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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한절 Ep.5]이 영상은 베이직교회의 주일예배 설교 중에서 신앙인이 평소에 궁금해하거나 자세히 알고 싶어 하는 성경 구절을 한 절씩 발췌하여 엮은 것입니다.[2018년 6월 3일 주일예배 – 풀버전 보기 https://youtu.be/6TwN9xviiX0]* 이 영상물의 저작권은 ‘베이직교회’ 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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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연구]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5-5:3)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연구 제 23 강 / 2016. 8. 23(화) □ 창 4:25-26; 5:1-3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
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3/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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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말은 “여호와”라고 불렀다는 말일까요? …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Source: ssambbang1.tistory.com
Date Published: 3/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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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설교마당 – 뉴스앤조이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 때가 셋이 에노스를 낳았을 때였다 …
Source: www.newsnjoy.or.kr
Date Published: 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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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사전/주석 – 두란노닷컴
창세기는 에노스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6)고 적고 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말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말로, …
Source: www.duranno.com
Date Published: 1/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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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04:25-26) – 목회자료 – 기멀전
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
Source: godpeople.or.kr
Date Published: 1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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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16~26> > 쉴만한 물가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4:16~26> … 그렇다면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삶으로 방황하며 살게 된 가인의 후손들은 어떤 삶을 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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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5/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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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무엇이냐가 아닙니다. 단순한 호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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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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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칼럼 – 미주 크리스천 신문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모든 게 손안에 풍성히 쥐어져 있을 때는 귀히 여겨지지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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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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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크리스챤월드리뷰
1.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킨 라멕“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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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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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여호와 의 이름 을 불렀 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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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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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연구 제 23 강 / 2016. 8. 23(화)
■ 창 4:25-26; 5:1-3
“25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4:25-5:3)
1.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역사서로서의 성경은 모든 것을 세세하게 기록한 책이 아닙니다. 구속사에서 꼭 필요한 사항만을 발췌하여 기록한 책입니다. 성경은 액기스만을 압축하여 기록된 책이므로 더 깊은 연구와 명상이 필요한 책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담의 세 번째 아들은 셋입니다.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벨과 셋 사이에 다른 아들이 없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가인이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했던 것에서 보는 것처럼 아담과 하와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많은 자녀를 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또 다른 아들을 주셨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상속자요, 영적 상속권의 사자(嗣子)가 될 것이었다. 이 아들에게 주어진 이름인 셋은 “약속된” 혹은 “보상”을 의미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창 4:25)기 때문이라고 어머니는 말했다.”(부조, 80)
가인은 “얻음”, 아벨은 “허무”, 셋은 “보상”, “대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이 메시야일것이라고 생각하며 “얻음”이라고 이름을 지었지만, 그렇지 않음을 발견하고 다음에 태어난 아들의 이름을 “허무”라고 지었습니다. 경건한 아들 아벨이 죽은 다음에 태어난 아들은 아벨의 보상, 대리라는 의미로 셋이라고 지었다.
셋은 아담과 하와를 만족시켰을까요? “하와는 자신의 경건한 아들이 죽은 것을 보고 약속된 후손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저주를 받은 가인에게서는 성취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한 후에, 약속된 구원자는 셋을 통하여 오리라는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였다. 그녀의 믿음은 보상을 받았는데, 이는 셋의 후손들이 여호와께 순종하였기 때문이다.”(성경주석, 창 4:25)
셋과 그의 후손들의 순종 때문에 아담의 족보는 아담-셋으로 기록됩니다. 셋의 순종으로 마침내 아담의 순종의 계보가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으로 순종의 역사, 순종의 계보를 이어가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역사를 다르게 기록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음을 믿을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지금 선택하시고 순종하십시오. 믿음으로!
