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의 축복 | 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찬양 Ccm 50 빠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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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사람 by 김대환
축복의 통로 by 조수아
내려놓음 by 박상규
I Love You Lord by 신영수
하나님의 은혜 소리엘
예수 닮기를
왜 내게
하늘보다 높으신 주의사랑
우리때문에
주 없이 살 수 없네 by 김대환 조수진
완전한 사랑
아름다우신
주께 가까이 날 이끄소서 by 소리엘 에이멘
주님의 마음을 가진 자
채우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by 시와그림
나의 길 by 박진희
하늘 위에 주님밖에\u0026지금은 엘리야때 처럼 by 옹기장이
나를 통하여 by 노상신
주님의 여행
나오직 주님만을 by 시와그림
난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by 김기원
온맘다해
내 삶의 이유라 by 조수아
믿음으로 서리라
이삭의 축복 by 클래식 콰이어
10000Reasons(송축해 내 영혼) by 강중현
Together by 소리엘
고치소서 by 클레식 콰이어
시편 19편
나의 맘 받으소서 by 클래식 콰이어
오직 예수 다른이름은 없네
나의 부르심 by 호산나싱어즈
사명
새힘을 얻으리니 by 에이맨
나의가는길 by 조현주
하루를 시작할 때
성령이 오셨네
나의사랑 나의 어여뿐자야 by호산나싱어즈
소망을주소서 by 클래식콰이어
시편 40편
매일스치는 사람들
내게 강같은 평화 by 호산나싱어즈
아버지여 구하오니
야베스의 기도 by 조수진
어찌하여야 by 호산나싱어즈
오나의 자비로운 주여
오직 주만이
주만 바라볼찌라 by 다윗과 호산나
주오셔서 구하시리 by 호산나싱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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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에 관한 성경 구절 ―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바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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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2/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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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이란? – CTS기독교TV

#1 약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히브리어는 베라카(berakah)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베라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힘을 전달하거나 부여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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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cts.tv

Date Published: 9/10/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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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이란 말이 되는가? < 초대석 < 오피니언 < 기사본문

정판술 목사’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란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축복(祝福)’이라는 말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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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에 관한 성경 구절 [하나님의 축복에 관한 25개 성경구절]

축복과 은혜에 관한 성경말씀 … 하나님의 축복은 당신이 당신의 직계 가족 밖에서도 은총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용주, 친구, 이웃, 교회 공동체로부터 호의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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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하나님의 축복이 참으로 필요한 때 – 국민일보

독일에서는 만났다 헤어질 때 ‘아데(Ade)’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 인사에는 ‘축복’이라는 뜻이 숨어있다고 합니다. ‘아데’는 ‘아듀(adieu)’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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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시 1:1-6) – 19 시편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오는 행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건강, 성공, 장수와 자손의 축복’까지도 포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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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 – 나무위키: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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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하나님 의 축복

  • Author: Beecompany 비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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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ate Published: 2017. 12. 3.
  • Video Url link: https://www.youtube.com/watch?v=yiNLf3uQecw

축복에 관한 성경 구절 ―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길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의 축복을 바랄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복을 주실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축복에 관한 구절을 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알게 될 것이며, 축복받는 길을 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평생 걱정 근심 없이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주님의 일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하나님의 축복은 이런 것이 전부일까요? 여의치 않은 상황이나 시련이 닥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아래의 구절을 통해 하나님의 축복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시편 23:1~6)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야고보서 1: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야고보서 1:2~5)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계시록 3:10)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7)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계시록 3:5)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시록 21:3~4)

또 저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 나무가 있어 열 두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하리로다 (계시록 22:1~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요한1서 2:25)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는 사람은

하나님은 사람에게 축복을 주심에도 원칙이 있으십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아래의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조건에 대해 알아봅시다.

여호와여 주는 의인에게 복을 주시고 방패로 함 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시편 5:12)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찌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러나 고기를 그 생명 되는 피채 먹지 말것이니라 내가 반드시 너희 피 곧 너희 생명의 피를 찾으리니 짐승이면 그 짐승에게서, 사람이나 사람의 형제면 그에게서 그의 생명을 찾으리라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창세기 9:1~7)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16~18)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 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과 약대 육천과 소 일천 겨리와 암나귀 일천을 두었고 (욥기 42:12)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마태복음 16:18~19)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5:18~19)

이 말씀 하실 때에 무리 중에서 한 여자가 음성을 높여 가로되 당신을 밴 태와 당신을 먹인 젖이 복이 있도소이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1:27~2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요한복음 20:29)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계시록 22:14)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시록 19:9)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찌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계시록 7:14~17)

추천 말씀

하나님께 축복받는 길은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께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어린양의 발걸음을 따라가는 사람은 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아래의 구절을 통해 하나님께 축복받는 길에 대해 알아볼까요?

대소 무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115:1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마태복음 22:37~40)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마태복음 5:37)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한복음 4:24)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브리서 12:14)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요한복음 10:27~28)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3:20)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계시록 14:4~5)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추천 내용

성경에서 말하는 축복이란?

#1

약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히브리어는 베라카(berakah)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베라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힘을 전달하거나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개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 전달되며 안수 행위를 수반하였다.

#2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베라카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하는 선포였는데,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온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위대한 민족으로 만드셨다

#3

히브리인들은 입술로 하는 말에 힘이 있어서 선이나 악을 창조한다고 믿었다. 사실 고대인들은 히브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말한 것은 그 자체로서 생명을 가진다고 믿었다.

