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5장 설교 | 열왕기하 강해(12) ‘크고 존귀한 자’ / 송태근 목사 상위 149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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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열왕기하 5:1-10
삼일교회 송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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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1-27절 말씀 묵상 – 복음뉴스

열왕기하 5장 1-27절 말씀 묵상 · 1)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1-7) · 2) 엘리사의 처방(8-10) · 3) 고침받은 나아만(13-14) · 4)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나아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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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1/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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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기 생각이 무너져야 한다

열왕기하 5장.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기 생각이 무너져야 한다. 열왕기하 5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9-10-24. 설교본문; 음성설교; 음성다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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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2/5/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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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의 치유 (왕하 5:1-19)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8 (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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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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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말씀묵상. 10월 24일. 열왕기하 5장. – 하늘품은교회

열왕기하 5장.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1. 본문은 아람 군대의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엘리사의 기적을 통해서 치유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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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12/2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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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일의 설교] 내 생각을 내려놓읍시다(왕하 5:8~14) – 기독신문

내려놓고 끝까지 순종합시다 · 신앙생활은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말씀대로 ·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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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6/2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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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소녀가 전한 복음 (왕하 5:1~7, 14) – 기독정보넷

상대에게 전달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입을 열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말을 여십시오.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저희 교회 한번 나와 보십시오.” 표현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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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열왕기하 5장 1-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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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나아만의 요구와 엘리사의 허락을 통해서 본 성도와 제사문제 묵상 · 1) 하나님께서 아람을 나아만 장군을 통해서 구하게 하신적이 있음.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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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강해(12) ‘크고 존귀한 자’ / 송태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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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열왕기하 5장 설교

  • Author: SamilChurch삼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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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21. 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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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 5장 1-27절 말씀 묵상

열왕기하 5:1-27 말씀 묵상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열왕기하 5:14).

“So he went down and dipped himself in the Jordan seven times, as the man of God had told him, and his flesh was restored and became clean like that of a young boy.”(2 Kings 5:14).

1)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1-7)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 왕에게는 물론 백성들에게조차 인정과 존경을 받는 뛰어난 용사였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문둥병이라는 불치병이 찾아와 고통의 나날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의 집에는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 온 종이 있었는데, 엘리사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문둥병도 고칠 수 있으리라고 확신 있게 말해 주었습니다(1-3).

계집종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기에 엘리사에게 찾아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에게 엘리사를 만날 수 있도록 이스라엘 왕에게 선처를 부탁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아람 왕은 나아만을 귀하게 여겨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의 병을 고칠 수 있도록 선처해 달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의 요람 왕은 옷을 찢으며 내가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살리며 문둥을 고치라 하느냐며 커다란 걱정과 고민에 잠기게 되었습니다(4-7).

2) 엘리사의 처방(8-10)

엘리사는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요람 왕이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걱정하지 말라는 편지를 보내 나아만을 자기에게로 보내도록 요구하였습니다. 얼마 후에 나아만의 일행들이 엘리사의 집 앞에 당도하였습니다. 엘리사는 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자신의 종을 시켜 나아만에게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고침받으리라고 말하였습니다.

3) 고침받은 나아만(13-14)

나아만은 자신의 지위에 걸맞는 접대와 정성 어린 치료를 기대하였고 깨끗하지도 못한 요단 강에서 씻으라는 말에 분노하였습니다. 그렇지만 나아만의 종들은 엘리사가 어려운 일을 요구한 것도 아닌데 치료받기 위해서는 엘리사의 말대로 순종하자고 하였습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의 말에 그대로 순종하자 문둥병이 치료되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되었습니다.

4) 예물을 드리고자 하는 나아만(15-19)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즉시 엘리사에게로 찾아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면서, 엘리사에게 감사의 예물을 바쳤으나 엘리사는 그것을 정중히 거절하였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흙을

요구하였으며 자신이 본국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신분상 어쩔 수 없이 림몬 신 앞에 절을 하게 될텐데 이를 용서해 달라고 엘리사를 통하여 여호와께 간청하였습니다.

5) 게하시의 탐욕에서 나온 거짓말(21-24)

엘리사의 사환인 게하시는 나아만의 선물을 거절하는 엘리사의 모습을 보고선 안타까운 마음과 함께 욕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즉시 나아만에게로 가서 엘리사에게 선지자 생도 두 사람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와서 그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21-22).

게하시의 말을 들은 나아만은 기쁜 마음으로 두 달란트의 은과 옷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두 명의 하인들을 시켜 운반토록 하였습니다. 게하시는 언덕에 이르자 종들을 돌려보내고 그 선물들을 자기의 집에 감추었습니다(23-24).

6) 문둥병의 저주를 받은 게하시(25-27)

엘리사는 하나님의 계시로 게하시의 범죄를 알았습니다. 엘리사는 네가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지만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게하시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는 질문을 던졌으나 게하시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나아만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문둥병이 치유되었는데, 이제 게하시는 정반대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의 결핍으로 문둥병이라는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주께서 주신 오늘! 주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길 원합니다.

열왕기하 5장.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기 생각이 무너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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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내용

5장.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자기 생각이 무너져야 한다 (찬 149)

1. 본문은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이 엘리사의 기적을 통해서 치유 받은 유명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기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해준다. 나아만을 묘사하는 모든 조건은 한 가지를 제외하면 전부 세상적 기준에서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는 강대국인 아람의 군대장관이었고 왕의 신임을 받는 크고 존귀한 자였으며 큰 용사였다(1).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는 말씀은 나아만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이끄시기 위해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나아만은 모든 좋은 조건에도 불구하고 해결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나병이었다. 나아만은 이 기사에서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의 모든 특징을 보여준다.

2. 또 한 사람의 인물은 나아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한 어린 소녀다. 그녀는 전쟁 포로로 붙잡혀 나아만의 부인의 종이 된 이스라엘 아이였다. 아무 것도 내세울게 없는 이 소녀는 나아만의 병이 나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함으로써 이 이야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세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소녀는 세상적으로 성공하였으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나아만에게 복음의 통로가 된다. 소녀의 말을 듣고 왕 앞에 나아간 나아만의 모습은 그 소녀가 평소에 신임을 받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습은 그가 증거하는 복음의 무게에 영향을 미친다!

3. 소녀는 사마리아의 왕이 아니라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에 대해 말했으나 아람 왕과 나아만의 생각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왕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존재였다(왕하 1장을 보라). 나아만을 지배하고 있던 이 세속적이고 교만한 생각은 얼마나 구원에 합당치 않으며 천국에서 먼 생각인가! 이스라엘 왕 요람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달라는 아람 왕의 편지를 읽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대신 사색이 되어 옷을 찢으며 두려워하였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우리의 믿음 혹은 불신앙을 보여주는 증거다.

4. 나아만의 치유기사에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와 자기 의로 가득한 나아만이 대조된다.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왕에게 말하고,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린 나아만이 자기 집에 이르자 사자를 통해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명한다. 이것은 나아만이 가진 근본적인 자기 의를 꺾는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이것은 나아만의 마음을 분노하게 했다(12). 나아만의 태도는 ‘내 생각에는’이란 말로 특징지워진다(11). 나아만은 아람의 군대 장관 앞에 엘리사가 직접 나와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나병의 부위 위에 흔들어?이교적인 의식들처럼?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요단 강 보다는 자기 나라의 강들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동행했던 나아만의 지혜로운 종들이 ‘큰 일을 하라고 해도 할텐데 왜 작은 일을 하지 않습니까?’ 할 때 나아만은 깨닫고 요단에 몸을 담갔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일곱 번을 씻었고 살은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해졌다. 나아만의 치유는 불치의 죄인이 중생하는 예를 보여주는데, 자기 의로 가득한 인생이 자기 의를 버릴 때 구원이 일어남을 보여준다. 자기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5. 중생한 자의 삶은 확실한 변화를 낳는다. 나아만은 감사하려고 다시 엘리사의 집을 찾는다. 엘리사 앞에 선 나아만은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표현한다(15). 그의 고백,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15)는 말은 1장에서 아하시야가 병이 나을지를 물으려고 블레셋 가드의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낸 태도에 대한 책망이라고 볼 수 있다. 나아만은 준비해온 예물을 감사의 표시로 드리지만 엘리사는 거절한다. 엘리사가 감사의 예물을 받지 않은 이유는 게하시의 이야기에서 드러난다. 나아만의 예물들은 탐욕을 부추길만한 좋은 것들이었으며, 엘리사는 탐욕을 부추길 수 있는 예물은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탐욕이 가득한 사환, 게하시는 꾀를 꾸민다. 나아만을 ‘이 아람 사람’이라고 낮추어 표현하는 것은 게하시의 교만을 보여준다(20). 그는 나아만을 쫓아가 엘리사를 빙자한 거짓말로 일부 예물을 얻어와 감추지만, 그 제어되지 못한 탐욕의 행위는 결국 그와 그 자손에게 나병을 안기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온다.

6. 본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의 생각과 판단은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구원을 얻는다. 둘째, 이 세상에서의 성공 보다 중요한 것은 거듭났는가의 문제다. 그리고 거듭난 사람은 부족할지라도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간다. 셋째, 우리는 탐욕이 우리를 자극하여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탐욕은 신앙의 대적이요 우상숭배다(골 3:5). 탐욕을 죽여라!

7. “하나님 아버지, ‘내 생각, 내 경험, 내 판단’을 주장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겸손함을 주시옵소서. 나아만의 집의 소녀처럼 구원의 복음을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사는 은혜도 주시옵소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탐욕을 부추겨 살지 않도록 저희를 도와주시옵소서.”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8 (4/20/16)

2016년 4월 20일 수요예배

✦ 포기할 수 없는 영적 리더십 28 ✦

“나아만의 치유”

(열왕기하 5장 1-19절)

1. 어린 소녀 종에게서 들은 복음

한 사람의 인생은 겉으로만 봐서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만한 재산, 학벌, 외모, 가족,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도, 조금만 들여다보면 누구나 다 가슴속에 아픔이나 고민 하나씩은 다 가지고 삽니다.

