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이스라엘 남유다 | [5분 정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는 이야기 [성경 공부 일독 프로젝트 #45] 250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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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사역 소개 https://youtu.be/vscb9Ofeu60​
02. 0주차 읽기 https://youtu.be/gpun1v360C8​
03. 창세기 개관 https://youtu.be/bAq05MvoSPw​
04. 4가지 주의사항 https://youtu.be/ymfaW6G3e0A​
05. 1주차 읽기 https://youtu.be/T80-uLx6Mjk​
06. 성경의 구조 https://youtu.be/6_z7_Ey1lP8​
07. 성경의 유익 https://youtu.be/qc1sdcqPvcU​
08. 2주차 읽기 https://youtu.be/3ny3p-RUUaM​
09. 성경의 주제 https://youtu.be/GYnfD7Qa2JY​
10. 출애굽기 개관 https://youtu.be/Iko0Yp044g4​
11. 3주차 읽기 https://youtu.be/rUOkFvd2n6c​
12. 구약 성경목록 https://youtu.be/k5JYP8yDAXw​
13. 성막 https://youtu.be/xKcFjL9fGWg​
14. 4주차 읽기 https://youtu.be/8_UGL1PEu_w​
15. 레위기 개관 https://youtu.be/AyWlDYe7cQE​
16. 5대 제사 https://youtu.be/imBgKkmjzK4​
17. 5주차 읽기 https://youtu.be/y8rC0ZmofaE​
18. 7대 절기 https://youtu.be/TuGKpq9q_rs​
19. 민수기 개관 https://youtu.be/wQSvsJWAmQs​
20. 6주차 읽기 https://youtu.be/23G4AZ0Y1cs​
21. 율법 준수? https://youtu.be/1OsA7xLGTZ4​
22. 7주차 읽기 https://youtu.be/P48DOAHGmCc​
23. 신명기 개관 https://youtu.be/voLD7iXjv8U​
24. 우리나라 성경역사 https://youtu.be/0qD3P645hK8​
25. 8주차 읽기 https://youtu.be/Xn8qnX6OidM​
26. 가나안 지리 https://youtu.be/pjMWkWHzr6A​
27. 여호수아 개관 https://youtu.be/tyU7wQbw8kk​
28. 9주차 읽기 https://youtu.be/lHFcK36bH4s​
29. 가나안 영토분배 https://youtu.be/OHc83KLkPFs​
30. 사사기 개관 https://youtu.be/AZh8b-lzrKQ​
31. 10주차 읽기 https://youtu.be/_qPilNG0bXY​
32. 열두사사 https://youtu.be/WLCWM7SAY8E​
33. 룻기 개관 https://youtu.be/Vd_nyymty04​
34. 11주차 읽기 https://youtu.be/2Ue6ghWgiEo​
35. 사무엘상 개관 https://youtu.be/F_Z6W8lLqS0​
36. 12주차 읽기 https://youtu.be/ym1AZpj8ej4​
37. 사무엘하 개관 https://youtu.be/CWvqkCyTDik​
38. 정경화 과정 https://youtu.be/g5MeUYuhoRw​
39. 13주차 읽기 https://youtu.be/QZk1XUIDjOU​
40. 열왕기 개관 1 https://youtu.be/uXZc1uvd728​
41. 성막과 성전 https://youtu.be/zQPuRRHTlxg​
42. 14주차 읽기 https://youtu.be/s5BXXKxFr6s​
43. 열왕기 개관 2 https://youtu.be/llafpA8IYu4​
44. 15주차 읽기 https://youtu.be/s1HKMLILx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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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 네이버 블로그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은 왕위를 이어받고 이스라엘 전체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세겜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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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blog.naver.com

Date Published: 3/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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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 용어 정리. 남유다, 북이스라엘 – 주사랑교회

이 구절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의미하고 뒤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유다’는 남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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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jesus-love.kr

Date Published: 9/2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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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약 중간사(2)_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 바른미디어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포함 19명의 왕이 다스리다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20명의 왕이 통치하다 B.C. 586년, 바벨론에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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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ami.kr

Date Published: 3/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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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조 및 남 유다 왕조

