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주제를 찾고 있습니까 “야긴 과 보아스 – 다윗의 장막(1) 임재를 사모하는 자들(David’s Tent 1 – whom long for the presence of God) | 사무엘하(2 Samuel) 6:1-15“? 다음 카테고리의 웹사이트 https://you.charoenmotorcycles.com 에서 귀하의 모든 질문에 답변해 드립니다: https://you.charoenmotorcycles.com/blog. 바로 아래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작성자 온천교회청년부 야긴\u0026보아스 이(가) 작성한 기사에는 조회수 39회 및 좋아요 4개 개의 좋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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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08월 14일 온천교회 야긴보아스 말씀입니다.
제목: 다윗의 장막(1) 임재를 사모하는 자들
본문: 사무엘하 6장 1-15절
메신저: 박근주 목사
Editor: 임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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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느헤미야52기도정보, 기독교 전문 도서몰.
Source: jakinnboaz.co.kr
Date Published: 3/1/2022
View: 7052
야긴과 보아스 두기둥(왕상 7:15-22)
오른편에 있는 기둥은 ‘야긴’이라 불렀고, 왼편에 있는 기둥은 ‘보아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야긴은 그가 세운다는 뜻이고 보아스는 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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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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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 아이 넷인 엄마의 캐나다 …
솔로몬은 기초를 놓고 대전과 지성소를 만들어 금으로 입혔다.솔로몬은 성전 앞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웠다.성전 오른쪽기둥은 ‘야긴’이라했다 이 뜻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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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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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성전 입구에 세운 두 놋기둥-야긴과 보아스 (열왕기상7 …
이것이 두 기둥이 나타내는 의미이다. 야긴과 보아스에 담겨 있는 뜻은 어떤 성도가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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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3/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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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긴과 보아스 – 뉴송교회 – NEW SONG CHURCH
‘야긴’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뜻으로 날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인생도 가정도 교회도 하나님께서 세우신다고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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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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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성전의 두 기둥 (대하 3:15~17) – 기독신문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받치는 기둥들은 많이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받치는 기둥은 바로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놋기둥이었습니다.
Source: www.kidok.com
Date Published: 4/2/2021
View: 2336
생명의 양식 – 교회에는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이 있어야 한다
그 기둥에 석류와 백합화가 만들어져 있음은 주님 교회의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매력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더욱이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기둥의 …
Source: www.pyungkang.com
Date Published: 4/16/2021
View: 5499
야긴과 보아스 – YES24
이 책은 하루 한 장씩 역대기를 읽어나가면서 새벽기도회 때 나눈 설교 말씀을 펴낸 것입니다.그것도 두 번에 걸쳐 설교한 내용을 연구하고 묵상해서 …
Source: www.yes24.com
Date Published: 2/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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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야긴 과 보아스
- Author: 온천교회청년부 야긴\u0026보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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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8. 1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TZ221__FLrI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
‘역대하’ 말씀으로 큐티 본문이 시작되었다.지난 금요일인 10월 26일부터다.수요일에 시편 106편까지 잘 마무리했다.
역대하 말씀을 통해서 솔로몬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강성한 삶의 근거임을 깨닫게해서 감사하다.
솔로몬은 성막이 있는 기브온 산당에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가서 희생 제물 천마리를 드렸다.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 사실 나는 그동안 잘 못 생각하고 있었음을 본문을 읽으면서 알았다.
일 천 번제를 횟수로 생각했는데 일천번이 아니고 한꺼번에 제물 천마리를 드려서 일천번제라고 한 것임을 확실히 알게되어 반가웠다.성경 말씀도 내 방식대로 내 생각대로 해석하고 잘 못 알고 있는 것이 또 얼마나 많을지? 되새겨볼 수 있어서 좋았다.말씀을 늘 읽는다고해도 아직도 여전히 처음 보는 것 같은 부분이 있다.더 즐겨 하나님 말씀을 묵상해야겠다 싶다.큐티를 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말씀을 매일 접할 수 있는 복을 내가 누림이 감사하다.
