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의 교제 | 성도의 교제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ㅣ박재은 교수ㅣ신앙질문 Ep.70 12 개의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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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질문 Ep.70]성도의 교제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답변자 : 박재은 교수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강사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초빙교수)
개혁된실천사 웹사이트: http://www.dailylearni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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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 – YES24

부제는 `교회사회학에 대한 교의학적 연구.` 이 책은 본회퍼가 21세 때(1927) 베를린 대학에 제출한 박사학위 논문이다. 사회철학과 사회학을 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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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2/11/2022

View: 2471

[빌2;1]성도의 교제, 우리는 무엇을 나누며 사는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교제의 참 모습이다. 그렇기에 초대 교부들은 교회를 가리켜 성도의 교제라고 정의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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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inespirit.tistory.com

Date Published: 6/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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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설교 – 요일 10:1-10 / 성도의 교제 / 한경직 목사

성도의 교제는 우리의 신앙을 피차에 돕는 것입니다. 여러분 장작을 가지고 불을 피워 보면 한 가치로는 불이 잘 붙지 않습니다. 그러나 셋 혹은 네 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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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theologia.kr

Date Published: 1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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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의 필요 – Simon’s Sermon Archive

이것의 의미는 매일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의대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은 단지 함께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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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ordsfromsimon.wordpress.com

Date Published: 2/14/2022

View: 2388

사도신경⑪ 나는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요일 01:03~07)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님 안에서 서로 하나 되어 위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요, 수평으로는 성도 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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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samil.tistory.com

Date Published: 8/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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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가 무엇인가 – 손재호 목사 homepage

성도의 교제는 일차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모든 부요, 곧 ‘보물’과 은사, 곧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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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banabars.org

Date Published: 10/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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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요일 1:3-7) – 광성교회

생명의 말씀 ›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요일 1:3-7) · 1)서로 교제해야할 대상은 성도입니다. 아무나 교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도끼리 서로 교제하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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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sch.net

Date Published: 9/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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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말씀묵상-성도들의 교제를 소유함에 관한 묵상. (we have …

1. 교제(fellowship)는 성도들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섬김을 통해 주님을 증거하며 드러내 나타내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서로 기도하며, 성도를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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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ible.rexpia.com

Date Published: 5/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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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성도의 교제라고? – 아이굿뉴스

사도신경>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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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igoodnews.net

Date Published: 9/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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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성도 의 교제

  • Author: 매일배움 by 개혁된실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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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6. 22.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1tlX4zmaVz4

성도의 교제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천재 신학자 본회퍼는 브레슬라우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랐다. 1927년 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30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목사안수를 받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 뉴욕의 유니온 신학부에서 연구기간을 1년 가졌다. 독일로 돌아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나치 정권의 교회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대항하는 교회저항운…

“독일의 양심”으로 불리는 천재 신학자 본회퍼는 브레슬라우의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출생하여 많은 형제자매들과 함께 자랐다. 1927년 신학박사학위를 받았고 1930년에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목사안수를 받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라 뉴욕의 유니온 신학부에서 연구기간을 1년 가졌다. 독일로 돌아가 베를린 대학에서 강의하였고 목사안수를 받았다. 나치 정권의 교회 간섭이 심해지자 이에 대항하는 교회저항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고백교회(Bekennende Kirche)가 세운 목사후보생(Vikar) 교육기관(Predigerseminar)의 책임자로 섬겼다. 1937년에 이 학교가 폐쇄되자 장소를 옮겨가며 1940년 3월까지 목회자 양성 교육을 계속하였다.

그 후 잠시 미국에 갔을 때, 주위의 강력한 망명 권유가 있었으나 뿌리치고 2차 세계대전 직전에 귀국했다. 독일에서 다시 나치에 저항하다가 히틀러 정권 전복단체에 합류, 1943년 체포되어 1945년 4월 9일 나치정권 붕괴 직전에 교수형을 당했다. 1925년에서 1945년까지 저서 여섯 권, 연구 논문 열한 편을 비롯하여 설교, 서신, 여행 일지, 학회 일지, 희곡, 소설, 시 등의 다양한 저작을 남겼다.

[빌2;1]성도의 교제, 우리는 무엇을 나누며 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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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

본문 : 빌2:1-4

2016.5.2.소토교회 주일낮예배설교(전교인야외예배)

교회는 성도들의 모임 즉 성도의 공동체이며, 성도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교회이다. 교회를 이루는 다섯 가지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예배, 선교, 교육, 교제, 봉사”이다. 우리가 늘 고백하는 사도신경에서도 성도가 서로 교제할 것을 공적으로 고백하고 있다. 성도의 교제는 이처럼 교회를 이루는 필수요건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네 가지에 비해 소홀히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교제를 교회에서 하는 영적인 활동으로 보기보다 사람들 상호간의 단순한 친목으로 생각하며, 이를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도의 교제에 대한 바른 이해를 통해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야 한다.

1. 교제의 의의

교제를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라고 한다. 이 말에는

fllowship 사귐의 뜻이 있다(고후 6:14,갈2:9).

association 협력의 뜻이 있다 (고전 10:16,빌2:1)

contribution 기부한다의 뜻이 있다 (고후 9:13,롬15:26).

즉 교제란 서로 사귀며, 협력하며, 나눠가진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교제의 참 모습이다. 그렇기에 초대 교부들은 교회를 가리켜 성도의 교제라고 정의했다.(communiosanctorum) 교회란 위로 하나님과의 교제와 옆으로 신자간의 교제가 건전하고 신성할 때 존재하기 때문이다.

2. 왜 성도들은 서로 교제해야 하는가?

(1) 교회가 되기 위해 교제가 필요하다.

성도의 상호관계는 영적으로 이웃관계 그 이상이다. 형제관계 이상이다. 성경은 성도를 주의 몸에 붙은 지체라고 한다.(고전12:26). 즉 성도는 주님의 몸을 이루는 공동운명체란 뜻이다. 만일 한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게 되는 관계이며, 교회는 이런 성도의 교제를 통해 이루어진다.

(2) 힘을 얻기 위해 교제가 필요하다.

즉 성도는 개별적으로 연약한 존재인 고로 교제가 필요하다. 하나만으로는 약하나 약한 여럿이면 강하게 된다. 약자끼리라도 힘을 합치면 강자가 될 수 있고, 큰일도 해낼 수 있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전4:9-12)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통해

믿음의 힘을 얻는다.

열심히 주의 일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승리의 힘을 얻는다.

세상을 이길 힘을 얻고, 유혹과 시험을 이길 힘을 얻는다.

(3) 성장을 위해 교제가 필요하다.

