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통달 | 조통달 명창 40대 전성기 모습 –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 (1986년) 162 개의 가장 정확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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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넷(태내)짓은 말려도 안 된답니다. 강보에 싸인 채 보고 들은 게 일류 명창들 소리였고 만난 사람들 모두가 전통 예술인들이었으니 평생 해먹고 살 일 뻔하잖습니까.”
조통달(趙通達, 1945년 4월 26일생) 명창은 어머니 태를 가르며 내지른 첫소리가 평생 소리꾼 팔자를 가름해 놓은 울부짖음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문화재 제5호(준문화재, 1988년 지정)로 전남 도립 남도국악단 상임 지휘를 맡고 있는 조씨는 TV 국악프로에도 심심찮게 출연, 일반 대중에게도 꽤나 낯익은 얼굴이다.
코미디언 백남봉, 남보원, 조정현, 김병조 씨 등이 토막소리를 뽑아 대며 한 수 높은 재담을 하는 것도 조명창이 싸잡고 가르쳐 준 덕이다. 탤런트 김수미, 가수 이선희도 조씨한테 판소리를 학습한 뒤 전통 가락에 심취하여 국악과 양악의 접목에 한몫을 해내고 있다. 7년 전 가요계에 데뷔하여 ‘혼자 떠나는 여행’, ‘아흔아홉 날의 홀로사랑’ 등을 부른 가수 조광호(趙光虎) 군은 조통달 씨의 친아들이다.
이렇듯 ‘중년 이후의 팔자’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호쾌남아 조씨도 출생에 얽힌 생모와의 한, 의부한테 짓밟혀 온 유년 시절을 되살리면서는 눈물을 흘렸다. 때로는 콩밭에 송아지 뛰듯 자유분방하게 살아 온 과거지사를 들추며 고개를 떨구기도 한다.
조씨가 어머니라고 부르는 여류 명창 박초월(朴初月, 본명 삼순, 1916~1983, 인간문화재 제5호) 씨는 생모가 아닌 친이모다. 친모(박점례, 생존)가 전북 익산군 황등면 어느 양철집에서 낳아 일점 혈육 없던 박초월 씨에게 위탁해야 했던 곡절 등은 역시 묻어 둬야 할 내용들이다.
조명창의 외가는 전남 승주군 주암면 봉암리로 외할머니 배씨는 ‘봉암 지무(知舞)’라 하여 호남에서 알아주던 3대 큰무당이었다. 외할아버지(박덕삼) 또한 ‘박 도구대’란 별명으로 전라도에서 제일 가던 전통 예술인이었다. 딸 9형제 중 큰이모(박초선)는 일제 때 여류 명창이었고, 일곱째 이모(박옥주)는 조씨와 군산에 함께 살며 창을 배웠다. 박초월 명창은 셋째 이모가 된다.
익산에서 출생한 조씨는 어머니(이하 박초월 명창을 지칭함) 따라 경기도 소사에서 몇 년 살다 전북 군산(개복동)으로 내려간다. 떡애기(갓난아기) 때부터 어머니 품에 안겨 창을 들어 오며 4~5세 때는 중모리, 중중모리, 북장단을 넣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한때는 박초월 씨가 소리를 못하게 말리며 “너 죽고 나 죽자.”고 덤벼들었으나 타고난 통목(뛰어난 목소리)에 탄복하여 “기왕 나설 예술가 생활이라면 뭐든지 통달해야 한다.”며 이름 조차 ‘통달’로 바꿔 주었다고 한다. 이래서 본명 ‘동규(東奎)’를 버린 게 일곱 살 적이다.
조씨에게는 어머니 울력으로 훌륭한 스승들을 어렵잖게 만나는 행운이 뒤따랐다. 군산에서 거문고의 달인 신쾌동(申快童) 씨를 만나 산조를 배우고, 9세 때 전주로 이사 가서는 서당에서 천자문 등 학문을 익힌다. 다시 어머니 따라 서울 다옥동(현 중구 다동)으로 이사 오면서 조씨의 앞날은 명창의 길로 들어서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임방울(林芳蔚) 명창을 집에 모셔 놓고 수궁가와 적벽가를 배우고 박귀희(朴貴姬) 씨에게 흥부가를, 김동준(金東俊, 김연수 명창 수제자) 씨를 만나서는 춘향가를 얻는다.
