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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초등부2/1,2학기 12과 110320
글:박수영 목사/그림:김종석/편집:김보영/영상:김윤
죽으면 죽으리라
오늘 말씀에서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목숨까지 내놓은 한 사람을 소개 할게요. 그녀의 이름은 ‘에스더’예요. 에스더는 여자였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서 작고 약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해서 죽을 위기에 처한 유다인(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셨어요. 에스더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나 한번 같이 들어볼게요.
이야기
아하수에로 왕이 바사를 다스리던 때의 일이었어요. 아하수에로 왕은 인도부터 구스(에디오피아)까지 127 지방을 다스리는 큰 왕이었어요. 그에게는 와스디라는 아름다운 왕후가 있었어요.
어느 날 아하수에로 왕은 전국적으로 큰 잔치를 베풀었어요. 잔치가 무르익자 아하수에로 왕은 백성들과 신하들 앞에서 와스디 왕후를 자랑하기 위해서 그녀를 불렀어요.
하지만 그녀는 아하수에로 왕의 명령을 거절했어요. 와스디 왕후의 불순종에 화가 난 아하수에로
왕은 그녀를 왕후의 자리에서 쫓아냈어요.
와스디를 대신할 왕후를 뽑기 위해서 아하수에로 왕이 사는 수산으로 많은 처녀들이 모였어요. 그 중에는 에스더도 있었어요. 아름다운 처녀들이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아하수에로 왕은
모든 여자보다 에스더를 더 사랑했어요.
결국 에스더가 새로운 왕후로 뽑히게 되었어요. 이 모든 일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계셨어요.
에스더에게는 에스더를 딸처럼 키운 사촌오빠 모르드개가 있었어요.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기를 뿐만 아니라 말씀을 가르치고 지혜를 전해주었어요.
모르드개는 아하수에로 왕을 암살하려는 사람들을 막는 공을 세우기도 했어요.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았지만 모르드개와 유다인들에게 엄청난 위기가 찾아와요.
아하수에로 왕은 바사 왕국의 2인자로 아각 사람 하만을 세워요.
모든 신하들이 왕의 명령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해야만 했어요.
그러나 모르드개만은 꿇지도 않고, 절하지도 않았어요.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 때문이었어요. 이런 사정으로 모르드개는 자신이 유다인임을 알렸어요.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들은 하만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어요. \”내 반드시 모르드개를 죽이리라. 아니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들을 모두 멸하리라.\”

기회를 보던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을 찾아가서 뇌물까지 주면서 모든 유다인을 죽이는 법을 통과시켜요.
이제 모르드개를 포함한 모든 유다인들은 적들의 손에서 죽임을 당하게 된 거예요.
이 소식을 들은 모르드개는 옷을 찢고 굻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성통곡하기 시작했어요. 바사 곳곳에 사는 유다인들도 소식을 듣고 금식하며 울면서 부르짖었어요.
모르드개를 걱정하던 에스더는
사람을 보내서 자초지종을 알아봐요.
모르드개는 유다인을 죽이려는 하만의 악한 계획을 에스더에게 자세히 전달해요. 그리고
에스더에게 이렇게 덧붙여요.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서 유다인들을 살려달라고 간절히 구해라.\” 모르드개의 말을 들은 에스더는 난처해하면서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가면 반드시 죽임을 당합니다. 이것이 바사의 법입니다.
혹시라도 왕이 그에게 금 규(지팡이)를 내미신다면 살겠지만 왕이 저를 부르신 지도 30일이 넘었습니다.\”라고 대답했어요. 에스더의 주저하는 대답을 들은 모르드개는
호통을 치듯이 이렇게 말했어요. \”네가 왕궁에 있다고, 또 네가 왕후라고 해서 모든 유다인 중에서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마라. 네가 만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잠하면 유다인은 다른 길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너와 네 집은 멸망할 것이다. 네가 왕후가 된 것이 지금을 위함인지 누가 알겠느냐!\”
모르드개의 말에 에스더는 큰 결단을 내려요.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저를 위해서 3일 동안 금식하게 하세요.
저도 시녀와 함께 금식한 후 왕에게 나아가겠습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삼일이 지나고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하고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갔어요.
왕의 부름은 없었지만 아하수에로 왕이 보기에 그녀는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에게 금 규를 내밀어요. 에스더는 죽음을 피했고,
하만의 악한 계획을 막을 기회를 얻게 되었어요. 에스더가 왕후가 될 때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고 도우셨기 때문이었어요.
에스더의 결단과 희생으로 결국 하만의 악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고 모르드개를 죽이려는
나무에 하만이 달려서 죽게 되었어요. 죽을 수밖에 없고, 망할 수밖에 없었던 유다인들은 에스더로 인해서 구원을 얻었어요.

적용하기
오늘 말씀이 주는 메시지(교훈)는(은) 무엇일까요?
1)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희생해요.

하만의 악한 계획으로 바사의 모든 유다인들은 죽임 당할 위기에 처했어요. 에스더는 왕후였기 때문에 굳이 나서지 않으면 목숨을 건질 수도 있었어요. 그러나 에스더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먼저 에스더는 유다인들과 함께 금식하면서 기도했어요. 그들을 구원해주실 분은 하나님 밖에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어요. 그 다음 에스더는 왕의 부름이 없는 상황에서도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갔어요.
왕이 금 규를 내밀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에스더는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에스더의 마음속에는 유다인들을 향한, 나라와 민족을 향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기도와 희생은 사랑할 때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기도와 희생은 나라와 민족을 살리는 힘이에요. 에스더의 기도와 희생으로 마침내 유다인들은 구원을 받았어요.

2)하나님의 뜻은 나를 통해서 이루어져요.
1번만 보면, 에스더가 참 잘해서 유다인들이 구원받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이것은 착각이에요. 여러분, 에스더가 왕후가 될 수 있었던 배후에는 누가 계신가요? 또, 에스더가 아하수에로 왕 앞에 나갔을 때 죽임을 당하지 않았던 배후에는 누가 계신가요? 하나님이시죠.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셨기 때문이예요. 신기하게도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아요. 하지만 ‘하나님’의 존재가 어떤 때보다도 강력하게 느껴져요.
하나님께서는 이미 유다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계획을 세워놓으셨어요. 그리고 에스더를 왕후로 준비시키셨어요. 만약 에스더가 모르드개의 말을 듣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유다인들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다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졌을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셨어요. 하나님의 뜻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자녀이자 일꾼인 여러분을 통해서 이루어져요. 그렇기 때문에 순종하고 순종하고 또 순종하는 것이 정말 중요해요.

요즘 우리나라가 많이 힘들어요. 이럴 때일수록 에스더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기도하고 희생하는 사람이 필요해요. 하나님의 뜻은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나를 통해서 이루어져요.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고, 기도하고, 희생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사용하셔서 나라와 민족을 구원하세요. 이와 같은 축복이 임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암송요절: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하니라- 에스더 4장 16절 하반절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 주제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하세요.

Sermon – 죽으면 죽으리라(에 4: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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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3/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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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의미 –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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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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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죽으리라“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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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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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죽으면 죽으리라 –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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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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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

  • Author: Kim’s BibleStory김쌤의 말씀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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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8. 3. 24.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Yqh40VjpuEQ

죽으면 죽으리라(에 4:1-17)

에스더 4:1-17 죽으면 죽으리라

1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

2 대궐 문 앞까지 이르렀으니 굵은 베를 입은 자는 대궐 문에 들어가지 못함이라

3 왕의 조명이 각 도에 이르매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곡읍하며 부르짖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

4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고하니 왕후가 심히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를 벗기고자 하나 모르드개가 받지 아니하는지라

5 에스더가 왕의 명으로 자기에게 근시하는 내시 하닥을 불러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가서 이것이 무슨 일이며 무슨 연고인가 알아보라 하매

6 하닥이 대궐 문 앞 성중 광장에 있는 모르드개에게 이르니

7 모르드개가 자기의 당한 모든 일과 하만이 유다인을 멸하려고 왕의 부고에 바치기로 한 은의 정확한 수효를 하닥에게 말하고

8 또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 하니

9 하닥이 돌아와 모르드개의 말을 에스더에게 고하매

10 에스더가 하닥에게 이르되 너는 모르드개에게 고하기를

11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 무론 남녀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아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홀을 내어 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아가지 못한지가 이미 삼십일이라 하라

12 그가 에스더의 말로 모르드개에게 고하매

13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15 에스더가 명하여 모르드개에게 회답하되

16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7 모르드개가 가서 에스더의 명한 대로 다 행하니라

2009년에 들어서서 52번째 드리는 마지막 주일예배입니다. 얼마나 세월이 빨리 흘러갔는지 모릅니다. 금년 한해 어떻게 보내셨습니까? 뜻한 대로 이루어졌습니까? 지금 생각만 해도 아찔했던 그런 위기를 경험한 적은 없으십니까?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극적으로 장식하는 한 사건이 지난 성탄절에 벌어졌습니다. 재미교포 인권운동가인 로버트 박이 성탄절 오후에 중국을 거쳐 함경북도 회령에 단독으로 들어갔습니다. 전 세계가 북한의 현실에 주목하게 할 뿐 아니라 북한의 지도자들이 바뀌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습니다. 성탄절에 두만강을 넘어간 이유는 “북한에서 가장 추운 시기일 뿐 아니라 성탄절은 전 세계가 가장 행복을 누리는 날인데 북한 주민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어둠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Robert는 우리 교회에 와서 말씀을 전하기도 했던 청년입니다. 이미 지난 주 화요일에 Robert의 동료를 통하여 Robert가 성탄절에 북한에 가려한다는 이메일을 받기는 했지만 실제로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으니 올게 오고야 말았다는 생각과 함께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Robert의 부모님들이 현재 우리 교회에 출석 중입니다. 둘째 아들을 북한에 보내 놓고 앞으로 이 사건이 전개될 까 기다리는 부모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한 주일동안 한해를 보내고 또 다른 한해를 맞이하는 전환점에 맞는 설교를 준비해왔습니다. 그런데 Robert Park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예상치 않은 일, 계획에 전혀 없던 일이 생깁니다. 목회는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이미 준비한 설교는 하나님께 언젠가 쓰시게 할 것이라 생각하며 어제 토요일 하루 동안 새로운 설교를 에스더서를 중심으로 준비하였습니다.