혼자 있으면 자기를 객체화해서 볼 수가 없다. 그러나 교제를 통해 자기를 객관적으로 볼수 있게 된다. 교제를 통해 남도 알게 되고 또 남과 자기를 비교하게 되어 자기정체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자기의 장단점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반성과 분발을 기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신앙이 더욱 성숙해지게 된다.

3. 성도의 교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은혜를 나누어야 한다.

롬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성도는 은혜와 은사를 받은 자이다. 그러나 받은 은혜는 동일하지 않고 다양하다. 각자가 받은 은혜를 서로 나눌 때 그 은혜는 더욱 풍성해지며, 영적인 풍성함을 누릴 수 있다.

(2) 기도로 나누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를 위해 기도했고 (롬1:9,엡1:16,살전1:2등) 또한 교회를 향하여 부탁하기를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다. (골4:3) 성도끼리 위해 기도하라고 했다 (엡6:18,살전5:25) 이와 같이 피차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곧 성도의 교제인 것이다. 행12:5에 보면 베드로가 투옥 되었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다. 그 결과 이적이 나타나 베드로는 출옥되었다. 성도는 이렇게 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영적으로 소통하는 존재이다.

(3) 물질을 나누어야 한다.

롬12:13 성도들의 쓸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딤전 6:18 선한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자가 되게 하라. 가난한 성도에게는 구제하고, 약한 성도에게는 봉사의 손길을 펴야한다는 것이다.

행2:44-27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초대교회는 성령에 충만하여 자신의 소유를 서로를 위해 아낌없이 내놓았고, 아름다운 공동체를 이루었다. 물질이란 나만을 위해 쓰도록 주신 것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또 내 이웃을 위해 나눠 쓰라고 주신 것이다.

(4) 고락을 나누어야 한다.

예수님은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마25:35-36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진정한 교제란 이처럼 성도의 아픔에 관심을 기울이고, 성도의 슬픔에 마음을 쓰며 주님의 사랑을 나누는 것이다.

건강한 교회는 성도 간에 온전한 교제가 있다. 주님과 화목한 사람들이 주님의 피로 한 형제가 되어 주님의 한 몸을 이루는 것이 교회이기 때문이다. (*)

by 소토교회 박동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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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의 필요

코이노니아

Acts 2:37–47

여러분은 여러분이 하는 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입을 열고 단어를 말할 때,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 알고 있나요?

우리들 중 몇 몇은 한국말을 쓰려고 할 때 말하려고 의도하지 않았던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 2외국어를 사용하는 누구라도 이러한 오류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윌리엄 세익스피어가 말했듯이, 우리가 오래 전에 쓰여진 글을 읽을 때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은 ‘naughty’의 의미를 아십니까? 알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오래 전에 태어났고, 여러분이 ‘naughty’라면, 이것의 의미는 여러분이 ‘naught’를 가졌는가, 아닌가입니다. 세월이 흘러 ‘naughty’의 뜻은 ‘evil(악)’이나 ‘immoral(부도덕)’으로 변했습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른 현재에는 ‘행실이 나쁜’이란 의미가 되었습니다.

‘nice’는 멍청한, 바보 같은, 단순한 이란 의미로 쓰이곤 했습니다. ‘silly’는 원래 뜻과 반대로 변했는데, 오래전에는 어떤 것이 가치 있거나 축복 받았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원래 의미에서 뜻이 변해서, 약하거나 상처 받기 쉬운 사람들을 가르키는데 사용됩니다. 좀 더 최근에는 ‘silly’는 바보 같은 사람들을 뜻하도록 의미가 변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여러분이 수 천년전에 씌어진 책을 읽을 때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이해에 관한 또 다른 문제는, 우리가 읽는 것이 그 작가가 어떤 특별한 단어를 골랐을 때 의도했던 뜻인지를 이해하는 가에 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오늘 아침에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기 원하는 특별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영어로 ‘fellowship’ 한국어로는 ‘교제’입니다. 이 단어는 첫번째 문제를 일으킵니다. 사도행전은 한국어로 쓰여지지 않았습니다. 영어로 쓰여지지도 않았습니다. 의사인 누가가 그리스어로 썼습니다. 그래서 42절에서 그가 사용한 단어는 fellowship 이나 교제가 아닌, koinonia (코이노니아) 입니다.

이 말은 신약에서 19번이나 등장하고 있으며, 기부나 참여, 나눔과 교제로 다양하게 번역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fellowship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는 그 의미를 파티나 바베큐의 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함께 모이고 영화나 볼링을 보러 가는 것을 교제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아마 여러분은 우리가 모인 이 모임을 교제라고 부른다는 것을 눈치 챘을 것 입니다. 여러분은 Jinju International Christian Fellowship의 멤버입니다. 왜 우리는 이 단어를 선택한 것일까요?

누가는 코이노니아라는 단어를 설명함으로써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All the believers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and to fellowship, and to sharing in meals (including the Lord’s Supper), and to prayer.

“그들은 계속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서로 교제하며 성찬을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적으로 힘썼다.” (Acts 2:42)

43절과 47절에서, 누가는 우리에게 교제라는 단어의 정의를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가 복음에서 교제란 다른 사람들에게 내가 가진 어떤 것을 주거나 그들이 가진 무언가를 받는 것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주고 받는 것은 교제하는데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그리고 주고 받는 것은 예수님의 몸 안 에서의 일상적인 생활의 한 방법입니다.

누가는 “믿는 사람들은 다 함께 지내며.”

“they worshiped together at the Temple each day, met in homes for the Lord’s Supper, and shared their meals with great joy and generosity—all the while praising God and enjoying the goodwill of all the people.”

“모든 것을 서로 나누어 쓰고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성찬을 나누기 위해서 집에서 모이며, 기쁨과 진실한 마음으로 함께 식사하였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모든 사람들의 선함을 누리면서 말입니다.

교제는 단지 함께 모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매우 친밀한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중심에 둔 것입니다.

크리스챤 커뮤니티나 fellowship은 오순절 직후부터는 모든 것을 나누는 것을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 의 의미 처럼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의 의미는 매일 예배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정의대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은 단지 함께 먹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정에서 기쁨과 진실한 마음으로 성찬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런 정의대로 교제를 나누고 있습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어떤 교제를 해왔습니까?

그리스도인들의 교제는 2차원 입니다. 수평적이기 전에 수직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과 함께 하는 교제의 실제를 먼저 알아야만, 우리들 서로에게 이루어지는 교제의 실제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 아들이신 예수님과 교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며 또한 그리스도인과 실제의 교제를 나눌 수 없습니다.

요한 1서 6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We are lying if we say we have fellowship with God but go on living in spiritual darkness.”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죄를 짓는 어두운 생활을 그대로 한다면 우리는 진리대로 살지 않는 거짓말쟁이에 불과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짜 교제를 갖는다면 그것은 어떻게 보일까요? 만약 이 모임이 누가가 말했던 진짜 교제라면 이것은 어떻게 보일까요?

