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교회 란 | [지방교회 (회복교회) 의 실체] 정동섭 교수(사이비 종교 피해 대책 연맹 총재) 2021.9.10 Jubilee Worship 상위 269개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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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지방교회(Local Church)는 20세기 중국에서 시작되어 타이완과 미국에 이주하여 형성된 세대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성경 축자영감설을 기반으로 워치만 니의 주장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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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ko.wikipedia.org

Date Published: 6/2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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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 나무위키

지방 교회(local church)[4]는 20세기 중국에서 시작되어 타이완과 미국 등 전 세계로 확산된 기독교 단체다. 세대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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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namu.wiki

Date Published: 7/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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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란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만든 교회가 아닙니다. <지방교회>는 신약성경 안의 대부분의 서신서들의 수신인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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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ocal-church.tistory.com

Date Published: 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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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활목사] 지방교회(Local church)의 문제점 – 네이버 블로그

이 교회의 정체는 지방교회입니다. 각 도시(city)에 교회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여 지방교회(Local church)라고 합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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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te Published: 4/2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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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 지방교회는 한국교회서만 ‘이단’이다

서울교회 주일집회 장면 : 지방교회는 기독교의 본질인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 담임으로 계시는 진리침례교회 홈페이지는 지역교회 안내 란에서 정동수 목사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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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localchurches.kr

Date Published: 4/15/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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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위트니스 리) – 지방교회의 이단연구보고서

지방교회는 대외적으로 말할 때에는 자신들이 정통기독교와 동일한 복음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며, 마치 오해에서 비롯된 것처럼 조작하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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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researchheresy.com

Date Published: 3/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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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실체 – 두란노몰

한국교회에는 크게 4가지 계열의 이단이 있다. 통일교 계열의 이단, 천부교 계열의 이단 그리고 지방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두 개의 이단 즉, 구원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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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mall.duranno.com

Date Published: 2/27/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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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방교회가 이단인가요? – Daum 블로그

네이버에서 지방교회를 검색해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 보편적인 의미의 교회란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신자의 총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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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blog.daum.net

Date Published: 6/6/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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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회복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 교회연합신문

‘목사’직을 가진 목회자가 따로 없고 ‘장로’가 기성교회 목회자의 역할을 맡고 있는 셈이다. 지방교회란 말은 성경에서 초대교회가 고린도에 있는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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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ecumenicalpress.co.kr

Date Published: 3/8/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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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교리 개요 –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협회

상호내재란 무엇일까? 고전적 삼위일체에서 “상호내재”는 ‘페리코레시스’라고 하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윤무(輪舞)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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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www.jesus114.net

Date Published: 5/9/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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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 (회복교회) 의 실체] 정동섭 교수(사이비 종교 피해 대책 연맹 총재) 2021.9.10 Jubilee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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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지방교회(Local Church)는 20세기 중국에서 시작되어 타이완과 미국에 이주하여 형성된 세대주의와 기독교 근본주의, 성경 축자영감설을 기반으로 워치만 니의 주장을 따르는 분리주의 계열의 기독교 교단이다.

지방교회의 주장은 사도행전 8:1, 13:1, 요한계시록 1:11에서 보듯이 참되게 거듭난 모든 우주교회의 일원은 각자 자신이 거주하는 도시를 단위로 하는 교회의 구성원이라는 성경원칙을 따른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회 역사상 , 워치만 니에 의해 시작되고 위트니스 리에 의해 계승된 지방교회 모임을 지칭하기도 한다. 스스로는 주의 회복이라고 부른다. 이 표현으로 인해 회복된 기독교 성향으로 분류하는 경우도 존재한다.

세계적으로는 정통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지며 교류가 이루어지나, 대한민국 등 일부 개혁주의 보수 성향이 강한 교계에서는 이단으로 분류되는 경우도 있다.

역사 [ 편집 ]

워치만 니

지방교회[1](Local Church) 또는 작은 무리(The Little Flock) 등으로 알려진 이 모임은 일반적으로는 그의 영어 이름인 워치만 니(Watchman Nee)(1903-1972)로 알려진 니 수추(Ni Shu-Tsu)에 의해 중국에서 1920년대에 시작되었다. 니는 그의 할아버지가 회중교회 목사이고 그의 부모들은 신실한 감리교신자들인 중국인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그의 부친은 신식 교육을 받은 중국 세관의 관원이었고 모친은 상하이의 중시여학교(中西女塾)를 졸업하였으며 영어 실력이 매우 뛰어났다. 그들 가정은 자녀 교육을 매우 중시했으며 니는 기독교 재단에서 선교사들이 세운 푸저우의 트리니티 대학 (Trinity College)에서 공부했다. 이 대학은 영어 교육에 중점을 둔 학교였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사람들을 깨우는 목적을 가진 종치는 자라는 것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생각나게 하려고 본래 이름인 니 수추(헨리 니)를 니 토생(워치만 니)으로 바꿨다.[2]

이름뿐인 종교적 청년기로부터 그는 한국에서도 활동한 적 있는 감리교 중국인 복음전도자인 도라 유(Dora Yu, 중국이름 위츠두; 余慈度, 1873-1931)에 의해 회심된 이후, 곧이어 영국 선교사인 마가렛 바버(Magaret E. Barber, 중국이름 허소우언; 和受恩)( 1866 – 1930)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는데 그는 그녀를 통해 세대주의자인 존 넬슨 다비(John Nelson Darby)와 분리주의 경향의 폐쇄파 플리머스 형제회의 저술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교회조직에 있어서 다비의 반교파적 접근을 채택했고 곧이어 소규모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 무리의 인도자로 부상했다. 1920년대 말에 그는 제임스 테일러(James Taylor)가 이끄는 형제회의 한 부류와 접촉을 가졌고 그들의 초청으로 1933년에 영국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들은 오스틴 스팍스가 관장하는 비형제회 모임인 HOCF(Honor Oak Christian Fellowship)과 허가받지 않은 교통을 하였다는 이유로 니와의 관계를 곧 단절했다.

복주에서의 소규모 시작으로부터 니의 운동은 중국 전역에 확산되었다. 1930년대에 그는 넓은 지역을 여행하며 기독교의 하나됨의 기본적인 표현으로서 (분열적인 교파주의에 맞서) 각 도시마다 오직 한 지방교회(회중)만 있어야 한다는 그의 신념에 근거한 회중들을 만났다. 1922년부터 1952년(중국혁명이 기독교의 확산을 차단했던 때인) 사이에 200개 이상의 지방교회들이 그의 사역을 통해 일어났다. 니는 《기독도보》(1925년 발간, 1927년 폐간)와 《부흥보》(1928년 1월발간), 《통문휘간》(1933년 발간)등을 발간했다. 《부흥보》는 영적 깊이가 있는 간행물로서 영에 속한 원칙, 부활의 생명, 그리스도의 승리, 그리스도의 몸과 같은 주제들을 논했다. 그리고 1930년 4월부터는 《주제별 진리 연구 기록》이라는 기독교 월간 잡지를 발간하였는데 이것은 비교적 초보적인 것으로서, 니가 상하이에서 매 주일 전한 메시지나 다른 때에 전한 생명에 관한 메시지였다. 그리고 ‘작은 무리의 찬송가’라는 찬송가집은 1930년에 130곡이 수록되어 출판되었다.[3] 니는 또한 50권 이상의 책을 썼는데 대부분 그리스도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에 관한 것들이다. 교회에 관한 그의 성숙된 견해는 그의 가장 유명한 책인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생활'(사역의 재고)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는 또한 ‘영에 속한 사람’을 썼는데 그 책에서 그는 몸 혼 영으로 구성된 사람의 세 부분의 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발전시켰다.

1949년에 권력을 장악한 중화인민공화국은 니를 (또한 그와 제휴함으로 관련이 있는 교회들을) 미국과 중화민국 정부를 위해 간첩행위를 했다고 고소했다. 그는 처음에는 상해에서 축출되었고 그후 1952년에 투옥되었다. 그는 1972년 감옥에서 순교하였다.

교회의 확산 [ 편집 ]

1926년 말 워치만 니는 상해와 남경으로 사역을 확산했고, 1926년 말엽과 1927년초 사이에 상해에서 교회가 일으켜졌다. 상해로부터 교회 실행이 중국 각지로 퍼져나갔고, 1937년 중경, 1938년부터 1938년 사이에는 홍콩으로, 1943년에는 내몽고로 확산되어 40여개의 지방교회들이 세워졌다. 전쟁이 끝난 후 1948년과 1949년에는 대부흥이 있었고 1949년까지 중국에는 수백개의 지방 교회들이 있었다. 그리고 중국 전체 33개의 성과 모든 주요 도시들에 지방 교회들이 있었다.

공산당이 중국본토를 점령한 시기가 1949년인데, 1947년에는 약 350명 내지 500명의 성도들이 중국 본토에서 대만 섬으로 이주했고 6년만에 성도는 약 500명에서 약 2만명으로 증가했다. 1973년 기준으로는 당시 대북의 교회는 성도수가 21,000여명이고 집회 장소는 열네 곳이었다.

동남 아시아에서의 확산은 워치만 니가 1924년 21세 때 말레이시아의 시티아완이라는 도시를 방문하면서 시작되었다. 1931년부터 1933년에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및 인도네시아의 몇몇 도시들로 확산되었으며 1950년에는 필리핀 마닐라, 1957년 일본, 1958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1959년 브라질, 1963년 캐나다, 1965년 한국, 1970년 뉴질랜드와 호주로, 1972년에는 독일과 나이지리아로, 1972년에는 가나로 확산되었다.[4]

위트니스 리

1930년대에 니는, 체후(Chefoo)에 있는 교회의 인도자였던 위트니스 리를 동역자로 얻었다. 그는 1932년 7월에 니의 사역에 동참했고 2년뒤에는 직업을 내려놓고 전시간 사역자로 니의 가장 소중한 동역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폐결핵과 싸우던 3년간의 부재 후에 위트니스 리는 중국혁명 직전인 1948년에 전시간 사역자로서 니와 재결합 했다. 니는 위트니스 리를 타이완으로 보냈는데 그곳의 교회들은 번성하여 태평양 연안으로 확산되었다.

미국으로 이주한 성도들은 그 움직임을 서부 해안으로 가져왔다. 위트니스 리는 1962년에 미국으로 이주해서 리빙스트림 미니스트리(LSM)를 설립했다. 그는 지방교회들 가운데 인도적 지위에 있는 전시간 사역자로 인정받아온 이래, 지방교회의 확산을 위해 전반적인 방향을 제시해 왔다. 그는 또한 워치만 니의 저술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몇가지 신학적 강조점들을 소개함으로 그 운동 안에서 혁신을 위한 근원이 되었는데 예를 들면, “기도로 말씀먹기” “주의 이름을 부름”과 같은 몇가지 실행들이다.

조직 [ 편집 ]

지방교회는 교회의 하나, 교회생활의 단체성,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머리 역할을 주장한다. 주된 강조점은 교회생활, 함께 모임(일주일에 여러번),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 교회(회중)생활의 의무를 분담함에 있어 각 지체들의 기능과 책임이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을 거절함에 있어, 교회생활의 실제적인 표현을 위한 본이 세워져 왔다.

지방교회는 한 도시에 하나인 독립적 회중들의 교통으로서 조직된다. 각 회중은 그들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하고, 일반적인 행정일을 하는, 회중들이 인정하는 인도자들 중에서 나온 2-5명의 소규모 장로그룹에 의해 인도된다. 또한 사도적 기능을 가지고 교사와 리더쉽훈련가로서 지방교회들을 순회하고 지방교회가 아직 없는 도시에 새로운 모임을 시작하기도하는 소규모의 사람들도 있다. 지정된 사역자들은 다소간 공식적으로 그들의 수고들을 독립된 사역으로 조직한다. 예를 들어, 위트니스 리의 경우에 그의 사역은 리빙스트림 미니스트 리로서 단일화되었고 그것은 현재 지방교회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도적 노력(endeavor)이다.

다비의 반 교파적 자세가 문제를 일으켰던 플리머스 형제회처럼 니의 운동도 분파적인 이름을 갖지 않았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다만 교회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라는 말은 편의상의 호칭이지 이름이 아니다. 그들 자신을 “지방(한 도시에 하나씩 있는) 교회”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란 말은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초대교회는 모두 각 도시 중심의 지방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데서 비롯된다. 즉 고린도에는 하나의 ‘고린도 교회’가 있었고, 에베소에는 하나의 ‘에베소 교회’가 존재했다는 식이다. 이에 따라 각 도시에 행정적으로 독립된 하나의 교회를 둔다고 해서 생겨난 것이 지방 교회이다.

지방교회는 새로운 도시에 회중을 조직하고자 하는 교인들의 자발적인 운동에 의하거나 사도적인 사역자들에 의해 일반적으로 확산되어 왔다. 미국에 있는 교회들은 처음에 타이완으로부터 이주해 온 성도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리고 위트니스 리의 권고로 지방교회는 새로운 전략을 채택해 왔는데, 그것은 “예루살렘의 원칙” 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새로운 모임을 탄생시킬 단일한 목적으로 한 작은 무리의 교인들이 새로운 지방으로 이주하는 것이다.

신앙 [ 편집 ]

지방교회들은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풍부한 저술 안에서 발견되는 가르침을 따른다. 간결한 요약은 (미국종교백과사전 중 ‘신조(Creeds)’안에서 재인쇄된) ‘지방교회의 신앙과 생활'[5]이라는 소책자에서 볼 수 있다. 그러한 선언은 플리머스 형제회와 유사한 근본주의적인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으며,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 그리스도의 신성, 예수님의 처녀탄생, 대속적인 구속, 예수님의 부활, 그분의 재림, 성경의 축자영감의 신앙을 확증하고 있다.

예상할 수 있듯이 특별한 주의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하나를 취급하는데 주어진다. 종파주의, 교파주의, 범교파주의를 모두 거절하고 각 지방 안에 있는 모든 믿는이들의 하나됨을 주장한다.

지방교회는 자신들을 성경적인 교회의 회복(또는 복구)의 역사라고 생각한다. 사도시대 이래 완전한 교회생활과 그 하나됨이 상실되었지만, 마르틴 루터와 종교 개혁으로 회복이 시작되었고 진젠돌프 백작과 모라비안(Moravians), 요한 웨슬리와 감리교도들, 더 최근에는 플리머스 형제회의 경건주의 회복을 통해 계속되었다. 지방교회를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체험(예를 들면,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누림)과 성경에 근거한 교회생활의 실행이 회복되고 있다. 회복의 일부 요소들은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기도로 (말씀)읽기”는 기도의 말로서 성경 말씀을 사용하는 경건한 실행이다. 기도하는 중에 개인이나 단체들은 성경으로부터 단어나 구절들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찬양이나 감사의 말을 자주 삽입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체험이 성경말씀을 통해 기도하는 사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한 것이다.

다음의 열가지 신조[6]는 지방교회에서 말하는 그들의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

우리는 성경이 성령의 감동으로 말하여진, 완전하고 신성한 계시인 것을 믿는다(딤후 3:16, 벧후 1:20-21, 요 5:39, 계 22:18-19). 우리는 하나님이 유일한 삼일 하나님이시며, 성부, 성자, 성령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함께 동등하게 존재하는 분이심을 믿는다(딤전 1:17, 엡 4:6, 마 28:19, 고후 13:13, 사 9:6, 요 14:10, 11, 16, 17, 20, 히 9:14).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바로 하나님 자신이 우리의 구속주와 구주가 되시기 위하여 예수라는 이름의 사람으로 성육신되셨고, 처녀 마리아에게서 나신 것을 믿는다(마 1:16, 18, 21, 23). 우리는 참 사람이신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삼십 삼년 반 동안 이 땅에서 사셨음을 믿는다(4복음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에 의해 성령으로 기름부음 받은 그리스도이심을 믿으며(마 1:16, 마 3:16-17), 그분이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우리의 구속을 성취하기 위해 피를 흘리셨음을 믿는다(롬 3:23-25).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사된지 사흘 만에 죽은자 가운데서 영적으로만이 아니라 육신적으로도 부활하셨고, 부활하여 생명주는 영이 되셔서 우리의 생명과 모든 것으로 그분 자신을 우리 안에 넣어 주심을 믿는다(벧전 3:18, 1:3, 고전 15:45). 우리는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로 승천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만유의 주로 삼으셨음을 믿는다(엡4:8, 2:6, 행 1:1-12, 2:33, 36).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그분의 택하신 지체들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몸 안으로 침례받게 하셨음을 믿으며(행 2:1-4, 고전 12:13),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신 하나님의 영이 오늘날 이 땅 위에 운행하시면서 죄인들을 회개케하고(요 16:7-13),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거듭나게 하며(요 3:3-6), 그리스도의 지체들 안에 거하면서 생명을 자라게 하고(빌 1:21, 엡4:13-16), 그분의 충만한 표현을 위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심을 믿는다(엡 1:21). 우리는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지체들을 맞이하고, 세상을 심판하시고, 이 땅을 얻으시며, 그분의 영원한 왕국을 세우시기 위하여 재림하실 것을 믿는다(살전 4:16, 17, 마 25:31, 32, 계 19장, 20장). 우리는 이기는 성도들이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 할 것을 믿고, 그리스도 안의 모든 믿는 자들이 새 하늘과 새 땅에 있을 새 예루살렘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복에 참예할 것을 믿는다(계 20:4, 6, 계 21장, 22장).

구성원 [ 편집 ]

1991년에 지방교회는 6개 대륙에 교회(회중)들이 있었다. 태평양 연안에 있는 나라들 안에 가장 많은 성도들이 있다. 중화민국에 200여 교회 6만명의 성도들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는 265개 교회 2만 5천명의 성도들이 있다. 남 아메리카와 중앙 아메리카의 스페인어 모임 안에 1만 6천 5백명이 있다. 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도 교회들이 있다. 혹독한 핍박에도 불구하고 중화인민공화국에도 생존하는 성도들이 있어 보이며, 이 운동은 지난 기간 동안 실제로 수십만의 성도들에게 확산되었다. 소련의 붕괴 이후 지방교회는 동유럽과 러시아에 복음 사역을 시작했고 1992년에 모스크바와 성 페테스브르크에 교회가 생겼으며 다른 나라에서도 사역을 발전시키고 있다.

특기사항 [ 편집 ]

1970년대에 지방교회와 보다 큰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 단체 안의 일부 유력한 대변자들 사이에 있었던 논쟁은 1980년대의 일련의 법적 조치의 과정 속에서 절정에 달했다. 일부 신흥종교들을 소위 “이단(cults)”라고 공격하는 전쟁을 통해서 알려졌던 일부 저술가들이 지방교회를 이단(heresy),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경건에 대한 독특한 형태를 발전 시킨다고 공격했다. 여러 권의 책들이 쓰여졌고 지방교회에 관한 여러 항목들이 그리스도인 “이단퇴치” 문서들 안에 등장했다. 문서에 의한 명예훼손과 그들의 사역이 불공정한 비판들에 의해 손상당하지만 (다른 방법으로는) 사과를 받아내기가 불가능함을 주장하며, 지방교회는 여러 개의 소송 사건을 통해 지방교회를 공격하는 한 권의 책을 출판한 사이비이단연구소(the Spiritual Counterfiets Project)를 제외한 모두에게 비난책자의 회수와 사과문을 받아냈다. 위 연구소에 관한 사건은 법정 판결까지 갔고 1985년에 사이비이단연구소가 명예를 훼손한 것에 대해 천 백만불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아냈다.

최근 동향 [ 편집 ]

미국 기독교계 내에서는 지방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재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대한민국에도 다수의 목회자들이 수학한 바 있는 풀러신학대학은 지방교회와의 2년 간의 광범위한 대화를 마친 후에 “지방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대표한다”고 선언했으며[7][8], 크리스천 리서치 인트티튜트(이하 CRI)의 대표인 행크 해네그래프는 지방교회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뒤집고 “우리가 틀렸었다.[9]”고 발표, 한기총 앞으로 서신을 보내 지방교회에 대해 재평가해줄 것을 요청했다.[10][11] 2012년에 DCP Korea 출판사에서 풀러신학대학과 CRI에서 발표한 것을 근거로 “재평가 된 지방교회” 책자를 출간한 바 있다.[12][13]

각주 [ 편집 ]

같이 보기 [ 편집 ]

[김활목사] 지방교회(Local church)의 문제점

지방교회(Local church)의 문제점

최근 어떤 분으로부터 일종의 자신의 신세를 타박(?)하는 글이 올라왔습니다. 근무하는 병원의 원장님이 특이한 교회인 “서울교회 화곡집회소”에 다닌다 고 합니다. 목사님도 장로님도 없이 모든 신자가 동일하게 평등하고 예배도 한 명씩 일어나사 한 주간 일어났던 일을 이야기 한다고 합니다. 성경공부는 각자가 하지만 그 중에서 성경에 해박한 사람이 성경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부자도 많다고 하면서 이단인 것 같지만 부럽다는 표현도 하였습니다.