에스더서는 전부 10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에스더서를 읽으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심을 알게 됩니다. 그 당시 페르샤 제국은 세계 최강대국입니다. 6개월 동안 연회가 열린 것으로 보아 아하수에로 왕의 권세와 부귀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게 됩니다. 왕은 술에 거나하게 취한 상태에서 왕후를 사람들 앞에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는 무슨 이유에선지 왕 앞에 나서기를 거부합니다. 이 일로 인하여 왕의 진노를 사서 와스디는 왕후에서 쫓겨납니다. 새로운 왕후를 선택하고자 전국에서 아리따운 처녀들을 모아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유다인의 포로로 끌려온 자의 자손인 에스더가 왕후로 됩니다. 우연인 것처럼 보이는 이 과정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음흉하고 교활한 하만이라는 자가 유다 민족에 대한 살육 계획을 세웁니다.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엎드려 절하지 않았다는 것이 표면적 이유지만 그 뒤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단의 음모가 있습니다.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하기 위하여 제비뽑아 택한 날이 12월 13일입니다. 제비뽑은 달이 1월이었으니 1년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유다인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계획이 알려지자 모르드개를 비롯한 온 유대인은 충격을 받았고 큰 슬픔에 잠깁니다. 하만의 음모를 알게 된 모르드개는 굵은 베를 입고 재를 쓰고 대성통곡합니다. 전국 각 도에 황제의 조서가 공포되자 유다 사람들이 크게 통곡하고 금식하며 울부짖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베옷을 입은 채 재에 뒹굴었습니다. 지금 유다인들에게 가장 절박한 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입니다. 이스라엘 땅이 아닌 이방 땅에 남겨진 소수 민족에 불과한 유다인들을 하나님께서 과연 기억하시고 구원해주실 것인가? 이제 민족의 운명에 대한 압박이 에스더에게 다가옵니다. 에스더가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만 했습니다.

모르드개는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시녀와 내시가 모르드개의 이런 사정을 에스더에게 고합니다. 에스더의 관심사는 모르드개 개인의 안위에 있습니다. 그녀는 근심하며 그의 굵은 베옷을 벗기고자 의복을 보내지만 모르드개는 거절합니다.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그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으며 재를 무릅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합니다. 옷을 찢고 굵은 베를 입고 재나 먼지를 뒤집어쓰는 것은 비통함을 나타내는 구약시대의 오랜 풍습입니다. 모르드개가 대궐 문 앞 광장까지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애통함을 나타내는 차림으로는 대궐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모르드개와 유대 민족은 멸절당할 위기 상황에서 애통하고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습니다. 하만의 계획은 분명히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유대인들이 함께 하나님께 매달릴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어떠한 일도 그 일이 기쁘든, 슬프든, 불가능하게 여겨지든, 크든, 작든 모두 기도의 제목이 될 수 있습니다.

모르드개는 왕궁에 있는 에스더를 만날 수 없었고 에스더도 왕궁이라는 폐쇄된 상황 때문에 민족적인 위기에 대하여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에스더는 앞으로 닥칠 정황은 모른 채 사촌 모르드개가 재를 뒤집어쓰고 통곡한다는 소식만을 시녀와 내시로부터 전해 듣고 그를 염려하여 베옷을 대신해 입을 좋은 옷을 보내어 그를 위로하려 합니다. 모르드개와 자신의 백성들이 왜 그리 슬퍼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유대민족 전체에 미친 불행을 생각하며 에스더가 보낸 옷을 받기를 거절합니다. 그는 개인적인 일로 슬픔을 표시한 것이 아니라 민족의 위기 상황과 비참한 처지를 천하게 알리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에스더는 무슨 일인지 알아오라고 내시 하닥을 다시 보냅니다. 하닥이 대궐문 앞 성 중 광장에서 모르드개를 만나 유대인들을 말살하려는 하만의 계획을 다 알게 됩니다. 모르드개는 하만이 왕에게 주기로 한 은의 액수까지도 정확히 알려줄 뿐 아니라 유다인을 진멸하라고 수산궁에서 내린 조서 초본을 하닥에게 주어 에스더에게 뵈어 알게 하고 또 저에게 부탁하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의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고 합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 때문에 이 세상의 많은 아픔이나 슬픔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살기 쉽습니다. 내 주위의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의 아픔을 모르게 되고 결국 무의미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에스더가 어떤 반응을 보입니까?

에스더는 상식에 따라 답변합니다.

왕을 알현하라는 모르드개의 요청을 에스더는 거절합니다. “왕의 신복과 왕의 각 도 백성이 다 알거니와”라는 말을 통해, 에스더는 페르샤의 법도를 천하가 알며 이것을 모르드개가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무리한 요구를 하느냐고 간접적으로 묻고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에스더가 이기적이어서 거절한 것이 아니라 그녀 개인의 생사가 달려 있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법도를 알면서 왕 앞에 나아간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습니다. 에스더는 다른 방법으로 왕을 뵙기를 청해도 소용없음을 말하기 위해 이미 부름 받지 못한 지가 30일이나 지났음을 덧붙여 설명합니다. 알현을 신청해도 거절당할 것이고 그녀가 왕에게 다시 부름을 받을 보장도 희박함을 알립니다. 그녀가 왕후로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는 있는 현실 그대로 말해줍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에스더의 답변을 들은 모르드개가 그녀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에스더의 개인주의적인 생각을 지적하면서, 에스더를 왕후의 자리에 앉히신 하나님의 뜻을 제시합니다. 첫째, 그녀에게 자신의 근본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즉 그녀는 왕후이기 전에 유다인임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왕궁에 있다고 홀로 면하리라고 생각지 말라는 말로써 그녀와 그녀가 속한 공동체가 분리될 수 없음을 상기시킵니다. 둘째, 에스더가 아니더라도 유다인들은 구원받을 것임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다른 사람이나 다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유다인들을 구원하실 때 에스더와 그녀의 집은 멸망할 것이라는 경고입니다. 이런 모르드개의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언약에 믿음의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왕에게 나왔을 때는 살아날 확률이 있지만 그 일을 하지 않을 때는 확실히 죽을 것임을 역설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에서 제외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에스더의 책임과 목적에 대해 가르쳐줍니다. 그녀가 왕후가 된 것도 그녀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이라고 말합니다.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14)는 반어적 질문은 불확실성이나 의심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확실한 믿음과 희망을 나타냅니다. 에스더가 페르샤의 왕후가 된 것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과 예비하심의 뜻이 있는데 지금이 그런 때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에스더를 왕비로 삼으신 것은 급박한 위기에 있는 이스라엘을 건지기 위한 구원자로 삼기 위함이라는 말입니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죽음이라도 불사할 것을 요구합니다. 이제까지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본다면 이런 결단에 대한 촉구는 실로 비장한 현실을 반영합니다. 너무하다싶게 느껴지는 말이지만 에스더에게는 꼭 필요한 말입니다.

위기와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사건은 묘하게 흘러 에스더에게로 집중됩니다. 절망 가운데 가녀린 실낱 희망이 제시되는데 그것도 불확실하기 그지없습니다. 왕후라는 타이틀은 있으나 왕 앞에 나아갈 권리조차 없는 여성이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때까지의 사건들을 통해 드러난 변덕스럽고 무심하며 예측 불허한 페르샤 왕의 그날의 기분에 따라 모든 것이 달려 있습니다. 유다인들이 금식하고 기도하는 대상은 물론 하나님입니다. 그들의 기도는 과연 어떻게 응답됩니까? 그때 유월절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절기조차 지키지 못하는 처지가 된 것입니다.

에스더가 결단을 합니다.

모르드개의 도전은 곧 에스더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이제까지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시키는 대로 순종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에스더가 처음으로 모르드개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그녀의 명령에 따라 모르드개가 해야 할 일은 수산에 모여든 유다인들을 모으고 에스더를 밤낮 3일을 먹지도 마시지도 말며 중보기도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에스더는 자기 백성의 기도 후원을 조건으로 모르드개의 말을 수락합니다.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서의 최고 절정을 이루는 말입니다. 이 극적인 발언은 하나님의 뜻에 자신을 내맡기는 단순하면서도 장엄하고도 용감한 선언입니다. 에스더의 입장에서 모르드개의 부탁은 무리한 것이었으나 에스더는 민족을 위해 자기를 희생할 각오를 합니다. 에스더의 대답은 상황을 따른 것도 자기를 위한 이기적인 것도 아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신앙의 결단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크고 작은 결단이 요구됩니다. 그때마다 우리가 하는 결단의 동기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신앙으로 결단해야 합니다.

에스더의 결단이 위대하지만 그런 결단을 내리도록 도운 것은 모르드개의 격려입니다. 에스더가 중심 인물이지만 모르드개가 없는 에스더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에는 이러한 아름다운 팀웍이 필요합니다. 에스더의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하지만 모르드개와 같이 도전하고 격려하는 역할을 할 사람도 필요합니다. 우리가 서로가 필요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고 그 뜻을 좇아 결단하게 하소서.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어떠한 삶을 살라고 도전을 합니까?

1) 결단의 순간에 대비해야 합니다.