2.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1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창 5:1-3)
부전자전,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이라는 말은 일찍이 아담의 아들 셋의 출생 때에 만들어진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지만, 셋은 아담의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셋은 가인이나 아벨보다 더욱 고상하였으며 아담의 다른 아들들보다 그를 더 많이 닮았다. 그는 훌륭한 인물이었으며, 아벨의 발자취를 따랐다.”(부조, 80)
가인과 셋을 보면, 어떻게 태어났느냐 보다 어떻게 양육되느냐가 훨씬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가 가인보다 더 많은 미덕을 타고난 것은 아니었다. … 그러나 그는 또한 구속주에 관한 지식과 의에 대한 교훈을 받아들였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하나님을 섬기며 영화롭게 하였다. 그는 아벨이 살았더라면 행하였을 바로 그 일 즉, 죄인들의 마음을 그들의 창조주를 공경하고 순종하도록 돌이키기 위하여 노력하였다.”(부조, 80)
셋은 구속주에 관한 지식과 의에 관한 교훈을 받아들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속주에 관한 지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고난과 부활과 승천에 관한 지식이고, 의에 관한 교훈은 사람의 의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워진다는 교훈입니다. 성경 역사 6000년 동안 한번도 변경된 적이 없는 구원의 핵심진리입니다. 우리가 믿고 확신하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마다 이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3.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셋의 아들 이름은 에노스(히, 에노쉬)입니다.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에노스가 출생할 즈음,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는 공식적인 예배를 드린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표현은 여기서처럼 공중 예배를 지칭하기 위하여 구약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시 79:6; 116:17; 렘 10:25; 습 3:9).”(성경주석, 창 4:26)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시 116:17)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습 3:9).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2-3)
그 이전에는 공식적인 예배가 없었을까요?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본교회 성경주석에서는 ‘보다 공식적인 예배’가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에노스의 시대에 보다 공식적인 예배가 시작되었다. 물론 사람들은 에노스의 출생 이전에도 여호와를 불렀으나, 시간이 경과하면서 보다 공공연한 구분이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과 그분을 멸시하는 자들 사이에 생겼다.”(성경주석, 창 4:26)
에노스 시대의 이런 변화는 어떻게 이르러 오게 되었을까요? “에노스의 탄생과 더불어 사람들은 스스로의 나약함을 깨닫고 하나님 안에 피난처를 찾기 시작했으며, 자신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의 뜻에 따라 행하는 자들로 구별되기를 원했다.”(성경사전)
에노스는 사람, 즉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보다 더 공식적인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는 것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망의 그늘이 우리를 드리우고 점점 더 짙어갈수록 죽을 밖에 없는 존재 에노스 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어려서는 부모가 데리고 오지 않아서, 학교 다닐 때는 공부하느라고, 젊어서는 바쁘다는 핑계로 예배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서는 피곤해서, 다리 아프고 허리 아파서 교회에 못오다가 마침내는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을 봅니다. 사단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예배를 방해하고 있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방해에 걸려 넘어가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픕니다. 사단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어야 할 때가 있다면 바로 바로 지금이 아닐까 싶습니다.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어느 때입니까?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행 2:20-21) 우리는 개인적으로 단체적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열심을 내야 합니다. 서로 격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부름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에 헌신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 기도제목
1. 우리 교회가 지역사회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2. 우리 기별이 담긴 책을 가지고 간 분들이 하나님을 발견하도록
3.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들이 회복되도록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말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창 4 장 26, 창 13 장 4 의 참 의미는 ?
평안하시죠? annaga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라는 말은
“여호와”라고 불렀다는 말일까요?
아니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이름으로 불렀다는 말일까요?
보통 여호와라고 불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답은 2번에 가깝습니다.
그 이유를 한 번 알아볼게요.
목차
1. 출애굽기 3장 14절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하신 의미
2. 창세기 4장 26절 어떤 이름을 불렀다는 것인가?
3. 창세기 13장 4절 아브람이 처음 제단을 만든 곳으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의 의미는?
1. 하나님은 원래 이름이 없다 .
하나님은 이름이 원래 없습니다.
이름은 그를 낳아 준 부모가 있어야 지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은 만물에게 이름을 지어주실 권리와 능력이 있는 것이겠죠?
하나님이 그 이름을 묻는 모세에게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걸까요?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는 구절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께 경배하며 단을 쌓고 제사를 드릴 때. 제사장들이 그때 하나님에게 받은 계시에 감사하며, 그 계시의 내용으로 이름을 지어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의미입니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드리면,
어느 날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는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장면을 계시받았다고 한다면, 그는 “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 이시어 영광을 받으소서!”라고 경배할 수 있을 겁니다.
이때제사장은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할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여호와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라고 해석하시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라고 하신 것은 한참 후에 모세에게 말하신 것이고 그나마 이름이 발음상 여호와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이름을 가르쳐 주지 않으신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2000년 전에 하나님은 다른 모든 아름다운 이름을 피하시고, ‘예수’라는 이름을 취하시며 기뻐하셨습니다.
2. 어떤 이름을 불렀다는 것인가 ?