#4

축복이 지닌 특수한 의미는, 가끔 사람 위에 안수하는 상징적 동작을 수반하여 그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기를 말하는 의도적인 행위이다.

#5

이는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행한 종류의 축복, 그후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한 축복이다. 또한 예수께서 제자들과 아이들에게 주신 축복이다.

#6

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세기 27:27

*출처 : 롤프 가복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 중에서 #1약 성경에서 축복이라는 히브리어는 베라카(berakah)이다. 고대 히브리인들에게 베라카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은혜의 힘을 전달하거나 부여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개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 전달되며 안수 행위를 수반하였다.#2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베라카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하는 선포였는데,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온 세상에 전달할 수 있는 위대한 민족으로 만드셨다#3히브리인들은 입술로 하는 말에 힘이 있어서 선이나 악을 창조한다고 믿었다. 사실 고대인들은 히브리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한 번 말한 것은 그 자체로서 생명을 가진다고 믿었다.#4축복이 지닌 특수한 의미는, 가끔 사람 위에 안수하는 상징적 동작을 수반하여 그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기를 말하는 의도적인 행위이다.#5이는 이삭이 아들 야곱에게 행한 종류의 축복, 그후 야곱이 그의 아들들에게 한 축복이다. 또한 예수께서 제자들과 아이들에게 주신 축복이다.#6그가 가까이 가서 그에게 입맞추니 아버지가 그의 옷의 향취를 맡고 그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창세기 27:27*출처 : 롤프 가복 「하루에 한 번 자녀를 축복하라」 중에서

‘하나님의 축복’이란 말이 되는가?

▲정판술 목사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이 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하나님의 축복’이란 말은 말이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축복(祝福)’이라는 말은 ‘복을 빈다’는 말이다. 즉 누군가에게 복을 빌어야 한다는 말인데, 하나님은 복을 내려주시는 분이시지,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최근에 많은 이들이 ‘축복’과 ‘복’을 동의어인 것처럼 잘못 사용하고 있다. 예를 들면 기도할 때, “하나님! 이 가정에 복을 내려주옵소서”라고 해야 하는데, “하나님 이 가정을 축복해 주옵소서”라고 잘못 기도하고 있다. 설교하면서도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복을 주실 것입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축복하실 것입니다”라고 잘못 말하고 있다.

하나님은 직접 복을 내려주시는 주체이시지, 누구에게 복을 내려달라고 빌어 주시는 분이 아니다. 만약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면 그가 만복의 근원이신데 누구한데 복을 내려달라고 빈단 말인가!

어불성설이다. 하나님은 누구를 위해 복을 빌어주시는 분 정도로 전락시킨다는 것은 신학적으로도 큰 오류이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복을 비시는 분이 아니다. 반면에 사람은 축복은 할 수 있으나, 복을 베풀지는 못한다. ‘축복’과 ‘복’은 이만큼 개념이 다르고, 뜻이 다르다. 단호히 말하거니와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이시지 복을 빌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성경에 어떻게 말씀했는가?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창 12:1-3).

“그(멜기세덱)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창 14:19).

“그들이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민 7:27).

이같이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은 복을 내리시는 분으로, 축복은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구별해 기록했다. 그럼에도 ‘축복’과 ‘복’을 같은 뜻으로 잘못 알고 있는 이가 워낙 많아서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제86회 총회에서는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여 주옵소서”는 “하나님 복 주옵소서”로 시정할 것을 결의한 바가 있다.

또 한국교회발전연구원에서는 지난 6월 3일 ‘잘못된 교회용어, 이것만은 고치자’라면서 40개 용어의 문제점을 설명하고 대체용어를 제안했다. 거기에도 보면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으로, “하나님 축복하소서”는 “하나님 복 주옵소서”로 고치자고 했다.

성경 어딜 봐도 하나님을 축복하시는 분이라고 말한 곳이 없다. 복을 주시는 분으로만 기록돼 있다. 그 때문에 새로 출판된 찬송가에는 옛 찬송 중 잘못된 가사는 일일이 고쳤다. 예를 들면 옛 찬송 34장 중 “택하신 백성을 축복해 주시고”를 “택하신 백성들 복 내려주시고”로, 옛 찬송 49장 중 “축복의 산에 올라”를 “복 주실 산에 올라”로, 옛 찬송 246장 중 “베푸신 축복”를 “베푸신 은혜”로, 옛 찬송 67장 중 “우리를 축복하시고”를 “나에게 복을 주시고”로 고쳤다.

그런데도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도 ‘복’과 ‘축복’이 같은 뜻이 아닌데도 동의어처럼 사용하는 이가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너무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연히 잘못된 용어를 언제까지 그대로 사용할 것인가?

이제 우리 모두는 부단히 노력해 잘못된 용어는 하루라도 빨리 고쳐서 성경이 말씀한 대로 해야 하지 않겠는가?

■ 정판술 목사 / 사직동교회 원로

축복에 관한 성경 구절 [하나님의 축복에 관한 25개 성경구절]

Duke Taber 목사는 LIFE Bible College와 Multnomah Biblical Seminary의 졸업생입니다. 1988년부터 목회 사역을 하고 있다.

Duke 목사는 상처받은 교회를 치유하고 교회를 다시 영적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에 있는 그리스도의 몸에 하나님의 임재의 ​​부흥, 갱신 및 회복을 가져오는 것을 전문으로 합니다.

