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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14일 부산 성민교회 새벽기도회
\”방주를 만들되\” (창세기 6장)
설교자 : 홍융희 목사 (분홍목사)
창세기 6장부터 9장까지는 대홍수사건입니다
6장은 그 중에서도 왜 홍수가 일어나서
모든 인간을 심판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자세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표현된 셋의 후손은
땅의 딸들이라고 표현된 가인의 후손을
닥치는대로 자기의 아내를 삼으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가정의 원리의 깼습니다
그러면서 세상은 계속해서 부패해지고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 남을 죽이고 빼앗는
포악함이 온 세상을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대홍수를 계획하시고
방주를 지어 인류를 보존할 사람으로
노아를 선택하여 불러 주십니다
노아도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했지만
에녹처럼 승천하지 않은 이유는 노아에게는
방주를 지을 사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아도 우리의 환경은
각자의 모습으로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 내가 처한 이 자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진심으로 주를 따르는 예배자로 살아갑시다.
=====================================
* 부산 성민교회 : 부산시 사하구 승학로 201(괴정동).
http://sungminch.com/
성민교회 홈페이지에 오시면 더 많은 성민가족 이야기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홍융희 목사의 설교 mp3모음 USB구입은 교회 사무실로 전화 문의 바랍니다.
신구약 66권, 1,189장 전장 강해가 담긴 [하루 한 장] 완성판 USB가 나와 있습니다.
분홍목사의 사역 신청 문의도 아래 전화번호로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051-204-0691 (담당 : 성민교회 박지선 간사)
*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고 성경말씀을 깨닫게 하시길 원하십니다.
[하루 한 장]과 여러 영상들을 통해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확인해 보세요.
http://www.youtube.com/c/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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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목사 홍융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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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 사람의 죄악 – 새벽기도 설교 | 동탄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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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uthor: 홍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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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15.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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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 사람의 죄악 – 새벽기도 설교
창세기 6-9장에서는 천지창조 이후 가장 큰 사건이었던 노아의 방주와 대홍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늘 본문은 대홍수가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이 된 인류의 타락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세상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후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나마 경건했던 셋의 후손들까지도 점차 가인의 후손들과 함께 어울림으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죄악으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1. 먼저,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함께 있었다고 말씀합니다(2절).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께서 가인이 죽인 아벨을 대신해서 인류를 구속할 ‘여자의 후손’의 씨로 주신 셋의 후손들로, 하나님을 경외하던 경건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람의 딸’이란 하나님을 떠나감으로써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과 무관하게 살던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을 가리킵니다.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처음부터 그 신분과 삶의 양식이 전혀 달랐지만,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후손들의 쾌락적인 삶에 서서히 동화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 이라는 표현은 셋 후손들과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을 각각 나타내는 문학적 표현들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는 것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타락하여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들과 교류하고 연합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않고 가인의 후손들처럼 부패한 육체의 욕망을 따라 세속적인 삶을 살았음을 비유적으로 지적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라고 한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3절).
또한, ‘사람이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하나님께서 보셨다’고 말씀합니다(5절).
결국 셋의 후손들까지도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일말의 희망도 없이 온통 죄로 가득 차게 된 것입니다.
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로 가득한 이 세상을 즉각 심판하시지 않고 120년 동안을 유보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무엇때문에 이처럼 타락한 인류를 즉각 심판하시지 않고, 심판을 120년 동안이나 유보하셨을까요?
그것은 인류가 회개하고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묵과하시지 않는 공의로우신 분이시지만 동시에 죄인이 진실로 회개하고 돌이키면 용서하시는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로 인류를 심판하시기까지 충분한 시간을 주셨던 것입니다.
무려 120년, 인간들에게 있어 이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멸망당하고 맙니다.
여러분, 이처럼 죄인이 멸망당하는 것은 회개할 기회가 없기 때문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충분한 회개의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다만 죄인들이 자신들의 욕심과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음으로써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회개의 기회를 상실함으로써 멸망하는 것입니다.(히 12:17)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의 기회를 잘 활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회개의 기간으로 주신 이때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홍수 심판에서 구원받은 노아와 같이 우리 또한 마지막 대심판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오늘날에도 영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세상에서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는 성도들은 셋의 영적자손들로서, 하나님을 모르고 경외하지 않는 불신자들은 가인의 영적자손들로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함께 공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이 세상에서는 영에 속한 세력과 육에 속한 세력 간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두 세력은 서로 자신들의 세력을 확대하기 위해 결코 중단 없는 영적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이 복음을 증거하여 사람들을 주 앞으로 인도하는 것은 영적 전투에서의 승리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고,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 속합니다.
반면 성도들이 불신자들의 박해와 세상의 유혹에 넘어가 믿음을 버리는 것은 영적 전투에서의 패배이며 결과적으로 하나님 나라의 축소를 의미합니다.
여러분, 전쟁에서 패배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멸망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영적 전투에서의 패배는 영원한 멸망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미혹된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들과 함께 멸망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그와 같이 우리도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 전투에서 패배하지 않도록 항상 영적 경계를 철저히 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죽기까지 악의 세력과 싸워 믿음을 지킴으로써 우리 앞에 놓인 영적 전투를 승리로 이끌어야 합니다(엡 6:10-20).
3. 하나님은 땅 위에 사람을 지으신 사실에 대하여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습니다(6절).
이처럼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근심하신 것은 사람의 죄 때문입니다(5절).
그런데 인간의 죄가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여러분, 여러분의 자녀들이 큰 잘못을 범하여 그들을 여러분의 손으로 징계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마음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당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근심’이 바로 그러한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죄를 범함으로 우리의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엡 4:30).
또한 설령 연약하여 실수로 죄를 범했다 할지라도 즉각적인 회개를 통해 하나님의 용서를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근심을 풀어드려야 할 것입니다.
4.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절).
이것은 죄악이 가득했던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대홍수로 멸망하는 가운데서도 노아가 구원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잘 보여줍니다.
노아는 극도로 부패하고 타락한 세태 속에서도 여호와 신앙과 도덕적 의로움을 가짐으로써 하나님께 ‘당대에 완전한 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9절).
이 사실만 본다면 노아는 그의 행위로 구원받았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결코 그의 행위로 구원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과 같이 죄 아래 태어난 인간은 전적으로 타락하고 부패하여 자기 스스로는 결코 하나님을 알고 섬길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노아가 타락하고 부패한 세태 속에서도 신앙을 갖고 도덕적으로도 의로움을 보일 수 있었던 것 역시 하나님 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은 것은 오직 하나님이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다른 사람들과 동일하게 죄 아래 태어난 우리 또한, 하나님을 알고 섬기며 그의 말씀에 따라 선을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고 하겠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본래부터 더 의롭거나 잘났기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기에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은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오직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택하시고 은혜로 구원하신 하나님만을 자랑하고 그의 의를 찬양해야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이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다시 오실 때의 세상의 모습이 바로 노아 때의 세상의 모습과 같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마 24:37-39).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가 과연 노아의 때에 비해 더 의롭고 경건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은 말세의 끝에 와 있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매우 임박해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세상 끝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더욱 경건한 삶을 통해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으로 구별된 삶을 살 때만이 노아 대홍수 당시 구원받은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하나님의 최후 심판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세기 6장 주일 설교 말씀] 은혜를 입은 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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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창세기 6장 주일 설교 말씀 중에서 은혜를 입은 노아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은혜를 입은 노아 <창세기 6장>
성경에 가르치기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창6:9)”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은 자였다. 이러한 노아에 대하여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해 보자.
1. 노아의 가문
우리가 이제 노아의 가문과 아브라함의 가문을 비교할 때 조금 다른 것이 하나 있다.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불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났고 그런 가운데서 부름을 받았다. 그러나 노아는 다르다. 경건한 조상들 밑에 태어난 믿음의 가정의 아들이다. 노아의 증조부는 유명한 믿음의 사람 에녹이었다. 에녹은 65세 때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또 그의 나이 252세 때에 (창5:21과 25절을 비교해 보라) 손자 라멕을 보았다. 에녹이 승천할 때 손자 라멕의 연령은 113세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므두셀라와 라멕은 에녹이 어떻게 경건한 생활을 하며 하나님과 동행했던 가를 친히 자라난 아들과 손자였음이 분명하다. 바로 그러한 므두셀라는 노아의 할아버지였고 또 그러한 라멕은 근의 아버지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노아는 얼마나 경건한 가정의 아들이었는가를 상상할 수 있겠다.
우리가 창세기 5:29를 깊이 생각해 볼 때 노아의 아버지 라멕의 믿음을 넉넉히 알 수 있다. “라멕은 182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창5:29)
이 본문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첫째로는 그의 탄식이다. 우리가 이렇게 수고로이 일하며 고생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저주를 받은 때문이라고 그는 탄식했다. 우리는 이러한 그의 탄식에서 그의 슬픔이 무엇이었던 가를 상상케 된다. 우리 인생들은 다 범죄 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들이 되었다고 그는 탄식하며 슬퍼했던 것임을 본다.