박초월 씨는 박귀희, 김소희(金素姬) 씨와 한국민속예술학원(현 국악예술고등학교 전신)을 설립, 후진 양성에 기여한 공로가 큰 족적으로 남아 있다. 조씨도 이곳에서 중ㆍ고 과정을 마치면서 한영숙(韓英淑, 민속춤), 김윤덕(가야금 산조), 성금연(成錦鳶, 가야금 산조), 남민(연출), 이진숙(연기) 선생을 만난다. 이후 정철호(鄭哲鎬), 서용석(徐龍錫, 친형) 씨가 조씨에게 아쟁을 가르쳐 주니 그의 몸은 전통 예술의 덩어리가 되고 만다.
이 당시(12~16세) 서울 가회동과 운니동에 살며 독공한 사연은 하늘과 땅만이 알 것이라고 한다. 삼청동 뒷산을 축시(새벽 1~3시)에 오를 때 ‘도깨비불’을 본 일, 산짐승을 만나 혼비백산한 곡절은 혼자만 보듬고 있다.
어머니 몰래 가출하여 보성 정응민(鄭應珉) 선생을 찾아가 심청가를 배우느라 속썩인 일은 지금 생각해도 죄스럽다고 겸연쩍어한다. 기를 불러 모으면 하루 일이 내다보인다는 조씨는 임방울 명창이 비몽사몽간에 내려준 통목과 수리성,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씨가 꿈을 통해 고스란히 넘겨준 소리제 등을 굳게 믿고 있다.
“걸쭉하게 살아 왔지요. 주위 사람 속도 썩인 편이고······. 그래서 이젠 후진 양성에만 전념합니다. 특히 사내 후계자를 맘먹고 키워 낼 작정입니다.”
국립창극단의 제1 주연 배우로 전국명창대회 1등, 전주대사습 명창대회 장원(제8회), 전국국악경연대회 대통령상 등 수많은 상을 탔지만 조씨는 13세 때(1959년) 전국명창대회서 받은 최우수상을 가장 잊지 못한다.
변성기 때 목을 잃어 20년 가까이 좌절, 인분까지 먹어야 했던 조명창의 소리는 공연장 마이크를 사용 않고도 장내를 사로잡아 버린다. 특히 1988년 유럽 7개국 11개 도시를 38일간 순회하며 완창한 춘향가는 세계적으로 무한한 감동을 주었다고 한다.
구한말이나 일제 강점기 명창들은 과다한 독공으로 목청을 잃을 때 흔히 인분을 먹어 왔다. 오늘날같이 좋은 약이 없었던 시절 이야기지만 독자들한테 “그걸 어떻게 먹느냐.”는 문의도 적지 않았다.
“굵직한 생대(왕죽) 마디를 양쪽으로 잘라 수십 개씩 재래식 변소에 깊숙히 담가 놓습니다. 그러니까 대나무 가운데는 빈 거죠. 5~6개월 지나면 삼투 현상으로 노르스름한 청수가 괴는데 이걸 3일이나 1주일에 한 번씩 음용하는 겁니다.”
조통달(명창)
남자 후계자가 많다. 왼쪽부터 제자 김형기, 유준열.
조명창은 광주 남도국악원에서 많은 명창들을 길러 내고 있다. 김형기(56, 서울)ㆍ유준열(34, 전남 도립국악단 사무장)ㆍ남정태(37, 서울대 국악과 졸업)ㆍ지강훈(38)ㆍ이재영(31, 국립극장 창극단원) 등의 남자 제자들과 김소연(49)ㆍ김미숙(전북대 국악과 4년)ㆍ정미경(서울예전 재학)ㆍ박영순(전북대 국악과 1년). 이현미(남도예고 3년)ㆍ코미디언 조정현 씨 딸 곽인주(서울 구정국교 4년) 등이 단전에서 우러나는 조명창 소리제를 이어간다.
어머니한테 받은 다섯 바탕 소리와 임방울 명창이 ‘환생’한 듯한 수궁가, 적벽가는 제대로 들어 봐야 그 참맛을 알 수 있다.
조통달 – 유럽 성악계도 매료된 ‘통목’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전통 예인 백사람, 초판 1995., 4쇄 2006., 이규원, 정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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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통달 (본명:조동규, 1945.6.28~) < 예술지식백과 < 문화지식 ...