제목, [도표] 북이스라엘 왕조 및 남유다 왕조. 주제어, [이스라엘 왕조] 남유다 북이스라엘 [성경도표]. 자료출처, KCM,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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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cm.kr

Date Published: 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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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국 – 나무위키

첫번째는 솔로몬 사후 이스라엘 왕국이 북이스라엘, 남유다로 분열했다는건데 문제는 순서가 솔로몬 사망-르호보암 즉위-선왕때 너무 고달팠으니 좀 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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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5/3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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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 정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망하는 이야기 [성경 공부 일독 프로젝트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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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북 이스라엘 남유다

  • Author: 성경공부일독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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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4.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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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되다

솔로몬이 죽자 그 아들 르호보암은 왕위를 이어받고 이스라엘 전체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세겜으로 올라갔다. 어쩌면 솔로몬이 죽었을 때 북쪽 지파의 분위기들이 별로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북쪽 지파들이 처음부터 르호보암의 왕위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왕의 아버지가 우리의 멍에를 무겁게 하였으나 왕은 이제 왕의 아버지가 우리에게 시킨 고역과 메운 무거운 멍에를 가볍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우리가 왕을 섬기겠나이다”(왕상 12:4). 르호보암이 세겜으로 올라갔을 때 북쪽 지파들은 한 가지 조건을 요구했다. 그것은 노역이나 세금 등을 비롯한 멍에를 줄여 달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르호보암의 아버지 솔로몬은 성전 건축에 7년, 자기 왕궁을 건축하는 데 13년뿐만 아니라 각종 성읍을 요새화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인력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또한 남쪽 지역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다윗과 솔로몬을 왕으로 배출했던 유다 지파는 다른 지파에 비해서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솔로몬은 왕위에 오르고 나서 이스라엘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고 왕궁에 필요한 것을 원활하게 공급받기 위해서 이스라엘 전체를 열두 구역으로 나누었다. 우리가 흔히 예상하듯이, 그는 지파별로 나누지 않았다. 유다 지파는 그 의무에서 제외되는 특권을 누렸다(왕상 4:7-19). 이는 지파 간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다.

이런 배경을 가지고 있으면 르호보암이 세겜에 왔을 때 북쪽 지파들이 왜 멍에를 가볍게 해달라고 요청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불행히도 르호보암은 멍에를 줄여 주라는 원로들의 권고를 무시하고 더 강력하게 억압하라는 젊은 친구들의 조언을 받아들여 북쪽 지파들에게 대답했다가 분열을 자초했다(왕하 12:6-20). 하나님은 르호보암의 결정을 통해서 솔로몬의 죄악에 대한 심판으로 이스라엘을 둘로 나누는 계획을 이루어 가셨다. “왕이 이같이 백성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 일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 여호와께서 전에 실로 사람 아히야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심이더라”(왕하 12:15).

결국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만으로 남유다 왕국을 이루게 되었고, 두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열 개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이스라엘을 건설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이 왕위에 있을 때 큰 용사로 건축을 감독했다. 그때 하나님은 선지자 아히야를 여로보암에게 보내셨는데, 아히야는 새 옷을 열두 조각으로 자른 후 열 조각을 여로보암에게 주어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열 개 지파의 왕이 되게 하심을 알려 주었다.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세우시면서 요구하신 것은 다윗이나 솔로몬에게 요구했던 것과 같았다. “네가 만일 내가 명령한 모든 일에 순종하고 내 길로 행하며 내 눈에 합당한 일을 하며 내 종 다윗이 행함같이 내 율례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내가 다윗을 위하여 세운 것같이 너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고 이스라엘을 네게 주리라”(왕상 11:38).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 즉 다윗의 왕권을 영원하게 하겠다고 하신 약속을 저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알 수 없지만, 여로보암이 율법을 따라 북이스라엘을 잘 다스렸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다윗의 왕권과 연합되는 어떤 계획을 갖고 계셨을 것이다. “내가 이로 말미암아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것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왕상 11:39).