우리 삶 속에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느냐, 거부하느냐는 결단의 순간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영원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결단의 순간’은 계속됩니다. 요셉은 자기의 약혼자가 임신을 했다는 기가 막힌 소식을 듣고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며 헤어지자는 결단을 했습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듣고 다시 데려오기로 결단하였습니다. 예수를 믿고 성장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계속 우리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살 것인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자로 살 것인지를 결정하기 원하십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인생을 통틀어 그녀가 만난 가장 큰 위기 상황에서 바로 이 결단을 요구받았습니다. 에스더의 용감한 결정은 그녀의 삶을 완전히 변화시켰고 정치적 역량과 영향력을 키웠으며, 모르드개의 운명과 나아가 가장 중요한 민족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녀에게 결단은 곧 죽음이었습니다. 너무도 어려운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의 편에 섰을 때 결과는 놀라왔습니다. 우리도 크든 작든 이런 결단의 순간들을 수없이 맞이합니다. 하나님 편에도 놀라운 경험을 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확신이 있었기에 모르드개는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라고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었습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신변과 모르드개의 안녕에만 관심이 있었던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왕후가 된 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을지 모른다는 말에 그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더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눈을 뜨고 그 계획에 동참합니다. 우리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할 일은 그 계획을 발견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역사는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삶에 능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기적을 경험합니다.

3)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모르드개의 말처럼 에스더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른 방법으로 얼마든지 유다의 구원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우리는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지만,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에스더의 순종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종이었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에 ‘지금 당장’ 순종하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실천하지 않는 결단이란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목숨 걸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나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왕의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지겠다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절하지 않습니다. 붙잡혀온 그들에게 왕이 회유합니다. 이제라도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리어 절하면 살려줄께. 그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단호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왕을 섬기지도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않습니다(단 3:17-18). 그들은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거운 불에 던져졌는데도 살아났을 뿐 아니라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고 옷의 색깔도 변하지 않고 불탄 냄새조차 없었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를 가졌더니 자신도 살고 하나님을 이방인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자들이 계략을 세웁니다. 다니엘이 하나님께 매일 기도한다는 것을 알고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자고 왕에게 제안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왕은 허락을 합니다. 다니엘은 전과 다름없이 자기 집에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이 열린 방에 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왕이 마지못해 허락하니 다니엘이 사자 굴에 던져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자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맏왕은 너무 기뻐서 조서를 내립니다. 모든 백성들은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지라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라 그는 구원을 베푸시는 분이라 ‘죽으면 죽으리라’는 자세를 가졌더니 자신도 살고 하나님을 이방인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니엘과 세친구들은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궁극적으로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은 우리의 믿음의 본이신 예수님에게서 완성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파송받은 선교사입니다. 지난 주 성탄의 밤 시간에 참석한 교우들이 함께 촛불을 켜지 않았습니까? 떡을 함께 나누고 먹여주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이 참 빛으로, 생명의 떡으로 오신 것을 상징하고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 8:34)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1) (지금 당장)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부정이란 자기중심으로 살던 사람이 이제는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께 우선순위를 두는 삶을 의미합니다. 전에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의 만족만을 위하여 살았는데 이제는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자기 계획,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내려놓거나 유보하는 것을 뜻합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손해요 자신을 잃는 것 같이 여겨지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진정 자기를 찾는 것입니다.

2) (지금 당장) 자기 십자가를 지라

개인에게 닥칠 어려움이나 손해 때문에 교회나 사회 문제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 있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상황을 들어 핑계합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내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이 마련된 후에 나를 사용하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힘들고 어려울 때 나를 사용하기 위하여 부르십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은 나를 사용하기 위하여 부르십니다. 나의 약한 데서 주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십자가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으심에 참여 즉 철저한 희생을 의미. 계속해서 예수님을 따르라 에녹은 일평생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제자가 되는 삶은 순종의 삶이요, 희생의 삶이요, 헌신의 삶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자신이 당할 수난을 밀알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실천하셨습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에게 생명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시면서 자기 부인의 절정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리가 먼저 죽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악 된 성품이나 습관들을 다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시간, 물질, 달란트, 젊음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우면 비울수록, 드리면 드릴수록 그곳에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집니다.

3) (계속해서) 예수님을 좇으라 – 왕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

그런데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을 가지고 나아가면 모든 일이 잘 풀립니까?

히 11:33-34,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고난을 당했지만 극적으로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다음 구절은 보면 우리가 보통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히 11:35-37,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하면서 믿음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이 땅에서는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라고 칭찬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고 합니다. 종합해보면 믿음을 지키면 세상적인 관점에서 잘 될 수 있습니다. 살아나고 회복되고 형통하게 됩니다. 반면에 믿음을 지키다가 안 될 수 있습니다. 믿음대로 살지 않았으면 살았을 텐데, 고생을 안 했을 텐데 하는 말을 들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은 말씀합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이제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 1:20)

내가 살든지 죽든지 주님만 높여진다면 나는 기뻐한다면서 하나님 보시기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또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부 선교지에 나가라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의 부담을 주시는 분들은 감당해야 합니다. 가는 분만 선교사가 아니라 보내는 분,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는 분도 선교사입니다.

Robert Park은 지금 북한에 있고 우리는 샌디에고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북한의 실상을 조금이라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교회당 앞에서 촛불기도회를 가집니다. 무슨 의도로 갔느냐, 제2의 여기자 사태가 나는 것이 아닌지,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것같이 청년 하나 들어간다고 이 복잡한 문제가 풀려지나 도리어 어렵게 만드는 것이 아닌지 따지려고 모이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 주민들도 사랑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품고 북한에 들어간 한 청년을 위하여, 그리고 북한을 향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하고자 모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은 한 번 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우리의 삶은 일회적 사건. 누구를 위한 삶이냐에 따라 인생의 가치가 결정됩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것”과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는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나와 복음을 위하여” 주님께 우선순위를 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으며 하나님 뜻대로 사는 삶입니다. 고난을 당하신 예수를 본받기 위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매순간의 삶에서 나타나는 삶입니다. 복음을 위한다는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함께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예수님께만 순종, 희생, 헌신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는 것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고 그를 위하여 살 때 즉 우리의 삶을 주님께 투자할 때 예수님도 우리를 시인하고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을 나누어주십니다.

자기만을 위한 삶은 본인에게는 만족을 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는 아무 것도 보여줄 것이 없는 면목 없는 삶이요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추잡하거나 초라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결국 자신에 대한 집착 때문입니다. 자기를 포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의 용기를 보시고 하나님은 유다 민족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믿음의 작은 결단에서 시작됩니다. 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합니다.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든지 중요한 것은 지금입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왕 이신 예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로서 과연 어떤 삶을 살기로 결단하십니까? 하나님의 일에 우선순위를 두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쫓는 신앙을 가지는 제자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시대의 에스더, 다니엘, 바울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9.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에스더(에 4:11~17)

에스더는 베냐민 지파 아비아헐의 딸로, 그녀의 본명인 히브리식 이름은 하닷사인데 도금양 나무를 가리킨다. 아버지를 일찍 잃어 고아가 되어 당시 바사 나라 수도인 수산성 관리였던 사촌인 모르드개의 양녀로 양육을 받았고, 바사식 이름을 가졌는데 에스더 즉 ‘별’이란 뜻이었다.

이들은 이미 고레스 왕에 의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귀한 조서까지 내렸는데도 가담치 아니하였다. 당시 유대인들의 잔류자들도 많았는데 이들은 바빌론 근처나 수도 수산 근처에 많이 살고 있었다.

본서의 사건은 스룹바벨에 의한 일차 포로 귀환과 에스라에 관한 2차 귀환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다. 바사 나라의 총리였던 하만이 유대인이었던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무릎 꿇고 절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분노하여 전 유대인 말살 음모를 시행하려고 했을 때, 에스더의 신앙과 용기로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든 큰일을 해냈는데 이때에 유명한 “죽으면 죽으리라”는 성구가 나왔다.

첫째: 바사 왕의 잔치와 음모

1) 아하수에로 왕의 잔치(에 1:1~8)

본서의 아하수에로 왕은 다리오를 이은 바사의 왕으로 일반 역사에서는 크세르크세스(Xerxes B.C. 485~465)인데 역대 왕들이 그러했듯이 유대인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가 다스리는 영토는 광대하여 동쪽으로는 인도의 남쪽 인더스 강 하류에서부터 서남쪽은 애급의 남쪽 수스, 서북쪽은 마케도니아의 일부를 포함하여 127도를 치리 했다.(1절) 그가 왕이 된지 3년 만에 각도의 귀족과 방백들이 수산 궁에 모여 180일(6개월)이 되는 잔치가 벌어졌다. 잔치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 왕은 술에 만취되어 왕비인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뭇 백성과 방백들에게 보이고자. 불렀으나 왕후 와스디는 내시를 통해 거절하였다.

이는 왕의 권위에 대한 모욕뿐 아니라 방백은 물론 백성까지 무시한 죄로 인정되어 박사들의 진언도 있고 하여 왕후 와스디를 폐위하고 말았다. 술 취한 왕에 관한 어처구니없는 역사적 사건인데 그러나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섭리의 사건을 보게 된다.

2) 하만의 계획(에 3:1~15)

하만은 바사 나라의 총리대신으로 아각 사람(사무엘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 삼상 15:33) 함므다다의 아들이다. 그런데 그가 에서의 손자 아말렉 족속에 속한 자이므로. 왕의 관리의 한 사람이었던 모르드개는 유대인으로 아말렉인인 하만에게 꿇거나 절할 수가 없었다.

출 17:16 “가로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으로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였다 하였더라.”