이 교회의 정체는 지방교회 입니다. 각 도시(city)에 교회는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하여 지방교회(Local church) 라고 합니다. 이 교회의 특징은 기존 정통교회의 조직인 목사, 장로, 집사 같은 직분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신자들로만 구성이 된 교회 라고 보면 됩니다. 일부 성경에 해박(?)한 장로(?)같은 사람이 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중국의 워치만 니, 위트니스 리에 의하여 계승이 된 지방교회는 한국에서 구,원,파, 형제교회가 이단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 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한기총에서 지방교회를 이단에서 해제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경계하여야 하며 반드시 피하여야 할 단체 입니다. 아래 두 가지 자료가 있습니다.

====================================================================================================================

1. 지방교회의 교리는 다음과 같은 것에서 정통교리와 위배됩니다.

신론 : 양태론(삼일론), 경륜적삼위일체(사역적삼위일체), 상호내재

기독론 : 영지주의, 아폴로내리우스(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

인간론 : 영과 혼과 육을 공간적, 장소적으로 분리하는 3분법, 이원론

구원론 : 신화(신인합일론), 단체구원론

성경론 : 풍유적 해석, 계시, 비밀

종말론 : 내세 부정, 극단적 세대주의

교회론 : 배타적, 부정적, (교회 = 구원 = 천국 = 왕국)

[출처] 기자간담회를 요청한 지방교회를 보면서…. (무엇이든지 물어보세요) |작성자 dsmedic

2. 지방교회에 대한 예장 통합측의 연구보고서

교회와신앙 게제분

경북노회가 제출한 ‘지방교회(회복교회)의 정체에 대한 질의’에 따라 연구했다. 연구결과 ‘이단’으로 밝혀졌다고 총회(제 76회, 1991년)에 보고했고 그대로 가결되었다. 이어 제 77회 총회에 ‘추가 연구보고서’가 제출되어 채택되었다.

제 76회 총회에 보고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방교회는 중국인 윗치만 니(Wachman Nee, 1903. 11. 4.∼1972. 6. 1)로부터 시작되었으며 현재는 그의 동역자였으며 후계자인 윗트니스 리(Witness Lee, 1905∼ )가 이끌고 있다.

교세는 중국대륙을 제외한 전세계에 1,100여 교회가 있고 한 교회에 평균 100명 정도로 전부 11만명 정도의 신자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는 한국인으로 중국에 있던 권익원이란 사람에 의해 1966년에 들어 왔고 1989년 통계에 따르면 서울의 15개 집회소를 위시하여 전국에 60∼70개의 집회소가 있으며, 2,000여 교인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한국복음서원을 두고 지방교회의 모든 출판물을 발행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는 우주적인 면에서는 그리스도의 한 몸이요, 인간사회에서 나타날 때에는 한 지방, 한 교회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각 교회는 지방이름을 붙여 단순히 ○○교회이어야지 어떤 교파별 명칭을 갖는 것은 죄’라고 여긴다. 그들 교회를 지방교회라고 부르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방교회는 또 회복교회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그들이 초대교회의 본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예배 내지 집회의 형식은 일반교회의 그것과는 상당히 다르며, 지방교회에는 근본적으로 모든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성직자이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 기존 교회처럼 목사, 전도사를 따로 두고 있지 않다.

윗치만 니와 윗트니스 리의 저서, 예를 들면 [라이프 스터디]와 같은 것 등 한국복음서원에서 출간한 도서들에는 사이비성이 농후하므로 그 모든 서적, 출판물의 구입, 광고게재 등을 금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원래는 중간보고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나 보고시 수정되었고, 이단이 확실하다는 판단아래 ‘이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인 연구보고가 제 77회 총회에 제출되어 이를 명확히 한 것이다.

지방교회(회복교회)는 중국에서 윗치만 니의 가르침을 이어받았다고 자부하는 중국인 윗트니스 리(이상수 : 1905 ∼ )가 1950년대에 독자적인 교회를 개척함으로 시작되었다.

1962년 윗트니스 리가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지방교회를 세우므로 꾸준히 성장하여 현재 교인수는 전세계적으로 20,000명으로 추산된다. 대만과 필리핀에 7,000명, 미국에 5,000명 그리고 세계 다른 지역에 8,000명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윗트니스 리는 110,000명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의 지방교회는 중국의 공산화 이후 윗치만 니의 직계제자라고 자칭한 왕중생(한국 본명 : 권익원)씨의 지도하에 1966년에 시작되었다.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성향을 띠었던 한국의 지방교회는 윗트니스 리와는 교류가 거의 없다가 권씨의 사망을 계기로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서초구서초2동 491에 본부교회에 해당하는 서울교회 집회소가 있으며 전국적으로 60개 정도의 집회소에 1,500명 정도의 교인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복음서원'(대표 이희득)이 출판물을 보급하고 있다.

1. 신론의 문제점

가. 윗트니스 리가 신인합일주의를 가르치고 있다.

윗트니스 리는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하나님 자신을 사람 속에 넣어서 사람과 연합하여 하나님과 같게 되게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윗트니스 리, [내주하는 그리스도], pp.10∼ 11). “하나님 자신을 대량으로 생산할 것을 계획”(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p.10) “자신을 제품으로 생산”(같은책, p.10)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똑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주하는 그리스도], p.10., [하나님의 경륜], p.244). 윗트니스 리의 사상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고 엄격한 차이를 인정해야하는 우리의 신앙과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나. 윗 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다 .

윗트니스 리는 구약에서의 하나님에게는 신성만 있었으나(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p.15) 성육신의 과정을 통과하여 ‘사람과 함께한 하나님’ 즉 ‘하나님-사람’이 되었다가 부활을 통하여 인성을 포함한 영으로 변형되므로써(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p.105∼107) ”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하나님의 경륜], p.16)으로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는 ‘삼일(三一)하나님’이 되었다고 한다. ‘삼일 하나님’이란 하나님은 성육신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를 통해 세 인격이 하나로 발전된 것이라는 말이다(같은책, p.110).

윗트니스 리가 비록 양태론적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명백한 양태론으로서, 그의 사상은 하나님의 전능성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또한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의 불변성과 영원성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것이다.

2. 기독론의 문제점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 그의(예수) 인성이 아들의 명분으로 태어나기 위하여 부활이 필요했다 . 부활 이전에 그리스도는 그의 신성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었으나 그의 인성에 따르면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73)고 하여, 인성을 입은 그리스도는 거룩하게 될 필요가 있었는데 부활을 통해 완성되었다 (같은책, p.76)고 한다.

윗트니스 리의 기독론은 결국 사람이 하나님과 똑 같이 될 수 있다는 신인합일 사상에서 나온 것으로서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교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3. 인간론의 문제점

영, 혼, 육 삼분설을 취하면서 인간의 타락은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이 되어 전인적인 타락이 부정된다.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이 아니라 아담이 ‘하나님 자신인 생명나무’를 취하지 않고 ‘사탄인 선과 악과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음으로 사탄을 몸 속에 받아 들였기 때문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p.130., 윗트니스 리, [사람의 영], p.45).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이라는 세부분으로 창조되었다는([하나님의 경륜], p.136) 삼분설을 주장하면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순수한 사람은 중립이었으며(같은책, p.127) 몸도 아주 선한 것이었으나 사탄을 몸에 받아들이므로 몸이 사탄의 거처가 되었고 따라서 부패되어 흉하고 악마같은 육이 되었다고 한다(같은책, pp.129∼130). 이 사탄은 육신에 거처를 정하고 혼에 영향을 준다음 혼을 통해 영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같은책, p.138), 성 령이 사람의 영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과 사탄이 매일매일 우리 안에서 싸우고 있다고 한다( 같은책, p.139).

인간의 타락은 전인적인 것인데 비해 그것을 육체적인 것으로만 봄으로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범죄하는 영은 죽을지라”(겔 18;20)는 성경말씀과 다르다. 또한 생명나무가 하나님이요 선악과는 사탄이라는 등 잘못된 주장을 함으로 결국 윗트니스 리의 주장은 성경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허황된 사변과 논리일 뿐이다.

4. 교회론의 문제점

기성교회를 바벨론 음녀라고 하며 기성교회 목사와 예배 등 대부분의 제도를 부정한다. 기독교를 바벨론이요 음녀라고 보아 기성교회는 타락해 죽어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계시지도 않고 불태워질 것이라고 한다(윗트니스 리, [주의 회복에 관하여], pp.12∼13., 윗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pp.94∼97, p.103., 윗트니스 리, [그리스도냐 종교냐], pp.210∼211., 윗트니스 리, [일곱영], pp.10∼11, p.49).

기성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하고 (윗치만 니, [사역의 재고], pp.240∼244, p.251, pp.257∼269),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으며 (윗치만 니, [그리스도인 50 필수과정 1], pp.7∼18., 윗트니스 리, [진리공과-제1단계-제3권], pp.86∼89., [진리시리즈2-구원이란 무엇인가?]), 성령 충만을 위해 ‘오 주 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주문처럼 외우기만 하면 된다 고 한다(윗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p.138., 윗트니스 리, [그 영과 몸], pp.27∼28, pp.55∼61, p.83, p.93, p.110, p.115., 윗트니스 리, [일곱영], p.117).

5. 연 구 결 과

윗 트니스 리 사상은 윗치만 니 사상과 함께 한국교회의 많은 이단들을 낳게 하는 모태가 되는 명백한 이단이다.

6. 참 고 자 료

리, 윗트니스. [하나님의 경륜]. 서울:한국복음서원,1987.

______. [내주하는 그리스도]. 서울:한국복음서원,1991.

______. [그 영과 몸]. 서울:한국복음서원,1985.

______. [성경의 핵심]. 서울:한국복음서원,1991.

______. [사람의 영]. 서울:한국복음서원,1986.

______. [일곱영]. 서울:한국복음서원,1991.

______. [진리공과-제1단계-제3권]. 서울:한국복음서원,1987.

______. [주의 회복에 관하여]. 서울:한국복음서원,1990.

______. [그리스도냐 종교냐]. 서울:한국복음서원,1987.

니, 윗치만. [사역의 재고]. 서울:한국복음서원,1988.

______. [그리스도인 50 필수과정 1]. 서울:한국복음서원,1989.

[진리시리즈2 – 구원이란 무엇인가?]. 서울:힌국복음서원.

기타 다수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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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종교 관련기사

월간현대종교(게재년월 및 제목)

82. 8 한국상륙 16년, 활개치는 ‘워치만 니’ 신흥 종교의 정체

82. 9,10,11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워치만 니’ 계열의 지방교회는 이단인가?

84. 4 한국지방교회

89. 6 지방교회의 알파와 오메가

91.11 문제 많은 교회 이단성 밝혀져

92. 9,10 지방교회 왜 이단이라고 하는가 1

92.11 예장통합측 이단관련보고서

96. 9 지방교회와 한국복음서원의 이단성을 진단한다

00 10 지방교회의 주장에 대하여

00.7/8 신인 합일과 인간 삼위일체론

00.11 지방교회와의 편지공방

02. 8,11 지방교회측의 본지에 대한 사과 및 정정요구와 이에 대한 본지의 답변

03. 3,4,7, 04. 1,2,5,6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에 대한 비판 결정론

04. 7 지방교회, 이기는 자들의 집회현장

출처: http://lake123172.tistory.com/entry/지방교회회복교회란-무엇인가 [목양연가(牧羊戀歌)]

지방교회는 한국교회서만 ‘이단’이다

김OO

저는 미국 플러턴교회 생활을 하는 한 작은 형제입니다. 한국의 ‘디시피 코리아'(DCP Korea) 출판사로부터 현재 말씀보존학회 홈페이지에 올려져 있는 <지방교회에 뿌리내린 음녀의 누룩>이란 글에 대해 반박하는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 글이 <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995년 12월호에 처음 발표되었을 때, 제가 그 글을 쓴 김OO 형제(지금은 말씀보존학회를 떠나 진리침례교회를 개척하여 목사가 된)에게 항의 메일을 보낸 적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글을 부탁받으면서 제가 들은 약간의 배경 설명은 이렇습니다. 사실 자체가 심각하게 왜곡된 위 글이 인터넷 검색에서 오랫동안 상위를 차지하며 지방교회 측에 대한 거짓된 정보를 유포하고 있기에, 출처를 관리하는 쪽에 글을 삭제할 수 있는지를 문의했고, 담당이신 이OO 이사님으로부터 다음 두 가지 약속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1. 성경을 근거로 옳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지적해 달라.

2. 검토해 보고 타당하다면, 월간지와 싸이트에 올리겠다.

위 문제의 글은 현재 말씀보존학회 홈페이지(지식뱅크-이단연구)에 편집부의 이름으로 올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글을 쓴 분은 글을 쓴지 2년 후 쯤인 1997년 5월경 말씀보존학회를 떠났고, 현재는 쌍방간에 친밀한 교류는 없는 것으로 압니다(홈페이지에 따르면 해당 교회는 정동수 님의 ‘흠정역’을 선호함). 이런 다소 애매한 상황에서 과연 누구를 대상으로 반박 또는 해명 글을 쓰는 것이 합당할지를 잠시 고민해 보았습니다. 글쓴이가 “지방교회에 1년 이상 몸담고 있었으며 3년 이상 위트니스 리의 회복역 신약주석 성경, 라이프 스타디, 하나님의 신약경륜을 비롯한 100여 권의 단행본을 연구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그런 사람이 지방교회 측의 “핵심적인 문제점”을 지적한다고 했으니, 아무래도 저의 반박 상대는 말씀보존학회 편집부가 아닌 글을 쓴 장본인이 되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방향 설정에 대해 미리 말씀보존학회 측에게 양해를 구하고자 합니다.

문제의 글은 제법 긴 서론 외에 네 가지 항목들(최종권위, 성경해석, 교리, 지방입장)을 본론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후 말미에서 “삼일 하나님,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 징계와 보상, 종말론, 성령과 사람의 영” 등에 대해서도 추후 글을 쓸 것처럼 말했지만, 그 약속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아마도 자신이 말씀보존학회에 2년 가량 머물다가 다른 곳으로 떠났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지방교회에서 1년 가량 생활하다가 떠난 후 부정확한 인식을 토대로 근거없는 비판을 했듯이, 역시 자신의 짧은 경험을 토대로 말씀보존학회 측을 비판하는 위치에 현재 있지는 않는지 궁금합니다. 아무튼 앞으로 추가 비판이 있을 경우 그 때 재차 다루더라도, 이 글에서는 글쓴이가 다뤘던 1. 최종권위 문제, 2. 성경해석 문제, 3. 교리에 대한 태도 문제, 4. 교회의 지방적인 입장 문제만을 반박 대상으로 하겠습니다.

전반적으로, 김OO 목사님께서 지방교회 측을 비판하신 글의 가장 큰 문제점은 ‘사실'(fact)을 왜곡한 것에 있습니다. 아울러 ‘최종권위’ 문제는 본인 자신도 나중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이며, 요한복음 14장 2절 ‘아버지 집(안의 처소)’에 대한 성경 해석은 오히려 비판하는 쪽의 진리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항목 별로 차례로 다뤄 보겠습니다.

1. 최종권위 문제

‘최종권위’라는 말 자체가 킹제임스 성경진영 외의 분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인터넷 상에서 이 최종권위 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토론 내용들을 처음부터 지켜보아 왔습니다. 이러한 관찰에 따르면, 킹제임스 진영이 말하는 ‘최종권위’란 교리 해석들이 서로 충돌하거나, 번역 성경 간에 본문 내용에 차이가 있을 때는 <1611년판 영어 킹제임스 성경>이 최종권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김OO 목사님은 문제의 글을 쓸 당시에는 한글로 처음 번역되었고 유일하게 변개가 안 되었다는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 ‘한국인들’에게는 최종권위이다 라는 입장에서 글을 썼습니다.

그런데 이미 많이 알려진 것처럼,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송오역) 외에도 권위역(박만수역), 흠정역(정동수역), KJV 완역한글판(서달석역), 공인역(이일배역) 등 킹제임스 한글 성경의 복수화가 이뤄진 이후, 과연 그 중에서 어떤 한글 번역본이 최종권위인가 하는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따라서 누구든지 이 최종권위 문제로 남을 정죄하려면, 최소한 킹제임스 진영 자체 내에서 먼저 이에 대한 통일된 입장 정리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고, 아마도 앞으로도 그렇게 되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이 최종권위 문제로 지방교회 측을 신랄하게 공격했던 김OO 목사님께 질문드리고자 합니다. 김 목사님은 <1611년 영어 킹제임스 성경> 외에, ‘한국인에게는 말씀보존학회의 <한글 킹제임스 성경>만이 변개되지 않은 유일한 최종권위의 성경이다’라는 20년 전의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고 계신지요? 만일 어떤 이유로든 지금은 그런 입장을 버렸다면, 김 목사님의 글 중에서 최소한 이 부분 또한 폐기되어야 마땅합니다. 참고로 김OO 목사님이 담임으로 계시는 진리침례교회 홈페이지는 지역교회 안내 란에서 정동수 목사님이 관리하시는 것으로 알려진 “KeepBible을 참조”하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이런 정황은 김 목사님의 최종 권위에 대한 위 글을 쓸 때의 입장이 지금은 바뀐 것은 아닌가 라는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합니다.

끝으로, 김OO 목사님은 ‘지방교회’ 개념 자체를 크게 오해하고 계십니다(자세한 것은 ‘지방입장’을 다룰 때 언급할 것임). 부득이 말씀 드리자면, 저는 “지방교회 생활 30년 이상, 수백 권의 관련 책들”을 읽었지만, 지방교회 측이 “성경보다 교회에 더 권위를 두는 경우”를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김OO 목사님께서 지방교회 측과 로마 카톨릭 교회를 억지로 연관지은 후 아래 글에서처럼 이런 저런 비판을 하신 것은 전부 팩트가 없는 거짓말들입니다. 성경은 “거짓된 것을 벗어 버리고, 각자 자기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십시오”라고 권고합니다(엡 4:25).

“지방교회는 마태복음 13:33의 여인이 계시록 17장의 음녀이며 이것이 로마 카톨릭 교회라고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다. 이 면에서는 모든 개신교회들보다 앞서 있는 셈이다. 문제는 지방교회도 역시 자기들의 “지방교회”를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유일한 교회로 내세우고 ,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교회에 더 권위를 두고 , 결국은 로마 카톨릭 교회처럼 하나님께서는 지방교회만을 통해서 진리를 계시 하시고 따라서 지방교회만이 성경의 올바른 해석자라는 주장을 하는 것이다.”

2. 성경해석

위트니스 리는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성경은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즉 문자적으로 해석하고, 그러한 해석이 너무 터무니없거나 불합리할 때만 예외적으로(예를 들어 ‘어린양'(요 1:29))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라고 가르칩니다. 사실이 이러함에도 김OO 목사님은 그것을 완전히 ‘반대로’ 왜곡시켜 놓고 비판을 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실 자체를 왜곡시킨 경우는 성경 근거를 제시할 사안도 못 되고 단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면 족합니다. 그 후의 판단은 건전한 상식을 가진 독자분들에게 맡기면 될 것입니다.

” 위트니스 리는 그의 책들에서 공공연히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며 비유적으로(Allegorically and Spiritually)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밝히고 있다”(김OO).

“제 4장 성경 해석의 원리… 첫 번째 원칙은 가능한 한 글자 그대로 해석하여 이해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영감을 주어 성경을 쓰게 하실 때 하나님은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사실을 굳게 믿어야 한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사람의 언어를 초월하여 영적인 해석으로만 열릴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말씀의 글 뜻 그대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우리는 가능한 한 원칙을 붙들어야 하고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고수해야 한다… 다만 어떤 환상이나 예언, 비유에 있어서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이 너무 터무니없거나 불합리한 때만 영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위트니스 리,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 한국복음서원, 1991년, 58-61쪽). (성경 해석의 원리 전문 http://www.localchurch.kr/3815)

또한 김 목사님은 문제의 글에서 위트니스 리가 요한복음 14장 2절의 ‘처소'(place)가 물질적인 새 예루살렘 성인데 이것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사람의 영’이라고 잘못 영해했고, 3절에서의 ‘다시 오면’도 주님의 재림을 가리키는데, 이것을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뤄졌다’라고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영적인 해석을 심지어 오리겐 등 알렉산드리아 성경변개자들의 해석방법이라고 함으로 성경변개 문제와도 연관을 지었습니다.