예술가: 조통달 (본명:조동규, 1945.6.28~); 출생지: 전라북도 익산; 구분: 중요무형문화재; 문화재관련정보: 1977.2.14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 선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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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9/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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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통달: 대한민국의 가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 …

조통달(趙通達, 1945년 6월 6일(음력 4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다. … 본관은 김제(金堤)이고 아명(兒名)은 조동규(趙東奎)이며 호(號)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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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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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관우父국창 조통달 “보듬어주지 못해 미안해 … – 조선일보

조관우는 국악까지 섭렵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서 “할머니가 인간문화재 명창 고 박초월, 할머니 뒤를 이어 아버지도 판소리로 인간 문화재 조통달 국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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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hosun.com

Date Published: 9/2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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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 명창 조통달

판소리 명창 조통달 조통달(趙通達, 1945- )은 전북 익산군 황등면(현재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태어난 판소리 명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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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sd.or.kr

Date Published: 8/2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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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통달 명창 40대 전성기 모습 -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 (1986년)
조통달 명창 40대 전성기 모습 –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 (1986년)

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조통달

  • Author: 판소리 – Korean Traditiona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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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9. 11. 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zS0X4Td81wE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조통달(趙通達, 1945년 6월 6일(음력 4월 26일) ~ )은 대한민국의 판소리 명창이다.

본관은 김제(金堤)이고 아명(兒名)은 조동규(趙東奎)이며 호(號)는 우방(宇邦)이다.

생애 [ 편집 ]

전라북도 익산 황등면에서 출생하였으며 한때 전라북도 김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한때 전라북도 전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전라북도 남원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명창 미산 박초월 여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정성껏 지도한 수제자이다. 그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스승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를 차례로 이수하였으며, 당시 국창으로 추앙을 받은 임방울에게서 《수궁가》와 《적벽가》를 학습하였다. 그리고 명창 정권진 선생에게서 강산제 심청가를 수업받은 후 10년을 하루같이 각고탁마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1967년 신인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1968년 창극배우로도 데뷔한 그는 1982년 제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영광의 대통령상을 받게 되어 그 명성이 알려졌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창극의 주인공 역을 도맡았다.

1991년에는 전라남도 도립국악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여 현재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영화 《휘모리》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가족 관계 [ 편집 ]

월북 국악인 조상선의 차남이고 박초월은 조통달의 셋째 이모이며, 큰이모는 일제 강점기의 명창 박초선이고 가수 조관우가 그의 아들이다.

학력 [ 편집 ]

기타 이외 이력 [ 편집 ]

전라남도 도립국악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

세종전통예술진흥회 이사장

전라북도 익산 조통달 판소리 전수관 이사장

서울예술전문대학 국악학과 전임강사

외부 링크 [ 편집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Wiki 한국어 2022

본관 은 김제 (金堤)이고 아명 (兒名)은 조동규 (趙東奎)이며 호 (號)는 우방(宇邦)이다.

전라북도 익산 황등면에서 출생하였으며 한때 전라북도 김제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 후 한때 전라북도 전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는 이후 전라북도 남원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명창 미산 박초월 여사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며 정성껏 지도한 수제자이다. 그는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에 다니면서 스승에게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를 차례로 이수하였으며, 당시 국창으로 추앙을 받은 임방울에게서 《수궁가》와 《적벽가》를 학습하였다. 그리고 명창 정권진 선생에게서 강산제 심청가를 수업받은 후 10년을 하루같이 각고탁마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1967년 신인명창대회에서 1등을 차지했고, 1968년 창극배우로도 데뷔한 그는 1982년 제8회 전주대사습놀이 전국대회 판소리 명창부에서 영광의 대통령상을 받게 되어 그 명성이 알려졌다. 국립창극단에 입단하여 창극의 주인공 역을 도맡았다.

1991년에는 전라남도 도립국악단 단장 겸 상임지휘자로 부임하여 현재 광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영화 《휘모리》의 단역으로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무엇이든 통달하라 조통달··· 66년 소리인생 행복”

▲ 세상 모든 소리를 담아내며 평생 소리를 했지만 후회없이 행복하다는 우방 조통달 명창.

작은 고추가 맵다는 말이 있다.

조통달 명창을 직접 만나면 영락없다.

호탕한 성격에 시원시원한 말투는 작은 키를 상쇄시킨다.

한 시간 가량 늦게 도착했지만 ‘그럴 수도 있지’란 표정이다.

