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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 속
예수를 배신한 유다는 과연 어디에 숨어있을까요?
꼭꼭 숨은 유다를 찾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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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최후의 만찬’ 가롯유다는 어디에 있을까 오세열 교수

서양에서 13이란 숫자는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며 13공포증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판 가롯유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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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penews.co.kr

Date Published: 12/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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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 – 나무위키:대문

2. 다 빈치의 작품[편집] … 왼쪽부터 바르톨로메오, 대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범인 이스카리옷 유다, 사도 요한, 예수 그리스도, 소 야고보, 토마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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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10/1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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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예수뎐]다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소금통 쏟았나

그게 소금 통이다. 유다는 팔로 소금 통을 쳐서 넘어뜨렸다. 그리하여 식탁 위에는 소금이 쏟아져 있다. 식탁 위에 흩어져 반짝이는 소금. 이는 유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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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oongang.co.kr

Date Published: 12/1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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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인물 설명) – 네이버 블로그

최후의 만찬장 인물의 앉은 순서 – 그림의 왼쪽부터 차례대로 정렬. <바르톨로메오> <큰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유다> <요한> <예수> <작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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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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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비밀 – 타라 월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 ‘최후의 만찬’은 1491년~1498년까지 무려 7년에 걸쳐 완성된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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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prorok.tistory.com

Date Published: 2/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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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유다의 모델은? – 좋은세상만들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의 최후의 만찬에는 일화가 있습니다.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예수와 이미지가 맞는 청년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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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gajagu.tistory.com

Date Published: 5/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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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 – 예수와 유다 이야기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 최후의 만찬 너무나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건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천재 이자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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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7/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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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빈치 그림만 믿지 말라… ‘석기 그릇’에 담긴 최후의 만찬

… 최후의 만찬이 무엇인지는 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가리옷 사람 유다가 자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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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11/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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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숨겨진 비밀
레오나르도 다 빈치 [최후의 만찬] 숨겨진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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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uthor: 그냥 가긴 그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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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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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최후의 만찬’ 가롯유다는 어디에 있을까 오세열 교수

성경을 읽으면서 긍금증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롯유다의 생애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은 어떻게 로마에 의해 최후를 맞았는가 등이 그것이다.

사진 왼쪽부터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

서양에서 13이란 숫자는 불길한 숫자로 여겨지며 13공포증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는 레오나르도다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를 판 가롯유다가 예수와 11제자 다음으로 열 세번째 참석한 사실에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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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층건물에는 13층이 없는 곳이 80%이고 공항에는 13번 게이트가 없다. 병원과 호텔에는 13호실이 없다. 이탈리아 피렌체 건물주소에는 12와 14사이에 13을 생략하고 12.5를 넣는다. 기독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13을 불길한 숫자로 여긴다.

1년 12개월, 12궁도, 올림포스의 12신 등 예부터 12라는 숫자가 완전수로 여겨져 왔다. 사람들은 12보다 큰 13을 완전함을 초월하는 숫자로 여겨 불안하게 생각했다.

축구나 야구, 농구선수의 13번 등번호가 없는 것도 이에 기인한다. 13일이 금요일과 겹치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소위 <13일의 금요일>이라는 영화와 미신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13이 불길하다는 과학적 증거는 없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에서 가롯유다는 어디에 앉아 있을까?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릴 때 열두 제자들을 세 사람씩 네 그룹으로 나누어 구도를 정했다. 각자는 독특한 몸짓과 표정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다. 다빈치는 유다를 그릴 때 특별히 다른 제자와 구별되는 두 가지 특징을 강조했다. 유다의 머리 위치가 12제자 중 가장 낮으며 얼굴의 표정은 어둡고 검게 표현되어 있다.

이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그림을 관찰하면 가롯유다가 누구인지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믿는 좋으신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용서해 주신다. 그러나 성경은 죄의 사함을 받지 못하고 죽은 가롯유다에 대한 상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림의 왼쪽부터 12제자의 순서는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의 순이다. 다빈치는 예수가 식사 전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하여 팔리라고 선언하자 12제자들은 음식을 먹는 것을 잊은 채 충격에 빠져 있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로톨로메오는 왼쪽 끝에서 식탁에 두손을 짚고 서있다. 요한의 형,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는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가롯 유다 뒤에서 열 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다. 두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마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멀리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고 있는 데 베드로의 오른손에 식사때 쓰는 칼을 쥔 채 앞에 있는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리자 유다는 놀라 팔꿈치를 식탁에 대고 있다. 유다 만이 앞으로 되어질 일에 대한 사정을 다 알고 있다.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식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했다 예수는 흥분한 주위에 휩싸이지 않고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는 예수의 왼편에 앉아서 양쪽 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상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의심많은 도마는 야고보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설마 나는 아니라는 표정을 보이고있다. 빌립보는 매우 슬퍼하는 얼굴모습으로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순결을 나타내고 있다.