아람의 군대장관이었던 나아만도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지금으로 하면 육군참모총장과 국방부 장관을 합친 것 같이 아람에서 높은 위치에 있는 장군이었습니다. 아람은 지금의 시리아입니다.

“아람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 (1절)

이 1절을 보면 여러 가지 정보가 나옵니다. 먼저, 나아만은 왕의 절대적 신임을 받으며 권력의 실세였던 사람입니다. 어쩌다 운이 좋아서 또는 ‘빽’으로 높은 자리만 차고앉았던 사람이 아니라, 뛰어난 능력과 충성심으로 왕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인물이 된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라는 말씀을 보면, 나아만이 하나님에 대해 알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그와 함께 하시고 은혜를 베푸셨던 것입니다. 나아만이 그때는 그것을 몰랐지만, 하나님을 알게 된 후에는 자신의 힘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그토록 존귀한 자였고 권력의 핵심이었던 나아만에게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나병환자였다는 사실입니다. 당시 의학으로 이 병은 치료가 불가능했고, 나병환자는 사람들로부터 격리되어 살아야 했는데, 아무것도 부러울 것이 없던 권력자 나아만이 덜컥 나병에 걸려 버린 것입니다.

“그는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더라”라는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큰 용사도 나병에 걸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걸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구원의 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어린 소녀 하나를 사로잡으매 그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2절)

이스라엘과 아람이 전쟁을 하다가 아람군이 포로로 잡아 온 이스라엘 소녀가 나아만의 아내의 하녀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적국으로 끌려와 노예가 되었으니 참 딱한 처지 아니겠습니까? 아람을 원수처럼 생각할 수 있고, 아람 군대의 총사령관인 나아만을 향해 속으로 복수의 칼을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주인인 나아만의 고통을 불쌍히 여깁니다.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3절)

이 소녀는 이스라엘에 살 때 능력의 선지자인 엘리사가 많은 기적을 일으킨 것에 대해 들었던 것인데, 엘리사라면 얼마든지 주인의 나병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처럼 나아만의 구원과 치유는 이렇게 보잘것없는 한 노예 소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포로로 어린 나이에 잡혀 가 이방 나라에서 종이 되었다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신세 한탄만 하다 끝날 수도 있고, 복수의 칼을 갈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이방인 주인의 병에 대해 무관심한 것이 당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소녀는 자신의 처지와 상관없이 주변 사람의 고통에 민감했고, 결국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 역사에서 큰 역할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이것은 평소에 나아만과 그의 아내가 이 소녀 종을 친절히 대해주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 소녀는 나아만 집에서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그의 병을 보고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만약 자기 여주인이 못되게 굴었으면 말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아주 무서운 주인이었다면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아만과 그의 아내가 평소에 이 이스라엘 출신의 어린 여종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고 좋은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이 소녀는 주인의 병을 안타깝게 여겼던 것입니다.

역시 평소에 좋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웃을 위한 말씀일 뿐 아니라 자신을 위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평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복을 받습니다.

2. 치유를 위해 이스라엘로 가는 나아만

이제 나아만은 아람 왕에게 나아가 이 사실에 대해 말을 하고(4), 왕은 기꺼이 나아만을 돕겠다고 나섭니다.

“아람 왕이 이르되 갈지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하더라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 주소서 하였더라” (5-6절)

왕은 즉시 은 10달란트와 금 6천 개와 옷 10벌을 나아만에게 주어 이스라엘로 가게 합니다. 은 10달란트는 무려 750파운드나 되고, 금 6천 개도 150파운드가 넘는 엄청난 재물입니다. 의복 열 벌도 왕족들이나 입는 화려하고 값비싼 최고급 옷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람 왕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아만의 병을 고쳐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에게 나아만의 병을 고쳐달라고 편지까지 써서 보냅니다. 그러나 협조를 구하는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 왕은 어떻게 합니까?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7절)

아람 왕은 진심으로 나아만의 병 치료를 위해 이스라엘 측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며 편지를 보냈는데, 이스라엘 왕은 이것을 전혀 다르게 받아들입니다. 이 사람은 뭔가 피해의식이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비록 지금이 평화의 시대라고 해도, 아람과 이스라엘은 언제나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라이벌 관계인 것은 맞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나아만의 명성은 이스라엘에도 알려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나아만이 나병에 걸렸으니까 이제 이스라엘에서 좀 고쳐달라고 하는 편지를 보았을 때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시비를 거는 것으로 느껴졌던 것입니다. 나병은 아무도 못 고치는데 나아만처럼 중요한 장군의 나병을 못 고쳐낼 경우 그 책임을 물으며 아람 왕이 전쟁을 일으키려는 것이라고 해석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람 왕은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있다고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협조를 구한 것뿐입니다. 아람 왕은 엘리사의 이름을 들은 것이 아니라 그냥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3)라고 들었기 때문에, 그 정도로 유명한 선지자라면 당연히 이스라엘 왕이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당신은 그의 나병을 고쳐주소서”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왕에게 고쳐달라고 한 게 아니라, 그 유명한 선지자에게 나아만이 갈 수 있도록 다리를 좀 놔달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은 뭐라고 합니까?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자기에게 고쳐달라고 한 것이 아닌데 그것을 완전히 오해하여, 아람 왕이 말도 안 되는 시비를 걸며 전쟁을 벌이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소리부터 지른 것입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 대해사 전혀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감정적으로 반응하며 옷을 찢고 고함을 지르는 못난 모습을 보입니다.

그가 만약 믿음의 사람이었다면, 아니 조금이라도 믿는 사람이었다면 당장 엘리사를 떠올리며, ‘과연 우리나라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고 하며 나아만을 엘리사에게로 인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메말라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위기 상황이 닥치자 한심한 모습을 보이고 맙니다.

3. 나아만에게 일어난 치유의 기적

왕이 옷을 찢었다는 소식을 들은 엘리사는 사람을 왕에게 보냅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의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 이르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하니라” (8절)

그만한 일로 일국의 임금이 옷은 왜 찢느냐는 것입니다. 옷을 찢는 행위는 하나님 앞에 큰 죄를 회개할 때나 국가의 엄청난 재앙 앞에서 회개할 때 하는 특별한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왕은 이것이 전쟁의 위기라고 생각하고, 엘리사는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지금 이 두 사람은 똑같은 상황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완전히 다르게 보고 있습니다.

내 안에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입니다. 똑같은 상황인데도 이렇게 다르게 보입니다. 한 사람은 큰일이라고 보고, 다른 사람은 괜찮다고 보는 겁니다. 외부에서 문제가 일어날 때도 많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내면의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영적 상태에 따라 똑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것을 보고, 똑같은 말을 들어도 다른 것을 듣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똑같은 상황인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보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봅니다.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듣고 어떤 사람은 저렇게 듣습니다. 뭐가 문제입니까?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입니까? 아닙니다. 영적인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듣습니까?

8절은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라고 소개합니다. 아무리 믿는다고 해도,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면 상황에 따라 흔들리고 다른 사람의 말 한 마디에 마음이 왔다 갔다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황을 자기 시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볼 수 있습니까? 늘 하나님과 함께 하고 교제하며 순종하는 삶을 사니까 그것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람인 것입니다.

엘리사는 지금 이 상황을 통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려고 하시는지 이미 감을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나아만)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단지 ‘나처럼 위대한 선지자가 있는 것을 알게 될 거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참 선지자의 존재는 참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그의 말은, 우상으로 가득한 아람에서 온 나아만에게 오직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알게 해주겠다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의 기별을 받고 너무 좋아서 부하들과 함께 말과 병거를 거느리고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을 합니다. 엘리사의 문 앞에 섰습니다(9). 자기처럼 중요한 인물이 오면 엘리사가 맨발로 뛰어나와 환영해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어떻게 합니까?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10절)

엘리사는 환대는커녕, 집 안에 들어오게 하지도 않고, 직접 나와서 말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을 내보내 요단강에 7번 목욕하면 나을 것이라는 말만 전합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릅니다.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려 분노하여 떠나니” (11-12절)

분노했다는 것이 여기서 두 번 나옵니다. “노하여 물러가며” 그리고 “분노하여 떠나니”. 자기 같은 대단한 국가의 VIP가 왔으면 당연히 엘리사가 직접 나와서 정중히 자기를 맞이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상처 위에 직접 안수하여 나병을 고쳐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나와보지도 않고 기껏 사람을 보내서 한다는 말이 요단강에 가서 몸을 7번 씻으면 나을 것이라고 하니, 이게 참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까?

게다가 다메섹의 아바나 강이나 바르발 강은 아주 아름답고 깨끗한 강인 반면에, 이 요단강은 진흙 색깔을 띤 탁한 물이 흐르는 강입니다. 그러니까 병을 낫게 하는 데에 강물이 효험이 있다면, 자기 나라의 아름답고 깨끗한 강에 가서 씻으면 되지 어떻게 이런 더러운 요단강에 가서 씻으라는 말이냐고 분노합니다.