여로보암은 이렇게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북쪽 열 개 지파의 추대를 받아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세움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북이스라엘의 백성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 곧 남유다로 가는 것을 불안해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북이스라엘의 가장 북단에 있는 단과 남단에 있는 벧엘에 산당을 세우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그곳에 설치해 북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대신에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만들었으며(왕상 12:25-31), 하나님이 정하신 시기가 아니라 임의로 정한 날짜에 맞추어 절기를 지키도록 했다(왕상 12:32-33).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금송아지가 설치되어 있는 벧엘로 보내서 다윗의 집안에서 나오는 요시야가 그 산당을 완전히 파괴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왕상13:1-10). 이런 예고는 여로보암으로 시작된 북이스라엘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 주는 전조였다.

여로보암이 단에 만든 금송아지 제단. 철로 만든 제단 형태가 금송아지 제단의 크기를 보여 준다.

이스라엘 역사 용어 정리. 남유다, 북이스라엘 < 말씀 < 주사랑교회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의 지도로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여호수아 시대를 거쳐 가나안 땅에 정착합니다. 초기 이스라엘은 12지파의 사사를 중심으로 하는 부족연합체였다, BC 11세기 중엽 (한반도로 말하면 고조선 시대) 사울을 초대 왕으로 삼아 왕국이 됩니다.

사울은 40년을 통치하다 BC 1010년 블레셋과의 길보아 전투에서 전사합니다. 그 후 다윗이 7년간 유다 지파의 왕으로 있다 BC 1003년에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추대로 왕이 됩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처음부터 온 이스라엘의 왕은 아니었던 겁니다. ‘다윗(유다지파)+나머지 11지파 = 통일 이스라엘’인 겁니다. 그러나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겨우 70년 밖에 지속하지 못합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솔로몬의 죽음과 함께 끝나고 남북의 두 왕국으로 나뉘어 집니다. 이 시대를 ‘통일 이스라엘 시대’와 구분해서 ‘분열 왕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통일 이스라엘이 분열한 이유는 종교적인 타락과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되려면 나머지 지파의 승인이 필요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의 대표들이 노역과 무거운 세금을 가볍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 솔로몬 통치 말기의 타락으로 국고가 탕진되고 백성들의 삶이 고통스러웠던 겁니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구를 거절합니다. 그러자 에브라임 출신의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열지파가 이스라엘 왕국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통일 이스라엘 왕국은 남쪽 유다 왕국과 북쪽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됩니다. 남유다 왕국은 다윗 혈통의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의 일부로 구성되었고, 그 나머지 10지파가 북이스라엘 왕국이 됩니다. 에브라임 지파가 북이스라엘의 주축이었기 때문에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도 부릅니다. 또 남유다의 수도는 예루살렘이고, 북이스라엘의 수도는 사마리아여서, 두 왕국을 예루살렘, 사마리아로 부르기도 합니다. 또 북이스라엘에는 ‘이스르엘’ (이 단어는 이스라엘로 자주 잘못 읽습니다) 이라는 유명한 평야 지대가 있어서 북이스라엘을 이스르엘이라고도 부릅니다.

10월에 호세아서를 읽고 있는데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출신 선지자입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드러났나니,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그들과 함께 넘어지리라’ (호세아 5장 5절)

이 구절에서 맨 앞에 나오는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의미하고 뒤에 나오는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 왕국을, ‘유다’는 남유다 왕국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이란 말은 어느 시대, 어떤 왕국 출신 선지자가 썼는가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분열 후 북이스라엘 왕국은 208년 동안 유지되다 BC 722년 앗수르 제국에 망하고, 남유다 왕국은 북이스라엘이 망한 뒤 136년동안 더 유지하다 건국 344년만인 BC 586년 바벨론 제국에 패망합니다. 두 왕국 모두 각각 20명의 왕이 다스렸는데 북이스라엘은 평균 10년, 남유다는 평균 17년이 재위기간이었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남유다 왕국의 왕권이 비교적 안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유다왕국이 더 오랫동안 존속하며 민족 정체성을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이후 지금까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유대인’이라고 부르게 된 것입니다.

