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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제목 미치게 친절한 철학
지은이 안상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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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낸이 임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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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화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 Naver Post – 네이버

프랑스의 정신의학자였던 자크 라캉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구요. 그가 철학자였는지, 혹은 의사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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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ost.naver.com

Date Published: 2/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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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간증 < 선교 < 기사본문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경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라캉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이는 엄마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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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3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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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 충청타임즈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여 “개인은 타자(他者, Other)의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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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ctimes.kr

Date Published: 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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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내 마음] 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첫 번째 연재에서 ‘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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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sychiatricnews.net

Date Published: 1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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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칼럼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 유로저널

유로저널 177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1. 나르시즘의 시작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씩 거울을 본다. 오늘 내 얼굴은 어떤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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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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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타인의 욕망 발견하기 | ㅍㅍㅅㅅ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은 심리학적인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의존 회피성(dependent-avoant)이 높은 사람으로 대중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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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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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이 말하는 인간의 욕망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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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타인 의 욕망 을 욕망 한다

  • Author: 지식의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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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2. 7. 8.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X0sUc9VB3BA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어렸을 때부터 꾸어온 꿈. 오늘도 이루고 싶어 하는 대부분의 꿈들은 자신이 진정으로 성취하고픈, 마음 깊숙한 소원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이 이루었다는 성취감을 상상하고 바라는 판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남과 비교하면서 살아간다. 자신의 집에 대해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하다가도,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거나 그 사람이 타는 차를 보면 심기가 불편해진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유명한 경구는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이 한 말이다. 라캉의 이론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이는 엄마와 서로 반응하면서 사회생활의 원리를 배워나간다. 아이가 웃을 때 엄마가 좋아하면 아이는 자꾸 웃는다. 아이가 한 발짝 걸음을 떼었을 때 엄마가 박수를 치면 아이는 자꾸 걸으려고 한다. 아이의 한두 마디 말에 가족이 환호하면 아이는 자꾸 말을 하려고 한다. 아이는 나이를 먹으면서 대상을 엄마에서 친구, 선생님, 친인척, 사회로 바꿔가면서 자신의 행동을 사회적으로 정립해 나간다. 이렇게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사회를 배우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다른 사람의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살 수는 없다. 어느 순간 내 욕망과 다른 사람의 욕망이 구분되는 때가 온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을 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인지, 부모가 원하는 것인지, 선생님이나 이웃이 칭찬해 주니까 하고 싶은 건지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런 분별 능력이 계발되지 않은 상태로 혹은 그러한 분별력을 싹수가 노랗다고 생각하는 부모나 사회의 억압 때문에 욕망을 누른 채로 성인이 되는 사람들이 많다. 부모가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가는 학생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런 학생들은 대학 생활이 행복할 리 만무하고 졸업 후에 취업을 해도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서른 살을 넘기고 마흔 살을 넘기다가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된다. 지금까지의 삶은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는 것을. 돌이키기에 너무 멀리 왔다는 깨달음 앞에서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타인의 욕망을 거부감 없이 자신의 욕망인 양 착각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자신의 가치나 선택을 사회적 잣대에 맞추고 보편적인 욕망으로 포장된 타인의 욕망에 맞추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특히 한국인들은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사는 게 덕목이라는 가르침을 받아왔다. 이건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 유교의 가르침이다.

하지만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건 슬픈 일이다. 열심히 살기는 살았는데 허무하고, 넉넉히 채운다고 채웠는데 허전하고, 많은 걸 성취한 것 같은데 텅 빈 가슴만 남았다고 뒤늦게 씁쓸해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대다수 사람들이 자신의 욕망보다 타인의 욕망에 더 불타오르고,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간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런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우선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자는 말은 본능적, 동물적 욕구를 채우자는 말이 아님은 다 알 것이다. 크리스천은 누구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한다. 그런데 인간의 욕망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서로 배치된다면서, 인간적 욕망을 억제해야 한다고 배워온 것이 문제이다. 욕망을 좀 더 멋진 말로 바꾸면 비전과 꿈이 된다. 이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예를 들어 공부를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원하지 않는 의사나 판검사의 길을 강요받는다면, 그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라는 달란트는 바로 욕망의 씨앗이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 나이가 아무리 많아도 늦지 않았다. 마음 속 깊이 눌러 놓았던 자신의 욕망을 끄집어내어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 말자. 타인이 규정해 놓은 행복의 척도에 자신을 맞추느라 인생을 소모하지 말자.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치를 보자. 따뜻하게 우리를 지켜보시는 그분의 눈을 보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이런저런 이유로 계발하지 못했다면 지금 시작해 보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계발해서 행복해진다면 남은 인생이 얼마나 소중할 것인가. 그 아름다운 달란트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또 있겠는가.

