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갈멜 산 | 05.27.2022 – 금요기도회 –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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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본문: 왕사 18:16-18
설교: 한세웅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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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갈멜산 대결

아합과 이세벨을 비롯한 우상숭배자들은 바알이라고 생각했고 엘리야는 여호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갈멜산에서 어느 신이 이스라엘의 참 신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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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opendoor.or.kr

Date Published: 12/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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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즈] 17. 엘리야 vs 바알 선지자, 갈멜산 전투 – Hyphen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은 갈멜산(Carmel Mount)에서 어느 신이 ‘참신’인지를 가리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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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orldview-osint.tistory.com

Date Published: 7/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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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 응답되지 않은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 WhyJesusOnly.com

응답되지 않은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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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hyjesusonly.com

Date Published: 4/1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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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2022 - 금요기도회 -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05.27.2022 – 금요기도회 –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엘리야 갈멜 산

  • Author: 올랜도 푸른동산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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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실시간 스트리밍 시작일: 2022. 5. 27.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iy_YbOJ1ho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머물렀던 갈멜산

성지 순례 (20회)

하나님의 포도원, 카르멜

갈멜산은 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항구 도시 ‘하이파’를 끼고 이스르엘 골짜기 쪽으로 25킬로미터 가량 펼쳐져 있다. 최고봉의 높이가 550미터 가량으로, 아담한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넓게 퍼진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다. 풀 한 포기 보이지 않는 이스라엘 남쪽의 황무지 산이나 언덕들과 달리, 갈멜산은 푸른 숲이 우거져 있다. 산 정상에 서면, 이스라엘에서는 보기 드문 푸른 ‘이스르엘 평야’가 훤히 보인다. 평야 너머에는 하이파가 보이며 맑은 지중해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갈멜’은 히브리 음으로 ‘카르멜’로, 포도원을 뜻하는 ‘케렘’에 하나님을 뜻하는 ‘엘’이 붙어서 카르멜이 되었다고 본다. ‘하나님의 포도원’이라는 뜻이다. 그 앞에 산을 뜻하는 ‘하르’를 붙여 유대인들은 갈멜산을 ‘하르 하 카르멜’이라고 부른다. 갈멜산은 옛적부터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라고 불렀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머문 곳으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의 거룩한 머리’라고 칭해서 그렇게 이름이 붙여졌다는 등 의견이 많다.

구약 성경에 보면 “머리는 갈멜산 같고”(아 7:5), “해변의 갈멜 같이”(렘 46:18)라는 표현 등이 나온다. 이런 구절들에서 갈멜은 영적 풍요로움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대명사로 쓰였다. 갈멜산은 여호수아 성경에서 그 이름이 처음 등장하며, 아셀 지파의 땅에 속했다(수 19:26). 죽은 아들을 침상에 눕혀 두고 엘리사 선지자를 찾아갔던 수넴 여인도 갈멜산으로 올라갔다(왕하 4:25).

열왕기상 18장의 갈멜산의 엘리야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갈멜산 이야기는 열왕기상 18장에 나오는 엘리야 이야기일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오랜 가뭄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비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했다. 이스라엘 왕 아합은 오바댜와 함께 물 근원을 찾아 돌아다니다 엘리야를 만나는데, 엘리야는 아합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에 모으라’고 요청한다.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갈멜산에 모였을 때, 엘리야는 함께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저들과 내가 각각 송아지를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자기가 섬기는 신의 이름을 불러서 불로 응답하는 신이 하나님이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말이 옳다고 했다.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이 오랜 시간 바알을 불렀으나 응답이 없었다. 이어서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주위의 것들을 다 태워버렸다. 불이 얼마나 강렬했는지 돌과 흙까지 태웠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엘리야는 곧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바알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다 죽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왕으로 인해 굉장히 혼란스런 시대였다. 그가 이방 신을 들여오고, 바알 선지자들을 세워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불신하게 만들었다. 득세한 바알 선지자들은 온갖 거짓 것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혹했다. 아합이 나라와 백성들을 어지럽게 만들었던 그때,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 혼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을 향하게 하였다.