이러한 탄식, 그러한 슬픔이야말로 곧 그의 믿음의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우리는 다 우리의 허물과 죄로 인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다고 슬퍼하며 탄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구원의 길에 가까운 사람이 아닐 수 없다. 지금 내가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것은 나의 죗값이라고 생각하는 그 양심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그러나 라멕이 그러한 슬픔과 탄식만으로 끝났다면 그것을 가리켜 참 믿음이라고 할 수 없겠다.
라멕은 그저 슬픔과 탄식만으로 끝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저주받은 인간들이라도 장차 하나님의 위로와 안식을 받을 길이 있다고 믿었던 사람이었다. 이러한 그의 믿음은 그가 지은 그의 아들 노아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구약시대에는 그 아들의 이름을 작명함에 있어서 그 아버지의 믿음과 소망이 그 아들의 이름에 표현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노아의 이름에서 그 아버지 라멕의 믿음을 생각한다는 것은 결코 무리한 일이 아니다.
창세기 5:29를 읽어 보라.
“라멕은 아들을 낳고….이름을 노아라 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
므로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는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노아라는 히브리 말의 원 뜻은 안식과 위로란 말이다.
라멕은 참 안식과 위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으면서 그 아들을 통하여 참 안식과 위로를 바라보고 기뻐하며 감사했다. 그런 의미에서 노아는 장차 나타날 그리스도의 예표로 보아 좋다. 이러한 그 아버지의 믿음은 노아에게도 깊은 감화를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말라기 2:15 참고)
2. 노아 시대의 환경
노아 시대는 심히 부패한 시대였다. 창6:2에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했음을 본다.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천사를 가리킨 것이 아니다. 하늘의 천사들을 결혼하지 않는다. 그것은 셋의 후손들을 의미한다. 아벨의 거룩한 계대를 이어줘야 할 셋의 후손들도 가인의 무리와 연합하여 어떻게 부패해진 것을 위의 성경은 보여준다. 이렇게 가인의 후손도 셋의 후손도 다 같이 타락하게 됐다.
창6:5, 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셨는데 이처럼 노아 시대는 죄악이 관영한 시대요, 사람의 마음이 악하여 하나님을 탄식케 하여 근심케 한 시대였다. 사람의 마음 악함과 세상의 죄악은 하나님을 그처럼 슬프게 했고 탄식케 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만물과 사람을 처음 창조하신 때는 “보시고 심히 좋았더라”라고 하셨는데 그렇게 좋아하셨다는 말씀이 창세기 1장에서 7번이나 나온다 (1:4, 10, 18, 25, 31).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뻐하시던 것을 보시고 슬퍼하셨다. 죄악이란 이처럼 흉악한 것이다. 노아 시대는 그러한 죄악이 세상에 차고 넘쳤다고 했다. 그러나 그렇게 암흑한 때이기에 노아는 하늘의 별같이 더욱 빛나게 되었다. 모든 백성들이 다 하나님을 탄식케 하는 그러한 시대에 오직 노아만은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시대를 슬퍼하시며 탄식하심이 사실이었으나 의인 노아,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그는 지극히 기쁘셨다. 그로 말미암아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으셨다. 억만 인이 죄악을 범한다 할지라도 오직 죄악을 이기며 의를 행하는 한 사람의 존재가 얼마나 존귀함을 우리는 노아에게서 배워야 한다.(참고, 예레미야5:1)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그처럼 의로운 자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대답은 오직 창세기 6:8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그가 그처럼 의롭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그가 큰 믿음을 지킨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그가 구원을 얻은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죄악이 관영한 시대에 홀로 의롭게 산다는 것은 큰 고통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불의의 물결이 홍수 같이 밀려드는 그런 때에 홀로 그것을 경건히 살아간다는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노아는 그것을 감당했다. 그것이 결코 노아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노아가 마침내 심판을 이기고 구원을 얻은 것도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가 아니었더라면 그렇게 큰 믿음을 지킬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창세기의 저자인 모세는 노아의 그 승리의 생애를 기록하려 할 때에 먼저 기록한 말씀은 창세기 6: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하신 그 말씀이었다(엡2:8참고).
성경은 노아의 생애를 기록하기에 앞서 그가 어떻게 “은혜를 입은” 사람이었던가를 먼저 기록한 것을 우리는 주의 깊이 읽어야 할 것이다. 노아의 경건한 신앙과 생애는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때문이었다. 혹 우리에게 좋은 믿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먼저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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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22절 노아가 보여 준 믿음, 수요기도회 복음적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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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창세기 6장 22절,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설교 : 노아가 보여 준 믿음
지금도 매우 많이 판매되고 있는 과자 중에 “초코파이”의 광고입니다. 말하지 않아도, 그냥 바라보면 알 수 있는 것이 “정”이라고 설명하며 감성적으로 큰 공감을 얻었던 광고였습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데, 인터넷에 검색해 보시면 요즘 나오는 광고도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인물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말씀만 하시고, 명확한 예측이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행동으로 옮긴 인물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른 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고향을 버리고 가나안 땅에 들어온 아브라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의롭다”라고 평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의롭다라고 평가하신 기준은 “믿음”이었습니다.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 선한 길로 인도하실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처음 밟는 땅인 가나안까지 왔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서 별과 같은 많은 자손을 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자녀마저도 없는 상태인데 말입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이 말씀을 믿었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시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다라고 평가하신 것입니다. 히브리어로 “믿는다”라는 말은 ‘아만'(אָמַן)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아멘”이 “아만”에서 나온 말입니다. ‘아만’의 원 뜻은, “확실하게 한다” “믿는다”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뜻에 대하여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쉬운 성경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우리가 바라는 것들에 대해서 확신하는 것입니다. 또한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실임을 아는 것입니다. (쉬운성경)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고 분명하지 않아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는 가지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마음과 머리 속으로 가지는 것을 넘어서서, 확실한 행동을 요구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마음과 입을 통하여 고백하고 행동으로까지 옮길 때 진짜 믿음, 요즘 말로 “찐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노아 역시, 하나님께서 홍수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듣고 그 말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노아 역시 행동으로 옮깁니다. 120년 동안이나 홍수의 징조가 전혀 보이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의 말씀대로 방주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노아의 믿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합니다.
히브리서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은, 하늘에 먹구름 한 점 없는 상태에서도 홍수가 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방주를 준비하는 행동을 보였습니다. 노아 역시 진짜 믿음, 찐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1. 하지만 안타깝게도 죄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에덴 동산에 있었던 아담과 하와는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믿음은 시간이 지날수록 약해지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 증거로, 그들은 동산 중앙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써 불신앙의 행동, 불순종의 행동을 보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죄가 이 땅에 들어 왔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은 노아 시대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장 5절부터 7절까지 말씀에서는,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시기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괜히 인간을 만들었다”라고 후회하시고 인간의 범죄와 불순종, 그리고 그 결과로 맞이하게 될 심판을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또 창세기 18장의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불과 유황으로 심판하시길 즐기셨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이 의인 열명이라도 찾으면 심판을 내리지 말아 달라고 요청 드렸을 때 흔쾌히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기뻐하시는 분이 아니라, 심판 전에 돌이켜 하나님께 돌아오길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의 사람들 역시 하나님을 믿지 않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함으로써 하나님을 후회하시게 만들고 마음 아파하시게 만들고 있습니다.
2. 마음 아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성도의 순종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에서,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믿음을 가진 사람 찾기가 쉽지 않았으며, 오늘날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결코 내 믿음이 크다라고 자부해서는 안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 믿음을 저버리게 될 지 나 자신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저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로 결단하고 최선을 다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믿음으로 순종할 때에는 두 가지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첫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우리는 순종해야만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함께 오늘 본문인 창세기 6장 22절을 읽어 보겠습니다.
창세기 6: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고,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집어 삼킬 만큼이나 많은 비가 40일 동안 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3층 높이로 큰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씀이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노아는 다 준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그대로 모든 일을 함으로써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 일이라도 말씀대로 행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노아가 만든 방주의 크기를 오늘날 계산법으로 보면, 길이가 약 135m, 넓이가 22.5m, 높이가 13.5m의 크기로, 오늘날의 축구장(약 105m)보다도 더 긴 배였습니다. 이 큰 배를 노아와 7명의 가족들만 동참하여 만들었기에 매우 힘든 작업이었을 것입니다. 직접 나무를 잘라서 옮기고 조립하고 역청을 발라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8명이 120년 만에 만든 것이 대단한 일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기에, 노아는 기쁨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매우 힘든 일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3. 오늘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방주 안에 들어간 생명을 가진 존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6장 18절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새로운 언약, 즉 약속을 세우십니다. 바로 노아로부터 새로운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도록 하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했던 인류는, 홍수로 인하여 모두 사라졌습니다. 홍수 이후에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새로운 인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온전히 순종함으로써 가능하였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믿고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믿음 가운데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생, 새로운 삶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가 죄로 인하여 실패하고 넘어졌다 할지라도, 때로는 불신과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할지라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오고 그 분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까지 옮길 때, 우리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기회입니다. 바이러스로 인하여 많은 이들이 생명을 잃었고, 그들 가운데는 복음을 받아 들이고 구원 받을 기회도 잃은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또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확인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입니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의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바꾸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과 주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을 따라 나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 나갈 때, 우리는 바이러스 이후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을 향한 참 믿음과 순종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됩시다.