Duke 목사는 다른 교회에서 연설할 수 있는 제한된 날짜가 있습니다. 당신의 교회가 하나님의 영의 새로운 움직임이 필요하거나 고통스럽고 상처받은 시기를 겪었다면,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시 1:1-6)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시 1:1-6)

미국의 벡만 장자였던 제이 구울드는 세상을 떠나던 날, 이렇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였구나”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자신의 마지막 생일날, “나의 인생은 말라버린 노란 낙엽 같구나! 내게 남은 건 오직 슬픔 뿐이구나!”라고 비통해 했다고 합니다.

또 당대 최고의 권세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역시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알렉산더, 시저, 그리고 나는 힘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으로 제국을 세운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은 영원히 온 세상에서 빛나고 있구나”

인생이란 무엇이며, 인생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요?

잠언 10: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과 같이 참된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을 떠나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자어로 복(福)이란 글자를 보면 ‘옷(示)’ 옆에 ‘입(口)’ 그리고 ‘밭(田)’, 맨 위의 ‘한(一)’자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생의 행복이란, 옷 한 벌과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밭이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복의 개념은 영적인 축복과 현세적 축복, 그리고 내세의 축복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축복하시되, 특별히 복 받을 만한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복 있는 사람, 즉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만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본문은 복 있는 자의 결말과 악인의 결말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을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악인의 꾀를 좆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악인의 꾀/ 의인의 지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좆지 아니하며”(1절)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오는 행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건강, 성공, 장수와 자손의 축복’까지도 포함합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행복을 얻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악한 사람들의 방법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악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악인’의 히브리어 단어 ‘라솨’는 ‘죄를 지은 자, 또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악인은 ‘죄를 짓고, 탐욕스럽고, 불의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살인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불순하여 진리를 떠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방법이 불순한 이런 사람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웃을 착취하고 속이는 사람, 도적질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일이 잘 되어가는 것 같이 보여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잠언 15:26절에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전염병이 있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쓰게 되면 같은 병에 걸리게 되는 것과 같이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자는 결코 악하게 살 수 없습니다.

유능한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한 회사에 근무하다가 은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하루는 회사의 사장이 그를 불렀습니다.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을 한 채만 더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장의 부탁이었으므로 집을 짓기는 하였지만, 그만 둔다는 생각 때문에 별로 좋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할 부분도 잘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이 완공되었을 때 사장에게 가서 집을 다 지었다고 보고하였더니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집은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나의 선물입니다”

그제서야 건축가는 질 나쁜 재료를 쓰고, 고급 기술자를 고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과 물질 때문에 눈이 멀어서 자기만의 이익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강도짓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번 돈은 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 돈은 결국 자신에게도 해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꾀를 좇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크신 은혜와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 죄, 죄인의 길 / 의, 의인의 길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1절)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죄인’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 ‘삶의 목표와 방향을 그릇되게 잡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죄’ 역시 ‘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저버린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결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죄 강누데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창세기 3:5절을 보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근원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과 교만, 그리고 불순종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교만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교만과 불순종의 죄를 짓는 사람은 있는 것조차 빼앗기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5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은 “죄를 짓는 자에게 내려지는 가장 무서운 형벌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로마서 5:24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버려두사 저히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6절에는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28절에는 “또한 저희 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krp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는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류 역사의 21개문명 중 19개의 문명은 외적인 공격에 의하여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부패에 의해 죽어갔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문명의 부패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갔다는 말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면 개인의 삶은 점점 허물어져 결국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의 24대 대통령 클리블랜드는 학창시절에 친구와 저녁마다 술을 마시러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집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얼마쯤 가다가 예배당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예배당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고, 예배당 게시판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글자가 씌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 성경 구절에 큰 충격을 받아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여전히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그 이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되었고, 참된 삶의 의미를 찾아 진지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술집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려 교회로 들어간 청년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그의 친구는 감옥 안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클리블랜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죄인의 길에 서서는 안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 속에 언제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오만, 교만 / 겸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여기에서 ‘오만한 자’란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교만’의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의 홍수 시대 이후 땅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다시 교만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홍수와 같은 심판을 당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높은 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탑이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다시는 지면에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온 땅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들로 다시는 교만의 탑을 쌓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쌓았던 바벨탑은 인간이 허망한 것을 위해 수고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눈에 드러나는 바벨탑이 아니라 할지라도 혹시 교만의 탑을 쌓고 있지는 않는지요? 있다면 그것을 빨리 무너뜨려야 합니다.

시편 75:4절과 7절에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으니”,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만을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 계획, 방법, 그리고 내 가정, 내 자녀만을 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의 탑을 쌓아서는 안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하고, 섬겨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은 “교만하여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겸손한 영혼들만이 하나님의 온전한 보배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교만이 위험수위에 달하지 않는 선까지만 복을 허락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는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 낙담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대평가나, 과소평가, 어느 것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의인은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이 들기 쉽고, 학자는 자신의 지식으로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부자는 돈으로 자랑하고, 권력자는 권력을 과시합니다. 예술가는 그의 작품을 자랑하고, 웅변가는 그의 말을 자랑하고, 운동선수는 그의 특기 때문에 자만하기 쉽습니다.