요약하자면, 쟁점은 요한복음 14장 2절의 아버지 집에 있는 ‘거할 곳'(처소)이 물질적인 장소인가 아니면 영적인 실체인가, 또한 ‘다시 오심’이 재림인가 아니면 부활 이후 생명주는 영이 되신 주님(고전 15:45)께서 사람 안에 생명으로 내주하심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점은 새 예루살렘(계 21:2, 9-10)이 진짜 금으로 된 물질적인 성인지 아니면 생명의 유기체인지 여부와도 연관이 있습니다. 이러한 쌍방의 진리해석 상의 이견에 대해, 먼저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 측의 입장을 소개하고, 후에 김OO 목사님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식으로 반박해 보겠습니다.

우선 전후 문맥을 볼 때, 요한복음 14장 2절의 ‘거할 곳’과 ‘처소'(a place)는 모두 바로 앞의 ‘나의 아버지 집’과 연결된 개념입니다. 따라서 ‘처소’ 혹은 ‘거할 곳’이 어디인지는 아버지 집이 과연 무엇이며, 어디 있는지를 밝히면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입니다. 먼저 2절의 ‘거할 곳’은 헬라어로 ‘모네'(3438)인데, 같은 장 23절에서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서로 거처를 정할 것입니다”라는 문맥에서 재차 사용 되었습니다. 또한 20절은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여러분이 내 안에 있으며, 내가 여러분 안에 있는 것을 여러분이 알 것입니다”라고 하나님과 사람의 상호내주를 말하는데, 여기서의 그 날은 ‘부활’의 날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14장 문맥 전체에서 볼 때, 아버지의 집 혹은 그 안의 거처나 ‘처소’는 구약의 성막이나 성전같은 물질적인 장소가 아닌 영적인 유기체입니다.

성경에서 이처럼 아버지의 집이 ‘물질적인 장소’ 개념에서 영적인 ‘유기체’ 개념으로 전환된 것은 주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2장에서 “이 성전(내 아버지 집)을 허십시오. 그러면 내가 삼 일 만에 다시 세울 것입니다”(요 2:19)라고 하신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땅에 있는 물질적인 성전을 생각했지만, 주 예수님은 성전 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유기체로서의 성전 즉 아버지 집 개념은 예수님께서 죽고 부활하신 후 성도들이 포함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로 확장되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성전이다'(고전 3:16), ‘하나님의 집이 곧 하나님의 교회이다'(딤전 3:15). ‘그분 안에서 건축물 전체가 함께 연결되어 자람으로써, 주님 안에서 성전이 되고 있다'(엡 2:21)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과 해석은 지극히 성경적이며, 결코 김 목사님 비판처럼 “알렉산드리아의 성경 변개자들” 같은 엉터리 영해가 아닙니다.

이제 제자들을 위해 마련되고 있다는 ‘처소’가 문자적으로 저 하늘 어디쯤에 있을 ‘물질적인 장소’라는 김 목사님의 주장의 모순을 가장 쉬운 방법으로 지적해 보겠습니다. 김 목사님은 말씀보존학회 출신이시니 주님의 재림이 이미 휴거되었던 성도들과 ‘함께’ 오시는 지상 재림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유 14, 15, 행 1:11). 또한 재림 후에는 지상에서 천년 왕국이 있게 될 것도 인정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말씀으로 짧은 시간에 우주를 창조하신 그분이 수천 년이 지나도록 아직도 짓고 계신다는 그 물질적인 ‘처소’의 정체성도 문제지만, 설사 완공된 후에도 성도들은 그 처소를 비워둔 채 예수님과 함께 다시 지상으로 내려 와야 합니다. 또한 그 처소가 진짜 금으로 이뤄진 물질적인 건축물인 새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어린양이신 주 예수님은 금덩어리 신부와 결혼하셔야 하는 모순에 봉착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물질적인 금이 아니라 정금처럼 변화된 이기는 자 즉 사람이 그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라고 말씀합니다(계 3:12, 고전 3:12-13). 따라서 이처럼 전혀 다른 쌍방의 성경 해석 중에서 과연 어느 것이 바른 성경 해석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두고자 합니다.

김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최종권위로 삼지 않고 자신의 지식을 최종권위로 삼는 헬라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지식에 입각해… 성경을 뜯어 고쳤고 그 산물이 바로 오늘날 <킹제임스 성경>(영어의 경우)과 <한글 킹제임스 성경>(한글의 경우)을 제외한 모든 변개된 성서들이다. 따라서 최종권위에 대해 올바른 태도를 갖고 있지 못한 지방교회가 잘못된 성경 해석 방법을 택했다고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라고 갈파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의 교회 홈페이지에서는 “덕(virtue)을 갖추지 못한 채 지식만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시행착오들이 여기저기서 생겨나서” 1997년 5월에 진리침례교회를 개척해서 목사가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문제의 글을 쓸 당시에 자신이 몸 담았던 단체를 겨냥한 말처럼 들립니다. 만일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의 과거의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한 셈입니다.

3. 교리에 대한 태도

위트니스 리는 ‘교리에 대한 태도’와 관련하여, 우리의 신앙을 구성하는 ‘핵심진리'(유 1:3)는 힘써 싸워 지키되, 침례, 세례 등과 같은 ‘지엽적인 진리 항목들’에 대해서는 서로를 용납하는 융통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교회 생활의 특수성, 일반성, 실행성’ 참조). 이것은 지방교회 측의 최종 목표가 하나님의 마음의 갈망을 따라 우리의 생명되신 그리스도(골 3:4)께서 우리 안에서 자라시고 거처를 확대해 가심으로(엡 3:17) 그분의 몸이요 한 새사람의 완결인 어린양의 신부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계 21:9-10)(김OO 목사님은 이것을 “지방교회의 최종 목표는 모든 교파가 해체되고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한 지방에 하나의 교회로 단합하는 것이다”라고 왜곡시킴). 즉 저희는 한 몸 안의 지체들끼리 지엽적인 교리를 가지고 끝없이 싸우고 분열되는 것보다는, 모든 일에 겸허하고 온유하며, 또 오래 참음과 사랑 안에서 서로를 짊어짐으로써 몸의 하나(엡 4:4)와 성령의 하나를 지키는 것(엡 4:3)이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는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방교회 측의 지극히 성경적인 자세를 김 목사님은 엉뚱하게도 “실로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반대되는 태도”라는 식으로 반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로 “주님께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를 누룩이라고 부르시면서 조심하라고 경고하신 것” 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지적하신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의 교리’는 ‘위선’과 ‘부활과 천사들과 영을 부정하는 것’을 가리킴으로, 베드로가 보았던 계시인 그리스도 자신(마 16:16)과 그분의 몸인 교회(18절)를 중심 삼는 지방교회 측에게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김 목사님 주장처럼 ‘환란 전 휴거’니 ‘환란 후 휴거’니 하는 교리 논쟁을 하고, 소위 간격 이론이 관련되었다는 창세기 1장의 어떤 표현을 놓고 신경전을 벌임으로 점점 분열이 고착화되는 킹제임스 진영의 현실이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인지는 의심스럽습니다. 김 목사님은 문제의 글에서 다른 동료 믿는 이들인 지방교회 측 성도들을 “체험적인 신앙생활”을 하면서 “감정과 자기 최면에 걸린 사람들”로 함부로 폄하하셨습니다. 그러나 김 목사님의 그러한 교리 지상주의 사고방식이 본인의 고백처럼 “덕(virtue)을 갖추지 못한 채 지식만으로 자신을 내세우는 시행착오”의 원인이 되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보셨으면 합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합니다. 오직 사랑만이 건축합니다(고전 8:1).

4. 교회의 지방적 입장

적지 않은 분들이 혼동하는 항목이 바로 이 ‘교회의 지방적인 입장’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방 입장’이란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로 이뤄진 주님의 몸인 교회(마 16:18, 엡 4:4)가 시공간 안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날 때 어떤 기준을 범위로 출현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주장하는 것은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라는 말씀처럼 각 교회는 ‘고린도’, ‘예루살렘'(행 8:1), ‘안디옥'(행 13:1),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계 1:11)와 같이 ‘한 도시에 한 개의 교회’로 출현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 도시들이 포함된 도(道) 개념인 ‘갈라디아’의 경우는 성경은 ‘갈라디아 교회들'(갈 1:2)처럼 복수로 표시하고 있습니다. 신약 서신서들은 거의 대부분 이 원칙을 따라 수신인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방교회 측은 ‘지방(city) 단위의 각 교회 원칙’을 가장 성경적이라고 믿고 실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원칙을 따를지 여부는 각자의 신앙 양심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본 빛에 따라 결정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만일 누구든 이런 지방 입장이 틀렸다고 하려면 더 성경적인 원칙을 제시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김OO 목사님은 원칙도 일관성도 없는 여러 말로 지방 입장을 비판하셨습니다. 이제 그러한 비판을 간략하게 소개하고 그 뒤에 저의 의견을 달아 보겠습니다.

(김OO) “그러나 문제는 워치만 니 형제가 그리스도의 몸 된 유기체로서의 교회와 각 지역에 세워지는 조직체로서의 교회를 혼동했다는 것이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고전 1:2)는 고린도 성읍에 살고 있는 모든 거듭난 사람들, 즉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 고린도에 세워진 단 하나의 지역교회(local church)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당시 지역교회가 하나밖에 안 세워졌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그 후 여러 개의 지역 교회들이 세워졌을 것이다. ” — (저의 의견) 위 비판은 근거 없는 ‘추정’에 따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지방에 있는 ‘유기체로서의 교회’가 곧 그 지방의 ‘지역 교회’인데, 이 둘을 나누는 것도 성경에 근거가 없고 현재의 분열된 상황을 감안한 타협적인 발상일 뿐입니다.

(김OO) “갈라디아서 1:2의 『갈라디아의 교회들에게 편지하노니』라는 말은 그야말로 지역교회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따라서 문맥에 따라 “교회”라는 단어는 주님의 몸 된, 보이지 않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엡 5장), 구약의 불러낸 무리인 이스라엘(행 7장), 이교도들의 성전(행 19:37), 지역교회들(갈 1:2)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문맥을 살펴 확인해야만 한다.” — (저의 의견) 이 말도 역사적 교회들에 대한 무지에서 온 것입니다. 갈라디아라는 도(道) 단위 지역 안에는 ‘루스드라’, ‘이고니온’, ‘더베’ 등과 같은 여러 도시들이 포함되어 있고 이 도시들 안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기에 사도 바울이 그들을 ‘교회들’이라는 복수를 사용하여 지칭한 것입니다. 이 말이 한 도시 안에 여러 지역교회들이 있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구약의 에클레시아 개념과 신약에서 성령과 연합된 실재를 갖는 신약교회는 구별되어야 하며, 신약의 서신서는 다 그 당시 현존하던 신약 교회들에게 보낸 것입니다.

(김OO) “지방교회는 현재 서울에만 10개가 넘는 집회소를 갖고 있으면서도 “서울 교회”라는 이름 하나만 사용하고 집회모임은 따로 갖는다. 함께 모여 주님을 경배하지 않는데도 이름만 하나로 갖고 있으면 그것이 하나의 교회가 될 수 있겠는가?” — (저의 의견) 하나의 교회란 꼭 한 곳에 다 모여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수많은 가정들에서 따로 모여 떡을 떼었지만(행 2:46) 성령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the Church which was at Jerusalem)라고 단수로 표시했습니다(행 8:1). 왜냐하면 각 교회는 각 도시 단위인데, 그 단위 별로 장로들을 임명하는 것이 사도들이 세운 원칙이기 때문입니다(행 14:23, 딛 1:5 비교 참조).

(김OO) “필자도 한 때는 한국 교회들의 분열을 놓고 마음 아파하다가 이 지방적 입장의 교리가 성경적이고 유일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순수한 생각으로 “천안교회”에 합류하여 생활한 적이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이라는 온전한 성경을 통해서 오늘의 축복된 자리로 인도해 주셨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 (저의 의견) 그런데 왜 지금은 주님께서 인도하셨다는 그 “축복된 자리”에 계속 계시지 않으십니까?

(김OO) “바울이 자기 민족의 구원에 대해 대단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던 것처럼 필자도 한때 함께했던 지방교회 형제 자매들이 진리로 돌이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면상 더 자세히 더 체계적으로 제시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하지만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문제는 짚고 넘어간 것 같다.” — (저의 의견) ‘계란 껍질’은 병아리가 부화하기 까지 흰자와 노른자를 보호하는 데는 요긴하나, ‘부화된 병아리’가 출현하면 계란 껍질은 쓸모 없게 됩니다. 김 목사님이 중요시 하신 지방 입장은 계란 껍질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지방교회 측 성도들이 중요시 하는 것은 최고의 인격체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 자신입니다(골 1:27). 그리고 그분의 몸과 그 몸의 완결인 새 예루살렘입니다(엡 4:16, 계 21:2). 김 목사님은 겨우 1년만 생활하시다 보니 ‘계란 껍질’만 아시고 ‘부화된 병아리’의 고귀함은 보지 못하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김OO 목사님이 비판하신 존 넬슨 다아비는 성공회 사제였지만 하나님께서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심을 보고(계 2:6), 성직자의 지위를 버리고 평범한 형제의 위치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김 목사님은 정반대로 한 때는 형제이셨지만 이제는 목사로 불리는 신분을 스스로 취하셨습니다. 만일 지금의 그 목사직이 에베소서 4장 11절의 원문(포이에마)처럼 ‘목자’로서 성도를 목양하고 가르치는 의미라면 호칭은 상관 없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담임 목사로서 다른 형제 자매님들이 조금이라도 높이 보는 위치에 계신다면 그것이 바로 목사님이 비판하시는 ‘음녀의 누룩’일 수 있습니다. 저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지금까지의 글에서 혹시라도 필요 이상으로 김 목사님을 폄하한 부분이 있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합니다. 아울러 대승적 차원에서 이러한 반박 또는 해명의 기회를 허락해 주신 말씀보존학회 측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끝

지방교회의 실체

상세정보 올바른 진리는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한다. 반면에거짓된 진리는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 문제는 겉으로는 올바른 진리인 것 같지만 실상은 거짓된 가르침이다. 이를 분별하지 못하면, 미혹되어 멸망의 길을 생명의 길로 확신하고걷게 된다. 처음은 같은데, 끝이 다르다는 “이단”이라는말의 뜻도 이를 잘 드러내 준다. 저자는 교묘한 이단의 가르침을 따라 한동안 누구보다 그 길에 앞장서다가 하나님이 은혜로 돌이켜, 올바른 진리의 길을 걷게 된 경험을 했다. 이에 누구보다도 거짓되고미혹된 가르침의 폐혜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한 사람이라도 자신과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 나아가 한국교회의 건강한 성장과 성숙을 위해 자신의 경험을 신학적 수련을 거친 분별력과 변증으로 이해하기 쉽게풀어 놓았다. 저자의 방대하지만 명쾌한 신학적 논증과 실증적 증언은 많은 추천인들의 지지로 뒷받침되고 있다. 독자들은 본 서를 통해 지방교회의 거짓된 주장을 드러내는 성경적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키우고, 올바른 진리에 대한 확신을 얻게 될 것이다. 아울러 본서는 혹시라도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 지인들이 그 길에서 돌이킬 수 있는 한줄기 빛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p. 33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단과 외국에서 들어온 이단이 혼재하고 있다. 천부교, 통일교, 신천지, 안상홍증인회, JMS(정명석), 만민중앙교회(이재록), 은혜로교회(신옥주)는 우리나라에 서 생겨난 이단이다. 몰몬교와 제7일 안식교, 여호와의 증인은 미국에 서 들어온 이단이다. 오대양 사건과 세월호 사건의 배후로 알려진 구원파도 형제교회 출신의 미국인 자칭 선교사 딕 욕(Dick York)에 의해서 도입된 이단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구원파와 사상적(신학적) 맥을 같이하는 지방교회(the local church: 회복교회)와 전능하신 하나님의 교회 (동방번개)는 중국에서 들어온 이단이다

p. 35

지방교회는 단순한 이단이 아니다. 그들은 대외적으로 정통 기독교와 동일한 복음주의 신학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을 위장하고, 대내적으로는 기독교 자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부정하는 심각한 이단 집단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미혹되어서 지방교회에 동조하거나 지지하는 목사들이 나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성경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spirit of deception: 사기의 영)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방교회가 미혹의 영에 속한 이단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p. 38

나는 지방교회의 교주 위트니스 리(Witness Lee)를 비롯해 어느 지도자에게도 개인적인 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으며, 다만 이 집단의 가르침이 어떻게 신학적으로 정통신학을 탈선하고 있는지를 알려주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이 책을 썼음을 밝힌다.

p. 45

이 책은 독자들이 궁금할 수 있는 지방교회의 역사적 배경과 그들의 교리적 문제점을 주로 다루지만, 독자들은 그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열매에 대해서도 많은 정보를 얻게 될 것이다. 독자들은 이 글을 다 읽고나면 지방교회의 실체를 알게 될 뿐 아니라 왜 한국의 여러 교단에서 지방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했는지를 확실히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p.49

이 책은 지방교회의 실체에 대한 종합적 평가다. 책 후미에 나오는 참고도서 목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나는 지방교회 평가과정에서 나의 주관적 선입관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노력했다. 이단은 지도자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추종자로 이루어져 있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서 Lee와 그의 가르침, 그리고 집단이 보이고 있는 집단적 징후를 평가했다.

p.63

현재 중국내에서 활동하는 주요 이단은 ‘호함파’(呼喊派; 이상수 李常受, 위트니스 리: Witness Lee) ‘동방번개’(東方閃電) ‘중생파’(重生派, 곡파哭派; 서영택 徐永澤) ‘삼반복인’(三班僕人) ‘부름받은 왕’(被立王: 피립왕파) ‘육신성도’(肉身成道) ‘제자회’(문도회 門徒會; 허삼贖부부) ‘사도신심회’ (使徒信心會) ‘영영교’(靈靈敎) ‘모든 물건 통용파’(凡物公用派) 등이 있으며, 이외에도 한국에서 들어간 통일교와 세계엘리야복음선교회(한농복구회), 구원파(박옥수) 등도 사교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p.73

지방교회가 한국교회에 문제로 등장한 것은 바로 권익원(王重生)이 사망한 1980년대라 할 수 있다. 지방교회는 그 확장방법에서 주로 기성 교회 교인들을 포섭한 뒤 그들의 독특한 교리를 가르쳐 마침내 기존 교회를 등지게 함으로 정통교회들과 끝없는 마찰을 빚어오고 있다. 그래서 이단 전문가 허호익(2016) 교수는 지방교회를 ‘교회론적 이단’으로 분류한 바 있다.

P83

미주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지방교회의 이단성을 지적한다. 2007년 달라스(Dallas) 신학교의 대럴 복(Darrell Bock); 덴버(Denver) 신학교의 명예교수 고든 루이스(Gordon Lewis), 사우스웨스턴(Southwestern) 침례신학교의 페이지 패터슨(Paige Patterson) 전 총장; 그리고 웨스턴(Western) 신학교의 전 총장 얼 라드마허(Earl Radmacher) 등 60명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은 지방교회 측에 Lee의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교

리들을 철회하라고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한 적이 있었다.

p. 90

지방교회의 모든 교리와 사상은 Nee와 Lee의 개인적인 견해와 사상을 절대적으로 추종하고 있으며 그들을 ‘사도’라고 부른다(지방교회 내에서는 위트니스 리를 Brother Lee라고 부른다). 그들은 대외적으로 말할 때 성경대로 따른다고 하지만, 막상 Lee의 개인적 주장을 그대로 따르고 있을 뿐이다. Lee가 Nee의 가르침을 다르게 변질시킨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 Nee 또한 교회론과 인간론, 구원론 등에서 심각한 이단성의 문제가 발견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이인규, 2017).

p.92

지방교회의 교리는 언뜻 보면 정통인 것 같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거짓이 너무 많다(유사종교연구회, 1994; 원세호, 2002). 우선 지방교회는 우리가 소유한 성경이 아닌 ‘회복역’(Recovery Version)이라는 경전을가지고 있다. 마치 여호와의 증인이 ‘신세계역’(New World Translation)을 이용하듯이 지방교회는 이미 자신들의 교리와 주장에 맞게 성경도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이들은 1992년 ‘새 복음찬송’을 발행하여 정통기독교와 다른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150곡 중 107곡은 낯선 가사로 되어있다).

p.98-99

이들의 문제점은 양태론적 삼위일체, 사람이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신인합일주의 신화사상, 예수님이 인성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그리스도의 양성의 분리, 자신들만이 유일한 참 교회라는 배타성 등으로 예수교장로회(고신, 1991)와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에서 이단성 단체로 규정되었다(정윤석, 2017). 지방교회는 하나님과 그리스도, 인간, 죄, 구원, 교회, 종말 등에 관

한 교리에 대하여 역사적인 정통 기독교의 가르침과 거리가 먼 ‘다른 교

훈’(false doctrine: 거짓된 교리)을 가르치고 있다. 지방교회는 교리적으로

나 구조적으로 이단적이다(Martin, 1980).