하나님은 골방이나 교회에서만 우리와 긴밀한 교제를 하시는 분이 아니다. 여행을 떠나자. 몸이 떠날 수 없다면 상상의 날개라도 펴보자. 일상이 짜증스럽고 공동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도 타인의 욕망이 자신의 욕망을 누르기 때문이다. 타인의 욕망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자. 봉사하고 선교하는 많은 이들이 행복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신을 누르고 있던 타인의 욕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행복한 세계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손짓하고 계신다. 골방에서 나오라고…

나는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교육심리 박사·원남초 교장

드리마 `오징어 게임’에서 극 중 인물인 형사가 사라진 형을 찾으러 형이 머물렀던 고시원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몇 권의 책이 슬쩍 비쳐진다. 라캉의 `욕망이론’, 카뮈의 `이방인’르네 마그리트 등이다. 다들 눈치 챘겠지만 감독은 이 책들을 통해 드라마 전개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았다.

# 라캉의 욕망이론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2-1981)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재해석하여 “개인은 타자(他者, Other)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난해한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해석하자면 이 글을 쓰고 있는 나, 그리고 독자 여러분 모두가 지니고 있는 어떠한 욕망은 누군가의 욕망에서 비롯된 욕망이라는 것이다. 진짜 주체인`나’의 욕망이 아니라는 것이다.

라캉의 욕망이론은 무의식과 언어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한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언어를 사용하기에 개인의 무의식은 그 언어로 구성된다는 것이 라캉의 이론이다. 그런데 그 언어는 본질적으로 타자의 언어(영아기에는 엄마, 유아기에는 주변 교사들, 아동기에는 주변 친구들 등)이기에 무의식은 결국 타자의 담론이 된다. 즉, 사람은 언어 속에서 태어나고 자신의 욕망을 표현하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데 그 언어는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들의 담론이자 욕망인 것이다.

# 진짜 나의 욕망은

올해 초 주식 광풍이 불 때 생애 처음으로 주식 몇 주를 샀다. 내 주변에서 주식으로 재미 봤다는 사람들이 많을 때였다. 서울 사는 사촌 여동생 부부가 전세금 등을 탈탈 털어 영끌로 동탄에 아파트 분양을 받았다. 2년간 좁디좁은 친정집에서 얹혀사는 것을 무릎 쓰면서까지 웃돈 주고 청약티켓을 샀다.

나는 왜 평소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주식이라는 것을 사게 되었을까. 사촌 여동생 부부는 신혼의 단꿈을 포기한 채 친정살이까지 하면서 아파트에 매달리게 되었을까.

라캉은 욕망의 척도는 타자라고 했다. 따라서 남들도 원하는 것, 남들만큼 사는 것, 남들보다 더 잘 사는 것을 욕망한다. 우리의 욕망이라는 것을 돌아봤을 때 그것을 바라봐 주는 타자가 없다면 그것이 의미가 있을까.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Heidegger)의 말을 빌리자면 나를 바라보는 것들이 나를 존재케 하는 것들이다.

그러므로 욕망의 주체인 나는 주체적으로 자신을 욕망하기보다, 그 사회가 공유하는 욕망의 가치에 휘둘리게 된다. 이 욕망은 오롯한 나의 욕망이 아니기에 아무리 추구해도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생기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욕망 자체를 욕망하게 된다. 욕망 자체를 욕망하는 것 `오징어 게임’의 내용이기도 하다.

# 불혹(不惑)에…

타자의 가치관에 미혹되기보다 주체적 가치관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과정을 공자(孔子)는 논어(語)에서`불혹’이라 했다. 불혹은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이 아니라 스스로 옳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모색하고 추구하는 진정한 `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불혹, 이 역시 고민과 방황으로 점철되는 과정이겠지만 그래서 여전히 흔들리겠지만, 흔듦의 뿌리가 타자(세상)가 아니라 주체인 `나’안에 있다는 것이 불혹 이전과 구분된다.