정리하면

■ 북이스라엘 왕국 = 에브라임 (혹은 이스라엘) = 사마리아(혹은 이스르엘) = 앗수르 BC 722

■ 남유다 왕국 = 유다 = 예루살렘 ?= 바벨론 BC 586 = 유대인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 bareunmedia

편집자 주: 본 연재는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부터 A.D. 70년 예루살렘 함락에 이르기까지 주요 왕조의 발흥과 쇠퇴를 중심으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사울, 다윗, 솔로몬이 40년씩 통치함으로 120년간 유지된 통일 왕국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인 르호보암 때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로 양분된다. 폴 존슨는 이 분열에 대해 “르호보암은 무력으로 통일 왕국을 유지할 군사 수단과 방편이 없었고, 북쪽 지역 사람들은 독자 왕조를 세우며 르호보암과 결별했다. 아시리아(앗수르)와 바벨로니아(바벨론) 제국이 연이어 부상하는 시대에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두 왕국은 각자 파멸을 향해 나아갔다”1)라고 평가한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포함 19명의 왕이 다스리다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고 남유다는 르호보암을 시작으로 20명의 왕이 통치하다 B.C. 586년, 바벨론에게 망하게 된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크고 작은 이방의 침입을 받았지만 각각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하기 전까지 국가로서의 주권을 상실한 적은 없었다.

앗수르에 의한 북이스라엘의 멸망

B.C. 8세기. 유프라테스강 넘기를 번번이 실패했던 앗수르가 역사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제국 건설의 중심에는 디글랏빌레셀 3세(편집자 주: 성경에는 불로 기록)라는 강력한 왕이 있었다. 존 브라이트는 그를 “앗시리아 역사에서 이 시대의 막을 열고 진정으로 제국을 창건한 인물로 매우 활기차고 유능한 통치자”2)라고 평가한다. 폴 존슨은 디글랏빌레셀이 “호전적인 아시리아 민족을 제국주의자들로 바꾸어놓았다”3)고 전했다.

앗수르가 점점 강성해 지는 시기에 이스라엘의 상황은 참혹했다. 왕위를 찬탈하기 위한 암살이 이어졌고 10년 사이에 다섯 명의 왕이 교체되기도 했다. 북이스라엘의 16대 왕 므나헴은 앗수르가 침공하자 조공을 바쳐 왕좌를 지켰다. 요세푸스는 “므나헴은 앗수르군과 싸워서 이득이 될 것은 조금도 없다고 생각하고 은 천 달란트를 주어 전쟁을 종식시켰다. 므나헴은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서 각 사람당 인두세를 50드라크마씩 내도록 강요했다”4)고 기록했다. 므나헴에 이어 왕위에 오른 브가히야는 불과 2년 만에 부하 베가에 의해 암살당한다.

왕위에 오는 베가는 반앗수르 정책을 펼쳤다. 학자들은 베가의 반역이 친앗수르 정책에 대한 반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게오르크 포어러는 “베가가 그의 선임자들과는 다른 정치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베가를 살해한 이유가 있을 것”5)이라며 “(친앗수르 정책은) 오히려 백성들과 국가를 많이 손상시켰다”6)고 전한다. 존 브라이트는 “다메섹의 왕 르신과 몇몇 블레셋인 군주들이 앗시리아에 대한 저항 세력을 조직하려다가 므나헴이 그들에게 합류하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그들의 계획에 호응할 것으로 생각된 베가를 밀어 주었을 가능성이 있다”7)고 밝힌다. 베가는 다메섹의 왕 르신, 수리아(아람)와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대항할 준비를 했다. 블레셋과 에돔도 동맹군에 합세했다. 동맹군은 남유다도 함께 하길 원했지만 유다는 이를 거절했고 동맹군의 칼은 유다를 먼저 겨눴다. 당시 유다의 왕은 아하스였다.

동맹군은 예루살렘을 포위했지만, 생각만큼 빠르게 성을 정복하지 못했다. 아람과 다메섹은 성 인근의 도시와 수비대 정도만 무력화시킨 후 북이스라엘을 남겨두고 다메섹으로 돌아갔다. 아하스는 이스라엘을 꺾을 기회라고 생각해 남아있는 북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였지만 대패하고 만다. 요세푸스는 “예루살렘 왕은 수리아인들이 귀국했다는 소식을 이스라엘 왕쯤이야 한 번 싸워 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군대를 끌고 나와 대결하였다. 한바탕 접전을 벌였으나 그만 이스라엘 왕에게 패하고 말았다. … 그 날 이스라엘군에 의해 전사당한 자는 모두 120,000명이나 되었다”8)고 기록했다. 더 이상 왕권을 유지할 힘이 없었던 아하스는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금을 내어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 3세에게 바치면서 도움을 요청한다(왕하 16:7,8). 디글랏빌레셀 3세는 그 길로 수리아를 공격해 초토화 시킨 다음 다메섹을 점령하고 르신 왕을 죽였다. 또한 다메섹 백성을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고 앗수르 인들을 이주시켰다(왕하 16:9).

