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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나무위키:대문
김해 김씨가 김(金)자를 성씨 글자로 삼은 이유는 삼국유사에서 개황력을 인용해, 시조 수로왕이 금으로 된 알(金卵)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2.2.
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2/13/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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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9/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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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김해김씨는 정말 ‘그곳’에 점이 있어? [브레이크 고장 난 …
[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저는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생기면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추진력이 굉장했냐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 …Source: www.goodmorningcc.com
Date Published: 1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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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해 김(金)씨이다.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 한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Source: post.naver.com
Date Published: 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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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해 김(金)씨이다.
Source: www.unnibege.co
Date Published: 4/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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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친구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 인사이트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대한민국 최대의 성씨 집단, 김해 김(金)씨. 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 …Source: www.insight.co.kr
Date Published: 6/10/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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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김씨 점 있는 이야기
김해김씨 점 있는 이야기 … 현재 페이지에서 제공되는 정보와 서비스에 대하여 만족하십니까? … COPYRIGHT(c) 2018 The Federation of Korean Cultural Centers. ALL RIGHT …
Source: ncms.nculture.org
Date Published: 11/29/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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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 여주시사
여주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참판공파(參判公派)와 안경공파(安敬公派)로 나뉜다. 참판공파와 안경공파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낸 51세 김녕군(金寧君) 목경(牧 …
Source: www.yeoju.go.kr
Date Published: 8/1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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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김씨 얼굴은 까무잡잡한가 – 울산제일일보
언젠가 김 총각 얼굴색이 유달리 까무잡잡하기에 “여름에 얼굴이 타면 본색으로 잘 돌아오지 않는 나하고 비슷하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저 김해 김 …
Source: www.ujeil.com
Date Published: 6/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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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김해 김씨 특징
- Author: 상생방송S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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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0.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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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다. 금관가야(金官伽倻)의 수로왕(金首露)을 시조로 한다.
역사 [ 편집 ]
가락국의 수로왕(首露王)을 시조로 하고,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을 중시조로 한다. 아도간, 여도간, 피도간, 오도간, 유수간, 유천간, 신천간, 오천간, 신귀간의 아홉 명의 촌장이 하늘에 제사를 지내 자주색 밧줄에 붉은 보자기에 쌓인 금합이 구지봉에 강림하고 여섯개 황금 알 중에 제일 먼저 나온 아이를 수로(首露)라 하고 가락국의 왕이 되니 김해김씨의 시조가 된다. 이후 후손들이 가락국이 세워진 김해를 본관으로 삼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금관가야는 5세기 광개토태왕의 남정 이후 급속히 쇠퇴하게 된다. 532년(법흥왕 19년) 신라에 투항하여 진골 귀족이 된 가락국의 마지막 왕으로 김유신의 증조부가 되는 구형왕(仇衡王)은 신라에 투항함으로써 상등의 작위를 받고, 금관국을 식읍으로 받았으며. 그의 세 아들 중 차남 김무력(金武力)이 신라에서 장군이 되어 관산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우고 최고의 관등인 각간(角干)을 지냈고, 신라의 한강유역을 차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의 아들 김서현(金舒玄)은 백제와 여려번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대양주도독(大梁州都督)을 지냈고, 고구려 낭비성을 함락시키고 각간(角干)으로 제수 받았으며, 김서현의 딸 문희(文姬)는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과 혼인하여 문명왕후(文明王后)가 되었다. 김서현의 아들 김유신(金庾信)은 무열왕과 함께 삼국통일의 대업(大業)을 달성한 명장(名將)으로 무열왕의 딸 지소부인(智炤夫人)과 혼인했으며, 태대각간(太大角干)에 이르렀고, 사후에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존되었다. 김해김씨는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해 왔다. 이런 신김씨의 위세가 쇠퇴한 계기는 780년 혜공왕이 피살당하는 것으로 무열왕계 왕통이 단절되고 선덕왕의 내물왕계가 왕위를 잇게 되면서부터 다른 진골 귀족들로부터도 다시금 경원 당하면서 심지어 6두품으로 추락했다.[1][2]
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金商佐)가 왕건에게 위탁해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워 삼중대광(三重大匡) 개국원훈(開國元勳)에 올른 이래 그 후손들이 문무 명신을 배출한 삼한갑족으로 위세를 떨쳤다. 고려 시대에만도 정승급 15명을 비롯하여, 명신·공신 10여 명과 장군 8명, 제학 11명 등 숱한 인물을 배출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대게 조선 개국에 반대하는 고려 충신들이 많았으며 무오사화(戊午士禍)[3][4]를 비롯한 정치적 사건들에 휘말려 쇠락을 면치 못했다.