우리에게 진짜 교제의 경험은 어떤 것일까요? 누가는 초대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A deep sense of awe came over them all, and the apostles performed many miraculous signs and wonders.”

“사도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과 기적이 많이 나타나자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러한 교제를 여러분은 경험하고 싶지 않나요? 여러분은 이런 교제를 떠올리면 가슴이 뛰지 않나요?

오늘날 우리에게 이런 참된 교제를 해서는 안될 이유란 없습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교회에도 표적과 기사와 영감을 주는 놀라운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참된 교제를 위하여 헌신한다면 말입니다.

몇 몇의 친숙한 단어들이 본문 구절에 있습니다. 여러분은 ‘함께’와 ‘공동’ 그리고 ‘나눔’이란 단어를 본문에서 보았나요?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의 정의를 기억하시나요? koinonia의 어근이 되는 koinos는 ‘공동’이란 뜻입니다. 이것은 깊은 관계를 뜻합니다. 이것은 함께하고 돌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소유를 팔고 함께 모여 집단 생활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멋진 일입니다. 저는 이 본문 구절이 우리에게 그것을 명령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들은 목적을 달성 하기 위하여 자신의 소유물을 팔았습니다. 그 목적 이란 44절의 마지막 구에서 드러납니다. “각자 필요에 따라”.

이것의 의미는 참된 교제 가운데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돌볼 때,우리는 감정적인 무언가를 느낍니다. 교제 가운데 우리는 그러한 감정들을 행동으로 옮깁니다.

46절에서는 우리가 한마음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우리 번역으로 ‘함께’라고 되어있지만 그리스인들은 아주 특별한 단어를 썼습니다. homothymadon이란 말로 ‘한마음’ 이라는 뜻입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삶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고, 모두 거기에 동의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매일 12:15분에 우리의 삶과 이 교제 가운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에 동의한 것과 같이 말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서로를 섬기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하나님을 첫 번째로 두는 것에 비할 때 우리의 의도나 생각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참된 겸손에 대한 명언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여러분 자신에 대하여 덜 생각하고, 여러분의 부족함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하게 될 때 일어날 일을 생각해보세요. 우리는 요한복음 13장 35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보게 될 것입니다.

“Your love for one another will prove to the world that you are my disciples.”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단지 함께 식사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은 교제를 위한 특정한 상태에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누가는 우리가 함께 먹을 때, 우리의 마음도 기쁨과 진실함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합니다. 함께 하는 식사는 중요합니다.

교제의 한 부분으로써 우리는 함께 둘러 앉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나눕니다. 우리의 기쁨과 고통을 나누고 우리의 고난과 승리를 나눕니다. 우리는 서로의 짐을 덜어주는 것을 배웁니다. 서로 함께 축하하고 함께 우는 것을 시작합니다. 우리가 서로 나눌 때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매 주일 아침 우리의 sharing time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의 한 부분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교제를 세우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이것이 sharing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스스로의 힘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제를 혼자 경험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주일 아침에 예배에 참석해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교제의 한 부분으로써 예배를 통해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배 후에 함께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교제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다른 중요한 일은 우리가 매일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약 기도하고 있지 않다면, 기도를 시작하시기를 권합니다.

주 중에 서로 만나는 것은 교제를 성숙하게 하는 다른 부분입니다. 만약 아직 셀에 소속되어 있지 않다면, 셀 그룹에 동참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참된 교제를 나누는 방법을 함께 배워봅시다.

Amen 아멘

사도신경⑪ 나는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요일 01:03~07)

우리는 예배 때나 성도의 친목의 현장에서 자주 이런 찬송가를 부릅니다. 찬송가 220장인데 여러분도 잘 아는 곡입니다.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 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 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찬송으로서는 제격입니다. 교회 생활에서 성도 간에 주고받는 사랑의 교제야말로 교회를 든든히 세우는 지지대입니다. 사랑의 교제는 일상생활에서 성도의 삶을 붙들어 주는 활력소입니다.

살아 있는 교회, 생명력이 넘치는 교회가 바로 이 성도의 원만한 교제에 있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어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행복한 성도의 교제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예루살렘교회의 현장을(행 02:42) 보면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는 일에 힘을 쓴 것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일임을 밝힙니다. 계속되는 사도신경 강론의 오늘 제목은 「나는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라는 말씀입니다. 함께 은혜받는 시간 되기를 축원합니다.

1. 성도의 교제가 무엇입니까?

0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사도신경에서는 성도의 교제라고 표현합니다. 반면 개정 전의 사도신경에서는 성도의 교통(交通)으로 고백하였습니다. 교제나 교통 둘 다 의미는 같습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가 고백하는 교제라는 단어의 의미가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교제는 함께 취미 생활을 하는 동호회나 관계를 다지는 친목회, 또는 학술 토론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말하는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는 주님과의 연합을 말합니다.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원문의 뜻을 보겠습니다.

사귐(κοινωνίαν. fellowship). 사귐을 헬라어로 코이노니아라고 하며 이 단어는 이제 교회에서는 일반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협동, 공유, 남과 함께 나누다, 친교 등의 의미로서 신약성경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교제(요일 01:03)와 성도 간의 교제(요일 01:07)입니다. 교회를 구성하는 성도는 성별과 직업과 관심사가 다릅니다. 단 한 가지 공통분모 예수 그리스도를 구심점으로 모인 무리입니다.

서로의 필요를 따라 모인 계약 공동체가 아니라 주님의 부르심을 따라 모인 언약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일반 공동체의 모임과는 교제 내용이나 성격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교회 안에서 사교의 분위기로 일상을 나누는 것이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친교의 모임과 사랑 나눔도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성도의 교제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머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와 몸 된 지체를 함께 섬기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를 오해합니다. 일상과 현실의 고민을 나누는 것이 교제 전부로 생각합니다. 교제의 본질과는 대단히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도의 교제는 믿음을 공유하면서 신앙고백을 바탕으로 신령한 대화를 나누는 데 있습니다.

빌 02:0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0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성도의 사귐과 교통(交通)이 실현되는 곳은 하나님과의 교제(요일 01:06),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고전 01:09; 요일 01:03), 성령님과의 교제(고후 13:13; 빌 02:01), 성도 상호 간의 교제(행 05:13; 몬 01:06; 요일 01:07)에 있습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성도는 모두 한 가족으로서 반드시 거룩한 교제를 나누어야 하며(행 02:42) 그 복된 현장이 바로 성만찬입니다(고전 11:23-26).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령님 안에서 서로 하나 되어 위로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교제요, 수평으로는 성도 간의 교제입니다.