이 와중에 북쪽 이스라엘에는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호세아는 자신의 친구 베가를 살해하고 북이스라엘의 19번째 왕에 오르게 된다. 호세아는 티글랏빌레셀 3세가 죽고 살만에셀 5세가 앗수르의 왕위에 오르자 바치던 조공을 중단하고 애굽에 도움을 요청한다. 존 브라이트는 이것을 자살 행위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자살 행위였다. 이때 이집트는 대단치 않은 군소 국가들로 나뉘어 각축하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도 도울 처지가 못 되었다.”9) 결국 호세아의 잘못된 판단은 역사가 그를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라고 기록하게 만들었다. 살만에셀 5세가 공격해왔다. 이스라엘은 사마리아성에서 약 3년을 버텼지만, 결국 함락 당했다. 사마리아를 함락한 살만에셀 5세에 이어 왕위에 오른 사르곤 2세가 북이스라엘을 철저히 짓밟았다. 폴 존슨은 “고고학 발굴 자료에서도 당시의 재앙을 확증해주는 증거가 충분히 나왔다. 사마리아 내의 왕실 구역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므깃도는 완전히 무너졌고 아시리아식 새 건물이 무너진 건물 더미 위에 세워졌다. 하솔의 성벽도 무너졌다. 세겜은 완전히 초토화 되었다”10)고 전했다.

북이스라엘은 이방인들이 혼합되어 사는 지역으로 변했다. 앗수르는 바벨론과 구다와 아와와 하맛과 스발와임에서 사람을 옮겨다가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여러 성읍에 거주하게 만들었다(왕하 17:24).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그리고 남아있는 이스라엘은 이제 이방민족과 합쳐진 혼혈민족이 되고 말았다. ‘사마리아인’의 탄생이었다.

앗수르의 몰락과 바벨론의 급부상

앗수르의 전성기는 그리 길지 못했다. 앗수르는 속국들을 지나칠 정도로 강하게 다스렸다. 앗수르와 일대일로 맞설 나라는 없었지만, 공공의 적에 대한 증오로 힘을 합칠 나라들은 있었다. 존 브라이트는 “속국들의 복종을 강요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목을 조였기 때문에 앗시리아를 증오하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었다”11)고 알린다. 앗수르의 몰락은 사르곤 2세, 산헤립, 에살핫돈에 이어 왕위에 오른 아슈르바니팔 때에 본격화된다.

아슈르바니팔의 형 샤마이 슘 우킨은 앗수르의 속국인 바벨론의 지도자였다. 샤마이 슘 우킨은 리디아, 시리아, 애굽 등과 연합전선을 펼쳐 앗수르를 압박했다. 아슈르바니팔은 연합군을 물리쳤고 이 과정에서 샤아미 슘 우킨은 사망했지만 앗수르는 많은 힘을 소진했다. 이 와중에 아슈르바니팔 사망 후 아들 신 사르 이스쿤과 반란자 아슈르 에틸 일라니 사이에 일어난 수 년 간의 왕위 다툼은 앗수르의 쇠퇴를 가속화 시켰다.

바벨론은 다시 기회를 잡았다. 신바벨론의 창건자라 불리는 나보폴라살은 B.C. 612년 니느웨를 공격해 3개월 만에 점령했다. 앗수르는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앗수르 병력이 하란으로 도망가 항전을 펼쳤지만, 바벨론은 가볍게 그들을 제압했다. 어떤 열방의 신도 앗수르의 정복을 막은 적이 있었느냐고 큰 소리 치던(사 36:18∼20) 앗수르의 교만은 그렇게 꺾였다.

