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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처럼 기도하지 말라 : 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
하지만 나는 야베스의 기도가 존귀한 자의 기도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윌킨스의 책을 비판해보려 한다. 일단 야베스는 그의 기도로 인해 존귀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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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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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목사] 야베스의 기도의 올바른 해석은? (역상4:9-10) –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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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naver.com
Date Published: 12/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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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 기도의 원리 – 1 – 침례신문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나오고,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 책을 비판하는 글들 또한 많이 출간되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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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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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 – 디모데성경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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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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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는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 기도 – 크리스챤월드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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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ristianwr.com
Date Published: 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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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기도 깨기 – 크리스찬북뉴스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야베스의 기도를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 … 생각을 비판하는 비판적인 책이며, 세속화된 기도에 대한 대안으로 예수님의 기도 …
Source: www.cbooknews.com
Date Published: 3/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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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야베스의 기도 비판
- Author: Lynn K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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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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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처럼 기도하지 말라 : 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
요게벳의 노래 관련된 글을 쓰다가 생각난 김에 전에 블로그에 있던 야베스의 기도 관련 글을 가져왔다. 2009년에 쓴 글이어서 오타 몇가지 고치고 추가적인 내용은 뒤에 붙여본다.
쫌 뒤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문득 야베스의 기도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든 생각을 남겨본다.
지금까지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많은 책들이 있었지만 우리가 따라야할 기도의 모본은 예수님의 기도이지 성경에 짧게 나오는 야베스의 기도가 아니다라고만 할 뿐 정작 야베스의 기도 자체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설명을 해준 책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야베스의 기도가 존귀한 자의 기도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 윌킨스의 책을 비판해보려 한다.
일단 야베스는 그의 기도로 인해 존귀해진 것이 아니다. 성경엔 야베스가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였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미 존귀한 야베스가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즉, 그의 기도가 그를 존귀하게 만든 것이 아니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존귀한 자라는 표현은 ‘그 형제보다’라는 제한을 가지고 있다. 그냥 존귀한 자라는 것이 아니라 그 형제들 사이에서 더 존귀한 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 존귀함이라는 것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어떤 것인지 의문을 갖게한다.
무엇보다 ‘존귀한’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단어는 단순히 ‘존경할만한’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고, 뛰어난 장수를 표현할 때 쓰는 ‘뛰어난’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또한 공동번역은 이 말을 ‘가장 세력있는’이라고 번역하였다. 브렌튼은 70인역 영어 번역에서 이 단어를 famous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존귀한’의 의미보다는 더 크고 세력이 있고 기능적으로 뛰어난 혹은 여러사람에게 잘 알려져 존경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 가족중에서 그가 존경받거나 뛰어나게 여겨질 이유라면 당시 사회의 문화적인 것을 고려할 때 공동번역의 해석이 힘을 얻는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공동번역의 번역을 따라가자면 일은 점점 심각해진다. 그는 이미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자기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무엇이 부족해서 그는 더 구하는가? 여기서 ‘하나님을 위해’라는 말을 붙여 해석하는 것은 본문에 대한 곡해이다. 본문 어디에서 그런 것은 드러나 있지 않다.
구약의 사회에서 지경을 넓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여기서 지경이라는 말은 ‘경계’라는 말이다. 히브리어 사전에서 이 단어를 찾으면 가장 먼저 나오는 용례는 신명기 19장 14절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여기서 옮기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는 ‘경계표’가 야베스가 넓혀달라는 ‘지경’과 같은 단어이다. 다른 용례에서도 경계는 가나안 입성과 함께 하나님이 정해주신 각 기업의 경계를 의미한다. 일부 예외적인 구절을 제외하고 이 단어는 다른 용례로 사용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고 사람이 옮길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야베스는 그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주를 위해서 주의 명령을 어기길 요구한다는 말인가? 성경에 따르면 당시에는 토지의 매매자체가 불가능했다. 돈이 필요할 경우 땅을 빌려줄 수 있었을 뿐이다. 다시 되찾고 싶으면 언제든지 희년까지 남은 기간을 계산하여 값을 지불하고 다시 그 땅을 찾아올 수 있었고 돈이 없으면 가까운 친척이 그 땅을 되찾아 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 희년이 되면 그 땅은 아무 댓가 없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다. 당시에 경계를 옮길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있었다. 율법을 어기고 자기보다 약한 자의 것을 빼앗는 것.