그런데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왜 엘리사가 나아만 같은 국가의 VIP에게 이처럼 야박하게 대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지금 ‘영적 리더십’을 주로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4장을 건너뛰었지만, 4장에 보면 엘리사가 인간적으로 따뜻한 일들을 많이 합니다.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가 죽어 과부가 된 여인이 두 아들과 같이 굶어 죽게 되니까 그 집에 기름이 넘치게 해서 먹고 살게 해주고, 수넴 여인을 위해 기도하여 아이를 낳게 해주고, 그 아들이 갑자기 죽었을 때 자기 몸을 겹치기까지 하며 기도로 그 아이를 살려냈을 정도로 정이 넘치는 사람입니다. 또 길갈에 흉년이 들었을 때 선지자의 제자들에게 국을 끓여 먹이다가 독이 있으니까 독을 제거해주기도 했고, 보리떡 20개와 채소로 무리를 먹이는 기적도 일으켰습니다. 또 6장에 보면 한국의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중의 “금도끼 은도끼”처럼 그 비슷하게 도끼가 물에 뜨는 기적도 일으킵니다.

이처럼 엘리사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을 위해 기적을 일으킨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엘리사가, 멀리서 병 때문에 찾아온 나아만을 왜 이렇게 홀대하는 것처럼 보입니까? 적국의 높은 장관이었기 때문에 그렇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늘 최고의 대접에만 익숙해져 있는 권력자 나아만에게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할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마치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시험하신 것 같이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11절을 잘 보십시오. 나아만이 뭐라고 합니까? 그에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내 생각에는….” 사실상 이것이 우리 삶의 모든 문제의 원인입니다. “내 생각에는…”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 생각대로 치유해줬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 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한 것은 자신이 지금껏 경험했던 주술사들의 방식이었습니다. 자기가 아는 것은 그것 밖에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 한다고 화가 난 겁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엘리사가 그런 주술사 같은 사람이 아니며, 하나님 역시 그들이 섬기는 이상한 우상이나 거짓 신이 아니라 참 신이심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나아만은 치유를 받기 전에 먼저 자신을 치유해주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배우고 그분 앞에 겸손히 나아오는 것이 먼저 필요했던 것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강력한 나라의 높은 군대장관이라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무조건적인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이런 깨달음은 단순히 몸의 병을 치료받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한 영적인 복입니다. 하나님은 나아만의 병을 통해서 바로 그것을 이루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으로 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있던 나아만은 엘리사의 조치에 화가 났습니다. 나병환자로 고침을 받으러 왔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자존심을 세우는 그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것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내 생각에는” 하며 자기를 내세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 각자가 다 “내 생각에는” 하고 주장해보십시오. 교회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사람도 ‘내 생각’, 저 사람도 ‘내 생각’, 여러 사람이 다 ‘내 생각’을 주장하면 얼마나 혼란스럽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생각’입니다. 공통적으로 우리가 다 ‘주님의 생각’을 구하면 아무 문제가 없지 않겠습니까?

아주 어떤 상황에 닥치면 ‘내 생각에는 이렇다’, ‘내 지식으로는 일이 이렇게 되어야 한다’, ‘내 경험으로는 저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가 중요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게 중요합니다.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13절)

이제 자기 생각과 안 맞는다고 화내며 그냥 돌아가려 하는 나아만을 종들이 설득합니다. 아주 어려운 일을 시켜도 했을 텐데, 강에서 씻는 이 쉬운 일을 왜 못하겠느냐고 말합니다. 나아만은 참 인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스라엘의 소녀 종도 그렇고, 또 충언을 하는 이 종들도 그렇고, 참 좋은 종들을 많이 두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종들을 많이 두었다는 말은 나아만 자신도 좋은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나아만이 종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돌이킵니다. 이것이 대단합니다. 자존심 막 내세우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들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는데, 나아만은 들어보고서 그 말이 맞는다고 판단되니까 흥분만 하지 않고 그대로 행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14절)

여러분, 이것을 보십시오. 아까 11절에 왜 노하며 물러갔습니까? “내 생각에는”이라고 하니까 화 밖에 안 나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했습니다. 이제 ‘내 생각’은 없어지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하니까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얼마나 놀랍습니까?

만약에 끝까지 ‘내 생각에는’이라고 했으면 고침도 못 받고 화만 나며 그냥 가는 겁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잘못됐구나’ 하며 버리고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순종하니까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의학적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나병이 단 7번 요단강에 몸을 담그는 것으로 완전히 나았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각에는”이라고 끝까지 주장하다가는 화만 나고 일도 해결되는 게 없습니다. 그런데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나며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4. 나아만의 신앙고백

이제 깨끗이 나음을 입었으니 나아만이 얼마나 기쁘고 감격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감사로 가득한 마음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다시 찾아옵니다.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15절)

보통 사람이라면 엘리사에게 감사를 표현하는 데서 그쳤을 텐데, 나아만의 관심은 이제 자신을 고쳐주신 하나님께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을 호위하고 온 부하들이 다 보는 앞에서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외칩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이것은 공개적인 신앙고백입닏. 이 공적인 고백은 나아만에게 육신의 치유와 함께 영혼의 구원이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에게 일어난 사건의 영적 의미를 그가 깨달은 것입니다. 얼마나 축복된 사람입니까? 육체의 회복과 영혼의 구원이 함께 일어나는 엄청난 역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너무 감사했던 나아만은 하나님의 복을 자기에게 전달해준 엘리사에게 감사의 선물을 합니다. 치료에 대한 대가라기보다는, 너무 고마워서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것을 거절합니다.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16절)

엘리사가 하나님의 이름을 들어 단호히 거절한 것은, 이 치유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확실히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감사의 뜻으로 전하는 선물이라도, 그것을 받음으로써 하나님이 은혜로 베푸신 역사의 본질이 조금이라도 흐려지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도 그 선물을 받게 되면 사람들이 “야, 엘리사가 아람의 높은 양반의 나병을 고쳐주고 팔자 고쳤다더라.” 하는 소문을 낼 수도 있습니다. 아람 사람들도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얼마나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되겠습니까? 엘리사가 선물을 거절하자 나아만은 더 이상 권하지 않고 다른 것을 청합니다.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7절)

이제 나아만이 단순히 몸만 치료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확실하게 믿게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엘리사가 믿으라고 권한 것도 아닌데 자기가 알아서 믿고 헌신의 삶을 살겠다고 서약합니다. 이것은 정말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다만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한 가지만 양해해달라고 구합니다.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8절)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공적인 일과 관련하여 우상에게 제사하는 의식에 참여할 때가 있는데, 이때 아람 왕이 림몬 신당에서 경배할 때 그를 부축하는 공식적 임무를 해야 하니, 자기가 림몬을 섬겨서가 아니라 주인을 부축하느라고 굽힌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그것을 용서해주시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나아만은 참으로 제대로 은혜를 받고 제대로 믿은 사람입니다. 이런 정도의 타협은 적당히 넘어가도 누가 뭐라 하지도 않을 텐데, 주님의 은혜를 받고 새롭게 된 사람으로서 작은 일도 그냥 넘기지 않았던 것입니다. 삶의 가장 작고 예민한 부분까지도 정직하게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이런 진실함을 우리도 본받아야겠습니다.

[ 나가는 말 ]

하루 전만 해도 전혀 하나님을 모르던 나아만이 이처럼 변화된 모습을 보면 놀랍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처럼 놀랍습니다. 하나님께서 변화시키지 못하실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아만처럼 세상에 부러울 것 없는 사람들도 자기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위기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시는 부르심의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있는 것이지,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그저 ‘내 생각’대로만 살게 되면, 나아만 같은 사람이 올 때 이스라엘 왕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기회인 줄을 알아보지 못하고 옷이나 찢는 엉뚱한 짓을 하게 됩니다. 늘 주님과 동행하며 깨어 있지 않으면, 나아만처럼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우리에게 붙여 주시는데도 깨닫지 못하고 엉뚱한 반응을 보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엘리사처럼 성령 충만하여 늘 깨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타이밍에 하나님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나아만 같은 사람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해주는 통로로 쓰임 받게 됩니다.

우리는 먼저 이 나아만 같은 사람을 보내주시기를 계속해서 기도해야겠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이든지 바로 그 자리가 주님께서 나를 부르신 곳임을 깨닫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기도하며 나아간다면, 분명히 나아만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나아만을 만나게 되면 제대로 알아보고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로 쓰임 받는 우리 개인과 각 가정과 목장과 온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매일말씀묵상. 10월 24일. 열왕기하 5장. > 매일말씀묵상

열왕기하 5장.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1. 본문은 아람 군대의 나아만 장군의 나병이 엘리사의 기적을 통해서 치유 받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데 말입니다 . 이 기적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제공해줍니다 .

2. 나아만은 세상적 기준에서의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 그는 강대국인 아람의 군대 장관이었고, 왕의 신임을 받는 크고 존귀한 자였으며, 보통 용사가 아니라 큰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숨어있는 묘사, 곧 하나님께서 그에게 승리를 주셨다는 말씀은, 나아만이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하나님께로 이끄시기 위해서 그의 인생에 개입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조건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해결할 수 없는 약점이 있었는데 , 그것은 나병이었습니다 . 인간이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나병이 그에게 든 것입니다 .

3. 갑작스럽게 한 작은 소녀가 등장합니다 . 나아만과는 비교할 수 없는 , 수식할 만한 말도 거의 없는 이름 없는 한 계집아이였습니다 . 그 아이는 이스라엘 사람으로 전쟁에서 포로로 붙잡혀 와서, 나아만의 부인의 종이 된 아이였습니다. 내세울게 아무 것도 없는 소녀였지만, 이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나아만의 병이 나을 수 있는 길 ( 복음 ( 福音 )) 을 알려준 것입니다 .

4. 이 계집아이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보여줍니다 . 그녀는 비록 세상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을지라도 , 세상적으로 성공하였으나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복음의 통로가 되는 사람입니다 . 또 이 작은 소녀의 말을 듣고서, 왕 앞에 나아간 나아만의 모습을 보건대, 이 작은 소녀가 평소에 얼마나 신임을 받는 삶을 살았는지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복음의 합당한 삶 , 그 삶이 복음을 더욱 힘 있게 하는 것입니다 .