신 5:7~10 “우상은 만들거나 절하거나 섬기지도 말라” 라고 되어 있다. 모르드개는 왕의 관리의 신분이었으나 하만을 우상화하여 그가 지날 때 무릎 꿇고 절하는 것은 결코 할 수 없었다. 더구나 대대로 원수지간이었던 아말렉 족속의 후손이므로, 이렇게 신앙의 결단은 생명을 건 모험이다.

그런데 유대주의에 근거한 모르드개의 태도는 하만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고 교활하고 교만했던 하만은 왕의 부고에 은 일만 달란트(약 80억원)룰 상납하고는, 왕의 환심을 사서 모르드개는 물론이요 온 유대인을 말살코자 하는 계획을 허락 받았다. 그리하여 드디어 아하수에로 왕 12년 12월 13일을 기해 바사 나라에 거주하는 모든 유대인의 재산을 탈취하고 일제히 살해하라는 조서가 내려졌다.

둘째: 죽으면 죽으리이다

1) 에스더의 결단(에 4:11~17)

일찍 아버지를 잃은 에스더는 고아가 되었으므로 사촌인 모르드개에 의해 양육되었고, 왕후인 와스디가 폐위 된 후 아하수에로 왕의 은총을 입어 왕후가 되었다.

당시 총리대신이었던 하만에 의해 유대인들이 말살의 위기에 처했을 때,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향하여 왕에게 나아가 자기 민족을 위하여 청원하기를 구하였다. 그러나 에스더는 누구든지 왕의 부름을 받지 않고 왕에게 나아가면 죽이도록 되어 있다고 거절하였다.

모르드개는 “너는 왕궁에 있으므로 유대인 중에 홀로 화를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네가 만일 잠잠하면…… 네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는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들은 에스더는 16절에서 “당신은 수산에 있는 유대인을 다 모으고 3일 동안 금식하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오 나도 시녀들과 함께 금식하고 난 후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라고 말한다. 에스더는 죽음을 각오한 신앙의 결단을 내리고 담대히 왕 앞에 나아갔다. 언제나 신앙의 사람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모든 것을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마 16:24) 희생을 각오함이 성경 인물마다 주는 위대한 교훈이다.

2) 에스더의 승리(6~7장)

불면에 시달린 아하수에로 왕이 역대일기를 읽었을 때, 왕이 모살될 뻔 했던 계획이 모르드개에 의해 모면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 보상도 없었음을 알고는 누가 가까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마침 총리 하만이 자기가 만든 사형대에 모르드개를 다는 것을 허가 받기 위해 왕궁 바깥뜰에 이르렀다가 부름을 받게 되었다.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6:6)라는 질문에 교만한 하만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자는 곧 자기라 속단하고,왕복에 왕관을 씌어 왕의 말에 태워 왕의 방백 중 가장 존귀한 자로 하여 근거리로 나아가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사람에게는 이 같이 할 것이다”라고 외치도록 함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왕은 “네가 한 말대로 모르드개에게 행하라”고 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하여 하만에게는 거듭 철퇴가 가해졌다. 7:3~6에서 에스더는 대적과 원수는 악한 하만임을 폭로 했다. 이에 하만이 에스더에게 간청하며 에스더 앞에 엎드린 것을 본 왕은 ‘왕후를 강간까지 하고자 하느냐'(7~8절)며 대노 하였다. 왕의 이 말에 하만의 얼굴을 씌워 모르드개를 죽이려고 자기 집 앞에 만들어 놓은 23m나 되는 사형대에 처형케 하였다.

하만의 파멸은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승리로 이어지고, 죽음의 일보직전에 있었던 모르드개는 하만의 죽음으로 바사 나라 총리가 되면서 조서를 내려 부림절을 지키라고 했다. 위기에서 보호를 받아 승리하였음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로서 유대인 멸종 계획이 철회됨은 물론 오히려 유대인들을 괴롭히던 자들을 진멸케 되었다. 죽음을 각오하여 “죽으면 죽으리라”고 했던 신앙적 행동은 무시무시한 사태를 역전 시켜 악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를 가져오게 했다. 그러므로 성도는 언제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담대히 나아가기만 하면 승리가 보장됨을 믿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에스더서는 의인과 악인간의 나타날 종국의 뚜렷한 대조를 보이면서 악인은 반드시 멸망 받고 의인은 반드시 승리함을 가르쳐준다. 선거를 이틀 앞두고 과연 나라와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가 된 후보들이 얼마나 되는가?

① 위기의 때에 좋은 지도자 나오기를 기도 해야겠고

② 지도자들은 희생을 각오하고 국사에 임하는 지도자 상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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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꿈교회 <예피>

죽으면 죽으리라 – 에스더

*- 본문 : 에4:14-17(구약753쪽) -*

Ⅰ. 에스더의 인적사항

1) 에스더의 뜻 : ‘별’ – 페르시아식 이름2) 에스더의 본명 : ‘하닷사’(아름다운 나무) – 히브리어 이름

3) 에스더의 아버지 : 베냐민 사람 아비하일4)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 밑에서 자라남

5) 바사왕 아하스에로의 왕비

Ⅱ 시대적 배경

에스더가 활동하던 시기는 바사제국의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던 시기이다. 아하수에로가 다스리던 시기는(B.C 485-464)이므로 남유다가 멸망한지 100년이 넘은 시기였다. 이시기에는 이미 바사의 초대왕 고레스가 명령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1차 포로귀환을 한 이후의 시점이다. 그러나 포로귀환령이 내려졌어도 이미 바벨론 유수이후 7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국땅에 살면서 정착했기에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여전히 바벨론의 지역에 머물러 살고 있었다. 이때 바사제국의 궁전 수산궁을 중심으로 벌어진 사건이다.

Ⅲ. 에스더의 특징

오늘 우리가 살펴볼 에스더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제국과 바벨론 제국을 거치면서 이방 땅에서 멸시 받고 천대받는 소수 민족이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제국 바사제국이 들어섰을 때 초대왕 고레스가 관대한 정책을 펼치므로 포로 귀환령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포로민이 된지 오랜 세월이 지났으므로 유다인들은 포로지에서 삶을 정착시키고 생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수의 유다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머물러 있었다. 이러한 시기에 바사제국에는 다리오왕의 뒤를 이어 아하수에로라는 왕이 새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릴 당시에 바사의 제국은 인도에서 구스까지 이어지는 광대한 영토를 다스리게 되었다. 끊임없는 권력과, 명예욕으로 사로잡힌 바사제국은 당시에 유럽까지 손에 넣기 위해 끊임없이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헬라와의 살라미스 해전을 비롯한 중요한 전투에서 3번 패함으로 서방진출에 대한 길목이 막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아하수에로 왕은 여색을 탐하면서 방탕한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아하수에로 왕은 왕위에 있은지 3년에 지방의 관리들과 신하들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180일동안(6개월) 제국의 부와 위엄과 혁혁함을 드러냈다. 이러한 잔치를 마친 후에는 왕궁 후원 뜰에서 백성을 위해서 7일간의 잔치를 벌였다. 이 잔치는 대대적으로 큰 연회였다. 누구나 마음껏 마시고 춤추고 즐기게 한 것이다. 이때 아하수에로의 왕후 와스디도 여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고 있었다.

너무나 즐거운 왕은 7일 째 되는 날 왕후 와스디에게 기별을 넣어서 왕후의 예복을 정제하고 왕 앞으로 나와서 그 아름다움을 백성과 지방관들에게 보이게 했다. 이 명령을 받은 왕후 와스디는 왕의 명령이 왕후의 위신을 깍아 내린다고 생각한 것 같다. 아니면 자신이 기생취급을 당한다는 모멸감을 느낀 듯 하다. 그래서 왕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게 된다. 왕후가 왕의 명령을 거절했다는 전갈을 받은 아하수에로 왕은 크게 진노하여 마음속이 불붙는 듯하였다. 정말 속에서 불이 났다는 표현이다. 그래서 왕은 당시 현자들에게 이러한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은지 물었다. 그러자 므무간이 대답하기를 왕후는 왕에게만 잘못한 것이 아니라 왕과 나라와 모든 백성에게 잘못한 것이요. 이 일이 빌미가 되어 나라 전체에 여인들이 남편을 멸시하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 왕은 왕후의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주라고 진언하게 된다.

그래서 결국 와스디 왕후는 폐위되게 되었다. 왕후를 폐위한 이후 새로운 왕후를 뽑기 위해 전국에 아리따운 처녀들을 수산궁에 모아 후궁으로 삼고 후궁수업을 받게 하였다.

1. 모든 사람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음(바사제국의 왕후가 된 에스더)

전국의 아리따운 처녀들을 모집할 때 에스더도 수산 궁에 오게 되었다. 궁녀가 된 처녀들은 12달 동안 수업을 받고 각종 아름다운 화장품과 향수로 치장하고 자기를 가꾸었다. 이때 궁녀를 주관하는 헤개에게 에스더는 좋게 보였다. 12달이 지난 뒤에 차례대로 밤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 나아가게 되었다. 궁녀가 왕과 하루밤을 자고 나오면 아침에는 후궁으로 들어가 대기하게 되는데 왕이 다시 그 여인을 부르지 않으면 왕 앞에 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궁녀들 틈에서 에스더는 남다른 면모가 있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우쭐대지도 않았다. 교만하거나, 거만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지나치게 자신을 치장하거나 꾸미지도 않았다. 이러한 에스더에게서는 자연미인의 모습이 엿보인 것 같다. 에스더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은 것이다. 이는 에스더가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은 것을 말한다. 에스더는 순결하면서도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절제되고 정제되었으면서도 여인의 아름다움이 풍기는 여인이었나 보다. 그래서 당시에 궁녀를 관리 하는 헤개의 눈에도 들었던 것이다. 이러한 에스더가 드디어 왕 앞에 나아가는 날이 되었다.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갈 때가 아하수에로 왕 7년 이었으니 왕후가 폐위 된지 4년이 된 것이다.