창 4:26 절에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창세기의 문맥을 보자면,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아담의 아들들인 가인과 아벨은 정상적인 족보를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가인은 하나님 앞을 떠나서 놋 땅으로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그 후 다시 아담은 아들 셋을 낳아서 족보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에노스라는 손자도 봅니다.
즉 가인과 아벨이 족보에서 사라지고 손자가 없는 상태에서, 셋이라는 새로 태어난 아들을 통해서 에노스라는 종손이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어서 아담의 가문은 대를 이어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아담의 계보는 혈통의 계보가 아니라 제사장의 계보라는 것입니다.
만일 혈통의 계보라면 가인이 낳은 아들 에녹이 종손이 되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에녹과 가인이 만든 가정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옳습니다.
그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어떤 뜻입니까?
이 말이 ‘ 오 여호와시여!’라고 했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아담과 셋이 에노스를 안고 뭐라고 하나님을 이름 지어 경배했는지는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구절은 뭐라는 이름으로 경배를 드렸냐가 핵심이 아니라, 가인의 살인 사건으로 흐트러진 제사장 계보가, 셋을 낳고 손주인 에노스를 낳으므로, 원래 하나님의 뜻대로 계보가 안정화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나라 풍속으로 따지자면, 한 집안의 어른과 아들과 장손이 모여서 비로소 제사다운 제사를 조상에게 지내게 되었다는 뜻이 됩니다.
창 4:26 절은 어려운 구절도 아니고 상식적이고 자연스러운 구절입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안 목사가 계보를 중시할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이 계보를 매우 중시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태복음 처음에 계보가 줄줄 나오는 거 아시죠?
이 계보로 결국은 그리스도가 온다는 예언이 성취되고, 그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이 증거 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성경 처음부터 이렇게 계보를 정확하게 기술하는 것입니다.
3. 창세기 13: 4 아브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는 의미는 ?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제사장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주께로부터 받은 계시가 있어야, 그 계시에 이름을 붙여 경배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아브람인 시절에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이름을 불렀다는 것은 그가 아담의 제사장 계보의 제사장이 될 것이라는 것을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감격스럽게도, 지금 복음 시대의 성도들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왜냐면 제사장들이 어렵게 받는 계시 대신, 누구나 알 수 있는명확한 복음으로, ‘예수’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성도들을 ‘제사장’이라고 하신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PS.
성경 처음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로 시작해서, 성경의 끝은 주를 예수라고 불렀다로 끝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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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04:25-26)
1.두가지 제사(예배)(1-7절) 1)가인의 제사(3절) 2)아벨의 제사(4절) 3)가인의 분노(5-6절) 4)하나님의 경계(7절)
2.가인이 아벨을 죽임과 그 결과(8-15절) 1)가인이 아벨을 죽임(8절) 2)회개할 기회에 도리어 반항(9절) 3)가인에게 내려진 벌(10-12절)
3.아벨의 피의 호소(10절)-요12:24
4.가인의 계보(16-24절) 1)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놋 땅에 거함(16절) 2)아들을 낳고 성을 쌓다(17절) 3)가인 후예들의 문명(18-24절)
5.아벨의 계보(25-26절)-셋-에노스-“여호와 이름을 불렀더라”
A.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B.두 번 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 번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C.세 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D.네번째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 “사람”이라는 뜻이다.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비로써 란 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써 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1,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여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은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이자 소망의 증거였다.
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란 의미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이름을 지은 부모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 번 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 번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명한 지명이다. 메시야를 주시기 위한 지명, 구세주를 주시기 위한 지명, 영생을 위한 지명이다. 아담과 하와는 세 아들만에 깨닫는 역사가 있었다.
2,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 사람이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개인을 지칭할 때 많이 쓰여지고 있다. 사56;2절에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욥10;4절에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시8;4절에서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 땅의 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만큼 말했으면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왜 그랬을까
당시만 해도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되는 이름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이란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하와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신 후 지명된 아들을 주셨고 그 지명된 아들 셋은 아들을 낳았을 때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네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 사람이지란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가죽만 빌렸다고 다 사람일 수가 없어서 지은 말일 것이다. [셋]도 아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했던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내 어떤 위치에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먼저 [에노스] 다운 [에노스]가 되어야 한다.
3,그대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때 에란 언젠가 바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은 그때가 아니가 사람이 참 사람이 되려고 시도했을 그 때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가지도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이는 자기들의 행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로 다 알려진 사람이 행실이 잘못되어서 욕을 먹는다면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 비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는 것이다. 26절을 다시 보시라.