그 당시에 농경사회를 살았던 이스라엘에게 땅을 곧 생존을 의미했다. 더군다나 역대기의 기록연대(야베스의 생존 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를 포로기 귀환 이후로 볼 때 그 당시에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기업을 되찾으려하는 유대인들에게 땅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 넓히는게 문제가 아니라 그 기업을 그대로 되찾는 것이 그들에겐 약속의 상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야베스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불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위한 비전이 아니라 인간의 욕심이 있는 그대로 드러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내 형제가 죽어도 상관없으니 내꺼 크게 해달라는 기도를 너무나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 땅과 관련된 비슷한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나봇의 포도원 사건… 당시 포도원을 팔 것을 요구했던 아합왕의 요구에 물려받은 기업이라 팔 수 없다는 나봇을 이세벨이 죽인다. 시돈의 딸인 이세벨과 아합이 결혼하면서 이스라엘은 바알을 섬기기 시작하고 그와 함께 물신숭배 사상이 이스라엘을 뒤덮으면서 이스라엘의 전통적 토지체제는 붕괴하게 된다. 이처럼 성경에서 우상의 숭배는 단순히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넘어서 그 사회체제 자체를 뒤바뀌는 것이다. 여호와가 버림받고 바알이 이스라엘을 지배한다.
물론 야베스의 시대를 확정할 수는 없다. 역대기의 족보가 워낙 광범위한데다가 야베스의 이야기는 족보와 거의 독립되어서 쓰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뻔뻔한 외침이 가능했던 시기라면 그 때 밖에 없지 않을까? 그래도 악인이 승리하는 것 같은 그 시대에도 역사를 끌어가시는 것은 바알이 아닌 여호와 하나님이셨다.
그렇다. 브루스 윌킨스의 말이 다 맞다 치자. 그래도 이 책은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다. 다름 아닌 역대상 4:9~10절의 주인공은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기도를 들으신 것은 하나님이다. 야베스의 기도가 뛰어난 기도여서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게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야베스의 기도를 들으신 것이다. 여기다 중요 표시 몇개를 해야 이 중요성이 표현될 수 있을까? 그 기도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 기도가 뛰어나서 하나님이 들으신 것이 아니다. 기도를 들어주시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이요, 결정이다.
도대체 그렇게 이기적이고 불법적인 기도를 하나님이 왜 들으셨는지는 그냥 모르는 것으로 남겨둬야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기도를 들어주셔서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와 그의 기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된다. 예수님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부자는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부자가 되었고 가난하거나 병에 걸린 사람은 하나님이 저주하셔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을 향해서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지금 우는 자가 복이 있다.’
십일조 많이 해서 부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NO! 그 사람을 부자 만드는 것은 그가 십일조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내가 쓰임 받겠다고 지경을 넓혀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릴 쓰시기 위해 다른 일들을 하신다. 앞뒤 순서가 잘못되도 너무 잘못됐다. 해석이야 각자 다를 수 있다치더라도 기도의 주체가 누구인지만은 분명히 해야하지 않을까?
여기서부터 추가분
2009년에 이 글을 쓸 때는 아마도 내가 개역한글판을 썼나보다. 당시에 야베스의 기도 책자 역시 개역한글판을 썼고 관련해서 나온 노래도 개역한글판을 썼기에 당시에 야베스의 기도 본문은 아래와 같았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그런데 오랫만에 글을 수정하려고 봤더니 개역개정에서는 아래와 같이 번역하고 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재미있는 표현이다. 그냥 복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을 주시려거든 이런이런 복을 달라는 표현으로 읽힌다. 이 부분은 오히려 내가 위에 썼던 내용과 연결이 잘 되는 것 같다.