그동안 공식적으로 왕후의 자리가 비어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에스더가 그 오랜 세월을 기다리면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는 것은 에스더의 성품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왕은 에스더가 왕 앞에 나온 날 저녁 숨이 막히는 듯 온 몸을 전율하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이후 왕은 에스더를 왕후로 삼게되었다. 대대적인 연회를 열고 큰 잔치를 벌여 나라의 큰 잔치가 되게 하였다.

교훈

우리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에스더는 큰 욕심이 없었다. 과도한 치장도 없었다. 항상 순결하고, 누구와도 적을 맺지 않고, 좋은 관계를 맺었고,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았다. 모든 사람들을 따듯하게 대하고 진솔하게 대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겠다.

어디서나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 성도들에게, 이웃들에게, 친지들에게,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될 때 하나님은 숨겨진 보배를 들어서 위대한 일에 사용하신다. 그러기 위해서는 욕심을 버리고, 진솔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말고, 맞겨진 일을 참심하게 잘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성껏, 겸허히 감당하는 그 사람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누구나 인정하고 사랑하게 될 것이다.

예) 예수님이 자랄 때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스러워 가셨다. 이는 예수님이 인정받는 사람이었음을 보여준다.

2. 만남의 축복을 누림

에스더는 왕후가 되어 왕의 총애를 입었다. 그러나 에스더가 이렇게 훌륭한 인물로 자라기 까지는 아주 훌륭한 멘토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라는 사람이었다. 에스더가 어렸을적에 에스더는 조실부모했다. 어린 에스더를 거두어서 키운 사람이 에스더의 사촌 모르드개라는 사람이었다.

에2:7 그의 삼촌의 딸 하닷사 곧 에스더는 부모가 없었으나 용모가 곱고 아리따운 처녀라 그의 부모가 죽은 후에 모르드개가 자기 딸 같이 양육하더라

그렇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의 사촌이었다. 그러나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이었다. 에스더의 부모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에스더가 어렸을 적에 별세하므로 이 에스더를 거두어서 키운 사람이 모르드개였다.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정말 자신의 친 딸같이 키웠다. 그러기에 에스더가 모가 나지 않고, 지혜롭고 현숙한 여인으로 자란 것이다. 그리고 에스더가 궁녀로서 수산궁에 나아가게 한 것도 모르드개였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자신의 역할을 끝낸것이 아니다. 모르드개는 항상 에스더의 주변에서 에스더의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해 주었다. 에스더가 중대한 상황에서 결단하지 못할 때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었고, 에스더가 도움을 요청할 때 언제든지 에스더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또한 항상 기도하면서 기도의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에스더는 정말 좋은 만남의 축복을 누리게 된 것이다. 부모를 어린 나이에 잃은 것이 아픔이지만 반대로 좋은 멘토를 만남으로 여자의 일생에서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다.

교훈

만남은 하나님이 내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남의 축복을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면 인생이 바뀐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이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만남의 복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배우자, 좋은 동역자를 만나기 위해서 기도합시다.

3. 믿음의 결단으로 동족을 구함

왕후가 된 에스더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 에스더에게 중대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이 닥쳤다.

아하수에로 왕은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라는 신하를 신임하게 되었다. 그래서 하만을 모든 대신들 보다 위에 앉히게 되었다. 그러므로 대궐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하들은 하만에게 꿇어 절했다. 그런데 유독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하지 않았다. 결국 이 소문이 하만의 귀에 들어가게 되었다. 하만은 모르드개가 유다인인 것을 알고 분개하여 모르드개만 벌하지 않고 온 나라에 있는 모든 유다인을 멸하려는 계획을 짜게 된다. 그리고 그 진멸할 날짜를 제비뽑아 보니 아달월을 얻게 되었다.

하만은 왕에게 나아가 이 나라에 흩어져 사는 민족가운데 자신들의 율법이 만민의 것과 달라서 왕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민족이 있는데 이들을 용납하면 왕에게 해로울 것이라고 간언하면서 그 민족을 진멸하게 해 달라고 요청한다. 왕은 자신이 신임하는 하만의 말을 그대로 수용하여 유다민족을 아달월 13일에 진멸하도록 하는 조서를 온 나라에 내리게 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 왕의 반지를 빼어서 하만에게 끼워주었다. 이 명령이 온 나라 127도에 반포되는 온 나라는 큰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모르드개는 자신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하게된다. 전국에 있는 유다인들도 크게 울부짖고 금식하며 재를 뒤집어쓰고 고통스러워한다. 하루아침에 날벼락을 맞은 기분이다. 이때 에스더는 모르드개가 대궐 문 앞에서 베옷을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연유를 알기 위해 내시를 하닥을 보내게 된다. 하닥은 모르드개에게 일의 경위를 듣고 에스더에게 일의 전후를 보고한다. 보고 끝에 모르드개의 부탁의 말을 전하는데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가서 민족을 구해달라는 간청을 하라는 부탁을 전한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왕의 부름을 받지 않은 사람이 남녀를 불문하고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단 죽음을 면할 수 있는 길은 왕이 가지고 있는 규를 내밀 때만 살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을 모르드개에게 전하자 모르드개가 중대한 말을 전한다.

에4:13-14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하니

에스더는 참으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되었다. 제국의 최고의 자리에서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중차대한 일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자신이 유다인을 것을 아는 사람이 없고, 자신의 삶은 최고의 영화와 부귀를 누리는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딸 처럼 양육한 모르드개가 중대한 결단을 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모르드개의 말 중에 왕궁에 있다고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지 말라. 네가 이 중요한 때에 너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면 유다인은 다른 통로를 통해 놓임과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다.

에스더는 중대한 결단을 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자신의 혈기로 하지 않고 철저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결정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에스더는 수산에 있는 모든 유다인들에게 3일 밤 낮을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에스더도 시녀와 더불어 3일 밤낮을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그 유명한 말을 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이것은 믿음의 결단이다. 에스더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작정한 것이다. 자기를 감싸고 있는 안락과 행복을 내려놓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다. 에스더는 3일 밤낮을 기도하면서 자신을 비우고 또 비웠을 것이다. 하나님 어찌하면 좋습니까? 하나님 응답하소서. 나의 몸은 오직 주의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니 하나님께로 돌립니다.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3일이 지난 후 에스더는 왕후의 예복을 입고 왕궁 안 뜰 어전 맞은편에 나아갔다. 왕이 왕좌에 앉았다가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보았는데 너무나 사랑스러운 것이다. 왕 앞에 나아 간지 30일이 지났다. 언제 왕후를 부를지도 모르는 시점이다. 그런데 왕은 왕의 명령도 없이 왕의 앞에 나타난 에스더가 괘씸하고 고약하고, 버릇없게 보인 것이 아니라 너무나 사랑스럽게 보인 것이다. 왕의 눈을 보배롭게 만드신 분이 누구일까? 하나님이 아니시면 누구이겠는가! 3일 밤낮 금식하며 기도한 것은 왕의 마음을 부드럽고 왕의 눈을 바꾸어 놓은 것이다. 왕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규를 내밀어 왕후를 받아 들인다.

교 훈

그렇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믿음의 결단이 더 큰 열매를 맺게 합니다.

눅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위대한 신앙은 위대한 결단을 할 때 생기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결단을 하고 고향을 떠났을 때, 그리고 이삭을 향해 칼을 높이 쳐들었을때 위대한 응답을 역사를 체험하게 된 것이다. 결단하지 않는 신앙은 열매가 없는 것이다. 법궤를 멘 자들이 요단강에 발을 담그었을 때 요단강이 멈추었다고 하지 않는가! 예수님이 십자가의 죽음의 결단을 했을때 부활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 우리가 믿음으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 놓을 때 비로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것이 보이는 것이다.

4. 신중하고 지혜로운 여인

에스더는 매우 신중하고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왕후를 용납한 아하수에로 왕은 에스더에게 묻는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그대에게 주겠노라.

왕의 이러한 표현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왕후가 목숨을 걸고 왕 앞에 나온 것은 아주 절박한 상황이 있음을 감지한 것입니다. 그리고 3일 동안 금식한 왕후의 모습이 얼마나 수척했겠습니까? 이미 목숨을 걸고 왕에게 나아온 왕후에게 못해줄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왕후를 힘들게 하는 무엇이든지 해결해 주고 싶은 것이 왕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에스더는 자신의 요구사항을 바로 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부탁하기를 왕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니 그 잔치에 왕이 귀히 여기는 하만과 둘이 참여해 달라는 것입니다. 왕후가 극진히 대접하겠다는 것입니다. 왕은 서둘러 하만을 불러서 그 잔치에 참여해 즐기다가 다시 왕후에게 묻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그러나 이번에도 에스더는 자신의 소원을 선뜻 대답하지 않고 매우 신중합니다. 그러면서 내일 하루 더 잔치를 열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때 왕의 신하 하만과 함께 다시 잔치에 참여하면 그때는 왕의 질문에 대답하겠다는 것입니다.

왕은 지금 하만을 최고로 신임하고 있습니다. 그런 왕에게 잘못 카드를 내밀면 승산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에스더는 신중에 신중을 기합니다. 그리고 왕이 정말 에스더의 소원이 무엇인지 궁금하게 여기고 갈증을 느끼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는 이처럼 이 일이 중차대한 일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은 시간일 흐를수록 심상치 않음을 직감하게 될 것입니다.

