나손은 아미나답의 아들이고, 아미나답은 아드민의 아들입니다. 아드민은 아니의 아들이고, 아니는 헤스론의 아들입니다. 헤스론은 베레스의 아들이고, 베레스는 유다의 아들입니다.
3:34 유다는 야곱의 아들이고, 야곱은 이삭의 아들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이고, 아브라함은 데라의 아들입니다. 데라는 나홀의 아들입니다.
3:35 나홀은 스룩의 아들이고, 스룩은 르우의 아들입니다. 르우는 벨렉의 아들이고, 벨렉은 헤버의 아들입니다. 헤버는 살라의 아들입니다.
3:36 살라는 가이난의 아들이고, 가이난은 아박삿의 아들입니다. 아박삿은 셈의 아들이고, 셈은 노아의 아들입니다. 노아는 레멕의 아들입니다.
3:37 레멕은 므두셀라의 아들이고, 므두셀라는 에녹의 아들입니다. 에녹은 야렛의 아들이고, 야렛은 마할랄렐의 아들입니다. 마할랄렐은 가이난의 아들입니다.
3:38 가이난은 에노스의 아들이고, 에노스는 셋의 아들입니다. 셋은 아담의 아들이고,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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