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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상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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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인연을 하느님께로] (1)성 정하상 바오로 가족 – 가톨릭신문

성 정하상(바오로, 1795~1839) 가족은 한국교회의 가장 대표적인 순교자 가문으로 꼽힌다. 성인을 비롯한 아버지 복자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1801)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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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정하상성당

천주교대구대교구 성정하상성당. TEL : 053-767-0920. 주소 : (42177) 대구 수성구 청수로38길 17. COPYRIGHT © 천주교대구대교구 성정하상성당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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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크라이스트처치 성 정하상 바오로 한인성당 –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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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하상 바오로 성당 특별강연회 2017년 8월 20일 - 황창연 베네딕도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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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Chicago St. Paul Chong Has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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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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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정하상 바오로(丁夏祥, 1795년 ~ 1839년 9월 22일)은 조선의 천주교 순교자, 평신도 신학자, 교회 지도자로 1801년 신유박해로 순교한 정약종의 아들이자 정약용의 조카이다. 세례명은 바오로이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성인으로 시성하였다. 세례명으로 쓰일 때는 하상바오로로 한다.정하상의 부친 정약종은 한국 천주교회의 처음 한글 교리서인 《주교요지》를 저술할만큼 학문과 문재가 모두 뛰어났는데[1], 정하상도 《상재상서》를 저술하여 조선의 천주교 박해가 부당하다고 주장하였다.[2]

생애 [ 편집 ]

부친 정약종(아우구스티노, 1760년-1801년)과 형 정철상(가롤로, ?-1801년)은 1801년 신유박해때 참형으로 순교하였다. 신유박해는 정순왕후가 남인들을 숙청하기 위해 ‘사학 엄금교서’를 내림으로써 발생한 천주교회 박해사건이다.

박해로 재산이 몰수되어 생계를 유지할 수 없게 된 정하상은 어머니 유소사(체칠리아, 1761년-1839년)와 여동생 정정혜(엘리사벳, 1791년-1839년)와 같이 숙부인 다산 정약용의 고향마재에서 살았다. 친척들은 천주교 신앙을 버리지 않는 정하상의 가족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샤를 달레의 천주교회사에 의하면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상당한 곤욕을 치렀다.

“ “여러 사람이 아직도 귀양살이를 하고 있던 정씨 일가는 천주교란 말만 들어도 벌벌 떨며, 그런 교를 계속 믿으려 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정하상과 그 집안 식구들이 천주교를 버리게 하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통렬한 비난, 협박, 멸시, 조소, 심지어 학대까지도 모두 동원되었다.”(<한국천주교회사> 달레, 86~87쪽) ”

그럼에도 정하상의 모친 유소사는 자녀들에게 기도문(經文)을 가르침으로써 신앙을 버리지 않도록 격려하였다. 하지만 이는 구전에 의한 교육이었으므로 체계적인 교의교육을 받지는 못했다.[3] 천주교 탄압으로 천주교 서적이 소각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교의를 배우는데 한계를 느낀 정하상은 신유박해때 함경도 무산(茂山)에 귀양가 있는 조동섬(趙東暹, 유스티노)을 찾아가 천주교와 학문을 배웠다.[4]

천주교 신부 입국 요청 [ 편집 ]

정하상은 1801년 신유박해때 중국 천주교 사제인 주문모 신부가 순교하여 천주교회를 지도할 사제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였다. 실질적인 조선 천주교 교회의 지도자가 된 정하상은 역관의 종으로 위장취업함으로써 북경에 가서 천주교 사제가 조선에 오기를 청하였다. 조선에 선교사가 들어와서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복음을 전하도록, 양반신분이었음에도 종이 되는 겸손함을 실천한 것이다. 정하상은 성직자 영입을 위해 중국에 다녀올 동안에 조숙 베드로, 권영례 데레사(1819년 함께 살아온 고 발바라 교우와 함께 서소문에서 순교)부부의 도움을 받았다.

하지만 1805년 중국에서도 교회박해가 발생하여 천주교 북경교구에서도 선교사를 보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에 낙심하지 않고 정하상은 한양에서 여동생 정정혜(엘리사벳)과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북경에 갔다. 1824년에는 교우이자 중국말 역관인 유진길(劉進吉) 등이 동반하였는데, 학식이 있고 글도 잘 쓰는 유진길의 동행은 정하상의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었다. 유진길이 쓰고, 라틴말로 번역한 서신을 본 교황 레오 12세는 조선을 독립된 전교지로 지정해서 교황청에 직속시키고 파리 외방전교회에게 전교를 맡긴 것이다.