김희철(金希哲)의 딸이 선조(宣祖)의 후궁 공빈 김씨(恭嬪 金氏)가 되면서 김희철은 국구(國舅)로서 해령부원군(海寧府院君)에 봉해졌고, 아들 광해군(光海君)이 왕으로 즉위한 후 공성왕후(恭聖王后)로 추존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다시 후궁으로 강등되었다.
역대 정승에서도 숙종조의 김우항(金宇抗) 한 사람뿐이었다. 조선시대 유일한, 그리고 최후의 정승이었다.
본관 [ 편집 ]
김해(金海)는 경상남도 김해시(金海市)의 지명이다. 낙동강(洛東江) 하구 남서쪽에 위치하여 가락국(駕洛國)의 중심지로 발전하여 왔다. 532년(신라 법흥왕 19) 신라에 병합되어 금관군(金官郡)이 되었다. 680년(문무왕 20)에 금관소경(金官小京)이 되었다가, 757년(경덕왕 16) 김해소경(金海小京)으로 바꾸어 양주(良州)의 관할로 두었다. 940년(고려 태조 23) 김해부(金海府)로 개칭되었고 임해현(臨海縣)으로 다시 강등되었다가 곧 임해군으로 승격되었다. 995년(성종 14)에 김해안동도호부(金海安東都護府)로 개칭하여 영동도(嶺東道)에 속하였다가 1012년(현종 4) 김해군방어사로 강등되었으나 1018년부터는 의안군(義安郡: 昌原)·함안군(咸安郡)·칠원현(漆原縣: 漆原面)·웅신현(熊神縣: 鎭海)등을 영현으로 삼았다. 1270년(원종 11) 방어사(防禦使) 김훤이 인접지역인 밀성(密城)의 난을 평정하여 김녕도호부(金寧都護府)로 승격되었다가 1293년(충렬왕 19) 현으로 강등되었다. 1308년 금주목(金州牧)으로 승격하였으나 1310년(충선왕 2) 김해부(金海府)로 격하되었다. 1413년(태종 13) 김해도호부로 승격되어 세조 때 진(鎭)을 두었다. 1895년(고종 32) 김해군이 되었고, 1981년 김해읍이 김해시로 승격하여 분리되었으며, 1995년에는 김해군을 통합하였다.
세계도 [ 편집 ]
1 태조왕 太祖王 2 도왕 道王 3 성왕 成王 4 덕왕 德王 5 명왕 明王 6 신왕 神王 7 혜왕 惠王 8 장왕 莊王 9 숙왕 肅王 10 양왕 讓王 김탈지 金脫知 11 김세종 金世宗 김무력 金武力 김무득 金武得 금릉 김씨 12 김솔우 金率友 김서현 金舒玄 13 흥무대왕 興武大王 김유신 金庾信 김흠순 金欽純 14 김삼광 金三光 김원술 金元述 진주 김씨 김원정 金元貞 김장이 金長耳 김시득 金施得 김반굴 金盤屈 15 김윤중 金允中 김윤문 金允文 김영윤 金令胤 16 김장청 金長淸 김암 金巖 17 김웅원 金雄元 18 김경주 金擎柱 19 김성해 金成海 김성대 金成垈 20 김정철 金挺喆 21 김수윤 金琇胤 김옥윤 金玉胤 22 김천수 金天授 김천여 金天與 23 김상좌 金商佐 24 김호 金浩 25 김화제 金華齊 26 김진유 金振酉 27 김승의 金承意 김계의 金繼意 김진의 金進意 28 김천정 金天精 29 김항령 金恒齡 30 김수성 金洙聖 31 김상흠 金商欽 김상현 金商賢 김상인 金商寅 32 김성우 金成雨 33 김일서 金一曙 34 김광국 金匡國 35 김종백 金宗栢 36 김수 金繡 37 김이탁 金以琢 38 김서천 金瑞天 39 김양철 金陽喆 40 김시추 金是秋 41 김진국 金鎭國 김정국 金定國 42 김규상 金奎祥 43 김도협 金道浹 44 김탕우 金湯雨 45 김만서 金萬瑞 46 김사맹 金師孟 47 김상주 金相宙 48 김방직 金邦直 김용직 金龍直 49 김익섬 金益銛 김관 金管 판도판서공파 版圖判書公派 50 김주국 金柱國 51 김절경 金晢卿 김목경 金牧卿 금녕군파 金寧君派 김익경 金益卿 감무공파 監務公派
분파 [ 편집 ]
김해김씨는 신라김씨의 알지계(閼智系)와 함께 우리나라 김씨의 양대산맥을 이루어 명문거족(名門巨族)으로 번성하여 왔다. 특히 김해김씨는 족세(族勢)가 크게 번창해짐에 따라 148여파로 분파(分派) 되었다. 그 중 직계종파는 김목경을 파조로 하는 경파(京派), 김익경을 파조로 하는 사군파(四君派), 김관을 파조로 하는 삼현파(三賢派)가 있다. 여기에 경파, 사군파, 삼현파마다 각각 세부적인 인물을 중조로 하여 총 24개의 공파로 구분되어 있는 등 계보가 복잡하다.