‘엘리야의 불’이라고 불렀던 갈멜산의 산불

2010년 겨울, 갈멜산에서 원인불명의 큰 불이 났다. TV에서 갈멜산이 불타는 장면을 생방송으로 방영했는데, 불은 진화되기까지 5일 동안 산을 태웠다. 수상비행기들이 바로 옆 지중해에서 물을 길어다가 산에 뿌려 진화 작업을 했다. 불은 산 인근 마을에까지 번져 44명이 죽고 17,000명이 집을 잃었다. 갈멜산을 덮고 있던 수백 만 그루의 나무도 다 타버렸다.

당시 신문에서는 헤드라인으로 “엘리야의 불”이라고 제목을 붙였고, 유대교인들은 인터뷰에서 “이 불을 통해 우리는 엘리야를 기억해야 한다. 이것은 이 땅에서 이방 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을 몰아내라는 하나님의 경고다”라고 말했다.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 큰 도시 하이파

갈멜산을 병풍 삼아 형성된 지중해 연안 도시 하이파는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인구는 30만 명으로, 예루살렘과 텔아비브에 이어 이스라엘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다. 하이파라는 이름이 어디에서 왔으며 언제부터 쓰였는지 기원은 정확히 알 수 없고 추측만 무성하다. 성경에도 그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하이파는 예루살렘이나 텔아비브에 비해 풍요롭고 서정적인 모습을 갖고 있으며 ‘바하이’교 사원이 유명하다. 바하이교는 1800년대에 ‘무슬림이 아니면 누구든지 죽여도 된다’는 무슬림 교리에 반대해 무슬림에서 나와 생긴 독특한 종교로, 창시자인 이란 사람 ‘바하알라’가 죽어 하이파에 장사되면서 교인들이 그곳에 사원을 짓고 그들 종교의 본부로 삼고 있다. 사원 건물과 정원이 독특해 지금은 관광 명소가 되었다. 하이파는 레바논과 가까워 가끔 레바논의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쏘는 로켓탄의 표적이 되기도 한다.

갈멜산 정상에서 엘리야와 그 시대를 생각해 보았다

갈멜산 정상에 올라가 그곳에서만 자란다는 ‘카르멜릿 나에’라는 꽃을 보며 잠시 엘리야와 그 시대를 생각해 보았다. 이세벨의 충동질을 받아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 우상을 끌어들이고 바알 선지자들을 세웠던 아합 왕. 오늘 이 시대에도 아합 왕 시대처럼 수많은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전해 주는 이는 거의 없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 있다. 그들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알지만,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지 못해 “내 죄가 씻어졌다, 내 마음에 죄가 없다, 내가 의롭게 되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마치 무더운 여름 날 선풍기가 있는데 전기 콘센트에 연결되지 않아 작동하지 않는 것과 같다.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서 끊어진 채 불신 가운데 살아가고 있을 때, 하나님의 참된 종은 그 마음을 말씀과 연결시켜 준다.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 선지자들을 이스라엘에서 제거한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불신들을 정확하게 제거해 준다. 그런 하나님의 사람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나는 다시 엘리야의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 보았다. 열왕기하 1장에서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 왕이 갈멜산에 있는* 엘리야를 잡아오라고 군사를 보냈다. 처음 왕의 명령을 받고 간 오십부장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엘리야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너와 너의 오십 인을 사를지로다”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 그들은 불에 타 죽고 말았다.

아하시야가 보낸 두 번째 오십부장이 부하 50인과 함께 엘리야 앞에 섰다. 그는 첫 번째 50인이 당한 일을 들었으니 겸비한 마음으로 엘리야에게 은혜를 구했어야 했다. 그러나 첫 번째 오십부장과 같은 길을 걸었고, 그와 병사들 역시 죽고 말았다. 얼마 후에는, 엘리야가 전한 여호와의 말씀대로 아하시야 왕도 죽었다. 하나님의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것임을 믿지 못할 때 우리는 고통을 만나고, 반대로 믿을 때 우리 삶이 복되게 변하는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장소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아 일부 학자들은 갈멜산이 아니라고도 주장한다(편집자 註)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이야기를 뺀다면…

우리 교회에 연결된 유대인 청년이 하나 있다. 그는 한국 월드캠프에 다녀와서도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율법과 복음 사이에서 왔다갔다했다. 나는 그 청년을 보면서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박옥수 목사님이 로마서 11장 26절 말씀을 펴서 나에게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목사님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율법에 매인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주의 일꾼이 된다고 하셨다. 그때 목사님이 전해 주신 말씀이 내 마음에 그대로 믿어졌다.

