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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
백성들의 불성실한 회개.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Source: www.churchofjesuschrist.org
Date Published: 12/6/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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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 | KRV 성경 | YouVersion – Bible.com
호세아 6 · 1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 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
Source: www.bible.com
Date Published: 5/1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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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2(목) “호세아 6:1-11” / 작성: 오웅식
본문 호세아 6:1-11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호세아서의 후반부인 4-14장은 북이스라엘 백성의 심각한 타락에 대한 지적과 경고, …
Source: 100church.org
Date Published: 7/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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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을 구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본문 호세아 6장 1절에 보면, 호세아 선지자는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 …
Source: www.sooyoungro.org
Date Published: 12/2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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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Hosea 6 KLB;NIV;KJV – 백성들의 진실하지 않은 회개
백성들의 진실하지 않은 회개 – 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우리를 다시 낫게 하실 것이며 우리에게 …
Source: www.biblegateway.com
Date Published: 11/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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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호 6:6) – 호세아 Hosea – 로빈박스
설교 일시 : 2009.09.15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 호세아 6장 …
Source: robinbox.net
Date Published: 8/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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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에 대한 기사 평가 호세아 6 장
- Author: 공동체 성경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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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ate Published: 2021. 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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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 6
백성들의 불성실한 회개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5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7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8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그들이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10 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음행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혀졌느니라
11 또한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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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4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2019/09/12(목) “호세아 6:1-11” / 작성: 오웅식
본문 호세아 6:1-11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호세아서의 후반부인 4-14장은 북이스라엘 백성의 심각한 타락에 대한 지적과 경고, 용서와 회복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호세아 5장에서 여호와께서는 사자처럼 이스라엘을 찢으시고 전염병으로 그들을 치실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인 6장에서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찢으셨으나 다시 낫게 하실 것이고, 여호와께서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실 것이기 때문에 여호와를 힘써 알며 그분께로 돌아가야 함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갈 기회(1-3절)
(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1-3절은 호세아서의 전체 주제를 드러내는 핵심 단락으로 볼 수 있습니다. 1-3절이 선지자의 선포인지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와 각성의 고백인지는 논란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선지자의 선포로 보는 것이 적합합니다. 선지자는 암울하고 힘든 상황 속에서 소망과 회복의 메시지를 힘차게 선포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힘써 하나님에 대해 알자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회복시키시겠다는 내용입니다.
(3A)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여호와를 알자’에서 ‘알자’라는 원어는 단순한 지식뿐만 아니라 인격적, 경험적 지식을 함께 아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통해 얻는 여호와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관계를 통해 얻는 인격적인 친밀함을 모두 포함합니다.
예를들어, 100주년기념교회 교역자가 교우들의 주소와, 연락처, 가족관계 등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알고 있다고 해서 그 교우를 잘 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그 교우와 만나 함께 시간들을 보내면서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일은 무엇이고, 본인이 살아온 환경은 어땠는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요즘 힘든 일이나 기도제목은 무엇인지, 본인의 습관은 무엇이 있는지 등 그분과의 관계를 통해 이러한 세세한 부분들까지 잘 알고 있어야 어느 정도 그 사람에 대해 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도 성경에 나와 있는 지식에만 그쳐 하나님을 알아서는 안되고 우리가 매일 매일 말씀묵상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힘써’라는 단어는 ‘뒤쫓다’, ‘따르다’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여호와를 좇는 모습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우리가 여호와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따르자’라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여러 일들 속에서 참 분주히 살아가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예배화, 예배의 생활화’가 되어서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고 그분이 가신 길을 묵묵히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의 모습이 우리의 가정, 직장,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삶을 살아가는 겁니다.
(3B)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하나님의 나타나심이 ‘새벽 빛 같이 어김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은 변함없이 영원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비, 늦은 비’는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상징하는 표현입니다. 팔레스타인에서 보통 ‘이른비’는 10-2월 사이에 내리는 강수량이 많은 비로 곡식의 파종에 매우 필요한 비를 가리키고, ‘늦은비’는 3-4월 사이에 내리는 비로 추수하기 전 곡식을 여물게 하는 유익한 비를 가리킵니다.
이와같은 비유는 햇빛과 비처럼 하나님은 우리에게 변함없이 신실하시며, 가장 필요한 순간마다 나타나 일하시는 분임을 확신하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간절히 기대하며 소망하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건강, 물질, 자녀, 직장, 인간관계 등 많은 것들을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삶 속에서 때 마다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는 것, 하나님을 갈망하며 그러한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4-6절)
(6)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인데, 그들이 할 일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제사나 번제가 아니라 진실된 사랑과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형식적인 섬김보다 바른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교제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을 대할 때 속마음을 잘 숨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분명히 잘 아십니다. 겉과 속이 다른 경건의 모습에 하나님은 결코 속지 않으십니다.