괜히 더 미안해진다.

인터뷰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진행됐다.

구수한 명창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울다 웃다를 반복한다.

화려하고 거침없는 언변을 듣노라면 말 역시 소리일 터. 그는 타고난 소리꾼임에 틀림없다.

우방 조통달(70) 명창을 만나보자.

/편집자주

“뱃속에서부터 소리를 배웠다. 내로라하는 명창들 소리를 듣고 자랐으니 내가 가야할 길은 뻔하지 않은가.

평생 소리를 했지만 후회는커녕 무척 행복하다. 남은 여생도 그렇게 보낼 것이다.”

익산 황등 출신인 조통달 명창은 태어나자 생모의 곁을 떠나 이모 밑에서 자랐다.

손이 귀한 시절 양자로 가는 것은 흔한 시절이었다.

어머니라 부르는 이모는 그 유명한 여류 명창 박초월이다.

조통달 명창은 갓난아기 때부터 타고난 능력으로 주위를 놀라게 해 피를 속일 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당연지사 소리하겠다고 나서니 박초월 명창이 만류했다.

소리를 가르쳐 주지 않았다.

돈도 못 벌고 사람들이 멸시한다는 이유에서다.

소리를 하면 몽둥이로 팰 정도였다.

하지만 타고난 끼와 재능을 알아챈 박 명창은 ‘이왕 할 것 제대로 해라’란 의미에서 이름을 ‘통달’로 바꿔 주었다.

무엇이든지 통달하라는 뜻에서다.

본명인 조동규에서 조통달로 태어난 게 일곱 살 때다.

13살 때인 1959년 전국명창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당시 2등은 조상현 명창으로 이 때 인연으로 의형제까지 맺었다.

상복이 많다.

어느 대회든 출전만 하면 일등을 했다.

상복보단 그만큼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방증한다.

시련도 있었다.

변성기가 오자 소리가 나지 않게 됐다.

소리를 그만 둘까 생각하다 자살도 결심했다.

목소리가 없는 세상은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목에 칼을 댄 순간도 있었지만 타고난 호쾌한 성격으로 슬기롭게 헤쳐 나갔다.

연습에 연습을 더하면서 막힌 소리를 뚫고 소리인생 최대고비를 풀어갔다.

호는 우방이다.

임방울 선생의 재림이라는 뜻이다.

인물화의 대가인 금추 이남호 화가가 1982년 전주대사습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차지한 그를 보고 붙여줬다.

“감히 내가 임방울 선생과 비교가 되겠느냐. 흉내만 내는 수준이다.

하지만 임방울, 박초월 선생에게 공부를 했으니 붙여진 것이라 생각한다.”

연예인들과 인연이 많다.

조정현, 김병조, 백남봉, 남보원, 박항서씨 등이 그를 거쳐 갔다.

가수들이 소리를 배우면 배에 힘이 생겨 훨씬 소리내기 편하기 때문이다.

가수 뿐 아니라 목을 많이 사용하는 강사들도 명창을 찾았다.

강의를 오래 하다보면 목이 쉽게 쇠지만 배우고 나면 목이 좋아짐을 느끼기 때문이다.

소문이 나자 전국 강사들이 그를 찾는 줄이 이어졌다.

그는 대구 앞산이란 곳에서 100일 동안 공부하며 득음을 했다.

그가 말하는 득음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소리의 서사적인 면, 시적인 면, 소설적인 면, 희극적인 면을 두루 갖춰야 한다.

득음은 배꼽 밑의 단전을 올려야 한다.

일단 득음을 하면 몇 시간 소리를 내도 목이 나빠지지 않는다.

하루 종일 소리를 하게 되면 땀이 증발해 소변도 나오지 않는다.

배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고 눈이 튀어나올 정도다.

또 소리를 한창 지를 때는 심지어 잠도 온다고 한다.

득음은 이런 과정을 이겨내고 끈기 있게 지구력을 가지고 밀고 나가야 가능하다.

아들인 가수 조관우씨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아들 이야기를 꺼내자 잠시 침묵한다.

“소리하느라 아들을 무관심하게 키웠다.

애비 없이 자랐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또 내 그늘 아래 빛을 보지도 못했다.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최근까지도 잊어버리지 않고 있더라.”

슬프게 컸기 때문일까. 조관우씨도 이른바 성음을 통해 ‘늪’이란 노래도 인기를 얻었다.