목차 추천의 글들 06

들어가는 말 33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 37

I부 지방교회의 역사와 현황

1. 지방교회의 약사(略史) 53

2. 지방교회의 교리: 지방교회는 무엇을 믿는가? 87

3. 이단(heresy)이란 무엇인가? 100

4. 지방교회 지도자들: “성경적 지적 해준다면 겸손히 따르겠다?” 111

5. 워치만 니(Nee)와 위트니스 리(Lee)의 신학적 배경 115

II부 지방교회의 신학과 교리

1. 신론: 삼일 하나님(Triune God) vs 삼위일체 하나님(Trinitarian God) 145

2. 기독론: 그리스도에 대한 가르침 174

3. 인간론: 인간의 구조와 죄 184

4. 구원관: 인간은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 270

5. 신인합일사상(神人合一思想: 神化思想: Deification Theory) 302

6. 교회관: 무엇이 교회인가? 322

7. 4위1체라는 해괴한 교리를 만들어낸 위트니스 리 362

8. 종말론 371

III부 지방교회의 열매

1. 지방교회를 오랫동안 경험하고 탈퇴한 분들의 증언 387

2. 지방교회 지도자들의 부도덕한 열매 396

IV부 지방교회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1. 결론: 지방교회는 영지주의적, 도덕폐기론적 이단이다 415

2. 지방교회 대처 노하우: 우리는 지방교회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431

참고문헌 443

추천의 글

한국교회에는 크게 4가지 계열의 이단이 있다. 통일교 계열의 이단, 천부교 계열의 이단 그리고 지방교회에 뿌리를 두고 있는 두 개의 이단 즉, 구원파 계열의 이단과 귀신파 계열의 이단이다. 위 세 가지 위에 하나를 더 첨가한다면 신비주의 계열의 이단인데 그 뿌리 역시 이 지방교회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이런 상황 속에 『지방교회의 실체』라는 책을 정동섭 목사님께서 쓰셨다는 점이 교회사적으로 그 의미가 매우 크기에 본인은 기쁜 마음으로 온 맘 다해 이 책을 추천하는 바이다.

최삼경(『교회와신앙』 편집인, 빛과소금교회 담임 목사)

구원파와 다락방 같은 이단은 그 피해가 심각하면서도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구원파와 다락방은 그 뿌리가 되는 지방교회의 사상과 교리를 알면 그 이단성이 쉽게 드러납니다. 지방교회 뿐만 아니라, 구원파와 다락방의 이단성을 알고자 하시는 분에게는 이책을 꼭 필독하실 것을 권해드리며, 또 현재 구원파나 다락방에 속해 있는 신도들도 이 책을 읽으면 진실을 분별하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고 확신합니다.

김성한(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단사이비대책위원장)

이 책을 통해서 아직도 중국과 우리나라에 영향력을 크게 미치고 있는 워치만 니의 사상의 문제점을 모든 사람들이 잘 깨닫고, 특히 그가 강조한 인간 구성에 대한 삼분설적인 이해와 이에 근거한 구원론이 모두 청산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이 일을 하기에 정동섭 교수님은 가장 잘 준비된 학자이시기에 이 책을 모든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이승구(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ISBN 9788935018819

쪽수 464쪽

판형 148*210 (mm)

[스크랩] 지방교회가 이단인가요?

지방교회가 이단인지 저는 모릅니다.

네이버에서 지방교회를 검색해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처음 부터 다 읽어 보았는데 이 내용 대로라면

이단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되었습니다.

미국의 플러신학교에서도 지방교회를 이단이 아니라고 했다고 하는데

지방교회가 이단인지 아닌지 정확히 알고 싶습니다.

한기총 ‘이대위’ 7인 소위원회 질문에 대한 답변

2010.9

한국 지방 교회들(local Churches)

DCP korea 진리변증 위원회

한기총 이대위 위트니스 리 연구 7인소위원회의 질문에 대한 답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이단 사이비 대책위원회 위트니스 리 연구 7인 소위원회의 11가지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 항목들은 이미 최삼경 목사와의 진리논쟁을 통해서(1996-1998 교회와 신앙, “누가이단인가?”) 그리고 예장 통합 측에 제출한 재심청구에서 충분히 다뤄졌던 것들입니다. 또한 미국 풀러 신학교와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관련 자료들에서도 증언된 것들입니다. 따라서 본 답변 자료는 특별한 출처 표시가 없으면 이러한 기존 자료들의 재인용 또는 필요시 추가 보완한 것임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질문1. 위트니스 리가 ‘신인합일주의(우리는 하나님이 된다)’를 가르치고 있는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위트니스 리는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가 아닌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으로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사상은 “전능하사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 뛰어 넘을 수 없고 엄격한 차이를 인정해야하는 우리의 신앙과 위배된다.” (예장 통합 77차 총회 연구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방 교회 측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주장하는 신인합일주의는 믿지 않으나 성경적인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은 믿습니다. 또한 지방 교회 측은 정통교부 아타나시우스(Athanasius)도 가르쳤던 사람의 신화(神化)를 믿고 가르치나 창조주와 피조물의 엄연한 차이를 인정하며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1) 지방 교회 측은 성경적인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믿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이 서로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여러 곳에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 성경 속의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다만 경배 받는 객관적인 하나님이 아닙니다 . 그 분은 사람에게 다가오신 , 체험할 수 있는 분이십니다.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태어나서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난 자들이니라 ” ( 요 1:12~13). 이러한 출생에 의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 요 3:16).

우리는 또한 성령이 우리 안에 사시고 ( 롬 8:11), 우리가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라는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 고전 6:17). 또한 아버지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며 ( 요일 2:23, 엡 4:6), 우리 안에 그 분의 거처를 만드신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 요 14:23, 20). 이러한 하나님과 사람의 주관적인 연합이 없다면 기독교는 단지 형식적인 종교에 불과한 것입니다 . 우리는 다만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 그 분의 신성한 성품에 참여합니다 ( 벧후 1:4).

위와 같은 성경기록 뿐 아니라 역사적으로 많은 신실한 믿는 이들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에 대해 말했습니다 . 초대 교부들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AD 155~220) 는 , ”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금 , 곧 성령과 연합된 사람들이며…이 연합은 마치 포도주를 물에 섞는 것과 같다 ” 고 했습니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 2 권 242~243, 467 쪽 ). 말틴 루터 (Martin Luther, AD 1483~1546) 는 그의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 ” 그러므로 순수하게 믿음을 배워야 한다 . 즉 , 믿음으로 당신은 그리스도와 완전히 연합되어서 그 분과 당신은 한 인격이 되었다 . 그 결과 당신은 담대하게 ` 나는 이제 그리스도와 하나입니다 ‘ 라고 말할 수 있다 .”( 말틴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 168~170 쪽 ). 존 캘빈 (John Calvin) 도 그의 걸작인 < 기독교 강요 > 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 ” 그러므로 그 분이 우리의 머리이시며 많은 형제들 중 맏아들이더라도 또 한 면에서 우리는 그 분 안으로 접붙여져야 하고 그 분으로 옷입혀져야 하며 내가 이미 말했듯이 우리가 그 분과 하나되기 전에는 그 분이 소유한 모든 것들이 우리와 아무 관계가 없다 “( 위의 책 1 권 , p.463, 1973, Eerdmans Publishing Company).

이상의 근거들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 위트니스 리 ( 지방 교회 측 ) 가 말하는 `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 은 명확한 성경적 , 역사적 근거를 가진 정통 진리라는 것입니다.

2) 지방 교회 측은 성경이 계시하고 정통 교부들이 말한 범위 내의 신화 ( 神化 ) 를 믿습니다.

최삼경 목사 ( 통합 교단 ) 의 비판은 지방 교회 측이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을 주장하면서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엄연한 차이까지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것은 경륜적인 방면을 말하는 위트니스 리의 일부 책 내용을 지나치게 확대해석한 데서 온 오해일 뿐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

위트니스 리가 말하는 ‘ 하나님과 사람의 연합 ’ 은 하나님의 생명과 본성 안에서의 연합 ( 요 3:16, 1:12, 벧후 1:3-4) 을 말하는 것이지, 사람이 경배의 대상이 되는 신격 ( 데오테스 (2320), Godhead)( 골 2:9) 에 있어서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 위트니스 리의 어느 책을 보아도 사람이 경배받는 하나님이 된다는 언급이 없습니다.

이것은 개혁 신학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성품에 믿는 이들이 참여하는 범위를 구분하는 것인 ‘ 공유적 속성 ‘ 과 ‘ 비공유적 속성 ‘ 의 구별과 같은 시각에서 이해할 일입니다.

이처럼 창조주와 피조물간의 차이를 넘지 않는 지방 교회 측의 신화 ( 神化 ) 관련 가르침은 지방 교회 측의 신화를 설명한 캐리 로비쇼우 (Kerry S. Robichaux) 의 아래 논문 내용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 ( http://www.forthetruth.or.kr/pdfs/10_09_k1.pdf 에 가시면 아래 논문의 전문 ( 영어 , 한글 ) 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비공유적 속성 때문에 사람은 결코 신격에는 참여할 수 없다. 사람은 결코 삼일성의 네 번째 인격이 될 수 없고, 결코 신으로 경배 받을 수 없다. 사람은 결코 창조물로서의 속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때문에 결코 창조자가 될 수 없다. 사람은 영원토록 사람의 형상과 사람의 본성을 지니기 때문에 결코 편재할 수 없다. 사람은 창조 시 부여받은 제한된 정신적 기능을 영원히 가질 것이고, 결코 전지하게 될 수 없다. 하나님은 창조 안과 밖 모두에서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은 기껏해야 창조의 제한 안에서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만 하나님이 된다.” (캐리 로비쇼우, 확증과 비평, 1996년 7월호, 24쪽).

참고로 지방 교회 측의 신화 진리에 대해 CRI 는, ” 궁극적으로 , 신화에 대한 지방 교회 측의 교리는 복음주의 개신교인들이 들어온 믿는 이들의 성화와 영화롭게 됨에 관한 좀더 신비적인 관점일 뿐이다. ” 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 크리스천 리서치 저널 , 2009 년 제 32 권 제 6 호 특집판 , 27 쪽 ).

그 외에 신화 관련 책자인 (Liturgical Press) 저자이자 풀러 신학교 선언문에도 언급된 풀러 신학교 조직 신학자인 벨리마티 커케년 (Veli-Matti KarKKainen) 박사도 지방 교회 측 신화 진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질문2.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양태론’이라고 주장 하는데 사실인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위트니스 리는 하나님의 세 인격은 세 영들이 아닌 하나의 영으로 세 인격이 한 영 안에 있는 삼일(三一)하나님이 되었다고 한다…위트니스 리가 비록 양태론적인 삼위일체관을 변형된 형태로 표현하고 있지만 명백한 양태론이다.(예장 통합 77차 총회 연구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쌍방 간의 양태론 시비의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첫째, 판단 기준이 된 최삼경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사상> 자체의 문제점입니다. 둘째,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관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급하게 비판한 것입니다.

1) 양태론 정죄의 기준인 최삼경 목사의 ‘세 영들의 하나님’ 사상이 문제입니다.

“… 구약이나 신약이나 아버지 하나님도 ‘ 한 ’ 영이시고 성령님도 ‘ 한 ’ 영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 ?”( 최삼경 , 교회와신앙 , 96 년 12 월호 , 136 쪽 ).

위 자료에 의하면 , 최삼경 목사 ( 통합 측 ) 는 ‘ 복수의 영들 ’ 의 하나님을 주장하고 있고 또 그것을 삼위일체론의 이단 판정 기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 즉 그는 자신의 < 세 인격 세 영들 > 이 정통이고 , 지방 교회 측의 < 세 인격 , 한 영 > 이 양태론이라는 논리입니다 .

그러나 이러한 최 목사의 주장은 억지이며 자신의 소속 교단 이단대책위원회도 소위 C 목사 삼신론 연구보고서에서 , “( 최삼경 목사의 ) 주장은 결국 하나님은 세 하나님이 되어 삼신론의 근거가 되며 모든 기독교회가 믿고 고백하는 아다나시우스 신조와 상충된다 .” 라는 이단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

2) 위트니스 리의 삼위일체론은 지극히 성경적이고 균형 잡혀 있습니다 .

위트니스 리의 삼일 하나님 ( 삼위일체 ) 에 대한 관점은 무려 500 쪽이 넘는 그의 저술 < 신약의 결론-하나님 편 > ( 한국복음서원 , 1991 년 ) 에 잘 나와 있습니다 . 그러나 최삼경 목사는 이러한 핵심 자료는 간과한 채 삼위일체의 경륜적인 방면을 말한 일부 책자에만 크게 의존하여 비판함으로 사실이 왜곡된 엉뚱한 양태론 정죄를 낳고 말았습니다.

참고로 위 책에서소개된 위트니스리의 삼위일체론의 핵심은 다음과 같습니다 .

1)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심 ( 신 4:39, 사 45:5, 46:9, 시 86:10, 고전 8:4, 딤전 1:17, 2:5).

2) 하나님은 삼일 (triune) 이심 ( 창 1:1, 26, 사 6:8, 마 28:19).

3) 아버지 , 아들 , 성령은 모두 하나님이심 ( 엡 1:17, 벧전 1:2, 롬 9:5, 히 1:8, 행 5:3-4).

4) 아버지 , 아들 , 성령은 모두 영원하심 ( 사 9:6, 히 1:12, 7:3, 13:8, 히 9:14).

” 우리는 또한 셋 ( 아버지 , 아들 , 성령 ) 모두 영원하심을 믿는다 . 이사야 9 장 6 절에서는 아버지가 영원하시다고 말하고 , 히브리서 1 장 12 절과 7 장 3 절에서는 아들이 영원함을 지적하며 , 히브리서 9 장 14 절에서는 영원한 성령을 말하고 있다 .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은 일시적이지 않고 영원하시다 “(307 쪽 ).

5) 아버지 , 아들 , 성령은 모두 동시 존재하심 .

6) 삼일성의 세 위격은 구분되나 분리되지 않음 .

” 요한복음에서 아들께서 말씀하시기를 , 그분은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다고 하셨다 ( 요 10:38, 14:10-11). 아들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있는데 어떻게 분리될 수 있는가 ? 아버지와 아들과 영은 구분이 되지만 분리되지 않는다. “(39-40 쪽 )

위와 같은 위트니스 리 삼위일체관은 누가 봐도 성경적이며 균형 잡힌 삼위일체관이고 결코 양태론이 아닙니다 . 신학을 아는 사람은 누구라도 위트니스리처럼 성부 , 성자 , 성령께서 영원하심을 믿는 사람이 어떤 형태로건 양태론자가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끝으로, 위트니스 리는 양태론 ( 삼위 양식설 ) 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을 다음과 같이 이단으로 정죄합니다.

” 내가 양태론자라는 비난은 거짓된 것이며, 나는 절대적으로 그것을 부인 한다 .…양태론 ( 삼위 양식설 ) 은 이단이며 우리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 위의 책 , 306 쪽 ).

3) 최삼경 목사 ( 통합 측 ) 는 조사대상인 본문을 정반대로 왜곡 시켰습니다

최삼경 목사와 통합 교단은 위트니스 리가 ‘ 한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고 했음에도 위트니스 리가 ‘ 한 인격만 우리 안에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 는 식으로 사실과 다르게 왜곡시켜 비판했습니다.

” 우리는 서로 다른 ( 분리된 ) 세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다 ( 이 부분을 최 목사와 통합 측은 위트니스 리가 한 인격만 있다고 말했다고 왜곡함 ). 우리는 다만 삼일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 “( 위트니스 리 , 하나님의 경륜 , 1987, 16 쪽 )

최삼경 목사는 위의 위트니스 리 본문을 < 한 인격 한 영 하나님 > 주장으로 왜곡 시킨 후 ” 변형된 양태론 ” 이라며 억지 주장을 한 것입니다 .

통합 교단도 아래와 같이 사실을 정반대로 오해하고 왜곡시켰습니다.

” 지방 교회들이 “서로 다른 세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오직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한 인격만이 우리 안에 있다’는 표현은…세 분이며 동시에 한 분이라는 정통 삼위일체론의 신비를 왜곡시킨다.” (통합 측 지방 교회에 대한 재심청구 연구보고서)

결론적으로 최삼경 목사의 ‘변형된 양태론’ 비판은 위에서 본 것처럼 잘못된 기준과 잘못된 사실파악에 기초한 것이며 위트니스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CRI는 특집판 저널(“우리가 틀렸었다”) 14-23쪽에서 지방 교회 측 삼위일체를 상세하게 검증 한 후 지극히 성경적이고 균형 잡힌 삼위일체관으로 평가 했습니다.

질문3. 지방 교회 측은 삼신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그러므로 ” 아버지 하나님도 한 영이요 성령님도 한 영 이신데 어떻게 이 둘이 하나라고 하는가 반문하며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영이 아닌 세 영들이 되어야 한다 ” 는 것이다 . ( 교회와 신앙 96.12 월호 ).”( 통합 교단 이단대책위원회 c 목사 삼신론 연구보고서 )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최삼경 목사는 지방 교회 측과의 공개토론에서 삼위일체를 ‘ 세 영들의 하나님 ’ 이라고 강력히 주장하여 한국교계 내에서 삼신론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습니다 . 그러나 최삼경 목사의 이러한 세 영들 사상은 아래에서 보듯이 이미 교회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입니다 .

1) 이미 <교회 공의회>에서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된 사상입니다.

최삼경 목사는 <영>을 <인격>과 동일시하여 삼위일체를 <세 영들의 하나님>으로 정의합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이미 853년 스와송(Soissons) 공의회에서 삼신론 이단 사상으로 정죄된 바 있는 이단 교리입니다.

“9세기에 이르러서, ‘위격’은 ‘영’(Spirit)과 동일한 것이라는 의견이 개진되었다. 그래서 성부, 성자, 성령 이 세 이름은 하나님 안에 있는 세 영의 존재를 지시한다고 여겨졌다 …(중략) 그리하여 그러한 주장을 한 고트사크는 853년에 스와송(Sissons) 공의회에서 정죄 되었다. 이 공의회는 단 하나의 신적 영의 소유자들로서 세 위격의 상호 점유를 재확인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위격‘과 ’영‘이 동의어라는 사상을 배격했다’(제럴드 브레이, 신론, 한국기독학생회출판부, 2000년, 211-212쪽).

2) 삼위는 구별은 되나 분리되지 않으십니다.

교회 역사 상 세 위격이신 하나님이 어떻게 한 분됨을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 그후 이것은 터툴리안이 말한 바 , < 세 위격이 구별되나 (distinctio) 나누어지거나 (divisus) 분리 (separatus) 되지 않는다 > 는 명제로 설명되어 왔습니다. 또한 이러한 특징은 요한복음 14 장 10-11 절 등에서 볼수 있는 세 위격의 상호내재 ( 페리코레시스 ) 의 결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예를 들어 어거스틴은 ‘ 상호내재 ’ 를 “both are in each, and all in each, and each in all, and all in all” 로 정의했습니다 .

그런데 만일 누구든지 이러한 원칙을 깨고 삼위 간에 ‘ 구별이 없다 ’ 고 주장하는 것이 양태론이고 , 삼위가 구별될 뿐 아니라 ‘ 분리도 된다 ’ 고 하면 삼신론이 되는 것입니다 . 최삼경 목사는 아래와 같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을 각각 ‘ 분리된 ’ 세 분들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 한 인격 예수님 하나님 속에 아버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도 들어있다면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 속에 계신 아버지하나님께 기도했다는 말이 된다”(월간 교회와신앙 1997년 6월호).

위 말은 한 위격 안에 다른 모든 위격이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게 내주하신다는 정통 삼위일체, 예를 들어 위 어거스틴의” both are in each, and all in each” 와는 다른 것이며 일종의 ‘ 다신론 ’ 이단 사상입니다 .

질문4. 위트니스 리는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 한다는데 사실인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즉 위트니스 리가 ‘예수님의 인성에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함’으로 그 결과 ‘예수님이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까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에서 어긋남’으로 문제라는 것이다( 예장 통합 77차 총회 연구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위트니스 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나실 때부터 승천하시기 까지 참 하나님이시요. 참 인간 이심을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위와 같은 오해는 최삼경 목사(통합 측)의 부활 전 예수님과 부활 후의 예수님에 대한 이해에 심각한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1) 위트니스 리는 예수님의 양성(참 하나님, 참 사람)을 믿고 고백합니다.