창세기 4장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가인과 그의 아우 아벨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인과 아벨은 똑같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제물을 드렸습니다.
(창 4:4-5)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고’,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셨다’고 합니다. 그의 제물만 받으셨고 안받으셨다는게 아니라 누구와 누구의 제물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난하셔서 제물 자체만을 보고 받으시는게 아니라 바로 제물 드리는 당사자의 중심을 함께 보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누구와 누구의 제물을 받지 않으시는 겁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한순간 뜨거워 보이는 회개와 예배가 아닙니다. 감정의 자극을 받거나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뜨거운 믿음을 가진 것처럼 행동하지만, 위기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식어지는 신앙을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이것저것 다 따르는 가운데 예수님도 따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회개는 가벼운 후회의 눈물이 아니라 우리 삶의 모습을 전적으로 바꾸는 완전히 돌이키는 행위여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기 때문에 겉모습뿐인 뉘우침으로 하나님을 결코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마음은 신실해야 합니다. 우리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나아갈 때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받아 주십니다.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을 피하지 못함(7-11절)
(7-8) 그들은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에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길르앗은 악을 행하는 자의 고을이라 피 발자국으로 가득 찼도다
이미 5장에서 하나님이 책망하시고 경고했던 내용들이 6장에서는 심화되고 다시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반역했는지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아담이 그랬던 것처럼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길르앗은 피로 물들고, 심지어 제사장 무리는 강도떼와도 같이 세겜으로 가는 길에서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인 인명과 지명을 언급하시며 그들의 죄악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할 때 나아가지 못하고 우상을 섬기고 이방 나라들의 도움을 구했던 어리석은 이스라엘을 보며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품 안에 있을 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 하나님을 아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 내 계획보다 당연히 위에 두며 ‘우리들의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아가야겠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아가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인 1-3절 말씀을 읽으며 말씀의 끝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1-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기도
하나님! 스스로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며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을 더 이상 두려워 할줄 모르며 우상을 섬겼던 어리석은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며 치셨으나 싸매어 주신다는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를 전하시는 하나님 아버지로 인해 참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더욱 정직하고 진실되게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그 어떤 일보다 하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을 깊이 알아가기를 힘쓰게 하여주시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내 생각, 내 계획보다 당연히 위에 두며 ‘우리들의 가나안’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나안’을 바라보며 살아가겠습니다.
또한 추석 연휴 기간 동안 모든 교우들의 걸음 걸음을 지켜주시고 친지들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추석 연휴를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여러 상황 속에서 외로이 추석을 보내야 되는 분들을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위로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묵상을 돕는 질문
1. 영적인 슬럼프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느꼈던 순간을 당신은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2. 왜 하나님은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해주시고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까?
3. ‘이른 비, 늦은 비’와 같이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이 있습니까?
4. ‘힘써 여호와를 알기 위해서’ 오늘 말씀을 통해 당신은 무엇을 결단하시겠습니까?
(작성: 오웅식)
호세아 6,Hosea 6 KLB;NIV;KJV
Copyright © 1985 by Biblica, Inc.®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Holy Bible, New International Version®, NIV® Copyright ©1973, 1978, 1984, 2011 by Biblica, Inc.® Used by permission. All rights reserved worldwide.
NIV Reverse Interlinear Bible: English to Hebrew and English to Greek. Copyright © 2019 by Zondervan.
[설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호 6:6)
* 설교 일시 : 2009.09.15 / 설교 장소 : 갈보리침례교회 수요기도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오늘 함께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성경 호세아 6장입니다. 호세아 6장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다 찾으셨으면 제가 읽겠습니다. (읽는다.)
본문 : 호세아 6장 6절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였으나
오늘 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먼저 말씀을 위해서 잠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본문 말씀의 중요성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호세아 6장 6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신이 원하시는 것을 직접 표현하시는 매우 인상적이고도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느니라.” 여기서 “원하다”라는 단어는 영어성경에서 “desired”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소망하고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간절하게 바라고 열망하는 것, 갈망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갈망하시는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긍휼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에서 이 말씀을 두 번 인용하셨습니다. 한 번은 마태복음 9장에서 인용하셨는데,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 들어가셔서 세리들과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실 때에, 그것을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인용하셨습니다. “오직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 나는 의로운 자들을 부르러 오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불러 회개하게 하려고 왔노라, 하시니라.”
