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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장 1절~9절의 말씀으로 \”모세의 지팡이\”라는 제목의 설교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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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 출애굽기 4:17-20 – 이홍렬목사/루터교회이야기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입니다. 모세와 함께 한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불가능의 상황을 열어가는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여러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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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8/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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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 Pensées
모세의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는 양치기의 지팡이다. 놋뱀이 달린 지팡이와는 다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종종 모세의 지팡이라고 소개한 사진을 발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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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0/1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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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 Dios eterno
모세의 지팡이는 구약에서 모세가 짊어진 지팡이(나무 지팡이의 일종으로 추정됨)를 말합니다. 그의 사명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를 통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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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vs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9,18-20) – 기멀전
모세의 지팡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질이나 모양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모세의 하나님이 되셔서 늘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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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와 아론, 누구의 지팡이인가? – 네이버 블로그
모세가 아론에게 ‘너의 지팡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의 지팡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큰 어려움은 7장 12절에서 애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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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모세 – 다음블로그
모세가 바로 그런 삶의 본보기다. ◑2. 허무한 지팡이가 → 하나님의 지팡이로!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기적을 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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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7/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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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하나님 의 지팡이 라고도 알려진 모세 의 지팡이는 성경 과 꾸란 에 모세 가 사용한 지팡이 로 언급된 지팡이 입니다. 출애굽기 에 따르면 지팡이( 히브리어 …
Source: hmn.wiki
Date Published: 9/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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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181 (모세의 지팡이와 하나님의 지팡이) – 밤중소리
모세의 손에 잡혀진 하나님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죽을 때까지 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인도하심을 받은 …
Source: www.bamjoongsori.org
Date Published: 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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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모세 의 지팡이
- Author: 바이블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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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2.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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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 출애굽기 4:17-20
1999년 8월 29일
출애굽기 4:17-20
모세의 지팡이
이홍열 목사
모세의 지팡이
내일 오후에는 총회 회보 발행 30주년 행사가 있습니다. 담임목사빽으로 참석시켜 드리겠으니 참석을 희망하시는 분은 내일 6시까지 국제루터교회로 오시기 바랍니다.
오늘 아침에는 지팡이를 주제로 말씀을 풀어가고자 합니다. 지팡이는 루즈벨트 대통령의 지팡이가 유명합니다. 그는 소아마비 장애자로 대통령까지 오른 사람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 김대중 대통령의 지팡이도 유명합니다. 바자회에서 김 대통령의 지팡이 1개가 1-2천만원씩에 팔리기도 했다는 보도를 본적이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 김경택 장로님의 지팡이도 유명합니다. 저는 지팡이가 단순히 워킹 보조 수단으로만 알았는데 김장로님 지팡이를 사용하시는 것을 가만히 보니 상당히 용도가 많습니다. 먼제는 문을 열고 달을 때 사용하십니다. 지팡이 끝으로 문을 밀면 열리니다. 반대로 지팡이 손잡이 부분으로 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닫깁니다. 또 신발을 신으실 때 허리를 굽혀 신발코를 돌려 놓아야 하는 경우 지팡이를 신발속에 집어넣고 살짝 돌리면 신발이 180도 회전합니다. (겨우들 웃음) 아마 개발하기에 따라서는 더 많은 지팡이의 용도를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성서에서도 지팡이는 아주 유명 한 소품입니다. 특히 지팡이를 잡은 목자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시 23:4에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또 시 89:32에는 내가 지팡이로 저희 범과를 다스리며 채찍으로 저희 죄악을 징책하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성서에서 지팡이가 때로는 보호의 상징이며 때로는 심판도구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성서의 여러 지팡이 중에서도 모세의 지팡이가 가장 유명합니다. 성서의 지팡이는 단순한 나무막대기가 아니라 신앙적 상징성을 가진 물건입니다.
오늘은 출애굽기에 나타나는 모세의 지팡이 속에 숨어있는 신앙적 의미를 찾아봄으로 은혜 나누겠습니다. 모세는 최소한 60만명을 이끌고 40년간 출애굽의 역사를 지휘햇습니다. 때로는 외롭고,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지칠 때가 있었을 것입니다.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얼마나 모세의 속을 끓이고 애간장을 태웠습니까? 툭하면 원망, 툭하면 반항, 툭하면 투정, 툭하면 애굽돌아가자고 합니다. 아마도 모세가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끝내는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절시킬 생각까지 가지셨습니다. 지위가 높을수록 책임이 클수록 그 지도자가 받는 스트레스는 정비례 한다고보시면 됩니다. 우리 준목 전도사님들도 이홍열 목사에게 못마땅한 것 있을 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한 1달 정도 담임목사 역할 시켜보고도 싶습니다. 이렇게 힘든 출애굽의 역사를 만들어 가면서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모세의 마음을 붙들어 준 것이 있었으니 바로 지팡이입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입니다. 모세와 함께 한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입니다. 불가능의 상황을 열어가는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속에 모세가 가졌던 이 신앙적 지팡이를 하나씩 소유하시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모세의 지팡이는 어떤 지팡이였습니까?
1. 첫째로 모세의 지팡이는 노예를 자유인되게 한 구원의 지팡이였습니다.
먼저 출애굽기 7장 1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읽기) 모세의 10가지 기적은 이 지팡이로부터 시작합니다. 10가지 재앙의 기적이 모두 지팡이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실제적 출애굽은 모세의 첫 번째 기적,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지팡이가 뱀이 되었다. 그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지팡이는 생명력 없습니다. 남의 손에 예속된 존재입니다. 자력으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죽은 존재입니다. 큰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단순한 피동적 보조수단입니다. 반면에 뱀은 생명력이 있습니다. 자력으로 움직임입니다. 능동적 존재입니다. 살아있는 생명의 존재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지팡이가 뱀이 되는 기적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의 운명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현재는 노예요, 피동적 존재요, 가치 없는 존재요, 생명도 없는 존재입니다. 자존적 존재가 아닙니다. 꼭 지팡이와 같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 같은 이스라엘 민족을 생명력 있는 자존적 존재인 존재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팡이 같이 죽은 백성을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민족으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지팡이처럼 피동적으로 애굽의 노예상태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뱀처럼 살아 움직이는 축복의 백성으로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다시 성서 몇구절을 더보겠습니다. ( 출7:15 7:17 8:5 8:16 9:23 10:13 함께 읽기) 지팡이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구원의 메시지요, 상징입니다. 지팡이는 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상태에서 구원해낸 지팡이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신앙적 차원에서 우리의 지팡이이십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예에서 구원했지만 예수는 전 인류를 죄와 죽음과 저주에서 구원해 내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 지팡이를 손에 잡은 사람들입니다. 결코 이 지팡이를 놓아서는 인됩니다. 죄와 사망을 향해 예수 지팡이 높이 쳐들고 승리하시길 축원합니다.