주식과 투자, 남들에게 돋보이는 자리, 승진 자리를 끼웃거리는 욕망은 타자의 욕망인가, 진짜 `나’의 욕망인가. 불혹(不惑), 50대 중반에 나의 무의식과 차분히 치열하게 대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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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내 마음] 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정신의학신문 :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내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이유”

2.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

첫 번째 연재 에서 ‘전기밥솥에다가 에너지를 쓰면서 살지 말자(할 수 없는 것은 원하지 말자!)’라고 끝맺음을 하였었습니다. 이 원칙을 스스로의 삶에 적용을 해본다면 생각보다 많이 깜짝 놀라실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이렇게 많은 곳에 쓸데없는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고?’

이것만 인식을 하셔도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훨씬 편안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출근길 지하철에서, 퇴근길 양재 IC 인근에서 에너지를 쓰고 있을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미 시험을 보고 나서, 합격 발표를 앞두고는 더 이상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어집니다. 더 이상 전기밥솥 앞에서 용을 쓰는 그런 어이없는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번아웃 시키지 말자고요.

첫 번째 연재 말미에 제가 이 원칙은 우리의 대인관계에 더 많은 메시지를 던져주는 교훈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원칙이 우리의 대인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같이 살펴보고자 합니다.

사진_픽사베이

먼저 관계가 전혀 없을 거 같지만, 상당한 연관성이 있는 영상 이야기로 시작을 하고자 합니다. 그 영상은 김제동 씨가 ‘연애’에 관련해서 강의한 영상입니다. 유튜브에 ‘김제동 연애’라고 검색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영상에서 김제동 씨는, 연애는 무척 간단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연애는 ‘민주주의 원칙’에만 입각해서 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내가 나에게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알 듯이, 타인에게도 타인의 권리가 있음을 인정한다.’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라고 강조합니다. 김제동 씨는 연애도 이 원칙만 적용을 한다면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다고 재미있게 주장을 합니다. 정말 재미있는 영상이니 유튜브에 검색을 하셔서 직접 보시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원칙만 적용을 한다면, 길을 가다가 마음에 드는 이성이 보이면 그냥 말을 걸면 됩니다. ‘안녕하세요. 지나가다가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데 식사 한 번 하실까요?’라고 그냥 툭 던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그분이 ‘싫어요’라고 말하시면 그냥 가던 길 가면 됩니다. 그런데 ‘내가 고백을 했는데, 어떻게 내 고백을 거절해?’라고 생각을 한다면,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아주 독재적인 발상입니다. 고백을 하느냐 마느냐는 나의 권리이듯이, 고백을 받고 거절하느냐 마느냐는 그(그녀)의 권리인 것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고 ‘왜 내 고백을 거절해? 내 고백을 거절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 원칙에 위배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고백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면 고민은 내 것이지만, 고백을 하고 나면 고민은 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것이 된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래서 고백은 주로 중간고사 기간에 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재미있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과장되어 있는 이야기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 과장 속에 우리 삶에 큰 교훈을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들어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사실 김제동 씨도 강의 말미에 이 원칙은 우리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대원칙이라고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답을 듣기 전에 답을 찾기 위한 중요한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나의 마음을 고백하는 것이 무척 힘든 일이고, 스트레스가 큰 사건입니다. 그런데 김제동 씨 영상을 보면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습니다. 너무 쉬워 보입니다. 그 차이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교훈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는 이성에게 고백하는 것이 어려운 일인데, 김제동 씨 이야기는 그렇게 간단할까요?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가 질문입니다. 한 번 답해 보시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동적으로 글을 읽는 것과 능동적으로 생각해보는 것은 스스로 가져가는 것에 있어 큰 차이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위 기술에 답도 어느 정도 적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빈 공간에 자신의 생각을 넣어보시길 바랍니다.

생각을 좀 해보셨나요? 네, 맞습니다. 우리는 마음에 드는 이성에게 고백을 할 때 ‘알게 모르게’ 우리의 생각을 강요합니다. ‘내 고백을 거절하면 안 되는데’, ‘내 고백을 거절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들은 모두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생각들입니다. 김제동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재적인 발상입니다. 고백을 할지 말지가 나의 권리이듯이, 고백을 받을지 말지는 상대방의 권리입니다. 게다가 ‘상대방이 고백을 받느냐 마느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주어 자체가 ‘나’가 아니지 않습니까?