노아는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믿었고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노아로부터 인류가 새롭게 시작하도록 은혜를 주셨습니다.우리의 상황도 어렵고 불가능해 보인다 할지라도, 또한 뚜렷하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할 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노아가 보여 준 믿음을 닮아, 하나님을 향한 진짜 믿음을 가지고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진짜 성도, 찐 성도가 바로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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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6장.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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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6장.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찬 435)
1. 창세기 6~8장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메시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 홍수 심판이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에 대한 하나의 전조라고 할 수 있다. 6장은 한 번 인간 세상 속에 들어온 이래 빠른 속도로 확산되는 죄의 속성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이것은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경계한 바울 사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한다(고전 5:6).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를 통하여 이 말씀을 들을 때, 그들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이런 일이 반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을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논란이 많이 되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의 기사는 그 해석이 쉽지 않다. 어떤 해석도 완벽하지는 않겠지만, 하나님의 아들들이 셋의 후손을, 사람의 딸들이 가인의 후손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난한 해석이다. 섞여서는 안 되는 것이 섞였고,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갔다. 거룩은 죄와 섞일 수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어느 사람에게도 삶의 기준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구별하여 세우신 하나님의 백성이 그 구별을 스스로 무너뜨려버렸다. 결국 노아를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 120년 후에 있을 것이 선언되었다(창 6:3).
2. 하지만 이런 심판의 메시지 속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리고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보아야 한다. 심판 중에서도 긍휼을 잊지 않으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아야 한다. 그것이 8절이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이어서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부연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했던 사람을 만난다. 이 구절은 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의 특징과 열매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 노아를 통해서 심판 후에 세상의 질서를 보존하시고 다시 세우실 것이다. 성경이 놓치지 않고 강조하는 것은 그의 의인됨과 하나님과 동행함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다. “노아가……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22).” 아담과 하와의 실패는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우습게 여긴 것이었음을 기억하라. 노아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는 사람으로 하나님과 동행한다. 비록 죄악이 무성하고 어두운 세상이 되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기에 하나님과 동행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구원을 얻어내는 것이 아니다. 정반대다. 오늘날에도 이 원리는 동일하다.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당신은 그 말씀의 권위를 알 것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을 가능하게 한다. 은혜를 받았다면 당신은 그 말씀을 결코 우습게 여기지는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특징지어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순종하는 삶이다.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는가?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
3. “하나님 아버지, 죄악이 관영한 세상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 노아를 통하여 은혜의 강이 멈추지 않게 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선하심을 찬양합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이 삶의 절대기준인 말씀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현실 속에서도 주의 말씀을 끝까지 굳게 잡는 저희가 되게 하옵소서.”
멸망의 시대가 가까이 올 때 (창세기 6:1-22)
창세기 6:1-22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9 이것이 노아의 족보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10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11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12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 13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14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안팎에 칠하라 15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 규빗,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16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할지니라 17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땅에 있는 것들이 다 죽으리라 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19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보존하게 하되. 20 새가 그 종류대로,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하게 하라. 21 너는 먹을 모든 양식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먹을 것이되리라. 22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예수님께서 주의 재림의 때에 대해말씀하셨습니다.
37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39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 24:37-39).
따라서 우리는 주의 재림의 때와노아의 때는 대단히 비슷한 양상을 띠게 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멸망의 두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완전하게 멸망당할 때까지 오직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일만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역사가 흘러갈수록이 땅의 멸망의 때는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인자의 때, 즉, 주의 재림의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의 재림 때에 어떤 일들이 발생할지 알아낼 수 있습니다. 먼저, 본문 1-2절을 보겠습니다.
[ 1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나니 2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창 6:1-2).1절에 보니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시작할 때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멸망의 시기의특징입니다. 그 특징은 땅 위에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아지는 것입니다.주님의 재림의 때에는 노아의 때처럼 사람들이 급속하게 땅 위에 번성할 것입니다.
노아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이 땅에 살았는지는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총 인구가 2억에서 90억 사이에 있는 것으로 봅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사람이 땅위에엄청나게 번성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유명 신학자들은 4억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인구 통계학에 따르면 지금 2019년의 인구 수는 77억입니다.그런데 77억은 노아 홍수 이후 지금까지 이 땅에 살았던 인류의 수를 다 합친 것보다 더많은 숫자입니다.
창조 과학의 아버지인 헨리 모리스에따르면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이후로 인류가 태어나 홍수 이전까지 이 땅에 살았던 수보다 노아 홍수 직전에 살던 인류의 인구 수가 훨씬 많았습니다.
아무튼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인구의 수가 한없이 많을 것입니다. 어쩌면 벌써 77억 정도가되는 현재의 인구 수는 벌써 노아의 때의 패턴에 들어섰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인자의 재림은 그리멀지 않았습니다.
또한 1절에서 “사람들에게서 딸들이 나더라”고말합니다. 이 표현은 세상의 여인들로 인해 인류에 어떤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하와의 타락에 의해 인류에게 첫번째위기가 왔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사랑하심으로 인해 인류는 첫번째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그런데 또다시 창세기 6장 본문에서 여성들이 죄로 향하는 모습을보여줍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난 딸들로 인하여 인류는 두번째 위기에 처하였습니다.
주 예수께서 주님의 재림의 때가노와의 때와 같은 패턴을 취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재림 때 역시 노와의 때처럼 여인들로 인한 위기가 올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사람의 딸들이 인류에위기를 가져올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것은 주님의 사람들을 범죄로이끈다는 점에서 위기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사람의 딸들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쾌락과 죄악으로 강력하게미혹할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와는 자신이 먼저 선악과를 따먹은죄를 범한 직후에 아직 죄를 범하지 없는 아담을 유혹하여 자신처럼 선악과를 먹도록 하였습니다. 이에아담은 하와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고, 이로 인하여 인류는 완전한 멸망의 위기를 당하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보면, 그 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멸망하였습니다. 사실 롯 외에는 한 사람의 의인도 없었습니다. 롯 역시 죄에 물든형편없는 주의 백성이었기 때문에 멸망 당할 위기에 있었지만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때문에 롯은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즉, 롯 역시 오직 주의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지만단 한 사람의 신자마저 없던 소돔과 고모라는 완전히 멸망하였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의 딸들은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범죄를 하게 하는 강력한 요인이 됨으로서 주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대항하여선악과를 따먹는 것과 다름없는 범죄를 저지르게 될 것입니다. 그 죄는 다음 아닌 하나님과의 언약을 저버리는배교의 범죄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2절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등장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구냐에 대한 의견은 학자들 사이에서 분분합니다. 제일 주된 의견으로는천사라는 의견이 있고 셋의 후손으로 태어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는 의견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천사라고하는 주장은 본문의 전후 문맥 관계상 전혀 어울리지 않습니다. 특히 성경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여구속사적인 입장에서 볼 때 이들을 천사들로 볼 경우, 향후 전개되는 타락사는 인간의 타락사가 아닌 천사의타락사가 되기 때문에 이 견해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또한 창세기 6장에서천사가 타락한다면 천사가 시도 때도 없이 타락할 수 있다는 논리가 되기 때문에 이 또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예수님께서 천사들에 대해 분명하게 말씀하시기를 그들은 장가와 시집을 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즉, 천사들이 사람을 아내로 둘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여김을 받은 자들은 장가 가고 시집 가는 일이 없으며 36그들은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라](눅 20:34-36)그런데 2절에서 ‘아내’라는 단어는결혼이라는 언약 관계를 통해 하나가 된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본문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이라고 하면 주 예수님의 말씀과 상충하게 됩니다. 그러므로‘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사들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들로서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던 주의 백성을 말합니다. 지금 저와 여러분과 같이 주의 영이 거하시는 주의 백성들로 보면 정확합니다.
더욱이 원어 “하나님의 아들들”을 구약에서 찾아보면 경건한 주의 백성을 지칭할 때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들들이라는 원어는 ‘벤’이라고 되어 있는데, 신명기 32장 5절에도 같은 용어를 사용합니다.
“그들이 여호와를 향하여 악을 행하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흠이 있고 삐뚤어진 세대로다”(신 32:5)
호세아서 역시 주의 백성을 향해같은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되어서 헤아릴 수도 없고 셀 수도없을 것이며 전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 한 그 곳에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할 것이라”(호 1:10)
아삽이 시편에서 같은 표현을 합니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시 73:15).
이로 보건대 “하나님의 아들들”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믿음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반면, 사람의 딸들은 가인 계통에서 태어난 불경건한 자녀들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들’과대응되는 불신앙의 여인들로서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세상 여인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딸들은 아름다웠습니다. 인간의 눈에 탐스러웠습니다. 이는 외적으로 뛰어난 미모를 뜻합니다.
이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그들의외적인 미모에 사로잡혀 그들이 불신앙의 여인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과 언약을 맺고 아내로 삼아 그들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2절의 고발입니다.