2. 교제는 빛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0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05절과 07절에서 빛과 대조시키는 어둠,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하는 어둠이 무엇입니까? 어둠(σκοτία)은 생명을 가로막는 죄악 된 세상, 곧 사탄의 세력입니다. 요한일서에서 말하는 어둠은 당시 복음을 방해하는 영지주의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빛은 의로움과 진리로서(시 27:01; 말 04:02), 하나님은 사랑이시라(요일 04:08)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냅니다. 요한은 계속 빛과 어둠을 대조시켜서(요 01:04; 08:12; 09:05; 12:35, 36) 하나님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성도들은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요청합니다. 빛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성도가 빛 가운데 거하는 일이야말로 하나님과 교제의 필수 요건이고 성도 간의 교제에도 역시 필수 요건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는 단순히 그 차원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진보하여 성도와 성도 간의 교제로 발전하여야 합니다. 성도 간의 교제는 신령한 기쁨이 주제가 되어야 하며 마지막은 성령님의 열매(갈 05:22, 23)를 맺는 자리에 이르러야 합니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주님 안에서 진정한 교제를 나누는 가족으로 거듭납시다. 동시에 여기 모인 우리가 신령한 가족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 이제부터 공동 관심사와 공동의 기쁨을 잘 관리하고 지켜나가야 합니다. 성도의 아름다운 교통, 아름다운 교제를 잘 지키기를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내가 이웃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그때는 성숙한 사람입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일방으로 사랑을 받으려만 하면 건강한 성도가 아닙니다. 사랑과 믿음을 앞세우는 성도는 거룩한 교제와 화평을 유지할 의무가 있고, 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눌 의무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그렇게 명하셨기 때문입니다(눅 10:37). 이런 마음을 가슴에 품을 때 나와 같은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사랑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성도의 교제와. 로마 가톨릭은 성도를 죽은 성인으로 해석합니다. 당연히 성도의 교제를 산 자와 죽은 자가 교통하는 교리로 삼습니다. 그래서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이라도 특별심의를 거쳐 복자(福者), 성자(聖者)라는 서품을 내립니다. 이런 교리 때문에 지금도 죽은 자들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헌금도 하는데 성경이 부정하는 강신술을 권장하는 일들은 미신 행위에 지나지 않습니다(신 18:11, 사 08:19~20).

사도신경이 이단 분별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에 본래 사도신경 끝에 이런 표현이 있었습니다. 이 신앙고백을 반대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있을지어다. 아쉬운 것은 현재 사용하는 사도신경은 끝부분에 있던 이 표현이 없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계속 아쉬움이 남는 부분입니다. 아마 한국교회가 영어로 된 사도신경을 한글 번역하면서 가톨릭 냄새가 나는 부분을 삭제했기 때문입니다.

3. 성도의 교제는 성찬식에 동참함으로 실현됩니다.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성찬식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 유월절 만찬을 통해서 제자들과 맺은 거룩한 언약입니다(눅 22:19-20). 예수님은 출애굽의 감격을 기념하는 유월절 예식을 자신의 피로 세우신 성찬식으로 대체하시면서 이를 기념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은 많은 사람의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피, 곧 대신 속죄를 상징하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눅 22:19 또 떡을 가져 감사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성찬식의 목적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찬식에서 먹는 떡과 잔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함은 영혼을 더욱 새롭게 합니다. 성찬식은 불신자를 위한 예식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성도의 예식이며 믿음을 북돋우어 주는 예식입니다.

사도 바울도 성찬식에 참여하여 축복의 떡을 떼고, 축복의 잔을 마심이 진정한 교제임을 전하면서(고전 11:23-29),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돌아가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기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요한도 예수님의 피야말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길, 완전한 교제의 길이라고 안내합니다. 어떻게 안내하는지 성경을 보겠습니다

요일 04: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신즉슨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김삼일 가족 여러분, 제가 오늘 말씀을 열면서 사랑하는 주님 앞에라는 찬송가 220장을 함께 불렀지 않습니까? 진정한 성도의 교제는 성찬식에 참여한 성도가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찬양의 고백을 하는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성찬식이야말로 예수님께 죄 사함을 받고, 주님과 우리 사이, 성도와 성도 사이에 코이노니아를 이루는 행복한 장(場)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떡을 먹은 것처럼, 성찬식을 통하여 구원의 피 흘림에 참여함으로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주님의 성찬식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며, 성도 간에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합니다. 이미 코이노니아의 관계로 가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김삼일 가족들은 코이노니아로 이루어진 행복한 가족입니다. 진정한 교제를 나누는 관계이며 서로를 격려하고 배려해 주는 관계입니다.

오늘의 말씀을 맺습니다.

성령님은 성도들에게 주님과 교제하도록 감동을 주십니다(고전 01:09; 벧후 01:04). 성령님은 성도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상호 간에 교제를 이어주십니다. 신약성경에서 서로(125), 더불어(52), 함께(463) 같은 부사들은 코이노니아를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용어들입니다. 그러므로 교제를 나누는 일에는 혈연, 학연, 지연을 초월해야 합니다.

행 02:42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삼위일체 하나님과 더불어 시작된 교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교제로 나타나야 진정한 교제의 열매를 맺습니다. 여기에서 신령한 힘을 얻어 세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할렐루야.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가

‘성도의 교제’가 무엇인가?

임경근 목사(다우리교회)

사도신경 가운데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한다. 성도가 서로 교제하는 것, 곧 사귀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일게다. 그런데 이것은 라틴어 원문 ‘콤뮤니오렘 상토룸’(communiorem sanctorum)의 의역인데 사실은 오역인 셈이다. 왜냐하면 이 번역은 ‘성도의 교제’의 한 면인 ‘성도 간의 사귐’만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직역이 아닌 의역이 만들어 내는 전형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이다. 짧은 몇 개의 명사로 의미를 나타내야 하는 경우 의역은 오역을 낳기 쉽다. 특히 성경 전체를 짧은 사도신경으로 나타낸 경우는 더 그렇다. 다행히 새로운 사도신경 번역은 이것을 “성도의 교제”로 올바로 번역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성도의 교제’를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교회에서 성도의 교제 혹은 성도의 교통은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는 것으로만 이해한다. ‘구역모임’이나 혹은 ‘학생들의 소그룹’, ‘성경공부 모임’ 같은 것들의 핵심은 사실상 사귐이 그 중심에 있다. 구역모임 1부는 요식행위로 그치고 정말 중요한 시간은 2부, 소위 교제의 시간이다. 맛있는 음식과 더불어 온갖 관심사들이 쏟아져 나온다. 어쩌면 바로 이 사귐이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람들이 서로 자신을 내어 놓고 마음을 나누고 소통하는 것을 성도의 교제로 이해한다.