마태의 경우 얼굴은 두 동료에게 돌리고 두 손은 예수쪽으로 뻗은 채 믿을 수 없다는 모습이다. 다대오의 유다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손을 식탁에 대고 있다. 제일 오른쪽의 시몬은 준엄한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부터 바로톨로메오, 세베대의 큰 아들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가롯유다, 요한, 예수,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도마, 빌립보, 마태, 다대오의 유다, 시몬의 순서다.

성경을 읽으면서 긍금증을 더하는 것은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부분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면 아담과 이브는 낙원에서 추방된 후 어떤 삶을 살았을까 가롯유다의 생애는 어떤 것인가 예루살렘은 어떻게 로마에 의해 최후를 맞았는가 등이 그것이다.

필자 오세열 교수는 Midwest 대학원 리더십교수며 성신여대 명예교수, 목회학 박사(D.Min),목사, 경영학박사(고대)이다.

그래서 요한복음 21장 25절을 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고 말씀하고 있다. 다행한 것은 역사에 정사와 야사가 있듯이 요세프스와 같은 역사가가 저술한 <유대전쟁사>를 보면 로마 디도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어떻게 철저히 망하게 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중세유럽에서 가장 많이 읽혀졌던 <황금전설> 또는 <황금성인전>이란 책에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은 가롯유다의 생애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제노바의 대주교 보라지네(1228-1298)로 전해진다. 유다의 부모는 유다가 자신의 민족에게 불행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언 때문에 유다가 어렸을 때 그를 버렸다.

버림받은 유다는 카리오트 해변에서 어느 왕비에게 발견되었다. 후손이 없던 이 왕비는 유다를 친자식처럼 여겼다. 그러나 왕비는 나중에 친아들을 낳게 되었다. 어느 날 유다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배다른 형제인 그 아들을 살해하고 예루살렘으로 도주했다.

유다는 12제자중 유일하게 갈릴리 사람이 아니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는 빌라도의 신임을 얻게 된다. 빌라도는 유다에게 어느 집에 들어가 주인을 살해하도록 사주했다. 유다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자 그 포상으로 빌라도는 유다에게 어느 나이 많은 과부를 아내로 맺어준다.

과부와 살면서 유다는 자신이 죽인 사람이 친아버지였다는 사실과 자신이 친어머니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신이 저지른 범죄의 진상을 알게 된 유다는 참회하면서 새로운 예언자 예수에게로 도망쳐 제자가 되었다.

베다니의 나병환자 집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발에 비싼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았다. 그때 유다는 마리아에게 왜 이 향유를 3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는가라고 나무랐다. 그러나 실은 유다는 회계를 맡으며 돈을 빼돌리는 도적이었다.

유다는 도적의 본성을 드러내 결국 은화 서른 닢에 예수를 팔아넘기고, 허공에 매달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가롯유다의 생애를 보면 예수를 팔아넘긴 그의 행위가 우연이나 일시적인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반복해서 저지른 악한 행위에서 나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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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호의 예수뎐]다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소금통 쏟았나

[백성호의 예수뎐]

경북 안동은 간고등어로 유명하다. 고등어가 잡히는 영덕 바닷가에서 안동까지는 무려 80킬로미터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 생고등어는 내륙까지 가져가다가 썩기 일쑤였다. 보부상들이 나귀나 달구지에 봇짐을 싣고 하루 종일 걸으면 해질녘에 임동 장터에 닿는다. 안동에서 동쪽으로 2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이다. 상인들은 임동 장터에서 고등어에 소금을 뿌렸다. 임동 장터에는 간고등어를 사려는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소금에 절여져 숙성된 고등어는 더 깊은 맛을 냈다.