즉, 진리와 빛의 자녀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가인의 후예인 불신자의 딸들과 인간적인 사랑에 빠져 서로언약을 맺어 아내로 삼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2절에서 그들을 아내로 취하였다는 것은 정확하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약을 맺고 육체적으로하나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거듭난 청년이 거듭나지 않는 처녀의 외적인 미모와 조건들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결혼한 것과 같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경은 구약이든 신약이든 하나님의영이 거하시는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영이 없는 세상 사람들과 언약하며 육체적으로 합하는 것을 금합니다.
고린도후서 6장에서 바울이 언급합니다.
[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자가 어찌 상관하며 16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17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1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고후 6:14-7:1).따라서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신앙과 선한 행실, 아름다운 성품 등, 내면적 아름다움을 추구하지 않고 오직 여인의외모에만 관심을 집중하였다는 것은 큰 잘못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이는 그 당시 하나님을 아는 자든모르는 자든 모든 사람이 비성경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내용입니다.
이처럼 주의 백성마저 세상의 여인들때문에 주 하나님을 저버리자 이제 모든 인류가 불신으로 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국은 필연적으로멸망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때에오직 노아 및 그의 가족 외에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한 것처럼 인자가 다시 오는 때에 믿음 있는 자를 찾아볼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눅 18:8).
이는 인류의 역사가 끝으로 달려갈수록성령으로 거듭난 참된 신자가 급격하게 줄어들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자들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이유로는주의 백성들이 세상 사람들과 연합하는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 시대의 특징은 사람들은엄청나게 번성하여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이며, 그와는 반대로 신자들은 세상 여인들과 짝하면서 신앙을저버림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의 수가 급격하게 줄어드는 현상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주님께서 재림하시기직전에도 똑같이 나타날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들의딸들을 취한 이유는 세상 여인들의 미모 외에 다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네피림이라는 특이한거인 족이 있었고, 노아 홍수 이전의 네피림은 온 세상을 군림할 만큼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지닌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상의 딸들과 연합하는 이유는 그들 네피림처럼 권력과 힘을 가진 자녀들을 원하였기때문인 사실을 본문이 말합니다.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후에도 – 그들을 본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창 6:4).
즉, 네피림으로 상징되는 세상의 권력, 여성의 아름다움으로 상징되는 쾌락등, 이생의 자랑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한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믿지만, 상대가 돈도 많고 권력가의 딸이고, 지독히 아름답기때문에 신앙이고 뭐고 다 뒤로 미루고 일단 불신자와 결혼해 버리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교회와신자를 떠나십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육신이 됨이라.”(창 6:3).
또한 5절 이하를 보면 믿는 자가 거의 사라지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5-7)
우리는 여기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고 할 때 그 관점은 하나님의 관점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즉, 인간들끼리 보는 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는 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노아 시대는 그저 밥먹고 놀고 일하고 계획하고 수고하는 모습일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입장에서 보면 죄라고 보기에 애매할 수 있습니다.
바벨탑을 쌓을 때 인류는 서로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를 인간 측에서 볼 때는 권력에 의해 질서가 유지되면서 운영되는 조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의 문제는 하나님을 고려치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노아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즉,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망각하고, 하나님을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하면 사람의 죄악이온 세상에 가득하고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과 계획 속에 하나님은 없고 오직 ‘나’와 자신이 속한 공동체만 있는 것이 하나님께서 온 인류을 악하게보시고 멸망시키신 가장 주된 원인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죄를 도덕적 관점에서 보면 복음을깨달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근거로 하여 복음적인 관점에서 죄를 보려면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죄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즉, 돈 벌기 위해 신앙을 잃으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는 죄입니다. 주하나님께 감사하는 것과 주 하나님을 만나 영화롭게 하는 것을 잊으면 그것이 죄입니다. 세상에서 먹고사는 일에 시달리거나 여러가지 오락에 빠짐으로 주 하나님을 계속 잊고 지내면 그것이 죄의 상태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하나님을모르고 감사치 않는 자들은 다 죄인이며 악인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그들의 창조주시며 또한 그들에게모든 좋은 것을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시고, 나아가 주께로 돌아와 영생을 얻기를 원하시는데,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대항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되는 것입니다.
이에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은 시편을 인용하여 외칩니다.
[10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하나도 없도다 13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18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롬 3;10-18)야고보 사도는 다른 무엇보다 주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함이 죄라고 지적합니다.
[4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5 너희는 하나님이 우리 속에 거하게 하신 성령이 시기하기까지사모한다 하신 말씀을 헛된 줄로 생각하느냐](약 4:4-5)또한 야고보 사도는 주 하나님을고려치 않는 인생 계획은 악이라고 알려줍니다.
[13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14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16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것이라(약 4:13-16)사랑하는 여러분!
노아 시대의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힘을 쌓기 위해 불신자들과 함께 연합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과 언약을맺고 연합하였습니다. 그러자 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셨습니다. 물론그들은 세상의 힘과 자랑이 가득한 불신자의 딸들과 결혼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네피림처럼 힘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신앙입니다. 하나님입니다. 이는 주의 영이 그들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 이 세상은 불신자들로만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마치 소돔과 고모라처럼 주를 믿는 의인이 극소수가 되었습니다. 현 시대로 치면 교회는 많지만 거듭난 자가 거의 없는 현상입니다. 종교는많지만 구원 받은 자들의 모임인 참 교회가 희귀한 것입니다.
이에 하늘로부터 내려온 유황이소돔과 고모라를 전부 태워버린 것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자가 극소수인 노아 시대를 큰 홍수로 쓸어버리기로 정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의 마지막 끝에 이 땅에 얼마나신자가 없었습니까? 남은 신자의 수는 겨우 8명이었습니다. 믿어집니까? 2억에서 90억까지가능한 그 당시의 인구 가운데 참 하나님을 믿은 신자가 오직 여덟 명이었습니다.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도다”(벧후 2:5).
이에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한탄하십니다. 그 이유는 온 인류가 하나님을 대항하며 무관심하며 감사치도 않고 예배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9절을 보면, 참 신자인 노아는 하나님과의 동행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하였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라. 그는하나님과 동행하였더라”(창 6:9).
수억명 가운데 홀로 믿음의 길을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믿음입니다. 온세상 사람들이 전부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관심도 두지 않는채 죄악에 물들어가더라도 홀로 하나님과 동행하며 죄없이 살아가는 것!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망각하고 사는 인간들은서로 착취하는 삶으로 나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인간들의 목적은 세상의 힘이기때문에 최고의 네피림이 되는 것으로 종결됩니다. 즉, 누구도이길 수 없는 거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최고의 갑부가 되는 것이며, 그 누구도 덤빌 수 없는 최고 권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가능한 오래살면서 자신의 권력과 영광을 누리려 하였을 것이며, 이를 위해 철저하게 약자들을 착취하였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없는 인생 및 사회는 반드시 부패하며 포악하여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영적인 법칙입니다. 노아의 때는 바울이 말한대로 주께서 재림하실때의 모습과 방불하였습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네가 돌아서라](딤후 3:1-5).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직도 보존하시는이유는 그리스도인들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주의 백성들이 이 땅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역할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면 이 세상은 곧바로 포악과 강포와 착취가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즉, 힘의 논리에 의해 세상은 운영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폭군, 즉 네피림들이 곳곳에 등장할 것입니다. 그리고 온 세상은 철저한무질서와 죄악 가운데 있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노아 시대의 그림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어떻습니까? 무엇에 의해 이 시대가 운영되고 있습니까? 네피림으로 상징되는 돈과권력의 힘이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의 딸들로 상징되는 쾌락이 아니겠습니까? 온 세상이 사람들의 딸들에 의한 음란에 물들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인간들은스스로 살아남아 최고의 네피림이 되기 위해 잠시도 쉬지 못하고 바쁜 것이 아닙니까?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하는 자들과 교회마저 세상과 짝하고 연합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배도가 도를넘어서면 주 하나님은 이 땅과 시대를 버리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이 땅을 버리시면곧바로 주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심판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11절에서 13절을 보면, 온 땅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였다고 하면서, 인류의 멸망은 땅과함께 멸망한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이뜻은 하나님께서 친히 공의로이 땅을 심판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에 발을 델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불의한 자들에게 내리시는 형량입니다.
구약을 읽어보면, 주의 백성이 완고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적으로 의도적으로 범죄하여 마침내 하나님께서 정하신 도를 넘을 경우, 그들은 약속의 땅에 거하지 못하고 먼 땅으로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그들에게 임한 것입니다.
지진이 얼마나 무서운지 아십니까? 지진은 땅 없는 삶이기 때문에 극도로 무섭습니다.
구약은 땅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계시록 역시 새 땅으로 마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라”(마 5:5).
여기서 온유한 자는 이미 구원을받아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자를 말합니다.
이제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는 죄의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자들이 영원히 주님께서 창조하신 땅에 거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영원한멸망입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은 큰 홍수로온 세상을 쓸어 버리시고 온 인류를 땅에서 제거해 버렸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갔습니까? 그들의 시체는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감옥으로 들어갔습니다. 지옥입니다. 음부입니다.