한국 사회가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는 도시화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 생활의 외로움을 교회에서 찾을 수 있었던 점도 부인할 수 없다. 교회는 좋은 교제의 장소였다. 학창 시절에 불신부모들은 교회는 ‘연애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딸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싫어했다. 교회에 가면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곳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다보니 교회는 수직적 하나님과의 교제보다는 수평적 성도들의 교제에 그 우선순위를 빼앗기고 있다. 교회는 성장하기 위해 수평적 교제를 강조하고 강화하기 시작했다. 이 방법이야 말로 사람들을 교회로 이끄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인식되었다. 지금도 이 성도의 교제는 좋은 전도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어쩌면 교회는 복음의 본질인 하나님의 복음을 노골적으로 제시하는 설교를 미련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설교도 인간관계를 다루는 주제들이 많아졌다. 내적치유, 관계와 사랑의 기술 같은 것들이 설교의 주요 주제가 되었다. 정말 중요한 복음의 본질을 놓치기 일쑤다. 복음만을 전하는 교회는 딱딱하고 메마르고 재미없어 인기가 없다. 성도들의 귀를 기쁘게 하는 사랑의 관계에 대한 설교가 주를 이룬다. 이런 수평적 성도의 교제가 강조되지 않는 교회를 성도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성도의 교제가 부족하다느니, 사랑이 없다느니 하며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가 그런 것인가? 성도의 교제의 본질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설명하고 있는 ‘성도의 교제’를 보자.

55문: “성도의 교제”를 당신은 어떻게 이해합니까?

답: 첫째, 신자는 모두 또한 각각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그의 모든 부요와 은사에 참여합니다.

둘째, 각 신자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도의 교제에 바른 의미에 대해 분명하게 정리한다. 성도의 교제는 일차적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주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만들어 놓으신 모든 부요, 곧 ‘보물’과 은사, 곧 ‘선물’에 참여하는 것이 성도의 교제이다. 대표적인 성도의 교제는 성찬이다. 성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베풀어 주시는 천국 만찬이다. 바로 이 성찬에서 성도와 그리스도와의 진정한 교제, 즉 코이노니아(koinonia)가 이루어진다.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기 위해서는 성찬을 가능한 자주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현 한국 교회는 성찬식을 하긴 하지만 이를 통한 성도의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이루고 있을까?

두 번째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성도는 성도 상호간에 교제를 할 수 밖에 없다. 수직적 교제가 있는 경우, 자연스레 수평적 교제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것조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성도의 교제이다. ‘성도의 교제’는 남이 나를 위해 사랑을 주고 관심을 주는 것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차원이 아니다. 올바른 성도의 교제는 ‘자기의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과 복을 위하여 기꺼이 그리고 즐거이 사용할 의무’를 행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를 말한다.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불평하는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를 발견하고 그 보물에 참여하는 성도, 곧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잘 하는 성도는 다른 사람을 향한 성도의 교제로 자연스레 나아간다. 그것은 받으려는 차원의 교제가 아니라, 받은 은사를 가지고 섬기고 돕는 차원의 교제이다. 이런 차원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에 풍성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익숙한 성도의 교제가 아니라, 바른 의미의 성도의 교제가 교회에 어떻게 가르쳐지고 적용되어야 할지 기도하며 적용해 가야 하리라.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요일 1:3-7)

2013. 12. 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20)

본문 : 요일 1:3-7

제목 :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는 대형교회들로 인해서 복음이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가 되고 또 여러 가지 큰일을 행하고 교회의 세력이 막강해지게 하고 이런저런 좋은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한 면이 좋으면 다른 한 면이 좋지 않는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교회의 대형화 때문에 교회의 모습이 좋지 않은 방향으로 변질이 되어가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대형교회의 일부 목사들이 돈과 권력과 이성문제에 휩싸이면서 교회가 일부 특정계층의 사람들에게 돈벌이의 수단으로 권력의 수단으로 이용이 되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질이 되고 그 영향으로 많은 목회자들에게 타락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교회의 기능 중에 가장 중요한 “성도의 교제”가 없어지거나 이상한 것으로 변질되어 간다는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교회는 그냥 와서 예배나 드리고 가버리는 그런 모임이 아닙니다.

서로 교제를 나누며 함께 살아가는 모임입니다.

특별한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도와주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서 험한 세상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서로 도와주는 곳이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교회가 큰일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교회가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형교회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교회에 다니기만 하는 구경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고 해도 결국은 그 중에서 10~20%만 일꾼이 되고 나머지는 할 일이 없는 사람으로 교회에 다니기만 합니다.

작은 교회라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자기 본분을 다한다면 수십 명이 모여도 수백 명이 모이는 교회의 일을 할 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교회가 무슨 일을 하기 위해서 모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한 마음이 되고 서로 힘을 합하여 서로 나누고 서로 교제하기 위해서 모이는 모임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친밀하게 교제함으로 힘을 모아서 주님의 일을 하는 것이지 일을 위해서 모이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형교회가 된다는 것은 교회의 가장 중요한 것인 이런 친밀한 교제를 나누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를 믿는다고 할 때 교회의 일원이 되는 성도들의 교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믿는다는 것입니다.

성도의 친밀한 교제가 없는 것은 교회로서의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살펴보시고 교제의 중요성을 알고 교회 안에서 서로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과의 교제로 성도라는 신분을 가지게 됩니다.

사도신경은 거룩한 공교회를 믿는다는 고백 뒤에 그 교회의 일원인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번역에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1)서로 교제해야할 대상은 성도입니다.

아무나 교제하라는 것이 아니라 성도끼리 서로 교제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이기 때문에 서로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이 된 특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특별한 사람인 거룩한 무리들과 서로 교제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인 우리가 서로 교제를 하기 전에 우리가 성도의 신분을 가져야 교제의 대상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이 누구와 교제를 나누면서 사는가가 참 중요합니다.

교제의 대상이 나쁜 사람이면 나도 나쁜 사람이 되어갑니다.

교제의 대상이 원망과 불평의 사람이라면 나도 원망과 불평의 사람이 되어 갑니다.

교제의 대상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이라면 나도 그런 사람으로 바뀌어 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와 교제할까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교제 대상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를 해야 합니다.

성도도 아닌 사람과 교제할 필요가 없고 성도가 아닌 사람과 교제를 하다가는 나 자신도 성도가 아닌 사람처럼 행동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2)성도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도가 누구인가라고 할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 교회에 다니는 사람,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 거듭난 사람, 이런 저런 조건들이 많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하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요 거룩한 무리인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요한복음을 기록한 사도요한이 기록한 글입니다.

사도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하고 그 말미에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의 기록 목적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를 구원할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여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한 목적을 오늘 본문 3절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라고 했습니다.