아래 인용문은 위트니스리가 성경적이고 칼케돈 신조에 부합하는 기독론을 믿고 있음을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 승천 안에서 그리스도는 인자이시다 . 이는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 즉 여전히 사람의 본성을 소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 주님은 십자가 이전에 땅 위에서 인자이셨으며 , 부활과 승천 후 하나님의 우편 하늘에서도 여전히 인자이시다 . 더 나아가 구름을 타고 오실 때도 그 분은 인자이실 것이다 “( 위트니스 리 , 신약의 결론 – 그리스도 편 , 1991 년 , 한국복음서원 , 135-136 쪽 ).

“그분은 하나님이시자 사람이시다. 그분은 완전한 인성뿐 아니라 온전한 신성을 소유 하고 계신다. 그분 안의 두 본성은 혼돈되거나 분리되지 않는다. 두 본성을 소유하고 계실지라도 여전히 그분은 한 인격이시다. 그분의 인격은 분리될 수 없고, 그분의 본성도 혼돈되지 않는다. “(위트니스 리, 진리의 변호와 확증, 한국복음서원, 1996년, 96-97쪽).

2) 예장 통합 측의 부활 후의 예수님의 인성에 대한 이해는 과연 성경적인가 ?

지방 교회 측은 통합 측에 제출한 재심 청구서에서, “그것은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을 시점으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 (고전 15:42) ‘변화’를

거치셨다.” 는 의미라고 해명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통합 측은, “지방 교회 측이 “예수님의 인성이 부활을 시점으로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않을 것으로 다시 사는 (고전 15:42) ‘변화’를 거치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 전후나 부활 전후에도 예수의 양성은 ‘변화됨이 없으시다’는 니케아 신조와는 다른 주장이다.”라고 반박했습니다(지방 교회 재심신청에 대한 통합 측 연구보고서 참조).

그런데 위와 같은 통합 교단의 주장은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여전히 썩을 인성을 입고 계신다”는 주장이 되고 더 나아가, 부활 후에도 부활 전처럼 다시 죽으실 수도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러한 주장은 비성경적이며 저명한 개혁 신학자인 찰스 하지(Charles Hodge)의 다음과 같은 견해와도 상반됩니다.

“그러므로 지금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은 여기 땅에 계실 동안의 그분의 몸의 정체성을 그대로 유지하시지만, 영광스럽고, 썩지 않으시고 죽지 않으시며, 영원하시다).”(찰스 하지, 조직신학 Volume II, 1979, 629쪽).

질문5. 위트니스 리는 ‘삼분설’을 취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하여 어떻게 보는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사람은 몸과 혼과 영이라는 세 부분으로 창조되었다는(하나님의 경륜, 136쪽) 삼분설을 주장한다( 예장 통합 77차 총회 연구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통합 측 지적대로 위트니스 리와 지방 교회 측 성도들은 사람은영과 혼과 몸으로 되어 있다고 믿습니다(살전5:23, 히4:12, 롬8:6, 눅1:46-47). 그러나 이와 달리 통합 측을 포함하여 이분설을 지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개신교인들이 이분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미국 칼빈 신학교 교수였던 안토니 후크마는 “우리는 삼분론 뿐만 아니라 이분론도 거절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라고 주장합니다(개혁주의 인간론, 기독교 문서선교회, 347쪽). 그는 ‘삼분설’뿐 아니라 ‘이분설’도 반대하는 ‘영-육 통일론자’ 입니다(같은 책, 360쪽). 이것은 이 주제가 최삼경 목사(통합 교단)가 생각하는 것처럼 정통과 이단을 분별하는 핵심 진리는 아니며 이견이 허용되는 상대적 진리임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대한 이견은 쌍방이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고 너그럽게 용납했으면 합니다. 나름대로 각자가 그렇게 믿는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질문6. 위트니스 리는 “인간의 타락을 육적인 것으로만 이해하여 …전인적인 타락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이 사실인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영,혼, 육 삼분설을 취하면서…인간의 타락은 전인적인 것인데 비해 그것을 육체적인 것으로만 봄으로 몸만 타락하고 영은 타락하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범죄 하는 영은 죽을 지라”(겔18:20)는 성경 말씀과 다르다(예장통합 77차 총회 연구 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이 주제 역시 최삼경 목사(통합 교단)가 충분한 연구를 하지 않고 어떻게든 이단을 만들기 위해 억지 논리를 무리하게 세워 엉뚱한 결론을 내린 허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보겠지만 위트니스 리는 영의 타락을 포함한 전인 타락을 결코 부인하지 않습니다.

1) 최삼경 목사의 억지 논리의 산물일 뿐 사실이 아닙니다.

최 목사는 ‘ 위트니스 리가 사람의 육만 타락했다고 믿는다 ‘ 고 가정한 후 , 거기서 ‘ 위트니스 리는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믿는다 ‘ 라는 또 다른 가정을 이끌어 내었습니다 . 그후 그는 “ 위트니스 리는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한다”, “위트니스 리는 결국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을 제한하는 주장을 하는 것이 되니 이단 ‘ 라는 억지 주장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공개 토론 시 아래와 같이 자신의 말을 스스로 뒤 짚어 통합 측의 그동안의 비판을 근거 없는 것이 되게 했습니다.

” 물론 워치만 니나 위트니스 리가 인간의 영은 타락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 오히려 영이 타락하여 죽었다고 주장한다 “( 최삼경 , 교회와신앙 , 97 년 8 월호 , p164).

2) 위트니스 리는 전인적인 타락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아래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성경대로 전인 타락 특히 최 목사가 오해했던 ‘ 사람의 영의 타락 ’ 도 굳게 믿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 사람의 피조 된 영은 원래 하나님을 접촉하는 기관이었다 . 사람은 그의 영을 통하여 그의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했다 . 후에 사람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사람의 영은 죄의 오염으로 인해 손상되었다 . 그리하여 사람의 영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 기능을 상실하고 죽은 영이 되었다 . “( 위트니스 리 , 생명의 인식 , 한국복음서원, 1988 년 , 42 쪽 ).

” 에베소서 2 장 1 절은 우리가 죄로 인하여 죽었다고 말한다 . 이것은…우리의 영이 타락으로 인하여 죽은 것이다. “( 위트니스리 , 사람의 영 , 한국복음서원 , 47 쪽 ).

따라서 , 위에서 보듯이 위트니스 리는 사람의 전인적인 타락도 믿고 , 그리스도의 완전한 구속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 그러므로 앞으로 이 주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오해가 없기를 부탁드립니다.

질문7. 위트니스 리는 기성 교회를 ‘바벨론 음녀’라고 한다는 주장이 사실인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기독교를 바벨론이요, 음녀라고 보아 기성 교회는 타락해 죽어 있다 고 한다.(예장 통합 77차 총회 연구 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위트니스 리는 요한 계시록을 강해하는 과정에서 전후 문맥이나 교회 역사상 다른 성경 교사들의 해석 등을 근거로 17장 5절에서 나오는 ‘큰 바벨론’을 ‘로마천주교’로 해석 했습니다. 그런데 위트니스 리의 이런 언급은 과거에 미국에서 지방 교회들을 견제하고 공격할 빌미를 찾던 사람들에 의해 크게 부풀려지고 왜곡된 상태로 확산되었습니다.

1) 위트니스 리는 성경 본문을 해석한 것입니다.

위트니스 리는 계시록 주석 과정에서 ‘큰 바벨론’(계17:5)을 ‘로마 천주교’로 해석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적지 않은 신실한 성경교사들도 동일한 해석을 한 바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위트니스 리는 성경 본문을 해석한 것뿐이고 일부의 오해처럼 다른 단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의 인격을 폄하하거나 무시할 의도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이 점은 1980년대 미국에서 있었던 갓맨 재판 시 증인으로 나왔던 존 알버트 살리바 (John Albert Saliba)박사의 다음과 같은 증언에서도 확인 됩니다 그는 카톨릭 사제이며 그 당시 예수회에서 설립한 디트로이트 대학 종교연구학과 부교수였습니다.

모건 씨(변호사) : 거기서 그(위트니스 리)가 카톨릭에 대해 부정적인 말들을 했지요?

살리바 박사: 예, 일반적인 설명이 있었습니다. 계시록 몇 장인지는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그 장에서 바벨론을 언급합니다. 바벨론은 로마로 해석되고, 그 다음 단계로 로마는 카톨릭으로 해석됩니다.

모건 씨: 위트니스 리만 그렇게 해석합니까?

살리바 박사: 근본주의자들에게는 그것이 상당히 일반적인 해석입니다. 내가 그것을 접하게 된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모건 씨 :그것이 신부님의 역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습니까?

살리바 박사: 아닙니다. 위트니스 리는 항상 카톨릭 교회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렇게 하지만, 텔레비젼에서 어떤 복음 전파자가 하는 것처럼 하지는 않습니다…그(위트니스 리)는 개신교와 카톨릭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사랑하라는 말을 했습니다. 위트니스 리가 나의 교회는 반대하여 계시록을 해석할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가 나를 미워하지 않는다고 하겠습니다.(고오든 맬튼 박사 외, 위트니스 리와 지방교회에 대한 전문가들의 증언, 한국복음서원, 1996, 135-136쪽).

2) 로마 천주교를 바벨론으로 해석한 것은 위트니스 리 만이 아닙니다.

계시록에 언급된 ‘ 큰 바벨론 ’ 을 ‘ 로마 천주교 ’ 로 해석한 성경 교사는 위트니스 리 외에도 많습니다 . 그 중에는 존 칼빈 , 존 낙스 , 찰스 하지 같은 개혁 신학자들도 포함됩니다 . 일부 내용을 인용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바벨론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예표이다 . 성경을 권위 있게 설명하는 많은 역사학자들과 신학자들도 그렇게 말한다. 많은 대형 교단들이 이 교회로부터 분리된 후 , 어머니 교회의 전통과 실행들을 본받아 실행해 왔다 .”(Walter Lewis Wilson, Wilson‘s Dictionary of Bible Types. Grand Rapids: Eerdmans, [1979], c1957, p 241(entry on “Harlot”))

” 이 여인 [ 계시록 17:5] 은 음녀의 어미로 불린다 . 어머니 음녀가 있고 딸 음녀들이 있다 . 역사의 과정은 보다 적은 규모의 더 많은 제도를 낳은 어머니 우상 제도의 발전을 계시해 왔다 . 종교 개혁 시기에 , 개신교 주석가들은 늘 큰 음녀를 로마 천주교와 동일시했다 .” (Donald Grey Barnhouse, Revelation: An Expository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1982], c1971, p324).

” 전통적으로 , 개신 교회는 로마 카톨릭 교회를 우상숭배적이고 변질된 적그리스도적 집단으로 간주해 왔다 .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선언하기를 , ” 교황은 귀신들이 충만한 자요 하나님의 원수요 적그리스도 ” 라고 했고 , 교황 제도를 마귀적이라고 했다 (Church and Ministry III, p.363). 존 칼빈도 로마 교인들을 ” 그리스도의 치명적인 대적자들 ” 로 여겼고 , 로마 교황을 마귀 왕국의 지도자로 , 그리고 교황의 복음을 복음의 ” 무서운 변질 ” 로 간주했다 (Institutes, IV. ii. 4. 12: Commentary on the Galatians, p. 32).”( 김효성 , 현대교회 문제 , 기독교 문서 선교회 , 1993 년 , 108 쪽 ).

위의 언급들 중에는 듣기에 따라 또는 각자 처한 입장에 따라 다소 거북한 대목이 있을 수 있습니다 . 그러나 위트니스 리를 포함해서 위 신학자들 중 누구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이나 주님의 교회 자체를 폄하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 대신에 그들 나름대로의 관점을 따라 객관적인 사실을 적으려고 한 것뿐입니다 .

끝으로 , 지방 교회측 성도들이 다른 단체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다른 곳에는 구원이 없다고 믿는다는 루머에 대해서는 아래 내용이 그런 오해를 해소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절대로 진리는 양보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보편적인 사랑을 실행해야 한다. 우리에겐 보편적인 사랑, 주 예수님을 사랑하고 모든 성도를 사랑하며, 반대자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까지도 사랑하는 그 사랑이 필요하다”(위트니스 리, 캠퍼스 복음전파, 한국복음서원, 1991년, 50-51쪽).

” 어느 교파 중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우리들의 형제됨을 인정한다 . 천주교나 개신교의 각 파 안에도 구원받은 성도들이 있다 …“ ( 위트니스 리 , 성경에 나타난 교회 , 한국복음서원 , 1986, 103, 50 쪽 ).

질문8. 통합 측에서 “지방 교회는 목사제도와 예배를 부인하고 있다”

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지방 교회의 목회자 양성과 예배는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기성교회 목사와 예배 등 대부분의 제도를 부정한다.” “기성 교회의 목사와 예배를 부정하고”(워치만니, 사역의 재고, 240-244, 251, 257-269쪽).(예장통합 77차 총회 연구 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먼저 이 질문은 쌍방 간에 충분한 대화의 부족으로 많은 오해가 있는 사안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즉 ‘지방 교회 측은 기성 교회 내의 모든 인도 직분을 부정하고 정죄한다’ 거나 반대로 ‘지방 교회들 안에는 일체의 인도 직분이 없이 너도 나도 형제자매로 통한다’ 는 식의 말은 다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 합당한 인도 직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참되게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로서 성경이 말하는 예배를 부정할 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소위 ‘계급적인 의미의 성직자-평신도 제도'(The Clergy-laity System) 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입장을 달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일 예배가 성만찬 실행은 없이 주로 1인 설교 중심으로 이뤄지는 것에 대해서도 의견을 달리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 차이가 한쪽은 정통이고 다른 쪽은 이단이 되는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래 내용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주장하는 예배관이 절대 기준이 아니라 여전히 더 보완이 필요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지방 교회 측은 아래에서 보겠지만 매주 성만찬과 말씀 선포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예배는 성만찬을 곁들이거나 적어도 성만찬을 전제로 하는 주일 낮의 공중 예배를 말하는 것이며, 나머지 형식은 엄밀한 의미에서 신앙집회와 같은 것이다. 초대 교회로부터 이어져 온 기독교 예배의 핵심은 ‘말씀과 성찬’임을 생각할 때…적어도 한국 교회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성만찬 예전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와신앙, 95년 7월호, 47-49쪽, 이현웅: 목원교회 목사, 서울 장신대 예배학 강사).

1) 지방교회 측은 “목회자 양성”을 어떻게 하는가?

이 질문은 지방 교회들 안에는 어떤 경로를 통해 인도 직분이 배출되는가 라는 취지로 이해하고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우리는 상대적으로 영적인 생명이 성숙한 성도들인 복수의 ‘장로들’이 교회를 감독 하고 대표함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행14:23, 딛1:5, 행20:17, 28- 38,요이1절, 벧전5:1, 5). 그리고 이들은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다만 양무리의 ‘본’이 되는 사람들입니다(벧전5:3).

원칙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위와 같은 사람들은 죄들의 용서와 거듭남을 체험한 이후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빛 안에서 살아가면서 주관적인 십자가를 통한 자기 부인(마16: 24)과 부활 능력을 누림을 통해(빌3:10) 산출됩니다.

그러나 실재적으로는 교회 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교회 내에 축적된 다양한 온전케 되는 기회들을 통해 산출됩니다. 먼저는 앞선 연장한 장로들의 본을 통해 배웁니다. 또한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이뤄지는 전 세계 ‘국제 장로 동역자들 집회’를 통해서 봉사를 배우게 합니다. 올해는 이 국제 집회가 한국 부산에서 개최됩니다. 이 외에 장로들 또는 교회봉사를 돕는 목적으로 출판된 책들도 큰 도움이 됩니다. 그중 몇 가지를 열거하자면,

<어떻게 동역자와 장로가 되는가> <장로치회> <장로훈련 메시지>(총11권) <하나님의 말씀의 사역자의 성격> <성격> <교회의 사무> <사역의 재고(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 <영적 봉사> <신약의 봉사> <영과 영 안에서의 봉사>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들> <주님께 유용하게 되는 길> <제사장 직분> <사람의 영안에서 봉사함> <교회생활의 봉사에 대한 기본원칙> <교회봉사에 관한 대화> <교회를 돌보는 길> 등이 있습니다.

특히 <교회를 돌보는 길>에서 발췌한 아래 문장은 지방 교회들 내의 봉사 또는 봉사자의 본질을 함축적으로 요약하여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돌보는 유일한 길은 바로 그리스도를 살아내고 그리스도를 공급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교회 안에서의 참된 봉사이다.”

이외에도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2년 동안 합숙을 하면서 진리, 생명, 봉사, 성격, 언어 방면에서 전시간 훈련을 받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 외에 중년들을 위한 1년 코스 전시간 훈련이 미국, 한국, 대만에서 현재 실시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전 시간 훈련 과정은 정상적인 교회 생활과 봉사에 대한 기초를 배우는 것일 뿐 기존 신학교처럼 직접적으로 교회 인도 직분을 배출하는 절차는 아닙니다. 인도 직분은 함께 교회생활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영적 분량을 따라 자연스럽게 기능이 드러날 때 하나님 앞에서 충분한 기도와 교통과 고려가운데 세워진다고 하겠습니다.

2)지방 교회 측은 주일 예배를 어떻게 실행하는가?

(1)성만찬

지역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대략 매 주일 오전 10시경 모여서 40분-1시간 가량 성만찬을 실시합니다. (일부는 주일 저녁에 만찬을 하기도 함) 처음에는 주님의 인격과 역사에 관련된 찬송을 많이 부르다가 일정 시기가 되면 봉자가 떡과 잔을 회중에게 돌립니다. 끝 무렵에는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이러한 성만찬에는 자신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임을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만찬 실행에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봉사에 대한 기본공과>(위트니스 리, 한국복음서원, 2002)에 잘 나와 있습니다.

(2)신언(申言, prophesying)집회

신언 집회는 위 만찬 집회에 이어서 약 1시간 가량에 걸쳐 이뤄집니다. 이러한 집회는 쉽게 말해서 한 명의 목회자가 할 설교 분량을 일주일 동안 미리 기도하며 준비한10-15명의 성도들이3분 전후로 분담하여 말하는 것으로 이해하시면 될 것입니다. 대개는 서두를 여는 말이나 끝 부분의 결론은 좀 더 노련한 봉사자가 담당할 때가 많습니다.

신언 내용은 일년 7차 실시되는 국제 집회 안에서 동역자들이 선포한 메시지 들을 매주 그리고 매일 성도들이 추구할 수 있도록 편집된 큐티자료 형태로 제공된 성경 내용의 순서에 따릅니다. 국제 집회에서는 성경 66권을 순차적으로 강해하거나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 라이프 스터디(Life-Study)임), 특정 주제 별로 심화 학습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메시지들은 성경 66권 본문 자체를 빛 가운데 이해하고 체험하기 위한 도구들이며 성경 자체를 대체하지 않습니다.

돌이켜 보면 약 30년 전에는 지방교회들 내에서도 인도자 한 두명이 약 1시간 가량 말씀을 선포하는 실행을 함으로 기성교회의 1인 설교와 유사한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약 1983년경부터 고린도 전서 14장을 근거로 신언 집회로의 전환을 가진 것입니다(1, 4, 19, 31절).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일부 성도는 신언이 부담스러워 교회생활을 쉬기도 함)도 있었으나 약 30년이 지난 현재에는 전 세계적으로 이러한 실행이 정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성도들의 신언의 내용 면에서는 여전히 보완하고 발전해야 할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실행은 이 땅에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려면 소위 한 달란트 받은 성도들의 기능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인식에 따른 것입니다. 주님의 몸은 “각 마디의 공급을 “을 받은 “각 지체들”(each part)의 분량에 따른 기능 발휘를 통해 스스로 세워져 간다고 성경은 말합니다(엡4:16). 또한 고린도 전서 14장 4절(원문에는 ‘덕’이 없음)은 교회가 세워지는 것이 ‘신언’을 통해서 임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끝으로 ‘신언’(예언)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하여 박윤선 박사의 견해를 소개드립니다.