특히나 주의 백성을 재판할 지혜와 지식을 구하는 솔로몬에게 도전을 받는다.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지식은 물론이고 부와 재물과 영광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우리도 항상 어느 것이 우선인지를 더 깊이 깨달아야된다.내가 항상 우리 자녀들에게 우선으로 가르치며 우리 부부 역시 늘 가슴에 새기는 말씀이 있다.
바로 마태복음 6장 33절이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아멘
항상 염두에 두고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우선으로 두고 행할 수 있길 기도한다.
역대하 2장 1절에 솔로몬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성전과 자기 왕위를 위한 궁궐을 짓기로 결심했다.
3장 1절에서 17절에는 왕위에 오른지 넷째 해에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아산에 성전을 짓기 시작함을 알게한다.
이곳은 이전에 하나님이 다윗에게 나타나셨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다.솔로몬은 기초를 놓고 대전과 지성소를 만들어 금으로 입혔다.솔로몬은 성전 앞에 두 개의 기둥을 세웠다.성전 오른쪽기둥은 ‘야긴’이라했다 이 뜻은 ‘그가 세우실 것이다’라는 것이다.왼편 기둥은 ‘보아스’라 이름했다.이는 ‘그에게 능력이 있다’란 뜻이다.
이 두 기둥의 이름을 합하면 ‘능력의 하나님이 세우실 것이다’라는 뜻이다.이 기둥의 이름을 지은 솔로몬의 마음을 알 수가 있다.그의 신앙의 표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만나는 이 두 기둥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라고 지은 솔로몬의 마음을 되새겨볼 수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에 예배드리러도 오고 간구하기도 하고 또 죄를 고백하러 나오기도 했을 것이다.
솔로몬은 성전으로 나와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회복되고 굳건히 세워지길 원하며
두 기둥의 이름을 야긴과 보아스로 지었다고 볼 수 있다한다.
10월 30일 오늘 새벽은 담임 목사님께서 전해 주셨다.
역대하 4장 1절부터 5장 1절까지였다.
5장 1절엔 솔로몬이 여호와의 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쳤다고 적혀있다.
그리고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드린 은과 금과 모든 기구를 가져다가 하나님의 전 곳간에 두었더라라고 되어있다.
헌신하는 마음과 섬김이 주님을 영화롭게 함을 제목을 통해서도 알 수가 있었다.
다윗이 남긴 것들을 다른 것으로 취하지 않은 솔로몬도 훌륭한 모습이다.
경건한 소망을 우리가 가져야함을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세속적인 마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것은 지도자 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는 우리 모두가 지켜야될 지혜로운 자세이다.
성전 안의 기구들은 정금으로 만들었다.정금은 변하지 않음과 정결함을 상징한다.
정결함과 순수함이 뜨거운 열을 통과해서 만들어 지듯이 우리들의 신앙 역시 더욱 빛을 발하려면 어떤 시련도 잘 견뎌낼
인내와 믿음이 필요함을 배운다.
솔로몬이 성전을 지었듯이 이미 우리도 그리고 나도 예수님의 피 공로로 인해 성전임을 감사한다.
진정한 성전답게 내 삶을 더욱 아름답게 잘 가꾸어야할 책임이 있다.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분명 성경에 말씀해 두고 계시니 하나님 안에서 순전한 믿음의 단련을 늘 해 나가야될
의무와 책임이 또한 있다는 거룩한 부담감을 갖는다.
솔로몬의 성전의 기구가 정금으로 만들어 진 것을 되새겨본다.
내 몸도 주님의 성전이라면 과연 나는 어떤 것으로 어떻게 정금같이 드릴 수 있을지?를 묵상해 본다.
이번에 역대하 말씀을 본문으로 삼은 생명의 삶 교제를 만들어 주는 두란노 서원이 감사하다.
매 달 큐티 본문을 만들어 많은 분들께 특히 내게도 말씀의 큰 감동과 깨달음을 더해 줌을 감사드린다.
솔로몬 성전 입구의 두 기둥 야긴과 보아스를 다시금 묵상한다.
내 마음 깊은 곳에도 ‘야긴’과 ‘보아스’를 든든히 세워 나갈 것을 다짐한다.
내 안에 세워진
‘야긴’과 ‘보아스’의 튼튼한 믿음의 기둥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제대로 빛되신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나도 제대로 내 성전의 두 기둥을 잘 건축해야겠다.