2. 모세의 지팡이는 불가능의 홍해 바다를 가른 믿음의 지팡이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보름이 지났습니다. 홍해바다앞에 다다랐습니다. 그런데 절대절명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바다를 건너야 하는데 수단이 없습니다.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추격해옵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둘러보아도 모두 죽음의 위기입니다. 앉아 있어도 죽고, 움직여도 죽습니다. 이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을 탈출한 비결을 찾아보십시다. 성경을 함께 읽겠습니다. (성경읽기 출 14:16) 바로 홍해를 가를 때, 모세의 손에 들려있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팡이였습니다. 이때 모세의 지팡이는 위기를 타개하는 지팡이입니다. 현재의 불가능을 넘어 미래로 전진토록 만든 지팡이였습니다.
여기서 홍해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완벽한 절망의 상황입니다. 죽음보다도 고통스런 절망적 상황이 바로 홍해의 의미입니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해결책이 없는 한계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을 깨뜨린 것이 모세의 지팡이입니다.
우리도 인생의 광야 길에 수없이 많은 홍해바다의 절망을 만납니다. 무엇으로 인생의 홍해바다에 새 길을 만들 수 있습니까? 바로 모세의 지팡이 같은 것이 있으면 됩니다. 그 지팡이는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간절한 기도의 지팡이입니다. 여러분은 기도의 능력을 얼마나 믿으십니까? 이성적이고 합리적 성향의 현대 신앙인일 수록 기도가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 인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저는 기도의 신비한 능력을 믿습니다. 습관적이고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정말 간절한 기도는 홍해를 가르는 능력이 있습니다. 언젠가 간증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만 우리교회에 김선수 엄마가 계십니다. 아기 이름이 선수입니다. 그런데 선수를 낳기 전에 6년간을 아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아기를 낳도록 태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아기를 위해 성미를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아들 선수를 얻었습니다. 또한 2월 12일 루터회관 기도회를 통해 우리는 홍해바다 처럼 가로막힌 루터회관 준공문제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고 9월 20일에 준공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여러뷴 ! 기도의 지팡이를 붙잡읍시다. 그리고 절망의 홍해를 가르고 가나안으로 전진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3. 셋째로 모세의 지팡이는 생수를 샘솟게 한 지팡이입니다.
성경을 다시 함께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7장 5-6 ) 하나님의 홍해를 가르는 기적의 도우심으로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이 이번에는 마실 물이 없어 위기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이때 다시 모세의 지팡이는 반석을 쳐서 생수를 솟게 합니다. 여기서 반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불가능이라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중적 불가능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첫째 불가능은 광야라는 환경입니다. 광야는 절대로 물을 얻기 어려운 곳입니다. 둘째 불가능은 반석이라는 물체입니다. 나무나 흙이라면 물을 얻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석에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물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지팡이로 그 반석을 쳤습니다. 반석이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60만명이 먹고도 남는 생수가 솟았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불가능이라는 반석을 쳐서 가능의 상황으로 바꾼 능력의 지팡이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그 반석을 쳤던 모세의 지팡이는 무엇입니까? 저는 먼저 하나님께 함께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신념이 바로 불가능을 쪼개고 생수를 솟게하는 지팡이라고 믿습니다. 안된다 포기해라가 아니라, 될 수 있다.도전해보자는 정신이 있다만 불가능의 반석을 쪼개질 수 있습니다.
옥수수 박사 김순권 교수에 대한 TV보도를 보았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옥수수를 생산할 계획을 가지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옥수수만 재배할 수 있다면 아프리카의 식량문제를 해결할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옥수수를 심으면 옥수수를 말려 죽이는 천적 풀이 있습니다. 절망적 상황입니다. 외국인 학자들도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김교수는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천적 풀과 공생하는 옥수수 종자를 개발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의 식량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제는 북한의 식량문제 해결을 위해 방북하여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는 신념과 믿음이 없었다면 인류문명의 진보는 없었을 것입니다. 쉽게 포기해버릴 것이 아니라 믿음의 지팡이로 불가능처럼 보이는 반석을 치십시오. 새로운 축복의 생수가 솟아 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모세의 지팡이는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케 만드는 지팡이입니다.
다시 성경을 읽겠습니다. (출애굽기 17:9) 여러분 보세요.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가 손에 잡은 것은 하나님의 지팡이였습니다. 이제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세가 가졌던 그 나무지팡이 자체에 무슨 신비한 힘이 있는 것 아닙니다. 그것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나무토막에 불과합니다. 잘생긴 나무토막도 아닙니다. 재목으로도 화목으로도 조각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로 만든 것이 지팡이입니다. 가늘고, 비틀어지고 꼬부라진 쓸모없는 나무토막에 불과합니다. 그 지팡이 자체가 아니라 그 지팡이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통해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반석에서 샘물이 솟게 하셨습니다.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볼 때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을 상징하는 수단일뿐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일으키시는 분은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하나님을 굳세게 붙잡으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홍해를 가르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실 것입니다. 불가능의 반석에서 샘물을 내실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모세의 지팡이로 쓰임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저 호렙산의 볼품없이 꼬부라진 나무였지만 하나님의 손에 붙잡혀 쓰임받을 때 홍해를 가르는 지팡이, 반석을 쪼개어 생수를 솟게 하는 지팡이, 아말렉과 싸워 이기는 지팡이가 되었듯이, 오늘 우리의 존재가 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 능력의 손에 붙잡혀 지팡이를 쓰임 받을 때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오늘의 홍해를 가르실 것입니다. 오늘의 반석을 쳐서 생수를 만드실 것입니다. 사탄과의 영적 전투에서 승리를 이루실 것입니다.