사도요한이 보고 들은 바를 우리들에게 전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리는 사귐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주에 교회라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서 교회란 정말로 특별한 사람들이 모이는 것임을 말씀드렸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엄격하게 구별이 되는 특별한 신분을 소유한 것이 교인이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 특별한 신분이 얼마나 소중한지 더 말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

정말로 이 세상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엄청나게 다른 거룩한 신분입니다.

그 엄청난 신분인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는 신분이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으로 다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과 교제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사람으로 어떤 은혜를 베푸셨는지를 바로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이룸으로 그 거룩한 신분인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

3)하나님과의 사귐은 우리에게 기쁨을 줍니다.

우리는 요한일서 강해설교를 들으면서 요한일서의 주제가 “완전한 사귐 충만한 기쁨”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힘들고 어렵게 때로는 원망도 하고 불평도 하면서 억지로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사귐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에는 왔다가 갔다가 하지만 하나님과 교제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교제를 나누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인데 남들 연애하는 것 구경만하고 다니는 사람처럼 깊은 교제를 나누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바르게 안다면 우리는 그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누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우리에게 참된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종이나 하인처럼 대우하시지 않으십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우리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시거나 충성을 강요하는 분으로 알고 가까이 하기를 싫어합니다.

사람들은 우리 하나님을 우리가 조금만 잘못을 해도 엄하게 벌을 내리시는 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까이 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대우해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이시면서 우리의 신랑이 되시면서 우리와 한 몸을 이룬 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몸이요 뿌리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연결이 되지 않으면 생명을 얻을 수도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더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귀한 책입니다.

성경을 읽으시면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시고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이왕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다니시려면 하나님을 더 잘 아시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나오시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교제를 누림으로서 참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성도들과의 교제로 성도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교제를 나누어야 할 대상은 성도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거룩하게 구별된 특별한 신분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끼리 교제를 나누면서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생활 즉 신앙생활은 성도의 교제에서 시작이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교제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라는 단어입니다.

친교(felloship), 교제, 합동, 참여, 구제, 동정, 사귐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교제라는 말은 단순히 사귀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 사도신경 번역에서는 이 말을 “교통”이라는 말로 번역했습니다.

교제라는 말보다 더 좀 강한 의미의 말이기 때문인데 우리의 언어에서 교통이라는 말은 잘 안 쓰기 때문에 교제라는 말로 번역을 한 것 같습니다.

교통이라는 말은 서로 간에 막힌 벽을 허물어서 서로 오가는 사이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편지가 오고가고 소식이 오고가고 서로 왕래를 하고 하는 것을 교통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차들이 오고가는 것을 교통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요즘 소통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부모 자식 간에 소통이 안 되고 백성과 정부 사이에 소통이 안 되어서 사이가 나빠지고 서로 불행해집니다.

성도 간에 교제라는 것은 서로 말이 통하고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 왕래를 하고 서로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단순히 교제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가깝고 더 친밀하고 더 많은 것을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1)교제의 목적은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누림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또한 우리 성도간의 교제도 기쁨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에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 하고 성도와 서로 교제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디 즐거운 일이 없는가 하고 즐거운 일을 찾아다닙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친목회도 만들고 함께 취미생활도 하면서 즐겁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 비하면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별로 즐거워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즐거움은 성도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일시적으로는 즐거운 것 같지만 그 즐거움의 뒤에는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거짓된 즐거움입니다.

술을 마시면 즐겁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비참합니다.

잘못된 이성 관계는 당시에는 즐거움이 되겠지만 그로인한 후유증은 엄청난 것입니다.

마약이나 도박 같은 것들은 순간적으로 쾌락을 느끼게 하지만 사람들을 절망으로 이끄는 무서운 것들입니다.

그래서 우리 성도들은 세상의 일시적인 쾌락을 따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합니다.

그 즐거움이 우리 성도들과의 교제에서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2)교제의 방법은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에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고 따르고 교제하는 하나님은 빛이시라고 했습니다.

우리 하나님께는 어두움이라고는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우리도 빛 가운데서 행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6절 말씀에는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두움에서 행하면 거짓말하는 사람이고 진리를 행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7절 말씀에는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서 행할 때 사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서 행하는 것이 성도간의 교제의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교제는 어두움 속에서 행하는 교제이지만 교회에서 성도간의 교제는 빛 가운데서 행하는 교제라는 것입니다.

여기 빛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고 진리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가 되십니다.

성도 간에 나누는 참된 교제는 진리 안에서 나누는 교제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누는 교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믿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고 서로 나누는 것이 진정한 교제입니다.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서로에게 고백하고 나누어줌으로 서로가 교제를 나누고 서로가 기쁨을 나누는 것이 진정한 교제입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세상 것들 자랑하기에 바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 세상의 권력 세상의 지위와 명예 세상의 즐거움들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우리 집에는 금송아지가 있고 내가 왕년에는 꽤 잘나갔던 사람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이런 세상의 자랑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제를 깨트리는 아주 나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은 내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랑은 내가 지금 하나님의 은혜의 언약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기쁨을 서로 나누는 것이 성도의 교제입니다.

3)교제를 위해서 필요한 자세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과의 사귐은 참 어려운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행동을 하면 교제를 나눌 수가 없습니다.

성도간의 교제에 있어서도 많은 공부가 필요하고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제에 있어서 제일 필요한 것은 겸손한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랑하는 사람을 제일 싫어합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만나기 싫어합니다.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성도들과 교제하기를 싫어하는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 교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자부심 때문에 교만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나의 자랑거리가 못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 소중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교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과 교제의 통로이고 사람들과의 교제의 통로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있을 때 더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있는 사람은 점점 더 하나님과도 멀어지고 사람들과의 사이도 멀어집니다.

사탄은 원망과 불평하는 마음을 타고 들어와서 사람의 사이를 가르고 하나님과의 사이를 멀어지게 합니다.

교제에 있어서 또 중요한 것은 열린 마음입니다.

마음의 문을 열 때 서로 교통을 할 수 있습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있으면 교제할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셨으면 여러분의 마음을 여십시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 내 속마음을 말씀 드리십시오.

성도들과도 마음의 문을 열고 대화를 하십시오.

서로에게 있는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누시고 또 어려운 것들도 함께 나누시고 위로를 받으십시오.

남남처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처럼 그냥 왔다가 가 버리면 신앙생활이 힘들어집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고 함께 식사도 나누고 함께 활동도 하면서 친밀한 교제를 나누셔야 됩니다.

세상은 너무나 험하고 우리 인간은 너무나 나약한 존재입니다.

혼자 있으면 쓰러지기 쉽고 혼자 있으면 유혹에 넘어가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교회를 이루고 함께 하면서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함께 손을 잡고 함께 위로하면서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함께 나아가는 것이 교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교회를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있는 우리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하나님 교제하면서 성도들과 교제하면서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천국까지 가야합니다.