그 후, 유대인 형제가 구원의 선이 분명해졌다. 그리고 유대 모임에서 분리해 이제는 우리 교회가 자기 교회라고 간증한다. 형제가 복음과 교회에 속한 사람이 된 것이다. 말씀 그대로 되었다. 유대인 형제가 변화된 후,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이 우리 노력이 아닌 온전히 예수님의 구속으로 말미암는 것처럼 선교나 목회나 전도 역시 내 노력이나 의지나 원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이 전해 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았다.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종이 해 주시는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이야기를 빼버린다면 갈멜산은 특별히 기억해야 할 이유가 없는 평범한 산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만나지 못했다면 우리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채 예수님과 상관없이 살다가 영원한 멸망을 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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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멜산 – 하나님과 엘리야의 승리

성경에 등장하는 엘리야 이야기 중에 가장 극적인 것은 엘리야가 갈멜산 제단에 하늘의 불을 내리는 순간이다.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던 당시 북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그의 아내 이세벨, 그리고 그들의 선지자 850명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엘리야의 이야기는 어쩌면 블레셋 거인 장수 골리앗을 물리쳤던 소년 다윗의 이야기보다 더 극적이다. 성경에 기록된 극적인 이야기들에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을 지키시는 하나님이라는 공통적인 주제가 들어있다. 갈멜산에서 벌어졌던 엘리야의 이야기는 하나님만을 신뢰했던 엘리야 선지자와 하나님 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세라도 섬겼던 당시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지도자들과의 정면 승부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한 사건이다.

하나님과 엘리야가 승리한 장소 갈멜산은 이스르엘 골짜기와 지중해가 만나는 오늘날 이스라엘의 북서부 도시인 하이파에 인접해있다. 갈멜산은 높은 산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땅에서 보자면 상당히 넓은 면적을 가진 편이다. 아래 영상은 엘리야 기념교회 상공에서 갈멜산 일대를 헬리켐으로 촬영한 것이다(1080P로 재생하면 선명합니다.).

갈멜산은 설악산이나 지리산같은이 산세가 깊고 험한 산이 아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동네 뒷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크고, 그렇다고 산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야트막한 느낌이 있다. 어쨋든 갈멜이라는 이름에는 하나님의 정원이라는 뜻이 있다. 그 정도로 갈멜산은 이스라엘 안에서는 상당히 울창한 숲을 자랑한다. 지중해 연안에 있기 때문에 강수량도 많은 편이고, 이스르엘 평원의 초입에 있어서 토양도 비옥하다. 산 정상부까지 도로가 놓여 있어서 자동차로 산 전체를 둘러볼 수 있는데, 차창 밖으로 보이는 빽빽한 나무들이 인상적인 산이다.

갈멜산 정상부에는 무크라카(불의 제단)라고 불리는 엘리야 기념교회가 있다. 이 기념교회 옥상 전망대에 올라가면 이스라엘 최대의 곡창지대인 이스르엘 평원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북쪽으로 바라보면 드보라가 가나안 철병거를 이긴 다볼산, 기드온이 미디안을 물리친 모레산, 사울왕이 전사한 길보아산도 볼 수 있다.

갈멜산 상공에서 동북쪽 방면으로 내려다보면 이스르엘 평원이 펼쳐지고 평원이 끝나는 부분에 다볼산, 모레산, 길보아산이 보인다. 날씨가 맑을 때는 요르단도 보인다.

엘리야는 제단에 불을 내린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처단했다.