교훈

어떻습니까? 에스더가 얼마나 신중하고 지혜로운지 아시겠지요. 에스더는 자신이 행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아주 신중하게 일을 처리하려고 합니다. 왕의 마음을 최대한 얻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수 같은 하만을 태연하게 대접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감당할 때 신중하게 지혜롭게 처리해야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당연하고 옳은 일이라고 해서 함부로 말하면 그 말에 상처를 받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상대가 잘못했다 할지라도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사람은 그 것이 옳다고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신중하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잔치를 배설하고도 끊임없이 기도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아주 적절한 시기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왕을 배알하는 일차 관문을 통과 했지만 이 난국을 잘 해결해야 할 2차 관문이 있기 때문입니다.

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을 체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우연처럼 보이는 일 속에서 일하신 하나님의 치밀하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 날 잔치를 하고 돌아간 하만이 기분이 너무 좋아서 흥얼거리면서 나옵니다. 그런데 대궐 문 앞에 모르드개가 있는 것을 보고 아주 불쾌해집니다. 모르드개는 어떤 변화도 없이 일어나지도 몸을 움직이지도 않고 요지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시원치 않은데 더욱 방자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화가 잔뜩 난 하만은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의논합니다. 그러자 아내와 친구들이 50 규빗 되는 장대를 만들어 내일 모르드개를 그 나무에 매달라고 조언을 합니다. 하만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50 규빗 되는 장대를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같은 날 밤 왕은 침소에서 잠이 오지 않아 서성입니다. 그래서 신하에게 역대 일기를 읽어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 역대일기를 읽는 중에 몇 년 전에 왕의 내시 중에 빅단과 데레스가 아하수에로를 암살하려는 일이 있었는데 그 사실을 고발하여 왕을 구해준 일을 알게 됩니다. 그때 고발 자가 모르드개였다는 사실을 알고 모르드개에게 무슨 상을 베풀었느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나 어떠한 상도 모르드개에게 베푼 일이 없었습니다. 왕이 즉시 뜰에 다른 신하가 있는지를 찾습니다. 그런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침 그 때에 하만이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다는 일을 의논하기 위해 왕을 배알하려고 와 있었습니다. 하만이 들어오자 왕은 하만에게 질문하기를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어떻게 대우하면 좋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하만은 자신을 보고 하는 소린 줄 알고 말하기를

왕관을 씌우고 왕복을 입히시고 왕이 타는 말을 내주고 신하 중에서 가장 존귀한 자의 손에 맡겨서 성 중 거리로 다니면서 왕이 존귀히 여기는 자를 이같이 대접할 것이라고 반포하게 함이 좋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자 왕은 즉시 명을 내려 하만으로 하여금 모르드개에게 그 같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하만은 어쩔 수 없이 이튿날 모르드개를 존귀히 대접하게 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에스더가 베푼 잔치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그 잔치에서 술을 마시던 왕은 에스더에게 다시 소원이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그때 에스더가 말합니다.

왕이시여 내가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었으면 내 소원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내 민족이 팔려서 죽음과 도륙과 진멸을 당하게 되었나이다.

왕은 깜짝 놀라서 감히 이런 일을 심중에 품은 자가 누구냐가 호령합니다.

대적과 원수는 이 악한 하만이니이다. 왕은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일의 전후를 들은 왕은 노하여 후원으로 나갔습니다. 이 일이 급박함을 알게 된 하만을 왕후 에스더에게 매달려 목숨만은 살려 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런데 이를 어쩝니까? 다시 잔치자리에 돌아온 왕은 하만이 에스더의 걸상에 엎드린 것을 보고 대노하여 네가 이제는 왕후를 강간하려고 하는구나 하며 크게 진노하게 됩니다.

그때 내시 중에 하나가 하만이 모르드개를 장대에 매달기 위해 50규빗 되는 장대를 준비했다고 말하자 왕은 하만을 그 장대에 매달라고 명령합니다. 결국 하만의 집은 몰락하게 됩니다.

그리고 전국에 내려졌던 조서는 취소가 되고 두려움에 떨던 유다인은 두려움과 공포에서 해방되게 됩니다. 숨막히는 긴장 속에서 유다인이 승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과정들 가운데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손을 사용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잔치를 마치고 돌아가던 하만이 모르드개를 보록 분노하고 장대를 만든 일, 그 밤에 왕이 잠이 오지 않아 역대 일기를 읽게 된 일 모르드개를 치하하기 위해 신하를 찾을 때 하만이 왕을 배알하기 위해서 온 일 하나님은 최적의 상황을 만들어 가셨던 것입니다. 우연히 보이지만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일이셨던 것입니다. 모든 민족이 금식하고 재 가운데서 울부짖고 수산궁에 있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왕후와 시녀까지 하나님 앞에 긍휼을 구하고 금식하며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이미 일하시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모든 상황을 드라마처럼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아주 극적인 연출을 하신 것입니다.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하나님을 의뢰하는 백성들의 위대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모르드개와 에스더에게는 어떤 선지자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기도했고, 그리고 최선을 다해 신중하고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을 이끌어 가신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교훈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연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께 간절히 찾고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십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까? 앞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긍휼을 간절히 찾고 구하면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구름뒤에서, 수면 밑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결론

그렇습니다. 오늘 에스더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몇 가지를 생각해 봅시다.

1. 우리의 삶이 인정받고 사랑받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욕심을 비우고 교만하거나, 거만하거나, 사치하거나, 포장하지 않는 삶이 그런 삶입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진솔하고, 다정해야 합니다.

2. 좋은 만남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자녀들이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다윗이 요나단을 만났듯이, 여호수가 모세를 만났듯이 엘리사가 엘리야를 만나고, 에스더가 모르드개를 만나고, 어부들이 예수님을 만났듯이 우리 아이들이 인생이 좋은 친구, 좋은 스승, 좋은 배우자, 좋은 동역자들을 만나고 무엇보다 참되신 예수님을 만나도록 기도합시다.

3. 선택의 기로에서 믿음의 결단을 합시다.

에스더가 자신의 안일만 생각했다면 에스더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쓰임받지 못했을 것이다. 위험이 큰 만큼 그 일이 가치있을 때가 많음을 알아야 한다.

4. 신중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됩시다.

일처리를 할 때 항상 신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옳고 그름의 논리가 아닌 보다 지혜로운 방법이 무엇이지를 찾는 습관이 필요하다.

5. 기도 속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있음을 확신합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의 의미

에스더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하나님께서는 에스더를 통하여 무엇을 가르쳐 주시려는가? 성경학자들은 의견이 분분하다. 구약은 신약과 달리 이야기(narrative) 형식을 빌려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 따라서 해석이 다양할 수밖에 없다. 시대에 따라, 환경에 따라, 사람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일제강점기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각오로 왕 앞에 나아간 에스더가 너무나 훌륭하게 보였다. 교단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가결하고 먹고 살기 위하여 일제에 고개 숙이는 목회자들이 속출하던 때였기 때문이다. 막강한 권력 앞에 무릎 꿇었던 상황에서 에스더는 분명한 메시지를 주었다. 죽음 이외 다른 길이 보이지 않던 그 시대 순교를 각오한 에스더의 모습은 하나의 좌표였다.

시대는 변하였다. 이제 순교의 메시지는 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물론 아직도 돈과 명예와 권세에 초연하면서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면, 순교 정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말 순교하는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오히려 세속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시대 기독교는 세상과 타협하며 썩어가고 있다. 편안함, 안락함, 부귀와 영화가 신앙의 목적이 되어 버린 시대다. 이제 에스더를 재해석해야 할 때가 되었다.

한국 기독교는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코너에 몰리고 있다. 교회마다 교인 수는 줄어들고 기독교의 리더십과 영향력은 볼품없어졌다. 1907년 평양 대부흥을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여 보았지만, 하나님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으신다. 오늘 우리의 상황은 에스더의 세상과 같다고 할 수 있다. 힘없는 유대인, 구심점을 잃어버리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는 유대인, 모국어인 히브리어는 잊어버리고 외국어인 아람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뿐이다.1) 민족의 운명이 바람 앞에 촛불 같은 상황에서 기댈 것은 오직 나약한 여성 한명 뿐인 세상과 지금은 다를 바가 없다. 대한민국 기독교에 과연 소망이 있을까? 대한민국 기독교에 과연 미래가 있을까? 에스더가 나라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금식하며 기도하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단 한마디도 들려오지 않는다.

“하나님, 묵묵히 계시지 마십시오. 하나님, 침묵을 지키지 마십시오. 조용히 계시지 마십시오. 오, 하나님!”(시83:1)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하나님의 지도를 받지 못한 에스더는 그냥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나아갈 뿐이다.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암흑 속에서 불안하지만 더듬더듬 앞으로 나가는 에스더가 가련해 보인다. 오늘 우리가 그러하다. 죽으면 죽으리다는 말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나가는 발걸음이라기보다 내일을 알지 못하는 불안함 속에서 어렵게 한 발을 내딛는 연약한 한 여자의 가녀린 기도다. 그건 오늘 우리의 기도이기도 하다.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지도를 받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좌충우돌 하는 몸부림과 같다.

4장 1절은 3장 마지막 절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왕은 하만과 함께 앉아 마시되 수산 성은 어지럽더라.”(에3:15)

“모르드개가 이 모든 일을 알고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하며”(에4:1)

하만은 앉아 웃고 마시며 떠드는 데 모르드개는 대성통곡하고 있다. 사람은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다. 상황을 바로 파악하지 못하면 그걸 거꾸로 한다. 지금 기독교는 마땅히 울 때이지 웃을 때가 아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쾌락과 향락을 위하여 하만 한 사람을 앞세우고 독재 정치를 하였다. 충언은 필요 없다. 논의도 필요 없다. 왕권에 도전하는 자는 죽음뿐이다. 유대인 학살 결정은 아무런 논의나 검토도 없이 밀실에서 졸속으로 결정하였다.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다는 하찮은 이유로 한 민족 전체를 멸절하기로 하였다. 본보기인지도 모른다. 공포 정치는 시작되었다.