5. 소녀가 던진 말은 사마리아의 왕이 아니라,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에 대한 것이었으나, 아람 왕과 나아만의 생각은 무조건 이스라엘의 왕 앞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일개 선지자가 아니라, 왕에게 직접 가서 대우를 받으면서 병 고침을 받겠다는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 하나님의 선지자는 , 왕이 오라면 오고 , 가라면 가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 참조 , 왕하 1 장 ). 이 세속적 생각과 교만한 생각이 나아만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 ‘ 내가 이만한 대접을 받아야 한다 ’ 는 생각은 얼마나 구원받기에 합당치 않으며 천국에서 먼 생각입니까 ?

6. 요람은 비록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나 믿음은 없는 자입니다. 그는 아람 왕의 편지를 읽고서 사색이 되어 옷을 찢으며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하는 것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해야 할 일이었으나,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았습니다. 인생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 혹은 불신앙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7. 나아만의 치유기사에는 ,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의 태도와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으로서 자기 의에 가득차 있는 나아만이 보여주는 불신앙의 태도가 뒤섞여 있습니다 . 엘리사는 소식을 듣고, 왕에게 나아만을 자기에게 보내라고 하지만, 자기의 집 앞에 이른 나아만을 직접 맞아주지 않고는, 사자를 보내어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8. 이것은 나아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자기 의를 꺾는 의도적인 행동이었습니다만 , 이것이 처음부터 나아만의 마음을 분노하고(12) 상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태도는 ‘ 내 생각에는 ’ 이란 말로 시작합니다(11). 나아만의 생각에는 아람의 군대 장관이 왔으니, 엘리사가 직접 나와 ‘서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문둥병이 발한 부위에 손을 대고 흔들어—이교적인 의식들이 그러했다—고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대접을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 또 요단강이 아니라 자기 나라에 있는 더 나은 강들이 더 효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함께 동행 했던 종들이 ‘ 큰일을 하라고 해도 할 텐데 작은 일을 왜 하지 않습니까 ?’ 이렇게 말하니, 나아만이 깨닫고 순종을 합니다. 그는 ‘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 일곱 번을 씻었고, 살은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해졌습니다.

9. 나아만에게 일어난 치유는 불치의 죄인이 중생하고 회심하게 됨을 보여주는 예인데 , 자기 의로 가득 차 있는 자기 생각을 내려놓을 때 , 비로소 구원이 일어나게 됨을 가르쳐줍니다 .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자기 의를 가지고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습니다 . 그러니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도 입을 수 없습니다 .

10. 중생한 자의 삶은 확실한 변화를 가져옵니다 . 나아만은 감사하기 위해서 , 엘리사 ( 아직도 그는 엘리사를 직접 대면하지 못했다 ) 의 집을 찾습니다 . 이제 엘리사는 그 앞에 서게 되고 , 나아만은 자신을 ‘ 당신의 종 ’ 이라고 표현합니다 (15). 이 얼마나 놀라운 변화입니까?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이 구원받게 되면 이렇게 태도가 바뀌는데, 이것은 그의 마음의 변화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나아만은 그저 말로만 하는 감사가 아니라, 자기가 준비해온 예물을 감사의 표시로 드리려 하지만, 엘리사는 철저하게 거절합니다. 이것은 엘리사 자신이 그 감사의 예물을 받지 않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그것은 사환 게하시의 이야기에서 드러납니다. 나아만이 가지고 온 예물들은 충분히 탐욕을 부추길만한 좋은 것들이었으며, 엘리사 자신은 탐욕을 부추길 수 있는 예물은 합당하지 않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11. 하지만 교만한 게하시는 탐욕이 가득해서 꾀를 꾸밉니다 . 그가 나아만을 ‘이 아람 사람’이라고 낮추어 표현하는 것을 볼 때 그에게는 아무런 영적 감각도 없었을 뿐 아니라 , 교만과 탐욕이 가득한 사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 그는 나아만을 쫓아가 엘리사를 빙자하여, 거짓말로 일부 예물을 얻어와 감추지만, 엘리사를 속일 수는 없었고, 제어되지 못하고 행동으로 나타난 탐욕은 , 결국 그와 그의 온 집에 문둥병을 안기는 비참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

12. 본 문은 몇 가지 교훈을 줍니다 . 첫째 , 중생하지 않은 자연인의 생각과 판단은 결코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2:14).”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게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 내가 이런 사람이다 ’ 하는 생각이 , ‘ 하나님 앞에서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 하는 생각으로 가기까지 , 우리는 천국에서 먼 자들일 뿐입니다 . 두 번째 교훈은 , 이 세상에서 성공을 하고 못하고가 기준이 아니라 , 내가 참 거듭난 사람인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 세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서 내가 거듭난 사람이면, 우리는 복음의 통로로 귀중히 쓰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나아만 집의 작은 소녀를 기억하십시오 . 나아만과 동행했던 이름 없는 부하들을 기억하십시오 . 작고 이름 없는 그 사람들이 , 하나님 없는 나아만을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였습니다 . 셋째 , 탐욕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 우리가 어떤 위치에 있든지 상관없이, 탐욕이 우리를 자극하여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탐욕이야말로 우리를 천국에서 지옥에서 끌어내리는 죄악의 쇠사슬이며 , 우상숭배의 지름길입니다 ( 골 3:5).

기도:

하나님 아버지.

세상적으로는 아무리 성공하고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복음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 나라를 더욱 소망하게 하옵소서. 내 생각, 내 경험, 내 판단으로 교회와 세상과 하나님 나라를 판단하지 않게 하시고, 늘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겸손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그리고 이제는 나아만 집의 작은 소녀처럼, 나아만과 동행했던 사람들처럼, 이 세상 속에 구원을 전하는 복음의 통로가 되게 하시고, 수많은 사람들을 옳은 곳으로 인도하는 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또한 게하시처럼 탐욕에 물들어, 탐욕을 쫓아가지 않도록 저를 지켜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 주일의 설교] 내 생각을 내려놓읍시다(왕하 5:8~14)

내려놓고 끝까지 순종합시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 말씀대로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왕하 5:14)

▲ 김희수 목사

건물이 클수록 그림자도 크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볼 때 세상에서 큰 업적을 이루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다고 말하는 사람에게도 화려한 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드러나지 않은 어두운 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아람나라의 군대장관 나아만이라는 장군이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큰 용사이다. “그러나” 그는 한센씨병 환자더라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그에게 아람을 구하게 하셨음이라 그는 큰 용사이나 한센씨병 환자더라”(1절)

나아만 장군의 겉으로 드러난 모습은 화려합니다. 그는 아람군 군대장관으로 이스라엘의 아합왕이 이끄는 군대와의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아람 나라의 전쟁영웅이었습니다. 아람 왕이 존귀하게 여기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는 속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당시의 의학으로는 치료되지 않는 병에 걸렸습니다. 불치의 병에 걸린 불쌍하고 소망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재물이나 권력, 지식이나 명성으로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습니다.

엘리는 대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 선택 받은 주의 종입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그러나” 그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행실이 나쁘고, 아버지의 말씀에 불순종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여 엘리의 염려와 근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삼상 2:12~24)

오늘날 교회와 성도들은 물론 재벌이나 권력가들도 겉으로 아무 문제없는 것 같이 보여도 남들이 알지 못하는 문제로 속으로 고통을 당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도 복음을 능력 있게 전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를 물리치는 영권을 가진 종이지만 육체적으로 가시가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문제를 가지고 세 번 작정하여 기도하였을 때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하는 음성을 듣고 약한 것이 약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더 큰 은혜의 통로가 됨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가 변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들도 “그러나”가 있다고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 4:16), “그러나”로 소망이 없던 나아만 장군은 이스라엘 소녀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 대한 말을 뜯고 소망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자신의 문제인 병을 고침받기 위해 엘리사에게로 나아가기로 결심합니다.

“내 생각에는”

나아만은 아람 왕에게 허락을 받고 많은 예물과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비록 병자의 모습이지만, 당당하게 이스라엘로 갑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집 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와 보지도 않고 하인을 보내서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라 그러면 네 살이 깨끗하여 지리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11절에 보면 “내 생각에는 저가 네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합니다. 적어도 자기 생각에는 엘리사가 직접 문밖에 까지 마중을 나와서 정중하게 안으로 모셔서 그리고 어떤 거창한 종교적 행위를 통해서 자신의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자기 생각을 또 말합니다. 이왕에 강에 가서 몸을 씻을 것이면 다메섹 강 아바나와 바르발이 요단강보다도 훨씬 더 깨끗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내 생각에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나아만의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엘리사에게 왔습니다. 자신의 생각한 대로 엘리사가 와서 자기의 병을 고쳐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내 생각으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방법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내 경험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합니다. (이사야 55:8~9) 내 생각으로, 자기 생각으로 신앙 생활하시는 분은 어느 단계에 이르면 꼭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믿음의 길은 내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합니다. 이럴 때 놀라운 일 기적이 나의 삶에 일어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자기의 생각과 맞지 않는 것으로 인해 나아만은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종이 하는 말이 13절에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 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나아만은 자신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존심을 내려놓고 순종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믿음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내 생각과 지식, 경험에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까 순종해 보겠다는 것이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밤새도록 고기를 잡다가 실패하고 다음날을 기약하고 있던 시몬에게 예수님은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했습니다. 시몬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내려놓고 일단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순종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배가 가라 앉을 만큼 엄청난 고기가 잡혔습니다.(눅 5:1~11) 신앙의 세계는 신비한 것입니다. 나의 생각이 맞지 않아도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러나” 라고 하는 연약함이 있을 때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합니다. 내 생각과 경험, 내 지식과 방법을 내세우지 말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일곱 번 씻으라고 하면 일곱 번을 씻어야 합니다. 끝까지 믿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문제가 해결되고 놀라운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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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은 소녀가 전한 복음 (왕하 5:1~7, 14) > 설교자료실