물론 9절에서 ‘존귀한 자’라는 표현을 ‘귀중한 자’라고 번역한 것은 뒤에 이어지는 어머니가 그를 수고롭게 나았다는 언급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번역이 아닐까 싶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전히 공동번역의 표현이 활력있게 들린다. 물론, ‘귀중한 자’라는 표현을 야베스가 이런 악한 기도를 드리게 된 원인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의 부모가 어렵게 낳아서 오냐오냐 ‘귀하게’ 키우는 바람에 이렇게 앞뒤 모르는 기도를 드린 것일지도…
야베스 기도의 원리 – 1
역대상 4장 9~10절의 말씀은 우리에게 “야베스의 기도”로 많이 알려진 말씀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2000년대 초반 애틀랜타의 부르스 윌킨스 목사님의 야베스의 기도-내 삶을 채우는 기적의 원리라는 제목의 책이 세계적으로 천 만 부가 넘게 팔리게 되면서, 많은 크리스천들의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야베스의 기도라는 책이 나오고, 큰 성공을 거두었을 때, 책을 비판하는 글들 또한 많이 출간되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크리스천들의 기도 모델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이 돼야 하는데, 야베스의 기도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했으며, 성경을 제대로 해석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독자들에게 기복적인 신앙을 불어 넣었다는 점이었습니다.
윌킨스 목사님의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현상이나, 이것에 반응해 많은 비평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온 것들을 돌아볼 때, 야베스의 기도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큰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사실 본문의 말씀은 많은 학자들을 오랫동안 고민하게 만들었는데, 그 이유는 야베스의 기도가 등장하는 본문의 해석이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야베스라는 인물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역대상 4장 9~10절의 말씀뿐이고 야베스라는 기록이 등장한 다른 곳은 역대상 2장 55절에, 같은 이름으로 세워진 성읍이 존재했다라는 기록 정도인데, 심지어 학자들 사이에도 이 성읍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인물 야베스와 관련이 있는지와 관련해서는 합치된 의견을 보이고 있지 않습니다. 또 다른 해석상의 어려움은 야베스의 기도를 둘러싸고 있는 문맥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 부분에 놓여 있습니다.
역대상 1~9장은 이스라엘의 족보에 관련한 말씀인데, 야베스의 기록은 2장 3절부터 4장 23절까지 유다 족속의 족보 가운데에 등장합니다. 이러한 4장 9~10절의 앞과 뒤에 이어지는 기록들은 야베스라는 인물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기에, 족보의 한 가운데에 어떠한 이유로 이러한 인물이 등장했는지 역대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여러 해석상의 어려움들이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이 말씀이 갖고 있는 강력한 메시지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바로 야베스의 기도가 전하는 몇 가지 중요한 기도의 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기도의 원리에 대해 살펴보기 이전에, 역대기의 저자가 역대기를 기록한 특별한 전략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여러 인물의 족보를 기록하다가, 갑자기 야베스라 인물이 생각이 나서, 잠깐 족보의 기록을 멈추고, 아베스의 삶과 그의 기도를 기록했을까요?
이러한 즉흥적인 생각은 역대기의 저자를 잘 이해하지 못한 접근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역대기의 저자는 세밀한 전략과 계획을 갖고 역대기를 기록했습니다. 역대기의 구성은 역대상 1-9장까지는 족보, 역대상 10장부터 역대하의 마지막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이전 역사를 그리고 있는데, 이 가운데 족보는 연대를 기록하는 목적도 있지만, 사실 뒤에 나오는 역사의 기록 가운데 등장하는 중요한 주제들을 소개해주고 관심을 유도 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역대상 1~9장 사이에서 족보를 이야기할 때, 모든 12지파 가운데 유다 족속을 제일 먼저 기록합니다. 유다 지파는 첫째 지파가 아닌 넷째 지파이지만, 역대기의 저자는 유다 족속이 포로 후기 왕국 건설에 주역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유다 족속에서 다윗 왕이 나왔고, 그의 왕국이 영원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대상 28장 4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전에 나를 내 부친의 온 집에서 택하여 영원히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셨나니 곧 하나님이 유다 지파를 택하사 머리를 삼으시고 유다의 가문에서 내 부친의 집을 택하시고 내 부친의 아들들 중에서 나를 기뻐하사 온 이스라엘의 왕을 삼으셨느니라.” 또 다른 예는 바로 레위족속입니다.