⑭다빈치 ‘최후의 만찬’에서 누가 소금통 쏟았나

유대인들은 40~50도를 넘나드는 사막 기후에서 살아야 했다. 그들에게 소금은 목숨 같은 것이었다. 맛을 내는 건 기본이요, 음식을 저장하고 보존하는 데 필수였다. 소금에 절여야 음식이 썩지 않았고 오래 저장해둘 수 있었다. 구약에는 이런 대목도 나온다.

“너희가 곡식 제물로 바치는 모든 예물에는 소금을 쳐야 한다. 너희가 바치는 곡식 제물에 너희 하느님과 맺은 계약의 소금을 빼놓아서는 안 된다. 너희의 모든 예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한다.”(레위기 2장 13절)

그만큼 소금은 각별한 것이었다. 신에게 바치는 곡식에도 소금을 뿌려야 했고, 제물과 함께 소금도 바쳐야 했다.

숙소에서 일찍 나와 갈릴리 호수로 해돋이를 보러 갔다. 오전 다섯 시 사십 분쯤 호숫가로 나갔다. 이렇게 어스름이 질 무렵 예수도 호숫가를 거닐지 않았을까. 만물이 잠들었을 때 예수는 홀로 일어나 종종 기도를 했다고 한다. 아직 해가 오르지 않아 약간 어둑했다. 대신 물안개가 피어올랐다. 호숫가 산책로에서 조깅하는 사람도 더러 보였다. 예수는 갈릴리 호 주변 어딘가에서 ‘소금’을 예로 들며 설교를 했다. 그 유명한 ‘빛과 소금’ 일화다.

예수는 말했다.

“모두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 소금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맛을 내겠느냐? 너희는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마가복음 9장 49~50절)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표현돼 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그러나 소금이 제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아무 쓸모가 없으니 밖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마태복음 5장 13절)

예수는 ‘짠맛’을 역설한다. 그걸 잃지 말라고,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한다. 사람들은 이 대목을 단순하게 풀어낸다. 소금처럼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람일까. 예수가 말한 ‘소금’이란 무엇이며, ‘짠맛을 잃은 소금’은 또 무엇일까.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릴 때 ‘짠맛을 잃은 소금’이 되는 걸까. 또 예수는 왜 자신의 주머니가 아니라 “마음에 소금을 간직하라”라고 했을까.

예수는 “내가 너희 안에 거하듯, 너희가 내 안에 거하라”라고 했다. 나는 이 말씀을 두고 ‘김장하는 광경’이 떠올랐다. 배춧잎은 처음에는 빳빳하다. 그걸 배추의 고집, 배추의 에고라고 불러보자. 그런데 소금과 만나는 순간 배춧잎은 풀이 죽는다. 왜 그럴까. 배추의 고집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위에서 본 것처럼 마가복음에서는 “불 소금에 절여질 것이다.”라고 했다. 왜 ‘불 소금’일까. 그리스어 성경에는 ‘en puri(in fire)’로 표현돼 있다. ‘불 속에서 소금에 절여지다’라는 뜻이다. 그런데 왜 ‘불’일까. 내가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소금과 만나는 순간 에고는 녹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열린다. 그 틈으로 소금이 스며든다. 배추 안에 소금이 거하고, 소금 안에 배추가 거한다. 그것이 ‘절여짐(Being salted)’이다.

절여진 배추는 달라진다. 한여름 뙤약볕에도 쉽게 상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지난다고 변하지도 않는다. ‘짠맛’ 때문이다. ‘짠맛’을 품으면 성질이 바뀐다. 세상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고, 세월이 흘러도 변함이 없다. 그게 바로 짠맛의 속성이다. 부동성(不動性)과 영원성. 다시 말해 신의 속성이다. 신의 속성은 흔들림이 없고 영원하다. 예수는 그걸 잃지 말라고 했다.

2000년 전에도 예수는 행여 우리가 ‘짠맛’을 잃을까 봐 걱정했다. “아무리 네가 ‘세상의 소금’을 자처해도, 네 안에 ‘짠맛’이 없다면 어쩔 것이냐. ‘신의 속성’이 없다면 어쩔 것이냐. 어디에 가서 다시 짜게 할 수 있겠느냐. 그러니 너희 마음에 ‘하느님의 속성’을 품어라. 그리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 예수의 메시지는 이러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도 소금 코드가 등장한다. 유월절을 맞은 예수는 예루살렘에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사를 했다. 다빈치는 그 광경을 작품으로 남겼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수도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너희 중에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라고 하자 제자들이 화들짝 놀라는 장면이다. 비립(오른쪽에서 네 번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가리키며 “주님, 설마 그 사람이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되묻는다. 다혈질이었다는 베드로(왼쪽에서 다섯 번째 머리)는 빵을 자르던 나이프를 든 채 예수를 향해 몸을 기댄다.