… 그 때에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써 란 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써 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믿음의 부모노릇을 바로 했을 때 지명된 아들을 얻었고 지명된 아들 [셋이] [에노스] 즉 사람이 참 사람이 되고자 했을 그때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우리를 불렀을까 그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나 같은 죄인을 불렀을까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바란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4:25-26절)
[서론]A.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B.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C.그 대에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1,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여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았다. 그 아들들은 그들에게 사랑의 선물이자 소망의 증거였다.
하와는 세 번째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셋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란 의미를 가지고있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에게 주신 아들들의 이름을 보면서 그 이름을 지은 부모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첫번 아들의 이름은 [가인]이었는데 그 뜻은 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소유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 지만 어찌 나의 소유라고 못을 밖을 수가 있나 어찌 내가 낳았다고 내 소유라고 할 수 있겠는가
성경은 자식은 하나님께서 맡기신 기업이라고 말하고 있다. 하와가 내 소유라고 했던 것은 아직 신앙이 깊지 못한 상태의 믿음을 보여줌이다.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자기의 모든 일을 하나님의 은혜로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두 번 째 아들의 이름은 아벨이었다. [아벨]이라는 이름의 뜻은 허무였다. 이도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셨는데 허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첫 번째 자식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해서 허무라고 할 수 있는가
세 번째 아들은 [셋]이라고 했다. 이는 늦게나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지은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셋]이란 이름의 뜻을 무어라고 했는가 두다 자리잡다 지정하다 지명하다의 뜻임을 말한바 있다.
그렇다. [가인]처럼 나의 소유도 아니다. [아벨]처럼 허무도 아니다. 어디가지나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아들임을 명심하는 이름을 지었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지명한 지명이다. 메시야를 주시기 위한 지명, 구세주를 주시기 위한 지명, 영생을 위한 지명이다. 아담과 하와는 세 아들만에 깨닫는 역사가 있었다.
2,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셋도 아들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하나님께서 후일을 위하여 지명해 주신 아들인 [셋]도 장가를 들고 아들을 낳았다. 그리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다. 이름의 뜻은 인류( mankind )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는 개인을 지칭할 때 많이 쓰여지고 있다. 사56;2절에 이같이 행하는 사람은 복이 있느니라 욥10;4절에 주께서 사람의 보는 것처럼 보시리이까 시8;4절에서는 사람이 무엇이 관대 땅의 사람을 말하고 있다.
이만큼 말했으면 뭔가 느껴지는 게 없는가
[아담]이란 이름의 뜻이 무엇인가 역시 사람이란 뜻이다 .[셋]의 아버지 [아담]의 이름이 사람이란 뜻을 가졌는데 또 그 아들인 셋도 자식을 낳아서 사람이란 뜻을 가진 [에노스]란 이름을 지었었다.왜 그랬을까
당시만 해도 아직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중복되는 이름을 짓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왜 하필이면 사람이란 이름으로 아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이는 하나님께서 하와로 하여금 신앙의 본질을 깨닫게 하신 후 지명된 아들을 주셨고 그 지명된 아들 셋은 아들을 낳았을 때 참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네 말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인가 사람이 사람답게 사람 노릇을 해야 사람이 사람이지란 말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가죽만 빌렸다고 다 사람일 수가 없어서 지은 말일 것이다. [셋]도 아들의 이름을 사람이라고 했던 심정을 이해할만하다. 누구든지 예외 없이 사람이 먼저 되어야 한다.
내 어떤 위치에 있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사람이 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먼저 [에노스] 다운 [에노스]가 되어야 한다.
3,그대에 사람들이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그때 에란 언젠가 바로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은 그때가 아니가 사람이 참 사람이 되려고 시도했을 그 때 비로써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가지도 여호와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이는 자기들의 행동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이 예수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예수쟁이로 다 알려진 사람이 행실이 잘못되어서 욕을 먹는다면 이는 곧 [여호와] 하나님께 욕을 돌리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다울 때 비로써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질 수 있는 것이다. 26절을 다시 보시라.
… 그 때에 비로써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비로써 란 말이 있다. 여기에 비로써 란 말은 처음이란 말이다. [셋]이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고 이름하였을 그때 처음으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여호와의 이름이 불렀던 것이다. [셋]의 가정만이 그렇게 불렀던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라고 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믿음의 부모노릇을 바로 했을 때 지명된 아들을 얻었고 지명된 아들 [셋이] [에노스] 즉 사람이 참 사람이 되고자 했을 그때 처음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불려지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늘 그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왜 우리를 불렀을까 그 잘난 사람이 많고 많은데 하필이면 나 같은 죄인을 불렀을까 그러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셔야 했을까
그것은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을 바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되라고 부르신 것이다. 여러분들 때문에 여러분들의 자녀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자녀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기 바란다.