한 작은 소녀가 전한 복음 (왕하 5:1~7, 14)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는 세 사람이 대표적으로 등장을 합니다. 첫째는 아람의 장군 나아만입니다. 두 번째는 유대에서 잡혀온 작은 소녀가 등장을 합니다. 세 번째는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아람의 장군인 나아만은 대단한 사람입니다. 아람이 위기에 처해있을 때 그 나라를 구원한 인물입니다. 오늘 성경에 그는 아주 크고 위대한 장군이며, 왕의 총애를 받는 큰 용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적으로 보면 부족한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명예도 있는 다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주위에 부자인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형적으로는 그렇게 근사해 보여도 그 사람도 고민이 있고 걱정이 있을 수 있습니다.오늘 성경에 보면 “그는 큰 용사이더라. 그러나 그는 문둥병자더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문둥병은 고치지 못하는 병이고, 살지 못하는 병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에이즈와 같은 병입니다. 그런데 이 나아만은 그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화려한 외투속에 자기의 더러운 문둥병을 감추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에게 자기의 치부를 숨기고 살아간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계집아이는 그가 문둥병자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빨래하다 보면 옷에 고름이 묻어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문둥병은 영적으로 죄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문둥병은 전염이 됩니다. 죄도 잘 전염이 됩니다. 문둥병은 결국 그 사람을 파면으로 이끌어 갑니다. 죄라는 것은 그 사람을 결국 파멸과 심판으로 이끌어 갑니다.문둥병 걸린 사람은 감각을 잃어버립니다. 문둥병환자들은 왜 손이 다 짤립니까? 아픔을 느끼기 못하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물에 넣고 손가락이 다 잘려도 아픔을 못 느낍니다. 우리가 죄에 오염 되면 양심의 가책을 잃어버립니다. 얼마 전에도 지승양이라는 어린아이가 행방불명되었을 때 옆 동네 살던 40대 아저씨가 아이를 생매장해서 죽였습니다. 죄인지 모르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겉으로 보기에는 근사하지만 깊게 죄에 오염된 문둥병 환자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다 그렇습니다. 저 사람은 무엇이 부족해서 교회에 나올까? 저런 사람은 학식이 없어 무엇이 부족해? 자식들도 잘 되었는데 무엇 때문에 교회에 나오겠어? 아닙니다. 그 사람들도 말 못하는 고통과 한숨거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누구에게든지 복음은 필요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증거 해야 됩니다. 나아만이 그렇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하지만 속으로는 살이 썩어 들어가고 있습니다.두 번째 등장하는 사람이 한 작은 소녀입니다. 그는 참 불행합니다. 아람사람들이 때를 지어 유대 국경을 넘어가서 유대인들을 잡아왔습니다. 작은 아이가 참하게 보이니 나아만이 자기 집에 하녀로 두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행복했던 소녀가 하루아침에 포로가 되어서 남의 나라에서 하루 종일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포로이고, 하녀이고, 유대 소녀이었고, 계집아이라고 불리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의 육체는 포로였지만 마음은 포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긍정적이었고 밝았습니다. 그녀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비록 포로이지만, 주방에서 일하는 하녀이지만,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내가 지금 어떤 처지에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병실에 있고, 내가 위기가운데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 하나님을 모시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이 소녀에게는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인 나아만 장군을 볼 때 “저분이 우리나라에 하나님의 종 선지자 앞에 가면 문제를 해결함 받을 수 있는데”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주님에게 가면 문제의 길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질병도 건강의 문제도 가정의 문제도 예수그리스도 앞에 나오면 해결 받을 길이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 소녀에게는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충만하고 풍성했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포로로 끌려가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어떤 자리에 서도 그는 패배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더구나 이 소녀는 주인의 신뢰를 받고 있었습니다. 끌려가서 포로로 일하지만 최선을 다해서 일했습니다. 주인이 볼 때만 일하고 안보면 쉬는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어떤 일도 맡게 되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포로이지만 너무 기특한 소녀이었습니다. 이 작은 소녀가 자기 주인의 문둥병 걸린 사실을 알고 나아만의 부인에게 “우리 장군님이 이스라엘에 가면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는데 그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면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만약에 이 소녀가 믿을 수 없는 소녀라면 아무도 듣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소녀가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소녀이고, 신뢰감을 주었기 때문에 남편에게 이야기 하고, 남편이 왕에게 이야기해서 은과 금을 가지고 이스라엘에 갔습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도 여러분의 직장에서 가정에서 신뢰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여러분 거짓말 잘하는 사람을 누가 믿겠습니까? 요즘 전도 방법을 관계전도라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서 전도를 합니다. 실제로 교회에 등록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하면 그중에 86%가 아는 사람들의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왔다고 합니다. 가족이나 친척이나 직장동료나 동리사람이나 아는 사람을 통해서 전도를 받았지 모르는 사람을 통해서 전도를 받은 것은 거의 없다고 합니다. 모르는 사람에 의해서나 문서나 방송을 통해서 전도 받은 것은 14%에 불가합니다. 우리가 우리와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면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은 소녀는 아주 신뢰감을 주었던 여인입니다. 특별히 요셉이 애굽에 노예로 끌려갔을 때 열심히 일하고 보디발에게 신뢰감을 줍니다. 그러니 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을 많은 종들 중에서 발탁을 해 자기 재산을 관리하는 총무로 삼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자리에 있더라도 늘 신실하신 사람이요 믿음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은 이 소녀는 타인의 아픔에 대한 동정심이 있었습니다. 누군가가 고통당할 때 자기가 아픈 것 같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남이 슬퍼하면 나도 같이 슬퍼하고 누가 기뻐하면 나도 같이 기뻐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좋은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남은 슬퍼하는데 기쁘고 노래가 나오면 곤란합니다. 남은 망해 가는데 나는 찬송이 나온다면 곤란합니다. 남이 슬퍼하면 내 마음도 슬픈 것입니다. 남이 기뻐하면 나도 내일처럼 좋아해야 합니다. 우리는 좋은 심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긍휼이 여기는 마음입니다. 비록 자기는 포로이지만 자기를 잡아온 이 장군의 고통에는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우리 장군님이 이스라엘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는데” 이것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잘 사는 것 같아도 고민이 있고 고통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고 살면 마지막에 종말이 올 것이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오래된 이야기입니다. 가나안 농군학교를 만든 김영기 장로님이 한번은 이런 경험을 하였습니다. 추운 겨울에 많은 훈련생이 들어와서 훈련을 받는데 한밤중에 불이 났습니다. 닭장에 500마리의 닭이 있고, 옆에 토끼장에 앙고라토끼가 200마리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불씨가 날아와 불이 났습니다. 닭장과 토끼장이 바람이 불어 타오르는데 손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뜨거운 불덩이가 왔다 갔다 합니다. 토끼들이 불덩이가 되어서 뛰어다니고 닭들이 불덩이가 되어서 왔다 갔다 하는데 손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도 무슨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구도 말할 것 없이 예배당으로 들어와서 그 모습을 보고 흐느껴 웁니다. 김영기 장로님이 그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지 않고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의 종말입니다. 지옥 불에 떨어져서 뜨거운 폭탄이 되어서 뛰어다니는 모습을 보십시오. 저것이 우리가 당할 모습입니다.” 많은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곳에 천명을 이끄는 조폭 두목이 들어왔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신학교에 가서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장소에서 그것을 보았던 한 유명한 대학을 나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대학생이 “내가 검사, 판사가 되어서 무엇을 하겠나?”라고 말하고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겠다고 하며 그곳에 살았습니다. 그리고 김용기 장로님의 사위가 되었습니다.우리가 한 영혼의 종말을 볼 수 있을 때 아픔을 느낍니다. 돈이 많으면 무엇을 합니까? 지옥을 가는데, 아무리 좋은 차를 타고 가면 무엇을 합니까? 지옥을 가는데. 그것이 무슨 필요가 있습니까? 그래서 복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 타인의 아픔을 보고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이 작은 소녀에게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우리 주인이 하나님의 종 앞에 있으면 병을 고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그 소녀는 그 사실을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확실히 믿을 때 남에게 증거 할 수 있습니다.제가 어릴 때 5일마다 시골에 장이 서면 약장사가 옵니다. 그들은 약을 너무 잘 팝니다. 그 약은 제대로 된 약이 아니라 밀가루 반죽해서 염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만 먹으면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합니다. 위장병, 암, 관절, 골수가 다 낳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골 할머니들은 그 말을 믿고 20만원, 30만원 주고 약을 꼭 삽니다. 여러분 가짜 약을 팔면서도 진짜처럼 파는데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복음을 증거 하는데 확신이 없습니까? 예수님 앞에 나오십시오. 당신의 문제가 해결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당신의 가정이 바뀔 수 있습니다. 여러분 따라해 보십시오. “인생의 방황은 하나님을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난다.” 그렇습니다. 이런 확신을 가지고 나가십시오. 방황하는 인생은 하나님을 만나면 그 방황이 끝이 납니다.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이 납니다. 이 확신을 가지십시오.많은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생각합니다. “만약에 전도했다가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아이고 창피해!” 그렇게 생각하고 전도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감동이 있을 때 입을 열어서 복음을 증거 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문제가 해결되어집니다. 사업도 잘되고 병도 고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작은 소녀는 마음만으로 믿지 않았습니다. 말로 표현했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표현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부부간에 아무리 마음속으로 사랑해도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전달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는 입을 열어야 합니다. 무엇이든 말을 여십시오. 좀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저희 교회 한번 나와 보십시오.” 표현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도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 교우들은 벙어리가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작은 소녀는 이렇게 실천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세 번째 사람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살펴봅시다. 이 왕은 불신자와 같습니다. 그는 거룩한 땅에 살지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소녀는 이방 땅에 살았지만 너무나 믿음이 충만합니다.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 줄 알라 하니라.” 여러분 이 왕을 보십시오. 아람의 장군 나아만이 아람왕 벤하닷의 친서를 가지고 수백명의 신화를 거느리고 많은 금, 은 보화를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그 편지를 보고는 기절을 합니다. “아니 내가 신도 아닌데 이 사람의 문둥병을 고치라는 말이냐! 내가 어떻게 죽은 사람을 살릴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이것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필시 우리에게 빌미를 주어서 우리를 공격하려는 저들의 의도가 아닌가?” 그렇게 속단을 합니다.왕은 불안해하고, 염려하고, 근심을 합니다. 아마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만약 이 왕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었다면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얼마든지 오너라.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가면 되느니라.” 그렇게 말하면 됩니다. 이렇게 믿음 없는 사람은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당황해 하고 불안해하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셔 두고도 그분께 도움을 청하지 못합니다. 여기에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는 속단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그것이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방의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고침 받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높임을 받으시고, 다른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얕볼 수가 없게 됩니다.이스라엘 왕은 자신만을 바라보고 환경만을 바라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오늘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물질의 문제가 있습니까? 물질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인생의 문제가 있습니까? 우리의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하나님께 그 문제를 가지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능력이 부족하십니까?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 앞에 구하십시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여호람은 불신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이때에 엘리사가 사람을 보내서 그를 내게 보내라고 말합니다.오늘 이 세 사람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가까우십니까? 우리는 작은 소녀처럼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두 가지 생각할 수 있습니다.첫째는 작은 자의 큰 영향력입니다.오늘 이 소녀는 아주 작은 보잘 것 없는 계집입니다. 돈도 없고, 권세도 없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소녀이지만 오늘 가장 큰 일을 했습니다. 그가 복음을 증거함으로 장군의 마음을 움직였고, 왕의 마음을 움직이고,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었습니다. 이 나아만 장군이 이제 엘리사의 부름을 받고, 하나님의 종 엘리사에게 갔더니 엘리사가 밖에 나오지도 않습니다. 자기 하인들을 시켜서 “여보시오. 들어 올 것도 없고, 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담그시오.”라고 말했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났습니다. 사람이 오면 좀 나와 보던지, 안수를 해주던지, 환부를 살펴보던지 나오지도 않고 요단강에 씻으라는 말에 화가 나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부하들이 “장군님! 여기까지 왔는데 더 어려운 일을 시켜도 해야 되는데 이정도도 못합니까? 속는 셈 치고 한 번해 봅시다.”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아만 장군이 요단강에 몸을 담글 때 그 더러운 문둥병이 낳고 어린아이처럼 깨끗해 졌습니다. 나아만이 너무 좋아 덩실 덩실 춤을 춥니다. 엘리사를 찾아가서는 그가 가져간 모든 것을 선물로 주려고 했더니 엘리사는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아만은 이스라엘의 흙을 퍼가지고 가서 이 흙을 보면서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겠다고 합니다. 이방 장군이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그 소문이 많은 나라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한 작은 소녀의 이야기가 얼마나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습니까? 작은 것이 큰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고린도전서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에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패하려 하신다.” 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약한 자들을 불러서 강한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여러분 한국 땅에 120년 전에 복음이 들어왔는데 처음부터 크고 권세 있는 자들을 위해서 복음이 들어온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멸시받는 어린아이들에게 먼저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교회학교를 통해 먼저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남자보다는 여자가, 부자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복음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통해서 이 땅에 얼마나 많은 교회가 세워지고, 얼마나 많은 영혼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여러분 작은 소녀 얼마나 보잘 것 없습니까? 그러나 그들이 입을 열어 복음을 증거 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그 작은 소녀보다 훌륭하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입술을 열어 복음을 증거 할 때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여러분의 전도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입을 열면 한 가정이 바뀔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복음을 증거 할 때 한 민족이 변화 될 수 있습니다. 어떤 동네나 그 동네에 교회가 세워진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한번 오세운 권사님 댁에 심방을 갔을 때 권사님이 그런 말씀을 하십니다. 용인에 어떤 동네인데 아무도 예수를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버님이 처음 예수님을 믿고 조그마한 장소에서 사람들을 전도해서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짓고 전도사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전도사님이 누구냐 하면 오병직 전도사님이십니다. 그 교회가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이 그 교회를 통해서 복음을 듣고 있습니다. 오세운 권사님 말씀에 이 집이 예수님 믿는지도 모르고 시집을 왔는데 아버님이 장로님이셨고, 주일이면 교회 가는 것이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한사람에 의해서 복음의 역사가 한 동네가 변화되었습니다.여러분 이 작은 소녀의 영향력이 너무나 큽니다. 그 후로 200년 후에 아람이 망하고 앗수르가 등장합니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하나님이 선지자 요나를 보냅니다. 요나가 그곳에서 회개하라고 외칠 때 이미 그곳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그 외침을 듣고 무릎을 꿇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면서 금식을 했습니다. 이 작은 소녀에 의해서 이미 아람 땅에 복음이 들어갔기 때문입니다.초대교회 때 보면 광야에서 빌립집사가 에디오피아에서 온 내시에게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그가 돌아가서 에디오피아에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가장 먼저 복음을 듣게 된 지역이 에디오피아입니다. 그 빌립집사의 전도가 한 민족을 바꾸어버렸습니다. 여러분이 오늘 입술을 열 때 한 가정, 한 민족, 한 가문의 운명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께서는 복음전도의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교회 교우들이 입술을 열 때 놀라운 복음의 능력을 행사 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무엇으로 평가를 받겠습니까? “내가 얼마나 복음의 영향력을 행사했는지, 너를 통해 몇 영혼이나 하나님 앞에 나왔느냐?”를 가지고 하나님이 평가하실 것입니다. 비천한 영혼이지만 큰 영향력을 행사하실 것입니다.두번째 본문에서 받은 교훈은 복음은 희망을 준다는 것입니다.절망 속에 있던 나아만이 이 작은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는 마음에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왕의 허락을 받고 이스라엘로 갔습니다. 복음이 들어가는 곳마다 절망이 희망으로 변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열왕기하 7장에도 나옵니다. 사마리아성이 포위 되어서 다 굶어 죽게 되었는데 성 밖에 있는 문둥병자 4명이 어차피 굶어 죽느니 적진에 가서 먹을 것 좀 얻어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성 밖으로 갔더니 적들이 다 도망가고 텅 비어 있습니다. 실컷 먹고 나니 성안이 생각이 납니다. 성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어가고 있고, 아이를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문둥병자들은 말합니다.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리면 우리에게 벌이 임할 것이다. 어서가 이 사실을 고하자.” 달려가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니 성안에 사람들이 큰 기쁨을 가지게 됩니다.오늘 우리가 이 복음을 전할 때 이 복음은 많은 사람의 영혼을 변화시키고 그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복음은 살리는 소식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합니다. 여러분 사람들에게 선포하십시오. 예수님께 나오십시오. 교회로 나오십시오. 그곳에 해결의 길이 있습니다. 그곳에 변화의 길이 있습니다. 우리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네가 걸을 수 있다. 너도 고침 받을 수 있다. 너의 병이 나을 수 있다. 너의 인생이 회복 될 수 있다.” 누구든지 변화 될 수 있고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희망을 주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를 통해서 전해져야 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로마서 10장의 말씀입니다. 만약 작은 소녀가 전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나아만이 그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까요? 이 나아만이 자기 처지만 비판하고 살아간다면 되는 일이 있었을까요? 그가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의 종을 소개했기 때문에 나아만이 치료받고 이 계집아이에게 얼마나 고마워했을까요? 아마 이 소녀를 풀어주었을 것입니다.복음은 전해져야 합니다. “전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오.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오. 믿지 못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오.” 그렇습니다. 누군가 전해야 합니다. 바로 여러분에게 복음 전파의 사명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깁니다. 나아만이 무슨 믿음이 있었나요? 작은 소녀로부터 그 소식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허락을 받고 사마리아까지 가서 엘리사 선지자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복음 전도의 사명이 우리 어깨에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으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너희에게 화가 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 사명이 주어져 있습니다. 여러분 이제 “하나님! 나도 꼭 전도하겠습니다.” 바로 이것이 여러분의 확신이요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복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열왕기하 5장 1-14절)