사람에게 자만이나 교만이 생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 성장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잠언 11:2절을 보면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교만은 일종의 자기 숭배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교만을 정의하기를,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이다’라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15세기 설교자 중 사보나 롤라라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니까 성당 마리아 상 앞에서 어떤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인 하나가 경건한 모습으로 참배를 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이튿날도 똑같은 시간에 그 부인이 와서 기도를 합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결같이 같은 시각에 와서 마리아 상 앞에 참배하는 이 부인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그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 속으로 ‘아주 신앙심이 귀한 분이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보나 롤라는 자기 동료사제와 함께 산책하다가 그 부인을 가리키면서, “여보게 내가 저 부인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이 없소.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우가 몰아치나 똑같은 시간에 와서 저렇게 기도를 한단 말이야. 참 신앙심이 유별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제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넨 모르는가 보네. 옛날 이 성당에 마리아 상을 처음 조각할 때, 그 조각가가 마리아 상의 모델로써 저 부인을 뽑았다고 하네. 바로 저 부인은 처녀시절에 마리아 상의 모델이 되었고, 조각이 완성된 그 다음 이튿날부터 출근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빠진 일이 없다네”

그 부인은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상을 보면서 그 부인은 자신의 얼굴을 회상하고 만족하며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의 뿌리입니다.

신명기 8:14절을 보면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셨습니다. 오만과 교만의 자리, 높아짐의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 낮아짐의 자리를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 율법, 말씀을 묵상 / 말씀을 떠남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2절)

율법은 보통 ‘모세 오경, 구약 율법’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교훈, 훈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그래서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늘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9:97-100절 말씀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훌륭한 학자보다도, 또 어떤 노인보다도 명철하고 지혜로운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받는 축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축복의 근원이 되고, 질병에 걸리지 않고, 번성하게 되며, 복을 받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고, 상을 받고,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마귀를 이깁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사람에 대한 저주와 심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사람은 저주를 받고, 재앙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패망하며, 흑암과 사망의 줄에 매이며, 역경을 당할 때 넘어지고, 구원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만일 이 성경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들 중 90% 이상이 성경을 깊이 읽는 사람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읽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신문, 잡지를 보는 것보다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한 삶을, 복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복있는 사람의 결말과 악인의 결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형통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

팔레스틴 지역은 물이 참 귀한 곳입니다. 그곳은 사막과 광야가 많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틴 사람들은 ‘물이 고인 샘’이나 ‘물이 흐르는 시내’를 ‘성공’, ‘승리’, ‘축복’의 의미로 받아들였고, 동시에 ‘생명과 기쁨의 원천’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물은 ‘복의 근원이 됨’을 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영원히 번성하고 풍족함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형통하며,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7:7-8절을 보면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에 스텐리 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청년 시절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왜 이런 실패를 겪게 하고, 혹독한 시련을 당하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를 하는 중에, 만약 앞으로 성공하면 모든 면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그는 이런 서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나의 동업자가 되시므로 회사 수입 중 50%를 주님의 것으로 드리겠습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사업이 점점 왕성하여졌는데, 너무 급속히 성장하는 바람에 미국 연방 재무당국에서 10년 동안 계속하여 세무조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사업이 더욱 번창하자 그는 60%의 이익을 하나님께 드렸고, 나중에 100%를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 자신은 봉급을 받는 그 회사의 고용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로서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되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셔서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악인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리로다 – 심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4-5절)

여기서 ‘바람에 나는 겨’는 ‘쓸모없는 불완전한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이것은 ‘악인’이 추수기인 ‘심판의 날’에 멸망에 이르게 됨을 말합니다.

‘심판’이란 말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번영과 성공으로 상급을 주시지만 악인은 심판하십니다.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카알라일은 “결코 심판의 날을 잊지 마십시오. 인간에게 죽음이 있는 것처럼 분명히 심판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전도서 12:14절에도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3.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정, 멸망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6절)

예레미야 17:5-6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개인이나 민족은 복을 받고 흥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혹은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이나 그 후손들은 고난을 면치 못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두 집안 사람들의 후손들에 관한 내력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맥스처스라는 사람과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두 사람에 대한 기록입니다.

맥스처스라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신앙과는 무관하게 산 사람이었는데, 그 자손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의 후손 1026명 중, 감옥에 갇힌 자가 300명, 창기가 된 사람이 160명, 알콜 중독자가 100명이나 되었고, 그들 가족 중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정부가 600만불이나 되는 국고를 손해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조나단 에드워드는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목사님이셨는데, 그의 후손 729명 가운데 목사가 300명, 대학교수가 65명, 대학총장이 13명, 저술가가 60명, 국회의원이 3명, 부통령이 1명 나왔다고 합니다.

사람의 일생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더욱이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끼치는 정신적 자산은 어떤 물질적 유산보다 값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잘 양육된 자녀는 도덕과 윤리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며, 사랑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인생의 가치는 돈이나 세속적인 명예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될 때에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진실로 행복한 사람이 될 때, 여러분의 자녀와 자손들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간절히 원한다면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버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시냇가에 믿음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신앙의 분량대로 열매를 맺어야 하며,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임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의인의 길을 걷는,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 이러한 복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악인의 꾀를 버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더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나님의 축복이란? (창 1:26~31)

하나님의 축복이란?