역대상 6장에서는 레위 지파를 길게 설명하는데, 역대기의 저자는 레위 지파 역시 포로 후기 사회재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역대기에서는 왕국(Kingdom)과 제사장(Priest)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가 중요 하게 다뤄집니다.
이는, 역대기를 열왕기서와 비교 분석해보면, 역대기가 열왕기서에 비해서 다윗 왕조를 부각하고, 성전에서 예배하고 그곳에서 얻는 기쁨에 대해 강조하고 있는 것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큰 주제들 가운데, 역대기가 또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역대기는 포로 후기 유대공동체가 “하나님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역대기의 저자는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다가 귀환한 후에, 실패했던 역사를 그들이 되풀이하지 않기를 원했으며, 이를 위하여 포로 후기 공동체가 야훼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만 한다는 메시지를 알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야베스의 기도는 족보의 한 가운데에 등장해, 기도에 관한 관심을 소개하고, 역대기의 저자가 생각하는 기도의 원리를 강조하는 말씀으로, 역대기 전체의 신학과 관련하여 생각해 봐야 하는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은 단순히 야베스가 어떻게 기도를 해서 복을 받았는가에 대한 기복적인 관심보다는, 야베스의 기도가 전하는 기도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를 통해 알 수 있는 기도에 관한 원리 첫 번째는 기도를 잘하는 것도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야베스의 기도는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라고 결론지어 시작하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라는 표현은 히브리어로는 “존경을 받았다”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 구약에 서는 존경을 받았다는 표현은 존경을 받는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능력, 기술 등이 있다는 것을 높여서 부를 때 종종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다윗 같은 경우에 성경은 그의 충성심/믿음이 뛰어남을 높이고 있으며 사무엘 선지자 같은 경우에도 존경을 받았는데 성경은 그가 말한 것이 다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그의 뛰어남을 이야기합니다.
따라서, 오늘 야베스의 삶을 통해서 알수 있는 것은 바로 야베스는 그의 기도의 능력을 통해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야베스는 아마도 남들보다 뛰어난 기도의 능력자 또는 기도의 기술자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도를 잘했다는 것은 수사학적 능력이나 구술성의 탁월함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김기영 교수 / 한국침신대 신학과(구약학)
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
다시 읽는 야베스의 기도
최광희목사 (연구위원, 행복한교회)
우리의 눈과 귀는 과연 믿을만한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골라서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같은 현상을 경험하고도 전혀 다른 보고를 할 수 있다. 같은 책을 읽고도 전혀 다른 것을 깨닫고 다르게 평가한다. 그러한 일의 극단적인 경우는 이단들이다. 같은 성경을 읽고도 ‘여호와의 증인’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맏형이라는 망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의 경우가 그러하다면 다른 책들 역시 얼마든지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2001년 초에 [야베스의 기도]가 발행된 후에 참으로 많은 분들이 이 책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며 기도로 은혜와 복을 누리고 있다. 또한 이 책이 그러한 영향력을 발휘하자 이 책에 대해서 어떤 약점이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러한 내용을 담은 책 중에는 귀를 기울여야 할 이야기도 있는가하면 오히려 [야베스의 기도]의 명성에 편승해서 또 다른 특수를 누리고 싶은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운 내용도 있다. 그러한 분들은 [야베스의 기도]를 본인이 읽고 싶은 대로만 읽어서 비판을 위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
[야베스의 기도]에서 첫 번째 기도는 바로 복을 구하는 기도이다. 그러나 과연 복이란 무엇인가? 유교에서는 보통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 다섯 가지를 꼽는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은혜 그 자체이다. [야베스의 기도] 35쪽에서 브루스 윌킨슨은 ‘복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정의한 후에 “그는 어떤 복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질지에 대한 결정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있다.”라고 서술한다. 브루스 윌킨슨은 혹시라도 독자들이 기복주의와 번영신학으로 치우칠 것을 미리 경계하고 있다.(36쪽) 그러나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것은 모두 기복주의인양 몰아붙이고 있다. 그런 글을 읽으면 오늘날 성도의 형통을 구하며 병 낫기를 구하는(이것은 약 5:16의 명령이다) 기도를 간절히 드리는 모든 목회자들을 박수무당으로 몰아붙인다는 불쾌감을 떨칠 수 없다. 