모세가 가졌던 하나님 주신 그 지팡이를 여러분도 가슴속에 굳게 잡고 가나안을 향해 승리의 행진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모세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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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
모세의 지팡이는 양치기의 지팡이다. 놋뱀이 달린 지팡이와는 다르다. 인터넷을 검색하면 종종 모세의 지팡이라고 소개한 사진을 발견하지만, 그것은 가짜다. 진짜 모세의 지팡은 어디에도 없다. 생각해보라. 수천 년이 흐른 뒤에 보존되지도 않은 지팡이가 왜 존재하겠는가? 또한 잘못하면 우상이 될 수도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 그냥 두었겠는가?
그렇다면 모세의 지팡이는 어떤 종류의 지팡이였을까? 그가 양치기였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목자들이 가진 지팡이일 것이다. 아래는 모세의 지팡이라는 제목을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다. 모세의 지팡이에 뱀 모양이 있는 것을 볼 때 여호와께서 모세를 보내기 직전 기적을 보인 것을 상상해 만든 것으로 보인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겼을 것이라 상상해 그렸다. 그런데 이런 모양의 지팡이가 목자들이 가진 지팡이일까? 아닌 것 같다.
이런 모양의 지팡이는 어떻까? 그런데 지팡이가 모세의 키만큼 크다. 지팡이는 사람의 허리만큼 또는 허리보다 조금 더 높게 만든다. 이건 지팡이 아니다. 그냥 말도 안되는 상상력으로 만든 비현실적인 장대다!
목자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는 두 가지다. 하나는 뭉둥이고, 다른 하나는 지팡이다. 작고 굵은 뭉둥이는 늑대로 곰등을 상대할 때는 쓰는 호신용이다. 가끔 집어 던지기도 한다. 고리모양의 지팡이는 양들을 일으키거나 숲풀 등에서 꺼낼 때 사용한다.
그림이 너무 억지스럽기는 하지만 아래의 그림처럼 지팡이는 길어서 양의 목에 걸어 끌어 당긴다. 아마도 모세의 지팡은 구부러진 지팡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현대의 목자들이 사용하고 있는 실제 지팡이의 모습이다.[사진출처]
모세의 지팡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은 출애굽기 4장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통해 기적을 보여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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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지팡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모세의 지팡이는 구약에서 모세가 짊어진 지팡이(나무 지팡이의 일종으로 추정됨)를 말합니다. 그의 사명을 증명하기 위해 하나님은 모세가 손에 든 지팡이를 통해 기사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알려 주셨습니다.
성경에서 지팡이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라(Vara)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지팡이, 지팡이, 가지 또는 길쭉한 막대기를 의미합니다. … 모세와 아론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와 마찬가지로 마법의 요소인 지팡이도 언급됩니다. 구약에서 모세는 기적을 행할 수 있는 지팡이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이름이 무엇입니까?
아론의 지팡이는 구약성경에 모세의 형 아론이 들던 지팡이(완전히 마른 지팡이)를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로 하룻밤 사이에 싹이 나고 잎사귀와 꽃과 열매를 맺게 하시므로 앞에 있는 것만으로도 푸르게 하는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그의 존재의.
측정 막대가 무엇입니까?
막대기의 길이로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나무 또는 금속 막대.
모세의 실수는 무엇이었습니까?
성경은 그가 광야 여행 중에 범한 잘못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녀를 용서하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녀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아몬드 스틱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경에서 그것은 권위와 권세와 동의어입니다. 예레미야는 부여된 권위 앞에서 자신의 책임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식을 바꾸고 풍경을 변화시켰습니다. 이제 그는 변화와 솔루션의 일부였습니다.
지팡이와 지팡이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지팡이는 상단에 일종의 오켓이나 갈고리가 달린 XNUMXm 길이의 막대로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 목자가 지속적인 보행에서 목자의 지지대 역할을하고 돌볼 때 그의 손을 확장하는 도구 역할을했습니다. 구덩이에 들어가거나 넘어졌거나 누워 있던 양들에게 …
교정의 막대가 무엇입니까?
성서에서는 때때로 채찍을 형벌의 도구로 언급합니다. … 잠언에서 지팡이는 종종 방탕하고 어리석은 아들을 벌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신약에서 불충실한 종은 그의 죄에 비례하여 매를 맞고 매로 매를 맞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코스타리카에서 막대는 무엇을 의미합니까?
코스타리카 사람들에게 “바라”라는 단어는 과장, 말도 안되는 거짓말, 그러나 무엇보다도 속임수와 동의어입니다.
모세와 항상 동행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답변. 설명: 그는 그가 그의 형제이기 때문에 그를 동반했습니다. 사실 모세는 말을 더듬는 사람이어서 거의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형제는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신 것을 바로에게 말한 사람이었습니다.
측정 스틱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측정 스틱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측정 대상 수량에 측정 표준이 정확히 몇 번 포함되어 있는지 정량화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이고 저렴한 측정기입니다.
일부 국가에서는 토지 측량, 경마 및 부동산 판매에 여전히 사용됩니다.
11 월 2020 도시
멕시코의 잣대는 얼마입니까?
개발 표 1. 고대 멕시코 측정 MEASURE EQUIVALENTIAL NAME LENGTHvara83.80 cmmilla1.85 kmlegua4.19 kmЕщё 35 строк
1 막대는 cm로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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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터법 측정값.vara 에서 킬로미터 (km)0.0008359vara 에서 센티미터 (cm)83.59vara 에서 밀리미터 (mm)835.9Ещё 1 строка
모세의 형 아론은 어디에서 죽었습니까?
아론 사망 기원전 1274년 C. Mount Hor, Djebel Haroun, JordanBurialMount HorReligionJudaismFamilyЕщё 12 строк
모세의 자손들은 어떻습니까?
게르손 손 엘리에셀 손
모세 이후 이집트인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애굽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내리신 열 가지 재앙으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셔서 재앙으로 큰 타격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홍해를 갈라 놓으실 때 이스라엘 백성을 핍박하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 vs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9,18-20)
모세의 지팡이 vs 하나님의 지팡이 (출 4:1-9,18-20)
여러분, 성경 인물 가운데 모세를 생각하면 무엇이 오릅니까? 지팡이입니다. 지팡이를 들지 않은 모세의 모습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지팡이는 모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모세의 지팡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 굉장히 궁금합니다.