종파 경파(京派), 금녕군파(金寧君派) – 김목경(金牧卿) 참판공파(參判公派): 김영견(金永堅) 횡성공파(橫城公派): 김영서(金永瑞) 안경공파(安敬公派): 김영정(金永貞) 석성공파(石城公派): 김영순(金永純) 호참공파(戶參公派): 김진서(金震敍) 참찬공파(參贊公派): 김달문(金達門) 봉상공파(奉常公派): 김현문(金顯門) 밀직사공파(密直使公派): 김창문(金昌門) 문간공파(文簡公派): 김저(金著) 밀직공파(密直公派): 김수(金秀) 평장사공파(平章事公派): 김란(金蘭) 사군파(四君派), 감무공파(監務公派) – 김익경(金益卿) ①생원공파(生員公派): 김련(金鍊) 도총관공파(都摠管公派): 김추(金錘) ②생원공파(生員公派): 김구(金銶) 찬성공파(贊成公派): 김석(金錫) 상서공파(尙書公派): 김감(金鑑) 공간공파(恭簡公派): 김조(金銚) 삼현파(三賢派), 판도판서공파(版圖判書公派) – 김관(金管) 군수공파(郡守公派): 김건(金建) 참판공파(參判公派): 김맹(金孟) 한림공파(翰林公派): 김용(金勇) 진사공파(進士公派): 김순(金順) 녹사공파(錄士公派): 김인(金靭) 진의공파(進義公派): 김현(金鉉) 통덕랑공파(通德郞公派): 김무(金武)
천여(天與)계 첨정공파(僉正公派) – 김덕휴(金德休)
진의(進意)계 운은공파(雲隱公派) – 김대진(金大震 문경공파(文敬公派) – 김탁(金琢) 부사공파(府使公派) – 김근(金瑾) 한림공파(翰林公派) – 김관(金鑧) 충정공파(忠貞公派) – 김구(金玖) 도사공파(都事公派) – 김련(金璉)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현(金現) 휴은공파(休隱公派) – 김호(金琥) 장사군파(長沙郡派) – 김선(金璇) 대제학공파(大提學公派) – 김득하(金得河) 도총관공파(都總管公派) – 김경신(金敬臣) 판윤공파(判尹公派) – 김경보(金敬輔)
상현(商賢)계 판전공파(判典公派) – 김명택(金明澤)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불비(金不比) 좌정승공파(左政丞公派) – 김만희(金萬希) 참봉공파(参奉公派) – 김인서(金鱗瑞) 충정공파(忠精公派) – 김이장(金以障) 승정공파(承政公派) – 김종정(金宗貞)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천익(金天翼) 판결사공파(判決事公派) – 김을동(金乙棟) 진사공파(眞士公派) – 김문(金汶)
상인(商寅)계 유수공파(留守公派) – 김운(金蕓)
정국(定國)계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유공(金維公) 부호군공파(副護軍公派) – 김거공(金巨公) 승사랑공파(承仕郞公派) – 김지서(金之瑞) 부정공파(副正公派) – 김평(金平) 양의공파(襄毅公派) – 김경서(金景瑞) 판서공파(判書公派) – 김첨검(金添劍)
항렬자 [ 편집 ]
경파(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17세
67세 18세
68세 19세
69세 20세
70세 21세
71세 22세
72세 23세
73세 24세
74세 25세
75세 26세
76세 27세
77세 28세
78세 29세
79세 30세
80세 31세
81세 32세
82세 33세
83세 口현(鉉) 제(濟) 口식(植) 현(顯) 口배(培) 종(鍾)
석(錫) 口태(泰)
口수(洙) 영(榮)
동(東) 口겸(謙)
口섭(燮) 재(載)
재(在) 口진(鎭) 호(浩) 口근(根) 병(炳)
성(性) 口곤(坤)
口용(用) 호(鎬) 口순(淳)
사군파(四君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17세
67세 18세
68세 19세
69세 20세
70세 21세
71세 22세
72세 23세
73세 24세
74세 25세
75세 26세
76세 27세
77세 28세
78세 29세
79세 30세
80세 31세
81세 32세
82세 33세
83세 34세
84세 35세
85세 36세
86세 37세
87세 38세
88세 석(錫) 口태(泰) 상(相) 口현(炫) 재(在) 口호(鎬) 영(永) 口식(植) 형(炯) 口규(奎) 용(鎔) 口순(淳) 동(東) 口훈(勳) 중(重) 口회(會) 원(源) 口주(柱) 찬(燦) 口기(基) 종(鍾) 口섭(涉)
삼현파(三賢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16세
64세 17세
65세 18세
66세 19세
67세 20세
68세 21세
69세 22세
70세 23세
71세 24세
72세 25세
73세 26세
74세 27세
75세 28세
76세 29세
77세 30세
78세 31세
79세 32세
80세 33세
81세 34세
82세 35세
83세 36세
84세 현(顯) 재(再) 국(國)
口규(圭) 창(昌) 口두(斗) 용(容) 口곤(坤) 종(鍾)
진(鎭) 口수(洙)
口태(泰) 상(相)
동(東) 口희(熙)
口환(煥)
정(廷)
재(在) 口호(鎬)
口진(鎭) 영(永)
문(汶) 口근(根)
口표(杓) 병(炳)
경(炅) 口채(埰)
口기(基) 석(錫)
명(銘) 홍(洪)
순(淳) 주(柱)
계(桂) 口하(夏)