또 한 번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인용하셨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배가 고파 곡식밭의 이삭을 따서 먹고 있을 때에, 안식일을 어겼다고 비난하던 바리새인들을 향해 인용하셨습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니”
예수님께서 두 번 이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배우라”하셨고, 12장 7절에서는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긍휼을 원하시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신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를 분명히 알고 배워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긍휼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 호세아 6장 6절에서도 희생물과 번제 헌물을 짝을 맞추었고, 긍휼과 하나님 아는 것을 짝을 맞추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긍휼에 대한 배움과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기에, 그것을 가리켜 하나님 아는 것이라고 표현하겠습니까!
앞으로 가셔서 호세아 4장을 보시겠습니다. 호세아 4장 1절을 읽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주의 말씀을 들으라. 그 땅에 진리도 없고 긍휼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으므로 주께서 그 땅의 거주민들과 논쟁하시나니” 호세아 대언자가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 이스라엘 땅에는 진리도 없고 긍휼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도 우리는 진리와 긍휼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관계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리가 있다면 우리는 긍휼한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에게는 긍휼의 마음이 있을 것입니다.
호세아 4장 6절에서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부족하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거부하였으므로 나도 너를 거부하여 네가 나를 위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은즉 나도 네 자녀들을 잊으리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온전치 못하고 부족했기 때문에 그들은 망하는 길을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구약성경과 율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정통 율법 박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온전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지옥을 향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온전치 못하고 부족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오해하고 하나님을 오해하며 망하는 길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긍휼한 마음보다는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바로잡으려는 마음이 더 많은 이유는 우리가 아직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아는 사람일수록 더 풍성한 긍휼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누군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긍휼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참되게 아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긍휼이 많고 사랑이 많은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의 의지나 노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알고 인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알기를 원합니다.
호세아의 배경
하나님께서 긍휼을 원한다고 말씀하실 이 당시에 이스라엘은 죄악과 우상숭배로 가득하였습니다.
다 같이 호세아 1장 1절과 2절을 보시겠습니다.
1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시대에 브에리의 아들 호세아에게 임한 주의 말씀이라.
2 호세아로 말미암은 주의 말씀의 시작이라. 주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가서 행음하는 아내를 취하고 행음으로 인한 자식들을 취하라. 그 땅이 주를 떠나 크게 행음하였으니라, 하시니라.
호세아는 시작부터 매우 무겁고 암울합니다. 신약에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부인 것처럼,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과 정혼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행음하는 아내와 같이 하나님 외에 다른 많은 우상 신들, 바알과 몰렉과 다곤을 섬기며 경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언자 호세아를 사용하셔서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운 하나님의 마음을 담아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책망과 경고의 말씀을, 또한 변치 않는 긍휼과 사랑의 말씀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아내를 지극히 사랑하는 남편이 아내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무지함과 어리석음을 다 용납하고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할지라도, 행음하는 것에 대해서는 용납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다른 우상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행음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그만큼 크고 중대한 죄악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 신들을 경배하게 된 까닭은 무엇입니까? 죄를 사랑하는 인간의 본성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우상을 섬기는 것이 더 쉽고 간단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온 마음을 원하시고, 진실을 원하시며, 언제 어디서나 동행하며, 세심하게 우리의 일에 개입하기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상 신들은 사람들이 상상하여 만들어낸 신들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이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살든지 상관하지 않고, 아니 상관할 수도 없고, 그저 제물을 바치면서 달래주기만 하면 풍요와 다산의 축복을 내려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대로, 자기 마음대로 살다가 명절이 되고 정한 때가 되면 우상들에게 나아와 분향하고 제사를 지내면서 복을 빌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도 나아가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마음 없이, 진실 없이, 죄를 돌이킴 없이, 그저 다른 우상 신들을 제물로 달래듯이, 그냥 그렇게 형식적으로, 입술의 고백만을 가지고 하나님께 번제 헌물과 희생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1장 11절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 같이 보시겠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너희가 내게 바치는 수많은 희생물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내가 숫양의 번제 헌물과 살진 짐승의 기름으로 배가 부른즉 수소나 어린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또한 13절과 14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13 다시는 헛된 봉헌물을 가져오지 말라. 분향하는 것은 내게 가증한 것이요, 월삭과 안식일과 집회로 모이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니 곧 엄숙한 모임 그 자체가 불법이니라.
14 내 혼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명절들을 미워하나니 그것들이 내게는 괴로움이니라. 그것들을 감당하기에 내가 지쳤느니라.