먼저 본문의 역사적 배경을 잠시 말씀드리죠. 연대는 B.C. 15세기입니다. 당시 애굽에는 이스라엘 민족이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래 그들이 애굽 이민을 갔을 때는 노예가 아니었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의 초청으로 갔고, 바로 왕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면서 이스라엘에 대한 대우가 달라지더니 급기야 이스라엘이 노예로 전락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를 위해 모세를 준비시키죠. 당시 바로 왕이 이스라엘의 번식을 견제하려고 남아산아제한법을 공포했는데, 그래도 계속 번식하니까 아예 남아살해법을 공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일 강에 띄워진 아기 모세를 바로 왕의 공주(하셉수트 Hashepsut)가 발견하도록 역사하셨고, 공주는 모세를 양자로 삼습니다. 이게 가능했던 것은 공주라 남아살해법에 대해 초법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공주에게 남자 형제가 없어서 그녀의 남편(투트모스 2세 Thutmose II)이 왕위를 이었는데, 자신도 남자 아이를 낳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나일 강에서 모세를 발견했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모세는 애굽의 왕자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런데 수년 후 그녀의 남편 투트모스 2세가 궁녀를 통해 아들을 얻게 됩니다.(그가 후일 왕위를 잇게 될 투트모스 3세Thutmose III) 그러니까 모세와 투트모스 3세가 정적 관계가 되었고, 시간이 갈수록 갈등이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을 학대하는 애굽 사람을 살인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투트모스 3세로서는 모세를 제거할 좋은 구실을 잡게 된 겁니다. 궁지에 몰린 모세는 하는 수 없이 미디안 광야로 도피하게 되는데, 그 때 나이가 40세였습니다. 그 후 40년이 지난 80세 때 하나님은 모세를 불러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할 지도자로 세우십니다. 그런데 광야에 묻혀 야인으로 살았던 모세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계속 변명을 늘어놓으며 거절합니다.
[1] 모세의 지팡이 : 인간의 연약한 모습하나님과 모세가 밀고 당기는 가운데 지팡이 이야기가 등장하는 겁니다. 모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 살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에 들려진 지팡이는 그의 비천한 형편을 처지를 나타냅니다. 연약한 인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모세는 연약한 중에 하나님께 계속 변명을 늘어놓습니다. 1절.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그러자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죠?
2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목하게 하십니다. 그것은 보잘 것 없는 비천한 마른 막대기에 불과한데, 모세 자신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모세는 왕궁에서 40년 있을 때는 당대 최고의 학문을 배우고 자신이 꽤 잘 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미디안 광야 40년을 통해서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하찮은 존재임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나님이 맡겨주시는 일을 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되었기에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됐습니다.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죠. “국어를 잘 하려면 주제 파악을 잘 해야 되고, 수학을 잘 하려면 분수를 잘 알아야 된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주제(허물 많은 죄인이란 사실)를 파악하고 분수(연약한 인간이란 사실)를 알아야 겸손히 하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게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 누가 뭐래? 너는 마른 막대기 지팡이 같은 존재야. 맞아! 그런데 말이야, 나 여호와 전능자 하나님이 있잖아!”
[2] 하나님의 지팡이 :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그래서 이제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자신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그 지팡이가 이제 앞으로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을 힘입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굳이 지팡이를 등장시킬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거든요. 출3:11~12 “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 ” 이러면 됐지, 뭐가 더 필요합니까?
그런데도 계속 변명하고 거부하니까 그를 설득하고 확신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애쓰시는 겁니다. 모세가 구시렁거리니까 이적을 보여주십니다.
3절~7절 보면, 두 가지 이적입니다.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니까 뱀이 되고, 뱀을 잡으라고 하니까 다시 지팡이가 됩니다. 뱀은 애굽의 우상 신과 바로 왕의 권세를 상징합니다. 그게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제압할 수 있다는 겁니다. 또 손을 품에 넣으라고 하니까 나병에 생기고, 다시 넣었다 빼니까 원상대로 회복됩니다. 나병은 이스라엘이 속박 가운데 고통 받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이적(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는 기적)을 보여주신 후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8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만일 그들이 너를 믿지 아니하며 그 처음 표적의 표징(mirakdlous sign)을 받지 아니하여도 나중 표적의 표징은 믿으리라” 표적은 이적을 의미하고, 표징은 가시적인 증거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두 가지 증거를 보고 승리를 확신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도 모세가 머뭇거리니까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9절. “그들이 이 두 이적을 믿지 아니하며 네 말을 듣지 아니하거든 너는 나일 강 물을 조금 떠다가 땅에 부으라 네가 떠온 나일 강 물이 땅에서 피가 되리라” 나일 강은 애굽 사람들이 신으로 숭배하는 강이며 풍요의 원천입니다. 그런데 이게 피로 변하면 그들의 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선포하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참 신임을 증거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살아계신 하나님, 놀라우신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신다는 증표로 지팡이를 주십니다. 출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miraculous signs)을 행할지니라” 물론 이 지팡이는 원래 모세가 들고 있던 것이고, 이적을 행했지만 전혀 달라진 게 없습니다. 예를 들어 금으로 변했다든지 … 모양이 확 달라졌다든지 … 그런 게 아닙니다. 여전히 마른 막대기 그대로입니다. 그렇다면 뭐가 중요합니까? 새롭게 부여된 의미가 중요합니다.
연인 둘이 있습니다. 남자가 여자에게 링 반지를 끼워 줍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합니다. “나는 당신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항상 당신과 함께 할 겁니다.” 그러면 그 링 반지는 금은방에 있는 똑같은 링 반지들과는 전혀 다른 겁니다. ‘그대가 끼워 준 반지’거든요. 그 반지를 볼 때마다 연인의 약속을 기억하며 함께 한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질이나 모양이 바뀐 것은 아니지만, 이제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전능자 하나님이 모세의 하나님이 되셔서 늘 함께 해 주십니다. 그 약속의 증표입니다. 모세는 그것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모세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입니다.
20절 보면, 이스라엘 구원의 사명을 위해 애굽으로 출발하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겉으로 보면 초라한 모습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위대한 모습니다. 그가 왕궁에서 혹시 바로 왕이 되었더라면 그 손에 황금 홀을 들고 있었겠죠. 그래봤자 세상나라 왕의 권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영적 권세를 갖게 된 위대한 모습입니다. 왜요?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지팡이 들고 있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모세를 붙잡고 있는 겁니다.