2018,10,30,화요일,지난 금요일부터 시작된 역대하 말씀 가운데 은혜를 받으며 나를 성전 삼아 주시고 은혜 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은혜를 감사드리며 말씀을 묵상할 좋은 교제가 있음도 감사드린다.
솔로몬 성전 입구에 세운 두 놋기둥-야긴과 보아스 (열왕기상7:13-21)
야긴과 보아스 (열왕기상7:13-21)
* 야긴 : 그가 세우리라
* 보아스 : 그에게 능력이 있다
“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의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더라 ”
야긴(Jachin) 「그는 확립하심」
[1] 시므온의 아들이며 야긴 종족의 조상이다(창 46:10,출 6:15,민 26:12). 역대상4:24에는 야립으 로 되어 있다. [2] 다윗 시대의 제사장이며 족장이다. 성전 봉사의 순서는 제 21반이었다(대상 9:10,24:17). 느헤 미야 11:10의 기사를 보면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한 제사장으로서 성도예루살렘에 거주하였다.야긴(Jakin)
1. 솔로몬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면서 놋기둥 두 개를 성전 입구에 세웠는데 오른쪽에 세운
기둥을 야긴이라고 불렀다(왕상 7:21; 대하 3:17).
2. 요셉의 초청으로 애굽으로 간 야곱의 자손 중에서 시므온의 아들 중 한 명이다(창 46:10).
다른 본문에는 야립이라고 적혀 있다(대상 4:24).
보아스 2(Boaz) ‘그에게 능력이 있다’
두로 사람 히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왕상 7:14-15) 솔로몬 성전 입구에 세운 두 놋기둥 중 왼편(북쪽)에 세운 기둥을 말한다(왕상 7:21). 오른편의 기둥은 ‘야긴’이라 명명했다. 이 기둥들은 높이가 18규빗, 기둥머리는 5규빗, 기둥의 둘레가 12규빗이 되어 매우 안정적인 모습이었다. 기둥 머리에 200개의 석류 문양을 둘렀으며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을 새겨 넣었다(왕상 7:20, 22). 성경에서 백합화는 순결을, 석류는 진실을 상징하는 것(아 4:3)으로 성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신실하심을 보여 준다. 기둥의 이름을 ‘그에게 능력이 있다’라는 뜻의 ‘보아스’로 명명한데서 모든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성전이 영원히 보존되기를 기원하는 솔로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열왕기상 7:13-21
13 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 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
15 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비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 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 기둥르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등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 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 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은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
21 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 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더라
성전안 뜰 솔로몬 궁궐
야긴과 보아스(왕상 7:13-22)
솔로몬 성전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 건축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성전을 세울 때 하나님께서 이방나라 두로 왕 후람까지 동원시켰다는 것이다. 후람 왕은 당시 최고의 조형예술가인 히람을 추천하여 성전 건축의 총 책임자가 되게 한다. 모세는 당시 최고의 조형예술가인 브살렐와 오홀리압을 사용하여 성막을 세웠다.
오늘날 교회에서 예배 때 찬양이나 악기를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음악가들은 크게 쓰임을 받고 있지만 성막이나 솔로몬 성전을 건축할 때와 같이 조형예술가들이 자신의 달란트를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다. 처음 세상을 칠일 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은 매번 모든 것을 창조하신 후 자신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반복해서 말씀하셨다. 특별히 하나님이 첫째 날 창조하신 것이 바로 빛이라는 사실도 주목해 볼 만하다. 즉, 하나님은 창조 시에 조형예술가로서 청각도 중요하지만 시각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아름답게 창조하셨다는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하나님이 최고의 조형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브살렐이나 오홀리암, 또 히람과 같은 조형예술가를 귀히 여기고 사용하시는 것이다.
사실 히람은 당시 최고의 조형예술가였을 뿐 아니라 특별히 놋제조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공예가였다. 그래서 그의 재능과 총명과 지혜를 사용하여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인 야긴과 보아스를 세웠다. 하지만 유대인 어머니와 두로 사람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였기 때문에 가난하고 소외된 과부의 아들로 사회의 차별과 무시를 받고 살았다. 하나님이 솔로몬 성전 건축에 두로 왕 후람의 도움을 받고, 또 히람과 같은 무시당하기 쉬운 혼혈인에게 건축의 총 책임을 맡겼다는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소외 받을 수 있는 혼혈인과 이방인이 성전 건축 사역에 동참한 것은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은혜의 통치 속으로 이방인들을 연합시키는 보편적 구원사역의 예표라 할 수 있다.