“예언이라는 말에 대해 오늘날 많은 신자들이 오해하고 있다… 이 말의 헬라 원어를 바로 번역하자면 ‘대신 말하는 것’ 즉 ‘대언’이다…. 출애굽기 7:1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란 말씀이 있는데 아론은 모세를 대신하여 말하는 대변자라는 것이다… ” 교회시대의 예언에 대해 잠깐 생각해 보자! 사도시대 이후, 성령님의 대언집인 성경이 완성된 이후의 시대가 교회시대인데 , 이 시대의 대언 사역은 성경을 풀어 설교하는 것이다. ” (옥한흠 편집, 현대교회와 성령운동, 도서출판 엠마오, 1992, 65-66, 75쪽).”

질문9. 통합 측에서 “침례가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사실인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침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삼는다(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50필수과정1, 7-18쪽 외) (예장 통합 77차 연구 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먼저 우리는 ‘침례가 하나님이 정하신 칭의(중생을 포함)의 유일한 방편’이라는 천주교의 과오(박형룡, 교회론, 326-327쪽)인 행위구원를 배척합니다. 또한 믿음과 은혜로 구원얻는 방면(엡 2:8)을 부정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각자가 본인의 믿음을 따라 받는다 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점에 오해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워치만 니는 위 책에서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으리라”(막16:16)는 성경을 근거로, 세상으로부터 구원받는 방면을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린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집 안에서 양의 고기를 먹어 이미 ‘구원받았으나’ 거기에서 더 전진하여 침례를 예표하는 홍해를 건넘으로써 바로가 다스리는 애굽의 영역(세상)을 벗어나는 구원을 받은 것과 같습니다.

요약하면, 워치만니가 말한 ‘침례’는 내적 믿음의 외적 표현이며 믿음과 동떨어진 어떤 것이 아닙니다. 또한 여기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우리가 이미 영적으로는 세상을 향해 죽은 자임을 믿음의 침례를 통해 공개적으로 선포하여 세상과 분별되는 것입니다.

질문10. 통합 측에서 “주님의 이름이 유일한 성령충만 방법”이라고 하는데 사실인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성령 충만을 위해 ‘오 주예수여!’를 반복적으로 주문처럼 외우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위트니스 리, 성경의 핵심 138쪽, 그영과 몸 27-28쪽, 일곱 영, 117쪽(예장 통합 77차 총회 연구보고서)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한마디로 사실이 아닙니다. 최삼경 목사가 출처로 제시한위 책자들 어디에서도 주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외우라”거나 “주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유일한 성령 충만 방법”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위트니스 리는 에베소서 5장 18절의 ‘그영 안에서 충만 됨’은 1) 하나를 힘써 지킴(엡4:3), 2) 그리스도를 바르게 배움(엡4:20), 3)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으로 자람(엡4:15), 4) 사랑과 빛 안에서 행함(엡5:2,8)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라이프스터디II(보급판) 한국복음서원, 메시지 51, 468쪽).

질문11. 지방 교회만이 참된 회복 교회라고 주장하고 있는가?

가. 최삼경 목사(통합 측)가 ‘진리 논쟁’에서 제기한 이단성 요지

“첫째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정통 교회에서 볼 때 교회론에 있어서도 이단 이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지방 교회들은) 정통 교회가 고백하는 사도신경의 “거룩한 공회를 믿사오며”라는 범주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최삼경, 교회와 신앙1997.11월호)

나. 지방 교회 측 답변

현실만을 고려한다면 무엇이 ‘교회’인가 또는 무엇이 ‘참된 교회’인가의 문제만큼 정의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미 수많은 교단들로 나뉘어져 오랜 세월을 거쳐 오면서 각자 나름대로의 교단 현실을 감안한 교회론을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약성경의 교회론>을 쓴 케빈 길레스(Kevin Giles)는 기독교 문서선교회를 통해 국내에 소개된 그의 책 서두에서 “우리는 하나의 거룩한 보편적인 사도적인 교회를 믿는다”라고 고백하지만, “우리가 교회라고 부를 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주된 이유는 ” ‘교회’에 대한 합의된 공식적인 정의가 나와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위의 책 15쪽).

1) 지방 교회 측이 말하는 교회론은 과연 무엇인가?

이 점은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님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 라고 하실 때의 교회는 소위 우주 교회의 방면을 가리킨다 고 믿습니다. 이 우주 교회의 일원이 되는 길은 그가 어떤 배경을 가졌던 지와 무관하게 주님을 구주와 생명을 믿고 영접하여 거듭나는 것입니다 (요1:12, 3:6).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는 것입니다(고전12:12-13).

그런데 이처럼 거듭나서 몸의 지체가 된 사람들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그 지방에 있는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것을 성경은 또 말하고 있습니다(고전 1:2, 행8:1, 13:1, 계1:11). 이것을 ‘지역교회’ 또는 ‘지방교회’(local church)라고 지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간략하게 요약해 본 지방교회들의 교회론 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점 한 가지는 이러한 우주교회, 지역교회(local church) 라는 교회관을 장로교 합동교단 총회교육국이 펴낸 책에서도 세칭 구원파의 교회론을 비판하는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Ekklesia 라는 말은 신약에서114번 나오는데 이중에 85번은 지역 교회(local Church)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보편적인 의미의 교회란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참된 신자의 총체를 말하는 것으로 혹자는 이것을 우주 교회라고 부른다. 신약성경에서는 우주적 보편적 의미보다 지역적 개 교회의의미로 교회라는 용어를 쓴 경우가 더 많다…그러나 구원파에서는 도시와 지방별의 지역교회(local Church)를 인정하기 보다는 국가단위의 교회, 즉 ‘기독교복음침례회’에 소속된 신자들로 이루어진 참 교회를 가르치고 있다”(기독교의 이단들, 1997, 305쪽)

2) 소위 ‘지방 교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는가?

혹자는 소위 ‘ 지방 교회 ‘ 라는 호칭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따르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며 , 그들만 교회이고 , 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는 주장쯤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 거듭 말씀드리지만 ‘ 지방 교회 ‘ 란 그 특정 지역에 사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 포함한 개념이지 특정인을 따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 이점은 아래 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 우리는 몇몇 최고의 선교사들을 통하여 2 세기부터 그 시기까지의 고전적인 책들과 교회사와 전기들을 포함한 기독교 서적들을 섭렵하게 되었다 . 이 모든 서적들은 우리에게 더 전진된 확증을 주었다.

바로 그 시작부터 우리는 분열과 조직과 전통에도 불구하고 이 분열 안에 아주 많은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 우리는 주의 몸이 이러한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심지어 천주교 안에도 우리는 많은 참된 믿는 이들을 보았으며 , 우리는 그들 또한 교회의 지체들로 그리고 우리의 귀중한 형제자매들로 여겼다 . 한편으로 우리는 우리 스스로 모이기 시작했으며 , 우리는 천주교와 개신교 안에 흩어져 있는 귀중하고 참된 믿는 이들이 우리의 형제들이라는 것을 충분히 깨달았다 . 우리는 그들을 인정했고 그들을 사랑했다 . 우리는 하나님의 교회인 주의 몸이 우리뿐만 아니라 모든 참된 믿는 이들을 포함하며 , 우리는 작은 한 부분에 속한 것을 깨달았다 .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또한 그들이 합당한 교회생활 안에 남아있지 않다는 것도 알았다 “( 장로훈련 IV, 주의 회복의 실행에 관한 몇 가지 중점들 , 1994, 199 쪽 ).

여기서 재차 강조하고 싶은 한 가지는 소위 ‘ 지방 교회 ’ 는 결코 특정 단체의 고유 이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 대신에 위에서 보듯이 교회가 이 땅에서 어떻게 나타나는가에 대한 관점 내지는 실행입니다 . 우리는 이점을 어떻게든 구분해 보려고 < 지방 > 이라는 말에 괄호를 치거나 의도적으로 ‘ 지방교회들 ’ 이라는 ‘ 복수 ’ 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

3) 지방 교회만이 참된 회복교회인가 ?

이 부분은 먼저 ‘ 회복 ’ 이 무엇인가에 대한 개념정리가 필요할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회복이란 말은 쉽게 말해 ‘ 성경으로 돌아가자 ’ 는 것입니다 . 또는 하나님의 갈망 또는 뜻을 이루는 길 안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

이런 의미에서 소위 회복은 교회의 하락과 동시에 출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사도 바울, 사도 요한 등은 순수한 교회의 간증에서 빗나간 지역 교회들을 바로 잡기 위하여 수많은 서신서들을 썼고 또 손수 수고했습니다 . 또한 가까이는 말틴 루터나 존 칼빈 등 프로테스탄트들로 로마 천주교의 비 성경적인 교리와 실행으로 부터 성경으로 돌아가기 위해 많은 수고를 했습니다 . 따라서 일반적으로 말한다면 이처럼 교회의 표준으로부터 하락된 상태에서 성경의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힘쓰는 모든 교회들은 다 회복 교회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또한 하나님께 받은 특별한 위임이 없지 않습니다 .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 ( 엡 1:4-5) 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뤄가는 것입니다 ( 마 6:10). 그들이 본 하나님의 계획은 간략하게 세 가지로 요약하면, < 만유를 포함하신 그리스도 >( 골 3:11, 엡 3:19) 와 < 그분의 충만인 그리스도의 몸 >( 엡 1:23) 과 < 어린양의 신부이자 하나님의 거처인 새 예루살렘 > ( 계 21:2, 9-10, 요 14:20) 입니다.

지방 교회 측 성도들은 이것을 위하여 모든 것에서 성경으로 돌아가기를 절대적으로 힘씁니다 . 우주 교회가 지역을 범위로 나타났음을 성경을 통해 확인했다면 다만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 고전 1:2, 행 8:1, 13:1).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리스도 이외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 바울의 본을 따르기를 힘씁니다 ( 빌 3:8). 장로들이 양들에게 주장하는 태도를 취하지 말고 다만 본을 본이라고 성경이 말하면 최선을 다해 그러한 실행 안에 들어가길 힘씁니다 ( 벧전 5:2). 하나씩 하나씩 신언함으로 교회가 건축됨을 보았다면 대가를 지불해서 그 길을 실행에 옮기려고 노력합니다 ( 고전 14:31).

그러나 이러한 성경대로 살고자 하는 태도는 거듭난 사람들이 마땅히 할 일임으로 그리하는 것일 뿐 우리만 참되고 다른 단체들은 틀렸다고 정죄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 끝으로 우리가 본 진리에 너무 절대적인 나머지 본의 아니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는 태도가 있었다면 이런 기회를 빌어서 상처받는 모든 분들께 용서를 구합니다. 또한 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허물을 덮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아멘(끝)

[출처] 지방교회 – 한기총 ‘이대위’ 7인 소위원회 질문에 대한 답변 |작성자 한나 지방교회란 무엇인가? 질문에 답변하기 앞서 우리는 무엇이 <지방교회>(local Church)인지를 정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지방교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만든 교회가 아닙니다. <지방교회>는 신약성경 안의 대부분의 서신서들의 수신인 교회들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고린도 전후 서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라는 지방(city)을 범위”로 하는 “그 도시 안의 모든 거듭난 믿는 이들>인 <고린도에 있는 (지방 )교회>(고전1:2) 에게 보낸 두 차례의 서신입니다. 로마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 지방적인 범위의 개 교회들’인 <지방교회>는 성경적인 교회실행이지 이단일 수가 없습니다. 한편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가 위와같은 <초기교회의 모습들>을 새롭게 회복한 것을 따라 실행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외부인들이 ‘지방교회’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다음과 같은 이유로 그들은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1. <근본주의 5대 교리>을 굳게 믿습니다. 20세기초에 기독교 신앙의 근본을 뿌리채 뒤흔드는 자유주의(인본주의) 망령이 우리 나라에 복음을 전해 주었던 미국에 광풍처럼 몰아닥쳤습니다. 그 때 메이천, 반틸 등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이러한 배도의 물결에 맞서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기독교 근본교리를 수호하는 차원에서 다섯 개의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1) 성경의 무오성, 2)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3) 대속의 죽음 4) 육신을 입은 부활 5) 기적(또는 재림)의 인정이 그것입니다. 따라서 이 다섯 가지 중 어느 하나라도 부인하면 그 사람 또는 그 단체가 이단인 셈입니다. 그런데이러한<근본주의5대교리>는1895년에개최된 ‘나이아가라사경회’에서채택했던프리머스형제회쪽의<기독교신앙의 5대근본신조>에뿌리를두고있습니다. 그러한프리머스형제회와다년간의교류를가지면서도움을받았던워치만니와위트니스리는당연히위<5대근본신조>를신앙의근본으로확고하게믿고있습니다. 소위지방교회또한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이런기준에서볼때지방교회는이단이아닙니다. 오히려 한국에서 지방교회측을 이단시하는 교단(통합)은 별첨 자료가 말해 주듯이 <성경의 무오성>의 인정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단입니까?

1) http://blog.daum.net/hakema/169 2) http://blog.naver.com/cselee59/100124200954 2. 그리스도와 교회를 강조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밝혀주는 책입니다. 그 주된 내용은 그리스도와 교회입니다 . 즉 성경의 중심은 <생명되신 그리스도>(골3:4)가 <그리스도의 충만인 영광스러운 교회> 를 세우시는 것입니다(엡1:23, 5:27). 다음 네 구절이 이 사상을 더 확실히 뒷받침해 줍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 함이다”(요10:1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11:25).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16:18). “교회는 그분의 몸이니”(엡1:23).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마6:10)을 자신들의 사역의 초점으로 삼았습니다 . 이를 위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소개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생명되신 그리스도가 성도들 안에 충만된 결과인, 유기체로서의 그리스도의 몸을 실제적으로 건축하는데 온 힘을 쏟아 부었습니다. 이 두 성경 교사들이 쓴 수백 권의 영적인 서적들은 다 이 성경의 중심 노선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주관적으로 연합하고(롬6:6, 엡2:5), 그리스도의 부활을 주관적으로 체험하도록 (마16:24, 빌3:10) 성도들을 돕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지혜로운 주건축자”(a wise master builder)(고전3:10)였던 바울 사도의 사역의 중심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뜻이자 성경의 중심인 그리스도 자신을 구주와 생명으로 소개하고, 이 분을 영접하여 참되게 거듭난 사람들을 주님의 몸으로 세워지도록 힘써 가르치고 도왔던 사람과 그 사역이 이단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 종교인에게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도 이단이었습니다. 3. 통합 교단의 이단정죄는 이래서 부당합니다. 인터넷 검색에 <워치만 니 또는 위트니스 리 , 이단> 혹은 <지방교회, 이단>이라고 치면 이런 저런 자료들이 뜹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지방 교회가 이단이다’ 라는 식의 자료들은 대부분 공신력이 없는 정체불명 자료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자료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를 비판하다가 전혀 무관한 ‘레마선교회’를 비판하는 내용이 짜집기 되어 있습니다. 또 어떤 자료는 형제 자매라고 부르는 지방교회 측 실행을 허용하면 “계급교회”를 무너뜨릴 염려가 있어서 지방 교회가 교회론에서 이이라는 궤변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공 교단의 이름으로 발표된 자료가 바로 올초에 ‘한기총’과 합동교단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된 최삼경씨가 작성한 <통합교단 이단연구 보고서>정도입니다. 그런데 이 자료도 찬찬히 뜯어보면 1 ) 위트니스리가 하지 않은 말을 대상으로 삼아 2) 상대적인 기준일 뿐인 장로교 헌법 3) 또는 최삼경씨 본인의 이단적인 기준과 다르다고 이단시 한 것일 뿐입니다 (여타 교단들은 이런 통합측 자료를 원용함). 한 마디로 이단이 아닌데 이단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이미 인터넷 안에 소개 된 다음 자료들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1)지방교회측과 최삼경씨의 공개토론 결론글 (전문)

http://chch.kr/kin/20931.html 2)통합교단이대위, 한기총, 합동교단이 최삼경씨를 삼신론 이단으로 정죄한 자료들

http://www.pck.or.kr/PckCommunity/NoticeView.asp?TC_Board=19538&ArticleId=60&page=6&Depth=1 (통합측 이대위, 최삼경씨 조사보고서)

http://church.christianitydaily.com/view.htm?id=224453 (통합측 인사들의 이단고발)

http://church.christianitydaily.com/view.htm?id=224923 (한기총, 최삼경씨 이단결의)

http://chtimes.co.kr/lib/news/43340/page/8 (합동교단, 최삼경씨 이단결의) 3) 통합교단 위트니스리 연구보고서를 이단 근거로 보아서는 안 되는 이유

http://blog.localchurches.kr/_blog/blog/view.php?idx=7055&blogID=7777&dev 장로 교단 <신도게요서> 제 31장 3절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사도시대 이후 모든 지방회의들과 총회의들이 세계적이든지 지방적 이든지를 물론하고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있었고, 또 많은 회의들이 오류를 범하였다”. 결론적으로, 삼신론 이단으로 판명난 사람의 기준으로, 사실도 아닌 내용들을, 장로교단 교리와 다르다고 해서 이단이라고로 판단한 <통합측, 위트니스 리 연구보고서>와 통합측의 결의는 위 신도게요서의 선언 내용에 해당됨으로 마땅히 즉각 철회되거나, 재평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풀러신학교와 CRI가 <참된 믿는이들>이라고 선언했습니다. 1) 풀러 신학교 성명서 풀러 신학교측은 지방교회측 대표자들과의 약 2년간의 질문 응답과 정밀 자료 조사 후,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그리고 전 세계의 지방교회측 성도들이 “진정한 믿는 이들”이자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이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했습니다. (풀러신학교 선언문 전문) – http://chch.kr/kin/20904.html 풀러(Fuller) 신학 대학과 지방 교회들의 인도자들과 그 출판 기관인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LSM)는 최근에 지난 2 년 동안 해온 광범위한 대화를 마쳤습니다. 이 기간에 풀러 신학 대학은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에서 출판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저서들을 특히 강조하는 지방 교회들의 주요 가르침들과 실행들을 철저하게 검토하고 조사해 보았습니다. 이러한 과정을 취한 이유는, 종종 이들 교회들에 관해 던져지는 여러 가지 많은 질문들과 비난들에 대한 답을 주고자 하는 것이었고, 또한 역사적이고 정통적인 기독교의 빛 안에서 이 두 사람이나 지방 교회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의 위치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 측에서 이 대화에 참여한 분들은 총장이며 기독교 철학 교수인 Richard Mouw 박사와 신학부 학장이며 신학 및 윤리학 교수인 Howard Loewen 박사와 조직 신학 교수인 Veli-matti Karkkainen 박사입니다. 지방 교회들을 대표하여 참여한 분들은 Minoru Chen, Abraham Ho, Dan Towle 씨입니다. LSM을 대표하여 참여한 분들은 Ron Kangas, Benson Phillips, Chris Wilde, Andrew Yu 씨입니다. 풀러 신학 대학이 내린 결론은, 지방 교회들과 그 구성원들의 가르침들과 실행들이 본질적인 모든 방면에서 진실하고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그리스도인 신앙을 대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풀러 신 학대학이 당면했던 첫 과제 중 하나는, 그들을 비판하는 이들이 전형적으로 제시했던 지방 교회들의 사역의 모습이 지방 교회들의 사역의 가르침들을 정확히 반영하고 있는가를 판정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에 관하여 어떤 단체들 안에 생성된 인식과 그 두 사람의 저서들에서 발견된 사실상의 가르침들 사이에 큰 차이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특히 위트니스 리의 가르침들은 엄청나게 잘못 대표되었으며, 그 결과 일반적인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특히 자신들을 복음주의자들로 분류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빈번하게 오해되어 왔습니다. 성경과 교회사의 빛 안에서 공정하게 점검해 볼 때, 문제시 되었던 가르침들은 사실상 성경과 역사의 의미심장한 신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시종일관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몸 전체의 주목과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거친 과정을 이해함에 있어서, 처음부터 우리는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 믿는이들이 고수하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신앙의 본질적인 요소들 위에서 이들 교회들이 서 있는 입장이 무엇인가에 대해 상당한 주의를 기울였음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일 신앙의 기본 교리들에 관한 동의가 분명하게 확립될 수 있다면, 비본질적인 가르침들에 관한 차후의 대화와 토론은 믿는이들의 교통의 범위에 들어가는 것이 타당하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출판물들을 읽어 보고 또 풀러 신학 대학 측과 그 교회들과 사역의 대표자들과 다섯 번에 걸쳐 직접 만나는 모임을 갖고 나서 이러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나님, 삼일성(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인격과 일, 성경, 구원, 교회의 하나와 합일, 그리스도의 몸 등에 관한 그들의 가르침과 간증에 관해서 우리는 그들이 논의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정통(正統)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는, 비록 그들의 신앙 고백이 신조의 형태로 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들의 신앙 고백은 주요 신조들과 일치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의 출판물로 대표된 가르침들을 고수하는 사역의 인도자들이나 지방 교회들 구성원들 가운데 이단에 속하거나 이단과 유사한 속성들이 있다는 증거를 전혀 찾을 수 없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을 진정한 믿는이들로,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같은 지체들로 쉽고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모든 그리스도인 믿는이들도 마찬가지로 그들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기를 기탄없이 권하는 바입니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은 진지하고 열려 있고 투명하고 제약이 없는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풀러 신학 대학 측에서 특별한 관심을 갖고 접근했던 몇 가지 주제들은 삼일성(삼위일체), 신성과 인성의 연합, 신화(神化), 양태론(樣態論), ‘지방’ 교회에 대한 그들의 해석과 실행,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그들의 모임 밖에 있는 외부 믿는이들에 대한 그들의 태도 등이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분야들 하나하나에 대해 탐색할 자유를 제한없이 부여받았습니다. 매 경우에 우리는 일부 사람들이 가진 공공연한 인식이 지방 교회들 안에 있는 믿는이들의 믿음과 실행뿐만 아니라 출판된 사실상의 가르침들과도 너무나 동떨어진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이 성명서는 우리가 연관되었던 과정과 우리가 내린 전반적인 결론에 대한 전체적인 개관에 대해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제공하려는 의도로 마련된 것입니다. 이 간단한 성명서에 이어서 몇 개월 후에는 위에서 언급한 신학적 주제들과 기타 중요한 주제들을 더 상세하게 다루는 논문이 나올 것입니다. 지방 교회들과 리빙스트림미니스트리의 대표자들은 그들에 관한 관심사의 주요 주제들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들을 요약된 형태로 진술하는 성명서를 작성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풀러 신학 대학 측은 이미 상당한 연구와 대화를 거친 다음 그들을 이해하는 데 이르렀으므로 그들의 가르침들에 대한 논평을 제공할 것입니다.