口열(烈) 한림공파(翰林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19세
72세 20세
73세 21세
74세 22세
75세 23세
76세 24세
77세 25세
78세 26세
79세 27세
80세 28세
81세 29세
82세 30세
83세 31세
84세 32세
85세 口원(源) 봉(鳳) 口병(炳) 녕(寧) 口성(成) 범(範) 口강(康) 재(宰) 口정(廷) 규(揆) 口만(萬) 원(元) 口병(柄) 口정(汀)
문경공파(文敬公派, 파조로 1세, 시조로 1세)
17세
71세 18세
72세 19세
73세 20세
74세 21세
75세 22세
76세 23세
77세 24세
78세 25세
79세 26세
80세 27세
81세 28세
82세 29세
83세 30세
84세 31세
85세 32세
86세 항(抗) 口후(厚) 하(夏) 口관(寬) 영(永) 口모(模) 희(熙) 口재(載) 용(鏞) 口태(泰) 래(來) 口섭(燮) 규(奎) 口련(鍊) 홍(洪) 口표(杓)
과거 급제자 [ 편집 ]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문과 128명, 무과 536명, 사마시 471명, 역과 59명, 의과 39명, 음양과 15명, 율과 33명, 주학 8명이다.
인물 [ 편집 ]
신라 [ 편집 ]
고려 [ 편집 ]
김상좌(金商佐) : 수로왕(首露王)의 23세손. 고려 개국의 원훈이며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가 왕건(王建)에게 위탁해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 수로왕(首露王)의 23세손. 고려 개국의 원훈이며진성여왕 때에 신라가 혼탁하여 김상좌가 왕건(王建)에게 위탁해 고려 개국을 도운 공으로 삼중대광(三重大匡)에 올랐다. 김보(金普) : 김목경(金牧卿)의 맏아들. 공민왕(恭愍王)이 세자 때 국가(國家)의 사절로서 중국(中國)의 북경(北京)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 김목경(金牧卿)의 맏아들. 공민왕(恭愍王)이 세자 때 국가(國家)의 사절로서 중국(中國)의 북경(北京)에 갈 때 시종(侍從)한 공으로 일등공신(一等功臣)의 호(號)를 받았다. 김유(金庾) : 강릉도병마사로서 홍건적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했으며 탐라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 강릉도병마사로서 홍건적을 격파하고 개경(開京)을 수복하고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했으며 탐라의 목호(牧胡)를 토벌했다. 김저(金佇) :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전부령 정득후(鄭得厚)와 함께,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 시중 최영(崔瑩)의 생질. 전부령 정득후(鄭得厚)와 함께, 폐왕 우왕을 만나 이성계를 살해하라는 부탁을 받고, 이성계의 집에 잠입하여 암살하려다 실패해 ‘김저의 옥사’가 일어났다. 김진문(金振門): 김익경(金益卿)의 손자. 고려말에 예의판서(禮儀判書)를 거쳐 대제학(大提學)에 올랐으나 조선이 개국하자 관직을 버리고 이색(李穡), 박자검(朴自儉) 등과 함께 은둔 생활하여 절의를 지켰다.
조선 [ 편집 ]
일제강점기 [ 편집 ]
대한민국 [ 편집 ]
사당 [ 편집 ]
숭선전(崇善殿) : 시조 수로왕·보주태후 휘 황옥 배향
숭안전(崇安殿) : 가락 2대 ~ 9대 왕과 왕후 배향
덕양전(德讓殿) : 양왕·계화왕후 배향
숭무전(崇武殿) : 흥무왕 김유신·지소부인 배향
왕실과의 인척 관계 [ 편집 ]
신라 [ 편집 ]
신라 아양공주(진흥왕의 차녀) 부마 김무력 [5]
신라 태종무열왕 왕비 문명왕후
신라 태종무열왕 후궁 영창부인
신라 지소공주(태종무열왕 3녀) 부마 김유신
신라 문무왕 후궁 신광부인
보로전군(진평왕의 서자) 정비 작광부인
신라 성덕왕 왕비 성정왕후 [6]
신라 군부인 김씨(신무왕의 딸) 부마 김경주[7]
조선 [ 편집 ]
인구 [ 편집 ]
2000년 1,295,080가구 4,124,934명
2015년 4,456,700명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성씨이며, 김씨 중에서도 가장 많은 41.7%를 차지하고 있다. 2000년 서울 81만 5천 783명, 부산 40만 7천 41명, 대구 19만 9천 252명, 인천 20만 7천 736명, 광주 14만 8천 736명, 대전 9만 6천 887명, 울산 10만 4천 627명, 경기 71만 8천 661명, 강원 10만 7천 612명, 충북 8만 6천 978명, 충남 14만 151명, 전북 17만 3천 712명, 전남 26만 8천 525명, 경북 23만 7천 826명, 경남 35만 12명, 제주 6만 1천 395명이다. 부산과 경남지역에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다.