설교 제목: 복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설교 본문: 열왕기하 5장 1-14절 (개역한글판) 1 아람 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2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이스라엘 땅에서 작은 계집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저가 나아만의 아내에게 수종들더니 3 그 주모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 주인에게 고하여 가로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계집아이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5 아람 왕이 가로되 갈찌어다 이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나아만이 곧 떠날쌔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개와 의복 열벌을 가지고 가서 6 이스라엘 왕에게 그 글을 전하니 일렀으되 내가 내 신하 나아만을 당신에게 보내오니 이 글이 당신에게 이르거든 당신은 그 문둥병을 고쳐주소서 하였더라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내가 어찌 하나님이관대 능히 사람을 죽이며 살릴 수 있으랴 저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 보내어 그 문둥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로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8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이 자기 옷을 찢었다 함을 듣고 왕에게 보내어 가로되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저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 9 나아만이 이에 말들과 병거들을 거느리고 이르러 엘리사의 집 문에 서니 10 엘리사가 사자를 저에게 보내어 가로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번 씻으라 네 살이 여전하여 깨끗하리라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가로되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12 다메섹강 아마나와 바르발은 이스라엘 모든 강물보다 낫지 아니하냐 내가 거기서 몸을 씻으면 깨끗하게 되지 아니하랴 하고 몸을 돌이켜 분한 모양으로 떠나니 13 그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복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바꾼다.