바벨론에 의한 남유다의 멸망

B.C. 609년, 애굽의 왕 느고 2세는 갈그미스에서 최후의 항쟁을 펼치는 앗수르로부터 도움을 요청받는다. 바벨론의 급부상에 위기를 느낀 애굽은 앗수르를 돕기 위해 원정길에 오른다. 남유다의 16번째 왕 요시야가 애굽의 원정길을 막아섰다. 존 브라이트는 “요시야가 공식적으로 바벨론인들의 동맹국이 되었는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행동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집트–앗시리아의 연합군이 승리하게 되면 이집트의 야심에 시달려야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는 그 연합군의 승리를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12)라고 밝힌다. 요시야는 애굽의 출정을 막기 위해 므깃도에서 전투를 벌였지만 패배하고, 본인도 전사한다. 애굽은 서둘러 갈그미스로 향해 앗수르와 합류했으나 전쟁은 바벨론의 승리로 돌아갔다. 화가 난 느고 2세는 애굽으로 돌아가며 요사야에 이어 왕위에 오른 여호아하스를 포로로 데려갔고, 여호아하스의 형인 엘리야김을 여호야김으로 개명시켜 왕으로 앉혔다.

B.C. 605년, 느고는 다시 한 번 갈그미스로 향한다. 이번에도 승자는 나보폴라살에 이어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의 바벨론 이었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으로 돌아가며 유다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가 끌려가게 된다. 유다백성은 바벨론에 의해 세 차례에 거쳐 포로로 끌려가고 세 차례에 거쳐 귀환하게 되는데, 그 서막이 시작된 것이다.

유다 멸망의 결정적 요인은 18대왕 여호야김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B.C. 601년, 바벨론은 애굽과 다시 한 번 전쟁을 치르게 되는데 이 전투에서 애굽과 바벨론 모두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된다. 이때 여호야김은 바벨론을 배신하고 애굽과 손을 잡는다. 느부갓네살은 바벨론의 속국 이었던 모압, 암몬, 아람 등을 이용해 유다를 치고 이 과정에서 여호야김이 죽는다. 이후 왕위에 오른 여호야긴은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데 이것이 2차 포로였고 이때 에스겔 선지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한편,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37년 만에 풀려나 죽을 때까지 좋은 지위를 누리며 살게 된다(왕하25:27∼30).

▲미켈란젤로가 그린 예레미야

여호야긴에 이어 왕위에 오른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 선지자의 말을 무시하고 바벨론에 반기를 든다. B.C. 587년. 바벨론은 유다로 진격해 18개월 동안 예루살렘 성을 둘러쌓다. 예루살렘성은 기근이 심하여 양식이 떨어지는 지경에 이르렀다(왕하 25:1∼3) 더는 버틸 힘이 없었던 유다는 제대로 된 저항한 번 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짓밟힌다. 느부갓네살의 신복인 시위대장 느부사라단은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귀인의 집까지 불살랐으며, 예루살렘 주위의 성벽을 헐고 백성들을 포로로 끌고 갔다(왕하 25:8∼11).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사슬에 결박당해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된다(왕하 25:7). 시드기야는 죽는 날까지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다. 요세푸스는 시드기야가 죽자 바벨론은 “거창하게 장례를 치러주었다”13)고 전한다.

유다에 남은 자들

바벨론은 유대 땅에 일부 백성들을 남겨두었다. 주로 가난한 농민들이어서 반역은 생각지도 못했다. 바벨론은 남은 자들을 다스릴 총독으로 그달리야를 임명했다. 그달리야의 아버지 아히감은 예레미야의 목숨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렘 26:24).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에게 바벨론에서의 좋은 대우를 약속하며 동행하길 권했지만, 예레미야는 거절하고 황폐한 유대 땅에 남았다. 바벨론의 군대가 철수하자 바벨론을 피해있던 무리들이 다시 돌아오는데 그중 요세푸스가 사악하고 교활하다고 표현한 이스마엘이 그달리야를 암살한다. 그달리야가 총독이 된 지 불과 2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웠던 유다 백성은 대부분 애굽으로 피신하게 된다(왕하 25:25∼26). 이제 유다 땅은 텅 비어버렸다. 한편, 애굽으로 내려갔던 일부 유다 백성은 약 5년 뒤에 애굽으로 쳐들어온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비참한 결말을 맞이한다.