날마다 주님과 행복자 되기
[사진 김은아 집사]우리에게 주신 그 이름
이신구 목사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세기 2:15). 또한 하나님은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셨습니다. 그때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어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었습니다(창세기 2:19-20). 그리고 아담은 그의 아내의 이름도 지었습니다. 이처럼 이름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이름의 새로운 전환점은 아담의 아들 셋이 아들을 낳고 아들의 이름을 에노스라 한데서 시작되었습니다. ‘에노스’란 ‘연약한 자’ 혹은 ‘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생의 약함을 깨달은 셋이 아들의 이름을 짓고 나서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던 것입니다(창세기 4:26).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한 그때가 바로 아담 이후로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범죄한 인간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것이 귀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에노스 때 사람들이 불렀던 “여호와의 이름”은 어떤 이름이었을까요? 또한 아브라함도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창세기 12:8), 아브라함이 불렀던 “여호와의 이름”은 어떤 이름이었을까요? 안타깝게도 성경은 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를 정확히 말씀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을 제일 먼저 알려준 사람은 모세였습니다. 그 이름은 “스스로 있는 자”(출애굽기 3:14)라는 “여호와”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부른 “여호와의 이름”도 “여호와”가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6:2-3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라고 하신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에서 중요한 것은 그 이름이 무엇이냐가 아닙니다. 단순한 호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연약한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경배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당시에 아벨을 죽인 가인은 성을 쌓고 성의 이름을 아들의 이름인 에녹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목적도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창세기 11:4)였습니다. 그들과 달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사람들은 겸손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바라보며 제단을 쌓고 하나님을 경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음이 우리의 가장 큰 복입니다.
감사합니다.
2021년 1월 17일 조이플 교회 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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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강해<52>
▲ 이재록목사 1.하나님의 말씀을 변질시킨 라멕
2. 아담의 정통 계보를 잇는 셋과 그의 후손들
3.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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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창 4:23)본문의 배경은 아담이 이 땅에 정착한 후 약 6백여 년이 시간이 흘렀을 때의 일입니다. 인구가 많이 늘어 당시 사람들은 부족별로 집단을 형성하여 거주했습니다.철기 시대가 도래하여 인류 문명사에 획을 그을 만큼 문명이 발달했습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두 번째 살인 사건의 기록이 나옵니다. 라멕은 두 아내에게 변명하듯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고 말했습니다. 이유인즉 상대방이 먼저 자신에게 창상을 입혔다는 것입니다. 창상(創傷)이란 날카로운 물건 등에 찢긴 상처를 말합니다.당시 사람들은 철로 된 도구를 사용했는데 때로는 그 철재도구가 무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무기를 사용했다는 것은 싸움이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그러면 당시 싸움은 왜 있었으며, 어떤 형태로 나타난 것일까요? 당시 거주하는 집단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영역 확보나 이익을 두고 부족 간에 분쟁이 발생했습니다. 전쟁이라고 할만큼의 규모는 아니었고 부족 간의 사소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때 라멕이 속한 부족과 다른 부족과의 싸움이 일어났고 라멕이 창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양심이 선하여 이런 일을 당해도 우발적인 실수로 이해하고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상대편에서 미안해하고 사죄함으로 일이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런데 라멕은 창상을 입힌 상대를 죽였습니다. 더구나 상대는 소년이었습니다. 당시로서는 이 사건이 매우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었기에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아무리 소년이 먼저 창상을 입혔다 해도 더 강한 라멕이 위협적으로 경고만 했어도 소년은 겁을 먹고 물러났을 것입니다. 이는 그가 그만큼 악한 사람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라멕은 소년을 죽이고도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변명합니다.“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4)이 구절은 난해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앞 구절인 “가인을 위하여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말씀한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사실은 가인의 후손들에게로 전해져서 가인의 6대손인 라멕도 알고 있었습니다. 라멕은 살인하고 나자 자기 조상인 가인의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라멕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긴 했지만 보복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다른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습니다. 특히 죽은 소년이 속한 부족에게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라멕은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신 말씀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변질시켰습니다.