이 히람이 만든 건축물이 솔로몬 성전의 두 개의 놋기둥이다. 높이가 18규빗(8.1m), 둘레가 12규빗(5.4m)에 달하는 거대한 기둥이다. 기둥 윗부분에는 5규빗(1.35m) 높이의 기둥머리가 얹혀 있는데 기둥머리의 5분의 4는 하나님의 힘과 영광을 상징하는 백합화 모양이고, 나머지 5분의 1은 풍요를 상징하는 200개의 석류가 달려서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견고하고 차가운 이미지의 놋으로 만든 기둥에 백합화와 석류의 문양이 아름답게 새겨진 것은 우리의 신앙이 놋기둥 같이 견고하게 세워져야 하지만 백합화와 석류와 같은 아름다움과 부드러움, 따뜻함을 동시에 갖추어야함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두 기둥은 건축물을 지탱하기 위한 용도가 니다. 성전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 두 기둥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음을 볼 때, 두 기둥은 성전이라는 건축물과 연관된 것이 아니라 성전에 들어오는 자들과 연관되어 건축된 것이라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기둥에 이름을 지어 붙였다는 것이다.
오른쪽 기둥은 ‘야긴’이고(뜻은 ‘저가 세우리라’, ‘여호와께서 세워가신다’), 왼쪽 기둥은 ‘보아스’(뜻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 ‘여호와께서 힘이 되신다’)이다. 이처럼 기둥에 하나님의 속성을 담은 이름을 붙임으로써 성전에 들어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나타내시려 하신 것이다.
두 기둥이 보여주는 것은 교회는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워질 수 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유지된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로 하여금 성전에 들어오면서 자신들의 손으로 세운 성전을 바라보지 말고, 자신들의 능력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세워주시고 세워 가시는 야긴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것이다. 오직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는 보아스 하나님만 의지하라는 것이다.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은 성전을 출입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진심으로 바라보고 의지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니다. 화려한 건물인 성전을 보지 말고, 나를 세워 가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두 기둥이 나타내는 의미이다.
야긴과 보아스에 담겨 있는 뜻은 어떤 성도가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인지를 잘 말해준다. 즉 일꾼은 주님이 일으켜 세워주시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교회의 일꾼은 주님의 손에 의지해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나는 사람이다. 교회의 일꾼은 돈으로, 학벌로, 경험으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일하는 사람이다. 주님의 일을 하는 일꾼은 야긴과 보아스 같은 사람이다,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예기치 않는 사사건건들이 우리 주변에서 종종 일어난다. 작고 큰 어려움부터 시작해서 이런 저런 억울한 일까지, 가끔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서서 “헉헉” 거릴 때가 너무나 많다. 다 죽어갈 때도 많다. 신음소리를 밤새도록 낼 때도 많다. 눈물을 너무 흘려 더 이상 눈물주머니에서 눈물방울이 안 나올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금 힘과 용기를 얻고 십자가를 바라보며 좁은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야긴과 보아스가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환난이 와도 주님은 우리를 도우시고 지켜주신다. 악한 자가 틈탄다 할지라도 결국 저를 물리쳐 주시기 때문이다. 사망에 음침한 골짝기로 우리가 다닐지라도 우리는 야긴과 보아스 하나님 사이에 있으면 살 수 있다. 마귀의 어떤 방해공작이 온다 해도 주님은 우리의 힘과 능력이요 권세다. 우리가 오직 이렇게 야긴과 보아스 하나님 사이에서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여 산다면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로 우리는 반드시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이길 수 있다.
문제는 우리가 정욕에 사로 잡혀 우리의 힘으로 무엇인가 해보려고 하는 옛 자아 때문이다. 내 힘으로 살려고 하지 말자.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우리는 야긴과 보아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모든 것을 맡긴 채 살자. 내가 결정하지 말고, 오직 주님의 결재만을 기다리자. 그럼 주께서 세우시고 주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신다. 할렐루야!