예수를 배반하는 가룟 유다(왼쪽에서 네 번째 머리)는 진한 갈색 수염을 하고 있다. 그는 유대 제사장에게 은화 서른 닢을 받고 예수를 팔아넘겼다. 그림 속 유다는 오른손에 은화 주머니를 쥐고 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소매 앞에는 조그만 통이 하나 넘어져 있다. 그게 소금 통이다. 유다는 팔로 소금 통을 쳐서 넘어뜨렸다. 그리하여 식탁 위에는 소금이 쏟아져 있다. 식탁 위에 흩어져 반짝이는 소금. 이는 유다가 ‘신의 속성’을 쏟아버렸음을 뜻한다. 이미 자신의 마음에서 ‘짠맛’을 잃어버렸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호숫가를 걷다가 벤치에 앉았다. 해 뜨기 직전의 갈릴리는 고요했다. 내 안의 소금 통, 우리 안의 소금 통에는 무엇이 있을까. 거기에는 소금이 담겨 있을까 아니면 텅 비어 있을까. 소금이 담겨 있다면 짠맛이 날까. 행여 지지고 볶는 일상에서 우리는 수시로 소금을 쏟아버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우리도 예수를 배반하고 있는 건 아닐까…….

〈15회에서 계속됩니다. 매주 토요일 연재〉

최후의 만찬(인물 설명)

* 최후의 만찬장 인물의 앉은 순서 – 그림의 왼쪽부터 차례대로 정렬

<바르톨로메오> <큰 야고보> <안드레아> <베드로> <유다> <요한> <예수> <작은 야고보> <토마> <필립보> <마태> <유다> <시몬>

* 인물들의 특징

1) 바로톨로메오 – 만찬 식탁 맨 끝의 식탁에 두 손을 짚고 몸을 지탱해 서 있다. 나중에 산 채로 껍질이 벗겨져 순교.

2) 큰 야고보(세베대의 야고보) – 요한의 큰 형 야고보는 팔을 펴서 베드로의 어깨에 손을 대고 있다.

3) 안드레아 –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는 유다 뒤에서 열 손가락을 펴서 놀라움을 표시하고 있는데 두 손을 들어 관찰자를 향해 손바닥을 보이고 있는것이 마치 자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멀리하려는 듯 행동하고 있다.

4) 베드로 – 성질이 급한 베드로는 요한의 어깨를 잡고 누가 배신자인지 물어보려는 듯 일어서고 있는데 베드로의 오른손에 식사 때 쓰는 칼을 쥔 채 앞에 있는 가롯 유다의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드려 유다는 놀라 앞으로 팔꿈치가 넘어지고 있다. 천주교 초대 교황. 5) 유다(가롯) – 예수 외에 유다만이 이 사건의 비밀을 알고 있는데 어둡게 그려진 유다는 유일하게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지는 않다. 다만 베드로의 칼에 옆구리를 본의 아니게 건들린 것에 조금 놀랍다는 듯 앞으로 넘어지면서 소금 그릇을 엎지르는데 이 장면이 멋진 긴장 효과를 내고 있다. 훗날 자살.

6) 요한 – 요한은 예수의 오른쪽에 앉아 식탁 위에 손을 가지런히 놓고 베드로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이 등장하면서 요한이 아니고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주장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소설일 뿐이지 실제로 신빙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습작을 보면 알겠지만 여자를 그리기 위한 습작은 아닌것 같다.)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고 오래 살아서 ‘요한 계시록’을 기록.

7) 예수 – 자연스럽게 보이는 예수와 제자들의 위치도 실은 레오나르도가 치밀하게 계획하여 배치한 것인데 제자들은 자신만은 무죄라는 표정으로 서로에게 질문하며 웅성되고 있지만 그 동안에도 예수는 움직이지 않고 고요히 앉아 있다.