창세기 1:26~31

21세기가 되면 세상이 훨씬 행복해지리라는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20세기는 인류 역사상 뚜렷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 중의 하나는 첨단 과학의 발전이었습니다. 그런데 과학이 인류의 불행에 사용되는 세기였다는 것입니다. 첨단 과학을 파괴 기구로 이용해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피를 흘리게 되었습니다. 1, 2차 세계 대전을 비롯해 온 세계가 끊임없는 전쟁을 했던 20세기는 지칠 대로 지치고 절망하고 좌절했던 세기였습니다. 우리 한반도도 예외 없이 전쟁이 일어나서 300만 명 이상이 전쟁으로 죽었습니다. 21세기가 되면 인류가 전쟁의 고통을 깨닫고 평화의 지구를 만들 수 있을 것을 기대하면서 새로운 세기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조금도 변한 것이 없는 악순환의 역사만이 인류의 괴로움이 되고 있습니다.

이제는 무엇보다 심각해진 것이 문화 충돌로 인한 테러 공포가 온 세상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것이 터질지 모르는 테러 공포 때문에 이제 세계인에게 즐거운 여행이란 말이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공항에 들어서면서부터 기분이 나쁩니다. 신발까지 다 벗고 들어가라고 하고 검사를 받는데 의심이 나면 데리고 가서 바지까지 벗게 하는 여행이 되어버렸습니다. 여성들은 수치감이 더 심합니다. 여성들의 브래지어까지 철저히 검색기를 갖다 대고 조사를 할 정도입니다. 어떤 사람은 몸에 아무 것도 지닌 것이 없는데 계속 검색대에서 소리가 나니까 그 사람의 설명이 이렀습니다. “아마 오래 전에 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에 금속 철을 붙여서 수술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소리가 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구차한 설명까지 해야 되고 앞으로는 금이빨까지 조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여행 가기가 싫어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공항 지나가는 것이 끔찍하고 창피스럽고 무슨 죄를 짓고 조사받는 것 같이 되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 인간이 산다는 것은 성취를 바라봄입니다. 그리고 그 성취란 곧 행복을 말합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위는 행복감을 얻으려고 노력합니다. 우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하지 않습니까? 잘 먹으면 두어 시간 행복합니다. 여인들이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예쁘게 하면 하루 종일 행복합니다. 새 옷을 사면 한달 정도는 아주 행복해 합니다. 행복해지려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행복하려고 사랑도, 결혼도 합니다. 요즈음은 그러한 인간 심리를 이용해서 교회조차도 행복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교회에서 예배 많이 오라는 말을 뭐라고 합니까? “행복에의 초대”라고 합니다. “여기에 오면 행복합니다.” 그러면서 교회를 많이 광고합니다. 이제는 교회도 행복하려고 다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으려면 조건이 몇 가지가 필요합니다. 그 첫째가 구조적 조건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개인의 행복과 생명을 존중하는 국가 구조가 있습니다. 반대로 개인의 권리나 행복을 무시하는 국가 구조가 있습니다. 내가 아무리 피 땀 흘려 노력을 한다하여도 전체적인 구조가 잘못되어 있을 때는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요즈음 온 세계 가운데 가장 빨리 성장하고 있는 나라는 중국이라고 합니다. 모든 국민들은 큰 희망을 가지고 아주 신바람이 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 굶주리던 중국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되었는가? 등소평이 빛을 비추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경제 구조를 바꾸어서 개인의 행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장 경제를 도입한 것입니다. 돈을 벌면 모두 자기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수십 번 중국 여행을 갔고 갈 때마다 교육국에 있는 지도자들과 만나고 심양 대학교와 특별히 친분이 있어서 총장, 부총장을 여러 번 만났는데 모두 똑같은 말을 계속 합니다. 등소평이 우리에게 빛을 전해주었기 때문에 그 빛을 보고 우리는 이렇게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학생 시절에 아테네 철학자 중에 빛을 발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대낮에 등불을 들고 돌아다녔다는 디오게네스를 우리가 매우 낭만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의 철학에서 인간의 행복이란 뭐냐? 자연스러운 욕구를 자연스럽게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은 부끄러울 것도 없고 흉한 것도 아닙니다. 이 원리에 어긋나는 관습은 반자연적이며 따르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서 자기는 거지 같이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했는데 그 소문이 알렉산더 대왕에게까지 들려져서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내가 한번 봐야 되겠다.” 찾아가서 보니까 정말 그렇게 하고 다닙니다. “당신의 소원은 무엇입니까?” “자연스러움을 느끼는 것인데 대왕께서 내 일광욕을 지금 방해하고 서있기 때문에 조금 비켜주시면 소원이 이루어집니다.” 알렉산더가 온다는데도 치장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자연스럽게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가 그렇게 건방지게 구는 것을 무시하지 아니하고 존중해서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었다면 디오게네스가 되기를 희망했을 것이다.” 그래서 디오게네스 일화가 유명해진 것입니다.

영국의 사학자 토인비 박사가 런던 대학의 교수 시절에 학생들에게 강조한 역사관은 근래에 가장 높게 평가받는 역사 철학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은 창조적인 소수가 행복하게 만들고 파괴적인 소수가 세상을 불행하게 만든다. 어느 한 공동체나 나라에 창조적인 소수가 발하는 빛 때문에 온 국민이 행복한 것이다. 반대로 파괴적인 소수가 있을 때는 그들 때문에 다 불행해 지는 것이다.” 여러분! 세상의 역사가 그렇지 않습니까?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들이 행복하게 살려면 빛을 비쳐주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 빛을 발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 모건 스탠리 아시아태평양 수석 경제학자인 앤디시에 교수의 글이 실렸습니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부활하는 일본과 급성장하는 중국 틈에서 필리핀 수준의 빈민국이 될 것이다.” 필리핀은 막사이사이 대통령 때 아시아의 흑진주라고 찬양을 받았는데 마르코스 대통령 때 빈민국이 되었습니다. 어느 역사관 안에서나 민중은 빛을 보고자 하며 그 빛을 통해 행복을 발견하려고 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뭐라고 하셨습니까? 자신이 인류 구원의 빛이 되시면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있으므로 세상이 행복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네가 있으므로 말미암아 네가 있는 그 공동체가 행복하게 만들어져야 하고 네가 대한민국에 살므로 말미암아 너 때문에 대한민국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가정에서도 우리가 빛이 되고 교회에서도 빛이 되고 사회에서도 빛이 될 때에 그것이 주님의 제자다.”라는 진리를 주셨습니다.