다윗의 예를 생각해 보시죠.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소년 다윗이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과 대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떤 복장으로 나아갑니까? 상대는 기골이 장대하고 강력한 무기를 들고 있는 장수였지만, 그는 달랑 막대기와 물매, 돌 5개만 들고 나섭니다. 사울 왕이 준 갑옷도 투구도 무기도 다 두고 나갑니다. 그러나 그는 외칩니다.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노라!” 평소에 사용하던 보잘 것 없는 도구들이었지만, 무엇보다 그는 하나님의 임재 약속을 확신 한 겁니다. 결과는 완승! 한 방에 골리앗을 때려눕혔습니다.
이제 모세는 혼자 몸이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십니다. 그를 통해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가 지팡이를 들면 홍해가 갈라지고 그가 지팡이로 반석을 치면 생수가 터져 나옵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숫자로 표현하면, 인간은 1과 같은 존재입니다. 조금 잘 났으면 2 혹은 3 정도이고, 아주 잘나봤자 10 정도 되겠죠. 그런데 하나님은 ∞(무한대)입니다. 1플러스 ∞도 ∞이고, 10 플러스 ∞도 ∞입니다. 반면 1 마이너스 ∞도 -∞이고, 10 마이너스 ∞도 -∞입니다. 인간의 능력이 별다른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느냐 아니냐 하는 겁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모세가 위대한 것은 위대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고, 모세 자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인간적은 능력과 장점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그것을 자랑합니까? 아니면 부족해서 위축되어 있습니까? 인간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잘나 봤자, 못나 봤자 별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굳게 붙잡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험악한 세상을 살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 : 하나님을 믿음으로 승리하는 인생하나님의 지팡이를 든 모세처럼 우리가 전능자 하나님을 굳게 믿으면 반드시 승리합니다. 우리가 비록 연약하고 부족해도 하나님의 임재를 확신하고 하나님만 의지하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인간이 제 아무리 대단해도 하나님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고, 인간이 부족해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면 승리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심지어 장애가 있어도 하나님이 사용하시면 놀라운 일이 생깁니다. 존 밀턴이 불후의 명작 「실낙원」을 쓴 것은 놀랍게도 실명한 이후였습니다. 눈이 멀어 절망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으니까 불가능이 가능케 된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인물이 있죠. ‘하늘의 시인’이라 불리는 송명희 시인입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 중증 장애인입니다. 말 한 마디를 하려고 해도 옴 몸이 뒤틀리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고통 가운데서 처음에는 하나님을 원망했지만, 예수님을 통한 그 큰 사랑을 체험하고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영감 있는 시들을 쓰는지 저도 개인적으로 그분의 시를 읽을 때마다 가슴 저미는 감동을 느끼곤 합니다. 중증 장애의 몸을 가지고 어떻게 그런 시를 쓸까 정말 놀랍죠. 그 비결은 단 한 가지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증거합니다. 고전1:27~29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부족해도 심지어 약점 투성이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얼마든지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19세기 이탈리아 출신 바이올린의 귀재 니콜로 파가니니(Niccolo Paganini, 1782~1840)의 유명한 일화입니다.
한번은 그가 당대 저명인사들이 대거 모인 연주회에서 연주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연주 도중 줄이 하나 끊어졌습니다. 하지만 파가니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연주해 나아갔습니다. 잠시 후 또 한 줄, 잠시 후 또 한 줄이 끊어졌습니다. 이젠 한 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바라봅니다. 파가니니는 잠시 연주를 멈추고 조용히 청중을 바라보더니, 남은 한 줄로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 내며 연주를 마쳤습니다. 객석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기적 같은 연주를 해낸 겁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려고 파가니니의 일화를 소개하겠습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마치 악기와 같습니다. 물론 악기도 좋아야 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연주자입니다. 우리 인생의 연주자는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비록 부족하고 연약해도 하나님이 붙잡아 주시면 얼마든지 아름답고 위대한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또 이렇게 고백합니다. 고후12:10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안질로 오랜 세월 고생만 하고 기도해도 치유받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 연약함 때문에 주님을 더욱 의지함으로 큰 능력을 나타낼 수 있었다는 간증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감옥에 갇혀서도 당당히 외칩니다. 빌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헨리에타 미어즈는 모세의 생애를 이렇게 분석했습니다. 120년 생애를 3단계로 설명합니다. 1단계 40년은 모세가 자신을 과신한 시기였습니다.(I am somebody.) 2단계 40년은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시기였습니다.(I am nobody.) 그리고 3단계 40년은 자신이 부족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된 시기였습니다.(I am somebody in God.) 모세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 됐을 때 비로소 위대한 인생이 될 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믿었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었을까요?
① 믿음으로 순종 :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순종을 통해 구체화됩니다. 모세가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경을 잘 보면 모세가 행한 기적들은 모세 자신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항상 하나님에게서 나온 겁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그랬습니다.
3절~4절.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것을 땅에 던지라 하시매 곧 땅에 던지니 그것이 뱀이 된지라 모세가 뱀 앞에서 피하매 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지팡이를 던지라고 할 때는 순종하기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뱀의 꼬리를 잡으라고 할 때 순종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땅꾼들은 어떻게 하죠? 뱀의 목을 잡지 절대로 꼬리를 잡지 않습니다. 잘못 하면 뱀에게 물려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 40년을 경험한 모세도 그런 사실을 잘 알았을 겁니다. 그런 가운데 그가 순종한 것은 대단한 믿음입니다.
또 6절~7절을 보세요. “6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에 나병이 생겨 눈 같이 된지라 7 이르시되 네 손을 다시 품에 넣으라 하시매 그가 다시 손을 품에 넣었다가 내어보니 그의 손이 본래의 살로 되돌아왔더라” 그가 순종하는 대로 놀라운 기적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서도 모세가 한 것은 그저 믿음으로 순종한 것밖에 없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까 놀라운 기적이 나타난 겁니다.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아람의 제2인자였지만 나병에 걸렸습니다. 소문을 듣고 엘리사를 찾아가죠. 그런데 엘리사가 만나주지도 않고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라는 겁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던지 그냥 돌아가려고 합니다. 다행히 신하가 설득해서 작은 믿음으로 순종했는데, 어떤 일이 벌어집니까? 마치 어린 아이 피부처럼 깨끗이 치유됐습니다.
그러므로 말씀 들으면 깨달은 대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대충 하지 말고 온전히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줄로 믿습니다.
② 믿음으로 기도 :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보면 모세에 관한 기록이 많죠. 연구해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붙잡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많이 나타납니다. 전능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기도로 구체화됩니다.