“엘리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 하매 곧 잡은지라 엘리야가 그들을 기손 시내에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열왕기상 18장 40절

오늘날 기손 시내는 흔적만 남아있는 상태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물관리 체계를 갖춘, 그래서 거의 모든 수자원을 철저히 관리하는 현대 이스라엘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난 과거의 물길을 찾기는 어렵다. 과거의 기록에 따르면 기손 시내는 갈멜산 인근에서 벧샨을 지나 요단강에 이르는 일종의 와디였던 것으로 보인다. 평소에는 물길만 있다가 우기에 범람하는데 범람할 때의 규모가 어마어마 했다고 전해진다. 시스라의 가나안 철병거가 진흙에 빠진 것도 이 기손 시내의 범람으로 인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처단할 때는 오랜 가뭄이 있었으므로 아마 기손 시내는 바짝 말라있었을 것이다.

현대 이스라엘에서 물관리 시스템이 갖춰진 이후로 이스르엘 평원은 더이상 범람하지 않으며, 일년 내내 푸르름을 유지한다.

갈멜산에서는 엘리야가 불을 내린 제단을 찾으려는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으며, 그 결과물이 바로 엘리야 기념교회다. 물론 확실한 증거는 없다. 하지만 실제로 기념교회가 자리하고 있는 엘리야산 정상부에서는 곳곳에 돌출된 넓은 암반층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엘리야의 제단이 있었던 곳으로 생각하고 있다. 오늘날 엘리야 기념교회는 성지순례의 필수코스 중 하나로서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이스르엘 골짜기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에 성경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도 많고, 신앙적으로 생각할 거리도 많은 곳이다.

기념교회를 둘러싼 암반층의 모습. 이 일대에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동굴들도 많이 존재한다.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선지자들이 이런 동굴을 주거지로 사용했다.

“이스라엘의 신앙을 집대성한 사람은 모세지만, 이스라엘의 신앙을 지켜낸 사람은 엘리야다.”

출애굽 이후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은 왕국 분열 이후에 특히 북이스라엘에서 종교적 타락의 극단을 내달렸으며,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을 가나안의 수많은 신들과 다름없는 신들 중의 하나로 여기는 상태였다. 이런 종교적 타락의 중심에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와 그들을 따르는 선지자 850명이 있었다. 엘리야는 하나님 신앙과 가나안 신앙을 혼합시킨 그들을 모두 죽이고 하나님이 가나안의 모든 신들보다 훨씬 강력하다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여준 선지자다.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열왕기상 18장 39절

엘리야가 이긴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고백했다. 하나님만이 참된 신임을 가르쳐준 갈멜산은 오늘날 우리 신앙에 많은 도전을 준다.

오늘날 남아있는 기손 시내의 물길

다볼산, 모레산, 길보아산의 모습

엘리야 기념교회의 내부와 제단

엘리야 기념교회 마당에 세워져 있는 엘리야 동상

[사순절 Q.T]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부흥 이야기

제목 :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부흥 이야기

본문 : 열왕기상 18:29-46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열왕기상 18장에는 4종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과 하나님의 종인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 450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멜산에 모여서 하나님의 사건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참으로 재미있는 현상은 백성들입니다. 백성들은 바알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백성들에게 바알과 하나님 중에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한 백성이 한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왕상18:21)

이렇게 선택을 못하는 것, 이것이 타락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분명해야 합니다. 믿음의 길과 불신의 길을 확실하게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의 길과 불의 길을 구분해야 합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소욕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사탄의 뜻을 구분할 줄 아는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중간지대에 있는 회색분자였습니다. 이것이 타락입니다.

또한 본문에 아합왕이 등장합니다. 그는 북이스라엘의 8대 왕으로서 성경은 그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고(왕상16:30) 그의 사람 됨됨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왕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선지자와 백성들을 죽이는 악한 왕이었습니다. 아합왕은 시돈의 공주인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을 섬기고, 사당을 만들어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그의 삶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아합은 그 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게 하였더라”고 합니다(왕상16:33). 아합왕은 역사상 가장 가증스러운 우상숭배자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잡아 죽이는 일을 했던 왕입니다. 부부가 세트로 못된 짓을 도맡아한 사악한 부부였습니다.