[이 주일의 설교] 성전의 두 기둥 (대하 3:15~17)
신앙의 기초 예수에 두고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을 세워라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역대하 3:17)
▲ 홍창민 목사(전주드림교회)
이탈리아 서부 피사에 있는 사탑은 현대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는 명소입니다. 그동안 이 탑은 계속해서 조금씩 기울어졌지만, 오랫동안 보수공사를 실시하여 이제는 더 이상 기울어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피사의 사탑이 기울어지게 된 것은 부실공사의 결과입니다. 그런 건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건물을 세우는데 있어서 기초공사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기둥을 세우는 일입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한다면 골조공사를 말합니다. 철근콘크리트가 되었든 철골이 되었든 골조공사가 잘 되어야 그 건물이 튼튼하고 오래가는 법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기초나 기둥보다 외형에 더 치중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기초야 어떻게 되었든지 간에 외적으로 보기에만 좋으면 그만입니다. 그래서 현대를 가리켜 ‘포장문화시대’라고도 말합니다. 대량생산, 대량선전, 대량소비…. 세상은 온통 거창하고 화려해 보이지만, 마치 뿌리 없는 나무처럼 언제 어떻게 쓰러질지 염려가 됩니다.
눈에 보이는 건물에만 기초와 기둥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도 기초와 기둥이 중요하고, 우리의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도 기초와 기둥이 중요합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교회에도, 우리의 신앙생활에도 그러한 기초와 기둥이 있어야 흔들리거나 쓰러지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또한 우리 교회에 필수적으로 있어야 할 기초와 기둥은 무엇입니까?
역대하 3장은 솔로몬이 다윗의 유언에 따라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본래 다윗은 생전에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짓고 싶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군인으로서 피를 많이 흘렸기 때문에 성전을 짓는 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여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다윗이었다고는 하지만, 무엇이나 다 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인정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함에 빠지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에 순종하였던 것입니다.
비록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하여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후에 솔로몬이 성전을 지을 때 대부분의 재료들은 다윗이 준비하여 놓았던 것들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전에 제물로 드려진 다윗의 헌신이었으며, 그러한 다윗의 믿음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은 솔로몬 시대에 훌륭하고 아름답게 건축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먼저 솔로몬의 성전이 어디에 세워졌는지 그 기초를 살펴봅시다. 역대하 3장 1절에는 그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모리아 산에 여호와의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 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 정한 곳이라.” 솔로몬 성전의 기초는 바로 예루살렘 모리아산입니다. 그 옛날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독자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던 바로 그 산입니다.
역대상 21장에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인구조사한 일로 인하여 징계를 받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 사흘 동안 전염병이 나타나 7만여 명의 백성들이 죽은 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을 치던 여호와의 사자가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나타났을 때에 다윗은 백성의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를 입고 얼굴을 땅에 엎드려 자비를 구하였고,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을 때에 비로소 재앙이 그쳤습니다. 이에 다윗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났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금 600세겔을 주고 매입하였는데, 그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바로 솔로몬 성전의 기초가 된 예루살렘의 모리아산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모리아산, 또한 다윗이 번제단을 쌓음으로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나타났던 오르난의 타작마당이 성전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곳은 훗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갈보리 언덕입니다. 장차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자신을 번제물로 드릴 곳에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졌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섭리가 작용한 결과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따라서 솔로몬 성전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 성전 건축이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본문에 의하면 솔로몬은 성전 앞에 두 개의 큰 기둥을 세웁니다. 본문 17절입니다. “그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으니 왼쪽에 하나요, 오른쪽에 하나라. 오른쪽 것은 야긴이라 부르고 왼쪽 것은 보아스라 불렀더라.” 