출애굽기 17장을 보면, 광야에서 아말렉과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이 뒤에서 공격을 당한데다 군사력도 열세입니다. 그러나 대승합니다. 물론 전장에 나가 여호수아와 군인들이 나아가 싸웠지만, 결정적으로 모세의 기도가 승부를 갈랐습니다.
출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기도할 때 이스라엘의 승리가 결정됐습니다.
한국교회사에서 유명한 성경학자요 목회자였던 고 박윤선 목사님의 간증입니다. 그는 학적이면서도 영감 있는 신구약 전권 주석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한국교회사에서는 물론이고 세계교회사 가운데도 몇 안 되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그는 그 일이 기도를 통해 이뤄졌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숭실전문에 다닐 때부터 산 기도와 골방 기도를 실천했습니다.
특히 1941년~1944년 만주에 있을 때에는 새벽마다 사명을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해방이 되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써 주시라고 눈물로 간구했습니다. 정말 해방이 된 후 그가 부산 고려신학교 교수로 15년 봉직하게 됐는데, 이 시기에 하나님께서 많은 체험 가운데 은혜를 주셨다고 합니다. 그에게 학문적 능력도 있었지만 기도로 얻은 영감이 주석 집필에 기초가 됐다는 간증입니다.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고 기도할 때 놀라운 능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험한 세상 살면서 과연 무엇으로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 지팡이가 대단하면, 좋은 조건이 있으면 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세가 승리한 것은 애굽의 궁궐에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가 광야에 있을 때 초라했지만 하나님의 지팡이를 들고 승리했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조건들로 승리할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의지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눈물로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팡이를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꼭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홍문수 목사)
모세와 아론, 누구의 지팡이인가?
구약성경 출애굽기를 읽다가 보면,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장면에 아주 특별한 ‘도구’가 하나 나온다. 그것이 바로 ‘지팡이’이다.
원래 장인어른의 양을 치던 목동의 지팡이었으나(출 4:2) 그것은 모세의 손에서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다(4:20).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 보면, 모세의 자신감 부족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모세의 형, 아론의 지팡이와 모세의 지팡이가 헷갈린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지팡이’를 통해서 이적을 행하라고 하셨는데(출 4:17), 모세는 아론에게 명령을 하게 되고 한글 성경에서 ‘너의 지팡이’로 언급되는 그 지팡이는 결국 ‘아론의 지팡이’라는 분명한 표현이 나오면서(출 7:15) 이것이 모세의 것이 아니라 아론의 것으로 판명난다(?)
그렇다면 출애굽기에서 기적을 행하는 지팡이는 도대체 누구의 것인가?
아론의 것인가?
모세의 것인가?
아니면 처음에는 아론의 것이다가 점차 모세의 것으로 바뀌나?
결론부터 말하면, (물론 개인적으로 연구한 강산목사의 의견이다)
이 지팡이는 모두 “모세의 지팡이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4장 2절, 4절, 17절 나오는 모세의 지팡이를 언급하시며 바로 “이 지팡이”로 하나님의 이적이 나타날 것을 분명하게 하신다. 히브리어를 읽어보면 지시대명사가 분명하게 붙어서 영어의 정관사와 같은 역할을 한다.
또한 중간에 출애굽기 7장 9절이나 19절에서 ‘너의 지팡이’로 언급되는 표현에서도 이 지팡이는 모두 모세의 지팡이다. 모세가 아론에게 ‘너의 지팡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너의 지팡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다만 가장 큰 어려움은 7장 12절에서 애굽 술사들이 만든 뱀을 잡아 먹은 뱀, 즉 뱀으로 변한 그 지팡이를 너무나 선명하게 소유격으로 ‘아론의 지팡이’라고 되어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한글 성경같은 경우는 파란색 표제어로 ‘뱀이 된 아론의 지팡이’라고 명시해 버렸다.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약 50권 정도의 영어 성경을 다 읽어 봤지만 거기도 모두 Aaron’s staff로 나와 있다. 물론 히브리어도 그렇다. 그래서 여기서 혼동이 생긴다. 하지만 미리 말하자면, 소유격이라고 해서 아론의 소유라는 것이 아니라, 아론이 던진 모세의 지팡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고 생각한다.
더 큰 틀에서 이 부분들을 보면 명확해 질 것이다.
1. 출애굽기 4장에서 17장까지 나오는 지팡이는 모두 모세의 지팡이다. 출애굽기 4장에서 하나님이 모세를 만나시고 그가 가진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명칭하신 후(4:20) 그 표현은 17장 9절에서 마무리 되면서 또한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하셨고, 바로 그 지팡이로 이적을 행하겠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다(4:17)
2. 맨 처음 뱀으로 변한 지팡이 (7:9)는 아론의 지팡이라고 한번 표현되어 있으나(7:19) 바로 그 지팡이가 나일강을 치는 지팡이와 같은 지팡이이며(7:15에서 ‘뱀이 되었던 지팡이’라고 분명히 언급) 아론의 지팡이가 아니라 모세의 지팡이라는 사실은 이어지는 문장들에서 동일한 지팡이가 계속 사용된다는 것이다. 가장 명확한 것은 출애굽기 17장 5절에서, 하나님이 모세가 들고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원하시는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인데 그것이 바로 나일강을 치던 지팡이라고 다시 분명하게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즉 처음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겠다고 하신 그 지팡이가 뱀이 된 지팡이이고 나일강을 친 지팡이며 동일한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출애굽기 내내 이적의 도구로 사용되는 지팡이가 분명히 모세의 것이라는 것이다.
3. 그렇다면 한 가지 오해만 바로 잡으면 된다.
바로 출애굽기 7장 12절에서 소유격으로 묘사된 ‘아론의 지팡이’가 아론이 소유한 지팡이가 아니라 아론이 잠시 사용한 모세의 지팡이라는 의미로 보면 되는 것이다. 출애굽 초기에 모세는 유약하여 아론을 대언자로 사용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아론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말하며 행동하는 것을 누구든지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초기에 모세가 아론에게 자기 지팡이를 넘겨 주었고 아론은 모세의 대언자만이 아니라 대행자로서 하나님의 기적을 행한 것이다.
아울러 아론은 자기 지팡이가 따로 있다. 나중에 레위지파의 분쟁 문제에서 수위권을 결정하기 위해서 아론의 지팡이가 사용되며, 그 지팡이에 꽃과 열매가 피어서 법궤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의 지팡이는 다른 지팡이이며, 바로 앞에서 행한 모든 이적에서 사용된 지팡이는 모세의 지팡이라고 보고자 한다.