첫 번째 연재의 결론이 생각이 나시나요? 맞습니다. 우리는 대인관계에 있어, 주어가 ‘나’가 아닌 많은 바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주어가 ‘나’가 아니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의미합니다. 대인관계가 어려운 연유는 대부분 여기서 기인합니다. 애초에 할 수 없는 것을 바라왔던 것입니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힘드신가요? 무엇을 바라고 계신가요? ‘엄마가 잔소리 좀 안 했으면 좋겠는데…’, 자식과의 관계에서 힘드신가요? 무엇을 바라고 계신가요? ‘아들(딸)이 공부 좀 했으면 좋겠는데…’, 친구와의 관계에서 힘드신가요? ‘그 친구가 다른 친구들보다 나를 더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이성관계에서 힘이 드신가요? ‘내 남자(여자) 친구가 이렇게 행동해줬으면 좋겠는데…’ 이 무수한 바람들의 공통점이 보이시나요? 이 바람들 중에 주어가 ‘나’인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 주어가 상대방(타인)입니다. 그러면서 내 마음대로 되기를 바라신 건가요?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사람들은 버튼만 누르면 작동이 되는 로봇이 아닙니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 행동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것을 인정해주지 않는 한 대인관계가 편해질 수 없습니다. 전기밥솥 앞에서 용쓰고 ‘피가 말린다’라고 되뇌는 것이랑 별반 다르지 않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에너지를 쓰면서 지칠 뿐이지, 바뀌는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자크 라캉이라는 철학자는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라고요. 물론 이 문장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더 심오한 의미를 담고 있기는 합니다만, 이 연재 내용을 벗어나는 내용이라 생각하기에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연재 중반부에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진_픽사베이

여기까지 강의를 하고 나면 이렇게 반응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면 인간관계에서 모든 바람들을 포기하고 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살 거면 굳이 사람들 사이에서 살 이유가 없겠지요. 그냥 산에 들어가서 혼자 살면 됩니다. 그런 무책임한 결론을 내리고자 말씀을 드린 것은 아닙니다. 일단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 인간관계에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인식’하는 것이 가장 가장,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첫 번째 연재에서 제가 ‘첫 번째 이유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스스로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그것이 할 수 있는 일인지 할 수 없는 일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인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척이나 중요합니다. 정신 건강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냐고 제게 물어보신다면, 저는 ‘인식하기’라고 주저하지 않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인식을 하고 나면 놀라운 것들이 발견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많이 ‘할 수 없는 것들’을 바라면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요.

여기까지가 첫 단계입니다. 이 첫 단계는 강조, 또 강조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첫 단계에서 끝내면, 대인관계에서 모든 걸 포기해야 하는 허무한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런 식으로 주장을 하고 싶지도 않고, 또 실제로도 제 주장이 거기서 끝나지도 않습니다. 그다음 단계에 대한 이야기도 가지고 있지만, 지면 관계 상 그 이야기는 다음 연재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힌트를 조금만 드리자면, ‘인식을 했다면, 해상도를 높여서 바라보자’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은 모르시겠지요? 다음 연재에서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이번 연재에서는 생각해보면 좋음직한 질문 하나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법륜 스님 영상에서 보았던 질문이고, 제 강의 내용과 많은 것이 맞닿아 있는 질문입니다. 생각해보면 좋은 질문이니 이 기회에 잘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어느 날 몸이 좋지 않아 건강검진을 받았습니다. 며칠 뒤 건강검진 결과가 나와서 진료를 보러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위암’이니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내 일’이라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기분이 우울하고 침울해지시나요? 정말 위암을 통보받은 이 날이 우울해하고 침울해해야 하는 날일까요? 오히려 감사해하고 축하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을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여러분은 이 일이 ‘우울, 슬픔’으로 다가오시나요? ‘기쁨, 감사’로 다가오시나요? 한 번 생각해보시면 좋을 거 같습니다. 이 질문이 제 강의 내용과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도 다음 연재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커밍 순~

※ 본 연재는 ‘이일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강의 내용을 글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유로저널 177 – 나는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1. 나르시즘의 시작

우리는 매일 하루에도 여러번씩 거울을 본다. 오늘 내 얼굴은 어떤지, 옷매무새는 어떤지를 체크하기 위해서 우리는 거울 앞에 선다.

그런데 라깡에게 있어서, 거울은 나르시시즘의 시작이다. 인간은 자신의 불완전함에서 비롯된 상처와 불안을 자신이 투사해 놓은 이상적인 자아를 통해 위안 받고자 한다.