성도 간에 친밀한 교제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성경말씀묵상-성도들의 교제를 소유함에 관한 묵상. (we have fellow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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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들의 교제를 소유함에 관한 묵상. (we have fellowship)

코로나 역병으로 모든 시스템이 변화하고 통제의 사회로 들어서는 것을 보며, 주님이 오실날이 정말 멀지 않았음을 피부로 느끼는 마지막 시대의 끝을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승천 이후부터 계속되는 고난과 핍박의 연속이었습니다. 모이는 것을 통제 받고 제재 받는 이 시대에 모임과 교제의 중요성에 대해 많은 지체분들이 힘들어 하며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주님 안에서 모이는 것이 본질입니다.

[마 18:20]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흙먼지로 아담을 만드시고 호흡을 불어 넣으시니 살아 있는 혼이 되었던 것처럼, 성도들도 내 안에서 나오는 주의 말씀으로 인해 다른 성도들을 살리고 세울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 안에 있는 성령님의 유기체적인 영적 활동이며 이는 하나님의 생명의 호흡의 작용과 동일합니다. 특히 복음을 전하여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을 때나 교제를 통하여 혼이 회복될 때 이 모든 현상들은 성령님의 활동에서 나옵니다.

★ 교제(fellowship)란

● 1. 교제(fellowship)는 성도들간의 커뮤니케이션과 섬김을 통해 주님을 증거하며 드러내 나타내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리고, 서로 기도하며, 성도를 사랑하며/ 섬기고/ 세우는/ 모임입니다. 즉 교회의 뜻과 교제의 목적은 일치합니다.

=> 교제는 단순하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안에서 서로 호흡을 주고 받는 영적 활동이며 생명력이 넘치는 행위입니다.

● 2. 교제의 핵심은 교제의 대상입니다. 누구와 교제(fellowship)하는가가 제일 중요합니다.

* 우리의 교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합니다 (고전1:9).

[고전 1:9] 너희를 부르사 자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신실 하시도다.

* 우리의 교제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요일1:3).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그것을 너희에게 밝히 드러냄은 너희 또한 우리와 교제하게 하려 함이니 참으로 우리의 교제는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이며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것이니라.

● 3.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과의 교제(fellowship)는 모든 교제의 기초이자 뿌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이 없는 교제는 그냥 사람들의 친목 도모이며 나의 만족감을 위한 사회적 활동일 뿐입니다.

● 4. 예수 그리스도와 교제(fellowship)하게 되면 반대로 단절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 죄, 불의, 불법, 세상, 육신, 어둠의 일들과 멀어지고 단절되게 됩니다.

● 5. 교제(fellowship)에는 조건이 있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 “만일 우리가 / 빛 가운데 걸으면 / 우리가 서로 교제하고”

[요일 1:7] 그러나 그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만일 우리가/ 빛 가운데 걸으면/ 우리가 서로 교제함을 가지고(we have fellowship)/ 또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모든 죄에서/ 우리를 / 깨끗하게 하느니라.

● 6. 교제의 성경적 정의를 고린도후서의 예를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고후6:14-16).

[고후 6:14-16] 너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공평하지 않게/ 멍에를 같이/ 메지 말라. 의가/ 불의와/ 무슨 사귐을/ 갖겠느냐? 빛이/ 어둠과/ 무슨 친교를/ 나누겠느냐? 그리스도가/ 벨리알과/ 무슨 일치를/ 보겠느냐? 혹은 믿는 자가/ 믿지 않는 자와/ 무슨 몫을/ 나누겠느냐? [하나님]의 성전이/ 우상들과/ 무슨 조화를/ 이루겠느냐?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고/ 그들 가운데/ 거닐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 성경이 말씀하시는 교제(fellowship)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누군가와 멍에를 같이 매는 것,

둘째, 사귐을 갖는 것

셋째, 친교를 나누는 것

넷째, 하나로 일치를 보는 것,

다섯째, 무슨 몫을 나누는 것

여섯째, 조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 교제(fellowship)의 유형들.

● 1. 말(대화)의 교제 (마5:37, 약5:12).

[마 5:37] 오직 너희 대화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 하라. 무엇이든지 이것들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느니라.

[약 5:12] 그러나 내 형제들아, 무엇보다도 먼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나 땅으로나 다른 어떤 맹세로도 맹세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예는 예라 하고 너희의 아니요는 아니요라 하라. 이것은 너희가 정죄에 빠지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 2. 복음의 교제. 복음을 전달하는 것, 복음과 함께 (갈2:2).

[갈 2:2] 내가 계시로 말미암아 올라가 내가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포하는 그 복음을 그들에게 전달하되 명성 있는 자들에게는 개인적으로 하였으니 이것은 어찌하든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빌 1:3~5] 내가 너희를 기억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너희 모두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항상 기뻐하며 간구함은 첫날부터 지금까지 너희가 복음 안에서 교제하였기 때문이라.

[빌 1:27] 오직 너희 행실을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에 대한 일들 곧 내가 가서 너희를 보든지 떠나 있든지 너희가 한 영 안에 굳게 서서 복음의 믿음을 위하여 한마음으로 함께 싸우며

[빌 2:22] 오직 그의 증거를 너희가 아나니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듯 그가 나와 함께 복음 안에서 섬겨 왔느니라.

● 3. 물질의 나눔을 통한 교제 (갈6:6, 빌4:15,16 딤전6:18, 히13:15,16).

[갈 6:6] 말씀 안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는 가르치는 자와 함께 모든 좋은 것을 나눌지니라.

[빌 4:15~16] 빌립보 사람들아, 이제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초기에 내가 마케도니아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일로 나와 나눈 교회가 오직 너희 외에는 없었느니라. 심지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그리고 또 다시 내 필요를 위해 보내었느니라.

[딤전 6:18] 또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

[히 13:15~16]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오직 선을 행하는 것과 나누어 주는 것을 잊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희생을 매우 기뻐하시느니라.

● 4. 믿음의 선한 교제 (몬1:6).

[몬 1:6] 또 내가 그리함은 너의 믿음을 나누는 일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인정받음으로 말미암아 효력 있게 하려 함이라.

● 5. 반대로 악한 교제가 있으니 이것은 마귀들에게 드리는 희생물이며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고전10:20, 고전15:33). *evil communications. / 개신교에서 천주교에서 자주 행해지는 추모제, 추도식, 추도 예배 등은 모두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입니다.

[고전 10:20] 그러나 내가 말하건대 이방인들은 자기들이 희생물로 드리는 것들을 [하나님]께 희생물로 드리지 아니하고 마귀들에게 드리나니 나는 너희가 마귀들과 교제하는 것을 원치 아니하노라.

[고전 15:33] 속지 말라. 악한 사귐은 선한 습성을 부패시키느니라.