정하상은 1825년 조선의 독립 교구 설치를 교황청에 청원하였고, 이에 응한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파리 외방전교회 산하에 천주교 조선교구를 설치하여 브뤼기에르 주교를 초대 교구장으로 임명하였다(1831년 천주교 조선교구 설치). 조선교구장으로 임명받은 브뤼기에르 주교는 모방 신부, 샤스탕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중국인 천주교 사제인 유방제 신부가 혼자서 전교를 하려고 하는 욕심을 부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835년 만주에서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헌종 2년(1836년) 1월 모방 신부가 조선 천주교인들의 안내로 조선에 입국했는데, 모방 신부는 정하상을 ‘중심이 되는 인도자’로 존중하여 숙소도 그의 집으로 삼았다. 교회에 해를 준 유방제 신부를 조선 천주교회 부주교의 권리로써 중국에 돌려보낸 모방 신부는 앵베르 주교, 샤스탕 신부와 함께 선교사로 활동하였다. 헌종 4년(1838년)에 9천여 명으로 천주교 신자들의 수가 늘어나자 선교사들은 조선인 천주교 신부를 키우고자 하였다. 모방 신부는 조선 천주교회를 지도해 온 정하상의 도움을 받아, 헌종 2년(1836) 김대건·최양업·최방제를 천주교회 신부 후보로 선발했다. 앵베르 주교는 학식이 있고, 성실히 신앙생활을 해온 정하상에게 신학을 가르쳤다.[5]

순교 [ 편집 ]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9월 22일에 참수되어 순교하였다. 어머니 유소사와 누이 정정혜도 그 해에 순교함으로써 정약종 가족은 모두 그리스도 신앙을 지키기 위해 죽음을 택한 순교자 가족이 되었다. 체포 직전 기독교변증서 《상재상서》를 저술하였는데, 1890년 홍콩 천주교의 약망(若望)주교가 간행하였는데, 이때 정하상의 전기인 정보록 일기도 같이 간행하였다.

참고 자료 [ 편집 ]

각주 [ 편집 ]

외부 링크 [ 편집 ]

GoodNews 가톨릭정보

성 정하상 바오로(Paulus)는 남인 양반의 후예로 경기도 양근 지방 마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정씨 가문에서 최초로 신앙을 받아들인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로 1801년 신유박해 때 맏아들인 복자 정철상 카롤루스와 함께 순교하였고, 어머니인 성녀 유 체칠리아는 기해박해의 여파로 1839년 11월 순교하였다. 아버지가 순교할 당시 겨우 일곱 살이었던 정 바오로와 누이동생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Elisabeth)은 어리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풀려났다.

그러나 가산이 모두 몰수당해 살길이 막연해지자 양근 지방 마재에 있던 그의 숙부 정약용 요한에게 의지하고 살았다. 그런데 숙부가 전라도 강진으로 귀양 가 있던 때였기에 천주교를 믿지 않던 친척들로부터 갖은 천대와 냉대를 받았지만, 정 바오로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기도와 교리를 충실히 배웠다. 하지만 외교인들 틈바구니 속에서 신자의 본분을 지키기가 어려워 20세 때에 서울로 올라와 성녀 조증이 바르바라(Barbara)의 집에 머물면서 목자 없는 조선교회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교회 재건을 모색하였다.

그는 함경도에 귀양 가 있던 한학자 조동섬 유스티누스에게 학문을 배우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양반 신분을 감추고 어떤 역관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살다가 북경에 가서 세례와 견진과 성체 성사를 받고 주교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으나 실패하였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북경까지 9회, 변문까지는 11회나 왕래하였다.

그는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누스와 조신철 카롤루스(Calolus) 그리고 강진에 유배 가 있는 삼촌 정약용의 자문과 후원으로 끊임없이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로마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한편, 북경 주교에게도 서신 등을 보냄으로써 마침내 조선교회가 파리 외방전교회에 위임됨과 동시에 조선 독립교구가 설정되었다. 마침내 그는 유방제(劉方濟) 파치피코 신부를 모셔 들이고, 모방·샤스탕 신부와 앵베르 범 주교까지 모셔 들여 자신의 집에 모셨다.

정 바오로가 사제가 되기에 적당하다고 여긴 앵베르 주교가 그에게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치던 중 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주교를 피신시키고 순교의 때를 기다렸다. 이때 그는 체포될 경우를 대비하여 “상재상서”를 작성했는데, 이것은 조선교회 최초의 호교론이다. 그는 이 속에 박해의 부당성을 뛰어난 문장으로 논박했기 때문에 조정에서까지 이 글에 대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1839년 7월 11일, 포졸들이 정 바오로의 집에 달려들어 그와 노모 그리고 누이동생을 잡아 포도청에 압송하여 바오로와 4대 조상까지의 이름을 명부에 올리고 옥에 가두었다. 이튿날 상재상서를 포장대리에게 주니 사흘 후 문초를 시작하였다. 정 바오로는 무서운 고통을 강인하게 참아나갔고 배교하라고 엄명하였으나 거절하자 옥에 가두었다. 며칠 뒤 다시 끌려나와 톱질형을 받아 살이 떨어져 나가고 골수와 피가 쏟아져 나왔다. 또한 그는 샤스탕과 모방 신부의 은신처를 대라는 심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 후 두 신부가 자수한 다음 또 심문을 받고 세 차례의 고문을 받았다. 그리하여 1839년 9월 22일, 서양 신을 나라에 끌어들인 모반죄와 부도의 죄명을 쓰고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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