이런 분들은 정말 마음을 가다듬고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에서 두 번째로 구하는 기도는 지경을 넓혀 달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저 넓은 아파트, 넓은 교회, 큰 회사 등등을 구하는 세속주의가 아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사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영향력을 끼치기를 구하는 기도이다.(45쪽) 우리가 전도를 한다면 더 많은 사람이 회개하기를 바란다. 목사로서 내가 설교를 한다면 더 많은 분들이 와서 듣고 변화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또한 사업가로서 더 많은 돈을 벌어서 하나님의 선한 일에 사용하기를 소원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방법으로 벌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악한 방법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기도할 이유도 없고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응답하실 리가 만무하기 때문이다.이렇게 매일 아침, 지경(영향력)을 넓혀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라면 하루를 살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더라도 내가 이 사람의 어떤 필요를 채워주어야 할지 모른다는 긴장으로 살게 될 것이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 이혼 위기에 있는 사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을 내게 붙여 주셨으나 나의 무관심으로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지나갔다면 그런 안타까운 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경을 넓혀 달라는 기도는 바로 이런 거룩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러한 기도가 마치 이기적인 목적으로 기도하는 세속주의인양 오해한 사람은 [야베스의 기도]를 다시 읽어야 할 것이다.
[야베스의 기도]를 비판하고 있는 “다시 쓰는 #####”라는 책은 [야베스의 기도]가 기도 응답에 관한 이야기만 있고 응답하지 않는 기도에 관한 언급이 빠져 있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는 기도 전반을 다룬 기도 백과사전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야베스의 기도]는 한편의 설교일 뿐이며 누구든지 한편의 설교에서 강조점이 있는 법이다. 만일 우리가 기도의 정의, 기도의 중요성과 필요성, 기도해야 할 제목들, 기도가 응답되는 조건들,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들,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의 성도의 자세…… 이렇게 기도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담은 책을 쓰려고 했다면 들고 다니기 부담스러운 두께의 책이 될 것이다. 물론 그 속에는 야베스의 이야기는 하나의 좋은 예화로 언급될 것이다.“다시 쓰는 #####”에서 저자는 브루스 윌킨슨이 물질적인 복에나 관심이 있고 성도의 변화된 삶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만일 누구든지 [포도나무의 비밀]이나 [하나님이 상주시는 삶] 등 브루스 윌킨슨의 또 다른 책 중 한권만 읽어 보았다면 이런 어리석은 실수를 피할 수 있었으리라.
[야베스의 기도]는 21세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귀한 선물이다. 그러나 이런 귀한 책이라도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서 읽어서 기복주의로 이용하는 것을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혹은 반대로 [야베스의 기도]는 순전히 기복주의, 세속주의, 번영신학이라고 비판하면서 하나님의 풍성한 복을 발로 차 버린다면, 그는 은혜 없이 알몸으로만 주의 일에 충성하다가 겨우 도토리만한 열매를 거두고 말 것이다. 이제 한번만 대충 읽고는 던져놓은 [야베스의 기도]를 신중히 다시 읽기를 권한다. 그리고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여 정말로 야베스처럼 기도를 드림으로 충만한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위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바란다.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기 위해 때를 따라 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복)를 필요로 한다. 또 하나님께서 나의 지경(영향력)을 더욱더 넓혀 주시기를 원한다. 또 지금까지 해 왔고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이렇게 하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내가 해 보지 않는 일이나 지금 하는 일보다 더 많은 일을 주실 때는 정말이지 하나님의 손(능력)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또 그렇게 내가 능력 밖의 일을 감당하면서 이것은 전적으로 주의 은혜라는 고백이 저절로 나올 것이다. 또한 이런 많은 은혜를 입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우리는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져서는 안 된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인 우리가 시험에 빠지거나 유혹에 넘어지면 지끔까지 우리가 섬겨왔던 모든 사역이 무너지는 것이요 나를 통해서 공급된 모든 선한 영향력이 무너지는 것이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시험에 들지 않기를 구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날마다 기도한다.