-끝- 그러자 어떤 이는 리처드 모우 풀러 신학교 총장이 몰몬교도 지지한 사람인데,그런 사람의 말이 무슨 가치가 있느냐는 식의 자료를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사실 관계를 크게 왜곡시킨 것입니다. 왜냐하면 < 지방교회측이 정통이다> 라는 선언은 모우 총장 “개인 의견”이 아니라, 신학부장 하워드 로웬 박사, 조직신학자 벨리 마티 커케년 박사 등이 대표로 서명한 “풀러 신학교”의 공식 입장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것은 한국교계 내의 약 500여명의 풀러 신학교 동문 목회자들을 모독하는 말입니다. 모우 총장 개인의견과 풀러 신학교 자체의 평판은 별개입니다. 한편 지방교회 평가에 있어서 풀러신학교 입장(정통)은 낮게 폄하하고, 풀러와 유사한 신학적 색채를 가진 장로교단으로 평가받는 통합교단의 결정(이단)은 절대시 하는 것도 부당합니다. 2) ‘크리스천 리서치 인스티튜트’(CRI) 선언 –“우리가 틀렸었다” 월터 마틴(Walter Martin)이 창설한 소위 ‘씨알 아이’(CRI)는 한국의 성도님들은 생소할지 모르나, 미국에서 역사가 있는 이단연구 단체입니다 . ( http://equip.org ) 이 CRI가 자신들의 정기 간행물인 에서 (과거에 지방교회측을 비판했던)“우리가 틀렸었다” (We Were Wrong)라고 공개 선언을 했습니다.

( 선언문: ) 많은 분들이 이 선언문이 왜 그토록 큰 의미가 있는 지를 잘 모르고 계신 것 같습니다. CRI는 미국에서 위트니스 리를 제일 처음으로 비판한 단체였습니다. 또한 지난 30여년 간 라디오와 방송과 책으로 집요하게 위트니스 리를 공격하던 바로 그 장본인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대반전이 있게 된 것은 주님의 주권적인 간섭과 안배라고 밖에 설명이 안 됩니다. 혹자는 월터 마틴과 ‘행크 헤네그레프’는 다르다며 이런 CRI의 공개선언을 억지로 폄하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C.R.I. 저널 특집호의 주된 내용인 약 60여 쪽의 논문 “We Were Wrong”의 저자가 행크가 아니라 <엘리옷 밀러> (Eliot Miller) 라는 사실을 왜곡한 처사 입니다. 밀러는 월터 마틴 시절부터 지금까지 30년 이상 저널 편집장으로 재직 중입니다. 약 6년 간의 철저한 재평가 후에 과거에 위트니스리와 지방교회들을 ‘양태론’ 또는 ‘자신들만 교회라고 한다’며 비판한 것은 틀린 것이었다 고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것은 아무나 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진리>만을 관심한 C.R.I.측의 편집 원칙이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 현재까지 위트니스 리 사상을 가장 철저하게 연구한 이단 연구단체인 CRI측의 결론에 따르면,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 그리고 지방 교회들은 이단이 아니며, 정통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또한 이와 다른 내용을 담은 통합측(사실은 최삼경씨)의 연구 결과는 위에서 본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신뢰성을 상실했습니다.(끝) [출처] 지방교회란 무엇인가? |작성자 Secret shelter

출처 :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글쓴이 : 안성철 원글보기 : 안성철

메모 :

지방교회의 교리 개요

지방교회의 교리 개요 (1) 지방교회의 이단적인 교리는 다음과 같다. 거의 모든 신학적인 견해에서 이단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면 명백하다. 신론 : 양태론(삼일론), 경륜적 삼위일체(사역적삼위일체), 상호내재 기독론 : 아폴로내리우스 주의(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 인간론 : 영과 혼과 육을 공간적, 장소적으로 분리하는 3분법, 이원론 구원론 : 신화사상(신인합일론), 단체구원론 성경론 : 워치만 니와 위트니스 리의 해석을 추종, 계시, 비밀, 풍유적 해석. 종말론 : 내세 부정, 극단적 세대주의 교회론 : 배타적, 부정적 교회론 (2) 지방교회의 가장 중요한 세가지의 이단적 교리 지방교회 교리에서 이단성은 거의 전반적이지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세가지이다. 이 세가지의 정확히 교리를 파악하면 지방교회의 정체가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 ➀ 신론(양태론, 승계론) ➁ 기독론(신성과 인성을 분리시키는 아폴로내리우스 주의) ➂ 인간론(영과 혼과 육을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 이원론) 지방교회는 대부분 신론에서만 양태론으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렇지 않다. 지방교회는 기독론에서도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키는 심각한 이단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또한 인간론에서도 영과 혼과 육이라는 세 개의 장소적인 개념으로 분리시키는 이원론적인 이단성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이 세가지의 개념을 반드시 이해하여야만, 지방교회가 말하는 신화사상, 소위 신인합일론이라는 것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뒤에 “지방교회의 중요한 이단적 교리”이라는 5번 항목에서 이 세가지 교리를 자세하게 설명할 것이다. 4. 지방교회의 교회론 자신들의 교리와 사상이 기독교와 다르다는 주장과 기독교는 사탄이 세운 종교라는 배타적인 주장을 한다. 아래의 지방교회의 배타적인 교회론을 읽어 본다면, 그들이 기독교의 신학과 동일한 복음주의라고 주장하든지, 오해라고 변명하는 것은 모두 거짓 조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요 교리에서 대략적으로 살펴 보았듯이, 이들의 교리는 기독교의 교리와 전혀 다르며, 이들은 자신들을 포함한 극소수만이 이 교리(God-man)를 알고 있다고 주장을 한다. –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이 문제를 본 사람은 극소수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29쪽) –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사람이심을 시인한다. 또 이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늘 우리가 하나님-사람들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53쪽) – 마찬가지로 교회 시대에서 그분은 이러한 이기는 무리들을 기독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분은 오직 그분의 회복 안에서 소수의 이기는 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계시록 14장은 비록 많은 이들이 구원받았지만 이기는 자들은 다만144,000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67쪽) –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재하심의 실제이다(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비밀. 24쪽) – 기독교에속지 말자. 기독교에는 숱한 허사가 많고 특히 교회는 그렇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거의 실제적이지 못하다. 신약계시에 따르면 교회, 그리스도의 몸은 지역[지방]교회 로서 표출된다. 내게 지방교회가 없으면 내 교회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교회는 지방교회 안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미국 지방교회 홈페이지 내용) 지방교회는 자신들만이 유일한 참 교회라는 차별성과 배타성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기독교를 거짓, 사탄, 바벨론, 음녀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여 지방교회가 복음주의에 충실한 곳이라면 기독교는 사탄이 세운 교회가 됨을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 가라지들은거짓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큰 나무는 오늘날의 기독교계를 의미한다. 누룩은 이교도의 모든 관습, 세상적인 것, 죄있는 것, 우상숭배를 의미한다. 여자는 로마 천주교, 심지어 기독교계까지도 의미하며, 악한 자는 사단 자신이다. (위트니스 리, 왕국, 265쪽) – 음녀들의 어미는 변절한 교회이므로 그 여자의 딸들인 그 음녀들은 어느 정도 변절한 로마 천주교의 가르침과 실행들과 전통을 붙잡고있는 기독교 안의 모든 각종 종파들과 단체들 임에 틀림없다. 순수한 교회생활에는 변절한 교회로부터 전수한 악이 전혀 없다.(위트니스 리, 교회 391쪽) – 참된 지방교회들은 순수한 금등대들인 데 반하여, 로마 천주교와 개신교 교파들과 독립단체들을 포함하는오늘날의 기독교계는 완전히 순수성을 잃은 큰 혼합물이다. 이 혼합물이 큰 바벨론을 구성한다.(위트니스 리, 교회 390쪽) – 계시록 17장4절과 5절에서 우리는 변절한 기독교계의 참 상황을 본다. 밖의 모습은 단지 전시일 뿐이다. 내적으로 변절한 기독교계는 하나님의 눈에 가증한 것들로 가득 차있다. 그여자는 우상숭배와 음행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극도로 불결하다. 이것이 곧 교회의 타락의 최종완성이다.(위트니스 리, 교회 391쪽) 기독교를 사탄이라고 정의하는 지방교회에서, 한기총과 교단의 이대위에게 자신들을 재평가하여 달라고 요청한다는 자체가 웃을 수 없는 코메디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탄이며 음녀라고 부르는 기독교에 자신들도 동일한 복음주의 사상을 갖고 있으므로, 자신들을 재평가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마 뒤로 돌아서면 즉시로 웃음을 보이며 그들의 긴 혀를 낼름 거릴 것이다. 5. 지방교회의 중요한 이단적인 교리 필자는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지방교회의 이단교리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세가지는 다음과 같다. 이 세가지 교리는 오직 한가지 결론을 도출하기 위하여 장황한 설명을 하고 있는데, 즉 “예수그리스도는 God-man의 첫 샘플이며, 지방교회 교인도 그와 똑같은 God-man이 될 수 있다” 라는 공식을 맞추기 위하여 모든 것을 전개시키고 있다. 즉 지방교회 교인에게 그 영(그들은 성령이라고 하지 않는다)이 들어온다면 그들은 예수와 똑같이 되는 것이며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그 영’은 성령이 아니며, 그 영은 과정과 단계를 거친 양태론적인 하나님 자신인 것이다. 1) 신론 : 양태론 2) 기독론 : 아폴로내리우스적인기독론으로서 신성과 인성을 분리 3) 인간론 : 영. 혼. 육을 세 장소적이며 공간적인 개념으로 분리시키는 이원론 이 세가지의 교리가 신인합일론을 만들게 된다. 지방교회가 주장하는 이 세가지 교리를 충분히 파악한다면, 지방교회가 과연 어떤 곳인지 여러분들은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은 기독교가 아니다. 지방교회가 이단이 아니라고 하는 사람은 그도 역시 이단과 동일한 사상을 갖고 있거나, 지방교회에 대해서 지식이 전무(全無)한 사람일 것이다. 만일 두가지가 다 해당이 안된다면, 그는 어떤 댓가를 위한 고의적인 목적으로 지방교회가 이단이 아니라고 말해 주는 사람이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지방교회는 다른 이단들과 동일한 수법을 사용하는데, 자신들의 교리를 성경적으로 짜깁기를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필요한 부분적인 성경만을 선택하여 인용한다. 과연 그들의 변명과 같이 그들은 삼위일체가 양태론이 아닐까? 그들의 신론은 명백한 양태론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이 경륜적삼위일체를 주장하기 때문에 양태론이 아니라고 변명하며, 또한 상호내재를 주장하기 때문에 양태론이 아니라고 변명을 한다. 또한 초대교회의 어거스틴과 갑바도기아 교부들도 자신들과 같은 삼위일체를 주장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이러한 고전적삼위일체의 배경을 파악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들의 주장은 모두 거짓 조작과 위장을위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설명할 교리는 양태론이며, 지방교회가 양태론을 주장한다는 명백한 증거와 함께, 지방교회가 양태론이 아니라고 변명하는 소위 경륜적삼위일체와 상호내재론, 고전적 삼위일체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할 것이다. 1) 신론 ➀ 양태론(Modalism) – 그러므로 아버지의 사랑과 아들의 은혜와 성령의 교통은 세 개의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가지의 세 단계이다. 마찬가지로 아버지, 아들, 성령은 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소유하고 누리기 위한 한 하나님의 세 방면이다. 예를 들어 얼음은 물이 되고 물은 수증기가 된다. 즉 한 실체가 세가지 형태를 띠고 있다. 그 실체가 수증기의 상태에 이를 때에 우리가 호흡하는 데 유용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소유하신 모든 것은 성령이 받으며, 성령은 우리가 누릴 수 있도록 그분을 우리 안으로 가져다 준다. 하나님은 그분의 삼일성 안에서 설명하고 묘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많은 예들이 있다.(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 하나님 297쪽)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삼위를 물과 얼음과 수증기의 세가지 양태로 보는 전형적인 양태론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가지의 세 단계’ 혹은 ‘한 하나님의 세 방면’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아버지는 온전한 수박으로 설명된다. 아들은 조각난 수박으로, 성령은 수박의 즙으로 설명되어진다. 이제 여러분은 요점을 알 수 있다. 아버지는 아버지일 뿐 아니라 아들도 된다. 그리고아들은 아들일 뿐만 아니라 성령이 되기도 한다. 바꿔 말하면 이 수박은 먹기 위한 조각도 되며, 우리 안에 있는 즙도 된다. 그 수박은 먹혀진 후 없어진다. 본래 그 수박은 식탁 위에 있었지만, 그것을 먹은 후에 그 수박은 온 가족 속에 있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의 경륜, 55-56쪽). – 왜 그 분의 경륜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세 인격들이 필요한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다른 세 하나님이 아니라, 세 인격으로 나타난 한분의 하나님이다. (위트니스 리, 신약의 결론, 하나님 363쪽) – 아버지와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인격이나 세 하나님이 아니라, 그들은 한 하나님, 한 실제, 한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한 이름으로 지칭된다. 이름은 그 인격을 지칭하며, 그 인격은 그 이름의 실제이다. 신성한 삼일성의 이름은 그 분의 인격과 동등한 신성한 존재의 총체이다. 하나님은 삼일, 즉 셋-하나이시다.(위트니스 리, 세부분의 사람의 생명되시는 삼일 하나님. 52쪽) – 우리 하나님은 한분이시다. 왜, 어떻게 이 한 하나님이 세 위격을 가지셨으며 가지실 수 있는가? 위격(person)이라는 단어는 성경에없다. 그것은 사람의 해석에서 나온 것이다. (위트니스 리, 하나님, 290쪽) 지방교회의 책을 읽어보면 위트니스 리가 전형적인 양태론이라는 것에 대해서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을 것이다. 성부 하나님이 직접 육신을 입고 성자 예수로 오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으로 왔다는 세 과정과 세 단계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한 인격을 말하기 때문이다. 위트니스 리의 글을 읽고 지방교회가 양태론이 아니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신학적으로 매우 무지한 사람일 것이다. – 그러므로 요한복음 3장16절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기의 아들을 주셨다. 이 아들이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다고 여기지 말라. 우리에게 주신 바 된 이 아들이 바로 다름아닌 그 하나님 자신이다. 당신이 아들을 영접할 때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며, 당신의 기도에서 당신은 그분을 아들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라 부른다.(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8-19쪽) – 이 놀라우신 하나님은 그분의 분배를 성취하기 위해 친히 두 단계를 취하셨다. 성육신에 의해 그 분은 구속하는 어린양으로서의 사람, 마지막 아담이 되셨다. 그런 다음에 그분은 또 하나의 단계인 부활을 취하셨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더 전진된 어떤 것이 되셨다. 그분은 생명주는 영이 되셨다.(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큰 비밀. 19-20쪽) 더욱이 위트니스 리는 정통기독교가 가르치는 삼위일체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도 이미 파악을 하고 있다. 그는 정통 기독교가 성경의 계시와 정통적인 가르침과 해석에서 벗어났다고 주장을 한다. 마치 삼위일체와 양태론에 대한 정의와 판결을 위트니스 리 개인이 내리는 것으로 보인다. – 어떤 그리스도인 교사들은 삼일성에 대한 그들의 가르침에서 아버지를 아들과 분리시킨다. 그들은 아버지와 아들, 영을 모두 분리시킨다. 그들의 가르침에서 그들은 아버지, 아들, 영이 구별될 뿐 아니라 분리될 수 있는 위격들이라고 말한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287쪽) – 전통적인가르침의 영향 때문에 우리는 온전한 하나님이 아닌, 아들 하나님만 성육신이 되셨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사실상 신약은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되셨다고 말하지 않는다. 신약은 하나님이 육신 안에 나타나셨다고 말한다.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이 성육신 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신약의 결론, 그리스도 78쪽) – 어떤사람들은 나에게 아들이 아버지이고 주님이 그 영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그 들이 충고할수록 나에게는 성경이 말하는 것을 말할 힘이 더 생긴다. 나는 성경에 따라 아들이시고, 사람이 되셨고, 우리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돌아가셨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우리 그리스도가 오늘 아들일 뿐 아니라, 아버지와 그 영이라고 말하는 것이다.(신약의 결론, 성령42쪽) 아래 글을 보면 지방교회는 기독교의 삼위일체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서,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태론의 시각으로 볼 때에 정통삼위일체는 삼신론으로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은 삼위일체의 초석이 된 니케야신조까지 부정을 한다. – 삼일성에대한 전통적인 설명은 전체적으로 충분치 않으며 삼신론에 가깝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와 합할 때, 하나님은 뒤에 남아 계시지 않으며, 그리스도가 보좌에 남아계시지도 않는다. 이것은 기독교가 주는 인상이다. 그들은 아버지를 한 인격으로 생각하여 또 다른 인격이신 아들을 보내사 구속을 성취하게 하시고 그후 아들은 또 다른 인격이신 그 영을 보낸 것으로 생각한다. 전통적인 생각으로는 그 영이 믿는 이들 안으로 오실 때, 아버지와 아들은 보좌에 남아 계신다. 믿는 이들이 기도할 때, 그들은 아버지 앞에 엎드려 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신격을 세 분리된 인격들로 나누는 것은 성경의 계시가 아니라, 니케야 신조의 교리이다.(신약의 결론, 하나님, 439쪽) 지방교회의 주장은 명백한 양태론이다. 어느 누가 보아도 양태론이 아니라고 말할 수가 없다. 정통삼위일체는 본질(우시아, essence)로는 한분이시지만, 인격(페르소나, person)으로는 셋으로서 서로 구별이 되며 상호교류가 가능하여야 한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한 인격과 한 실제를 주장하며, 한 인격이 세 과정과 세 단계를 거친다고 주장한다. ➁ 상호내재 (페리코레시스, co-inherence of the persons) 지방교회는 누가 보아도 양태론인데,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양태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그 이유가 자신들은 상호내재를 주장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적인 개념을 잘 모른다면, 그들에게 오히려 말려 들어가게 되며, 그들은 오히려 자신들이 정통삼위일체이라고 주장하며, 토론을 하는 상대방을 삼신론으로 뒤집어 씌우는 작전을 구사하게 된다. 그렇다면 상호내재라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 그 셋은 결코 분리되지 못한다. 그 셋은 항상 동시존재하며 상호내재한다. 한 분이 이곳에 있을 때에 셋 모두가 이곳에 있다. 분리됨이 없다. (신약의 결론, 하나님. 288쪽) – 삼위 양식론의 오류는 무엇인가? 삼위 양식론은 아버지와 아들과 영께서 모두 영원하지는 않고 또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오히려 삼위양식론은 아버지께서 아들의 오심으로 끝났고 아들은 그 영의 오심으로 끝났다고 주장한다. (하나님 37-38쪽) 즉 양태론은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가 성령으로 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삼위가 영원히 존재할 수 없지만, 자신들은 삼위가 동시에 존재하고 상호내재한다고 가르치므로 양태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캘빈의 시대에도 세르베투스라는 양태론자가 있었다. 그가 주장한 내용이 바로 삼중적인 신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 캘빈이 그들에 관해서 말한 내용을 잘 검토해 보면, 세르베투스와 그의 추종자들은 고대의 두 이단설이었던 사벨리우스주의와 아리우스주의를 교묘하게 혼합한 설을 가르친 듯 하다. 일면 세르메투스는 사벨리우스주의자였다. 캘빈이 말했듯이 세르베투스는 신의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존재한다고 말할 때마다 삼중적인 신을 도입하는 것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단일성에 일치 않는 한, 이삼위는 공상적인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제럴드 브레이의 신론, IVP, 234쪽) 앞에서 충분히 검토한 바와 같이 지방교회는 하나님 자신이 성육신으로 육신을 입고 왔으며,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살려주는 영의 세 과정, 세 단계를 거쳤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 세 과정과 세 단계의 삼위가 동시존재, 상호내재한다고 하므로 양태론이 아니라는 주장은 웃을 수도 없는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대학시절의 “나”가 있었고, 그 후에 “나”는 학교를 졸업을 하여 회사에 취직하여 사원으로 근무하였고, 그 후에 “나”는 교회에서 이단연구를 하게 되는 과정과 단계를 거쳤다고 가정하여 보자. 그 대학생이었던 “나”와 회사에서 근무했던 “나”와 이단연구를 하는 “내”가, 지금의 “나”라고 하는 사람 안에 상호내재하고 동시존재한다면 하면, 양태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나”라고 불리는 세 사람이 과연 인격적으로 하나인가? 셋인가? 과연 그 셋이 서로 상호교류가 되고 셋이 구별될 수 있는가? 대학시절의 “나”와 회사에서 근무했던 “나”와 이단연구를 하는 “나”의 셋이서 상호교류를 할 수 있으며, 서로 구별이 되는가? 그 셋이 내 안에 상호내재 한다고 하여 양태론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이와 같은 삼중적인 개념의 도입이 양태론이 아니라는 변명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차라리 당당한 이단이 되는 것이 낫지 않는가? 성경을 보면 성부는 성자와 성령을 파송한다. 삼위일체는 본질적으로 분리되지 않지만, 인격적으로는 분리되어야만 한다. 만일 인격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는다면, 성부가 성자와 성령을 파송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삼위의 파송에 대해서 위트니스 리의 황당한 주장을 들어 보면 양태론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삼일하나님이 삼일하나님을 보내셨다고 말할 수 있다. 요한복음14장26절에 의하면 삼일성의 첫 번째가 세 번째를 보내셨다. 그러나 세 번째가 보내심을 받았을 때, 그 분은 두 번째로 보내심을받은 것이다. 더 나아가 요한복음15장26절에 의하면, 세 번째는 첫 번째에 의하여 보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두 번째에 의해서도 보내심을 받았다. 세 번째가 오셨을 때 그분은 두 번째로 첫 번째와 함께 오셨다. 하나가 보내심을 받을 때에 모두가 보내심을 받은 것이다. 하나가 올 때 모두가 오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성령. 190쪽) 그렇다면 보내는 성부하나님에게도 삼위가 동시존재, 상호내재되어있고, 보내심을 받으시는 성자에게도 삼위가 동시존재, 상호내재되어 있으며, 파송되는 성령에게도 동시존재, 상호내재가 된다면, 삼위일체는 구위삼체가 되는가?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또다른 보혜사인 성령, 그를 보내신다고 하셨을까? 성경은 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한분 예수라고 말하고 있을까? 예수님은 왜 자기 자신인 하나님께 기도를 하셨을까? 삼위일체가 인격적으로 분리가 되지 않는다면,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에 성령이 위로부터 비둘기처럼 임하시고,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말씀이 들려왔을까? 스데반은 성령이 충만하였을 때에 예수가 아버지 오른편에 서신 것을 보았으며(행7:55), 다윗은 시편110:1에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내 주’를 구별할 수 있었을까? 예수님은 마22:43, 눅20:43-44. 행2:34-35에서 시편110:1을 인용하여 자신의 선재성을 직접 말씀하셨다. 지방교회는 어거스틴도 상호내재를 주장하였다고 말한다. 어거스틴과 동일한 주장을 한다는 것을 앞으로 세워서 어거스틴의 등 뒤에 숨어서 자신들은 양태론이 아니라고 속이는 것이다. 상호내재란 무엇일까? 고전적 삼위일체에서 “상호내재”는 ‘페리코레시스’라고 하는데, 그 문자적인 뜻은 윤무(輪舞)를 말한다. “서로가 서로의 안에 있다”는 요한복음에서 인용한 구절이다. 이 상호내재라는 주장은 초대교회에서 종속론(오리겐)이 등장하였을 때에 그것을 반박하기 위한 주장으로서 갑바도기아 교부들과 어거스틴에 의하여 주장된 것이다. 즉 초대교회에서 고전적인 삼위일체가 정립되는 과정에서 잘못된 주장이 등장하였는데, 즉 성부가 가장 크고, 성자예수와 성령은 좀 열등한 신성을 가졌다는 소위 ‘종속론’이라는 주장이 오리겐등을 통하여 나타났다.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예수는 열등한 신적존재라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하여, “아버지 안에 내가 있고, 아버지가 내 안에 있다”는 요한복음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소위 상호내재라는 주장이 나타난 것이다. 그 상호내재는 서로가 동등하다는 성경적인 근거를 제시하여 주므로서 종속론에 멋진 반격을 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상호내재라는 이론은 종속론을 반격하는 데에는 성공하였지만, 삼위의 인격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의문을 일으켰기 때문에 비판을 받게 된다. – 또한 이 말은 모든 신적인 속성 각각이 세 휘포타시스 모두에게 똑같이 돌려진다는 의미다. 즉 세 휘포타시스는 모두 전능하며 전지하며 영원하다. 이 교리는 종속론의 문제를 피하게 해주며 사벨리우스주의나 서머나의 노예투스의 성부고난설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골로새서2:9 “그 (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에 대해 적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상호점유의 개념은 오리겐의 위계질서적 모델을 기반으로 한 커다란 진보였다. 그러나 이 개념(상호내재)은 휘포스타시스들이 서로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느냐는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이점에서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제럴드브레이의 신론, IVP, 186-187쪽) – 우리는 위격들의 상호내재성, 즉 후에 이른바, 페리코레시스(교류, 상호순환)라고 불리우는 교리를 발견한다. 신성은 분할된 위격들 안에, 분할되지 않은 채로 존재한다. 세 위격들 속에는 ‘본성의 동일성’이 있다. 성자는 성부 안에 있고, 성부는 성자 안에 있다. 위격들의 구별에 따라서는 둘이 별개이나, 본질의 공유에 따라서는 하나이다. 위엄은 둘로 쪼개지지 않고, 영광도 나뉘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에 의해 설명되는 영광송 역시 복수가 아니라, 단수이다. 형상에 따른 영광은 원형에로 나아간다. 한 경우에는 모방의 이유인 형상이고, 다른 경우에는 본질에 의한 아들이시다. 그러니까 세 위격은 각각 자신 안에 한 동일실체 전부를 갖는다. 그리고 각 위격은 실체에 관한 한, 다른 위격들을 완전히 포괄하고 관통한다. 그러나 각 위격은 한 동일실체를 전부를 갖되, 다른 위격들과 공유할 수 없는 특성을 갖는다. (김석환, 교부들의 삼위일체, 바실 교부의 견해, 150쪽)