[19그리스도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20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벧전 3:19-20)하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은 홍수이후의 새땅을 기업으로 받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이 땅에서 산 자들마다 불 심판 이후 정결하여진이 땅을 영원히 기업으로 받게 될 것입니다.
[10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바라보도다 14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 3:10-14).요한계시록 21장입니다. 주의 백성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장면입니다.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것 같더라](계 21:1-2).사랑하는 여러분!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은 자연인은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는 죽은 자들과 방불합니다. 나무에서 떨어진 낙엽이 처음에 잠깐 녹색을 띠지만시간이 지나면 색바랜 죽은 낙엽이 되는 것처럼, 낙엽은 나무에서 떨어진 순간부터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 예수와 관련없는 사람들은 죽은 자들과 같습니다. 그 증거가 그들의 생명은 고작 120살 미만입니다. 그들은 죽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잠시 생명력을 띤 것 같이 120년 미만을 지내지만 그 후 죽음을 통과하는 순간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그들의 영혼은 영원한 감옥으로 들어가게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좀비처럼 수치스러운 썩은 시체의 몸으로 부활하여영원한 불못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그것이 노아 시대의 불신자들처럼 이 땅에 살았던 모든 불신자들의 운명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두운 이 시대에 저와 여러분이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일은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탄은여러분을 어떤 수단과 방법을 통해서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려 할 것입니다. 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다는것은 말씀과 기도 생활을 하지 않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을 각오로 주의 말씀과 기도로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뜻에 생명을 바칠 심정을 가지고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노아의 믿음이었습니다.
히브리서는 노아의 삶을 다음과같이 요약합니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준비하여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
만일 이러한 믿음을 지니지 못하면서서히 세상의 네피림과 사람의 딸들에게 굴복하게 되면서 사탄과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통해서는롯처럼 오직 암몬과 모압의 불신 자녀들만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의 재림의 때가 너무나 가까이다가왔습니다. 이는 새하늘과 새땅의 새로운 시대 역시 가까이 다가왔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네. 그렇습니다. 믿음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4).
여러분의 남은 삶은 어떻게든 믿음을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다시 한번 심각한 결단을 내리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1/12/01(수) “창세기 6:1-8” / 작성: 김완영
본문 창세기 6:1-8
찬송가 272장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장 28절에서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말씀 하셨고, 오늘 본문에는 그 말씀대로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2)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본문 1절과 2절에서는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등장합니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 다양한 견해들이 있으나 전통적으로 교회 안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견해는 하나님의 아들들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며,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후손이라는 견해입니다.
이 두 무리 사이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대로 모두 아내를 삼았습니다. 그런데 아내를 삼는 기준이 이상합니다. 이들은 단지 외적인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 삼으며 성적 결합을 하였습니다. 이것은 경건한 셋의 후손들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 세속문화에 동화되어 타락하였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자신의 감정과 욕구대로 행하는 순간 하나님과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아들들은 올바른 분별력 없이 행하고 있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보신 하나님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나의 영’은 사람을 처음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셨을 때 그 ‘생기’와 같은 단어입니다. 즉 사람은 타락 이전에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아갈 수 있었지만 죄악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고 하신 것은 앞으로 사람들의 수명이 백이십 년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후 홍수 심판을 하시기 전까지 유예 기간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당시 타락한 상황을 자세히 설명해 줍니다.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네피림은 이 본문 외에 민수기 13:33에서 한 번 더 언급이 되고 있는데, 거기서는 가나안 정복 시기에 가나안에 거주하던 거주민들 중 하나였고, 덩치가 매우 큰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그들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지는 않지만 그들이 용사이고,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라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민수기의 내용과 연결을 해보면, 홍수 이전에도 덩치가 매우 큰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은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 본 절에서도 네피림이 중점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지속적으로 자녀를 낳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의 타락이 지속적으로 이어지자 하나님의 반응이 나타납니다.
(5-6)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이 번성할수록 죄악도 세상을 가득 채워갔습니다. 사람들은 욕망대로 살아갔고, 점점 하나님과 거리가 멀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 세상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만드실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지만 시간이 지나며 변질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마치 의인 10명이 없어 멸망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을 보시고, 그들의 계획이 모두 악할 것이라는 미래까지도 내다 보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하나님이 한탄하시고, 근심하시는 모습을 보며 자칫 하나님께서 변덕스럽다거나 감정 기복이 있다고 오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사용된 ‘한탄하다’라는 동사는 ‘고통스러워하다’라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심판을 결정하신 것은 사람을 창조하신 것에 대한 근본적인 실망감이 아니라 사람들의 완전한 타락으로 인해 안타까워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의인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는 사람의 목적을 상실한 채 자신의 욕구대로 살아가며 죄악을 일삼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님을 괴롭고 근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도 묵상해 보길 원합니다. 현재 전 세계의 인구도 매우 많이 번창해 있습니다. 2021년 통계청 결과에 따르면 전 세계 인구는 78억명이며 그 중에서 우리나라는 5100만명 정도 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사람은 생육하고 번성하였고, 사회와 기술이 고도로 발전하였는데,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어떠합니까? 나라가 발전했던 것처럼 교회도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주심으로 번성하였는데, 주신 복을 올바로 지키지 못하고 타락한 모습들이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은 창조된 사람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고, 삶 속에서도 하나님을 드러내는 예배의 생활화 생활의 예배화를 이루며,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들이 세속문화에 동화되었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의 성공과 성적 타락과 명예를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불어 살아가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각자의 삶에 생기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이 혹시 하나님의 마음을 한탄하게 하고, 근심하게 만들고 있다면 지금 그 자리에서 벗어나 다시금 하나님께로 몸과 마음을 돌려야 합니다.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근심하신 하나님의 결정은 무엇이었습니까?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직접 창조하신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겠다고 선포하십니다. 분명 죄악은 사람이 지었는데, 지면에서 가축들과 공중의 새까지도 피해를 받습니다. 이것은 대표성을 의미하는데, 사람을 창조하셨을 때 창세기 1장 28절에서 모든 생물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을 주셨습니다. 모든 생물들을 다스려야 하는 사람이 타락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을 넘어 모든 만물에 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이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그저 한 명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대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말과 행동 하나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타락하고, 무너질 때 성도 개인의 모습 뿐 아니라 하나님의 모습을 대표하는 사람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상황 가운데 한 명의 인물이 등장하며 마무리 됩니다.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사람들이 번성할 때 타락하고, 하나님을 근심하게 하였으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타락을 했지만 그 중에서도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아갔던 것입니다. 노아는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5장 22절에서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다는 단어와 동일한 것입니다. 어떠한 상황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과 동행한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하나님께 은혜를 입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상황을 보며 자신의 죄를 정당화 할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다 죄를 짓지 않습니까? 돈과 명예를 따라 사는 것이 흠이 되지 않는 시대가 아닙니까? 라고 하면서 성도지만 그들과 동화되어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는 죄악에 빠져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상황과 환경에 구애 받지 않습니다. 어느 시대든지 하나님 믿기 쉬웠던 때는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처럼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통해 죄악에서 벗어나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실 때 세상에 있는 죄악에 동화되지 말고, 주님께 은혜를 받아 오늘도 성도로서의 삶을 온전히 감당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기 도
하나님, 사람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 죄악도 세상에 가득찼음을 바라봅니다. 우리도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평온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혹시 내 삶에 수 많은 죄악들이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회개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동화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도로서 주님을 온전히 섬기고,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하시고, 주님 보시기에 기쁨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도 주님께 맡겨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사람들이 번성하기 시작할 때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은 무엇입니까?(2절)
2. 사람들의 죄악이 가득할 때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했습니까?(6절)
3. 사람들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결정은 무엇이었습니까?(7절)
4. 모두가 심판 받게 될 때 은혜를 입은 사람은 누구입니까?(8절)
5. 오늘 하루 내가 주님께 은혜를 입기 위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묵상해보고 실천합시다.
(작성: 김완영)
창세기 6장 5-8절 : 그들의 제각기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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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은 굉장히 드라마틱하다. 구약의 모든 책에서 인간의 죄악을 고발하며, 그로 인한 우울감을 여과없이 표현한다. 요새 묵상하고있는 구약성경의 첫 번째 책에서도 이것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구약이 드라마틱한 이유는, 그 우울감으로 끝을 맺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의 죄악이 드러나며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는 항상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구원의 서광이 비쳐온다. 그러니 우리는 이 놀라운 본문들을 읽으며 경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우리의 삶에서도 서광을 비추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을 것임을 기대할 수 있다.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1. 죄악을 보시는 하나님
아직도 본문을 읽으면 개역한글판으로 읽던 어린시절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전의 번역에서는 “사람의 죄악이 세상이 관영하였다”고 말한다. 가득 차고 더 차서 넘실거리는 모양이다.