8) 작은 야고보(알패오의 야고보) – 그리스도의 왼편에 예수의 용모와 제스처를 닮은 작은 야고보가 양쪽 팔을 벌리고 비극을 예감한 듯이 공포스럽게 앉아 있다. 9) 토마 – 의심 많은 토마는 야고보 뒤에서 검지손가락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설마 나는 아니죠? 라는 듯이 머리를 가리키고 있다. 10) 필립보 – 레오나르도는 필립보를 매우 슬퍼하는 모습으로 그렸는데 가슴에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순결을 주장하고 있다.

11) 마태오 – 마태오는 두 동료에게 얼굴을 돌리고 그리스도 쪽으로 두 손을 뻗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식탁의 가장 자리에 앉아 있는 두명의 제자를 바라보고 있다. 12 ) 다대오의 유다 – 작은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갑작스런 사태를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 손으로 식탁을 짚고 다른 손은 식탁을 내리칠 듯이 들어올리고 있다.

예수=유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최후의 만찬’ 비밀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을 대표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린 그림 ‘최후의 만찬’은 1491년~1498년까지 무려 7년에 걸쳐 완성된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탈리아의 밀라노에 한 수도원이 새로 지어졌고, 로마 교황청은 그 당시에 유명했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를 불러서 성서 속에 나오는 ‘예수와 열두 제자들의 마지막 만찬’에 관한 그림을 ‘벽화’로 그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 그림을 효과적으로 그리기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림 속 ‘예수’가 되어줄 모델을 찾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다빈치는 어떤 선하고 인자해 보이는 인상의 청년을 찾았다. 1492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 사람을 모델 삼아 예수의 그림을 완성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최후의 만찬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유다, 가운데 사람이 예수)

그로부터 6년에 걸쳐 예수의 열두 제자 중 11명의 그림을 완성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마지막으로 예수를 배신한 제자 ‘가롯 유다’의 모습을 그리기 위해 또 다시 적당한 모델을 찾아 다녔다.

마침 그가 유다의 모델을 찾는단 소식을 전해 들은 로마 시장은 다빈치에게 “로마 감옥에 가면 수백 명의 죄수들이 있으니, 그곳에서 유다의 모델을 한 번 찾아보라~”고 제안했다. 시장의 제안으로, 로마에서 가장 악랄한 죄수들만 모여있는 감옥을 방문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사형을 앞둔 한 인상 험악한 죄수를 ‘유다의 모델’로서 선택하게 된다.

한동안, 그 죄수의 모습을 모델로 하여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에게 스승인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 유다의 이미지’를 완성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그에게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통고를 했다. 돌아가기 직전, 그 죄수는 다빈치에게 연이어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다빈치는 그 죄수에게 ‘당신은 내 인생에서 만난 적이 없다’고 ‘이번 일로 처음 보게 된 사람’이라 대답했다. 순간, 그 죄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완성한 ‘최후의 만찬’ 그림을 가리키며 “6년 전, 당신이 그렸던 저 예수 모습의 모델이 바로 나였소~”라 소리쳤다고 한다.

그는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게 되었고, 어찌어찌 하다가 범죄자가 된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비치는 몇 년 전에 그렇게나 온유하고 인자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그 남자가 사악한 모습의 범죄자로 변해버렸단 사실에 충격을 받았고, 이후론 더이상 ‘예수’에 관한 그림을 그리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전반적인 맥락은 일치하는데, 이 일화의 ‘변형된 스토리’도 여럿 존재하는 듯하다..)