★ 어떤 교제든지 교제는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열매vs나쁜열매).

=> 그렇기에 우리 성도들은 주님이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항상 말씀 안에(in word) 거해야 하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in Jesus Christ), 말씀(word) 안(in)에서 서로 교제해야 합니다.

[딤후 2:9] 이 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악을 행하는 자처럼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

[벧전 1:25] 오직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지속되나니 복음으로 너희에게 선포된 말씀이 이 말씀이니라.

[갈 5:22~24]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애착들과 정욕들과 함께 육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엡 5:9] (성령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와 진리 안에 있느니라.)

[엡 5:11] 열매 없는 어둠의 일들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그것들을 책망하라.

[빌 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의 열매들로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양이 되기를 구하노라.

[빌 1:22] 그러나 내가 육체 안에 산다면 이것이 내 수고의 열매이니라. 그럼에도 내가 무엇을 택할지 알지 못하노니

[빌 4:17]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아니하며 오직 너희 회계장부에 넘치게 될 열매를 바라노라.

[골 1:6]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골 1:10] [주]께 합당하게 걸어 모든 일에서 그분을 기쁘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서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서 자라나고

[딤후 2:6] 수고하는 농부가 열매에 맨 먼저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마땅하니라. (첫열매 – 추수 – 이삭줍기 중 추수에 해당하는 휴거의 복된소망을 예표하는 구절입니다)

[약 1:18] 그분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으니 이것은 우리가 그분의 창조물 중의 첫 열매 종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첫열매 – 추수 – 이삭줍기 중 추수에 해당하는 휴거의 복된소망을 예표하는 구절입니다)

[딛 3:14] 또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도 필요한 용도를 채워 주기 위해 선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을 배워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라.

[히 12:11] 이제 어떤 징계도 그 당시에는 기쁘게 보이지 아니하고 슬프게 보이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중에는 그것으로 말미암아 단련된 자들에게 그것이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느니라.

[히 13:15] 그러므로 우리가 그분으로 말미암아 계속해서 찬양의 희생을 [하나님]께 드리자. 그것은 곧 그분의 이름에 감사를 드리는 우리 입술의 열매니라.

[골 1:6] 이 복음이 온 세상에 있는 것 같이 너희에게 이르렀으며 너희가 그것을 듣고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안 그 날부터 너희 안에서도 열매를 맺는 것 같이 열매를 맺는도다.

말씀 안에서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God)이 기뻐하시는 좋고 선한(Good)열매를 많이 맺으시어 진정한 기쁨을 누리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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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깟 성도의 교제라고?

노경실 작가의 영성 노트 “하나님, 오늘은 이겼습니다!” (89)

사도신경>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새번역)

나의 동화책 중 “짝꿍 바꿔주세요”가 있다. 거의 20년이 넘도록 아이들이 사랑하는 책이다. 이 책을 주제도서로 삼아 초등학생들 대상으로 강연하는 기회가 많은데, 그때마다 나는 같은 질문을 한다. “내 인생에서(좀 우스운 표현이지만) 제일 먼저 바꾸고 싶은 사람은?” 답이 어떻게 나올까? 놀랍게도 “엄마”가 전국 어디서나 1순위다. 그러나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이 가장 먼저 찾는 사람도 엄마이다.

이런 이상한 심리가 교회 안의 구역예배, 목장, 셀, 순, 다락방 등등의 이름으로 모이는 그룹에도 있다. 나 역시 교회의 셀 구성원으로 있는데, 크고 작은 일들이 쉼없이 일어난다. 그 모양새는 마치 초등학교 교실의 짝꿍, 친한 친구, 싫은 아이… 이런 관계같다. 좋게 표현하면 알콩달콩 사랑을 엮어가는 작은 정원이다. 그러나 보이는 대로만 말하자면 아이들 투정질, 싸움터같은 게 성도의 교제이다.

그래서인지 교회마다 은밀하게 ‘목장 바꿔주세요’ ‘구역장 바꿔주세요.’ ‘나를 다른 셀로 옮겨주지 않으면 교회를 옮길 겁니다.’ ‘우리 다락방은 식사하는 데에 너무 신경을 안 써요. 요즘은 그런 게 얼마나 중요한데…’ 심지어는 ‘우리 리더는 자기자랑하려고 목장예배 드리는 것 같아요(또는 리더가 너무 무식해요)!’ 라며 목회자들에게 고발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 우리 셀모임에서도 찌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몇 사람이 만나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크리스천이라면 모든 모임의 끝은 이렇게 되는 게 뻔한 것이다. ‘셀을 위해 더 기도하고, 서로를 감싸고, 중보기도하자! 파이팅! 주님 감사합니다!’

하지만 평생 작가로 사는 극히 개인주의 성향의 나에게는 셀모임이 부담스럽다. 그래서 이번 시끄러워진 기회를 핑계로 셀을 탈출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폭탄선언을 하려고 했다. ‘나는 그냥 조용히 성도로서 살겠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사도신경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5살 때부터 고백한 사도신경이니 내 삶의 시간 속에 얼마나 수없이 외우고, 말하고, 읽었겠는가. 하지만 그 순간에는 벼락처럼 사도신경의 이 구절이 내 심장을 내리쳤다.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모두 5가지에 대한 믿음고백으로 마무리되는 사도신경. 나는 깜짝 놀랐다. ‘성령! 교회! 죄용서! 몸의 부활! 영생!’ 이 어마어마한 주제 속에 그깟(내 생각에) ‘성도 교제’도 함께 있는 거야? 말도 안 돼! 성도의 교제가 뭐라고? 감히 영생이나 부활과 같은 위치에 있어? 성도의 교제라는 게 교회에서 임의로 짝지어줘서 목줄잡아 끌리듯하여 강제로 만나는 사람들인데.. 그래도 교회는 참으로 신비한 곳이라 구역 식구들 앞에서는 모두가 이빨 빠진 늑대, 발톱 감춘 이리, 혓바닥 삼키는 뱀, 눈물 흘리는 호랑이, 때마다 밥 사는 곰, 재주 부리지 않는 원숭이, 무슨 말을 해도 화내지 않으려고 뿔내지 않는 염소가 된다.

하나님이 아니면 사실 짐승같은 우리들이다. 하지만 주님은 사람 눈에 ‘그깟 성도의 교제’를 놀랍게도 ‘부활과 죄사함과 영생’의 자리에 나란히 놓아주셨다.

성도들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도의 교제를 하찮게 여기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주님이 이처럼 성도의 교제를 아끼시고,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면, 나처럼 당장 입을 다물게 될 것이다. 아니, 교회의 갈라진 미세한 틈들을 단단히 메꾸는 구역예배로, 셀 모임으로, 목장지기로 충성하려고 애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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