이런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는 사명을 위해서, 견딜 수 없는 마음으로, 백성의 죄악과 아합 왕의 죄악을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하나님 명령대로 수 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아합왕은 선지자의 말을 듣지도 않고 오히려 엘리야의 생명을 취하려고 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을 피해서 그릿 시냇가에서 몸을 숨기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위해서 매일 까마귀를 통해 고기와 떡을 가져다주어 생명을 보존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조국이 죄악으로 물들어버리고, 하나님을 잃어버리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서 그는 3년 만에 역사의 현장으로 등장합니다. 가뭄으로 이스라엘은 온 국토가 메말라 버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뭄의 원인이 신 때문이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어떤 신이 참신인가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재난을 내린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가뭄은 국가적인 재난이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선전포고를 합니다. 어떤 신이 참신인가 서로 비교해보자. 갈멜산에서 영적 전투를 신청합니다. 엘리야는 가뭄의 이유는 아합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저버리고 우상을 숭배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아합 왕과 그의 추종자들은 가뭄의 원인을 농경신인 바알이 이스라엘 땅에서 하나님의 신앙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데 대한 진노의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합왕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다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당당히 민족앞에 나타나서 어떤 신이 참신인지를 갈멜 산에서 가리자고 대결을 신청했습니다. 바알선지자와 엘리야가 850:1로 하게 됩니다. 대결 방법은 각각 송아지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위에 올려 놓고 각자의 신을 불러서 불로 응답하는 이가 참 신인 것으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신이면 인간의 간구에 반드시 응답하여서 비를 내릴 것임을 확신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땅에 참신이 있고 거짓 신이 있습니다.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통해서 위대한 부흥을 경험하게 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절대적인 신앙으로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마음과 영혼과 육체와 사업장과 가정과 회사위에 하나님의 위대한 부흥이 시작되기를 축복합니다.

갈멜산 부흥은 어떻게 일어났나요?

1)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가까이 오매 저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30절) 엘리야가 백성들을 모아 놓고 한 일은 무너진 여호와의 단을 다시 쌓았습니다. 위대한 부흥의 기적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무너진 단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나에게 무너진 부분이 어디 있는가 자세히 묵상하며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너진 곳을 다시 쌓지 않고서는 기적을 일어나지 않습니다.

기도의 제단이 무너졌습니까? 하나님의 방법대로 기도의 제단을 다시 쌓으십시오. 부흥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성막은 성소와 지성소로 구분되는데 성소에는 떡상, 금촛대, 분향단이 있습니다. 떡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말씀을 매일 먹어야 영이 새 힘을 얻습니다. 금촛대 세상을 향해서 빛을 비추는 삶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매일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분향단은 성도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분향단은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동안 분향단의 향이 껴져서는 안됩니다. 기도의 제단의 불이 꺼지는 순간 하나님의 기적은 사라집니다. 그러나 기도의 제단에 향이 피어나는 순간부터 하나님의 사건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믿으면 아멘. 주님은 인류 구원를 위한 십자가의 끔찍한 고통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는 기도의 제단을 쌓았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십자가의 고통을 이기시고 죽음에서 3일 만에 당당히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인류의 위대한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은 영원히 빛나는 것입니다.

믿음의 제단이 무너졌습니까? 다시 믿음의 제단을 쌓을 때 부흥이 시작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까? 그가 모리아산에서 믿음으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렸기에 그는 길이 남을 믿음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행하였기에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닷가의 모래같이 번성하는 축복과 땅의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부흥이 일어납니다. 히브리 기자는 11장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소개할 때 마다 그 이름 앞에 믿음으로 믿음으로라는 구절을 삽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은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진행하고 믿음으로 결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빈손으로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돌고 소리칠 때 성이 무너진다는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여호수아과 갈렙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았습니다. 이런 믿음 있습니까?

부흥하기를 원하십니까? 사랑의 제단이 무너졌다면 사랑의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풍요 속에서 많은 아픔과 슬픔을 경험합니다. 사랑이 메말랐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위대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사랑은 사람을 세우기도하고 무너지게도 합니다. 사랑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기도하고 낙담을 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랑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필수 아미노산입니다. 사랑이 빠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사랑이 없는 관계는 무미건조합니다. 부흥하기 원하십니까? 헌신의 제단을 다시 쌓으십시오. 오늘 우리의 무너진 제단을 다시 쌓아야 합니다. 다시 쌓을 때 위대한 부흥은 시작하게 됩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에 진정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으로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36,37).