주님, 나에게 많은 복을 주십시오. 오직 주의 은혜가 아니면 나는 하루라도 살 수 없나이다.
주님, 나의 지경을 넓혀 주십시오. 나는 주님을 위해 더 중요한 일을 더 많이 섬기고 싶습니다.
주님, 주의 손이 나와 함께 해 주십시오. 주님이 돕지 않으시면 큰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주님, 나를 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원수 사단은 나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오직 주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야베스의 기도는 이기적인 자기 합리화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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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거품성장 주도한 ‘통성기도’오늘날 한국교회의 대단한 성과는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통성기도의 공로가 크다. 기도는 자신과 삶을 성찰하며 새로운 행동과 삶의 방향을 모색하게 하는 자아의 공간으로 개인의 신앙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점에서 지금의 한국교회는 기도를 바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그러나 짧은 역사동안 이렇듯 성장한 한국교회가 물량주의적 이기주의적 성장을 주도하는데 통성기도를 악용한 것은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돼 눈길을 끓고 있다.기독교 월간지 ‘기독교사상’은 이 달(10월호)의 특집 주제를 ‘다시금 기도를 생각한다’로 잡고 개인주의적인 이기심과 물신주의, 극심한 경쟁이 기도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한국 교회가 성장위주로 발전해온 과정에서 여러 기도종류 중에서 단기간 교인들의 열정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통성기도를 만연화시킨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비판할 것은 비판하고 기도의 기본 뜻을 헤아려 그 뜻을 존중하는 가운데 한국교회에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도록 기도의 가치를 바로 세워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기독교사상’ 이번 호에서 서중한 목사(대성교회 담임)가 쓴 ‘통성과 침묵’은 기도를 내 뜻과 소원을 관철시키는 수단으로 여기는 잘못된 인식이 통성으로 일관된 오늘날 교회의 기도방법과 깊게 연결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도의 가장 중요한 의미를 ‘간청’으로 생각하고, 그를 중심으로 기도의 세계를 구축해온 한국교회는 부실공사라고 비판했다.김기현 목사(수정로침례교회 담임)는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와 전병욱의 ‘히스기야의 기도’를 비교해 가며 자세하게 잘못된 기도인식을 꼬집고 나섰다. 먼저 그는 “개인의 영달을 구하는 ‘야베스의 기도’는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복음의 핵심에 어긋나는 것”, “그러나 야베스의 기도가 분명 성서에 기록돼 있는 기도임에 틀림없으나 야베스의 기도가 모든 기도의 가장 모범적인 모델은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기도는 자기 변화를 이루며, 자기 변화가 참된 기도의 선결조건이라는 점에서 볼 때 ‘야베스의 기도’는 오로지 탐욕스러운 자신을 합리화하는 기도로 인식되고 있다. 또 김목사는 “‘히스기야의 기도’에서 저자 전병욱은 기도의 핵심이 소원성취가 아닌 하나님과의 교제라는 것을 잊지 않고 언급하고 있지만 ‘히스기야의 기도’에는 히스기야의 하나님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며. “그의 말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기도의 핵심이라면, ‘히스기야의 기도’는 히스기야의 하나님을 증거 하는데 최종적인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또한 ‘요구의 기도에서 사귐의 기로’에서 김영봉 목사(벨마제일연합감리교회 담임)는 “오늘날 한국교회를 진단할 때, 기도가 동력이 돼 교회를 성장시켰기에 질병의 원인도 기도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추락한 교회를 회복시키려면 한국교회의 영성이 달라져야하고 영성이 달라지려면 영성의 핵인 기도가 달라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영봉 목사는 또 “자아 망상·집착적인 요청의 기도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자아를 변화시키는 기도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기독교사상’은 “다시금 기도를 생각하다”를 통해 한국교회의 기도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고 양적부흥이 아닌 질적부흥을 도모해야한다고 주장한다. ‘깨어서 기도하라’의 김영운 목사는(작은교회 담임) 새벽기도, 금식기도 철야기도, 통성기도 등과 같은 한국교회의 전통 속의 아름다운 영성을 재발견해 사회정의와 융화시켜 한국교회가 지닌 저력과 기도의 영성을 혁신시켜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차은정기자 [email protected]