여기에서 야긴이라는 이름의 뜻은 ‘저가 세우시리라’는 것이고, 보아스라는 이름의 뜻은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솔로몬의 신앙적인 훌륭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웬만한 사람 같았으면 두 기둥을 세우고 하나의 이름은 ‘다윗’이라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솔로몬’이라고 칭하였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이름을 높이고 드러내기를 원합니다. 사실 성전 건축에 있어서 가장 공이 많은 사람이라고 한다면 다름 아닌 다윗과 솔로몬이 아닙니까? 또한 그들은 보통 사람도 아니고 나라의 왕입니다. 두 기둥을 왕의 이름으로 칭한다고 해서 누구 하나 탓할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다윗이나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으로 세우신 것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하여 솔로몬은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의 두 기둥을 성전 앞에 세웠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의 이름과 공적과 의를 드러내지 않는 신앙입니다. 오히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신앙입니다. 그분만이 우리 인생을 전능하신 능력으로 세우실 수 있는 분임을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우리의 인생의 삶을 세우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그 누구도, 그 어떤 것으로도 우리의 삶을 세울 수 없고 또한 세워질 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두 기둥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그 기둥들의 임무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받치는 것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예루살렘 성전을 받치는 기둥들은 많이 있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을 받치는 기둥은 바로 야긴과 보아스라는 두 놋기둥이었습니다. 그러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의 능력으로 이스라엘은 유지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솔로몬이 성전 앞에 세웠던 두 기둥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12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당시 빌라델비아교회는 결코 큰 교회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어려운 환란 가운데서도 믿음을 잘 지켰을 때 주님은 빌라델비아교회에게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는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여러 문제에 휩싸여 그 기둥들이 기울어지고 무너지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기둥이 무너진다는 것은 대형 사고를 의미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거나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켜야 할, 보이지 않는 성전의 두 기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두 기둥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두 기둥이야말로 야긴이며 보아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놀라운 것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정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기 보다는 엉뚱한 기둥을 세우고 그것을 의지하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신뢰하고 의지하는 기둥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첫 번째는 자기 자신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합니다. 또한 자신의 손과 힘으로 무엇인가를 세우고, 이루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무능하고 무지한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스스로 힘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세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재물입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보다 재물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며 그것에 생명을 겁니다. 재물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으면서 사람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현대인들에게 있어서 재물은 가장 큰 우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재물이 우리의 인생을 튼튼하게 세우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하게 한다면 마땅히 그것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흔들거리게 만들고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으로 향하게 한다면 차라리 그것을 포기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세상적인 부요함 보다는 차라리 신앙적인 가난함을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서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라면 그 편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인생이 아니겠습니까?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가진 자는 재물을 의지하고 그것에 지배를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자입니다.