대구 팔공산에서 가수로서의 득음을 했다.

하지만 아들이 노래하는 것에 대해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

배고픈 직업을 선택한 아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에 반대했다.

수 십년 전 박초월 명창이 반대했던 것과 같은 이유다.

특히 아들의 가성목소리를 고자성음이라 해서 무시한 적이 있었다.

사람 목소리가 아니란 것이다.

하지만 서양 오페라계를 보면 거세를 해 가성을 지르는 ‘카스트라토’란 존재가 있었다.

카스트라토는 가성 같은 진성 목소리로 음악계를 압도했다.

아들은 거세를 하지 않고도 완성된 가성을 선보였다.

독특한 목소리며 본인도 이때서야 아들을 인정했다.

66년 소리인생이다.

잘난 체 하지 않고 살았다.

매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보통 집안에 영웅이 나면 위아래 세대가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조통달의 집안은 박초월 명창 이후 음악적 대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다.

본인은 인간문화재의 반열에 올랐고 아들은 가수로서 명성을 얻었다.

손자도 음악의 길을 걷고 있다.

물질적 욕심은 없지만 하느님이 주신 복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다.

“굶지 않으면 된다.

나는 소리를 계속할 수 있고 아이들이 잘 자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것보다 행복한 나날이 어디 있겠는가?”

본인의 소리는 수리성과 천구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는 평이다.

성음이 좋고 특히 바이브레이션이 구성지다.

어릴 때 동초 김연수 선생을 사사해 동초제 계보도 잇고 있다.

고수 김동준과 국창 오정숙 명창에게 춘향가를 배웠다.

임방울 선생에게는 적벽가과 수궁가를 배웠다.

명창만의 독특한 성음으로 기존에 전혀 들어보지 않은 소리가 나온다는 평을 받고 있다.

좋은 소리란 무엇을 뜻할까?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소리가 다 다르다.

쉰 목이면서 독특한 소리가 있고, 생생한 목소리는 왠지 연륜이 부족해 보인다.

최근 전주대사습 심사를 맡았다.

모두 다 대상감이지만 그는 연륜이 있는 소리에 점수를 줬다.

소리를 들으면 그 사람의 관록과 경험이 나온다.

또 소리꾼은 그 경험을 소리에 담아내야 한다.

소리로 성공해야겠다는 사람은 무조건 피한다.

잔꾀를 피우는 잔머리꾼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소리를 배우는 자세가 틀렸다는 것이다.

소리와 사생결판을 내야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된다.

일대일로 싸워 소리를 이겨내야 한다.

소같이 미련하게 꾸준하게 외길을 가야 한다.

그래야만 소리의 모든 것을 갖출 수 있다.

또 세상의 모든 소리도 다 낼 수 있다.

갑자기 뻐꾸기 소리를 낸다.

정신 없이 메모하다 고개를 들었다.

영낙 없는 뻐꾸기 소리다.

산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뻐꾸기 소리 정도는 우스울 정도다.

심지어 뻐꾸기들도 사람인 줄 모르고 도망가지 않고 오히려 몰려든다고 한다.

이렇듯 소리꾼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담아내야 한다.

귀신소리, 바람소리, 사람소리 등 모든 소리를 자유자재로 다뤄야 한다.

또 다른 면에서 득음이다.

인분 100그릇을 먹고 득음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사실이 아님을 강조한다.

예전 재래식 화장실에 시퍼런 대나무를 잘라서 서너 개씩 묶어 담가둔다.

100일 후 꺼내 칼로 자르면 대나무 안에 물이 생긴다.

정종같이 노란 국물이 대나무 한 마디에 소주잔 3분의 2정도 나온다.

약이 됐음은 말할 나위 없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면서 ‘인분 100그릇’이란 별명이 생겼다.

최근엔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다.

여기저기 인터뷰에 각종 대회 심사, 학교 강의, 방송출연 등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이것은 하느님이 주신 복이라 칭했다.

그래도 나이 먹음은 피할 수 없어 학교 강의는 전북대와 우석대 단 2곳으로 줄였다.

30대 중반부터 하와이, 일본 등 외국공연을 많이 다녔다.

방송출연도 제법 하면서 아들보다 인기가 많은 적이 있었다.

한 때는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도 차지했었다.

방송에서 ‘엄마야 누나야’를 부른 이후다.