구분 [ 편집 ]
신라계 김해 김씨는 김녕 김씨라고 하여 가야계 김해 김씨와 구분한다. 또는 사성 김해 김씨는 우록 김씨라고 한다.
분가 [ 편집 ]
허씨 – 가락국 수로왕비 허황옥(許黃玉)을 연원으로 삼는 성씨다.
인천 이씨 – 허황옥의 23세손 이허기(李許奇)를 득성조라고 하고 상서좌복야 이허겸(李許謙)을 시조로 하며 태인 허씨에서 분관되었다.
금릉 김씨 – 금관가야 구형왕(仇衡王)의 셋째 아들 김무득(金武得)을 시조로 한다.
진주 김씨(가락계) – 김유신의 차남 김원술을 후예라는 설이 있다.
무장 김씨 – 시조는 김수로왕의 후손 충절공 김선(金璇)이다. 일부 후손들은 김해 김씨 장사군파로 칭하고 있다.
분적설 [ 편집 ]
남양 김씨 – 김수로왕의 후예로써 고려 의종 때 사람인 김적(金適)을 시조로 한다.
웅천 김씨 – 조선조에서 수의부위에 오른 김중재(金重材)를 일세조로 하여 세계를 이어오고 있다.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 김유신의 적손인 김윤중(金允中)이 성덕왕 때 일반귀족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김유신의 현손 김장청(金長淸) 역시, 집사부의 말단직 집사랑(執事郞)을 지냈을 뿐이다. 김융(金融)의 난과 관련 있어 보인다. ↑ 김웅원(金雄元)이 이사도 의 난을 진압하고 이어 김헌창 의 난을 진압하는데 큰 공을 세우고 신무왕 의 사돈이 된 것으로 보아 몰락하였던 김유신 의 가계가 다시 부흥한 것으로 보인다. ↑ 조선 연산군대 탁영 김일손 (金馹孫)의 사초에 수록한 「조의제문(弔義帝文)」(세조의 왕위찬탈을 비판한 내용)을 빌미로 훈구세력에 의해 일어난 사화 ↑ 연산조의 학자 성현 은 『용재총화』에서「옛날에는 성했다가 지금은 쇠한」씨족을 지적하는 가운데 김해김씨를 하나로 들고 있다. ↑ 금관가야의 마지막 국왕인 구형왕의 셋째 아들이자, 김서현의 아버지이며, 김유신의 할아버지이다. ↑ 김유신의 아우 김흠순의 손녀로 보고 있다. ↑ 김유신의 5대손이자 잡찬 김웅원의 아들이다.
[기획] 김해김씨는 정말 ‘그곳’에 점이 있어? [브레이크 고장 난 박기자]
[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저는 어릴 적부터 궁금증이 생기면 브레이크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추진력이 굉장했냐면 업무적으로 막힌 부분을 해결하고자 이등병 때 육군 인사 참모에게 전화해 원활히 처리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궁금증 해결 능력(?)을 바탕으로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봤던 주제들을 깊이 파고드는 기획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정말로 ‘김해김씨’는 그곳에 점이 있어?”
김해김씨 남자들의 그곳에 점이 있는지 궁금해하고 있다. 사진=’웃긴대학’ 갈무리/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지난 15일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 ‘웃긴대학’의 게시판에 ‘진짜 이상한 말 들었는데 진위 여부 확인 가능해?’ 라는 글이 올라왔다.
글에서 작성자 만만*** 씨는 “김해김씨인 남자들은 그곳(순화된 표현)에 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진짜인지 궁금해”라고 의문을 표했다.
자신이 김해김씨라고 밝힌 맥** 씨는 댓글에 “김해김씨인데 진짜로 점이 있다”며 “나는 그냥 애교점이라고 생각했는데 유전적인 요인일 수도 있다니 웃기다”라고 적었다.
이 글에서 영감을 받아 직접 조사해보기로 했다.
처음으로 발견한 실마리는 김해김씨의 시초인 김수로왕의 설화였다.