세 번째는 조직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조직을 만들어 놓고 자신이 거기에 속함으로 안전을 보장받으려는 심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우리의 인생을 튼튼하게 세울 수 있는 기초나 기둥이 되지 못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조직의 힘을 빌려 자신의 삶을 세우려고 한다면 그 또한 우상이 될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절대로 승리할 수 없으며 오히려 조직에 의해 쓰라린 패배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그 어떤 것도 우리의 인생의 기초와 기둥이 되지 못합니다. 자기 자신도, 재물도, 조직도 우리가 의뢰하고 의지할 것은 못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의 삶을 세우실 수가 있습니다. 그분만이 능력이 있으십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자기 신앙과 삶 속에, 가정이나 교회에 잘못된 기둥은 과감하게 뽑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저가 세우시리라’는 야긴의 기둥과 ‘그에게 능력이 있다’는 보아스의 기둥을 세워야 합니다. 야긴과 보아스의 신앙을 가진 자가 많아질 때에 한국교회는 비전이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의 삶과 신앙의 기초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두고, 그 중심에 야긴과 보아스의 기둥이 자리 잡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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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는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이 있어야 한다
제 21-16호
교회에는 야긴과 보아스 두 기둥이 있어야 한다
왕상 7:13-22
솔로몬왕이 모리아산에 세운 성전은 이스라엘 선민의 역사에 절정을 이루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스라엘의 종교사에 나타나는 사건이 아니라, 전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그리는 계시의 사건입니다. 솔로몬 성전의 재료가 놋이나 금 등 금속류였다는 것은 변치 않는 천국의 성격, 교회의 귀중성과 영원성을 나타내 주며, 성전 내부 기구들의 모양과 용도가 상이한 것은 신약의 교회운동에서 나타날 여러 가지 은사들을 예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중에서도 특별히 솔로몬 성전 현관에 세운 두 기둥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은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놋은 솔로몬 성전뿐 아니라 모세가 지은 이동 성막에도 사용된 재료입니다(출 38:2-30). 또한, 다윗이 성전의 재료를 준비할 때도 ‘놋’이 귀중한 항목 중 하나로 포함돼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전 건축의 재료로 귀중하게 사용된 놋은 ‘불변과 튼튼함’을 상징하는 금속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찾아볼 때, 놋은 첫째로 완악한 죄인을 비유하는 상징이었습니다(렘 6:28, 사 48:4). 둘째로, 놋은 죗값으로 받은 극도의 한재(旱災)를 가리킵니다(신 28:23). “하늘은 놋이 되고”라는 표현은 극심한 가뭄의 상황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셋째로, 놋은 부강하고 튼튼한 세상 또는 왕국을 가리킵니다. 바로 다니엘 선지자가 예언한 헬라 제국이 ‘놋 같은 나라’로 예표되어 있습니다(단 2:39). 넷째로, 놋은 성도에게 주어진 무기의 힘을 가리킵니다. 믿는 성도들은 적군 앞에 ‘놋 성벽’처럼 강한 난공불락의 요새와도 같습니다(렘 1:18-19, 15:20). 끝으로, 다니엘과 사도 요한은 우리 주님의 능력을 표현하는 가운데 “그 팔과 발이 빛난 주석, 놋”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단 10:6, 계1:15).
이처럼 성경을 볼 때 놋은 그 빛이 변하지 않고 강하고 튼튼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왕이 성전 현관에 세운 두 놋기둥은 교회의 영원성과 불변성, 그리고 경건성을 나타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죄인들에게 소망이요, 환난 날에 피할 요새요 산성이 됩니다(시 18:1-2).
2. 솔로몬 성전 현관에 세워진 두 기둥의 의미는?
솔로몬왕이 세운 두 놋기둥은 문을 들거나 건축물을 받치기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외적인 아름다움과 성전의 품위를 돋보이게 하는 데에 의미가 있습니다.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과 석류 이백이 줄지은 모양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석류의 알맹이는 ‘탐미’의 특색이 있으며, 백합화는 ‘외적 아름다움’과 ‘향기’의 특색이 있습니다. 이것은 눈, 코, 입에 관계된 것들로, 사람들로 입에 맛을 느끼게 하고, 눈을 기쁘게 하고, 코에 향기를 맡게 하여 사람들을 유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튼튼하고 불변 부동의 놋기둥에 석류와 백합화가 조각된 모습은 바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가 석류와 백합화의 모습으로 예표돼 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석류는 내적인 미와 맛을, 백합화는 외적인 미와 멋을 가지고 있습니다. 강하고 굳세기가 놋 같으신 주님은 성도들에게 석류 같은 맛을 주고, 백합화 같은 멋을 뽐내는 아름다움의 매력이 있습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므로 아름다운 놋기둥은 아름다운 주님의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석류처럼 그 속이 맛이 나며, 밖으로는 백합화처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성전 현관에 드러나게 세워진 두 놋기둥은 이처럼 아름다운 교회를 상장하고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것은 숨길 수가 없고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며, 산 위의 성이라 불리는 것입니다.
3. 솔로몬 성전의 두 기둥의 이름은 야긴과 보아스입니다.
‘야긴’의 뜻은 ‘저가 세우리라’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견고하게 하신다는 뜻이며, 영구한 안정, 정립(定立)의 뜻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온 지 480년 만에 안정을 누린다는 뜻입니다. 또한, 이것은 솔로몬 성전의 안정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서 신약시대의 교회운동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말씀하시기를 반석 위에 자기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절대 이길 수 없는 영원한 승리의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그것은 영원한 주님의 십자가 기둥으로 세울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는 사람의 교회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마침내 그 교회는 영원한 천상교회, 즉 하늘나라의 교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보아스’의 뜻은 ‘그 안에 능력이 있다’로, ‘하나님은 나의 힘’이라는 말입니다(시 18:1-2,32). 하나님은 믿는 자에게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능력, 말씀의 권세를 받아야 죄악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힘이시요 힘의 근원이십니다. 창조의 힘, 통치의 힘, 구원의 힘, 심판의 힘이 되시는 것입니다.