1-4절에 대한 요약으로써 본문은 노아 당대의 인간 군상의 죄악에 대하여 고발한다. 거룩을 위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스스로의 거룩을 버리고 아름다워 보이는 인간의 딸에게로 들어간 것이 관영한 죄악의 이유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성읍에 의인 열명이라도 있으면 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러나 그 성읍에는 의인이 단 열명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재라도 별 다를게 있을까? 거룩을 위하여 회심으로 성별된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비그리스도인의 삶보다 나을것이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나의 삶과 마음을 보시고 “의인이 여기 있다”고 말씀하실까?
영원히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넘실거리는 죄악을 보고 계신다. 당신의 언약을 기억하며 인내하고 계시는 우리 주 하나님을 기억하자.
2. 한탄하시며 심판을 준비하시는 하나님
우리는 여기에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모습을 토대로, 하나님의 전지성에 대해 의심을 품을 수는 없다. 이 표현들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사유하는 방법을 들어 당신의 마음을 십분 표현하신 것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가득찬 인류의 죄악을 보시며 한탄하시며 근심하신다.
7절의 심판 계획에서 특기할 부분은 사람만이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죄악을 지은 대상은 인간인데 왜 인간만 심판을 받지 않고 세상의 모두가 심판을 받게 되는가?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대표성의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부르시고 다스림의 책임을 맡기셨다. 이 대표성의 원리가 적용되기에 그리스도의 속죄 또한 효력이 있다.
3. 은혜를 입은 노아
(5절) 여호와께서 죄악을 보시고
(6절) 한탄하시다
(7절상)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이다
(7절하) 한탄하시다
(8절)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자비를 보았다
물론 한글 성경으로 보아도 매우 드라마틱한 전개이지만, 히브리 문맥에서 또한 깔끔한 수미상관의 전개가 보인다. 본 구조에서 강조점은 7절의 심판에 대한 계획을 말씀하심에 있지만, 인간에게서 죄악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자비를 보여주셨다.
8절에 대한 해석도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하나님께서 판단하시기에, 노아는 은혜를 입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고, 직역을 하자면 “노아는 하나님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하였다”는 것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래서 KJV는 본문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였다. “But Noah found grace in the eyes of the LORD.”
죄악을 보신 하나님꼐서는 죄악을 심판할 계획만을 세우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풀 계획까지도 함께 세우셨다. 하나님의 성품에 기초한 구속의 역사를 여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이것을 택정한 자에게 보이시는 구속의 방법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구속은 모든 이들에 대한 것이 아니다. (1) 하나님께서 선택하셨고, (2) 그러므로 혼탁한 세상에서 거룩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그 사람이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비유를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진리의 숨김과 나타냄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속의 진리를 받아 누린 이들이며, 이것의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로 이 땅에 존재해야 한다.
4. 적용과 결론
나는 이 땅을 아름답게 하고 있는 사람인가?
솔직히, 예수님께서 당장에 재림하신다면 나의 삶의 경중을 어떻게 달아보실지 너무나도 두렵다. 죄악이 관영한 세대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다고 변명할 것인가? 히브리서가 말하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그 능력을 발휘하며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져야 하겠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 사람인가?
어제와 오늘의 본문은 세 종류의 존재가 각기 다른것을 보았다고 진술한다.
(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5절)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보시고
(8절) 노아는 여호와의 눈에서 자비를 보았다
나는 무엇을 보는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의 눈이 향하여야 할 곳은 무엇인가? 세상의 아름다움/즐거움인가? 아니면 비난하기 위하여 세상의 죄악을 보아야 하는가? 그 가운데 숨겨진 하나님의 자비를 발견해야 하는가?
(궁금증: 창세기의 이름들은 항상 문맥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언어유희적인 요소들이 많이 보인다. 가인에서도, 셋에서도 이러한 요소들이 많이 보인다. 노아의 경우에서도 노아라는 이름과 한탄하셨다는 말의 “나함”은 자음 구조가 같다. 나중에 더 공부할 부분으로 기록.)
#말씀묵상 #큐티나눔
창세기 6:13-22 [은혜를 입은 자]
은혜를 입은 자 – 창세기 6:13-22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은, 죄악이 세상에 관영하고,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다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좋지 않은 생각과 악한 마음이 오기도 하지만, 바로 돌이켜 사는 것이 옳은 것인데, 이들은 죄악으로 가득하고,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함을 보시고 에서 보여주듯, 계획적이고 항상 악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이상 그대로 둘수가 없어, 하나님이 땅을 멸하시기로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눅17: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 이 말은 하나님의 심판은 생각에도 없고, 땅의 일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만 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결혼하고 먹고사는 것이 죄라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세상일에 빠져 주일날 교회도 오지 않고, 육신만 위해 먹고 마시고 세상일만 하고, 영을 위한 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두 집 살림을 해야 하는데, 먼저는 천국 살림을 해야하고 (마6: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리고 육신을 위한 가정 살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육신만 위해 살면 심판을 받게됩니다.
“그때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8절)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베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은혜의 반대는 심판입니다.심판이란 마땅히 받아야 할 죄의 결과입니다.은혜란 심판 받아야 할 사람에게 심판이 아닌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불의의 하나님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롬9:14-16)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이 뜻은 다른 말로하면 은혜를 베풀고, 아니 베푸는 것은, 그분 마음 대로라는 것입니다. (롬9:20-21) “이 사람아 !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 ” 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랄 뿐입니다.
(엡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1. 은혜를 입은 노아
1).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자라. (9절)
①. 의인이란 율법을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입은 자를 보면, 다 순종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자라고 하심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이 악을 행하고,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항상 악했지만 그 무리와 같이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악에서 떠나 살았습니다.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욥1:1)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②. 믿음으로 의인이 됩니다. (히11:7)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받아들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리 부당하게 보일지라도, 먼저는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을 받아 행하였습니다.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수록,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고 비웃으며 놀렸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가 하나님에 대해 지나치게 믿으며, 자기들과 같이 악을 행하지 않음을 비난했을 것입니다. 아마 가족 중에도 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장차 임할 하나님의 홍수의 심판을 말하고, 큰 배를 만드는데, 그 배의 모양이나, 그 크기가 큰 운동장 만하게 만들고 있으니 미친 사람이 아니고야 어찌 그리할 수 있겠습니까? 의심스럽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오직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여 행동했습니다.
우리는 소돔성이 멸망을 당하기 전에 롯에게 속한 자를 구원하도록 천사의 배려가 있었으나, 장인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따르지 않은 사위들은, 구원될 뻔한 자리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창19:14)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③. 회개하는 자가 의인이 됩니다.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에서, (눅 18:13-14 )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지옥은 의인이 가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가는 곳이요, 죄인은 회개치 아니한 자입니다.
(눅13:1-5)”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2).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한자.(9절)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였다’라고 하였습니다.
① 동행하려면, 목적이 같아야 합니다. 그 나라와 그 의를 이루기 위해 한 목적이어야 하는데, 제자들은 이 땅에 하나님나라 세우고 예수님 왕 삼으려고 하므로, 결국은 배신하고, 유다는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암 3:3]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② 동행은 뜻이 같아야 동행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내 뜻, 내 주장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생활을 해야합니다. 자기 주장만 세우면 다투고 헤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12:50]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3).노아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었습니다.(14절)
하나님은 은혜를 입은 노아에게 ‘너를 위하여 잣나무로 방주를 지으라'(14절)고 했습니다.
우리는 “너를 위하여” 라는 말을 잘 알아야 합니다. 방주는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짓는 것이 아니라, 더구나 하나님을 위하여 방주를 만들라 함도 아니요, 노아 자기를 위하여 짓는 것입니다. 교회를 나오고 예수 믿는 것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하여 하는 것이요, 십일조 헌금도, 하나님이나 누구 위하여 한다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마지못해 합니까 ? “너를 위하여” 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위해서는 많은 것을 투자하고, 열심인 것을 봅니다. 자기 몸을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것을 투자합니까? 만일에 노아가 자기를 위한 방주를 만들지 아니 했다면 물로 심판할 때, 같이 멸망당했을 것은 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대로 신앙생활하지 않고 구원받고, 복을 받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입니까?
예수님은 십자가 지고 가실 때, 울면서 따르던 여인들에게까지(눅 23:28)“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하셨습니다.
(약 2;14)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4). 노아는 경외함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 동안 얼마나 많은 회의와 갈등이 있었겠습니까? 가족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를 짓는데 옳은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물로 멸망한 일이 없었으며, 홍수가날 아무런 징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히 11:7)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후사가 되었느니라.
노아는 방주를 만들 때 하나님을 경외한 마음과, 아무징조도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이 엉망이 되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두려운 줄 알고 바르게 행하여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만 아니라, 심판의 하나님도 되심을 믿어야 합니다.
(렘2:19) “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할 것이라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2. 방주 안에만 은혜와 구원 : (교회. 예수그리스도) 창 6:22
1).방주는 하나님의 설계대로 만들어 졌습니다. 예수 믿는 것은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하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방주의 구원의 설계는, 노아(사람) 마음대로, 생각대로, 설계하는 것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와, 방법대로 만들어야 했습니다. 만일에 노아의 생각과, 방법대로 만들었다면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당시에 사람들이 만든 배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배로는 하나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성막도 하나님이 보이신 식양대로 만들었습니다.