누군가 자신을 해한다면 그는 하나님께 77배나 벌을 받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은 것입니다. 라멕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라멕에게 이 말씀을 하신 적도 없을 뿐아니라 벌을 77배로 부풀린 점도 너무 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기 유익을 위해 마치 그것이 하나님 뜻인 양 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임의로 변질시키거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해서는 안 됩니다.“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창 4:25)가인의 후손들은 아담의 정통 계보를 잇지는 못했지만 인간 경작 역사에서 한 분야를 감당했습니다. 주인공의 주변인물과 같은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계보를 정통 계보보다 먼저 기록하셨습니다. 라멕에 대해서는 상세히 기록해 주심으로써 인류 문명의 발달 과정도 알려 주셨습니다.이제 본문 창세기 4장 25절부터는 라멕 시대 이전으로 돌아가 아담의 정통계보를 잇는 아들인 셋의 출생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 땅에 정착한 후 자녀를 많이 낳았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인과 아벨을 특히 사랑하여 가업을 잇게 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아담과 하와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태어나 큰 위로와 기쁨이 되어 주었기 때문입니다.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시간도 있었으나 차츰 적응이 되자 삶이 안정되었습니다. 의식주 걱정이 없어지고 자녀들도 장성하여 함께하니 ‘평화롭다’고 느낄만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는 예기치 못한 사건, 곧 가인이 아벨을 살해한 일로 깨지고 말았습니다.이로 인해 아담과 하와는 아벨을 잃었고, 가인도 품에서 멀리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둘을 모두 잃은 것입니다. 특별한 사랑을 주고 의지했던 아들들을 한꺼번에 잃은 슬픔과 아픔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컸을 것입니다.이처럼 고통 중에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아들이 바로 셋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아벨 이후 셋을 낳기 전에도 자녀들을 더 낳았고, 셋 이후로도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굳이 셋을 여기서 언급한 이유는 그가 아담의 정통계보를 이은 아들이기 때문입니다.셋은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신 씨입니다. 이로써 그가 아담의 정통 계보를 잇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수많은 아들 중 셋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답이 창세기 5장 3절에 나옵니다.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했습니다. 셋이 아버지 아담을 가장 많이 닮은 자녀였던 것입니다.“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창 4:25~26)셋도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습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는데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음을 유추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능력을 믿고 예배하며 기도하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부르면 귀 기울여 들으시고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를 이 땅에 내어보내신 후에도 영의 통로를 닫지 않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하나님에 대해 잘 알기에 이 땅에서 낳은 자녀들에게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전능하신 분이니 그분을 중심으로 섬기고 경배해야 한다.”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도록 일러 주었습니다. 자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그런데 첫 아들 가인만 해도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행위가 나왔던 것입니다. 하물며 아담과 하와의 품을 떠나 멀리 떨어져 사는 자녀들은 어떠했겠습니까? 아버지 아담에게 들었던 하나님, 그 존재에 대한 인식이 금세 흐려졌습니다. 한 세대, 한 세대가 지날수록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이는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의 영향이 큽니다. 사단은 아담의 후손들이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갖지 못하게 주관해 갔습니다. 마음에 비진리를 입력시켜 갔고, 점점 더 악에 물들도록 역사했습니다.아담의 후손들은 영의 세계인 에덴동산을 말로만 들었지 직접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들었지만 하나님을 보거나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중심에서 믿고 경외하지를 못했던 것입니다. 사고방식도 육의 한계에 머물렀기에 눈으로 보고 손에 만져지는 것은 믿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믿지 못했습니다.그 결과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 중에서도 마음 중심이 선한 자녀들은 아담에게 들어 알게 된 하나님을 믿었고 나름대로 ‘어떤 분이실까’를 궁구했습니다. 바로 아벨이 그랬고 아벨을 대신해서 하나님이 주신 셋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셋을 대를 잇는 아들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사실 아담의 아들들 중 셋의 계보 외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육체의 사람들로 변질되어 갔습니다. 그러다가 노아 시대에는 홍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이 땅에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홍수 심판은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1,600여 년 만에 일어났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연대를 합산하면 홍수까지 정확하게는 1,656년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도 인간 경작은 계속되어야 하기에 ‘당대의 의인 노아’라는 인물이 그때에 태어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노아는 셋의 9대손입니다. 또한 셋의 후손 중에는 ‘에녹’이라는 위대한 인물도 있습니다. 이러한 아담의 정통계보가 이어지는 창세기 5장에 자세히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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