야긴과 보아스
목차
아담, 셋, 에노스(역대상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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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다의 아들은(대상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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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대상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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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야베스가 하나님께 아뢰어(대상4: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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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조상들의 하나님께 범죄하여(대상5:1-26)
—-
36
아므람의 자녀는(대상6:1-30)
————
44
찬송하는 직분을 맡긴 자(대상6:31-81)
—–
52
잇사갈의 아들들은(대상7:1-40)
———–
61
기스는 사울을 낳고(대상8:1-40)
———-
70
온 이스라엘이 그 계보대로(대상9:1-44)
—–
79
사울이 죽은 것은 (대상10:1-14)
———-
87
다윗에게 있는 용사(대상11:1-47)
———
95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을 왕으로(대상12:1-40)
—
103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대상13:1-14)
—–
112
다윗이 하나님께 물어 이르되(대상14:1-17)
—
120
다윗 왕이 춤추며 뛰노는 것(대상15:1-29)
—
128
여호와께 감사하며(대상16:1-43)
———
136
그를 세우리니(대상17:1-27)
————-
145
그 후에(대상18:1-17)
—————–
154
그 후에(대상19: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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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대상20:1-8)
—
170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대상21:1-30)
—
178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대상22:1-19)
—
186
항상 여호와 앞에 드리며(대상23:1-32)
—–
194
제비 뽑아 나누었으니(대상24:1-31)
——-
203
익숙한 자의 수효가(대상25: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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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
형제처럼 직임을 얻어(대상26: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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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
각 반열이 이만사천명씩이라(대상27:1-34)
—
228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대상28:1-21)
—-
236
다윗이 죽으매(대상29:1-30)
————
245
기브온 산당으로 갔으니(대하1:1-17)
——-
254
하늘이라도 용납하지 못하겠거든(대하2:1-18)
—
263
야긴과 보아스(대하3:1-17)
————-
272
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대하4:1-22)
—
282
영광이 하나님의 전에 가득(대하5:1-14)
—-
290
온 회중을 향하여(대하6:1-11)
———–
298
주의 백성을 용서하옵소서(대하6:12-42)
—-
306
이 성전이 비록 높을지라도(대하7:1-22)
—-
314
전혀 어기지 아니하였더라(대하8:1-18)
—–
323
솔로몬이 조상들과 함께 자매(대하9:1-31)
—
331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갔으니(대하10:1-19)
—
340
너희 형제와 싸우지 말고(대하11:1-23)
—–
349
항상 전쟁이 있으니라(대하12:1-16)
——-
357
아비야는 점점 강성하며(대하13:1-22)
——
366
아사가 여호와를 찾게 하며(대하14:1-15)
—-
374
태후의 자리를 페하고(대하15:1-19)
——-
382
그가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대하16:1-14)
—
390
율법책을 가지고 가르쳤더라(대하17:1-19)
—
397
아합 가문과 혼인함으로(대하18:1-34)
——
405
여호와께 속한 모든 일(대하19:1-11)
——-
414
여호사밧이 아하시야와 교제(대하20:1-37)
—
422
아끼는 자 없이 떠났으며(대하21:1-20)
—–
430
아하시야도 아합의 집 길로(대하22:1-12)
—-
439
여호야다가 용기를 내어(대하23:1-21)
——
447
왕이 대제사장 여호야다를 불러(대하24:1-27)
–
455
온전한 마음으로 아니하였더라(대하25:1-28)
—
464
웃시야 왕이 나병환자가(대하26:1-23)
——
472
요담이 웃시야의 행위대로(대하27:1-9)
—–
480
아하스가 크게 범죄하여(대하28:1-27)
——
487
다윗의 행실과 같이 정직하게(대하29:1-19)
—
496
이 일이 갑자기 되었으나(대하29:20-36)
—-
504
말씀대로 준행하게 하셨더라(대하30:1-27)
—
512
쌓인 더미들을 나눠주며(대하31:1-21)
—–
520
히스기야가 교만하여(대하32:1-33)
——–
528
므낫세가 하나님이신 줄(대하33:1-25)
——
536
요시아가 성전을 정결하게(대하34:1-33)
—-
545
하나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대하35:1-27)
—
553
그 백성에게 보내어(대하36:1-23)
———
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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