마태복음 7장24절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같으리니….26절에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 ”
(마 7:22-24)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2).방주는 미련하게 만들었습니다.
(창6:15-16)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
이것은 배도 아니요, 집도 아니요, 큰 네모난 상자입니다. 보는 자 마다 비웃는 방주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것입니까? 무슨 공이라도 세워야 하고, 고행이라도 해야지 구원받을 것 같고, 무슨 형상이라도 만들어 빌어야 될 것 같이 생각되어 잘 믿지 않습니다.
(사53:1-3)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버린 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
3). 방주는 노를 젖는 것이 없습니다.
운명을 하나님의 손에, 운전대를 하나님께, 방주는, 노아 마음대로 한발 자욱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노나, 엔진을 가지지 않았고, 떠내려가도 제동할 수 있는 장치도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그저 물 위에 떠 있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나침반과 키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며, 또한 내 원하는 방향대로 갈 수가 없습니다.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출14: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
(요3:14-15)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장대 위의 놋 뱀 바라보기만 하면 죽음에서 살아난 것처럼, 십자가 바라보기만(믿음) 하면 구원을 얻음
4).방주는 역청으로 안 밖을 칠 하였습니다.(14절)
역청을 칠한 이유는 물이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입니다. 세상 풍습 ,신신 학, 이단 설, 세상 초등학문이 교회에 들어오면 침몰되어 망합니다.
성도는, 짠 바닷물이 산 고기를 짜게 할 수 없고, 고기가 여전히 신선함을 간직하고 사는 것처럼 세상이 아무리 부패하고 더러움이 범람할지라도, 같이 부패하고,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도 성도의 생명이 살아 넘쳐야 합니다. 시궁창에서 연꽃의 화사함과 생명이 넘치는 것처럼 말입니다.
“안 밖을 칠하라” 했으니, 들어오는 것도 잘 막아야하고, 안에 것이 밖으로 나가서도 아니 됩니다. 교회 일이 세상으로 흘러 나가도 침몰되는 것입니다. 왜 예수쟁이, 말쟁이가 되는지… 입 조심합시다. 오히려 우리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고, 그리스도의 편지가 됩시다.
[고전 6:1] 너희 중에 누가 다른이로 더불어 일이 있는데 구태여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송사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 [고후 2:15]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고후 3:2]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바라5).방주는 열려 있을 동안에만 누구든지 들어와도 됩니다.
노아의 8식구뿐만 아니라, 나아온 짐승들까지도, 정한짐승이든, 부정한 짐승이든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방주는, 교회, 또는 예수님을 뜻하는 것으로 교회, 예수 밖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창 6:20)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 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몸집이 큰 코끼리도, 사나운 호랑이도, 욕심 많은 돼지도, 징그러운 뱀도, 십자가의 우편강도도 …방주안에 들어간 것은 다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절하고 방주밖에 있는 것은, 하늘을 나르는 독수리도, 소, 양. 제사장, 바리세인…모두가 멸망을 받았습니다. 방주 밖에는 피난처나 안식처가 없습니다. 방주 밖의 도덕군자나, 덕망이 있는 선한 사람들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방주가 아닌, 아무리 잘 지은 건물이며, 그것이 비록 금으로 만든 건물일 지라도, 교회와 예수 떠나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또한 방주의 문은 항상 열려 있는 것이 아니라, 닫힐 때가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열려있을 때 들어가야지 한번 닫히면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음을 알아야합니다.
[눅 13: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3. 은혜 받고 들어간 방주는 (교회. 신앙생활)
1). 자행 자지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멋대로 살던 짐승들을, 방주(교회)안에 들여놓았으니, 사자라고 뛰어 다닐 수가 있습니까, 독수리라고 날수가 있습니까, 모두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고, 마음대로 살려면 방주에서 나와야 합니다. 예수 믿고 보니, 하지 말라는 것도 많고, 하라는 것도 성경에 많습니다. 그래도 참아야 하는 것은 영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누가 예수 잘 믿는 성도입니까? 성경에 하라는 것 행하고, 하지 말라는 것 아니하는 것입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요21: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내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
2). 화목을 이루어야 같이 있을 수 있습니다.
좁은 방주 안에서 화목이 없이는 살수가 없습니다. 사자가 힘세다고, 약한 동물 잡아먹으며, 화난다고 독사란 놈이 물면 어떻게 같이 살수 있습니까? 방주 안에는 각종 짐승이 같이 있었으나 싸우거나,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안에서 우리는 한 피 받아, 한 형제라 하면서 서로 대립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먼저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하십니다. 예수 믿는 사람끼리 다투면, 몇 달, 몇 년 가도 풀지 않고 대립되며 살아가는 사람 있습니다.
(마5:23-24)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
교회 안에서 분쟁과 다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고, 마귀 적이요, 정욕 적입니다.
(약4:1-2)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
(잠 17:1)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 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3). 자기 십자가 지고 살아야 합니다. 십자가 없는 구원 있을 수 없다. 내가 예수 믿기 때문에 억울해도 참아야하고, 예수 믿기 때문에 손해를 보면서도 그 길을 가며, 내가 예수 믿기 때문에 힘이 들어도 좁은 길 십자가의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방주밖에 사는 사람들이야 자기들 마음대로 살지만, 그래서 그 길은 넓은 길 넓은 문이요, 그러나 마침은 멸망이지만, 우리가 가야하는 길은, 방주 안의 삶, 좁은 문 좁은 길입니다. 끝은 영생입니다.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빌 3:18)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창세기6장] 타락한 사람들이 짓는 세 가지 큰 죄
세가지 큰 죄들
성 경: 창6:1-12
<서론>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였던 니이체의 저서중에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 이란 책이 잇다.” 니이체는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 냉혹하고 냉철한 인간,기존의 도덕률과 진리라고 일컫는 모든 것들을 거부하는 차가운 인간을 인간적이라고 햇다. 요즈음 사람들이 인간적이라고 하면 대개 따뜻한 정이 잇고 의리가 있다는 뜻으로 그런 말한다. 혹은 너무 딱딱하고 실수가 없고 철저한 사람을 두고 인간적이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인간 본래의 모습에 대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라고 말한다. 사람은 하나님의 모습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런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거역할 때 그것을 죄악이라,비인간적이라 하고 심리학적으로 인간소외라는 현상이 발생한다.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인간적인 사람,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자기를 용납하고 타인을 사랑할 줄 아는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하고 이런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본문 말씀은 최초의 인간들의 비인간화, 홍수심판을 부른 원인이 되었던 세가지 무서운 죄악상들을 고발하고 잇다. 말세의 도적적 현상들 20가지 죄악들을 고발하고 있는 딤후 3장말씀과 쌍곡선이 되는 말씀으로 구약의 심판전 말세현상을 말하고 잇다. 인간의 “비인간화 현상”,나 아닌 나에게 굴종하여 진정한 나는 소멸되고 파괴된 인간소외가 말세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런 사회속에서 노아와 같은 사람,등불을 밝혀놓고 신랑을 기다리는 여인과 같은 살아있는 크리스찬들이 잇다. 오늘 노아시대의 비인간화 현상을 살펴 보면서 이 시대의 죄악들을 통찰하고 우리의 갈길을 말씀을 통하여 교훈받고자 한다.
<본론>
1. 결혼의 타락이다.
결혼은 인류가 창조된 후 가장 처음 주어진 제도로서 인간의 행복을 위해 주신 하나님의 선물이요,인간의 성숙을 위해 주신 요람이다. 사회와 세계질서의 가장 작은 집단단위이다. 가정이 건전할 때 그 사회는 건전하게 되고 가정이 무너질 때 그 사회도 붕괴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평화롭다
는 뜻을 갖고 잇는 안(안)자를 집에 여자가 있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집에 여자가 그 가정을 지키고 있을 때 그 가정은 평화롭고 아름답다. 그 여자가 집을 돌아보지 않을 때 그 집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데는 남편의 역할도 무시될 수 없다. 남편이 자기 역할을 바로 감당할 때 아내는 집안에서
기쁨으로 집안일을 돌볼 수 잇다.
본문을 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자로 아내를 삼은지라.” 하나님의 아들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켰던 경건한 셋의 후손들을 의미하고 사람의 딸들이란 살인자 가인의 후손들을 의마한다. 창4:16절 보면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논땅에 거하였다고 했다. 그러나 26절에 셋의 후손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볼렀다고 햇다. 가인의 후선들은 논땅에서 하나님없는 문화를 발전시켰다. 창5장에서 셋의 계보가 나오는데 아담으로부터 노아에 이르는 선민의 계보 십대 족장들을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 이 6장에 와서 보니까 그 족장들의 가정마져 타락했다고 말한다. 경건한 가정의 자녀들이 자기들의 안목에 좋은 대로 가인의 집안의 딸들과 결혼했다.
(1)그들은 외적 아름다움만을 추구했습니다.