또한 18절을 보시겠습니다.
“주가 말하노라. 이제 오라. 우리가 함께 변론하자.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희게 되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식적인 희생물과 번제 헌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십니다. 말씀 한마디로 빛을 창조하시고, 우주를 창조하신 절대자요, 전능자요, 초월자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희생물이 결코 하나도 필요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눈같이, 양털같이 희게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희생물은 본래 긍휼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거룩하시며, 온 우주의 심판자이시므로 어떤 사람이라도 죄를 범하는 순간 즉시 처벌하실 권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희생물을 드리는 제사 제도를 알려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시며, 긍휼이 풍성하시며, 용서하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희생물을 드릴 때에 죄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용서와 긍휼로 인한 감사와 감동이 가득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나아가지 않고 그저 멀리서서 희생물과 번제 헌물만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께 엄숙한 집회를 가지는 것 같지만 그들의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29장 13절에서도 “그러므로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자기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자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고 그들이 사람들의 훈계로 가르침을 받아 나를 두려워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긍휼
이스라엘의 시대에는 바알과 몰렉과 다곤이라는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도 돈과 명예와 권력과 교육과 쾌락이라는 우상들이 있습니다. 또한 골로새서 3장 5절에서는 “탐욕은 우상 숭배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탐욕을 부리는 모든 것이 다 우상 숭배입니다. 이스라엘만 우상 숭배를 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도 많은 때에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이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지 못하고, 우상 신들이 더 좋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이해할 수 없었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노라.”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다른 것들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지는 않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온전치 못하여 하나님을 오해하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사탄이 믿지 않는 자들의 마음을 가려 하나님께 나아오지 못하도록 하나님에 대해 오해하며 불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다 같이 에베소서 2장을 보시겠습니다. 2절부터 7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이라.
3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사랑할 때 보여 주신 자신의 크신 사랑으로 인하여
5 심지어 우리가 죄들 가운데서 죽었을 때에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6 또 함께 일으켜 세우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의 처소들에 함께 앉히셨으니
7 이것은 그분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친절 속에 담긴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다가오는 시대들 속에서 보여 주려 하심이라.
지나간 때에 우리는 마귀를 따르며, 이 세상을 따르며, 육신의 욕심과 욕망을 따라 걸어가던 불순종의 자녀들이며, 진노의 자녀들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옥에 떨어지기에 합당했으며, 진노를 받기에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크신 사랑으로 사랑하셨고,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따라 친절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자신의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보여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시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로 삼으셨나니 여기에 사랑이 있느니라.”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은 바로 우리 주님의 십자가입니다. 희생물은 사실 하나님께서 필요하신 것이 아니고 우리 죄인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희생물을 가져오라고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희생물들을 필요로 하셨기 때문이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생물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화해 헌물로 보내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긍휼을 원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장 완전한 희생물로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주셨습니다.
또한 여기에 등장하는 “화해 헌물”(propitiation)이라는 단어는 구약에서는 지성소 안에 있는 “긍휼의 자리”(mercy-seat)와 정확히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보내신 자신의 아들, 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로 인한 화해 헌물이시며, 하나님의 긍휼이십니다.
주님과의 동행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가 받을 수 있습니다. 누가 주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까? 겸손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는 자가 동행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울 왕과 다윗 왕 중에 누가 더 큰 죄를 범하였습니까? 사울은 모두 진멸하라는 아말렉 족속 중에서 하나님께 드릴 희생물을 죽이지 않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였습니다. 다윗은 무슨 죄를 범하였습니까? “너는 살인하지 말라. 너는 간음하지 말라. 너는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소유 중 아무것도 탐내지 말라”(출 20:13,14,17). 누가 보더라도 다윗이 더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왜 사울은 긍휼을 입지 못하고 다윗은 긍휼을 입었습니까?
사울은 사무엘로부터 죄를 책망 받았을 때에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그때에 사울이 이르되, 내가 죄를 지었을지라도 원하건대 이제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존중히 여기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주 당신의 하나님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니 이에 사무엘이 돌이켜서 사울을 따라가매 사울이 주께 경배하니라”(삼상 15:30,31).
사울은 하나님 앞에 형식적으로 나아갔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앞에 경배하는 모양을 가지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그의 입술은 하나님께 나아갔지만 그의 마음과 진실은 장로들이, 백성들이,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만 주의했습니다. 마음 없이, 진실 없이, 죄를 돌이킴 없이, 사울은 하나님께서 받지도 않으시는 경배를 자기를 위해 드렸습니다.