심지어 조관우 팬까지 자신을 좋아하게 됐다.

하지만 조심스럽다.

판소리와 가요의 접목은 필요하지만 너무 지나침은 아니한 것보다 못한 경우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제자 유태평양같은 대중적 스타도 키우기도 했다.

각박한 사회다.

소리는 이런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농축된 원액이란 게 명창의 생각이다.

사람의 희노애락이 담긴 게 소리라는 것이다.

당연히 소리를 들으면 사람이 선해질 수밖에 없다.

어릴 때부터 지구촌에 판소리학과를 만들어 기막힌 소리를 알리고 싶었다.

미국 UCLA대학에 민속음악 과목이 있는데 아직 판소리가 포함돼 있지 않다.

애석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판소리는 우리 음악의 꽃이다.

무용, 악기에 비해 소리는 가사가 있다.

또 무용의 연기와 악기의 소리 또한 판소리에 내포돼 있다.

이런 소리를 알려야 한다.”

30여 년의 방랑생활을 마치고 고향인 익산에 둥지를 폈다.

금마면에 있는 조통달 판소리전수관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하루 종일 북소리, 장구소리 등이 동네로 퍼진다.

전수관 뒤 마당에 학습장과 체험장을 만들고 있다.

여기에선 일 년 내내 소리가 나는 무대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해외에 판소리학과가 생기기 위해선 작게나마 이런 시작을 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조만간 익산시 금마면을 찾으면 소리가 한창 피어오르는 전수관 모습을 쉽게 떠오를 수 있다.

/조석창기자

판소리 명창 조통달

판소리 명창 조통달

판소리 명창 조통달

조통달(趙通達, 1945- )은 전북 익산군 황등면(현재 전북 익산시 황등면)에서 태어난 판소리 명창이다. 본명은 조동규(趙東奎)이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전남 승주군 주암면(현재 전남 순천시 주암면)에서 이름이 높았던 박덕삼(朴德三, 별명은 박도굿대)과 봉암 지무(知舞) 배씨의 외손자이자, 판소리 명창 박초선(朴初仙)과 박초월(朴初月, 1917-1983)의 조카이다.

그는 7세(1951)부터 셋째 이모이자 양어머니인 박초월을 본격적으로 사사했다. 군산, 전주, 서울 등지로 스승을 따라다니며, 단가 〈죽장당혜〉, 〈 흥보가 〉 한 바탕, 〈 춘향가 〉 중 ‘어사상봉’과 ‘이별가’ 초두, 〈 적벽가 〉 중 ‘군사설움 대목’과 ‘새타령’, 〈 심청가 〉 중 ‘심봉사 망사대 찾아가는 대목’을 익혔다. 15세에 임방울 (林芳蔚, 1904-1961)에게 〈 수궁가 〉 중 ‘용왕 탄식하는 대목’ 등을 잠시 배웠으며, 이후 정권진 (鄭權鎭, 1927-1986)으로부터 보성소리 〈심청가〉를 배웠다. 20세에 김동준 (金東俊, 1928-1990)에게 〈춘향가〉를 1년간 학습했다. 이재영, 황연수, 김지영, 유태평양 등이 그의 제자이다.

조통달은 어린 시절부터 소년 명창으로 이름을 날렸으며, 28세에 국립창극단에 입단한 이후 〈 광대 의 꿈〉, 〈윤봉길전〉, 〈 배비장전 〉 등 다수의 창극 작품에 출연했다. 창극 배우 로도 재능을 발휘해 〈흥보전〉의 흥보 역, 〈별주부전〉의 별주부 역, 〈송흥록전〉의 송흥록 (宋興祿) 역, 〈춘향전〉의 사또 역, 〈배비장전〉의 배비장 역 등 주연을 맡아 인기를 끌었다. 36세에 전주대사습대회에 참가해 판소리 부문 장원을 차지했으며, 37세부터 전주와 군산, 서울에서 〈수궁가〉 완창을 발표했다. 고향인 전북 익산시 왕궁면에 판소리연구소를 세우고 제자를 양성하는 한편, 전북대, 백제예전, 목원대에 출강하고 있다.