P.S. 아래는 관련 구절을 적었고, 워낙 성경지식이 부족한 목사의 짧은 의견이므로 더 좋은 의견이 있으면 가르쳐 주시면 좋겠다. 하지만 이것이 별로 중요한 내용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요청이 있어서 시간을 내어 찾아 적어 본다.
끝!
역본: 개역개정
검색단어: 지팡이
(출 4:2)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지팡이니이다
(출 4:4)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어 그 꼬리를 잡으라 그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니 그의 손에서 지팡이가 된지라
(출 4:17)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출 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 7:9) 바로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 하거든 너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
(출 7:10)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가서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아론이 바로와 그의 신하 앞에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된지라
(출 7:12) 각 사람이 지팡이를 던지매 뱀이 되었으나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
(출 7:15) 아침에 너는 바로에게로 가라 보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너는 나일 강 가에 서서 그를 맞으며 그 뱀 되었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출 7:17)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니 네가 이로 말미암아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볼지어다 내가 내 손의 지팡이로 나일 강을 치면 그것이 피로 변하고
(출 7:1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애굽의 물들과 강들과 운하와 못과 모든 호수 위에 내밀라 하라 그것들이 피가 되리니 애굽 온 땅과 나무 그릇과 돌 그릇 안에 모두 피가 있으리라
(출 7:20)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행하여 바로와 그의 신하의 목전에서 지팡이를 들어 나일 강을 치니 그 물이 다 피로 변하고
(출 8: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잡고 네 팔을 강들과 운하들과 못 위에 펴서 개구리들이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라 할지니라
(출 8:16)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론에게 명령하기를 네 지팡이를 들어 땅의 티끌을 치라 하라 그것이 애굽 온 땅에서 이가 되리라
(출 8:17) 그들이 그대로 행할새 아론이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어 땅의 티끌을 치매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다 이가 되어 사람과 가축에게 오르니
(출 9:23)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우렛소리와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우박을 애굽 땅에 내리시매
(출 10:13) 모세가 애굽 땅 위에 그 지팡이를 들매 여호와께서 동풍을 일으켜 온 낮과 온 밤에 불게 하시니 아침이 되매 동풍이 메뚜기를 불어 들인지라
(출 12: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출 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출 17: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백성 앞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나일 강을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
(출 17:9)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냉수 한 그릇
◈하나님의 지팡이가 된 모세 출4:1~20 07.03.18. 인터넷 설교 정리, 편집,
*원제목: 사십년간 표적을(2), 행7:35~38
◑1. 허무한 인생이 → 영원한 인생으로!
▲허무한 인생 – 인생은 마른 들풀이다.
인생은 마른 풀과 같아서 바람이 한 번 불면 그 있었던 흔적조차 모른다. 시103:16
사실 사람이 죽어 백 년만 지나면, 그 무덤 주인이 누구인지 아무도 관심 없다.
아무도 그가 과거에 그 곳에 살았던 것을 기억해주는 사람은 없다.
한국 속담에도 ‘화무십일홍’이라고 했다.
인생은 화려하게 꽃 피우지만, 10일이 지나면 곧 시들어 떨어져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이… 실로 허무하다는 것이다.
사실 역사에서 사라져 간 수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거의 다 마른 풀과 같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았다.
5백 년 전, 1천 년 전에 아무리 화려하고 멋있게 살았어도,
우리는 지금, 그들의 삶과 이름과 업적을, 거의 기억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세는 다르다.
3천 4백년이 지난 오늘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 여비를 들여서라도 애굽과 시나이 광야에 가서 모세의 흔적을 찾고 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며 모세의 삶을 본 받으려고 다짐하고 있다.
그의 인생만큼은 들풀처럼,
바람에 날려 허무하게 흩어지지 않았다.
우리가, 모세처럼, 자기 허무한 인생을 결코 허무하지 않게 살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모세의 삶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다.
▲허무하지 않은 인생이 되려면…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시103:15~18
인간은 정말 들풀에 불과하지만, 그 미천한 인간이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살면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그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의미, 영원한 가치를 지니며 살 수 있게 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어야 할 절대적 당위성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그 분의 말씀 또한 영원하며,
나아가 그 영원한 말씀을 지키고 사는 우리 삶 역시… 영원해 질 것이다.
결코 들풀처럼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는다.
모세가 바로 그런 삶의 본보기다.
◑2. 허무한 지팡이가 → 하나님의 지팡이로!
모세는 광야에서 40년간 기적을 행했다.
그런데 그런 놀라운 기적을 행한 도구가 있었는데,
바로 작고 볼품없는 지팡이, 아니 막대기 하나였다…
▲지팡이를 갖고 가라
하나님은 모세에게 출애굽의 주역이 되라고 명하시고,
모세는 안 가겠다고 버티며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다.
그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손에 쥐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으셨다.
“지팡이입니다!”
당시 목동들이 의례히 지니고 다니던 양치기용 지팡이였다.
하나님은 그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가 다시 지팡이로 환원되는 것을
모세가 확인케 하신 후에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 출4:17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 머리의 지식으로 기적을 행하라고 – 하지 않으셨다.
네 입의 말로 기적을 행하라고 – 말씀하지 않으셨다.
네 손에 들려있는 양치기용 지팡이로 기적을 행하라고 – 지시하셨다.
▲지팡이가 실제로 기적을 나타내다
실제로 그 양치기용 지팡이로 나일 강을 쳤을 때… 나일 강이 피로 변했다.
그 지팡이를 하늘로 쳐들었을 때… 하늘에서 불과 우박이 떨어졌다. 출9:24
그 지팡이를 앞으로 내밀 때, 폭 32km의 홍해가 쩍 갈라졌다.
그 지팡이로 반석을 칠 때, 바위가 갈라지고 생수가 터졌다.
그 지팡이를 손에 쥐고 기도했을 때, 오합지졸 민병대 이스라엘이
아말렉 정규군과 싸워서도 대승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모세가 그 지팡이를 사용할 때마다, 기적이 일어났다.
▲모세의 지팡이는 사실은 ‘막대기’
찰턴 헤스턴이 주연했던 영화 [모세]를 보면,
모세의 손에는, 언제든지 그의 키만큼이나 크고 신비롭게 보이기까지 하는
기다란 지팡이가 쥐어져있다.