이 설화는 ‘가야의 김수로왕이 폭우로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노인을 위해 남근을 세워 강을 건너게 해 주었고, 강을 건넌 노인이 담뱃대를 수로왕의 남근에 톡 쳐서 상처가 남았는데 이 상처가 점이 되어 김해김씨에게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라는 내용이다.
삼국유사의 가락국전에는 해당 설화가 없었다. 사진=한국민족대백과 제공/굿모닝충청=박종혁 수습기자
이 설화의 출처 확인을 위해 삼국유사의 가락국(가야)전을 찾아봤으나 유사하거나 같은 내용은 없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제공한 가락국전 구지가의 해석 중에서 남근과 관련된 표현은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어놓아라’ 라는 문구에서 ‘머리’는 남근(男根)을 의미할 수도 있다는 것뿐이었다.
김수로왕의 담뱃대 관련 설화가 사실이 아닌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금관가야는 532년, 대가야는 562년에 각각 멸망했으나, 우리나라의 첫 흡연자는 1587년생 태어난 ‘장유’ 씨로 가야의 건국 시기와 담배도입 시기는 서로 맞물리지 않는다.
설화를 통한 탐색 실패에 굴하지 않고 “김해김씨가 정말로 그곳에 점이 많다면 통계적으로도 차이가 있지 않을까”라는 물음이 생겨 소규모 연구를 해 보기로 했다.
연구 설계 관련 도움을 준 익명의 심리학 석사는 “표본집단의 수가 적어서 대표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며 “이 점을 주의해 즐겁게 보셨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구글 드라이브 설문조사 예시. 사진=제공/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조사를 위해 구글 드라이브 설문 기능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빅데이터(이하 딕데이터)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딕데이터 취합은 ‘블라인드’, ‘뽐뿌’, ‘웃긴대학’ 등 온라인 커뮤니티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진행됐으며, 총 130여 명의 성인 남녀가 참여했다.
여담으로 ‘김해김씨’ 종친회에 협조를 구하려고 했으나,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상관분석 결과 김해김씨는 다른 성씨보다 생식기에 점이 있을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제공/굿모닝충청 박종혁 수습기자.
딕데이터 분석결과 ‘김해김씨’ 중 87.3%가 생식기에 점이 있었고, 그 외 다른 성씨들은 68.6%가 점이 있었다.
상관관계 분석 결과 이 조사는 통계적으로 유의했으며, ‘김해김씨’와 ‘그 외 다른 성씨’는 ‘생식기의 점 여부‘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통계적으로 ’김해김씨는 다른 성씨보다 생식기에 점이 있을 확률이 높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작권자 © 굿모닝충청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들은 공통된 ‘한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성씨는 김해 김(金)씨이다.
김해 김씨는 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 한국 전체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모두가 가야 수로왕의 진짜 후손일까?
많은 연구가들은 구한말 등 사회가 혼란하던 시대에 사고판 성씨와 족보일거라고 추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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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인지, 혹시라도 가야의 왕족 성씨인 김해 김씨 족보를 산 하층 계급의 후손인지 알 수 있는 간단하고 재밌는 방법이 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설화에 따른 특징이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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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물론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재미로 한 번쯤 확인 해 볼 만하다.
바로 생식기에 점이 있는지 없는지를 찾아보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김해 김씨 후손은 모두 생식기에 점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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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장에는 흥미로운 전설이 덧붙는다.
그 옛날 김해 김씨의 시조인 가야의 수로왕은 남근이 엄청나게 컸다고 한다.
수로왕이 여행을 떠난 어느 날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어느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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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수로왕은 남근을 세워 다리를 만들어 노인을 건너게 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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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넌 노인은 “고놈 참 용하네” 하며 들고 있던 담뱃대로 수로왕의 남근을 살짝 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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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뱃대의 불똥이 떨어져 상처가 돼 점으로 남았다.
이후 김해 김씨의 후손은 거진 국부에 점을 달게 되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또한 이와 관련된 또 다른 설화도 있다.
어느 날 가야에 큰불이 나 모든 백성이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불길은 거세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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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로왕이 불이 난 자리에 오줌발을 쏘자 불이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따라 했지만 수로왕의 오줌발만이 효력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도 치마폭을 걷어붙이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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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불이 난 곳을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왕과 왕비의 국부에 튀었고, 이후 왕과 왕비의 후손들에게서는 점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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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설을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식이 태어나면 김씨 식구들이 모두 몰려와 갓난아기의 생식기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주부들의 경험담도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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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혹은 아버지가 김해 김씨라면 재미삼아 자신이 왕족의 후손인지 확인해 보자.