‘최후의 만찬’ 그림에 관한 그 일화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요즘 뉴스에도 나오는 ‘잔혹무도한 범죄자’들 중에는 의외로 생김새가 멀쩡하거나 인상이 좋은 사람들도 있다. 얼마 전.. 어린 아이들을 상대로 어떤 실험을 했는데, (실은 그게 아님에도) 아이들은 ‘무뚝뚝하게 생겼거나 얼굴에 결점 있는 사람’을 경계하고 ‘미남 스타일의 범죄자’는 나쁜 사람이라 인식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하지만 ‘사람의 겉’만 봐서는 모르는 법이다. 의외로 인상이 좋거나 꽃미남/꽃미녀 중에 ‘사이코패스’ 성향의 범죄자가 있을지도 모르니, ‘온화한 인상’의 사람이라도 그가 진짜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한 ‘일상 속에서 범죄에 노출되기 쉬운 아이들’은 항시 ‘낯선 사람’들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그와는 반대로, 사람이 ‘생긴 대로 노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도 (특히, 유명인들 중에) ‘한 때 선하고 고운 인상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 세월이 흘러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탐욕스런 모습’이나 ‘심술궂은 얼굴’로 바뀌어 가는 사례들을 종종 보곤 하는데.. 때론 그 사람의 ‘살아온 삶의 이력(행적)’들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하는가 보다.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 모델이었다는 그 남자 역시, 원래는 ‘온유한 인상’이었다가 살면서 나쁜 범죄를 저지르고 방탕한 생활을 하니까 배신자 삘의 ‘사악한 인상’으로 바뀐 게 아닐까? 독특한 일화가 숨겨져 있는 이 ‘최후의 만찬’ 그림은 어쩐지, 사람들에게 심오한 ‘교훈’을 안겨주는 것 같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 ‘최후의 만찬’은 이태리 밀라노에 있는 산타마리아 델레그라치에 성당 식당 벽에 그려진 벽화이다. 이 벽화는 완성된 지 1년 만에 벽에 곰팡이가 생기고 균열이 발생했으며, 여러 차례의 전쟁으로 인해 그림이 엉망이 되어버렸다. 1999년 복원 작업이 완료되어, 지금은 어느 정도 원본과 비슷한 모습으로 회복되었다고 한다..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 – 예수와 유다 이야기

최후의 만찬에 얽힌 일화

최후의 만찬 너무나 유명한 그림입니다 이건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대 최고의 천재 이자 화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이기 때문일텐데,

여러분들은 최후의 만찬의 모델을 누구로 묘사했다고 생각하시나요? 물론 예수님의 실제 얼굴은 역사적인 기록이 남아있지 않은데 말입니다.

그럼 이번시간에는 최후의 만찬을 그린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뇌와 실제 모델들에 얽힌 이야기를 해보죠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 을 그린 기간은 대략 7년쯤 됩니다. 1491년부터 1498년까지 그렸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을까요?

그건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것도 아니었고 순전히 상상에 의해 그려야했기 때문인데, ​ 다빈치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움을 가진 얼굴을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찾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대신할만한 아름답고 선한 청년을 말입니다.

다빈치는 자신이 상상하는 예수님의

순수함을 표현하기 위해 6개월이란 시간을

정성스럽게 그려넣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제자들의 얼굴까지

그려넣은 후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예수님을 배신한것으로 알려진

유다의 사악함을 표현할

모델을 구하지 못한것이죠

그러던 어느날 로마의 한 사형수를 만나고

다빈치는 그가 자신이 생각하는 유다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일치하는것을 느꼈고

그 이후 그의 작업실에서 몇달에 걸친

작업끝에 유다의 모습은 완성되었습니다..

유다의 모습이 완성된 후 다빈치는 이제 그만 감옥으로 데려가라고 말하는데

연행되던 그가 갑자기 다빈치 앞에 무릎을 꿇고 질문했습니다.

” 제가 기억나지 않으십니까….?” ” 난 당신같은 사람은 만난적이 없소 !”

그러자 죄인이 흐느끼며 말했습니다 ​ ” 제가 바로 6년전 예수의 모델이었습니다 …”

최후의 만찬에 일화는 사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점은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남기고 있습니다.

가장 예수님과 비슷한 선한 얼굴을 가졌던

한사람이 사악한 이미지의 유다로

바뀌는데는 불과 7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지금 바로 거울앞에 서보세요

과거 자신의 모습과 현재는 어떤지

그리고 앞으로의 모습은

어떤 이미지로 변할지는

본인에게 달려있는지도 모릅니다.

다 빈치 그림만 믿지 말라… ‘석기 그릇’에 담긴 최후의 만찬

편집자주 ※이용재 음식평론가가 격주 토요일 흥미진진한 역사 속 식사 이야기를 통해 ‘식’의 역사(食史)를 새로 씁니다.

그때에 열두 제자의 하나인 가리옷 사람 유다가 대사제들에게 가서 “내가 당신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면 그 값으로 얼마를 주겠소?” 하자 그들은 은전 서른 닢을 내주었다.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를 넘겨줄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공동번역 성서 마태오 복음 26장 14~16절

종교는 없어도 그림은 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1490년대)’ 말이다. 오늘도 수많은 벽에 모사품으로 걸리는 덕분에 기독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최후의 만찬이 무엇인지는 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날 열두 제자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를 가졌다. 가리옷 사람 유다가 자신을 팔아넘겼음을, 베드로가 새벽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자신을 모른다고 부정할 것을 예언한 바로 그 자리다.