요세푸스는 남쪽 유다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기간을 130년 6개월 10일 이라고 계산했다.14) 게오르크 포어러는 “주전 587년은 이스라엘의 삶에 있어서 가장 깊은 단절을 의미하였다. 그 뒤에 계속 되고 있는 것은 이전에 있던 ‘이스라엘의 역사’와는 다른 의미, 즉 이방통치 아래 강한 종교적인 토대를 가지고 살아갔던 한 민족사를 의미 한다”15)라고 평가했다.

1)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19.

2)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368.

3)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26.

4) 요세푸스, 『요세푸스Ⅰ: 유대 고대사 』(생명의말씀사, 1987), 608.

5) 게오르크 포어러, 『이스라엘 역사』(성광문화사, 1986). 202.

6) 같은 책, 202.

7)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371.

8) 요세푸스, 『요세푸스Ⅰ: 유대 고대사 』(생명의말씀사, 1987), 611.

9)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376.

10) 폴 존슨, 『유대인의 역사』(포이에마, 2014), 127.

11) 존 브라이트, 『이스라엘의 역사』(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3), 429.

12) 같은 책, 445.

13) 요세푸스, 『요세푸스Ⅰ: 유대 고대사 』(생명의말씀사, 1987), 646.

14) 같은 책, 651.

15) 게오르크 포어러, 『이스라엘 역사』(성광문화사, 1986). 249.

조믿음 기자 [email protected]

이스라엘 분열왕국 연대표

Good4Joy

이스라엘 분열왕국과 주변 국가 (BC 9 세기)

솔로몬왕 후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분열(BC 930)하고,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BC 721) 남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BC 586)까지의 연대표입니다. 표는 두 왕국의 왕, 당시 활동했던 선지자, 그리고 주요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개요 (Overview)

남유다에는 그나마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게 행한 왕이 있었습니다. 특히 히스기야는 (왕하 18:5)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 그리고 요시야는 (왕하 23:25)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모세의 모든 율법을 따라 여호와께로 돌이킨 왕은 요시야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그와 같은 자가 없었더라 라는 평을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왕이 여호와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모든 왕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했습니다.

남유다는 다윗의 자손이 계속을 왕을 이어가지만 북이스라엘은 쿠데타가 자주 일어납니다. 북이스라엘에서 오므리가 4대로 가장 오래 유지한 왕가입니다.

남유다

344년 동안 20 왕이 다스림

수도: 예루살렘

북이스라엘

209년간 19 왕이 다스림

수도: 세겜(BC 930년), 브누엘(BC 930-909년), 디르사(Trrsah, BC 909-880년), 사마리아(Samaria, BC 880-720년)

분열왕국 연대표

초록색은 선정한 왕 , 노란색은 중간 정도한 왕 ,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왕

, , 나머지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한 왕 겹치는 시기는 두 왕이 함께 다스리는 기간입니다.

분열왕국 가계도

관련 자료

관련 문서

참고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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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이스라엘 왕국( 히브리어 מַמְלֶכֶת יִשְׂרָאֵל, 현대 히브리어 Mamlekhet Yisra’el, 티베리안 히브리어 Mamléḵeṯ Yiśrāʼēl , 기원전 922년경~기원전 722년경) 또는 사마리아 왕국은 고대 중동에 있던 국가이다. 성경과 역사학계에 의하면 이스라엘 왕국이 유다 왕국과 북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될 때 형성되었는데,[2][3][4] 일부 학자들은 북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884년 오므리 왕조에 이르러 왕국의 형태를 갖추어싸고 주장한다.[5][6]

이스라엘 왕국이 북부와 남부로 분열될 때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르우벤, 스불론, 시므온, 므낫세, 단, 잇사갈, 아셀, 에브라임, 납달리, 갓 등 이렇게 열 부족을 규합하여 북부를 지배한 왕국이다. 209년간 존속해 19명의 임금이 나라를 다스렸다.

왕조의 교체가 빈번하여 정정(政情)이 불안하였다. 벧엘 이북을 영토로 하고 오므리 왕조 시대에 남쪽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대항하기 위하여 수도 사마리아를 건설하였다. 유다에 비하여 땅이 비옥하였으므로 농경적 성격이 강하고 종교적으로도 토착종교 또는 이민족의 신앙이 상당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7]

구약 성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후 등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존의 야훼 대신 몰렉, 아스타르테, 바알 등의 신들을 숭배했다고 한다.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제국의 침략으로 멸망했다. 이스라엘을 정복한 아시리아 제국은 단호하게 통혼 정책을 펴 ‘동화’시켰다.