Norman Rockwell, Girl at the Mirror, 1953

라캉에 의하면 어린 아이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자아를 형성하는 과정은 완벽한 나르시즘 그 자체라고 했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태어난 후 처음으로 정신적 분열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라는 라깡의 말처럼, 우리 자신의 욕망을 타자의 욕망에 두게 되기 때문이다.

즉, 내가 꿈꾸는 지금 나의 욕망도 내가 생각해 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예전에 어느 누군가의 꿈, 어느 누군가의 욕망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욕망을 누르고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렉, 거울앞에 선 자화상, 1882-83

2. 근원적 나르시즘

자크 라캉(Jaques Lacan)은 주체의 문제, 사회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 그리고 인간과 언어와의 관계에 대해 프로이트를 재해석한 철학자다. 프로이트는 아동발달의 초기 단계에서는 주체와 객체, 자신과 외계 간에 뚜렷한 구분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이 상태를 라캉은 상상계(The Imaginary)라고 지칭했다. 여기서 어린아이는 거울 단계를 통해 자기인식을 하게 되지만 타자 속에서 주체를 경험하게 되므로 소외의 길을 걷게 된다.

인간이 개별성을 획득하는 장소는 상징계이다. 그러나 상징계로의 이행은 주체의 분열을 초래한다. 또한 언어에 의해 중개된 주체는 분열되어 자기 자신을 기표로 표현하게 된다. 라캉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세 범주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라캉은 생후 6개월에서 18개월 사이의 어린 아이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거울단계(mirror stage)를 거치면서, 처음에는 사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자신과 같이 서 있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잘 구분하지도 못한다.

그러다가 거울 속의 이미지가 바로 자신의 것이며 다른 사람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껏 파편적인 형태로 여겨졌던 자신의 신체가 거울 속에서는 완전한 이미지로 보여지는 것이다.

나와 거울 속의 나

그러나 사실 아이가 ‘나’라고 규정한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 이미지는 자신을 실제 모습보다 작게, 그리고 거꾸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 있어서 그 이미지는 자신의 완벽한 모습임과 동시에 자신을 돌봐주는 어머니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정신분석 용어로 이상적 자아로 불리며 타자에 의해 보여짐을 인식하지 못하는 ‘객관화되기 전의 나’에 해당된다.

보여짐을 모르고 바라봄만 있는 이 단계는 이미지를 이상화하기에 상상계라고도 불린다. 이 단계, 즉 거울단계이자 상상계가 바로, 프로이트의 무의식이라는 가설 가운데서도 나르시시즘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는 무의식이 있다는 가설을 증명하기 위해 유아기에 아기가 갖는 최초의 자아의식을 ‘근원적 나르시시즘’이라 불렀다.

나르시즘

3. 에고와 주체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최초로 ‘나’라고 인식하는 존재를 라깡은 ‘에고(ego)’라고 불렀다. 이는 결여가 없는 정체성을 지닌 ‘나’를 만드는 허구적인 자기규정이자 자기 자신에 대한 일종의 환상인 것이다.

아니쉬 카푸어, 비정형(트위스트), 2008

마치 아니쉬 카푸어의 작품인 비정형의 매끈한 거울상들 사이를 걸어가면서 보이는 납작하게 짜부라진 자신의 모습, 이리저리 뒤틀린 상의 각도로 비쳐지는 우리들의 모습 때문에, 정작 우리 자신의 실체가 보이지는 않는 느낌처럼, 허구의 에고는 우리인 체를 하며 우리 삶속에서 우리 행세를 한다.

이 에고는 우리가 죽는 날까지 결코 벗어버릴 수 없는 단단한 갑옷처럼 우리들과 함께 존재한다. 라깡은 자신에게 존재하지 않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아개념인 이 에고가 상징계(The Symbolic)에 의해서 주체(subject)로 바뀌게 된다고 했다.

아이가 거울단계에서 자신과 자신의 이미지를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낸 것이 에고라면, 주체는 아이가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만들어내는 ‘나’에 대한 개념이다. 주체는 언어에 의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즉 사회 속에서 규정된 ‘나’이다.

Maurice Guibert, Henri de Toulouse-Lautrec as Artist and Model, 1900경

다시 말해 에고는 상상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반면에, 주체는 상징계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한 에고가 정체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주체의 본질은 분열이다. 주체의 분열은 자아의 의식적 담화와 행위, 그리고 문화 사이의 분열을 나타낸다.