1920년대는 세계가 경제 공황으로 고통을 받던 때입니다. 그 중에서도 미국의 경제 공항이 가장 심각하여 경제가 파멸 직전까지 갔습니다. 국가 경제가 이렇게 되니까 사회는 자연 발생적으로 무정부 상태가 되어 갱단들이 수없이 생겨나서 어찌나 무서운지 은행들이 갱단이 무서워서 전부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니까 경제 활동이 완전히 마비가 된 것입니다. 약탈과 살인의 무정부 상태 폐허로 변해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절 미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들은 마피아 조직에 가담하고 있던 알카포네의 부하들만이 살맛나는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회가 그렇게 어두워질 때 뉴욕의 한 시민이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 아버지, 내가 이 어두워져 가는 사회에 어떤 빛을 발할 수 있겠습니까? 나에게 그 길을 주십시오.” 기도하고 생각하다가 ‘아, 이렇게 하는 것이 뉴욕 시민에게 빛이 될 것이다.’ 자기 가족들과 온 친지들, 그리고 주변의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설명하고 “이 일에 협조해 달라. 이 사회에서 훌륭한 건물을 하나 지을 테니까 우리 다 같이 투자하자.”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다 함께 모아서 미국 사회가 바라볼 수 있는 건물 한 채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 집은 10층, 20층 날마다 올라가는데 점점 높이 올라가는 빌딩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은 궁금해서 묻기 시작했습니다. “몇 층까지 올릴 것입니까?” “네. 좀 더 올라갈 것입니다.” 50층 이상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신문에 기사화 되어 모든 사람들의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80층이 되었을 때 사람들은 “아! 이것은 미국의 희망이다!”라고 했습니다. 100층이 올라갈 때 “미국의 경제 공황은 이제 끝났다!” 그 빌딩을 바라보면서 사람들이 희망의 빛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102층 뉴욕 34번가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입니다. 그 빌딩 하나에 고용 인원이 18,000명이나 되었고 그 빌딩 하나가 뉴욕 시내에 생김으로 말미암아 일자리 창출과 경제 순환의 동기가 되어서 빌딩이 완성되었던 1931년부터 사회는 새로운 역사의 변환점이 되었던 것을 기억합니다.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회가 결정됩니다. 얼마 전에 우리들은 잠시나마 황우석 교수가 이 민족의 빛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졌었습니다. 과학마저 거짓말을 할 줄은 누구도 생각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두움에 살던 중간기 역사의 히브리 민족이 어느 날 한줄기의 빛을 보고 요단강으로 다 몰려갔습니다. 세례 요한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기다리고 기대하던 예언자의 음성과 빛이 이제야 나타났다.” 모두 몰려왔습니다. 세례 요한이 그들을 향해서 한 말은 책망입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그런데도 그 앞에 다 몰려갔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회개하고 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아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누가, 무슨 빛을, 어떻게 비추느냐 여기에 따라서 세상이 결정됩니다. 때로 우리는 대통령을 뽑으면서 “당신은 이 역사에 이 민족의 빛이 되어 주십시오. 우리 모두의 갈 길의 방향을 가장 선하고 훌륭하게 정하시고 우리를 이끌고 그리로 가십시오.” 그래서 대통령을 뽑는 것 아니겠습니까? 바라볼 수 있는 지도자를 가진 민족, 창조적인 철학의 구조를 가진 백성은 행복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말씀을 봅시다. 창세기 1장은 인류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은 왜 인간을 창조하셨는가? 확실한 이유가 여기 나타납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구조와 노력은 하나님의 복이 사람에게 임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훌륭한 것입니다. 정치 철학도 하나님의 복이 백성에게 임할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추어서 결정해야 되고 경제 성장도 학문의 초점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정도 직장도 교회도 나라도 모두 하나님의 복이 사람에게 주어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결국 빛을 발하는 사람이란 누구인가?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복입니다.