“‘김해 김씨’ 친구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이 있다”
가야 김수로 왕과 허황옥 왕비 / 경남관광협회
[인사이트] 황효정 기자 = 대한민국 최대의 성씨 집단, 김해 김(金)씨.우리나라 전체 김씨의 40%를 차지하고 있으며 한국 전체 인구의 10%에 육박한다. “서울 시내에서 돌을 던지면 십중팔구 김해 김씨가 맞는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출신을 믿어 의심치 않는 당신이 진짜 김해 김씨의 후손인지, 혹시라도 가야의 왕족 성씨인 김해 김씨 족보를 산 하층 계급의 후손인지 알 수 있는 간단하면서도 조금은 특별한 방법이 있다.
비록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재미로 한 번쯤 체크해보자. 딱 하나 필요한 준비물은 당신의 생식기다.
일설에 따르면 김해 김씨 후손은 생식기에 점이 있다. 여기에는 엄청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tvN ‘SNL 코리아’
그 옛날 가야의 수로왕은 남근이 크기로 유명했다. 커도 너무 컸다. 커다란 수로왕이 여행을 떠난 어느 날이었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강물이 불어나 어느 노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는 모습을 본 수로왕은 남근을 세워 다리를 만들어 노인을 건너게 해주었다.
다리를 건넌 노인은 “고놈 참 용하네” 하며 들고 있던 담뱃대를 수로왕의 남근에 톡 쳤는데, 이때 불똥이 떨어져 상처가 돼 점으로 남았다. 이후 김해 김씨의 후손은 거진 국부에 점을 달게 됐다.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주인공은 물론 수로왕이다.
어느 날 가야에 큰불이 났다. 모든 백성이 불을 끄려고 시도했으나 꺼지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수로왕이 오줌발을 불이 난 자리에 쏘자 그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이를 본 사람들이 따라 했지만 수로왕의 오줌발만이 효력이 있었다. 이를 곁에서 지켜보던 왕비도 치마폭을 걷어붙이고 오줌을 누기 시작했는데, 이 또한 불을 꺼뜨렸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 ole.com
부부는 돌아다니며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에 불똥이 왕과 왕비의 국부에 튀었고, 이후 왕과 왕비의 후손들에게서는 점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모두 김해 김씨의 시조인 수로왕에 관한 전설이다. 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증거는 없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설을 믿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자식이 태어나면 김씨 식구들이 모두 몰려와 갓난아기의 생식기를 유심히 살펴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는 주부들의 경험담도 있다.
또 속설은 지금까지도 유효해서 확인해 본 김씨 후손들의 말에 따르면 점이 있는 경우가 의외로 꽤 많다고.
부계 쪽이든, 모계 쪽이든 당신이 김해 김씨의 핏줄이라면 한 번 은근슬쩍 확인해보자. 재미 삼아 말이다. 점이 있다면, 당신은 그 옛날 왕족의 후손이다.
김해 김씨
여주의 김해 김씨(金海 金氏)는 참판공파(參判公派)와 안경공파(安敬公派)로 나뉜다. 참판공파와 안경공파는 삼중대광(三重大匡) 벼슬을 지낸 51세 김녕군(金寧君) 목경(牧卿)의 6세손인 56세 진손(震孫)의 네 아들로 이루어진 소위 경사파(京四派)의 하나다. 네 아들의 이름은 영견(永堅), 영서(永瑞), 영정(永貞), 영순(永純)으로 각기 참판공파(參判公派), 횡성공파(橫城公派), 안경공파(安敬公派), 그리고 서윤공파(庶尹公派, 또는 석성공파)의 파조가 된다.
참판공 영견의 6세손 62세 덕승(德承)의 세 아들은 홍경(洪慶), 홍명(洪命), 홍복(洪福)인데 홍경의 둘째아들이 충정공(忠靖公) 우항(宇杭, 1649~1723, 호는 甲峯)으로 우의정을 지냈다. 여주로의 입향은 17세기 후반으로 셋째 김홍복(1649~1698, 호는 東園)에서 시작된다. 원래는 장단(長湍)이 이들의 터전으로 그가 여주목사를 지낸 것이 입향의 계기가 된 듯하다. 그러나 족보를 보면 그의 증손인 66세 형조(亨祚) 때부터 주내면, 즉 여주시 점봉동 웅곡(雄谷)에 묘를 썼다.
안경공파의 경우는 안경공 영정(1437~1509, 묘는 長湍 梅峴里)의 7세손 63세 대민(大敏, 1684~1745)이 용인에서 강천면 적금리(赤今里) 신대촌(新垈村)에 입향하면서 후손이 퍼졌다. 강천면 이호리에 선영이 있고, 가남읍 태평리와 북내면 등에도 분포한다.
『조선의 성』에 나온 자료를 참고하면 김해 김씨는 강천면 적금리에 24호가 산다고 되어 있다.