모르드개는 굵은 베 옷을 입고 대성통곡하였다.2) 그는 자기 하나 때문에 민족이 멸망하게 되었다는데 책임감을 느끼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울었을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그는 페르시아가 완전히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음을 온몸으로 항의하는 중이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왕에게 직언할 때 상소문을 들고 대궐 문 앞으로 나아가 엎드렸다. 그냥 나간 것이 아니라 도끼를 들고 나아갔다. 저희의 충언을 듣지 않겠거든 차라리 이 도끼로 목을 치소서! 아무리 막돼먹은 전제 군주라 할지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는 백성의 말을 무시할 수 없다. 모르드개의 심정이 바로 그러하였다. 그는 모든 사람이 보라는 듯,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대궐 문 앞까지 대성통곡하면서 행진하였다. 그의 저항은 한 사람으로 끝나지 않았다. 페르시아 각 지방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이 모르드개와 함께 하였다.

“크게 애통하며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에4:3)

오늘날 어깨동무를 하고 길바닥에 누워버리는 연좌데모가 연상되지 않는가? 그러나 왕에게 나아가는 언로는 이미 막혀버린 상황이다. 왕은 국정에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나라는 하만에게 맡기고 그저 먹고 마시고 노는 것에만 몰두하기로 작정한 왕이다. 누가 이 사실을 왕에게 알릴 수 있을까?

언로가 꽉 막힌 상황에서 모르드개가 마지막으로 희망을 둔 것은 사촌 여동생이며 왕비인 에스더이다.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에스더는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삼촌을 위하여 옷을 보내었다. 그 옷을 입을 모르드개가 아니었다. 에스더는 모르드개의 상황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내시 하닥에게 지시하였다. 모르드개의 의도는 분명하였다.

“왕에게 나아가서 그 앞에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간절히 구하라!”(에4:8)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페르시아 법에 의하면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비가 먼저 나갈 수 없었다. 하긴 왕비가 수천 명이니 서로 왕을 보러 나가겠다고 하면 여자들의 싸움이 말이 아닐 터였다. 왕은 자기 편한 대로 여자들을 상대하려고 함이 분명하다. 에스더는 30일 동안 부름을 받지 못하였다. 에스더가 죽기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어찌 왕을 만나겠다고 나설 것인가? 사실 아무런 생각 없이 향락에만 몰두한 왕과 사이가 좋다고 해서 좋아질게 하나도 없는 에스더였다. 쾌락을 함께 즐길 것이 아니라면, 30일이 아니라 30년 동안이라도 건드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는 게 에스더로서는 더 좋을 수 있다. 왕비로서 적당한 권세와 안락과 풍요로움이 있기 때문이다.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다시 한번 압력을 가하였다.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목숨을 건지리라 생각하지 말라!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버지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에4:13,14)

모르드개가 하나님을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의 신학은 분명하다. ‘일할 사람이 너 하나뿐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너 아니더라도 하나님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신다. 만일 네가 침묵하고 책임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백성에서 너는 제외될 것이다. 잠시 사는 세상에서 너는 안전할지 모르지만,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너는 멸망이다.’

모르드개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무거웠다. 딸처럼 사랑했던 에스더에게 죽음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 유대인 신분도 밝히고 왕에게 나아가 죽음을 각오하고 간청하여 민족을 살려라. 어떻게 해야 할지 자세한 방법도 가르쳐주지 않고 짊어지기 어려운 무거운 짐만 던져 주는 꼴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에스더라고 무슨 뾰족한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에스더를 영적으로 지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기도한다고 하나님의 음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정말 답답하고 깜깜한 상황이다.

에스더는 마침내 결단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에4:16)

어찌할 바를 모르지만 일단 앞으로 나아가야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가야 할 길이다.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도 없는 곳으로 가야 했다. 말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각도 다른 그곳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었다. 비비고 기댈 언덕도 없었다. 오직 하나님뿐이다.

하나님의 요구는 기존 질서에 적당히 순응하면서 편안함을 추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권력에 안주하지 말고, 세상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사회,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보라는 도전이다. 에스더가 앞으로 나간 것은 하나님의 응답을 받아서 나간 것이 아니다. 그녀는 결정해야 할 순간에 자신이 지금까지 누리던 평안함을 포기하기로 하였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그녀는 권력과 부귀와 영화로부터 떠나기로 하였다. 에스더서의 특징은 하나님의 숨은 모습과 그걸 모르는 인간의 고뇌와 갈등이다.

한국 기독교가 갱신하는 길이 어디 있을까? 답을 찾고자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답을 기대하지 마라. 성경에 이미 수 없이 반복하여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모른 척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답은 하나다. 기득권을 버리고 애굽의 노예였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 새출발하라는 것이다. ‘죽으면 죽으리이다’는 오늘 새롭게 해석해야 할 커다란 명제다.

주)

1. 타향살이가 100년 되니 유대인은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아람어가 히브리어인 줄 생각하였다.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어라고 언급한 단어들은 사실은 아람어였다.

2. 모르드개가 굵은 베옷을 입었다고 해서 우리가 장례식 때 입은 굵은 삼베 옷을 생각하면 안 된다. 광야 민족인 유대인은 산양이나 약대 털로 거칠게 짠 옷을 입었다.

죽으면 죽으리라에 에스더의 기막힌 전략이 있다.

▲ 김희택 목사 G국 한인교회

무릇 무슨 일을 성취하려면 전술과 전략이 필요하다. 전술은 그 일을 수행함에 주어진 환경이나 내가 가진 능력 같은 것이고 전략은 그러한 조건들을 포함하여 일이 성취되도록 상황을 구성해 가는 능력이다. 요즘 브라질에서 진행되고 있는 월드컵 축구팀을 예로 들자면 전술이란 체격조건, 체력, 드리블, 패싱, 슈팅과 같은 선수 개개인의 능력이고 전략이란 이런 선수들을 가지고 팀원들이 서로를 신뢰하고 서로를 아끼는 마음을 갖게 하는 팀 정신, 개개인의 선수가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되도록 적재적소에 선수를 기용하는 용병술, 상대방의 작전에 따라 그때그때 대처하는 임기응변으로 승리를 쟁취하는 능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분하자면 전술은 선수 개개인이나 전담 코치의 책임 분야고 전략은 감독의 책임이라 할 수 있지만 선수 선발과 훈련의 권한까지 감독에게 주어지기 때문에 전술의 열등도 전략의 부재도 모두가 감독의 책임이다. 더 많은 권한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감독은 이겨도 져도 대중의 평가와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잘 아는 얘기지만 유랑민족 이스라엘의 역사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에스더서를 다시 읽는다. 모르드개와 하만의 갈등으로 야기된 유대인의 민족적 위기 앞에서 에스더가 발휘한 행동은 용기만이 아니라 지혜가 바탕이 된 고도의 전략적 아이디어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에스더를 그저 자기 민족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 는 당찬 각오로 목숨을 걸었던 한 가녀린 여성인줄 알았는데 아주 뛰어난 전략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따라서 그가 한 “죽으면 죽으리라”는 외침은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절망적 상황 앞에서 터진 막가파의 외마디 비명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전술적 요소들을 총동원하여 상황을 반전시키겠다는 자신감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나온 전사의 출사표가 아니었나하는 것이다.

에스더가 가진 전술적인 요소를 보자면 왕의 사랑을 받을 만한 여성으로서의 매력, 미모, 젊음, 왕후의 지위, 그에 따른 정보력과 권력 같은 것이지만 이것으로만 유다민족이 처한 위기를 극복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왕의 결정이 우선적이기 때문이다. 에스더가 자기 민족을 구하기까지 활용한 그의 전략을 보자면, 먼저 그녀는 3일간의 금식 후에 무단히 왕 앞게 나아갈 결심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당찬 각오를 발설했다. 스스로의 각오를 다른 사람의 귀에 들리게 했다는 것은 들은 사람에게 책임을 져야하는 부담을 가진다. 그 마음의 간절함이 눈에 보이는 용모로 드러난 것일까? 금식으로 날씬해진 몸매에 한 달 가까이 만나지 못한 왕이 매력을 느낄만한 치장으로 왕에게 나아갔다. 물론 금식과 기도로 그녀의 계획을 지원하도록 요청할 동족들이 가까운 수산 성에 거주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전술적 플러스 요인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전술적 요소들로 에스더가 어떤 전략을 세웠는지를 보자. 금식을 끝낸 에스더가 마침내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를 가지고 왕 앞에 나아갔을 때에 왕은 한 달 동안이나 잊고 있었던 에스더를 발견하고 금 홀을 내 밀면서 반갑게 맞이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무슨 소청을 가지고 나왔는지를 물었다. 심지어 원하기만 한다면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무한대의 애정을 표현하면서~. 하지만 이 시점에서 에스더의 기가 막힌 전략이 발휘된다. 그녀는 왕의 제안을 마치 물고기가 미끼를 물듯이 덥석 받아들이는 대신 그저 한 남자로서 왕이 너무나 그리웠다는 듯이 왕을 위하여 왕궁 후원에서 잔치를 열 것인데 왕림해 달라고 요청한다. 혹 괜찮으시다면 하만과 함께 오시라고……

정말로 나라의 절반을 달라고 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 졌을지 모르지만 한 달 동안이나 바쁜 정무에 시달리며 신혼의 젊은 왕비를 잊고 있었던 왕에게 있어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사랑스런 여인의 파티 초대는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는 요청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먹고 마시는 일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지위고하를 떠나 모든 인생에게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름다운 무희들의 춤, 여인의 향기, 보는 것만으로도 취하게 만드는 붉은 빛 포도주, 기름진 안주, 산해진미로 풍성하게 꾸며졌을 식탁 ……! 하지만 이것은 과중한 업무로 심신이 지쳤을 왕을 위로하기 위한 연회에 총리 하만과 함께 참석하도록 초청하는 정도의 부담 없는 요구로 왕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에스더의 전략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첫째 날에 왕은 에스더의 소청을 묻는다. 하지만 에스더는 내일 또 연회에 오시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소청은 내일 말씀드리겠다고 한다. 그 다음날 마침내 소청을 묻는 왕의 질문에 대답할 시간이 되었을 때 에스더는 왕에게 “감히 왕후를 죽이려는 자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고 한 없이 연약하고 불쌍한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어 목숨을 구걸하는 가련한 처지까지 내려간다. 왕께서 지켜 주지 않으면 아무리 왕후라도 죽을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이며 왕의 절대적인 보호가 필요한 소수 민족의 딸이라는 사실을 부각시켜 절대군주의 보호본능을 자극한다.