그러면 인간의 복이 대체 무엇인가? 성경에서 복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을 합니다. 하나는 “self-congratulation”이라고 자기가 자기를 축복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복이라고 가르쳐 줍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우리 인간의 정체성(identity)을 보십시오. “Who am I(나는 누구인가)?”의 문제입니다. 즉, 자기 정체성의 확립입니다. 오늘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정체성을 확립시켜 주시고 인간 삶을 시작시켜 주시는 기록이 나왔습니다. 인간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나님이 정해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과 우리들의 관계성을 설명해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너와 내가 하나가 되는 거룩한 결부의 생명체 원리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신, 내가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가 곧 내가 되는 생명 결부의 원리!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그러면 내가 나를 어떻게 평가해야 합니까? 그것이 “self-congratulation”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축하하는 것입니다. 내 영속에 이 정체성이 확실히 자리를 잡을 때 그 사람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받는 복이란 첫째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형상됨의 영적 정체성이 있는 사람, 이것보다 더 큰 복은 없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기독교 역사에 그렇게 많은 순교자들이 생겼는데 도대체 젊은 나이에 왜 순교를 당해 죽고 마는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신분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받은 고통이 순교입니다. 왜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것을 버리지 않았는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복이라고 하는 마음의 확신이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한 것입니다. 죽으면서까지 지켜야 되는 하나님의 축복 “내가 하나님의 자녀이다.”란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절에 기독교인 박해로 인해 예루살렘에 살던 기독교인들이 외국 땅으로 다 흩어졌습니다. 당시 기독교 최고의 지도자 역할은 베드로였습니다. 외국으로 흩어져서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는 교인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낸 것이 베드로전서와 후서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 9절에 “너희가 누구냐?” 옛 크리스천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규정짓는 말을 합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우리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정체성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들을 보고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 되는지, 아니면 벌 받은 사람이라고 해야 되는지는 자신의 신앙이 결정합니다. 비록 외국에 가서 나그네로 고통스럽게 살고 있지만 하나님이 내게 주신 가장 큰 복이 자신들에게 있음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모두가 복 받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떠십니까? 하나님은 더하십니다. 날마다 하나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계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무엇이 복인가? 하나님이 주신 것은 다 복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제일 귀한 복을 주셨는데 믿음이 없다보니까, 또 세속에 너무 물들다 보니까, 세상 기준으로만 복을 생각하니까 제일 귀한 복을 발견하지 못하는 불행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됨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내가 나를 축하할 수 있을 때 그것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인가? 하나님의 형상이다. 내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 거기에 대한 정체성을 확립하고 하나님의 복으로 내가 나를 객관성 있게 축하할 수 있는 능력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복 받은 사람입니다. 이 믿음이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크리스천의 기쁨이 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 복음 “blessing share”입니다. 그 복을 나누어주는 것이 복입니다. 왜 하나님은 유대 백성을 선민으로 택하셨는가? 너희가 수고하여 온 세계인에게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역할자가 되라는 뜻입니다. “너희는 땅 끝까지 찾아가서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라. 열매 맺는 가지는 더 맺게 하려 하여 이를 깨끗케 하시느니라.” 지금 갈보리 교회가 세계 선교에 공헌하고 있습니다. 왜 하는 겁니까? 복을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나안 땅으로 보내셨는가? 당시는 가나안 땅이 세계인이 오고가는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애굽 대륙에서 왔던 사람이 요셉을 인신매매하여 은 20에 사가지고 갔습니다. 남쪽으로는 애굽 대륙의 아프리카 땅을 연결하고, 동쪽으로는 끝이 없는 아라비아 대륙을, 북쪽으로는 소아시아 일대가, 서쪽으로는 지중해라는 해상 통로가 있어서 로마를 비롯한 유럽의 관문으로 무역의 중심역할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세계인들이 오고가는 그 중심에 아브라함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를 세워 빛을 발하므로 그 빛을 보고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가지라는 계획 때문에 가나안 땅으로의 이주를 명령하신 것입니다. 결국 거기에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인류 구원의 메시야가 탄생하도록 하나님의 계획성 밑에서 되어진 일이 아닙니까?

내가 받은 복으로 또 다른 사람을 복되게 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입니다. 선교사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러 가는 사람입니다. 세계 역사를 살펴보십시오. 어느 나라나 기독교 선교사가 들어가는 나라는 다 문화적으로 영적으로 모두 복을 받았습니다.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는 곳은 어느 곳이나 문화와 문명이 향상되었고 교육 국가가 되었고 경제 성장을 하고 미신이 사라졌습니다. 만약 우리 한반도에 아직도 복음이 안 들어온 상태라면 우리나라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 있겠습니까? 기독교 선교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고 들어와 준 것이 복이 되어 오늘 우리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 아닙니까?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의 복을 내어 쫓는 사람이 간혹 존재합니다. 그 나라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여러분 역사적으로 살펴봅시다.

기독교 핍박의 대부 역할을 하던 소련은 세계 땅의 3분의 1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제적 파탄으로 나라가 부도가 났습니다. 그래서 소련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14개 독립국가가 세워졌습니다. 러시아를 비롯한 새로 탄생된 나라들이 이제 선교를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북한이 굶어죽는다는 소리만 계속 들려오고 있습니다. 어린이들과 부녀자들조차 희망의 빛을 찾아서 탈북하려고 남의 나라 영사관 담장을 필사적으로 기어 올라가는 뉴스가 계속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당신들 왜 이렇게 하는 겁니까?” “다른 나라로 가기 위한 것입니다.” “어디로 가기를 원하십니까?” “한국입니다.” “왜 그곳에 가기 원하십니까?” “거기에 희망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10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도와준 것만 6조5899억 원입니다. 민간단체들이 도와준 것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제가 목회하던 교회만 해도 5000명 식량을 4년 동안 계속해서 보낸 일이 있습니다. 교회를 내어 쫒은 것이 곧 복을 내어 쫒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복 자체시라.” 찬송가 28장에 “복의 근원 강림하사”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태초부터 하나님의 복으로 인간이 창조되었기 때문에 복을 받아야만 살 수 있는 존재들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인간을 복되게 하는 최대의 선물이고 이 복을 나누어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입니다. 역사에 빛을 남긴 사람들이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역할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새해가 되면 첫 번 인사를 뭐라고 합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그 말의 뜻이 뭡니까? “새해에는 내가 당신의 복이 되겠습니다. 내가 있으므로 당신이 행복하고 당신이 있으므로 내가 행복하여지는 관계로 이 새해를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 뜻입니다.