엘리야가 누구의 이름을 계속 불렀습니까?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문제 앞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문제가 해결됩니다. 병마 앞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주님이 우리의 아픈 몸을 치료하십니다. 예수의 이름만이 모든 병에서 놓임을 받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 원수 마귀사탄들이 물러갑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를 때에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사도행전4장 12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음으로 부를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선물로 받습니다.

그러나 바알 선지자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하나님을 부른 것이 아니라, 바알을 불렀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바알 선지자들은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 이로되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하나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으므로 그들이 그 쌓은 제단 주위에서 뛰놀더라”(36절). 큰 소리로 부르고,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거짓신은 응답하지 않습니다. 거짓에 속지 마십시오. 참신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38-39절입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엘리야가 참신이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모든 것을 다 태웠습니다. 여호와의 이름만이 능력이 있습니다. 왜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앞에 끊게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예수님을 부르면 마귀들도 무서워 떨고, 병마도 떠나가고, 두려움도 떠나가고, 근심 걱정도 떠나가고, 고난도 가난도 떠나갑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의 이름을 많이 찬양하십시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승리합니다.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말하기를 “올라가서 먹고 마시소서 큰 비의 소리가 있나이다”(41절) 그러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납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45절)

할렐루야. 하나님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왔고, 이어서 3년 동안 가뭄으로 국가적인 큰 재난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의 삶속에 하나님 능력으로 큰 은혜의 비가 충만하게 내리기를 축복합니다. 큰 비가 내리는 부흥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예수만이 우리에게 큰 비를 주십니다.

이처럼 나에게 무너진 제단이 있다면 반드시 다시 쌓을 때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 불이 내려오고 큰비가 내리는 부흥이 일어납니다.

<적용>

(1) 아합왕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알이 참신인지, 여호와가 참신인지 선택을 하지 못했습니다. 선택의 능력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바로 불신앙입니다. 당신의 마음을 점검해보십시오. 누가 참신인지 생각해보십시오. 당신의 선택에는 문제가 없는지요.

(2)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때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응답해주셨습니다. 그리고 3년의 가뭄을 한 순간에 하늘 문을 열어주셔서 큰 비를 주셨습니다. 진정한 부흥입니다. 진정한 부흥은 주님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얼마나 자주 외치고 말하고 있는지요. 당신의 인생에서 주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회복되었는지요.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내 인생을 통해서 존귀하게 회복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이 땅에 주님의 이름만이 찬양과 영광을 받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시리즈] 17. 엘리야 vs 바알 선지자, 갈멜산 전투

선지자 엘리야와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은 갈멜산(Carmel Mount)에서 어느 신이 ‘참신’인지를 가리는 ‘대결’을 벌이게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영적 대결의 장소가 바로 ‘산’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구약의 창세기부터 지속해서 이어져오는 흐름 속에 ‘산’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기 바란다.

이번 ‘영적 대결’을 통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알과 사탄에게 떠나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엘리야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서서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라고 외쳤다. 하지만, 백성들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자, 엘리야는 계속해서 이렇게 외친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열왕기상 18 장 23~24 절

이 대결의 관중이자, 증인이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엘리야가 제시한 대결 조건에 동의한다. 엘리야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하라” 고 말한다. 바알 선지자들은 송아지를 가져다가 잡고 새벽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렀지만, 하늘에서는 아무런 소리와 응답도 들리지 않았다. 다시 그들은 제단 주위에서 춤추며 뛰기만 했다.

정오에 이르러, 엘리야는 그들에게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깐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가?” 라고 조롱한다. 바알 선지자들은 큰 소리로 신의 이름을 외치고, 그들의 규례에 따라 칼과 창으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며 피를 흘린다. 이렇게 정오가 지나고 저녁이 됐지만, 아무런 소리와 응답도 없었다.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야곱의 아들들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엘리야가 돌 열두 개를 취하니 이 야곱은 옛적에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여 이르시기를 네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하리라 하신 자더라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물이 제단으로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물이 가득 찼더라 저녁 소제드릴 때에 이르러 선지자 엘리야가 나아가서 말하되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열왕기상 18 장 30~37 절

엘리야가 이같이 외침과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불을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게 하셨다. 모든 백성이 이 경의로운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보고 엎드리며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라는 고백을 한다.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바알의 거짓 선지자들을 잡으라 명하고, 기손 시내로 내려가서 거짓 선지자들을 모두 처단했다.