열왕기하 5:1-14

(금곡동산교회 이병용목사 설교문)

오늘의 성경에 문둥병에 걸린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의 집에서 일어나 일에 대하여 나옵니다. 이 집안에는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어린 소녀가 종으로 그 주인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은 이 소녀에게는 참으로 힘들었다고 생각되어집니다. 하지만 그녀의 정신은 믿음으로 충만하였습니다. 그래서 주인의 아픔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사마리아의 선지자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어린 여종의 말이지만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저들은 진실한 심정으로 믿었습니다. 여러분들이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힘들고 어려운 때 빛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1. 소녀의 신앙

히브리 소녀는 아마 어린나이에 자신의 어머니와 친구로부터 생 이별을 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전쟁으로 말미암아 가정과 자유를 다 빼앗겼습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원수 같은 주인 나아만을 위해 좋은 소식을 말할 수 있었겠습니다.

1)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 소녀는 사랑하는 고국을 떠나서도 자기 조상의 하나님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 교육은 대단합니다. 그 교육이 그녀로 하여금 우상의 땅과 우상을 섬기는 자들 가운데 살면서도 자기의 주 하나님께 경배 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주인의 문둥병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그 선지자를 자신 있게 소개했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종으로 팔려갔지만 집에서의 신앙 교육이 그를 붙들어 주었습니다. 나라가 망하여 바벨론으로 종으로 붙잡혀간 다니엘도 이 믿음을 가지고 바벨론으로 갔습니다. 이 소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많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소녀가 아람 땅에 자기의 믿음을 가지고 갔듯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복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세상에 나가야 할 것입니다.

2)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소녀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자기가 포로로 잡혀와 있는 원수의 나라의 장군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 대해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를 사랑하고 선을 행하며 기도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가능하였습니다.

3) 풍성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조그마한 여종의 신실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아만 장군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믿지 않고 세상의 물질적인 힘에 의존하던 나아만 장군이 감동을 하였습니다. 나아만은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아만의 가정과 이방 나라에 여호와 하나님의 절대적인 능력을 전파하는 사역까지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신실한 신앙은 아무리 사악함이 판치는 곳이라고 할지라도 성령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도록 하여 줍니다.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이들에게 유익을 주는 놀라운 축복의 통로입니다. 참으로 힘든 절망의 환경이라고 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않게 합니다. 할렐루야!

2. 군대 장관 나아만

1) 나아만의 지위

그는 아람의 군대 장관으로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는 굉장한 명성과 부를 누리던 자였습니다. 그는 재산과 명예, 왕의 은총과 백성의 존경 등, 보통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모든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찾아든 문둥병은 이 모든 것들을 아무런 소용이 없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그는 육신의 건강 뿐 아니라 영적으로도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으며, 그분에게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이처럼 나아만이 육신적으로는 문둥병으로, 영적으로는 불신앙의 무서운 질병을 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복음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희망은 있습니다. 결국 그의 질병은 절대적인 존재이신 하나님을 구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시119: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시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고난과 괴로운 생활의 과정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주님을 잘 아는 축복의 길이 되기도 합니다. 할렐루야! 고난으로 말미암아 어떤 이들은 절망하고 괴로워하다가 다른 이들을 원망만 하다가 시간을 낭비합니다. 그렇지만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삶의 전환점으로 삼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도 복음은 승리를 가지고 오는 통로로 여기고 주님께 더 가까이 갑시다. 그러면 넉넉하게 이기고 승리의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2) 나아만의 믿음

나아만은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이스라엘 왕에게 갔습니다. 여기서 은 십 달란트는 340㎏에 해당하며, 금 육천 개도 약 69㎏에 해당하는 큰 선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거액의 자금은 그의 지위를 볼 때도 최선을 다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돈이 아깝지 않은 사람들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문둥병을 치료를 위해서 라면 어떠한 대가를 치르고서 라도 고침을 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소망입니다. 이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만나야만 구원으로 인도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이 절망을 희망으로의 길로 인도를 하는 것입니다.

3) 나아만은 바로 찾아가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여종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선지자에게 가서 치료를 받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 왕을 찾아갔습니다. 즉 잘못된 길로 갔던 것입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지지르기 쉬운 실수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선지자를 찾는 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적국이기에 큰 화를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말씀하시기를 시146:3,4“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 하리로다.”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께서는 장관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라고 말씀했습니다. 요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빌4:6-7“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할 때 사람들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말씀처럼 자신의 고민과 문제를 하나님께 들고 나아가는 하나님 중심의 신앙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3. 나아만의 인간성

1) 보통의 사람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가 보낸 사자로부터 왕하5:10“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라는 전갈을 듣고 즉시 대노하여 일행을 데리고 아람으로 돌아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엘리사의 지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형편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도리어 자신의 권세와 명예 만을 생각하였던 같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불현 듯 일어나자 앞뒤 생각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람의 장관을 무시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엘리사의 태도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한 생각이 들자 장군에 대한 예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먼저 화부터 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에 걸 맞는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잘 안될 때 화를 내고 분노를 나타냅니다. 그렇지만 여러분들이여 성냄과 분노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닙니다. 이러한 분노와 성냄은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어렵게 이끌어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약1:19,20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20.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노하기를 더디 하라는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그 말씀에 순종합시다.

엡4: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여러분들이여 분한 마음을 오래 품지 말라고 하신 성경의 교훈에 순종합시다. 그러므로 잠 29:11 “어리석은 자는 자기의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것을 억제하느니라.” 는 말씀처럼 지혜로운 성도들이 다 되어 멋있는 복음은 절망을 희망으로 변하게 하는 능력인 것을 깨닫는 주님의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그는 경솔하였습니다.

엘리사의 하인으로부터 지시 사항을 전달 받은 나아만은 화를 내며 그곳을 떠나려 했습니다. 그는 문둥병이 단지 요단 강물에 일곱 번 씻는다고 나을 리가 있겠느냐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만일 엘리사가 더욱 복잡하고도 어려운 치료법을 제공했더라면 그는 아마 순순히 순종 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갑자기 자기의 생각만을 드러냈습니다. 그는 문둥병을 고치기 위해 아람에서 이스라엘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문둥병이 고쳐질 찰라 그의 성급한 생각과 경솔한 마음으로 인하여 문둥병을 치료 받을 수 없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복음은 단순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학자들이 받기에는 너무나 단순합니다. 그래서 잘 안 믿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단순한 것이 맞습니다. 복음은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롬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이것이 복음입니다. 복잡하지 않습니다. 엡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 그리고 ‘죄인 중에 괴수’ 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약4:6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지식, 부, 지위, 명예, 얼굴의 아름다움 등 쉽게 변하고 불타 없어질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18:3,4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은 어린아이와 같이 순전하고 아름다운 믿음을 가진 자만이 소유할 수 있음을 깨닫기를 바랍니다.

4. 나아만의 순종

1) 그는 순종은 자기의 생각으로 하려고 하였습니다.

왕하5: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자신의 병을 자기가 생각하는 방법으로 완치될 것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홀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병 고침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오로지 하나님만이 나의 병을 고쳐 주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오직 성경의 방법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구원의 길의 첩경이기에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2) 그의 순종은 타의에 의한 깨닫는 순종이었습니다.

나아만의 순종을 말하라 한다면 타인의 도움을 받은 순종이라고 말씀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엘리사가 지시한 대로 순종 하기를 꺼려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를 내면서 순종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극히 충성스러운 종의 충언을 듣고는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쁨의 마음으로 엘리사의 지시에 순종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 놀라왔습니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에서 깨끗함을 입었습니다. 이처럼 그의 순종은 타의에 의하여 깨닫게 되었든지 순종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종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순종은 기적을 가지고 옵니다. 할렐루야!

3) 순종함으로 깨끗함을 입은 나아만

나아만의 목욕이 상징하는 영적인 의미는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라는 말씀으로 살펴보면 나아만은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을 입은 것입니다. 그는 종들의 권고에 의해서 이해가 되어 엘리사의 지시에 순종 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그가 바라고 원하던 문둥병에서의 자유였습니다. 때로는 인생을 살다 보면 이렇듯 타의에 희하여 이해하고 순종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것이라면 늦게 이해가 된 순종이라도 축복을 가지고 올 것입니다. 그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라면 그 보상은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어린 여종의 복음은 죽어가는 나아만을 살렸습니다. 여러분들의 복음이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3. 나아만의 종들을 통하여 배울 점

나아만의 종들은 그때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주인인 나아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의 말에 이해를 하고 기쁨으로 순종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들은 문둥병으로 고통 받는 나아만의 자존심을 해소 시켜 주었습니다. 왕하5:13 “그의 종들이 나아와서 말하여 이르되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니” 그들은 공손한 말로서 나아만의 반발은 잘못임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나아만의 분노는 눈이 녹듯이 사라졌습니다. 나아만은 기쁨의 마음으로 온전하게 엘리사의 지시대로 요단강에서 일곱 번 몸을 씻음으로 깨끗함을 입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종들의 태도에서 우리들은 형제를 책망하거나 충고할 때는 진실 되고 참된 존경심을 가지고 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잠27:6 “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자주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좋은 친구의 통책은 사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이것을 믿으십시오. 복음은 많은 사람들을 절망을 희망으로 변화 시켰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놀라운 축복을 보내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조금씩 성경 알아가며 나도 변하려고 :: 열왕기하 5장. 나아만의 요구와 엘리사의 허락을 통해서 본 성도와 제사문제 묵상

성경 이야기 중 자주 언급되는 <나아만 장군>이야기입니다. 엘리사가 나아만 장군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것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람의 신보다 크고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그 고백을 나아만이 하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더 인상적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한껏 드러나야 하는 상황에서 <물질>을 탐하므로 여호와의 영광을 물질로 대치할 뻔 했던 게하시의 어리석음도 드러납니다.