야베스의 기도 깨기
야베스의 기도 깨기
예수님처럼 기도하라(Praying Like Jesus)/제임스 멀홀랜드/강주헌/엔크리스토/[권지성]
제임스 멀홀랜드는 독특한 이력을 지닌 목회자이다.교파로는 침례교이지만, 연합 감리교파와 퀘이커교파 소속의 교회를 담당하면서, 교도소 목회를 하고 있고, 청년 공동체 봉사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이력은 저자가 단순한 일반적인 신학자, 목회자로서의 삶에 만족하지 않고, 실제 삶 속에서 진리를 실천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는 이 책에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을 통해 세속주의에 빠진 신자들을 질타하고, 참 기도의 정신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본서는 6여 년 전 미국에서 출간되어 불신자들 사이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아마존 닷컴 전체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던 브루스 윌킨슨의 ‘야베스의 기도’에 대한 철저한 비판적인 서적으로 그 책을 감동적으로 읽고, 브루스 윌킨슨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본서를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실제 모 교회에서는 성도들이 이 책의 내용을 모른 채 읽다가 기도가 안 된다며 쓰레기통에 버렸다고 한다. 도대체 ‘야베스의 기도’의 무엇이 본서를 통해 야베스의 기도를 반대하게 하였는가? 성경에 나와있는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은 야베스의 기도를 비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에 나와있는 방식으로 기도하겠다는 데, 왜 저자는 이를 극구 반대하는 것이며,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조차 이 기도를 좋아하며,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가 나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생각할 지 모른다. 물론,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는 야베스의 기도는 분명 성경에 나와 있는 기도이다. 그러나, 이 야베스의 기도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복을 빌고 주술적인 효과를 바라는 많은 사람의 심리를 반영한 주문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느냐 임하지 않느냐의 문제에 목숨을 걸고 기도하지 않지만, 자신의 사업과 일에 있어서 복이 임하고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잘 되게 해 달라는 기도에는 열심이다. 이 책은 이렇게 철저히 개인주의화 되고, 성공주의에 물든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을 비판하는 비판적인 책이며, 세속화된 기도에 대한 대안으로 예수님의 기도로 기도할 것을 도전하는 주기도문의 정신을 도전적으로 기술한 책이다.주기도문에 대한 깊은 묵상을 하면서, 나는 2000년 전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이 말씀이 얼마나 깊고도 오묘한지 다시 한 번 되새기지 아니할 수 없다. 주기도문은 그리스도인의 기도의 나침반이며, 완벽한 기도의 교과서이다. 하나님의 나라의 영광이 이 땅에 장엄하게 이루어지게 될 날을 고대하면서 이 주님의 기도를 다시 한 번 드리게 된다. 주위의 형제와 자매들의 필요를 제대로 보지 못한 우둔함과 신자이지만, 인색하고 딱딱하게 사람들을 정죄한 바리새인된 나를 회개한다. 세상의 유혹과 숨은 악과 죄로 시꺼멓게 변해버린 나의 자아를 들여다 본다. 나에게는 선한 것이 없기에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대제사장되신 주님께로 다시 달려가서 이 언약을 붙들고 싶다.이 글을 쓰고 있는 시간에도 나는 늘 기도의 부족함을 느낀다. 아무리 충분히 기도했다고 해도 부족한 것이 기도이다. 실제로 많은 시간을 들여 기도의 자리에서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아버지께 아뢰며 씨름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될까? 기도의 시간을 충분히 가지자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늘 우리의 기도의 제목을 다시 한 번 곰곰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는 기도의 내용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에 기도라는 것으로 하나님을 이용하여 대박을 터뜨리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는 않은 것인가? 참된 기도의 정신인 주기도문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진정한 기도의 정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깊이 체험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도록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기도의 진정한 정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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