‘상호내재’(페리코레시스)라는 개념은 종속설을 반격하기 위한 용어였다. 또 상호내재는 장소적이며 공간적인 개념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훗날에서는 동적인 개념으로서 ‘상호침투, 상호순환’이라는 개념을 포함하게 된다. 정통신학은 인격이 구별되며, 상호교류가 가능한 상호내재의 개념을 안전하게 주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초대교회에서 양태론적인 물의를 일으켰던 고전적 삼위일체를 슬쩍 끄집어 내어, 자신들이 양태론이 아닌 것처럼 조작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즉 이러한 교회사적인 배경은 언급하지 않고 감추면서 단지 초대교회 교부들과 어거스틴도 이런 주장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들은 양태론이 아니라는 교회사적인 조작을 하는 것이다. ➂ 용어적인 문제점 양태론자들은 자신을 양태론이 아니라고 감추고 위장한다. 그 이유는 양태론이 기독교 2000년 교회사에서 단 한번도 정통신학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태론자들이 가장 변명을 하는 단골 메뉴가 바로 “자신들은 어거스틴과 같은 주장을 한다”는 것이다. 초대교회에서 있었던 고전적 삼위일체는 현재의 삼위일체와 다르며, 삼위일체가 정립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교회사를 보면 항상 이단적인 주장이 먼저 등장하고, 그것을 반박하는 과정에서 정통신학이 정립되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고전적 삼위일체는 정통신학이 정립되어가는 한 과정이었다. 히브리서 1:3에서 ‘휘포스타시스’(confidence essence, nature, person)라는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 단어의 뜻은 “본질, 본체, 실체, 실상”이라는 뜻을 갖는데 이 단어가 삼위일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히 1:3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휘포스타시스)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이 휘포스타시스라는 단어가 처음에는 본질을 의미하였는데, 나중에 예수도 하나의 휘포스타시스이며 성령도 하나의 휘포스타시스가 되므로 세 휘포스타시스의 개념으로 발전하게 된다. 어거스틴이 이 단어를 라틴어로 번역하면서 ‘페르소나’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 단어가 “가면‘이라는 뜻도 갖고 있었다. 즉 연극에서 배우가 가면을 바꿔 쓰고 일인다역을 하는 개념으로서, 양태론의 의미가 풍기는 그러한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 동방교회의 신학자들은 서방교회가 즐겨 사용한 ‘페르소나’를 피하고 그 대신 ‘휘포스타시스’라는 말을 사용했다. ‘페르소나’의 본래의 뜻이 가면(mask)이므로 그 말을 삼위에 적용시킬 때, 사벨리우스주의라는 오해를 받을 위험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체를 의미하는 말로서 ‘우시아’를 사용했다. 한 ‘우시아’에 세 ‘휘포스타시스’가 있다고 했다. (이종성의 삼위일체론. 259쪽) 어거스틴이 양태론자였다는 내용이 아니라, 어거스틴이 번역한 단어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는 오해를 받았던 것이다. 결국 칼케톤 회의에서는 휘포스타시스와 페르소나를 동의어라고 선언하게 되므로서, 양태론적인 오해를 종식시킨다. – 교회가 휘포스타시스와 페르소나는 동의어라고 공식적으로 선언하게 된 것은, 어거스틴이 죽은지 반세대가 지난 451년의 칼케톤 공의회에서였다. 이리하여 페르소나에 대한 정의에 휘포스타시스의 객관적이며 절대적인 성격을 포함시키는 길을 열게 되었다. 어거스틴이 이 위격들을 “존재양식”이라고 말하면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정확히 바로 이러한 절대적인 영구성이었다. 우리는 어거스틴의 어휘선택에 대해 의문을 표시할 수 있다. 그가 선택한 어휘는 그를 사벨리우스주의로 몰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이것은 페르소나라는 단어가 얼굴이나 가면을 뜻하기 때문에 삼위가 한분 하나님의 세 얼굴로 이해되어 결국 양태론적 오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역주) (제럴드 브레이의 신론. IVP, 198쪽) 즉 어거스틴과 초대교회의 교부들이 자신들과 같은 삼위일체를 가졌다고 변명하는 양태론자들이 있다면, 스스로 양태론자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 개념적인 면에서 그들은(필자 주, 갑바도기아 교부들) 휘포타시스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바르게 발전시키지 못했다. 그들의 사고에서 그 용어는 우리가 ‘위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에 연상하는 충만한 의미상의 발전에 완전히 도달하지 못했다.(제럴드 브레이의 신론. 192쪽) 위트니스 리는 정통 삼위일체가 형성되어진 용어의 과정을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그는 정통삼위일체를 고의적으로 부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 우리 헬라인 친구들은 한 본질과 세 실체라고 말했으나, 라틴인들은 한 본질(혹은실체)과 세 인격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한 것이 신비스로운 것으로만 이해된다면 그렇게 말하는 것이 충분하겠다…… 세 인격이라고 말한다면, 왜 세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 각각을 유일한 한 인격이라 부를지언정, 세 인격이라고 부를 수 없다.(위트니스리 리, 성령, 51쪽) 필자와 [교회와 신앙]에서 공식토론을 한 지방교회 교인은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어거스틴을 이용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 신학을 향한 충고, ‘예수는 성령이다’라고 하면 사벨리우스(Sabellius)의 양태론(Modalismus)을 운운하며 이단이라고 매도하는 성급하고 극단적인 편견은 버려야 한다. 만약 이러한 편견을 버리지 않는다면 결국 어거스틴도 양태론자라고 하는 것과 같으며 그 이유는 신학자들이 너무 잘 알고들 있을 것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삼위일체가 자신들의 주장만으로 또 다시 악용되거나 남용되지 않도록 주의를 해야만 한다.’ (지방교회와의 토론 글 3편에서) ➃ 경륜적삼위일체 지방교회는 또 자신들은 경륜적삼위일체를 주장하기 때문에 양태론이 아니라고 변명을 한다. 그들은 초대교회 교부들도 경륜적삼위일체를 주장하였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지방교회가 말하는 경륜적 삼위일체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들은 자신들도 구별된 삼위를 인정한다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말하는 본질적 삼위일체는 결국 상호내재이며, 그들이 말하는 경륜적 삼위일체는 곧 사역적 양태론을 뜻한다. – 경륜적으로 말하자면 아들은 이 땅에 계셨고, 아버지는 하늘에 계셨다. 그러나 요한복음14장에서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말해서, 아들이 이 땅에 계셨을 때, 아버지는 그분 안에 계셨으며, 그 분은 아버지 안에 계셨다. 우리는 본질적이라는 단어를 그분의 본체 안에서의 그리스도의 존재하심을 언급하는데, 경륜적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언급하는데 사용한다.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하여 아버지는 하늘에 계셨고 아들은 땅 위에 계셨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즉 그 분의 실체 안에서 그리스도의 존재하심에 따르면, 아들은 항상 아버지 안에 계셨고 아버지는 아들 안에 계셨다. 이것은 상호내재의 문제이다. 이들은 아버지와 하나였을 뿐 아니라 아버지와 상호내재하였다. (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33-34쪽) 그들이 주장하는 경륜적 삼위일체는 곧 양태론을 의미하는 사역적인 삼위일체이며, 그들이 말하는 본질적 삼위일체는 위장된 상호내재인 것이다. – 본질적이라는 것은 생존과 존재를 위한 것이며, 경륜적이라는 것은 일과 기능을 위한 것이다. 우리가 본질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그분의 존재를 가르키는 것으로, 그 분의 존재하심 안에 있는 거룩한 삼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륜적인 삼일성을 말할 때 이는 그분의 움직이심과 역사와 기능을 가르키는 것으로 그분의 경륜 안에 있는 거룩한 삼일성을 의미하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성령 69쪽) 이들이 말하는 용어의 뜻을 파악하면 이들의 주장은 전혀 어렵지 않다. 지방교회가 말하는 경륜적삼위일체란 실제적인 삼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과 기능을 위한 사역적인 분류일 뿐이다. 즉 하나님과 예수님은 인격적으로는 구별되지 않고, 단지 사역적으로만 구별된다는 것이 경륜적 삼위일체인 것이다. 즉 그들이 구별된 삼위를 인정한다는 것은 일과 기능을 위한 사역적으로만 구별되어진다는 것으로 양태론이라는 스스로의 고백과 같다. 동일한 한 하나님이 사역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으로서, 구약에서는 아버지로 사역하셨고, 신약에서는 예수로 사역하셨다가,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사역을 한다는 것이 곧 사역적(경륜적) 삼위일체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경륜적삼위일체는 어떤 것인가? – 그러나 이 견해는(필자주: 경륜적삼위일체는) 전체 교회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실패했다. 신학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나, 동방의 3대 신학자와 아우구스티누스 후부터 경세론적 삼위일체론을 공적으로 지지하는 신학자는 없었다……이러한 이유에서 경세적 삼위일체론은 제4세기 이후부터는 신학영위의 중심부에서 밀려나고 말았다.(이종성의 삼위일체론, 257쪽) 이들이 주장하는 경륜적 삼위일체란 단지 사역적으로 구별되는 삼위를 가르키는 것으로서, 이미 4세기 이후에 자취를 감춘 이론일 뿐이다. 이들은 삼위일체를 경륜적과 본질적으로 구별하는 이유는 자신들이 양태론이 아니라고 위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 이러한 유형의 경륜주의에 따르면, 구약성경은 성부에 대한 계시였으며, 성육신에서 승천에 이른 시기는 성자에 대한 시대였고, 오순절 이후부터의 시기는 성령에 대해 계시하는 시대라는 것이다.(제럴드 브레이의 신론, IVP, 151쪽) 또 그들이 말하는 상호내재(페리코레시스)도 초대교회에서 양태론적인 오해를 불러 일으켜 비판을 받았던 주장으로서, 인격을 구별할 수 없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았던 견해이다. 정통신학에서의 상호내재라는 개념은 고유의 인격성을 강조하며, 동적인 개념을 포함하여야만 한다. – 위에서 지적한 것과 같이 바실(필자 주: 갑바도기아 교부)은 삼위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서 ‘통해서’, ‘안에서’ ‘함께’ 라는 낱말을 구사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의 본성적 상호교류 또는 대자적 관계성을 강조했다. ….. 그는 신성의 통일성과 단일성을 강조하다가 군주신론(필자 주:양태론)에 빠진 데오도투스나 사모사타의 바울을 경계했다.(이종성의 삼위일체론 251쪽) 그렇다면 정통신학이 말하는 상호내재적인 연합이란 무엇일까? 각각 독립된 인격을 구별하는 연합을 뜻한다. – 그(예수)는 신자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는 우리의 연합이 삼위일체 안에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완전한 연합과 같게 되기를 기도하신 것으로, 우리의 하나됨은 영원하고 완전히 조화를 이룬 것이어야 함을 하나님의 하나됨과 같이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삼위를 통한 비유가 대단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개개인의 성품을 흡수해 버리지는 못할 것을 경고하기 때문이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완전한 연합을 이루고 있음에도그들은 독립된 삼위이다. 마찬가지로 어느날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고 다른 신자들과 함께 완전한 연합을 이루게 되겠지만, 우리는 우리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능력, 관심 책임, 친구관계, 선호도, 욕망등을 소유한 독립된 개체로 남아 있을 것이다.(웨인 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557쪽) – 웨슬리는 성부, 성자, 성령, 각자가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인격성을 강조하며, 삼위의 상호내재를 주장한다.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을 표현하는 신학적 용어로 ‘상호내재'(perichoresis)를 사용한다. 이 말은 서로가 상대방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철저하게 거부하고 포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비우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 안에,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고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뜻한다. 이렇게 상호내재함으로써 서로 간의 일치를 이룬다. 이와 같은 상호내재의 속성에 의해서 성부, 성자, 성령은 서로 분리되지 않으면서 서로 구별이 된다. 이로서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으로서 구별될 지라도 서로 분리되거나 떨어지거나 나뉘어지지 않는 단일성을 갖게된다(김영선의 웨슬레 신학) 정통신학에서 페리코레시스는 인격적인 구별을 전제로 한다. 양태론은 단순한 이단적인 신학적 이론이 아니다. 양태론을 주장하게 되면, 와이셔츠의 처음 단추를 잘못 맞춘 결과가 되어 나중 단추를 채울 수가 없다. 실제로 양태론을 주장하는 자들 중에서는 예수의 재림을 부정하는 곳도 있으며, 실제로 지방교회는 예수의 가시적(可視的)이며 신체적인 재림을 부정하며, 죽어서 가는 사후 천국의 장소적인 개념도 부정한다. 또 양태론에 의하면 성령이 곧 다시 오신 예수가 되며, 예수가 죽고 부활하여 성령으로 오신 양태적인 존재가 되기 때문에 별도의 예수의 재림은 없게 된다. 또 양태론자들에게 구약의 하나님의 신, 성령과 오순절 이후의 성령은 다른 존재가 된다. 성령은 오순절 이후에 처음 등장한 하나님 자신의 양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뢰아는 구약의 ‘하나님의 신’을 천사라고 주장한다. 더욱이 하나님 자신이 직접 육신으로 와서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을 드리는 분과 그 제물을 온전히 받으시는 분이 동일한 존재가 되므로 십자가 대속의 개념이 달라진다.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죽음은 죄에 대한 대속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신을 공급하기 위한 신인합일의 목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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