1988년 중요무형문화재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로 인정되었다. 그가 부르는 〈수궁가〉는 송흥록(宋興祿)- 송광록 (宋光祿)- 송우룡 (宋雨龍)- 유성준 (劉成俊, 1873-1944)- 정광수 (丁珖秀, 1909-2003)-박초월로 이어지는 바디 이다. 그는 〈춘향가〉 중 ‘쑥대머리’를 임방울과 흡사하게 부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남성 창자로서 여류 명창을 사사해 일가를 이뤘다는 독특한 이력을 보유하고 있다. 박초월 명창의 특장인 계면조 위주의 서편제적 성음을 탁월하게 구사한다. 또 다양한 목구성과 풍부한 성량, 즉흥성의 측면에서 임방울 명창과 비견되기도 한다. 시원스런 발성과 우렁찬 성음이 특징적이며, 걸출한 재담 의 구사로 무대를 장악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참고문헌>

1. 이보형,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16 판소리 流派』, 문화재관리국 문화재연구소, 1992.

2. 유영대, 「소리에 통달한 소리꾼 조통달 명창」, 『명인에게 길을 묻다』, 민속원, 2005. 3. 전경욱,『 한국전통연희사전 』, 민속원, 2014. 12. 15.

조통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 퇴임 전 마지막 무대 ‘놀부’로

지난 17일 소리전당서 단원들과 목요국악예술무대 꾸며

단막창극 ‘화초장 대목’서 열연…호탕한 소리에 익살미 더해

“우리 소리 자부심 갖고 끊임없이 가르치며 배워나갔으면”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린 전북도립국악원 목요국악예술무대 공연에서 조통달 창극단장(왼쪽)이 단막창극 ’화초장 대목’에서 놀보 역을 연기하고 있다. 조통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이 퇴임 전 마지막 무대를 열고, 그동안 받아왔던 사랑을 소리와 연기에 담아 ‘금상첨화’를 그려냈다. 전북도립국악원(원장 이태근)의 대표상설공연 ‘2019 목요국악예술무대’ 하반기 네 번째 공연이 지난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렸다. ‘우방 조통달 명창과 함께하는 소리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창극단이 준비한 이번 공연은 조통달 창극단장이 이끄는 마지막 무대이자 조 단장의 퇴임 기념 공연으로 꾸며졌다. 이날 조통달 단장은 단막창극 ‘화초장 대목’에서 ‘놀보’역을 맡아 해학이 넘치는 극을 선보였다. 심술궂은 놀보가 부자가 된 흥보네를 찾아가 심술을 부리고, 금은보화가 가득 든 화초장을 뺏어 들고 오는 대목에서는 조 단장의 시원한 목청과 힘 있는 통성이 익살스러운 연기와 어우러지며 소리의 맛을 배가시켰다. 이외에도 창극단원들이 준비한 민요, 판소리, 입체창 등 다채로운 구성을 뽐내며 다양한 소리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여는 무대에서는 신민요 ‘시집가는 날’, ‘내고향 좋을씨구’, ‘너도가고’가 이어져, 가마타고 시집가는 옛 풍경의 정취와 고향의 멋진 풍경을 노래하는 흥겨운 장단으로 채워졌다. 이어진 입체창 ‘수궁가 중 고고천변 대목’은 곡의 특별함을 더했다. 조통달 단장의 스승인 박초월 명창의 애창곡이기 때문. 다른 판소리 사설 대목이나 단가와 다르게 가사가 잡스럽지 않아 사대부의 품위가 유지되는 노래라는 평을 받는다. 또한 판소리 ‘춘향가 중 동헌경사 대목’과 입체창 ‘춘향가 중 사랑가’를 무대에 올려 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전했다. 남도지역의 특유의 흥과 우리네 삶의 애환을 담은 남도민요 ‘흥타령’, ‘자진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 타령’이 이어져 깊어진 가을날의 신명을 더했다. 국악계의 원로인 조통달 창극단장은 1972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하고, 국립창극단 단원과 전남도립국악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국가중요지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보유자 후보)이다. 지난 2015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으로 부임한 이후 전북을 기반으로 한 창작 작품과 대중성 있는 창극을 제작해 호평을 받았다. 소리의 본고장 전주에서 정통 판소리의 진수를 보여줄 소리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뛰어난 명창으로 구성된 창극단의 실력을 유감없이 펼친 ‘소리열전-화룡점정’을 비롯해 창극 ‘청년 이성계’, ‘배비장전’, ‘만세배 더늠전’ 등을 무대에 올렸다. 김용호 교육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 직후 여미도 무용단장과 권성택 관현악단장을 비롯한 도립국악원의 3단 예술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조 단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조 단장은 “4년 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을 처음 맡기 전부터도 늘 내 고향 전북에 국악을 살려놓겠다는 꿈이 있었다”며 “단원들의 기량이 향상되고 소리가 많이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도민과 청중들이 찾아 들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학들에게도 “뿌리 깊은 판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우리 소리를 가르치고 배우며 아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린 전북도립국악원 목요국악예술무대 공연에서 조통달 창극단장(왼쪽)이 단막창극 ’화초장 대목’에서 놀보 역을 연기하고 있다.