다윗은 대언자 나단으로부터 죄를 책망 받았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다 같이 시편 51편을 보시겠습니다. 시편 51편 맨 윗부분에 보시면 시에 대한 설명이 있는데 그것을 읽어보겠습니다. “악장에게 준 다윗의 시, 그가 밧세바에게로 들어간 뒤에 대언자 나단이 그에게 왔을 때에 지은 시.” 1절부터 읽어보겠습니다.
1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시며 주의 크신 친절한 긍휼에 따라 내 범죄들을 지워주소서.
6 보소서, 주께서는 속 부분에 있는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16 주께서는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시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그것을 드렸으리이다. 주께서는 번제 헌물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7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희생물은 상한 영이라. 오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은 온 마음으로, 진실하게, 죄를 돌이키며,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며 그렇게 하나님께 나아갔습니다. 이 범죄로 인하여 다윗은 이후에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벌을 받았지만,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평생토록 이렇게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5장 3절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 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와 영존하는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긍휼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영존하는 언약으로 확실한 긍휼을 약속하셨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심정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사는 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주님의 긍휼입니다. 내가 받을 만하고 자격이 있어서 누리는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습니다. 이러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골로새서 3장 12절부터 14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2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요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로서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으로 옷 입고
13 누가 누구와 다툴 일이 있거든 서로 참고 서로 용서하되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같이 너희도 그리하며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입으라. 사랑은 완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가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긍휼히 여기는 심정과 친절과 겸손한 마음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신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주님을 따라오기까지, 또 현재도 주님을 따른다고 하지만 매일매일 사투를 벌이는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시고 긍휼히 여기셨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보혈의 의미를 모르는 많은 시간을 지내왔습니다. 구원을 받은 이후에도 바른 성경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믿음 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도 방언하거나, 꿈과 환상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하나님 말씀보다 나의 체험을 중시하거나, 나의 판단을 옳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형제 자매들을 상처주고 어렵게 만들면서도, 나는 참 주님을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른채 많은 시간을 살고 뒤늦게 깨닫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지나온 길은 죄악과 오류와 실수투성이지만, 주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시고, 격려하시면서, 친절하게 한발 한발 이끌어주셨습니다.
우리도 형제 자매들에 대해 이러해야 합니다. 또한 다른 영혼들을 인도할 때에도 이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의 잘못과 오류를 발견했다고 해서 그것만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못나고 더럽고 어리석은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고 긍휼히 여기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고 긍휼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당장 방언하는 것이 틀렸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것보다 더 절실한 필요가 그 사람에게 있는지 모릅니다. 나는 여자 집사가 왜 틀렸는지, 왜 흠정역이 옳은지, 왜 세례는 틀리고 침례가 맞는지 말해주고 싶지만, 그것보다 더 필요한 것이 그 사람에게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진리를 안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졌다면, 먼저 긍휼히 여기는 심정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을 주님께 인도하고 섬길 때에 어떤 정해진 순서나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1번 구원, 2번 흠정역, 3번 교회 출석, 4번 방언 이런 순서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영혼이든지 만나서 섬기게 될 때에 우리는 그 사람이 어떤 필요를 가졌는가를 주님께 물으며 주의해야 합니다. 또한 형제 자매들을 대할 때에 주님께서 나를 어떻게 친절하게 대해오셨는가를 풍성히 누리는 가운데 긍휼과 은혜를 공급해야 합니다.
정리
“나는 긍휼을 원하고 희생물을 원치 아니하며 번제 헌물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원하느니라.”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않았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보내신 화해 헌물이시며 긍휼 그 자체이신 주 예수님을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호세아 6장을 다시 한 번 보시겠습니다. 호세아 6장 1절부터 3절까지 읽어보겠습니다.
1 오라, 우리가 주께로 돌아가자. 그분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낫게 하시리라. 그분께서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리라.
2 이틀 후에 그분께서 우리를 되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켜 세우시리니 우리가 그분의 눈앞에서 살리로다.
3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하면 그때에 우리가 알리라. 그분의 나아오심은 아침같이 예비되어 있나니 그분께서는 비같이 곧 땅에 내리는 늦은 비와 이른 비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우리의 문제는 언제나 주님을 떠나는 데서 발생하고, 문제의 해결은 언제나 주님께 돌아가는 데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징계하실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만날 예비가 되어있으십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주를 알고자 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둔하고 어리석기 때문에 늘 듣고 배워도 잘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긍휼을 매일매일 깊이 알아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긍휼과 친절이 가득할 것입니다.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께 감사합니다. 우리도 다른 이들에게 긍휼이 여기는 심정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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