교회가 무엇인가? 그러한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곳입니다. 교회들이 관료주의, 상업주의 원리 문화에 젖어들면 이기주의적 공동체를 만들어서 자기 것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중세기에 종교 개혁운동이 그렇게 거세게 일어났던 것 아닙니까? 만약 교회 공동체를 이기주의적 공동체로 만들게 되면 교회도 하나님이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46년 걸려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을 보고 예수님이 하신 말씀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질 것이다.” 교회도 버림당하게 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저는 미국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미국인들이 사는 한 지역에 우리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미국인들이 피땀 흘려서 우리 갈보리교회 만큼이나 좋은 교회를 잘 짓고 목사님 사택까지 잘 마련하였는데 미국인들이 한사람, 두 사람 떠나고 한국인들이 많이 살게 되는 현상이 나타나니까 그 교회 교인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 “그 동안 우리가 피땀 흘려 건축한 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셔서 잘 살았는데, 이 지역은 이제 한국인들이 많이 들어와 사는 지역이 되었으므로 우리가 계속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이 지역을 희망의 빛을 보기 위해 오는 한국인들에게 주는 것이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일이다.” 결정을 해서 생전 보지도 못한 한국 교인들과 목사를 불러서 “이 교회를 가지십시오. 여기 목사 사택도 마련해 놓았고, 또 조금 수리하려고 은행에 10만 달러 헌금해 놓은 것이 있으니 다 가지십시오.” 한국 목사와 한국 교인들이 눈이 둥그레져서 “공짜로요?” “네, 공짜입니다.” “그러면 어떡하실 겁니까?” “우리는 또 조용히 떠나서 우리들이 가야할 교회를 찾을 테니까 이 지역이 복 받는 지역이 되도록 여러분이 이 지역에서 복을 받도록 가지십시오.” 제 친한 친구 가운데에도 그렇게 물려받은 교회가 LA에서 두 곳이나 됩니다. 그래서 한 때는 그 친구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와!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기에 하나님이 저렇게 공짜로 주셨느냐?” 교육관 시설도 얼마나 좋고 목사 사택도 얼마나 잘 꾸며져 있는지 모두 부러워했습니다. 교회는 공짜로 주는 곳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고 주지 말라. 그러려면 차라리 주지 말라.” 거룩한 명분의 아름다운 나눔! 그것이 교회입니다. 지금 갈보리 교회는 40개국에 선교비를 보내고 있습니다. 재정 보고를 매주일 하는데 1억 정도는 항상 마이너스 통장으로 운영해 가고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남을 주기 위해서 그러는 것은 괜찮습니다.

제가 목회 생활을 하면서 5곳에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 없는 지역에다 교회 하나를 지어놓고 한 사람이 들어오면 그 사람이 교회 와준 것이 너무나도 감사했습니다. 새벽기도도 나 혼자면 아예 아무도 안 나왔으면 그냥 자겠는데 한 사람이 뚜벅뚜벅 오는 소리가 납니다. 그러면 후다닥 일어나서 “기도합시다.” 이래가면서 다섯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이 땅에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는 피가 끓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선교 처소를 현재는 400군데인데 1,000군데를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나눠주는 것이 복입니다. 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공짜로 다 나눠주는 것입니다. “갈보리교회 교인들 모아서 뭐했는가? 다 온 세상에 나눠주고 말았다.” 괜찮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가 뭡니까?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개척교회를 많이 했기 때문에 교구 목사님들한테도 항상 권합니다. 여기서 교구 목사로 일하다가 때가 되면 그 교구 식구들과 교회를 하나 세우라고, 교구 식구들 다 모시고 나가도 괜찮다고 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일곱 개가 되지 않습니까? “이게 얼마나 좋으냐?” “그러면 갈보리교회 교인들 다 없어지면 어떡합니까?” “안 없어진다. 여기는 여기대로 있다.” 그래서 내년 1월부터 한 사람이 하기로 했습니다. 우리 교인들 다 모시고 나가서 해도 괜찮다고 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는 싸움질 하고 갈라지는 것은 잘해도 거룩한 명분의 아름다운 나눔은 잘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하는 교회도 있어야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은 그 몸마저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공짜로 다 가져가라. 내가 줄 것은 이제 이것 밖에 없어.” 피 흘리고 쓰러지면서 다 가져가라 하셨습니다. “나는 이제 아무것도 없다.” 오늘 성경은 인류의 시작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복으로 시작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끝나는 요한계시록 22장에는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성경은 복으로 시작해서 복으로 끝이 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갈보리 교회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이러한 복의 임재가 여러분 가정에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진리, 하나님의 복을 받았으면서도 복인 줄 모르는 불행을 성령님이 깨우쳐 주시고 나는 가장 귀한 것을 받고 있으니까 형제들에게 이 복을 나누어줄 수 있는 믿음의 주님의 제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이곳에 이렇게 교회를 세워주신 것은 온 세상에 나누어주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세계 선교에 공헌하는 갈보리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이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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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축복이 #가득한 #찬양 #CCM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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