조통달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이 퇴임 전 마지막 무대를 열고, 그동안 받아왔던 사랑을 소리와 연기에 담아 ‘금상첨화’를 그려냈다.

전북도립국악원(원장 이태근)의 대표상설공연 ‘2019 목요국악예술무대’ 하반기 네 번째 공연이 지난 17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명인홀에서 열렸다.

‘우방 조통달 명창과 함께하는 소리의 향연’이라는 주제로 창극단이 준비한 이번 공연은 조통달 창극단장이 이끄는 마지막 무대이자 조 단장의 퇴임 기념 공연으로 꾸며졌다.

이날 조통달 단장은 단막창극 ‘화초장 대목’에서 ‘놀보’역을 맡아 해학이 넘치는 극을 선보였다. 심술궂은 놀보가 부자가 된 흥보네를 찾아가 심술을 부리고, 금은보화가 가득 든 화초장을 뺏어 들고 오는 대목에서는 조 단장의 시원한 목청과 힘 있는 통성이 익살스러운 연기와 어우러지며 소리의 맛을 배가시켰다.

이외에도 창극단원들이 준비한 민요, 판소리, 입체창 등 다채로운 구성을 뽐내며 다양한 소리의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했다.

여는 무대에서는 신민요 ‘시집가는 날’, ‘내고향 좋을씨구’, ‘너도가고’가 이어져, 가마타고 시집가는 옛 풍경의 정취와 고향의 멋진 풍경을 노래하는 흥겨운 장단으로 채워졌다.

이어진 입체창 ‘수궁가 중 고고천변 대목’은 곡의 특별함을 더했다. 조통달 단장의 스승인 박초월 명창의 애창곡이기 때문. 다른 판소리 사설 대목이나 단가와 다르게 가사가 잡스럽지 않아 사대부의 품위가 유지되는 노래라는 평을 받는다.

또한 판소리 ‘춘향가 중 동헌경사 대목’과 입체창 ‘춘향가 중 사랑가’를 무대에 올려 몽룡과 춘향의 사랑을 전했다. 남도지역의 특유의 흥과 우리네 삶의 애환을 담은 남도민요 ‘흥타령’, ‘자진육자배기’, ‘삼산은 반락’, ‘개고리 타령’이 이어져 깊어진 가을날의 신명을 더했다.

국악계의 원로인 조통달 창극단장은 1972년 전주대사습놀이전국대회에서 장원을 수상하고, 국립창극단 단원과 전남도립국악단 단장을 역임했으며, 국가중요지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수궁가 전수교육조교(보유자 후보)이다.

지난 2015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으로 부임한 이후 전북을 기반으로 한 창작 작품과 대중성 있는 창극을 제작해 호평을 받았다. 소리의 본고장 전주에서 정통 판소리의 진수를 보여줄 소리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뛰어난 명창으로 구성된 창극단의 실력을 유감없이 펼친 ‘소리열전-화룡점정’을 비롯해 창극 ‘청년 이성계’, ‘배비장전’, ‘만세배 더늠전’ 등을 무대에 올렸다.

김용호 교육학예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연 직후 여미도 무용단장과 권성택 관현악단장을 비롯한 도립국악원의 3단 예술단원들이 무대에 올라 조 단장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기도 했다.

조 단장은 “4년 전 전북도립국악원 창극단장을 처음 맡기 전부터도 늘 내 고향 전북에 국악을 살려놓겠다는 꿈이 있었다”며 “단원들의 기량이 향상되고 소리가 많이 좋아질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도민과 청중들이 찾아 들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후학들에게도 “뿌리 깊은 판소리가 오늘날까지 이어지며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었던 것에 자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며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우리 소리를 가르치고 배우며 아껴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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