이런 분열은 주체의 내부에 숨겨진 구조, 즉 무의식을 형성한다. 분열은 담화나 상징계가 주체들을 중개하여 진실로부터 멀어지도록 함으로써 발생한다. 중개에 의해 주체를 표현할 수밖에 없으므로 주체는 자신의 본질적인 부분을 박탈당하게 된다.

개별성을 보증하는 상징계로의 편입이 주체의 소외를 야기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어린 아이는 사회와 문화, 조직, 그리고 언어를 받아들게 된다. 어린 아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이것들에 맞추어 오로지 자신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정신병인 신경증 현상을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

4. 오이디푸스 현상

(다음에 계속…)

유로저널칼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 최지혜

메일 : [email protected]

블로그 : blog.daum.net/sam107

페이스북 : Art Consultant Jihye Choi

내 안에 있는 타인의 욕망 발견하기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

프로이트 이론을 연구했던 프랑스 철학자·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말이다. 우리는 TV의 건강상식 코너를 볼 때마다 그날 방송 주제거리로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물건을 구매할 때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위암 판정을 받았던 사람이 수술 이후 양배추를 여러 방식으로 먹으면서 위 건강을 회복했다는 이야기를 접한다. 다음날 양배추즙, 양배추환 등 양배추 관련 제품의 판매가 급증한다.

〈효리네 민박〉에 나온 와플 기기가 방영 후 반나절도 안 되어서 재고 난이 된 것도 그에 해당하겠다. 이 중 제품 구입 후 지속적으로 와플 기기를 사용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당연히 물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다. 날씬한 몸매, 잡티 없는 피부, 컬러렌즈나 서클렌즈 등을 사용해 미를 추구하는 것이나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을 원하는 것도 이에 해당할 것이다.

그녀에게는 나들이옷도, 보석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런 것만 좋아했다. 자기는 오로지 그런 것만을 위해 태어난 듯 생각되었다. 정말이지 그녀는 사람들 마음에 들고 싶었고, 시샘과 매혹과 추구의 대상이 되고 싶었다. 기 드 모파상, 「목걸이」 中

라캉의 말처럼 우리는 자신의 간절한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타인이 욕망할 만한 것,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한다. 사실 이것이 광고의 원동력이기도 하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것은 나를 잃어가는 것이고, 나를 잃어가다 보면 일시적 충동을 참지 못하게 된다.

충동에 매번 동요하면 마침내 거대한 ‘욕망’만이 남을 뿐 ‘나’는 사라진다. 어린 왕자에 나온 알코올 중독자처럼 술을 마신다는 수치스러움을 잊기 위해 술을 마시게 되는 것이다. 그곳에는 나의 ‘욕망 덩어리-육체’만 존재할 뿐이다. 이것이 ‘조현병’, ‘다중인격장애’ 등의 정신질환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다. 그래서 이들은 우리의 욕망을 대변할 뿐,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사람은 심리학적인 표현으로 바꿔 말하면 의존 회피성(dependent-avoidant)이 높은 사람으로 대중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고, 묵묵히 권위에 복종하며, 타인에게 거절하기를 두려워한다. 기꺼이 얼굴 없는 군중 속으로 들어가 함께 목소리를 높일 수 있다.

또한 문학평론가이자 사회인류학자인 프랑스 학자 르네 지라르에 의하면, 이 형이상학적 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암처럼 자각증세가 없어 정확한 진단이 선행되지 않는다면 치유될 수 있는 희망 또한 없다고 말한다. 그래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지 않기 위해서는 (실패하더라도) 자신의 충동성에 주의를 기울이고 잠시 살펴봐야 한다.

자신의 내면을 객관적인 시선으로 살펴보는 훈련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사유하는 습관이 될 수도, 충동에서 잠시 물러서 보는 연습이 될 수도 있다. 내가 욕망하는 것을 제삼자의 것처럼 글을 쓰는 것도 도움이 되고, 나의 욕망을 이론화한 글을 읽거나 배우는 것도 방법 중 하나다. 또한 나의 한계를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과정 또한 필요하며, 그 과정에서 오히려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대상을 자발적으로 욕망한다고 믿지만, 그것은 ‘낭만적 거짓’에 불과하다. 사실은 우리가 욕망의 주체와 대상, 그리고 중개자를 꼭짓점으로 하는, 욕망의 삼각형 구조에 편입되어 있으며, 이것이 소설의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나는 ‘소설적 진실’이다. 르네 지라르, 「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中

원문: 당신이라는 책을 펼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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