바알 숭배 의식 – 자해

대결은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의 승리로 일단락을 맺는다. 한 편, 이들의 대결 부분에서 바알 숭배의식에서 보인 ‘자해’ 행위에 주목해보자. 사탄은 인간의 몸을 상하게 하거나, 해치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자신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몸을 상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상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린도전서 3장 16절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 장 28 절

로널드 스컷(Ronald Scutt)의 저서 <예술, 섹스, 그리고 상징(Art, Sex and Symbol, 1974)>에서는 문신과 바알 숭배, 태양 숭배, 뱀 숭배의 밀접한 관계에 대해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오늘날 전세계에 보편화된 사탄의 문화 중, ‘문신’, ‘피어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문신은 이미 사회적으로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행위에 숨은 영적 사실과 흐름을 직시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응답되지 않은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응답되지 않은 엘리야의 갈멜산 기도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왕상18:37-39)

이스라엘 왕 아합의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이 벌로 3년간 비가 오지 않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아합의 아내 이세벨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멸하는 죄를 더합니다. 이에 엘리야가 단신으로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대결을 벌였습니다. 각기 번제물을 단 위에 차려놓고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어느 쪽 제물을 태우는가 보기로 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온갖 열심과 치성을 다해 빌었고 나중에는 몸에 자해(自害)를 해 피까지 흘려 바쳤지만 오정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하는 자도 없고 아무 돌아보는 자도 없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미동(微動)도 응답될 기미도 아예 없었다는 것입니다. 우상이란 원래 존재조차 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여호와는 엘리야의 기도에 즉각 응답하였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만 아니라, 제물을 쌓은 단과 그 밑에 받친 나무와 흙으로 만든 도랑과 도랑 속에 가득 흐르는 물까지 다 태웠습니다. 그 태우는 모습을 “물을 핥은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불길이 혀 같이 날름거리며 도랑의 물을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순식간에 완전히 증발시켰다는 의미입니다. 만약 인간이 나무에 불을 붙였다면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므로 도랑의 물까지 다 증발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불은 이미 섭씨 수만 도의 세기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기도에 응답하거나 신자의 일에 간섭하실 때는 반드시 당신 특유의 방법으로 하십니다. 꼭 큰 기적이나 대박이 터지는 모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 하나님이 아니면 도저히 그렇게 될 수가 없다는 것을 신자가 분명하게 깨닫도록 하신다는 뜻입니다. 말하자면 전혀 예기치 않고 상상도 못했던 방법과 때에 정말 그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과 사건에 선한 영향력이 발휘되며 특별히 신자에게는 반드시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응답을 두고도 단순히 큰 기적으로 응답하셨다고 쉽게 판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가 처음 대결을 벌릴 때부터 기적은 전제되었습니다. 지난 3년간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바싹 마른하늘에서 천둥 벼락이 칠 리는 없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기적입니다. 하나님이 아니고는 하실 수 없는 일입니다. 만약 구름이 몰려와 번개가 쳤다든지, 어디선가 조그만 불똥이 날라 와 아주 천천히 태웠다면 자칫 바알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고 항변할 구실을 줍니다. 번개는 일상적 자연현상으로, 작은 불씨는 엘리야의 속임수로 몰아부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랑의 물을 핥는” 모습으로 응답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게 됐습니다. 심지어 아합도 찍 소리 한 번 못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를 다 죽이는데도 곁에서 구경만 하고 전혀 말리지 못했습니다. 참 하나님의 너무나 큰 능력을 보았고 또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한대로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백성들도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고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신자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꼭 기적이나 대박이 터지는 방식으로만 응답되길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갈멜산의 대결에서 하늘에서 불이 내리는 것만도 초자연적 기적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이 된다는 것,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간구하여 응답이 되는 것 자체만으로 큰 기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엘리야는 하늘에서 불이 내린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대신에 그는 꼭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방법으로 하셔서 모든 백성으로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알게 해 달라고 한 것입니다. 엄청난 세기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다는 것에 주목하지 마시고 바알 선지자들과 아합조차도 일언반구 대꾸도 못했다는 것, 즉 하나님의 하나님 다우심이 완전하게 드러났다는 것에 초점을 두셔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의 응답도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대신에 우리의 기도에도 하나님 특유의 선과 영광만이 드러나길 소원해야 합니다. 또 다시 질적 양적으로 좋고 큰 것을, 다른 말로 하면 자기 소원하는 바를 크게 부풀려 놓고 그대로 응답되리라 억지로 믿으려들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자의 기도라도 욕심과 교만에 바탕을 둔 잘못된 판단과 계획이 어느 정도 개입될 소지가 있습니다. 신자가 하는 어떤 기도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완전하지 않고 많이 부족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미리 다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에 소원하고 있는 것과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빌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기도대로 응답되기 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기를 더 소원해야 합니다. 모든 것을 다 아뢰고 울부짖되 그 간구한 모든 문제에 대한 자기의 집착은 버려야 합니다. 그 계획대로 일을 진행시키되 일이 되어가는 방향과 모습을 두고도 계속해서 묵상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문제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선만이 드러나게 하옵소서. 그래서 제가 다시 한 번 그 크신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경배하며 찬양하게 하옵소서!”라는 기도가 모든 기도에 함께 수반되어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이 기도가 모든 기도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솔직히 우리의 소원과 문제에 대해선 하나님이 이미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며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또 우리와 교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이 우리에게 듣기를 원하시는 기도는 바로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이루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저는 단지 그 영광을 전하는 도구로 삼아 주시옵소서!” 입니다.