서양 혹은 기독교의 시각에서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식사로 여겨지는 최후의 만찬이지만, 되레 그렇기 때문에 세부사항은 모르고 넘어갈 수 있다. 최후의 ‘만찬’, 즉 식사이니 세부사항은 바로 음식이다. 과연 생의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는 열두 제자와 어떤 음식을 나눠 먹은 걸까? 물론 최후의 만찬을 묘사한 대표적 작품으로서 다 빈치의 그림이 많은 실마리를 주기는 한다. 하지만 그 역시 예수 사후 근 1,500년 뒤의 작품이다 보니 세부사항에는 그의 시대도 반영되어 있다. 성경을 포함한 기록과 더불어 고고학 연구에서 밝혀낸, 메뉴를 비롯한 최후의 만찬 정황을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제자 두 사람을 보내시며 “성안에 들어가면 물동이에 물을 길어가는 사람을 만날 터이니 그를 따라가거라. 그리고 그 사람이 들어가는 집의 주인에게 ‘우리 선생님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過越節, Passover) 음식을 나눌 방이 어디 있느냐고 하십니다’라고 말하여라. 그러면 그가 이미 자리가 다 마련된 큰 이층 방을 보여줄 터이니 거기에다 준비해 놓아라”하고 말씀하셨다. (공동번역 성서 마르코 복음 14장 13~15절)

최후의 만찬: 시공간과 형식

사소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실 한 가지부터 짚고 넘어가자. 신약성서에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기독교의 관점에서 보자면 예수는 자신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후’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고, 당연하게도 식사의 성격을 ‘만찬’이라 일컫지도 않았다. 성경 구절의 표현을 빌리자면 ‘제자들과 함께 과월절 음식을 나누는’ 이 자리는 대체 언제 어디에서 벌어진 걸까?

최후의 만찬이 벌어진 시기를 밝혀내는 데는 물리학자들이 한몫했다. 일단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시기는 서기 30~36년인 가운데, 아이작 뉴튼과 콜린 험프리스는 천문학 자료를 바탕으로 31, 32, 35, 36년을 제외했다. 따라서 가능한 기간은 30년 4월 7일~33년 4월 3일 사이다. 여기에 험프리스는 최후의 만찬이 수요일 저녁에 이루어졌음을 근거로 삼아 날짜를 33년 4월 1일로 추산했다. 그렇다, 인터넷 검색으로 33년의 달력을 확인하면 4월 1일이 바로 수요일이다.

한편 장소는 공관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의 복음서)에 의하면 현재 예루살렘 성전의 시온문(다윗의 문) 밖에 시온산에 있는 최후의 만찬 기념 경당(Cenacle)이다. 다윗왕의 묘와 더불어 성지인 이곳의 현재 건물은 14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다만 신약성서에는 지명을 특정하지 않으므로 예루살렘이 아닌 교외의 베다니(bethany) 같은 도시일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다 빈치의 그림에서 그렇게 묘사되어 있으므로 너무나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지만, 최후의 만찬은 식탁과 의자의 입식 환경에서 벌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시는 로마 관습을 따라 벽에 쿠션을 대고 바닥에 앉는 좌식 문화가 대세였으니, 예수와 그의 제자들도 그렇게 식사를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예루살렘과 갈릴리에서 발견된 유물로 미뤄볼 때 접시나 공기, 술단지 등은 석기였을 것이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몹시 번민하시며 “정말 잘 들어두어라. 너희 가운데 나를 팔아넘길 사람이 하나 있다” 하고 대놓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누구를 가리켜서 하시는 말씀인지를 몰라 서로 쳐다보았다. 그때 제자 한 사람이 바로 예수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의 사랑을 받던 제자였다.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눈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보라고 하였다.