역사 [ 편집 ]

초기 왕조와 오므리 왕조 [ 편집 ] [10] 예후 왕의 사절단. 검은 오벨리스크. 기원전 841~840년

북이스라엘 왕국은 처음에 세겜에 도읍을 정한다.[11] 디르사로 천도하고,[12] 오므리가 사마리아에 수도를 건설하여[13] 아시리아에 의해 왕국이 멸망할 때까지 수도로 남는다.[14]

오늘날 고고학자들은 사마리아가 성경 시대에 북이스라엘 왕국의 수도였다는 것에 동의한다.[15] 기원전 850년 경에 모압의 왕 메사가 이스라엘의 왕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에게서 거둔 승리를 고대 히브리 문자로 기록한 메사 석비가 발견된 바 있다.[16]

유다 왕국과의 연관성 [ 편집 ]

성경에 의하면 처음 60년간은 유다 왕국이 북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지배권을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벌인 뒤, 이후 80년간은 특별한 전쟁 없이 아람 다마스쿠스 등 공공의 적을 위해 연합했다고 한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쟁은 유다 왕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의 딸 아달랴의 결혼을 통해 동맹은 굳건해지나, 아합의 아들들이 기원전 840년에 예후의 쿠데타에 의해 모두 사망하고 만다.

멸망 [ 편집 ]

기원전 732년, 이스라엘의 베가는 아람의 왕 르신과 동맹을 맺어 예루살렘을 위협한다. 당시 유다 왕국의 왕이었던 아하즈는 아시리아의 티글라트-필레세르 3세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공물을 받은 티글라트-필레세르는[17] 다마스쿠스, 이스라엘, 아람을 병합한다.[18] 이 때 길르앗에 거주하던 르우벤, 가드, 므나쎄 지파 사람들도 아시리아에 끌려가 하부르강 유역에 정착한다. 이외에도 납달리 지파의 전지역, 에브라임 지파의 야노아도 점령한다. 이 때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시리아로 끌려간다.[19]

북이스라엘는 얼마 남지 않은 영토를 유지하다가, 기원전 720년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아 완전히 멸망하고 남은 사람들도 모두 끌려간다. 아시리아는 사마리아를 3년간 포위하는 동안 샬마네세르 5세가 죽고 사르곤 2세가 즉위하는데, 사르곤 2세는 자기 자신을 사마리아의 정복자로 기록했다. 이 때 27,280명이 아시리아로 호송되었다. 이렇게 호송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부르강 유역과 메디아 땅에 정착하여 엑바타나 등에 유대인 공동체를 형성한다. 토비트는 이 때 니네베로 끌려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아시리아 에 의한 북이스라엘 유민의 강제이주

이렇게 아시리아로 강제이주된 지파들을 잃어버린 열 지파로 부른다. 남쪽에는 유다 왕국이 남아 유다 지파, 시므온 지파, 베냐민 지파, 그리고 일부 레위 지파가 이스라엘 민족의 뿌리를 유지해나간다. 유다 왕국은 기원전 586년에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침공을 받아 멸망한다.

사마리아인의 관점 [ 편집 ]

사마리아인들은 아시리아에 의한 유수때 끌려간 이스라엘 민족은 소수에 불과하며, 여전히 북이스라엘 지역에 많은 이스라엘 민족이 남아있었다고 말한다. 일부 학자들은 단지 1/5만이 압송되었다고 추정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유다 왕국으로 건너가 예루살렘의 인구수가 5배나 증가했다고 말한다. 이로 인해 예루살렘은 새로운 성벽을 건설하고, 히즈키야가 샘을 새로 팠다고 주장한다.[20] 또한 역대기하 30장에서도 이스라엘 지역에 에브라임, 므나쎄, 아셀, 이싸갈, 즈불론 지파의 많은 사람들이 정체성을 유지한 채로 남아있었음을 암시한다.

역대 임금 [ 편집 ]

각주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참고 자료 [ 편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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