너무나 어이없는 얘기에 왕은 도대체 “누가 그런 놀라운 일을 꾸미느냐고? 그게 가능한 얘기냐?”는 듯이 되묻는다. 그러자 옆에 함께 한 하만을 가리키며 “그 원수는 바로 이 하만이라”고 지목함으로 결정타를 날린다. 분노와 배신감으로 놀란 왕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간 사이 당황한 하만은 걸상에 앉은 왕비 에스더의 무릎에 엎어져 넋을 놓고 목숨을 구걸한다. 연회 자리로 들어오다가 이 광경을 본 아하수에로의 입에서 차마 듣기 민망한 “강간..”이란 말이 나오자 하만은 그 얼굴이 보자기에 싸이는 수모를 당하더니 마침 자기가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고 만든 50큐빗 높이의 장대에 목이 달리는 신세가 된다. 이렇게 해서 멋지게 상황이 마무리 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으로 게임이 끝난 것이 아니다. 하만의 계교로 이미 각 지방으로 내려간 유대인 처단과 관련한 공문을 바로잡는 것이 시급한 일이다. 에스더는 하만이 저질러 놓은 중대한 사안을 촌각을 다투어 뒤집기 위해 왕에게 읍소를 하고 재가를 받아 “유대인을 말살하고 그의 재산을 적몰해도 좋다”는 앞의 공문을 취소하고 오히려 유대인을 위협하는 원수들을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수산성에서는 14일까지 이틀 동안) 죽이고 재산을 압류해도 좋다는 공문서로 바꾸어 하달하도록 한다. 그리고 이 결정적인 기회에 그의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를 왕에게 소개하고 모르드개가 그 일을 주관하도록 일임한다. 물론 왕도 자신에게 가해질뻔한 암살 모의를 사전에 막아준 생명의 은인으로써 모르드개에 대해 호감을 가졌을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여기까지 사태의 추이를 추적해 보자니 모르드개가 알려 주는 사태의 진상을 듣고 “죽으면 죽으리라”면서 모종의 결심을 한 것은 그냥 대책 없는 외침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다. 죽을 수는 있어도 패할 수는 없다는 虽死不败(수사 불패) 전사의 각오였다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일을 처리함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이것은 이미 에스더의 머릿속에서 세운 계획대로 일이 굴러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 정도면 대단한 전략가 아닌가! 에스더는 단순히 운 좋게 대제국 페르시아의 왕후가 된, 매력적인 미모에 심성이 착하고 애국심이 투철한 유대 여성 정도로 기억될 인물이 아닌 것이다.

아래 사람을 통해 사촌오빠가 하는 이상 행동의 진상을 파악한 후, 죽으면 죽으리라는 결단을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한 협조요청을(금식) 하고, 왕을 면회하기 위한 전략을 수립했으며, 왕의 애정어린 질문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고단수의 심리전, 왕후로서의 지위를 최대한 활용하여 왕에게 처리방안을 조언하고, 가장 적당하게 일 처리할 사람으로 모르드개를 추천하고, 이미 하달된 공문서의 내용을 뒤집어 하만의 악한 공문서가 지닌 효력을 무효화시키고 모르드개의 공문서가 시행되도록 사태를 재빨리 역전시키는 마무리까지 확실하게 하는 야무짐……!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다.

모사재인 성사재천(謀事在人 成事在天)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는 말씀의 중국어 버전이다. 아무리 전술이 탁월하다고 해도 그리고 아무리 고단수의 전략으로 일을 추진한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절대로 이룰 수 없디/ . 에스더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름으로가 아니라 실체로써 역사를 주관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내일 또 오시면 그 때 소청을 말씀드리겠다고 한 첫째 날의 연회가 파한 그 밤에 왜 왕은 잠이 오지 않았을까?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해서 역대 일기를 가져다가 측근에게 읽힐 것은 또 무엇 때문이며?, 어찌하여 하필이면 “문 지킨 왕의 두 내시 빅다나와 데레스가 아하수에로 왕을 모살하려 하는 것을 모르드개가 고발하였다(6:2)” 는 그 대목을 읽게 되었을까? 에스더와 수산 성 유대인들의 금식은 이 시추에이션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그들의 금식은 단순히 음식 섭취를 중단한 정도가 아니었을 것이다. 바로 목숨을 건 기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기도했다는 말도 안 나오고 응답했다는 표현은 없다. 의도적인 것 같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께는 “주,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여러 가지 칭호들이 있지만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나타나지 않으신다. 보이지 않게 숨어계시지만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 주시고 싶으신 것이다. 사람들은 에스더서를 다 읽어가기까지 이 책속에 “하나님, 주, 여호와, 기도” 이런 명칭이나 용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 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수가 많다. 나중에 그와 같은 사실을 얘기하면 그 때서야 비로소 “어, 그래?” 하고 놀라곤 한다. 이사야는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스스로 숨어 계시는 분(사45:15)”이라고 했다.

에스더서에서 하나님은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신다. 숨어계시면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 멀쩡해 보이는 건물이 맥없이 무너지고, 배가 바다에 엎어져 수 백 명의 꽃다운 아이들이 죽어나는 사고를 보면서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앞이 캄캄하고 기가 막혀 숨이 턱에 차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면서 “하나님, 도대체 당신은 계시기나 하는 거요? 보고는 있는 거요?” 라며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도 한 자락 천둥이나 번개로도 기척이 없으시다.

그래도 나는 믿는다. 세상의 온갖 부조리와 불의에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자기 백성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시며 선한 목자가 되셔서 우리를 양떼처럼 돌보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그렇기 때문에 나는 온 세상이 요란방정을 떨어도 절대적 침묵 속에서 세상을 섭리하시며 자기 백성을 보살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분을 찬양한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저 영원한 나라에 가서도 쭈욱~!

[오늘의 설교] 죽으면 죽으리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간구하노라”라는 말씀처럼 사람이 태어나 성공적인 삶을 살려면 성경적 축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에스더는 이런 축복의 진리가 어떤 것인지 잘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축복의 진리는 첫째, 주의 일을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본문에서 에스더는 주의 일을 위해 왕 앞에 나아가야 하는데, 그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주를 위해 포기합니다. 본문 11절을 보면 에스더는 왕 앞에 나가 자기 민족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야 하는 일이 자기가 감당해야만 하는 주의 일임을 알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담대히 실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가 모르드개에게 회답하여 이르되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에스더의 실천하는 모습을 볼 때 주의 일은 절대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누가복음 9장에서 신앙생활을 할 때 주의 일이 얼마나 막중하고 절대적인 일인지를 잘 가르쳐 주십니다. 선거 때마다 각 후보의 운동원들은 자기 후보의 이름이 새겨진 옷을 입고, 후보의 이름이 쓰여 있는 팻말을 들고 연일 구호를 외치는 것을 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주님만이 나타나야 합니다.

둘째, 성도는 에스더처럼 주의 일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녀는 주의 일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왕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왕이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에스더의 소원을 들어줌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이 진멸의 위기에서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신앙의 축복은 성도가 주의 일을 위하여 모든 것을 아낌없이 포기할 때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그들에게 잡히시어 온갖 조롱 속에서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감당하셨습니다. 성도의 믿음의 삶은 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포기한 것들에 대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이 있습니다.

지난날 목회를 돌이켜보면 가장 어려울 때, 주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때, 전능하신 하나님은 저의 길을 열어주셨고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신학교 4학년 때 결혼을 했습니다. 그땐 형편이 너무 어려웠는데, “주를 위해 굶어 죽을 수 있다면 내게 오라”며 청혼했고 아내는 저를 믿어줬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 내려와 개척할 때 사용하지 않는 마을 회관을 사용하며 옆집에서 전기선을 끌어다 사용했습니다. 살림집 역시 방 한 칸에 지붕도 없는 부엌만 있었습니다.

당시 목회자들 사이에서는 ‘3년 참으면 된다. 그래도 안 되면 5년 참으면 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경우 이 기간이 7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며 개척하면 될 줄 믿었고, 온갖 목회 한계에 도달했을 때도 중단하지 않고 주님의 교회와 운명을 같이 하기로 다짐하며 모든 것을 교회를 위해 포기했습니다. 그때부터 주님은 저와 함께하셨으며, 은혜 가운데 교회를 건축하게 하시어 포천에서 왕성한 목회가 가능케 하셨습니다.

축복의 진리는 성도가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에스더처럼 기도로 실천해야 합니다. 혹시 고난의 상황 속에 있습니까.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십니까. 자아를 철저히 포기하고 예수 십자가를 붙드는 역설적 신앙으로 예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 되시길 기도합니다.

민춘기 포천 초대순복음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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