[정리1.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1.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에 대한 소개

1) 하나님께서 아람을 나아만 장군을 통해서 구하게 하신적이 있음.

2) 큰 용사이나 나병환자가 되었던 나아만.

3) 이스라엘 출신 종이 이스라엘의 선지자(엘리사)가 나아만을 도울 수 있다고 말함.

4) 아람의 왕은 그 소식을 듣고 이스라엘 왕에게 서신과 예물을 보내어 나아만 장군을 보낼테니 낫게 해달라고 나아만을 위해서 직접 부탁함.

2. 아람 왕의 편지를 받고 이스라엘 왕이 당황하다.

1)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이 이 일을 핑계로 전쟁을 일으킬 명분을 만든다고 생각하고 걱정함.

2) 이 소식을 들은 엘리사가 왕을 진정시키고, 나아만을 자신에게 보내라고 말한다.

3.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와 병을 고치기까지

1) 엘리사는 사자를 보내 나아만에게 요단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함. 낫게 되리라.

2) 나아만은 자기의 기대와 다름(내게로 와서 서서 그의 신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생각함)으로 인하여 분노하고 떠나갔다.

3) 나아만의 종들이 나아만을 설득하여 요단강에 씻게 하였고, 일곱 번 몸을 잠그니 나았다.

4. 엘리사에게 예물을 바치려고 하는 나아만 장군

1) 병을 고침 받은 나아만은 엘리사를 찾아와 여호와만이 유일한 신이심을 고백하고, 예물을 받아 달라고 요청함.

2) 엘리사가 예물 받기를 거절하자, 나아만은 다시 받으라고 강권하나 엘리사는 거절함.

3)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하는 나아만.(이제부터 번제물과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에는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않겠다고 고백함)

4) 다만 양해를 구하는 것은 아람 왕을 위해 그가 림몬 신전에 들어가서 경배할 때, 자신의 손을 잡고 하기 때문에 자신이 림몬의 신당에서 어쩔 수 없이 몸을 굽히는 것을 용서해 달라.

5) 엘리사가 나아만을 평안이 가라고 허락함.

5. 재물을 탐내는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

1) 게하시는 자기 주인 엘리사가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자신이 직접 엘리사 몰래 나아만의 일행을 쫓아갔다.

2) 게하시는 엘리사의 요청이라고 하면서, 선지자의 제자 중 두 사람이 왔으니, 이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고 말함.

3) 나아만은 은 두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주고, 옷 두 벌을 두 사환에게 지워서 보냈다.

4) 집에 다 와서는 사환에게 짐을 받아 가지고 들어와서는 집에 감추었다.

5) 이를 눈치챈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어디 다녀왔는가하고 물었지만, 게하시는 거짓말을 함.

6) 엘리사는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하고는 게하시를 책망함.

7) 나아만의 나병이 너와 네 자손에게 미칠 것임을 말씀하시자, 게하시가 나병이 발하였다.

[정리2. 내가 이해한 내용을 내 머리 속의 언어로 표현하기]

본장은 아람보다도 큰 이스라엘, 아람의 신보다 크신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하겠다.

아람에 군대 장관 나아만이 있었단. 그는 혁역한 공을 세운 대표적인 장수였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에 걸리고 말았다. 그 나라에서는 그 병울 고칠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에서 잡혀온 여종이 나아만에게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면서 그 선지자는 고칠 수 있다고 자랑을 했고, 이를 들은 나아만을 왕의 추천서를 받아 이스라엘로 향했다.

한편 아람 왕의 편지를 받은 이스라엘의 왕은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것은 아람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때 어떻게 알았는지 엘리사는 그 소식을 듣고 왕에게 사신을 보내 나아만 장군이 오면 자신에게 보내라고 요청했다.

엘리사를 찾아 온 나아만은 엘리사가 자기를 맞아 들이고 손을 위에 대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가면서 기도해 줄줄 알았다. 그러나 엘리사는 얼굴도 비치지 않은 채, 종을 보내서는 요단 강에 가서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만 하고 만다. 엘리사의 대우에 기분이 상한 나아만이었지만, 그 종의 지혜로운 답변으로 마음을 안정시키고는 물 속에 들었갔다. 일곱 번을 몸을 담그고 나서는 몸이 어린아이의 피부처럼 깨끗하게 나았다.

고침을 받은 나아만은 바로 엘리사를 찾아와 준비해 온 예물을 드리려고 했으나, 엘리사는 절대로 받지를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흙을 달라고 했다. 그 흙을 쌓아 단을 만들고 거기에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번제와 희생제사를 드리겠다는 것이다. 여호와만을 믿겠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직책상 왕과 함께 림몬 신전에는 가서 경배해야 하는데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양해해 달라고 하자 엘리사는 인정해 준다.

그렇게 마치는 듯 한 이야기가 사환 게하시의 돌출행동으로 이어진다. 나아만의 예물을 받지 않고 돌려보내는 것이 말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게하시는 다시 나아만을 찾아가 거짓말을 하고 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받아오고, 이로 인해 저주를 받아 나병이 걸리게 되었다.

[정리3. 묵상 및 적용]

1. 엘리사의 도도함, 여호와 하나님의 도도함.

나병을 고치기 위해 찾아온 나아만을 대하는 엘리사의 모습이 매우 도도하다. 엘리사는 나아만을 맞아 주지도 않았고, 만저 주지도 않았다. 종을 보내서 하나님의 말씀만 대언하고 요단강에 가서 씻으면 날 것이라고 했다.

이 장면에서 엘리사의 친절함이 없다고 아쉬워하지 말자. 이 사건은 이스라엘이 아람보다 높고, 나아만 보다 엘리사가 높으면, 아람의 신보다 여호와 하나님이 월등히 강력한 분임을 보여주는 사건이며 계시다. 실제로 병을 고침받고 나서 다시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은 병을 고쳐준 대가로 예물을 받으라고 하지만, 엘리사는 받지를 않는다. 이것은 거래가 아니다. 강한자가 약한 자에게 베푸는 은혜로운 사건이기 때문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강하심이 더욱 돋보이도록 해야 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아만은 오히려 이스라엘 땅에 흙을 달라고 요청하고, 자신은 이제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번제와 희생 제물을 드리겠다고만 고백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하나님이라는 고백을 스스로 하게 된 것이다.

엘리사의 도도함은 하나님의 도도함을 보여주기 위한 과정이었다. 따라서 게하시가 나중에 다시 예물을 받으러 나아만을 찾아간 것은 하나님의 위상을 떨어뜨린 사건이 되고 만다. 게하시는 자신이 먹고 마시려고 챙긴 것은 아닐 것이다. 이전에서 봤듯이 선지자들의 생도들은 늘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부족하였다. 게하시는 이런 기회에 그들을 위해 굴러들어온 예물을 받아두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마리의 향유옥합을 돈으로만 환산하려고 했던 유다와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게하시는 잘못 생각했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었고, 결국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다.

2. 양해를 구하는 나아만, 그의 특수한 상황을 이해해주는 엘리사.

나아만이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이 지금까지 섬겨왔던 신보다 더 크고 절대적인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것은 진심이었다. 그는 엘리사의 요청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기로 한 것이 아니다. 그가 병을 고치면서 그 마음 속에 든 확신 가운데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는 엘리사에게 흙을 달라고 했고, 그것을 제단을 쌓고 번제와 희생제사는 여호와만을 위해 드리겠다고 스스로 고백했다.

그런데 한가지 양해를 구한다. 그것은 자신이 아람 왕의 군대 장관인데, 자신은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길 원하지만, 아람 왕이 림몬 신전에 가서 경배할 때, 자신이 군대 장관으로서 왕을 수행하고 또 그와 함께 경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이런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타협적인 신앙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엘리사는 <평안히 가라>고 답함으로서 이해한다고 인정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나아만은 처음부터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이방의 문화와 종교로 가득한 생활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방신을 섬기는 왕을 섬겨야 했고, 왕이 아람의 신전에서 의식을 행할 때, 함께 동행해야 하는 자신의 업무가 여전히 있는 것이다. 엘리사는 그와 같은 나아만의 현실적인 문제를 이해했던 것이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이었다면 용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이방인으로서 방금 하나님을 경배하게 된 것이다.

본문의 내용을 봤을 때, 나아만의 신앙은 진심으로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을 수 없는 삶과 패턴의 연속선이 있었다. 엘리사는 그것이 자연스럽게 정리될 수 있는 시간을 인정했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신앙은 결정적인 것에서의 단절이 불가피하지만, 갑자기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을 이룰수 없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양해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그들을 향해서 엘리사처럼 <평안히 가라>고 여유있게 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예수를 믿었으니, 모든 것으로부터 당장 끊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는 압박에서부터 좀 자유로워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경우 제사문제가 그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나님을 명백하게 믿으면서도, 아직 아버지가 믿지 않기 때문에 제사 음식을 준비해야 하고, 어쩌면 절을 해야 하기도 하는 신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나도 그런 시간이 있었으니까…) 회심하고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서 당장에 끊어버리지 않으면 정죄의식을 갖도록 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오늘 나아만을 보고, 엘리사의 <평안히 가라>는 말씀 속에서는 말이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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