김해 김씨 얼굴은 까무잡잡한가
언젠가 김 총각 얼굴색이 유달리 까무잡잡하기에 “여름에 얼굴이 타면 본색으로 잘 돌아오지 않는 나하고 비슷하네요”라고 했다. 그러자 “저 김해 김입니다. 혈통의 반이 인도입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야, 진짜로 김해 김씨는 인도사람과 관련 지어 볼 만하다고 여겼다.
까무잡잡한 인도혈통에 대한 얘기를 듣다가 김유신 장군의 혈통과 김수로왕 그리고 허황후에 대한 상념이 떠올랐다.
김유신은 김해 김씨다. 그의 선조들은 가야계 인물이다. 그들은 김해쪽에서 경주로 넘어와 신라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공을 세웠다. 그런 김유신의 부친과 조부의 묘소가 울산에 있다는 전설이 있다.
울산읍지에 따르면 황룡연의 서남쪽에 은월봉이 있으며, 이 산자락에 은월사(隱月祠·남구 신정동)가 있어 후손들이 제향하고 있다고 한다. 은월봉이란 태화강가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서 달그림자가 이곳에 이르면 숨어서 비추는 듯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12개의 봉우리를 가진 지금 남산(南山)의 원래 이름이다.
그런데 은월산에 딸린 전설에 의하면, 신라의 삼국통일에서 주도적인 인물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할아버지인 각간 무력(角干武力公·금관가야 제10대 구형왕의 아들)과 아버지 서현(舒玄) 공의 묘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김유신이 울주군 두동에 있던 천전리 서석대(誓石臺·천전리각석)의 화랑수련장에 갔다가, 조부와 선친의 묘소가 있는 은월봉을 찾고 월성(경주)으로 돌아 갈 때 ‘큰 말’를 타고 이곳을 지나갔다고 한다. 그래서 이 산의 또 다른 이름이 거마산(巨馬山)이고 마을 이름이 거마동이란 것이다. 김유신 관련된 울산의 유적지는 두서면의 백운산 김유신 기도소와 이미 대암댐에 잠긴 삼동면 보은천(寶隱川) 변에 축선사지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태화강 줄기에 김유신을 기리는 절이 있고,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묘가 있다는 것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수구지심이랄까, 가급적 김해에 가까운 곳에 묘소를 구하느라 울산에 묘자리를 정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김해 김씨들이 인도의 혈통을 이어받았다는 얘기의 근원에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삼국유사 기이(奇異) 권 제2의 가락국기(駕洛國記)에 보면 서기 48년 김수로왕은 하늘의 명령을 받아 김해의 망산도(望山島)에서 배필을 기다렸다. 붉은 빛의 돛과 깃발을 펼친 배가 도착하여 왕후가 될 여인과 시종해 온 신하가 내렸다.
여인이 말하길 “나는 아유타국(阿踰陀國)의 공주로서 성은 허씨(許氏)이고, 이름은 황옥(黃玉)이며 나이는 열여섯입니다”고 말한다. 왕이 허황옥을 맞아 비(妃)로 삼았다. 이 때가 신라 제3대왕 유리 이사금(儒理尼師今) 재위 25년이다.
고고학자 김병모 교수가 허 황후의 뿌리를 추적한 결과 아유타국이 인도 남동쪽 아요디아로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1세기에 북방 월지족(月氏族)의 지배를 받으면서 그 나라의 지배층은 쫓겨나 중국 서남 고원지대를 거쳐 사천지방인 촉(蜀)나라에 정착하였다고 발표했다.
조선시대 때 세운 김해의 허황후릉 능비(陵碑)에는 가락국 수로왕비 보주태후 허씨릉(駕洛國 首露王妃 普州太后 許氏陵)이라고 새겨져 있는 것에서 허 황후가 보주란 곳과 연관이 있다고 보고 추적한 끝에 보주가 사천성 안악현(安岳縣)임을 알아낸 것이다. 그곳에서 서기 48년 전 해에 반란을 일으켜 다시 강제 이주를 당해야 했는데 그 반란을 주모한 가성(家姓)이 허씨임을 후대 기록에서 확인했다. 얼굴이 까만 인도 소녀 허황옥은 오빠와 더불어 장강(長江)을 타고 삼협(三峽)을 거쳐 황해로 나와 김해 앞바다에 이른 보트 피플이었다.
한국유전체학회에서 나온 논문에는 “약 2천년 전 가야시대 왕족의 것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분석한 결과 인도 등 남방계와 비슷한 유전정보를 갖고 있었다”고 밝히면서, 우리 민족의 기원이 북방·남방계가 합쳐진 이중기원설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허황후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 등의 왕족 유골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해보니 “인도인의 DNA 염기서열과 가까워 이들이 남방 쪽에서 건너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했다.
이런 연구결과를 보면 김해 김씨 즉 김수로왕과 그의 비 허황옥의 후예인 김 총각이나 김유신의 DNA에는 인도의 혈통이 있었을 것이란 추정을 할수 있다.
전옥련
울산문화관광 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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