외적 아름다움만 따라가는 것은 항상 화를 불러 옵니다. 베드로는 아내된 자들에게 권면할 때 벧전3:3,4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나는 인간의 외모를 이미 버렸노라라고 하시면서 사람은 외모르 보나 나 여호와는 시람의 중심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보이는 것은 잠간이나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 했습니다(고후4:18). 그래도 여전히 인간은 내면보다 외면을 보기 더 좋와합니다. 물론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좋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본능이다. 그러나 그 본뭉은 하나님의 뜻안에서 절제되고 다스려져야 한다. 본능을 절제하지 못하는 삶을 가리켜 어리석은 사람이라 하고 본능을 하나님의 뜻아래 굴복시키는 사람을 지혜로운 사람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나안거민들과 서로 결혼하지 말라고 하셨다. 솔로몬왕은 그토록 지혜로운 왕이엇으나 외국 왕들의 딸들을 아내로 많이 들여 왔더니 그녀들을 연내하는 동안 그만 하나님응마 떠나고 우상들을 여호와의 전안으로 끌어 들이고 말앗다.
이스라엘의 가장 악한 왕이었던 아합을 그런 악인으로 만든 자는 시돈왕 엣바알의 딸로서 그의 왕비가 된 이세벧이란 여자엿다. 우리 자녀들의 결혼이 하나님의 축복아래서 이뤄지도록 많이 기도해야 하며 이성을 보고 택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법도를 따라야 한다.
(2)일부다처의 방탕한 생활을 즐겼다.
“자기들의 좋와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은 지자” 4:19을 보면 이미 가인의 아들 라멕은 두 아내를 취했던 것을 볼 때 셋의 후손들도 이런 패역한 길을 따라 그 본능대로 아내들을 취했던 것이다. 훗날 믿음의 조상으로 일컫는 아브라함도 하갈을 첩으로 취했고 야곱이 두 아내와 두 첩을 가졌던 것을 본다면 이런 이방의 풍속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나쁜 영향을 주었는지를 알 수 있다. 오늘날 결혼하는 남녀들중 10쌍중의 한 쌍은 이혼으로 끝이 난다고 한다. 적지 않은 크리스찬 자정들도 이런 문제들로 시달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는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몰몬교의 교주 조셉스미스는 그 후계자 에드워드 영에 의하면 50명쯤 되는 아내를 두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영은 17명의 아내를 두었다. 지금도 유타주를 근거지로 삼고 잇는 그들은 일부 다처제를 고수한다. 그들 뿐만 아니라 내밀한 교리로 피가름을 하는 통일교,대학생들을 많이 유혹하는 정명석 애천교등 모두 극한 도덕적 방탕을 걷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 분노하신다. 그래서 3절에 나의 성령이 영원히 사람과 함게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육체가 됨이니라고 했다. 그 전까지는 하나님게서 셋의 후손들과는 성령으로 교통하시며 함게 하셨다. 그러나 이제 성령을 거두워 가셨다. 영적 은총을 거두심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래 가장 큰 형벌이다. 다윗은 범죄후 “하나님이여 내게서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소서!”(시 51:11)라고 기도했다. 하나닌바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을 받고 그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롬 8장에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다. 성령을 멸시하고 성령을 무시하고 내 맘대로 고집하고 내 멋대로 죄짓고 사니 그 만 성령을 거두어 가셨던 것이다.
(3)결과적으로 그들은 무가치한 고기덩어리로 전락되었습니다.
그들이 육체가 됨이니라.— 인간의 아름다움은 내면에 있는 것이다. 이성적 자유, 영적 순결과 거룩 이런 것이 없으면 인간이란 하나님 보실 때 한낮 비계덩어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카프카}가 쓴 {변신}이라는 소설에 주인공이 어느날 아침에 잠에서 깨어보니 자신이 아무도 알아 볼 수 없는 괴물이 되어 있더라고 했습니다. 고귀한 인간이 하나님의 법도를 떠나 버리고 안목의 정욕과 육체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가면 비인간적인 괴물같은 존재가 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한낱 비계덩어리로 전락되고 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눈에 보이는 정욕대로 행하는 이 시대의 풍류를 거스려 하나님의 법도를 귀;중히 여기며 성령을 모시고 사는 사람,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신령한 것을 돌아보는 사람,하나님의 법도에 순종함을 우선하는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됩시다.
2. 생각의 타락입니다.
5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을 보실 때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어려서 부터 항상 악할 뿐이었다 하였습니다. 여기 계획이란 말은 성향,경향이란 뜻입니다. 인간은 갈대이다. 그런데 생각하는 갈대다고 했던 파스칼의 말대로 사람은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음식을 먹으면서도 생가하고 길을 가면서도 생각하고 일을 하면서도 생각합니다. 생각하는 것은 인간만이 감능한 것으로 하나님의 형샹의 반영입니다. 그러나 그 생각이 하나님의 지배아래 잇지 않을 때 그것든 악한 경향을 띠게 됩니다.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본능이 하나님의 법도아래 절제되어야 하듯이 인간의 생각이란 스크린도 역시 하나님의 다스림아래 잇어야 합니다. 생각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공부하는 학생은 공부하는 이외에 다른 생가을 하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주부가 음식을 만드는 일보다 다른 생각에 정신을 팔면 음식을 다 태우거나 간을 맞추지 못하게 됩니다. 연인간에 데이트를 하면서도 다른 이성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잇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잘 다스리지 못할 때 사람은 행복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버렸기 때문에 생각이란 샘물속에서 엉뚱하고 악한 계획들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히틀러는 유럽을 자기 손안에 놓겠다는 야심을 가졌고 후세인은 20세기의 아하수에로가 되어 세계를 제패해 보겠노라는 그릇된 생각을 품었습니다.
성경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을 행해 집중시켜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라고 명하고 잇습니다. 신6:5″ 네 마음을 다하여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고 했고 대상28:9에 다윗왕은 솔로몬에게 “내 아들 솔로몬아,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했습니다. 잠4:23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햇고, 사26:3에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저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 하루 내 마음의 생각을 주님게 복종시켜야 하겠습니다. 하루의 계획을 세울 때도 주님안에서,한 주간의 계획도 성령안에서, 일년의 계획도 주님의 인도로, 일생의 계획도 기도하면서 세워야 하겠습니다.
3.에너지의 타락입니다.
11절,13절에 당시에 땅위에 강포가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강포란 말은 폭력, 맹렬하고 사나운 기세로 남을 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에너지를 잘못되게 관리해서 방종하는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 속에 에너지가 있습니다. 사랑하게 되면 밤새도록 연인을 생각하며 편지를 쓰고 잠을 자지 않아도 지칠 줄 무릅니다. 사랑의 에노지가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사업가는 동분서주하며 주야로 활동합니다. 김우중씨는 다섯시간 이상 자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것 대단한 정렬입니다. 그런데 이런 에너지가 바람직한 곳으로 발산되지 않을 때 젊은 사람은 폭력배가 될 수 있습니다.
힘,에너지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남보다 무엇인가 가진것이 있다는게 얼마나 좋은 것입니까! 육체적인 힘을 많이 가진 자들이 잇습니다. 뛰어난 지력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소위 정부나 기업의 “브레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그 지적 에너지를 잘 못쓰면 무서운 살상 무기를 만들거나, 남의 기업을 무너뜨리는 교묘한 일을 꾸미게 됩니다. 남보다 돈을 많이 가진 자들,권력을 많이 가진 자들이 잇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그 동과 권력으로 남들을 도와주고 잘살게 해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약한 서민을 압제하고 남의 재산을 빼앗고 자신의 재산만 증식하는데 혈안이 될 때 이것이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바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인신매매니 폭력살인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욕을 합니다. 그러나 모든 종류의 인간이 가지고 있는 물질적,정신적인 힌들은 다 하나님 앞에서 판단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웃을 위하여 봉사하고 이바지 해야 합니다. 자기 배만 부르라고 돈을 벌이면 그것도 강포입니다. 권력으로 남을 학대해도 강포입니다. 공부 많이 한 사람이 사회를 위해 봉사하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일할 때 그것도 강포입니다.
8절 말씀에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더라” 너무 귀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에서는 “오직”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다 그 욕망을 자제하지 못하고 가정의 타락,성적 타락을 가져오고,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여지고 가진 힘으로 강포를 임삼았어도 오직 노아는 하나님의 은헤를 입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앞에서 바르게 살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더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즐기기 위해서 일요일이 잇습니다만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주일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가 좋와하는대로,내 생각대로,내 힘대로 산다는 신조를 가집니다만,성도는 하나님의 듯대로,하나님의 능력안에서 ,하나님 영공을 위해가 모토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끝으로 노아가 하나님게 은헤를 입었더라는 말슴은 비인간화의 극을 달리던 어두운 시대에 그렇게도 참 인간적으로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었던것은 노아의 힘과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뜻과 인도와 도움으로 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 바로 살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은 삼손처럼 넘어지고, 베드로처럼 물속에 다 빠지고 맙니다. 주님의 힘으로 살자! 이것이 말세를 사는 경건한 성도들의 삶의 모토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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