지금 엘리야의 기도에서도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이 따로 있다는 뜻입니다.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입니다. 기적을 보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돌이키라고 합니다. 나아가 그것도 주께서 그렇게 돌이켜 주신다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합니다. 쉽게 말해 엄청난 기적을 보고도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 자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기적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변화되어 오는 것이며 오지 성령의 간섭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경과를 본 아합은 끝까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곧 이어 3년간의 가뭄이 그치고 억수 같은 비가 쏟아졌으며 그 속을 하나님의 능력을 입은 엘리야가 마차보다 더 빨리 앞장서 달리는 것을 보고도 그랬습니다. 나아가 현장에서 입술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고 고백한 백성들 중에 과연 마음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믿은 자가 얼마였는지도 의문입니다.

이 대결을 시작할 때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엘리야는 엄중하게 경고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왕상18:21)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고 또 주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는 것도 초자연적인 신비한 현상이 아닙니다. 사람의 가치관과 생활 방식이 완전히 바뀐다는 것입니다. 주를 마음으로 믿게 된 자는 주만 온전히 좇습니다. 절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머뭇머뭇 거리지 않습니다. 간혹 시험과 죄악에 빠질 때도 있지만 반드시 돌아옵니다. 그것도 입술로만 하는 회개가 아니라 행동으로 주를 좇는 모습으로 말입니다.

어쩌면 갈멜산 엘리야의 기도는 반만 응답이 되고 반은 응답이 되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사람들로 여호와는 큰 기적을 일으키는 분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지만 그들이 마음으로 완전히 돌이키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모자라거나 그렇게 하실 뜻이 없어서가 절대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구하기보다는 큰 기적으로 자신의 삶만 풍요롭게 되길 원하는 뿌리 깊은 죄악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 뿐 아니라 오늘날의 신자도 여전히 하나님으로부터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야단을 맞아 쌉니다.

혹시 여러분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 줄은 알지만 마음으로는 완전히 돌이키지 않은 것은 아닌지요? 다른 말로 하면 아직도 내 기도의 제목의 질과 양만 불리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비전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지 않기 때문에 아직도 세상과 그분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지는 않습니까?

4/25/2006

키워드에 대한 정보 엘리야 갈멜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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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주제에 대해 자주 검색하는 키워드 05.27.2022 – 금요기도회 –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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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2022 #- #금요기도회 #-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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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05.27.2022 – 금요기도회 – 갈멜산에서 만난 엘리야의 하나님 (1) 아합의 죄 | 엘리야 갈멜 산, 이 기사가 유용하다고 생각되면 공유하십시오, 매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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