온갖 기적을 행할 지팡이라면, 영화에서처럼, 그 정도로는 신비하게 보여야 한다.
①하지만 터키 이스탄불의 박물관에 가면, 모세가 사용했던 지팡이,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쳤던 칼, 세례 요한의 유물(뼈)들이 전시되어 있다. 과거에 이스탄불은 1453년까지 1천년동안 동로마 제국의 수도였고, 동방교회 수도였던 콘스탄티노플임을 감안하면, 그 유물들이 거기 있을 법 하다.
(그 박물관에서 소장되어있는 지팡이는, 꼭 진짜가 아니더라도, 모세 시대의 목동들이 사용했던 지팡이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곳에 전시된 지팡이의 모습(위 사진)은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길이는 약 1미터, 굵기도 영화처럼 굵거나 멋있지 않았다. 사실 지팡이라기보다는, 막대기에 불과했다.
②모세가 40년 동안 지냈던 미디안 광야를 오늘날 실제로 찾아가보면 그곳에는 찰턴 헤스턴의 지팡이를 만들 만한 굵기의 나무가 전혀 없다. 황량한 광야뿐이다. 그러므로 그 광야에서 주운 나무막대기로 만든 지팡이는, 보기에 굵고 거창한 게 못 된다.
③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지팡이’(히브리어 맛태)는 본래 ‘가지, 막대기’를 의미한다.
④오늘날 실제로 중동지방을 여행해 보면, 거기에 양치는 목동들을 보게 되는데, 그들이 들고 있는 것도, 사실 1미터 남짓의 막대기이다. 그러므로 이스탄불의 박물관에 있는 가늘고 짧은 모세의 지팡이(막대기)가 찰턴 헤스턴의 영화에 나오는 지팡이보다, 사실에 더 가깝다는 뜻이다.
▲마른막대기는 사실 모세 자신 그 옛날 모세 역시 지팡이가 아니라 막대기를 들고 있었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 볼품없는 막대기로 기적을 행하라고 명령하시니 모세는 매우 난감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홍해를 가르고, 하늘에서 만나가 비처럼 쏟아지게 하는 그 극적인 기적을, 그 볼품없는 막대기로 행하게 하셨는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그 볼품없는 마른막대기가 유일하게 모세가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처가살이를 해 온 모세는 자기 재산이 전혀 없었다. 자기가 치는 양도, 집도 모두 장인소유였다.
모세의 지팡이는, 그저 모세가 지나다니다가 광야에 나무를 한 그루 발견하고는,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다듬은, 정말 볼품없는 막대기에 불과했다.
하나님은 그 막대기로 기적을 행하게 하셨다. 그 막대기는 모세 자신을 의미했다.
그가 애굽 왕궁에서 배운 모든 지식과 학문이 처음에는 아무 소용없었지만, 자기를 내려놓고, 깨어진 후에, 스스로 마른막대기처럼 되었을 때, 그는 비로소 하나님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마른막대기가 →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다
모세가 그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출4:20
그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행동하는 순간부터 성경은, ‘모세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기록하고 있다. 그가 순종하는 순간부터 그 마른막대기 같던 자신이 하나님의 지팡이로 격상되었던 것이다.
지금 이 시간 잠시 눈을 감고,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기 위해 애굽에 도착한 모세의 실제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시라.
80세 노인이, 초라한 빈털터리 몰골을 한 채로, 손에는 마른막대기 한 개 달랑 들고 있다. 한 민족을 해방시키는 해방자가 되기에는, 그의 몰골은, 보기에 민망함을 넘어서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런데 그 초라한 몰골의 노인이, 초라한 마른막대기로 나일 강을 쳤을 때, 나일 강이 피로 변했다. 그 볼품없는 마른막대기를 내밀었을 때, 폭 32km의 홍해가 갈라졌다. 그 마른막대기로 반석을 갈라서 생수를 강물처럼 흐르게 했다.
이런 능력이 나타난 것은, 그 볼품없는 마른막대기가 → 하나님의 지팡이로 쓰임 받았기 때문이다.
▲마른막대기와 같은 나 우리는 여기서 참으로 귀한 교훈을 얻는다. 지금 내가 지닌 것이 마른막대기 하나 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지금 내가 모세처럼 초라한 마른막대기 하나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놀라운 능력의 도구, ‘하나님의 지팡이’ 로 쓰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마른막대기가 상징하는 것은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우리 자신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 자신이, 그 마른막대기처럼, 전혀 쓸모없는 존재였다. 광야 귀퉁이 어디서나 발견되어지는 흔한 물건이었다.
그러나 마른막대기와 같던 모세가 자신의 여생을, 자신의 중심을, 자신의 온몸을 하나님께 드렸을 때, 그 명령에 순종했을 때, 하나님은 그 마른막대기를 쓰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새 역사를 그를 통해 이 땅에 펼치셨고, 그는 영원한 출애굽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래서 3천4백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전 세계의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모세를 영원한 지도자로 따르며 존경하고 있다.
그러므로 오늘 나에게 무엇이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 되지 않는다. 내가 가진 세상의 것이 얼마나 많은가도 문제 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볼품없는 마른막대기와 같은 인간이라 할지라도, 내 삶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기만 하면, 그 마른막대기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이루어 가신다! 행3:6참조
▲적용과 결단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한탄만 하고, 내게 지금 없는 것만을 주십사고 주님께 갈구했던 내 어리석음을 회개하자.
내게 지금 있는 것이 마른막대기라도, 그것을 감사하지 못하고, 내게 지금 없는 것만 바라보고 불평했던 우리의 무지, 세상적 가치관을 회개하자.
하나님은 언제나 내게 없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는 것’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분임을 잊지 말자. 행3:6참조 내가 지닌 것이 비록 볼품없는 마른막대기 하나와 같다 할지라도 그 막대기를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끔 하나님께 드리자.
눈이 보이면… 하나님께 드리고, 귀가 들리면… 하나님께 드리고, 손발이 움직이면… 하나님께 드리고, 사지백체가 움직이지 않는 사람은 그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자.
이때 하나님은 마른막대기와 같은 내 삶을 이 시대를 위한 당신의 구원의 기사와 표적이 되게 하실 것이다. 주여, 저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받아 주옵소서! ▣ 꿈, 비전, 소명
키워드에 대한 정보 모세 의 지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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