그 제자가 예수께 바짝 다가앉으며 “주님, 그게 누굽니까?” 하고 묻자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 그러고는 빵을 적셔서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유다가 그 빵을 받아 먹자마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때 예수께서는 유다에게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그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유다가 돈주머니를 맡고 있었기 때문에 더러는 예수께서 유다에게 명절에 쓸 물건을 사오라고 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하신 줄로만 알았다. 유다는 빵을 받은 뒤에 곧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공동번역 성서 요한복음 13장 21~30절)

최후의 만찬 메뉴

①빵과 와인

워낙 오래전의 일이다 보니 몇몇 음식들은 논란의 대상이다. 후대에 남긴 그림 등에는 등장하지만 당시의 정황을 감안하면 실제로는 만찬의 식탁에 올라갔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다 빈치의 그림만 곧이곧대로 믿으면 곤란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붙박이 메뉴가 있으니 바로 빵과 와인이다. 예수가 빵을 자신의 몸에, 와인을 피에 비유하며 제자들에게 나눠준 것이 바로 오늘날 기독교 성찬식의 기원이기도 하다.

와인 포털 사이트 비비노(vivino)는 인류학자 및 와인학자의 도움을 받아 최후의 만찬에서 마신 와인의 실체를 조망했다. 일단 문서 기록이 1,000년 이상을 거슬러 올라가지 못하므로 포도의 품종을 짚어내기는 어렵다. 다만 중동 일부 지역에서는 기원전 4,000년부터 포도를 경작해 와인을 빚은 가운데, 당시의 유물인 항아리에 적포도를 말려 와인을 빚었다는 구절이 남아 있다. 말린 포도로 와인을 빚으면 빠지는 수분만큼 맛과 향이 진해지는데, 오늘날 이탈리아 북부 발폴리첼라 지역의 아마로네(Amarone)를 통해 맛볼 수 있다. 아무래도 냉장 기술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시대이다 보니 와인의 부패와 산화를 막기 위해 몰약 등 나무의 수지를 더하고 석류, 사프란 등도 더했다고 추산한다.

한편 빵 또한 다 빈치의 그림에서 묘사된 것과 달리 누룩으로 부풀리지 않은 무교병이었다. 유대인들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미처 시간이 없어 발효를 안 시킨 빵을 들고 나와 광야에서 일주일 동안 먹었다는 데서 유래해 과월절의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발효를 시키지 않고 밀가루와 물로만 만들어 크래커에 더 가까운 이 빵을 맛초(matzo)라 일컫는다. 맛초는 그냥 먹기도 하지만 가루를 낸 뒤 계란과 닭기름 등을 더해 우리의 굴림만두와 비슷한 완자(맛초 볼)를 만들어 국물에 끓여 먹는다.

②양고기 논란

여태껏 최후의 만찬에는 양고기가 올랐다고 알려져 왔지만 이 또한 정설이라고 보기 어렵다. 2007년, 당시의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최후의 만찬 식탁에 양고기는 올라가지 않았을 거라고 공포했다. 최후의 만찬이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과월절의 전통이었던 어린 양의 속죄와 희생 제사 전에 열렸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장은 궁극적으로 예수가 희생양을 대신했노라는 서사를 강화시킨다. 노파심에서 오해가 없고자 첨언하자면 양고기는 대다수의 기록에서 최후의 만찬 메뉴라 받아들여지고 있다.

③하로셋을 비롯한 과월절 요리

비록 양고기가 빠졌다고 해서 최후의 만찬에서 유월절 메뉴가 완전히 배제되지는 않았다. 이탈리아의 고고학자들이 2015년에 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예수와 제자들은 쓴맛이 나는 허브와 함께 피스타치오와 대추야자로 만든 하로셋(charoset)을 먹었다고 한다. 하로셋은 과일과 견과류를 빻아 곤죽처럼 만든 음식으로,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벽돌을 만들 때 썼던 점토를 상징한다. 이름 또한 히브리어로 진흙을 의미하는 헤레스(cheres)에서 비롯되었다. 그밖에도 콩과 올리브, 박하를 닮은 허브인 히솝(hyssop)을 넣고 아주 약한 불에서 천천히 끓인 스튜인 촐렌트(cholent)도 먹었을 거라 추산한다.

④오렌지 조각으로 장식한 장어

‘최후의 만찬’의 가장 최근 복원은 21년에 걸쳐 1999년에 마무리되었다. 덕분에 새로운 요리가 드러났으니 오렌지와 함께 접시에 담긴 장어였다. 왠지 예수의 시대에 흔하지 않았을 것 같은 이 요리는 사실 다 빈치의 시대였던 15세기 이탈리아에서 대표적으로 짝지워지곤 했으며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다 빈치의 장보기 목록에도 기록된 식재료이다.

음식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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